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번주 주간경향(994호)에 실은 북리뷰를 옮겨놓는다. 한상범, 이철호 교수의 <법은 어떻게 독재의 도구가 되었나>(삼인, 2012)를 읽고 쓴 것이다. 찾아보니 두 사람은 <전두환체제의 나팔수들>(패스앤패스, 2004)도 공저한 바 있다. 법치라는 명분이 어떻게 군사독재 정권의 권력유지 수단으로 악용되고 남용됐는지 일람하게 해주는 책이다. 다만 이 주제에 대해서는 '작은 책자'를 넘어서 좀더 무게 있는 책이 나왔으면 싶다. 한홍구 교수가 한겨레에 연재한 '사법부 회한과 오욕의 역사’가 단행본으로 나온다고 하니까 기다려봐야겠다...

 

 

 

주간경향(12. 09. 25) 군사독재 굴레서 어떻게 벗어나야 하나

 

“한국 민주주의의 현주소는 어디인가?” 헌법학자 한상범·이철호 교수가 <법은 어떻게 독재의 도구가 되었나>의 서두에서 던지는 질문이다. 단적으로 말해서 우리는 민주냐 독재냐의 갈림길에 서 있다는 게 저자들의 문제의식이다. 민간인 사찰과 불온서적 목록 부활, 국가인권위의 파행적 운영 등 민주화에 역행하는 일들이 횡행하는 현실은 우리의 시침을 1970∼80년대로 되돌려놓은 것처럼 보인다.


이러한 퇴행이 어떻게 가능한가. 저자들은 우리 사회에 여전히 박정희 군사독재 체제의 복고를 바라는 구세력이 준동하고 있고, 우리의 마음속에도 군사독재 시절의 의식구조가 남아있기 때문이라고 본다. 독재시대에 대한 청산이 제대로 이루어지지 않은 까닭에 여전히 그 그늘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있는 형국이다. 이러한 현실인식 하에 책은 독재정권의 지배법리와 지배수법을 다시금 되돌아본다. 과거 독재체제의 부정적 유산을 제대로 청산하려면 먼저 그것이 어떤 수단들을 통해서 작동했는지 직시할 필요가 있기 때문이다.
 
거슬러 올라가면 제헌헌법 자체가 쿠데타 세력과 독재정권에 악용될 소지가 많았다. 독일 바이마르헌법의 영향을 많이 받았다고 하지만 실상은 일본 헌법의 영향이 더 컸고, 특히 계엄제도에 관한 조문들은 메이지헌법에서 그대로 따왔다. 군이 계엄사무에 관한 전권을 장악하게끔 했고, 군부의 독주에 제동을 걸 수 있는 장치는 전혀 마련하지 않았다. 예산제도도 재정 민주주의나 재정 입헌주의의 규정이 아주 취약한 행정부 본위의 제도로 메이지헌법의 개악판이라는 게 저자들의 평가다. 결과적으로 제헌헌법의 이러한 구멍은 쿠데타 세력에게 이용당하게 된다.
 
일제 법제의 잔재와 함께 문제가 되는 것은 법문화이다. 일본의 경우 1930년대에 접어들면서 법학과 법제에서 자유주의적인 것이 말살되고 천황제 파시즘이 절정에 이른다. 때문에 ‘악법에 대한 거부’와 ‘폭군에 대한 저항’이라는 핵심적 시민의식이 제대로 수용되지 못하고 근대적 자유주의 시민문화도 일본에서는 부재하게 된다. 문제는 바로 이 시기에 고등교육을 받고 고등문관시험을 통해 배출된 친일 관료들이 해방 이후에도 법조계뿐만 아니라 사회 각 분야에서 지도급 인사로 활동하게 됐다는 점이다. 1945년 이후에도 일제의 구(舊)법령 체제가 지속됐으니 해방이 됐다고는 하지만 인적으로나 제도적으로 일제강점기의 연속이었던 셈이다.
 
일제가 서구 제국주의로부터 배우고, 한국의 독재정권이 일제로부터 다시 배워서 써먹은 통치수법이 “법률의 기술을 악용하는 관료의 통치술”이다. 그리고 그러한 지배수법의 최고 절정이 “계엄제도의 정치적 악용과 국가정보기관을 이용한 정치적 탄압 자행, 형사 범죄자의 날조와 조작”이다. 민족일보 사건이나 인혁당 사건 같은 사법살인이 비근한 예이다. 이렇듯 법은 약자를 위한 보호장치가 아니라 강자를 위한 지배수단이었다. 게다가 법을 악용한 이러한 독재를 합리화하고 정당화하는 데 실무 법조인뿐 아니라 법학자, 어용언론이 동원됐던 게 우리의 독재정치사였다.
 
과연 우리는 그러한 과거사의 굴레에서 벗어날 수 있을까. 그러기 위해선 우리 사회가 절차적 민주주의에서 실질적 민주주의 사회로 이행해야 하는데, 이때 무엇보다 필요한 것은 시민적 주권의식이다. 권력의 객체가 아닌 주체가 돼야 하는 것이다. 저자들은 과거 군사독재정권이 어떻게 법을 악용해서 국민을 우민화하여 지배했는가를 분명히 아는 것이 그러한 주체로 서는 첫 걸음이라고 말한다. “군사독재가 시민사회를 붕괴시킨 황폐화된 폐허”에서 다시 시작해야 하는 과제가 우리에겐 아직 남아 있다. 민주냐 독재냐, 우리의 선택은 무엇인가.

 

12. 09. 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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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번달 책&(410호)에 실은 '로쟈의 주제별 도서소개'를 옮겨놓는다. 이달의 주제로 잡은 건 '사회적 비만'이다. 비만이 개인적 차원의 문제가 아니라 사회적 차원의 문제라는 걸 보여주는 책들에 주목해보았다.

 

 

 

책&(12년 9월호) 사회적 비만

 

하늘은 높고 말은 살찐다는 계절이다. 활동하기에 좋은 풍성한 계절이란 뜻일 테지만, ‘살찐다’는 말의 느낌은 예전과 많이 달라졌다. 과체중과 비만이 개인 건강의 문제를 넘어서 이미 사회적 문제가 되고 있어서다. 어떤 근거에서 ‘사회적 비만’을 말할 수 있으며, 무엇이 문제인가? 어떤 처방이 가능하며 우리는 무엇을 할 수 있는가? 몇 권의 책을 통해 ‘늘어진 뱃살’의 문제를 사회학적으로 생각해보자.


기본적인 길잡이가 돼줄만한 책은 비만 문제를 연구해온 영양학자 베리 팝킨의 <세계는 뚱뚱하다>(시공사, 2009)이다. 제목은 저명한 저널리스트 토머스 프리드먼의 저서 <세계는 평평하다>를 패러디한 것이다. ‘세계는 평평하다’의 이면이 바로 ‘세계는 뚱뚱하다’라는 암시다. 저자에 따르면 “현재 전 세계적으로 16억 명 남짓한 사람들이 과체중과 비만 상태이며, 2억 3천만 명이 당뇨병을, 15억 명이 고혈압을 앓고 있다.” 불과 반세기 전만 하더라도 비만 인구가 1억 명 이하였던 것과 비교하면 놀랄 만한 변화다. 영양실조 인구가 8억 명 수준으로 줄어든 것과 비교해보아도 비만 인구 증가 속도는 확연히 눈에 띈다.


비만인구의 급속한 증가 원인은 무엇인가? 우리가 뚱뚱해지는 건 당연히 우리를 과체중으로 만드는 유전자와 음식이 상호작용하기 때문이다. 하지만 유전자의 변화는 수천 년의 세월을 필요로 하기에 현대인을 비만으로 이끈 변화의 주된 요인은 음식일 수밖에 없다. 콜라와 같은 고칼로리의 당분음료, 패스트푸드의 슈퍼사이즈화가 가져온 대형화된 식사량, 고당분과 고지방 음식 섭취가 비만이라는 유행병의 주원인이다. “오늘날 우리는 인류 역사상 유례없는 방식으로 음식을 먹고 마시며 육체 활동을 하고 있다”는 게 저자의 진단이다. 한국도 예외가 아니다. 책에는 쌀과 채소를 주식으로 삼던 한국에서도 1995년 WTO 가입 이후 서구 식품과 레스토랑이 유입되면서 비만이 급증하고 있다는 지적이 나온다. 비만의 세계화에 우리도 동참하고 있는 셈이다.


사회적 비만은 전 세계적으로 번지고 있는 유행병이지만 그 진원지는 역시나 미국이다. 일본의 저널리스트 이노세 히지리의 <미국인은 왜 뚱뚱한가?>(작은책방, 2012)는 미국이 어째서 국민의 3분의 1이 비만이고 나머지 3분의 1이 비만 예비군인 ‘비만대국’이 됐는지 자세히 살핀다. 미국인들이 급속하게 살이 찌기 시작한 것은 1980년대부터다. 무슨 일이 일어났던 것일까? 우선 경제격차다. 비만이 ‘사치병’으로 간주되는 문화권도 있지만 미국에서 비만은 빈곤층의 표식이다. 소득이 낮을수록 비만이 될 가능성이 더 높기 때문이다. 경제적으로 여유가 없을 경우 값싸면서 칼로리가 높은 패스트푸드나 가공식품에 의존하게 되고 이러한 식생활이 자연스레 비만을 가져온다. 게다가 미국은 국토가 넓기에 자동차로 이동하는 게 일반적이고 그만큼 운동이나 신체활동은 줄어든다. 즉 식사의 고열량화와 몸을 움직이지 않는 생활패턴이 미국형 비만이 만들어지는 환경이다. 

 

 


문제는 그런 환경이 세계화와 함께 ‘글로벌 스탠더드’가 돼가고 있다는 점이다. 비만율이 높은 나라들은 모두 미국과 지리적으로, 혹은 문화적으로 가까운 나라들이다. 멕시코를 비롯해 영국과 호주, 캐나다 등이 모두 비만율 상위권 국가들이다. 미국과는 다른 식생활을 갖고 있어서 비만국가에서 열외인 것으로 보였던 프랑스까지도 미국식 패스트푸드문화가 확산되면서 포식국가 대열에 합류하기 시작했다는 점은 시사하는 바가 크다. 저자는 “지금 세계를 덮친 비만화의 물결에서 제외된 지역은 지구상에 존재하지 않는다”고까지 단언한다. WHO의 예상으론 2015년이 되면 과체중 인구가 23억 명, 비만인구가 7억 명으로 증가할 것이라고 한다. ‘테러와의 전쟁’보다 더 시급한 것이 ‘비만과의 전쟁’이라는 얘기가 결코 과장이 아니다. 따라서 비만에 대한 문제제기는 더 이상 ‘배부른 소리’로 간주될 수 없다. 굶주림과 결핍에 시달리는 사람들보다 더 많은 사람들이 과잉 열량으로 괴로워한다는 사실을 직시할 필요가 있다.

 


<강요된 비만>(거름, 2012)의 저자들은 사회적 비만을 일컬어 “굶주림을 해결하는 과정에서 생긴 이 세상의 또 다른 질병”으로 규정한다. 처방은 무엇인가? 우리의 생활방식을 근본적으로 개조하는 것이다. 저소득층이 질적으로 더 좋은 식품을 먹도록 지원하고, 몸에 해로운 식품의 판매는 규제하며 지방과 설탕, 소금이 과다하게 함유된 제품의 광고는 엄격하게 통제하는 것 등이 구체적인 방안으로 제시된다. 더불어 신체활동을 장려할 수 있도록 도시 중심가를 다시 설계해야 한다는 제안도 나온다. 물론 거대 식품회사들의 강력한 정치적 영향력에 맞서 이러한 일들이 이루어지기 위해서는 정치경제적 개혁이 필요하다. ‘비만의 사회학’이 ‘식품정치’로 나가야 하는 이유다. 에릭 슐로서의 <패스트푸드의 제국>(에코리브르, 2001)과 <식품주식회사>(따비, 2010), 그리고 매리언 네슬의 <식품정치>(고려대출판부, 2011) 등이 사회적 비만에 대한 우리의 시야를 확장시켜줄 책들이다. 죽도록 다이어트를 해도 절대 살이 빠지지 않는다면 다 그만한 이유가 있다는 사실을 알게 해준다.

 

12. 09. 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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교보문고에서 발행하는 이번 달 '사람과 책'에서 '로쟈, 고전과 만나다' 꼭지를 옮겨놓는다. 원고를 쓰느라 지난 8월에 다시 읽은 고전이 오웰의 <1984>였다. 여러 번역본 가운데 문학동네판으로 읽으면서 다른 주요 번역본들로 참고했다. 자투리 독후감은 지난주 한겨레 칼럼에 쓰기도 했지만, 얘깃거리들은 더 많이 남아 있다. 전기적 내용과 관련하여 참고한 평전은 박홍규 교수의 <조지 오웰>(이학사, 2003)인데, 최근에 나온 고세훈 교수의 <조지 오웰>(한길사, 2012)를 방안에 두고도 못 찾아서 참고하지 못했다. 평전으로는 크리스토퍼 히친스의 <왜 오웰이 중요한가>도 주문해놓은 터여서 나중에 같이 읽어보고 싶다.

 

 

 

사람과 책(12년 9월호) 감시사회, 그 '오래된 미래'

 

‘<동물농장>의 작가’, 아마도 조지 오웰(1903-1950)이란 이름이 가장 먼저 떠올려줄 만한 별칭이다. 국내에서는 <1984>와 함께 가장 많이 읽히는 오웰의 대표작인 만큼 이상할 건 없지만, 오직 ‘<동물농장>의 작가’로서만 기억된다면 오웰로서는 좀 억울할 법하다. 그리고 실상이 그랬다. 전체주의를 비판한 두 ‘우화적’ 소설이 한국에서는 ‘반공소설’로 읽히고 또 권장됐기 때문이다. ‘민주적 사회주의자’를 자임한 작가의 운명 치고는 다소 고약했다고 할까. 


국내에서 나온 첫 평전 <조지 오웰>(이학사, 2003)을 쓴 박홍규 교수에 따르면, <동물농장>(1945)이 세계 최초로 번역된 건 놀랍게도 한국어판(1948)을 통해서였다. 우리와는 남다른 인연을 갖고 있는 셈인데, 그렇다고 반가워할 일만은 아니다. 미국의 해외정보국이 ‘반공 투쟁’의 일환으로 작품의 소개를 주선했기 때문이다. 오웰이 예술적 목적과 정치적 목적을 결합시키려고 한 이 ‘정치소설’만큼 정치적으로 이용된 작품도 드물다. 미국 정부로서는 이 ‘반스탈린적 풍자소설’이 반공주의 계몽과 계도에 유용하다고 판단했으리라.


아이러니컬한 것은 바로 그런 정치성 때문에 정작 영국에서는 출간에 애를 먹었다는 사실이다. 2차 세계대전 중에 소련은 영국과 함께 독일에 맞서 싸우고 있었기에 출판사들은 스탈린식 사회주의에 대한 이 풍자소설의 출간을 꺼렸다. 한편 미국에서는 ‘동물 이야기를 다룬 책’으로 오해받아서 역시나 출간을 거절당하기도 했다. 1944년에 탈고한 <동물농장>은 우여곡절 끝에 1945년 8월에야 출간됐고 이듬해 나온 미국판이 베스트셀러가 되면서 오웰은 비로소 작가로서의 명성을 얻는다. 마지막 작품 <1984>를 집필할 수 있는 생활의 여유도 갖게 되지만, 안타깝게도 지병인 폐결핵이 점차 악화돼 가던 참이었다. 1948년에 탈고했기에 제목을 <1984>라고 붙인 이 작품은 이듬해인 1949년에 출간돼 20세기 디스토피아문학의 고전으로 자리 잡는다.    

 

 


따지고 보면 <1984> 또한 우리와는 각별한 인연을 갖고 있는 작품이다. 1984년 1월 1일 아침에 전 세계 안방에 방송된 위성예술 ‘굿모닝 미스터 오웰’이 백남준의 작품이었기 때문이다. 개인적으로는 중학생이었던 당시 ‘오웰’이란 이름을 처음 접하고 서점에 가서 막 나온 <1984>를 구입해 읽은 기억이 있다. 1984년에 읽은 첫 책이 <1984>이었던 것이다. 하지만 그 이후로는 오랫동안 오웰과 인연이 없었다. 사회주의 체제를 비판한 ‘반공문학’ 작가란 평판 때문에 80년대 대학가에서도 오웰은 널리 읽히지 않았고, 강한 정치성 때문에 문학적으로 대단치 않은 작가로 폄하됐다.

 

 

 

이런 분위기가 반전되는 것은 비교적 최근의 일로 <위건부두로 가는 길>(한겨레출판, 2010) 같은 그의 르포르타주와 <나는 왜 쓰는가>(한겨레출판, 2010) 같은 에세이집이 새롭게 주목받으면서부터다. 박홍규 교수의 평전에서 “특히 그의 수많은 에세이는 거의 소개되지 않았다. 그 에세이는 영국을 비롯한 자본주의 사회를 철저히 비판한 것이기에 대부분 소개되지 않았다고 볼 수 있다”고 언급한 것과 사뭇 대조되는 상황이 된 것이다. 단순하게 말하면 ‘반공주의자 오웰’에서 ‘사회주의자 오웰’로 작가의 이미지가 이동했다고 볼 수 있을까. 게다가 정치성과 문학성을 결합시키려는 오웰의 시도는 문학과 예술의 정치적 책임을 강조하는 사회적 분위기와 맞물려 재평가됐다.


“지난 10년을 통틀어 내가 가장 하고 싶었던 것은 정치적 글쓰기를 예술로 만드는 일이었다”고 고백하면서 오웰은 에세이 ‘나는 왜 쓰는가’(1946)에서 “자신의 정치적 편향을 의식하면 할수록, 자신의 미학적·지적 진정성을 희생하지 않으면서 정치적으로 행동할 기회가 많아지게 된다”고 적었다. 정치적 편향이 미학적 가치를 훼손시킨다는 일반적 통념과는 정반대로 그러한 편향성이야말로 진정성을 희생시키지 않게끔 한다는 것이 오웰의 주장이다. 그렇다면 그의 정치적 입장이란 무엇인가? 그는 단도직입적으로, 전체주의에 맞서고 자신이 아는 민주적 사회주의를 지지하는 것이라고 말한다.

 

이러한 입장은 영국 북부노동자들의 생활을 취재한 <위건부두로 가는 길>(1937)뿐 아니라 스페인 내전에 대한 르포 <카탈로니아 찬가>(1938)에도 관철된다. 그가 마르크스주의통일노동자당의 의용군으로 스페인 내전에 직접 참전했다가 좌익 내부의 분열을 목격하고 얻은 결론은 사회주의 운동의 재건을 위해선 ‘소련 신화’의 파괴가 무엇보다도 중요하다는 것이었다. 그것이 <동물농장>의 집필 의도였고 <1984>는 그 연장선상에서 쓰인 작품이다.

 

 

 

‘조지 오웰의 디스토피아’란 글에서 로렌스 멀킨은 “소설로서 <1984>는 특별히 훌륭한 것은 아니다. 그것은 소설보다는 우화에 가깝고, 우화보다는 차라리 판타지에 가깝다.”고 평했다(윌리엄 랭어 편, <뉴턴에서 조지 오웰까지>, 푸른역사). 이러한 평가는 한편으론 메시지가 너무도 분명한 작품이 치르는 대가이기도 한데, 작품 속에 등장하는 전체주의 사회체제가 개인의 자유를 위협한다는 주제는 처음 몇 페이지만 읽어도 간파할 수 있다. 하지만 그렇다고 해서 작품의 성취가 반감되는 것은 아니다. 가령 ‘전쟁은 평화, 자유는 예속, 무지는 힘’이라는 슬로건은 과연 오늘의 현실과는 무관한 ‘판타지’에 불과한가? 민간인사찰이 무단으로 이루어지는 나라는 빅브라더에 의해 모든 것이 통제되는 감시사회보다 과연 얼마나 나은 사회인가? 아니 더 근본적인 차원에서 사회구조를 들여다본다면 과연 오늘날과 얼마만큼의 차이가 있는지 의문을 가질 수 있다.  

 

 

<1984>에서 세계는 핵전쟁 이후에 오세아니아, 유라시아, 동아시아라는 초대형 국가로 분할돼 항구적인 전쟁상태에 놓여 있다. 이들 국가 중 두 나라가 연합한다고 해도 다른 한 나라를 정복할 수 없기에 세력 판도가 그대로 유지된다. 이들 국가의 기본적인 특징은 계급사회라는 것이다. 주인공 윈스턴이 속해 있는 오세아니아에서 권력 피라미드의 정점에 절대적 존재로 당을 대신하는 빅브라더가 있고, 그 아래로는 인구의 2퍼센트 미만인 내부당원이 있다. 그리고 그 밑을 국가의 손발 역할을 하는 외부당원이 차지하고 있고, 이들 관료기구가 전체의 15퍼센트를 차지한다. 나머지 전체 인구의 85퍼센트는 ‘노동자’라 불리는 하층계급으로서 소위 ‘벙어리 대중’이다.


그러한 권력구조를 유지하기 위해 지배권력인 당이 감시의 대상으로 삼는 것은 다수를 차지하는 노동자가 아니라 소수의 당원들이다. “노동자들은 무서워할 것이 하나도 없다. 그냥 둬도 그들은 몇 대가 지나도록, 몇 세기가 지나도록 반란을 일으킬 마음이 생기지 않을 뿐만 아니라 세상이 바뀌는 것도 파악할 힘이 없이 일하고 자식을 키우며 죽어가는 것이다.” 반면에 “당원은 태어나면서 죽을 때까지 사상경찰의 시선 안에서 살아간다.”

 

‘진리부’라는 행정관청에서 역사변조를 담당하는 공무원 윈스턴은 외부당원이며, 따라서 그러한 감시하에 놓인다. 그는 당이 강요하는 변조된 진실 너머 역사적 진실이 따로 있다고 믿고 반역을 꾀하지만 체포돼 고문을 받고서 ‘치유된다’. 윈스턴은 너무도 허술하게 반역을 기도하지만 당에 의해서 무자비하게 응징된다. 그가 끔찍한 고문상황에 처하게 되자 연인이었던 줄리아마저 배신하고 결국엔 빅브라더를 사랑하게 된다는 것이 소설의 결말이다.


이러한 음울한 결말이 집필 당시 건강이 악화돼 죽음을 목전에 두고 있던 오웰의 상황을 반영하고 있다는 견해도 있지만, 지식인 계급에 대한 작가 불신과도 무관하지 않다. 하지만 윈스턴은 노동자들에 대한 신뢰와 희망을 놓지 않았다는 점에서는 오웰을 닮았다. 그는 ‘빅브라더 타도’를 은밀히 결심한 이후에 자신이 죽은 목숨이고 궁극적으로 패배할 수밖에 없다는 것을 잘 안다. 그는 다음 세대에 대해서는 아무런 관심도 갖고 있지 않은 줄리아에게 이렇게 말한다. “나는 우리 생전에 뭐 하나 바꿔놓을 수 있다고는 생각 안 해. 그러나 여기저기서 소규모의 저항이 일어나 사람들이 조금씩 떼를 이루고, 점차 불어나 후세에 기록을 몇 가지라도 남기게 되면 우리가 죽은 뒤 다음 세대에서는 수행할 수 있을 테지.”

 

그렇듯 ‘미래는 노동자들의 것’이라는 게 윈스턴의 신념이었다. 과연 오늘날 계급화된 자본주의적 세계질서 속에서 노동하는 다수는 ‘벙어리 대중’인가 아니면 ‘미래의 주인’인가. 그런 질문이 아직 유효하다면 오웰의 <1984>는 ‘오래된 미래’이다.

 

12. 09. 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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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겨레에 실은 '로쟈의 번역서 읽기'를 옮겨놓는다. 조지 오웰의 <1984>에 나오는 한 대목을 다뤘다. 번역본이 많이 나와 내가 갖고 있는 것만 해도 7-8종인데, 가장 많이 읽히는 번역본들을 주로 참고했다. 분량상 에리히 프롬의 말을 말미에 덧붙이지 못했다. "오웰의 작품은 강력한 경고이다. 만약 <1984>를 스탈린주의의 잔학함에 대한 또 다른 묘사로만 해석하고, 그것이 또한 우리에게 의미하는 바를 알지 못한다면 정말 불행한 일이다."

 

 

 

한겨레(12. 09. 08) 무산계급이 잊고 있는 말 ‘다수는 힘이다’

 

조지 오웰의 <1984>를 아주 오랜만에 다시 읽으며 새삼 주목하게 된 것은 지식인에 대한 회의와 노동자에 대한 그의 믿음이다. 주인공 윈스턴은 일기에 “희망이 있다면 그것은 무산계급에만 있다”고 적는다. ‘무산계급’ 대신에 ‘노동자층’이나 ‘프롤’이라고 옮긴 번역본들도 있다. ‘프롤’은 ‘프롤레타리아’에서 온 단어이리라. 그가 사는 가상국가 오세아니아의 인구 85퍼센트를 차지하는 사람들이 바로 프롤이다. 여러 번역용례를 참고하면 윈스턴은 이 ‘피압박 대중’만이, 이 ‘우글거리고 경멸당하는 대중’만이, ‘저 거대한 소외집단’만이 당을 무너뜨릴 수 있다고 믿는다.

전체주의 체제의 오세아니아는 다수의 프롤과 소수의 당원으로 구성돼 있다. 당원은 다시 외부당원과 내부당원으로 구분된다. 외부당원인 윈스턴은 당과 빅브러더의 지배체제에 대한 반란을 꿈꾸지만 성공할 수 있으리라고는 생각지 않는다. 당내 반체제조직인 ‘형제단’이 소문대로 존재한다손 치더라도 철저한 감시시스템 때문에 서로 모이기도, 알아보기도 어려울 것이라고 그는 생각한다. 반면에 무산계급 노동자들은 음모를 꾸밀 필요도 없다. “그냥 들고일어나서 파리 떼를 쫓는 말처럼 몸을 흔들기만 하면 된다.” 왜냐하면 그들은 다수이고 다수는 힘이기 때문이다.

 

 


하지만 문제는 그들이 자신의 힘을 인식하지 못한다는 점이다. 언젠가 윈스턴은 사람들이 북적대는 거리를 지나다가 마치 폭동이라도 일어난 것처럼 수백 명의 여자들이 절규하는 소리를 듣는다. 그는 드디어 반란이 일어난 줄 알고 흥분하지만, 알고 보니 노점상에서 파는 양은냄비를 구하려고 서로 아귀다툼을 벌인 것이었다. 왜 정작 더 중대한 일에는 함성을 지르지 못하는가. “그들은 의식을 가질 때까지는 절대로 반란을 일으키지 않을 것이며, 반란을 일으키게 될 때까지는 의식을 가질 수 없을 것”이라는 게 윈스턴의 잠정결론이다. 무산계급의 반란은 말하자면 ‘가능한 것의 불가능성’이다.

당연하게도 당은 이 점을 아주 잘 알고 있다. “힘든 육체노동, 가정과 아이에 대한 걱정, 이웃과의 사소한 말다툼, 영화, 축구, 맥주, 도박”이 노동자 대중의 유일한 관심사라는 걸 파악하고 있기에 그들을 관리하는 건 어렵지 않다. 정치의식이나 이데올로기를 주입할 필요도 없다. 노동 시간을 늘리거나 배급량을 줄이는 식으로 통제하고 원시적인 애국심을 적당히 이용하는 것으로 충분하다. <1984> 하면 떠올리게 되는 성욕에 대한 엄격한 규제나 텔레스크린을 통한 감시도 노동자들에겐 해당되지 않는다. 치안경찰도 그들에 대해선 간섭하지 않는다. “노동자와 동물은 자유이다”가 아예 당의 슬로건이다.

그렇지만 윈스턴은 노동자에 대한 희망을 버리지 않는다. 아직 생각할 줄 모르더라도 그들은 가슴과 배와 근육에 세계를 뒤엎을 힘을 기르고 있다. 윈스턴은 노래를 부르며 빨래를 널고 있는 튼튼한 아낙네의 모습을 보면서 아름다움을 느끼고 “언젠가는 저 힘센 여자의 배에서 의식을 가진 종족이 태어날 것”이라고 믿는다. ‘불가능한 것의 가능성’은 그렇게 도래할 것이다. 암울한 디스토피아 소설 <1984>에서 읽을 수 있는 유일한 희망이다.

 

12. 09. 0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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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향신문의 '문화와 세상' 꼭지를 옮겨놓는다. 얼마전에 페이퍼에서 다룬 적이 있지만, 슬로 리딩의 힘과 즐거움에 대해서 적었다. 인용된 만델슈탐의 시는 <아무것도 말할 필요가 없다>(문학의숲, 2012)에서 가져왔다.

 

 

 

경향신문(12. 09. 07) 독서, 천천히 깊게 읽는 즐거움

 

초등학교 때의 일로 기억한다. 학교에서 속독법 특강이 있었다. 속독의 필요성과 요령에 대한 내용이었다. 비슷한 때였는지는 모르겠지만 TV프로그램에서도 속독술을 ‘묘기’로 보여주기도 했다. 몇십 초 만에 책 한 권을 다 읽고 질문을 알아맞혔다. 속독술은 진기한 기술이면서 부러운 능력이었다.

한창 책을 많이 읽고 독서에 대한 욕심도 컸기에 <기적의 속독법> 같은 책을 구해서 연습을 해보기도 했다. 안구운동법과 함께 지금도 생각나는 요령은 독서의 단위를 단어에서 문장, 문단으로 점차 확장해나가는 것, 대각선으로 읽어 내려가는 것 등이다. 크게 효과를 보지는 못했다. 연습량 부족이 가장 큰 원인이었겠지만 시집을 읽게 되면서 생각이 달라졌기 때문이기도 하다. 두툼한 소설책이라면 속독이 요긴하겠지만 음미하면서 읽어야 할 얇은 시집을 속독하는 게 무슨 의미가 있겠는가. 속독이 만능은 아니란 생각에 속독에 대한 열의도 좀 시들해졌다. 빨리 읽는 것보다 더 중요한 것은 잘 읽는 것일 테니까.

무엇이 잘 읽는 것인가. 최근에 읽은 한 사례가 인상적이다. 일본인 저자가 쓴 <천천히 깊게 읽는 즐거움>이란 책은 하시모토 다케시라는 한 국어교사 이야기다. 원제는 <기적의 교실>이다. 올해 7월에 100살이 된 하시모토는 인생의 절반 동안 고베 시의 사립 나다중·고등학교에서 아이들에게 국어를 가르쳤다. 이 학교는 굴지의 입시명문고로 유명한데, 1968년엔 도쿄대학 최다 합격자를 배출하기도 했다. 어떤 비결이 있었던 것일까.

놀랍게도 하시모토의 교수법은 아주 단순하면서도 파격적이다. 나카 간스케란 일본 작가의 자전적 소설 <은수저>를 3년 동안 읽는 게 전부였기 때문이다. 교과서가 따로 없었다. 학생들은 교사가 직접 만든 학습교재를 통해서 작품과 관련한 여러 가지 정보를 습득하고 조별로 토론하고 자기 생각을 글로 썼다. 국어가 모든 공부의 기본이고 국어 실력이 살아가는 힘이라는 자신의 지론을 실천하는 방식이 하시모토에게는 ‘슬로 리딩’이었다. “모르는 것 전혀 없이 완전히 이해하는 경지에 이르도록 책 한 권을 철저하게 음미하는” 지독(遲讀)과 미독(味讀)이 바로 슬로 리딩이다.

빨리 읽는 속독이 아니라 느리게 음미하면서 읽는 미독이 아이들의 미래를 바꾸는 가장 효과적인 독서법이었다는 사실은 음미해볼 만하다. <독서법>의 저자이기도 한 사이토 다카시는 이 슬로 리딩에 대해서 ‘걸어서 가는 소풍 같은 것’이라고 평한다. 버스를 타고 휙 지나가버리는 게 아니라 길가에 꽃들에도 눈길을 주어가며 한 발짝 두 발짝 걸음을 옮기는 산책 같은 소풍이 오히려 기억에 오래 남는 것과 마찬가지 이치라는 것이다. “빨리 달리는 사람은 넘어진다”는 셰익스피어의 경구는 독서에도 그대로 적용된다고 할 수 있을까. 물론 읽어야 할 책은 너무 많고, 그 책들을 모두 슬로 리딩으로 읽을 수는 없다. 하지만 슬로 리딩을 통한 배움의 경험이 없다면, 독서는 후딱 지나가버린 인생만큼이나 빈곤할 듯싶다. 독서의 목적이 ‘읽어치우는 것’은 아니잖은가.

대학원 시절에 내가 들은 놀라운 수업 중의 하나는 만델슈탐이라는 러시아 시인의 4행짜리 시 읽기였다. “나무에서 떨어지는 열매의/ 조심스럽고 둔탁한 소리/ 숲 속 깊은 정적의/ 연이어 들려오는 선율 사이로…”가 시의 전문이다. 하지만 이 시에 반영된 시인의 시학을 포함하여 시의 이모저모를 철저하게 읽어나가는 데 세 시간이 넘게 걸렸다. 옆길로 새는 것도 권장한 하시모토식 수업과는 달리 오직 이 한 편의 시에만 집중한 슬로 리딩 강의였다.

진정한 배움은 그런 수업을 통해서 이루어지는 것 아닌가. 우리의 교육현장에서 슬로 리딩, ‘천천히 깊게 읽는 즐거움’을 더 많이 가르치면 좋겠다.

 

12. 09. 0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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