교수신문의 기획연재에서 다시 서평이 특집으로 다루어졌다(http://www.kyosu.net/news/articleView.html?idxno=15810). 취지에 따르면, "이번 특집기획은 ‘다시, 서평을 말하다’이다. 지난 <비평> 특집기획 ‘한국 서평의 현 주소’의 문제의식을 더 밀어보자는 주문이 많았다. 이번에는 △좋은 서평의 조건(http://www.kyosu.net/news/articleView.html?idxno=15811) △문학서평의 갈 길(http://www.kyosu.net/news/articleView.html?idxno=15812) △사회과학서평의 위상학(http://www.kyosu.net/news/articleView.html?idxno=15813) △과학서평의 위치와 갈 길(http://www.kyosu.net/news/articleView.html?idxno=15814) 등으로 나눴다. 지난 특집기획이 일반적인 서평을 놓고 그 지나온 길을 짚었다면, 이번 특집기획은 분야별로 차이를 갈라 ‘그럼 어떻게 쓸 것이냐’를 제안한다." 그 중 문학서평에 관한 꼭지를 옮겨놓는다.

교수신문(08. 03. 31) 비평으로서의 서평과 비평적 판단

문자 그대로 책에 대한 評을 뜻하는 한 서평이 비평과 본질적으로 다르다고 말할 수 있는 근거는 희박하다고 해야 할 듯하다. 물론 서평과 비평을 가르는 형식적 기준이라는 것이 없지는 않다. 지면의 할애 면에서도 구분이 되지만 특히 우리 학계에는 비평을 서평보다 한 급 높은 지적 활동이라고 보는 경향이 강하다. 그렇더라 하더라도 서평이 비평과 절대적으로 차별된다고 말할 수는 없지 않을까. 비평안이 없는 독자가 좋은 서평을 쓸 수 있다고 믿기 어렵기 때문에 더욱 그렇다. 비평적 안목이 뒷받침하지 않는 서평 행위가 玉石을 제대로 가릴 수 있다고 생각할 수 없을뿐더러 더러는 악화가 양화를 몰아내는 데 일조하는 현상을 우리는 심심찮게 목격하고 있기도 하다. 그런 현상이 만연해있다고 단정하는 것은 우리 인문학계 전체를 부당하게 폄훼할 위험도 있지만 2008년 1월 28일자 <교수신문>만 보더라도 대체로 한국의 인문사회과학계에서 ‘서평문화’가 튼실하게 정착됐다고 평가하기는 어렵지 않은가 싶다(http://www.kyosu.net/news/articleView.html?idxno=15503).

다른 한편 <교수신문>이 제시한 여러 통계적 수치나 여론조사 자체도 비판적인 해석을 요구하는 하나의 텍스트적 성격이 있는 법이다. 따라서 객관성을 담보한다고 여겨지는 객관적인 데이터도 맹목적으로 받아들이면 곤란하겠다. 그런 의미에서 ‘객관적 데이터’와는 약간 성격이 다른, 좋은 서평에 걸림돌이 되는 몇 가지 장애물을 환기해보는 것도 훌륭한 서평의 덕목을 다시 성찰해보는 출발점이 될 수 있을 것 같다. 그중 필자가 특히 주목한 장애물은 ‘분과학문별 결속주의’와 ‘비판을 꺼려하는 전통문화’다.

분과의 경계가 해체되고 비판이 장려되는 학문세계에서 이 두 문제는 자명한 것처럼 보인다. 그러나 따져보면 양면성이 없는 것은 아니다. 가령 분과학문별 결속주의적 행태야 타개해야 마땅하지만 그 나름의 전문성을 살리는 협동작업은 분과학문에서도 필수적이다. 논쟁을 꺼리는 전통문화도 학연이나 지연 등으로 침묵의 카르텔을 만들어 패거리화되는 것은 경계해야 하겠지만 우리 학계에서는 자기의 이름을 내는 방편으로 선학들의 업적을 깎아내리는 무분별한 비판도 관행이 되다시피 한 면이 있다. 전문성을 키우되 전공 결속주의에 빠지지 않고 논쟁을 지향하되 격을 갖추려는 노력은 건강한 서평 문화를 키우는 데 없어서는 안될 점이다. 인문학 가운데서도 문학 분야는 그러한 비평으로서의 서평 문화의 토대가 특히 허약한 듯한데, 여기서는 그 점을 생각해보고자 한다.  
  
서평의 공정성과 객관성  
문학 서평도 비평의 범주에 속한다면 평단에서 가장 큰 폐해로 지적하는 이른바 주례사 비평을 거론하지 않을 수 없겠다. 물론 예전에 ‘죽비소리’라 해 신간이 나오면 익명으로 사정없이 질타한 적도 있었지만 일방적인 찬사와 덕담을 늘어놓는 주례사나 작품의 미덕에는 일언반구도 없이 흠잡기에 열중하는 죽비소리는 사실상 동전의 양면에 해당한다. 물론 이 상반된 서평 태도와 거리를 두면서 비판과 찬사를 적당히 섞어 작품을 얼버무리는가 하면, 아예 서평대상과는 무관한 자기의―십중팔구는 수입돼 유통되는― ‘이론’에 몰두하는 논자도 적지 않다. 그러나 얼버무리는 경우도 그 간이 절묘하지 맞지 않을 경우 비판의 유효성을 중화시키기 십상일 뿐더러 찬사의 온당한 근거를 댈 수 없기 십상이라서 절충적인 서평의 위험도 주례사나 죽비소리에 못지않다고 봐야 한다.

비평문화에서 주례와 죽비, 절충 등으로 분류되는 서평에도 오랜 관행이 있다. 출판시장의 판도를 좌우하는 ‘자본’이 활개 치기 시작하면서부터는 서평 장르는 사실상 책의 광고를 좀더 고급하게 내주는 포장지에 지나지 않는 경우가 허다했던 것이다. 주례는 주례대로, 죽비는 죽비대로, 절충은 절충대로 얼마든지 포장의 修辭로 동원될 수 있는바, 근대가 賣文으로서의 무수한 비평문과 거간꾼으로서의 서평가들을 양산해왔다는 사실을 고려하면 그것은 필연적인 현상이기도 하다. 그 자신 프랑스라는 ‘문필 공화국’의 자부심 강한 시민으로서 정열적인 삶을 살다간 발자끄가 『저널리스트』(1843)에서―때로는 자신의 발등을 찍어가면서―풍자한 그대로가 아닌가 싶은 것이다. 오늘날 우리 평단의 상황을 생각해보면, 문화정치적 세계와 긴밀하게 연동된 언론사와 출판사가 조장하는―발자끄가 그야말로 꼼짝하기 힘든 독설을 퍼부은―파당의식과 이해관계는 과거만의 일이 아님이 절절히 실감된다.  

상황이 그렇다고 해서 서평으로서의 비평에서 가장 중요한 기본이자 덕목인 공정한 평가와 비평적 객관성이라는 난제를 포기할 수는 없다. 필자 자신도 서평이나 촌평을 여러 차례 하면서 그같은 난제를 충분히 감당했다고 자신하기 힘든 순간이 적지 않았다. 근래 우리 문단의 화제인 김훈의 역사소설을 두고 벌어지는 논란도 그런 난제를 서평으로서의 비평이라는 맥락에서 짚어볼 기회를 제공한다. 

김훈 역사소설에 대한 서평에서도 눈에 띄는 점은 상반된 평가다. 하나의 문학작품을 두고 독자의 견해가 다른 것은 물론 드문 일이 아니다. 하지만 김훈에 관한 대조적인 평가에서 흥미로운 것은, 문학비평을 업으로 삼는 논자치고 그의 역사소설을 이런저런 눈치를 보지 않고 엄정하게 읽었다는 느낌을 주는 비평가는―허무주의니 파시스트니 하는 ‘재’를 과장되게 뿌린 비평에 비하면―그다지 눈에 띄지 않는다는 사실이다(부연하자면 <교수신문>에 기고한 오창은의 평문은 이를 넘어선다는 점에서 주목할 만하다. http://www.kyosu.net/news/articleView.html?idxno=15515). 그런 서평은 오히려 비문학도들이 시도했다.

가령 심사위원들이 “한국문학에 내려진 벼락과 같은 축복”이라며 동인문학상을 수여한 『칼의 노래』(2001)도 그러하다. 국어학자인 이익섭은 도저히 앞뒤가 맞지 않는 대목들을 세세하게 골라내면서 “너무 기초적인 결함을 안고 있는 작품들이 상을 받을 때마다 나는 심사 기준에 뭔가가 더 추가돼야 하지 않겠느냐는 생각을 하곤 한다”고 푸념한 바 있다(<문학과 사회> 2002년 여름호). 또한 역사학자인 정옥자는 이 작품을 두고  “식민사관에서 우리를 집중적으로 세뇌시킨 당쟁론이 여과없이, 아니 더욱 심하게 묘사돼 있”음을 지적하면서 선조와 당대 현실정치에 대한 작가의 편향된 시각을 꼬집은 바 있다(<문학동네> 2006년 가을호).

비록 문학서평을 전문으로 하는 독자는 아니지만 이들은 쉽게 넘겨버리기 어려운 논점을 제시하고 있다. 두 논자의 문제제기는 사실 재현의 정확성과―‘역사의식’과 완전히 동의어라고 말하기는 힘든―역사인식으로 모아진다. 역사소설을 다루는 데서도 이 쟁점은 전혀 간단하지 않다. 가령 『칼의 노래』에서 왜 거북선이 나오지 않느냐, 고고학계도 아직 정확히 밝히지 못한 殉葬의 구체적인 거행과정을 『현의 노래』처럼 그런 식으로 묘사할 수 있느냐고 따지고 드는 것도 역사소설의 평가에서 초점을 흐릴 공산이 다분하다. 史觀의 결여를 비판하는 일은 더 까다로운데, 그것은 문학의 역사화라는―‘역사주의’라는 잣대로 문학을 재단한다는―반론을 불러올 것이 뻔하기 때문이다.     

그러나 사실성과 역사인식의 문제를 도외시하고 역사소설을 제대로 논하기 힘든 것 또한 부인할 수 없다. 또한 그런 문제가 소설 비평에서의 일반적인 쟁점과 분리되는 것도 아니다. 이익섭은 『칼의 노래』에서 시간이나 사건의 전개에서 앞뒤가 맞지 않는 ‘사실’을 적시했지만, 그건 차라리 창작 일반에 해당하는 기본을 환기했달 수 있다. 즉 작품 “뒤에 연보며 海戰圖까지 붙여 역사적 사실과 연관 지으려는 의도가 뚜렷하”고 “史實에 맞추어 소설을 전개해가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발생한 『칼의 노래』의 무수한 사실왜곡과 부주의함을 적시한 것이다.   

김훈은 ‘일러두기’에서 15세기의 임진왜란과 5세기의 가야 멸망, 17세기의 병자호란이 배경이 되는 각각의 작품을 다른 무엇이 아닌 오직 소설(=허구)로만 읽혀야 한다고 되풀이해 강조한 바 있다. 하지만 소설의 이름으로 그같은 왜곡과 부주의함을 정당화할 수는 없다. 역사소설의 경우는 특히 그러하다. ‘팩션’으로 가공된 역사적 소재나 사건이기 때문에 ‘소설’로 읽어야 한다는 당연한 주장도 사실과 허구의 관계, 더 나아가 ‘역사적 진실’의 문제는 피할 수 없다는 것이다. 반면에 정옥자는 이보다 더 차원이 높다면 높을 수 있는 문제를 제기한 셈이다. 역사소설에서 역사적 사실의 정확성 여부만 가지고는 제대로 해명할 수 없는 것, 즉 작가의 세계관 또는 역사를 보는 관점의 문제점까지를 들추어낸 것이다. 이 관점도 따지고 들어가면 사실이냐 진실이냐, 역사냐 허구냐를 가르는 식으로는 접근할 수 없는 난점에 부딪히게 된다.  
   
전문적으로 읽고 즐기는 독자의 의미
우리 문단에서 비평가라는 이름의 독자들이 이 난점과 어떻게 씨름하고 있는가를 소개할 지면은 없다. 다만 원래 이 글의 주제로 돌아와 짤막한 서평도 비평의 차원을 겸해야만 이 난제를 제대로 감당할 수 있음을 강조할 만하다. 다른 한편 김훈의 역사소설 평가를 둘러싼 이런 종류의 어려움을 어떤 한 탁월한 독자가 홀연히 나타나 해결해주기를 바라는 것은 낭만적 공상에 가까울 것이다. 그것은 한국 사회에서 책을 전문적으로 읽고 즐기는 독자들이 하나의 실체적 집단으로 존재하면서 비평에 값하는 수준의 서평을 할 수 있는 건강한 상식과 통찰을 문화적으로 축적할 때 비로소 자연스럽게 해소될 수 있을 듯하다. 이런 맥락에서 우리 문단에서 촌평이나 서평의 형식으로 각종 문예지에 실리는 많은 글이 책의 단순한 선전이나 소개의 차원에 그치고 있음을 지적하는 것으로 자족할 수는 없다. 우리 문화현장에서 인터넷 서평을 선도하는 블로거의 활약도 옥석을 분별하는 본격 비평의 지평을 지향해야만 ‘시장’의 들러리 노릇에서 벗어날 수 있음을 덧붙일 필요가 있겠다.(유희석/ 전남대·영문학, 문학평론가)

08. 04. 01.

P.S. 필자의 주장은 서평도 '평'인 이상 비평과 본질적으로 다르지 않으며 따라서 아무리 분량이 짤막하더라도 비평의 차원을 겸해야 한다는 것으로 요약할 수 있겠다. 그에 대한 나의 생각은 예전에 적은 대로 약간 다른데(http://www.kyosu.net/news/articleView.html?idxno=15506), 아무래도 '분량'과 '지면(자리)'의 성격이 고려되어야 하지 않을까 싶기 때문이다. 10-20짜리 서평(혹은 리뷰)과 50-70매 규모의 비평은 체급이 다른 것 아닐까. 한편으로 서평문화의 걸림돌로 ‘분과학문별 결속주의’와 ‘비판을 꺼려하는 전통문화’에 대해 지적한 대목은 공감하게 된다. 필자가 '침묵의 카르텔'과 '자기의 이름을 내는 방편으로 선학들의 업적을 깎아내리는 무분별한 비판 관행', 어느쪽이 더 문제가 있다고 보는 것인지는 모호하지만. 하지만 가장 흥미로운 지적은 이것이다.

"비평문화에서 주례와 죽비, 절충 등으로 분류되는 서평에도 오랜 관행이 있다. 출판시장의 판도를 좌우하는 ‘자본’이 활개 치기 시작하면서부터는 서평 장르는 사실상 책의 광고를 좀더 고급하게 내주는 포장지에 지나지 않는 경우가 허다했던 것이다. 주례는 주례대로, 죽비는 죽비대로, 절충은 절충대로 얼마든지 포장의 修辭로 동원될 수 있는바, 근대가 賣文으로서의 무수한 비평문과 거간꾼으로서의 서평가들을 양산해왔다는 사실을 고려하면 그것은 필연적인 현상이기도 하다."   

서평이 비평과 본질적으로 다르지 않다면, 비평도 "사실상 책의 광고를 좀더 고급하게 내주는 포장지"에서 예외가 아니다(비평 또한 출판시장 바깥에 있지 않다). 거기다 문제는 "주례는 주례대로, 죽비는 죽비대로, 절충은 절충대로 얼마든지 포장의 修辭로 동원될 수 있"다는 통찰이다. 이건 아주 래디컬하다. 주례이건 죽비건 '포장의 바깥은 없다!'고 말하는 것이기에. 그에 비하면 "비평에 값하는 수준의 서평을 할 수 있는 건강한 상식과 통찰을 문화적으로 축적할" 수 있는 여건에 대한 필자의 요구는 좀 뭉툭하다. "賣文으로서의 무수한 비평문과 거간꾼으로서의 서평가들을 양산해왔다는 사실"을 고려한다면 '비평의 지평'(공정성과 객관성) 이상의 뭔가 더 뾰족한 수가 필요한 것 아닐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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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서평에 대해서...
    from Hemingway's I love text 2008-04-02 21:24 
    난 독서토론모임인 책과 세상의 회원이다. 토론은 사실 익숙치 않다. 가입이유는 책이 좋아서, 다른 사람의 시각과 나의 시각을 비교하기 위해서였다. 관심분야는 인문사회관련, 역사관련 책이다. 어째튼, 난 책을 고를 때 미리 생각해 둔 책 1권과 인문사회 관련(역사포함) 1권과 다른 사람이 추천한 1권을 고른다. 이렇게 3권 정도 구입한다. 문제는 다른 사람이 추천한 1권을 고를 때 신중히 고른다. 왜냐하면 그 사람들의 글(서평 혹은 소개)이나 말들은..
 
 
드팀전 2008-04-01 18:08   좋아요 0 | URL
로쟈님 서재가 사진으로 ㅋㅋ

로쟈 2008-04-01 19:31   좋아요 0 | URL
네, 들러리로 들어가 있네요.^^;
 

단테의 <신곡>에 관한 자료를 읽다가 이탈리아의 철학자 '비코'에 관한 얘기가 나오길래 참고할 만한 자료를 검색해봤다. 몇 년 전에 박홍규 교수가 신동아에 연재한 글이 눈에 띄기에 옮겨온다(일독해보기 위해서). 연재물의 타이틀은 '에드워드 사이드에 바치는 弔詞'로 돼 있지만 곧이어 출간된 <박홍교의 에드워드 사이드 읽기>(우물이있는집, 2003)에는 '사이드와 비코'란 제목으로 실린 글이다. 사이드 입문으로나 비코 입문으로서 유익해 보인다.   

 

신동아 531호(03. 12. 01) 에드워드 사이드에 바치는 弔詞

9 월24일 ‘오리엔탈리즘’의 저자 에드워드 사이드가 세상을 떠났다. 필자는 ‘오리엔탈리즘’의 번역자이자 오랫동안 사숙한 제자로서 그의 죽음을 애도한다. 내가 ‘오리엔탈리즘’을 번역한 후 그의 이름이 한국에도 본격 소개되었기에 더욱 그렇다. 이 글은 사이드의 죽음에 바치는 조사(弔詞)다. 사이드는 내가 가장 존경하는 사람이었으며, 누군가 단 한 권의 책을 꼽으라면 당장 ‘오리엔탈리즘’이라 할 만큼 내 인생에 충격을 준 사람이었다.

그런 사이드에게 위대한 스승이 있었으니 다름아닌 18세기의 이탈리아 철학자 비코다. 사이드는 1975년 ‘시작-의도와 방법’이라는 책에서 비코를 언급했고, 1993년 ‘지식인의 표상’에서는 비코를 자신의 영웅이라 불렀다. 이는 사이드가 죽기 직전에 쓴 ‘오리엔탈리즘’ 2003년판 서문에서도 확인된다. 그러나 한국에는 사이드와 비코의 관계는 물론, 비코라는 인물이 제대로 소개된 적이 없다.
비코를 이해하려면 벌린(Isaiah Berlin, 1909~97)이 1976년에 쓴 책 ‘비코와 헤르더’(번역 출간)를 참고해야 한다. 벌린에게도 비코는 정신적 스승이었음에 틀림없고, 사이드가 포스트콜로니얼리즘의 선구자로 비코를 선택한 것처럼, 벌린은 비코를 다원주의의 선구자로 재발견했다. 물론 두 사람의 비코 해석은 약간 다르나 그런 다양한 해석이 가능한 만큼 비코는 매력적인 연구대상이다.

물론 비코가 벌린이나 사이드에게만 영향을 끼친 것은 아니다. 생전 무명의 학자였고 심지어 많은 오해를 받으며 질병과 빈곤 속에 죽었지만 비코의 사상은 법학, 정치학, 문학, 미학, 민속학, 언어학, 신화학, 역사학, 철학, 수학, 논리학 등 서양의 거의 모든 학문분야에 영향을 끼쳤다. 다만 한국에서 비코의 이름이 생략되었을 뿐이다.

여하튼 벌린이나 사이드만이 아니라 19세기 미슐레나 크로체를 비롯해 후대의 수많은 학자들이 그의 영향을 받았고 비코를 자기식으로 해석했다. 예컨대 미슐레는 그를 낭만주의자로, 크로체는 그를 헤겔주의자로 보았다. 또 자연주의나 역사주의, 심지어 실존주의의 선구자로 본 사람들도 있었다. 그런 해석에 일리가 없는 것은 아니지만 비코를 하나의 주의자로 규정하는 것은 위험하다. 적어도 비코는 누구나 사숙하고자 한 거대한 사상의 원류였음이 분명하다. 그런 점에서 비코는 18세기 가장 위대한 사상가 중 한 사람이었다.

잊혀진 그 이름, 비코
잠바티스타 비코(Giambattista Vico)는 1668년 나폴리의 한 서점 주인의 아들로 태어나 1744년 나폴리에서 죽었다. 학교교육을 전혀 받지 못한 것은 아니었지만 거의 독학을 했다. 그리고 이웃마을에서 가정교사를 한 것 외에는 나폴리를 떠난 적도 없다. 비코의 평생 꿈은 나폴리대 법학교수가 되는 것이었으나 실제로는 월급이 그 10분의 1밖에 안 되는 수사학 교수로 42년간 일했다. 명색이 교수였으나 끝내 가난을 면치 못했다. 비코는 어릴 때 낙상해 평생 절름발이로 살았고 맏아들은 범죄자, 외동딸은 배냇병신일 만큼 불행한 삶을 살았다. 생전에 그를 학자로 인정한 사람도 거의 없었다. 당시 사회에서 서민출신인 비코가 교수가 된 것만으로도 대단한 일이었다.

비코의 시대는 명석한 관념을 중심으로 한 데카르트가 풍미했으나, 비코는 그런 진리가 수학과 자연과학 이외에는 적용될 수 없다고 보았다. 데카르트는 역사를 비롯한 인문과학이란 여행처럼 여흥거리에 불과하며 키케로의 하녀가 갖고 있는 수준의 정보를 제공할 뿐이라고 빈정거렸다. 반면 비코는 수학이나 자연과학에서도 진리란 그 발생을 이해해야 입증할 수 있다고 주장하며 다음과 같이 말했다. “우리가 기하학을 증명하는 것은 우리가 그것을 만들었기 때문이다.” “인간은 인간이 창조한 것만을 진정으로 인식할 수 있다.” “인간의 역사는 인간이 만든다.”

비코는 당대의 주류였던 자연법이론가, 사회계약론자, 공리주의자, 개인주의자, 유물론자, 이성주의자를 모두 부정했다. 즉 그들이 오류에 빠진 것은 체계적으로 변화하며 발전하는 인간적 전망과 동기의 영속성, 그리고 그 전망과 동기가 다시 인간 본성의 변화하는 요구에 의해 지배됨을 이해하지 못했기 때문이라고 보았다. 그는 불변적이고 선험적인 인간 본성의 존재를 인정한 아리스토텔레스 이래의 서구정신을 통째로 부정했다. 이러한 서구정신이 20세기까지 이어져온 것을 생각하면 비코는 여전히 현대 서양문화에 대한 비판가로 생명력을 갖는다.

그리고 벌린이 말한 대로 비코는 인류가 이제껏 걸어왔고 앞으로도 걸어갈 일련의 발전단계에서 각 단계 나름의 개성과 필연성, 특히 정당성이 존재한다고 믿었다. 즉 스스로의 내적 성장법칙에 따라 발전하되 외적 요인의 영향을 받아 변하며, 결코 기계적 인과관계에 귀속되지 않는 비물질적 영혼이 존재한다는 것이다. 그는 인간은 자신과 자신이 행하는 일들을 모두 이해할 수 있다고 믿었다.

다원주의와 상대주의의 간격
비코의 사상을 이어받은 벌린은 라트비아 출신으로 영국에 이주한 철학자이자 사상사가였다. 벌린 역시 국내에는 그다지 알려지지 않았다. 다만 그가 쓴 마르크스 전기와 비코 및 헤르더에 대한 연구서가 번역돼 있을 뿐이다(*이후에 몇 권의 더 소개되었다). 벌린은 일관된 다원주의 옹호자로 유명하다. 다원주의란 복수의 가치를 인정하고 그것이 궁극적으로 조화될 수 없으며, 서로 대립하는 가치를 취사선택하거나 우선 순위를 매기는 것에서 인간의 도덕적 책임과 주체성을 찾을 수 있다고 보는 것이다. 그래서 정치와 사회제도는 다양한 사람들이 각각 선택한 가치를 추구할 수 있도록, 즉 다양한 삶을 살 수 있도록 조직돼야 한다고 주장한다.

이러한 다원주의는 합리주의, 특히 진리일원론-영원불변하는 단 하나의 형이상학적 진리가 존재한다고 생각하는 것-을 반대한다. 벌린은 여러 가치가 객관적으로 존재한다고 보며 그것은 영원불변의 진리로 존재하는 것이 아니며, 또한 개인의 주관적 판단에 근거하는 것도 아니라 인류 공통의 역사적 경험에 의해 확인된다는 의미에서 다원주의를 주장했다. 나아가 벌린은 진리일원론에서 비롯된 ‘완전한 사회’에 대한 이상도 거부했다. 진리의 발견이 인류가 처한 문제를 해결하고 여러 가치가 조화되는 세계를 만든다고 하는 이상을 거부한 것이다. 그러한 이상은 가치 선택을 불가능하게 하는 목표를 설정하는 것이며 이에 따라 가치의 선택이라는 도덕적 책임을 면제하여 개인의 다양한 삶을 배제한다고 생각했다.

또한 다원주의는 상대주의를 반대한다. 상대주의도 합리주의를 반대하여 다양성을 존중하는 것처럼 보이지만 이는 가장에 불과하다는 것이다. 왜냐하면 상대주의는 판단의 진위를 결정하는 객관을 부정하고, 자신의 전통과 문화에 완전히 구속되어 타인이나 타문화에 무관심하기 때문이다. 이에 반해 다원주의는 상상력에 의해 자신과 자문화의 틀을 넘어 타인과 타문화에 공감하여 다양성을 존중하는 사상이다. 이러한 다원주의를 주장한 벌린은 사상의 원류를 비코에서 찾았다. 벌린은 비코의 사상을 다음 7가지로 요약했다.

첫째, 전통적 사고는 인간 본성을 정태적으로 보지만 사실은 동태적이며 동일성을 유지하는 본질을 갖지 않는다.

둘째, 인간은 스스로 역사를 만들기에 그것을 이해할 수 있다.

셋째, 역사와 같은 인문학은 자기 이해를 추구하나 자연과학은 외부세계에 대한 관찰에 머문다.

넷째, 특정 사회의 행동이나 문화는 포괄적인 패턴에 의한 특징을 갖는다.

다섯째, 법·제도·종교·제식·예술·언어·행동 등 인간의 모든 창조물은 작위의 산물이 아니라 자기를 표현하는 자연스러운 형식이며, 그 역사를 이해하려면 그들의 삶을 먼저 이해해야 한다. 전통적인 사고에 의하면 신화나 우화, 제식과 유물은 어리석은 원시인의 환상이나 교활한 군주의 기만술로 여겨졌으나 비코는 이를 부정하고 원시인들의 세계관을 반영한 것으로 보았다. 비코의 ‘새로운 학문’은 이러한 탐구의 열쇠를 제공한다.

여섯째, 예술을 이해하기 위해서는 모든 곳 모든 사람에게 적용되는 원리와 기준이 아니라, 그 탄생의 시공간과 사회발전단계에서 특유하게 사용된 상징들의 목적 및 특수한 용법을 정확히 이해해야 한다. 이러한 인식만이 다른 문화의 신비를 풀 수 있다. 여기서 비코는 비교문화사·비교인류학·비교사회학·비교법학·언어학·민족학·종교·문학·예술사·사상사·제도사·문명사 등의 출발점을 제공한다. 사실 오늘의 사회과학은 모두 역사학적 또는 발생론적 관점에서 잉태됐다.

일곱째, 이로써 전통적인 지식에 새로운 범주인 감각지각이 제공하는 ‘경험적 지식’, 그리고 계시에 의해 보증되는 선험적이고 연역적인 지식 외에 ‘재구성적 상상력’이라는 지식범주가 새롭게 등장했다. ‘재구성적 상상력’이란 상상력을 통해 다른 문화의 정신과 전망, 생활방식에 침투함으로써 얻을 수 있는 지식을 의미한다. 그 상상력이란 사회의 변화와 성장과정을 이와 병행하는 상징의 변화나 발전에 연결함으로써 파악하는 능력이자, 인간의 표현수단인 상징 안에 사회의 자취가 담겨 있다는 견지에서 사회의 발전을 추적하는 능력이다.

비주류의 길 선택한 참된 지식인
벌린은 위 7가지가 모두 사상사의 거대한 진전이고 그 하나로도 철학자의 운명을 좌우할 수 있다고 평가했다. 후대의 학자들에 의해 비코가 여러 갈래로 해석됐듯이 벌린은 자신의 다원주의에 입각하여 비코를 해석했다. 적어도 일곱 번째의 ‘재구성적 상상력’이라고 하는 벌린의 지적이 과연 비코에게 있었는지에 대해서는 의문이 제기되기도 하지만 다섯 번째와 여섯 번째 지적은 이미 통설로 자리잡았다. 비코에 대한 벌린의 평가는 사이드가 다문화주의의 입장에서 ‘오리엔탈리즘’을 쓰는 데 결정적인 단서가 됐다. 사이드는 벌린을 인용하는 데 인색한 편이지만 벌린의 저작을 읽은 것임에 틀림없다.

여기서 잠시 사이드에 대해 살펴보자. 사이드는 1935년 영국의 식민지였던 팔레스타인 예루살렘에서 태어났으나 1947년 그 땅에 이스라엘이 건국하자 이집트를 거쳐 미국으로 망명했다. 망명 지식인 문제를 다룬 ‘지식인의 표상’에서 사이드는 “망명 지식인은 과거의 환경에서 완전히 벗어나지 못하고 새로운 환경에 완전히 적응하지도 못하는 중간 상태에 놓여 있으며 한편으로는 향수와 감상에 젖고 다른 한편으로는 교묘한 모방자나 사람들의 눈을 피하는 부랑자로 살고 있다”고 했다. 새로운 환경에 완전히 적응하여 성공한 ‘교묘한 모방자’는 사이드가 말하는 참된 지식인이 아니다. 그가 말하는 지식인은 부랑자이며 주류에서 벗어나 저항자로 살아가는 지식인이다.

이처럼 비주류 부랑적 지식인은 망명 지식인만이 아니라 어느 사회에나 존재한다. 사이드가 비코를 스승으로 모신 이유는 비코가 바로 그런 지식인의 전형이었기 때문이다. 망명은커녕 평생을 나폴리에서 산 비코는 자신이 살았던 18세기 이탈리아 사회에서 고독한 한계인이었다. 한계인이었기에 비코는 당대 주류의 믿음이었던 신의 창조와 절대를 믿지 않았으며, 인간의 행위와 선택은 때와 곳에 따라 변경 가능한 결과라고 보았던 것이다. 이를 사이드는 다음과 같이 말한다.

지식인의 위대한 원형은 18세기 이탈리아 철학자 잠바티스타 비코다. 그는 나의 오랜 영웅이라고 할 수 있는 인물이다. 비코의 위대한 발견은 나폴리의 무명교수, 생활의 빈곤, 교회와 주위의 알력으로 인한 고독으로부터 생겨났다 해도 과언이 아니다. 그의 위대한 발견에 의하면 사회현실의 올바른 이해방식은 기원의 지점에서 생긴 하나의 과정으로 이해하는 것이다. 그 기원을 탐색해 보면 지극히 초라한 상황에 있음을 알 수 있다. 그의 위대한 저서 ‘새로운 학문’에서 비코는 이를 마치 성인 인간이 말도 못하는 아기로부터 진화했다고 보듯이, 사물을 특정한 시점에서 진화하는 것으로 보는 것을 뜻한다고 했다.

이것이야말로 세속적인 세계에 관해 취할 수 있는 유일한 관점이라고 비코는 역설한다. 이 세계는 그 자체의 법칙과 과정을 갖는 역사적 세계이지 신에 의해 정해진 세계가 아니라는 점을 비코는 되풀이한다. 이렇게 보는 것은 인간사회를 숭배하는 것이 아니라 유념(留念)한다는 것이다. 가장 막강한 권력을 그 시작으로 되돌려놓고, 나아가 그것이 어디로 향하는지를 살펴보는 것이다. 그렇게 하면 대단한 인물이나 거창한 제도를 두려워하지 않게 된다. 권력자나 제도가 자주 침묵과 복종을 강제할 수 있는 대상은 그 나라에서 태어나고 자란 사람들이다. 왜냐하면 그들은 거대한 권력을 언제나 숭고하게 바라보며(그래서 숭배한다) 초라한 ‘인간적’ 시작을 볼 수 없기 때문이다. 따라서 망명 지식인은 필연적으로 해학적이고 회의적이며 유희적이다. 비록 냉소적이지는 않다 하더라도.”

사실 사이드의 해석은 새롭지 않다. 그러나 사이드가 그런 해석을 한 상황은 새롭다. 사이드는 지식인이 부딪히는 두 가지 권력의 유혹을 경계했다. 하나는 그 자신의 출생, 국적, 직업 등에 의해 구속되는 문화다. 또 하나는 사회적·정치적 확신, 경제적·역사적 환경, 자발적인 노력과 자신의 의지에 따른 결단으로 획득하는 체계다. 사이드는 비코 역시 문화와 체계의 양면에서 그 시대가 강요하는 바를 알았고, 따라서 평생 그런 압력에 저항하며 살았다. 비코는 사이드가 말하는 참된 지식인의 전형이었다.

새로운 학문의 시작
1744년에 쓰여진 비코의 ‘새로운 학문’은 1997년에야 우리말로 번역됐다. 무려 253년이 지난 후였다. 그나마 이탈리아어 원문을 번역한 것이 아니라 일본어를 중역한 것이니 앞으로 책임 있는 원어번역이 요망된다. 여하튼 현재의 번역본도 582쪽에 이르는 대작인 만큼 읽기가 만만치 않다. 그 책의 논증을 구성하는 요소인 공리가 114개나 된다. 이는 제1권 ‘원리의 확립’ 중 제2부 ‘원칙’에서 열거된다.

여기서 그 모두를 검토할 수 없으니 일단 사이드의 독해를 따라가 보자. 사이드는 114개 중 가장 중심적인 공리로 106번을 든다. “학설은 그것이 취급하는 소재가 시작되는 곳으로부터 시작돼야 한다”는 내용이다. 우리말 번역본은 ‘시작되는 곳으로부터’를 ‘시작되었을 때’라고 번역했으나 의문이다. 위 공리는 사이드가 1975년에 낸 ‘시작-의도와 방법’ 서두에 인용되었다. 사이드는 비코를 ‘시작(beginning)에 관한 최초의 철학자’라고 했다. 시작이란 그만큼 비코나 사이드에게 중요한 개념이다.

그러나 사이드가 비코를 ‘시작에 관한 최초의 철학자’라고 한 것은 비코가 시작이라고 하는 문제를 최초로 성찰한 철학자였다는 의미가 아니다. 다만 인간-야만인이거나 성찰적인 철학자거나 간에-실제로 최초의 사람일 수 없다는 점, 그리고 인간은 누구나 각자 시작을 만들고 나아가 각자 언제나 최초의 사람이라는 것을 인식했다는 의미에서다. 이러한 시작을 비코는 이교성(異敎性)이라고 부른다. 비코는 이 공리를 “여러 국민의 공통된 자연본성에 대한 새로운 학문의 공리로 삼기 위해 서술한다”고 밝혔다.

한편 공리 24에서 비코는 고대세계가 히브리인과 이교도로 양분된 점에 대해 진실한 신에 의해 창건된 히브리 종교에서는 신점(神占)이 금지된 반면, 이교도의 경우에는 신점이 문명화와 국가생활의 길에 들어서는 토대를 형성했다며 그 차이를 지적했다. 이 두 가지 비코의 공리를 두고 사이드는 다음과 같이 해석한다. 먼저 공리 106에서 비코는 인간의 지성이 감각 및 상상력 그리고 오성적 판단력 사이에서 상반된 관계를 형성하면서 단계적으로 발전했다는 이해의 패러독스를 깨달았고, 동시에 그 패러독스의 필연적인 귀결로서 현대인이 인류의 ‘시작’에서 논의를 ‘시작’하는 것이 불가능하다는 점을 깊이 깨달았다는 것이다.

이어 인류의 ‘시작’이란 단지 현대 문명시대에 사는 철학자의 경우만이 아니라 원시 미개인-비코는 그들을 ‘최초의 인간’이라고 불렀다-에게도 불가능하다는 사실을 보여준다. 그리고 다른 한편으로 ‘최초의 인간’에게는 바로 ‘이교도라는 것’의 가능성, 즉 히브리의 신적 ‘시원(origin)’으로부터 단절된 곳에서 스스로 ‘시작’의 역사를 만들어내는 가능성이 열려 있음을 통찰했다고 사이드는 말한다.

여기서 사이드는 멈췄으나 우리는 비코의 본령이 법학이었음을, 특히 그가 당대까지의 주류 법학이었던 자연법론을 비판했음을 주목할 필요가 있다. 그는 자연법론이 인간 본성의 불변성과 보편성을 가정했다고 비판하고 “본성은 발생이다”라고 주장한다. 비코에 의하면 본성의 참된 법칙은 철학자들이 말하는 자연법도, 일련의 보편적 규칙도 아니다. 참된 법이란 특정한 사회환경에서 새로운 생활방식의 표현으로 발생하는 것일 뿐이고 ‘여러 민족의 자연법’뿐이라고 보았다.

신의 질서로부터 벗어난 인간
사이드는 ‘오리엔탈리즘’에서 비코가 민족과 학자의 자만심에 대해 언급한 것을 지적하고 그것이 오리엔탈리즘을 형성하는 요인이라고 설명한다. 비코는 “인간은 멀고 미지의 것이기 때문에 어떤 관념도 가질 수 없는 사물에 관해서 눈앞에 있는 이미 알고 있는 것으로부터 판단을 내리게 된다. 이것은 인간정신이 갖는 하나의 특질”이라고 하는 2번 공리로부터 민족과 학자의 자만심을 도출했다. 곧 민족과 학자는 자신들이 갖고 있는 지식이야말로 세계에서 가장 오래되고 최고 최선의 것으로 생각하는 경향이 있다.

비코는 고대세계를 히브리인 세계와 이교도 세계로 구분하고, 히브리 세계에서는 신점(神占)이 금지되었으나 이교도 세계에서는 신점이 문명화와 국가생활의 기초였다고 공리 24에서 밝혔고, 따라서 원시인이 그 이교도일 가능성을 제기하면서 기독교의 ‘기원(origin)’과 다른 ‘시작(beginning)’을 역사 발생적으로 끝없이 새롭게 만들어낼 가능성이 열려 있다는 사실에 대해서도 인식했다. 이러한 ‘시작’의 이교도성은 기독교라고 하는 중심에서 벗어날 수 있는 가능성을 말해준다는 점에 사이드는 주목한다.

여기서 잠시 훌쩍 뛰어넘어 ‘새로운 학문’ 결론 부분을 보자. 비코는 인간이 여러 국민의 세계를 만들어왔으나, 그것은 인간이 설정한 의도와 다르거나 모순된 ‘뛰어난 지성’에 의해 생겨났고, 그 지성은 인간이 설정한 한정된 목적을 더욱 넓히고 지상에서 인류를 보존하기 위해 사용되어 왔다고 했다. 이어 비코는 야만적인 욕정을 채우는 것밖에 몰랐던 원시인이 정숙한 결혼생활을 하고 가족제도가 생긴 것을 위시해 도시의 발생, 민주적 자유의 발생 등 인간이 행하는 모든 것이 지성의 덕분이지 운명은 아니며, 인간의 선택이지 우연은 아니라고 했다. 이러한 비코의 주장은 종래 ‘신의 섭리’를 찬양한 것으로 이해되어왔으나 사이드는 이를 부정하고, 도리어 비코는 인간의 ‘시작’을 신의 질서로부터 벗어나는 것으로 보았다고 독해했다.

추상어와 구체어의 공존

비코는 제2권 ‘시적 지혜’ 중 제2부 ‘시적 논리학’에서 로마법의 노멘(nomen)이란 ‘법’을 말하고 그것과 발음이 유사한 그리스어의 노모스(nomos)도 법을 말하는데, 그 말에서 ‘화폐’를 뜻하는 노미스마(nomisma)가 나오고, 라틴어의 화폐를 뜻하는 눔무스(nummus)가 나온다고 했다. 마찬가지로 불어에서는 법을 뜻하는 단어가 루아(loi)이고 화폐를 나타내는 것이 아루아(aloi)다. 그리고 중세의 교회법을 뜻하는 카논(canon)은 동시에 지대(地代)를 뜻했다.

이러한 비코의 설명은 지금까지 언어의 계보성을 밝힌 것으로 이해됐으나, 사이드는 비코가 법을 뜻하는 여러 말이 동시에 화폐라는 뜻이기도 하다는 ‘인접한 복수의 관계’를 통해 하나의 체계를 인식했다고 주장한다. 즉 어떤 언어에서 추상어와 구체어의 직접적인 공존은 계보적인 계기성에 의하는 것이 아니라 단어 상호간의 체계적인 인접성에 근거해 실현된다고 본 것은 비코에 대한 사이드의 새롭고도 대담한 해석이라 하겠다.

나아가 사이드는 비코가 1709년에 쓴 최초의 저서 ‘우리 시대의 학문 방법에 대하여’를 비롯해 여러 저작에서 그러한 인접성, 상보성, 병행성, 상관성을 밝혔다고 말한다. 원래 비코는 ‘여러 국민의 공통된 자연본성에 대한 새로운 학문’, 즉 여러 국민에 공통된 법을 추구하면서 나아가 하나의 공통된 시작을 발견하고자 계보학적인 연구를 하는 과정에서 상관성, 상보성, 인접성의 증거를 발견했다는 것이다. ‘지식인의 표상’ 머리말에서도 사이드는 비코의 ‘상관성’을 언급했다.



“내 책에서 싸우고자 한 상대는 ‘동양’이니 ‘서양’이니 하는 허구의 구조다. 종속 인종, 동양인, 아리아인, 니그로 등의 인종차별주의적 본질은 말할 것도 없이 그렇다. 나는 과거 식민주의의 폭정을 거듭 당한 나라들에서는 원초의 순수 상태가 서양인에 의해 침해되었다는 의식을 조장하기는커녕, 다음 사실을 반복하여 강조했다. 즉 그런 신화적 추상개념은 허위이고, 그것과 같이 과거의 식민지국이 서구를 비난하는 다양한 수사도 허위라는 것이다. 문화는 너무나도 혼합적이고 그 내용도 역사도 서로 의존하며 잡종적인 것이므로 외과수술을 하듯이 크게 잘라 동양이나 서양이라는 이데올로기적인 대립으로 나눌 수 없다.”

이러한 사이드의 해석에 대해 논리의 비약이라든가 너무 대담하다는 비판이 있다. 그러나 비코에 대한 가장 뛰어난 연구로 평가되는 크로체의 ‘잠바티스타 비코’(1911) 이래 60여 년 동안 나온 비코 해석 중 가장 새로운 것만은 사실이다. 여기서 중요한 점은 그러한 비코의 새로운 해석에 의해 사이드가 텍스트와 현실세계 사이에 서로 통할 수 없는 벽이 있다고 본 문학비평에 반대하여 “텍스트는 그 자체가 이미 세계 속에 존재하고 있다”는 관점에서 텍스트와 현실세계를 연결시키려 했다는 점이다. 즉 사이드가 말하는 현실세계가 바로 비코가 말한 ‘여러 국민의 세계’라는 것이다. 그것은 신적 기원으로부터 단절되고 성스러운 질서에서 벗어난 ‘이교도적인’ ‘여러 국민의 세계’였다.

아이덴티티, 부정, 폭력
사이드는 비코를 비중 있는 사회철학자로 보았다. 그는 ‘아이덴티티, 부정, 폭력’(뉴레프트 리뷰 1988년 9~10월호)이라는 글에서 비코가 ‘새로운 학문’ 제2권 제2부 ‘시적 형이상학’에서 아우토리타스(autoritas, 권위 또는 자기소유권)에 대해 설명한 문장을 예로 든다. 비코는 아우토리타스가 신에서 비롯되며 신은 거인들이 야수적 습관을 버리고 동굴 안에 몸을 숨겨 오랫동안 참고 견디도록 만들었다고 설명했는데, 사이드는 이를 현대국가의 아이덴티티 형성과 테러 사이에 존재하는 관계의 핵심을 보여준다고 독해했다.

프로메테우스는 제우스가 설정한 제한을 벗어나려 했기 때문에 눈에 보이지 않는 처벌을 받고 영원히 갇히는 존재가 되었으며 독수리에 의해 심장을 쪼인다. 그러나 대부분 길들여진 인간은 제우스가 제공한 장소를 기꺼이 받아들일 준비가 되어 있다. 이 최초의 인간들은 동굴에서 살다 나중에는 집을 짓는다. 여기서 중요한 것은 인간이 방랑을 포기했다는 점이다. 제우스의 테러는 인간의 테러를 중단시키고 그것을 사회적인, 나아가 국가적인 틀 속에 고정시켰다. 그렇다고 해서 비코가 제우스의 영웅적이고 일탈적인 테러를 과소평가한 것은 아니다. 비코에 따르면 권위를 휘두르고 처벌하는 제우스의 압도적인 재능이야말로 근대국가가 행사하는 강제력의 독점을 예상케 한다.

사이드는 ‘오리엔탈리즘’을 비롯한 여러 저서에서 근대국가가 강제력을 독점하고 그 권력을 제국주의에 의해 범세계적 식민지 침략으로 확대하면서 동양에 대한 침략과 동시에 학문과 예술의 차원에서도 침략을 합리화하는 오리엔탈리즘을 형성했다고 분석했다. 사이드는 인간의 비참과 억압에 대한 진실의 기준이 개별 지식인의 정당 친화성, 민족적 배경, 그리고 근원적인 충성에서도 지켜져야 한다고 말한다. 사이드가 말하는 인간의 비참과 억압에 대한 진실의 기준이란 여러 측면에서 논의될 수 있을 것이나 가령 국제적 인권 기준 같은 것을 들 수 있다. 사이드가 말하는 지식인에게 요구되는 보편성이란 문화적 배경, 언어, 국적 등이 제공하는 안이한 확신으로부터 벗어나기 위해 위험을 감내하는 것을 뜻한다. 동시에 그것은 대외정책이나 사회정책과 같은 문제에 직면하여 인간 행동의 단일한 표준을 찾고 유지하고자 노력하는 것을 뜻한다.

지식인이여, 국가와 전통을 던져라
사이드는 나아가 지식인이 국가와 전통을 떠나서 활동하고 존재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이는 전통적으로 지식인은 국가와 전통에 대해 책임진다고 생각해온 것에 대한 비판이다. 즉 사이드는 이러한 집단적 사고가 지식인이 의문을 제기하고 회의를 품지 못하게 만든다고 지적했다. 사이드에 따르면 지식인은 국가나 전통이 자연과 신에 의해 부여된 실체가 아니라, 구조화되고 만들어지며 어떤 경우에는 이면의 투쟁과 정복의 역사를 통한 창조물임을 보여주어야 한다고 했다. 이는 바로 비코의 역사관에 입각하고 있음을 보여준다. 또한 사이드는 그런 지식인으로서 촘스키와 비달, 울프를 예로 든다.

여기서 지식인이 선택해야 할 것은 다음 두 가지다. 하나는 승리자나 지배자에게 편리한 안정상태를 유지하는 것이고, 다른 하나는 그러한 안정상태를 거부하고 잊혀진 여러 목소리나 잊혀진 인간의 기억을 함께 고려하는 것이다. 사이드가 말하는 지식인은 당연히 후자이나 문제는 현실에서 다수의 지식인이 전자라는 점이다.

지식인은 언제나 충성이라는 문제에 부딪힌다. 특히 지식인은 자국민이 위협을 받으면 당연히 방어적인 민족주의자가 된다. 그러나 그것만으로는 충분하지 못하다. 프란츠 파농의 경우에서 보듯 지배자를 교체하는 것만이 아니라 새로운 영혼의 창조가 문제된다. 타고르도 죽을 때까지 민족주의자였으나 민족주의 때문에 비판을 누그러뜨리지는 않았다.

사이드는 지식인이 자신이 속한 인민의 집단적 고난을 대변하고, 그 고난을 증언하며 지금도 여전히 남아 있는 시련의 상처를 끝없이 환기하고, 기억을 갱신하는 엄청나게 중요한 책무를 갖고 있다고 확신했다. 이에 더하여 피카소나 네루다의 작품에서처럼 지식인만이 충족시킬 수 있는 ‘무언가’가 있다고 믿었다. 즉 사이드는 지식인이 위기를 보편적인 것으로 보고 특정한 인종이나 민족이 겪는 고난을 인류 전체와 관련지으며, 그 고난을 다른 고난의 경험과 결합시켜야 한다고 했다.

사이드는 권력에 봉사하고 권력의 보상을 받는 전문가는 비판적이고 왕성한 독립정신으로 분석과 판단을 내려야 하는 지식인이 아니라고 주장한다. 그리고 지식인이 독립성을 유지하려면 비전문가가 되는 위험을 감수해야 한다고도 했다. 그것은 지식인의 글이 불특정 다수의 수용자에게 읽히고 예측할 수 없는 반응에 노출되는 불확실성을 기꺼이 선택한다는 의미다. 사이드 스스로도 전문영역을 이유로 결코 공공정책 문제를 회피하지 않았다.

그는 또 지식인들이 흔히 자국문화 중심주의에 빠져드는 것을 경계했다. 예를 들어 역사학자 토크빌은 미국의 인디언과 흑인노예 학대를 비판했지만 자국 프랑스의 알제리 식민정책에 대해서는 이슬람이 열등한 종교이므로 통제돼야 한다고 주장했다. 따라서 지식인의 근본적인 문제는 자신의 정체성, 문화와 사회 및 역사의 실재를 어떻게 다른 정체성과 문화 및 인민과 조화시킬 수 있는가에 놓여 있다. 그러므로 ‘우리’ 문화의 영광이나 ‘우리’ 역사의 승리에 대한 과대선전은 지식인이 해서는 안 될 일이다. 사이드는 최근 이슬람을 둘러싼 미국 지식인의 애국주의에 대해서도 거침없이 비판했다.

나아가 사이드는 지식인이 극도로 편향된 권력에 아첨하여 타락하는 전문가가 아니라, 권력에 대해 진실을 말할 수 있으며 원칙을 존중하는 입장에 서야 한다고 했다. 그리고 지식인은 최소한 국제사회가 용인하는 행동 기준과 규범을 따라야 한다. 그 중요한 보기가 1948년 세계인권선언을 비롯한 여러 국제인권규범들이다. 우리 사회와 같이 관리된 대중사회에서 진실을 말한다는 것은 이미 널리 알려진 일련의 도덕적 원칙들-평화, 화해, 고통의 경감-에 가까이 다가가려는 노력을 의미한다. 그리고 그러한 이상을 실현함에 있어 가장 비난받아야 할 것은 지식인의 회피다.(박홍규 영남대 교수·법학)

08. 04. 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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람혼 2008-04-01 22:44   좋아요 0 | URL
실로 오랜만에 비코의 이름을 읽게 되니 갑자기 가슴 속에서 뭔가 '불끈'합니다.^^ 벌린의 <비코와 헤르더>는 개인적으로 참 좋은 책이라고 생각해오고 있는데, 예전에 출간되었던 대우학술총서 판본은 아마 이제는 절판이겠죠... 그러고 보니 중역본이긴 했어도 비코의 <새로운 학문> 번역본은 그 자체로 '희소가치'가 있었는데, 박홍규 선생의 말마따나 어서 새롭게 번역되었으면 하는 마음 저 역시나 품어봅니다.

로쟈 2008-04-01 23:10   좋아요 0 | URL
지난 학기에 <비코와 헤르더>를 대출했다가 읽는 시늉만 하고 반납한 기억이 떠오르네요. 그땐 '헤르더' 때문이었는데, '비코'를 핑계로 언제 다시 대출해야겠습니다.^^

노이에자이트 2008-04-06 23:48   좋아요 0 | URL
p.헤밀톤 저 사회구조와 사회의식 제 1장에서 비코를 다루었는데 지식사회학의 선구자로 보았네요.딜타이의 verstehen과의 유사성도 언급했구요.몽테스키외를 프랑스의 비코라고 했는데...재밌네요.
10여년전 오리엔탈리즘을 읽다가 이런 책을 법대교수가 번역하다니...수험법학에 몰두하는 학생들은 이런 교수 싫어하겠군...하고 생각한 적이 있었어요.그후로도 박홍규 씨는 실용법학과는 담을 쌓고 진짜?인문과학 서적을 직접 쓰기 시작하더군요.어쩐지 법대 교수라기보다는 성공회 대학이나 한신대의 인문사회과학부 교수같은 느낌을 주는 존재...

로쟈 2008-04-07 00:28   좋아요 0 | URL
강의도 인문교양쪽을 하시는 걸로 압니다. 전공은 노동법쪽이신 걸로 알지만...
 

강의준비 때문에 읽게 된 기사를 스크랩해놓는다. 작년 경향신문에 연재됐던 '헤르메스의 빛으로'의 한 꼭지로 베르길리우스의 서사시 <아이네이스>에 관한 것이다. 일견 졸렬해 보이는 아이네아스의 형상에서 새로운 영웅상을 읽어내고 있는데, 필자의 예시대로 <일리아스>의 영웅들과 대조해봄 직하다. 그리고 '비르투스(virtus)'와 '피에타스(pietas)'도.  

↑ 로마의 가부장 전통(pater familias)을 표현한 조각상. 가운데 중심 인물이 아이네아스이고, 어깨 위에는 아이네아스 가문의 신주(神主)를 든 아버지 앙키세스, 뒤에는 아들 아스카니우스다. 로렌초 베르니니가 1618년부터 2년에 걸쳐 완성했다(로마 보르게세 미술관 소장).

경향신문(07. 02. 09) [헤르메스의 빛으로](6) 새로운 영웅 아이네아스의 탄생

"기억하라! 로마인이여, (굳건한 기강 위에 세워진) 국권의 힘으로 인민들을 다스리는 것, (이것은 너희들만의 기술일진저!), 평화의 법도를 수립하는 것, 곧 순종하는 자에겐 관용을, 오만한 자에겐 징벌을 내리는 것을('아이네이스' 제6권 851~53장)." 이는 제우스가 아버지 앙키세스의 입을 통해서 로마의 건국 원조인 아이네아스에게 내린 천명이다. 로마식 '평천하(平天下)'선언이다. 이 '평천하'를 수행할 인물에 대해서 베르길리우스(기원전 70~19년)는 작품 '아이네이스'에서 그의 첫 등장 장면을 이렇게 그리고 있다. "(중략)온 바다가 심연의 밑바닥으로부터 뒤집히면서 일으킨 거대한 파도를 바람들이 해안으로 거세게 몰기 시작하자, 선원들은 비명을 내지르고, (돛을 지키는) 밧줄들이 아우성치기 시작한다. 일순간에 먹구름이 덮쳐 트로이인들의 눈에서 하늘과 낮을 강탈해 가고, 암흑이 바다를 뒤덮는다. 하늘을 찢을 듯한 천둥과 창공을 불태울 듯한 번개가 번쩍이면서 눈앞에서 일렁이는 죽음을 선원들에게 몰아대는데, 순간 아이네아스는 공포에 질려 사지가 풀려버리고, 절망의 통성(痛聲)과 함께 하늘의 별들을 향해 두 팔을 뻗어 올린다('아이네이스' 1권 84~94장)."

데뷔 무대치곤 너무 초라하다. 울고 있는 아이네아스의 모습은 영웅으로 보기에는 너무 졸렬하다. 유사한 상황에서 하늘에 대고 포효를 내지르는 그리스의 영웅 아이아스를 보라! 죽는 것은 무섭지 않으니 암흑이 아니라 광명천지에서 장렬하게 전사토록 해달라고 제우스에게 대드는 아이아스를! ('일리아스' 17권 645~47행). 이에 반해 아이네아스는 여느 선원들과 마찬가지로 울면서 징징거리고 있다. 용기와 평정심을 가지고 상황을 진두지휘해야 할 사람이 말이다. 이런 그를 영웅이라 할 수 있을까? 영웅답지 못한 그의 모습은 이것만이 아니다. 사랑하는 아내 크레우사도 지키지 못했고, 자신을 가장 사랑했던 카르타고의 여왕 디도를 죽음으로 몰고 간 사내였다. '아버지에 대한 효심(pietas erga parentem)' 때문이라 하지만, 어쩐지 궁색해 보인다. 어쨌든 파파보이(papa-boy)였다. '일리아스'의 아킬레우스와 비교해보라! 소위 자신의 '왕의 남자'인 파트로클로스가 전사하자, 복수를 위해 자신의 모든 것을 걸고 전투에 나선다. 바로 이런 점 때문에 그는 만인의 사랑을 받는 불멸의 영웅이다. 이렇게 영웅이란 지켜주어야 할 것을 지켜주고 소중한 것을 위해선 모든 것을 걸 줄 알아야 한다. 이 기준에서 볼 때 로마의 아이네아스는 자격이 한참 모자라 보인다.

↑ 가슴에 꽂은 비수를 아래로 떨구고 있는 여왕 디도와 이를 애절하게 지켜보고 있는 카르타고 사람들의 모습을 그림과 글로 실은 필사본. 바티칸 도서관에 소장돼 있다.

어쩌면 그리스식, 더 정확히 호메로스식 영웅의 기준에서 보면, '아이네이스'에서 진정한 영웅은 아이네아스가 아니라 오히려 여왕 디도일 것이다. 사랑을 지키기 위해서 모든 것을 희생했으며 자신의 생명도 내던졌던 여인이었기에. 그러나 묻지 않을 수 없다. 여왕 디도의 사랑이 과연 영웅적인지를. 그녀는 한 나라의 책임자다. 그녀 안에는 그녀만 있는 것이 아니다. 자신을 믿고 따르는 카르타고 인민과 카르타고가 그녀의 일부이다. 그녀는 자신만의 존재가 아니고, 만인의 존재이다. 자신의 운명이 곧 국가의 운명인 인물이다. 그런 그녀이기에, 여왕으로서 그녀의 사랑이 사랑이라 할 수 있을까? 오히려 그것은 사랑이라는 이름의 광기(furor)는 아닐까? 이 광기는 사랑의 감정만이 자신의 모든 것이라 속였고, 자기 안의 다른 존재들도 자신의 일부임을 알아보지 못하게 했다. 결국 그녀를 사로잡은 광기는 절제와 품위로 넘쳤던 한 여왕을 죽음으로, 조국을 파멸로 이끌게 된다.

반면, 아이네아스의 태도는 딱 파파보이의 그것이다. 그는 사랑이 아니라 아버지의 명령을 따른다. 아이네아스는 아버지에 대한 효심이 깊은 사람이기 때문이라 한다. 나름대로 인간적인 번민을 하지 않은 것은 아니지만, 종국엔 사랑을 배신한다. 아무래도 쏟아지는 비난을 모면하기는 어려울 듯싶다. 이를 염두에 두었는지 베르길리우스는, 아이네아스의 효심은 파파보이의 그것이 아니라 한다. 이 마음은 단지 생부 앙키세스만을 향하는 혈연적 사랑이 아니기에. 오히려 이 효심 안에는 멸망한 조국의 재건이라는 역사적 사명과 세계에 평화의 법도를 수립해야 하는 천명이 담겨져 있다는 것이다.

한마디로, 아이네아스 안에는 아이네아스만 있는 것이 아니다. 로마 인민과 로마도 함께 있다. 이런 운명(fatum)의 인물이기에, 아이네아스는 자신에겐 황홀하지만 다른 만인에겐 참혹한 사랑의 달콤함을 받아들일 수 없게 된다. 그들도 결코 남이 아니므로. 자식, 아버지, 아내, 형제, 친척, 친구, 로마의 인민으로서 자신들의 몫을 아이네아스 안에 가지고 있기 때문이다. 쉽지 않은 저울질이었으리라. 아이네아스의 선택은 자신만을 위한 사랑의 달콤함이 아니라 자신 안에 있는 다른 이들의 몫에 대한 존중이었다. 이 존중을 로마인들은 피에타스(pietas)라 부른다. 부모가 자식에게 베푸는 사랑에 대해서 자식이 부모에게 가져야 하는 마음, 효(孝)가 바로 그것이다. 이것은 나라가 인민에게, 인민이 나라에 대해서 가져야 할 마음, 곧 충(忠)으로 확장된다. 그러나 이 대목에서 로마식 충효지심(忠孝之心)인 피에타스가 연인에 대한 사랑을 희생시킬 정도의 가치를 가지고 있는지를 되묻지 않을 수 없다. 인간 사회의 기본 원리인 남녀의 사랑을 희생시킬 만한 가치는 없다고 보기 때문이다. 그렇다면 베르길리우스가 피에타스의 확립을 위해 사랑을 희생시킨 데에는 다른 사정이 있었던 것은 아닐까.

여러 답변이 가능하겠으나, 이런 해명도 가능하리라. "이곳은 사는 동안 형제를 증오하는 놈, 아버지를 두들겨 팬 패륜아, (의지할 곳 하나 없는) 피호민을 속인 귀족 떨거지들, 평생 돈만 알고 (행여 새지나 않나 두려워) 혼자서만 꿰차고 친척들에게 베풀지 않은 수전노(이런 족속이 제일 많은데)들, 간통 중에 걸려 맞아 죽은 (연)놈들, 칼과 창을 들고서 들어와선 안 되는 땅을 군홧발로 짓밟은 놈들, 주인을 속이고도 눈 하나 깜짝하지 않은 놈들이 갇혀서 처벌을 기다리고 있는 곳이라오('아이네이스' 6권 608~613행)."

이 대목은 지옥의 한 장면이지만, 실은 지상 로마의 현실이기도 하다. 온갖 잡범들과 법을 어기고서 군대를 로마로 끌어 들이고 있는 악한들로 가득한 지상의 현실을 그대로 보여주는 그림으로, 오늘날의 모습과 다르지 않다. 이런 현실을 어떤 사람이 바로 잡고자 한다면, 그 사람은 어떤 품성을 가져야 할까? 온갖 범죄로 가득한 나라를 바로 세워야 하는 책무를 지닌 사람에게 필요한 덕목은 무엇일까? 이는 분명하다. 그것은 청춘남녀간 사랑의 정념이 아니라, 타인의 몫에 대한 존중과 배려를 할 줄 아는 법과 사람 사이의 관계(人間)를 정립해주고, 사람이 사람답게 처신하도록 해주며, 곧 예의를 회복시켜주는 복례(復禮)의 덕인 피에타스이다. 그것은 전쟁과 내전으로 사람이 짐승으로 떨어지고, 가족도 무너지고, 법의 강제력으로도 나라가 통제가 안 되는 상황에서, 그곳을 다시 사람 사는 곳으로 만들고자 할 때 요청되는 내심(內心)의 명령이다.

칼을 외부의 적으로 향하게 할 때에 필요한 것은 용기(virtus)이다. 그러나 그 칼이 내부의 세계로 향하게 될 때, 그것은 광기(furor)로 변한다. 아무리 내부 세계가 지옥이라 할지라도 저 칼을 내부로 돌려선 안 된다. 복례를 위해서 필요한 것은 폭력이 아니라 정신의 무기이기에. 베르길리우스는 그 무기로 인내와 관용이 결합된 피에타스를 제시한다. 보기에 지저분하고, 하는 일이 일사천리로 시원스럽게 진행되지 않는다 해서 한 판에 싹쓸이해야 한다는, 한 번에 다 씻어내야 한다는 조급증은 이럴 때에 가장 위험한 생각이기 때문이다. 조급증의 소유자는 이런 상황에서 칼의 유혹에 쉽게 넘어갈 수 있다. 이 유혹에 넘어가는 순간, 그 사회는 내전(bellum civile)이 시작된다. 기원전 80년 술라 독재의 로마를 봐라! 정신의 무기는 그 효과가 당장 드러나는 것이 결코 아니다. 이 정신의 무기, 곧 인문 교양이 필요한 단계로 접어든 사회는 따라서 더딤과 답답함을 견딜 줄 아는 법을 요구한다. 쉬운 일은 아니다. 적어도 속전속결을 요구하는 전쟁터의 영웅에게는 더욱 그러하리라.

이런 이유에서 베르길리우스는 아이네아스를 호메로스식 전쟁 영웅에서 인내와 관용의 인물로 탈바꿈시킨다. 더디고 답답해 보이는 지도자로 말이다. "'오 동료들이여, (중략)자네들은 이보다 더 험한 것도 겪지 않았소. (중략)자! 그러니 탄식과 두려움일랑 떨쳐 버리고 용기를 냅시다! 이 고생도 언젠가는 즐거운 추억이 될 것이오. 비록 다양한 고난에 부딪히면서 숱한 험로를 지나고 있지만 우리는 라틴 땅으로 향하고 있소. 운명이 우리에게 보장한 안녕(安寧)의 땅으로 말이오. 그곳에 트로이를 재건하는 것이 우리의 천명이오. 견디시오. 장성하게 뻗어 나갈 나라를 위해서 당신 스스로를 지키시오.'

아이네아스는 이렇게 말했다. 산더미 같은 걱정에 짓눌려 견디기 힘들었지만 얼굴로는 거짓 희망을 지어 보이면서, 가슴 저 깊은 곳으로는 고통을 억누르면서 말이다('아이네이스' 1권 198~206장)." 자기도 견디기 힘든 것을 남에게 견디라고 한다. 이런 면에서 그는 영웅이 아니다. 뭐 하나 해결해 주지도 못하니 말이다. 그렇지만 수많은 고초를 통해서 형성된, 참고 기다릴 줄 아는 법이 그의 내면에 굳건하게 자리 잡게 된다. 이 법은 인고의 세월을 통해 언젠가는 얻게 될 결실(로마의 '평천하')을 위한 기본 원리로 작동한다.

이 점에서 그는 새로운 영웅(heros novus)이다. 그는 자기를 견딜 줄 아는 극기(克己)의 영웅이다. 극기의 힘은, 그것이 힘이라는 점에서 외면의 용기와 다르지 않다. 같은 힘이다. 외부로 향한 용기가 내면으로 승화된 힘이 극기이기 때문이다. 그러나 내면화는 쉽지 않다. 여기엔 저 숱한 견딤의 세월이 필요하다. 하지만 이 견딤을 통해서 마침내 사람이 사람답게 사는 법, 곧 예의를 회복하는 길이 열리게 된다. 이 길을 열어 준 사람이 아이네아스이다. 즉, 그는 '극기복례(克己復禮)'의 영웅이고, 이를 통해서 로마의 '평천하(平天下)'를 가능케 했다. 물론 로마의 '평천하'가 군대의 힘과 외면적 용기에 의지한 면도 없지 않지만, 근본에 자리 잡고 있는 힘은 로마인의 내심에서 작동하고 있는 '극기복례'의 원리인 피에타스일 것이다. 그러므로 로마는 하루아침에 이뤄지지도 않았고, 하루아침에 사라지지도 않을 것이다.(안재원|서울대 협동과정 서양고전학과 강사)

08. 03. 24.

 

 

 

 

P.S. 어제 도서관에서 <아이네이스>(도서출판숲, 2004)를 대출했다. 지금은 절판된 소프프카바인고, 작년에 하드카바로 새로운 판이 나왔다. <일리아스>만큼은 아니지만 <아이네이스>의 경우에도 몇 개의 번역본이 있는데, 라틴어 원전 번역은 천병희 선생의 <아이네이스>(도서출판숲, 2004/2007)가 유일하다(이에 대해서는 http://blog.aladin.co.kr/mramor/1115514 참조). 김명복 교수가 영어본을 중역한 <아이네이드>(문학과의식사, 1998)가 10년전에 나왔었고, 오스트리아 작가 아우구스테 레히너의 각색본을 옮긴 것이 <아에네이스>(문학과지성사, 2006)이다. 영역본이나 러시아어본 등은 인터넷에서 쉽게 읽어볼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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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8-03-25 08:22   URL
비밀 댓글입니다.

로쟈 2008-03-25 08:26   좋아요 0 | URL
네, 고쳤습니다.^^;
 

지난 2006년에 교수신문 지면에서 벌어진 촘스키 논쟁을 옮겨놓는다. 소쉬르 전공자인 김성도 교수의 촘스키 비판에 대해서 촘스키 전공자인 장영준 교수가 반박하면서 논쟁이 오고갔다. 개인적으론 논쟁의 내용보다는 스타일에 관심이 있어서 읽어보게 된 글들이다. 자료 삼아 모아놓는다.   

교수신문(06. 06. 05) 학문비평 : 촘스키 혁명의 진정성을 묻는다

언어학 및 인지 과학 분야에서 촘스키 혁명의 실체에 대한 비판의 매스를 가하는 작업은 아직도 시기상조인 것으로 보인다. 촘스키라는 지성의 아우라가 여전히 심오하고 그가 쌓아올린 상징권력의 보루가 요새화되어 있기 때문이다. 물론 그의 언어 이론을 한 때의 유행이나 이데올로기의 산물로 치부하는 사람들은 촘스키의 언어학 혁명이란 것이 도대체 존재한 적이 있었냐고 반문할 수도 있을 것이다. 1972년 ‘촘스키 혁명’을 외쳤던 언어철학자 존 썰(J. Searl)은 2002년 뉴욕타임즈에 기고한 서평 논문에서 촘스키 혁명의 애초의 목적은 변질되고 포기되었다는 점에서 실패한 혁명이라는 진단을 내린바 있다.

지난 30여년 동안 지식 사회학자(Murray), 언어학사가(Koerner), 과학 철학자(Itkonen), 언어 철학자(Katz), 이론 언어학자(Botha) 등 촘스키 언어학 혁명의 역사적, 인식론적 토대에 대한 다양한 시각의 비판적 연구가 전개되었으나, 문제는 정작 이같은 비판에 귀를 기울이고 생산적 대화를 촉진시켜야 할 촘스키와 그의 추종자들은 묵묵부답으로 일관하였다는 사실이다.

예컨대 지식 사회학의 관점에서 촘스키 패러다임의 성공 요인은 그의 언어학 이론의 내재적 설명력과 과학적 우월성에 기인하기보다는 당시 언어학의 급속한 제도적 팽창, 재정지원, 생성 언어학 학술지의 창간 및 편집권 독점 등 외적 요인도 큰 몫을 차지하였음을 실증적으로 밝혀내었고, 과학 철학의 시각에서는 촘스키가 주장한 언어학의 자연과학적 경험성이 근거가 없다는 점을 꾸준히 제기해왔다.



촘스키 언어학은 ‘셀프 프로모션 마케팅’ 결과?
촘스키는 생성문법이라는 새로운 언어학 패러다임을 제시하면서 인지과학의 혁명을 주도한 장본인이자, 맹렬한 정치 평론가와 사회운동가로서 전 세계를 누비고 다닌다(그는 마침내 내년도에 한국을 방문할 예정이다. *'내년이면 '작년'이었는데, 한국 방문이 무산된 모양이다). 하지만 촘스키에 대한 이같은 중간적 평가를 기축으로 그의 언어학에서의 업적에 대해서 국한시켜보더라도, 지극히 폄훼적인 입장에서 가장 예찬적인 담론에 이르기까지 촘스키 언어 사상의 평가는 다양한 평가의 스펙트럼을 형성하고 있다.

비교적 객관적 자료에 기초하여 서술하고 있는 최근의 부정적 평가에 따르면, 언어학 분야에서의 촘스키의 업적은 희소하고 위대한 창조적 정신의 업적이라기보다는 전형적인 상아탑의 ‘해킹’의 생산물로 치부된다. 즉, 그가 누리는 과도한 평판과 명성은 인간의 이해에 대한 의미심장한 공헌에 의해서 얻어진 것이라기보다는 약간의 셀프 프로모션 마케팅과 기존의 언어 이론에 대한 비방의 남용, 그리고 심지어는 자신의 학문적 발견물의 침소봉대 또는 날조에 의해서 얻어진 것이라는 독설이 가해진다.

실제로 그가 현대 언어학의 판도를 변화시키면서 촘스키의 혁명이라는 공표가 발설된 지 올해로 정확히 반세기가 흘렀는데, 이 기간 동안 다른 학문 분야에서는 엄청난 진보가 이루어졌다. 과학의 발전으로 우주 탐사를, 컴퓨터의 발명을 통한 정보 혁명을 경험하였다. 흔히, 열성 촘스키주의자들이 비교 대상으로 삼는 아인슈타인은 실제로 그의 물리학 이론을 통해서 수많은 물리적 현상을 설명할 수 있었으며, 실생활의 변화를 초래했다.

반면, 촘스키 언어학에서 성취된 결과물은 그에 비하면 너무나 하찮은 것일 뿐만 아니라, 과학사의 의미에서 진정한 독창적 패러다임이라고 보기도 힘들다는 것이 부정적 평가의 시각이다. 하지만 보다 더 큰 문제는 자신의 이론적 정당성과 과학적 타당성이 입증되기도 전에, 그는 절대 다수의 언어학자들로 하여금 자신의 이론적 토대에 기초하여 생성 언어학이라는 동일한 연구 프로그램을 수행하도록 직간접적으로 자극하였다는 점이다. 그래서 어떤 학자는 지식 사회학적 관점에서 지난 50년 동안 단일 인물이 한 학문 분야의 지적 생산 방식을 독점한 것을 현대 언어학의 큰 손실로 보기도 한다. 실제로 ‘Beyond Chomsky’라는 웹 사이트에서 이런 글을 읽을 수 있다. “우리가 오늘날 언어의 본질과 기원을 이해하는 데 있어서 직면한 주요 장벽은 촘스키 패러다임의 지나친 형식주의적, 반경험적, 반역사적 영향이다.”

우연인지는 모르겠으나 촘스키 이론의 진화는 정확히 10년을 주기로 새로운 이론들이 창발되는 행태를 보여주었다. 10년마다 종합된 새로운 연구 프로그램을 발표하고 거의 종교적 신앙을 연상시킬 정도의 맹목성에 기대어 상상을 초월하는 속도와 추진력으로 세계 언어학계에 자신의 이론을 유포 확산시켜왔다. 하지만 이 과정은 거의 예외 없이 극도의 복잡화와 추상화를 보여주고, 이어서 모순이 동반되고, 작은 과학적 ‘아노말리’와 파란들을 일으키면서 다시 해명에 나서고 침체기로 접어드는 패턴을 반복하였다.

특히, 언어를 포함하는 인간의 행동 양식과 정신 활동의 모든 양상들에 대해서 그가 시종일관 적용하는 생물학적 결정주의는 언어와 관련된 일체의 역사적, 사회적, 문화적 차원들을 주변화하거나 아예 소거한다는 점에서 언어학을 포함하는 인문과학에 부적절한 토대이다. 인간 언어가 내재적, 심리적 차원과 더불어 외재적이며 문화적 양상들을 엄연히 갖고 있다는 보편적 사실과 어긋나서, 촘스키 전통의 현대 언어학은 주로 내재적 차원(I-language)에 초점을 맞추었다. 이러한 생물학적 언어학의 시각에 따르면, 생성 문법은 ‘언어 기관’의 추상적 기술로서 간주되고, 인간 정신과 두뇌는 일정 수준에서 동일할 수밖에 없으며, 이 같은 이유에서 촘스키와 그의 추종자들의 공식에서는 정신/두뇌와 같은 표기법이 사용된다.

“생물학적 결정론을 향해 돌진”
이와 같은 맥락에서 그는 특정 문법 현상의 보편성을 찾아내어, 인간의 두뇌가 특정한 문법적 구조를 선호한다는 증거로 삼는다. 그것이 바로 그의 유명한 가설, 보편 문법은 생득적이라는 것과 인간들은 문법에 대해서 생물학적으로 ‘하드와이어’되어 있다는 주장이다. 이러한 언어 능력의 생물학적 토대를 대중들에게 유포시킨 사람은 그의 추종자이며 베스트셀러 심리학자인 핑커이다(주저 ‘언어 본능’에서 보편 언어의 생물학적 토대를 강조하기 위해서 워프와 사피어의 언어 상대성 가설을 무력화시키는 논증 과정을 살펴보면서, 진정 이들 언어학자들의 문화 수준과 지적 양심에 강한 의구심이 들 수밖에 없었다). 생물언어학적 시각에서 궁극적으로 I-언어의 연구는, 최소한 원칙적으로 자연과학과 더불어 통일될 수 있다는 것이다.

이 같은 자연주의적 환원주의는 물리적 현실에 대한 이론들과, 우리의 정신적 능력들에 대한 이론들을 통일시키는 것이 가능하다고 믿고 있다. 하지만, 물리과학과 인지과학의 완전한 통일은 여전히 금시초문이며 언어와 인지에 대한 일방적 자연주의는 도그마적 일원주의의 형식이며 증명될 수 없는 형이상학적 입장일 뿐이다. 그래서 과학 철학자들은 이렇게 말한다. 만약 촘스키 언어학이 물리학과 생물학과 같은 진짜 과학이었다면 과학적 성과의 미비로 이미 수 십 년 전에 재정적 지원을 상실하였을 것이라고 말이다.



이미 실패한 이론, 대중에게 팔아먹어
중반기까지 촘스키 언어 이론의 추종자였던 레빈과 포스탈은 2004년 발표한 ‘타락한 언어학’이라는 다소 자극적인 제목의 글에서 촘스키의 부풀려진 기대와 희망을 맹렬하게 비판하고 나섰다. 그들에 따르면 촘스키의 업적 위에 쌓아올려진 저속한 찬양은 빈번하게 그의 초기 활동에서 이루어진 주장과 약속에 대한 비언어학자들의 무비판적 수용에 의해서 추동된 것이라는 것이다. 촘스키의 대부분의 주장들은 그릇되거나,  과학적 검증이 될 수 없거나, 아니면 그의 기대와 약속들은 전혀 실현되지 않은 상태에 불과하다고 몰아붙였다. 이들 언어학자들이 제시하는 구체적인 예들과 에피소드들을 명시할 수 없지만, 학문적 진리 탐구 규준에 대한 무시, 자기 선전, 비판자들에 대한 무지막지한 언어 남용을 지적할 수 있을 것이다.

특히 촘스키의 비양심적 속임수 가운데서 최악의 것은 이미 실패한 이론을 마치 천재적인 발견인 것처럼 판별 능력이 없는 비언어학 청중들에게 열심히 팔아 넘겼다는 것이다. 또한 최근의 촘스키 계열의 언어학은 물리학의 용어를 빌려와 동사와 형용사의 행동 양식을 설명하기 위한 시도 속에서, ‘가벼운’, ‘무거운’ 문장 또는 ‘약한’, ‘강한’ 유인력 따위의 술어들을 사용하여 언어학의 과학성을 과시하려 한다. 이같은 제스처는 촘스키가 노출하는 또 다른 위선이다.

결국 필자가 이 짧은 글을 통해서 제기하고자 하는 것은 이런 물음이다. 학문적으로 윤리적으로 결정적 문제점을 노출한 이력의 소유자이면서도 너무나 과도한 지적 영향력을 행사해 온 인물에 대해서 그에 상응하는 정당한 비판을 회피해왔다는 점에서 이제 한국 학계에서도 맹목적 찬양이 아닌 균형 잡힌 평가를 준비할 계제가 되었다는 점이다. 촘스키 혁명이라는 신화가 기정사실로 고착화되기 전에 말이다.(김성도 고려대교수)

교수신문(06. 07. 02) "촘스키의 보편문법, 생물학적 증거 있다”

촘스키 혁명에 대한 김성도 교수의 비판(교수신문 제401호)에 대해 장영준 중앙대 교수가 반론을 제기했다. 김성도 교수는 촘스키 언어학이 과학사의 차원에서 독창적 패러다임이 아닌데다가, 촘스키의 생물학적 결정주의는 일체의 역사적, 사회적, 문화적 차원들을 주변화하거나 소거해 인문과학에 부적절한 토대이고, 자연주의적 환원주의는 도그마적 일원주의의 형식이며 증명될 수 없는 형이상학적 입장일 뿐이라고 주장했다. 김 교수는 이러한 주장과 함께 촘스키에 대한 맹목적 찬양에서 벗어나 균형잡힌 평가를 제안하고 있다. 이에 장영준 중앙대 교수의 글과 그에 대한 김성도 교수의 답변을 함께 싣는다.(편집자주)

어떤 강연회에서 촘스키는 자신을 “생존하는 가장 중요한 지식인”이라고 소개하는 사회자의 말에 대해 매스미디어를 그대로 믿어서는 안 된다고 지적한다. 촘스키는 자신에 대해 이러한 평가를 내린 뉴욕타임즈가 바로 같은 글에서 “그가 근거 없는 주장들을 일삼고 있다”고 언급하고 있음을 지적한다. 어떤 부분을 인용하는가에 따라 한 인간에 대한 평가가 이렇게 달라질 수 있음을 보여준 것이다.

타당성 있는 지적으로 성찰 계기돼
촘스키 혁명의 진정성을 묻는 김성도 교수의 글은 타당한 측면이 있을 뿐 아니라 여러 가지 성찰의 계기를 마련했다는 점에서 참으로 반가운 글이다. 그러면서도 그의 글을 대하면서 떠오르는 첫 생각은 모든 언론의 본질적 위험에 대한 촘스키의 지적이 역시 일리있다는 것이다. 제목으로 뽑은 “침소봉대와 날조”, “비언어학자의 무비판적 수용”만 보면, 촘스키는 “학문적으로, 윤리적으로 결정적 문제점을 노출한 이력의 소유자”임이 틀림없다. 짧은 글이기 때문에 그러한 판단의 근거들을 김 교수가 낱낱이, 충분히 밝힐 수는 없었을 것이다. 그러나 “날조”가 있었다면 이미 윤리적 차원을 떠나 실정법적 문제까지 초래되었을 것임은 명백하다. 매우 격렬한 단어들이 ‘남용’되었다는 소회와 더불어, 김 교수의 비판이 떠올리는 몇 가지 문제들을 생각해보자.

첫째, 촘스키 언어학은 ‘셀프 프로모션 마케팅’의 결과인가. 김 교수는 촘스키 패러다임의 성공 요인이 “그의 언어학 이론의 내재적 설명력과 과학적 우월성에 기인하기보다는 당시 언어학의 급속한 제도적 팽창, 재정지원, 생성 언어학 학술지의 창간 및 편집권 독점 등 외적 요인도 큰 몫을 차지”하였다는 평가를 인용한다. 촘스키 언어학의 전 세계적 파급과 영향력을 외적 요인의 결과로 보는 것은 본말이 전도된 것이다. 이론의 우월성과 생명력이 없었다면 어떻게 그의 언어학이 전 세계적으로 팽창하고, 재정지원을 받고, 학술지들이 대거 창간될 수 있었겠는가. 김 교수는 또 “언어학 분야에서의 촘스키의 업적은 희소하고 위대한 창조적 정신의 업적이라기보다는 전형적인 상아탑의 ‘해킹’의 생산물로 … (중략) … 기존의 언어 이론에 대한 비방의 남용, 그리고 심지어는 자신의 학문적 발견물의 침소봉대 또는 날조에 의해서 얻어진 것”이라는 독설을 인용한다.

이것은 한 마디로 독설이자 한 자연인에 대한 ‘독살’이다. 이러한 독설은 전적으로 촘스키 언어학에 대한 이해의 부족에서 오는 판관의 실수로 보여진다. 잘 알려졌다시피, 촘스키는 기존의 언어이론 자체를 거의 언급하지 않는다(그런 점에서는 그는 매우 독선적이고 오만하다). 때문에 기존의 언어이론에 대한 ‘비방의 남용’이란 성립하지 않는다. 오히려 그는 자신의 연구가 데카르트, 훔볼트, 예스페르센, 전통문법 등의 연구성과들에 그 모태를 두고 젖줄을 대고 있음을 여러 곳에서 언급하고 있다. 뿐만 아니라 그가 현대 언어학의 판도를 바꾼 지 반세기가 흐르는 동안, 그는 수많은 당대의 반대자들로부터 제기되는 비판을 수용하면서 이론을 보강해왔다. 비판자들과 생산적 대화를 게을리 했다는 김 교수의 말은 일면 수긍할 수도 있으나 한편으로는 사실이 아니다.

둘째, 김 교수는 촘스키 언어학이 꽃피어온 지난 반세기 동안 다른 학문 분야에서는 엄청난 진보가 이루어졌다고 주장한다. 가령 아인슈타인은 자신의 물리학 이론을 통해서 수많은 물리적 현상을 설명했을 뿐 아니라 실생활의 변화를 초래했다고 지적한다. 맞는 말이다. 실용인문학을 추구하는 김 교수의 입장에서는 이러한 평가에 동의할 수 있을 지도 모르겠다. 그렇지만 ‘실생활의 변화’를 초래하는 학문이 훌륭한 학문이라는 의미는 물론 아닐 것이다. 언어학과 같은 연성과학(soft science)과 물리학 등의 경성과학(hard science)의 유용성을 비교하는 것은 아무래도 촘스키 언어학 자체에 대한 비판은 아니다. 사하로프의 물리학 이론이 수소폭탄으로 이어지며 엄청난 실생활의 변화를 초래했을 때 우리가 그를 훌륭한 학자로 보아야 하는 것은 아니지 않은가.   

셋째, 촘스키 언어학의 이론 내적인 문제에 대한 김 교수의 지적을 보자. 그는 촘스키의 이론이 “거의 예외 없이 극도의 복잡화와 추상화를 보여주고, 이어서 모순이 동반되고, 작은 과학적 ‘아노말리’와 파란들을 일으키면서 다시 해명에 나서고 침체기로 접어드는 패턴을 반복하였다”고 말한다. 역시 맞는 말이다. 그러나 복잡화와 추상화가 이론의 약점인가? 옳은 것이라면 그것이 아무리 복잡하더라도 옳은 것은 옳은 것이다. 아인슈타인의 물리법칙들은 그쪽 분야 사람들에게 너무나 명료하고 간단할지 모르지만 범인들에게는 너무나 복잡하고 추상적일 것이다. 문제는 촘스키의 이론이 옳은 것인가 아닌가에 있지 복잡하냐, 추상적이냐에 있지 않다. 이 점은 김 교수도 잘 알고 있을 것이다.



복잡화와 추상화가 이론의 약점인가?
넷째, 김 교수는 촘스키 언어학이 시종일관 생물학적 결정주의에 빠져 “언어와 관련된 일체의 역사적, 사회적, 문화적 차원들을 주변화하거나 아예 소거한다”고 지적한다. 이 점에 대해서는 많은 학자들 뿐 아니라 촘스키 자신도 동의하는 것이다. 이에 관해 촘스키는 언어를 내재언어와 외재언어로 구분하여, 자신의 연구가 내재언어를 대상으로 한다고 언급한 바 있다.

그리하여 촘스키에게 있어서 내재언어의 연구는 한 개인에 국한되는 ‘언어기관’의 연구이고 정신/두뇌의 연구이다. 언어학이 인지과학이라 불리는 이유이기도 하다. 언어자료를 연구대상으로 삼는 전통적, 고전적 의미에서의 언어학자들로 하여금 생성문법이 더 이상 언어학이기를 포기했다고 비판하게 만드는 지점도 바로 여기이다. 언어학이 생물학으로 환원 내지 포섭되었다는 것이다. 오늘날 코퍼스 언어학이 주목을 끌게 된 것은 부분적으로 이러한 상황에 대한 반응으로도 보인다.

다섯째, 김 교수는 촘스키 언어학이 “생물학적 결정론을 향해 돌진”했다고 지적한다. 같은 맥락에서 생물언어학(bio-linguistics)이란 용어가 회자된 지도 꽤 오래 되었다. 보편문법은 생득적이라는 주장, 인간의 문법은 생물학적으로 ‘하드와이어’되어 있다는 주장은 촘스키 언어학의 정수라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이러한 주장의 검증을 위해 많은 심리학자, 생물학자, 언어습득학자들이 노력을 기울여온 결과, 일부는 근거를 얻은 것으로 보이고 일부는 실패한 가설로 폐기되기도 하였다. 그런 의미에서 촘스키의 언어학은 기존의 어떠한 이론보다도 강력한 학문적 역동성(dynamism)을 가졌다고 할 수 있을 것이다.

각론에 대한 정밀한 검증 필요
마지막으로 촘스키가 “이미 실패한 이론을 대중에게 팔아먹었다”는 김 교수의 비판을 살펴보자. 서두에 언급된 존 썰(Searle)의 비판을 촘스키 혹은 그의 ‘추종자’들이 개의치 않는, 혹은 무시하는 듯한, 이유는 자명하다. 도대체 촘스키의 어떤 이론이 실패했다는 것인지가 분명하지 않기 때문이다. 김 교수에 의하면 포스탈(Postal)은 2004년 발표한 ‘타락한 언어학’이라는 다소 자극적인 제목의 글에서 촘스키의 부풀려진 기대와 희망을 맹렬하게 비판했다고 하지만, 막상 그는 여전히 생성문법의 틀 안에서 논문들을 발표하고 있다(포스탈은 1995년 이후의 촘스키 이론 모델에 대해 반대한다).  아인슈타인의 이론을 비판할 수 있는 사람은 모르긴 몰라도 결국 그 분야의 전문가들일 것이다. 물론 전문가만이 어떤 사안에 대해 비판할 수 있다는 말은 아니다.

그러나 김 교수가 언급한 인접 학문의 교수들이 과연 촘스키 언어학의 핵심을 잘 이해하고 있는지는 매우 의심스럽다. 김 교수가 우려하고 있듯이 “비언어학자들의 무비판적 수용”이 문제의 핵심이라면 그것은 분명 반성의 여지가 있다. 그러나 전 세계의 수많은 언어학자들이 “그릇되거나,  과학적 검증이 될 수 없거나” 한 촘스키의 기대와 약속들에 현혹되었다고는 생각하지 않는다. 촘스키 자신의 말대로 그는 과학자들을 훈련시키거나 기대해왔지 추종자(followers)를 양육한 것은 아니다.

촘스키의 업적에 대한 저속한 찬양은 금물이다. 그러나 그의 이론에 대한 각론적이고 정밀한 검증이 없이 총체적으로 진단하는 것은 위험하다. 특히 “실패한 이론을 천재적 발견인 것처럼 비언어학 청중들에게 팔아넘겼다”는 공격은 얼마나 비과학적인가. 이러한 공격은 촘스키뿐만 아니라, 그가 제시한 언어학의 진정성을 지금까지 점검, 보완, 반박해온 전 세계 수많은 언어학자들을 싸잡아서 비언어학자로 몰아붙이는 모독이 아닐 수 없다. 총론적 비판이나 단죄에 앞서 각론적인 점검이 수행되어야 한다.

필자는 촘스키가 “학문적, 윤리적으로 결정적 문제점을 노출한 이력의 소유자”란 평가에 결코 동의할 수 없지만, 전대미문의 어마어마한 지적 영향력을 행사해 온 한 인물에 대해서 이제 “맹목적 찬양이 아닌 균형 잡힌 평가”를 해야 한다는 김 교수의 말에 전적으로 동의한다. 좀 더 구체적인 논쟁이 양산되기를 기대한다.(장영준 중앙대 교수)

교수신문(06. 07. 02) “구체적 증거 보여달라” … 비판적 언어학 수용사 필요

장영준 교수의 반론을 읽고 난 후 필자의 비평이 최소한 절반은 성공했다는 생각이 들었다. 장 교수는 필자가 제기한 촘스키 언어 사상의 균형 잡힌 평가의 필요성을 수긍했기 때문이다. 필자가 평소 존경하던 국내 촘스키 언어학 이론의 권위자 가운데 한 분인 장 교수가 자신이 수십년 동안 꾸준하게 연구해온 이론적 패러다임의 창시자에 대한 다소 자극적인 수사와 가파른 언어에  대해서 비교적 차분하게 반박 논리를 전개해준 것에 대해서 감사한다.

하지만 그 짧은 글을 통해서 필자가 궁긍적으로 던진 물음의 본질은 거의 전혀 감지되지 못했고, 대부분의 문제 제기는 필자가 사용한 표현들에 함몰되어 있다는 점에서 아쉬움이 크게 남는다. 실상, 장 교수가 강조 표시를 하면서 심기가 불편함을 드러낸  자극적 독설들은 필자의 것이 아닌, 反촘스키 진영에서 피력된 표현들이다. 더구나 이같이 거친 표현들을 사용한 학자들은 촘스키 언어학을 수십년 동안 추종하고 전파했던 그의 직계 제자들이었다.

“비판의 본질 접수되지 않아 아쉽다”
필자는 다만, 지금까지 예찬 일변도나 백과사전식 상투어들을 지양하고, 기존의 찬동 일변도의 태도에 경종을 울리고 보다 균형 잡힌 시각의 필요성에 대한 주의를 환기시키기 위한 논증 전략의 차원에서 그같은 반대 주장을 先텍스트로서 사용했을 뿐이다. 촘스키가 어떤 절대적 신화가 아닌 이상, 그가 지난 50년 동안 받아온 온갖 찬양과 흠모의 수사에 못지않게, 그의 학문적 성취의 진정성과 의미에 대한 비판적 태도와 논의는 원칙적으로 장려되어야 할 것이다. 

독자들의 따분함을 피하기 위해서 필자는 장 교수가 반론으로 제시한 사항들에 대해서 조목조목 역반박을 가하는 수순을 밟는 대신 장 교수가 제기한 내용을 재해석하고 이어서 이 짧은 지면에서 필자가 제기하려 했던 본질적 문제를 다시 환기시킬 생각이다.

먼저 장 교수는 물론, 독자들에게 분명히 할 것이 있다. 장 교수의 비평을 보면, 필자가 反촘스키 진영에 서서 그의 지적 성취의 모든 것을 원천적으로 부정하려는 것처럼 비춰질 소지가 있다. 그러나 분명히 말하지만, 필자가 처음 언어학을 접한 80년대 초부터, 지금 이 순간까지도 촘스키는 필자를 포함한 모든 언어학자들에게 넘어야 할 높은 산이요, ‘문제’ 그 자체이다. 아울러 그가 20세기의 인지과학 혁명을 촉발시킨 사유의 원천이라는 점을 분명히 인정한다. 기실, 그가 제기한 세 가지 언어학의 과제, 언어의 기원, 언어 능력, 그리고 언어의 사용은 언어 연구의 본령이요, 정수라 해도 과언이 아니다.

그런데 여기서 현대 언어학의 창립자이자 문화과학의 패러다임을 창발시킨 소쉬르가 제시했던 언어학의 3대 과제인 언어의 관찰과 기술, 일반 법칙 추론, 언어학 자체의 한계 설정 및 본질 규정을 떠올리지 않을 수 없다. 왜냐하면, 또 다른 시각에서 이들 세 가지 과제들은 섣부른 보편주의에 빠지지 않고 현상의 기술과 설명, 보편과 특수의 미묘한 변증법을 예기하고 있다는 점에서, 촘스키 연구 프로그램에서는 찾을 수 없는 또 다른 ‘길’을 제시하고 있기 때문이다. 특히, 세 번째, 과제는 바로 언어학 이론 자체의 인식론적 토대에 대한 철학적 메타적 성찰과 자기 반성성을 담고 있다는 점에서, 필자가 시도한 언어학 이론의 비평 작업에 정당성을 부여한다.

지면 관계상 장 교수가 제기하는 문제를 모두 답할 수 없어 몇 가지 문제만을 재론한다.  첫째, 장 교수는 필자가 제기한 촘스키 언어학 이론의 성공 요인으로 제시한 제도적 사회적 요인들을 지적한 것에 대해서 본말이 전도된 것이라고 반박했다. 하지만 이것은 과학 지식의 성공 요인이 이론 내재적 내용과 제도적 여건들 사이의 상호 종속적 관계에 있다는 지식 사회학의 매우 기본적인 상식을 무시한 데에서 기인한다. (이 점에 대해서는 근대 언어학의 제도화 과정을 지식사회학 관점에서 고증한 암스테르담스카(Amsterdamska)의 노작을 참조하기 바란다). 예컨대, 촘스키가 MIT에서 언어학과를 창립하고 초기에 막대한 재정적 지원을 받은 것은 촘스키 이론 그 자체의 과학적 탁월성 때문만이 아니라, 2차 대전 이후, 정보 처리의 중요성을 간파한 미국방성이 자연언어의 자동 번역이라는 국가적 사업에 대대적인 투자를 했기 때문이었다.

미 국방성에서 연구비 받은 촘스키
이 대목에서 흥미로운 것은 그가 미국의 제국주의적 침략 전쟁의 본산지로 그렇게 맹렬하게 비난했던 미국방성으로부터 그 자신은 물론 생성 언어학 연구의 상당수가 재정 지원을 받으면서 성장했다는 아이러니이다. 심지어 최근의 한 인터뷰에서 촘스키는 교수 초기 시절 보수의 절반 가량을 국방성으로부터 받았으며, 실제로 군사적 연구와 거리가 먼 언어학의 성격을 변질시켜 가면서까지 연구비를 수주하는 정치적 수완을 발휘하였음을 스스로 발설한 바 있다.

둘째, 장 교수는 필자가 인용한 ‘인접학문의 교수들’이 촘스키 언어학에 대해서 정통하지 못했다는 혐의를 두면서 그 비판의 적효성을 단숨에 무력화시킨다. 이것은 너무나 터무니없는 주장이다. 그렇다면 이들 언어학사가, 과학철학자, 전문 언어학자, 언어철학자들이 촘스키 비판의 자격이 없다면, 누가 촘스키의 비판자 역할을 맡을 수 있단 말인가. (이들 가운데서는 초기 변형 문법의 창시부터 70년대 초까지 촘스키의 가장 가까운 동반자였던 카츠 교수도 있다) 촘스키 저작은 크게 전문적인 언어학(technical linguistics) 이론서와 언어 이론의 철학적 토대를 다루는 철학적 언어학(philosophical linguistics)으로 크게 양분된다.

그런데 문제는 촘스키 계열의 언어학자들 가운데 이 양자에 대해서 동일한 가치를 부여하면서 연구하는 학자를 찾아보기 힘들다는 사실이다. 요컨대 촘스키 생성 언어학의 핵심 학자들 가운데 그 누구도 촘스키 언어 이론의 인식론적 구조와 정당성에 대해서 상세한 설명을 제시하는 학자는 찾아보기 힘들었다. 그저 모국어 화자의 직관에 의존하여 생성 문법 이론을 데이터에 적용하고 그것의 적합성을 따져 묻는 작업만이 중시된 것이다.

끝으로, 촘스키 언어학의 생물학주의에 대해서 한 마디. 지난 30년 동안 촘스키는 시종일관 인간 정신의 외부에 있는 언어 개념의 혼란성을 이유로, 언어 연구는 언어 지식을 구성하는 정신적 구성체에 초점을 맞춰야 한다고 주장해왔다. 그리고 인간 언어는 궁극적으로 생물학적 대상이며 자연 과학의 방법을 사용하면서 분석되어야 한다는 당위적 필요성만을 반복해왔다. 이제, 이같은 촘스키 언어학의 생물학적 토대에 대해서 순수한 질문을 던지고 싶다. 보편 문법 과학성을 입증할 수 있는 생물학적 증거가 현재 얼마나 확보되었으며, 아울러 인간의 언어 구사 능력을 설명할 수 있는 자연과학적 방법론을 장 교수를 비롯한 생성언어학자들이 실제로 사용하고 있는가.

필자가 제기하려 했던 문제는 무엇보다 지난 50년 동안 세계의 언어학계를 평정하고 그 지적 헤게모니를 휘둘러 온 촘스키의 언어 사상에 대한 총체적 비판의 시점에 임박했다는 것이다. 그리고 이같은 문제의식은, 하나의 특정 언어학 이론이 과도한 독점적 주류를 형성하여 다른 언어학 이론들을 소외시키는 부작용을 낳았다는 점에서 학문의 다양성 정신을 훼손시키고 이것은 궁극적으로 언어학 자체의 건강한 지식 생태계를 교란시켰다는 점에서 출발한다.

자연과학적 방법을 실제로 사용하느냐가 중요
그리고 이 문제는 다시 세 개의 하위 주제로 나뉘어진다. 하나는, 그의 이론의 과학성과 진정성의 문제이며, 또 하나는 지금까지 알려진 바대로, 과연 그가 행동 하는 양심의 선구자인지, 그리고 그가 자신의 언어학 이론을 구축하면서 타자의 비판에 대해 얼마나 성실하고 진지하게 소통했는지 점검하면서, 그의 학문적 윤리성을 따져 보자는 것이었다.

마지막으로, 지난 40년 동안 촘스키 가라사대 식의 맹목적 수용과 추종을 당연시한 한국의 언어학자들(여기에는 애석하게도 일군의 국어학자들 역시 포함된다)에게 그의 언어 모델의 획일적 적용을 통해 과연 한국어의 본질과 구조가 얼마나 해명되었는지 점검해, 비판적 서구 언어학 수용사를 진작시키려는 암묵적 의도가 있었던 것이다. 만약, 이같은 문제의식을 장 교수가 동감하고 그 취지에 찬동한다면, 필자의 글과 장 교수의 반론에서 제기될 수 있는 사소한 오해나 곡해는 부차적인 문제이다.(김성도 고려대 교수)

08. 02. 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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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향신문에서 오랜만에 김우창 교수의 칼럼을 옮겨온다. 그간에 몇 번 '계몽적인' 내용의 칼럼을 옮겨오려고 했다가 이런저런 이유로 무산된 적이 있는데(때론 바빠서, 때론 굳이 퍼오나 싶어서) 이번엔 대입제도와 관련된 내용이기도 하기에 수고를 무릅쓴다. 마침 해마다 1학기엔 1학년 전공과목을 강의하고 있는데 '자기가 선택하는 삶', 혹은 '자기가 선택하는 공부'에 대한 생각을 한번쯤 가다듬어볼 필요도 있다 싶다. 새삼스럽진 않을지라도 말이다. 거기에 '저녁이군'에 대한 단상은 음미해둘 만하다. 

경향신문(08. 02. 14) 자기가 선택하는 삶

오스트리아의 시인 후고 폰 호프만슈탈의 시 ‘외면적 삶의 노래’는 큰 주제를 다루는 것은 아니면서 인생에 대하여 심금에 닿을 만한 관찰을 담고 있다. 사람의 삶에는 방황과 고독과 고통 또 기쁨과 열매가 있으나, 결국은 “이 모든 것이 무슨 소용이 있나?” “이런 저런 많은 것을 보아서 의미가 있나?” 하는 물음들이 일게 된다. 그런 가운데에도 그것을 보상해줄 수 있는 것은, 작은 대로 깊은 느낌의 어떤 순간이다. 무슨 소용인가 하지만. “그래도 ‘저녁이군’ 하고 말하는 사람은 많은 것을 말하는 것”이다--호프만슈탈은 이렇게 말한다. “이 하나의 말-깊은 뜻과 눈물이 흐르는 이 하나의 말”로부터 “마치 벌집 구멍으로부터 진한 꿀 흘러 내리듯” 감미로움이 흐를 수 있다.

저녁은 해의 밝음이 가고 밤의 어둠이 시작되는 시간이다. 명암의 교체만으로도 저녁은 특별한 감흥을 준다. 또 이 감흥에는 더욱 지적인 인식이 스며 있다. 저녁 시간은 하루의 끝이다. 그것에 주의하는 것은 하루를 되돌아보고 그것을 하나로 포착하는 것이다. 저녁이라고 말하는 것은 이 감흥과 깨달음을 언어로 표현하는 행위이다. 외면화된 삶에서 귀중한 것은 이와 같이 작은 내면성의 깨달음을 분명히하는 것이다.



외적인 순응만 강요된 사회
‘외면적 삶의 노래’는 노년의 지혜를 표현하고 있는 것처럼 들린다. 그러나 호프만슈탈이 이 시를 쓴 것은 스무 살이 갓 넘었을 때였다. 이 시를 썼을 때, 그는 빈의 심미주의적 시풍의 영향 하에 있었다. 감흥의 중요성을 말한 것은 이에 관계된다고 할 수 있다. 그러나 이 시는 마음 깊이에서 분명하게 느껴지는 삶을 살겠다는 그의 젊은 시절의 심정을 표현한 것이기도 하다. 법학 공부를 하던 호프만슈탈은 이 시를 쓸 무렵 문학과 철학으로 방향을 바꾸었다.

그렇기는 하나 이 시에서의 내면성의 강조는 그럴싸하게 들리다가도, 시인의 젊은 나이를 생각하면, 그것이 현실 삶의 도피일 수 있다는 의심을 갖게 한다. 내면이 없는 외면이 맹목인 것은 틀림이 없지만, 외면이 없는 내면도 공허한 일이다. 그러나 세상은 외면적 삶에 중요성을 두는 경향이 있는 만큼 내면을 강조하는 것은 균형을 위해서도 필요한 일이다. 내면의 동의 없이 사는 삶은 결국 나의 삶이 아니라 남의 삶을 사는 것이라 할 수 있다.

이상적인 삶은 스스로가 의미 있다고 느낄 수 있는 삶을 바깥세상에서 살고 또 가능하다면 그것을 스스로 만들어 가는 삶이다. 개인의 삶의 문제를 떠나서, 외면적 순응만을 요구하고 내면적 의미의 추구를 허용하지 않는 사회도 창조성의 근거를 잃고 무엇보다도 안정의 바탕을 마련하지 못한다. 그러나 안과 밖이 맞아 들어가는 삶이 쉽게 가능한 것이 아님은 말할 필요도 없다.

젊은 시절은 자신이 수긍할 수 있는 의미를 실현해줄 삶을 추구하다가도 대개는 사회의 요구에 타협하면서 안착점을 찾게 되는 것이 보통이라고 할 것이다. 그런데 그러한 젊은 시절이 없는 사회가 우리 사회가 아닌가 한다. 교육제도 그리고 대학 입시제도의 혼란도-사실 또 많은 사회 문제도--깊은 근본에 있어서는, 철저하게 외면화된 우리의 삶의 방식에 연유하는 것이 많다고 할 수 있다.

이번 달로 오랫동안 계속되던 대학 선발 절차가 마감된다. 말할 것도 없이 원하는 대학에 들어간 사람도 있고, 입학은 되었지만 원하지 않는 대학에 입학이 된 사람도 있고, 전적으로 새로 입시 준비를 해야 할 사람도 있다. 원하는 대로 된 사람에게는 축하의 말을, 원하는 대로 되지 않은 사람에게는 위로의 말을 주어야 마땅하겠지만, 입시제도의 난관을 겪는 모든 젊은이들은 위로를 받아야 한다고 할 수도 있다.

우리 사회 제도에서, 대학에 지원하는 사람들은 모두가 일류대학에 들어가기를 희망한다. 일류대학에 들어가는 데에는 수문장이 있다. 들어가기 위해서는 수문장이 내놓는 물음과 지원자의 답이 맞아들어 가야 한다. “열려라, 참깨!”라는 암호를 발견하는 데에 학생들은 수없는 시간을 보낸다. 그것은 원서를 내기 전의 1년 또는 2~3년일 수도 있고, 요즘 추세로 보면 유치원을 들어갈 무렵부터 수문장이 내어놓을 법한 암호들을 익히는 데에 긴긴 세월을 보내지 않으면 안 된다.

일류대학에 들어가려는 것은 얼른 생각하기에는 일류의 교육을 받기 위해서이다. 그런데 일류대학의 교육이 참으로 이류와 다른가? 교육의 내용의 높고 낮음은 교수와 교육 프로그램과 교육시설에 달린 것일 터인데, 참으로 이러한 항목들에서 일류와 이류의 차이가 그렇게 큰 것인가? 일류, 이류, 삼류 하는 말들이 시사하는 차이가 크다고 상정하더라도, 대학 지망생이나 그 부모가 이러한 것들을 고려하고 난 결과 일류대학을 선택하는 것일까? 대학을 가까이 돌아본 사람이면, 차별화해서 이야기되는 대학들에서 받는 교육이 크게 차이가 나지 않는 것이라는 것을 인정하지 않을 수 없을 것이다. 몸 담고 있는 대학의 일류, 이류에 따라서 학문이나 사회봉사 활동에서 교수들의 수준이 반드시 크게 차이가 나는 것으로는 보이지 않는다. 차이가 난다고 하여도 학부 학생들의 수용 능력을 생각할 때, 그것이 크게 중요하지는 않을 것이다. 비슷한 이야기는 시설이나 교육 프로그램에 대해서도 할 수 있다.

중요한 문제는 대학의 선택이 참으로 나의 선택이 아니라는 것이다. 내가 대학을 선택하는 것 같지만, 실제는 나는 대학에 의하여 선택되는 것이다. 전공이나 학과의 선택에서도 그러하다. 내가 어떤 학문을 공부하고 싶은가는 중요치 않다. 어느 단과대학, 어느 학과가 나를 받아주고, 나중에 어느 이름 난 직장에서 나를 받아주겠느냐 하는 것이 중요하다.

대학·직장서 선택 당하는 현실
내가 원하는 공부가 어떤 것인가, 내가 살고자 하는 인생이 어떤 것인가를 아는 일이 쉽지 않다. 바른 판단의 한 요소는, 지혜의 말씀에 귀 기울이는 것에 못지 않게, 무엇을 의미 있는 것으로서 절실하게 느끼는가-이에 관련하여 마음 속에 들려오는 부름을 아는 일이다. 심증이 생길 때까지는 방황이 있게 마련이다. 그런데 우리 사회에는 스스로 느끼고 생각하는 일을 시험하고 삶의 방향을 정할 수 있게 하는 방황을 허용할 여유가 없다.

우리는 인생에서 값진 것은 모두 밖으로부터 온다고 생각한다. 물건을 고름에는, 무엇이 내 마음에 드느냐보다는 무엇이 명품이냐가 중요하다. 아파트를 구하는 데에도 기준은 편의나 보금자리로서의 느낌보다 부동산 시장의 전망이다. 삶의 의미는 사회적 지위의 명품 가치에 의하여 정해진다. 물론 외면적 사회에서, 이름은 실질적인 의미를 갖는다. 이름은 허영심을 만족시켜준다. 그것은 취직이나 존경이나 사회적 지위와 교환할 수 있는 고가의 어음이다. 그러나 실질과 허상이 교차되는 명품의 세계에서 잃어버리는 것은 나의 인생이다. 나는 참으로 내가 원하는 공부가 무엇인가를 알지 못한다. 아마 더 중요한 것은 삶의 작은 순간들을 알아보지 못하는 일일 것이다. 오늘날 하루가 끝난 다음, “저녁이군”하고 저녁의 감흥에 주의할 수 있는 사람은 실로 극히 희귀한, 행복한 사람이라고 할 것이다.(김우창/ 고려대 명예교수)

08. 02. 13.

P.S. '저녁이군'이란 말에서 아마도 가장 흔하게 떠올릴 수 있는 그림은 밀레의 <만종>일 것이다. 하루의 고단한 수고를 마무리짓는 '의식'을 감사의 기도를 올리는 농부 부부의 모습에서 읽게 되는 그림이다. 생각해보니 저녁노을을 음미해본 때가 언제였던가 싶다. 운동장에서 뛰어놀다가 저녁상을 차려놓았다고 부르시는 어머니의 목소리에 부랴부랴 동생들과 뛰어가며 바라보던 노을이면 어느새 30년 전이다!   

 

혹은 (내가 좋아하는) 물기 머금은 저녁. 압바스 키아로스타미의 사진 중에 마음에 드는 것이 있어서 옮겨놓는다. 내일은 '퇴근시간이군'이란 말 대신에 '저녁이군'이라고 중얼거려봐야겠다. 속으로라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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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8-02-13 23:45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08-02-13 23:49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08-02-14 11:03   URL
비밀 댓글입니다.

로쟈 2008-02-14 11:54   좋아요 0 | URL
저는 진로 문제에 대해선 특별하게 고민해본 적은 없구요, 학부 4학년때 잠시 책이 읽히지 않아서 불안했던 적은 있습니다.^^; 관심사와 여러 주변 여견을 잘 고려하시길 바랍니다. 더불어, 공부도 때가 있다곤 하지만 요즘은 '평생공부' 시대이니까 공부와 취업을 양립불가능한 것으로만 보지는 마시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