겨울나기 - 2004 공쿠르 단편문학상 수상작
올리비에 아당 지음, 함유선 옮김 / 샘터사 / 2005년 12월
평점 :
절판


나는 텔레비전을 보면서 포도주 한 병을 비웠다. 얼핏, 슬픔은 언제까지나 계속될 것이다라는 문장이 귀에 스쳤다.( 중략 ) 그의 모든 얘기가 내 마음을 흔들어 놓았고, 하찮은 말 한마디에도 나는 감동을 받고 있었다. 그런 모습을 바라보면서 나는 죽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다. 아름다운 것을 보면 나는 언제나 죽고 싶은 마음이 들고, 설명하기 힘든 극도의 허약함에 빠진다. (16pg)

아홉개의 단편은 각기 다른 주인공들의 이야기들이지만, 한 사람의 이야기로만 들린다. 몹시 지쳐빠진 어떤 사람. 그 사람은 일에도, 사람에도, 가족에도, 흘러가는 하루하루에도 온통 지쳐버리고 기력없다.
어느 한국 영화의 대사처럼  '겨울이 가면 봄이 오더라구요.' 는 없다. 겨울이 가면 봄이 올 것을 알지만, '인생의 겨울' 다음에 '인생의 봄'이 쉽게 와줄까?

지쳤다는건, 힘들다, 아프다, 는 것과는 다르다. 더 깊고, 우울하고, 원초적이고, 끈적끈적하며, 헤어날 수 없는 (적어도 그렇게 보이는) 상태이다. 그와 같은 '지쳐버림'은 스치고 지나갈때도 있지만, 정통으로 맞을 때는 정말 어찌 할 바를 모르게 되버리고 만다.

이 책 속에서 지친 그들을 만나는 것은 참으로 지치는 일이어서,
특히나 마구 행복해지고 싶은 지금의 마음상태로는 좀 과하게 힘이 드는 일이어서,
거 참 좋지 않은 타이밍이네. 하며, 작고 얇은 회색의 책을 어렵게, 어렵게 내려 놓고 만다.

절망도, 사랑도 못하는 열정이 고갈된 지쳐버린 이야기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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moonnight 2006-02-09 10:57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하이드님 페이퍼 읽고 저도 이 책 샀답니다. 매우 쓸쓸해보여서, 맘에 들었어요. 맞아요. 지쳤다는 건 힘들다. 아프다. 하는 것보다 더 바닥을 치는 의미같아요. 휴일에 집에 들어앉아 한껏 우울해하며 읽고 싶네요. ^^

하이드 2006-02-09 16:24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정말요. 이불 뒤집어쓰고, 커피 홀짝이며,
 
철도원
아사다 지로 지음, 양윤옥 옮김 / 문학동네 / 1999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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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책 '철도원'을 묘사하는 가장 맘에 드는 글귀는 산케이 신문에 났던 글이다.
'철도원'에는 줄곧 눈이 내리고 있다. 혹은 문장 뒤켠에서 눈을 느낄 수 있다. 그 추위는, 인생의 그것과도 비슷하다.

영화 철도원을 먼저 보고, 책을 봤다. 단편이었고, 두시간이 넘었던걸로 기억되는 감정과잉의 영화와는 사뭇 틀린 느낌이었다. 아사다 지로의 첫소설집은 참으로 대단해서, 이 사람 야쿠자가 안되고 작가가 되길 천만다행이다. 는 생각이 절로 든다.

표제작이기도 한 '철도원' 은 일본에서 그리고 '러브레터'는 한국에서 이미 '파이란'이란 영화로 만들어져서 잘 알려져 있는 원작이기도 하다. 철도원으로 자라서, 철도원으로 살다가 철도원으로 죽는 한 외곬수 남자의 이야기. 눈이 소복하게 쌓이고, 인생의 괴로움이 쌓이고, 또 눈이 쌓이고, 또 후회가 쌓이고, 눈이 쌓이고, 아쉬움과 못다한 사랑이 쌓이고...
'철도원' 이외의 삶을 생각지 않았던 정년퇴임을 앞둔 오토마츠씨는 호로마이역에서의 마지막밤에 큰 선물을 받는다.

'러브레터'는 한 양아치가 돈 받고 위장결혼해준 중국여자의 '편지'를 받으면서 굳게 딱쟁이져있던 마음을 풀어내는 이야기이다. '이곳은 모두 친절합니다. 조직 사람도 손님도 모두 친절합니다. 바다도 산도 아름답고 친절합니다. 계속 이곳에서 일하고 싶습니다. 셰셰(謝謝). 그것뿐입니다. 바닷소리가 들립니다. 고로씨, 들립니까? 모두 친절합니다. 하지만 고로 씨가 제일 친절합니다. 나와 결혼해주었으니까요. 셰셰. 많이 셰셰. 안녕히 주무세요. 파이란'  타국에서 몸을 팔러왔지만, 자신의 남편이라는 그 남자의 사진과 이력을 외우며 사랑에 빠지게 되고 그 사랑에 마지막까지 기대게 된다. 결국 그 마음은 러브레터를 통해 삼류양아치였던 그에게 전해진다.  너무 늦게.

다른 모든 단편들도 따뜻하다. 가족의 정. 사람의 정을 각각의 짧은 단편안에 감동적으로 녹여내고 있다.
단 한작품 '캬라' 만은 다른 단편들과 색을 좀 달리하는데, 그 색 또한 나는 참 좋더라. 연애소설같기도 하고, 스릴러 같기도 하고, 환상소설같기도 하고.

별다른 조사 없이 술렁술렁 쓰여졌을 것 같은 이 책은 그렇기에 더욱더  아사다 지로가 타고난 글쟁이임을 보여주고 있다.

스릴러만이 눈을 못 떼게 하는건 아니다.
이 책 역시, 짧은 호흡으로 감정의 클라이막스를 지날때까지, 눈을 못 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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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루(春) 2006-02-07 09:27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이 책 읽은지 오래 됐다고 이걸 먼저 읽고, 철도원을 봤는지 그게 기억이 안 나네요. 하지만, 여지껏 좋은 기억으로 남아 있는 책이에요.

한솔로 2006-02-07 09:37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아사다 지로의 단편의 조밀한 센티멘탈리즘은 중독되기 쉬운 유혹이 아닐까요.

하이드 2006-02-07 09:54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중독되기 쉬운이라.. 또다른 생각거리를 던져주고 가시는군요. 한솔로님.
하루님, 장미도둑보다 이 책이 더 나은것 같아요. 따뜻한 기억으로 남고, 나중에 다시 읽어도 또 좋을 것 같아요.

한솔로 2006-02-07 10:58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좋은 의미에서의 중독성을 말씀드린 겁니다.^^
"나 오늘 울기 싫은데, 어응, 아사다지로가 나를 울려버리네" 이런 정도의ㅎㅎ
 
13계단 - 제47회 에도가와 란포상 수상작 밀리언셀러 클럽 29
다카노 가즈아키 지음 / 황금가지 / 2005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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손을 뗄 수 없을 정도로 재미있고,  많은 생각거리를 안겨준다.
독서를 하는데 있어서, 재미와 고민과 커다란 질문을 동시에 안겨주는 책을 발견할때의 희열은 그 어느것에도 비교할 수 없다.

이 책은 그 모든 것을 독자에게 아낌없이 주고 있다.
탄탄한 구성과 간결하고 지적인 문체로 '사형제도' 에 대한 근본적인 물음 뿐만 아니라, 일본 사형제도의 모순들에 대해서도 깊이있게 파헤치고 있다. 무엇보다도 점수를 주고 싶은 것은 '찬성'의 입장도 '반대'의 입장도 아닌체, '사형' 과 관련된 여러가지 입장들의 이야기를 균형있게 함으로써 독자에게 커다란 퀘스천 마크를 띄우면서 책이 끝난다는 점이다.

'13계단'은 교수대를 일컫는 말이다. 얄궂게도 사형이라는 극형까지 가게 되는 경우 엄정한 심사를 거치는데, 검찰관이 사형집행서 발부를 요청하고, 사형수가 사형에 이르기까지 최후의 법무장관 결재를 포함하여 5개 부서, 13명의 관료 결재가 필요하다. 13단계의 절차라는 숫자의 불길함이다.

상해치사로 2년형을 살고 나온 준이치와 교도관으로 은퇴를 앞두고 있는 난고는 기억을 상실한 사카키바라 료의 무고를 밝히기 위해 10년전의 사건을 조사하기로 한다. 그 과정에 얽혀있는, 그리고 만나게 되는 인물들. 준이치는 자신이 살해한 이의 부모를 만나 사죄해야 하고, 료의 사건을 조사하면서 그에게 살해당했다고 하는 노부부의 아들부부를 만나 잔인하게 살해당한 부모의 죽음을 목도해야 했던 자식의 분노를 고스란히 맞아야 했다. 전과자인 준이치. 그리고 전과자에서 사형수가 되어 있는 료. 전과자를 돌보는 보호사와 보호 관찰관. 10년전 사건을 조사했던 검사, 살인을 저지른 자의 가족들. 가족이 살해당한 가족들.

이제 네 놈은 사형이다!
-영화 [천국과 지옥]중 (감독 구로사와 아키라)

'사형'이란 말은 무겁다. '사형' 에 대해 찬성의 입장을 이야기하기도, 반대의 입장을 이야기하기도 쉽지 않다.
무거운 주제이고, 감정적으로 흐르기 쉬운 주제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꽉짜인 구성 속에 균형적인 시각을 잃지 않기에 더욱 놀랍다.

대단한 작가를 알게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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moonnight 2006-02-05 22:06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앗, 하이드님. 돌아오신 건가요? +_+;; 저도 이 책 읽고 감탄스러웠어요. 신인으로, 두달도 채 안 되는 기간에 썼다는 것이 안 믿기더라구요. 첨부터 끝까지 두근두근.

2006-02-05 22:14   URL
비밀 댓글입니다.

하루(春) 2006-02-05 22:24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무서울 것 같아서 계속 일부러 멀리 하고 있었는데...

마늘빵 2006-02-05 22:40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험 하이드님이 대단한 작가라 하면 안볼 수가 없어요.

울보 2006-02-05 23:00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저도 구입했습니다, 얼른 도착해서 읽어보고 싶어지네요,,,

하늘바람 2006-02-06 12:10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어디서나 이 책자랑이군요. 흠 저도 읽고 싶어요 하지만 ㅠㅠ

마냐 2006-02-11 04:00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땡스~~~투 ^^

하이드 2006-02-11 11:15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마냐님의 리뷰가 엄청 기대되네요.

야클 2006-02-11 23:01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흠, 아직 사놓고 안 읽었는데. 벚꽃 어쩌구저쩌구 보다 나으려나?

하이드 2006-02-11 23:26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음 , 이 책 끝내줘요. 벚꽃 어쩌구저쩌구 읽어야 하는데,

미세스리 2006-03-16 14:11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땡스투! ♥
 
디아스포라 기행 - 추방당한 자의 시선
서경식 지음, 김혜신 옮김 / 돌베개 / 2006년 1월
구판절판


서경식의 책들은 언제나 단정하고, 군더더기가 없다.
절판되기 전의 책들은 본 적이 없지만, 역시 단정하리라 믿어 의심치 않는다.

디아스포라 기행 - 추방당한 자의 시선
' 고독한 나그네의 눈길은 '근대'로 이어진다. 진보와 반동이 격돌을 거듭한 그 도정에서 근대 국민국가가 형성되고, 사람들은 '국민'으로 편성되었으며, 식민지배와 세계 분할이 강행되었다. 그 길은 두 차례의 파국적인 세계 전쟁과 대학살로 이어지는 길이었다.
2백여 년이 지난 지금, 나는 나 자신이 그 나그네처럼 혼자 서 있는 것만 같다. 고갯길에 선 내 눈 앞에는 '근대'에서 '근대 이후' 에 이르는 길이 뻗어 있다. 그 길은 구름과 안개의 바다에 뒤덮여 앞을 잘 가늠할 수 없다.... 나는 근대 국민국가의 틀로부터 내던져진 디아스포라야말로 '근대 이후'를 살아갈 인간의 존재형식이 앞서 구현되고 있는 것이라 생각한다. 그러나 그것이 인류에게 보편적으로 받아들여지기까지 앞으로 얼마나 더 곤란한 길을 거쳐야만 할 것인가. '

-한국어판 서문 中-

이 책은 일본의 월간지 [세카이]에 2004년 6월부터 2005년 4월까지 11회에 걸쳐 연재한 에세이 '디아스포라 기행' 을 가필한 것이다.

런던2001년 12월에서 츠바이크의 잘츠부르크 2002년 여름까지

수레바퀴 자국에 고인 물 속의 붕어

프롤로그 중에 나오는 이야기이다.
각각의 글에 붙는 소제목보다 작은 그것들은 '빨간색' 볼드체로 되어 있다. 아래의 여백의 위에 비해 너무 많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 책은 왜 단정하고, 꼭 짜여보이기만 한단 말인가.

제 1장
죽음을      생각하는         날
단어와 단어 사이의 거리가 멀다. 그 단어의 무게와 거리만큼이나.

프리모 레비의 무덤.
기행하는 곳곳의 사진들이 책 구퉁이에 나와 있다. 신문기사처럼 작은 프리모 레비의 사진도 이 페이지를 앞으로 몇장 넘기면 볼 수 있다.

한나 아렌트의 사진.
얼핏봐도 이전의 '소년의 눈물'이나 '나의 서양미술 순례기' 에 비해 만만치 않은 내용들이다. 내 관심분야에서 벗어난 주제이기도 하고, 그런고로 내 지식이 얕기 때문이기도 하고. 그럼에도 불구하고, 조곤조곤 이야기하는 것을 읽고 있으면, 그 내용과 어조는 마음에 절로 스며든다.

한국어판 서문으로 돌아가서 : 맨 앞페이지다.

'이 책의 집필을 마친 후 내 마음속에는 다시 프리드리히 Caspar David Friedrich 그림 속 나그네의 뒷모습이 떠올랐다.(본문 69족 그림 참조) 이 그림이 그려진 것은 1818년, 나폴레옹 전쟁이 끝나고 구왕정의 부활을 꾀한 '복고주의'가 지배하는 빈체제하에서였다. 자유주의자들이 숨을 죽이고 침묵해야 했던 시기다. ... (두번째 사진의 서문과 이어짐)'

김지하 시인의 '타는 목마름으로' 라는 시이다.

숨죽여 흐느끼며
네 이름을 남몰래 쓴다.
타는 목마름으로
타는 목마름으로
민주주의여 만세.

서경석의 이전 책들은 각각 미술, 그리고 책에 대해 다루고 있고, 이번 책은 '기행' 문이여야 마땅하지만, 그 책들이 한권 같은건 저자가 같기 때문만은 아니다. 그의 이야기. 형들의 이야기. 그의 과거. 그의 고뇌. 눈부시게 밝지는 않지만, 희미하게 빛나는 희망. 등이 책을 통해, 그림을 통해, 여행을 통해 일관되게 나타나기 때문일 것이다.

1990년 광주 망월동에서

3회 광주 비엔날레 대상을 받은 시린 네샤트의 '환희'

'아이덴티티' 문제를 다룬 그녀의 작품을 처음 접한 때, 작품 소개, 간단한 이력, 작품을 시작하게 된 순간에 대한 이야기들을 한장에 걸쳐 소개하고 있다.

잘츠부르크에서 만나는 츠바이크가 몹시 반갑다.
2002년 잘츠부르크 방문 당시 오페라 ' 다나에의 사랑' 을 보았다. 2차대전 말기 여름 초연 예정이었다 '총력전' 구호에 눌려 나치 당국에 의 해 취소된 공연을 되새겨본다.

유대인 화가 펠릭스 누스바움의 자화상
진중권의 '춤추는 죽음'을 읽을때 가장 인상적이었던 화가다.
역시나 시선을 오래오래 사로잡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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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람돌이 2006-02-01 04:21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이 책 찜해놓고 아직 보관함에서 잠자고 있는데... 이렇게 들쑤시면 장바구니로 손이 덜덜덜 하잖아요. ^^

moonnight 2006-02-01 10:23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오, 역시 지름여신^^;의 포토리뷰로군요. 아아아. 사고 싶다. 저도 덜덜덜 ^^

하이드 2006-02-01 11:12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달밤님, 딴 책은 몰라도, 서경식의 책은 사서 후회 없으실꺼에요.
바람돌이님, 천원쿠폰이 언제까지죠? ^^

향기로운 2007-04-06 15:31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오늘이 4월 6일인데.. 여전히 1000원 쿠폰 행사하고 있네요^^;; 갈등갈등~
 
책 읽는 여자는 위험하다 - 13세기에서 21세기까지 그림을 통해 읽는 독서의 역사
슈테판 볼만 지음, 조이한.김정근 옮김 / 웅진지식하우스 / 2006년 1월
평점 :
구판절판


멋지다!
제목 : 책 읽는 여자 위험하다
'책과 나 사이에 당신이 들어올 빈자리는 없다!'
(13세기에서 21세기까지 그림을 통해 읽는 독서의 역사)

위의 원서 표지 그림은 비토리오 마테오 코르코스'vittorio matteo corcos 의 '꿈'이란 그림이다.
여름이 가고 가을이 오고, 바닥에 흩어진 장미는 지난 여름 순결을 잃고, 사랑과 작별한 그녀를 말하는지도 모른다. 이별은 그녀를 성숙하게 만들었다. 책의 한 장을 덮듯, 그녀는 인생의 한 장을 덮었고, 그만큼 성장했다. 이 그림의 제목은 '꿈' 이지만, 당당하게 고개를 치켜든 그녀의 모습은 꿈꾸는 모습이 아니다. ' 책 읽는 이 여자는 결코 꿈꾸는 사람이 아니다'

번역서 표지의 그림은 라몬 카사스 이 카르보Ramon Casas y Carbo의 '무도회 이후' 라는 그림이다.
같은 주제의 잡지 선전화보로 역시 나른한 표정으로 안락의자에 누워 한 팔을 늘어뜨리고, 다른 한 팔로 책을(편지) 집고 있는 여자의 모습이다.

콜레트는 독서의 상태를 '고상한 고독' 이라고 했다.
'독서는 유쾌한 고립 행위다. 책을 읽으면서 우리는 예의 바르게 자신을 접근하기 힘든 존재로 만든다.'
라는 말에 무릎을 탁 치며 공감하는 사람은 나 뿐은 아닐꺼다.

독서광들이 좋아하는 '책' 에 대한 재미있는 '책' 들이 많다.
문학과 미술을 연결해서 재미있게 풀어낸 책들도 많다.
이 책은 전자에 더 가까운데, 더 세밀하고, 은밀하다.
그 표지와 카피만으로도 덥썩 사서 후회가 없지만, 그 외에도 '독서' 에 대한, 아니 좀 더 구체적으로 '독서하는 여.자. 그림' 에 대한 새로운 시각을 열어주었다.

모르고 있었던 완전히 새로운 사실들은 없다. 다만, 머릿속 이쪽, 저쪽 정리되지 않은채 들어가 있던 사실들에 다리를 놓아 하나의 마을이 될때 그 쾌감.
'독서' 가 '소리 내어 읽는 것'에서 지금의 '소리 내지 않고 은.밀.하.게. 읽는 것' 으로 넘어오면서 외부 세계와 소통하던 행위에서 외부 세계와 단절된 행위로 넘어오면서, 그 지극히 개인적인 행위들을 화가들은 역사속에서 끊임없이 때로는 부러 드러내어, 때로는 아슬아슬하게 그 내면을 포착하여 화폭에 담고자 했다.  
단순히 '책 읽는 여자' 그림들을 좋아라 했던 것에서  그 그림들이 말하는 바를 읽게 되는 것은 배로 흥미롭지 않을 수 없다.
21세기 '책을 읽는 나' 의 이야기와 18세기 '책을 읽는 그녀'의 이야기는 같고도 다르다.

이 책을 읽는 것은 ' 책을 읽는 여자들 그림으로만 이루어진 회랑이 있는 상상의 박물관'을 느릿느릿 산책하는 것'과 같다. 책 속의 흥미롭고, 도발적이고, 생각거리를 무한히 가져다주는 그림들, 사진들을 보는 것만으로도 책값이 전혀 아깝지 않은 책이다.

* 가끔 괴상한 문장들이 있어서 별 한개 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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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로그인 2006-02-01 00:07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독서는 고립행위라는 구절에 저도 전적으로 동감합니다. 몸은 여기있어도 마음은 행복하게 영 딴 곳을 헤메는 모습에 옆에 있는 사람으로선 소외감을 느끼겠지요. 그래서 식구들이 제가 옆에서 책읽는걸 못 참아 하나 봅니다. (아참, 괴상한 문장들은 뭐랍니까? 궁금)

책속에 책 2006-02-01 00:34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아, 멋져요, 얼핏 신문서평으로 봤는데, 그땐 그냥 그림만 모아둔 책인가 했는데 글도 있나보네요...궁금해요~~

하이드 2006-02-01 01:25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일단 도판들이 멋지고요, 도판과 그림은 반반정도이구요. 글이 더 많긴합니다. 지은이의 원서에다가 역자들이 중간중간 '책' 과 관련된 역사들을 정리한 페이지들이 삽입되어 있습니다.


만치님, 그게,  예를들면

'18세기 중엽 프랑스인 장 바티스트 시메옹 샤르댕은 <가정적 삶의 즐거움>이라는 제목으로 독일에 알려진 그림을 그렸다. 프랑스어 제목인 <사적인 삶의 여흥>이 좀더 정확하게 사적인 삶의 오락 혹은 한가로움을 말해준다. 독일어에서 '여흥'의 반대말로 '고통'이란 단어를 사용하지만 오히려'지루함'이란 단어와 가깝다. '

뭐, 무슨 말인지는 알겠는데, 괴상하지 않나요?

 


라주미힌 2006-02-01 01:33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너댓번 읽으니깐 대충 해석이 되네요.. 허허허..

마늘빵 2006-02-01 07:55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남자 책 읽다는 없나요?

mong 2006-02-01 10:04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흑~땡쓰투 미리 하고 가요~

하이드 2006-02-01 10:30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mong 님, 전 책 읽는 여자 그림이 이토록 도발적이고 은밀한줄은 미처 몰랐답니다. 도판들만으로도 만족하실꺼에요. 종종 있는 사진들도 멋집니다. '마릴린 몬로, 율리시즈를 읽다' 뭐, 이런거요. ^^ 글도 꽤나 흥미로웠어요.

panda78 2006-02-03 18:42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저 이 페이퍼 보기 전에 주문했는데, 이 페이퍼 보고 나니 기대가 마구 치솟더라구요. ^^ 받아보니 역시 좋네요.

나탈리 2006-02-08 17:53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책의 제목과 표지에서부터 마음을 빼앗겼는데..하이드님의 리뷰를 읽고나니 더 기대됩니다. :) 저도 땡스 미리 드려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