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휴 기간이어서인지 알라딘에 새로나온 책들이 업데이트되고 있지 않다. 아니, 새로나온 책들이 없는지도 모르겠다. 출판사도 대개는 휴무일 테니까. 그런 틈을 타서 예술분야의 책들로만 '최근에 나온 책들'을 꼽아보기로 한다. 최근에 나왔다고는 하지만 더러는 몇 달 전에 나온 책도 포함돼 있는 리스트이다. 사진 작가 로버트 카파의 경우가 그러한데, 카파와 건축가 리베스킨드를 꼽은 데는 이런저런 자료들을 찾아보려는 개인적인 '계산'이 반영돼 있다. 너무도 친숙한 우리의 모차르트와 반 고흐에서부터 '낙천주의 예술가' 리베스킨드에 이르는 여정이 연휴를 마무리하면서(갑자기 늘어난 할일들!) 부려보는 '마지막 사치'쯤 되겠다(일상의 시간들과 대립된다는 의미에서 사실 '휴일의 시간'들은 '예술의 시간'들이지 않은가?).   

 

 

 

 

제일 먼저, "미국의 저명한 역사학자이자 프로이트 전문 연구자 피터 게이"가 <모차르트>(푸른숲, 2006). 역사학자답게 "기존의 모차르트 전기에 나타난 신화적이고 감상적인 색채를 걷어냈다. 천재 예술가 삶의 주요 국면을 객관적인 입장에서 조명하고 있다. 저자는 모차르트의 천재성과 그의 음악이 탄생한 사회적, 역사적 맥락을 보여주며 모차르트에 대한 낭만적인 추론을 비판한다. 연대기 순이 아니라 '천재', '아들', '종', '자유 음악가', '거지', '거장' 등 테마별로 각 장을 구성하여 화려한 수식이나 부풀려진 신화 없이 위대한 음악가의 진면모를 확인해볼 수 있다."

그러한 소개의 글에서 내가 제일 먼저 떠올린 책은 사회학자 노베르트 엘리아스의 <모차르트>(문학동네, 1999)이다. 엘리아스의 유작인 이 책은 '한 천재에 대한 사회학적 고찰'이란 부제를 갖고 있고, "철저한 사회 문화사적 시각으로 모차르트를 해석한다. 모차르트가 활동하던 당시의 사회 상황에 초점을 맞춰 모차르트의 천재성의 본질을 규명하고자 한 것. 사회의 여러 양태가 구조적 제도적 맥락에서 개인의 천재성에 결정적으로 영향을 미칠 수 있다는 내용을 풍부한 일화와 편지들을 근거로 깊이 있게 논하고 있다."

해서, 나는 이 두 사람의 책을 나란히 같이 읽어보면 좋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한편 저자인 피터 게이에 대해서는 그의 <부르주아전>(서해문집, 2005)을 소개하면서 다룬 바 있다. 그리고, 모차르트 관련서로 올해 나온 책으로는 파울 바르츠의 <소설 모차르트>(자음과모음, 2006)가 눈길을 끈다.  

 

 

 

 

두번째 책은 나탈리 에니크의 <반 고흐 효과>(아트북스, 2006). 저자 소개에 따르면 나탈리 에니크는 "사회과학자로서 프랑스 국립과학연구소(CNRS)의 책임 연구원이다. 주요 저작으로는 <예술가의 화법>, <여성의 지위 - 서구 소설에서 여성의 정체성>, <예술 사회학>, <노베르트 엘리아스의 사회학>, <반 고흐 효과>, <반 고흐의 영광>, <찬미의 인류학에 대해> 등이 있다"고 돼 있는데, <여성의 지위>는 <여성의 상태>(동문선, 1999)로 번역돼 있다. 해서 나는 문학연구자로 알고 있었는데, 전공은 '예술사회학'이라고 해야겠다. 아래 사진을 보면 전공이 무색하지 않은 미모의 학자이다.

예술사회학자답게 저저의 관심은 '반 고흐' 자신이 아니라 '반 고흐 효과'에 두어진다(원제는 '반 고흐의 영광'이다). 우리가 아는 '반 고흐'가 어떻게 탄생했는가 하는 것. 곧, 저자는 "고흐를 실마리 삼아 치밀하게 예술가 숭배의 매커니즘을 밝힌다. 예술은 현대의 종교가 되었다는 저자의 분석은 치밀하면서도 복잡한 논리의 직조를 통해 하나의 완성된 이론으로 거듭난다. 예술이라는 종교의 첫 번째 성인으로 저자는 고흐를 뽑고, 그가 성인으로 추대된 이후 고흐 이전과 이후의 예술가들은 그 틀 속에서 자리를 잡게 된다고 지적한다." 그러니까 이 '예술사회학'은 '종교사회학'이기도 하며(에니크는 종교학자 엘리아데의 구절을 에피그라프로 삼고 있다) 저자는 그 '틀'을 문제삼겠다는 이야기겠다.

뒷표지에 붙어 있는 한 추천사에 따르면, "에니히는 반 고흐를 진화하는 문화현상이자 오늘날의 미술 실천을 강제하는 신화로서 독해한다... <반 고흐 효과>는 우리가 영웅을 만드는 방법뿐 아니라 그들을 필요로 하는 이유에 대해 상상력에 넘치면서도 설득력 있게 보여준다." 고로 고흐를 좋아하거나 숭배하는 이들이라면 반드시 한번쯤 읽어볼 만한 책이다.

<반 고흐 효과>와 비슷한 시기에 나온 또 다른 책은 "제2차 세계대전의 화염 속에 사라진 빈센트 반 고흐의 자화상을 소재로 쓴 팩션", <반 고흐 컨스피러시>(마로니에북스, 2006)이다. "사랑, 음모, 배반이 얽힌 긴박한 추격전, 그리고 서서히 밝혀지는 미술품 약탈의 진상, 유럽의 여러 나라를 넘나들며 펼쳐지는 흥미로운 이야기"라고 하니까 '다빈치의 독자들'도 같이 읽어보면 좋겠다.  가난에 쪼들렸던 고흐는 모델을 구할 돈이 없어서 자화상을 많이 그린 것으로 알려져 있는데, 그와 비교하면 상상력이 무기가 되는 작가들은 형편이 좀 낫지 않나 싶다(거꾸로 자기 얘기만 쓰는 작가들은 아무래도 '빈티'가 나는 걸 감수해야겠지만).  

 

 

 

 

세번째 책은 에곤 쉴레/실레(1890-1918)의 <세상의 하이페리온>(미디어아르떼, 2006). 미술비평가 아투어 뢰슬러가 에곤 쉴레와 나눈 대담집 <에곤 쉴레를 회상하며>(미디어아르떼)와 나란히 출간됐다. 책을 낸 출판사 '미디어아르떼'의 데뷔작들이기도 한 이 책은 언젠가 한 인터뷰를 읽어보니까 '볼 만한 도판'에 대한 펴낸이의 욕심이 최초로 얻어낸 성과물이기도 하기에 그 결과가 주목된다(나는 아직 책의 실물을 보지 못했다). 쉴레와 관련하여 내가 이제까지 내가 갖고 있는 책은 프랭크 휘트포드의 <에곤 실레>(시공사, 1999) 정도였다.

<세상의 하이페리온>은 "요절한 천재 미술가 에곤 쉴레와 가족간의 편지, 그리고 감옥에서 쓴 편지들을 엮"은 책이라고 한다. "가족과 떨어져 살았기에 대화가 단절되었던 쉴레는 편지를 통해 자신의 예술관, 그리고 일상에 대한 열정을 가족들에게 표현하고 또 설득했다"고 하고, "편지자료는 쉴레가 태어나고 성장했던 툴른에서 수집한 것들"이라고. 이런 식의 편지들이다: "내 그림 중에 어떤 것들은 그런 고통과 슬픔 속에서 스스로 생겨난 것입니다. 다른 그림에는 나의 행복한 상태를 같이 그려놓았어요. 왜냐하면 예술가는 사람들을 기쁘게 하는 것뿐만 아니라 의식에 대한 경고를 하고, 그것들을 일깨우고, 또 풍부하게 해주는 사람이란 것을 알았기 때문이에요. 그것이 언젠가는 알려지게 될까요? 나는 회의적입니다."

책은 쉴레의 그림 애호가들에겐 더할 나위없는 필독서이겠고, 더불어 그림을 좋아하는 이들도 같이 읽어볼 만하다. 거기에 추가하고 싶은 독자층은 김기덕 감독의 영화들을 즐겨보는 관객들인데, 기억력이 아주 나쁘지만 않다면 <나쁜 남자>에서 여주인공 서원이 서점에서 훔치려던 (그러다 결국 자신의 신세를 망치게 되는) 화집이 에곤 쉴레의 것임을 떠올릴 수 있을 것이다. 감독 자신이 좋아하는 화가라고.  

 

 

 

 

네번째 책은 세계적인 보도사진 작가 로버트 카파(1913-1954)의 이야기 <로버트 카파>(강, 2006)이다. 시나리오 작가이기도 한 알렉스 커쇼가 재구성했다는데, "피가 튀는 전장의 한복판에서, 주요한 역사의 현장에서 불후의 이미지들을 건져 올려 현대사의 생생한 기록으로 남긴 로버트 카파의 열정적이고 모험적이며 자유로운 삶을 흥미롭게 펼쳐 보인다"고 한다. 원제는 <피와 샴페인>(2002).



저자 커쇼는 "부다페스트의 양복장이집 유대인 청년이 1931년 정치 난민으로 헝가리를 떠나고, 베를린을 거쳐 파리, 런던, 마드리드, 뉴욕, 모스크바, 인도차이나 등 전세계를 누비며 '카파이즘'이라는 새로운 개념을 만들어내기까지, 그리고 전장에서 사랑하는 연인과 자신의 목숨을 잃기까지 명료하고 생생한 언어로 복잡한 현대사와 극적인 여러 순간들을 영화를 보여주듯 박진감 있게 재구성한다"고 하니까 카파의 사진들에 매혹되는 바 없지 않다면 펼쳐들어볼 만한 책이다.

아무래도 그의 사진의 주무대는 전장이었고, '카파이즘(죽음을 두려워하지 않는 투철한 기자정신)'이란 용어 자체가 가장 잘 어울리는 직업/직분은 '전쟁사진작가'이다. "보도사진계에 신화와도 같은 존재로 남은 전쟁사진작가 로버트 카파의 제2차 세계대전 종군기"가 우리말로 번역된 것이 <그때 카파의 손은 떨리고 있었다>(필맥, 2006)이다. 이 또한 <로버트 카파>와 나란히 꽂아둘 책이다. 

 

 

 

 

끝으로 다섯번째 책은 세계적인 건축가 다니엘 리베스킨드의 건축 이야기 <낙천주의 예술가>(마음산책, 2006)이다. "911 테러로 사라진 세계무역센터 현장을 새롭게 재창조하게 될 건축가 리벤스킨트의 열정과 모험담"이라는 좀 장황한 부제 자체가 책의 내용을 잘 요약해주고 있는 듯싶다.

2년에 한번씩 전세비나 걱정하는 처지에 건축에 대한 유난한 관심을 가졌을 리 없는 나는 이전에 리베스킨드란 이름을 들어본 바 없다. 한데, 그는 대단히 유명하다고 한다. "그가 설계한 베를린 유대인 박물관은 현재까지 독일에서 관람객이 가장 많은 박물관으로 꼽힌다"고 할 만큼. 게다가 국내에선 삼성동 현대산업개발 본사의 외관을 설계했다고 하니까 우리와 아주 무관하지도 않다.

Daniel Libeskind's original plan

소개에 따르면, "리베스킨트가 생각하는 훌륭한 건축이란 인생의 굽이굽이 등장하는 갖가지 색을 모두 담아내어 영혼에 내재된 이야기를 들려주는 건축이다. 그는 돌, 쇠, 콘크리트, 나무, 유리처럼 말 못하는 물질을 가지고 생각과 감정을 표현하고, 사람 이야기를 들려주고, 역사를 제시해야 한다고 말한다. 작가는 빛, 소리, 영혼, 장소 감각, 역사에 대한 경외 등에서 영감을 얻는다 말한다. 건물이 영적인 울림을 지니기 위해서는 실제 존재하는 대상과 보이지 않는 힘이 공존해야 한다고 강조한다. 이런 태도는 자신의 대표작을 만들기까지의 과정을 담은 흥미진진한 에피소드를 통해 엿볼 수 있다."

View from south of the Statue of Liberty

아무려나 쌍둥이 무역센터빌딩을 대신하여 들어설 그의 건축물들이 '영적인 울림'을 지닌 건물들, "실제 존재하는 대상과 보이지 않는 힘", 곧 산자와 죽은자, 그리고 살아남은자의 생각과 감정을 표현하고 고통을 전달해줄 수 있는 그런 상징물들이 되었으면 좋겠다. 지구 종말의 시대에도 우리를 낙천적으로 만들어줄 수 있는...  

06. 10. 08-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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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휴를 앞두고 최근에 나온 책들 가운데 몇 권을 꼽아본다. 나로선 당장 연휴에 읽을 책들은 아니지만 한두 권 정도는 연휴에 구입할 계획이다. 개인적으로 일주일에 평균 5-60권의 도서정보를 처리하고 그 중 최소 10여 권을 구입하거나 복사한다. 절반 정도는 전공이나 관심사와 관련된 원서들이고 나머지 절반쯤이 우리말 책들인데, '최근에 나온 책들'은 그 가운데 특별히 눈에 띄거나 한번쯤 관련서들을 뒤적거려보고 싶은 책들에 속한다. 이번 경우엔 <로맹 가리>나 <도구적 이성비판>이 특별히 그러한 종류에 해당된다. 먼저 <로맹 가리>부터 시작해보자. 

 

 

 

 

도미니크 보나의 <로맹 가리>(문학동네, 2006)는 공쿠르상을 두 번이나 수상한 유일한 작가이자, 수수께끼 같은 작가 로맹 가리, 혹은 에밀 아자르에 관한 전기로 1987년 아카데미 프랑세즈의 전기부문 대상을 수상했다고 하는 만큼 신뢰할 만한 평전이다(보나의 책으론 <세 예술가의 연인>도 출간된 바 있다). 요컨대 "<자기 앞의 생>, <새들은 페루에 가서 죽다>의 작가, '로맹 가리'와 '에밀 아자르'의 이름으로 번갈아 소설을 발표하며 '매너리즘에 빠진 거장'과 '자유로운 영혼의 신인'이라는 두 페르소나를 연기했던 작가, 1980년 권총 자살로 생을 마치기까지 열정과 야망으로 한 시대를 풍미한 소설가 로맹 가리의 66년 생애를 조명한다."

소개를 좀더 옮겨보면 "<로맹 가리>는 문학비평 기자이자 르노도 상 수상 작가인 도미니크 보나가, 저널리스트의 치밀함과 소설가의 감수성으로 쓴 평전이다. 프랑스 문학계를 뒤흔들었던 '아자르 사건'을 포함하여, 로맹 가리의 내면세계와 모든 작품과 창작의 배경, 파란만장한 생애를 그린다. 화려한 성공을 꿈꾸는 한 가난한 소년의 열망이, 화려한 언변과 세련된 외모로 세계 외교 무대를 사로잡은 한 외교관의 카리스마가, 끊임없이 사랑을 갈구하는 한 남자의 외로움이, 창조적 에너지를 마음껏 분출하고자 했던 한 작가의 자유에 대한 갈망이 파노라마처럼 펼쳐진다."

 

 

 

  

사실 내게 로맹 가리보다 더 친숙한 이름은 그의 가명이자 '또 다른 작가' 에밀 아자르이다. <자기 앞의 생>을 먼저 읽었기 때문이다(카롤린 봉그랑의 <밑줄 긋는 남자>의 여주인공도 내 기억에 로맹 가리의 광팬이었다). 

내가 책을 읽은 건 기억에 1990년 봄쯤이다. 나는 제대를 얼마 안 남겨두고 한 부대 관사의 당번병 방에서 뒹굴며 몇몇 소설들을 탐독했었는데, 파스칼 레네의 <레이스 뜨는 여자>와 함께 가장 기억에 남는 소설이 바로 <자기 앞의 생>이었다. 주인공 모모와 로자(로쟈가 아니다) 아줌마가 엮어가는 가슴 뭉클한 이야기. 이후에 다시 읽은 적이 없으므로 작품에 대해 정확히 평하기는 어렵지만 여하튼 에밀 아자르란 이름을 기억하게 해주었고 이후에 <새들은 페루에 가서 죽다>까지 관심이 이어지도록 했다. 비록 <유럽의 교육>(책세상, 2003)은 구입해두지 않은 것이 지금 생각으론 다소 의아하지만. 아무튼 이번에 나온 전기를 읽다 보면 로맹 가리, 혹은 에밀 아자르란 한 작가(혹은 두 작가?)에 대해서 좀더 분명한 판단과 열정을 갖게 될 수 있으리라 생각된다.  

 

 

 

 

두번째 책은 역시나 평전으로 '과학지식인의 탄생'이란 부제를 달고 있는 폴 화이트의 <토머스 헉슬리>(사이언스북스, 2006)인데, 실상은 지난번에 다루어져야 할 책이 마땅한 자리가 없어서 이월됐다. 가장 먼저 눈에 띄는 건 '헉슬리'란 성이다. 조금 견식이 있는 독자라면 이 '허슬리'가 여럿 된다는 것쯤은 상식으로 알고 있을 것이다. 우리에겐 주로 <멋진 신세계>의 작가 올더스 헉슬리가 잘 알려져 있는데, 헉슬리 가문을 일으켜세운 토머스 헉슬리(1825-1895)가 바로 올더스 헉슬리의 조부이다. 토마스의 또다른 손자인 생물학자 줄리안 헉슬리 경은 올더스의 형이고, 그들의 배다른 동생 앤드류 헉슬리는 노벨상 수상 과학자이다. 토머스 헉슬리는 '다윈의 불독'으로 불렸을 만큼 진화론의 강력한 옹호자로 유명한데, 이 '불독' 집안이 가히 지성의 명가인 것이다.

저자 화이트는 책에서 "19세기 과학계의 발전사와 '과학 지식인' 토머스 헉슬리의 삶을 다뤘다. 헉슬리가 신문, 잡지 등에 기고한 글과 부인 및 동료들과 나눈 서한 등 방대한 자료를 바탕으로 학문의 경계를 넘나들며 과학 및 과학자의 정체성을 확립시킨 토머스 헉슬리를 재조명한다. 좁게 정의되는 과학이 아닌, 다른 문화 영역들과 연결되는 실천방식으로서의 과학을 추구한 그의 삶을 세세하게 그려낸다... 책은 과학의 실천, 대중화, 변호 과정에서 헉슬리에 관련된 여러 자료를 통해, 19세기 빅토리아 시대에 한 사람의 '과학 지식인'이 만들어지는 과정을 추적한다. 따라서 오늘날 현대 과학 및 과학자들의 사회.문화적 위상이 어떻게 형성되었는지를 세밀하게 밝힌다."

해서 '과학 지식인의 탄생'이란 부제가 공으로 붙여진 것은 아닌 셈인데, 헉슬리 가문과 과학 지신의 자기정체성이 모두 토머스에게서 기원적 의미를 찾을 수 있다는 것이니까 이 '대단한' 위인의 생애에 한번 눈길을 주어볼 만하다.  

 

 

 
 
 
 
세번째 책은 포르투갈의 대표적인 작가로 1998년 노벨문학상을 수상한 바 있는 주제 사라마구(1922- )의 신작 <도플갱어>(해냄, 2006). 제목 그대로 자신과 똑같은 대상을 마주하게 되는 '도플갱어'의 모티브를 차용한 소설이라는데, <눈먼 자들의 도시>, <동굴>과 함께 주제 사라마구 '인간의 조건' 3부작으로 불린다고 한다(영역본의 제목은 ' The Double').
 


"인구 500만의 대도시에 거주하는 중학교 역사교사 테르툴리아노 막시모 아폰소, 어느 날 그는 동료교사의 추천으로 비디오 한 편을 빌려보다 믿을 수 없는 장면을 목격한다. 자신의 5년 전 모습과 똑같이 생긴 사람이 영화에 나오고 있었던 것. 막시모는 집요한 추적을 시작, 배우의 본명과 거주지를 알아낸다. 그리고 배우와 그 부인에게 자신의 존재를 알린다. 배우를 발견하면서 그가 가졌던 자신에 대한 불안감은 이제 배우 부부에게까지 전염되고, 거울 앞에 선 것처럼 몸에 난 상처까지 똑같은 두 남자는 누가 원본이고 누가 복사본인지를 따지며 존재의 불안감을 떨치려 한다..."
 

 

 

 

 

나는 아직 사라마구의 책을 읽어본 바 없지만 노벨상 수상작인 <수도원의 비망록>(문학세계사, 1998)을 읽어본 지인의 호평은 기억하고 있다(드라마들도 번역되지 않았나?). 그럼에도 다소 낯설다는 느낌은 주지만, 이번에 출간된 '도플갱어'는 상당히 낯익은 테마의 작품이다. 도플갱어, 혹은 분신을 다룬 문학작품들이 적지는 않기 때문이다(만화와 영화에도 두루 걸쳐 있다). 도스토예프스키의 <분신>에서 최수철의 <분신들>에 이르기까지.

사실 자신과 똑같은 또다른 존재를 다룬다는 것 자체가 좀 섬뜩한 이야기를 함축하는 것이어서 공포영화에서도 즐겨다루어지는데, 가령 구로사와 기요시 감독의 <도플갱어> 같은 게 (나는 아직 보지 못했지만) 대표적인 경우이다. 아무튼 이러한 배경하에 놓이는 작품이기에 사라마구의 <도플갱어> 읽기도 다소 수월할 수 있을 거라는 짐작을 해본다.

 

 

 

 

'도플갱어'란 테마가 정신분석을 자극하고 요청하는 테마인데, 네번째 책은 이와 무관하지 않은 연구서 박찬부 교수의 <라캉: 재현과 그 불만>(문학과지성사, 2006)이다. 모처럼 국내 필자의 저작이어서 반가운데(국내에서는 홍준기, 권택영 교수 등이 라캉 관련 저작을 갖고 있는 정도이다), 저자는 이미 10년전에 <현대정신분석비평>(민음사, 1996)을 상자한 바 있고(알라딘의 저자 소개에는 역서로 돼 있지만 저서이다), 프로이트 전집의 <쾌락원칙을 넘어서>(열린책들, 1997)를 우리말로 옮긴 바 있다.

'재현과 그 불만'이란 표제 자체는 프로이트의 <문명 속의 불만>의 영어 제목인 '문명과 그 불만'에서 따온 것인데, 라캉에 대한 접근에 있어서 저자의 길잡이가 되는 듯하다. 소개에 따르면, "이 표현은 프로이트의 '문명과 그 불만'에서 유래한 것. 프로이트가 인간 발달의 동인으로 문명화의 필연성을 강조하면서도 '죽음 본능'으로 대변되는 '그 불만'을 주요 논제로 다루었듯, 상징적 재현의 불가피성을 인간 주체의 '강요된 선택'으로 받아들이면서도 그것이 언제든지 불만 세력인 실재계에 의해 전복될 수 있다고 말한다. 라캉의 '상상질서'에서 시작되어 '실재계' 쪽으로 옮겨졌던 관심사를 그대로 되짚어 살핀다. 지나치게 어렵거나 해체적인 서술을 지양해, 라캉의 이론에 좀 더 쉽게 다가갈 수 있도록 하였다."

'죽음본능' 혹은 '죽음충동'을 화두로 하고 있다는 점에서 라캉-지젝 라인의 사고방식과 겹치는 듯하지만 저자는 지젝과 같은 입장에 서 있지는 않다('라캉 담론의 탈근대적 유산'이란 서론의 제목이 이미 이를 암시해준다. 지젝이 방어/보존하고자 하는 것은 라캉의 '근대적' 유산이기에). 방점이 '정신분석'보다는 '비평'에 두어져 있던 <현대정신분석비평>에서 저자가 사숙한 스승으로 거명한 이는 미국의 저명한 정신분석비평가 노만 홀란드였다. 독자반응이론가로도 분류되는 홀란드의 대표작은 <문학적 반응의 역학(The Dynamics of Literary Response)>(1968)이다. 말하자면 '미국화된 라캉'의 한 사례를 <라캉>에서 읽어볼 수 있을지 모른다.  

 

 

 

 

끝으로 프랑크푸르트학파를 이끌었던 독일의 사회학자 호르크하이머(1895-1973)의 대표적인 저작 중 하나인 <도구적 이성비판>(문예출판사, 2006)이 거의 40년만에 출간됐다. 아도르노와의 공저인 <계몽의 변증법>으로 더 잘 알려져 있긴 하지만, 그리고 아도르노의 그늘에 가려 사실 덜 주목받는 편이긴 하지만, 프랑크푸르트학파의 멤버들을 그린 한 캐리커쳐가 말해주듯이(이 흔한 이미지가 잘 검색되지 않는군) 대학의 사회문제연구소장이었던 호르크하이머는 학파의 대부이자 좌장이었다.  

호르크하이머는 책에서 "부정의 철학을 지향하며, 자연과 인간을 도구화하고 파멸로 이끄는 도구적 이성의 전면화에 대해 고발한다. 오늘날 이성은 이성이라고 불리는 것들의 비이성적 태도를 고발해야 한다고 강조한다. 그러나 이성이라고 불리는 것에 대한 고발은 이성의 전면적 해체가 아니라, 오직 이성의 자기 비판을 통해서만 가능하다고 말한다. '이론적 염세주의자이면서 실천적 낙관주의자가 되자.' 개인을 무력하게 만드는 파시즘의 출현을 인식하는 비관주의와 보편적인 인간의 유대를 꿈꾸는 낙관주의를 가진 호르크하이머의 사상을 느낄 수 있다."

호르크하이머의 책이 이번에 처음 소개된 것은 아니다. 예전에 <철학의 사회적 기능>(전예원, 1983)이란 책이 출간된 바 있기 때문이다. 물론 절판된 책이지만 이 참에 새로 때깔을 입혀도 좋지 않을까 한다. 더불어, 황재우(시인 황지우) 등이 공역한 마틴 제이의 <변증법적 상상력: 프랑크프르트 학파의 역사와 이론, 1923-50 >(돌베개, 1981)도 다시 손을 봐서 재출간하는 건 어떨까? 저자의 박사학위논문을 근간으로 한 책은 지상사적 시각으로 프랑크푸르트학파의 탄생과 이론적 진화과정을 섬세하게 추적하고 있는 저작이다...

06. 09. 29-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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드팀전 2006-09-29 23:11   좋아요 0 | URL
주제 사라마구의 책이 있었군요.좋아하죠..전.

로쟈 2006-09-29 23:55   좋아요 0 | URL
'무척' 좋아하시나 봅니다.^^

다크아이즈 2006-09-30 09:34   좋아요 0 | URL
뽑아 먹기 좋은 막대사탕(그 안에 든 쓴 약까지), 날로 먹으려니 송구스럽고 감사하네요. 한데, 로쟈님 목소리와 따온 목소리를 선명하게 구별할 수 있도록 색깔처리 해주심 안 될까요? 어떤 님의 요청에 색칠하는 것 별로 안 좋아한다고 말씀하신 것 같은데 따온 글을 색깔처리하면 로쟈님 글이 되려 보호될 수 있으니 좋을 것 같은데... 날로 먹는 주제에 독자를 배려해달라고 하는 건 아무래도 무리겠죠?

로쟈 2006-09-30 09:50   좋아요 0 | URL
따온 글들은 모두 인용부호로 처리하고 있습니다. 약간 불편하실 수 있지만 헷갈리실 정도는 아닐 겁니다. 칼라풀한 글자들이 제 경우엔 오히려 독해에 방해가 되는지라...

깽돌이 2006-09-30 12:35   좋아요 0 | URL
진중권씨가 비트겐슈타인의 '청갈색책' 옮겼던데 이에 대한 리뷰도 부탁^^

로쟈 2006-09-30 16:39   좋아요 0 | URL
청갈색책은 저도 책은 갖고 있는데, 책세상에서 나오는 전집들과 연관해서 나중에 다루려고 합니다. 비트겐슈타인을 좀 들춰볼 여력이 현재는 없기도 해서요(^^;)...
 

보관함에 자꾸 쌓이는 책들을 좀 털어내보려고 한다(머릿속으로 스멀스멀 기어들어오는 이 벌레들!). 이번에 다룰 책들을 뭉뚱그리자면, "곤충들의 도서관에서 세계의 명작들을 읽으며 내면의 침묵에 빠져들다가 끝내 국경을 넘어 중세로 달아나버린 한 책벌레"에 관한 이야기 정도가 되겠다(이 이야기에 캐스팅되지 않은 책들은 또 다음을 기약하는 수밖에). 그럼, 먼저 '전략의 귀재들, 곤충'에 대한 이야기부터 시작해볼까? 

 

 

  

 

제일 먼저 꼽을 책은 토마스 아이스너의 <전략의 귀재들, 곤충>(삼인, 2006). 원제는 'For Love of Insects'(하버드대출판부, 2005)이고 원서의 표지는 국역본의 표지와 같다. 그러니까 내가 보기엔 파리 종류인 거 같다. 국역본의 제목은 다소 튀는데, 같은 제목이더라도 '곤충, 전략의 귀재들'이라고 배치하는 게 보통일 것이기 때문이다.

저자인 아이스너 교수는 코넬대학의 석좌교수인데, 동물행동학과 생태학의 세계적인 권위자라고 한다. 그는 이 책에서 "아주 작고 놀라운 곤충의 세계. 반세기 동안 우루과이, 호주, 파나마, 유럽, 북아메리카 대륙을 넘나들며 관찰하고 실험하여 발견한 곤충들의 아름다움과 놀라운 생존 전략을 보여준다"고. 특히 "미처 알려지지 않았던 곤충들의 생존 전략, 진화에 승리한 비밀을 해독해내는 과정과 연구 순간순간을 포착한 원색 사진들이 돋보인다"고 한다.

568쪽 분량에 책값도 5만원에 육박하지만, 사실 이 정도 설명뿐이었다면 그냥 그러려니 하고 지나쳤을 것이다. 한데, 역시나 세계적인 개미학자이자 사회생물학자인 에드워드 윌슨이 "이 책은 프랑스의 위대한 곤충학자 파브르를 계승했다고 감히 말할 수 있는, 유능하고 열정적이며,박학다식하고 저명한 생물학자이자 동물학자가 반세기 넘는 시간을 곤충에 투자한 노력의 산물이다"라는 최상급의 추천사를 쓰고 있지 않은가? 흔한 말로 '강추'라는 것이다. 그러니 한번 더 눈길을 주는 수밖에(참고로, <파브르 곤충기>는 아직도 완역되지 않은 듯하다. 분량이 방대하긴 하지만).

거기에 <살아있는 모든 것의 정복자 - 곤충>(다른세상, 2005)의 저자 메이 베렌바움이 거들기를 "곤충학의 세계에도 초인적인 영웅이 존재한다면, 그 사람은 바로 토머스 아이스너일 것이다. 톰은 화려한 업적을 쌓아오면서 곤충이 화려한 색상이나 기이한 돌기, 아주 고약한 분비물을 지닌 이유를 수도 없이 밝혀냄으로써, 재능을 타고나지 못한 과학자들의 기를 꺾어왔다. 이 책에서 그는 재치 넘치는 문체와 입이 떡 벌어지게 멋진 사진들을 통해 흥미진진한 과학의 세계와, 자신이 진정으로 사랑하는 곤충과 그 친척들에 대한 이야기를 들려준다." 이 정도 밀어주는 분위기라면 소장용 도서로 꽂아두어도 무방하리라고 본다. 원색 사진들이 많이 들어가 있다고 하니까 초등학생들의 지적 호기심을 자극하는 데에도 유용할 듯싶다. 어른이야 곤충을 '사랑할' 사람들이 많지는 않겠지만 말이다. 

 

 

 

 

두번째 책은 책벌레들의 전당, 도서관에 관한 것이다. 로널드 맥케이브의 <도서관, 세상을 바꾸는 힘>(이채, 2006)이 그것인데, 딱히 이 책에 주목해서라기보다는 그간에 도서관을 표제나 주제로 해서 나온 책들을 이 참에 호명해보기 위해서이기도 하다. 가령, 얼마전에 출간된 최정태 교수의 <지상의 아름다운 도서관>(한길사, 2006)이 소장가치로는 더 앞선다. 도서관의 역사를 다룬 책들도 있고, 움베르토 에코의 <장미의 이름>에 등장하는 미궁 같은 도서관의 모델의 되었다고 하는 알렉산드리아 도서관에 관한 책도 눈길을 주어볼 만한 책이다.

원제가 'Civic Librarianship: Renewing the Social Mission of the Public Library'(2001)인 신간은 '도서관과 사서의 위기 극복을 위한 철학적 고민'이란 부제를 갖고 있으며, "책은 미국 공공도서관의 새로운 역할에 대해 구체적인 대안을 펼치며 도서관 사서들이 지역 사회를 위한 다양한 커뮤니티 운동을 전개할 수 있는 '시민사서'가 되어야 한다고 말한다." 더불어, "미국 공공도서관 역사를 짚어가며 오늘날 미국 사회에서의 새로운 공공도서관의 청사진을 이야기한다"는데, 순전히 미국적 상황과 처지에 관한 내용일 듯하지만 '기적의 도서관' 건립운동 등에서 촉발된 도서관에 대한 관심과 여론을 보다 체계화/구체화하는 데 도움이 될 만한 책으로 보인다.

아마도 도서관 사서들의 연수교재용으로 딱 알맞아 보이는데, 이 '공적인 책'에 따분함을 느끼는 독자라면 '지상의 아름다운 도서관'들의 풍광을 잠시 훔쳐보아도 좋겠다(저자는 러시아 도서관들을 훑어볼 포부도 가지고 있다고 했다). 공부가 절로 될 만하지 않는지?.. 

 

 

 

 

그럼, 우리의 아름다운 (가상의) 도서관에서 무슨 책들을 읽어야 할까? 최근에 나온 따끈따근한 고전 명작들은 어떻겠는가? 가장 먼저 떠오르는 것은 문학사에서나 자주 접하던 프랑스 작가 테오필 고티에(1811-1972)의 <모팽양>(열림원, 2006)이다. <미라 이야기>(열림원, 2006) 같은 청소년물이 지난 7월에 출간되기도 했지만, '예술을 위한 예술'의 주창자 고티에는 국내에 처음 소개되는 작가이다(이런 유미주의 작가로 가장 유명한 이로는 영국작가 오스카 와일드(1854-1900)가 있다).

작가 고티에가 고작 24살 때 발표한 작품이라는 <모팽양>은 "관습적인 성역할을 넘나드는 여주인공을 통해, 사회적 성정체성인 젠더(gender)를 치열하게 성찰한 작품"으로 "주인공 '모팽 양'의 실제 모델은 17세기의 남장 여가수이자, 후에 모팽 부인이 되는 '마들렌 도비니 양'이다. 그녀는 소설의 주인공과 마찬가지로 아름다울 뿐 아니라 자존심이 높았고, 기사복을 입고 다녔으며, 결투를 했다." 오늘날의 시각에서 봤을 때도 다소 '전복적인' 여성상을 보여주는 듯한데, "이 작품은 1835년 출간되어 발자크, 위고의 극찬을 받았고, 당시의 프랑스의 고전비평과 부르주아 신문을 떠들썩하게 만들었다. 특히 동시대 공리주의자들을 신랄하게 비판하고 아름다움의 무용성을 극단적으로 주창한 서문은 커다란 물의를 일으켰다." 그러니 작가의 나이는 잠시 잊어주는 게 좋겠다.

체코 작가 보후밀 흐라발의 <엄밀히 감시받는 열차>(버티고, 2006)도 최근에 나온 작품이다. 한데 엄밀히 말하면 이미 출간됐던 작품이다. 지난 1990년에 나온 중앙일보사의 소련동구문학전집 중 한권으로 밀란 쿤데라의 <존재의 견딜 수 없는 가벼움>과 함께 묶여 있었던 것이다. 중앙일보사판은 역자가 이윤기씨로 돼 있는데, 이번에 나온 책이 "국내 최초의 체코어 완역본"이라는 건 그런 사정을 염두에 둔 것으로 보인다. 아무려나 흐라발은 쿤데라와 함께 체코 현대 소설을 대표하는 작가 중의 한 사람으로 꼽힌다고 하다. 안면이 좀 있었던 체코출신의 한국 유학생은 대단한 작가라고 내게 엄지손가락을 치켜세운 적이 있었다.

그 작가 '보흐밀 흐라발'의 1965년 작인 이 작품은 "제2차 세계대전이 막바지에 이른 1945년 체코를 배경으로, 독일에 점령당한 체코인들의 삶을 그렸다. 냉혹한 현실에 우스꽝스러운 등장인물들을 배치, 희극과 비극의 경계를 넘나든다. 수습 역무원 흐르마는 소심한 성격의 스물두 살 청년. 여자친구와의 첫 경험에 실패하고 자살을 시도하지만, 벽돌공의 도움으로 살아나 3개월 만에 근무에 복귀한다. 하지만 독일군에 점령당한 기차역의 현실은 암울하기만 하다. 신호를 잘못 보냈다고 총살당할 뻔하고, 화물차량 가득 실려 오는 아사 직전의 불쌍한 가축들을 보아야 한다..."

해서, "파시즘에 저항하는 영웅적인 이야기이지만, 진한 휴머니즘도 내재되어 있다. 체코에서 영화화되어 1967년 아카데미 외국어영화상을 수상했으며(*영화의 스틸 사진들은 보시는 바와 같다), 국내에서는 1980년대 중앙일보사에서 펴낸 '소련, 동구 현대 문학전집'에 이윤기 씨의 영어 번역으로 소개된 바 있다(*여기 내용이 다 나오는군). 함께 실린 단편 '간이주점'은 비가 몹시 내리는 어느 날, 결혼 피로연이 열리는 왁자지껄한 간이주점에서 목을 매고 죽은 젊은 여자의 이야기를 그린 작품이다." 곧 분량도 많지 않으므로 종착역에 도착하기 전에 유쾌하게 다 읽을 만한 소설이겠다.

그리고, 또 우리에겐 <주홍글씨>의 작가로 널리 알려져 있는 미국작가 나다니엘 호손(1804-1864)의 장편소설 <블라이드데일 로맨스>(문학과지성사, 2006). "사회주의 공동체의 실현을 위해 모인 남녀들의 다층적인 연애 사건을 그린" 작품으로 "1852년 발표되어 '호손의 형식 미학을 뚜렷이 보여주는 작품'이라는 평가를 받았"고, 이번에 국내에 초역된 작품이라고. 줄거리 소개에 따르면, "19세기 미국 매사추세츠 부근, 일군의 뜻있는 젊은이들이 모여 사회주의 공동체를 만들고 '블라이드데일'이라고 이름을 짓는다. 행복의 골짜기라는 뜻처럼, 처음 이 공동체 생활은 밝고 명랑한 분위기 속에서 고무적으로 펼쳐진다." 호손의 지명도를 고려하면 한번쯤 읽어둘 만한 작품이겠다.

 

 

 

 

네번째는 세계적인 사진작가 앙리 카르티에 브레송이 찍은 '시대의 초상' <내면의 침묵>(열화당, 2006)이다. 이번에 그의 에세이집 <영혼의 시선>(열화당, 2006)이 같이 출간됐다. 지난 여름에 출간된 평전 <앙리 카르티에 브레송>(을유문화사, 2006)까지 갖춰놓으면, 게다가 좀 무리해서 사진집 <앙리 카르티에 브레송그는 누구인가>(까치글방, 2003)까지 마련해놓으면 국내 출간된 '브레송 컬렉션'은 일단 완벽하다 하겠다.

<내면의 침묵>이 먼저 눈에 띈 건 사실 표지로 쓰인 사뮤엘 베케트의 초상 때문이다. 말년의 베케트를 역시나 대가다운 솜씨로 포착하고 있는 사진이다. 혹은 아래와 같은 사진의 베케트.

 

한동안 잊고 지내고 있었는데, 다시 상기해보자면 올해는 베케트 탄생 100주년이 되는 해이다. 국내에서는 이렇다할 기념 출판이 없어서 다소 아쉬웠는데, 베케트를 표지로 한 브레송의 사진집이 그 아쉬움을 얼마간 달래준다. 해가 넘어가기 전에 그의 드라마 한두 편을 다시 읽어볼 수 있을까? 한국어 베케트의 목록을 뒤적거려보지만 빈곤하다는 느낌을 지울 수 없다. 우리는 고도를 기다리기 이전에 베케트를 먼저 기다려야 할 것 같다...

 

 

 

 

우리의 책벌레가 어느덧 국경에까지 이른 모양이다. 다섯번째 책은 니시카와 나가오의 <국경을 넘는 방법>(일조각, 2006). 몇년전에 <국민이라는 괴물>(소명출판, 2002)로 우리에게 처음 소개된 저자는 근대 국민국가의 비판과 극복에 학문적 화두를 두고 있는 듯하다. '문화, 문명, 국민국가'라는 세 가지 키워드를 부제로 갖고 있는 이번 책에서도 "문명과 문화가 근대 국민국가의 국가통합 이데올로기라는 사실을 명쾌하게 지적하면서, 우리들이 얽매인 편견과 이데올로기를 예리하게 파헤친다"고 한다. 

요컨대, "문명과 문화라는 말은 근대 국민국가의 성립과 때를 같이하며, 뛰어난 근대적 이데올로기임을 밝힌다. 따라서 근대 국민국가의 형성을 둘러싼 역사 또는 국민국가 스스로의 필요 때문에 만들어진 문명, 문화라는 용어나 개념을 사용하면서 이에 반대하는 사람들마저도 국가라는 이데올로기에 포박당한다"는 걸 지적하는바, "책은 문화를 매우 비판적으로 검토하면서 '사문화' 개념을 도입함으로써 문화의 대안을 모색한다."

이에 대한 임지현 교수의 추천사는 이렇다: "'서양'에게는 '동양'이자 '동양'에게는 '서양'인 일본, 오리엔트화되는 오리엔트이자 오리엔트화하는 오르엔트인 일본에 대한 니시카와 나가오의 날카로운 성찰은 비교문화 연구의 진경을 보여준다. 비교문화의 단단한 이론 틀 속에서 '일본적인 것' 혹은 '일본 고유 문화'의 허구성을 폭로하고 문화적 본질주의를 해체하는 그의 차가운 시선은, 좌우를 막론하고 '국민문화'의 회로 판에 갇혀 있는 일본 지식사회에 대한 엄정한 자기비판이다."(강조는 나의 것) 짐작할 수 있는 것이지만, 저자는 사이드의 <오리엔탈리즘>을 중요한 이론전 전거로서 참조한다. '오리엔탈리즘'을 주제로 한 국내서/번역서 몇 권을 같이 꼽아본 것은 그 때문이다. 그림은 존 맥켄지의 <오리엔탈리즘 예술과 역사>(문화디자인, 2006)의 표지로 쓰인 들라크루아의 '사르다나팔루스의 죽음'.

 

 

 

 

보통 다섯권의 책을 꼽는 게 일반적이었지만, 이번엔 서양 중세사의 거장 조르주 뒤비의 책을 보너스로 더 집어넣는다. <조르주 뒤비의 지도로 보는 세계사>(생각의나무, 2006) 가 그것인데, 출판사 소개에 따르면, "프랑스 아날학파의 거장 조르주 뒤비가 쓰고 백과사전의 명가 라루스 출판사가 출간한 책으로 그림과 지도로 보는 대 세계사 연감이다. 인간 역사의 파노라마를 520개의 사건으로 분류하여 편집 기술이 집약된 지도 위에 그 전개 상황과 개요를 새겨 넣어 역사 기술의 새로운 방식을 보여준다." 

그저 그런가 보다 하겠지만, 책값이 12만원에 이르는 만큼 뭔가 대단한 걸 보여줌에 틀림없다! 아, 세계는 넓고 서민-책벌레로선 이 책값들을 벌기가 참으로 어렵도다!..

06. 09. 22-2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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며칠 미루어두었던 연재를 마저 해치우기로 한다(자꾸 미뤄지는 걸 보면 이것도 확실히 '일'인 모양이다. 아르바이트 아닌 아르바이트?). 이번에도 고른 책들은 일단 최근에 나온 책들 다섯 권이다. 개인적인 관심범위 안에 놓이면서도 상대적으로 덜 주목받는 책들을 꼽아보자는 게 이 연재를 끌고가는 나의 '원칙'이다(비록 모든 책에 적용되기는 힘들더라도). 단순하게 나열하는 건 재미가 덜하기에 내러티브를 부여하자면 '멸종의 역사에서 철학까지'이다. 내일 지구에 멸망이 와도 나는 한 그루의 사과나무를 심겠다는, 그런 무의미한...

 

 

 

 

제일 먼저 꼽을 책은 <멸종의 역사>(아고라, 2006)이다. '지구를 지배했던 동물들의 삶과 죽음'이 부제니까 제목의 '멸종'은 비유가 아니다. 말 그대로 '멸종'이다. 멸종을 다루고 있는 책들은 리처드 리키의 <제6의 멸종>(세종서적, 1996) 이후에 드물지 않게 출간되었다. 멸종의 역사가 10년내 사뭇 달라졌을 리는 없는 만큼 초점의 차이는 있을지언정 내용상의 대차는 없을 거라고 본다.

No Turning Back: The Life and Death of Animal Species Cover

이번에 출간된 책도 "지구가 탄생하고 30억 년 전에 생물체가 살기 시작한 이래 오늘날까지 생명의 역사를 다룬다. 책은 지구에 살았던 동물들의 생태에 대해 말하는 것은 곧 멸종의 과정을 이야기 하는 것임을 밝힌다. 지구에 처음 생물이 나타났을 때 있었던 종 중에 지금까지 살아있는 종은 1,000분의 1밖에 되지 않으며, 대부분의 종이 나타난 지 1,000만 년 안에 멸종했다. 이 수치는 지구에 나타났던 생물 중 99퍼센트가 멸종했음을 뜻한다." 문학이론가 프랑코 모레티가 쓴 비유이지만, 진화사는 달리 '도살장의 역사'이다.

책의 저자는 리처드 엘리스인데, 동물학자이자(보다 정확히는 '해양생물학자') 미국 최고의 자연사 작가라고 한다. "리처드 엘리스는 놀라운 상상력과 뛰어난 글솜씨로 자연의 경이로움과 신비에 대해 이야기한다."라고 사회생물학자 에드워드 윌슨이 추천하고 있으니까 신뢰할 만한 책이기도 하고. 그가 어떤 책을 쓰냐면 아래와 같은 책들을 쓴다. 말 그대로 '해룡'인가, 아님 '어룡'?

 

다시 <멸종>으로 돌아오면 "책은 현재가 오르도비스기, 데본기, 페름기, 트라이아스기, 백악기에 일어났던 다섯 차례의 대량 멸종에 이은 제6의 대량 멸종이라고 말한다. 특히 제6의 대량 멸종은 진화와 멸종의 개념을 아는 유일한 종인 인간이 자연의 균형을 철저하게 뒤집은 결과라고 지적한다. '죽음의 기록'이기도 한 지구 생명의 역사를 때로는 담담하게, 때로는 분노에 찬 목소리로 풀어내면서 생명체의 소중함을 얘기하는 동시에 인류의 종말을 경고한다." 네들 다 끝났어!

 

 

 

 

사실 저 우주공간에서 빛나는 '항성'들 또한 '역사'를 갖는 것이니 이런 멸종의 위협이 구체적인 '실감'으로 다가서지 않을 수도 있겠다(그래서 어쨌다는 거야?). 좀더 '노골적인' 경고를 기대한다면 엘 고어의 <불편한 진실>(좋은생각, 2006)을 펼쳐들어야 하는지도(최근에 영화도 개봉된 듯하다). 너무 불편하다면, 몇년 전 출간되어 파문을 불러 일으켰던 <회의적 환경주의자>(에코리브르, 2003)와 맞대결시켜보면서 읽는 것도 한 가지 방책이겠다. 그 길로 더 나가면 생태학적 위협(니콜라스 루만)과 위험사회(울리히 벡)를 경고하는 사회학자들의 책까지 (다시) 챙겨볼 수도 있겠다. 오버인가?

 

 

 

 

두번째 책은 도널드 케이건의 <펠로폰네소스 전쟁사>(까치, 2006). 저자는 예일대 교수라고 하고(<전쟁과 인간>이 이미 국역돼 있다) 국내 그리스/로마사 권위자들이 우리말로 옮겼다. 오전에 구내서점에 가보니까 '명품서적' 30% 할인판매장에 이미 책이 나와 있었지만, 형편상 페이지를 들춰보는 것에 만족했다. 사실 이 책을 읽으려면 여러 전쟁사들은 놔두고서라도 투키디데스의 <펠로폰네소스 전쟁사>(범음사) 정도는 같이 읽어줘야 할 텐데, 그럴 만한 여유를 내기가 어디 쉽겠는가. 하여 출간소식을 승전소식처럼 전하는 데 만족하기로 한다.

소개에 따르면 책은 "그리스의 경제적 번영과 정치적 민주주의의 흐름을 뒤엎은 펠로폰네소스 전쟁에 대한 이야기"이다. "고대의 투키디데스의 역사서를 뛰어넘어 2,400년 전의 전쟁을 오늘날의 세계에도 적용되는 보편적 질서에 대한 이야기로 풀어냈다"고. 마저 인용하면, "펠로폰네소스 전쟁은 대제국의 흥망, 매우 이질적인 두 사회와 삶의 방식 사이의 충돌, 인간사에서 지성과 우연의 상호 작용, 리더십의 가능성과 한계를 알려준다. 이미 학자를 대상으로 펠로폰네소스 전쟁사를 쓴 지은이는 일반 독자가 즐겨 읽을 수 있도록 쉽고 흥미로운 서술로 사라져버린 세계를 풍성하고 자세하게 그려낸다." 인간과 국가의 흥망을 집약하고 있는 것이 전쟁사인 만큼 흥미롭게 읽을 법하다. 무슨 '배틀'들에 몰입하시는 분들이 이런 쪽으로 방향을 트는 건 어떠실지?   

저자인 케이건 교수는 1932년 리투아니아 태생의 원로 역사학자이다. 1958년 오하이오주립대학에서 박사학위를 받고 1969년부터 예일대에 봉직했다. <펠로폰네소스 전쟁사>는 2003년에 출간된 그의 최신작이다. 알라딘의 저자 소개에는 그가 2002년 (부시 대통령으로부터) '국가 인권 메달'을 수상한 걸로 돼 있는데, 그가 받은 건 'National Humanities Medal'(국가 인문학 메달)이니까 인권과는 무관하다.

 

 

 

 

세번째 책은 김시천 교수의 <이기주의를 위한 변명>(웅진지식하우스, 2006). 국가간의 이기주의는 간혹 전쟁을 낳기도 하지만, 리뷰들을 얼핏 보니 이 책에서 다루어지는 이기주의는 소소한 개인, 곧 소인들의 이기주의이다. '진정한 개인의 행복을 찾은 동양 지식인들의 내면 읽기'란 부제가 말해주는 바 그대로. 사실 공자왈 맹자왈의 대종은 군자/대인에 관한 것이라 생각되지만 우리 인간의 대종은 아무래도 소인들이 아니겠는가. 책은 이 소인(배)들의 (정당한) 탐욕과 권리를 옹호하고자 하는 시도로 보인다.

소개에 따르면, "동양의 이기주의란 씨실과 동양고전이란 날실을 엮어 동양적 이기주의에 대한 새로운 해석을 담았다. 동양 이기주의의 역사적인 흐름을 만들고, 대인의 큰 이기주의와 소인의 작은 이기주의에 대한 명확한 구분과 그들의 역할을 명시했다... 책은 소인의 작은 이기주의, 즉 사회적 이기주의를 보다 당당하게 누리자고 권장한다. 그동안 단 한 번도 이기적으로 살아보지 못하고 국가권력에게 자신을 희생했던 소인들에게 ‘당신들은 대인이 아니라 소인이니 권리를 내세우며 오늘 하루 떳떳하고 당당하게 살아보라’고 말한다."

저자는 소인을 '작고 평범한 사람들'로 평범하게 정의한다. 예전에 한 국가의 대통령이나 재벌 총수들도 스스로가 '보통사람'임을 내세워 난감한 적이 있었는데, 이 책이 그런 양반들의 자기변명서로 활용될까 걱정된다(하긴 이 책이 아니더라도 최근에 '행복한 이기주의'는 한 트렌드이기도 하지만). 인간됨의 그릇이 작아 '소인'이라고 하지만, 사회적 약자나 소수자와 얼만큼 겹쳐지면 어떻게 구별되는가에 대해서도 합당한 관심이 기울여져야 할 것이다. 아직 실물을 보지 못한지라 책이 그런 내용까지 다 포괄하고 있는지는 모르겠지만. 

 

 

 

 

네번째 책은 미국의 대표적인 철학자 중 한 사람인 힐러리 퍼트넘/퍼트남의 <존재론 없는 윤리학>(철학과현실사, 2006). 국내엔 <이성-진리-역사> 이후에 그래도 몇 권 소개돼 있는 편인데, 퍼트넘은 "캘리포니아 대학(로스엔젤레스)에서 H. 라이헨바흐에게 과학철학을 배우고 하버드 대학에서 W.V.O. 콰인에게 현대 논리학을 배운" 미국의 주류/정통파 철학자로서 1965년 이후 하버드대학의 철학과 교수로 재직하였다(그러니까 존 롤즈와 넬슨 굿맨 등의 그의 과 동료들이다. 한편으로 또 다른 동료인 저명한 철학자 스탠리 카벨의 책들이 소개되지 않는 건 상당히 기이한 일이다).

사실 윤리학 분야에서 쏟아져 나오고 있는 책들은 피터 싱어의 책들이다(싱어의 책들은 열댓 권 가량이 출간됐다). 하지만, 눈길을 끈 건 퍼트넘의 책인데, '존재론 없는 윤리학'이란 제목부터가 뭔가 유혹적이지 않은가?  

 The Collapse o fhte Fact/Value Dichotomy and other essays

물론 퍼트넘의 전작들을 읽어본 독자라면 이 책 또한 상당히 '딱딱한' 책일 거라는 걸 미리 점쳐볼 수 있다. 그래도 고통을 좀 덜어주는 건 200쪽 분량의 아주 얇은 책이라는 것. 그의 전작 <사실/가치 이분법의 붕괴>와 합본을 해야 보통의 '철학서' 분량이 된다. 그 얄팍한 분량에 유혹되어 책을 사두긴 했는데, 언제나 정독하게 될는지는 장담할 수 없다(그래도 <수학의 철학> 같은 책에 비할 바가 아닌 건 분명하다).

 

 

 

 

끝으로 다섯번째 책은 스페인의 국보급 철학자 호세 오르테가 이 가세트(1883-1955)의 <철학이란 무엇인가>(민음사, 2006)이다. 특이한 이름 때문에라도 기억하게 되는 27세에 마드리드대학 철학부 정교수가 된 '천재'였다. 소개에 따르면 알베르 카뮈로부터 '니체 이후 유럽 최고의 철학자이자 문장가'라는 찬사를 받았다고도 하는데, 책은 그의 대중 철학 강의를 엮은 것이다. 그러니까 오르테가 이 가세트 버전의 철학입문서이다. "서양 철학사를 꿰뚫는 오르테가가 철학이란 무엇인지, 왜 우리가 철학을 해야 하는지를 친밀하게, 그리고 열정적으로 이야기한다. 철학이란 우리의 삶과 멀지 않으며, 자신의 삶에서 철학이 생성되면서 나 역시 철학 세계의 한복판에 서 있음을 느끼게 될 것이다"라는 게 이 책에 대한 나머지 소개이다.

작년봄에 <대중의 반역>이 다시 번역돼 나와서 한번 언급할 기회가 있었던 듯한데, 내가 갖고 있는 오르테가 이 가세트의 이미지는 대표적인 엘리트주의 혹은 귀족주의 철학자라는 것이다. 그런 첫인상을 심어준 이는 <예술의 비인간화> 등에 대한 서평을 썼던 문학평론가 이동하이다. 두번째 인상은 러시아 체류시 받은 것인데, 러시아어로는 대표작들이 문고본으로 출간되어 있어 그 지명도를 짐작케 했다. 그러니까 오르테가 이 가세트 정도를 읽는 건 '교양'에 해당한다는 것. <철학이란 무엇인가>는 그 '교양'의 수준을 가늠할 수 있도록 해주는 책이겠다. 내가 더 기대하는 건 언젠가 을유문화사의 문고본으로 출간되었던 <돈키호테의 성찰>이 세련된 장정으로 재출간되는 것이다(저자 자신이 멋쟁이이기도 했으니까).

마지막에 덧붙인 책 <니체가 눈물을 흘릴 때>(리더스북, 2006)는 오르테가 이 가세트의 문체가 니체에 버금한다고 하여 떠올려본 것인데, 철학서는 아니고 어빈 얄롬이라는 정신과 의사의 소설이다. 책이 친숙한 건 예전에 교보문고의 철학코너에서 뻔질나게 보던 책이어서이다.

소개를 옮겨오자면, "서구 사상의 흐름에 커다란 영향 19세기 실존 인물들의 이야기에 지적 상상력을 더해 집필한 팩션"으로서 "음울한 천재 철학자 니체가 정신분석학의 아버지 브로이어와 벌이는 화려한 지적 공방을 그린다. 1992년 미국에서 출간되어 이듬해 '커먼웰스 베스트' 픽션 부문 금메달을 수상했고, 이후 13년간 장기 베스트셀러에 오른 작품이다." 그러니까 니체와 프로이트에 관한 이야기들의 성찬일 텐데, 장기 베스트셀러였던 만큼 철학책보다 철학자에 더 흥미를 갖는 독자에게라면 자신있게 권할 만하겠다.

니체가 눈물을 흘릴 때... 우리는 이야기를 이쯤에서 끝내기로 하자. 그의 눈물이 비명이 되기 전에...

06. 09. 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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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iosculp 2006-09-19 17:47   좋아요 0 | URL
투키디데스의 펠로폰네소스 전쟁사를 읽다가 생소한 지명이 나오는데 나오는 지도도 친절하지 않고 해서 포기했었는데 케이건 교수의 책은 상세한 지도가 새로운 지명이 나올때마 나와 읽어나가는데 헤메이지는 않더군요. 번역은 읽기는 무난한것 같은데 학자들이 번역한 뻑뻑한 느낌이 나고, 보자마자 눈에 띤 옥에 티는 책 앞날개에 donald kagan이 donal로 d가 빠졌더군요. 네오콘과 관계있다고 하는것 같은데 그리 강성인 책은 아닌것 같은데 끝가지 읽어봐야겠습니다.

로쟈 2006-09-19 17:49   좋아요 0 | URL
부지런하시네요.^^ Donald를 Donal로 오타를 낸 건 알라딘도 마찬가지입니다(그걸 베껴서 그렇겠지만).

푸른괭이 2006-09-19 20:52   좋아요 0 | URL
이렇게 어려운 책들 일색이라니 -_- 나는 요즘 뜻밖에도(!) 김탁환의 [리심]이 눈에 들어오네요.

로쟈 2006-09-20 00:05   좋아요 0 | URL
난이도 문제가 아니라 그냥 취향의 문제입니다...

털세곰 2008-01-01 04:23   좋아요 0 | URL
한참 때 늦게 "최근에 나온 책들"에 다는 댓글이라...

리투아니아 출신의 케이건Kagan 교수라 함은 러시아어로 까간 교수를 말함일 확률이^^...

로쟈 2008-01-01 11:12   좋아요 0 | URL
러시아어로는 그렇게 읽겠지만, (러시아계) 미국 학자이니까요.^^
 

최근에 나온 책들이 그간에 또 쌓였다. 나를 깜짝 놀라게 한 책은 없지만, 나름대로 자리를 마련해주고 싶은 책들은 많아서 두 번에 나누어 다루려고 한다. 먼저, 마젤란식의 세계 일주로부터 시작해본다. '마젤란의 해양 오디세이'를 다룬 로런스 버그린의 <세상의 끝을 넘어서>(해나무, 2006)가 첫번째 책이다.

 

 

 

 

소개에 따르면 "인류 최초의 세계일주의 기록을 남긴 마젤란의 당시 항해 과정을 재구성한 책"으로 "처음에는 향료 제도를 찾아 떠났지만, 기상천외한 모험과 폭력, 이국에서의 향락과 섹스를 겪고 마젤란의 죽음을 거치며 결국 유령선의 몰골로 돌아온 것으로도 유명한 마젤란의 항해. 그 이야기의 앞뒤 사정을 역사적 문헌들을 참조하여 자세히 밝히고 있다"고 한다.

개인적으로 슈테판 츠바이크의 <마젤란>(자작나무, 1996) 등을 읽지 않았기에 내가 읽은 마젤란은 초등학교 시절에 읽은 '세계위인전집'의 마젤란이다(따지고 보니까 1970년대에 읽은 셈이 된다!). 남들처럼 역마살이 있는 건 아니어서 마젤란의 항해와 '모험'에 특별한 관심을 갖게 되는 건 아니지만 그 '오디세이적' 여정을 따라가다 보면 문득 초등학교 시절로 잠시 되돌아가볼 수도 있지 않을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게다가 이 책에서 "어리석고 앞을 내다볼 줄 몰랐으며 몽상가적 기질까지 있었지만 이를 바탕으로 역사의 전환점을 만들어낸 마젤란에게서 위대한 업적을 세운 한 인간의 나약한 이면을 발견"할 수도 있다고 하니 여유/여건만 된다면 느긋하게 '항해'에 나서볼 만하다. '마젤란의 무덤'까지?(정과리의 이 비평집 제목은 아마도 비평집으로선 가장 튀는 제목일 것이다.) 

 

 

 

 

마젤란의 항해 여정이 내겐 시간 여행의 의미를 갖는다고 적었지만, '근대성 문화 그리고 일상생활'이란 부제를 가진 해리 하르투니언의 <역사의 요동>(휴머니스트, 2006)은 실제 '역사 속의 시간 여행'이겠다. '근대성'과 '일상'을 키워드로 한. 이 책에 주목하게 된 것은 "근대성과 일상에 대한 권위 있는 설명을 통해 하르투니언은 일본과 아시아에 대한 지식 생산의 정치를 예리하게 비판한다. 이론적 정교화와 열정과 비전에 있어 이 책은 귀감이 될 만하다."라는 레이 초우의 추천사 덕분이다. <원시적 열정>의 여성 중국문화학자 그 레이 초우 말이다.  

소개에 따르면, 책은 "20세기 전반 유럽과 일본에서 일어난 다양한 일상담론을 탐구한 흥미로운 이론서. 우리 지식 사회에 넓게 퍼져있는 일상의 지형도를 꼼꼼하게 인식하고 세밀하게 서술했다. 미국의 동아시아학, 특히 일본학의 대표적 학자인 지은이는 정보수집과 실증성이라는 차원에 머물러있던 지역학에 비판적 문화이론을 도입하고 철학, 역사학, 문학, 정치학, 사회학을 넘나드는 학제 간 연구로서의 '새로운 지역학'을 모색한다. 책에서 중심적으로 다룬 '일상'은 '새로운 지역학' 사유의 자연스러운 귀착점. 지역학에 고질적인 중심/주변의 이분법을 깨기 위해 '동시적 근대성'을 사유하고, '동시적 근대성'이 가장 잘 드러나는 개념인 '일상'에 주목한다." 이젠 식상할 정도로 많이 듣던 얘기이다.

차이라면 "아직까지 국내에는 본격적으로 소개된 바 없는 크라카우어나 아르바토프를 비롯하여 하이데거에서 벤야민까지 다양한 일상담론의 서술"을 다룬다는 점. 하지만 "미국 내 동아시학에 대해 관심 있는 이들에게 도움이 될 것이다"이라는 건 친절한, 하지만 불필요한 멘트이다. 책은 '근대적 일상'에 조금만 관심있는 독자라면 흥미있게 읽을 수 있다, 정도의 멘트여야 하지 않을까? 한편 눈길을 국내로 돌리면, <근대의 첫경험>(이화여대출판부, 2006) 등이 근대적 일상을 다루고 있는 책들로 나와 있다. 학술서의 성격들이 강해서 다양한 일상담론을 '흥미롭게' 서술하고 있을지는 의문이지만. 

 

 

 

 

세번째 책은 '마르그리트 뒤라스가 말하는 나의 영화들'이란 부제가 모든 걸 말해주는 <말의 색채>(미메시스, 2006)이다. 마르그리트 뒤라스(1914-1996), 적어놓고 보니까 올해는 20세기 프랑스 현대문학을 대표하는 이 '전설적인 작가'의 10주기가 되는 해이다. 프랑스 여성작가로서 그만한 명성을 누린 작가가 많지 않을 듯한데 작가로서뿐만 아니라 시나리오작가, 영화감독으로도 왕성한 활동을 한 뒤라스의 영화에 대한 담담한 증언과 고백을 통해서 그녀의 삶을 재구성하고 있는 책으로 보인다.

La couleur des mots : entretiens avec Dominique Noguez

소개에 따르면, "텍스트와 이미지를 넘나드는 그의 영화-글쓰기를 뒤라스 본인의 솔직 담백한 증언들을 통해 살펴보"는바 "작가이자 뒤라스 연구가인 도미니크 노게즈와의 인터뷰를 토대로 하고 있는 책에는 영화의 스틸 컷과 현장 사진들을 비롯한 영화 작품들에 대한 상세한 자료와 함께 소설과 희곡, 에세이 등의 작품들, 뒤라스와 관련된 각종 미디어 자료들까지 수록하고 있다 그의 작품세계를 한 눈에 조감하게 한다"고. 그러니 뒤라스의 독자들이라면(아주 많지는 않겠지만) 놓칠 수 없겠다. 유지나 교수의 번역인데, 내 기억엔 역자의 학위논문이 뒤라스에 관한 것이었다.

아마도 뒤라스가 관여한 영화들 가운데 가장 높은 평판을 얻은 것은 알랭 레네가 감독한 <히로시마 내 사랑>(1959)일 테지만(뒤라스의 각본이다), 그녀의 대중적인 인지도를 높여준 영화는 1984년 공쿠르상 수상작 <연인>을 영화화한 장 자크 아노의 <연인>(1992)일 것이다(토니 륭과 제인 마치 주연). 전세계적인 화제를 불러모은 이 소설/영화는 알려진 바대로 뒤라스 자신의 연애 체험을 바탕으로 한 것이었다. 언젠가 롯데극장(?)에서 본 기억이 새롭다(황톳빛 인도차이나의 강물결과 함께).

뒤라스에 관한 나의 또다른 기억은 몇년 전 한 작은 시립도서관에 갔을 때 서가에 뒤라스의 소설들이 잔뜩 꽂혀 있었던 것. 몇 권을 제외하면 대부분은 <연인>의 개봉 이후에 번역/소개된 책들이다. 물론 지금은 대부분 절판된. 덧붙이자면, 그녀가 세상을 뜬 1996년에 나온 <이게 다예요>(문학동네)가 얼마 안되지만 내가 마지막으로 읽은 뒤라스이다. 고종석의 호평에도 불구하고, 읽을 만한 내용이 없어서 '고작 이게 다인가?'라고 혼자 툴툴댔던, 아주 얇은 책이다. 여하튼 그런저런 시간여행을 뒤라스와 함께 떠나볼 수 있겠다. 

 

 

 

 

그리고 네번째 책은 지난 8월말 정년을 맞아 퇴직한 독문학자이자 문학비평가 김주연의 <독일비평사>(문학과지성사, 2006)이다. 독문학자로서의 마지막 업적은 아니겠지만(아니기를 바라지만), 30년 가까운 대학 교단생활을 정리하고 기념하는 의미는 있겠다. 책의 제목에서 내가 떠올린 건 당연 저자의 막역한 친구이자 동료였던 문학비평가 김현의 <프랑스 비평사>(문학과지성사, 전집판2001)이다. 두 비평사 사이에는 20년쯤의 간극이 놓여 있는데, 그래도 나란히 놓으면 우정의 끈은 이어지는 것이지 않나 싶다. 문지4인방 비평가들의 '새파란' 젊은 시절을 보여주는 아래 사진에서 맨왼쪽이 김현, 그리고 맨오른쪽이 김주연이다.

<독일비평사>와 함께 (아마도) 정년을 기념하여 같이 나온 책 <인간을 향하여, 인간을 넘어서>(문이당, 2006)는 저자가 드물게 내는 에세이/시론(時論)집. 가장 최근에 나온 평론집 <근대 논의 이후의 문학>(문학과지성사, 2005)의 경우에도 그가 아직 '현역' 비평가임을 두루 과시한 바 있으므로 '정년 이후의 문학비평'을 더 기대해볼 만하겠다.   

 

 

 

 

끝으로, 불가리아 산문 문학의 대가로 추앙받는다는 작가 요르단 욥코프의 1927년 작 <발칸의 전설>(문학과지성사, 2006)이 출간됐다. 저자에 관해서 이번에 처음 알게 됐는데, '불가리스'로나 알려진 나라의 문학을 접해보는 드물고도 유익한 기회가 아닐까 싶다. 발칸에 대해서라면 주로 영화감독 쿠스투리차의 유고슬라비아(세르비아)나 이즈마엘 카다레의 알바니아를 떠올리게 되는데, 욥코프 덕분에 불가리아를 첨가하게 될는지도 모를 일이다. 하긴 줄리아 크리스테바나 츠베탕 토도로프 같은 걸출한 지식인들이 불가리아출신이지만. 아래 사진은 불가리아의 최고봉이라는 릴라산.   

책은 "이념과 관습, 그리고 죽음을 넘어선 사랑을 노래하는 열 편의 짧은 이야기"를 싣고 있다는데, "불가리아 중심부에 위치한 '스타라 플라니나(발칸 산맥)'에 흩어져 있던 전설과 민담을 채록하고, 여기에 작가의 상상력을 입혀 재탄생시킨 단편들"이라고 한다. 소개를 더 보태자면, "발칸의 광활하고 풍요로운 자연과 민족 영웅, 범부 등을 그린 이야기 속에, 15~19세기 불가리아의 역사와 문화, 풍습이 고스란히 담겨 있다. 500여 년에 걸쳐 터키의 지배를 받았던 불가리아를 배경으로 하며, 사라진 과거의 아름다움이 몽상적인 필치로 그려져 있다."



그리고 "작가 욥코프는 '(불가리아 국가가 형성된 이후 근 1300여년 동안)불가리아인에 영향을 준 100대 위인'에 뽑힐 만큼 불가리아인들이 사랑하고 존경해온 작가이다. 불가리아 출신 작가들 중 노벨 문학상 후보에 가장 많이 거론된 인물이기도 하다"고 한다. 그런 욥코프와의 발칸 기행에 한번 나서볼까? 집시들의 바이얼린 소리도 옆에 끼고서 말이다...  

06. 09. 15.

 

 

 

 

P.S. '마젤란의 해양 오디세이'에 덧붙이자면, 천병희 선생의 <오뒷세이아>(도서출판 숲, 2006) 개정판이 출간됐다. 단국대출판부판(2002) 이후 4년만인데, 직역투의 문장들을 좀더 유려하게 다듬은 것이라고 한다. 하지만 내가 더 맘에 들어하는 것은 달라진 표지이다(예전 번역본은 표지 때문에라도 구입하고 싶지 않았었다). 이젠 오뒷세우스의 여정도 뒤따라가볼 수 있는 준비는 갖춰진 셈. 거의 등떠미는 수준인데, 그렇다고 짐짝 같은 우리의 마음이 가벼울 수는 없다... 아, 이 많은 책들을 모두 어이할 것이냐? 우리의 뼈도 못추리게 만드는 이 세이렌(사이렌)의 마녀들을 모두 어이할 것이냐? 우리를 파멸로 이끄는 이 물귀신들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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