날짜로는 여름을 몇 시간 남겨놓고 있지만 사실상의 여름 날씨가 이어지고 있는데(물론 한여름의 폭염까지는 아니더라도), '여름맞이' 페이퍼로 미학책 몇 권에 대해 적는다. 이사를 얼마 남겨놓고 있지 않아서 실제 구입은 좀 늦춰질 수 있지만 필수 소장 아이템으로 이미 '눈도장'을 찍어놓은 책들이다.

 

 

먼저 폴란드의 저명한 미학자 타타르키비츠(1886-1980)의 미학사 3부작 가운데 '근대미학'을 다룬 마지막 권 <타타르키비츠 미학사3>(미술문화, 2014)이 출간됨으로써 드디어 완결됐다. 고대미학과 중세미학을 다룬 1, 2권은 지난 2005년과 2006년에 나왔으니 거의 잊고 있던 참이었다. 어떤 책인가(아래는 폴란드어판 원저). 

 

15-17세기 미학의 역사를 다룬 타타르키비츠 미학사 3부작의 완결편이다. 타타르키비츠는 고대·중세·근대라는 세 시기의 미학을 아우르면서 미와 예술에 대해 시대를 넘나드는 귀중한 글을 쓴 것뿐만 아니라, 각 시대의 원전들에서 발췌한 인용문으로써 그것을 예증한다. 이러한 방식으로 그는 각 용어의 정착과 변형과정을 살피며 역사 속에서 미학이 어떻게 성립되어왔는지를 밝히고 있다. 그의 글은 역사 속에서 다양한 의미로 변천해온 여러 개념을 보다 명확하게 정리한다. 그리고 이를 통해 미학의 역사를 통시적으로 살펴볼 수 있게 해준다. 이 책은 총 9부로 구성되어 15세기부터 17세기까지 유럽 미학의 유의미한 사건과 주요인물, 특징을 서술한다.

방대한 분량의 <타타르키비츠 미학사>를 완역한 역자의 노고에 감사를 표하고 싶다.

 

 

타타르키비츠의 대표작은 <미학의 기본개념사>(미술문화, 1999)인데, <여섯 가지 개념의 역사>(이론과실천, 1990)으로 처음 번역됐던 책이고 원제 또한 그렇다. 찾아보니 <미학의 기본개념사>는 1970년대에, <미학사>는 1960년대에 나온 책이다. 미학 관련서로는 고전급에 해당하겠다. 이론적인 저작으로 이 정도 소개된 저자는 <미학>과 <미학사>가 소개된 루카치 정도이지 않을까.

 

미학 관련서로는 제럴르 레빈슨이 엮은 <미학의 모든 것1>(북코리아, 2013)도 기대를 갖게 하는 시리즈다. 원저는 <옥스포드 미학 핸드북>이다. (눈에 띄는 표지의) 원저가 848족의 방대한 분량이어서 몇 권으로 나뉘어 번역되는 듯싶은데, 1권은 '미학의 기초: 철학적 미학'을 다룬다. 한두 권 더 나올 것 같은데, 조만간 완간되기를 기대한다...

 

14. 05. 3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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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술분야의 '이주의 발견'도 골라놓는다. 오랜만에 나온 예술사회학 분야의 책이다. 오스틴 해링턴의 <예술과 사회이론>(이학사, 2014). '사회학적 미학의 길잡이'가 부제. 예술사회학과 사회학적 미학은 거의 호환적인 의미를 갖는 듯싶다.

 

 

저자는 영국 리즈대학교 사회학과 교수로, 사회이론과 예술사회학 분야가 주 전공인 듯싶다. <예술과 사회이론>(2004)에 연이어 낸 책이 <현대 사회이론 입문>(2005)이다. <예술과 사회이론>도 이 주제의 입문서라고 보면 되겠다(역자에 따르면 대학원 세미나의 교재로 쓰였다 한다). 어떤 책인가.

예술과 사회를 둘러싼 여러 쟁점을 포괄적으로 다룸으로써 그에 대한 다양한 시각과 주장을 조망할 수 있도록 해주는 입문서이다. 베버, 짐멜, 벤야민, 크라카우어, 프랑크푸르트학파에서부터 푸코, 부르디외, 하버마스, 보드리야르, 리오타르, 루만, 제임슨까지 예술의 사회적 위치, 미학의 사회적 의의 등을 중요하게 다룬 사상가들의 핵심 견해가 주로 검토된다. 이 책은 예술의 의미를 변화하는 문화제도 및 사회경제구조와 연관해 탐색할 뿐만 아니라, 미적인 가치와 문화정치학, 취미와 사회계급, 돈과 후원, 이데올로기와 유토피아, 신화와 대중문화, 모더니즘과 포스트모더니즘의 의미를 둘러싼 논쟁 등 수많은 문제를 알기 쉽게 해명한다.

 

비교적 최근에 나온 빅토리아 일렉산더의 <예술사회학>(살림, 2010)을 포함해서 '예술사회학'이란 제목의 책은 몇 권 나온 적이 있다. 개인적으로는 1980년대를 풍미했던 아르놀트(아놀드) 하우저의 <문학과 예술의 사회사>(창비)와 함께 자네트 월프의 책들이 떠오르는데, 마침 <예술과 사회이론>에도 월프에 관한 김문환 교수의 글이 실려 있다.

 

 

이 책은 예술의 사회적 의미와 역할을 진지하게 생각해보려는 사람이라면 그 누구에게나 최적의 안내자가 되어줄 것이다. 옮긴이의 주와 인명 및 용어 해설은 일반 독자의 접근을 좀 더 손쉽게 해줄 것이다. 또한 일찍이 ‘사회미학’이라는 용법을 제안한 바 있는 김문환 서울대 명예교수의 발문 「사회학적 미학이란 무엇인가」는 하나의 이정표가 될 것이며, 부록으로 덧붙인 「미학과 예술사회학―자네트 월프의 경우」도 이 방면의 주요 저자인 자네트 월프의 우리말 번역서 세 권이 모두 절판된 상황에서 유용한 읽을거리가 될 것이다.

절판된 '세 권'은 <철학과 예술사회학>(문학과지성사, 1987), <예술의 사회적 생산>(한마당, 1988), <미학과 예술사회학>(예술과실천, 1994) 등을 말한다. 나도 이 주제에 관심을 갖고 있던 터라 모두 구입했던 기억이 난다(인상 깊게 읽은 기억은 없지만). 오스틴 해링턴의 책은 자네트 월프의 업그레이드 버전쯤 될까? 혹은 영국 예술사회학의 현주소를 가늠해볼 수 있는 기회가 될지도 모르겠다...

 

14. 03. 2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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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간 <몸단장하는 여자와 훔쳐보는 남자>(이봄, 2013) 덕분에 이름을 기억하게 된 저자는 프랑스의 미술사학자 파스칼 보나푸다. "서양미술 속의 ‘누드화’를 다룬 책이다. 우리가 그동안 말로 꺼내지 않고 에둘러서 했던 이야기, 그럼에도 꼭 하고 싶다면 ‘무례한 사람’이라는 오명을 각오해야 하는 이야기를 그 누구도 아닌 ‘미술사학자’가 꺼낸다. ‘몸단장하는 여인’이라는 주제는 고대에서 오늘날에 이르기까지 예술의 역사를 관통하는 매우 보기 드문 주제 중 하나이기 때문이다."라는 게 책소개.

 

 

 

전시 기획자이자 소설가이기도 하다는 저자의 책은 시공 디스커버리 총서의 <렘브란트>와 <반 고호>를 포함하여 몇 권 더 나와 있다.

 

 

그래도 가장 눈길을 끄는 건 '서양미술사의 비밀을 누설하다'를 부제로 달고 나온 <몸단장하는 여자와 훔쳐보는 남자>일 수밖에 없는데, 원제는 <무례: 화장대 앞의 여인들>(Indiscretion: Femmes a la toilette)이다. '무분별'이라고 해야 할지 '무례'라고 해야 할지 모르겠지만, 여하튼 화장실에서 몸단장하는 여인들을 몰래 훔쳐보는 행위를 가리키겠다. 바로 저자 보나푸가 그런 무례한 남자를 자처하고 나섰다. 아예 서문 제목을 '나는 관음증 환자다'라고 붙였으니 무례하더라도 위선적이진 않다.

 

 

아쉬운 건 번역본의 표지다. 열쇠구멍을 통해 들여다보는 관음증적 시선을 콘셉트로 잡았지만 그다지 에로틱하지 않다. 원서와 비교해봐도 대번에 알 수 있다. 너무 과감한 표지가 부담이 됐을 것도 같지만, 미술사의 고전적인 누드화를 주제로 한 책이 적지 않은 상황에서 '열쇠구멍'이나 '훔쳐보는 남자'라는 설정은 좀 식상하다.

 

 

원서의 표지를 그대로 가져왔던 프랜시스 보르젤로의 <누드를 벗기다>(시그마북스, 2012)와 비교해봐도 그렇다. 그럼에도 올해의 마지막 미술책으로 구입했다. '서양미술사의 비밀'을 누설해준다고 하니 한번 들어보려고...

 

13. 12. 28.

 

 

P.S. 파스칼 보나푸의 책 얘기를 하다 보니 떠오른 책은 고갱 그림들로 표지갈이를 한 한스 페터 뒤르의 문명화과정 3부작(<은밀한 몸>, <음락과 폭력>, <에로틱한 가슴>)이다. 2006년에 1판 1쇄가 나오고, 지난달에 소프트카바로 2쇄가 나왔다. 표지만으로도 탐나는 책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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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름엔 덥다'고 생각하는 편이지만, 꽤나 무더운 날씨가 이어지고 있다. 특별한 신조가 있어서가 아니라 설치할 공간이 없어서(벽마다 책장이다) 에어컨을 달지 않은 탓에 선풍기 바람으로 꿋꿋하게 버텨야 하는데, 아무래도 독서의 효율은 떨어진다. 독서실을 끊기엔 너무 늦은 시간이 돼 잠시 아이스커피 한잔으로 정신을 가다듬다가 '이주의 발견'을 적는다. 몇권의 후보가 있었는데, 더 뒤적거릴 여유도 없어서 눈에 띄는 책을 책상맡에 갖다놓았다. 도널드 프레지오시 편저의 <꼭 읽어야 할 예술이론과 비평 40선>(미진사, 2013). '21세기를 위한 미술사 입문서'라는 건 이 책에 대한 로버트 로젠블럼(뉴욕대 교수)의 평이다.

 

 

제목 그대로 예술이론과 비평 40편을 모아놓은 것으로 미술비평이나 미술사 전공자들의 교재용 책이다. 관련 전공학생들이 학부나 대학원 과정에서 읽어나가는 용도이고, 원저는 옥스포드대학출판부에서 나왔다. 편저자도 나름 명망가이고(그래서 원서를 주문하면서 그의 책도 하나 더 주문했다), 번역은 홍대 미술대학 예술과 교수와 제자들이 맡았다.

 

개인적으로는 '꼭 읽어야 할', 이런 말이 들어간 제목을 싫어하기에, 번역본의 제목은 좀 유감스럽긴 하다. 원저의 제목처럼 <미술사의 기술> 정도로 가거나 <예술이론과 비평 40선> 정도가 좋았겠다. 이 책의 독자가 초등학생은 아닐 것이기 때문이다.

 

 

그리고 또 하나 인명에 대해서 역자는 E. Gombrich의 국내 통용 표기인 '곰브리치' 대신에 '곰브릭'이라고 옮겼다. 국내에서는 '곰브리히'로 관례적으로 사용하지만 해외에서 '곰브릭'으로 불린다는 게 이유다(그런 식이면 '언스트 곰브릭'이 돼야 할 것 같은데, 그건 또 '에른스트 곰브릭'이다. '곰브리히'는 출처가 또 어디인지?). 그런 이유라면 '플라톤'도 '플레이토'라고 불러야 하는 것 아닌가. "내가 밖에 나가 보니 이렇게 부르더라"는 거밖에 안 된다. 굳어진 고유명사는 '한국어'란 인식이 필요하다(선집까지 나오고 있어도 '벤야민'을 '베냐민'으로 표기하는 방식에 내가 동의하지 않는 이유다).

 

곰브리치가 재직했던 런던의 '바르부르크연구소'도 독일 태생의 바르부르크(A. Warburg)를 영국에선 '워버그'라고 부른다는 이유로 '워버그연구소'가 됐다. 내가 유감을 가질 건 아니고, 명칭 문제는 전공자들이 알아서 합의를 보면 좋겠다.

 

 

 

디테일한 면에서는 불만스럽지만, 여하튼 이런 앤솔로지를 나는 좋아하는 편이다. 아직도 '대학원' 감각을 갖고 있어서인가 보다. 제이 에멀링의 <20세기 현대예술이론>(미진사, 2013)과 <새로운 미술사를 위한 비평용어 31>(아트북스, 2006)도 원서와 함께 구비해놓았었다. 거기에 조나단 해리스의 <신미술사? 비판적 미술사!>(경성대출판부, 2004)까지. 나름대로 대학원 수준의 이론공부를 할 준비는 다 돼 있다. 그게 가능한 건 이론이 통분야적이기 때문이다. 곧 문학이론이나 영화이론, 미술이론이 따로 분리되지 않는다. 일례로 푸코의 '작가란 무엇인가'나 벤야민의 '기술복제 시대의 예술작품'은 <꼭 읽어야 할 예술이론과 비평 40선>에도 수록돼 있다.

 

책 이사 문제가 해결되지 않는 한(그러니까 당분간은) 체계적인 독서가 어렵겠지만, 언젠가 좀 여유를 갖고서 '40선'에 대한 독서를 해나가도 좋겠다는 생각이 든다. 더위를 먹어서 하는 소리가 아니다... 

 

13. 08. 0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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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번주 주간경향(1022호)의 북리뷰를 옮겨놓는다. 올해 탄생 100주년을 맞은 김환기 화백의 전기, 이충렬의  <김환기: 어디서 무엇이 되어 다시 만나랴>(유리창, 2013)을 읽고 그의 생애를 간추렸다. 덕분에 김환기 에세이 <어디서 무엇이 되어 다시 만나랴>(환기미술관, 2005)와 김향안 여사의 에세이 <월하의 마음>(환기미술관, 2005)도 같이 구입했다. 전기는 평전과 달리 작품세계보다는 연대기적 생애 기술에 치중하고 있어서 다른 책들도 곁들여 읽는 게 좋을 듯싶다.

 

 

주간경향(13. 04. 23) ‘한국의 피카소’ 김환기의 생애

 

김환기 탄생 100주년을 기념하여 나온 <김환기: 어디서 무엇이 되어 다시 만나랴>는 ‘온전하게 복원한 김환기 전기’를 표방한다. 한국 근현대 미술사에 큰 족적을 남긴 화가이자 이중섭, 박수근과 함께 ‘한국 화단의 3대 블루칩’으로 꼽히지만 수화(樹話) 김환기에 대한 온전한 전기는 없었다는 게 저자가 팔을 걷어붙인 이유다. 저자는 이미 <간송 전형필>과 <혜곡 최순우, 한국미의 순례자>를 연이어 펴냄으로써 문화·예술인 전기의 새로운 물꼬를 튼 바 있다.

 

김환기는 어떤 생애를 살았던가. 전남 신안군 안좌도에서 천석지기 지주의 1남 4녀 중 넷째로 태어난 그는 도쿄에서 중학교를 마치고 귀향했다가 대학 진학을 위해 아버지의 반대를 무릅쓰고 재차 유학의 길을 떠난다. 손이 귀한 집이라 혼례를 치르긴 했지만 그는 어느 것에도 구애받고 싶지 않았다. 그런 기질에 맞는 것은 예술뿐이었다. 스무살 청년 김환기가 일본대학의 예술학원 미술부에 입학한 이유인데, 흥미롭게도 아버지는 아들의 ‘환쟁이’ 공부를 반대하지 않았다. 어차피 지주로 살 테니 따로 직업을 가질 필요가 없는 이상 무슨 공부를 하든 상관 없을 것이었다.

스스로 처녀작이라고 일컬은 ‘종달새 노래할 때’로 일본 화단의 공모전에서 입상한 김환기는 조선의 전통을 그림에 접목하겠다는 결심을 안고 귀국한다. 김용준, 정지용 등 문화예술계 인사들과 친교를 맺고 1941년 첫 국내 개인전을 여는 등의 활동을 하던 그는 곧 인생의 전환점을 맞게 된다. 1942년 부친이 사망하자 재산을 정리하면서 그는 아내와도 이혼한다. 그러고는 백석과도 교분을 가졌던 일본 시인 노리다케 가츠오의 소개로 이화여전 출신의 변동림을 만난다. 변동림은 시인 이상과 사별한 처지였고 김환기는 딸 셋을 둔 이혼남이었지만 그는 간곡한 구애로 마음을 얻는다. 두 사람은 양가의 반대를 무릅쓰고 1944년 결혼식을 올린다. 변동림은 결혼하면서 김향안으로 개명했는데, 향안은 원래 김환기가 쓰던 호였다. 김향안은 이후 김환기의 ‘절대적 동반자’가 된다. 그즈음에 김환기는 백자 항아리에서 조선의 정서와 정신을 발견하면서 적극적으로 수집에 나선다. 백자의 발견은 그가 새로운 작품세계로 나아가는 출발점이 되었다.

 



한국전쟁을 겪고 대학 강단에 서지만 한국은 예술가의 꿈을 펼치기엔 너무 좁은 땅이었다. 천박한 문화예술계의 풍토나 국민들의 문화 경시 풍조도 감환기의 마음을 더 넓은 곳으로 돌리게 했다. 그는 자신의 그림이 세계 미술계에서 어떤 위치에 있는지 알고 싶다고 입버릇처럼 말했고, 그런 남편의 뜻을 펴보기 위해 아내는 프랑스로 떠났다. 1955년의 일이다. 파리의 한 화랑에서 보내온 초청장을 손에 들고 김환기 역시 이듬해 파리로 향한다. 몇 차례 개인전을 열기도 했지만 그는 이 예술의 도시에 안착하진 못했다. 그는 1959년에 귀국해 홍대 미대 교수로 복직하고 학장도 역임한다. 그렇지만 1963년 상파울루 비엔날레에 참가하게 된 걸 계기로 그는 미국으로 건너가 한 번 더 예술가로서의 성공을 꿈꾼다. 경제적 곤궁에 시달리면서도 화가의 자존심 하나로 창작의 열정을 마음껏 불태운 시기였다. 하지만 꿈을 이루기 전에 1974년 그는 척추 디스크 수술 후 회복 중 불의의 낙상으로 세상을 떠난다. 김광섭의 시 ‘저녁에’에서 착상을 얻은 대작 ‘어디서 무엇이 되어 다시 만나랴’(1970)는 고국과 그리운 사람들에 대한 향수를 예술로 승화시킨 그의 대표작이다.

 

 

김환기에 관한 평전은 여럿 나와 있다. 하지만 대개 그의 작품세계의 발전과정을 기술한 미술평론가들의 저작이고 분량도 얇아서 이 걸출한 서양화가의 생애를 전체적으로 들여다보기엔 부족했다. 그런 점에서 ‘정본 김환기 전기’를 목표로 한 이 책은 지난해에 나온 ‘한국미술의 거장 김환기’전(展) 도록 <김환기 1913~1974>(마로니에북스)와 함께 책으로 만날 수 있는 가장 유익한 자료이다.

 

13. 04. 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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