컬처뉴스에서 오랜만에 출판기획자 이재원씨의 '인문학서평'을 옮겨온다(http://www.culturenews.net/read.asp?title_up_code=006&title_down_code=002&article_num=8445). 서평 대상은 조르주 소렐의 <폭력에 대한 성찰>(나남, 2007)이다. 책의 출간소식은 지난 7월에 페이퍼로 올려놓은 바 있다(http://blog.aladin.co.kr/mramor/1398654). 아래는 아마도 그에 대한 가장 자세한 리뷰가 아닐까 싶다.

 

컬쳐뉴스(07. 10. 05) 폭력이란 무엇인가?

“여러분은 사회를 관리하는 데 있어서 실패했기 때문에, 그 관리권은 이제 박탈되어야 마땅합니다. 노동계급의 1백50만 명이, 나머지 노동계급 사람들을 포섭해서 합세시켜 가지고 여러분으로부터 관리권을 빼앗겠다고 말하고 싶습니다. 고용주 여러분, 그것이 바로 혁명입니다. 어디 막을 수 있으면 막아 보시죠.”

미국 소설가 잭 런던(1876~1916)의 『강철군화』에서 주인공 어니스트는 부르주아계급의 사교클럽인 필로머스 클럽에 초대를 받자마자, 자신의 연인 애비스에게 이렇게 말한다. “당신은 고용주들을 흔들어 놓는 데는 실패했었지요. 당신은 단지 그들의 도덕성에 의문을 제기했을 뿐입니다. 그러나 나는 그들의 돈주머니를 위협할 거예요. 그건 그들의 원시적인 본능의 밑뿌리까지를 뒤흔들어 놓을 것입니다.” 어니스트는 맨 앞에 인용한 것처럼 말했고, 결국 고용주들을 뒤흔들어 놓는 데 성공한다.



『폭력에 대한 성찰』의 지은이 조르주 소렐(1847~1922)은 사상계의 런던, 아니 어니스트라고 할 만하다(공교롭게도 『폭력에 대한 성찰』과 『강철군화』는 모두 1908년에 출간됐다). 소렐이 이 책을 쓴 목적 역시 “프롤레타리아트의 폭력 앞에서 어찌할 바를 모르고 쩔쩔매는” 의회사회주의자들, 더 나아가 “프롤레타리아트가 스스로를 해방시킬 수 있다는 것”을 부인하는 부르주아계급, 궁극적으로는 “프롤레타리아트의 폭력은 미래의 혁명을 담보할 뿐만 아니라 박애주의에 얼이 빠져 있는 유럽의 국민들로 하여금 그들의 옛 활력을 되찾도록 해주는 유일한 수단”임을 노동계급 자신들에게 알려주기 위해서였기 때문이다.

1908년은 노동총연맹(CGT)이 아미앵 헌장을 발표해 기존 정당의 존재를 부정하고 직접행동에 의한 사회혁명 실현, 노동조합에 의한 생산과 분배의 조직을 선언한 지 2년이 되던 해이다. 요컨대 프랑스에서 사회주의 운동의 힘이 부쩍 성장하던 해인 셈이다. 이런 점에서 『폭력에 대한 성찰』은 『강철군화』와 마찬가지로 꾸준히 성장해가던 사회주의운동의 자신감이 반영된 저작이기도 하다.



그러나 『폭력에 대한 성찰』이 ‘지금’의 우리에게 흥미로운 가장 큰 이유는 이 책에서 말하는 ‘폭력’이 현대 사상들의 ‘폭력’ 개념을 이해하는 데 시사점을 던져주기 때문이다. 여기에서 말하는 ‘현대’란 대략 1968년 이후의 시기로서, 학문적으로는 구조주의 이후의 시대를 지칭한다. 1968년은 신좌파 운동이 전세계를 휩쓸던 해이자 온갖 도시 게릴라 단체들의 등장을 부추긴 해이기도 하다. 요컨대 민권운동이나 플라워무브먼트 등으로 대변되는 비폭력이든, 독일의 적군파나 이탈리아의 붉은여단으로 대변되는 폭력이든 폭력/비폭력을 둘러싼 담론과 실천이 전면에 부각된 해인 셈이다.

1968년경부터 구상을 시작해 1970년 그 결실을 책(국내에는 『폭력의 세기』로 소개되어 있다)으로 낸 독일의 철학자 한나 아렌트(1906~1975)는 폭력(violence)과 권력(power)을 확연히 구분한다. 권력은 곧 폭력이므로 그에 맞서는 폭력은 정당하다고 주장하는 일부 신좌파 활동가들과 이론가들을 비판하기 위해, 아렌트는 권력을 인간의 행동 능력에 근거한 무엇이라고 해석한다. 즉, 아렌트에게 권력이란 언제든지 사람들이 함께 모여 제휴하고 행동할 때 생겨나는 것으로서 그 자체로 이미 정당성을 갖고 있는 것이며, 그렇기 때문에 그것이 이와 같은 인간의 능력에 조응하는 한 권력이란 영원히 파괴될 수 없는 것이었다.

아렌트가 이와 같은 폭력과 권력의 구분을 무시한 채 폭력을 옹호하는 좌파 사상가들의 선조로 지목한 인물이 바로 소렐이다. 그러나 소렐이 말하는 폭력(더 정확히는 프롤레타리아트의 폭력)은 이와 다르다. 혹은 아렌트가 생각하는 것보다 훨씬 더 풍부한 다면성을 갖고 있다.

이 점은 소렐이 ‘프롤레타리아트의 폭력’의 대표적인 사례로 언급하고 있는 총파업을 일종의 ‘신화’로 해석한다는 점에서 잘 드러난다. 소렐에게 신화로서의 총파업은 거대한 사회운동에 가담한 사람들이 마치 자신들의 대의가 어김없이 승리할 전투의 이미지로 마음속에 그려보는 임박한 행동, 혹은 불특정한 시점에서 그려보는 어떤 미래에 대한 구상이다. 그렇기 때문에 신화로서의 총파업이 가져올 효과는 “그것이 가져올 수 있는 눈앞의 결과들에 의해서가 아니라 그 장기적 영향에 의해서 평가되어야 한다.” 즉, 소렐에게 폭력이란 아렌트가 비판하는 강제력/무력(force)과는 다른 것이다.

이런 점에서 보면 소렐이 말하는 폭력이란 프랑스의 맑스주의 사회학자 앙리 르페브르(1901~1991)가 말하는 ‘불가능의 가능’(L’impossible­ - ­possible)과도 유사한 기능을 한다. 현존하지는 않지만 현실에 영향력을 끼치는 것, 또는 불가능하다고 여겨지지만 또 다른 형태로 가능해지는 그 무엇이 곧 ‘불가능의 가능’인데, 르페브르가 즐겨 예로 드는 것은 유토피아 사상이다.

예컨대 ‘이 세상에 존재하지 않는 장소’(‘없는’[ou-]+‘장소’[toppos])를 추구한다는 점에서 유토피아 사상은 분명 불가능한 것을 향한 열망이지만, 좀더 나은 세상을 바라는 사람들의 사고와 행동에 실질적으로 영향을 준다는 것이다(이 개념은 1968년 프랑스 5월 운동 당시의 구호 “현실주의자가 되자, 그러나 불가능을 요구하자”를 통해 대중화됐다). 따라서 소렐은 이렇게 말한다. “프랑스대혁명의 진정한 결과가 혁명 초기에 가담자들을 열광시켰던 매혹적 청사진과는 전혀 딴판이라는 사실은 누구나 쉽사리 인정할 것이다. 그러나 이 청사진이 없었다면 프랑스대혁명이 성공할 수 있었겠는가?”

이와 마찬가지로, “신화는 현재에 영향을 미치는 수단으로서 이해되어야 한다. 신화를 역사의 흐름에 실제적으로 적용하는 방식에 대한 모든 논의는 아무런 의미도 없다. 오직 중요한 것은 전체로서의 신화 자체이다”라는 주장을 염두에 두면 소렐이 말하는 폭력은 독일의 문예비평가 발터 벤야민(1892~1940)이 말한 바 있는 ‘순수 수단’(reine Mittel)으로서의 폭력, 즉 ‘신적 폭력’과도 비슷하다.

앞서도 이미 언급했듯이 아렌트가 폭력을 권력과 구분한 이유 중의 하나는 정당한 목적을 위해서라면 폭력이라는 수단을 써도 무방하다(그리고 이때의 폭력은 정당한 수단이 된다)는 당대 좌파들의 인식을 그릇된 것이라고 비판하기 위해서였다. 그러나 그럴 때의 폭력이라도 그것이 수단이라는 점에는 변함이 없다. 벤야민의 질문을 바꿔서 말해보자면, 억압적이라고 판명된 기존의 질서를 유지하기 위해 행사하는 폭력이든, 그에 맞서 새로운 질서를 만들기 위해 행사하는 폭력이든 둘 다 수단적 폭력일 뿐이다.



그러나 벤야민이 말하는 신적 폭력은 수단이긴 수단이되 ‘목적 없는 수단’이다. 즉, 신의 폭력이란 뭔가 감당할 수 없는 사건을 만났을 때 나약한 인간이 그것을 허구적으로 이해하고자 그 사건에 붙인 이름일 뿐이다. 폭력을 통해 드러내고자 하는 신의 의지나 목적 같은 건 애초에 없기 때문이다. 이런 점에서 소렐이 말하는 프롤레타리아트의 폭력이나 벤야민이 말하는 신적 폭력은 특이한 사건 자체, 혹은 그것의 출현이다. 그래서 소렐은 총파업, 벤야민은 혁명이라는 사건을 언급하는 것이다.

결국 소렐이 말하는 폭력은 그 라틴어 어원인 ‘활력’(vis)에 더 가까운 것이다. 무릇 생명력을 지닌 생물이라면 모두 지니고 있는 그 활력 말이다. 어니스트의 사자후가 필로머스 클럽의 고상한 양반들을 들쑤실 수 있었던 것, 또한 소렐의 주장에 당대의 지배계급뿐만 아니라 의회사회주의자들까지 불편해했던 것은 어니스트와 소렐이 노동계급의 활력을 전면에 부각했기 때문이다. 필로머스 클럽의 회원들(혹은 당대의 지배계급)이나 의회사회주의자들이 보기에, 그것은 길들어져야할 것이었지 분출해야 할 것이 아니었던 것이다.

이와 같은 소렐의 폭력론이 무솔리니의 관심을 끌게 된 것은 러시아에서는 혁명적이었던 미래주의가 이탈리아에서는 파시즘과 결합하게 된 것과 같은 역사의 아이러니였을까?(이재원_출판기획자)

07. 10. 07.

P.S. '폭력'이란 주제와 관련해서는 짐작할 수 있다시피 방대한 참고문헌이 존재한다. '20세기의 정치적 폭력'으로 시야를 좁히더라도 견적이 줄어드는 건 아니다. 때문에 갈피를 잡기가 어려울 수 있는데, 이 경우 사카이 다카시의 <폭력의 철학>(산눈, 2007)이 그래도 요긴한 로드맵이 되어준다(http://blog.aladin.co.kr/mramor/1486267, http://blog.aladin.co.kr/mramor/1538039 등의 페이퍼 참조). 특이하게도 벤야민의 '폭력론'과 이에 대한 데리다의 읽기를 생략하고 있는 게 흠이지만(저자는 벤야민의 폭력론을 언급만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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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침에 전철에서 읽은 기사를 옮겨놓는다. '비싼 공연'의 사회학을 다룬 경향신문의 '경향2' 커버스토리이다. '이 정도 공연은 봐줘야 수준이 맞다'라는 '문화귀족'들의 허위의식이 최근에 '비싼 공연'을 부추기고 있다는 내용도 포함돼 있다. 상징적 폭력(=구별짓기)의 수단으로서 예술감상과 향유가 남용되는 것은 유구한 일이긴 하나 꼴사나온 일이기도 하다. 꼴사나운 만큼 달라지면 좋겠지만 유구한 만큼 쉬운 일은 아닐 것이다(예술/공연 대신에 다른 것이 그 일을 대신할 테니까). 다만 나는 TV를 통해서 가급적 많은 공연들을 보여주는 것이 한 가지 방법은 아닐까 생각해본다.   

경향신문(07. 10. 04) '문화귀족'이십니까?

‘그 공연 보셨어요.’뉘집 개 이름도 아닌 ‘60만원짜리, 45만원짜리, 20만원짜리’의 고가(高價) 공연들이 불과 몇년 사이에 장삼이사의 밥상머리 화제가 됐다. 11월에 예정된 것만 봐도 귀빈석 기준 ‘크리스티안 틸레만&뮌헨 필하모닉 오케스트라 초청공연’(24만원), ‘오페라 라 트라비아타’(31만원), ‘로마극장 초청 오페라 아이다’(32만원) 등 고가 공연들이 즐비하다.

해외 유명 공연의 수입 붐과 뮤지컬의 급부상, 기업의 문화마케팅 등이 얽혀 빚어낸 ‘고가 공연’의 사회적 프리미엄은 갈수록 오를 기세다. 문제는 고가 공연을 둘러싼 사회의 분위기다. ‘어느 동네 사느냐’가 계층을 구별하는, 부정할 수 없는 기준이 됐듯 값비싼 공연의 관람여부가 신분이나 계층을 가늠하는 또 하나의 잣대가 돼가고 있다.

‘이 정도 공연은 봐줘야 수준이 맞다’는 인식이 넘쳐난다. 이벤트사를 운영하는 여성 사업가 손씨(36)는 “사업상 만나는 사람들 대화에서 기죽지 않으려고 LG아트센터나 예술의전당의 값비싼 공연을 찾아다닌다”면서 “‘넌 안봤냐’고 물으며 과시하는 그들도 공연 자체에 별 관심 없기는 매한가지”라고 고백했다.

아이들 사이에서도 예외는 아니다. 맞벌이 주부 김씨(40)는 몇달 전 초등학교 3학년 딸의 성화에 시달려야 했다. 해외팀이 공연한 ‘태양의 서커스 퀴담’을 보여달라는 재촉 때문이었다. 아이는 공연을 본 친구가 “잘난 척 한다”면서 “나도 보여달라”고 아우성이었다. 공연 티켓가격은 VIP패키지석 20만원, 등급이 가장 낮은 A석도 5만5000원에 이르렀다. 3인 가족 관람료를 계산하다 빤한 살림에 엄두가 나지 않아 포기했다.

최근 이런 분위기는 더욱 심화되고 있다. 지난달 난생 처음 대형뮤지컬을 보기 위해 세종문화회관을 찾은 최씨(25). 그는 “공연만을 감상하는 분위기가 아니어서 불편했다”며 “객석에 들어선 순간 상류층의 냄새가 나는 듯해 위화감마저 느꼈다”고 털어놨다. ‘고가 공연족’들은 일명 ‘체육관 공연장’처럼 저가 좌석이 많은 공연은 ‘어중이떠중이가 많이 온다’며 관람을 꺼리기도 한다.

기업의 문화마케팅도 일조하고 있다. 국립극장 2층 귀빈용 로비에선 ‘그들만의 공연’을 즐기기 위한 풍경이 심심찮게 벌어진다. 금융사나 유명백화점이 초대한 고객들이 공연시작 전 다과를 즐기며 ‘럭셔리한’ 분위기를 맛본다. 한 기업의 문화마케팅 관계자는 “이 부류에 끼기 위해 수천만원이나 되는 구매 상한액을 일부러 채우는 고객도 있다”고 귀띔했다.



문화비평가들은 “고가 공연을 둘러싼 사회적 욕망에는 왜곡된 ‘허위의식’이 깔려있다”면서 “마치 명품을 사듯 공연을 소비하는 사람들, 또 이런 와중에 박탈감을 느끼는 사람들간의 갈등이 문제”라고 지적했다. 프랑스 사회학자 피에르 부르디외가 일찌감치 묘파했던 ‘(문화로) 구별짓기’가 공연장 안팎에서 벌어지고 있는 것이다.(김희연기자)

경향신문(07. 10. 04) ‘비싼 공연’ 소비하는 ‘껍데기 문화’

최근 무대공연을 둘러싸고 ‘티켓 가격’이 곧 ‘작품의 질’이고 ‘나의 문화수준’이란 기형적 공식이 생겨났다. 문화비평가 정윤수씨는 ‘고가 공연’을 부추기는 배경으로 문화적 허위의식을 꼽았다. “대형 공연장에서 화려한 공연을 ‘소비’하는 순간 자신이 마치 일류 문화 트렌트에 합류한 것으로 착각하는 허위의식이 팽배하고 있다”는 것. 그는 “공연작품에 대한 감동이나 이해와는 점점 멀어지고 소비만 하게 되는 게 문제”라고 지적했다.

▲‘비싼 공연’이 문화적 스타일의 완성?

문화 ‘향유’가 아닌 ‘소비’의 부작용이 나타나고 있다. 올초 세종문화회관에서 공연된 프랑스 뮤지컬 ‘로미오 앤 줄리엣’의 VIP석 가격은 25만원으로 뮤지컬 공연 중에서도 고가였다. 작품에 대한 평가는 “괜찮다” “기대에 못미친다” 등으로 엇갈렸지만 공연마다 기립박수가 터져나왔고 성황을 이뤘다. 공연 관계자들조차 “환호성 치는 관객들이 작품을 제대로 봤는지 모르겠다”며 “‘프랑스 뮤지컬’이란 간판에 뒤로 넘어가는 분위기”라고 말했다.

한달 공연 관람비로 150만~200만원을 쓰는 싱글족 이씨(37)는 VIP석이나 적어도 로열석을 고집한다. 그는 “공연보기는 사치스러운 취미생활”이라며 “비용이 부담스럽긴 하지만 그만큼 만족감을 느낀다”고 말했다. 또 자신은 “공연을 즐기는 축에라도 끼지만 명품을 휘감고 VIP석에 앉은 사람들 중에 제대로 공연을 감상하는 사람들은 드물다”고 귀띔했다.



예술의전당의 세계적인 오케스트라 연주회에서도 상황은 비슷하다. 수십만원짜리 VIP석이 비어 있거나 그 날의 연주 수준과는 무관하게 유명세만으로 낯뜨거운 기립박수가 코미디처럼 벌어진다. 클래식 칼럼니스트 정준호씨는 “고가의 티켓가격이 터무니 없이 책정되는 것만은 아니다”라며 “생활수준도 높아졌고 해외 유명 단체의 공연이 늘어나면서 고가공연이 생겨난 일면도 있다”고 설명했다. 그러나 그는 “고가 공연이 늘어난 만큼 과거에 비해 무대 위 연주자들과 공연을 완성하는 관객의 수준이 따라 오르지 않은 게 문제”라고 평했다.

오페라와 오케스트라 연주회, 대형 뮤지컬 등의 ‘고가 공연’은 과거엔 일반인들과 별 상관없는 것이었다. 그러나 공연 물량이 늘어나고 TV광고, 기업문화마케팅 등이 계속되면서 대중의 관심사가 됐다. 하지만 증폭된 관심과 달리 이들 공연에 접근은 쉽지 않다.

김창남 성공회대 교수(신문방송학과)는 “‘아날로그 공연’에서 벌어지는 양극화는 당장 경제적인 문제로 비춰질 수 있지만 이런 괴리감은 사회적 갈등을 야기할 수 있다”고 내다봤다. “서구사회의 경우 다양한 문화적 스펙트럼이 존재해 갈등이 해소될 여지가 많지만 우린 ‘모 아니면 도’ 식의 쏠림현상이 강해 갈등의 골이 깊어질 수 있다”는 것이다.

▲1000원짜리 공연에 14만명 몰린 이유

고가 공연 시장이 팽창할수록 제대로 된 무대 공연을 보고자 하는 잠재된 욕구 또한 만만치 않다. 세종문화회관이 올해 마련한 ‘천원의 행복’ 공연에 쏠린 관심이 말해준다. 대극장에서 매달 한차례씩 관람료 1000원으로 클래식, 뮤지컬, 국악, 무용 등을 볼 수 있는 프로그램에 지난 9개월간 14만명의 신청자가 몰렸다. 세종문화회관 사이트가 다운되고 업무가 마비됐을 정도다. 공연을 기획한 이창기 팀장은 “공연장 마당에서 이벤트성으로 잠깐 펼치는 공연들로는 사람들의 문화적 갈증을 해소할 수 없다”면서 “제대로 된 공연장에서 한편의 작품을 감상하며 문화를 맛보게 하는 공익적 프로그램과 시스템이 뒷받침될 때”라고 강조했다.

기업의 획일적인 문화마케팅도 앞으로는 다양화돼야 한다는 의견이 많다. 그동안 생색내기용으로 고가 공연을 선호하며 “비싸야 잘 팔린다”는 공연계 제작 메커니즘 형성에 일조했다는 비난을 면하기 어렵다는 주장이다. 뮤지컬제작사 쇼팩의 송한샘 대표는 “문화 후원이란 명분을 내세우지만 실제 10만원 이하의 공연이나 국내 창작물은 거들떠보지도 않는다”며 “거품의 중심에 기업이 있다”고 지적했다. 지난 9월부터 시행된 기업의 문화접대비 손비처리 수혜도 일부 고가 공연에나 해당되는 ‘그림의 떡’이란 얘기다.

물론 이에 반대하는 시각도 있다. 지금은 과도기이기 때문에 공연시장 발전을 위해서는 기업이 후원금만큼 고가의 티켓을 되가져가는 규모라도 커져야 한다는 주장이다. 기업 문화마케팅을 돕는 클립서비스 설도권 대표는 “기업 입장에서 이윤을 주는 VIP고객에게 문화마케팅을 하는 것은 너무나 당연한 일”이라며 “그나마 아직까지도 활발하지 않아 더욱 활성화돼야 한다”고 말했다. 그는 “시장이 충분히 커지면 다양한 형태의 문화마케팅이 개발된다”며 “중저가 공연이나 여성을 타깃으로 한 대학로 공연 등으로 관심이 옮아갈 것”이라고 기대했다.

부천필하모닉의 지휘자 임헌정 교수(서울대음대 작곡과)는 “문화예술은 ‘정신적 영양소’로 인간의 몸이나 사회가 균형이 깨지면 말썽이 생기듯 문화 향유와 소통에도 균형이 이뤄져야 한다”고 강조했다. 문화평론가 이영미씨는 “과거 고급문화, 대중문화로 나뉘던 것이 요즘은 비싼 것과 비싸지 않은 공연으로 갈라지고 있다”며 “여기에서 벗어나 각자의 취향이 만들어지고 이를 드러낼 수 있는 힘이 생긴다면 더이상 자기를 속이는 ‘껍데기 취향’에 좌우되지 않게 될 것”이라고 말했다.(김희연기자)

경향신문(07. 10. 04) '수준높은 공연·저렴한 티켓’ 행복찾기

해외에는 공연문화의 격차와 갈등 해소를 위해 어떤 프로그램과 대안의 움직임이 있을까. 일본의 경우 극단 ‘시키’가 성공적인 사례로 꼽힌다. 기업과 손잡고 초등학생을 위한 무료공연을 수년간 계속해오고 있다. 니혼생명이 1964년 도쿄에 ‘닛세이 명작극장’을 세우고 극단 시키의 어린이용 뮤지컬 무료공연을 후원하고 있다.

당시 니혼생명 사장 히로세 겐은 “젊은이나 어린이들에게 제대로 된 무대 공연을 볼 기회를 만들어줘야 한다. 그 감동은 반드시 앞날에 도움이 될 것”이라며 극장 설립은 물론 공연비용까지 부담하기 시작한 것이다. 이후 도쿄뿐 아니라 오사카, 나고야, 요코하마 등 10여개 도시에서 무료공연이 펼쳐지며 현재까지 공연횟수 4229회, 초대 어린이수 665만명을 기록하고 있다.

예술상품의 공공성을 국가가 정책적으로 내세우는 프랑스는 공연작품의 유통까지 세밀하게 관리하는 방식이다. 수준 높은 공연물을 1만원 미만의 티켓 값으로 누구나 볼 수 있게 시스템화했다.

문화관광부 산하 예술경영지원센터 국제교류팀 장현주 차장은 “프랑스 5개 국립극장에서는 대규모 국가 브랜드 공연 사업을 펼치는 반면 나머지 60여개 지역별 국립드라마센터에서는 각 지역민들을 위한 공연 서비스에 중점을 둔다”고 소개했다. 빈민지역이나 낙후된 위성도시에서도 국가가 수준을 보증하는 공연들이 서민 관객을 만난다. 또 파리 바스티유 오페라의 경우 2005~2006년 시즌 동안 오페라 공연에 입석을 마련, 1인당 6500원 정도로 모두 1만2000 좌석을 판매하는 등 다양한 아이디어를 내고 있다.

한국문화관광정책연구원의 양건열 연구원은 “영국은 ‘영국예술위원회(Arts Council)’를 중심으로 방대한 사업을 펼치고 있는가 하면 미국은 상업적인 공연시장에 맡기는 등 각기 성격이 다양하다”고 말했다. 미국은 특히 기업의 후원문화가 활발하다. 뉴욕필하모닉의 경우 2005~2006 시즌 동안 1만2000건의 개인 및 단체기부를 받았을 정도다. 기부금 수입만으로 175억원을 올렸다.

국내 대극장과 기업 등에서도 잠재된 문화욕구를 충족시키기 위한 다양한 방법을 모색하고 있다. 세종문화회관이 진행하고 있는 ‘천원의 행복’(사진) 프로그램 이후 KT 광화문 아트홀의 ‘천원의 나눔’, 울산현대예술관 ‘천원의 공연’ 등이 생겨났다.(김희연기자)

07. 10. 0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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드팀전 2007-10-04 17:52   좋아요 0 | URL
로쟈님 오늘은 늦었는데요 .^^ 무화과나무님이 선수를 ㅋㅋ
오늘 잠깐 서점에 갔다가-일과 일 사이에 약간 뜨는 시간- 카라마조프형제들 3권 맨 마지막에서 로쟈님의 이름을 확인했지요.ㅋㅋ 본명 라스콜리니코프 ㅎㅎㅎ 앞으로도 신세질테니 감사의 말을 전한다는.. 후배였나봅니다 ㅋㅋㅋ
테리 이글턴의 <성스러운 테러>를 보고 있는데,아주 재미있네요.로쟈님께 탱스투를 했어야 하는데..담에는 꼭. 부산에는 비옵니다.영화제 개막식은 빗속에서 하려나

로쟈 2007-10-04 18:50   좋아요 0 | URL
아까 '문화귀족'을 검색할 때 아무런 페이퍼도 안 뜨던데, 부분적으로 옮겨놓으셨군요. 뭐, 아주 같지는 않으니까요.^^; <성스러운 테러>는 재미있게 읽은 책이지만 별로 읽는 사람이 없는 것 같더니 부산에 한분 계셨군요.^^ 땡스투는 담에 해주시길.^^

수유 2007-10-04 23:43   좋아요 0 | URL
아시아 순회 공연일지라도 우리나라 티켓 값이 높죠..여러 요인들이 있겠지만...
여튼..그러나 가고싶은 공연은 여기저기 뜨고 나는 가고싶어하고 사정은 안되고 그렇습니다... 10월의 바흐 페스티벌은 약간 고가이지만 한번쯤은 가야되는데 어떨지 모르겠습니다.

로쟈 2007-10-05 22:46   좋아요 0 | URL
이럴 때 귀가 고급이지 않은 게 고민을 덜어주는군요.^^

자꾸때리다 2007-10-05 09:02   좋아요 0 | URL
바흐 페스티벌 저고 가고 싶어서 안달이 났었는데 도무지 가격 때문에 포기..ㅜ.ㅜ
근데 10월과 11월에 열리는 엘리야후 인발의 몬테카를로 필과 크리스티앙 텔레만의 뮌헨 필 공연은 거의 같은 수준의 A급 지휘자와 악단인데도 최저 가격으로 봤을 때 하나는 2만원이고 하나는 7만원 이더군요.

기인 2007-10-05 11:27   좋아요 0 | URL
헐.. 책도 파피루스로 만들어서 몇십만에 팔거나.. 전집류로 '쌔끈'하게 비싸게 팔아야 하겠네요.. 아니, 지금 그렇게 팔고 있군요;;;
흠.... 소극장 창작극들 좋은데요~ 가끔 배우보다 관람자가 적어서 민망하기도 하고. ^^;

로쟈 2007-10-05 22:47   좋아요 0 | URL
'고급 공연'을 가끔은 아주 저렴하게 볼 수 있는 여건만 마련된다면 '비싼 공연'의 문제점들도 상쇄되지 않을까 싶네요...

푸른신기루 2007-10-07 00:38   좋아요 0 | URL
10만원짜리 공연을 보면서도 공연예절은 10원짜리도 안 되는 분들 많아요
기사에 적힌 가격들을 보니 10만원은 껌값인가 싶기도..;;
아르바이트를 하다보면 공연의 가격과 공연 보는 예절이 비례하는 건 아님을 참 절실히 느끼곤 합니다

로쟈 2007-10-07 10:35   좋아요 0 | URL
티내기(구별짓기)에 아직 덜 숙달한 모양입니다...
 

장정일의 <공부>(랜덤하우스, 2006)를 다른 책들과 함께 읽다가 문득 '장정일'을 검색하는 바람에 읽게 된 기사들을 옮겨놓는다. 다음주에 열리는 제3회 와우북페스티벌(http://www.wowbookfest.org/)에는 작가 장정일과의 만남('장정일의 독서일기 그리고 공부')도 프로그램에 포함돼 있으므로 애독자들은 관심을 가져볼 만하다. 그리고 뉴스를 보니 오늘 행사 안내를 위한 퍼포먼스도 있었군... 

매일경제(07. 09. 29) 지금 당장 책을 펼쳐야 하는 이유

작가 장정일은 `독서일기`에서 어릴 적 꿈이 "하급 공무원이나 하면서 아침 아홉시에 출근하고 오후 다섯 시에 퇴근하여 집에 돌아와 발 씻고 침대에 드러누워 새벽 두 시까지 책을 읽는 것"이라고 밝혔다. 스트레스가 적고 정년도 보장되는 `철밥통`이기에 공무원이 되고 싶은 2000년대 젊은이들로서는 도저히 이해할 수 없는 직업관이다.



더 기가 막힌 것은 아예 책을 읽기 위해 자발적인 백수가 되는 젊은이도 있다는 사실이다. 2006년 `오늘의 작가상` 수상작인 박주영의 `백수생활백서`를 보면 "하루에 한 권 이상의 책을 비타민처럼 복용"하면서 살아가려는 주인공이 등장한다. `돈은 아름다운 꽃이다`라는 책이 베스트셀러가 되는 이 시대에 돈이 되지 않는 이 책이 베스트셀러였다는 사실이 신기하다. 이 책 제목만 보고 `만원으로 일주일 버티기`류의 지침을 위해 책을 구입한 `이태백`들이 많았다는 후문도 있다.

왜 여전히 이처럼 책과 사랑에 빠지는 `원시부족`들이 출몰하는 것일까. 책을 읽으면 행복해지기 때문이다. 책을 읽음으로써 직접적으로 돈을 벌 수는 없지만, 돈이 없어도 행복해지는 법이나 조그마한 돈이라도 행복하게 쓰는 법은 알 수 있다. 무엇이든지 만들 수 있는 지팡이를 든 노인이 `무엇을 만들어줄까`라고 질문하는 데 대해 `돈을 달라`가 아니라 `무엇이든지 만들 수 있는 그 지팡이를 달라`고 대답할 수 있는 지혜를 책이 선사한다는 것이다.



디트리히 슈바니츠가 쓴 `사람이 알아야 할 모든 것 : 교양`의 맨 앞도 "로빈슨 여행기는 유토피아의 전사(前史)다. 유토피아의 해안에서 멀지 않은 곳에 난파된 선박의 잔해가 있다. 그러나 로빈슨은 육지에 올라와 목숨을 건졌으며, 학습할 수 있는 그의 능력은 살아 남아 있다. 가라앉은 것은 지식의 화물이다. 그의 능력은 재생될 수 있다"는 구스타프 뷔르템베르거 말을 인용하며 시작된다. 컴퓨터가 사라지면 그 속의 검색엔진으로 검색했던 지식들은 사라지지만, 인간 머리 속에 있는 지혜는 사라지지 않는다.

책이 소중한 이유는 이처럼 지식 자체가 아니라 사고능력을 배양시켜 주기 때문이다. 책은 한순간에 사라지는 문명이나 문화를 생산하는 것이 아니라 그런 문명이나 문화를 만들어 낼 수 있는 인간 자체를 형성한다. 책이 곧 인간인 것이다. 책은 인간의 유전자가 되어 `know-what`이나 `know-where`와 관련되는 `정보`가 아니라 `know-how`나 `know-why`에 대한 `성찰`을 제공한다.



그래서인지 크리스티아네 취른트가 쓴 `사람이 읽어야 할 모든 것 : 책`에 대한 추천의 말에서도 디트리히 슈바니츠는 다음처럼 책의 중요성을 강조한다. 그에 따르면 나치당이 독일인들에게 전쟁을 준비하게 만들 때 제일 먼저 시작한 것은 책을 대량으로 없애는 일이었던 반면 미국인들은 민주주의 체제 기틀을 잡기 위해 신병을 전쟁터로 내보낼 때 대학에 위임한 `그레이트 북 코스(Great Book Courses)`에 보냈다는 것이다.

옛 시절 먼 나라 이야기를 할 것도 없다. 요즘 TV에서 금요일을 제외한 모든 요일을 점령하고 있는 사극의 인기나 베스트셀러 문학 분야에서 수위를 차지하고 있는 팩션(faction)류 역사소설을 보면서 E H 카가 쓴 `역사란 무엇인가`에서 `과거와 현재의 대화`라는 역사의 적극적 정의를 끌어오는 것은 쉽다.

그러나 그처럼 현재성에 의해 재구성된 역사 자체가 `선택된 기억이거나 왜곡된 과거`라는 비판적 인식을 하기 위해서는 알라이다 아스만의 `기억의 공간`도 읽어야 한다. 이 책을 읽으면 지금 우리 사극에 등장하는 성종이나 정조, 단군, 대조영이 `지금 이곳`의 욕망을 대변하기 위해 얼마나 진실에서부터 멀어지고 있는지를 의심해 볼 수 있다.

이 세상에 나쁜 책은 없다. 아직 읽히지 않은 책이 있을 뿐이다. 더구나 세상에서 가장 바쁜 사람 중 한 명인 빌 게이츠조차 잠들기 전 잠깐만이라도 매일 책을 읽으려고 노력한다지 않는가. 책 읽기를 호환이나 마마보다 더 무서워하는 우리 중에서 빌 게이츠보다 더 바쁜 사람은 거의 없을 듯하다. 이것이 바로 어떤 책이든지 당장 집어 들고 읽기 시작해야 할 이유다.(김미현 이화여대 교수)

세계일보(07. 09. 28) '와우북페스티벌' 내달 5일 개막

작가·편집자와 독자가 만나는 국내 최대 도서문화축제 ‘서울와우북페스티벌’이 3회째를 맞아 10월 5일부터 7일까지 홍대 앞 ‘걷고 싶은 거리’ 주차장과 갤러리, 북카페, 클럽 등지에서 펼쳐진다. ‘난 지적으로 논다! ― 쉽지! 즐겁지! 유쾌하지!’를 주제로 열리는 올해의 ‘와우북페스티벌’은 신간을 할인해 파는 ‘거리도서전’, 중고책 벼룩시장 이외에도 ‘저자가 들려주는 유쾌한 책 이야기’(와우북판타스틱서재), ‘책, 예술로 즐기다’(와우북-상상만찬), ‘책, 거리에서 놀다’(거리로 나온 책) 등 3가지 섹션에 47개의 프로그램을 마련, 예년보다 더욱 다채롭게 꾸며진다.

홍익대 인근은 파주출판도시와 더불어 한국 출판문화의 양대 메카로 불리는 곳으로 1600여 개의 출판사와 출력소, 디자인 사무실 등 출판 관련 산업이 왕성한 공간이다. 5일 오후 7시30분 야외중앙무대에서 열리는 개막식에는 마포소년소녀합창단을 비롯해 마임이스트 고재경, 샌드애니메이션 작가 장 폴로, 비보이 크루 라스트포원 등이 출연해 축제 분위기를 고조시킬 예정이다. 6일부터 본격화하는 ‘책, 거리에서 놀다’ 섹션에는 출판사 직영 ‘거리도서전’과 다양한 문화행사가 열린다.

‘책, 예술로 즐기다’ 섹션의 ‘와우북-상상만찬’에서는 소설가 은희경의 ‘빈처’ 일부분을 발췌해 각색 없이 연기하는 연극 ‘문학을 들려주다’(프로젝트 이리)와 마임과 퍼포먼스로 재구성된 시인 김경주의 산문집 ‘PaSspOrT’(극단 숨은그림) 공연이 펼쳐진다. 또 ‘저자가 들려주는 유쾌한 책 이야기’ 섹션에서는 지난해까지 진행된 저자와의 만남, 낭독의 밤, 강연회 등이 이어진다.

특히 6일 오후 4시30분부터는 지역라디오방송인 마포FM(100.7 Mhz) 생중계로 지난 5월 타계한 아동문학가 권정생 선생의 동화를 함께 읽고 생애를 돌아보는 ‘권정생 선생님 그림책 낭독릴레이’ 프로그램이 마련되며, ‘만나고 싶은 작가’로는 일본어 전문 번역가 김난주씨와 소설가 김애란, 시인 황병승 신현림, 여행작가 조은정씨, 재테크작가 이지연씨, 역사작가 이수광씨 등이 초청돼 독자와 만난다.(조정진 기자)

뉴시스(07. 09. 29) 독서하세요

독서의 계절 가을을 맞아 29일 오후 서울 지하철2호선 전동차내에서 '책 읽는 조각상'퍼포먼스가 열려 많은 시민들의 눈길을 끌고 있다. 이번 퍼포먼스는 서울 홍익대 부근에서 다음달 5일부터 7일까지 열리는 제3회 서울와우북페스티벌의 일환으로 독서문화 활성화를 위해 열렸다.(이광호기자)

07. 09. 2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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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읽는나무 2007-09-30 07:02   좋아요 0 | URL
와우북페스티벌..정말 멋지겠어요.가보고 싶긴한데...거리가...쩝~
애 낳고..키우면서 바쁘단 핑계로 요즘 책 읽기를 등한시하는데...애 키우는게 빌게이츠보다 바쁜 일일까? 잠깐 생각해봅니다.
이젠 정말 책을 읽어야겠어요.^^

로쟈 2007-09-30 12:27   좋아요 0 | URL
'책읽는 나무'님이 책 읽기를 '등한시'하신다니까 아이러니컬한데요.^^ 사실 아이들에게 책을 읽으라고 강요는 하면서도 정작 독서할 시간/여건은 마련해주지 않는 게 요즘 부모님들 같습니다. 저부터도 특별한 예외는 아니고...
 

알다시피 미혼 남녀들이 명절 때 어른들이나 주변으로부터 가장 듣기 싫어하는 소리가 언제 결혼하느냐는 것이다. 다들 바쁜 일이 있어서 어제 하루 간단하게 저녁식사만 같이 한 우리집의 경우에도 지난봄에 늦게 결혼한 동생 때문에 작년까지만 해도 명절 때마다 '결혼'은 빠지지 않는 화두였다(대개 당사자들은 시큰둥하거나 짜증을 내지만). 그런 사정과 무관하지 않겠지만 얼마전에 출간된 결혼 상담서 <연애와 결혼의 원칙>(황금가지, 2007)이 베스트셀러가 되고 있다. 저자인 마거릿 켄트가 한국어판 출간과 관련하여 방한하기도 했었는데(http://blog.aladin.co.kr/mramor/1571196) 조금 자세한 인터뷰 기사가 있기에 옮겨놓는다. 결혼의 장점? 이성에 대한 필요 이상의 정념적인(병리적인!) 관심에서 해방되어(전적이라고는 할 수 없더라도), 독서에 보다 많은 시간을 투자할 수 있다. 그럼 단점은? 모든 결혼생활이 그런 건 아니다... 

경향신문(07. 09. 20) [현장에서 만난 여성]연애·결혼 전문가 마거릿 켄트

"누구나 이상형 남자 만날 수 있죠” 세상에 절반은 남자라는데 괜찮은 남자는 어느 골목으로 나를 피해 다니는 걸까. 또 내 마음에 드는 남자는 왜 내겐 전혀 관심을 보이지 않고 한심한 남자만 데이트를 신청할까. 왜 나보다 훨씬 못생기고 성격도 나쁜 친구가 근사한 남자의 사랑을 얻는 걸까…. 10대 소녀부터 노처녀까지 모두가 끙끙거리는 고민들이다.



‘연애와 결혼의 원칙’의 작가인 마거릿 켄트(65)는 세계 각국을 돌며 ‘어떻게 하면 내가 원하는 이상적인 남자를 만나 결혼에 성공하는가’를 강의해왔다. 남편 로버트 파인슈라이버와 함께 한국을 찾은 그녀는 신혼부부처럼 계속 손을 잡고 수시로 눈을 마주치고 미소를 교환하는 등 애정을 과시했다. 1981년에 결혼한 데다 둘다 60대이니 덤덤해질 만도 한데 이들은 당당했다.

“스킨십을 좋아해요. 부부라면 늘 이렇게 애정을 표현하는 게 당연한 거 아닌가요?” 그 말에 기가 죽어 “결혼 20년이 넘으니 남편과 스킨십은커녕 대화 나누기도 서먹서먹한 오촌당숙같다”고 하자 켄트는 너무나 명쾌하게 말했다. “당장 이혼하세요. 애정없이 뭐하러 억지로 결혼생활을 유지하죠? 얼마든지 당신이 원하는 이상적인 남자를 만날 수 있다고요. 남편은 내가 워낙 열정적이어서 그런지 내 미래의 남편은 지금 스무살쯤 됐을 거라고 농담을 해요. 그만큼 내가 원하는 남자를 만날 능력이 있다고 믿는 거죠.”

책을 쓰게 된 동기 역시 남편의 권유였다. 처음엔 그저 몇 명을 보아 1년에 한두 번 강의를 하려는 계획이었지만 세금전문 변호사답게 남편은 “책을 써서 더 많은 여성들에게 알려주고 강연회 역시 미국의 몇 몇 주가 아니라 전 세계를 돌아다니자”라고 했다. ‘결혼 아니면 환불!’이란 광고 문안을 만든 것도 남편이었다. 84년 책이 출간되자마자 폭발적 호응을 얻었으며 20년이 지나 3번째 개정판을 내면서도 계속 사랑받고 있다.

마거릿 켄트는 첫번째 결혼 역시 자신의 이상형과 했다. 스페인어 교사였던 그녀에게 스페인어를 배우는 학생이던 첫 남편은 정신과 의사이자 변호사였다. 그에게 히스패닉계 환자나 고객의 통역을 해주면서 결혼과 남녀관계의 지혜를 익힌 그녀는 천천히 남자의 마음을 사로잡아 결혼했다. 그러나 79년 첫 남편과 사별하고 법대를 마친 후 로버트와 재혼했다. 예일대 법대를 나온 유능한 변호사가 마흔두 살 과부의 어떤 매력에 빠졌을까.

똑똑한 남자라 해도 여자들에게 거절이나 거부를 당할까봐 두려워해요. 똑똑하고 예쁜 여자들이 정작 노처녀로 늙어가는 이유는 대부분 남자들이 그들에게 두려움을 갖기 때문이에요. 빌 클린턴이 예일대에서 힐러리를 보고 한 눈에 반해 며칠 동안 계속 바라보기만 하니까 힐러리가 먼저 ‘넌 왜 날 보기만 하니? 내 이름은 힐러리야, 넌?’하고 물었을 때 자기 이름조차 기억나지 않더래요. 힐러리처럼 만약 지금 주변의 어떤 남성에게 관심이 있다면 먼저 다가가 “안녕하세요”라고 간단하게 인사하는 것부터 시작하세요. 남자들은 완벽하게 이상적인 여성에겐 정작 숨이 막혀 말도 못 붙이고 자신을 받아들여줄 거라고 100% 확신이 서는 여자에게만 말을 건네거든요. 그 두려움을 없애주기 위해 여자가 다가가는 것이 필요해요. 정말 마음에 들면 먼저 전화도 하고요.”

켄트는 또 여성의 신체부위 중 가장 섹시한 곳이 ‘귀’라고 강조한다. 자신이 원하는 남자가 나한테 사랑에 빠지기를 원한다면 남자들의 이야기를 많이 들어주는 것이 필수라는 것. 그저 묵묵히 듣는 것이 아니라 “와! 정말 멋있어요” “조금만 더 자세히 얘기해주세요” “대단하네요” 등의 추임새를 넣어 ‘진심으로 내 이야기를 듣고 있구나’란 감동을 줘야 한다는 것이다.

하지만 ‘좋은 남자’를 찾기보다 사람을 제대로 보는 눈을 갖는 것이 중요하지 않을까. 겉으론 멀쩡해도 알고보니 편협한 성격이나 병적인 우울증, 혹은 의처증이나 허풍쟁이인 이들이 얼마나 많은가. 켄트는 “본인에게 ‘당신의 성격을 3가지 단어로 묘사해보라’고 하고 친구나 가족들에게도 그 사람을 설명해달라고 부탁하라”고 조언한다. 뒤에서 몰래 조사하지 말고 함께 있을 때 자연스럽게 질문하면 ‘낙천적이다’ ‘게으르다’ 등등의 성격적 특징을 듣게 된다. 자신도 지금의 남편과 결혼 전에 남편의 자녀들에게 “네 아빠가 어떤 사람인지 말해 달라”고 했단다. 자신은 지적인 남자를 좋아하는데 자녀들 역시 ‘우리 아빠는 매우 똑똑하고 지혜롭다’고 해서 마음에 들었단다. 만약 주변에서 ‘거짓말을 잘 한다’ 등의 지적을 해주는 남자라면 단호하게 결별해야 한다.

이상형 남자가 성격이나 인생관 등에서 내 남편감이란 확신이 들었다면 ‘그의 아내처럼 행동하라’고 조언한다. 칭찬 일색의 대화는 끝내고, 칭찬 4∼5번에 비판 1∼2번을 섞는 관계를 만들라는 것이다. 무조건 칭찬만 해주면 “내 약점을 눈치채지 못할 만큼 멍청한 여자거나 차마 지적못하는 마음 약한 여자로 무시하거나 자신이 완벽한 남자”라는 착각에 빠질 수 있기 때문에 날카로운 비판은 필수. 단, 남자를 비판할 때는 몰아붙이지 말고 어머니가 아들을 대하듯이 다뤄야 한단다. ‘왜 매일 약속을 안지키는 거예요’라고 히스테릭하게 신경질을 내기보다 ‘당신은 다른 건 다 좋은데 약속한 걸 자주 잊어 버리는 게 나빠요”라고 말한다.



그러나 ‘모든 남자들에게 호감을 받는 완벽한 여성’이 되려고 노력할 필요는 없다고 켄트는 강조한다. 100명을 사로잡으려고 애쓰다간 결국 한 명도 사로잡지 못한다. 공직에 출마하는 정치인이 아니라 특별한 한 사람을 만나면 되므로 자신의 개성과 매력을 자연스럽게 보여주면서 그 사람의 호감을 얻어 유지하는 노하우를 익히면 된다.

“연애와 결혼은 낭만적인 사랑만큼이나 전략과 전술이 필요해요. 그걸 여우짓이라고 비난만 하지 말고 남자들에게 어필할 수 있는 상냥한 미소, 관심어린 눈빛, 단정해서 단추를 풀어보고 싶은 블라우스, 만져보고 싶은 고운 머릿결을 만드는 등 시각적 아름다움은 물론 지적인 매력도 잃지 말아야죠.”

그는 변호사답게 다양한 고객을 위한 연애와 결혼 가이드를 해준다. 평범한 여성이라도 정말 마음에 드는 남자가 나타났을 때 눈길 사로잡는 법부터 그 남자가 명품인지 짝퉁인지 구별하는 법, 남성의 본성과 심리 등을 친절한 언니처럼 설명해주고 무엇보다 남자가 아닌 세상에 대한 호기심과 열정을 잃지 말라고 ‘지적 매력의 중요함’을 강조한다.

둘다 세금전문 변호사로 1년에 절반이 넘는 국내외 출장도 늘 함께한다는 마거릿 켄트 부부. “하루에 여섯 번 흥분하는 남자와 여섯달에 한 번 흥분하는 여자는 절대 함께 살 수 없지 않냐”면서 “우린 대화도 풍부하지만 남편이 날 너무 사랑해서 하루도 떨어져 있을 수 없다”고 행복한 미소를 지었다. 곁에서 고개를 끄덕이는 남편을 보니 책에 대한 신뢰감이 들었다. 자신의 이상형을 콕 찍어 결혼한 후, 65세에도 저토록 남편 사랑을 받는 여성의 충고라면 받아들일 만하지 않은가.(유인경기자)

07. 09. 25.

P.S. 유튜브에 인터뷰 동영상도 떠있군(http://www.youtube.com/watch?v=lVHwXIIC3G0). 참고로 영화를 본 사람들은 동의할 만한 일이지만 미혼 남녀들이 '최악의 영화'를 꼽는다면 단연 <해리가 샐리를 만났을 때>(1989)일 것이다(http://www.youtube.com/watch?v=1Z8dOX602jo). 만추가 되어서야 서로가 짝임을 확인하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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로쟈 2007-09-25 22:41   좋아요 0 | URL
juin님의 입장은 결혼에 결코 '포획되지' 않겠다는 히스테리증자의 태도이겠습니다.^^ '모든 결혼생활이 그런 건 아니'라는 단서를 달았으니까 제가 덧붙일 내용은 없구요(저의 '행복'이란 말이 좀 낯서네요. 저는 행복에 관해서라면 '무신론자'입니다), 지젝의 관점은 아마도 주디스 버틀러와 차이점으로 귀결될 수도 있을 거 같습니다. 저는 '급진적 페미니즘'에 대해서 과문하지만, 동등한 권리주장 정도는 공감합니다. '빠른 일상복귀'란 무슨 말씀이신지?^^;

로쟈 2007-09-25 22:46   좋아요 0 | URL
글쎄요, 어떤 '급진성'을 말씀하시는지 모르겠지만, 저의 기본적인 입장이라는 게 있다면 다윈주의이고, 소위 '다윈주의 좌파'와 지젝식의 정신분석적 정치를 결합시켜서 사고해보는 게 제가 갖고 있는 일종의 '기획'입니다. 결혼이냐 비혼이냐 같은 건 별로 중요한 문제라고 생각하지 않기 때문에 문제가 '해결'되는 게 아니라 '해소'되기를 바라는 쪽입니다. 더불어, 고상한 페미니즘에 대해서 저는 상당히 냉소적입니다...

marr 2007-09-25 21:42   좋아요 0 | URL
"당장 이혼하세요. 애정없이 뭐하러 억지로 결혼생활을 유지하죠? 얼마든지 당신이 원하는 이상적인 남자를 만날 수 있다고요."
하하. 정말 당찬 여성입니다.
마거릿 켄트 여사의 말이 하나도 틀린 데가 없지만, 이거 문화에 따라 상당히 다르죠.
우리나라에서 이런 책이 팔릴 수 있다는 게 신기하네요. 한국은 나이먹은 사람들이(음... 30대 후반 이후)연애하기 정말 힘든 나라잖아요. 한국 여성들은 사랑을 너무 고귀한 것으로 생각하기 때문에 한방주의에 빠져있거든요. 이거 남성중심적인 편견이란 소리릴 들을 수도 있겠군요.

로쟈님의 소개를 읽는 순간 이 영화가 떠오르더군요.
사랑할 때 버려야 할 아까운 것들 (Something's Gotta Give, 2003), 제가 좋아하는 잭 니콜슨이 나옵니다. 이 영화에서 잭 니콜슨은 사랑이니 결혼이니 이런 생각보다 젊은 여자들과 만나 연애하는 재미로 삶을 살아가는 사람처럼 보입니다. 세상에! 저렇게 젊고 섹시한 여성들이 늙어서 주름투성이 잭과 연애를 하다니! 엄청 부럽군요.
이 영화에는 이제는 늙어버린 다이안 키튼이 잭의 상대역으로 나옵니다. 정말 매력적인 여성이지요. 제가 고등학생이었을 때 "미스터 굿바를 찾아서"에서 처음 봤지요.

하여튼, 이 영화에서 다이안 키튼의 여동생으로 나오는 여성분이 잭 니콜슨에게 이렇게 말하지요 "언니는 진짜 멋진 여자예요. 게다가 성공한 극작가죠. 이혼녀지만 나이가 오십 밖에 안됐는데 매일밤 독수공방. 왜냐하면 그 나이의 남자들은 다른 여성을 원하거든요. 마린같은 영계들만 찾는다구요. 50줄 넘은 남자들은 늙은 여잔는 쳐다도 안봐요. 그래서 여자들은 점점 더 일에 몰두하고, 결국 남자들은 늙은 여자들에게 흥미를 잃게되요."

이거 참... 나도 그런가??
다시 읽어보니 횡설수설이 되었군요. 용서하세요.

로쟈 2007-09-25 22:15   좋아요 0 | URL
제 생각에 켄트의 결혼론의 핵심은 "아무리 못생겼어도, 당신이 미스 유니버스보다 예쁘다고 생각하는 남자가 두 명 이상은 있죠. 많은 남자가 아니라 딱 한 명을 찾는 것이잖아요?"입니다. 늙은 여자들에게도 '두 명 정도'는 흥미를 가질 거라는 얘기죠(결혼은 두 사람 중에 한 사람을 고르는 것이고)...

비로그인 2007-09-25 22:07   좋아요 0 | URL
만져보고 싶은 고운 머릿결을 유지하라니 ㅎㅎㅎ
일단 그건 갖춘 셈이네요~ 재밌습니다 :)

로쟈 2007-09-26 01:48   좋아요 0 | URL
그것만 갖춘 건 아니시겠죠.^^

섬나무 2007-09-27 13:56   좋아요 0 | URL
마거릿 켄트 할머니는 똑똑한 여성이지요. 하지만 똑똑한 사람들이 꼭 지혜로운 건 아니예요.저는 마거릿 켄트 할머니의 똑부러진 성공적인 삶이 잘 포장된 상품처럼 느껴집니다.애정 없이 왜 사냐 이런 대사 날리는 여자들 보면 그냥 주눅드는 나같은 사람이 보기에 말입니다. 음...하여간 딱 한 명을 구하는 핵심은 연애에도 해당된다고 보면 그점은 희망적이군요. 하지만 아무래도 이 양반한테선 너무 돈 냄새가 납니다.

로쟈 2007-09-27 14:14   좋아요 0 | URL
엘리트 여성인 건 맞고, 또 켄트 여사 자신이 '지성미'를 강조하고 있지요. 돈이야 이 책 팔아서도 꽤 벌었을 듯하네요...

호민관 2007-09-27 22:51   좋아요 0 | URL
"이세상에 나를 좋아해주는 남자가 두 명정도는 있을것이다...(그들과 잘해보라?).."어제 신문에서 인터뷰기사를 보고 설득력있다고 생각했습니다. 그런데 오늘 여기서 다시 이글을 보니 정답이라고 하기에는 좀 빈약한 느낌이 드네요. 만약 그 두 명의 남자가 내 맘에 들지 않았을때는 어쩌죠. "내가 맘에 드는 그녀는 남자친구가 있고 맘에 안드는 그녀에겐 자꾸 전화가 오고~!"(공일오비'신인류의 사랑') 이게 인생일텐데요.

로쟈 2007-09-27 23:33   좋아요 0 | URL
그런 선택의 딜레마는 천 명의 남자여도 마찬가지일 거 같습니다. 정 그럴 때는 마음을 접어야지요...
 

한겨레21에 잠시 들렀다가 '노 땡큐' 연재를 몇 개 읽어봤다. 그러고 보니 '유토피아 디스토피아' 연재가 없어지고 들어선 게 이 연재인 모양이다(그냥 내 추측이 그렇다). 김규항의 글이 격주로 연재되고 있기에 그런 인상을 갖게 하는지도 모르겠다(*하지만, 착각이다. '유토피아 디스토피아'는 씨네21의 꼭지이니). 몇 달 전 칼럼이긴 한데, '공부의 내력'(http://h21.hani.co.kr/section-021031000/2007/06/021031000200706070663010.html)을 옮겨놓는다(장정일의 <공부>도 떠올리게 해주는군).

안 그래도 초등학교 1학년인 아이에게 논술을 가르쳐야 하느냐로 잠시 옥신각신 하던 차였다. 아이까지도 '논술 강사'도 했다는 아빠가 봐주지 않는다고 서운해하는 눈치였다. 이럴 땐 머리가 더 커야 논술도 하는 거야, 란 내 원칙이 '고집'으로 전락하고 만다(나는 그저 아이가 더 즐거운 시간을 보냈으면 하지만, 같이 놀아주지도 못하면서 그러란 소리를 입밖에 꺼낼 수는 없는 노릇이다). 아무래도 '어린이 교육'은 내 적성이 아닌 듯하다.

김규항의 칼럼에는 예의 김건/김단과의 에피소드가 등장하는데, 말미에는 (그가 늘 자부심을 토로해온) 80년 세대의 자성을 적고 있어서 이채롭다. "지금 아이들의 부모, 즉 우리는 청년 시절에 공부란 ‘무작정 열심히’ 하는 게 아니라는 걸 깨달았던 사람들이다. 우리는 아무도 허락하지 않는 ‘진짜 공부’를 하기 위해 몰래 동아리를 지어 인문과학과 사회과학 책들을 파고들었다. 우리는 그 공부를 통해 처음으로 벅찬 지적 희열을 느꼈다. 그 공부가 세상을 바꿀 수 있다고 생각할 만큼."이란 나르시시즘은 여전하지만...  

한겨레21(07. 06. 07) 공부의 내력

밥상에서 김건이 말했다. “빨리 5학년이 되면 좋겠어.” “왜?” “역사 공부 하니까.” “재미있을 것 같아?” “응. 왕건이나 대조영 같은 거 너무 재미있어.” “그래, 역사는 재미있는 거야. 그런데 학교에서 배우는 역사는 생각보다 재미없을 거야.” “왜?” “그건 말이야.. 학교에서 배우는 역사는 역사가 아니거든.” “역사가 아니라니?” 김건은 의아한 얼굴로 나를 본다. “역사가 뭐지?” “응, 옛날에 있었던 사건이나 전쟁 같은 거 아냐?” “큰 사건이나 전쟁만 역사는 아니야. 우리 집에도 역사가 있고 건이에게도 역사가 있지. 여기 부러졌던 일 기억하지?” “당연하지.”

무조건 열심히…

녀석은 세 살 때 어느 날 미끄럼틀에서 놀다 다리가 부러졌다. 아이가 자라면서 어디 한 번 부러지는 거야 그리 큰일은 아니지만 그게 사건이 된 건 그러고 울지도 않고 잠이 들었다는 것이다. 잠이 깨서 나오는 아이가 한쪽 다리를 짚지 못해 병원에 가보니 골절이라고 했다. 깁스를 하는 의사가 웃을 만큼 어이없는 사건이었다. 그 사건은 김건의 어린 시절을 상징하는 작은 역사가 되었다.

“그게 몇 년 몇 월 며칠이었지?” “몰라.” “그럼 깁스한 병원은?” “몰라.” “의사 이름은?” “몰라, 아빤 기억해?” “아빠도 기억이 안 나. 그런데 만일 어떤 사람이 날짜, 병원 이름, 의사 이름만 알아내선 그 사건에 대해 건이보다 더 잘 안다고 말한다면 어때?” “바보 같지.” “학교에선 그런 걸 역사라고 배워.” “정말?” “누나한테 물어봐.” “누나!” 김건은 제 누나에게 쪼르르 달려갔다. 나는 그의 누나가 5학년 첫 시험을 준비하면서 역사 때문에 힘들어하던 걸 떠올렸다. 부여의 첫 도읍지는 어디였는지, 두 번째 도읍지는 어디였는지 따위를 외우면서 말이다.(김규항 <고래가 그랬어> 발행인) 

동양의 전통적인 공부법은 ‘무작정 열심히’ 공부하는 것이었다. 동양의 공부란 사람이 되기 위해 꼭 알아야 할 지식과 깨우침이 담겼다고 사회적으로 합의된 몇 권의 고전을 거듭 공부하는 것이었기 때문이다. 서양의 공부가 지식을 습득하는 것이라면 동양의 공부는 지적 통찰을 체득하는 정신 수련이었다. 사방이 책으로 빼곡한 서양 학자의 서재와는 달리 동양의 학자 공부방에는 몇 권의 책만 있었다.

서양식 공부가 도입되고 아이들이 배우는 건 ‘사회적으로 합의된 몇 권의 고전’이 아니게 되고도 한참 동안 부모들은 동양식 공부법에 젖어 있었다. 부모들은 아이가 ‘무작정 열심히’ 공부하길 기대했고 요구했다. 대략 지금 아이들의 할아버지 세대까지 그랬다. 그러나 지금 아이들의 부모, 즉 우리는 청년 시절에 공부란 ‘무작정 열심히’ 하는 게 아니라는 걸 깨달았던 사람들이다. 우리는 아무도 허락하지 않는 ‘진짜 공부’를 하기 위해 몰래 동아리를 지어 인문과학과 사회과학 책들을 파고들었다. 우리는 그 공부를 통해 처음으로 벅찬 지적 희열을 느꼈다. 그 공부가 세상을 바꿀 수 있다고 생각할 만큼.



우리는 어떤 공부를 강요하는가

그런 우리는 지금 아이들이 어떻게 공부하게 하는가? 우리는 오히려 공부에 대한 깨우침이 없었던 우리 부모들보다 더 한심하고 무지스럽게 아이들에게 역사 아닌 역사, 국어 아닌 국어, 수학 아닌 수학을 강요한다. 우리는 한술 더 떠 우리에게 난생처음으로 벅찬 지적 희열을 주었던 인문 사회과학 책들을 모조리 다이제스트판으로 달달 외우게 한다. ‘논술 필수 고전’이라 불리는 그 명단엔 심지어 <공산당선언>까지 들어 있다.

말하자면 우리는 아이들이 진짜 공부를 하지 못하도록 20여 년을 달달 볶는 동시에 그들이 입시에서 빠져나와 처음으로 지적 희열을 느끼기 위해 보존되어야 할 지적 감수성의 부위들마저 하나하나 불로 지져 영원한 지적 불감아로 만들어버리는 것이다. 그게 이른바 부모가 된 우리가 사랑하는 아이들에게 매일같이 반복하는 교육적 실천이다. 그렇게 하루의 실천을 마친 우리는 인사동이나 신촌의 지적인 카페에 둘러앉아 지적인 얼굴로 “요즘 애들은 책을 안 읽어” “인문학의 위기는 인류의 위기야” 떠들어댄다. 아, 우리는 대체 어떻게 된 인간들인가?

07. 09. 18.

P.S. 공부가 세상을 바꾸지는 못하지만 인생은 바꾼다는 걸 깨달았기 때문은 아닐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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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늘빵 2007-09-18 22:42   좋아요 0 | URL
글 봐달라는 아이와 싫다는 아빠가의 모습이 떠오르는군요. 얼마전 봤던 로쟈님의 사진과 아이의 사진을 떠올리며. :)

로쟈 2007-09-18 22:48   좋아요 0 | URL
글을 안 봐주는 건 아니고요.^^; 글쓰는 걸 도와주란 요구입니다...

2007-09-18 22:48   URL
비밀 댓글입니다.

로쟈 2007-09-18 22:49   좋아요 0 | URL
정확하게 말하면, 그런 고민을 하지 않는다고 구박을 받습니다.^^;

책읽는나무 2007-09-18 23:51   좋아요 0 | URL
아이가 정말로 공부란 것에 스스로 재미를 느껴 행했음 하는 욕구는 강하지만 그게 또 마음같이 느긋해지지가 않으니 가끔은 학습지를 풀고 있는 아이를 바라보면 정말로 정말로 미안해질때가 많습니다.더욱더 반성하게 만드는 페이퍼로군요..ㅡ.ㅡ;;

로쟈 2007-09-19 19:09   좋아요 0 | URL
원론적으론 인구 과밀 때문에 빚어지는 일인 것 같다는 생각도 듭니다. 경쟁에서 살아남아야 한다고 자꾸 내모는 것이...

코스모폴리스 2007-09-19 08:44   좋아요 0 | URL
김규항의 글 가운데 동양의 공부법과 서양의 공부법에 대한 설명은 동의하기 어렵군요.

로쟈 2007-09-19 19:09   좋아요 0 | URL
단순화는 '논객'의 특징이죠...

biosculp 2007-09-19 11:32   좋아요 0 | URL
짧은 글에 대해 토다는 것은 뭐하지만 공부라는것이 주되게 책과 연관되어 있군요.
냇가에 가서 물고기 잡고, 여러 벌레들 잡고 애기하고 분류한다든지, 산에가 열매나 씨가 맺는 꽃과 나무에서 씨를 모은다든지,반쪽이 빠진. 뭔가 허전한 공부에 대한 생각이아닌가 합니다.

로쟈 2007-09-19 19:11   좋아요 0 | URL
공부의 제한된 용례는 칼럼에 국한된 건 아닌데요. 학과시간에 냇가에 가서 물고기 잡는 학교에 전국에 몇 될라구요...

2007-09-19 20:30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07-09-20 14:18   URL
비밀 댓글입니다.

LAYLA 2007-09-19 23:36   좋아요 0 | URL
김단양 사진 첨 보는데 딱 그 캐릭터 같습니다. 이쁘네요 ^^

로쟈 2007-09-20 01:10   좋아요 0 | URL
눈매가 닮은 거 같습니다...

lyh1999 2007-09-20 04:56   좋아요 0 | URL
유토피아 디스토피아는 씨네21에 들어가는 칼럼 제목인데요...^^

로쟈 2007-09-20 07:53   좋아요 0 | URL
그렇네요.^^;

노자읽기 2007-09-20 12:46   좋아요 0 | URL
'지식'이란, 어쩌면 살아움직이는 사실들을 정리해 말린, 표본이나, 박제와 같다고도 생각됩니다. 그리고 이러한 지식을 습득하게 된다면, 결국 우리도 박제가 되겠지요. 우리가 정말 원하는 것은 박제가 되는 일일 지 모르겠습니다...

로쟈 2007-09-20 14:21   좋아요 0 | URL
그런 문제제기도 가능하겠습니다. 하지만, 제 기본적인 입장은 '박제'라도 그게 어디냐는 것이죠. '살아움직이는 사실들' 곧 '생'은 그 자체로 자재하고 자족적인 것이서 '우리'를 필요로 하지 않을 테니까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