컬처뉴스에서 가라타니 고진의 <세계공화국으로>(도서출판b, 2007)에 대한 서평기사를 옮겨온다. 온라인에서 읽을 수 있는 가장 자세한, 그리고 가장 유익한 기사이다. 고진의 책은 책상에 쌓여 있는 40여 권의 책들 가운데서도 가장 눈에 띄는 자리에(맨 위에!) 놓여 있는데, 다른 책들에 치이다 보니 나는 뜨문뜨문 듬성듬성 읽게 된다. 고진의 '가장 쉬운 책'이라고도 하니까 보다 많은 분들이 일독해 보시길 권한다.

컬처뉴스(07. 07. 20)  GO진! 다시 "맑스로 돌아가자!"

미국의 평론가 고(故) 수전 손택은 자신만의 위대한 작가 분류법을 이렇게 밝힌 적이 있다. “위대한 작가는 남편 아니면 애인, 둘 중 하나다.” 이런 구분법에 따르면 내게 가라타니 고진(1941~   )은 애인이었다. 『마르크스 그 가능성의 중심』(1978)에서부터 『유머로서의 유물론』(1993)까지 근 16여 년간이었다. 이 기간은 그가 나쓰메 소세키에서부터 자크 데리다까지, 동서고금의 복잡다단한 사상을 쉼 없이 넘나들면서 깔끔히 정리해내 ‘생각하는 기계’(Thinking Machine)라는 별명을 얻게 된 시기와 겹친다.

그랬던 고진이 언젠가부터 남편이 되려고 애쓰기 시작했다. 내 기억으로는 지역화폐체제(Local Exchange Trading System, LETS)에서 힌트를 얻어 ‘새로운 연대자 운동’(New Associationist Movement, NAM)을 주장한 2000년경부터였다. 그 해 2월과 11월 그는 『윤리21』과 『NAM-원리』를 출간했고, 2004년 5월과 7월에는 앞선 두 저작의 내용을 확장시켰다고 할 만한(또는 앞선 두 저작의 ‘심화’라고 할 만한) 『네이션과 미학』과 『역사와 반복』을 ‘가라타니 고진 저작집’(定本柄谷行人集)의 4권과 5권으로 출간했다.

얼마 전 번역되어 나온 『세계공화국으로』(조영일 옮김)는 이른바 ‘고진의 남편-되기’의 정점에 해당하는 책이다. 우리는 이제 여러 사상들을 현기증 날 만큼 빠르게 넘나드는 솜씨를 과시하는 연인으로서의 고진을 더 이상 보지 못할지도 모른다. 때로는 변덕스러워 보이고, 때로는 신뢰할 수 없어 보이지만, 그만큼 위험해 짜릿한 느낌을 맛보여주는 연인으로서의 모습을.

『세계공화국으로』의 고진이 남편처럼 보이는 이유, 그러니까 믿음직함, 이해할 수 있음, 관대함, 점잖음 같은 안정감을 주는 이유는 본인 스스로 서문에서 밝혔다시피, 과거와 미래의 독자들을 위해 자신의 이론을 체계적으로 제시하려고 애쓰며 지금까지 자신이 써온 곳을 콤팩트하고 알기 쉽게 정리하고 있기 때문이다. 즉, 이제 그는 자신의 목소리를 직접 드러내며, 그만큼 자신의 의견에 책임을 지려고 한다.

그러나 ‘놀던 가락’이 어디 가지는 않는 법, 『세계공화국으로』의 고진 역시 짜릿한 느낌을 선사해 준다. 다만 그 느낌이 위험함이 아니라 대범함에서 온다는 게 다르다. 그리고 그 대범함의 핵심에는 “맑스로 돌아가자”라는 구호가 놓여 있다. 이런 점에서 『세계공화국으로』의 고진은 프랑스의 맑스주의 철학자 루이 알튀세르를 떠올리게 만든다. 알튀세르 역시 “맑스로 돌아가자”라는 구호를 내세웠기 때문이다. 그러나 철학자로서의 알튀세르와 NAM 운동가로서의 고진은 다르며, 그래서 더욱 흥미롭다.

알튀세르가 맑스로 돌아가려 했던 이유는 무엇보다도 1956년 소련공산당 제20차 당대회 이후 서구 공산당에까지 불어닥친 ‘탈스탈린주의’의 경향 속에서, 맑스주의에 대한 경제주의적 해석(사회의 모든 문제를 토대-상부구조의 문제로 환원해 설명하려는 조류), 인간주의적 해석(인간의 자유 의지나 의도 따위를 지나치게 강조하는 조류), 역사주의적 해석(흔히 맑스-레닌주의의 역사발전론 5단계로 대표되는 사회구성체의 변증법적‧선형적 발전을 신봉하는 조류)과 삼중의 투쟁을 벌이기 위해서였다. 그가 보기에 이 세 가지 조류의 해석은 진정한 혁명적 실천을 가로막는 장애물이었기 때문이다.

 

 

 

 

 

  

 

 

이와 달리 고진은 자본주의의 세계화로 인해 국가사회주의(공산주의)와 복지국가자본주의(사회민주주의)가 소멸되거나 쇠퇴한 신자유주의 주도의 세계라는 맥락에서 다시 맑스로 돌아가려고 한다. 즉, 공산주의와 사회민주주의의 실패로 인해 대안체계를 둘러싼 이념과 상상력이 온데간데없이 사라져버린 시대, 그래서 더 이상 혁명이 아니라 ‘저항’만이 운위되는 시대에서 다시 맑스로 돌아가려고 하는 것이다. 

알튀세르는 당시로서 파격적으로 보였을지언정 어쨌든 맑스주의의 ‘내부’에서 맑스로 돌아가려고 했다. 과학사가인 가스통 바슐라르의 개념(인식론적 단절)을 빌려와 청년 맑스와 장년 맑스를 구분하고, 정신분석학자인 자크 라캉의 개념(거울 단계)을 빌려와 이데올로기론을 갱신하고 생산양식의 재생산을 문제삼았지만, 어쨌든 알튀세르는 맑스주의의 언어로 이들을 소화하려고 했다. 그래서 훗날 알튀세르는 다른 전통의 사유를 맑스주의에 끌어온 자신의 시도를 일종의 ‘불장난’이라고 말할 수 있었을 게다.

그러나 고진은 맑스주의의 ‘외부’에서 맑스로 돌아가려고 한다. 고진은 자신이 동반자로 삼은 대표적 두 인물, 독일의 역사학자 칼 비트포겔과 헝가리의 경제인류학자 칼 폴라니의 논의를 맑스주의의 언어로 윤색하지 않는다. 왜냐하면 『세계공화국으로』에서 고진이 제시하려고 하는 주장은 더 이상 맑스의 텍스트 ‘내’에서 말할 수 있는 것이 아니며, 맑스를 비판하지 않고서는 말할 수 없는 것이기 때문이다.

그렇다면 그 주장은 도대체 무엇일까? 고진은 “자본=네이션=국가를 넘어서는 길, 바꿔 말하면 ‘세계공화국’에 이르는 길”을 사유하려고 하며, 이를 위해서 “자본, 네이션, 국가가 어떻게 존재하는 것인가”를 명확히 하려고 한다. 그의 설명에 따르면 자본의 존재양식은 맑스에 의해 어느 정도 밝혀졌다. 그러나 네이션과 국가에 대해서는 그렇지 못하다. 그래서 그는 맑스가 『자본』에서 한 작업을 국가나 네이션에 대해서도 해야 한다고 주장하며, 이런 맥락에서 비트포겔과 폴라니의 논의를 끌어들이는 것이다.

또 한번 그렇다면, 맑스가 『자본』에서 한 작업은 무엇일까? 고진은 맑스가 상품교환이라는 기초적인 ‘교환양식’에서 시작해 복잡한 자본주의 체제의 총체를 해명하려고 했다고 본다. 따라서 맑스가 『자본』에서 한 작업을 국가나 네이션에 대해서도 해야 한다는 말은 국가나 네이션에도 그 기초가 되는 ‘교환양식’이 있으며, 그렇기 때문에 그 교환양식의 역사적 변형과 접합을 추적해 국가와 네이션의 총체를 해명해야 한다는 말이 된다. 요컨대 “생산양식에서 교환양식으로”가 고진표 “맑스로 돌아가자”의 핵심이다.

이런 점에서 보면 『세계공화국으로』의 고진은 “프로이트로 돌아가자”라고 말한 자크 라캉과 오히려 더 비슷해 보이기도 한다. 라캉에 따르면 사람들의 흔한 오해와는 달리 프로이트의 업적은 무의식의 발견에 있지 않다. 프로이트의 위대함은 무의식 자체가 오직 자신의 문법과 논리에 복종하고 있다는 것을, 더 간단히 말하면 무의식은 비논리의 영역이 아니라 그 자체로 또 다른 논리의 영역이라는 것을 밝혀냈다는 데 있다는 것이다. 라캉은 이를 입증하기 위해 정신분석학의 외부에서 프로이트로 돌아가려고 했으며, 그래서 스위스의 언어학자 페르디낭 드 소쉬르와 프랑스의 인류학자 클로드 레비-스트로스를 벗삼은 것이었다.

이뿐만이 아니다. 맑스주의의 생산양식 개념을 교환양식 개념으로 다시 쓰는 고진의 작업은 프로이트에게서 생리학의 마지막 자취를 제거한 라캉의 작업을 연상케 하기도 한다. 생리학의 자취를 제거함으로써 라캉이 프로이트의 이론을 단순한 심리치료 기법이 아니라 주체(인간 존재)에 대한 일반 이론으로 승화시켰듯이, 생산양식을 교환양식으로 치환함으로써 고진은 맑스의 이론을 단순한 자본주의 분석이 아니라 “보편적으로 사회구성체의 역사를 다루는” 일반 이론의 차원으로 끌어올리려 하고 있다.

마지막으로 그렇다면, 고진의 시도는 성공했는가? 일단 그의 시도는 짜릿할 만큼 생각할 거리들을 많이 던져준다. 무엇보다도 교환양식의 네 가지 형태(네이션의 교환원리로서의 증여-답례, 국가의 교환원리로서의 탈취-재분배, 자본의 교환원리로서의 상품교환, 그리고 새로운 사회를 뒷받침할 이념형으로서의 교환 X)라는 개념은 국가와 네이션의 기원을 새로운 관점에서 볼 수 있도록 해주며, 더 나아가서는 이 네 가지 교환양식의 상이한 접합이라는 관점에서 자본주의 체제의 구성 자체를 다시 볼 수 있도록 해준다. 특히 이는 자본주의 체제를 극복하기 위한 전략의 방향을 (재)설정하는 데 도움이 될 것이다.

고진 자신이 폭넓은 일반 독자들을 위해 작정하고 쉽게 썼다는 책에 대해 자세한 내용을 쓰는 것이 적잖이 뻘쭘해 대략 고진의 시도가 갖는 이론적 의의에 초점을 맞춰 글을 쓰다보니 더 많은 내용소개를 담지 못했는데, 『세계공화국으로』에는 앞서 말한 생각할 거리들말고도 다른 방향으로 훨씬 더 뻗어나갈 수 있는 아이디어들이 수없이 많다. 이 책은 정말로 쉬우니 꼭 읽어보시라는 당부를 전하며, 이쯤에서 총평으로 글을 마무리해야겠다. 혼인빙자 사기죄로 고소당할 일은 없을 것 같으니 고진 선생, 계속 정진(GO)하시길! 그리고 독자분들도 남편으로서의 고진을 한번 믿어보시길! 다만 인생에서처럼 사유에서도 남편과 연인 둘 다 필요한데, 둘 중에 하나를 택해야 한다는 것이 심히 애석할 뿐!(이재원 그린비 편집장)

07. 07. 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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드팀전 2007-07-23 12:51   좋아요 0 | URL
지금 제 책상에서도 이 책이 기다리고 있는데...호기심을 자극하는 리뷰네요.알라딘에는 아직 리뷰가 없었지요? 아마?

로쟈 2007-07-23 13:09   좋아요 0 | URL
두 건이 올라와 있는데요.^^

yoonta 2007-07-23 13:21   좋아요 0 | URL
고진 말대로 이 책은 정말 수월하게 페이지가 넘어가네요. 알라딘 리뷰로는 allnaru님의 페이퍼가 있더군요. 로쟈님과 드팀전님의 리뷰나 페이퍼도 기대하고 있는 중이랍니다.^^

람혼 2007-07-23 14:13   좋아요 0 | URL
알튀세르와 라캉 각각의 'retour' 테마를 가라타니의 작업과 연결시키는 논의가 '남편-애인론'보다 더욱 흥미로운 글이군요.^^ 기사 잘 읽었습니다. '맑스를 넘어선 맑스'의 이른바 가라타니식 판본이라고 할까요, <윤리 21>, <트랜스크리틱> 이후 그의 행보는 사람을 신나게 만드는 무언가가 있는 듯 하지만... 어쨌든 맑스 '외부'에서의 맑스로의 접근도 물론 가라타니의 중요한 '기여부분' 중의 하나이겠지만, <마르크스 그 가능성의 중심>에서부터 <은유로서의 건축>을 지나 <세계공화국으로>에 이르기까지 그가 끈질기게 천착하고 있는 맑스의 저 'Verkehr' 개념에 관한 강조와 (재)해석 역시 가라타니의 주요 작업이라는 사실도 간과되어서는 안 될 것이라는 생각이 듭니다. 말하자면, 맑스[-가라타니]의 'Verkehr' 개념이야말로 가라타니가 맑스 '내부'에서 맑스에게로 접근해간 또 하나의 중요한 통로일 테니까요.

드팀전 2007-07-23 16:24   좋아요 0 | URL
^-^ 그렇군요..ㅋㅋ 저야 그냥 교양차원에서 읽는거니까.학문적인 리뷰는 나오기 힘들어요.^^ 대신...평범한 사람들한테..이 책 읽어봐라 나도 하는데..정도의 소구력은 갖지 않을까해요.

로쟈 2007-07-24 15:59   좋아요 0 | URL
리뷰를 쓰실 분들이 여럿 계시군요.^^
 

최근에 나온 책들 가운데 마케팅 전문가들이 쓴 <럭스플로전>(가야북스, 2007)에 관한 리뷰들을 훑어보다가 '명품'이란 키워드를 검색해보았다. '욕망이라는 이름의 명품백'이란 기사를 그렇게 해서 읽은 기사이며 뒤에는 <럭스플로전>에 대한 한겨레의 리뷰기사를 붙여놓았다. '명품'에 대한 욕구나 소비욕망의 작동 메카니즘은 더이상 새로울 게 없다(하지만 그런 소비욕구가 '이해'되는 건 아니다. '책소비'에나 관심을 갖는 사람에게는 더더욱).

<럭스플로전>의 저자들도 그걸 모를 리 없다. 문제는 그것을 '비판하느냐, 아니면 이용하느냐'로 보인다(여기서 한 수 위인 건 물론 후자이다. 작년 여름에 화제가 되었던 명품시계 사건에서처럼. 이에 대해서는 '청담동 필립과 치치코프'란 페이퍼(http://blog.aladin.co.kr/mramor/931002) 참조). '아시아 명품 열풍에 대한 보고서'는 우리 소비문화의 자화상으로 걸어둘 만하다.

해럴드경제(07. 07. 20) 욕망이라는 이름의 ‘명품백’

한낮의 거리. 젊고 매력적인 여성이 다가온다. 남자들은 그녀의 얼굴과 몸매에 시선을 꽂지만, 여성들은 재빨리 옷과 핸드백부터 살핀다. ‘앗, 역시 루이비통!’ 여자들은 ‘그러면 그렇지…’ 하며 고개를 끄떡인다. 남자들은 모른다. 그러나 여성들은 안다. 왜 3초마다 마주칠 정도로 흔해 빠진 루이비통의 ‘모노그램백’을 사기 위해 오늘도 그 많은 이들이 목을 매는지…. 한국에선 이제 무슨 백을 들고, 무슨 구두를 신느냐가 자신이 어떤 사람인가를 대변하는 증명서가 됐으니 이 도도한 흐름을 누가 막을 것인가.



▶여성에겐 설명이 필요 없는 3초백, 5초백, 7초백=지하철이나 버스, 거리 곳곳에서 3초, 5초, 7초마다 마주친다고 해서 요즘 젊은층 사이에선 “루이비통은 ‘3초백’, 구찌는 ‘5초백’, 에트로는 ‘7초백’”이란 말이 나돌고 있다. 물론 정확한 조사를 거친 게 아니어서 이견이 분분할 순 있지만 루이비통, 구찌의 백이 무시무시한 속도로 이 땅을 휩쓰는 것은 사실이다. 이들 명품 백은 한국 여성(일부 남성도!)들의 이글이글 타오르는 명품 욕망을 한껏 부채질하며, ‘나도 이젠 명품족’임을 보여주는 확실한 상징물이 되고 있다.

요즘 서울시내 면세점의 루이비통 매장은 열기가 매우 뜨겁다. 해외여행길에 오르며 루이비통 백을 싼값에 사려는 이들로 북새통이다. 그중에서도 ‘스피디(Speedy)’는 면세점마다 하루 약 10~30개씩 팔려나갈 정도로 가히 폭발적이다. 일명 ‘보스톤백’이라 불리는 이 백은 루이비통 핸드백 중 가장 값이 저렴(가로 25.30.35.40㎝별로 52만~59만원)한 데다, 매우 가볍고 아무 옷에나 무난하게 어울려 날개 돋친 듯 팔리고 있다. 백화점 매장에서도 마찬가지. 면세점보다 20%쯤 비싸지만 역시 잘 팔린다. 그러다 보니 ‘스피디’는 3초마다 마주치는 ‘3초백’이 됐다.

물론 ‘루이비통 왕국’은 말할 것도 없이 일본이다. 도쿄의 20대 여성 94%가 루이비통을 갖고 있는 것으로 조사됐다. 교지로 하타 루이비통재팬 사장은 “일본에서 워낙 강세다 보니 일본 브랜드로 착각될 때도 있다”고 말했다. 그러나 한국도 만만치 않다. 아시아명품마켓 연구가인 라다 차다는 “20대 서울 여성의 50%가 루이비통을 소지하고 있는 것으로 조사됐다”고 밝히고 있다. 물론 이 중에는 ‘짝퉁’도 적지 않겠지만 최근 들어 한국도 명품 소비의 5단계(정복→경제성장→과시→동조→일상화) 중 4단계인 ‘동조’ 단계에 진입했기 때문에 루이비통, 구찌 같은 대표 명품 백들이 더욱 거리를 도배할 것으로 전망했다.

아닌 게 아니라 명품 소비의 최종 단계(일상화 단계)에 접어든 일본에선 초등학생까지 루이비통 지갑을 쓰고, 생선가게 상인들조차 루이비통 가방에 영수증을 보관할 정도니 한국에서는 좀더 갈 것이란 관측이 가능하다. 즉 일본에서 루이비통이 스시나 녹차처럼 생활 속에 깊이 파고든 필수품이 된 것처럼 한국에서도 자판기 커피처럼 흔해질 날이 머지않았다.



▶유니폼이면 어때요? 명품 대열 진입이 더 중요하죠=얼마 전 어머니와 함께 면세점을 찾은 대학생 김지은(22) 씨는 에트로 백을 사려는 어머니와 입씨름을 벌어야 했다. 지은 씨는 “루이비통을 사서 같이 쓰자”고 고집했고, 결국은 루이비통 백을 구입했다. 지은 씨는 “우리 같은 명품 입문자에게 루이비통 ‘스피디’는 딱 맞는 백이다. 또 전 연령대가 쓸 수 있는 백”이라며 “친구 4명과 일본에 갔는데 모두 ‘스피디’여서 가방이 수시로 바뀌곤 했다”고 들려줬다. 또 “지난해까지도 ‘짝퉁’이 꽤 있었지만 올 들어서는 ‘짝퉁’은 졸업하고, 오리지널을 구입하는 게 대세”라고 귀띔했다.

모 특급호텔에서 사무직으로 일하는 유혜영(26) 씨도 얼마 전 ‘스피디 35’(가로 35㎝ 크기)를 샀다. 유씨는 “나도 너무 흔해서 고개를 저었던 사람이다. 그런데 명품치고는 너무 싸고, 쓰임새가 많아 개의치 않게 됐다”며 “당신 같으면 수많은 브랜드 중 하나만 고르라면 무얼 고르겠느냐?”고 반문했다.

그러나 상반된 의견도 적지 않다. 회사원 최은경(33) 씨는 “몇 년 전 ‘모노그램’을 샀는데 요즘은 옷장 속에 처박아 놓았다. 여고생 책가방도 아니고 너무 하지 않느냐?”며 “학창 시절엔 그렇게 똑같은 걸 싫어하더니 죄다 같은 가방을 끼고 명품족입네 하는 건 소가 웃을 일”이라고 비판했다.

파리에서 10년 넘게 활동했던 패션컨설턴트 심우찬 씨도 “프랑스인들은 일본인과 한국인이 루이비통을 유니폼처럼 들고다니는 것을 ‘몰개성의 극치’로 본다”며 “50만~60만원짜리 백 하나 샀다고 명품 대열에 진입했다고 판단하는 건 참으로 안타까운 일”이라고 지적했다.

루이비통에 비하면 구찌는 디자인이 다양해 ‘5초백’으로 꼽히긴 해도 ‘이거다’ 하는 대표 아이템은 없다. 구찌의 ‘G’로고가 새겨진 사각 자카드백이 5초백 후보로 가장 유력하지만 G로고의 구찌 백 전체를 5초백이라 보는 게 맞을 것이다.

7초백으로 지목되는 에트로는 페이즐리 무늬의 갈색 백이 베스트셀러 백. 주로 40~50대 여성들에게 인기가 높다. 그러나 ‘C’로고가 프린트된 셀린느 백과 프라다 백, 체크무늬가 도드라지는 버버리 백이 7초백에 더 가깝다는 설도 있다. 다양한 명품 백 디자인 중에서도 효자상품은 역시 로고가 반복적으로 찍혀 단박에 알아볼 수 있는 ‘로고피케이션 백’이어서 역시 명품 구입 시 ‘타인의 시선’이 가장 중요함을 입증해주고 있다.

▶강박에 가까운 명품 집착, 누가 막으랴=한국의 명품에 대한 집착은 세계에서도 알아준다. 이미 꼭짓점을 찍은 일본과는 달리, 한국 명품시장은 해마다 10~15%씩 성장하고 있어 럭셔리 브랜드들은 이 탐나는 시장에서 더 많은 제품을 팔기 위해 거의 필사적이다. 게다가 남과 똑같이 보이기 위해 명품을 구입하는 일본인과는 달리, 한국의 젊은층은 ‘같으면서도 튀기 위해’ 명품을 구입한다. 또한 한국 여성들의 ‘외모 및 세련된 패션에 대한 욕망’은 세계적으로도 알아준다. 외국 명품업체의 CEO들은 “한국 젊은 여성들의 미적 센스와 명품 소화능력은 정말 놀랍다. 단연 최고 수준”이라고 혀를 내두른다. 거의 강박에 가까운 외모와 패션에 대한 집착은 “루이비통과 구찌는 거의 홍역이다. 누가 이를 막겠는가”라는 자조 섞인 탄식도 낳고 있다. 부작용도 많지만 거스를 수 없는 현실이다.



얼마 전 ‘럭셔리 코리아’를 펴낸 김난도 교수(서울대 소비자학과)는 “기성세대 시각에선 명품 백에 목을 매는 젊은층이 이해가 안 되겠지만 그들에게 물질주의를 버리라고 강변할 순 없다”며 “들로 산으로 나가 놀던 기성세대와는 달리, 요즘의 20대는 소비문화가 놀이문화를 대체한 첫 세대”라고 지적했다. 즉 쇼핑몰 누비기가 최고의 놀이라는 것.

사치의 유형을 ▷과시형 ▷질시형 ▷환상형 ▷동조형 등으로 분류한 김 교수는 최근과 같은 ‘덩달아 명품 백 구입’은 남과 똑같아지길 원하는 동조형 사치에 해당된다고 분류했다. 또 20대 여성의 경우는 ‘질시형 사치’로도 볼 수 있는데 이들은 명품이 남들의 무시를 막아주는 ‘갑옷’ 역할을 한다고 믿기 때문에 흔하디 흔해도 그 대열에 끼어든다고 분석했다.

한편 명품 백이 대중에게 파급되는 과정도 흥미롭다. 명품업체가 스타 등 트렌드세터에게 백을 제공하는 걸 시작으로 ‘버즈(buzz.열광)’가 생성되면 VIP고객으로 이어지고 마지막 단계에 도시 전체가 떠들썩해질 정도로 버즈가 창출되는 것이다. 일반대중은 결국 이 시끌벅적한 버즈를 좇아 행동하며, 지갑을 열고 명품을 구매하며 열풍을 만든다. 그로 인해 똑같은 백들이 사방에 쫘르르 깔리는 것이다.

“이 땅의 소비자들은 세상에 태어나 엄마, 아빠 다음으로 명품을 자각한다”는 우스갯소리가 나올 정도로 명품의 유혹은 참으로 강력하다. 파고드는 연령층도 날로 어려진다. 제대로 된 경제관념을 갖기도 전에 무차별 소비에 노출되는 젊은이들에게 친구 따라 강남 가는 식의 명품 백 사재기가 팽배하는 건 자명한 일.

게다가 명품 백은 이제 더는 ‘백’만이 아니다. 개인의 정체성과 신분을 증명하는 증명서요, 프로토콜(규약)인 것이다. “적금통장 없인 살아도 명품 백 없이는 못 산다”고 외치는 젊은층이 늘면서 명품시장은 오늘도 브레이크 없는 기관처럼 달려가고 있다. 그러나 명품은 가질 때는 황홀하지만, 가질수록 더 배고파지게 마련이다. 지갑은 얇게 하고, 욕망은 더욱 두껍게 만드는 명품. 이 홍역을 누가 피할 수 있단 말인가.(이영란 기자)

한겨레(07. 07. 21) 한국의 명품 열풍은 ‘남 따라하기’

미국 경제학자 소스타인 베블런이 근래 아시아의 명품 열풍을 보면 고개를 갸웃거릴 만하다. 베블런은 상층 계급이 사회적 지위를 과시하기 위한 소비를 하기 때문에 가격이 오를수록 수요도 증가하는 ‘베블런 효과’가 나타난다고 지적했다. 그렇다면 상층 계급도 아니고 사회적 지위를 과시할 필요도 딱히 없는 한국 여대생과 일본 여고생이 명품을 사기 위해 컵라면으로 끼니를 때우고 원조교제를 마다않는 현상은 어떻게 설명할 것인가?

명품 시장은 800억 달러 규모의 세계적인 산업이다. 이 가운데 아시아 시장은 전체 시장 매출액의 37%를 차지한다. <럭스플로전>은 아시아 지역 마케팅 전문가와 아시아 유통망 기획·개발 컨설턴트가 만나 아시아의 명품 열풍 현상을 분석한 책이다. ‘럭스플로전’은 ‘럭셔리(명품)’와 ‘익스플로전(폭발)’을 합성한 단어다. 책은 아시아에서 어떻게, 왜 명품 열풍이 뿌리 내렸는지를 짚어보고 아시아 각국의 유통 현장을 점검한 뒤, 명품 열풍의 미래를 점친다.

우선 지은이는 일부 유럽 귀족들의 사치품이 아시아 여러 나라에서 대중화되기까지 얼마간의 시간차는 있지만 공통된 단계를 밟아 왔고, 또 밟고 있다고 주장한다. 20세기 전반 전쟁과 식민통치, 빈곤을 공통적으로 경험한 아시아 국가들은 20세기 후반에 접어들어 눈부신 경제 성장을 이룩한다. 이때부터 엘리트층이 명품을 사기 시작했고, 경제 발전이 계속되면서 명품을 통해 부유함을 시각적으로 증명하는 ‘과시’ 현상이 나타난다(*아래 도표는 조선일보 리뷰에서 인용).

여기에 아시아 국가들 특유의 집단주의 문화가 더해진다. 다른 사람이 사면 나도 따라 사는 ‘동조’ 현상이 뚜렷이 나타나고, 시간이 지나 명품 소비가 계속 확산되면 눈이 높아질 만큼 높아져 평생 명품을 구입하는 단계인 ‘일상화’로 나아간다는 것이다. 일본과 홍콩, 싱가포르는 이미 ‘일상화’ 단계에, 한국과 대만은 ‘동조’ 단계에 중국은 ‘과시’ 단계에 머물고 있다고 책은 분석한다.

아시아의 명품 유행은 명품 기업들이 전통적인 가족 기업 정신에서 벗어나 복합 그룹을 형성하고, 아시아 시장으로 눈을 돌려 시장을 개척하는 과정과도 맞물린다. “부동산 투자나 호화 여행, 요트 문화를 비롯해 이미 오래 전 소비 스타일이 정립된 선진국에 비해 현재 성장을 이루고 있는 국가들은 우리에게 더 많은 기회를 안겨다 줄 것입니다. 우리는 이제 그 틈을 파고 들어가 자리를 잡아야 합니다.” 루이뷔통 전무이사를 거쳐 셀린느의 시이오로 있는 세르주 브룬슈위그의 말은 럭셔리 브랜드들이 아시아에서 어떻게 소비 규범을 주도했는지를 잘 보여준다.

이들의 시장 진출에 맞춰 아시아의 유통망이 백화점과 명품 브랜드 독립 매장으로 재편됐다. 럭셔리 브랜드는 핸드백 전체를 반복적 패턴의 로고로 가득 채우는 ‘로고피케이션’ 전략으로 신분상승의 대리만족을 안겨줬고, 나아가 핸드폰, 레저 용품 등 소비자의 삶 전체를 명품화시키기 시작했다. 이런 과정을 통틀어, 지은이는 명품 열풍의 핵심을 다음의 한 문장으로 요약한다. “럭셔리 브랜드는 동양인의 정체성과 사회적 위치를 재정립하기 위한 현대적 방식의 상징물이다.”

따라서 지은이는 명품의 대중화가 아시아 국가들의 미래이며, 명품이 일상화되어 포화상태에 이른 일본이 밟아간 모든 단계를 나머지 아시아 국가들도 차례차례 밟을 것이라고 전망한다. 아시아에서 명품 산업은 머지않아 ‘엄청난 잔치’를 벌일 것이라고 그는 내다본다. 특히, 중국과 인도는 이를 이끌어 갈 ‘거대한 엔진’이다.

아시아 명품 시장의 장밋빛 미래를 치밀하게 예견해가는 책을 읽으며 떠오르는 의문 하나. 우리는 재빨리 움직여 이 엄청난 잔치에 숟가락 하나 올리기 위해 유럽 명품 브랜드들을 인수해야 하는 걸까, 아시아 국가들의 문화식민주의를 개탄해야 하는 걸까.(김일주 기자)

07. 07. 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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mravinsky 2007-07-22 23:35   좋아요 0 | 수정 | 삭제 | URL
저는 루이비통 좋아하는 여자는 질색입니다. 음악 좋아하는 여자(비,이효리 부류 빼고)가 좋습니다.

로쟈 2007-07-22 23:49   좋아요 0 | URL
남성 이름임에도 불구하고 저는 왠지 mravinsky님을 자꾸 여자로 착각하게 됩니다.^^;

Joule 2007-07-23 01:01   좋아요 0 | URL
저는 지금도 마빈스키님이 여자인 줄 알고 있어요.

Joule 2007-07-23 01:02   좋아요 0 | URL
마빈스키님, 이박사 좋아하는 여자는 어때요?

yoonta 2007-07-23 01:50   좋아요 0 | URL
Mravinsky 즉 므라빈스키는 러시아의 유명한 지휘자인것 같네요. 고로 므라빈스키님이 좋아하는 여자는 클래식을 좋아하는 여자인 것으로 추측됩니다..^^

심술 2007-07-23 20:17   좋아요 0 | URL
므라빈스키란 이름은 꼭 Mr.아빈스키인 거 같아서 듣거나 볼 때마다 남성성을 뿜어내는데 로쟈님은 어떻게 여성으로 생각하실까요? 궁금해집니다.^^

로쟈 2007-07-23 20:31   좋아요 0 | URL
아마도 주로 여성 이미지를 쓰셔서 그렇게 각인이 된 거 같습니다...

Joule 2007-07-24 03:11   좋아요 0 | URL
아니야. 그럴 리가 없어요. 이건...흠... 그러니까 말이죠. 제 자신의 입장에선 말이죠. MRA를 왜 언제나 MAR로 읽었느냐의 문제인데. 그건 제가 골똘히 생각해 본 결과 로쟈님께 어떤 여성성이 더이상 접근하길 원하지 않았던 저의 내심의 발로가 아니었나,라고 결론내리면 제 개인적인 관점에서는 저희 프로이트 오빠가 무척 기뻐하실 것 같은데...흐음.

로쟈 2007-07-24 12:42   좋아요 0 | URL
오랜만의 **댓글이네요.^^

2007-07-24 03:11   URL
비밀 댓글입니다.
 

어쩌다 발목 잡히는 일이 간혹 생긴다. 한겨레에 실린 김영민 교수의 칼럼 '이소룡에게서 배우는 공부'와 그 문체에 대한 철학자 강유원의 비판을 옮겨놓았는데(http://blog.aladin.co.kr/mramor/1422055), 보기에 따라서는 '편파적'이란 인상을 주었을 법하다. 해서 내친 김에 최근 한겨레에 연재되고 있는 그의 공부론을 모아놓는다('공부론'은 '동무와 연인'에 이은 연재인데, 한겨레와 궁합이 잘 맞나 보다). 이소룡 편이 첫번째 연재였는지라 이어지는 건 그 두번째부터이며 나의 생각 간간이 적어놓도록 하겠다.

 

한겨레(07. 06. 02) 공부론 / (2) 이종범, 혹은 내야수의 긴장

검도 고단자이기도 한 양선규 교수의 소설 <칼과 그림자>를 보면, “내 검도가 육체를 얻었다”는 구절이 눈에 띈다. 쉬운 말로, 저절로, 허세를 부리지 않는 지경에 들게 되었다고 해도 좋다. 혹은, 자기 생각의 틀 속에서 오락가락하는 관념의 검도를 벗어났다는 뜻일 게다. 비록 관우의 청룡도를 얻었다고 해도 연습이 없으면 그것은 아직 ‘관념’이다.

자기 생각의 악순환 속에서 경화(硬化)하는 짓은 그 모든 공부의 지옥인데, 그 지옥을 뚫는 길은 타자(他者)의 지평을 얻는 길뿐이다. 근년의 많은 철학사상들이 필경 자기차이화(self-differentiation)의 체계에 귀속하는 변증법이나 대화주의에서 벗어나 타자의 문제에 깊이 골몰했던 것도 그 같은 시절 인연이 맺힌 풍경이다. 물론 어줍은 경험으로써 자기 생각을 박제화한 치들은 다만 절망 그 자체다. 그래서, 공부에 관한 한, 언제나 ‘조금 더’ 똑똑해지도록 겸허해야 한다. 가령 이윤기의 <아주 특별한 손님>(2006)이나 플로리안 헹켈 폰 도너스마르크의 <타인의 삶>(2006)과 같은 수작들은, 어떤 틈 속으로 스며든 우연찮은 타자성의 체험이 어떻게 내 생각의 탑을 허무는지를 잘 보여준다.

그런 점에서 타자성은 일종의 폭력성이기도 하다. 그리고 폭력적 개입이 없이는 필경 공부에 이르지 못한다. 타자(打者)와 투수가 삼진과 홈런으로 주고받는 폭력적 개입, 주자와 야수의 충돌이 선사하는 새삼스러운 내 몸의 현실! 진정한 타자, 진정한 폭력과 만남(충돌)이 없는 문사들의 논쟁은 그런 뜻에서 대체로 사이비다. 피아의 구별도, 심지어 무기와 몸의 구별조차 없는 두루뭉술한 관념적 혼란과 혼동으로는 공부의 기본에도 이르지 못한다. 그들은 죽지 않으므로 살지도 못하며, 그렇기에 삶과 죽음 사이에 놓인 타자성의 체험에 이르지 못하는 것이다. 그렇게 보면, 마치 도장격파(道場擊破)를 하듯이 각지의 지식인-전문가들을 찾아다니며 그 지식의 허구와 허세를 까발린 소크라테스야말로 지극히 무사적이지 않은가?

공부하지 않는 이들, 자기 생각과 경력의 오연(傲然) 속에 자의식의 깃발을 꽂은 이들, 싸워도 영영 죽지 않는 이들, 그리고 타자의 세계를 오직 자기 생각을 번식시키기 위한 뻐꾸기의 둥지로만 여기는 이들에게 세상은 오직 자기 생각의 표상으로만 의미 있는 관념의 덩어리다. 그들에게 모든 인식(cognition)은 재인식(re-cognition)의 동화체계 속으로 내재화시키는 짓이며, 이때 타자는 자신의 거울방에 다만 그림자를 남길 뿐인 풍경이다.

문제는, 관념과 그림자의 거울방을 깨고 나가서 실전(實戰)으로 공부하는 방식을 묻는 일이다. ‘어떤 틈 속으로 스며든 우연찮은 타자성의 체험’에 자신을 넉넉히 노출시킬 수 있도록 준비하는 일이다. 자기체계의 안정화가 아니라 늘 새로운 변화에 기민하도록 탄력 있는 긴장의 상태로 스스로를 부단히 조율해가는 일이다.

일본 최고의 무사 미야모토 무사시(1584~1645)가 쓴 병법서인 <오륜서>(五輪書)는 ‘차림새가 있는 듯이 없고 없는 듯이 있는 상태’를 유독 강조한다. 문사들이 지행병진(知行竝進)을 말하는 것과 다를 바 없다. 형(型)을 뚫어내고 자기표현으로 나아간 단계로서, 이른바 검선일체(劍禪一體)에서 멀지 않을 것이다. 무사시의 해설을 덧붙이면, “몸이 정지해 있을 때에도 마음은 정지하지 않아야 하며, 몸이 민첩히 행동할 때에도 마음은 평정하게 하여 몸의 움직임에 끌리지 않도록 해야 한다”는 것.

요컨대, 움직임 속에 머무름이 있고 머무름 속에 움직임이 있어야 한다. 나는 지난 30년 이상 매일 몇 시간씩 버릇처럼 글쓰기를 계속해오면서 의도와 결실 사이에서 번득이는 바로 이 정중동동중정(靜中動動中靜)의 이치에 매우 익숙해졌는데, 그것은 마음이나 몸, 생각이나 손가락, 혹은 문사나 무사의 경우가 따로 나뉘지 않는다.

민활한 긴장의 일상적 배분이 생활화되는 가운데 ‘차림새가 있는 듯이 없고 없는 듯이 있는 상태’는 찾아온다. 시쳇말로 바로 그것이 ‘연습을 실전처럼, 실전을 연습처럼’ 할 수 있는 경지다. 야구의 천재라고 불리기도 하는 이종범 선수의 말이다: “내야수는 투수의 공 하나하나를 놓쳐선 안 된다. 투수가 공을 던지고 그게 맞아 나가고 하는 것을 보면서 자연스럽게 집중력이 생긴다. 그런 적당한 긴장감이 타석에도 이어지게 되면 타자로서도 좋은 결과를 낼 수 있다.” 수비할 때에도 공격하는 일을 ‘생각’하는 사람이 이승엽이라면, 수비가 곧 공격인 사람이 이종범인 것이다.(김영민/철학자)

공부인(工夫人)의 두 가지 모델이 제시된다. "마치 도장격파(道場擊破)를 하듯이 각지의 지식인-전문가들을 찾아다니며 그 지식의 허구와 허세를 까발린 소크라테스"와 전설적인 사무라이 야마모토 무사시이다. 김영민은 문사와 무사를 나누지 않으며 오히려 문사의 모델을 무사에게서 찾는다. 그것이 '몸으로 하는 공부'이다. 한데, 그가 말하는 타자는 우리를 윤리적 주체로 정립시키는 레비나스적 타자가 아니다. "진정한 타자, 진정한 폭력과 만남(충돌)이 없는 문사들의 논쟁은 그런 뜻에서 대체로 사이비다."라고 말하지만, 그때의 타자는 '과부와 고아와 이방인'이 아니라 내가 '격파해야' 하는 강적으로서의 타자이다. 내가 그를 베지 않으면 내가 베이게 되는. '살벌한' 공부론이라 아니할 수 없다... 



한겨레(07. 06. 16) 공부론 / (3) 변덕이냐 변화냐

영리한 인간은 그 근본에서 ‘공부’를 하지 않는 사람을 말한다. 이와 대조적으로 내가 조형해온 ‘현명한 인간’이란 이미, 그리고 ‘돌이킬 수 없이’ 공부의 결실을 맺고 있는 사람이다. 사과나무는 ‘돌이킬 수 없이’, 그리고 충실히 사과를 맺으며 그 시절인연을 소중히 하는 법이고, 가령 일단 소크라테스를 만난 사람은 ‘돌이킬 수 없이’ 그의 자장(磁場)에 휩쓸려 들 수밖에 없다. 나는 20대의 어느 순간 키르케고르를 ‘만나’(나는 그를 ‘읽지’ 않았다!)기성의 제도 기독교로부터 섭동(攝動)했는데, 아, 실로 그것은 돌이킬 수 없는 것이었다.

공부란 실로 돌이킬 수 없는 ‘변화’다. 이에 비하면 영리한 것은 ‘변화’가 아니거나 혹은 기껏 ‘변덕’이다. 아, 우리의 세속은 바잡거나 반지빠른 변덕의 세상이다! 물론 변덕은 몸이 아니라 생각이 주체일 경우에 가능한 삶의 태도인 것이다. 그러므로 공부가 변화의 비용이고 그것이 결국은 몸의 주체적 응답의 방식일 수밖에 없다면, 공부란 삶의 양식을 통한 충실성 속에 응결한 슬기와 근기일 수밖에 없다.

영리한 인간들은 학같이 긴 다리로 물가를 노닐면서 솜씨있게, 날름날름 물고기들을 쪼아먹는다. 학은 자신의 깃을 물에 적시지 않는다. 칸트를 비판하는 헤겔의 유명한 말을 임의로 차용하자면, 물에 들어가지 않고도 영법(泳法)을 배우는 사람은 참으로 영리한 인간인 셈이다. 말할 것도 없이, 우리의 세속인 자본제적 삶의 형식은 이처럼 영리한 인간들을 체계적으로 재생산한다. ‘대학(大學)’이라는 자못 무서운 이름을 붙인 곳마저 그 영리한 인간들이 자신의 영토로 점유하고 말았다. 그러나 우두커니 서거나 이드거니 걸으면서 현명한 인간, 혹은 공부하(려)는 인간은 물속에 몸을 잠근다. 그리고 너무 오래, 너무 깊이 잠근 탓으로 혹간 몸에는 지느러미가 돋고 아가미가 생기기도 하는 것이다. 그래서 그들은 과거의 생활로부터 ‘돌이킬 수 없이’ 단절하며, 마침내 ‘변덕’이 범접할 수 없는 지경으로 ‘변화’하고 마는 것이다.

영리한 인간들은 공부조차 상품으로 대하며, 값없이 냉소하는 가운데 그 필요한 부분을 발밭게 뽑아 먹는다. 그래서 공부를 ‘퀴즈화’시켜 벼락치기를 일삼는다. 임금의 호의도 무시한 채 스스로 과거시험을 피해 다니곤 했던 연암도 학술-문장-과거로 서열을 매긴 바 있고, 다산도 과거제의 폐해가 없는 일본을 한편 부러워하기도 했다. 이처럼, 우리가 아는 대부분의 실학자들은 과거를 아예 공부로 치지도 않는 편이었다. 그러나 지금은 대학의 안팎을 막론하고 온통 현대판 과거시험들로 북새통이다.

이 수험생들은 자신의 몸으로써 공부와 만나지 않는다. 자신의 생활양식으로써 공부를 뚫어내지 않는 것이다. 아니, ‘만날 때라야 배운다(It is when we meet someone that we learn something)’(서양 속담)지만, 이들에게는 ‘만남’ 그 자체가 송두리째 빠져 있는 것이다. 그래서 바디우(A. Badiou)의 말처럼, 만남이 아니기에 아무런 ‘사건’일 수도 없는 것! 이들은 선생도 만나지 않고 구경하며, 책도 만나지 않고 절취(截取)할 뿐이다.

공부가 나를 지배하지 않고 내가 공부를 지배하려 할 때 변덕은 변덕스럽게 기승을 부린다. (내 용어로 풀면, 앞의 것은 ‘하아얀 의욕’이고 뒷놈은 ‘박잡한 욕심’일 뿐이다.) 물론 그 변덕이 상업주의적 차이의 문화와 결탁하고 ‘결코 물리지 않도록 해야 하는 상품의 전략’(아도르노) 속으로 되먹임된다는 사실은 이제 상식이 되었다. 공부가 나를 지배하는 사건을 일러 변덕이 아닌 ‘변화’라고 부른다. 그것은 바울이 예수를 만난 사건, 엥겔스가 마르크스를 만난 사건, 조영래가 전태일을 만난 사건, 그리고 뉴턴이 사과를 만난 그 사건 속의 ‘돌이킬 수 없음’처럼, 그 만남 속에 개시된 공부의 물줄기는 돌이킬 수 없이 그 학생들을 휘어잡는다.

얼마 전, 사진가 정주하 교수의 소개로 전직 불교 승려였던 바라춤과 차(茶)의 명인을 만나게 되었다. 전주 인근의 외진 곳에 한옥을 개축한 집은 상당한 규모의 정원을 보듬고 있었는데, 갖은 꽃나무들이 시절을 좇아 왕성했고, 한가운데의 조촐한 연못도 주인의 기색을 닮은 듯 소담스러웠다. 2천만원의 전셋집이라는데 서울이라면 그 100배를 준다 해도 얻기 어려운 운치와 깊이가 자못 그윽했다. 두어 시간 가량 차를 대접받으면서 환담하는 사이, 그 주인 부부가 ‘녹차방’으로 쓴다는 작은 문간방을 구경하면서 나는 또 한번 그 ‘돌이킬 수 없음’의 기미에 젖는 작은 희열을 느낄 수 있었다.

그것은 현란하고 번드레한 만화경적 도시의 공간과는 다른 공간, 돌이킬 수 없이 그 ‘깊이’와 부딪칠 수밖에 없는 공간, 도시적 영리함만으로는 도무지 지배할 수 없는 공간, 드나드는 사람들의 인문(人紋)이 아로새겨진 공간, 인간 존재의 다른 차원을 불현듯 일깨우는 공간, 그리고 변덕이 없을 공간이었다.

나는 한동안 그 방안을 조심스레 바장였다. 그리고 ‘욕심 없는 의욕’을 키우며 내 몸을 그 공간 깊숙이 풀어놓고 있었다. 그리고 오직 영리한 변덕으로 일관하는 이 시대를 돌아보며 ‘어떤 공부’의 죽음을 애도하고 있었다.(김영민/철학자)

그에 따르면, 공부란 돌이킬 수 없는 만남이 가져다주는 '변화'이다. 이로써 연애만한 공부가 없다는 걸 다시 확인하게 된다. "과거의 생활로부터 ‘돌이킬 수 없이’ 단절하며, 마침내 ‘변덕’이 범접할 수 없는 지경으로 ‘변화’하고 마는" 연애!.. 그리고 그로부터 짐작해볼 수 있는 '공부'의 유형학: 사건, 사고, 스캔들...

한겨레(07. 06. 30) 공부론 / (4) 차붐, 적지(敵地)에서 배운다

그간 이런저런 학술모임에 초청받아 강의나 강연을 한 것이 줄잡아 수백 건은 되겠다. 1990년대에는 이른바 ‘심층근대화’를 위한 인문학 운동 차원에서 열심을 부리기도 했던 것인데, 막 개화되고 있던 대중들의 문화적 활성을 인문학적 가치와 연계시키려고 애를 썼다. 개인적으로 말하자면, 낯선 학인들과의 대화적 만남과 그 창의적 긴장 속에서 내 공부를 점검할 수 있는 ‘현장’으로 활용하기도 했다.

그 숱한 강연들의 풍경, 그 명암과 득실을 일괄할 수는 없다. 그러나 그 강연들을 돌이켜볼 때 가장 의미심장하게 남은 인상으로는 아무래도 ‘오인과 어긋남’일 것이다. 한마디로, 안타까운 일이지만, 대부분의 강연장은 늘 오해의 잔치라는 인상을 지울 수가 없었다. 물론 리처드 로티나 헤럴드 블룸 등이 말하는 오인의 역설적 창의성도 있었을 테고, 자크 라캉의 말처럼 대화적 관계 그 자체의 조직 속에 각인된 어쩔 수 없는 오인도 있었을 테다. 그러나 강연장에서 횡행하는 의사소통적 오해는 이런 식으로 변명할 수 없는 병통들로 들끓었고, 그것은 명백한 인재(人災)였다.

우선 세태를 그 배경으로 거론하지 않을 도리가 없다. 개인적 경험에 비추어 보면, 2000년을 고비로 청중들의 관심이나 열의 그리고 현장의 분위기가 눈에 띄게 달라진 것을 절감할 수밖에 없었다. 철학과 인문학의 텍스트는 사용설명서나 리모컨만 달랑 달고 나오는 제품이 아니다; 좋은 글과 말일수록 한 쪽 한 쪽, 한 문장 한 문장, 한 자 한 자씩을 자못 고통스럽게 읽고 듣고 이해하는 ‘비용’은 필수적이지만, 세태와 대중은 이런 식의 비용에 날이 갈수록 적대적이다. ‘작은 차이의 나르시시즘’을 위한 얼토당토않은 화폐의 비용은 앞다투어 치르면서도 좋은 책의 해득을 위한 정신의 비용은 좀처럼 치르려 하지 않는다. 학문 일반의 기능주의와 철학을 비롯한 인문학의 상업주의적 키치화, 그리고 퀴즈화는 돌이킬 수 없을 정도이며, 이는 강연장의 기운과 분위기에서도 고스란히 드러난다.

돈을 벌게 해준다거나 웃기기라도 못하면 주목을 받기 어려운 세속 속에서, 진지한 공부는 점점 자신의 영토로부터 내몰릴 수밖에 없는 현실이다. 게다가 강연 그 자체가 한갓 이벤트로 끝나는 경우도 비일비재하다. 그래서 진지한 교학상장의 배움터가 되기는커녕 기성의 제도를 유지하려는 반복강박적 장치가 된 채, 서둘러 질문과 토의를 닫아 버리고 뒤풀이랍시고 술담배 속에 갖은 잡담이나 일삼는 게 예사였다. 더 이상의 얘기는 오직 각설, 각설, 하겠다

내가 특별히 주목하려는 것은 학술행사나 강연에 참가하는 학인/지식인들의 행태다. 그리고 그 요점은, 결코 적지 않은 수의 문사들은 유독 학술적 대화에 만연한 오해와 오인 속에 덤으로 묻힌 채 스스로의 무능과 나태를 손쉽게 숨길 뿐 아니라, 아예 왜장치듯 실없이 떠벌리기만을 좋아한다는 것이다. 대화술에 대한 몽테뉴의 고전적 권면과는 달리, 강연자를 위협하는 정신의 힘을 만나는 쾌락(!)은 점점 드물어만 간다.

인문학적 대화는 그 속성상 꼼꼼한 준비와 섬세한 접근, 죽도록 경청하기와 아는 것을 다 말하지 않기, 그리고 동정적인 혜안과 합리적인 대화술이 필수적이기에 일회성의 극장식 만남에 따르는 한계는 만만치 않다. 우선 강연의 형식 자체가 비인문학적이기도 하려니와 강사를 대하는 문사-청자들의 태도에서 그런 실천적 지혜와 배려, 혹은 근기를 찾아보기는 차마 어렵다. 발표할 문건을 미리 숙독하고 참가하는 이들조차 소수인데다, 그저 제 시간에 자리를 지켜주는 이들마저 점점 줄어들고 있다.

일본 최고의 무사였던 미야모토 무사시가 그의 병법서에서 ‘차림새가 없는 듯이 차림새가 있는’ 이치를 거듭 강조한 것은 무사의 삶이란 곧 일생일대사의 승부의 현장이고, 상대를 놓치는 순간 곧 죽음은 임박한 것이기 때문이다. 내가 수없이 많은 학술행사를 겪으면서 뼈저리게 자탄하는 것은 우리 문사들의 세계에서는 상대를 극진히 공대해야만 살아남는 긴박하고 위태로운 만남의 현장을 찾아보기 어렵다는 사실이다.

무사들이 정직한(!) 피를 뿌리면서 스스로의 무능을 자인하며 죽어가는 순간에도, 문사들은 좀비처럼 끝없이 부활한다. 자신의 실수와 더불어 죽을 수밖에 없는 냉혹한 무사들/스포츠인들의 세계와 달리, 문사들은 ‘(나쁜) 모방적 상호성의 메커니즘’(르네 지라르) 속에서 오해의 잔치와 실수의 파티를 벌이면서도 단 한 사람 죽었다는 소식이 없다. 물론 칼과 펜의 이치 사이에 놓인 어떤 심연을 까탈스럽게 모른 체하려는 게 아니다; 다만, ‘말(어휘)로 행복해지는 세상’(리처드 로티)은커녕 각자의 실력조차 제대로 점검할 수 없는 문사들의 제도화된 학술행사와 그 곤경을 더불어 성찰하려는 것이다.

나는 지금도 먼 이국에서 낭보를 띄워주곤 했던 갈색폭격기 차범근의 활약을 기억한다. 적지(敵地)의 현장에서 온몸으로 뛰고 피하고 부딪치고 넘어지면서 이룬 그 정직한 성취를 기억한다. 말없이 정직하던 그의 근육을 기억한다. 적들을 기민하게 공대해야만 살아남는 승부의 현장에서 온몸으로 공대하던 그의 정직한 몸을 기억한다. 오직 실력만이 통하던 그 현장의 열기를 여태 생생히 기억한다.(김영민/철학자)

다시 무사시다. 정중동동중정. 인문학 학술모임과 강연에 대한 실망감을 적으면서 필자가 되새기고 있는 것은 '무사들의 '정직한' 죽음 vs 좀비 같이 되살아나는 문사들'이다: "무사들이 정직한(!) 피를 뿌리면서 스스로의 무능을 자인하며 죽어가는 순간에도, 문사들은 좀비처럼 끝없이 부활한다." 문사들도 좀 죽어줬으면 하는 게 필자의 바람이겠다. 물론 당초의 기대는 "막 개화되고 있던 대중들의 문화적 활성을 인문학적 가치와 연계시키"고 "낯선 학인들과의 대화적 만남과 그 창의적 긴장 속에서 내 공부를 점검할 수 있는 ‘현장’으로 활용하"하려는 것이었지만 실없이 떠벌리기나 좋아하는 학인/지식인들의 행태에 환멸을 느낀다는 것. 그리하여 "오직 실력만이 통하"는 무사들/스포츠인들의 세계가 그립다!

한겨레(07. 07. 14) 공부론 / (5) 생각은 공부가 아니다

생각은 공부가 아니다! 어쩌면 이 한 문장만 새겨보고 여겨들어도 공부의 벼리를 휘어잡을 수 있을 테다. 물론 ‘나는 생각하므로 존재한다’(데카르트)는 식상한 말처럼 인간은 무엇보다도 ‘생각하는 존재(ens cogitans)’다. 무념무상이 대체로 공염불에 빠지고 생각하지 않으려는 노력이 또 다른 공상으로 미끄러질 때, 생각하기와 생각을 하지 않으려는 생각 사이의 사이길을 뚫어내기란 실로 어렵다. (내 지론을 서둘러 반복하면, 생각의 바깥은 역시 생활양식의 충실성을 통해서 드러날 뿐이다.)

‘배우되 생각하지 않으면 어둡다(學而不思卽罔)’(논어)는 격언을 우리는 여태도 소중하게 기억하고 있다. 그런가 하면, 함석헌 선생은 ‘생각하면 씨알이 되고, 생각을 못하면 죽정이!’라고 절규하시면서 ‘생각하는 민족이라야 산다’는 국훈(國訓)을 남겨주시기도 했다.

‘쯧쯔, 저 놈, 도무지 생각이 없어!’라고 하시던 이런저런 어르신들의 추억도 여전하다. 옛날, 아주 옛날, 내가 속했던 핸드볼 팀의 코치는 우리들을 개잡듯이 패면서 ‘이 X탱구리들아, 생각 좀 해라, 생각!’이라고 시합에서 질 때마다 볼멘 소리를 내뱉곤 했다. 미국에서 만난 영리한 초등학교 교사 헤이즐은 그녀의 학생들을 향해서, ‘말하면서 생각을 해요!(Think as you speak!)’라고 버릇처럼 외쳐댔다.

이 모든 삽화 속에 등장하는 ‘생각’이란 한결같이 긍정적인 무엇으로 제시된다. 데카르트주의의 통속적인 변명처럼, 생각하는 것이야말로 그 무엇보다 인간으로서의 가치와 긍지에 부합하는 활동이라는 말이다. 그러나 잘라 말해서 공부하는 인간이 그리 많지 않듯이, 생각이 곧 공부와 이어지는 것은 아니다. ‘생각’이라면 장삼이사 그 누구나의 것일 뿐 아니라 필부필부라면 오히려 멈출 수도 없을 지경으로 늘 과잉하지만, ‘공부’는 그처럼 값싸게 먹을 수 있는 게 아니다. 마치 그것은 해방적 ‘상상’의 근기가 ‘공상’의 백일몽적 변덕과 그 근본에서 다른 차원의 활동이라는 사실에 조응한다. 현명한 선인들은 ‘어디 가든 공부가 아닌 것이 없다(非往而無工夫)’며 아마추어들을 유혹하지만 오히려 눈여겨 살펴야 할 대목은 그들이 남모르게 치른 비용이다.

한때 내가 있던 대학에는 유달리 만학도가 많았는데, 그 중의 일부는 철학-공부를 자신들의 나이와 경력과 고민(‘생각’)으로 대체할 수 있으려니 ‘생각’하곤 했다. 그러나 그 생각의 바벨탑은 공부에 이르지 못한다. 그러면 대체, ‘생각’이란 무엇일까? 우리 모두가 경탄해 마지 않는 마르셀 프루스트의 <잃어버린 시간을 찾아서>에서 한 토막을 인용해서 살펴보자: “평소에 나는 금방 자려고 하는 대신, 지나간 옛날 우리집의 생활, 콩브레의 왕고모 댁에서, 발베크, 파리, 동시에르에서, 베네치아, 또는 그 밖의 고장에서 보낸 생활을 회상하거나 그러한 장소, 거기서 알게 된 사람들, 그 사람들에 대해서 보고 들은 일 따위를 머릿속에 그리며, 밤의 대부분을 지새우곤 한다.”(<스완네집 쪽으로>)

이 작품에 대한 은하수 같은 상찬과는 별도로, 꼭 이런 짓-“…따위를 머릿속에 그리며, 밤의 대부분을 지새우곤” 하는 짓-을 일러 ‘생각’이라고 하는 것이다. 나는 그간 이런 식으로 자기-생각에 빠지는 짓을 일러 ‘자서전적 태도’라고 불러왔는데, 그 요체만을 지적하면 자기동일성을 심리적으로 강화하는 것에 다름 아니다.

그러나 그런 식으로 밤을 지새우면서 ‘생각’ 따위를 일삼지 말라는 게 또한 순자(荀子)의 말씀이다. 요컨대, 하루종일 방안에 틀어 박혀 생각만 하느니 다 쓸 데 없고 책 한 권이라도 제대로 읽는 게 낫다는 것이다. 말하자면 ‘생각하되 배우지 않으면 위험하다(思而不學則殆)’는 말인데, 이 위험이란 곧 자기-생각을 ‘자연화’시키는 것을 가리킨다고 보아도 좋다.

그러나 무릇 인문학의 공부란 자기 자신의 생각들이 자연스럽지 않다는 사실을 사뭇 뼈아프게 깨치는 일련의 사건들이다. 혹은 (괴델을 원용해서 말하자면) 그 생각의 일부로써 그 생각의 틀을 정당화할 수 없다는 사실에 부딪쳐서 자빠지는 일이다. 혹은 내 ‘생각’만으로는 영영 너의 ‘사실’에 접근할 수 없다는 사실, 그래서 내 생각의 막(膜)을 찢고 나가는 모종의 실천적 근기가 없이 들먹이는 관념적 상호소통의 이상이 종종 공소하다는 사실을 느리지만 지며리 깨쳐가는 과정들이다.

문제는, 자기-생각이라는 게 워낙 타인을 배제하는 속성에 젖어 있다는 것이다. 실은 생각이 적어서 공부가 모자란 것이 아니다. 실없이 생각이 많은데다 결국 그 생각의 틀 자체가 완고한 테두리를 이루는 게 오히려 결정적인 문제다. 이 경우에 전형적인 증상은 냉소와 허영이다. 냉소와 허영이란 타인들이 얼마나 깊고 크게 자신의 존재에 구성적으로 관여하는지를 깨닫지 못한 상태를 가리킨다. 현대의 많은 철학자들이 나/너(주/객)의 인식론적 이분법을 비판하고 둘 사이의 구성적 연루를 밝혀 온 것에 귀기울여 볼 노릇이다.

생각은 그 외래적 기원을 잊고 무서울 정도로 자기 자신만을 돌아본다. 그리고 그 잡다한 생각의 다발들로 테두리를 짓고 벽을 쌓아 올리며 일희일비하는 것이다. 일찍이 하우저는 ‘심리학은 은폐되고 불철저한 사회학’이라고 갈파하기도 했지만, 좋은 심리학은 늘 심리의 바깥에서 조언을 구하는 법이다. 그것은 마치 나의 모든 생각이 애초에 그 생각의 바깥에서 움터왔음을 겸허하게 인정하는 일과 같다. 공부도 조직적인 생각이 필요하긴 하다; 그러나 생각은 아직 공부가 아니다.(김영민/철학자)

요는 ‘어디 가든 공부가 아닌 것이 없다(非往而無工夫)’는 말은 어불성설이며 제값의 공부는 지극히 드물다는 것. (잡)생각들로는 감히 넘볼 수 없는 경지가 공부인바(그 많은 수험생들은 다 무엇을 하는 것일까?) 이러한 정의에 따르자면 대한민국에서 공부하는 사람은 필자를 포함해서 몇 안되는 것이겠다. 하니 어중이떠중이들은 공부란 말을 입밖에 내는 일도 삼가할 일이다. 대중으로선 장정일식 공부가 상식에 맞는 게 아닌가 한다(http://blog.aladin.co.kr/mramor/1000883  참조).

07. 07. 19-20.

P.S. 요는 공부의 길이란 게 고고한 무사도와 같은 것이며 공부의 세계는 오직 실력만이 통하는 세계라는 것. 이 다른 차원의 공부가 대중이나 범상한 학인들이 고작 '퀴즈화'하는 공부가 아닐 것임은 당연하다. 그것은 돌이킬 수 없는 만남이 가져다주는 '변화'의 궁극이다. 하니, 니들이 공부를 아느냐?..

P.S.2. 김영민에 이어서 지젝에 관한 페이퍼를 쓰다 보니 예전에 읽은 칼럼이 생각나 옮겨놓는다. 김영민 교수의 칼럼 중에 지젝이 언급된 것이어서 예전에 옮겨놓을 뻔했던 칼럼이다.

한겨레(07. 01. 12) [동무와연인] 스승의 기운이 현신한 제자

출근할 때마다 현재 김흥호(1919~) 선생의 방을 지날라치면 '사각사각', 늘 먹가는 소리와 함께 진한 먹물 내음이 코를 찔렀다. 그 사이, 그는 묵향(墨香) 가득한 작은 서재의 창 밖으로 먼 눈길을 보내고 있곤 했다. 나는 그의 연구실에서 먹가는 기계를 난생 처음으로 보았고, 그를 통해서 일식주야통(一食晝夜通)이라는 것을 배우게 되었으며, '도(道)는 실천'이라는 그 진부한 얘기가 한 사람의 생활 양식을 통해서 진득하고 이드거니 구체화되는 모습을 엿볼 수 있었다.



유학을 마치고 막 귀국한 1990년대 초에 나는 현재 선생과 같은 학교에 재직했는데, 우연찮게 그의 연구실은 바로 옆 방이었다. 근 3년간 옆집살이(!)를 하면서 매일같이 스치고 대하는 중에 이런저런 인연을 쌓을 수가 있었다. 산행을 같이 했고, 일식(一食)하던 어느 자리에 운좋게 동석하기도 했으며, 일본어책을 읽다가 궁색한 곳이 생기면 냉큼 찾아가 도움을 청하기도 했다. 촉급하게 상경해서 이사할 곳을 얻지 못해 난감했을 때에는 이화여대 후문 쪽에 있던 그의 집에서 근 보름간을 기숙하기도 했는데, 그 정갈하고 소담한 정원이 몹시 인상적이었다.



어느 학기엔가 그가 강의하던 <선(禪)과 철학>이라는 수업 중에 들어가 몇 차례 서양철학을 강의하면서부터 그는 내게 특별한 관심을 표시하기 시작했다. 내 강의의 인상을 얹었다면서 <유심현묘(幽深玄妙)>라는 붓글씨를 써서 액자에 담아 선물로 보내온 것도 그 무렵이었다. 이후로 그는 내게 편지를 보낼라치면 꼭 나를 “천재”라고 칭하곤 했고, 위당 정인보나 다석같은 분을 스승으로 두었으면서도 학생들이 있는 자리에서는 “이 학교에서는 내가 김 교수를 스승으로 여긴다!”고 정색을 하곤 했다. 불과 손자뻘의 나이였던 나는, 아마도 ‘내가 몹시 귀엽게(!) 보이는가 보다’라고 여겼을 뿐, 그 드문 인연에서 내 공부길의 새로운 진경(進境)을 탐문할 지혜도 깜냥도 요량도 없었다.

근현대 한국 지식계의 근원적 불행처럼, 내게도 스승이 없었으며 스승을 찾을만큼 현명하지도 못했던 것이다. “당신(학생)이 나(스승)처럼 나이가 들면 알게 될 것입니다”라고 말할 수 있는 가다머(H.G. Gadamer) 식의 해석학적 권위가 사라진 세상, 그것이 표절과 짜깁기의 천국, 한국 지식계의 비밀이다. “철학의 전수(傳授)는 스승-제자라는 제한되고 형상화될 수 없는 형상을 통해 이루어진다”는 바디우(A. Badiou)식의 철학관이 오히려 타매되는 냉소와 권력욕망의 지옥, 그것이 한국 철학계의 비밀이다.



물론 내가 그의 스승인 다석(多夕) 유영모(1890~1981)에 관심을 갖게 된 것도 필시 그같은 인연 덕분이었을 것이다. 함석헌을 비롯해서 다석 선생을 따른 제자들이 여럿 있지만, 특히 그는 스승의 자취를 진득하고 충량하게, 조용하고 지며리 따른 것으로 유명하다. 일식(一食)도 결국 다석 선생을 모방한 버릇이었지만, 그가 여든이 넘도록 일반 청중을 상대로 동서양의 경전과 사상을 넘나드는 강의-증여에 열심이었던 것도 역시 스승 다석을 모방한 것이 아닐 수 없다. 나는 다석 선생을 뵐 기회조차 없었지만, 만 3년간 현재 선생의 일상을 그 편린이나마 지켜보는 가운데 글로 읽은 그 스승의 기운이 현신(現身)하는 듯한 착각에 사로잡히곤 했다.



논문 한두 편만 썼다 하면 냉소와 객기가 하늘을 찌르는 이 토끼들의 마을- 호랑이들은 모두 파리나 런던, 베를린이나 뉴욕에 있다는 신화! -속을 살아가면서 가장 놀랐고 또 부러웠던 것은 그 도저한 권위와 그 신뢰였다. 그가 스승을 회고하는 글이나 말 속에는 스승의 권위에 대한 전적인 신뢰가 태고의 것처럼 어둑하지만 깊다. 가령, 이런 식이다: “선생님이 너무 여러번 한글에 신비가 있다고 하셔서 요새는 나도 무엇인지 한글에 신비가 있지 않나 하고 생각하는 때가 있다.”(<유영모 선생과 더불어 30년>. 김흥호)

스승의 길을 무턱대로 모방할 수 있는 쾌락은 아무에게나 찾아오는 행운이 아니다. 우리같은 표절과 짜깁기의 천국에서는 언감생심 흉내조차 낼 수 없는 교학(敎學)의 경지일 것이다. 청산주의와 따라잡기로 일관한 한국의 정신문화적 근대가 겪었던 가장 큰 불행은 무엇보다도 마음놓고 본받을 수 있는 ‘생산적 권위’들이 없었다는 사실이다. 실질적이며 창의적 긴장의 원천으로서 후학들의 삶과 앎의 행로를 부단히 채근하거나 계고(戒告)할 수 있는 권위있는 참조인간들(Bezugspersonen)이 없었던 것이다.

수입된 종이 호랑이들이 판치는 세상! 그같은 세상 속에서는 진검승부가 원천적으로 불가능하다. 먼 나라 맹수들의 소문만을 먹고 사는 토끼들의 마을에서는, 160㎝의 단구였던 다석 선생 앞에서 함석헌, 김교신, 김흥호 등이 숨을 죽이며 죽도록 경청했던 것과 같은 진검승부의 공부와 사귐이 가능하지 않은 것이다. 죽도(竹刀)를 든 토끼들의 표절과 짜깁기 싸움판이 영원히 닿을 수 없는 것은 스승의 권위만으로 가능해지는 진정한 모방의 힘이다. 과연, 한국의 근현대 학문사는 스승들의 주검과 무덤 위에 초고속으로 뻗어올라간 눈치보기와 베끼기의 고층 아파트.

진정한 모방의 힘은, 충실하고 충실해서 마침내 그 모방을 뚫어내는 길(왜 일본은 모방의 천국이되 표절이 적은가?) 속에 있다. 가령, 라캉의 생산성이 그러하고, 지젝의 생산성이 그렇지 않던가? 지적 식민성이란 이 모방의 시대, 혹은 근대라는 번역과 인용의 시대를 충실하게 뚫어내지 못한 사정을 가리키는 것이니, 부박과 냉소가 판칠 일은 당연지사.

언젠가 나는 늦은 오후의 사양(斜陽)을 끼고 앉아 그와 담소하다가 문득 선문답같은 어투에 다소간의 호기심을 얹어 물었다: “선생님, 다석 선생님은 어떤 분이었습니까?” “진인(眞人), 진인이었지요!” 대답도 역시 선문답처럼, 그것, 뿐이었다.(김영민/전주한일대 교수·철학)

어제오늘 그의 공부론을 읽다보니 "수입된 종이 호랑이들이 판치는 세상! 그같은 세상 속에서는 진검승부가 원천적으로 불가능하다."란 문구가 비유적으로만 읽히지 않는다. "먼 나라 맹수들의 소문만을 먹고 사는 토끼들의 마을"에서 필자가 갑갑증을 느낄 만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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kritiker 2007-07-20 03:24   좋아요 0 | 수정 | 삭제 | URL
위의 로쟈님의 코멘타르들은, 아래 글에 이어, 눈앞의 텍스트만을 대상으로 누군가의 글과 사상을 이해한다는 것이 그리 '상식'처럼 쉽지 않음을 보여주고 있네요.
시간마다 보충되고 있는데, 공부론 (4)까지의 로쟈님의 비평은 감정적으로 동요된 사람이 글의 논지를 얼마나 곡해해서 읽게 되는지에 대해 래디컬하게 보여주고 있습니다.
솔직히 어떻게 이런 글을 로쟈님처럼 읽을 수 있는지 도저히 이해할 수가 없습니다.
’감정이 한 인간의 텍스트 독해에 미치는 영향에 대한 고찰‘ 같다고나 할까요.

동무론 (2)의 요지가 "(김영민의) 타자는 '과부와 고아와 이방인'이 아니라 내가 '격파해야' 하는 강적으로서의 타자이다. 내가 그를 베지 않으면 내가 베이게 되는. '살벌한' 공부론"이라는 어이없는 독해에 이어,
동무론 (5)의 요지가 " '무사들이 정직한(!) 피를 뿌리면서 스스로의 무능을 자인하며 죽어가는 순간에도, 문사들은 좀비처럼 끝없이 부활한다(k의글).' 문사들도 좀 죽어줬으면 하는 게 필자의 바람이겠다." 라는 독해는 어떻게 나온 것인지 정말 이해할 수가 없네요.

레비나스 타자론 말씀하셔서, 그것이 님이 지적하는 것처럼 김영민의 그것과 그리 다르지 않음만 지적하겠습니다.
개인적으로 김영민의 학문적 궤적 중에 하나가 90년대 중,후반의 '탈식민성 비판''글쓰기 비판'에서 자기 나름의 '보행'의 철학으로 가게 된 계기 중의 하나가 레비나스 독해라고 생각하고 있습니다.
시기적으로 그 당시 그가 레비나스를 읽었고, 그의 타자론 역시 유사합니다.

지금 레비나스에 대해 상술할 순 없고--솔직히 레비나스 리스트까지 mapping하신 로쟈님만큼은 모릅니다만-- 위 김영민의 공부론의 논지를 따라가자면, 김영민의 '타자'는 그의 '섭동'이라는 개념(?)과 연관됩니다. 사전적 의미의 '섭동'은 김영민이 이전에 한참 가다듬었던 용어였습니다.
그 요지는, 개인이 동일성의 자장을 벗어나기 위해서는 타자가 필요한데, 그것은 단지 자기 동일성으로 타자를 단순히 받아들이고 이해하는 정도에서 멈추는 것이 아니라, 서로를 변화시켜 가는 과정이지만, 그것 역시 시간성을 벗어날 순 없다는 것입니다. 변화의 과정은 타자의 개입--폭력성으로 언급되는--이 없이는 수행될 수 없습니다. 하지만 그것을 타자에 대한 폭력성에 대한 언급으로만 보는 로쟈님의 이해는 오독입니다.
그로 인해 이어진 공부론 (3)에서 '타자성'을 말하면서도 '변덕'을 부릴 뿐 '변화'하지 않는 학인들에 대해 언급하는 것은 필연적 전개입니다. '타자성'을 읊조리면서도 '자기 동일성'을 포기하지 않는, 모든 대상을 자기 귀속적으로 갈무리, 정리해버리는 공부하는 인간들. 그들은 자기가 보고 싶어하는 것만을 봅니다!

타자성을 이야기하는 사람들이라면 모름지기 그 타자들에 대한 조그마한 애정 정도는 품고 있어야 하지 않을까요. 애정은 고사하더라도 상대방을 대놓고 무시할 필요는 없다고 봅니다.
비판이란 상대방에 대한 애정(공대)없이는 나올 수 없습니다.
데리다는 자신의 해체론을 비판하는 이들에게 "내 글을 다시 한번 읽어보세요"라고 권하며, 해체론은 사랑(Love)라고 했다죠.
지적 현학에서 하는 말이 아니라, 정말이지 비판의 허울을 쓴 턱없는 비난들이 무섭게 느껴지는 한국의 현실입니다.

아래 글에 이어 공부론을 왜 모아놓으셨고, 감정섞인 오독을 하셨는지 알 수는 없으나, 아래의 로쟈님의 '메타-상식'의 허구성에 대한 반론을 전개하기에는 이 코멘트들만으로도 충분하다고 보입니다.

로쟈 2007-07-20 09:03   좋아요 0 | URL
제 '주석'은 기사의 액면을 제식으로 풀어쓴 것인데, 거기에 편향이 있더라도 텍스트가 허용하는 범위안이라고 생각합니다. 김영민의 공부론에 대해서는 저보다 정통하신 듯하니까 뭇사람들의 어설픈 오해를 까발리고 격파할 수 있는 글을 풀스케일로 쓰시면 좋겠습니다(댓글 정도로는 공대가 아닐 테니까요). 물론 딜레마는 대중들의 수준이겠지만...

마늘빵 2007-07-20 09:02   좋아요 0 | URL
저는 이 분 글이 와닿지 않더군요. 최근에 <산책과 자본주의>라는 에세이(?)를 내셨는데, 허 어렵습니다. 이 공부론도 마찬가지에요. 소재는 가벼운데 내용이 너무 어려워요. 쉬운 것도 어렵게 쓰시는거 같아요.

로쟈 2007-07-20 09:15   좋아요 0 | URL
쿵푸, 혹은 무사도로서의 공부는 급수가 있기 때문에 같은 레벨끼리 소통하는 것이지요...

kritiker 2007-07-20 13:00   좋아요 0 | 수정 | 삭제 | URL
로쟈님, 저번 제임슨 비판할때도 심각하게 느꼈는데, 갈수록 빈정거리는 급수가 높아지시는 것 같습니다.
1200즐찾 분들께 즐거움을 드리기 위해 너무 노력하시는 것 아닌가요^^?

기회가 되면 '김영민론'에 대해 글을 쓰고 싶은 생각이 없다가, 새삼 생겼습니다.
죽어도 죽지 않고 끝없이 살아나는 좀비의 전형을 어제 오늘 보여주셔서 놀라웠지만 색다른 경험이었습니다.
님의 코멘타르의 수준이 '기사 액면을 제식으로 풀어쓰고, 편향이 있지만 텍스트가 허용하는 범위안"인지는 여기 오시는 분들이 판단하겠지만요.

근데 여전히 이해가 안되는 것은, 수잔 손택의 <우울한 열정>정도의 책에는 주석까지 달아가면서 정독하시는 분들이 왜 동시대 한국의 저자의 책에는 그렇게 시큰둥한 관심들만 보이시는 것인지...

로쟈 2007-07-20 13:45   좋아요 0 | URL
나름대로 노력은 하지만 이 정도 '급수'는 어디 내밀 수도 없는 수준이죠(하다못해 학계 일반에 대한 김영민의 냉소와 비교하더라도). 약간의 오해가 있으신 듯한데, 저는 김영민에 대해서 특별한 악감정을 갖고 있지 않으며(이건 강유원에 대해서 특별한 호감을 갖고 있지 않은 것과 마찬가지입니다) 다만 그의 문체가 읽기에 불편하다는 것뿐입니다(더구나 대중이 읽기엔 불친절하고). 덕분에 그의 최신 공부론도 읽게 됐지만 제겐 특별히 인상적이진 않습니다. 안목이 없어서일수도 있고 취향이 달라서일 수도 있겠지만, 저로선 같은 기회비용이라면 장정일을 읽겠습니다(아주 당연한 말이지만 사실 모든 책을 읽을 수는 없지요). 암튼 김영민론을 쓰신다고 하니까(김영민식으로 쓰진 마시길) 그가 '우리시대의 철학자'로 '재발견'될 수 있기를 기대해보겠습니다...

혜덕화 2007-07-20 15:15   좋아요 0 | URL
"공부란 실로 돌이킬 수 없는 변화다"는 말에 공감합니다. 저는 김영민이 누구인지, 여기서 언급되는 철학자(?)들이 누구인지도 잘 모르고, 글이 어려워 끝까지 읽는 것도 매우 힘들었습니다. 하지만 이 글을 읽으면서 떠오르는 것은 남회근의 <논어>에서 '배우고 때로 익히니 또한 즐겁지 아니한가'에서 공부를 어떻게 봐야하는지을 읽고 감동받았던 일입니다. 생각은 공부가 아니지요. 또한 변덕도 공부가 아닙니다. 몸으로 실체화 되지 않는 공부가 무슨 소용이 있을까요? 온갖 어려운 말은 다 건너 뛰고 공감하는 부분에 대해서만 글 남깁니다. 잘 읽었습니다._()_

로쟈 2007-07-21 10:10   좋아요 0 | URL
'몸으로 하는 공부', '쿵푸로서의 공부'가의 장점과 함께 한편으론 함정도 갖고 있다는 게 제 생각입니다. 저는 '공부'보다는 '학습'을 지지하는 쪽이어서요...

yoonta 2007-07-20 17:03   좋아요 0 | 수정 | 삭제 | URL
로쟈님이 "빈정"거리신 것 같지는 않은데..^^ kritiker님이 좀 예민하게 받아들이신 것 같네요. 요는 이런 것 같습니다. 쉽게 쓰건 어렵게 쓰건간에 중요한건 그 속에 무언가 건질만한 알맹이가 있느냐 여부 아닐까요? 로쟈님도 기실은 김영민씨의 텍스트의 어려움자체보다는 그 내용의 부실함을 지적하는 것이 아닐까하는 생각을 해 봅니다.
저도 kritiker님의 "김영민론" 한번 기대해 보겠습니다. ^^

로쟈 2007-07-21 10:13   좋아요 0 | URL
빈정거림 같은 건 정말로 '수용미학'의 문제이죠. 김영민 철학에 끌리지 않는 건 그가 언제나 '나 vs 남들'이란 대립구도를 설정하기 때문입니다. 둘러보면 공부 제대로 하는 놈 아무도 없다, 차라리 이종범, 차범근이 하는 게 공부다, 라는 식이니까요. '아름다운 영혼'의 소유자란 생각이 듭니다...
 

 공부론 얘기가 나온 김에 '진짜 공부'에 대한 기사들을 스크랩해놓는다. 찾아보니 작년에 한림대에서 실학을 주제로 학술대회가 개최됐었고, 그 발표문들을 모은 책이 지난 2월에 <다시, 실학이란 무엇인가>(푸른역사, 2007)로 출간됐었다. 국사학계의 원로인 한영우 교수가 이끈 이 학술대회에서는 실학에 대한 그간의 통설에 이견을 제시하고 있어서 눈길을 끈다(사실 진작부터 김용옥 등이 제기했던 문제이다). '실학(實學)'이란 말이 고유명사라기보다는 보통명사로 보아야 한다는 것으로 주장을 간추릴 수 있을 듯한데, 이채로운 것은 한교수가 '실학의 선구자' 지봉 이수광에 관한 연구서도 올해 같이 펴냈다는 점. 실학을 한편에서는 해체하면서 다른 한편으로는 재구축하고 있는 것 같아서 흥미롭다. 말 그대로 실학의 '디컨스트럭션' 아닌가?.. 

 

중앙일보(07. 02. 23) "실학, 조선 후기만의 사상 아니다"

"이 나이에 내가 누구 눈치 보겠어요, 평생 한국 역사를 연구해오면서 언젠가 꼭 교통정리를 해야겠다고 생각했지요."

올해 고희를 맞는 한영우 한림대 특임교수가 한국사의 교통정리를 위해 팔을 걷어붙였다. 그의 정리를 기다리고 있던 분야는 이른바 '실학(實學) 개념'논쟁. 흔히 정약용하면 실학자란 수식어가 붙는데, 그때의 실학이 조선 후기만의 독특한 사상 유파가 아니라는 주장을 그가 내놨다. "조선 후기에만 실학이 있었던 것이 아닙니다. 어느 시대나 개혁적 성향의 흐름은 있게 마련이고 그런 이들이 실학이란 용어를 썼어요. 성리학조차도 실학이라고 불렸을 정도입니다."



그에 따르면 실학은 하나가 아니다. 실학하면 조선 후기의 고유명사로 간주하는 것이 우리 학계의 통설. 하지만 그가 주도해 최근 펴낸 '다시, 실학이란 무엇인가' (푸른역사, 1만6500원)에서 그는 어느 젊은 학자 못지않게 젊은 목소리로 통설에 도전하고 있다. 지난해 7월 한림대 한국학연구소가 주최한 학술대회의 성과를 담은 책이다.



한 교수는 이 책의 총론격인 '실학 연구의 어제와 오늘'이란 글을 통해 조선 후기의 고유명사로 알려진 실학을 보통 명사로 전환하는 작업을 시도한다. 통설에 따르면 실학의 대칭에는 주자학이 설정된다. 주자학이 유행했던 조선은 봉건시대며 실학은 봉건을 극복하고 근대를 지향하는 것으로 간주된다. 그러나 이같은 통설은 '조선=봉건시대'라는 대전제가 참인 것으로 증명되지 않으면 성립할 수 없다고 한 교수는 주장한다.

"조선은 서양사에서 나타나는 봉건사회가 아닙니다. 정치적으로 중앙집권이 확립되었고, 세련된 관료제도가 운영되었으며, 토지에 대한 사유재산제도도 확립되었어요. 시험에 의한 능력주의 관리등용제도가 있는 사회를 어떻게 서구적 봉건사회와 동일시할 수 있습니까."

한 교수는 '조선=중세 봉건주의''실학=근대 자본주의'로 나누어 보는 방식은 근대화를 지상 과제로 생각했던 시대의 시각이라고 했다. 실학연구는 1930년대 정인보.문일평.안재홍 등 당대의 석학에 의해 출발한다. 50~60년대에 천관우.홍이섭.한우근 등이 실학 연구 붐을 재점화한 이후 실학은 한국학계의 골격을 형성했다. 실학을 빼놓고 한국학을 얘기하기 힘들 정도다. 그렇게 된 배경엔 우리 역사의 자존심을 세우려는 소망이 자리 잡고 있었다. 일본 제국주의 침략이 없었더라면 우리 힘으로 실학을 통해 근대화와 자본주의를 이룰 수 있었다는 사관이다. 이른바 내재적 발전론의 뼈대가 실학이다.

"근대화와 산업화는 달성해야할 꿈이자 이상이었습니다. 50~60년대 지식인들이 중세에서 근대로 넘어가는 과도기의 실학을 요청했던 시대적 역할은 존중해야 합니다. 하지만 이제 근대를 넘어 탈근대를 이야기하는 21세기에 더 이상 그렇게 볼 필요는 없다고 봅니다."

한 교수는 중세와 근대라는 이분법을 바탕에 깔고 조선시대와 실학의 성격을 규정하려는 태도를 지양하자고 제안한다. 조선후기 지성사 흐름에 대해선 "자본주의 사회를 지향했다기보다는 현실적으로 부국강병을 추구하면서도 궁극적으로는 유교적 이상주의에 입각한 대동(大同)사회를 꿈꾸었다"고 설명했다.

결론적으로 그는 "아직 우리 역사의 발전 과정을 객관적으로 설명할 수 있는 이론의 틀을 만들지는 못하고 있는 실정"이라며 "환경과 생태 문제 등을 반영한 우리의 '21세기 실학'을 만들어갔으면 한다"고 말했다.(배영대 기자)

중앙일보(06. 07. 05) '탈 실학` 바람… `학파로서 실학은 존재했던가` 부터 다시 묻는다

다산 정약용(1762~1836)의 이름 앞에는 흔히 실학자라는 설명이 붙는다. 대개 조선시대 주류 이데올로기였던 주자학을 비판하며 조선후기에 발달한 일련의 개혁사상을 '실학(實學)'이라고 불렀다. 이는 실학을 주자학에 대립하는 또 하나의 학파적 개념으로 본 것이다. 이 같은 실학에 관한 통념이 근원적으로 의심받기 시작했다. 20세기 후반부터 관련 학자들이 사석에서 주로 논의해 왔다. '실학은 없다'는 주장까지 나왔었다.

그같은 '실학 해체'논의가 공식 석상으로 올라오기 시작했다. 한림대 한림과학원 한국학연구소(소장 한영우)가 12일 서울 대치동 한림국제대학원대학교에서 개최하는 학술대회는 그같은 징후를 뚜렷이 보여준다. 이날 토론회에선 실학이 조선후기에만 특별하게 쓰인 고유명사가 아니었음이 공식적으로 논의된다. '탈(脫)실학 시대'로 진입하는 신호탄이라고 할 수 있겠다.

◆ '실학의 건축'에서 '실학의 해체'로=서울대 국사학과 교수를 정년퇴임한 후 한림대로 적을 옮긴 한영우(68) 소장의 기조발표는 특히 눈여겨볼 만하다. '실학의 해체'에 가까운 발언을 하고 있기 때문이다. 국사학계의 원로로서 실학의 개념이 형성되어 오던 '실학의 건축'시대를 산 인물로서는 파격적 발언이다. 시대와 학문에 대한 진솔한 고민이 배어 나온다.

실학에 관한 기존의 통념은 '조선시대=봉건시대=주자학'을 한편에 놓고, 다른 한편엔 '조선후기=자본주의 맹아=실학'을 대립시키는 것이다. 이 같은 시각은 봉건시대의 주자학을 실학이 극복하면서 자본주의 근대를 여는 내재적 흐름을 형성했다는 관점으로 이어진다. 당연히 주자학과 실학은 선악의 이분법으로 구분된다.

한 소장은 이에 대해 의문점을 던졌다. 조선시대가 봉건사회인가라는 문제부터 제기했다. 조선시대는 봉건이 아닌 중앙집권적 사회였다는 것. 과거시험으로 관리를 뽑는 관료제와 사유재산이 있었던 조선은 근세의 유럽과 비교할 수 있다고도 했다. 이런 지적은 그간 학계 일각에서 나오던 주장들을 종합적으로 반영한 것이다.

1930년대 이후 실학은 만들어졌다= 조선 후기의 학술적 경향의 뼈대를 실학으로 본 것은 1930년대 이후다. 위당 정인보가 다산 정약용을 집중 조명하며 실학 개념의 초석을 놓았다. 주자학을 비판한 대안적 개념으로서의 실학은 해방 이후 더욱 주목받으며 한국학의 기둥으로 자리잡아 갔다. 특히 일본의 식민사관을 극복하면서 우리 학계가 내세운 자본주의 맹아론을 실증해주는 흐름으로 받아들여졌던 것이다. 실학자들을 중심으로 조선도 일본과 같은 자본주의를 자체적으로 형성해낼 수 있었다는 자긍심의 표현이었다. 이같은 흐름은 한국 학계의 20세기를 관통했다.

이 같은 통념에 대해 한 소장은 이렇게 반박한다. "조선시대가 봉건사회라는 대전제가 증명되지 않는 한 실학 개념은 가설 수준에 그칠 수밖에 없다"고. "실학이란 용어가 실제로 '실학자'라고 규정되는 사람들 사이에서 사용되었는지도 실증적으로 증명된 바 없다"고 했다.

한 소장은 조선시대 역사에서 실학을 특수한 용법으로 논하는 것은 더 이상 의미가 없다고 밝혔다. 조선 초기 주자학자들도 주자학을 실학이라고 불렀기 때문이다. 당시 유학자들은 불교나 도교를 비판할 때 흔히 허학(虛學:공허한 학문)이라고 지칭했다. 유학은 공리공담이 아닌 실질을 중시하는 실학이라는 것이다. 조선 후기에 실질을 중시하는 흐름이 있었다면 그것은 유학의 본령을 회복하자는 것이지 자본주의 근대화 등과는 무관한 주장이었다.

탈(脫)근대, 탈(脫)실학의 21세기= 한국 학계의 20세기는 '실학의 건축'시대였다. 그리고 21세기 한국 학계의 관점은 '실학의 해체'로 이동하고 있다. 실학 개념의 해체가 논의될 수 있는 배경엔 우리의 자신감이 배어 있다. 근대화를 절대선으로 여기던 시절에 우리는 실학이란 개념으로 우리의 역사를 설명해야했다. 하지만 이제 근대화를 성공적으로 이뤘고, 나아가 환경과 생태 문제 등 근대화의 역효과가 제기되는 21세기에 걸맞은 새로운 이론이 필요하게 된 것이다.(배영대 기자)

중앙일보(06. 07. 05) 실학 개념 어떻게 변해왔나

1930년대 국학 운동의 일환으로 등장한 '실학'개념은 80년대에 이르러 한국학 전반을 꿰뚫는 핵심 키워드로 자리잡는다. 역사학.철학.문학.사회학.경제학 등 거의 전 학문 분야에 걸쳐 실학 연구는 붐을 이뤘다. 당시 민주화운동의 민중지향적 성격과 맞물려 상승작용을 했다. 그 논리적 근거는 '중세 봉건 조선시대'가 실학의 개혁운동을 거쳐 근대사회로 가는 터를 닦았다는 것이다. 식민사관을 극복하는 근거로도 큰 몫을 했다.

이 같은 경향은 90년대 들어 반성의 계기를 맞는다. 실학 개념이 지나치게 확대해석되었다는 지적이다. 하지만 그러한 반성적 주장이 공식 석상에서 논의되기 어려웠다. 이유는 파괴력이 너무 크기 때문이다. 통설적인 실학 개념을 가르쳐준 스승의 학설을 부정해야 하고, 또 그에 기반한 근대 한국학의 체계를 뒤흔들어야 했기 때문이다.

하지만 근대화가 절대적으로 좋은 것이라는 인식이 비판을 받으면서 실학 개념에 대한 의문도 본격 제기되기 시작했다. 근대지향의 실학 개념을 되돌아볼 필요성이 제기된 것이다. 국사학자 한영우 소장의 용기있는 기조발언은 이같은 시대의 흐름과 역사학계의 연구 성과를 반영하고 있다. 진보적 사관의 해체와도 맞물린다. 문제는 실학이 해체된 자리를 무엇으로 메우냐하는 점이다.

대안의 움직임이 감지된다. 최근 한국학계에선 실학 개념에 기대지 않고 조선시대사를 서술하는 방식을 선보이고 있다. 발전사관 중심의 윤리적 서술을 배제하고 시대마다의 삶의 특징을 있는 그대로 보여주는 것이다.

그렇다면 이제 실학이란 용어를 사용하지 않을 것인가. 이에 대해 한영우 소장은 실학이란 용어 자체까지 없앨 필요는 없다는 입장을 보였다. 조선시대의 유학자만 실학을 얘기한 것이 아니라 어느 시대고 당대의 과제를 고민하는 지식인이라면 누구나 실학적 자세를 지향할 것이기 때문이다. 한 소장은 "서구화 시대가 끝나고 시작된 세계화 시대에 '신(新)실학'을 모색해보자"고 제안했다. 그가 말하는 신실학은 민족.민주.산업화.과학화를 지향한 기존의 실학 위에 생명과 평화의 관점을 추가하는 것이다.

실학 연구의 대세가 탈(脫)실학의 방향으로 모두 넘어온 것은 아니다. 12일 학술대회에 발표자로 참여하는 정호훈(연세대 국학연구원).유봉학(한신대) 교수 등은 기존 실학 개념의 한계를 지적하면서도 완전한 해체에 대해선 유보적 자세를 취하고 있다. 이날 학술대회의 주제는 '실학의 재조명'이다. 실학 패러다임의 변화까지 반영한 실학 연구는 이제부터다.

실학 개념의 형성과 해체 과정

▶1930년대

-정인보, 문일평, 안재홍 등 민족주의 국학자들이 '조선학 운동'의 일환으로 처음 '실학'이란 용어 쓰기 시작

-조선후기 사상가 다산 정약용을 돌출적으로 강조

-실학은 주자학의 '반민족적, 반민중적, 비실용적 학풍'에 대비되는 학풍으로 규정

▶1950년대

-천관우, 홍이섭 등이 해방 후 실학 연구를 이어감

-실학을 봉건과 근대의 대칭 구도 속에서 파악

-주자학은 봉건적 사유로 전제되고, 실학은 봉건적 주자학에서 벗어나 근대로 가는 과도기적 사상으로 구체화

-실학을 근대사상의 맹아(萌芽:싹)로 보는 관점은 우리 역사 자체에서 자생적 근대화의 맹아를 찾으려는 후배 학자들에 의해 통설로 받아들여짐

▶1958년

-한우근이 처음으로 실학 개념에 대해 문제제기

-한우근은 실학이란 말이 조선후기의 용어가 아님을 밝힘

-고려 말 이후 조선시대는 물로 중국 송나라 때도 주자학을 실학이라고 불렸음이 밝혀졌으나 이런 주장은 주류 학계의 큰 주목을 받지 못함

-한우근은 조선후기에 주자학을 비판한 학자와 학문을 '경세치용의 학'이라고 부르자고 제안

▶70~80년대

-70년대 이우성은 실학을 경세치용, 이용후생, 실사구시의 세 분야로 나눌 것을 제안하며 실학 연구의 바톤을 이어받음

-80년대 지두환은 북학파를 실학으로 보자고 주장

-이때까지 실학 개념은 근대를 지향하는 관점으로 본다는 점에서 50년대 천관우의 설을 근본적으로 뛰어넘지는 못함

▶90년대

-김용옥이 '실학은 없다'는 파격적 주장 내세움

-한우근에 이어 실학이란 용어가 전통시대의 보통명사였다고 주장. 자생적 근대화를 지향하는 염원이 실학 개념을 요청했다고 함

-냉전이 해체되고 탈근대주의(포스트모더니즘)가 확산되며 실학 개념 해체 주장이 소장 학자들 사이에서 논의되기 시작

▶2006년 7월

-원로 국사학자 한영우, 실학 개념의 해체 가능성 공식 제기

-조선시대를 중세와 근대, 주자학과 실학의 이분법으로 구분하는 통설에 의문 제기

07. 07. 19.

P.S. 참고로 한영우 교수는 조선전기 정치사상사, '정도전 사상' 연구의 권위자로서 <정도전 사상의 연구>(서울대출판부, 1987), <왕조의 설계자 정도전>(지식산업사, 1999) 등의 연구업적을 갖고 있다. 하지만, 대중적으로 알려지게 된 건 <정조의 화성행차 그 8일>(효형출판, 1998; 개정판 2007)과 이후의 <다시 찾는 우리 역사> 시리즈를 통해서인 듯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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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침에 옮겨놓은 '공부론'을 저녁을 먹고 나서야 시간을 내 마무리짓도록 한다. 사실은 가짜 학위와 관련해서 역시나 예일대 박사학위를, '인크레더블'하게도 32살의 나이에 3개나 획득했다고 소개된 '석학' 조중걸/조송배 교수가 생각이 나서(http://blog.aladin.co.kr/mramor/1055226 참조) '강유원'을 다시 검색했다가 우연히 김영민 교수의 칼럼 '이소룡에게서 배우는 공부'에 대한 논평('신문읽기의 어려움')을 읽게 되었고 그 두 기사를 아침에 옮겨놓았었다. 먼저 어떤 내용인지는 비교해가며 한번 읽어보시길. 필자 소개상으론 '철학자 vs 회사원'이 아니라 '철학자 vs 철학자'이므로 맞장을 뜨는 게 문제되지는 않겠다. 동급이니까.

  

한겨레(07. 05. 20) '아뵤~’ 이소룡에게서 배우는 공부

“이소룡이 유연성으로 이룬 스타일을 흉내내면서 우리는 우리의 스타일이 만들어지길 소망했다. 쿵푸처럼 공부도 그런 것이다. 칼이든 펜이든 진실을 유연하고 실제적으로 파고들면 자신의 스타일이 생겨나는 것이다”

무술가 리샤오룽(이소룡, 1940~1973)은 어떤 ‘스타일’일 수밖에 없었다. 나태하거나 보수적인 치들은 종종 스타일에 반감을 지니지만, 스타일은 주류의 각질을 뚫는 아웃사이더의 징후로 일정한 혐오감을 동반하기 마련이다. 그러나 헤겔과 마르크스의 분쟁에서 보듯이, 스타일이 없이는 진정으로 스승과 결별할 수조차 없다.

미완의 <사망유희>를 유작으로 남긴 채 이소룡이 세상을 뜨자 수많은 잡룡들을 내세워 모작들이 제작되었지만, 그의 스타일은 아무도 흉내낼 수 없다는 사실만 날로 분명해졌다. 그러나 양식(Typus)은 스타일이 아니다. 요컨대 스타일은 흉내와 더불어 죽는다. 이와 대조적으로 양식은 오히려 흉내내기의 네트워크를 통해 공고해질 뿐이다. 그래서, 스타일에는 매순간 스스로의 부끄러움을 치열한 실존의 열정 속에서 승화시키는 아이러니의 빛이 있다. 키르케고르처럼 말하자면 스타일 속에는 일반자적 양식 속으로 환원될 수 없는 단독자적 체취가 생생한 것이다. 그런가 하면, 양식은 부끄러움을 없애는 문화적 법식이다. 가령, 게오르크 지멜이 설명하는 양식이란 꼭 그런 것이다. 나아가, 비코나 융이 말하는 양식은 지멜의 것보다 한층 더 깊어 보이고, 제법 형이상학적이기도 하다.

그러나 이소룡의 쿵푸(工夫) 스타일에는 형이상학적인 게 없다. 철학도이기도 했던 그는 더러 노자류의 잠언을 흘리면서 ‘물처럼 되라!’는 주문을 하기도 하지만, 그의 테크닉은 간결하게 정곡을 찌를 뿐 실없이 용장스러운 데가 없다. 그는 스크린의 스타가 됨으로써 스펙터클화한 영자(英姿)를 탁이(卓異)하게 뽐내면서, 군부독재와 개발지상주의의 아버지 체제로부터 벗어나고 싶었던 그 모든 불량스러운 10대의 우상이 되었다. 우리는 교실에서 책상을 마구 뛰어넘고 헛되게 쌍절곤을 돌리다가 형광등을 부수곤 했다. 그의 스타일은 응당 양식으로 굳어지면서 스타의 비용을 치르게 되었지만, 우리는 그 양식 속에서 우리의 스타일이 부활하기를 소망했다.

그는 자신의 무술을 설명하는 중에 형(type)이라는 말을 싫어하고 늘 ‘자기표현’이라고 했다. 그것은, ‘디-자인(de-sign)이 그 자체로 하나의 강력한 사인(sign)이고, 탈(脫)코드는 그 자체로 가장 매력적인 코드’라는 사실을 말해주는 대중적 이미지, 그 시절인연(時節因緣)과 같은 것이었다. 우리들은 15살의 과도기를 깜냥껏 지나면서 이소룡의 스타일을 향한 불가능한 욕망을 반복강박적으로 양식화했다. 과거, 제자가 스승을 배우는 방식은 반복되는 흉내 속에서 양식을 얻고 마침내 그 양식마저 뚫어내며 자신의 스타일에 이르는 길이었다. 즉, 동화(同化)-이화(異化)의 변증법을 금강산을 스쳐가는 계절처럼 무심히 반복하는 것! 그리고, 이른바 염화시중의 길은 그 깨침의 극점에서 비밀처럼 보여주는 교학상장(敎學相長)의 비경인 것이다.

그러나 이소룡의 이미지가 재현하는 한편 우스꽝스러운 양식은 스타가 된 아웃사이더들의 세속적 운명이다. 그들은 스타일을 양식 속에 죽이면서 세속의 명성을 얻는다. <사망유희>에서 노란 체육복을 입은 채 예의 괴상한 새울음을 토하며 상대의 쌍단봉을 대적하여 회초리처럼 길게 깎은 대나무 무기를 사용하는 장면은 몹시 흥미로운 파격이다. 그 복색과 무기의 취지는 그가 늘 한결같이 그의 제자들에게 강조하던 유연성(pliability), 즉 주류의 엄숙주의를 가로지르는 바로 그 유연성의 이단과 다를 바 없다. 뛰어난 춤꾼이기도 했던 그는 그 이단적 유연성으로써 그만의 무술 스타일을 얻었으나, 그 스타일을 대중의 환호 속에서 양식의 제물로 희생함으로써 대중적 스타의 권력을 얻을 수 있었던 것이다.

그 유연성은 오직 실전 무술의 실용성을 위한 것이었다. <징비록>(1647)에서 유성룡은 신립의 호령이 번거롭고 요란스러워 반드시 싸움에서 패할 것이라고 했고, 인재 등용의 귀재였던 세종대왕은 말수를 줄이고 듣기에 기민했다고 했지만, 쿵푸도 공부 곧 그런 것이다. 주먹이든 말이든, 칼이든 펜이든, 그것은 사태의 진실을 향해 유연하고 실제적으로 파고드는 방식에 주력해야 한다. 연암 박지원도 학문과 문장을 논하면서 억지로 기이하고 새로운 것을 추구할 일이 아니라고 경계한다; 요점은, 자신의 스타일로 사실에 충실한 글을 쓰면 그것이 곧 기이하고 새롭게 된다는 것이다. 언거번거한 말은 외려 어눌한 것보다 못하고, 형(型)만 요란스러운 동작은 실없기 때문이다. 이소룡의 추억! 그것은 그대로 어떤 공부의 환상이다.(김영민/철학자)

미디어오늘(07. 06. 16) 신문읽기의 어려움

1988년 ‘한겨레신문’이 창간되었을 때의 일이다. 가락동 농산물 시장에서 장사를 하던 내 친구 하나가 ‘요새 한겨렌지, 한거랜지 때문에 골 때린다’는 말을 했다. 왜 그러냐고 물으니 “같이 장사하는 사촌 형이 한자를 몰라서 그동안 신문을 통 못 봤었는데, 한겨레 나오고 나서는 신문을 어찌나 열심히 읽는지 세상 물정을 다 가르치면서 야단을 치는 통에 그런다”는 것이었다.

한글 전용이 얼마나 많은 사람을 깨우쳤는지를 뚜렷하게 느낀 사례 중에 그만한 것이 없었다. 이는 달리 보면 신문이 어떤 사람을 독자로 여겨야 하는지를 알려주는 표지이기도 하다. 신문은 한국에서 고등학교를 졸업한 사람이면 그런대로 무난하게 읽을 수 있도록 만들어져야 하는 것이다.

나는 가끔씩 우리교육 교사아카데미(www.uriedu.co.kr/edu)라는 곳에서 초·중·고등학교 교사들을 대상으로 하여 ‘책읽기와 글쓰기’에 관한 몇 주 짜리 강의를 한다. 수강생 전부가 교사는 아니지만 그래도 본래의 목적에 합당하게 교사들이 학생들과 함께 읽어 볼만한 책을 소개하면서 책을 읽기에 필요한 내용을 곁들여 설명하기도 하고, 글을 쓰는 방법을 함께 궁리해보는 것이 그 강의가 하는 일이다. 이 강의에서 가끔 사용하는 일종의 교재 중의 하나가 한국의 현실을 생생하게 반영하는 글인데, 더러는 신문기사가 교재로 쓰이기도 한다. 사실 마땅한 기사가 별로 없다.

그런데 최근 강의에 사용하기 위해 신문을 검색하다가‘아뵤∼ 이소룡에게서 배우는 공부’라는 글을 한겨레(5월19일자)에서 읽게 되었다. 철학자 김영민씨가 쓴 글이었다. 나는 이 글을 준비하여 교사들에게 나누어주고 검토의견을 내게 하였다.

검토의 기준은 이러했다. 첫째, 주장하려는 바가 분명하게 드러나 있으며, 그것이 글 첫머리에서 끝에 이르기까지 일관성 있게 주장되고 있는가. 둘째, 자신의 주장에 필요한 핵심적인 개념들을 정확하게 규정하고 있는가. 셋째, 자신의 주장을 뒷받침하는 논거들이 적절하게 준비되어 배치되었는가. 마지막으로 (고등학교를 졸업한) 독자가 읽기에 어려움은 없는가.

몇 분 동안 검토를 마친 교사들의 반응은 대체로 다음과 것들이었다. ‘논지가 분명하지 않아 읽기가 짜증스럽다’ ‘스타일과 양식이 진짜 공부와는 다르다는 건 알겠는데 정의가 없다’ ‘공부법을 알려주기보다는 자기가 얼마나 유식한지를 자랑하기 위해 글을 썼다는 인상이 강하게 든다’. 어떤 이는 ‘한겨레 편집담당자는 도대체 무얼 하기에 이런 글을 신문에 싣는지 모르겠다’는 말을 하였다. 나야 속사정을 모르니 ‘철학자의 난해한 글을 읽고 이해할만한 도사가 신문사에 있는지 모르겠다’는 우스개로 넘겨버렸다.

강의를 마치고 집에 와서 글을 다시 읽어보았다. 이 신문을 읽는 사람 중에 이 글을 완전히 이해할 수 있는 사람이 몇이나 될까? 200자 원고지 열 매 남짓한 이 글을 이해하여 공부법에 관한 뭔가를 터득하려면 “헤겔과 마르크스의 분쟁”은 무엇인지, “게오르크 지멜이 설명하는 양식”은 또 무엇이며, 어떤 점에서 “비코나 융이 말하는 양식은 지멜의 것보다 한층 더 깊어보이고, 제법 형이상학적”인지 알아야 하는 건 아닐까? 게다가 헤겔의 철학을 전공한 나도 “동화(同化)-이화(異化)의 변증법”은 무얼 말하는지 이해하기 어려웠다.

그런 건 다 제쳐두고라도 한글 전용에서 출발하였기에 어려운 한자말을 풀어서 쓰려는 방침을 가진 것으로 알고 있는 한겨레에서 “영자(英姿)”나 “탁이(卓異)” 같은 낯선 한자어가 들어가 있는가하면 굳이 나란히 쓰지 않아도 될 ‘Typus’와 같은 라틴어를 곁들인 이런 글을 싣는 이유는 도대체 뭘까?

철학자 김영민씨가 어떤 의도로 이 글을 썼는지는 궁금하지도 않다. 그가 이소룡에게서 뭘 배우든 말든 내 알 바 아니다. 나는 그를 비난하고 싶은 마음은 조금도 없다. 그렇지만 신문이라는 공공매체의 편집담당자에게, 그것도 한겨레의 담당자에게 꼭 묻고 싶다. 대학에서 철학을 전공하여 박사학위를 받은 이도 한번 쓰윽 읽어서는 이해하기 어려운 글을 싣는 이유는 뭔가. 그런 글을 실으면 김영민씨의 표현처럼 “일반자적 양식 속으로 환원될 수 없는 단독자적 체취가 생생한” 스타일이 생겨나서 “아무도 흉내낼 수 없는” 신문이 되는가.(강유원/ 철학자)

07. 07. 18.

P.S. 나는 이소룡 세대가 아니다. 그의 영화 <정무문>(1972)을 극장에서 보긴 했지만 그는 이미 세상을 떠난 사람이었다. 분류하자면 나는 성룡 세대이고, 성룡보다 먼저 나를 매혹했던 이는 <소림 36방>(1977) 같은 영화에서의 유가휘였다(왜 있잖은가? 설이나 추석 같은 명절이면 요즘처럼 헐리우드 블록버스터를 보는 게 아니라 으레 쇼브라더스의 홍콩무협영화를 보던 시절 말이다).

유가휘? 황비홍의 직계제자라고도 하는 이 '무술인 배우'는 <킬빌2>에도 우마 서먼의 상대역 도인으로 나오기도 했다(소림 '무술인 배우'의 계보는 알다시피 이연걸이 이어가게 된다). 하지만 지난달인가 <소림 36방>을 인터넷에서 다운받아 잠깐 다시 보니 30년전에 느꼈던 '비장함'은 온데간데 없고 유치함만이 남아 있었다(아마도 초등학교 3학년때쯤 학교의 단체관람으로 봤을 것이다). 지극히 당연한 일이겠지만, 그의 대표작을 <소림 36방>에서 <소림 용문방>으로 바꾸었다.  

잠시 여담이 새어나왔는데, 사실 소림사 무예로 잘 알려진 '쿵푸'가 '공부(工夫)'와 같은 어원을 갖는, 그러니까 동일한 의미연관을 갖는 말이라는 건 잘 알려져 있다(오래전 김용옥의 책에서 처음 그런 내용을 읽고 '그렇구나!' 했었지만 이젠 그런 내용을 접하면 식상하다). 예전에 '공부냐 학습이냐'란 페이퍼(http://blog.aladin.co.kr/mramor/799694)에서 주장한 대로 나는 '자기단련'이나 '자기연마'로서의 '공부'보다는 '가르치고 배움' 혹은 '가르치면서 배움'으로서의 '학습'에 더 놓은 점수를 주는 편이다. 나는 이렇게 적었었다.

학이시습지의 즐거움, 학습(學習)의 즐거움은 가르침으로써 배움을 완성하는 즐거움이다. 학습이란 말이 (주로 사무/행정적인 용어로만 남아있고) 일상어에서는 공부(工夫)(=쿵푸)로 대체된 것은 그래서 좀 아쉽다. 공부란 말에는 즐거움이 왠지 빠져 있는 듯하기 때문이다. 게다가 공부비변증법적이다.

 

 

 

 

해서, '공부의 달인, 호모 쿵푸스'가 되는 것만으로는 뭔가 부족하다고 생각한다. 김영민은 '이소룡에게서 배우는 공부'가 있다고 하는데, 그에게서 그것은 자기만의 문체(스타일)를 만들어나가는 것이다. "영자(英姿)'나 '탁이(卓異)' 같은 낯선 한자어"나 "굳이 나란히 쓰지 않아도 될 ‘Typus’와 같은 라틴어를 곁들인" 이유는 그런 문체를 만들어나가는 그의 (혼자만의) 보행/산책과 관련되며 구경꾼-독자들과는 무관하다.

'몸으로 하는 공부'를 주창하는 강유원은 그보다는 적극적으로 자신의 공부에 타자를 끌어들이는데, 그건 '가르치는 자'로서의 자신의 포지션을 항상 고려하기 때문이 아닐까라고 나는 생각한다(인용한 칼럼에서 그는 '교사들을 가르치는 강사'이다). 그렇다고 해서 그가 전혀 다른 '공부'를 제시하는 것 같지는 않은데, 기본적으로는 강유원 역시 '쿵푸로서의 공부'라는 태도를 견지하는 듯 보이기 때문이다(공부는 각자가 하는 것!). 당연한 말이지만, 나의 근육을 단련한다고 해서 남들의 뱃살이 줄어드는 건 아니다. 자기 뱃살은 자기가 빼야 한다. 

하지만 '이소령에게서 배우는 공부'가 있다면, '성룡에게서 배우는 공부'도 있을 법하다. 어떤 성룡인가? 바로 '재수없는 영화' <취권>(1978)의 성룡이다. 무술이라기보다는 코미디를 닮은 성룡식 쿵푸.  

"평소에는 무표정한 얼굴로 진중하게 행동하다 결국 싸울 수밖에 없는 지경에 이르렀을 때, 옷 속에 감추어놓은 무골을 드러내고 한 방에 적들을 제압해버리는 이소룡! 그는 패배를 모르는 영웅이었고 도탄에 빠진 약자들의 구원자이다. 그러나 <취권>에서의 성룡은 이소룡과 정반대의 면모를 하고 있다. 그가 연기한 황비홍은 약자들의 구원자들이기 보다는 아녀자들에게 치근덕대는 무뢰배이고, 패배를 모르는 영웅이 아닌 무술 연습이 하기 싫어 잔꾀를 부리는 말썽꾸러기이다. 까불거리는 모습은 진중함과는 거리가 먼데다 무도인이라면 당연히 정정당당해야 할 승부에서 번번히 속임수를 쓰곤 한다.

결국엔 그의 필살기가 되는 ‘취권’도 각이 잡혀있는 절권도와는 사뭇 다르다. 비록 ‘술에 취한 여덟 명의 신선들의 비기’라는 그럴듯한 설명이 붙어있긴 하지만, 그것은 시전함에 있어 결코 ‘가오’를 기대할 수 없는 우스꽝스러운 무술이다. 여기에 성룡은 (지금은 그의 영화의 트레이드마크가 되어버린) ‘지형지물이용 무술’을 융합했으니, 그의 권법은 ‘무예’라기 보다는 차라리 ‘기예’였다. 이소룡의 강렬한 카리스마를 체험한 사람들에게 성룡은 ‘광대’ 이상도 이하도 아닐 것이었다. 그러니 이 얼마나 아이러니컬한가.('<취권>, 또 한 마리의 용(龍)을 탄생시키다', Joycine, 04. 02. 17)

요는, 보행 공부나 몸으로 하는 공부 말고 '잔꾀'로 까불거리며 하는 공부도 있다는 것. 자신의 무공으로 상대를 물리치는 것이 아니라 '지형지물'을 임기응변으로 이용해서 어쩌다 상대를 제압하는 수도 있는 법이고. 비록 우스꽝스럽고 '가오'가 잘 안 나오기는 해도 이걸로 우리의 인식을 확장하고 삶의 기쁨을 배가시킬 수 있다면 나름 그럴 듯하지 않을까?.. 아침에 우연히 마주친 기사(=지형지물)들 때문에 잠시 '기예'를 부려보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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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호모 쿵푸스 실사판 : 다른 십대의 탄생] 공부는 셀프!
    from 그린비출판사 2011-04-05 17:41 
    ─ 공부의 달인 고미숙에게 다른 십대 김해완이 배운 것 공부의 달인 고미숙 선생님. 몸으로 하는 공부의 즐거움을 느낄 수 있는 적절한 계기(혹은 압력?)를 주시곤 한다.공부가 취미이자 특기이고(말이 되나 싶죠잉?), ‘달인’을 호로 쓰시는(공부의 달인, 사랑과 연애의 달인♡, 돈의 달인!) 고미숙 선생님은 이렇게 말씀하셨다, “공부해서 남 주자”고. 그리고 또 말씀하셨다.“근대적 지식은 가시적이고 합리적인 세계만을 앎의 영역으로 국한함으로써 가장 ...
 
 
필라멘트 2007-07-18 12:29   좋아요 0 | URL
철학자들이야 뭐 어떤 현상을 어려운 개념으로 해석하는게 그들의 일이니 뭐라 할 순 없지만, 강유원씨 말마따나 박사학위자들도 선뜻 이해하기 어려운 글을 일반 신문독자들에게 들이댄게 화근이군요. 신문 편집담당자가 독자들이 '게오르크 지젤이 설명하는 양식'이나 '동화-이화의 변증법' 정도는 알 거라고 본건지도 모르겠습니다만, 아무튼 독자들이 저 글을 읽고 불편함내지 거부감을 좀 느꼈을거란 생각이 드네요.

로쟈 2007-07-18 23:29   좋아요 0 | URL
독자의 수준을 탓하기엔 너무 체하는 글입니다...

섬나무 2007-07-18 18:52   좋아요 0 | URL
두 분의 글을 우연히 읽게 됐었는데요 강유원씨의 주장은 일리 있음에도 거침 때문에 거부감이 듭니다. 김영민씨 글의 매력은 저 일반자적 양식 속으로 환원되지 않는 생생한 단독자적 체취이기도 합니다. 저도 신문에서 저런 글을 만났다면 그 신문의 편집담당자가 궁금했을 겁니다. 누굴까 이런 싱싱한 파행?을 결행한 사람은?

로쟈 2007-07-18 23:29   좋아요 0 | URL
김영민씨의 확연한 '문체'는 개성이겠지만 저는 외국어를 섞어쓰는 건 공감하기 어렵습니다. 저도 '동무와 연인' 같은 연재는 재미있게 읽었지만...

Joule 2007-07-19 01:16   좋아요 0 | URL
그래도 내 뱃살은 내가 빼야 한다는 말은 너무 뼈저립니다. 아참, 저 지젝 너무 좋아하게 되었어요. How to Read 라캉 다음 책 좀 추천해 주세요. 더는 귀찮게 안 물어 볼게요. 지금 같아서는 상대성이론이나 양자역학 쪽을 읽을 것 같기도 한데 그래도 추천해 주시면 덩달아 같이 읽어 제 뱃살 단련에 도움이 좀 되지 않을까 싶네요.

jouissance 2007-07-19 02:34   좋아요 0 | 수정 | 삭제 | URL
강선생 칼럼 실린 이후에 쓰여진 김선생의 칼럼들은 확실히 이 정도까지 과하진 않아요. 짐짓 무시하는 제스쳐를 취하는 김선생이지만 어떤 자각이 온 건 분명한 것 같아요. 김선생 글들을 조금 챙겨보는 사람으로서 항상 불편했는데 강선생에게 감사해야겠어요^^

Joule 2007-07-19 02:39   좋아요 0 | URL
어머나, 주이상스는 지젝의 글에만 있는 줄 알았는데 알라딘에도 주이상스가 있었네요.

caute 2007-07-19 20:25   좋아요 0 | 수정 | 삭제 | URL
외국어를 섞어쓰는 게 문제가 되나요? 우리는 외국어로 공부합니다. '외국'어가 아닌 외국'언어'에 대한 자신의 고민이 있다면 그로부터도 자신의 사유 속에서 고유한 할 말이 있다고 생각합니다. 이미 한참 전에 강유원씨의 글을 알고 있었지만 지나갔는데, 로쟈님 덕분에 강유원씨 홈피에 일부러 들러 사태를 확인했습니다. 강유원씨는 애초 김영민 선생에 대해 편견이 많더군요. 저역시 편견이 있었던 사람으로서, 그런 편견으로 낙서는 하되 긴 글은 써서는 안 된다고 생각합니다. 정확한 텍스트 이해와 명석한 표현을 추구하는 분이 왜 그리 한 사람에 대해서는 불명확한 이해와 왜곡을 하면서도 계속 그에 대한 이야길 할까요. 싫다는 거겠지요.
현재 자신의 철학의 할 일과 방법에 대해 두 분은 다릅니다. 그럼에도 강유원씨의 삐딱하며 감정적인 지적(그 사람의 문제와 의도에 관심도 없으면서 그 사람의 글쓰기만을 도려내 문제삼을 수 있다고 생각하는 자체가 '치기' 이상으로 여겨지진 않군요!) 때문에 김영민 선생의 작업에 대한 실체 없는 비판은 삼가해야 할 것입니다. 더구나 글읽기의 어려움을 가지고 그의 글쓰기의 문제를 얘기하자면(그것이 신문이란 대중적 매체라 하더라도) 철학자의 글쓰기는 도대체 어떤 정형화 속에 빠져야 마땅할까요? 저는 김선생과 개인적으로 거의 알지 못하며 항상 거리를 두고 있지만, 그의 글이 어렵다고 생각한 적은 거의 없습니다. 그건 무슨 말인지 모를 관념이 아니기 때문이겠지요. 곰곰 생각해보면 그의 이야기들은 따라갈 수 있습니다. 따라서 외국산 철학의 수입과 앙상한 전달에 급급한 철학동네에서 나름 생동하는 글쓰기를 하는 이라 여겨왔지요. 물론 그의 글에 등장하는 생경한 언어들이 걸리지 않은 것은 아닙니다. 그러나 글을 읽으며 한 사람의 사유를 더듬어간다면 글읽기의 본령인 사유 체험이 되는 것 아닐까요.(신문연재에 국한해서 이야기하는 건 아닙니다.)
*'씨'와 '선생'의 호칭은 김영민의 글은 몇 권이나마 접하며 나와 얼마나 다르건 그가 자신의 사유와 말하기를 통해 자신의 철학을 만들어가려는 우리 시대의 선생들 중 한 분이라 생각하게 됐지만, 강유원에 대해선 글의 교류라 할 만한 계기가 없어 생긴 차이입니다(제 게으름 때문이겠지요). 강유원에 대한 저의 인상은 강단에 구속되지 않으면서 자기 공부하는 사람의 한 모델을 보여주는 사람이라 할까요.

필라멘트 2007-07-19 11:14   좋아요 0 | URL
caute님의 댓글에 대해 잠시 제 생각을 남겨봅니다. 위 포스트의 본질은 꼭 김영민씨와 강유원씨 사이의 문제는 아니라고 봅니다. 읽는 대상의 지적 수준을 고려한 글쓰기의 효율성 문제가 아닐까 싶어요. 또한 이 문제는 전달의 효율성뿐만 아니라 독자에 대한 예의의 문제이기도 하구요. 김영민씨의 글은 제가봐도 일반 신문독자들의 수준을 넘어선 글입니다. 고등학생 수업시간에 대학수준의 강의를 한다고 해서 그 선생님이 결코 유능한 교사는 아니라고 봅니다. 수업대상이 고등학생임을 알면서도 어려운 대학수준의 수업을 한다는 것은 은연중에 지적과시의 의도가 있는거겠지요. 김영민씨도 컬럼청탁을 받았을때 읽는 대상이 일반 신문독자들임을 고려했어야했고 그에 맞는 글을 썼더라면 더 좋을 뻔했습니다. 김영민씨의 글이 비평지에 실렸다면 무슨 문제가 되겠습니까. 독자층을 고려한 지식의 적절한 분류나 배치도 하나의 능력이 아닐까 생각해봅니다.

caute 2007-07-19 12:57   좋아요 0 | 수정 | 삭제 | URL
안녕하세요? 필라멘트님. 미묘하지만 이 포스트의 본질에 대해선 저와 이해가 다르신데요. 뭐 중요친 않지만, 이 포스트의 출발은 신정아씨가 환기시킨 외국학위와 실제적 공부내용이라는, 공부의 한 현실과 관련한 로쟈님의 관심이 아닐까요. 허나, 제 댓글은 댓글들의 지형이 만드는 흐름, 거기서 감지되는 분위기와 관련한 것입니다. 과민한 탓도 있겠지요. 또 주인장이 철학자 대 철학자로 그들의 글쓰기에 대한 입장을 대질시킨 것 아닌가요?
더구나 저는 김영민 선생의 글이 신문 책소개 코너와 어울리지 않는다고 생각지 않습니다. 일반독자는 누구를 기준으로 하는 건가요? 그에게 감응받은 일반적인 분들도 많습니다.^^;; 그리고 신문 연재용 그 글을 비평지(학술적인)에 싣지 못할 것도 없지만, 학술적인 글로서 실릴 순 없다고 생각합니다.
그리고 또 하나, 뜬금 없지만, 고등학생은 고전문학 못 봅니까? 저도 어릴 때 집에 을유문화사판 고전문학 전집이 있었지만, 오에 겐자부로가 중학교 때 블레이크에게 감응받았다고 한 기억이 나네요. 글읽기도 여러 경로와 때와 인연이 있겠죠. 일률적으로 말할 수 없다고 생각합니다. 신문을 통해 그런 감응을 일으키는 글을 마주칠 수 있는 기회가 있다는 것 자체가 섬나무님 말대로 파격이고, 작은 즐거움이죠. 우리가 정말 경계해야 할 것은 시대와 사회와 역사, 인간의 현실과 무관한 자기 도취의 현학이겠지요.
님이나 로쟈님은 김영민 선생의 글이 젠 채 한다는 전제에 있으니 서로의 관점이 다른 거죠(피상적이긴 하나, 가까이서 본 바론 과시의 정서 같은 건 없는 분이죠. 그냥 묵묵히 자신의 길을 가는 학인일 뿐이지요. 강유원씨도 그런 분일거라 짐작은 합니다만). 그리고 위 글 내용으론 강유원씨 글이 더 문제 있는 글쓰기인데도(실제적으로 예의가 없는) 그것은 지적되지 않는 점 이상하네요. 강유원씬 어떤 판관의 위치에 있나요?

필라멘트 2007-07-19 14:09   좋아요 0 | URL
caute님의 글 잘 읽었습니다. 사실 이 문제는 논쟁을 유발할 성격의 글은 아니라고 봅니다. 컬럼에 대한 각자의 관용의 정도 문제이니 파격적인 글도 실릴 수 있다고 보신다면 어쩔 수 없는거겠죠. 또한 수준 높은 글이 독자의 수준을 더 높일 수 있다고 보는 분들도 있을 거구요. 다만 저는 좀 더 일반적인 관점에서 제 생각을 피력했을 뿐입니다. 꼭 김영민씨만의 문제가 아니더라도 그런 파격적 시도들이 오히려 '거북함'과 '외면'의 부작용을 낳을 수도 있으니까요. 신문컬럼들을 쓰는 분들은 소위 그 분야에서 내노라하는 전문가들입니다. 그런 전문학자들이나 연구원들도 일반 신문독자들을 고려해서 내용을 순화시켜 기고합니다. 예컨대 어느 경제학자가 전공인들만이 이해가능한 어려운 경제이론들을 동원해 학술적으로 쓴 컬럼이라면 적어도 신문상으로는 결코 좋은 컬럼은 아니라고 봅니다. 아무리 전문분야에서 내공이 깊은 전문가 혹은 학자라도 <신문>이라는 전달매체의 특성을 뛰어넘는 글의 기고는 파격일수는 있겠으나 비효율적이고 낯설음의 부작용을 또한 피하기 어려울지도 모릅니다. 아무튼 이건 글의 기고에 대한 각자의 관용의 문제이니 저와 생각이 다르다할지라도 caute님의 의견 또한 깊이 존중하면서 저의 생각을 마무리 짓겠습니다. 오늘도 즐거운 시간 보내시길..^^

p.s
로쟈님의 개인 서재에 저와 같은 미혹한 객이 의견을 피력한답시고 분위기를 좀 흐려놓은 것 같아 로쟈님께 죄송한 마음이 듭니다. 부디 너그럽게 봐주시길..

로쟈 2007-07-19 16:27   좋아요 0 | URL
수업(계절학기)이 있는 날이어서 아침에 미처 댓글을 달지 못했는데, 벌써 의견들을 나누셨군요.^^ caute님의 의견은 일리가 없는 건 아니지만, 역시나 '자리' 문제라고 봅니다. 자신의 책에서라면 허물이 아니겠으나 일간지 지면에서 "키르케고르처럼 말하자면 스타일 속에는 일반자적 양식 속으로 환원될 수 없는 단독자적 체취가 생생한 것이다. 그런가 하면, 양식은 부끄러움을 없애는 문화적 법식이다. 가령, 게오르크 지멜이 설명하는 양식이란 꼭 그런 것이다. 나아가, 비코나 융이 말하는 양식은 지멜의 것보다 한층 더 깊어 보이고, 제법 형이상학적이기도 하다."라고 쓰는 건 누가 보더라도 현학의 과시 이상은 아닙니다(혹은 '혼자만의 보행'이거나). 강유원은 거기에 대해 비판적인(하지만 상식적인) 코멘트를 한 거라고 생각하고 저도 이 건에서만큼은 그의 의견에 따릅니다.

그리고 제가 문제를 제기하고 싶어했던 것은 '쿵푸로서의 공부'가 갖는 문제점이었습니다. 자기단련의 문제, 자기 뱃살 빼기의 문제로 공부를 환원하는 태도가 '이소룡에게서 배우는 공부'의 함정이란 생각이 들었던 것이죠. 이소룡의 스타일(혹은 복근)을 누구나 가질 수는 없는 것처럼 그에게서 배우는 '공부' 또한 일반화되기 어려운 것입니다. 때문에 "그는 자신의 무술을 설명하는 중에 형(type)이라는 말을 싫어하고 늘 ‘자기표현’이라고 했다. 그것은, ‘디-자인(de-sign)이 그 자체로 하나의 강력한 사인(sign)이고, 탈(脫)코드는 그 자체로 가장 매력적인 코드’라는 사실을 말해주는 대중적 이미지, 그 시절인연(時節因緣)과 같은 것이었다." 같이 (대중적으로는) 소통불가능한 문장이 나온 것이겠지만...

kritiker 2007-07-19 17:23   좋아요 0 | 수정 | 삭제 | URL
강유원의 김영민비판을 여기에서도 보게되는군요(존칭생략)
그 비판(의 도를 넘은 비난)은 오래된 것이어서 제가 그의 홈피나 그의 홈피에 있는 각종 강의를 통해 들은 것만도 벌써 3년이 넘어가는 것 같습니다-.,-;
근데 딱 위의 비판 수준에서 넘어가지 않습니다.

사실 두 사람 모두의 열독자--가끔 분열이 일어나곤 하지요^^--로서 보자면, 먼저 지적되어야 할 것은, 두 사람은 서로에게 별 관심이 없다는 점입니다. 김영민은 강유원이 자기를 지목하기 전까지 누구인지도 몰랐을 것이며 김영민의 스타일상 여전히 별 관심이 없을 것이며^^, 강유원에게 김영민은 철학이라는 두껍을 쓴 비교秘敎주의자로써 타기 내지는 비난과 비아냥의 대상으로만 존재하기 때문입니다.
김영민은 별 신경쓰지도 않으니--많은 비판에 단 한번도 응답이 없음-- 강유원의 비판만 보자면, 그는 이전의 김영민 글 전반에 대한 비아냥에서 칼럼의 대상에 대한 것으로 타겟을 좁혀갔지만 여전히 김영민이 무슨 말을 하는 것인지, 해왔는지에 대해서는 별 관심이 없습니다. '칼럼의 존재 성격도 모르는 이가 쓴 칼럼' 정도로 요약될 위의 비판에서 그저 수긍할 수 있는 것은 김영민의 자기현학에 대한 지적정도입니다.

이들의 비판들에서 철학자 대 철학자의 대결같은 것은 앞으로도 생겨날 일이 없을 것입니다. 상대방의 글, 책 하나 제대로 읽어줄 마음이 없는 이들에게서--그들은 자기가 보고 싶어하는 것만 볼지니!-- 무슨 학문적인 비판들이 오고 가겠습니까.
그저 이들이 서울 길거리에서 우연히 만나 주먹질이나 안하면 다행이라고 생각합니다!
비판이란 모름지기 상대의 텍스트에 대한 몰입이 선행해야 할 것이고, 엄밀한 독해에서 나오는 내파일 것인데, 위와 같은 강유원의 비판은 항상 외면적 인상 비판이나 구절 비판에 머물 뿐이지요.
단언컨데 앞으로의 강유원의 김영민 비판도 그 차원에서 절대 벗어나지 않을 것입니다.
강유원은 김영민의 책 한권 제대로 읽어본 것이 없으며, 앞으로도 그럴 테니까요.


caute 2007-07-19 20:48   좋아요 0 | 수정 | 삭제 | URL
로쟈님/오랜만에 들어와 쓸데없이 시끄럽게 군 거 죄송하고요.^^;; 저도 어떤 거리두기를 하고 있지만, 나와 달라도 근기를 가지고 줄기차게 자기 스타일의 공부길을 만드는, 그 일반화할 수 없는 진정성은 존중하고 싶습니다.
kritiker님/저역시 씁쓸한 맘으로 공감합니다. 남의 언어로 된 책은 못 쫓아가 전전긍긍이라도 우리는 서로에게 물들지 않습니다. 아니, 행여 옷이라도 젖을까봐 빙빙 돌아 갑니다. 가면서 돌이나 던집니다.

눈팅 2007-07-19 21:58   좋아요 0 | URL
김영민 글의 특징: 명사구와 명사절이 많아 힘이 없습니다. 이는 스타일이 아니라 나쁜 글쓰기입니다.
예:1.과거, 제자가 스승을 배우는 방식은 반복되는 흉내 속에서 양식을 얻고 마침내 그 양식마저 뚫어내며 자신의 스타일에 이르는 길이었다.-->과거에 제자는 스승의 양식을 모방한 후 자신의 스타일을 만들었다.2.그러나 이소룡의 이미지가 재현하는 한편 우스꽝스러운 양식은 스타가 된 아웃사이더들의 세속적 운명이다.-->그러나 스타가 된 아웃사이더들은 이소룡의 이미지를 우스꽝스러운 양식으로 재현하였다.

참조:How to Write, Speak and Think More Effectively-Rudolf Flesch
김영민 선생은 이 책을 읽어보는 것이 좋을 것 같아요.

kritiker 2007-07-19 22:52   좋아요 0 | 수정 | 삭제 | URL
우스운 것은 아직 학자라는 타이틀조차도 따지 못한 사람들이 항상 누군가를 가르칠려고 든다는 것입니다. 비판에서 중요한 것은 누군가를 외면적으로 비교해 차이를 비판하는 것이 아니라 비판 대상의 논리를 따라가며 그 논의의 엇갈리는 부분을 내파하는 것입니다. 차이에 근거한 외면적 비판만큼 쉬운 일은 없을 것입니다.

자신만의 길을 뚫어내는 것은 쉽지 않은 일입니다. 그것이 학문적인 성과이든 그것을 넘어선것이든 말입니다.
배우는 사람이라면 누굴 손쉽게 가르치려고 하지 마십시오.
대상의 존재가 우습게 보이더라도 학문적 구성을 하는 것은 상당한 고통을 요하는 것이요, 그런 일을 10년 이상 하는 사람이라면 쉽게 비웃음치고 지나칠 일은 존재하지 않습니다.
강유원이든 김영민이든 그 사람에게 취할 수 있는 것이 있으면 겸손하게 그사람에 즉卽해서 취하면 될일이지, 깜냥도 안되면서 누굴 가르치려는 것인지...참 안습입니다.

두 사람 사이에 비판이라는 것이 있다면, 그들의 상대방에 대한 비판들에 일희일비 할 일이 아니라, 그 사람이 보지 못하는 것이 무엇인지를 새겨보며 그들의 한계를 짚어보는 것이 더 현명할 테지요.

김영민 비판에 대해 한마디 하자면, 지젝식으로, 김영민의 단점 그리고 한계라는 것을 지적하고 고쳐버린다면, 그의 장점도 아울러 날라가 버리겠지요.
또 김영민은 effective한 글을 쓰려는 사람이 아닙니다. 그런 글은 그의 학위논문인 <현상학과 시간>(까치)에서 마감되었지요. 김영민의 effectivity 수준을 평하고 싶다면 그 책 한번 보고 평가하시지요.

로쟈 2007-07-19 23:13   좋아요 0 | URL
김영민 교수의 책은 <현상학과 시간>을 물론이고 <철학과 상상력>부터 시작해서 5-6권 정도 읽었지만(그의 강의를 들었던 한 동창의 권유로) 어느 시점부터 읽지 않게 되더군요. 최근에 연재물에서는 좀 달라진 듯도 한데, 참신한 문제제기를 그에 걸맞지 않는 고투의 문체가 다 침식해버린다는 게 제가 받은 인상입니다. '지젝식으로'라는 게 무슨 뜻인지는 모르겠으나 '상식'을 말하기 위해서 '학자라는 타이틀'까지 필요한 것인지요?..

kritiker 2007-07-19 23:42   좋아요 0 | 수정 | 삭제 | URL
김영민 글쓰기의 비극이지요^^ 학문적인 글쓰기가 아니래서 학자들 사이에서 백안시당하고, 대중들에게는 전달력이 떨어지는...

김영민에 대한 비판을 살펴보면 그 대부분 그의 글을 전혀 읽지 않고 씌어진 것인데, 만약 그 비판을 듣고 그 단점이라는 것을 고친다면 김영민이 의도한 모든 것 역시 사라지고 말 것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그의 단점이라는 것에 대한 외면적 차이 비판이 가지는 의미라는 것이 과연 무엇인지에 대해 곰곰히 생각해보게 됩니다.('오스틴과 함께 헤겔을'을 참고했습죠^^)

김영민에 대한 위의 비판을 '상식'이라고 말하시는 것인가요?
누군가를 비판할 때 누구의 책을 읽어보세요라는 것을 비판이랍시고 즐겨 던지는 이들에게 해주고 싶은 말이었는데, 누군가를 비판하는 것만큼 쉬운 일은 없습니다. 그 비판의 대상의 전모를 파악하는 것은 그것보다 더욱 어려우며, 비판 대상의 논리에 즉해서 내파하는 것은 더더욱 어려운 일이며 누구나 쉽게 할 수 있는 일이 아니지요. 손쉬운 인상비판이나 차이 비판은 아무 의미도 없으며, 비판의 대상에게 아무런 설득력을 가지지 못합니다.
비판의 대상은 이렇게 말하겠지요. "제 글을 다시 한번 읽어보세요"

무엇인가를 공부하는 이들에게는 밟고 올라갈 과정이라는 것이 존재하지요.
배우는 이들이라면 배움의 대상 앞에 겸손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그저 생활양식으로서의 겸손함이 아니라 텍스트에 대한 몰입, 즉하는 행위를 말하는 것입니다. 김영민의 위 텍스트에 의하면 '동화'의 행위이겠지요. '동화'이후에서야 비판이 존재할 수 있을 것이기 때문입니다. 공부하는 이라는 정체성을 가지고 있다면, 대하는 텍스트 하나하나를 공대하는 마음가짐 정도는 지녀야 할 것입니다. 그 이후에야 제대로 된 비판이 나올 것입니다.
'학자라는 타이틀'정도라도 가지고 있다면 위의 행위를 하지 않고 지 꼴리는대로 해도 별 말 하지 않을 것입니다^^
대신 비판이라는 것을 하려면 제대로 읽어보고 하라고 하겠지요. '창조적 오독'이런 말로 자신의 지적 불성실함을 변명하지 말고 쏘아주면서 말입니다.

로쟈 2007-07-20 00:01   좋아요 0 | URL
레닌을 비판하기 위해선 먼저 레닌전집을 읽어야 한다거나 푸코를 비판하기 위해서는 푸코 전집을 미리 읽어야 한다고 주장하시는 건가요? 이명박을 비판하기 위해서는 그의 생애와 업적을 시시콜콜히 탐문한 이후에 '비판 대상의 논리에 즉해서 내파'해야 하는 건가요?(이 경우 원초적인 한계는 '네가 그 시대를 살아봤어?'라는 반문에 놓이겠지요.) 그렇지 않은 비판은 '아무런 설득력을 가지지 못하는' 것이구요? 하신 말씀의 취지는 가늠할 수 있지만 하나마나한 얘기입니다. 작은 풀꽃 하나라도 우리가 감히 '이해'한다고 말할 수 있을까, 란 질문과 똑같으니까요. 그럼에도 불구하고 우리는 따져묻고 이해할 수 있으며 비판할 수 있습니다. 상식적으로 되는 말과 안되는 말을 가려볼 수 있으며 보다 나은 글이 어떤 것인가를 재고해볼 수 있습니다. 그런 게 제가 아는 메타-상식입니다...

눈팅 2007-07-20 01:02   좋아요 0 | URL
아마리우스에서 '신참'이 쓴 글 '책'을 찾아 'gg절절'이 쓴 덧글을 읽어보세요. 전형적인 김영민의 문체:"학문이란 우선 역사, 곧 삶의 흐름새라는 생각은 여전히 결연하고, 그 흐름새 속에 새로운 지경(地境)들이 가득 담겨져 있음에 감사하는 마음이 자연스럽다."
나쁜 문장을 비판하는 마음이 자연스럽다고 저는 믿습니다. 참고로 저는 김영민이 다루는 소재를 좋아하고 그의 책을 여러권 읽었습니다.강유원의 적절한 비판이 없었다면 신문독자에게 더 심한 비난을 샀을 겁니다. 사실 김영민의 에세이는 한겨레에서 편집만 잘 하면 읽을만 할 겁니다.

kritiker 2007-07-20 02:25   좋아요 0 | 수정 | 삭제 | URL
로쟈님이 왜 흥분하시는지 알 수 는 없으나, '메타-상식'이라는 것이 '상식'이라는 것을 뛰어넘는(무시하는)beyond 것만은 아닐 것입니다.

당연히, 레닌을 비판하기 위해서는 먼저 레닌전집을 읽어야 합니다!
로쟈님도 논문을 써보셔서 아시겠지만, 헤겔 전공했다하면 참고문헌에 헤겔 전집 쭉 써놓지 않나요? 다 읽지는 않았다 하더라도 다 읽은 시늉이라도 하기 위해서라도 말이죠.
어떤 사상가를 전공하면서 사상가의 전후 사상에 대해 자기가 세운 가설이 모순되면 어떻게 하겠습니까^^?
참고로 강유원의 김영민 비판 중에 하나가, 탈식민성 비판하던 김영민이 지금 자기가 비판했던 외국학자들 글 잔뜩 인용하는 짓 하고 있다는 것이었지요.


이명박 이야긴 왜 써놓으셨는지?
하다 못해 이명박 검증한답시고 집안 식구들 계좌까지 '시시콜콜히 탐문'하고 있지 않나요? 지금 백분토론에서 한나라당 대선 주자 검증에 대해 나오는데, 박근혜처럼 DNA검사는 못하더라도, 차라리 이명박 검증하는 정도라도 해놓고 비판해야 학자로서 학문적 비판이라고 할 수 있지 않을까요?

로쟈님께서는 저의 글을 제대로 읽지 않으셨던 것 같은데, 내재적 비판 아닌 인상 비판, 차이 비판 할 수 있습니다. 그것이라도 꼼꼼히 읽는 것이 선행되어야 함이 '상식' 아닐까요?
'따져 묻고 이해하고 비판'하는 것은 그저 나오는 것이 아닙니다.
로쟈님은 눈앞의 텍스트 하나 꼼꼼히 읽는 것만으로도 '따져 묻고 이해하고 비판'하는 것이 가능하다는 것이 상식이라고 하시고, 저는 제대로 된 비판--그게 철학을 전공한다는 사람들의 비판이라면--을 하려면 문장의 지적 현학에 대한 지적, 문장의 비문 같은 거 뿐만 아니라 비판 대상에 대한 이해가 선행되어야 함을 말하는 것입니다.
상식적인 저의 비판에 대해, 위의 로쟈님의 비판은 도저히 무슨 이야기를 하고 싶은지 알 수가 없습니다.

로쟈 2007-07-20 09:25   좋아요 0 | URL
역시나 '자리'에 대해서 오판하시는 것 같습니다. 저는 김영민에 관한 논문을 쓰고 있는 게 아니며 그럴 의향도 없습니다(저에 대해 한마디 하기 위해 이 서재의 글을 다 읽으셨습니까?). 한 칼럼의 문장들이 난삽하다거나 소통불가능하다는 걸 지적하기 위해서 일반 독자들이 그의 책들을 다 읽고 '내재적 비판'을 가해야 한다는 충고는 상식밖입니다. 이명박의 대운하론에 대해서 비판하기 위해 일반독자들이 토목공학과 대운하 경제학을 두루 마스터해야 한다는 주장이 어불성설인 것처럼. 저는 '메타-상식'이란 말을 '상식에 대한 상식'이란 뜻으로 썼습니다만, 이런 단순한 술어도 '합의(코드)'가 없다면 서로 이해되지 않는 것이죠. 고고한 공부는 각자가 알아서 할일입니다. 하지만 그것이 공론장에서 이해되지 않는 문장들의 언어폭력을 정당화하지는 않습니다...

눈팅 2007-07-28 21:23   좋아요 0 | URL
같은 성경이라도 스타일에 따라 느낌이 천차만별입니다. 김영민은 원고를 킴제임스 버전으로 쓰는 셈입니다. 저는 예전에 킴 제임스, 투데이스 잉글리시, 컨템퍼러리 잉글리시 버전을 비교하며 성경을 읽은 적이 있는데 다양한 층위의 표현방법을 배울 수 있습니다. 어떤 텍스트를 김영민 문체로 패러프레이즈하는 것은 어렵지 않을 겁니다. 그러나 언문일치를 어기는 것은 확실히 시대착오적입니다. 김영민이 말하는 내용보다 말하는 방식을 문제화해야 합니다. http://www.biblegateway.com를 방문하여 각 버전의 성경을 비교해 보세요.


로쟈 2007-07-21 09:11   좋아요 0 | URL
30년 이상 써온 글쓰기이기에 이미 어찌해볼 도리가 없는 게 아닐까란 생각도 듭니다. 문체가 곧 사람이기도 하니까요...

kritiker 2007-07-20 13:22   좋아요 0 | 수정 | 삭제 | URL
레닌비판 비유부터 시작해 이명박 비유, 작은 풀꽃 비유까지 참 X친년 널뛰듯이 날라다니시는군요. 혹 <논쟁에서 이기는 38가지 방법> 이런 거 시험하고 계신가요^^?
소통의 의지가 없으신 로쟈님께 나름 성의를 가지고 글썼는데 시간낭비라는 생각이 듭니다.

하지만 저같으면, 로쟈님과는 다르게 '로쟈님에게 한마디하기 위해' 이 싸이트를 다 보고 가겠습니다. 오랜 기간 다 보고 있기도 하구요^^


로쟈 2007-07-20 13:29   좋아요 0 | URL
김영민도 그렇지만 이기고 지는 데, 자기 실력 테스트에 관심이 많으신가 보군요. 자존심이 있으시다면 이런 데서 시간낭비하지 마시고 고고한 자기단련에 더 정진하시길...

Joule 2007-07-21 02:44   좋아요 0 | URL
똑똑하고 영리한 댓글만 답해 주실 것 아니고, 저처럼 어리숙한 민심이 한 수 가르쳐 주십사고 고개 숙여 묻는 것에도 위와 같이 자상하게 한 마디만 덧붙여 주시면 김영민이나 강유원보다 더 감사해 하지 않겠습니까. 뭐 말 많으면 간첩이라는 옛말도 떠오르고 말이지요. 하핫.

로쟈 2007-07-21 08:50   좋아요 0 | URL
앗, 죄송.^^; 추천도서까지 생각해놓고 있다가 논전이 붙는 바람에... 지젝의 <라캉>을 읽으셨다면, <누가 슬라보예 지젝을 미워하는가>로 한번 더 '복습'해보실 수 있습니다. 그리고 역시나 <이데올로기의 숭고한 대상>과의 승부는 피할 수 없는데, 비교적 잘된 번역서이지만 몇몇 오류들도 감안하시는 게 좋겠습니다. 이후에 대중문화쪽으로 갈 수 있고, 이론적으로 더 깊이 들어가실 수도 있습니다...

joule 2007-07-21 12:06   좋아요 0 | 수정 | 삭제 | URL
우는 소리 하길 잘했군요. 감사합니다. 홧김에 서방질한다고 고 사이 E=mc2을 집어들긴 했지마너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