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야곱의 사다리
노아 벤샤 지음, 공경희 옮김 / 북스캔(대교북스캔) / 2004년 7월
평점 :
절판
내가 싫어하는 종류의 책이 있다.
뭐뭐뭐 하는 몇 가지 방법!
하룻밤에 읽는, 한권으로 읽는 무엇무엇무엇....
이런 제목들의 책은 너무 상업적이고 내용도 실망일 때가 많아서 대체로 좋아하지 않는 편이다. 필요에 의해서 보기도 하고 구입도 하지만, 안 좋아하는 것은 사실.
그리고 장르로 따지면 처세술에 관한 책들을 안 좋아한다.
폰더씨의 위대한 하루도 참 별로였고, 누가 내 치즈를 옮겼을까도 정말 별로였다.
그래서, 이 책을 도서관에서 집어들 때도 시큰둥했다. 뻔하겠지. 베스트셀러라고 다 좋은 책이겠어? 라는 비아냥도 섞어가며...
그래도, 전세계의 많은 사람들이 읽었다니까 궁금하기는 했다. 어떤 내용인지.
이번에도 내 기대를 저버리지 않고 실망스럽다면 "그럼 그렇지!"하며 내던질 요량이었다.
그런데, 뜻밖에도 책이 너무 괜찮았다.
내 선입관과 편견이 부끄러워질 만큼.
대단할 것도 없어보이는 빵장수 야곱은 그가 사는 마을의 현자다.
그가 어떤 마을에 살고 있는지, 어떤 시대를 살고 있는지 책은 말해주지 않았다.
그에게 어느날 한 아이가 맡겨진다. 요나라는 이름을 가진 아이는, 야곱의 곁에서 그를 닮아가며 성장한다.
그리고 그는 또 하나의 현자가 되어 그를 촌장으로 맞아들일 마을로 돌아가기 위해 야곱과 작별한다.
작품은 긴 시간을 뛰어넘으며 그들의 이야기를 보여주는데, 그 안에서 성장해가는 요나의 모습과, 그리고 더불어 발전해 가는 야곱의 모습을 지켜볼 수가 있다.
작품을 보면서, 왜 '야곱'이고 왜 '요나'일까를 생각했다.
성경에서는 "아브라함의 하나님" "이삭의 하나님" 이란 표현이 많이 나온다. 그러나 "야곱의 하나님"이란 말만큼 많이 나오진 않는다.
야곱은 할아버지 아브라함이나 아버지 이삭보다 문제가 많은 사람이었다. 형님의 장자의 명분을 팥죽 한그릇에 사들일 만큼 영악했고, 형님의 장자의 축복을 가로채기 위해서 아버지를 속였다. 자신을 죽이려드는 형님의 눈을 피해 하룻밤에 멀리 도망갈 만큼 겁도 두려움도 많았던 그는, 자신보다 한술 더 위인 사기꾼 장인을 만나 엄청시레 고생을 하며 아내를 맞이한다.
그의 고생은 거기서 끝나지 않아 열두 아들 중에 특별히 사랑했던 요셉은 형제들 손에 의해 애굽으로 팔려가 그는 긴 시간 아들이 죽은 줄로만 알고 지냈다. 그리하여 그가 다시 요셉을 만났을 때, 요셉을 통하여 애굽왕 바로를 만났을 때 . "내 나그네의 생이 130년이니 내 조상의 시간에 미치지 못하나, 험한 시간을 보내었나이다."라고 고백한다.(조금 틀릴 지 모르겠지만 대강 저런 의미였다..;;;;;)
한마디로 야곱은, 흠도 많았지만 그만큼 인간적이었던 사람으로 읽혀진다. 그래서 그의 이름을 따서 야곱의 하나님이란 말이 더 많이 나왔을 거라고 나는 짐작한다.
이 책에서 야곱이란 이름의 주인공은 현자다. 그러나 그는 아직도 배울 것이 많고 스스로 깨달아야 할 것들이 많은 것을 아는 겸손한 현자다. (겸손함을 알기에 현자라고 부를 수 있을 것이다.)
그렇다면 왜 요나일까?
요나는 니느웨에 회개하라는 명을 전하러 갔지만, 패악한 그들의 모습에 염증을 느끼며 왜 그들을 구원해야 하느냐며 하나님께 항의하다가 고래 뱃속에 삼키워져 사흘간 암흑 속에 있게 된다. 다시 지상으로 돌아와서야 하나님의 명령에 순종하지만 그는 다시금 불순종으로 하나님의 뜻을 거역한다. 하룻밤새에 자란 나무의 그늘 아래서 편안함을 맛보던 그는, 벌레 한마리가 나뭇잎을 갉아 먹고 동풍이 불어와 뜨거운 기운이 닥치자 자신에게 고통을 준 하나님께 원망의 말을 한다. 그때 하나님은 하룻밤새에 얻은 나무 그늘에도 네가 억울해 하거늘, 저 니느웨 성에 있는 수만 사람이 내게 어떻겠느냐고 그에게 깨달음을 주신다.(너무 오래 전에 읽어서 역시 정확한 설명인지 자신 없지만 아무튼 이런 얘기였다..;;;;;)
작품 속의 요나가 딱 그랬다. 아직 어렸고 철없던 시절의 요나는 왜 그래야 하느냐고 야곱에게 항의하기 일쑤였다. 그러나 시간이 흘러 야곱을 닮아간 그는, 자연스레 또 하나의 야곱이 되어 있었다.
그들이 나누는 선문답같은 이야기와, 주변 사람들과 나눈 대화들을 떠올려 보면,
오늘을 사는 우리에게 많은 시사점과 또 깨달음을 준다. 결국 불평이라고 하는 것은 스스로의 부족함에서 나오기 마련이었고, 그것을 인정하기 싫어서 남탓을 하는 우리를 발견하게 된다.
사람이 나이를 먹어가면서 즐거워질 수 있고 감사할 수 있는 한 부분은,
인생의 연륜이 우리의 모난 부분을 깎아내며 겸손함을 가르치게 하는 것이 아닐까.
겸손함을 알지 못한 나이는 그 자체로 생에 대한 모독이 아닐까 하는 마음이 들었다.
이 씨리즈가 더 있던데, 몇편을 더 찾아서 읽어야겠다.
서평을 보니 반응들이 극과 극이지만, 결국 최종 판단자는 나 자신이 되어야 할 테니. 이번엔 입소문보다 내 자신의 마음의 창에 더 자세히 비쳐봐야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