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번 '장자 읽기'에 이어서 '노자 읽기' 리스트도 만들어보았다. 이 페이퍼는 그 리스트의 배경을 짚어주는 것인데, 교수신문의 서평과 담비의 리뷰를 관련자료로 옮겨온 것이다. 교수신문의 서평은 가장 최근에 출간된 번역서인 최재목 교수의 <노자>(을유문화사, 2006)에 대한 것인데, 이 책은 오늘 손에 들었지만 상당히 공을 들인 역주서로 흡족하다는 인상을 준다. 전문가의 서평을 미리 읽어두기로 한다.

그리고 담비의 리뷰는 노자의 사상이 親유가적인가, 反유가적인가, 하는 오래된 쟁점을 다시 다루고 있는데(이와 비슷한 스케일의 쟁점으론 '주역, 유가의 사상인가 도가의 사상인가'라는 게 있다) 이 문제에 대해서는 최재목 <노자>의 서평 필자이기도 한 조민환 교수의 <유학자들이 보는 노장철학>(예문서원, 1996) 외에 두 사상의 뿌리를 다룬 방동미 교수의 <원시 유가 도가 철학>(서광사, 1999)도 참고삼아 읽어볼 수 있겠다.

 

교수신문(07. 02. 05) '죽간본' 최초 완역서 - 노자사상의 本意 꿰뚫어

우리가 노자사상을 유가사상과 관련지어 말할 때 일반적으로 한대 사마천(史馬遷)이 ‘사기’에서 “노자를 배우는 사람들은 유학을 배척하고 유학을 배우는 자도 노자를 배척한다(世之學老者, 則絀儒學, 儒學亦絀老子)”라고 말한 것을 떠올리며, 노자는 유가와 대척점에 서 있는 것으로 이해한다. 역사적으로 많은 연구가들이 ‘노자가 과연 그랬을까’ 하고 질문을 하고 그 해답을 구하고자 했지만, 현행본 81장으로 된 ‘노자’를 보면 유가와 대척점에 선 노자의 모습만을 확인할 수밖에 없었다. ‘노자’ 연구 가운데 여전히 논란거리가 되는 것은 ‘노자’라는 인물은 과연 어떤 사람이며, ‘노자’ 장의 구분은 오늘날과 같은 형태로 되어 있었는지, 또 ‘노자’가 과연 한사람의 저작인지 아닌지 하는 것이다.

사마천은 ‘사기’의 ‘노자신한열전(老子申韓列傳)’에서 “노자의 성은 이씨(李氏)고 이름은 이(耳)이며, 시호는 노담(老聃)이다”라 하는데, 중국고대의 위대한 사상가 중에 존칭을 나타내는 ‘자(子)’자를 붙인 경우 성이 다른 인물은 노자 한사람 뿐이다. 노자사상을 연구할 때 이미 사마천이 ‘사기’에서부터 제기한 노자라는 인물과 ‘노자’라는 책과 관련되어 제기된 여러 가지 의문에 대한 명확한 답을 얻을 수가 없었다. 그런데 1973년 중국 호남성(湖南省) 장사(長沙) 마왕퇴(馬王堆) 한묘(漢墓)에서 비단에 쓰여진 ‘노자’(일명 ‘帛書老子’)의 발굴과 1993년 8월 중국 호북성(湖北省) 곽점촌(郭店村)의 초나라 무덤에서 기원전 4세기 중엽에서 5세기 초 경으로 추정되는 죽간(竹簡)에 쓰여진 ‘노자’(이하 ‘竹簡本老子’로 함)의 발굴은 이같은 의문점에 대한 최소한의 답을 얻을 수 있게 하였다. 특히 ‘죽간본노자’의 발굴은 무덤 속에 진리가 숨어있다는 말을 실감케 한 발굴이었다.

‘죽간본노자’는 ‘백서노자’보다 더 시대적으로 앞선 것으로서, 현행본 ‘노자’와 장·절의 순서 및 사상 내용에서 많은 차이점이 있다는 점에서 기존에 행해진 인물로서의 노자와 책으로서 ‘노자’에 대한 연구에 새로운 활기를 불어넣었다. 번역자가 노자의 ‘노’는 성이 아니고 존칭이면서, 노자는 우리가 흔히 쓰는 ‘노선생’ 즉 ‘늙은 선생(Old master)’을 의미한다는 것, 인물로서의 노자와 책으로서 ‘노자’를 분리해서 이해하는 노력이 필요하다는 말, 그리고 원시유가와 원시도가는 사마천이 말하고 있는 것 같이 대척점에만 서 있지만 않았다는 말이 함축하고 있듯이, 기존의 노자사상 연구에 새로운 장을 열게 해준 것이 바로 ‘죽간본노자’인 것이다. 일본이나 중국에서는‘죽간본노자’에 대한 번역 및 연구가 활발하게 이루어지고 있는 것에 비하여 우리나라는 그다지 활발하게 이루어지지 못하고 있는 현실이다. 이제 이 번역서의 출간은 한국의 ‘노자’ 연구에 많은 도움을 줄 수 있다고 본다.

역자는 유가·불가·도가 삼가사상에 대한 폭넓은 지식과 중국과 일본에서 행해진 ‘노자’ 관련 연구를 최대한 참조하면서 자구 하나하나에 대해 꼼꼼하게 주석하고 있다. 아울러 노자사상이 갖는 의미를 중국사상을 통관하는 입장에서 해설을 하고 있어 원형으로서의 노자사상과 그 사상이 후대에 어떤 영향을 주었는지를 이해하는데 많은 도움을 주고 있다. 특히 성인(聖人), 자연(自然), 사(士), 미(美), 정(精), 음(音)과 성(聲)에 대한 자구 풀이에서는 관련 자구에 대한 최근의 연구 경향까지 반영하면서 거의 소논문 수준의 주석을 하고 있다. 저자의 성실성과 해박한 학식이 돋보이는 부분이다. 아울러 이 책의 앞부분에서는 지금까지 연구된 노자라는 인물, 책으로서 ‘노자’, 그리고 ‘초간본노자’가 출토됨으로써 얻을 수 있는 내용을 간략하게 잘 정리하여 노자사상에 관한 전반적인 이해를 돕고 있다. 좋은 번역서의 전형을 보여주고 있다.

‘노자’는 워낙 다의적으로 해석되고 따라서 어떤 책보다도 주석서가 많다. 이런 점을 감안 하더라도 전반적으로 노자사상의 본의에 가깝게 번역된 이 번역서에서 크게 문제가 될 것은 없다. 동양철학자이면서 시인이기도 한 번역자의 절제된 언어와 맛깔스런 번역이 노자사상의 묘미를 잘 느끼게 해 준다. 다만 역주에서 또 다른 번역의 가능성이 있음을 말하지만, 현행본 ‘노자’ 19장(죽간본: ‘返也者, 道僮也’)의 ‘반(返)’자를 풀이할 때 ‘반대되는 것이 도의 움직임이다’고 한 것은 역자가 해설 부분에서 “‘반(反)’은 도의 기능적 측면을 말한 것이다”라고 말하듯이 ‘반대(反)’라는 의미보다는 ‘되돌아감(返)’으로 해석될 수 있는 여지가 더 있지 않을까 하는 점만 거론하고자 한다.(조민환/ 춘천교대 - 동양철학)

담비(07. 03. 20) 老子는 親유가적인가 反유가적인가

1993년 중국에서 '노자' 연구자들의 가슴이 콩닥콩닥 뛰고 심한 이들은 다리 힘이 쪽 빠질만한 일이 발생했다. 호북성(湖北省) 곽점촌(郭店村)의 전국시대(기원전 475~221) 중기 무덤에서 죽간으로 된 '노자'의 또 다른 판본이 발굴된 것이다. 이후 노자 학계는 충격과 엄청난 후폭풍에 휩싸였다.

'노자'엔 다양한 판본이 있다. 모두 81개 장으로 이뤄진 이 텍스트는 주로 왕필이 주석을 붙인 ‘왕필본’에 근거해 해석돼왔다. 왕필(226~249)은 남북조시대에 살았던 요절한 천재로서 그의 주석은 '노자'를 형이상학적 수양론의 결정판으로 해석하게 된 기원을 이룬다.



그러나 1973년 중국 남부 장사(長沙) 마왕퇴(馬王堆)의 무덤(기원전 168년)에서 비단에 쓰인 2종의 ‘노자’(帛書本)가 출토되었다. 학계가 깜짝 들썩였지만 왕필본과 비교해볼 때 道經과 德經의 순서가 바뀌고 글자 일부분이 다른 점을 제외하면 백서본과 왕필본 사이의 차이는 크지 않았다.



그런데 다시 20년 뒤인 1993년 ‘노자’의 일부분이 들어 있는 대나무 문서(竹簡)가 발굴된 것이다. 학계는 뭐가 많이 다르겠냐 싶었지만, 이번엔 정말 많이 달랐다. 무엇보다 '노자'에서 儒家를 강하게 비판한 부분은 다 빠져있어 '노자'라는 텍스트가 후대에 많이 개정, 첨가된 것이라는 논란을 불러일으켰다.

이후 곽점본과 왕필 및 백서본(이하 합쳐서 통행본)의 내용을 비교하는 연구들이 줄지어서 나왔다. 지난 10년간은 주로 글자를 해독하는 등 텍스트를 확정짓는 연구들이 주로 나왔다면, 근자에는해독된 내용을 바탕으로 '노자'라는 텍스트의 위상을 재규정하는 과감한 주장들이 나오기 시작한다.



최근 두 명의 학자가 곽점본과 통행본을 비교하는 논문을 나란히 발표해 주목을 끈다. 하나는 임헌규 강남대 교수가 학진 프로젝트로 수행해 최근 '동양고전연구' 제25집에 발표한 '노자의 무위이념은 유가의 인의를 비판하는가?'라는 논문이고, 다른 하나는 오상무 고려대 교수가 지난해 미국 스탠포드대에서 열린 학술대회에서 발표하고 최근 '동양철학' 제26집에 수정보완해 실은 '노자의 유가관 재론-통행본과 곽점본을 중심으로'이다.

그러나 두 학자가 곽점본을 읽고 내린 결론은 서로 상반되는 감이 있어 이를 둘러싼 학계의 논쟁이 예상된다. 임 교수는 곽점본이 시기적으로 가장 이른 노자 판본이라고 볼 때 노자가 반유가적이라는 기존 견해는 잘못된 것이며, 오히려 노자는 친유가적이라는 결론을 내렸다. 이에 비해 오 교수는 비록 노자 곽점본은 유가에 대해 덜 적대적이지만 유가의 통치술에 대해서는 비판적이었다는 결론을 낸다. 또한 두 교수는 한자 해석 방법에서도 차이를 드러내고 있어 논란이 만만치 않을 것으로 보인다.

먼저 임 교수의 논의를 보자. 핵심은 기존 통행본의 제38장이다. 여기에 "道를 상실한 이후에 德이 있게 되었고, 덕을 상실한 이후에 仁이 있게 되었고, 인을 상실한 이후에 義가 있게 되었고, 의를 상실한 이후에 禮가 강요되었다. 대저 예라는 것은 忠信이 엷어진 것이며 어지러움의 머리이다. 미리 아는 것은 도의 헛된 꽃이며 어리석음의 시작이다"라는 구절이 나온다.

임 교수는 이런 노자의 인, 의, 예에 대한 비판이 정당한가를 살핀다. 공자는 '논어'에서 "仁은 인간의 본성이기 때문에 인간이 인을 실행할 때 편안할 수 있다"라고 했으며 공자를 이은 맹자 또한 "仁은 인간의 편안한 집"이라고까지 천명했다. 맹자는 도처에서 인을 식물, 나무, 생장하는 곡식 등 유기체에 비유하면서 인의 실천은 유기체의 성장, 실현, 성숙과 같이 자연스럽게 진행되는 것임을 역설했다.

이를 통해 볼 때 "仁이 실행하는 의지에 의해 실천된다고 주장한 노자의 주장은 잘못"이라는 게 임 교수의 견해다. 또한 義가 仁의 외표라는 점에서 의 또한 인간의 내적 본성에 말미암아 마땅히 가야하는 바른 길이지 강압적인 것은 아니었기에 노자의 유가비판은 전반적으로 오해나 악의적 왜곡에 가깝다는 결론에 이르게 된다.

그런데 죽간본에는 이 38장이 빠져있다. 여기서 임 교수는 이것이 후대에 덧붙여진 것이라는 입장을 보인다. 통행본에는 죽간본에서는 보이지 않는 구절들을 덧붙인 부분이 꽤 보인다. 게다가 글자를 교묘하게 바꿔서 뜻을 완전히 틀어놓는 경우도 발견되는데 대표적인 것이 바로 18장에 나오는 아래와 같은 경우이다.

죽간본 : 그러므로 大道가 행해지지 않는데 어찌 仁義가 있겠는가? 육친이 불화한데 어찌 효자와 자애로운 부모가 있겠는가? 나라가 혼란한데 어찌 올바른 신하가 있겠는가?

통행본 : 大道가 행해지지 않자 인의가 생겨났고, 지혜가 나오자 큰 거짓이 생겨났고, 육친이 불화하니 효성스런 자식과 자애로운 부모가 있게 되었으며, 국가가 혼란하니 충신이 있게 되었다.

죽간본에는 "故大道廢 安有仁義"라고 돼 있는데 통행본에는 "大道廢 有仁義"라고 두 글자가 빠짐으로써 뜻이 위에서 보듯 확 달라졌다. 통행본에서는 道가 仁보다 더 상위의 가치라는 점이 강조된 것이다. 임 교수는 이를 이데올로기적 투쟁 때문에 개작을 통해 본문을 반유가적으로 바꾼 결과라고 해석한다.

임 교수는 이외에도 많은 부분들을 대조하여 노자의 無爲之道가 유가의 仁政과 전혀 상반되지 않고, 오히려 상호 부합한다는 점을 강조한다. 흔히들 도가는 '도'를 자연물인 天地보다 선재하는 것으로 상정하여, 道 => 天地 => 萬物로 내려오는 형식을 취하는 반면, 유가는 천지에서 만물로 내려오는 우주발생론적 체계를 취하고 있다고 간주되어 왔다. 그리고 도가는 무위를 최상의 이념으로 하며, 따라서 정치 역시 무위정치를 이상으로 한다고 간주되어 왔다.

이에 비해 유가는 인을 최상의 덕목으로 하면서 인정을 정치이상으로 주장하였다. 하지만 단순한 문자상의 차이를 버리고 그 근본정신과 거시적인 체계에서 보면 비슷하다는 게 임 교수의 입장. 도가에서 道가 자연물인 천지를 넘어서는 生生하는 자연 그 자체이듯, 유가의 天 또한 그러한 것이라고 말할 수 있다고 본다.

그런데 오상무 교수의 의견은 좀 다르다. 임 교수가 도가와 유가의 유사점을 강조했다면 오 교수는 그 차별성을 여전히 강조하는 입장이다. 가장 확연한 부분은 앞에서 언급한 "故大道廢 安有仁義"에 대한 해석이다. 임 교수는 여기서 '安'을 의문대명사 "어찌"로 해석했다. 그런데 오 교수는 전후맥락상 볼 때 "어찌"보다는 연결조사 "이에"로 해석하는 것이 합당하다는 입장이다.

오 교수는 그 근거로 이 18장이 내용상 17장을 잇고 있으며, 17장에 '安'이 명확하게 '이에'로 쓰이고 있기 때문이라는 점을 들었다. 만약 '安'을 '이에'로 본다면 "위대한 도사 폐기되면 이에 인과 의가 생겨난다. 가족이 화목하지 않으면 이에 효와 자가 생겨난다"로 죽간본과 통행본 사이에 변별점이 없다. 이런 견해에 대해 임 교수는 어떤 입장을 보여줄 지 궁금하다. 이해되지 않는 부분은 굳이 뜻이 다르지 않은데 왜 후대에 이 '安'자를 없애버렸는가 하는 점이다. 좀더 깊이 있는 토론이 필요하다.

아무튼 오 교수는 이런 입장에서 보듯 곽점본 노자 또한 유가에 대해 유보적이라고 본다. 다만 유가의 통치론에는 비판적이지만, 도덕론에는 동조적이라는 선에서 논의를 마무리짓는다. 그 이유를 다음과 같이 단적으로 표현한다.

"노자가 仁을 끊고 義를 버려라고 말했을 때 그 청자가 누구인지를 파악해야 한다. 그것은 다름아닌 군주이다. 다시 말해 인과 의를 버려야 할 사람은 군주이지 백성들에게 인과 의를 행하지 말라는 것이 아니라는 것이다. 통치자가 인의의 통치방법을 버릴 때 백성들은 자연스럽게 효의 마음과 행위를 회복하게 될 것이라는 게 노자의 본의이다."

과연 이를 보면 노자는 유가의 '仁'이라는 덕목 자체는 인정했지만, 그것을 통치술에 활용하는 '仁政'에 대해서는 부정적이었다. 그런데 임 교수는 '곽점본' 노자로 볼 때 노자 또한 '인정'을 비판한 것은 아니었다라고 해석한다. 과연 노자라는 텍스트는 어떻게 이해되어야 할까. 학계의 좀더 깊이있는 토론이 요구되는 시점이다.(리뷰팀)

07. 07. 16.

P.S. 비전문가로서 <노자> 텍스트 비평에 대해서는 깊은 관심을 갖기 어렵고 대신에 노자 사상/철학의 '해석'의 문제에 주의를 두게 되는데, 나의 견문으로 가장 흥미로운 것은 강신주의 <노자: 국가의 발견과 제국의 형이상학>(태학사, 2004)이다. 이 또한 '당신이 없는 사이에' 출간된 책이어서 최근에야 그 존재를 알게 됐는데, 책의 타이틀 자체가 상당히 '모던'하면서 파격적이다. 흔히 '형이상학'으로 이해되는 노자철학을 '정치철학'으로 재해석하는데, 그런 시각에서 보자면 <도덕경>은 가령 마키아벨리의 <군주론> 같은 책이라는 것이다. 관련학계의 반응은 어떤 것인지 궁금하지만 그런 '반응'을 따로 알 길이 없어서 리뷰 기사 정도만을 옮겨놓는다.

문화일보(04. 05. 14) 군주의 통치윤리로 ‘老子’ 뒤집어 읽기

2000년대 들어 우리 사회와 대중의 지적 호기심을 환기시켰던 흐름 중 하나로 중국 전국시대 사상가인 노자에 대한 관심을 들 수있다. 공중파 방송을 통해 대중들에게 ‘노자 열풍’을 지피는 데 공헌한 도올 김용옥 전 고려대 교수 외에도 국내외 수많은 연구자가 노자의 사상이 담겨 있다는 텍스트 ‘노자’에 주목했으며 나름대로의 관점에서 이를 해석한 다양한 책을 끊임없이 내놓아 왔다. 이에 따라 과거에 양생술(養生術)이나 통치술, 처세술, 무(無)의 형이상학, 마음의 수양론 등으로 이해해온 데서 나아가 최근에는 유토피아적 무정부주의나 생태철학, 페미니즘의 이론적 기초로 보는 견해까지 등장하고 있는 실정이다.

이처럼 노자를 해석하는 다양한 관점이 존재하지만 그래도 지금까지 노자 이해의 주류를 이뤄왔던 것은 중국의 보편적인 형이상학 또는 형이상학적 수양론의 결정체로 보는 견해였다. 이는 지난 2000년 가까이 노자 이해에 절대적인 영향을 미친 중국 위진 남북조시대 왕필(226~249)이라는 천재가 18세에 붙인 주석의 탓이 크다. 노자의 사상을 ‘개인’의 관점에서 조망함에 따라 일반 대중에게 ‘노자’는 무욕(無欲)의 삶을 설파한 마음의 수양론 정도로 받아들여졌다. 모든 개인에게 바람직한 삶의 가치를 전해주는 교훈서 또는 ‘삶의 기술’을 통찰해낸 성인(聖人)의 글로 이해돼 왔던 것이다.

이에 반해 책은 개인이 아닌 ‘국가(state)’의 관점에서 ‘노자’를 해석하면서 기존의 노자 이해에 대한 전복을 시도하고 있다. 연세대 대학원에서 장자연구로 박사학위를 받은 저자는 전쟁과 살육, 주장과 논쟁으로 뜨거웠던 중국 전국시대의 혼란과 갈등을 국가라는 관점에서 조망하고 국가의 논리를 비교할 수 없이 정교하게 숙고한데서 ‘노자’의 의미를 발견해낸 것이다. 물론 ‘노자’라는 텍스트에서 국가라는 관점을 찾아낸 것이 저자가 처음은 아니다. 한비자(韓非子) 이래 최근까지 많은 철학자가 ‘노자’에서 국가를 읽어냈지만, 이들의 작업은 그동안 통치술로 가치폄훼돼온 현실에서 보듯 뚜렷한 한계를 갖고 있다는 것이 저자의 주장이다.

저자는 우선 20세기 후반 중국에서 새로 발견된 판본들을 통해 기존 노자 이해의 문제점이 무엇인지를 독자들에게 설득력 있게 제시한다. 모두 81개 장으로 이뤄진 ‘노자’란 텍스트는 그동안 주로 왕필이 주석을 붙인 ‘왕필의 판본’에 근거해 해석돼왔다. 그러나 1973년 중국 남부 창사(長沙) 마왕두이(馬王堆)의 무덤(기원전 168년으로 추정)에서 비단에 쓰인 2종의 ‘노자’ 백서본(帛書本)이 출토되고 다시 20년 뒤인 93년 허베이성(湖北省) 곽점촌(郭店村)의 전국시대(기원전 475~221) 중기 무덤에서 ‘노자’의 일부분이 들어 있는 대나무 문서(죽간·竹簡)가 발굴되면서 상황은 달라졌다.

결국 우리는 ‘노자’에 대한 상이한 판본을 3종류 가지게 됐는데, 도경(道經)과 덕경(德經)의 순서가 바뀌고 글자 일부분이 다른 점을 제외하면 백서본과 왕필본 사이의 차이는 크지 않다. 반면 곽점본의 경우 백서본과 달리 유가사상에 적대적이지 않고 유(有)와 무(無)가 존재론적으로 동일한 위상을 가지는 등 몇가지 사상적인 차이점이 나타난다는 것이 저자의 설명이다. 따라서 저자는 이상의 두가지 사실을 염두에 두고 ‘노자’ 81장을 포괄적이고 하나의 연결된 문맥으로 독해할 것을 주장한다. 81개 장 전체를 동일한 비중으로 고려하지 않았고 “도라고 할 수 있는 도는 영원한 도가 아니다(도가도비항도·道可道非恒道)”와 같이 일부 몇몇 장만 핵심적인 장으로 간주해 온 것이 기존 노자 이해 의 문제점이란 것이다.

모두 10장으로 구성된 책에서 저자는 ‘노자’라는 텍스트의 핵심을 통치자와 피통치자 사이의 교환의 논리를 발견한데서 찾고 있다. 군주가 통치자라는 자리에 오래 있기 위해서는 세금의 대 가로 무엇인가를 피통치자들에게 주어야 하며, 만약 이 교환의 논리를 어기게 되면 군주는 결코 통치자의 자리를 유지할 수 없음을 제시했다는 것이다. 마키아벨리와 가라타니 고진, 라이프니츠 등의 저작과 사상에서 아이디어를 얻은 저자는 노자가 유가와 법가를 비판적으로 종합해 사랑과 폭력을 적절하게 구사하는 제국의 논리를 제공했으며, 이는 한(漢)제국을 거쳐 현재 중국에 이르기까지 중국적 제국의 논리로 면면히 이어져 내려오고 있다고 설명한다. 저자에 따르면 자연히 ‘노자’에 나오는 수양론도 대상이 군주에게만 해당하는 것으로 제한된다.



이와 함께 장자 연구자인 저자는 노장(老莊)으로 한데 묶어 이해해온 도가(道家)라는 범주가 해체돼야 한다는, 일반 독자들에게 매우 도발적으로 들리는 주장을 제기한다. 군주와 국가의 철학자
였던 노자와 단독적인 개체와 삶의 철학자였던 장자를 함께 도가 또는 노장사상으로 부르는 것은 사마천의 분류를 그대로 받아들인 것일 뿐 순자(荀子)의 저서나 ‘장자’를 정밀하게 독해하면 노자와 장자가 별개의 학풍에 속하는 것을 알 수 있다는 것이다.

기존 노자의 해석과는 판이하게 다른 저자의 주장이 일반 독자들에게 당황스럽게 비쳐질 수도 있다. 그러나 최근의 ‘노자 열풍’ 속에서 노자에 덧씌워진 각종 신비한 외관을 벗겨내고 그의 철학을 비판적으로 바라보자는 저자의 주장은 독자들이 음미할 가치가 충분히 있을 것으로 보인다.(최영창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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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늘빵 2007-07-16 21:52   좋아요 0 | URL
장자에 이어 노자까지 자꾸 제 가슴에 불을 지피시는군요. 둘 다 매우 관심있고 파들어가보고싶은 매력적인 철학자입니다. 저도 겉핥기 정도의 지식 밖에는 없죠. 장자와 노자는 공부하려면 좋은 텍스트들이 참 많습니다. 지적하신 강신주씨 같은 경우 <도에 딴지걸기 노자와 장자>를 통해서 자신의 주관적인 견해도 섞어가면서 재밌게 노자와 장자를 비교하기도 하고요.

로쟈 2007-07-17 00:47   좋아요 0 | URL
제가 방화까지 하다니요!^^; <장자 & 노자>는 저도 재미있게 읽었습니다. 저자가 보다 면밀한 책을 써서 중국이나 미국에 자신의 학설을 소개하는 게 어떨까 싶었어요...

가넷 2007-07-17 00:35   좋아요 0 | URL
장자와 노자 아닌가요...^^;

로쟈 2007-07-17 00:47   좋아요 0 | URL
맞습니다.^^

노자읽기 2007-09-18 22:39   좋아요 0 | URL
아마도 일년전 쯤 노자, 곽점초간, 백서, 통행본을 완독, 비교 연구해 본다고 했던 사람입니다. 최근에 그 작업이 거의 끝나가고 있습니다. 일년의 소회라 하면, 생각보다, 현대 우리는 한문 독해 능력이 참 떨어진다는 생각입니다 .
임교수님과 오교수님의 논쟁이라면, 저는 오교수님의 입장입니다 .참고로 백서의 표현은 '책상, 밥상, 안석 안案'이라 했습니다. 번역해 보면 큰 도가 기울고(大道廢), 책상, 밥상피고, 안석 기대고 인, 의를 잡고 있다(案有仁義)는 것입니다 즉 오교수의 번역에서 제 번역은 더 나아간 것인데, 큰 도가 짓밟고(大道發), 편안히 인, 의를 가졌다(安又{身心}義)는 것입니다. 이는 사실, 기존 통행본 도덕경에, 安, 案이 없는 것 보다 더 파격적이고, 심한 비꼼이라고도 할 수 있습니다. 오히려 도덕경은 安, 案을 누락해서 더 순화된 표현을 썼다고 할 수 있겠습니다.
유가와 도가의 대립점이라면 유가 또한 무위를 주장하기도 하여 무엇보다, 무위냐, 유위냐의 대립이 아니라, 正名과, 無名이의 차이라 할 수 있습니다. 즉 유가는 배워서 더 잘 이름을 알고 이름에 걸맞게, 즉 왕은 왕답게, 신하는 신하답게, 백성은 백성답게 살자는 것이고, 도가는 억지로 끌어 올려 배워 익히지 말고, 왕도 스스로 고아, 과부, 나쁜 놈으로 부르며 외롭고 천하니, 이름을 가리지 말고, 날마다 비워, 스스로 그러한 바 대로 내 맞겨도 왕은 왕이고, 신하는 신하고, 백성 또한 스스로 그러하다는 것입니다. 말 나온 김에 이를 다시 법가와 비교하자면, 법가는 刑名이라, 이름을 벌준다(?!)는 것이니, 신하가 신하 답도록, 백성이 백성 답도록 상벌을 명확히 해 다스려야 한다는 것입니다.
최근 저도 강신주님의 책을 읽었습니다. 그 책에서 가장 탁월한 관점은 아마도 무뮈무불위에서, 무불치지나, 무소불위와 같은 개념이 나와서, 통치론으로 노자가 '활용'되었다는 것입니다. 물론 강신주 님은 아예 노자가 곧 이러한 통치론, 심지어 파시즘적 철학을 가지고 있다고 강론하지만 말입니다 . 그런데, 문제는 이것이 사실에 입각해 있지 않다는 것입니다. 무이무불위가 나오는 장은 도덕경에서 딱 두 장인데, 첫 째는 37장에 도상망위편이고, 두 번째는 48장에 위학자일익편입니다. 그런데 48장에는 초간부터 而亡丕爲가 있는반면, 37장에 而無不爲는 현행 도덕경에서 덧붙은 것이라는 점입니다. 사실 초간에는 아닐 不이 아니라 커질 丕를 쓰고 있으니, 짓길 잃고도 짓기가 커지길 잃는다는 뜻이거나, 丕가 혹 不의 필사 중 오기라면, 짓길 잃고도 짓지 않기를 잃는다는 뜻으로 행위를 잃었는데도 행위하지 못함이 없다(無弗爲; 사실 이렇게 못한다는 것이라면, 不이 아니라 弗이라 해야 합니다. )는 뜻이 아니라, 행위를 잃고 또, 행위 하지 않아야 함에서 자유롭다는 뜻일 수 있습니다. 대게 사람은 무엇을 한사코 하고자 하면서 동시에 무엇을 한사코 하지 않고자 하기 때문입니다. 그런데 48장에서는 이는 직접 도를 말하는 술어가 아닙니다. 그런데도 도를 무위라 여기게 된 것은 [도덕경] 37장에서 道常無爲而無不爲라 했기 때문입니다. 여기에 25장 도법자연 구를 덧붙여, 우리는 현재 道는 無爲自然이라고만 알고 있습니다. 그런데 재미있는 것은 백서 갑이나, 을은 모두 '도항무명'이라 했으니, '이무불위'라는 구절이 없다는 것입니다. 더 흥미로운 것은 초간은 예초에 道를 말한 것도 아니고, 행위의 도인 갈 행行 가운데 人을 끼워 넣은 글자, 지금은 쓰이지 않지만, 구전에, '도 인'자라는 것을 쓰고 있다는 것입니다. 초간에선 그럼 이 행위의 도와 노자의 도가 같은 것인가? 이는 똑같은 형식으로 즉 인항무뮈와, 도항망명이라 한 장을 비교해 알 수 있는데, 결론 부터 말하면 초간은 도와 인을 같이 보지 않고, 인을 도에 못 미치는 것으로 봤다는 것입니다. 초간 12편(도덕경 32장) 망명의 도는(道恒亡名) 종놈이고(僕), 단지 점괘를 전하는 여자일 뿐이라고(唯{卜曰女}, 천지가 감히 신하삼지 못하고(天地弗敢臣), 만가지 날림들이 스스로 집안에 재물인데(萬勿將自{宀貝}) 비해, 37장에 인용된 초간에선, 행위의 도인 인은 항구히 짓기를 잃어({行人}恒亡名, 후황이 지켜지는 것임에도(侯王守之) 그래도 만가지 날림은 스스로 마음 짓고(而萬勿自{爲心}, 마음 짓고도 욕망을 갑자기 일으키니({爲心}而慾作}, 이름 잃은 깨침인 것으로써 바로 잡아지는 것({貞之以亡名之박}이라 했습니다. 그러나 백서에서는 이제, 행위의 도인 인과 망명의 도가 구별되 쓰이지 않고, 오직 도만이 쓰이게 되었고, 그래도 백서는 이를 차마 无爲라 하지 못하고, 오직 無名이라 옮기게 되니, 이미 망명인데, 다시 망명지박으로 바로 잡아야 한다는 모순에 빠지게 됩니다. 그렇다고 통행본처럼 다시 초간을 따라, {行人}이 이미 道라 바뀐 상황에서 무위라 하는 것 역시, 상황을 반전시키지 않았으니, 통행본은 도가 늘 함이 없고, 게다가 하지 못함이 없어, 후왕이 이를 잘 지키고(侯王守之) 만물도 장자 스스로 잘 바뀌는데(萬物將自化), 바뀌다가 "아무 이유 없이" 갑자기 욕망이 일어나고(化易欲作), 그러면 내가 이름 없는 통나무 인 것으로 누르는 것이라 하게 된 것입니다. 즉 통행본의 논리 속에서도 무위이무불위 한 도는 다시 무명지박의 힘을 빌어야 하는 만큼, 無所弗爲, 無弗治之한 것이 아니라 할 수 있습니다. 그러나 본래 백서가 도를 차마 무위라 하지 못하고 논리적 모순이 있더라도 한사코 망명이라 한 것은 결국 도는 초간이나, 백서나 망명의 도라 본 것이라 할 수 있습니다. 즉 무위를 무불치지로 착각하여 통치술로 본 것은 법가의 오해라 할 수 있다는 것 입니다. 사실 초간에서는 治자가 쓰인 적이 없고, 바로 잡아서 나라를 좌지우지 하고(以正之邦), 창을 크게 구부려서 병장을 꿰고((以{奇戈}甬兵), 기원해 섬기길 잃고서 천하를 취한다고, 나라를 다스리는 일과, 병법과, 천하를 취하는 일이 다르다 구분했하기도 했습니다. 여기서 천하를 천자 또는 황제가 다스리는 천하로 본다면, 어쩌면 비약일 수 있습니다. 혹 춘추전국시대 천하를 주유했던 모든 유가들이 재패하길 소망하는 바, 당대의 세계, 세상을 말한다고는 할 수 있습니다. 설혹 초간에서 백서로의 변화가, 혹 정치적 관심에서 비롯한 것이라 할 지라도 그것이 유독 법가적 관심이라는 것을 증명하기 위해서는 정밀한 문헌적 검토가 필요한 일입니다. 그러나 노자, 특히 전국시대 백서 노자를 법가라 보는 김홍경씨나, 강신주님의 책에는 그러한 문헌적 검토가 없는데다, 이를 테면, 한 고조본 즉 백서 을 노자를 전국시대 노자로 보는 착각을 하기도 하고, 심지어는 대게 도덕경에 꿰어 맞추어진 현행 백서 노자 번역본을 빌어 쓰다 보니, 현행 도덕경을 전국시대 노자라 우기는 사태도 비일비재하게 됩니다 . 무엇보다, 강신주님이나, 김홍경씨가 증명해야 할 것은, 노자를 통치이념으로 써서, 춘구전국시대 '파시즘'을 구가한 군주나 그러한 통치예가 있었느냐 하는 것입니다 . 아다시피 현행 [도덕경]을 정리한 한 고조의 네째 아들 문제는 노자를 좋아하여 법령을 간소히 하고, 함이 없는 정치를 행하다, 비록 명을 길게 하여 제위기간은 좀 길었을 지언정, 흉노의 침입과 귀족들의 반란을 막지 못하였다는 것은 모두가 다 확인할 수 있는 사실이지만 말입니다.

로쟈 2007-09-18 22:33   좋아요 0 | URL
댓글로 카바될 수 있는 내용은 아닌 것 같습니다(책으로 내시는 건가요?). 저야 '관전자'의 입장지만, 부엌데기님의 입론을 기대하게 되는군요.^^

노자읽기 2007-09-18 22:43   좋아요 0 | URL
그랬으면 좋겠지만, 내 줄 데가 없는데요... ^_^ 아무려면 어떻습니까?! 수천년간 그 이해가 답보 상태였던, [노자]를 이해할 수 있었다는 것 만으로도 제겐 정말 행복한 '삼 년'이었습니다.

2007-09-18 22:51   URL
비밀 댓글입니다.
 

인스턴트 커피, 곧 커피믹스가 건강에 좋지 않다는 건 상식이다. 하지만 애연가들이 흡연의 유혹을 뿌리치지 못하듯이 커피(믹스) 애호가들 또한 이 '간편한' 유혹으로부터 벗어나기 어렵다. 요즘은 여름인지라 나는 하루 한 잔 정도의 냉커피를 마시고 두 잔 정도의 커피믹스를 습관처럼 마신다. 이렇듯 "습관적으로 마시게되는 ‘어른들의 불량식품’ 커피믹스를 바로보자"란 취지의 기사가 있어서 옮겨온다(몸으로 느끼게 되는 기사이다!). 이런 기사를 자주 읽어둬야 그래도 커피량을 줄일 수 있을지 모르겠기에(반대로 내성이 생길까?).

한겨레21(07. 07. 12) 커피믹스, 오늘 몇 잔째?

하루에 1100만 개, 한 해에 43억 개를 마신다?
논술 잡지 <월간 논>을 만드는 신관식(32)씨는 지난 7년간 하루 평균 7봉의 커피믹스를 위에 들이부었다. 군대 시절, 힘들 때마다 자판기에서 밀크커피를 뽑아 먹던 습관이 제대 뒤에도 계속됐다. 하루 활동 시간을 오전 9시부터 오후 10시까지로 보면 2시간에 한 봉씩 조제해 마신 셈이다. 사무실마다 신씨와 같은 이들이 많아서일까. 커피믹스 시장은 지난 5년 사이 3배 가까이 성장했다. 2001년만 해도 2128억원이었던 커피믹스 시장 규모는 매년 늘어 지난해에는 6047억원에 이르렀다. 커피믹스 한 봉당 가격을 140원(20개들이 2800원)으로 계산하면 연간 43억 개의 커피믹스가 팔려나갔다는 얘기다. 커피믹스가 ‘기호식품’을 넘어 대다수 직장인들의 ‘생필품’이 된 것이다.

“지방·화학첨가물을 위에 들이붓는 셈”
커피믹스 커피 제조 과정은 간단하다. ‘커피 스틱 포장 귀퉁이를 뜯는다 → 내용물을 컵에 확 붓는다 → 정수기 물을 받는다 → 휘휘 젓는다.’ 수십만 명의 대한민국 커피믹스 애호가들은 아침마다 같은 동작을 반복한다. 회사원 배진옥(27)씨는 “아침에 졸릴 때 먹으면 잠이 깨는 느낌이라서, 아침마다 먹는다”고 말했다. “깜빡하고 안 먹은 날은 ‘오늘 안 먹었지’ 생각하고 일부러 타 먹는다”고 덧붙였다.

저마다 조제의 비법도 있다. 산업디자인 전문회사 디자이너 김남연(36)씨는 “스테인리스 스푼으로 휘저으면 열이 뺏겨 맛이 떨어지기 때문에 꼭 내용물을 비운 포장지로 저어야 한다”며 “휘젓는 재미로 믹스커피를 마신다”고 말했다. 누군가에게 한 봉지의 커피는 한 잔의 소화제다. 주부 김경례(42)씨는 “밥 먹고 나서 속이 더부룩할 때 마시면 느끼한 느낌이 가신다”고 말한다. 등산 가는 이들도 배낭에 한두 개씩 꼭 커피믹스를 꼽아 가고, 술 먹은 다음날은 입 안을 개운하게 하려고 또 한 잔 타 먹는다. 커피믹스는 이렇게 다양한 용처를 갖고 많은 이들을 중독자로 만들고 있다.

한국은 인스턴트 커피 공화국이다. 커피 소비량은 세계 11위지만, 인스턴트 커피 소비량은 세계 정상이다. 서유럽, 미국 등은 원두커피가 커피 시장의 80%를 차지한다. 일본도 60%가 원두커피 몫이다. 반면에 한국은 인스턴트 커피가 78%를 차지한다. 지난해 9512억원 커피시장에서 원두커피 판매액은 372억원으로 입지가 미미하다. 대신 인스턴트 커피는 7452억원, 그중에서도 커피믹스가 6047억원이다. 집이든 사무실이든 유리병에 담긴 커피, 설탕, 프림을 티스푼으로 떠서 저어 먹던 모습은 이제 ‘추억’이 됐다. 지금은 가로 2cm, 세로 15cm의 막대형 포장이 병커피와 티스푼을 대체해버렸다.

그렇다면 커피믹스에는 맛뿐만 아니라 건강도 ‘믹스’돼 있는 것일까. 날마다 마시는 커피믹스에는 과연 어떤 성분이 믹스돼 있을까. <과자, 내 아이를 해치는 달콤한 유혹>의 저자 안병수씨는 “커피믹스를 컵에 붓는 것은 지방과 화학첨가물들을 위 속에 들이붓는 것과 같다”고 말하고 있다. 안씨는 왜 이렇게 말하는 걸까.

문제는 ‘프리마’라고 불리는 커피 크리머에 있다. 많은 사람들이 커피 크리머가 우유나 유제품으로 만들어졌다고 오해하고 있다. “주로 원두커피를 마시지만, 각성이 필요할 때는 꼭 커피믹스를 집어든다”는 회사원 윤민혜(28)씨도 커피 크리머 성분을 묻자 “우유로 만든 것 아닌가요?”라고 되물었다. 짙은 갈색빛의 커피가 프림을 넣으면 ‘부드러운 밀크빛’으로 변신하기 때문이다. 맛도 부드러워져 왠지 우유 맛 같다.



별 생각 없이 꾸준히 먹어서 문제
하지만 짐작은 사실과 다르다. 커피 크리머에서 커피 색깔을 묽게 만들어주는 주성분은 우유가 아니라 기름이다. 식물성 유지(기름)를 물에 섞고, 물과 기름이 잘 섞이도록 식품첨가물 유화제를 넣으면 커피 크리머가 만들어진다. 이렇게 물에 기름을 섞어 만든다고 해서 아베 쓰카사(<인간이 만든 위대한 속임수, 식품첨가물> 저자)는 커피 크리머를 ‘밀크맛 샐러드유’라고 부르기도 했다.

안병수씨는 이 기름덩어리에 각종 식품첨가물들이 추가된 것이 커피 크리머라고 설명한다. 맛과 향이 부드러운 커피 크리머를 만들기 위해 카제인나트륨, 인산이칼륨, 폴리인산칼륨 같은 각종 식품첨가물들이 추가되는 것이다. 물론 여기에 사용되는 첨가물들은 식품의약품안전청이 공인한 것들이다. 안씨는 “그렇다고 안심할 수는 없다”고 말한다. “인공적으로 만들어진 식품첨가물들을 자기도 모르는 채 하나씩 먹게 되면 하루에도 수십 가지 첨가물을 섭취하게 된다. 커피믹스의 경우 많은 사람들이 하루에 3~4잔씩 별 생각 없이 꾸준히 먹기 때문에 문제가 심각하다.”

커피 크리머에는 예상과 달리 트랜스지방은 없다. 대신 100% 포화지방산이다. 포화지방도 다량으로 섭취할 경우는 건강에 해롭다. 한진숙 동의과학대 식품과학과 교수는 “포화지방을 많이 섭취할 경우 심혈관계 질병에 걸릴 확률이 높다”고 말했다. 지난해 오스트레일리아 아델레이드대 심장전문의 스티븐 니콜스 박사는 “포화지방인 코코넛 기름으로 만든 당근케이크와 밀크셰이크를 먹은 사람의 경우, 3시간 만에 동맥 내막 기능이 저하되고, 6시간 뒤에는 혈전으로 인한 염증을 억제하는 고밀도지단백질(HDL)이 감소했다”는 연구결과를 내놓았다. 포화지방이 혈중 콜레스테롤 농도를 높인다는 연구결과도 있다. 커피믹스 뒤의 영양분석표에는 콜레스테롤 함량이 0mg이라고 쓰여 있다. 크리머의 포화지방이 콜레스테롤 함량을 높인다면야, 콜레스테롤 함량이 0mg이라는 건 ‘눈 가리고 아웅’에 불과하다.

김지영 식약청 전문위원은 “포화지방을 하루 섭취 열량의 10%까지 섭취하는 것은 괜찮다”고 말했다. 그는 이어 “다만, 평소에 동물성 지방을 많이 섭취하는 사람이 커피믹스 커피를 통해 추가로 포화지방을 섭취할 경우 건강에 해로울 수 있다”고 설명했다.

커피믹스를 통해 섭취하게 되는 당분의 양도 적지 않다. 12g 커피믹스 한 봉에 담겨 있는 설탕은 5~6g이다. 하루에 커피믹스 다섯 봉을 먹는 사람은 설탕만 40g을 집어먹은 셈이다. 지난해 여성이 하루에 열량을 많이 섭취하는 식품 4위가 커피믹스라는 연구결과를 내놓은 김초일 한국보건산업진흥연구원 박사는 “이렇게 커피믹스 섭취량이 늘다가는, 언젠가 한국인이 섭취하는 당분이 죄다 커피믹스에서 온다는 연구결과를 발표할지도 모르겠다”고 우려했다.

합성 착향료 추가하고서 ‘웰빙 커피’?
최근에는 이런 커피 프리머에 대한 소비자들의 불안과 ‘좋은 먹을거리’에 대한 사람들의 관심을 감안해 ‘웰빙 커피’가 출시됐다. 하지만 이 웰빙도 미심쩍다. 특히 한국네슬레가 대니얼 헤니를 내세워 선전하고 있는 ‘웰빙 밀크커피’는 일반 커피에 없는 칼슘을 보강하기 위해 탈지분유를 첨가했다.

그러나 일반 믹스커피에는 들어가지 않는 합성 착향료가 0.2% 첨가됐다. 안병수씨는 “커피에 들어가는 첨가물에서 가장 문제가 되는 것은 유화제와 향료, 색소 등인데 기존 커피믹스에도 안 들어가는 합성 착향료를 쓰고서는 ‘웰빙’이라 이름 붙이는 건 앞뒤가 맞지 않는 일”이라고 말했다.

이런 의혹과 의심, 우려들에도 불구하고 커피믹스의 인기는 식을 줄 모른다. 안경호 동서식품 홍보실장은 “국제통화기금(IMF) 위기 이후 커피 심부름을 하던 여직원들이 크게 줄면서 스스로 커피를 타서 마시는 문화가 정착된데다 냉·온수기 보급이 확대되면서 커피믹스 시장이 성장한 것 같다”고 말했다. 그러나 안 실장은 “커피믹스가 커피 시장에서 점점 확대되는 분위기가 마냥 반가운 건 아니다”고 말했다. 커피믹스 판매가 증가하는 것은 곧 ‘경기가 좋지 않음을 의미한다’는 것. 안 실장은 “사람들이 일하면서 빨리 털어 빨리 먹는 믹스 커피를 마시는 건 그만큼 여유가 없다는 뜻”이라고 말했다.

모두가 똑같은 커피를 먹는 데 대한 안타까움도 있다. 커피는 농도의 높낮이에 따른 무게감, 커피를 끓일 때 나는 향기, 얼얼한 맛에서부터 달콤한 맛까지를 결정하는 산도 등에 따라 수천 가지 맛을 가지고 있다. 브라질, 케냐, 예멘 등 커피가 나는 나라에 따라 맛도 다양하고 기후, 재배 조건, 볶는 방법 등에 따라서도 맛이 천차만별이다. 커피 로스팅 전문가 전광수씨는 “이렇게 다양한 맛을 모른 채 모두 똑같은 커피 맛을 즐기는 모습이 슬프기까지 하다”고 말한다.

<월간 논>의 신관식씨는 7년의 커피믹스 생활을 접고 지금은 원두커피로 바꿨다. 신씨의 주장으로 지난해부터 사무실에 원두커피 기계를 들여놓은 것이다. 덕분에 사무실 식구들도 주로 원두커피를 마시고 가끔 커피믹스를 애용한다. 신씨는 “7봉씩 7년간 지속된 커피믹스 생활 동안 계속해서 속이 더부룩한 느낌이었다. 지금은 속이 깔끔하다”고 말했다.

커피믹스에 천인공노할 ‘나쁜’ 성분이 들어 있는 건 아니다. 가끔 한 잔씩 즐기는 건 또 다른 즐거움이기도 하다. 다만 아무 생각 없이 하루 몇 개씩 믹스 껍데기를 까다 보면, 배 언저리에 치유할 수 없는 포화지방을 두르고 다녀야 할 게 뻔하다. 어른들의 불량식품, 커피믹스. 무심코 뜯기 전에 ‘이 안에 뭐가 들었나’ ‘오늘 몇 잔 먹었나’ 의심을 찬양해보자.(박수진 기자)

07. 07. 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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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로그인 2007-07-15 11:46   좋아요 0 | URL
뭐든지 스트레스 안받고 잘 먹고 잘 소화시키는게 건강의 지름길이라 생각합니다;;
저도 하루에 커피 석잔 정도는 기본인데... 그것마저 끊으라면
이 답답한 인생 무슨 낙으로 사나요? ㅋ~
글 고맙습니다 로쟈님 :)

로쟈 2007-07-15 15:31   좋아요 0 | URL
습관이란 게 길들이기 나름이어서 이왕이면 좋은 습관을 기르는 게 더 낙이 되겠죠.^^

마노아 2007-07-15 20:29   좋아요 0 | URL
하루 한잔은 애교로 괜찮을 거라고 스스로를 위로해봅니다. 전 여름 겨울에만 마셔요(>_<)여름엔 더워서, 겨울엔 추워서..;;;;

로쟈 2007-07-15 21:13   좋아요 0 | URL
좀 문제가 되려면 매일 4-5잔 이상은 마셔줘야 하지 않을까 싶어요...

Mephistopheles 2007-07-15 21:53   좋아요 0 | URL
커피는 여간해선 한 잔도 안먹는데..그게...야근이 일상이다 보니 반사적으로 마셔주고 있는 현실이 조금은 두려워지는군요..^^

오월의시 2007-07-15 22:56   좋아요 0 | URL
칼로리 높다는 사실을 알아도 어쩔 수가 없네요^^;;

몽당연필 2007-07-16 11:03   좋아요 0 | URL
저도 하루에 1~잔은 마시는데...^^;;

로쟈 2007-07-16 15:50   좋아요 0 | URL
하루에 3잔까지는 괜찮은 걸로 중지를 모으도록 합시다!..
 
과학을 읽다

한국일보(07. 07. 10) [과학을 읽다] 확장된 표현형(The Extended Phenotype)

진화생물학자인 리처드 도킨스가 1976년 <이기적 유전자(The Selfish Gene)>에서 “우리 몸은 유전자를 운반하는 기계일 뿐”이라는 도발적인 주장을 내놓자 학계는 이러한 유전자 중심적 시각에 대해 꽤 비판적이었다.  

유전자 결정론, 환원론 등과 같은 공격이 쏟아졌다. 도킨스가 1982년 <이기적 유전자>의 후속편이자 비판에 대한 반박편으로 <확장된 표현형(The Extended Phenotype)>을 쓴 배경은 이렇다.
지금은 진화생물학의 교본처럼 인정 받지만, 솔직히 <확장된 표현형>은 쉽게 읽히지 않는다. 학계의 논쟁을 염두에 둔 터라 비전공자를 위해 깔끔하게 정리되지 않았기 때문이다.

대신 도킨스는 진화생물학계 내부의 적들과 반(反)진화론자들의 주장을 일일이 거론하고, 복잡한 논리와 시니컬한 수사로 그들을 공략하고 있어 독자들은 갈피를 잃지 않도록 애써야 한다.
‘상대성장측정연구’니 ‘적응지형도’니 하는 낯선 개념들이 과도하게 쏟아지는 데다, 비문이 난무하는 무성의한 번역까지 더해 책을 덮어버리고 싶은 순간이 많다.

<이기적 유전자>에서 도킨스는 “유전자라는 자기복제자의 생존(복제) 목적을 위해 진행되어 온 것이 곧 생물의 진화”라고 단언한 데 이어 <확장된 표현형>에서 “자기복제자는 자신을 운반하는 개체 수준을 넘어 외부환경에까지 영향을 미친다”고 주장한다.

즉 유전자가 한 개체의 생존에 유리하도록 특정한 형태나 행동(즉 표현형)으로 나타날 뿐 아니라, 유전자 복제라는 목적을 위해 다른 종에게까지 영향을 미치고 그 행동을 원격 조정한다는 것이다.
예를 들어 박테리아에 기생하는 Ti 플라스미드가 박테리아를 통해 식물로 옮겨지면 감염된 식물은 암에 걸린 것처럼 무한히 증식하고, 오파인이라는 물질을 합성한다. Ti 플라스미드는 숙주인 박테리아가 오파인을 에너지원으로 쓰도록 만들어 오파인이 풍부한 환경에서 박테리아가 번성하게 한다.

오파인은 또한 박테리아 사이의 성행위랄 수 있는 접합을 촉진시키는데, 접합된 박테리아끼리 유전자를 교환할 때 플라스미드도 복제되기 때문에 궁극적으로 자신도 번성하게 된다. 달팽이의 뿔에 침입해 기생하는 한 흡충은 뿔 속에서 진동해 뿔을 곤충처럼 보이게 한다. 새가 뿔을 먹어 흡충이 다음 숙주로 옮겨가려는 전략이다. 더욱이 흡충에 감염된 달팽이는 어두운 곳을 선호하는 원래의 본성에서 벗어나 밝고 트인 곳으로 나아가는 경향을 보인다. 이 역시 새에게 노출되도록 하기 위해 흡충이 달팽이의 행동을 조작하고 있다는 것이다.

결론은 이렇다. 유전자의 표현형은 개체를 넘어 확장된다. 특정 유전자를 가진 개체를 위해서가 아니라 유전자군에게 봉사하기 위해서다. 그렇다면 ‘나’라는 하나의 개체는 도대체 무슨 의미란 말인가? 도킨스가 끝으로 덧붙이는 문제의식이다.(김희원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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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hilocinema 2007-08-11 19:53   좋아요 0 | URL
"내가 너고, 네가 나다"의 무한반복.
 

교수신문(07. 07. 09) 괴델의 수학과 신학

오늘날 학자들의 학문적 야망을 절제하도록 만들며, 과학자들의 과학적 활동을 겸손하게 만드는 위대한 수학적 업적이 있다. 아리스토텔레스 이후 가장 위대한 논리학자로 일컬어지는 오스트리아 부뤼노 출신의 수학자 쿠르트 괴델(1906~1978, 사진)의 불완전성 정리(1931)가 바로 그 업적이다.
괴델의 제1 불완전성 정리는 우리가 사용하고 있는 기본 산술을 포함한 모순 없는 수학적 시스템이 불완전하다는 것을 입증한 것이다. 즉 이러한 조건을 갖춘 수학 시스템 내에서는 증명될 수도 없고 동시에 반증될 수도 없는 수학적 명제가 존재함이 증명된 것이다. 이 때 사용된 수학적 명제의 진리값은 참이었음에도 불구하고, 결정불가능한 명제가 된다. 그러므로 참이면서 증명이 불가능한 수학적 명제가 있다는 것이 증명된 셈이다. 괴델에 의하면 수학의 진리는 수학의 증명방법에 의해 정복될 수 없다.

괴델의 제2 불완전성 정리는 모순 없는 수학적 시스템 내에서 그 시스템의 무모순성이 증명될 수 없다는 것을 입증한 것이다. 예를 들면, 공리적 집합론의 토대가 되는 체르멜로-프렌켈의 공리적 집합시스템(ZFC)이 무모순하다면, ZFC의 무모순성은 ZFC 내에서 증명될 수 없게 된다. 만일 우리가 사용하고 있는 어떠한 수학 시스템에 모순이 없다면, 그러한 수학 시스템 내에서는 그 자체의 무모순성을 증명할 수 없다는 것이다. 이로써 괴델은 수학적 증명을 위해서 안전하다고 알려진 수학의 형식 시스템이 결코 안전할 수 없는 불완전한 시스템임을 증명했다.

괴델의 ‘불완전성’ 정리
괴델의 불완전성 정리에 의하면, 수학에는 이성적 증명을 넘어서는 세계가 있다. 그러므로 수학적 증명을 넘어 존재하는 진리는 더 이상 증명의 대상이 아니다. 그것은 수학자들이 선택해야할 믿음의 대상이다. 그래서 수학자 하워드 이브스는 괴델의 불완전성 정리에 의해 수학은 신학의 한 분과로 볼 수 있게 되었다고 평가했다.

그렇다면 신학으로서의 수학은 수학에 의해서 그 자체가 신학임을 증명할 수 있는 유일한 신학이 될 것이다. 바로 이 점이 수학의 위대한 점이다. 괴델에게는 자신의 한계를 증명할 수 있는 능력이야말로 수학자의 마음이 가지는 위대한 부분이었기 때문이다.

괴델은 불완전성 정리가 단지 수학자의 한계를 증명하는 것이라고 보지 않았다. 괴델은 수학자의 한계를 보여주는 동시에 그 한계를 넘어서서 가야하는 수학자의 능력에 주목한다. 예를 들어, 수학자들이 n단계에서 불완전성 정리에 의해 그 한계를 안다면, 새로운 공리를 추가함으로써 새로운 n+1단계로 나아가, n단계의 불완전성과 결정불가능성을 극복할 수 있다. 물론 이러한 과정에 경계란 있을 수 없다. 수학적 증명이라는 도구에 의해 환원될 수 없는 수학적 진리의 세계가 있기 때문이다.

괴델은 자신을 유신론자이며 기독교의 루터교 신자라고 밝혔으나, 신학전문가로서 활동을 하거나 논문을 발표하지는 않았다. 그는 자신의 신학을 ‘합리론적 신학’이라고 표명하며 철학적 형이상학과는 다르다고 구별하였다. 괴델은 수학적 무한과 절대적 무한의 실재성을 굳게 믿었다. 세계 내에 실현되는 무한으로서의 물리적 무한은 인정하지 않았으나, 신 안에서 실현되는 무한을 절대적 무한이라고 생각하였다. 괴델에게 신학적 무한과 수학적 무한은 분리될 수 없는 문제였다. 그리고 무한은 수학자나 신학자에 의해서 구성될 수 있는 대상이 아니라, 독립적으로 실재하는 대상이었다.

이러한 이유 때문에, 괴델은 무한집합 기수의 크기와 관련된 연속체가설(CH)을 매우 중요하게 다루었다. CH는 정수의 집합(셀 수 있는 무한)과 실수의 집합(셀 수 없는 무한) 사이에 무한 집합은 없을 것이라는 칸토르의 가설이었다. 괴델은 제2불완전성 정리에 의해 ZFC의 불완전성을 증명한 장본인이었으나, ZFC에 CH를 새로운 공리로 추가할 때, ZFC의 다른 공리들과 모순이 되지 않는다는 것을 증명함으로써, 결국 연속체 문제에 가부간 대답을 할 수 있을 것이라는 자신의 믿음을 증명하고자 했던 것이었다. 무한은 괴델에게 실재하는 대상이었기 때문에, 의미가 없다거나 포기될 수 있는 대상이 아니었기 때문이다.

괴델이 생각한 ‘신의 정의’
괴델은 신의 존재를 증명하고자 시도하였다. 남겨진 증명은 1970년의 완성작이었지만, 그의 증명작업의 흔적은 1930년대까지 거슬러 올라간다. 적어도 30년 이상 이 문제를 고민했었다는 것을 알 수 있다. 이 증명에서 괴델은 단지 3개의 정의와 5개의 공리를 사용했다. 이때 괴델이 생각한 신의 정의는 다음과 같았다.

(신의 정의) x가 신의 속성을 가진다는 것의 필요충분조건은, x가 모든 긍정 속성들을 가지는 것이다.

괴델은 먼저 x가 신의 속성을 가진다면(즉, x가 신과 같은 존재라면), 신의 속성은 x의 본질임을 증명하였다. 다음으로, x가 신의 속성을 가진다면, 신의 속성을 가지는 x가 필연적으로 존재함을 증명하였다. 이러한 증명에는 2차원 양상논리가 사용되었고, 마지막 단계에서 다음이 유도되었다.

(1) 신의 속성을 가진 x가 존재하는 것이 가능하면, 신의 속성을 가진 x가 필연적으로 존재한다.
(2) 신의 속성을 가진 x가 존재하는 것이 가능하다. 따라서 (1)과 (2)의 전건긍정법(modus ponens)에 의해, 신이 존재하는 것은 필연적임이 증명되었다.

괴델의 신 존재 증명에 관하여는 신학적으로 더 많은 논쟁거리가 있다. 그렇다고 하더라도 괴델의 의도가 신의 존재를 완전히 증명할 수 있다는 것이 아니라, 신의 존재를 수학적으로 증명하기 위해서는 신을 ‘모든 긍정 속성을 가진 대상’으로 정의해도 충분하다는 것에 있다는 점에 주목해야 한다. 괴델은 신의 유일무이한 속성을 수학적으로 규정하려고 했던 것이 아니라, 신의 속성과 동등한 속성을 가진 대상을 수학적으로 다루어 본 것이다.

괴델에게 신학이 무한한 신에 대한 연구라면, 수학은 무한에 대한 연구라고 할 수 있다. 그러나 신학과 수학 자체는 무한하지 않다. 두 시스템은 완전하지 않다. 오히려 유한 속에 있는 불완전한 시스템이다. 불완전하고 유한한 인간이 어떻게 절대 무한을 다룰 수 있을까? 괴델은 무한한 대상과 유한한 인간 사이를 연결해 주는 다리가 있다고 보았다. 그 다리는 바로 ‘직관’이라는 것이다. 이는 수학에서의 컴팩트화(compactification)에 비유할 수 있다. 다룰 수 없는 무한의 열린 구간에 한 점을 추가함으로써 닫힘과 한계가 있는 무한집합을 만들어, 마치 유한한 대상을 다루듯이 유한한 작업을 통해서 다룰 수 있게 된다. 괴델에게는 그 한 점이 바로 ‘직관’이었다.

괴델에게 신학과 수학은 모두 컴팩트화의 작업이었다. 역사에는 수학과 신학을 분리하지 않았던 지적 전통에 기여했던 거인들이 있다. 피타고라스, 니콜라우스 쿠자누스, 데카르트, 뉴턴, 라이프니츠, 칸트, 칸토르. 이들은 모두 수학자이자 신학자였다. 괴델에게도 이 명예의 전당에 이름을 올릴 자격이 충분히 있다.

무한은 신비로운 영역이 아닐 수 없다. 무한에서는 부분과 전체가 같고, 전체와 부분이 같다. 이러한 직관을 허용하고 또한 요구하는 곳이 바로 무한의 세계이다. 수학과 신학은 추상적인 무한의 세계를 공유한다. 그래서 두 학문은 다른 어떤 학문들보다도 이성과 논리만으로 정복하기 어려운 미지의 영역을 향하여 접근하는 과정을 밀접하게 공유할 수 있다. 그래서 수학적 증명과 수학적 진리가 완전한 동의어가 될 수 없다는 괴델의 불완전성 정리는 신학적 증명이 신학적 진리와 완전한 동의어가 될 수 없음을 전해주는 메시지와도 같다.

괴델 이후, 수학과 신학을 포함하여, 배우고 묻는다는 의미의 학문을 하는 사람들에게 진정으로 필요한 것과 참다운 희망의 근거는 자신의 한계를 인정하는 겸허함에서 발견될 것이다.(현우식/ 연세대·신학과 과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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mravinsky 2007-07-09 23:40   좋아요 0 | 수정 | 삭제 | URL
괴델.. 매우 관심이 가는데 손을 댈 엄두가 안 나네요.
근데 신의 존재에 대해서 수학자들마다 다른 것 같은데
칸토르는 집합론을 발전시킨 주된 목표 중 하나가 신의 존재를 증명하려는 것이었다고 하고
괴델도 신의 존재를 증명할 수 있다고 믿었다고 하고
근데 서용순 박사님에게 듣기로는 이스턴의 정린가 뭐시긴가에 따르면
신은 존재하지 않는다고 하고.
허; 참.

물론 전 자연신학을 부정하는 입장이지만...

로쟈 2007-07-10 23:47   좋아요 0 | URL
기본적으론 넌센스라고 생각하고 있습니다. 증명 자체보다는 그런 증명을 시도하는 괴델에게 조금 더 관심이 가네요...

2007-07-11 00:22   URL
비밀 댓글입니다.

로쟈 2007-07-11 00:24   좋아요 0 | URL
지적해주셔서 감사합니다.

yoonta 2007-07-11 03:19   좋아요 0 | URL
넌센스는 아닐텐데요. 괴델이 불완전성 정리에서 사용한 수학적 방식과 위에서 언급된 신 존재의 증명은 기본적으로 같은 골격을 가지고 있습니다. 후자가 넌센스라면 괴델의 불완전성 정리도 넌센스가 되는 셈이죠. 괴델이 신존재증명을 통해서 증명하려고 했던 것은 종교에서 이야기하는 어떤 실체적 신의 존재증명이라기보다는 인간의 인식의 한계란 무엇인가를 논증하는 시도라고 보여집니다.

로쟈 2007-07-11 08:46   좋아요 0 | URL
신은 무한자이다. 수학적으로 무한은 증명될 수 있다. 고로 신은 존재한다, 는 식의 논법 아닌가요? 동어반복처럼 보이는 이러한 논법을 진지하게 받아들여야 할까요? 더불어, 인간인식의 한계를 증명하는 것은 곧 신의 존재를 증명하는 게 된다, 고 yoonta님은 믿으시는 건가요?

mravinsky 2007-07-11 10:01   좋아요 0 | 수정 | 삭제 | URL
표상주의가 끝났는데 인간 이성의 신존재증명이 가능하다고는...물론 신존재부정도 가능하지는 않지만요...

yoonta 2007-07-11 13:13   좋아요 0 | URL
로쟈님: 님이 말씀하시는 논법은 아리스토텔레스의 논법이지 괴델의 논법이 아닙니다. 고로 괴델과는 무관한 동어반복이네요. 갑자기 괴델과 관련된 잡설을 한번 늘어놓고픈 충동이..^^
 

지난 6월에 소개되었어야 하는 전시회 소개와 그 리뷰(http://www.culturenews.net/read.asp?article_num=8036)를 컬처뉴스에서 옮겨놓는다. 리뷰 자체가 며칠 전에 올라온 것인데, 이 리뷰를 읽고 알게 된 것이지만 <영국인 사진가의 눈으로 본 한국> 전시회는 아직 계속되고 있고 그 사진집은 지난 5월에 출간됐다. 타이틀 대로 '다시 배우는' 한국전쟁인 만큼 이 정도 '뒷북'이 대수이겠는가. 기사에서 저자주는 생략했다.

컬처뉴스(07. 07. 03) 다시 배우는 한국전쟁

《영국인 사진가의 눈으로 본 한국-1953, 그리고 삶은 계속 된다》(2007. 5. 18. ~ 2007. 8. 18, 서울대학교박물관 2층 특별전시실)는 한국전쟁 중 유엔군으로 참전했던 두 영국인 장교 안소니 영거(Anthony Younger)와 키스 글래니-스미스(Keith Glennie-Smith)의 개인 사진 기록들을 발굴해 소개한 전시이다. 전시와 함께 사진집『영국인 사진가의 눈으로 본 한국-1953, 그리고 삶은 계속 된다』(서울대학교 엮음, 눈빛, 2007) 가 발간됐다.

전방위적 한국전쟁 기록 수집하기

『영국인 사진가의 눈으로 본 한국-1953, 그리고 삶은 계속 된다』는『지울 수 없는 이미지』시리즈(박도 엮음, 눈빛)가* 보여주는 전쟁에 대한 기록의 규모 면에서나, 기록사진으로써 구성과 형식의 완성도에 비교할 수는 없다. 물론 상대적 평가의 측면에서 그렇다.『지울 수 없는 이미지』의 기록 사진들 역시 정확한 지명이나 가해자와 피해자의 정체가 모호한 부분들이 많기 때문이다. 또『지울 수 없는 이미지』가 보여주는 한국전쟁에 대한 기록 사진들은, 미국의 시각과 필요에 의한 것들이란 점을 감안하고 봐야하며, 이것이 한국전쟁의 온전한 총체상을 보여주고 있다고 이해하기는 어려울 것이다. 하지만『지울 수 없는 이미지 1․2․3』를 보면, 미국의 보유하고 있는 한국전쟁 관련 기록의 일부인데도, 미국의 기록, 수집, 보관에 대한 인식과 능력의 우수함과 선진성에 대해 생각하게 된다(*그 셋째 권은 지난달에 출간됐다).

일제 강점기와 한국전쟁의 과정에서 우리는 우리가 주체가 된 기록 문화에서도 단절을 겪을 수밖에 없는 한계가 있었다. 그런 점을 보완하기에 우리와 관련한 타인들의 기록을 열심히 찾고 있는 것인지 모르겠다. 그러나 특정 집단과 특정 국가의 시선은 그 자체만으로 제3자의 시선이 있지만, 그 집단과 국가의 이해관계에 편향되는 한계 역시 따른다. 때문에 다각적으로 세계 속의 시각들을 모아갈 필요가 있다는 점에서, 이번 전시의 의미를 찾을 수 있다. 더불어 미국이 아닌 다른 나라들은 국가 차원에서 한국전쟁에 대해 어떻게 얼마만큼 기록하고 있는지 알고 싶어진다. 이런 자료들을 비교해 본다면 국가라는 집단의 이해관계에 따라 한국전쟁이 얼마나 다르게 보일 수 있는지, 그 안에서 한국전쟁에 대한 이해의 접합점은 무엇인지에 좀 더 다가갈 수 있지 않을까.

그런 면에서 대중이 관련 사진 자료들을 중심으로 쉽게 찾아볼 수 있는 책으로『그들이 본 한국 전쟁』시리즈(2005, 눈빛)가 있다. 그 중『그들이 본 한국 전쟁 1』은 1959년 중국 해방군화보사에서 참전기념 화보집 형식으로 출간된 것을 재출간한 것으로 잘 알려지지 않은 중공군의 실체와 한국전쟁의 모습을 볼 수 있다. 물론 이것 역시 중국 공산당의 목적과 그들의 시선이라는 점을 감안하고 봐야 할 것이다.『그들이 본 한국 전쟁 2』는 미 해외참전용사협회에서 참전 기념호로 출간된 것을 재출간 한 것이고,『그들이 본 한국 전쟁 3』은 미군 사진병과 군속 사진가가 찍은 전쟁의 기록들을 모은 것이다.

이들 사진집에는 사진 자료 이외에도 국제관계, 한국현대사, 정치 등 관련 분야 전문가의 한국전쟁에 대한 글들(『지울 수 없는 이미지』시리즈)과 유엔군 총사령관 맥아더 장군의 보고서(『그들이 본 한국 전쟁 2』), 맥아더 장군의 뒤를 이어 유엔군 총사령관으로 재임했던 리지웨이와 클라크 장군의 보고서(『그들이 본 한국 전쟁 3』)는 물론, 미국에서 수집한 북한 측의 삐라와 포스터와 서류는 물론 중공군․북한군 포로들이 가지고 있던 사진과 편지 등(『지울 수 없는 이미지3』)이 함께 실려 있어, 학교에서 충분히 배우지 못한 한국전쟁, 한국 현대사에 대한 이해를 더할 수 있다는 점에서, 읽어볼만한 가치가 크다.  

 

 

 

 

 

 

 

 

 

전체가 간과한 기억을 되짚는 특별한 통로

다시 이번 전시로 돌아와서, 영거와 스미스는 비교적 전문적인 사진 촬영 기술 보유하고 있었지만, 그들 사진의 완성도 자체는 높이 평가할만한 것은 아니다. 그러나 영거와 스미스의 사진 기록물들은 사진의 예술성이나 한 컷의 사진이 갖는 구성적 완결성 면에서가 아닌, 기록의 희소성으로부터 그 의미를 찾을 수 있다.

이들의 한국전쟁과 전쟁 직후의 사진 기록들은, 종군 사진 기자들의 취재나 일종의 첩보 활동에 의한 그것들과는 다른 성격과 분위기를 전해준다. 한국의 생활상을 담은 외국인의 호기심 어린 시선, 부대 안팎에서 참전 중 군인의 인간적이고 감성적인 접근을 느낄 수 있다. 그건 그들이 참전 군인이기는 했지만, 전투 외의 여가 시간에 개인 취미 생활의 측면에서 사진 기록이었기 때문이다. 전쟁 중 격전 현장과 전투 상황에 대한 기록이 아니라, 휴식과 휴가 중 전투 이외의 시간과 공간 그리고 휴전 직후의 상황에 대한 여유로운 기록들이다.

그 전쟁중의 여유로운 풍경은 그들이 1950, 51년의 긴박한 상황보다는, 남북은 물론 관련 국가들의 이익과 관련해 전쟁을 지지부진 끌어가던 1952, 53년 사이에 참전했기 때문에 더 도드라지는 것이다. 이들의 사진 속에는 휴전이 발표된 직후 전선에서 방금 전까지 총부리를 겨누며 사투를 벌이던 유엔군과 중공군이 인사를 나누고 기념으로 화폐에 사인을 해 주고 받는 모습마저 담겨 있다.  

 

 

 

 

 

 

 

 

 

또 사진집『영국인 사진가의 눈으로 본 한국-1953, 그리고 삶은 계속 된다』안에는 영거가 쓴 한국참전 경험과 전란 속의 한국에 대한 기억들이 담겨있어, 한국전쟁에 대해 알지 못했던 부분들을 발견하게 된다. 물론 서문에서 안소니 영거는 잘못된 부분이 있다면, 순전히 개인의 시각과 기억의 착오에서 비롯된 것일 수 있음에 대한 양해를 구하고 있다. 하지만 개인의 특성과 감성이 결합한 개인의 기억이란, 때로 전체의 기억이 간과하고 있는 세밀한 부분들을 찾아낼 수 있는 아주 특별한 통로이기도 하다. 그리고 그 통로로 들어간 사람들 중에는 공적 기억에서 배제된 기억을 상기해내거나 그 감성에 공감하는 사람들이 생겨날 수 있을 것이다. 그렇게 함으로써 잃어버린 것들을 회복하고, 대화와 소통이 시작되는 것이다.

탄피로 만든 와인잔으로부터

그 중 인상적인 기억의 몇 가지는 이렇다. 전쟁 중 원화 가치가 떨어져 사실상 화폐로서 쓸모가 없게 되자 시장에서 맥주병이 돈으로 사용됐다든가 탄피(탄환이나 포탄의 껍데기)나 통신선 등 그릇이나 장바구니 등 생활용품을 만들어 썼다는 이야기다. 이런 모습들을 구체적 사진 기록들로 충분히 담겨있지는 않지만, 기억에 대한 기록과 수집 물품의 전시를 통해 보여주고 있는 점이 이채로웠다. 전시장 중앙에는 안소니 영거가 간직하고 있던 탄피와 당시 한국의 시장에서 사서 아직도 즐겨 쓰고 있다는 탄피로 만든 와인잔이 유리관 안에 전시돼 있었다.『지울 수 없는 이미지3』에서 탄피의 다양한 재활용의 실체를 증명하는 탄피로 만든 교회의 종을 발견할 수 있었다.

이 이야기에서는, 놋그릇과 철재들이 모아져 전쟁물자로 조달되고 난 후, 그 전쟁의 폐품들이 일상용품들로 재활용되는 전쟁의 궁핍상과 전쟁의 생산성이 절묘하게 교차한다. 이런 교차는, 새삼 전쟁의 경험이 상품화되어 경제적 가치를 갖고 정치적 목적으로 끊임없이 재활용되고 있는 모습들 속에서도 계속해서 재현돼 오고 있다. 더구나 파괴적인 전쟁이 철학과 예술과 과학은 물론 경제 같이 많은 것을 잉태하고 발전시켜낸 생산적인 면모들조차 함축하고 있는 듯 느껴졌다. 그러나 '전쟁의 상품화와 재활용' 자체에 무턱 대고 나쁘다는 판단의 잣대를 들이대기는 어렵다. 그러고 보면 선만이 선을 악만이 악을 잉태하지 않으며, 선이 악을 잉태하기도 하고 악이 선을 잉태하기도 하는, 인간사에 대해서도 생각하게 된다.

 

 

 

 

 

 

 

 

 

 

 

 어느 날 한 선배가 이런 이야기를 했다. 아이들을 가르칠 때 이것은 나쁜 것, 저것은 좋은 것이라 가르치지 말고, 좋게 쓰면 좋은 것 나쁘게 쓰면 나쁜 것이라 가르치자는 것이다. 가령 ‘거짓말은 나쁘다. 칼은 나쁘다’는 틀렸다는 것이다. 선배의 이야기는 섣부른 가치판단으로 아이들의 사고와 행동을 가두지 말자는 뜻에서 충분히 이해했고, 공감하고 귀담아 들었다. 하지만 모호해지는 면도 있었다. ‘전쟁은 나쁘다’, ‘살인은 나쁘다’, ‘도둑질은 나쁘다’는 틀린가 하는 것과 ‘전쟁과 도둑질과 살인도 좋게 쓰면 좋은 것이다’가 맞는 말일까 하는 것이었다. 답은, 특히 집단의 이익과 관련해서는 충분히 그럴 수 있다는 것이다.

일종의 도둑질인 적군․적국의 첩보 활동은 나쁜 것이다. 그러나 조국․아군의 첩보 활동에 대해서는 나쁘다는 가치판단이 들어설 틈이 없으며, 우리 집단 전체를 위한 진취적이고 긍정적이며 의롭고 사명감 있는 행위로 여겨진다. 살인 역시 그렇다. 국가를 위한 경우는, 적․악에 대한 응징으로써, 우리 집단을 위한 정의로운 희생으로 추앙되고, 감히 ‘살인’이라는 부정적 의미의 낱말을 갖다 부치는 것이 적절치 않게 느껴진다. 전쟁 역시, 적의 전쟁 도발은 나쁜 것이고, 이 나쁜 것에 대해 우리를 지키기 위한 대응으로, 또는 우리 집단의 영역과 이익을 극대화하기 위한 전쟁은 정의로운 힘으로 추앙된다.칭기즈칸의 영토 확장이 서구에서는 폄하되고 아시아에서 미화되듯 말이다.

거짓말도 그렇다. 사람들은 선의의 거짓말이 성립할 수 있는가를 놓고 설왕설래하곤 하는데, 사람은 거짓말도 정의롭게 쓸 줄 알아야 한다. 쉬운 예로 일제로부터 독립군의 생명을 구하기 위해 거짓말을 하지 않으면 오히려 나쁜 것이다. 독립군 활동을 전개하는 중에 효과적 작전 수행을 위해서는 일제를 속이는 거짓말을 아주 잘해야 하고, 못하는 것이 못난 것이다. 고작 선의의 거짓말이 아니라 훌륭하고 숭고한 거짓말조차 존재하는 것이다. 독립군의 거짓말 이야기가 너무 먼 이야기일까.

반공 교육과 ‘한국전쟁’교육의 차이

물론 겨우 탄피 와인잔의 일화에서 이야기가 너무 거창하게 흘러버린 것인지도 모르겠다. 2007년은 한국전쟁 57주년을 맞은 해이다. 전쟁 발발로부터 어느새 환갑이 가까웠다. 하지만 우리는 아직도 그 전쟁으로부터 자유로워지지 못하고 있다. 대한민국의 전후 세대들의 집단적 경험들 중 많은 부분은 한국전쟁과 관련한 반공 교육이 차지하고 있다. 불조심 포스터를 그리고 표어를 짓 듯, 매년 6월에는 반공 포스터 그리기, 반공 표어 짓기, 반공 글짓기 대회 같은 것을 해왔고, 돼지와 늑대의 모습을 한 북한 공산당에 대항해 불쌍한 북한 주민을 구하는 똘이 장군의 활약상을 담은 만화 영화를 보며 성장했다.

그러면서 그들 중 많은 경우 비슷한 형태의 반공 의식과 관련한 꿈까지 공유하는 독특한 경험조차 있다. 고등학교 시절 한 친구가 가끔 가다 한 번씩 태권브이를 타고 북한 공산당을 무찌르는 꿈을 꾼다고 하자, 한 친구는 무장공비들이 침투했거나 전쟁 중이었거나 하는 상황에서 북한 공산군을 피해 마을과 산 속으로 숨어 다니는 꿈을 간혹 꾼다고 해서, 웃은 적이 있다. 사람들이 비슷한 시기에 비슷한 형태의 꿈을 꾸는 것을 보면, 사회적이고 집단적인 삶의 형태가 사람들의 의식에 미치는 영향에 대해 생각하게 된다. 그렇듯 대한민국 전후세대들의 집단적 삶과 의식 안에도 한국전쟁은 어김없이 어떤 양상으로든 도사리고 있다. 하지만 그것이 집단적인 무의식의 공포로만 작용해서, 우리를 갇혀 있도록 내버려두어서는 안 되겠다. 북한과 미국도 그들의 이해관계를 위해 친해질 수도 있다는 사실에 뒤통수를 한 대 맞은 듯 어이 없어할 만큼 어리석어서는 안 되지 않겠는가.

 

 

 

 

 

 

 

 

 

 

 

 

 

 

그동안 우리의 역사, 정치는 물론 사회와 문화 모든 분야의 교육이 반공 교육에만 치우침으로써, 한국현대사의 가장 굵직한 사건인 한국전쟁 자체에 대한 깊이 있는 교육은 외면되어 왔다. 그렇다면 우리가 경험한 전쟁의 역사, 우리가 가진 전쟁의 상처를 우리의 미래에 좋고 이롭게 쓰기 위해 우리는 무엇을 고민하고 알고 실천해 나가야 할까. 바로 그 물음에 대한 하나의 답이 한국전쟁과 관련한 기록들을 발굴하고 공유하고자 노력하는 것이 아닐까. 그것이 곧 과거에서 미래로 가는 지도를 찾아가는 한 걸음 한 걸음들이기 때문이다.(한영신/ 자유기고가)

07. 07. 0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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