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번주 한겨레의 '로쟈의 번역서 읽기'를 옮겨놓는다. 플라톤의 <향연> 가운데 한 대목을 읽고 있다. <향연>에 대해서는 강의를 진행중이어서 여러 종의 번역본을 들여다보고 있는데, 내가 갖고 있는 것만 해도 7-8종이다. 활달한 대화체의 느낌은 주지 않지만 표준적인 건 정암학당 전집판의 <향연>(이제이북스, 2010)이다.

 

 

 

한겨레(12. 01. 21) 고대 그리스 ‘최고의 사랑’은…동성애라네

 

‘사랑에 관한 철학’이라고 하면 떠오르는 책, 바로 플라톤의 <향연>이다. 플라톤의 작품 가운데 <국가> 다음으로 많이 읽히는 책이라고도 하지만, <국가>의 분량을 고려하면 믿기진 않는다. 번역종수로는 <소크라테스의 변론> 다음으로 많은 것이 <향연>이다. 이래저래 플라톤의 독자라면 두번째로 많이 손에 들 법한 책이다.

<향연>은 아가톤의 집에서 열린 향연 자리에서 일곱명의 연사가 사랑의 신 에로스를 각각 찬양하는 내용으로 돼 있다. 이야기의 정점은 소크라테스의 연설이지만 다른 이야기들도 흥미롭다. 가장 먼저 말문을 연 파이드로스만 봐도 그렇다. 다른 신들과 달리 에로스에 대해선 변변한 찬가조차 없다는 게 평소 그의 불만이었다. 이야기의 주제를 사랑으로 하자는 제안은 그의 발상에서 비롯됐기에 그는 향연에서 ‘이야기의 아버지’라고 호명된다.

파이드로스에 따르면 에로스는 카오스(틈)와 가이아(땅)에 이어서 생겨난 가장 오래된 신으로서 “우리에게 있는 최대로 좋은 것들의 원인”이다. ‘최대로 좋은 것’이란 무엇인가. 물론 ‘사랑’인데, 고대 그리스인들이 생각한 건 특별한 유형의 사랑이었다. “사실 나는, 젊었을 때부터 고결한 연인을 갖는 것, 그리고 그 연인의 사랑을 받는 것보다 더 중요한 것이 있는지 의문이었다네”(박희영 옮김, 문학과지성사)라고 옮길 때는 잘 드러나지 않지만, “어린 사람에게는, 그것도 아주 어렸을 적부터, 자기를 사랑해주는 쓸 만한 사람을 갖는 것보다, 그리고 사랑하는 사람에게는 쓸 만한 소년 애인을 갖는 것보다 더 크게 좋은 어떤 것이 있을지 나로서는 말할 수 없거든”(강철웅 옮김, 이제이북스)이라고 하면 좀 명확해진다.

파이드로스가 말하는 ‘연인’이나 ‘사랑하는 사람’은 모두 남자를 가리키며, 그에게 ‘사랑받는 사람’ 역시 남자다. 다만 사랑받는 사람은 사랑하는 사람보다 나이가 좀 어리기에 ‘소년 애인’이라고 옮겼다. 노골적으로 말하면 ‘사랑하는 사람’은 중년 남자이고, ‘사랑받는 사람’은 미소년이다. 인생에서 최대로 좋은 것이란, 두 남자가 각각 그런 상대를 갖는 것이다. 국가나 군대가 이렇듯 사랑하는 자와 소년 애인으로 구성된다면 아무리 적은 수라 할지라도 모든 사람을 이길 수 있다는 게 파이드로스의 장담이다. 실제로 테베에서는 남성 커플 150쌍으로 이루어져 혁혁한 공을 세운 ‘신성 부대’가 있었다고 한다!

 



이런 사랑의 이상적인 사례가 뜻밖에도 아킬레우스다. 비극시인 아이스퀼로스는 아킬레우스가 파트로클로스를 사랑하고 있다고, 곧 파트로클로스의 ‘연인’이라고 말하지만 엉뚱한 소리라는 게 파이드로스의 주장이다. 호메로스의 <일리아스>에 따르면 아킬레우스는 아직 턱에 수염도 나지 않은 젊은이다. 그러니 ‘사랑하는 자’(에라스테스)가 될 수 없다. 아킬레우스는 ‘사랑받는 자’이다. 영화 <트로이>에서는 아킬레우스(브래드 핏)가 친구인 파트로클로스보다 연장자로 나오지만 실상은 거꾸로라는 얘기다.

그렇다면 에로스적 관계에서는 두 가지 ‘소중히 여김’이 있다. 사랑하는 자가 사랑받는 자를 소중히 여기는 것과 사랑받는 자가 사랑하는 자를 소중히 여기는 것. 그리스의 신들이 더 높이 평가하는 것은 사랑받는 자가 자기를 사랑하는 자를 소중히 여기는 것이다. 아킬레우스가 자기를 사랑하는 자 파트로클로스의 복수에 나선 것은 그래서 높이 칭송된다고 파이드로스는 말한다. 제법 흥미로운가? 그렇다면 <향연>의 나머지 이야기들에도 귀 기울여볼 수 있겠다. 그리스의 속담을 약간 비틀면, 훌륭한 사람은 초대장이 없이도 향연에 참석할 수 있다.

 

12. 01. 21.

 

P.S. 고대 그리스에선 동성애가 사랑의 모델이었다는 사실은 상식에 속하기에 사실 칼럼의 초점은 다른 곳에 있다. 아킬레우스와 파트로클로스의 관계를 정확하게 옮기는 게 중요하다는 점. 이제이북스판에서는 "한데 아킬레우스가 파트로클로스를 사랑하고 있다고 말한 아이스퀼로스는 엉뚱한 말을 하고 있는 것이네"라고 옮겼는데, 원문을 그대로 옮긴 것이라고 해도 "아킬레우스가 파트로클로스를 사랑하고 있다"가 "아킬레우스가 파트로클로스의 에라스테스(사랑하는 자)라는 말이다"라고 각주에 설명돼 있지 않다면 모호하게 읽혔을 것이다. 두 사람은 소위 말해 에로스적 관계이지만 대등하진 않다. 고대 그리스에선 '사랑하는 자'와 '사랑받는 자'가 엄격하게 구분돼 있었기 때문이다. 수염이 안 난 아킬레우스는 사랑받는 자이기 때문에 '파트로클로스를 사랑하고 있다'고 한 아이스퀼로스는 잘못 말한 것이라는 게  파이드로스의 주장이다.

 

 

 

손에 잡히는 대로 더 살펴보면, 안티쿠스판에서도 그냥 "아이스퀼로스는 아킬레우스가 (...) 파트로클로스를 사랑했다는 터무니없는 말을 하네"라고만 옮기고 있는데, '사랑했다'는 말의 의미를 설명해주지 않는다면 독자로선 둘의 관계가 헷갈릴 수 있다. 지만지판에서는 "그런데 아이스킬로스가 아킬레우스를 파트로클로스의 연인으로 묘사한 것은 엉뚱한 이야기입니다"라고 옮겼는데, 그래서 '아킬레우스는 파트로클로스의 연인이 아니다'라고 정리하게 되면 우리말로는 이해가 되지 않는다. 문예출판사판에서 "그런데 아이스킬로스가 아킬레우스를 파트로클로스의 애인이라고 말한 것은 아주 잘못입니다"라고 한 것도 마찬가지다. 아주 잘못은 아니더라도, 잘못된 번역이라는 생각이다. 뜻이 제대로 전달되지 않으니 말이다. 다른 번역본으로 읽을 때도 유의해서 보시길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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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향신문에 실은 '문화와세상' 칼럼을 옮겨놓는다. 어제 안팎으로 어수선한 분위기에서 마땅한 아이디어를 떠올리지 못해 최악으로 보낸 지각원고다. 자기 글을 블로그에 게시하는 건에 대해서는 오늘 오전에 알라딘측에서 회신이 왔다.

저작권법을 조사해보니, 본인이 직접 작성하여 기고한 신문 기사의 경우, 별도의 신문사 허락을 받지 않고도, 자신의 블로그에 전문을 올려도 괜찮다고 합니다.(원고료를 받는다고 해서, 그 저작권이 신문사로 가는 것은 아니라고 합니다) 따라서, 저희가 잘 모르고, 로쟈님이 직접 기고하신 글을 브라인드 처리하고 메일을 드린 것 같습니다. 정중히 사과드립니다.

이 경우는 내가 갖고 있던 상식이 법과 상충하지 않아서 다행이다. 여하튼 그래서 여러 매체에 기고한 글들에 대해서는 이 서재에 계속 공개해놓는다.

 

 

 

경향신문(12. 01. 20) ‘노블레스 오블리주’가 없는 나라

 

새해를 맞아 조선사에 관한 책들을 읽고 있다. ‘조선을 지배한 엘리트, 선비의 두 얼굴’을 다시 보자고 제안하는 계승범 교수의 <우리가 아는 선비는 없다>를 읽은 것이 계기다. 알다시피 1392년에 개국한 조선은 200년 뒤인 1592년 최대의 국난을 맞이한다. 임진왜란이다. 일본의 갑작스러운 침입으로 시작된 전쟁이지만 아무런 대응태세도 갖추지 못한 조선의 문제는 무엇이었던가. 국사시간에 미처 배우지 못한, 혹시나 배웠더라도 지금은 다 잊은 조선의 군역제에 대해서 다시 배운다.

조선 초인 15세기만 하더라도 군역은 의무인 동시에 권리였다고 한다. 군역에 종사하는 장정들에게 국가에서 일정한 반대급부를 지급했기 때문이다. 일부 토지도 지급하고 보인(保人)도 붙여서 군역에 따른 경비를 지원했다. 이 때문에 군역의 의무를 지는 군호(軍戶)는 대개 양반이거나 경제력이 있는 상민들이었고, 경제력이 따르지 않는 상민은 보인으로만 편성됐다. 즉 아무나 군역에 종사할 수 있었던 게 아니라 자격이 있어야 했던 것이다.

 

그러나 16세기에 접어들면서 군역은 권리는 줄고 의무만 느는 쪽으로 변질됐다. 의무만 있다 보니 자연스레 군역 기피 현상이 나타났다. 그래서 16세기 중반에는 15만 군호가 대부분 하층민으로만 채워졌다. 양반이나 상층 상민은 다 빠져나간 것이다. 그렇듯 군역이 문란해지니 국력이 취약해지는 것은 당연지사다. 믿기지 않는 일이지만, 임진왜란 전 16세기 말에 이르면 군역 대상자의 총수가 4만7820명이고, 그중 정예병은 7920명에 지나지 않았다고 한다. 그 정도의 관군밖에 없었으니 약 20만명에 이르는 일본군을 당해낼 재간이 없었을 것이다. 부산에 상륙한 지 18일 만에 서울을 함락하고 평양까지 치고 올라왔던 사실은 우리가 잘 아는 바다.

놀라운 것은 초유의 국난을 경험한 뒤에도 양반의 군역은 부활되지 않았다는 점이다. 다시금 양반도 군복무를 해야 한다고 주장한 선비가 단 한 명도 없었다. 물론 무엇이 문제인지는 다들 알고 있었다. 사족(士族)도 군역을 지고 노비는 농민으로 전환하는 것이 문제의 해결책이었다. 하지만 지배층 선비들은 자기들의 특권(군역면제)과 재산(노비)을 포기하려고 하지 않았다. 이순신의 활약으로 비록 7년간의 전쟁을 승리로 이끌었다고 하지만 조선의 국방은 개선된 게 전혀 없었다. 그럼에도 조선이 왜란과 호란을 거친 이후에 200년이 넘게 평화를 유지할 수 있었던 건 청제국의 질서 속에 편입됐기 때문이라는 평가다. 후일 청나라가 청일전쟁에서 패배한 이후에 조선의 주권이 일본에 넘어가기까지는 불과 십수년이 걸렸을 뿐이다.

이러한 역사를 돌이켜보면서 계승범 교수는 “선비가 건설한 조선은 ‘노블레스 오블리주’가 전혀 없는 나라였다”고 꼬집는다. 더불어 오늘날에도 한국 사회의 소위 ‘지도층’ 자제들의 병역면제 비율이 전체 평균보다 다섯 배나 높다는 통계에 대한 언급도 잊지 않는다. 실상 출범 초부터 유난히 병역면제자가 많았던 이명박 정부가 임기 마지막 해에 접어들면서 각종 비리 게이트에 연루되고 있다.

그중 외교통상부와 총리실 직원들이 카메룬의 다이아몬드 광산 개발권을 등에 업은 씨앤케이 주가조작 사건과 관련해 막대한 시세차익을 얻었다는 ‘다이아 게이트’는 현 정부는 물론 대한민국 엘리트들의 참담한 도덕 수준을 다시금 직시하도록 해준다. ‘우리가 아는 정부는 없다’고 해야 할까.

권력을 가진 자들이 특권만을 고집하고 사익에만 열을 올리는 세태는 과연 언제쯤 사라질 수 있을까. 임진왜란이 일어난 지 400년도 더 지났지만 여전히 우리는 아무런 교훈도 얻지 못하고 있는 것은 아닐까. 임진년 한 해 동안 고민해볼 일이다.

 

12. 01. 20.

 

 

 

P.S. 계승범의 <우리가 아는 선비는 없다>는 조선사 전체를 다시 보는 신랄한 문제의식과 함께 유익한 시사점을 던져주는 책이다('어쨌든'이란 말이 너무 자주 등장하는 게 옥에 티다). 그래서 <조선시대 해외파병과 한중관계>(푸른역사, 2009)와 <정지된 시간>(서강대출판부, 2011)도 읽어볼 생각을 하게 됐다. <우리가 아는 선비는 없다>와 같이 읽은 책은 김연수의 <조선 지식인의 위선>(앨피, 2011)이다. 사림의 등장 이후 조선 후기사에 대한 서술로 명쾌하다. 학계의 '주류적인' 시각이 궁금해서 읽고 있는 책은 이성무 한국역사문화연구원장의 <조선시대 당쟁사1,2>(아름다운날, 2007)이다. 이이화, 강만길, 이덕일의 책들도 좋은 참고가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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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번주 주간경향(960호)에 실은 북리뷰를 옮겨놓는다. 내주에 연휴가 껴서 합본호로 나왔다. 다룬 책은 김용진의 <그들은 아는, 우리만 모르는>(개마고원, 2012). '위키리크스가 발가벗긴 대한민국의 알몸'이란 부제가 내용을 말해주며 이미 마이리스트로 만들어놓은 바 있다. 결코 행복한 독서경험은 아니었지만, '의무감'으로 읽은 책이다. 우리가 더 많이 알고 행동하지 않는다면 저들 또한 달라지지 않을 것이기에...

 

 

주간경향(12. 01. 31) 위키리크스가 벗긴 대한민국의 알몸

 

“역사가에게는 꿈이고 외교관에게는 악몽이다.” 위키리크스의 폭로에 대한 영국 역사학자의 평이다. 2010년 4월 5일 미군 아파치 헬기가 아프간 민간인을 살상한 장면이 담긴 비디오를 공개함으로써 시작된 위키리크스의 충격적인 폭로는 그해 가을 미국 국무부가 해외공관과 주고받은 비밀문서 공개를 통해 절정에 도달했다. 이 외교문서 전문 25만1287건이 2011년 9월 1일까지 모두 인터넷 사이트에 올려졌다. 특정기간에 생산된 미국 외교전문에 한정된 것이라도 거의 완벽한 정보 민주화를 이뤘다는 평가다. 위키리크스가 제공한 이 ‘정보 대홍수’가 우리에게 갖는 의미는 무엇일까. 우리는 어떤 정보를 건질 수 있을까.


막상 공개는 됐지만 너무도 방대한 분량인지라 어떤 정보가 얼마만큼 공개돼 있는지 파악하는 데만도 전문가적 손길이 필요한데, KBS의 탐사보도팀장을 역임한 김용진 기자가 팔을 걷어붙이고 나섰다. <그들은 아는, 우리만 모르는>(개마고원, 2012)은 미국 외교전문에 나타난 대한민국의 실상과 치부를 고스란히 까발려주는 그 탐사 보고서다. 먼저 현황이다. 위키리크스 공개문서 가운데 ‘KOREA’라는 단어가 한번이라도 들어간 문서는 모두 1만4165건이고, 주한 미대사관의 전문은 주로 2006년부터 2011년 사이에 작성된 1980건이다. 미 국무부의 부처간 정보공유 네트워크에 올라온 문서였는지라 이 1980건에 1급비밀은 들어 있지 않지만 2급비밀 123건, 3급비밀 971건이 포함돼 있다.   


이미 일부내용은 국내에서 화제가 된 적이 있다. 촛불시위 당시 대통령의 형 이상득 의원이 미국대사관측에 도움을 청하면서 “이명박 대통령은 뼛속까지 친미, 친일”이라고 말한 대목이다. 미국 쪽의 시각은 어땠을까? 2008년 2월 당시 버시바우 대사가 방한을 앞둔 라이스 국무장관에게 보낸 보고서에는 “본능적으로 미국에 이끌리는 대통령과 행정부”란 표현이 등장한다. 다른 문서에서도 “청와대에 있는 친미 대통령”이란 문구처럼 ‘친미적인’이란 수식어가 여러 차례 나오며, 심지어는 “매우 친미적인 대통령”이라고도 지칭된다. 저자의 검색에 따르면 지난 10년간 전 세계 미국 대사관에서 작성한 수십만 건의 외교전문에서 “매우 친미적인 대통령”이라고 표현된 유일한 이가 이명박이다. 외교수사학적 관점에서 보자면 최고의 대우를 받은 셈인데, 물론 이런 호의적인 평가가 근거 없이 나온 것은 아니다. 2008년 때는 쇠고기 시장을 개방했고, 2011년 오바마 대통령의 환대를 받고 와서는 한미FTA를 날치기로 강행 처리했다. 미국으로선 “매우 친미적인 대통령”에 대한 ‘융숭한’ 대접을 마다할 이유가 없다.


한국의 대통령과 정부 관료들의 친미적 태도가 혹 우리의 국익을 고려한 의도적인 전략의 산물은 아닐까. 국민으로선 나라의 위신을 생각해서라도 그렇게 믿고 싶지만, 한미동맹의 파트너인 미국의 시각과 판단은 냉정하다. MB에 대한 지지가 미국의 국익에 부합한다고 보면서 2009년 11월 스티븐스 대사는 오바마 대통령에게 이런 전문을 보냈다. “이 대통령은 본능적으로 미국과 관련된 거의 모든 이슈에 대해서 미국을 지지하려고 하지만, 동시에 미국의 요구를 단순히 따르지는 않는다는 것을 명확하게 하려 한다.” 좀 특이한가? 미국대사관의 판단도 그런 듯하다. 2008년 SMA(한미방위비분담협정)에 앞서 미국 국방장관에게 보낸 정세보고서에서는 “우리는 미국의 이익에 너무 부응하는 것처럼 비쳐지는 것을 정치적으로 겁내는 친미 정권을 상대하고 있다”고 말한다. 한국 정부가 미국 입장에 우호적이긴 하지만 겉으로는 그렇게 내비치길 원하지 않으므로 그런 사정을 잘 고려해야 한다는 뜻이다.

 

한국의 협상 대표들이 협상장에서는 미국의 압력에 대해서 맞서는 듯한 포즈를 취하지만 “이것은 부분적으로는 쇼를 위한 것”이란 점을 미국은 정확히 파악하고 있다. 한미FTA 재협상 여부를 놓고 논란이 벌어졌을 때에도 한국 정부의 공식입장은 ‘재협상 불가’였지만 그 이면에서는 지나치게 양보했다는 인상만 피할 수 있게 해달라는 게 한국 정부의 주문이었다. 이런 것이 위키리크스가 발가벗긴 ‘대한민국의 알몸’이라면 악몽은 외교관들만의 것이 아니다.

12. 01. 18.

 

 

 

P.S. 위키리크스 관련서로 더 참고하기 위해 <투명성의 시대>(샘터사, 2011)와 <위키리크스, 비밀의 종말>(북폴리오, 2011)을 더 구입했다. 최근에 나온 책으로는 프랑스의 사르코지를 지칭하는 <부자들의 대통령>(프리뷰, 2012)이 '매우 친미적인 대통령'을 이해하는 데 요긴한 책이 아닌가 싶다. 너무 닮았기 때문이다.

2007년 프랑스와 한국에 부자들의 대통령이 탄생했다. 사르코지와 이명박. 두 사람은 후보시절 자국의 국민들에게 부자가 되게 해 주겠다고 약속했다. 그들이 부자가 되기 위해 거쳐 간 길로 국민들을 인도해 줄지 모른다는 기대감. 그들의 삶의 맥락이 지니는 유난스런 박진감은 사람들로 하여금 도박을 걸게 했다. 그러나 그들이 한 약속 속에 주어가 분명하지 않았다는 사실을 사람들이 깨닫는 데는 긴 시간이 필요하지 않았다. 이미 부자였던 극소수의 사람들이 더 큰 부자가 되었지만 나머지 사람들의 상황은 심각하게 악화되어 간 것이다.

민주주의 선진국이라는 프랑스와 이런 쪽으로라도 어깨를 나란히 하다니 자부심을 가질 만한가?! 다시 똑같이 대선을 치르게 되는 올해 두 나라 국민의 선택이 궁금해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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간행물윤리위원회의 소식지 책&(402호)에 실은 '로쟈의 주제별 도서소개'를 옮겨놓는다. 아마도 올해까지 연재하게 될 듯싶다. 이달의 주제는 '조선의 왕'이다. 보지는 못했지만 드라마 <뿌리 깊은 나무>의 인기를 고려해서 고른 주제다.

 

 

 

책&(12년 1월호) 조선의 왕과 왕실

 

세종의 한글창제 과정을 다룬 드라마 <뿌리 깊은 나무>가 안방극장에 열풍을 몰고 오면서 세종의 리더십에 대한 관심이 커지고 있다. 조선왕조 최고의 성군(聖君)으로 평가되니 남다른 주목을 받을 만하다. 그런 관심을 아예 ‘조선의 왕’으로 확장해보면 어떨까. 물론 TV사극에서 단골로 다루는 인물이 조선의 국왕들이기에 그들의 일상사와 말투까지도 친숙한 느낌을 준다. 하지만 의외로 역사학자들의 관심에서는 좀 벗어나 있었다. 왜일까.


한국학중앙연구원의 ‘왕실문화총서’로 출간된 <조선의 왕으로 살아가기>(돌베개, 2011)를 통해서 사정을 짐작해볼 수 있다. 한마디로 정리하기는 어렵지만, 일단 근대화에 실패한 왕조의 군주라는 인식이 조선의 왕과 왕권에 대한 부정적인 인식을 초래했다는 지적이다. 덧붙여 중국을 비롯한 동아시아 사회에 대한 서양인들의 편견도 조선왕조의 역사와 문화에 대한 해석에 장애가 되어왔다. 최근 들어 조선 왕실과 왕실문화에 대한 다각적인 조명이 이루어지고 있는 것은 그러한 부정적 인식과 해석상의 장애로부터 한결 자유로워졌다는 뜻도 된다. 게다가 왕실 도서관 소장 자료의 영인과 해제, 연구가 활발히 진행됨에 따라 연구 환경이 좋아진 것도 앞으로 넓은 시야에서의 깊이 있는 연구를 가능케 할 전망이다.


조선 왕은 어떤 존재였는가에 대한 전반적인 소개서로서 <조선 왕으로 살아가기>는 국왕의 하루일과에서 사생활에 이르기까지, 그들의 문학적 세계와 건강관리법까지 두루 다루고 있어서 길잡이로 요긴하다. 조선의 국왕, 과연 그들은 누구인가. 조선왕조 500여 년 동안 재위했던 국왕 27명의 평균수명은 47세였으며, 평균 재위기간은 약 19년이었다. 평균 재위기간이 고려 때보다 5년 정도 길며 이것은 그만큼 왕권이 상대적으로 안정돼 있었다는 의미가 된다. 가장 오랫동안 왕위에 있었던 이는 52년간 재위했던 영조이며, 숙종, 고종, 선조, 중종, 순조, 세종 등도 30년 이상 권좌에 있었던 왕들이다. 보통 재위기간이 길수록 왕권이 탄탄했다.

 

권력이 모두 집중된 만큼 왕의 업무는 과중했는데, 일과는 아침, 낮, 저녁, 밤의 네 단계로 구분됐다. 웃어른에 대한 문안인사와 경연, 그리고 아침식사 후의 조회가 오전의 일과라면 점심식사 후에는 다시 경연으로 시작하여 지방행정에 관한 보고를 받거나 민원을 해결하는 등의 업무를 보게 되며 대략 5시경에 종결된다. 하지만 공식 업무 후에도 다시 경연이 이어지며 저녁을 먹은 후에는 낮 시간에 미뤄둔 업무를 마저 보기도 했다. 이를테면 국왕의 야근이다. 촘촘하기로는 연간 일정도 마찬가지여서 왕은 정월 초하루부터 24절기에 맞춰 많은 일과 행사를 주관해야 했다. 물론 유교적 예치(禮治)를 표방한 국가였기에 조선에서 가장 중요한 행사는 제사였고, 왕의 1년은 제사로 시작해서 제사로 끝났다.

 

 


규장각한국학연구원에서 엮은 <조선 국왕의 일생>(글항아리, 2009)은 말 그대로 조선 국왕의 일생에 대한 주제별 스케치이다. 초점 가운데 하나는 절대권력자인 왕의 권한을 어떻게 통제했느냐이다. ‘종신직’으로서 국왕은 국가의 운명과 직결되는 존재였기에 훌륭한 왕이 되게끔 하는 것이 무엇보다도 중요했다. 왕을 규제하는 수단으로 조선의 지식인들이 마련한 것이 ‘기록’과 ‘교육’이다. <조선왕조실록> 같은 국가 기록을 통해 국왕의 행적을 상세히 기록했고, 정상적인 국왕이라면 이를 의식해 자신의 말과 행동을 조심하는 수밖에 없었다. 또한 국왕은 왕세자로 책봉되고 국왕에 오르기까지 각종 교육과정을 거쳤고 왕위에 오른 뒤에는 경연에 참석해야 했다. 연산군처럼 경연을 폐지한 경우가 아니라면 경연을 게을리 할 수 없었다. 경연이란 왕이 유가의 경전과 중국‧우리나라의 역대 역사를 공부하는 자리로서, ‘경연에 관한 모든 것’은 김태완의 <경연, 왕의 공부>(역사비평사, 2011)를 참고할 수 있다.


당연한 말이지만 왕에게 건강은 공부만큼 중요했다. 유학에서 사후에 강제적인 수단을 동원하는 법치보다 사전에 다스리는 덕치를 더 우선시했던 것과 마찬가지로 질병에 대한 사후 처치로서의 약치(藥治)보다 더 나은 것은 미리 예방하는 식치(食治)였다. 평소에 먹는 음식을 통해서 건강을 지키고자 한 것으로 조선의 왕실은 다양한 종류와 죽과 차를 대표적인 식치 음식으로 갖고 있었다. 물론 그렇다고 하여 조선의 왕들이 모두 무병장수한 것은 결코 아니다.


함규진의 <왕의 밥상>(21세기북스, 2010)은 ‘밥상으로 읽는 조선왕조사’를 가지런하게 보여주는데, 흥미롭게도 세종은 왕실의 식치가 별로 효과를 거두지 못한 경우였다. 운동은 게을리 하면서 밥상머리에서도 책을 손에서 놓지 않는 공부벌레였던 까닭에 재위 초년의 세종은 보기 거북할 정도로 뚱뚱했으며 서른 즈음부터는 당뇨와 합병증에 시달렸다. 고기반찬만 좋아하고 절식과 폭식을 반복했던 식습관도 ‘성군’의 이미지와는 얼핏 맞지 않는다. 하지만 세종은 궁궐 법주(法酒)에 들어갈 노루 뼈를 위해 사냥에 나섰던 사람이 멧돼지에게 받혀 죽었다는 얘기를 듣고 다시는 술에 노루 뼈를 넣지 말라고 지시한 성군다운 일화도 남기고 있다.

12. 01. 14.

 

 

 

P.S. 왕정국가였던 만큼 조선은 왕이 통치하는 국가였지만 선비들의 강한 견제를 받았기에 실제로는 왕권이 그다지 강력하진 않았던 것으로 평가된다. 그런 관점에서 '조선을 지배한 엘리트', 곧 선비들에도 관심을 가게 되는데, 어제부터 읽고 있는 계승범의 <우리가 아는 선비는 없다>(역사의아침, 2011)가 개관으로 유용하다. 가령 직언을 마다하지 않는 신하를 뜻하는 <직신>(리드잇, 2012)이 조선 선비의 긍정적인 면을 부각시켜준다면 <우리가 아는 선비는 없다>는 조선 사회의 '독점적 지배층이자 유일한 지식인 계층'으로서 선비의 전체상을 봐야 한다고 주장한다. 제목이 암시하는 바대로 저자의 결론은 사뭇 부정적이다. 김연수의 <조선 지식인의 위선>(앨피, 2011)도 같은 맥락에서 읽어보면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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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독가들의 독서법을 소개하는 기사를 옮겨놓는다. '다독가'로 호명돼 오전에 전화인터뷰에 응한 바 있는데, 장석주 시인, 김도언 소설가의 독서법과 함께 기사화됐다. 로쟈식 독서법은 '초병렬 독서법'으로 정리됐다.

 

 

한국일보(12. 01. 11) 책, 어떻게 읽을까… 다독가들에게 들어보는 독서법

 

새해맞이 연례행사인 '올해의 목표' 정하기. 여기에 금연, 운동, 다이어트와 함께 빠지지 않고 등장하는 것이 독서다. 하지만 생활 계획이란 것이 으레 작심삼일의 관행을 비켜가기 힘들 듯이, 책 읽기를 습관화하는 것 역시 쉽지 않다. 책을 읽고 쓰고 기획하는 게 직업인 다독가 3명에게 독서 방법을 물었다. 책을 꾸준히 체계적으로 읽는 비법, 그리고 생활과 업무에 응용하는 방법을 소개한다.

마인드 맵을 그려라
장석주 시인 "키워드를 정해 읽으면 책의 내용 명료해져"


시인이자 문학평론가인 장석주씨는 다독가, 장서가로도 잘 알려져 있다. 매일 새벽 4시에 일어나 정오까지 원고를 쓰고 오후에는 책 읽고 저녁에는 개인적인 일을 처리한다. 종일 책을 읽고 생각하고 글을 쓰는 그의 일상은 마치 수도승 같다. 몇 년 전 경기 안성에 서재 '수졸재'를 지어 2만 5,000여권의 책을 보관하고 있는데 요즘도 한해 평균 1,500권 가량의 책을 산다.

 


장씨는 "보통 사람보다 빨리 읽는 편이지만, 속독을 배운 적은 없다"고 말했다. "책을 읽을 때 집중력이 좋은 편이에요. 보통 독자들이 책 읽을 때 집중하는 시간은 10분 내외로 짧습니다. 그래서 앞의 내용을 자꾸 들춰보게 되죠. 저는 3시간 정도는 집중할 수 있어요."

장씨의 독서법은 '머릿속에 마인드맵 그리기'다. 쉽게 말해 책의 중요한 키워드를 몇 가지 정해 이를 중심으로 책의 내용을 그때그때 정리해가며 읽는 방법이다. 그는 "책을 읽기 시작하면 우선 직육면체 입체 공간을 머리에 떠올린다. 이 공간에 책의 주요 키워드를 배치한다. 그리고 각각의 키워드가 어떻게 상호 연결되는가를 유념하면서 읽는다"고 말했다. 그는 최근 읽은 이수영의 <명랑철학>을 예로 들며 원한, 가책, 위계, 거짓, 사유, 긍정 같은 키워드를 머릿속에 그리면서 읽었다고 설명했다. 이 독서법의 장점은 책 내용이 명료하게 정리되고, 저자의 생각과 자신의 생각을 비교할 수 있다는 점이다.

초보자가 장씨의 독서법을 무턱대고 따라 하기는 어렵다. 그는 "다독가가 되려면 우선 무조건 책 읽는 시간부터 내라"고 조언했다. "다른 취미 생활 중 하나를 빼고서라도 책 읽을 시간을 내야 합니다. 그리고 책을 꼭 사서 읽으세요. 돈 주고 산 책은 언젠가는 읽습니다. 서평집이나 일간지 북 섹션, 서평기사 등을 조금만 관심 있게 보면 책 고르는 안목을 키울 수 있습니다."

 



초병렬 독서
이현우 한림대 연구교수 "여러 책을 한꺼번에… 이해 쉬워 시너지 효과"


'인터넷 서평꾼 로쟈'로 알려진 이현우 한림대 연구교수 역시 손 꼽히는 다독가, 장서가다. 전공인 러시아문학 외에도 들뢰즈, 지젝, 랑시에르 등 해외 유명학자들의 국내 번역본에 관해 가장 먼저 서평을 올리는 것으로도 유명하다. 그의 장서는 대략 1만5,000권 가량. 여러 매체에 서평을 기고하며 받은 신간을 제외하고 지난해에만 2,000만원어치 책을 사 읽었다.

이씨의 독서법은 이른바 '초병렬 독서법'이다. 일본 저술가 나루케 마코토의 <책, 열 권을 동시에 읽어라>에 소개된 독서법으로 일정 기간을 정해 문학, 경영학, 과학, 평전, 예술, 역사 등 다른 장르의 책들을 동시에 읽는 것을 말한다. 그가 이 방법을 택한 이유는 사실 일 때문이다. "글 쓰기와 학교 강의를 병행하다 보니 한꺼번에 여러 권의 책을 읽을 수밖에 없다"고 말했다.

이씨가 지난주 읽은 책은 ▦플라톤 <향연>의 국내 번역본 7,8종 ▦잭 구디, 에이사 브릭스 등이 쓴 <탐사> ▦레이철 홈스의 <사르키 바트만>과 탈식민주의 이론서 5,6종 ▦앤서니 기든스의 <현대사회의 성, 사랑, 에로티시즘>을 비롯한 사랑에 관한 인문학 이론서 5,6종 ▦모리스 고들리에의 <증여의 수수께끼>와 관련 사회학 이론서 5,6종 ▦브루스 커밍스의 신작 <바다에서 바다로>와 커밍스의 이전 저작 2,3종 등이다. 대부분은 강의와 집필에 필요한 부분을 발췌해서 읽고, 처음부터 끝까지 통독한 책은 서너 권이다. 번역서는 원서와 함께 보는 것이 원칙이다.

 

 

이씨는 "여러 책들을 동시에 읽음으로써 시너지 효과를 얻는다"고 말했다. 어떤 책에서는 잘 와 닿지 않던 내용이 비슷한 시기에 쓰인 다른 분야 책을 읽으면서 이해가 될 때가 있다. 그는 "사상서는 해당 저자의 책을 한 권만 제대로 읽으면 다음 책은 쉽게 읽을 수 있다. 선입견을 버리고 읽으라"고 조언하기도 했다. "사실 다독이 중요하지는 않습니다. 초등학생은 많이 읽는 게 도움되겠지만, 어느 정도 독서 경험이 있는 독자라면 읽은 내용을 자기 것으로 만드는 게 중요하죠. 책을 노예처럼 부려먹으세요. 어느 선까지 저자를 이해하고 새로운 지식을 습득하고 나면, 이후에는 자기 생각을 발전시키는데 이용하면 됩니다."

 



테마를 정하라
김도언 열림원 편집장 "사상·역사 배경별 묶어 독서… 메모·노트 병행"


출판?열림원 편집장이자 소설가인 김도언씨는 10여년 간 잡지사와 출판사에서 일하며 작품을 써왔다. 독서와 집필이 일인 셈인데, 업무 외에 읽는 책은 한 달 평균 10권 가량이다. 2004년부터 쓴 독서노트를 모아 재작년 서평집 <불안의 황홀>을 냈을 정도로 꼼꼼한 독서를 자랑한다.

 


김씨의 독서법은 '테마 읽기'다. 그는 "테마를 정해서 관련 책들을 찾아 한꺼번에 읽는다. 19세기 유럽의 정신과 지적 분위기를 다룬 소설, 17세기 고전주의 저서, 20세기 일본의 중간문학, 이런 식으로 어떤 주제를 정해 이와 얽힌 저작을 찾아서 읽는다"고 말했다. "모든 저작물은 역사의 산물이라고 생각해요. 책 읽기 전 저자가 살던 시대 분위기와 사상적 조류, 책이 쓰인 역사적 배경, 지적 풍토를 면밀하게 파악하고, 그런 콘텍스트(맥락)를 함께 짚으면서 책을 읽습니다."

김씨는 또 책을 읽으면서 꼭 메모를 한다. 예를 들어 다자이 오사무의 소설을 볼 때 일본의 1950년대 정치상황을 함께 살펴가며 읽고, 상호 영향 받은 부분을 메모하는 식이다. 중요하다고 생각하는 문장은 두세 번씩 반복해 읽고, 다 읽고 나면 독서노트를 쓴다. 그는 "인상적인 책을 읽을 때 내가 느끼고 교감한 것, 의문이 든 점 등을 정리하는 습관이 있다. 그렇게 해야 책이 온전히 내 것으로 흡수될 수 있다"고 말했다. 독서노트는 업무에 여러모로 도움을 준다. 테마로 묶어 읽은 책들을 머릿속에 한 장의 지도처럼 그리면서, 앞으로 할 업무의 방향을 잡고 읽어야 할 책들을 가늠해 본다고.

김씨는 "독자들이 자신의 독서 수준을 의식적으로 높이려고 시도했으면 좋겠다"고 말했다. "보통 독자들이 자신의 독서 수준을 미리 낮추어 잡고 어렵다고 생각되는 책을 아예 읽지 않으려고 해요. 자신을 과소평가하지 말고, 일부러라도 어려운 인문서나 고전을 읽었으면 해요. 어렵다고 생각했던 책과 교감하는 순간, 더 이상 책 읽기가 괴롭지 않게 될 겁니다."(이윤주기자)

 

12. 01. 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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