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무실에서 도시락을 싸가지고 다니는 사람은 총 4명. 실장, 나, 여직원A, 여직원B. 이유야 여러 가지 있겠지만 그 중에서도 경제적인 이유가 첫 번째고 두 번째는 아마도 요즘 사먹는 음식들의 불신 때문이기도 하다.
이렇게 고정적으로 도시락을 싸 온지도 벌써 두 달이 되어 온다. 일단 식대가 절약되니 좋고 무언가를 사먹을 때 메뉴에 고심하는 귀찮음에서 해방되었다. 그러다보니 점심시간에 사무실은 도시락을 싸오는 사람과 사 먹는 사람들로 갈리게 돼 버렸다.
문제는 사먹는 사람 중 한 사람이 왜 그런지는 모르겠지만 도시락 싸오는 것에 대해 은근 불만을 나타내고 있다. 이유는 불명이고 점심시간에 도시락을 까먹는 모습에 대해 굉장히 못마땅한 표정을 짓는 것을 여러 번 목격한 적이 있었다. 나의 오지랖과 오버일까 했지만 여직원 A, B도 그리 느껴졌다고 하니 이건 객관적인 판단으로 보여 진다.
이런 불만이 밖으로 표출된 적도 있었다. 2009년이 시작하면서 첫 출근을 한 날 소장마마는 시무식 겸 점심을 맛있는 걸 사먹자는 제안을 했더랬다. 문제는 나를 포함한 여직원 A, B는 도시락을 싸왔던 것. 어찌 할까 했는데 시무식을 겸한다니 도시락은 포기하고 다 함께 점심을 먹기 위해 외출을 했는데....
도시락에 불만 많으신 그 직원 한 분이 대뜸 여직원 A에게 버럭 거린다. 뭐라 그랬을까?
1) 도시락은 그냥 가져가야 겠네 좀 아깝다.
2) 시무식이니까 오늘은 그래도 밖에 나가서 같이 밥을 먹도록 하자 응.
3) 뭐 먹고 싶은 거 있어? 이왕 나가서 먹는 거 먹고 싶은 거 먹으러 가자.
4) 사무실로 들어가 도시락 먹어! 왜 나와 엉!
애석하게도 정답은 4번 되시겠다.
문제는 자기가 사는 밥도 아닌 소장님이 밥을 사겠다는 것인데. 왜 저런 예쁘지 않은 말을 했을까? 아니나 다를까 여직원 A는 표정이 굳어지며 정색을 하며 대꾸했다.
X팀장님.. 말 좀 예쁘게 하면 안돼요?? 꼭 그렇게 말을 해야 겠어요..??"
자기가 내뱉고 분위기 심상치 않게 돌아가는 걸 감지했는지 잠깐 뚱한 표정을 짓는다. 나 역시 황당하였기에 말을 보탰다.
진짜 사무실로 돌아가서 도시락 먹을까? 그러길 바래.??
그러더니만 이 양반 대뜸 하는 말이.
1) 아 미안 미안 내가 말이 심했네..농담이야 미안~
2) 아이 메차장님 왜 그러세요. 농담한 건데.
3) 그래 가! 가서 도시락이나 먹어!
4) 아닙니다. 제가 죽을 죄를 지었습니다.
정답은 3번 되시겠다.
흠 이 사람이 왜 그럴까? 혹시 신혼인데도 자신의 아내가 도시락 싸주기를 거부해서 빈정이 상한 걸까? 아님 아침밥도 못 먹고 나온다는 반발 심리일까? 그것도 아님 그때 자기 아내 제주도 못 가게 한 앙금이 아직도 남아 있는 걸까? 그것도 아니면 저번에 퇴근길 군것질로 떡볶이, 오뎅 먹으며 깨진 만원이 아까워서 그런 걸까? 이도 저도 아니면 실장과 메차장은 직원들에게 밥도 사주고 간식도 사주고 맛난 고기도 종종 사주는데 자기는 그런데 돈을 쓰는 게 아까워서 직원들에게 쪼잔 하단 평가를 받아서 그런 걸까?
이유야 어찌되었던 그냥 넘어가면 안 될 것 같아 한마디 더 거들어줬다.
(비릿하게 웃으며) 지금 한 말....뒷감당...할 수 있어.? 내 뒤끝의 유효기간은 반년인데 어쩔까나?
20분 후 우린 사이좋게 모여 앉아 맛있는 전골요리를 먹고 있었다. 표면적으로는 말이다.
이왕 내뱉는 말 예쁘게 하고 볼 일이다. 예쁘지도 않고 다정하지도 않게 내뱉는 말 한마디로 자기보다 어린 여직원에게 개무시 당하는 수모를 당하지 않으려면 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