너를 만나고도 기다린다
눈앞에 두고도 기다린다
너에게 눈이 멀어
너와 함께 너를 마중나간다
너를 보내려 너를
기다린다
너와 함께할 수 없었다
너를 기다린다 네가
지나치도록
너와 함께 기다린다
이미 지나간
너를 기다린다
56번 버스가 지나가고
59번 버스도 지나갔다
66번 버스도 지나간다
기다린다 
네가 올 때까지
와서 지나칠 때까지
너를 기다린다
너를 만날 때까지
너를 만나고도 기다린다
너에게 눈이 멀어
나는 나조차도 지나쳐버렸다
너를 보내려 나는
기다린다
이 세상 끝날 때까지
너와 함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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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게 저은 다음 5분 동안 놓아둔다
아직은 아니다

다시 세게 저은 다음 5분 동안 놓아둔다
무엇을 젓는가는 묻지 말고
세게 휘저은 다음 딱 5분 동안
왜 5분인가는 묻지 말고
세게 거세게 휘저은 다음
아니 5분 동안 젓는 게 아니라
그냥 휘저은 다음 놓아둔다
그냥 내버려둔다고 
그게 다냐고 묻지는 말고
그리고 기다린다
무엇을 기다리는가는 묻지 말고
언제까지 기다리느냐고도 묻지 말고
세게 저은 다음 놓아둔 다음에
기다리고 기다린 다음에
퇴장한다 
뒤도 돌아보지 말고 
5분간 기다린다거나 그러지 말고
그냥 퇴장한다
아무것도 휘젓지 않고
아무것도 기다리지 않았다면
이제 완성되었다
세게 저은 다음 5분간 기다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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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wo0sun 2019-09-03 13:20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읽고 다시 읽었네요.
무엇을 저었는지 묻지 말라고 했지만
혹시나 싶어서
나도
머리를, 마음을, 시간을, 그 중 뭐라도
세게 저은 다음 5분간 기다리면
시가 될 수 있을까 생각해봤네요.

로쟈 2019-09-03 14:17   좋아요 0 | URL
첫문장이 책에 나오는 비문학 예시문이에요. 시가 되기 어려운.

two0sun 2019-09-03 14:52   좋아요 0 | URL
어제 강의 듣고 저 책 주문했는데~
책 오면 잘? 읽어봐야겠네요.
 

그날 아무도 취하지 않았다
그래도 삶은 계속된다

아무도 취하지 않았다는 이유가 아니다
아무도 만취하지 않았고 시비를 걸지도 않았다

아침이었다 아침부터 취할 수는 없다
추한 일이다 비틀거린 기억은 있다

그랬지 그건 당신도 기억나는 일
당신도 발을 뺄 수 없는 일

취하지 않아도 횡설수설이 가능했다
맥주 한잔으로도 만취할 수 있었다

만취하고도 나는 말이 없었다
기쁜 표정이었지만 기쁘지 않았다
나는 스무살

비틀거리며 이태원에서 귀가했을 때
하숙집 사람들은 모두 자고 있었지

아침에야 보았다 촛불을 켜지 못한 케익
단 한번 촛불을 끄지 못한 케익

아무도 전날의 일은 묻지 않았다
하숙집 사람들은 하나둘 떠났고
나도 떠났다 

스무살을 그렇게 지나쳤다
단 한번의 스무살이 당신에게도 있었지

당신은 비틀거리며 택시에서 내려 
계단을 올라갔지 고개처럼
올라가야 숨이 찰 때쯤 하숙집이 있었지

하숙집 사람들은 모두 자고 있었지
하숙집 사람들은 모두 떠났지

영국으로 유학을 가고 또 군대에 갔지
나는 군대에 갔지

그랬지 그건 당신도 기억나는 일
이듬해 신촌에서 마지막으로 본 영화 욜
터키 영화 욜이었지 길이었지

그날도 지금도 취하지 않았다
아무렇지도 않게 횡설수설하는군

그래도 삶은 계속된다
나는 여전히 기쁜 표정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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에밀리를 위한 꽃이 필요해
장미가 아닌 야생초
절벽 위에 핀 야생초 헤더꽃
그게 히스클리프
캐서린을 위한 히스클리프는
에밀리를 위한 꽃이기도 해
에밀리에게 바치는 꽃이어야 해
오빠의 장례식에서 비를 맞고
폐결핵으로 죽은 에밀리
서른에 죽은 에밀리
에밀리가 세상을 떠나던 날
살럿이 에밀리에게 건넨 꽃
히스클리프
절벽에서 꺾은 야생초 헤더꽃
히스클리프를 창조해낸
에밀리에게 어울리는 꽃
헤더꽃이 만발한 황야에 가볼 수 있을까
폭풍이 휘몰아치는 언덕에 서볼 수 있을까
에밀리를 위한 꽃을 들고서
에밀리를 기억하기 위해서
에밀리가 사랑한 개 키퍼처럼
에밀리를 애도하며 울부짖은 키퍼처럼
수주간 울부짖은 키퍼처럼
에밀리를 위하여
에밀리만을 위하여
잠시 절벽에 서볼 수 있을까
절벽 위에 핀 헤더꽃처럼
히스클리프
에밀리를 위한 히스클리프처럼
에밀리만을 위한 야생초처럼
에밀리 브론테를 위하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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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9-09-22 07:21   URL
비밀 댓글입니다.
 

너는 라스콜니코프다
전당포에 가는 게 너의 일과
전당포 노파를 도끼로 살해하는 게 
너의 주특기
너는시베리아로 가야 하지
너는 소냐와 함께
그런데 시베리아의 아침은 왜
이리 더딘가
라스콜니코프는 늘어지게 하품을 한다
아침은 아직 준비가 안된 표정이다
더 멀리 가야 했던가
블라디 블라디보스토크
오늘의 너는 어제의
너가 아니다
너는 라스콜니코프가 아니다
너는 대학생이 아니다
도끼를 언제 손에 쥐어봤던가
도낏자루가 썩는 줄 몰랐던가
블라디 블라디보스토크
시베리아의 어둠은 끝나지 않았다
너는 전당포에 가지 않았다
너는 도끼를 들지 않았다
너는 그러고도 소냐와
너는 시베리아로 가지 않았다
더 멀리 가야 했던가
라스콜니코프는 왜 이리
늦는가 너는
누구인가
너의 여권은 어디에
도끼는 반입할 수 없다
도끼는 검색대를 통과하지 못한다
너는 시베리아로 가야 한다
더 멀리 가야 했던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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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맘 2019-08-27 22:24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제 생각도 같습니다!!!
로쟈쌤은 어제의 로쟈가 되고 싶으셨던(싶으신)거죠?ㅎㅎ
(쌤의 의도를 제대로 파악한건지
제 멋대로 까불어봅니다ㅎㅎ)

로쟈 2019-08-27 22:52   좋아요 0 | URL
대학생 때 읽고, 이젠 더이상 대학생이 아닌 나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