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랜만에 다시 연재를 시작한다(*이 글은 2003년 11월말에 씌어졌다. 나는 한 계절을 건너뛰었다!). 앞으로 한 계절 정도 연재할 수 있을 듯하다. 그 사이에 나온 책들이 또한 부지기수이지만, 다 생략하고 지난 1-2주 정도에 나온 책들 중에서 눈에 띄는 몇 권에 대한 소감만을 적는다. 다행스러운 것은 요즘 책들이 별로 나오지 않는다는 점. 복사하고 제본하는 책들은 쌓여가고 있지만, (인터넷)서점에서 실제로 구입하는 신간들은 일주일에 몇 권 안된다(덕분에 <정의론> 같은 '구닥다리'도 사들이고 있다!).

 

 

 

 

제일 먼저 꼽을 수 있는 건 루소의 <에밀>(한길사)이다. 800쪽이 넘는 분량이고, 3만원이 넘는 책값이다. 이미 정봉구 교수의 완역본(범우사)이 나와 있는 걸로 아는데, 어쨌든 그레이트북스 시리즈로 새단장을 해서 나왔다. 얼마전에는 책세상에서도 일부 발췌역 <에밀>이 나왔는데(해제만이라면 모를까 이런 식으로 책을 낼 필요가 있는지는 모르겠다), 덕분에 갑자기 에밀 붐이라도 분 것 같다.

루소하면 자동적으로 떠올리게 되는 레비-스트로스의 <슬픈 열대> 개역본(한길사)도 아직 사지 않은 나로서는 이 신간을 사게 될지 아직은 의문이지만, 어쨌거나 고전의 완역은 반가운 일이다. 루소와 관련해서 가장 기다려지는 책은 단연 <고백록>이다. 아주 오래전에 완역된 적이 있는데, 그건 도서관에서나 구경할 수 있는 책이고, 새 완역본이 나왔으면 싶다(범우사판의 <에밀> 역자는 정봉구 교수이다. 알라딘에는 '정범구' 교수로 잘못 표기돼 있다. 미심쩍어서 다시 확인하고 수정했다. *알다시피 <고백>은 작년에 재출간됐다).

루소 입문서로 내가 추천할 만한 책은 로로로 시리즈로 나온 G. 홀름스텐의 <루소>(한길사)이다. 당대의 경쟁자 볼테르와의 비교가 재미있는 전기이다. 그리고 참고로, <철학이야기>의 저자 윌 듀란트도 루소와 그의 시대에 대한 1,000쪽이 넘는 저작을 갖고 있다. 언젠가 도서관에서 이 책을 집어들었다가 엄두가 나질 않아서 다시 꽂아둔 기억이 있다. 루소의 연구서로는 토도로프의 얇은 책 <덧없는 행복>(한국문화사)이 번역돼 있고, 문예이론가 야우스의 <미적 현대와 그 이후>(문학동네)에서도 루소가 비중있게 다루어지고 있다. 번역되지 않은 책(번역되었으면 하는 책)으로는 장 스타로벵스키의 연구서 <투명성과 장애물>이 있다. 그런 식으로 따지자면, 폴 드 만의 <독서의 알레고리> 등도 번역되었으면 싶지만...

 

 


 


두번째 책은 강유원의 <서양문명의 기반>(미토)이다. 그의 이름을 처음 접한 건 폐간된 잡지 <포에티카>에서였지만, 나는 지지난주 문화일보의 인터뷰 기사를 읽고 새삼 그의 책들에 관심을 갖게 되었다(이윤기의 <장미의 이름> 개역본은 강유원의 오역에 대한 지적 때문에 나올 수 있었다고 한다). 이미 <책>(야간비행)으로 매니아층을 거느리고 있는 이 회사원/철학자의 신간은 철학책이 아니라 거시적인 문명사를 다루고 있는 역사책이다(혹은 역사철학책이라고 할까?). 구내서점에 갔다가 허탕을 치고 아직 사진 못한 책이지만, 사실 이런 제목으로 그다지 두껍지 않은 책이라면 신뢰할 수 없는 것이 보통인데, 저자의 대한 신뢰감 때문에 이 자리에서 소개한다(*물론 지금의 강유원은 더이상의 소개가 불필요하다. 그의 최신간은 <강유원의 고전강의: 공산당선언>(뿌리와이파리, 2006)이다. 분량 만만, 가격 저렴이라 한번 읽어볼 생각이다).

들리는 바에 따르면, 그는 동국대의 스타급 강사였다고 하는데, 요즘도 모처에서 틈틈이 강의를 하는 모양이며, 신간은 그 결과물이라고 한다(그는 <씨네21>에도 기고하고 있다. *지금은 물론 과거형이지만). 그가 빨리 생업을 위한 회사원 생활을 청산하고, 대학에 ('취업'이 아니라) '초빙'되기를 바란다. 다른 이유에서가 아니라 더 많은 책을 쓸 수 있도록. 참고로, 그의 책으론 헤겔 번역서 <법철학1-서문과 서론>(사람생각)과 절판된 <근대 실천철학연구>(미래글)가 있다. 후자는 홉스와 헤겔의 사회철학 연구서이다(그의 학위논문이 아닌가 싶다).

 

 

 



세번째 책은 수학자 케이스 데블린의 <수학으로 이루어진 세상>(에코리브르)이다. 교양 수학서에 조금만 관심을 갖고 있는 이라면 데블린이라는 이름이 낯설지 않을 것이다. 그의 책으론 이미 8권 정도가 번역돼 있는바, <수학의 언어>(해나무), <인포센스>(사람in), <수학유전자>(까치글방) 등이 비교적 많이 팔리고 있는 책들이다. 개인적으론 <수학유전자>란 책 이후에 비로소 그의 이름을 기억해 주게 되었는데, 댓권쯤 꽂혀 있는 그의 책들을 언제나 마음놓고 읽어볼는지...

 

 

 

한편, 수학전문출판사인 경문사에서 새로운 교양수학 시리즈로 'Apple'을 얼마전에 내놓았는데, 1권이 네이글의 <괴델의 증명>이고, 2권이 파울로스의 <수학 그리고 유머>이다. 네이글은 저명한 과학철학자이고, 파울로스는 <수학자의 신문읽기>(경문사) 등의 저작으로 유명한 저널리스트/수학자이다. 특히 <수학 그리고 유머>에는 르네 톰의 카타스트로피 이론을 응용한 대목이 나오는데, 이 톰의 주저들이 아직 번역되고 있지 않은 것은 유감이다. 이정우가 번역/소개한 <카타스트로프의 과학과 철학>(솔출판사)이 유일하다(*이정우의 근작인 <탐독>에는 르네 톰에 관한 내용이 얼마간 언급돼 있다). <구조적 안정성과 형태발생>, <기호물리학> 등의 책들을 언제쯤 우리말로 읽을 수 있을는지,(크리스테바의 초기 기호분석론 저작들과 마찬가지로) 그걸 번역해줄 수 있는 국내 학자가 과연 있는지 궁금하다...

 

 



 

네번째 책은 이경훈의 <오빠의 탄생>(문학과지성사)이다. 부제는 '한국근대문학의 풍속사'인바, 같은 주제의 책들이 연이어 출간되면서 하나의 트렌드를 이루고 있다. 권보드래의 <연애의 시대>(현실문화연구)도 이 같은 부류의 신간이다. 모두 '선정적인' 제목에 힘입어서인지 잘 팔려나가고 있다. 근대문학연구자들이 일종의 노다지를 발견한 셈인데, 물론 신간들은 그 자체로 의미있는 책들이면서 인문학 위기에 대응하는 한 가지 방책으로서도 유력해 보인다. 궁하면 통하기 마련이다.

 

 



 

끝으로 말론 브랜도의 전기 <세계를 매혹시킨 반항아 말론 브랜도>(푸른숲)이 지난주에 나온 전기문학이다. '20세기 최고의 배우'라는 평을 받는 이 대배우의 삶에 대한 '내밀한 기록'이라고. 나에겐 <파리에서의 마지막 탱고>과 <대부> <지옥의 묵시록> 등의 배우로 각인돼 있는데, 책표지로 사용된 젊은 시절의 사진들 또한 매력이 있어 보인다.

 

 

 

 

브랜도의 전기는 푸른숲에서 새로 출간하고 있는 전기물 시리즈 'Prun Soop Bios'의 세번째 책인데, 둘째권이 조너선 스펜스의 <무질서의 지배자 마오쩌둥>이고, 첫째권이 카렌 암스트롱 <스스로 깨어난자 붓다>이다(*동양학 권위자인 암스트롱의 책으론 <마호메트 평전> 등도 출간돼 있으며, 자서전 <마음의 진보>(교양인, 2006)도 연초에 나왔다. '최근에 나온 책들'에 소개한 기억이 있다). 모두 주목할 만한 전기물들이다...

 

 

 



덧붙임: 작년에 제6회 다산기념 철학강좌에 초빙되어 내한했던 찰스 테일러 교수의 강연/대담집 <세속화와 현대문명>(철학과현실사)이 출간됐다(*이미지가 뜨지 않는다). 영어원문과 번역문이 나란히 실린 강연문 외에도 저자의 40쪽 분량의 서문이 실려 있다. 이번에 내한했던 슬라보예 지젝의 강연은 제7회 철학강좌였다. 그것이 의미하는바는 내년 이맘때쯤 이번 강연문들이 책으로 묶여나오지 않을까 하는 것. 생각보다 오랜시간을 기다려야 하는 것인데, 그래도 조잡한 번역문들이 대폭 수정되어 말끔한 책으로 나오기를 기대해 마지 않는다(*알다시피 지젝의 내한강연은 작년 6월에 책으로 나왔다).

한가지, 철학과현실사의 신간에는 <자유주의의 원류>도 있는데, 부제가 '18세기 이전의 자유주의'이다. 나는 이 부제가 좀 의아했는데, 아니나 다를까 다루어진 내용의 절반은 18세기 사상가들에 대한 것이었다. 그렇다면, 부제는 '19세기 이전의 자유주의'라고 해야 옳다. 18세기 이전이라면, 1700년까지이기 때문이다(*내가 잘못 알고 있는 것인가?)...

2003. 11. 2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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열매 2006-05-19 16:37   좋아요 0 | URL
강유원의 <근대 실천철학 연구>는 그의 학위논문은 아니라고 합니다. 그가 석사논문으로 홉스를, 박사로는 헤겔을 썼으니 밀접한 연관은 있겠지요. 그의 논문은 그의 싸이트armarius.net에서 다운받아 볼 수 있더군요.

로쟈 2006-05-20 00:20   좋아요 0 | URL
그렇군요. 저는 오래전에 책의 서문과 처음 몇 페이지를 읽어본 적이 있는데, 학위논문과 관련된 것으로 기억하고 있었습니다...
 

지난번에(*이 글은 2003년 8월초에 씌어졌다) 소개한 류상욱의 <호모 시네마쿠스>에 대한 지난주 한겨레의 서평중 한 대목. "그러나 비평과 이론을 다루는 장의 무게 중심은 확실히 '텍스트'에 주어져 있다. 미디어 연구로부터 유입된 문화연구의 영향을 강하게 받고 있는 최근의 영화연구 추세에 대한 징후적 두려움의 반영처럼 보이는 이러한 태도는 영화이론에 대한 천착이 부족한 우리 영화연구 풍토의 방증이기도 하다."

번역도 아닌 글에서 이런 문장을 만나면 낭패감을 느끼게 된다. 필자는 영화평론가인데, 이론가라면 모를까 자신의 생각을 이런 식의 문장으로밖에 표현할 수 없는지 의심스럽고 걱정스럽다. 대략, 이론이 아닌 텍스트에 무게 중심이 놓여져 있는 것은 영화이론에 대한 천착이 부족한 우리 영화연구의 풍토를 반영한다, 는 뜻으로 이해가 되는데, 논증 자체도 신빙성이 없을 뿐더러, 도대체가 그런 말을 하고자 한 것인지도 확신이 들지 않는다. 일반인이 잘 이해할 수 없는 문장을 쓰는 능력이 평론가의 자질이라고 착각하지 말았으면 좋겠다.(일간지 리뷰들을 읽다가 가끔 짜증스러운 경우는 이처럼 요령부득의 서평을 접한다거나 잘못된/엉터리 정보를 읽을 때이다. 이런 일들이 좀 줄었으면 싶다.)

 

 

 



지난 한주 동안 나온 책들 가운데 눈길을 끌었던 책 몇 권을 간단하게 소개한다. 제일 먼저 들 책은 당연히 가라타니 고진의 <일본정신의 기원>(이매진)이다(*올해 표지를 바꾼 재판이 나왔다). 제목이 <일본정신분석>에서 그렇게 바뀐 데 대해서는 나를 포함하여 여러 사람의 비판이 있었다. 다행인 것은, 그래도 역자는 믿을 만하다는 것. <탐구1>과 <윤리21>의 역자인 송태욱씨인데, 앞서 두 책은 아주 재미있게 읽은 바 있다(*알다시피, 역자는 <트랜스크리틱>의 번역자이기도 하다). 해서, 제목은 멀쩡한 <유머로서의 유물론>보다는 낫지 않을까라는 기대를 갖는다. 나로선 '1장 언어와 국가'가 일차적인 관심사이기 때문에 이에 대한 소감을 나중에 올려볼 계획이다.

 

 

 

 
처음 책을 내면서 개시부터 핀잔을 먹은 도서출판 이매진이 근간 예정으로 공고한 책들 중에서 관심이 가는 책은 부르디외의 <하이데거의 정치적 존재론>이다. '부르디외가 본 하이데거'란 제목으로 나오는 모양인데, 복사해 두었던 영역본을 읽을 기회가 곧 생기겠다(*이 책은 2005년에 <나는 철학자다>라는 역시나 '엉뚱한' 제목으로 출간됐다). 그리고 테리 이글턴의 신작 <반대자의 초상>(이 책엔 짤막한 지젝론도 실려 있다)도 번역돼 나온단다(*이 책은 아직 출간되지 않았다). 역시 두껍지 않은 책이다. 역자는 호머의 <프레드릭 제임슨>(문화과학사)의 번역자인데, 그다지 신뢰가 가지 않는다. 제임슨보다는 이글턴이 읽기 편하지만, 책은 나와봐야 알겠다.

 

 

 



두번째 책은 미셀 앙리 르두의 <프랑수아즈 돌토>(숲). 돌토(1908-1988)는 프랑스 국내에서 라캉을 모르는 사람은 있어도 돌토를 모르는 사람은 없다고 얘기될 만큼 저명한 정신분석가이다. 특히 아동 정신분석과 상담에서 탁월한 능력을 보였다고 한다. 국내에서도 두어 권의 저작이 나온 바 있는데, 한 출판사에서 본격적으로 그의 저작선을 낼 계획이라고 하니 기대해봄 직하다.

돌토에 대한 개략적인 설명은 <프로이트에서 라캉까지 위대한 7인의 정신분석가>(백의)를 참조할 수 있다. 이번에 번역된 입문서의 마지막장은 '클라인, 돌토, 라캉'이란 제목을 달고 있는데, 여기서 클라인은 영국의 정신분석가 멜라니 클라인이다. 이 현대정신분석의 3인방이 어떻게 합종연횡하면서 서로 갈라지는지는 모르겠지만, 조만간 이들의 저작들이 서가의 한 구석을 장악하게 될 것이다(클라인의 주저인 <아동의 정신분석>도 출간된다는 소문이 있는데, 별로 기대할 만한 번역자가 아니다. *이 책은 아직 출간되지 않았다).

 

 



 

세번째 책은 앞서 3인방에는 못 들어가지만, 나름대로 저명한 정신분석가이자 문학이론가인 줄리아 크리스테바 연구서 <줄리아 크리스테바의 문학탐색>(이대출판부)이다. 저자는 크리스테바 연구자이자 전담번역가인 김인환 교수. 하지만, 김교수의 번역은 신뢰도가 좀 떨어진다(특히 <시적 언어의 혁명>이나 <사랑의 역사> 등). 그럼에도 국내 필자에 의한 유일한 연구서이기 때문에 일단 참조해 보기로 했다. 크리스테바의 후기 저작들, 우울증에 관한 <검은 태양>이나 민족주의를 다룬 <민족없는 민족주의> 등 다른 책들도 곧 번역되었으면 한다(*<검은 태양>은 2004년에 역시나 김인환 교수의 번역으로 출간됐다).

영미권의 크리스테바 연구자로 손꼽을 수 있는 이들은 존 레흐트, 토릴 모이, 켈리 올리버 등인데(프랑스내에서는 그만큼의 평가를 받는 거 같지 않다), 이중 켈리 올리버의 <크리스테바 읽기>(시와반시사, 1997)가 이미 오래 전에 번역돼 나왔다(*이미지가 뜨지 않는다). 크리스테바가 달랑 바흐친 책 하나 들고 불가리아에서 프랑스로 유학을 와서 지식계의 거물로 성장하기까지의 내막은 프랑수와 도스의 <구조주의의 역사>(동문선)나 자전적 소설 <사무라이들>(솔)을 참조하시라.참고로 그녀의 스승이었던 롤랑 바르트는 오히려 이 이방의 제자 덕분에 구조주의자에서 후기구조의자 혹은 탈구조주의자로 변신하게 된다.

 

 



 

네번째 책은, 찰스 다윈의 자서전 <나의 삶은 서서히 진화해 왔다>(갈라파고스). 이 지적 거인이 자신의 평범한(?) 삶에 대해 겸손하게 기술하고 있다고. 다윈 컬렉션에 들어갈 책이다(*알다시피, 올해는 다윈의 <인간의 유래>가 출간됐다). 또, 이유선의 <리처드 로티>(이룸)도 '누구나 쉽게 읽고 이해하는'이란 시리즈 타이틀을 달고 나온 만큼 로티의 삶과 생각에 대한 좋을 길잡이가 되어줄 듯. 필자는 김동식 교수와 함께 손꼽을 수 있는 국내의 로티 전문가이다.

 

 



 

그리고 마지막 다섯번째 책은 모리스 쿠튀리에가 편집한 <롤리타>(이룸). 피귀르 미틱, 즉 신화적 인물(형상) 시리즈의 네번째 책인데, 이미 <오이디푸스> <로빈슨> <채털리> <앨리스>가 나와 있다. 책에는 저자인 나보코프 자신보다도 유명해진 소설, 그리고 소설속 주인공인 '롤리타'에 대한 네 편의 글이 실려 있다. 푸코나 들뢰즈, 라캉 말고 프랑스 인문학 수준은 어떨까란 궁금증을 풀어줄 만한 글들로 보인다. 개인적으론 <앨리스>의 책임편집자이기도 했던 장-자크 르세르클의 작업에 관심을 갖고 있다. 루이스 캘롤과 넌센스문학 전공자인 르세르클은 알게 모르게 주목할 만한 이론적 작업들을 수행해 왔다. 최근에 사라 코프만과 함께 영역된 그의 책 대부분을 복사했는데, 내년쯤에는 독서삼매경에 빠질 수 있을는지!..

 

 



 

열외의 책으로 홍세화의 <빨간 신호등>(한겨레신문사)도 출간됐다. 홍세화, 박노자의 책들은 일단 사두기 때문에 따로 적지 않겠다. 역사쪽 책들을 좋아하는 이들에겐 재앙이겠지만, 최근에 좋은 역사서들이 많이 나오고 있다. 나보다 더 안목있는 분이 소개를 해주면 좋겠는데, 엘리아스의 <문명화과정> 비판서인 한스 페터 뒤르의 '문명화과정의 신화'(한길사) 시리즈(*가장 최근에 나온 건 <에로틱한 가슴>)나 임경석의 <한국사회주의의 기원>(역사비평사), 그리고 김호의 번역서 <신주무원록>(사계절) 등이 얼핏 꼽아볼 수 있는, 무게 있는 책들이다. 소개하기도 바쁜 그 책들을 과연 누가 다 읽는 것인지, 다 읽을 수는 있는 것인지?!..

2003. 08. 0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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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주말에 여행을 다녀왔다(*이 글은 2003년 7월초에 씌어졌다). 4박 5일 동안 (부)자유로웠는데, 핸드폰과 인터넷, 그리고 시계와 책없이 지냈기 때문이다. 애초부터 그럴 생각은 아니었지만, 다른 짐들 때문에, 박상륭의 <산해기>나 주판치치의 <실재의 윤리학Ethics of the Real>을 들고 가려던 계획을 접었고, 덕분에 온전히 바다와 햇살 하고만 지냈다(다른 거 다 제쳐놓으면 그렇다는 말이다). 그렇게 헤어져 보면 안다. 우리가 길들이거나 우리를 길들인 이들이 얼마나 그립고 애틋한가를. 책이 얼마나 그립고 어쩌고, 젠장...

출판계가 유례없는 불황에 허덕인다는 흉흉한 소문이 돌고 있지만(인터넷 서점의 할인폭이 커진 걸 보면 알 수 있다), 그럼에도 책은 계속해서 나오고 있고, 책값은 떨어지지 않고 있다. 아직은 버틸 만하다는 건지, 오기인지 잘 모르겠다. 황석영의 <삼국지>(창작과비평사)가 20일새 20만부가 나갔다는 믿거나 말거나 한 소식도 있는 거 보면, 활로가 없지는 않은 모양이다. 이 참에 황석영은 노후대책을 확실히 마련한 것 같고, 창비는 제2의 '동의보감'을 발판삼아 다리 뻗고 잘 수 있겠다. 반응이 미지근한 <서유기>는 안타깝게도 문지 살림에 아직은 큰 도움이 못되는 거 같다(내가 남 걱정할 때인가...).

 

 

 

 

이런 즈음에 나온 책들 가운데 압권은 역시 푸코의 <광기의 역사>(나남) 완역본이다. 정가 38,000원에 867쪽. 내가 알기로는 아직 영어 완역본도 없는 형편이니(기존의 <광기의 역사>는 영어 축약본의 번역이다), 생각보다 빨리 우리말 번역본이 나온 것만은 틀림없다. 알다시피 책은 푸코의 국가박사학위 논문이자, 그의 출세작이다. 같은 급에 들어갈 수 있는 책들이 들뢰즈의 <차이와 반복>(이것도 번역중이라고 한다. *알다시피 2004년에 출간됐다), 크리스테바의 <시적 언어의 혁명>(이것도 축약본이 번역돼 있다) 등이다. 푸코를 읽은 지가 오래됐지만, 신간은 다시금 그에 대한 관심을 불러일으킨다.

 

 

 

 

그러나 나의 관심은 조금 제한적인데, 데리다와 벌인 논쟁에 국한된다. 기존의 <광기의 역사>에는 논쟁의 빌미가 됐던 텍스트가 빠져 있었다. 이 논쟁만을 다룬 책이 로이 보인의 <데리다와 푸코>(인간사랑)이다. 그리고 김현 교수의 푸코 연구서인 <시칠리아의 암소>(문학과지성사)도 한 장을 이 논쟁에 할애하고 있다. 또 그에 대한 간략한 스케치는 프랑수아 도스의 <구조주의의 역사 3>(동문선)에서도 읽을 수 있다. 단, 김웅권이 옮긴 <구조주의의 역사> 시리즈는 웬만큼 눈이 밝지 않고서야 내용을 짚어나가기가 쉽지 않다. 참고로, 데리다는 푸코 이외에 리쾨르, 가다머와도 논쟁을 벌인 바 있지만, 그에 대한 본격적인 소개는 아직 이루어지고 있지 않다. 남들 논쟁에 왜 관심이 많으냐 싶을 테지만, 논쟁이란 각기 다른 사상가들의 사유가 첨예하게 충돌하는 지점이기 때문에 이들의 사유를 보다 효과적으로(예전에 많이 쓰던 표현으로 '쌈박하게') 이해할 수 있게 해준다.

 

 

 



두번째 책은 얼마 전 세상을 뜬 스티븐 제이 굴드의 <인간에 대한 오해The Mismeasure of Man>(사회평론)이다. 600쪽이 넘는 신간의 원저는 1981년에 초판이, 그리고 1996년에 개정판이 나왔다고 한다. 저자는 다윈 이후에 가장 유명한 생물학자로 불리던 저명한 고생물학자/진화생물학자이자 지질학자이다. 우리말로 번역돼 있는 그의 책들에는 <다윈 이후>(범양사), <새로운 천년에 대한 질문>(생각의나무), <판다의 엄지>(세종서적), <풀하우스>(사이언스북스)가 있고, 몇 권의 공저도 번역돼 있다. 나는 <다윈 이후>를 읽고 적어도 그의 단독 저작들은 다 모으고 있는데(아직 번역되지 않은 책들이 많다), 입문서로서 가장 추천할 만한 책은 <유전자와 생명의 역사>(몸과마음, 2002)이다. 책의 원제는 '도킨스 대 굴드'인데, 진화생물학계의 두 간판스타가 벌이는 한판 대결을 흥미진진하게 관전할 수 있다.

 

 

 



세번째 책은 빌헬름 바이셰델의 <철학자들의 신>(동문선)이다. 가까운 시일내 내가 이 책을 살 가능성은 희박하지만, 그럼에도 이 책을 고른 가장 큰 이유는 책의 두께이다. 정가 34,000원에 711쪽짜리. 아마도 철학적 신학 계통에서 가장 두꺼운 책 중의 하나가 아닌가 싶다. 바이셰델이란 이름을 기억하게 된 건 <철학의 뒷계단>(분도출판사)이란 책 덕분이다. 철학의 '정문'이 부담스러운 이들에게 아주 요긴한 '뒷구멍'을 일러준 책인데, 나중에 <철학의 뒤안길>(서광사)이란 제목으로 다시 번역돼 나오기도 했다(둘다 절판됐지만. *이후에 나온 <철학의 에스프레소>(아이콘C, 2004)는 확인해보지는 않았지만, 짐작에 같은 책이다). 저자가 편집한 책으로 <별이 총총한 하늘아래 약동하는 자유>(이학사, 2002)가 있다. 부제가 '칸트와 함께 철학을 읽는다'인 칸트 철학 발췌서이다. 바이셰델은 실제로 칸트 전집을 편집하기도 했다고.


 


 

 

네번째 책은 <증언으로서의 문학사>(깊은샘)이다. 해방 이후 한국 현대문학사/문단사에 대한 11명의 원로 작가/비평가들의 대담/증언을 싣고 있다(*전체적인 문단약사는 김병익의 <한국문단사>가 유익하다). 최근에 20세기 한국 현대사에 대한 책들이 여러 권 나오고 있는데(강준만 등), 신간 또한 유익한 자료로서의 가치가 있어 보인다. 한홍구의 <대한민국사 1,2>(한겨레신문사)도 근래에 나온 필독서이다. 나는 이런 책들은 고등학생들이 좀 많이 읽었으면 싶다.

 

 


 


우리 문학 얘기를 좀 덧붙이면, '컬트 작가' 박상륭의 '차라투스트라 다시 쓰기'로, <신을 죽인 자의 행로는 쓸쓸했도다>(문학동네)가 나왔다. 책은 '(속)산해기'란 부제를 달고 있어서 뒤늦게 <산해기>까지 구입한 것인데, 사실 나는 박상륭 마니아가 아니다(문단에는 생색내는 마니아들이 꽤 많다). 그리고 그는 '소설가'가 아니다. 왜냐하면 그는 소설이 아닌 '잡설'을 쓰므로(잡설가라 해야 할까). 서양의 경우라면, 쿤데라도 포함되는 에세이 소설 양식이라는 걸 들 수 있을 텐데, 그의 잡설이 그러한 에세이에 견줄만한 것인지 나는 확신이 없다. 그는 후기 조이스에 견줄 만한 대단한 작가이거나 아니면 변칙/트릭의 작가이다.

 

 

 

 

다섯번째 책은 여이연(여성문화이론연구소)에서 낸 <페미니즘과 정신분석>(여이연이론5). 여이연의 정신분석세미나팀에서 낸 자료집이자 정신분석 주제사전이다(*그 후속작이 <다락방에서 타자를 만나다>(2005)이다). 열두가지 개념을 정리하고 있고, 실제비평 5편과 번역 3편을 싣고 있다. 대표필자인 임옥희의 표현에 따르면, '다락방의 미친년들'이 2년 넘게 공부한 결과물이라고 한다. 물론 책으로까지 낸 데에는 약간의 자부심도 한몫 했을 것이다. 그런데, 353쪽의 버틀러 번역에서 철자가 틀린 단어가 3개나 나오는 걸 보면, 잘 정제된 자부심은 아닌 듯하다.

5권이 나온 여이연 이론서 가운데, <여사서>를 빼고, 가장 중요한 책은 4권으로 나온 가야트리 스피박의 <다른 세상에서>이다. 인도 출신의 이 인텔리 이론가는 흔히 에드워드 사이드, 호미 바바와 함께 탈식민주의 3인방으로 불린다. 그리고 이들 각각을 대표하는 책들이 <오리엔탈리즘>, <문화의 위치>, 그리고 <다른 세상에서>이다. <문화의 위치>(소명출판)의 우리말 번역이 좀 부실한 데 비해서, 다행스럽게도 <다른 세상에서>는 최적임자가 번역을 맡은 책이라 그래도 읽을 만하지 않을까 싶다.

 

 



 

그리고 잡다한 책들. 김근의 <욕망하는 천자문>(삼인)은 언론의 주목을 받았고, 독자들의 호응도 좋은 편이지만, 내가 당장 읽을 책은 아니어서 여기서는 제외했다. <월경하는 지식의 모험자들>(한길사)도 유용한 지식인 사전이지만, 이 책까지 사는 건 재정적인 '모험'이다. <우리는 매트릭스 안에 살고 있나>(굿모닝미디어)와 <매트릭스로 철학하기>(한문화)는 매트릭스 현상에 대한 철학자/과학자들의 개입이 얼마나 유효/무효한지는 보여주는 책들이고, 프란체스카 리고티의 <부엌의 철학>(향식)은 간식으로 딱 좋은 책이다.

 

 

 

 

굴드의 책이 아니었다면, 더 주목을 받았을 책이 니콜라스 험프리의 <감정의 도서관>(이제이북스)인데, 원제는 '내면의 눈'이고 부제는 '사회적 지능의 진화'이다. <유혹하는 본능>(참솔)이나 <호모 에로티쿠스>(청어람미디어)도 <비열한 유전자>와 함께 읽어볼 만한 책이다.

 

 

 



끝으로, 김수영 전집이 다시 나온 소식. 민음사에서 품절된 전집이 이번에 하드카바 개정판으로 다시 나왔는데, 바퀴를 보면 굴리고 싶어지듯이 이런 책들도 웬지 사(주)고 싶어진다. 1권(시), 2권(산문)만이 우선 나왔는데, 별권으로 묶였던 김수영론은 좀더 두툼하게 나오지 않을까 싶다. 20세기 단 한명의 한국시인으로 고종석은 백석을 꼽았는데, 나는 백석과 김수영 중 아직 결정을 보지 못했다...


 

 

 

참, 김훈의 <밥벌이의 지겨움>(생각의 나무)도 나왔다. 이쯤되면, 김훈의 지겨움이라 할 만하다. 그래도 어쩌겠는가, 사보는 수밖에. 그의 지겨움에, 그의 비애에 동참하는 수밖에. 얼마전에 나온 <아, 입이 없는 것들>의 이성복과 함께 그는 '비애적 세계관'을 대표한다. 그들은 항상 이렇게 말한다. 왜, 어떻게, 어쩌다, 어쩌자고, 어쩔 수가 없다, 나는 쏟아지는 책들을 어쩔 수가 없다...

 

 

 

 

덧붙임: 인터넷서점을 검색하다가 알게 된 건데, 앤드루 샌더즈의 <옥스퍼드 영문학사>(도서출판 동인)가 번역돼 나왔다. 정가 38,000원에 968쪽짜리이다. 두껍기로는 <철학자들의 신>이나 <광기의 역사>를 능가한다. 책의 모양새를 정확히는 모르겠지만, 서평으로 보아 번역된 영문학사로는 가장 방대하며 가장 풍부하다. 번역의 질도 양호하다고 하나, 고유명사들을 현지음에 가깝게 표기한 것에는 동의하기 어렵다(이 문제에 대해서는 나중에 다루도록 한다). 같은 출판사에서 <현대문학이론 용어사전>도 나왔다. 사전이야 많을수록 좋다는 건 상식이다. 778쪽이고, 정가는 역시 38,000원. 바야흐로 3만원대 책들이 쏟아지고 있다. 김홍경의 <노자>(들녘)도 거기에 속하는데, 880쪽에 정가 32,000원이다.

 

 

 



잡다한 책에서 빠뜨렸지만, 오강남의 <세계종교 둘러보기>(현암사)도 필히 장서용으로 꽂아둘 만한 책이다. 그의 <예수는 없다>(현암사, 2001)과 함께. 지각있는 기독교인들의 필독서이다. 종교학 관련으로 아주 따끈따끈한 신간은 존 D. 카푸토의 <종교에 대하여>(동문선)이다. 기독교철학쪽 전문가이자 하이데거와 데리다 전문가이기도 한 저자의 책으론 <마르틴 하이데거와 토마스 아퀴나스>(시간과공간사, 1993)가 번역돼 있다(절판됐다). 아직 번역되지 않았지만, 데리다와 함께 편집한 <호두껍질 속의 해체론Deconstruction in a Nutshell>은 (내가 읽은 바로는) 가장 유익한 데리다 입문서이다.

문제는 역자. 지젝의 <믿음에 대하여>의 번역자이기도 한데(이것도 종교와 관계가 있다고 번역을 맡은/맡긴 것일까?), 우리말 <믿음의 대하여>는 처음 인상만큼 읽을 만하지가 못하다(그래서 이전에 '읽을 만하다'고 한 발언은 취소한다). '모세의 형상'을 '모자이크한 모습'으로 옮기고, '인도'를 전부 '인디언'으로 탈바꿈시키고, 하이데거의 '현존재'는 난데없이 '실존성'으로, '뉴에이지'는 '신시대'로 옮겼다(뉴에이지는 신시대가 아니다!). '진리의 정치'를 전부 '진실의 정치'로 옮긴 걸로 봐서, 역자는 라캉/지젝을 전혀 읽어본 적도 없어 보인다. 그러니까 '대상 a'가 뭔지도 모르는 것은 아주 당연하겠고. 그런 역자가 열성적으로 번역에 나서고 있다. 좀 걱정스럽다(*<믿음에 대하여>에 대해서는 이후에 이 같은 내용의 리뷰를 올렸다).

2003. 07. 0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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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랜만에 다시 글을 연재한다(*이 글은 2003년 6월말에 씌어졌다. 그해 5월을 건너뛴 것인데, 그때도 요즘처럼 피곤했었나 보다). 두 달이 넘었는데, 한번 틀어진 리듬을 다잡기란 쉬운 일이 아니다. 4월과 5월 두 달은, 학술지를 만들고, 그와 관련된 일들을 하느라고 '탕진'했다. 돌이켜 생각하면, 어떻게 그 시간들을 보냈는지 모르겠다. 아마도 그 시간들이 나를 그냥 통과해 갔다고 하는 것이 더 정확할 듯하다. 바쁜 일들이 계속 꼬리를 물고 있지만, 장마가 시작됐다는 핑계로 잠시 늑장을 부린다. 이럴 땐, 'Crying in the rain' 같은 음악이라도 깔렸으면...



앞으로 새로 나온 책들을 잡다하게 소개하기보다는 내가 정말 읽고 싶은 책(읽고 있는 책), 사고 싶은 책(소장가치가 있는 책)만을 간추려서 소개하도록 하겠다. 그 의도는 짐작하시겠지만, 당신도 사서 읽으라는 것이다. 그럴 때 비로소 우리의 공범의식은 공고해질 것이다. 나는 책에 발목 잡히지 않은 삶들을 부러워하면서도 동시에 경멸한다...

 

 

 



아침 신문에(월요일 아침엔 한겨레를 읽는다. 이유는 두 가지이다. 박노자의 칼럼과 문학란이 연재되기 때문. *요즘엔 읽지 않는다. 그런 란이 빠졌기 때문). 이성복의 신간 시집 기사가 났다. <아, 입이 없는 것들>(문학과지성사). 내가 제일 처음 읽은 그의 시집은 <남해금산>이었던 것 같다. 아마도 88년쯤. 이성복은 그때 80년대 시의 시대를 대표하던 시인의 한 사람이었다. 그리고 이후에 나온 그의 모든 책을 나는 갖고 있다. 청춘의 뜨거운 피(그런 강도를 느끼게 하는 시인들은 많지 않다), '나쁜 피'의 시인도 어느덧 지천명의 나이를 먹었고, 시와의 오랜 불화 끝에 10여년만에 낸 시집이 신간이다. 오는길에 서점에 들렀지만, 예상대로 시집은 아직 나와 있지 않았다. 아마 주중에나 서점에 깔리게 될 것 같다.

그래서 꿩대신 닭이라고 집어든 게 그의 산문집 <나는 왜 비에 젖은 석류 꽃잎에 대해 아무 말도 못했는가>(문학동네, 2001)이다. 대부분의 글들이 이미 읽은 거여서 사지 않고 미뤄두었던 책인데, 사들고 사무실로 돌아오는 길에 생각해 보니까 언젠가 산 거 같다. 불행하게도 기억이 좀더 또렷해지는 걸로 봐서 집에 꽂혀 있을 가능성이 80%이다. 이거 8,000원 짜리인데... 대부분의 글이 이미 읽을 거라고 그냥 장서용으로 꽂아둔 게 화근이라면 화근일 테다(알건 모르건, 산 책 또 사는 게 북마니아의 조건 중의 하나이다). 집에 가서 한번 확인해보고, 그냥 선물용으로 떼놔야 겠다. 요는, 이성복의 신간 시집이 나왔지만, 아직 구경을 못했다는 것이고, 당신도 한번 사보라는 것이다.

 

 

 



그리고 두번째 책은 테리 번햄과 제이 펠란 공저의 <비열한 유전자>(너와나 미디어). 이건 어제 강남 영풍문고에 들렀다가 우연하게 집어든 책이다. 아무런 사전정보가 없이 제목이 눈에 띄어 집어들었는데, 에드워드 윌슨의 세 줄짜리 추천사가 없었다면, 그냥 싸구려 과학서로 내려놓을 뻔한 책이다. 저자들은 모두 윌슨의 제자들로서 하바드에서 경영학과 생물학 학위를 했다. '유전자 안내서(매뉴얼)'로 분류될 책의 서론에서 저자들은 "우리 자신과 우리가 살고 있는 세계를 이해하기 위해서 우리가 해야할 일은 지그문트 프로이트를 연구하는 것이 아니라, 찰스 다윈을 연구하는 것이다."(19쪽)라고 말한다. 그리고 사실 정확하게 바로 그런 경로를 밟은 이가 라캉학파에서 진화심리학으로 전공을 옮겨간 딜런 에반스이다.

나는 개인적으로 정신분석학(프로이트)과 진화심리학(다윈), 둘다에 아직은 매료돼 있다. 라캉이 정신분석학의 슈퍼스타라면, <이기적 유전자자>의 저자 리처드 도킨스는 진화생물학의 슈퍼스타이다. 그리고 <비열한 유전자>란 제목은 명백하게 도킨스의 책을 배경으로 하고 있다. 당신이 진화생물학에 문외한이라면, 나는 이제라도 당신이 이들 책들에 입문하기를 바란다. 당신의 세계관이 조금 바뀔 것이다.

 

 

 



사실 영풍문고에 들렀던 건, 신간 과학서인 <아톰으로 이루어진 세상>(생각의나무)과 <넥서스>(세종연구원)를 들춰보기 위해서였는데, 전자는 아주 잘 씌어진 화학 입문서이고(내가 고등학교에 다닐 땐 이런 책들이 없었다!) 후자는 요즘 뜨고 있는 복잡계과학의 한 분야인 네트워크 이론 입문서이다. 작년에 이미 <링크>(동아시아)란 책이 나오기도 했고, 쉬운 설명은 정재승의 <과학콘서트>에서도 읽을 수 있다. 하지만, 흥미진진한 네트워크 이론도 나의 관심사에 있어서 진화심리학을 능가하지는 못한다. 그래서 <비열한 유전자>에 밀리고 말았다(모든 책을 다 살 수는 없으니)...

 

 

 



그리고 세번째는 조광제의 <주름진 작은 몸들로 된 몸>(철학과현실사). 부제는 '몸철학의 원리와 전개'이다. 목차로 봐서는 몸철학의 '전개'를 다 감당하고 있지 못하지만, 국내에 몇 안되는 메를로-퐁티 전공자의 몸철학 입문서이다. 아는 사람은 알겠지만, 저자는 이정우와 함께 철학아카데미의 공동설립자이다. 이를테면 강단밖(재야?) 철학자이다. 책이 경어체로 돼 있는 걸로 봐서 대부분이 아마 철학아카데미에서 강의된 내용을 묶은 것이 아닐까 싶다. 홍상수의 <강원도의 힘>에도 출연한 바 있는 이 '영화배우'이자 철학자의 책은, 그러나 좀 미덥지가 못하다. 그의 영화론인 <쉬르필로소피아: 인간을 넘어선 예술>(동녘, 2000)을 읽고 느낀 소감이 그렇다. 그 책이 좀 실망스러웠던 탓이다. 그래서 이번 신간에 대한 나의 기대치는 그다지 높지 않다. 메를로-퐁티 전공자로서 변변한 역서 하나 없다는 점도 불만이라면 불만이고(적어도 <행동의 구조> 정도는 번역을 해줘야 하는 게 아닌가).

 

 

 



메를로퐁티에 입문하려면, 당연히 후설을 거쳐야 하는데, 저자의 학위논문이 "현상학적 신체론: 후설에서 메를로-퐁티에로의 길"이었다. 그 후설에 관한 가장 좋은 입문서는 아직까지는(그리고 내가 읽은 바로는) 한전숙의 <현상학>(민음사)이다. 메를로-퐁티쯤 오면, 사실 동아시아의 기철학이나 한의학적 세계관과 접맥될 수 있는 부분이 많다. 심신이원론이 강한 서양철학적 전통에서 볼 때 좀 튀어보이는 것이지, 메를로-퐁티의 기본적 아이디어 자체는 그다지 새로운 것이 아니지 않는가, 라는 게 내 선입견이다. 메를로-퐁티적 이성을 '아줌마적 이성'이라고 바꿔부른 데에는 그런 선입견이 깔려 있다. 물론 <지각의 현상학> 같은 '물건'은 읽을 만하다(*조광제는 서평에서 국역본의 번역이 매우 부정확하다고 비판했다). 철학에서 중요한 건, 문학도 마찬가지이지만, 아이디어가 아니라, 논증의 과정이고 육체이니까.

 

 

 

 

네번째 책은 지난 토요일 한겨레에 서평이 실린 박홍규의 <카프카, 권력과 싸우다>(미토)이다. 저자는 알베르 카뮈와 조지 오웰 평전과 함께 세 권의 책을 거의 동시에 출간했다(*그의 평전 시리즈는 계속 이어지고 있다). 거의 강준만 수준의 생산력인데, 문체 또한 간결해서 속도감있게 읽힌다. 법학자인 저자는 카프카학자들의 모호한 수사들을 걷어내고 단도직입적으로 말한다. "카프카는 평생 사회주의자, 아나키즘에 가까운 사회주의자였고 동시에 법률가였다. 나는 카프카의 삶은 물론 카프카의 작품을 이해하는 데 이 두가지는 핵심적인 열쇠라고 본다."(79쪽) 해서 책은 '카프카적인 것'을 전혀 포함하고 있지 않은 새로운 평전이 돼 버렸다. 문제는 그럼에도/그렇기 때문에 이 책이 갖는 의의이다.

저자의 조사에 의하면, 책은 국내에서 나온 최초의 카프카 평전이다. 학위논문이 단행본으로 나온 몇 권의 연구서를 제외하면, 국내에는 변변한 단행본 연구서(모노그라피)조차 없는 것이 카프카학의 현주소인데(*그런 사정은 별반 달라지지 않은 듯하다. 학술논문들을 빼면, 조정래의 <프란츠 카프카>(살림, 2005) 정도가 체면치레하는 책이다), 한 법학자의 도전장에 대한 카프카학자들의 대응이 주목된다(물론 아무런 대응도 없을 테지만). 아쉬운 건 좀 급하게 책을 내서인지 오타나 오문이 드문드문 눈에 띄는 것. '실존의 비의'(67쪽)란 말을 엉뚱하게 해석한다든가 '꽤나'를 '꾀나'로 쓰는 것, "프리브람의 아버지"를 "카프카의 아버지"(191쪽)로 잘못 표기하고 있는 것 등이다. 그럼에도 일독의 가치는 충분하다.

 

 

 



끝으로, 다시 나온 책들 패키지. 절판되었던 곰브리치의 <예술과 환영>(열화당)이 다시 나왔다. 알다시피, 책은 <서양미술사>와 함께 곰브리치의 주저이다. 그의 대담집 <이미지가 우리에게 들려주는 것>(민음사)와 함께 곰브리치 퍼즐의 짝을 이룬다. 사실 다른 주저인 <서양미술사>도 원제에 맞게 <미술이야기>로 번역돼야 한다는 게 내 생각이다. 윌 듀란트의 <철학이야기>와 마찬가지로 청소년 교양서이기 때문이다.

 

 

 



그리고 들뢰즈의 <푸코>(동문선). 이미 영역본이 <들뢰즈의 푸코>(새길)란 제목으로 나왔지만 현재는 품절상태이다(인터넷서점이 그렇다는 얘기고, 대형서점들에서는 찾아볼 수 있다). 서두 부분을 비교해 본 결과 큰 차이는 없어 보이지만, 원저 번역본이 나왔다는 데 의의를 두어야겠다. 그리고 신간엔 대단히 자세한 들뢰즈 서지가 실려 있다. 물론 들뢰즈의 다른 책들과 마찬가지로 호락호락하게 읽히지 않는다.

 

 

 



 

소설 가운데는 피츠제럴드의 <위대한 개츠비>(민음사)가 다시 나왔다. 1991년에 간행된 캠브리지 '결정판'을 김욱동 교수가 옮겼다. 그리고 조지 오웰의 <1984>(민음사)도 다시 나왔다. 나는 1984년초에 김병익의 번역으로 읽었었는데, 어느새 20년전이 돼 버렸다(!).

 

 

 



기타, 가타리의 마지막 책 <카오스모제>(동문선)도 나와 있는데(*이미지가 뜨지 않는다), <세가지 생태학>과 함께 나중에 다루고자 한다. 내가 관심을 갖는 쪽은 들뢰즈/가타리의 기호학 비판이다. 그 비판의 전거로 옐름슬레우가 많이 인용되는데, 국내에 번역된 유일한 저작 <랑가주 이론 서설>(동문선, 2000)의 번역도 신통찮다는 것만 지적해둔다. 한국어로 인문학을 공부하는 지난함이여!...

2003. 06. 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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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두 주간에도 여전히 많은 책들이 쏟아져 나왔지만, 손길이 가는 책은 많지 않았다. 그래도 눈길을 끈 책들 가운데 비교적 언론의 포커스를 받지 못한 책들을 중심으로 간단히 소개한다. 

 

 

 

 

 
 레비나스의 책 2권이 연이어 나왔다. 한권은 그의 3대 주저 가운데 하나인 <존재에서 존재자로>(민음사)이고 다른 한권은 절친한 친우에 대한 책 <모리스 블랑쇼에 대하여>(동문선)이다(블랑쇼의 비평에 대한 개괄적인 소개는 김현의 <프랑스비평사-현대편>을 참조). 이전까지는 나는 그냥 ‘임마누엘 레비나스’라고 알고 있었는데(임마누엘 칸트처럼) 새로 나온 번역서들을 보니 ‘에마뉘엘’ 혹은 ‘에마누엘’이라고 불러야 하는 듯하다.(*레비나스에 대해선 얼마전에 여러 차례 다룬 바 있기에 좀 새삼스럽다). 

<존재에서 존재자로>는 믿을 만한 역자의 자세한 해제를 싣고 있기 때문에 굳이 부연설명을 필요로 하지 않는다. 블랑쇼에 대한 책 역시 블랑쇼 연구로 학위를 받은 이의 번역이므로 믿어봄 직하다. 그런데, 100쪽이 안되는 책이 9,000원이나 하는 것은 좀 심하다는 생각도 든다. 일부 마니아나 도서관을 염두에 둔 책값이지 싶다(그 마니아에 내가 속한다니!). <블랑쇼>는 불어로는 단행본으로 출간됐지만, 내가 갖고 있는 영역본에서는 <고유명사들Proper Names>(스탠포드대학, 1996)에 합본돼 있는데, 분량은 44쪽에 불과하다. 프랑스 철학이나 비평서들에 자주 손길이 가는 탓에 동문선의 책들을 자주 소개하게 되는데(요즘은 ‘서문선(西文選)’이나 ‘불문선(佛文選)’이라고 개명해야 할 듯싶다), 그들이 제값의 번역서들을 내고 있는지는 좀 의심스럽다.

레비나스에 대해 관심을 갖게 된 건 10년이 넘었다. 애초에 하이데거의 책에 눈을 뜨기 시작하다가 ‘타자’에 대한 윤리학이란 구호에 매료된 거 같은데, 덕분에 관련서만 서가 한칸을 채우고 있다(에스토니아 출신인 그는 러시아문학의 영향을 많은 받은 철학자이다. 특히 그가 자주 언급하는 책은 도스토예프스키의 <카라마조프의 형제들>이다). 이런 까닭에 그간 드문드문 그의 책들이 소개될 때마다 반가운 마음을 갖게 된다. <전체성과 무한>, <존재와 다른 것, 혹은 존재 사건 저편>과 같은 나머지 주저들도 마저 번역되기를 기대한다. 레비나스 얘기가 나온 김에 덧붙이자면, 이기상 교수의 <하이데거의 존재사건학>(서광사)이 출간됐다. 정신문화원 김형효 교수의 묵직한 책들과 함께 국내 하이데거학의 수준을 말해주는 지표이다.

 


 

 

 

동문선에서 나온 신간으론 롤랑 바르트의 <작은 사건들>도 있다(*바르트의 책은 이후에 5-6권이 더 출간되었다). 역자는 동문선의 간판역자인 김주경씨(<느리게 산다는 것의 의미>의 역자). 바르트 전집이 잠시 주춤하고 있는 사이에 기습적으로 출간된 이 책은 바르트 애호가들의 장서용 책이다. 주저는 아니라는 뜻이고, <카메라 루시다>에 매혹됐던 이들에게는 좋은 선물이 될 만하다. 아울러 바르트를 좋아하는 이들은 이번 봄호 <세계의 문학>에 실린 쇠이유의 편집자 프랑수아 발과의 인터뷰를 놓치지 마시길 바란다. 발은 바르트 생전에 매주 저녁식사를 같이 했던 친구이자 전담 편집자이고 철학자이다(그리고 바르트와 마찬가지로 동성연애자이다).

곁다리로 덧붙이자면, 프랑수아 도스의 <구조주의의 역사4>가 마저 출간됨으로써 전 4권이 동문선에서 완간됐다. 번역은 2, 3권에서와 마찬가지로 김웅권. 도스는 역사학자로서 폴 리쾨르의 제자인데, 그가 쓴 <폴 리쾨르>도 동문선의 근간 리스트에 올라가 있다. 한번 기대해봄 직하다(*이 책은 작년에 이미 출간되었다). 또 하나, 피에르 부르디외의 <맞불2>도 동문선에서 나왔다(*<맞불>은 <맞불2>보다 더 나중에 출간됐다). 부르디외의 책 리스트를 나도 웬만큼은 꿰고 있는데, 처음 들어보는 책이다. 당연히 아는 바가 없다. 시사적인 글 모음이 아닐까 싶다.

 

 

 



모처럼 사회학 이론서를 한권 샀는데, 스티븐 마일스의 <현실세계와 사회이론>(일신사)이 그것이다. 저자는 그다지 잘 알려진 인물이 아니고, 다만 비교적 얇은 분량에서 대중사회, 탈산업사회, 소비사회, 탈근대사회, 맥도널드화된 사회, 위험사회, 지구사회 등 20세기의 다양한 사회이론의 흐름과 그 관계들은 잘 정리하고 있다는 게 장점인 책이다. 일종의 지도이자 매뉴얼인 셈(실제 독서에선 이런 책들이 유용하다). 책은 일신사의 사회과학신서의 한권인데, 출간된 60권의 책 가운데 내가 갖고 있는 건 고작 3권뿐이었다(나는 얼마나 책을 안 사는 것인지!). 근간 목록에 유까 그루너브의 <취향의 사회학>이 눈길을 끈다(*아직 출간되지 않았다).

 

 

 



야나부 아키라의 <번역어 성립 사정>(일빛)이 번역돼 나왔다. 사실 이 책은 두 주전 구내서점에서 우연히 눈에 띄길래 바로 구입한 책이었고, 은근히 괜찮을 물건 하나 건졌다고 생각하고 있었는데, 바로 그주 언론의 북리뷰란에서 가장 크게 다루어졌다. 한때 '사회'라는 말이 언제쯤 우리말 쓰임새를 갖게 됐을까 궁금하기도 했었는데(현진건의 '술권하는 사회'란 단편을 떠올려 보라), 그런 류의 궁금증을 시원하게 씻어주는 책이 신간이다. 11개의 주요 단어들이 일본어로 옮겨지게 된 사정을 친절하게 설명해주고 있는데, 그 일본어들은 곧 우리말이기도 하기 때문에 '일본어 사정'이라고 치부해 버릴 수만은 없다. 이런 류의 우리말 번역어 성립 사정도 누가 좀 풀어주었으면 싶다.

 

 



 

이론서들을 제쳐놓는다면, 가장 반가웠던 책은 조루주 벨몽의 <나의 프루스트씨>(시공사)이다. <잃어버린 시간을 찾아서>의 작가 프루스트를 만년에 8년간 돌보았던 셀레스트 알바레의 회고담인데, 역자후기에 따르면 아주 오래전에 출간됐던 것이 이번에 재출간됐다. 재정 문제 때문에 아직 책세상에서 나온 <마르셀 프루스트1,2>를 구입하진 못했지만, 이 신간 덕분에 프루스트에 관한 연구서 두어 권을 복사했다. 언젠가 처박아놓은 책들을 찾아서 읽을 시간이 오기를 바란다.(*열화당에서 나오는 만화판 <잃어버린 시간을 찾아서>는 현재 3권이 출간돼 있다.)

 

 

 

 

니콜 키드먼 주연의 영화 <디 아워스>의 영향으로 버지니아 울프의 책들이 번역되고 있다. 대학에 들어올 때 내가 서점에서 본 울프의 책은 삼중당문고본 <댈러웨이 부인> 정도가 전부였다. 그리고 그걸 (고생스레) 읽고 있던 친구가 그렇게 부럽진 않았다. 솔출판사에서 전공자들로 울프 전집 간행위원회를 구성하여 더디지만, 지난 96년부터 전집을 출간하는데, 이미 댓 권이 나왔고, 이번에 <댈러웨이 부인>이 다시 나왔다(*이미지를 찾지 못하겠다). 이미 허마이오니 리의 정평있는 전기 <버지니아 울프 1,2>(책세상, 2001)도 나와 있기 때문에 이젠 버지니아 울프도 마음놓고 읽을 만한 때가 되었다.

 

 

 



<러시아현대희곡>(전3권)이 열린책들에서 나왔다. <오리사냥>의 밤필로프를 제외하면 과문한 나로서는 대부분 낯선 현대 작가들의 희곡들이 얇은 책 3권으로 묶였다. 읽어보지 않았기에 뭐라 말할 수는 없지만, 사실 내용을 살펴보고 좀 실망했다. 더 중요한 작가들의 더 중요한 작품들이 먼저 번역됐어야 했다는 생각 때문이었다. 20세기 초반 씌어진 다수의 작품들이 그들인데, <러시아희곡1,2>(열린책들)과 <러시아현대희곡> 사이에 끼인 그 작품들은 언제쯤 우리말로 읽을 수 있을까?

 

 

 



장정일 등이 쓴 <삼국지 해제>(김영사)가 두툼한 책으로 나왔고(알다시피 장정일은 문화일보에 삼국지를 연재하고 있다), 서유기의 새 번역본(임홍빈 역)도 문학과지성사에서 10권짜리고 나온다고 한다. 당분간은 이들을 챙길 여력이 없음이 유감이다. 反중화주의를 기치로 내건 <삼국지 해제>가 특별히 강조하는 건 두 가지라고 한다. 하나는 삼국지 최고 전략가가 제갈량이 아닌 가후라는 것. 그리고 비전을 제시하지 못하고 천하통일에 실패했기에 유비와 조조는 역사의 실패자라는 것.

이 책에 대한 소설가 조성기(<삼국지>의 역자 중 한 명이다)의 서평(<한국일보>, 4월 5일자) 중 마지막 대목은 이렇다: "<삼국지>는 사실 우리가 반면교사로 삼을 만한 내용이 있을지는 모르나 배워 본받을 만한 내용은 별로 없는 책이다. <삼국지>가 베스트셀러가 되고 있는 나라는 불행한 나라이다. 정치, 문화, 경제가 삼국지 수준에 머물고 있는 나라인 셈이다. 이라크 전쟁이 일어나고 있는 세계도 삼국지 수준을 벗어나지 못하고 있다." 그의 의견에 공감한다.

 

 

 



교양과학서로 사두고 싶은 책은 제임슨 왓슨의 (사이언스북스)이다. 1953년 프란시스 크릭과 함께 DNA의 이중나선구조를 발견하여 분자생물학 혁명을 가져온 왓슨의 지적 여정을 담고 있는 책이다. 개인적으론 상당히 고집이 세고 오만한 성격이라는데(에드워드 윌슨의 자서전 <자연주의자>에 따르면), 그럼에도 불구하고 생물학의 시대를 지혜롭게 살아가기 위해선 한번쯤 읽어볼 만한 책이겠다.

수학자 폴 에어디쉬의 전기 <우리 수학자는 모두 약간 미친 겁니다>(승산, 1999)를 좀 뒤늦게 읽고 있는데, 그는 생애 만년의 25년간 하루 19시간씩 수학에 매달렸고, 하루 10-20밀리그램의 벤제그린, 강한 에스프레소 커피, 카페인 알약을 복용했다. 그러면서 그가 즐겨 한 말. “수학자는 커피를 정리(定理)로 둔갑시키는 기계이다.” 수학이 아닌 모든 것을(심지어 여자도) 귀찮게 여겼던 그가 한 말 중에 인상에 남는 것: “몇몇 프랑스 사회주의 사상가들은 사유재산이 훔친 것이라고 말했습니다. 나는 사유재산이 귀찮은 것이라고 말하겠어요.” 자본주의를 극복하기 위해서라도 수학 공부를 열심히 하거나 하루 19시간씩 엉뚱한 책을 읽어야겠다.

 

 

 



끝으로, 음미해볼 만한 기사는 <중앙일보>(4월 5일자) 죽비소리에 실린 북디자이너 정병규의 인덱스 없는 출판관행에 대한 비판이다. 필자가 거명하고 있는 책들은 메를로퐁티의 <지각의 현상학>(문학과지성사), 리쾨르의 <시간과 이야기>(문학과지성사), 소광희 교수의 <시간의 철학적 성찰>(문예출판사) 등이다. 나도 다 갖고 있는 책인데, 이 두툼한 책들의 공통점은 인덱스가 빠져 있다는 것. 대표적인 인문학출판사를 자처하는 곳들에서 나오는 책들이 이렇듯 (비용을 좀 줄이려는) 얄팍한 계산하에 출간된다는 것은 새삼 부끄러운 일이다. 정신 좀 차릴 일이다!

 

 

 

 

보너스. 당대비평 특별호로 나온 <탈영자들의 기념비>(생각의나무)가 이 주에 읽어볼 만한 저널북이다. 책갈피에 인용된, 네그리/하트의 <제국>에서 재인용된 대목: "탈영자들을 위한 기념비들은 전쟁에서 죽은 사람들을 대표할 것이다. 왜냐하면 전쟁에서 죽은 사람들 모두는 전쟁을 저주하면서 그리고 탈영자들의 행복을 부러워하면서 죽어갔기 때문이다. 저항은 탈영에서 생겨난다."(한 반파시스트 파르티잔, 1943) 미국이 승리를 선언한 이라크전에서 무고하게 희생된 이라크인들의 명복을 빈다. 더불어 그 무모한 전쟁에서 탈영한 이들에게 축복이 있기를!...

2003. 04. 17.

P.S. 본문중에 '동성연애자'란 표현이 나오는데, 나는 '동성애자'란 뜻으로 쓴 것이지만, 오해의 소지가 있다는 지적이 있어서 '동성애'와 '동성연애'의 의미를 보충하도록 한다. 별다른 건 아니고, 인터넷의 지식검색 내용을 옮겨놓는다(사실 문제는 좀 복잡한데, 나의 기본적인 생각은 동성애란, 동성을 이성으로 인지/간주하는 성향이 아닐까라는 것이다. 가령, 동성애자들은 이성애자들에게 당신들이 이성에 대해서 갖는 감정을 우리도 동성에게 똑같이 갖고 있습니다, 라고 주장/호소하기도 하는데, 나는 거기에 '진실'이 있다고 보는 것이다. 즉, '동성애란 없다!' 다만, 있는 것은 성의 불확정성이다. 생물학적 성과 자신의 정체성 사이에 간극이 있는 것. 때문에 '동성애'는 취향의 문제가 아니다).

동성애, homosexuality 동성애란 성 지향성 (sexual orientation)이 자신과 같은 성향의 사람에게 향하는 것을 나타내는 말입니다. 성 지향 성이란 마음 속 깊이 내재되어 있는 것으로 단순한 성적 취향과는 구별됩니다. 동성애는 동성을 향한 지속적인 감정적, 정서적, 신체적, 성적 끌림을 수반합니다. 즉 단순히 동성과의 성경험이 있다거나 동성과의 성행위 자체를 동성애라고 할수는 없습니다. 다시 이야기 하면 동성이나 이성과의 어떤 개인적인 성적 경험이 반드시 그를 동성애자 또는 이성애자로 결정하지는 않는다는 것입니다. 여러 가지 이유가 있겠지만, 동성애자임에도 불구하고 이성과 성적인 경험을 할 수도 있고, 이성애자임에도 동성과 성적인 경험을 가질수 있습니다.

-실제로 어떤 동성애자들은 자신의 성향을 고쳐 볼려는 노력의 일환으로 이성과의 성적인 경험을 갖기도 합니다.그리고 군대, 교도소, 기숙사등의 이성과 차단된 환경에서 이성애자들이 경험하는 동성과의 성접촉도 드문 일은 아닙니다. 이렇듯 성행위 자체가 개인의 성지향성을 결정하는 것이 아니기 때문에, 동성애라는 용어를 이해할 때는 동성에 대한 지속적인 끌림과 동성과의 성적인 경험 사이에 중요한 차이가 있음을 먼저 알아야 합니다.성 지향성을 무시한 채 동성과의 성 행위 자체를 동성애라고 부르는 경우도 있는데, 이는 '동성애'와 '동성연애'의 개념 차이를 구분하지 않았기 때문입니다. 여러분의 성적인 성향이 궁금하십니까? 여러분이 "동성애자"인지, "이성애자"인지 궁금하십니까? 그렇다면 자신이 어떤 성의 사람에게 감정적, 정서적, 신체적, 성적으로 가장 끌리는지 스스로에게 물어보십시오.

동성연애, same-sex acts 일반적으로 대중 매체에서는 동성애에 대한 기사를 다룰때 거의 '동성애'와 '동성연애'를 동일한 개념으로 사용합니다. 일반인들도 동성연애라는 표현에 훨씬 더 익숙해 있습니다. 하지만 정작 동성애자들은 동성애와 동성연애를 구별합니다. 이러한 관점의 차이는 동성애에 대한 이해부족에서 기인하 기도 하겠지만, 그보다는 동성애를 바라보는 태도의 차이 에서 그 원인을 찾을수 있습니다.

-'동성연애'라는 용어는 기본적으로 동성과의 어떤 성적인 경험 내지는 성행위를 전제로 하고 있습니다. 동성애를 삶 자체로 보기보다는 삶의 어떤 선택적인 경험으로 이해하는 것입니다. 그래서 동성애는 변태 아니면 이성과의 섹스에 싫증난 사람들의 도착적인 행동이나 노력만 하면 언제든지 그만 둘 수 있는 도덕적인 일탈행위로 치부됩니다. 즉 동성연애라는 말속에는 동성애를 치료 가능한 정신질환의 일종이나 타락한 인간들의 행태, 할수도 있고, 하지 않을 수도 있는 것으로 간주할려는 시각이 담겨있는 셈입니다. 그러나 일차적으로 동성애는 doing이 아니라 being입니다. 곧 행위의 문제가 아니라 존재의 문제입니다. 행위는 존재에 수반되어 나타날수 있는 것이겟지요. 어떤 외국의 천주교 신부는 자신이 동성애자임을 공개적으로 선언하고 하나님과의 약속을(사제로서 독신으로 살겠다는)실천하는 사람들도 있습니다. 즉 어떤 성관계도 갖지 않겟다는 것을 실천하는 것이지요.

 

 

 

 

-이성애자와 마찬가지로 동성애자 중에는 동성과 성적인 경험이 전혀 없는 사람들도 상당수 있습니다. 물론 그들이 나중 에 동성의 사람을 사귀고 섹스를 한다고 하더라도 그들에게 는 기본적으로 이성애자인 사람이 이성을 사귀고 섹스를 하는 것과 하나도 다를 바 없는 자연스러운 행동인 것입니다. 어떤 분들은 '동성애'를 성적인 행동만 없다면 인정할 수 있다는 주장을 하기도 하는데, 그것은 '이성애'를 성적인 행동만 없다면 인정하겠다는 억지 주장과 동일합니다. 동성애자에게 있어서 동성과의 성적인 경험은 아주 자연스러운 것입니다. 오히려 그들이 이성과 성 경험을 갖는 것이 부자연스러운 것이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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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6-05-13 23:42   UR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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