꽤 오래 전 일이었지만 생생하게 기억하고 있는 어떤 사건이 있다. 아마도 주말이었고 장을 보러 나왔으니까 마님은 옆에 계셨을 것이고 주니어를 카트에 실을 정도의 덩치였으니까 지금보단 주니어가 어렸을 때였고 사람들이 북적북적하던 시간이었으니까 그리 늦은 시간은 아니었나 보다.

마트에서 찬거리, 저녁거리를 장보고 있을 때 들리던 엄청난 고성. 반품 혹은 환불을 받는 공간이었다. 어떤 아주머니는 얼굴을 삼국지 관운장의 얼굴색마냥 대추 색으로 붉게 물들이고 고래고래 악을 쓰고 있었다. 한 손엔 집에서 간편하게 입을 수 있는 옷가지가 들려 있었다. 대충 내용을 들어보니 환불문제로 시비가 붙은 듯 했다. 하도 크게 떠들기에 듣고 싶지 않아도 본의 아니게 주변 사람들은 내용을 다 알아버리게 되었다.

아마도 그 아주머니는 꽤 오랜 시일이 걸린 이후에 환불을 받으려 물품을 가져왔고 이미 그 옷은 상품으로써 값어치를 상실한 듯 했다. 세탁도 한 차례 하고 옷 한 쪽은 조금 심하게 훼손이 된 상태였나 보다. 이런 상태로는 환불이 불가능하다는 마트 직원과의 실랑이가 고성의 원인이었다. 결국 손을 든 건 마트 쪽이었다. 조금 높은 사람이 나와 그 아주머니를 살살 달래 소기의 목적을 달성시켜 주었고 보부도 당당하게 콧바람을 씩씩거리며 그 경험이 미숙했을지도 모를 마트 직원에게 꽤나 끔찍한 말을 퍼붓고 본인의 갈 길을 가기 시작했다. 굉장히 침울한 표정의 그 마트직원을 동료들은 조용히 위로했고 일을 무마시킨 상관으로 보이는 그 사람도 조심스럽게 그 직원을 다독여주는 모습을 잠깐 연출하였다.

아마도 이런 장면을 목격한 사람들은 꽤나 많을 것 같다.(요즘은 그 정도가 심해 제사 끝난 후 꼭지와 밑동을 자른 수박을 들고 와 상했다고 반품을 요구하는 사람도 있다고 한다.) 흔히 ‘손님은 왕’ 이라는 서비스 업계의 기본모토가 본의 아니게 월권이 되는 모습이라고 보고 싶다. 자신들의 물건을 구매하는 소비자를 왕처럼 대접하겠다. 란 이 뜻이 일부 몰지각한 왕들 덕분에 심하게 훼손되는 기분이다. 그런데 왕도 왕 나름이 아니겠는가.

그 옛날 왕들은 왕이라는 권좌에 오르기 위해 뼈를 깎는 수행을 쌓아야만 했을 것이다. 기본적 격식과 예절, 더불어 교양까지. 이런 형식적인 것뿐이었을까. 한 나라의 국민들 다스리는 위치로써 누릴 수 있는 권리와 더불어 막중한 책임과 의무까지 그들이 생을 마감하는 그날까지 어깨를 짓눌렀을 것이다. 그리 생각하면 왕이라는 자리가 그리 편하기만 한 자리는 결코 아니었을 것이다. 하지만 21세기의 왕들은 과거 역사 속의 왕과는 너무나 다른 모습을 보여주는 것 같다. 의무 따윈 존재하지 않고 권리에만 집착하는 모습을 쉽게도 보여준다. 아마도 앞에서 말한 관운장의 얼굴색을 보이며 사자후를 날렸던 그 아주머니 역시 그 범위에서 벗어나지 못할 것 같다.

이런 모습은 오프에서 뿐만이 아닌 온라인에서도 빈번하게 마주친다.
소비자라는 우월한 위치에서 납득하기 어려운 요구를 하거나, 단골을 운운하며 왜 날 대접해주지 않느냐는 하소연, 다른 사람의 피해는 외면하다가 자신의 피해에 민감하게 반응하며 방방곡곡 이장님 마이크 마냥 소문내기 바쁜 상황연출. 자신의 정당함을 돋보이게 하기 위해 무차별적인 타인의 비방. (여기에 자화자찬은 필수요소다.)

이것 하나만큼은 말하고 싶다. 손님은 왕일지도 모른다. 그러나 왕도 왕 나름이다. 우리는 호전적인 정복욕구가 가득한 알렉산더일지도 모르고, 학구적이며 지적인 세종대왕일지도 모른다. 또는 2차 세계대전 독일의 폭격에 쑥대밭이 되 버린 런던을 직접 손발을 써가며 국민들과 재건의 모습을 보인 엘리자베스 여왕의 모습을 가졌는지도 모른다. 반면 어린 시절 트라우마를 이겨내지 못해 결국 폭군의 길을 걸은 연산군, 혹은 재미삼아 로마를 불바다로 만든 네로황제일지도 모른다. 우리는 어떤 왕이 되고 싶을까. 설마 연산군이나 네로 같은 왕이 되고 싶은 사람은 아무도 없을 것이다. 하지만 평가는 왕이 하는 것이 아닌 주변 사람들이 한다는 사실도 잊지 말았으면 좋겠다.

왕처럼 대접받고 싶은가? 그럼 먼저 왕으로써 지켜야할 예의와 배려부터 익혔으면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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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0-12-27 13:24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10-12-27 13:59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10-12-27 13:35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10-12-27 13:36   URL
비밀 댓글입니다.

깐따삐야 2010-12-27 14:12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저도 물건 샀다가 환불이나 교환 받은 경험이 몇번 있는데요. 어느 날 엄마가 그러시더라구요. 정도껏 해라. 습관 될라. 분명 그 정도는 아닌데 그 후로 자중하고 있어요. 엊그제는 죠리퐁에서 손톱만한 돌이 나왔는데도 참았습니다. 잘한 걸까요? -_-

Mephistopheles 2010-12-27 14:22   좋아요 0 | URL
정당한 사유가 있다면야 환불 교환은 당연하거죠..단지 방법의 차이가 존재하겠지만요. 더더군다나 먹는 음식에서 손톱만한 돌이.....이건 분명하게 짚고 넘어가셔야 할 사항이 아닐까요..^^

레와 2010-12-27 14:35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우와. 이 페이퍼 꼭 보여주고 싶은 사람이 있어요!

나 또한 '소비자'라는 권력을 함부로 휘두르지 않았나 돌아 봅니다.
:)

Mephistopheles 2010-12-27 17:58   좋아요 0 | URL
음..그게 설마 저는 아니겠지요...? 소비자의 권력. 일종의 기본적인 상식과 예절만큼은 지켜야 한다고 보고 싶은데..전혀 그렇지 않은 사람들이 제법 많더군요.

카스피 2010-12-27 17:53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저건 아줌마가 잘못했네요.그런데 그보다 더 큰 문제는 정당한 환불 규정이 있음에도 환불이나 교환을 거부하는 업체들이 더 큰 문제지요.그러다보니 소비자 역시 목소리가 커질수 밖에 없고 업체도 목소리 큰 소비자에게만 환불을 하니 소비자만 나쁘다고 탓할 수만을 없을 것 같습니다.업체 스스로가 그런 소비자를 만드니까요^^

Mephistopheles 2010-12-27 18:06   좋아요 0 | URL
전 업체가 더 큰 문제라고 보진 않습니다. 이런 불량업체에 버금가는 안하무인, 고압적 소비자 역시 그 업체와 다를 바는 없다고 봅니다. 하지만 소비자들에겐 선택권이 존재합니다. 불량업체 이용 않하면 그만입니다. 그 업체가 과연 지속적인 이윤을 남길 수 있을만큼 요즘 소비자들은 물렁하지도 않고요.

울보 2010-12-27 20:57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참 , 그래요,
언제나 우리는 손님은 왕이다를 외쳐요. 하지만 그렇지 않은 상점도 있어요, 손님은 왕이다 보다 사장은왕이다도요,,ㅎㅎㅎ
제가 그런곳 몇곳을 알아요 아무리 이야기해도 고쳐지지 않는곳,
아무튼 인간으로써 지켜야 할 예절은 꼭 지키고 양심에 가책이 되는 일은 하지 말아야겠지요
요즘 처럼 인테넷쇼핑이나 마트문화가 발전하면서 저런 아줌마 아저씨들은 더 늘어나는것 같긴해요,,,

Mephistopheles 2010-12-28 10:48   좋아요 0 | URL
속칭 진상손님이..이젠 아줌마 아저씨로 국한되는 것 같진 않아요. 다양한 연령대가 분포되어 있더라고요..^^

혜덕화 2010-12-27 21:21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피자 배달원의 죽음이 안타까웠습니다.
한 생명이 식어가도록 만든, 뜨거운 피자 배달이 오늘 우리의 왜곡된 현실을 적나라하게 보여주는 것 같습니다.
손님도, 주인도, 종업원도 모두 왕이 아니지요.
우리는 그냥 모두 똑같은 사람일 뿐입니다.
저런 말이 우리 사회에 돌아다니는 것 자체가, 돈이 왕이다는 말과 같은 의미가 아닐까요?
나도 너도, 그도 모두 한 가정에선 소중한 존재라는 사실을 안다면, 저런 말을 할 수가 없지요.

Mephistopheles 2010-12-28 10:49   좋아요 0 | URL
아...저도 그 대학 졸업반인 피자 배달원의 죽음...참 안타깝더군요.
제 페이퍼가 우문이면 혜덕화님의 댓글이 현답 같습니다. 상거례 자체가 사람과 사람간의 관계인데 한쪽 시선이 너무 높진 않나 싶습니다 평행선이 가장 이상적일것 같아요.

2010-12-27 21:34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10-12-28 10:50   URL
비밀 댓글입니다.

BRINY 2010-12-27 21:54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교환, 환불을 당연한 권리처럼 행사하기 전에 신중한 구매를 했으면 좋겠다하는 생각도 들어요.

Mephistopheles 2010-12-28 10:51   좋아요 0 | URL
최근에 읽은 책 '노임펙트맨'이 떠올라요. 우린 너무 많은 소비를 지향하며 만들지 않을 수 있는 쓰레기를 너무 많이 배출하는 건 아닌가...라는..^^

순오기 2010-12-28 01:41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이 글을 읽으며 딱 한 사람이 떠오르는군요.^^
왕처럼 대접받고 싶어하면서 전혀 왕으로서의 예의와 배려는 없는...

Mephistopheles 2010-12-28 10:52   좋아요 0 | URL
혹시...그게...전가요..?? 흑흑..반성하고 있습니다..

순오기 2010-12-30 14:40   좋아요 0 | URL
설마~ 메피님이겠어요?^^
저는 이 글을 읽으며 제가 떠올린 사람과 같은 분을 생각하며 쓴 게 아니었을까 생각했는데...

Mephistopheles 2010-12-31 21:41   좋아요 0 | URL
글쎄요 전 누굴 대상으로 글을 쓰는 사람은 아닙니다. 불특정 다수라면 모를까..? ^^

2010-12-28 07:43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10-12-28 10:43   URL
비밀 댓글입니다.

herenow 2010-12-28 15:40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저도 저런 마음 가진 적은 없는지 돌아보게 됩니다.
살다보면 한번쯤 남의 입장에 서보게 되는 것이 우리네 삶인데도 말입니다.
이런 글은 알라딘 메인, 서재 메인에도 한동안 떠있으면 좋겠네요.

Mephistopheles 2010-12-28 15:52   좋아요 0 | URL
이런 잡문을 남긴 저는 오죽하겠습니까..다 쓰고 나니 여태까지 택배 늦게 온다고 발광(?) 떨었던 몇몇 사건을 생각하며 좀 창피해지더군요..^^

2011-01-05 20:46   URL
비밀 댓글입니다.
 
메리 크리스마스 - Merry Christmas
영화
평점 :
상영종료



고요한 밤, 거룩한 밤, 어둠에 묻힌 밤. 지구상 어딘가 아직도 총알이 날아다니고 포탄이 비처럼 쏟아지고 있을지도 모른다. 그 상황에서 사람들의 생명은 하나하나 이 땅을 떠나고 있을지도 모른다. 단 한 번도 경험해 보진 않았지만, 더불어 경험해보고 싶지도 않은 전쟁이라는 환경은 경험해본 사람들은 공통적인 단어를 제시하며 표현한다.

지옥.

사람이 사람이 아닌 공간. 정육점에 매달린 고기보다 못한 취급을 받으며 육체가 산산이 부서지는 공간. 더불어 살아 있어도 영혼마저 파괴되는 공간. 그들은 그렇게 인간이 인위적으로 만든 최상급의 학살현장을 지옥과 비유하곤 한다.  

 

영화의 배경인 1914년. 유럽은 이런 지옥이었나 보다. 통칭 제 1차 세계 대전이라고 명명한 이 공간 속 프랑스 북부 지역에선 독일군과 프랑스, 스코틀랜드 연합군이 대치상황이었다. 1차 세계대전의 양상이 참호전 이었던 만큼 영화 속 군인들 역시 깊숙한 참호 속에 은신하며 밀고 당기는 지루하고 소모적인 공방전을 지속하고 있는 상황이었다. 지옥 같은 환경 속에서도 여전히 시계바늘은 돌아간다. 이들이 전선에서 맞은 크리스마스이브에 변화가 시작된다. 적이라는 개념에서 벗어나 크리스마스라는 날에 걸 맞는 평화적 방법이 모색된다. 단 하루라는 시한을 걸어 놓은 채로...

이 영화를 보고 있으면 지나치게 작위적이고 허무맹랑하게 느껴지는 순간이 존재한다. 바로 어제까지 서로에게 총질을 해대던 인간들이 단지 크리스마스라는 이유 때문에 단 하루의 휴전을 채결하고 총이 아닌 술잔과 음식을 서로 주고받으며 인간적인 정을 나누는 장면은 지옥이라고 표현되는 전쟁터와는 전혀 어울리지 않는 이질적 모습을 보여준다. 휴전이 끝난 후 이런 어색함은 최고조를 달린다. 서로에게 포격 시간을 알리고 그 시간만큼 자신들의 참호에 잠시 피신해 있으라는 조언이 오가고 고맙다.를 연발하는 군인들의 모습은 아무리 영화라지만 지나친 설정이 아닌가 싶은 느낌이 든다.

결국 전쟁 중 이들이 벌인 평화적인 행동은 상부에 적발된 후 각자 다른 전선으로 강제적으로 전출되며 이 짧은 평화는 막을 내리게 된다. 더불어 영화의 마지막 시커먼 화면에 남겨진 하얀 글씨는 이 영화가 보여주는 진정성을 상징적으로 표현한다.

‘그 당시 전쟁 속에서 국적을 떠나 형제애를 나눴던 모든 군인들에게 이 영화를 바친다.’

결국 영화는 실화를 바탕으로 만들어진 것이며, 지나친 묘사가 있을 지라도 그 당시 전선에 배치된 일부 병사들은 크리스마스 날 국적을 떠나 서로를 보듬고 위로해주고 화해하는 모습을 보여줬다는 실화는 꽤 진한 여운을 남기게 해주었다.

영화를 본 후 뜬금없이 우리나라 소설 중 ‘단독강화’가 떠오른다. 국군병사 ‘양’ 과 인민군 병사 ‘장’의 잠깐의 휴식과 평화. 하지만 소설의 결말은 비극적이었던 기억. 더불어 떠오르는 ‘JSA공동경비구역' 의 허무하며 비극적인 결말. 1914년 1차 세계대전의 이 기적 같은 휴머니즘과 우리는 거리가 멀어도 한참 먼 것 같다. 우리는 지금도 누군가가 주장하는 ’주적‘과 대치상태이며 전쟁을 잠깐 쉬고 있는 시기니까. 더불어 위정자들의 한마디 한마디는 왠지 화해와 평화와는 점점 멀어지는 느낌이 들고 있다. 이 영화 같은 기적을 바라는 건 아무래도 무리인 요즘 이 땅의 현실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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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늘빵 2010-12-27 09:57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아, 영화 감동적이죠. 더군다나 실화라니.

Mephistopheles 2010-12-27 10:01   좋아요 1 | URL
그때까지만 해도 사람들이..전쟁터에 내팽겨쳐도 로맨스와 휴머니즘이 남아있었나 봅니다. 더불어 적에 대한 예절까지...^^

마녀고양이 2010-12-27 09:54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그러게요, 화해와 평화는 점점 멀어지는 듯 합니다.
그런데 말이죠, 죽어라 싸우다 크리스마스 하루 화해한게 무슨 의미가 있는걸까요?
다음 날이면 또 죽어라 싸울텐데요. ㅠ

Mephistopheles 2010-12-27 10:00   좋아요 1 | URL
영화는 그 짧은 휴전의 과정을 거친 후 전쟁을 하지 않아요. 다음날엔 무인지대 혹은 자신들의 참호에 방치되어진 전우들의 시신을 서로 챙겨주고 장례를 치뤄줘요. 그 다음날엔 독일군이 연합군에게 10분 후 그쪽 진지에 포격을 가할 예정이니 이리 와서 피하시라고 하고 그 반대 상황 연출되고. 마녀고양이님이 말씀하신 것처럼 그 짧은 휴전 후 그들은 더 이상 전쟁을 수행하지 않아요..^^
하지만...지금은...아니겠죠..휴전이 뭡니까 그냥 서로 죽어라 싸우겠죠.

노이에자이트 2010-12-27 17:12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이 영화의 배경이 되는 이야기를 몇 년 전 책으로 읽었는데 이렇게 평화를 바라는데도 나와 아무 원한이 없는 이를 적이란 이유 하나로 죽여야 하는 전쟁이란 정말...기독교 문화권에서 크리스마스란 특별한 의미를 가지는 것 같아요.영화에도 병사들이 어울려 축구경기하는 장면이 나오나요?
2차대전 중 독일군과 미군이 같은 집에서 갑자기 마주치는데 크리스마스 때라 서로 저녁을 함께 한다는 일화가 한때 리더스다이제스트를 통해 널리 퍼졌죠.

Mephistopheles 2010-12-27 17:57   좋아요 1 | URL
볼도 차고 서로 술먹으며 수다 떨고 자신의 아내 사진을 자랑하며 즐겁게 보내는 장면이 나옵니다. 2차 세계 대전에서도 크리스마스 날 독일군과 마주친 미군이 이런 비슷한 평화로운 시기를 가졌던 기록도 존재하더군요. 그리고 비슷한 영화 '세인트 엔 솔져' 도 있습니다. 영화적 완성도는 떨어지지만 전쟁 속에 평화를 갈구하는 병사들을 보여주는 주제만큼은 잘 살렸습니다.

카스피 2010-12-27 18:09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이 실화는 꽤 유명하죠.전 기억이 가물가물한데 사랑의 학교란 책에서 언듯 본 기억이 나네요^^

Mephistopheles 2010-12-28 10:53   좋아요 1 | URL
제 기억이 맞다면 꽤 두꺼웠던 사랑의 학교의 에피소드 중 하나였을 껍니다. 근데 그게 1차 세계 대전 때 이야기인지 2차 세계대전 때 이야기인지 확실하진 않습니다.
 

11월 다른 사무실 나가 고생하며 일했고 그 여파가 12월 초까지 이어졌었다. 그리고 잠시 한가한 일상으로 돌아오게 되었다. 야근은 없었고 마감시간에 쫒기지 않으며 여유롭게 뒷정리만 하는 수준이었는데......

12월 23일 한 통의 전화가 걸려왔다.
모 공기업에서 발주하는 어떤 프로젝트가 1월 달 중순부터 본격적 스타트를 시작한다던 계획이 급변경되버렸다. 그런데 기본적인 도면을 풀셋으로 해달라는 시간이 참 기가 막히다. 12월 24일까지 해달라고 한다. 그러니까 하루 만에 모든 결과 치를 내놓으라는 소리다. 말도 안 되는 황당함에 그게 가능하냐고 반문을 했더니만, 잠시 후 다시 전화하겠다고 하더니 한다는 소리가 많이 양보해서 26일까지 해달라고 한다. 그러니까 24일, 25일 꼬박 밤을 새서 월요일 날 결과물을 달라는 소리..허허허...

여러 가지 상황이 유추되고 있다. 여러 가정 중에 가장 확증이 가는 가설은 이러하다. 사실 우리 업계는 올해 꽤나 힘들었다. 민간 기업이 사업을 확장하진 않았고 그나마 있는 일거리라고는 공공사업이 전부였던지라 그 많은 동종업계들이 승냥이 무리마냥 덤벼들기 시작했다. 고기는 줄었는데 입은 늘었으니 당연한 결과였을지도 모른다. 결국 경쟁에 밀린 업체는 도태 돼 버렸고 그나마 배 두들기며 포식했던 업체들 역시 허리띠 꽉 졸라매는 상황까지 직면하게 되었다. 그러다 보니 흔히 말하는 콩고물...노골적으로 말하자면 떡값을 돌릴 수 있는 여유자금 확보가 어려웠을 것이다. 간단하고 쉽게 말하자면 떡값 달라는 일종의 제스처일 가능성이 제법 높다는 소리다. (에이 설마 그러겠어. 그래도 나랏돈으로 월급 받는 양반들이...)

가정을 세워보고 유추를 해본들 어쩔 도리가 없는 사실은 변하지 않는다. 눈치껏 일해주고 어느 정도 분량을 채워서 보내는 수순을 밟게 될 것이다. 계약관계 상 약자일 수밖에 없는 우리는 자본주의 사회 거창하게 이야기하면 신자유주의 경제체제에선 뱀파이어에게 열심히 피 빨리는 존재일 뿐이니까.

그냥 한 가지 바라고 싶은 것은 24일 새벽에 발 뻗고 자빠져 자고 있을 그 분들이 스크루지 영감마냥 과거 현재 미래의 유령을 차례대로 대면하길 바랄 뿐이다. 그것도 고풍스럽고 온순한 버전이 아닌 스팩타클 3D 하드고어 스플래터 호러무비로 말이다. 회개하고 착한 스크루지 영감이 된다는 동화같은 이야기는 기대하지도 않지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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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이드 2010-12-24 13:45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개새끼들이네요.

Mephistopheles 2010-12-26 13:29   좋아요 0 | URL
앗....그건 개에 대한 모독이에요..

비연 2010-12-24 14:13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스팩타클 3D 하드고어 스플래터 호러무비에 백만표입니다. =.=;;

Mephistopheles 2010-12-26 13:29   좋아요 0 | URL
그런 꿈을 딱 한 달만 꿔버리면...으흐흐흐..

귀를기울이면 2010-12-24 15:39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핵심은 제가 오늘 회사 동료들에게 한 이야기와 같군요. 저희동네도 주말내내 출근이거든요. 좋은 꿈들 꾸시라고.... 바빠서라면 차라리 이해하겠는데 쑈인 성격이 강해서 더더욱...

Mephistopheles 2010-12-26 13:30   좋아요 0 | URL
연말 연예 대상도 아닌데....실생활에서 이런 쑈가 남발되면 참 피곤해요..

루체오페르 2010-12-24 21:08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에공; 스크루지 영감들이 참 많죠...ㅠㅠ

그래도 메피님,메리 크리스마스!&새해 즐겁게 맞으시길 바랍니다.^^

Mephistopheles 2010-12-26 13:30   좋아요 0 | URL
그런데 이 스쿠루지 영감들은 회개하거나 뉘우치치 않고 대대손손 이어지고 물려지더라고요..ㅋㅋ

마녀고양이 2010-12-25 09:55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아마 그 인간(?)들.. 24일까지 해달라는 말 그냥 한 걸겁니다.
26일까지 해줘도, 연말에 지 휴가 다 쓰고 모임 다 가고
해놓은 도면은 어디다 치워두고 검토도 안 하겠죠.
갑인 인간들 하는 짓이 꼭 그렇더라구요. 그러면서 미리
챙겨놓고, 상부에는 하는 척 보고할 건덕지를 만들어 놓는거죠. 쳇.

왜들 그런답니까? 아... 제가 다 짜증나네요.
그래도 메피님, 좋은 일 가득한 연말 되세요.

Mephistopheles 2010-12-26 13:32   좋아요 0 | URL
문제는....검토도 않하고 거들떠도 안 볼 것이지만 결과물이 안나오는 것에 대해선 확실하게 딴지를 걸고 넘어지니까요...오죽하면 그쪽 출신들 사람들 은퇴해서 친구 없다고 합니다. 하도 남들에게 모뙤게 굴고 트집잡고 뜯어내고 살아서 사람들이 상종을 않한다더군요...^^

산사춘 2010-12-28 14:38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클수마수에 (쌍)욕 보셨군요. 아, 욕 나와.
클수마수마다 뚝섬패밀리과 모여 식파티를 한지 십년이 넘었는데,
한 명이 첨으로 불참했시유... 일 하느라... 이런 제길...
담달에 팀장으로 승진하는데 그냥 대리로 일하더라도 칼퇴근 하고 싶대요.

Mephistopheles 2010-12-28 16:05   좋아요 0 | URL
그런데 사실 그 정도가 심해 그냥 24일 정시퇴근, 25일 집에서 시체놀이 했다지요. 그러던지 말던지 한 해동안 치이며 일했더니 뭐라 그러진 못하더군요..ㅋㅋ
 

 

 냐냐냐 냐냥냐앙 냐냥 냐냐냐냐냥 냐냐냐 냐냥냐냐냥.
(신카이 마코토의 단편 애니메이션 고양이 집회입니다.)
 냥냐냐 냐냐냐냥냐 냥냥냐냥 냥냥냐 냐냐냐냐 냥냔냐냐냥냐냥.
(짧지만 고양이들과 사람과의 일상을 재미있게 그려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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L.SHIN 2010-12-23 22:02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여기선 소리가 안 들리니 집에 가서 봐야겠군요,
라고,
댓글 1빠를 자랑스럽게 생각하는 1인 ㅡ_ㅡ 훗

Mephistopheles 2010-12-26 13:32   좋아요 0 | URL
아니 엘신님...알라딘에서 댓글순위 놀이라니.....

노이에자이트 2010-12-23 23:22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고양이만 저러는 게 아니라 사람들 중에서도 늘 다음에...다음에...하는 사람들이 많지요.

Mephistopheles 2010-12-26 13:32   좋아요 0 | URL
고양이는 애교스럽지만 사람이라면 좀 짜증날 것 같습니다.

마녀고양이 2010-12-24 08:28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코알라 보여줘야겠어요. 그런데
이제 방학 시작이라고, 아직도 자고 있다눈~ ㅡㅡ;;;

Mephistopheles 2010-12-26 13:33   좋아요 0 | URL
음...나름 교훈이 될 것 같아요.. 다음날 다음날로 미루는 고양이가 되진 말자..?? 정도..??ㅋㅋ
 

 

단지 구차하게 변명을 말한다면 주 서식처와 가깝습니다.

강남성모병원이 말입니다.

참 사연 깊은 병원입니다. 아버지가 응급실로 실려 가셨던 병원도 이곳이고

술 먹고 뻗었을 때 죽은 듯 길바닥에 자빠진 저를 보고

겁이 난 친구들이 들쳐 업고 들어간 응급실도 이곳입니다.

얼굴에 화상을 입었을 때도 실려 왔었죠.

하지만 이번 방문은 이전의 방문과는 다릅니다. 이제는 다시 볼 수 없는

분을 배웅하기 위해 잠시 들렸습니다.

몇 분들과 연락이 되어 병원 앞에서 약속을 잡고 검은 옷을 입은 사람들이

웅성웅성 모여 있고 하얀 국화와 향 내음이 진동하는 영안실로 들어갔습니다.

조유식 사장의 이름이 남겨진 조화가 단촐 하게 입구를 지키고 있습니다.

 유가족 분들과 인사를 합니다. 문득 시선을 돌려 영정사진을

바라봤습니다. 전 사실 눈물이 많은 사람이 아닙니다. 어느 누구처럼 지독한

삶을 살아서 눈물이 말라버린 사연을 가진 삭막한 사람은 아니지만요.

하지만 그 분의 영정사진.......

아프지 않으셨을 때 지금보다는 젊은 시절의 활짝 웃는 모습을 보고

심정이 복잡해집니다.

울컥...

인사를 드리고 동생분 들과 이야기를 나눴습니다.

막상 이 세상과 이별을 고하실 때는 편하게 아주 편하게 이별을 하셨다고 합니다.

이제는 언니가 누나가 더 이상 아프고 힘들지 않기에 그것 하나만큼은

기쁘게 받아들이겠다고 하십니다.

또 다시. 울컥....

우리 언젠가는 만나겠죠. 이 세상이 아닌 곳에서....

그땐 말입니다. 아파서 힘들어서 꿈도 꾸지 못하셨을 연기 자욱하게

피어오르는 삼겹살 구우며 소주 한 잔 마시며 수다 떨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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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노아 2010-12-14 12:12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지금 마기님 서재에서 잊지 말아요 틀어놨는데 꼭 이 자리에 어울릴 노래가 되었어요.
가족 분들 얘기가 마음에 맺힙니다.

2010-12-14 14:00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10-12-15 09:47   URL
비밀 댓글입니다.

Kitty 2010-12-14 12:53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
아 진짜 또 눈물나네요 ㅠㅠㅠ

moonnight 2010-12-14 13:30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이제는 더이상 아프시지 않기에 저도 그것만큼은 안심합니다.
삼가 고인의 명복을 빕니다.

세실 2010-12-14 16:04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아 다녀오셨군요.....
참 많이 슬퍼요. ㅠㅠ

울보 2010-12-14 16:29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정말. 따뜻하셨던분인데ᆞᆢᆞᆢ

무해한모리군 2010-12-14 18:26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저도 인근이라 가보고 싶은 마음이나 왠지 폐가 될듯해 가지 못했습니다.
언제나 따스히 모르는 것들을 많이 가르쳐주시고,
멋진 리뷰도 써주셨는데..
저의 알라딘 두번째 즐찾이셨고...

정말 편안히 잠드시기를 바래봅니다.

순오기 2010-12-14 19:21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울컥~ 눈물이 나네요.
알라딘에서 조화를 보냈다니 그것도 감사하네요.
만두님 때문에 알라딘에 정 붙이게 된 분들이 많다는 걸~ 새삼 알았어요.
그곳에선 편안하기를...

아영엄마 2010-12-14 21:11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오전에 다녀오셨군요. 제가 갔을 때는 황금가지 출판사에서 조낸 조화가 하나 더 있더이다. 좀 더 많은 곳에서 슬픔을 전하는 조화를 보내야 하는 거 아닌가 하는, 안타까운 마음이 들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