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M, JYP, YG 영욕의 10년
“음반만 4~5만 장 정도를 파는 것은 제작자 입장에서는 아무런 의미가 없다. 이 상황을 타개하기 위해서는 해외 진출이 필수적이고, 해외 진출에는 드라마 출연이 함께 이뤄져야 그 효과가 극대화된다는 사실은 인정해야 한다.” 이 말을 한 사람은 YG 엔터테인먼트(이하 YG)의 양현석 이사다. 이 말은 현재 가요시장의 상황을 단적으로 함축한다. 음반시장은 이제 불황이 아닌 몰락을 이야기해야 할 판이고, 이 때문에 가수들의 타 분야 활동은 선택이 아닌 필수가 됐으며, 현재 음악 기획사가 가장 큰 수익을 기대할 수 있는 곳은 국내시장이 아닌 아시아 전역이다. SM엔터테인먼트(이하 SM)의 H.O.T가 데뷔하고, 서태지와 아이들의 멤버였던 양현석이 그룹 킵식스를 데뷔시키며 지금의 YG의 초석을 닦고, JYP엔터테인먼트(JYP)의 박진영이 ‘딴따라’로 명성을 떨치던 시절로부터 10년. 그 10년 동안 음반 100만 장 판매 시대와 사상 최악의 불황을 모두 보내며 새로운 도전의 기로에 선 음악 산업의 3강, SM, YG, JYP의 과거, 현재, 미래를 짚어보았다.
SM의 신화는 H.O.T로부터 시작됐지만, SM의 시작은 현진영부터였다. 그런데 현진영은 지금 SM의 방향과는 정반대였다. 현진영은 가수의 캐릭터보다는 힙합이라는 음악 장르적 정체성을 통해 자연스럽게 자신의 캐릭터를 형성했고, 거리에서도 입고 다닐 수 있을 정도의 의상과 거친 이미지로 10대 여성보다는 오히려 10~20대 사이의 남성에게 어필했다. 그러나 현진영이 마약 복용으로 구속되고, 이수만은 실패를 경험하면서 그의 매니지먼트 전략은 180도 변한다. 잘생기고 캐릭터가 뚜렷한 10대 소년들, 화려한 무대의상, 그리고 이름부터 ‘10대’였던 철저한 10대 소녀 지향의 콘셉트. 그때 이수만은 자신의 변신이 대중음악계 전체를 변화로 이어지리라고 생각했을까.
이수만이 현진영의 음반을 제작했다는 것은 중요하다. 그가 단지 돈 때문에 현진영의 매니지먼트를 했던 것은 아니다. 그는 미국에서 전자 음악 및 컴퓨터 엔지니어링을 전공했고, 라디오 프로그램을 진행하던 1990년대 초반에는 당시 국내 팬들에게는 이름조차 생소했던 제시 제프 앤 프레쉬 프린스(윌 스미스가 소속돼 있던) 등 1990년대 초반 미국의 메이저 힙합/R&B를 소개하기도 했다. 즉, 이수만은 절대 음악에 무지하지도, 트렌드를 모르지도 않았다. 한 작곡가는 이수만에 대해 “녹음할 때 어떤 사운드를 넣고 빼달라는 이야기까지 구체적으로 하기도 한다”고 말했다. 즉, 이수만은 자신이 추구하는 콘셉트에 맞춰 음악을 조율할 수 있는 사람이다. 가수에게 철저하게 이미지 콘셉트를 부여하는 매니지먼트 전략과 그에 맞춘 음악을 만들어낼 수 있는 전략. 그것은 SM이 그들만의 음악과 스타일, 그리고 팬층을 가질 수 있는 이유가 됐다.
여성그룹 S.E.S와 일본에서 성공을 거둔 보아를 제외하면 SM은 언제나 캐릭터가 뚜렷한 남자들이 모인 그룹이 회사를 이끌었다. 아무리 유치하다는 소리를 들을지라도 SM이 유노윤호와 영웅재중처럼 멤버들의 이름을 기억하기 쉽게 바꾸고, 늘 멤버별 파트와 리더, 막내 같은 역할을 정해준 데는 이유가 있다. 거기에 자신이 생각하는 콘셉트에 맞춰 음악을 프로듀싱할 수 있는 이수만의 능력은 SM 남성 그룹의 음악이 종종 음악 자체로 기능하기 이전에 멤버들의 이미지를 더욱 부각시키는 수단으로 쓰이도록 만들었다. H.O.T, 신화, 동방신기 그리고 슈퍼쥬니어는 모두 통과의례처럼 ‘열맞춰’ ‘Yo!’ ‘Rising sun’ ‘Twins’ 등 반드시 한 번 이상 헤비메틀과 댄스음악이 기묘하게 결합된, 이제 SM 스스로 SMP(SM Music Perfomance)라는 이름으로까지 장르화시킨 음악들을 들고 나왔다. 이런 음악은 팬들 바깥에서는 쉽게 받아들여지지 않았지만 적어도 H.O.T와 신화의 시대에는 10대 팬들을 집결시키는 힘을 가지고 있었다. 빼어난 외모와 강렬한 비주얼, 그리고 캐릭터가 뚜렷한 남자들이 카리스마적인 록에 맞춰 춤을 춘다는 것은 소녀팬들이 그리던 멋진 이미지의 그룹을 그대로 재현한 것이었다(그 점에서 SM 소속 아이돌 그룹의 모델은 X-JAPAN 등의 비주얼 록 그룹 아니었나 하는 생각도 든다). 음악 자체만을 놓고 보면 문제가 있더라도 ‘Rising sun’에서 최강창민이 절규하듯 멜로디를 부르는 부분은 그 자체로 팬들이 꿈꾸는 멋진 순간을 만들어낸다.
즉, SM은 근본적으로 10대 여성(그리고 이제는 H.O.T 시절을 보낸 20대 여성까지)을 타깃으로 하고, 모든 것을 그들을 집중적으로 공략하는 방식으로 움직인다. 그래서 SM은 10대 중후반, 늦어도 20대 초반의 아이돌 스타들을 끊임없이 데뷔시키고, 그때의 10대들을 또 다시 열광시킨다. 이것이 10년째 계속되면서 SM은 그들만의 독특한 프로모션 루트를 가진다. SM 소속 연습생들은 이미 SM이라는 이유만으로 10대 팬들을 중심으로 그 이름이 알려지고, 그들이 무얼 하기도 전에 그들의 사진은 싸이월드 미니홈피 등을 통해 곳곳으로 퍼져나간다. ‘얼짱’이 유행하면서 가장 큰 덕을 본 곳은 다름 아닌 SM이다. SM이야말로 10대들의 얼짱이란 얼짱은 다 모아놓은 곳이니까. 음악적으로는 저마다 그 평가가 다르겠지만, 기업으로서의 SM은 의외로 캐스팅, 기획, 음악 그리고 홍보까지 모두 뚜렷한 소비자를 정하고 일관된 움직임을 보이는 영리한 회사다. 물론, 그 과정에서 SM이 보여준 부작용에 대해서는 따로 짚고 넘어가야 하지만.
10대 시장은 1990년대 한국 엔터테인먼트 시장에서 가장 큰 영향력을 행사했고, 철저하게 이들의 시장에 맞춘 SM의 전략은 여전히 강력한 힘을 발휘한다. 현재의 SM 소속 연예인들은 교복 CF 등 10대 위주의 상품 CF로 얼굴을 알리고, KBS <반올림>, MBC <레인보우 로망스> 등 10대들이 좋아하는 작품을 통해 인지도를 높이며, 그 과정에서 생긴 팬들은 꾸준히 그들에게 성원을 보낸다. 10대 중심의 온갖 버라이어티 쇼에 출연하며 어느새 인기 아이돌 집단이 돼버린 슈퍼쥬니어가 그 대표적인 예다. 그리고, 이런 SM의 시스템은 중국에서도 그대로 반복되고 있다. 동방신기가 괜히 10년 전 H.O.T를 보는 것 같은 ‘Triangle'을 들고 나온 것이 아니다. 그러나, 동시에 이는 SM의 한계다. 10대가 좋아할 만한 스타일의 아이들을 뽑아 철저하게 10대 위주의 마케팅을 하다보니 보다 넓은 층의 소비자를 끌어들이지 못한다. 10대 중심의 음반시장만으로도 충분했던 과거에는 그것이 상관없었으나, 지금 이것은 SM 소속 연예인들이 그 빛나는 외모를 가지고도 20대에게 어필하는 톱스타로 떠오르지 못하는 이유로 작용하고 있다. 특히 요즘은 20대 중반 이상의 배역을 소화할 수 있는 이미지의 연예인이 드라마에 출연해 그 효과를 극대화해야 국내는 물론 한류시장에서도 성공할 수 있다. 신화가 SM을 나온 뒤 10대 위주의 아이돌 대신 성인 남자의 이미지로 변신해 드라마에서까지 성공을 거뒀다는 것은 일종의 역설이다. SM은 지금까지 키워온 스타들을 20대 중후반 이상에게도 소비될 수 있도록 성장시켜야 할 필요가 있다.
실제로 최근 SM은 어느 정도 변화의 움직임을 보여주고 있다. 고아라는 <반올림>의 10대 스타에서 갑작스레 몸매를 드러낸 CF를 통해 성숙한 이미지를 만들려 했고, 더불어 드라마 <눈꽃>의 출연으로 성인 연기자로의 변신을 준비하고 있다. <백만장자의 첫사랑>의 고등학생에서 <어느 멋진 날>로 조금씩 성숙한 이미지로 변신하고 있는 이연희도 마찬가지. 또 동방신기는 최근 활발한 토크쇼와 버라이어티쇼 출연을 통해 ‘Rising sun’의 카리스마적인 이미지 대신 친근하고 유머감각 있는 이미지를 더하고 있다. 앞으로 SM의 관건은 이들이 10대의 우상일 뿐만 아니라 얼마나 무게감 있는 스타로 변신할 수 있느냐에 있다. SM 소속가수이면서도 유일하게 일본 소속사의 음악 제작과 프로모션을 통해 노래와 춤이 모두 뛰어난 아티스트적 이미지의 아이돌로 대성공을 거둔 보아가 SM 소속 연예인 중 유일하게 톱 브랜드 CF에 출연하고 있다는 것은 SM으로서는 생각해볼 만한 부분이다.
누구나 다 알듯이 서태지와 아이들의 양현석이 킵식스를 데뷔시키며 설립한 ‘현기획’으로부터 YG의 역사가 시작됐다. 당시에 대중들에게 생소했던 R&B 성향의 음악을 들고 나온 킵식스는 비록 실패했지만, 양현석은 방향 전환하지 않고 자신의 실수를 수정하며 흑인음악을 꾸준히 시도했다. 킵식스 이후 그가 데뷔시킨 지누션은 멤버의 이름을 내세운 그룹명으로 두 남자의 캐릭터를 부각시켰고, 음악 역시 ‘가솔린’과 ‘말해줘’ 등에서 좀더 댄스음악에 가까운 성격이 가미되면서(‘가솔린’은 지금 들으면 랩 중심의 힙합이지만, 그때 지누션은 그 음악에 맞춰 꽤 격렬한 춤을 췄다) 당시 트렌드를 따라갔다. 그 당시에는 언더그라운드 힙합 팬들에게 힙합을 상업적으로 악용한다느니 하는 말도 들었지만, 그 후 10년 동안 힙합과 R&B 음악을 꾸준히 만들어내고, 45rpm같은 언더그라운드 뮤지션을 오버그라운드로 데뷔시키며, 힙합 전문클럽을 가장 먼저 만든 곳은 결국 YG였다.
서태지와 아이들 시절만 해도 양현석은 댄서였다. 하지만 이수만과 마찬가지로, 지금의 양현석은 음악적 지식이 상당한 제작자다. 그는 한국에서 거의 유일하게 자신이 소속가수의 앨범을 직접 믹싱하는 엔지니어이고, 지누션의 데뷔곡 ‘가솔린’은 그가 작곡한 곡이다. 다만 자신의 음악적 능력을 멤버의 캐릭터를 부각하는 곡들을 프로듀싱하는 데 초점을 맞추는 이수만과 달리 양현석은 그 초점을 장르에 맞춘다. 또한 그는 이미 전문 제작자이면서도 서태지와 아이들 출신의 톱스타의 위치를 효과적으로 사용한다. 연예인으로서의 활동은 하지 않지만 그는 홈페이지를 통해 회사의 입장에 대한 글을 남기면서 그의 팬들에게 여전히 ‘양군’으로 남아 있다. 그는 단지 ‘사장님’이 아니라 YG 소속가수는 물론 그들의 팬들까지 ‘패밀리’가 되도록 하는 구심점이다.
YG는 두 가지로 집약된다. 장르, 그리고 패밀리. M-BOAT와 연합해 거미와 휘성, 빅마마 등의 앨범을 제작하면서 발라드적인 음악도 함께 만들게 됐지만, YG의 장르적 중심은 여전히 힙합과 R&B를 중심으로한 흑인음악에 있고, 1999년에 양현석이 클럽 NB를 인수해 시작한 클럽사업은 그 이미지를 더욱 굳히는 역할을 했다(지금 생각해보면 이건 단지 회사 이미지뿐만 아니라 경영상으로도 현명한 선택이었지만). 최근 데뷔한 아이돌 그룹 빅뱅 역시 힙합음악을 한다. 또한 YG는 소속가수들이 다른 곳으로 이적하지 않기로 유명하다. 만약 휘성이 SM 소속이었다면 그의 이적 사실은 그렇게 이슈가 되지도 않았을 것이다. 이것은 YG가 그들의 고정 팬으로부터 꾸준한 신뢰를 얻는 기반이 됐다. SM보다는 좀더 성인 취향의 음악을 듣고 싶거나, 좀더 음악에 집중하는 이미지의 가수들을 좋아하고 싶다면 YG를 선택하면 됐다. YG의 소속 가수들은 어느 정도 부침이 있을지라도 YG가 꾸준히 업계의 강자로 자리잡을 수 있는 것은 이 때문이다. 아이돌 그룹의 라이벌 관계는 SM과 DSP였지만, 음반 산업 전체에서 SM의 대립각을 세울 수 있는 것은 YG였다. 그리고 그것은 음반시장의 불황이 시작되던 2003년 ‘노래 잘 부르는 가수’라는 콘셉트 아닌 콘셉트를 들고 나온 빅마마를 비롯한 M-BOAT와 YG 연합 가수들이 성공을 거둔 것은 YG의 브랜드에 힘 입은 바 크다. 또한 한 번 소속된 가수는 설사 원타임처럼 2년에 한 번씩 앨범을 내고, 활동 기간이 불과 2~3개월인 상황에서도 꾸준히 앨범을 낸다. 비는 시간에는 작곡가로서의 역량을 키우도록 하는 YG 특유의 시스템은 가수들이 하나씩 성장하고, 점점 더 그 숫자가 불어나 뿌리 깊은 나무가 되도록 만들었다. 누가 1집 시절의 원타임을 보며 테디가 세븐의 타이틀곡을 쓰는 작곡가로 성장하리라 생각했겠는가. 현재 한국에서 회사의 원년부터 활동했던 멤버부터 지금의 신인까지 거의 모든 가수들이 데뷔 당시 그룹의 형태를 그대로 유지한 채 합동 콘서트를 열 수 있는 회사는 YG밖에 없다. 명분은 때론 의미 없어 보이지만, 그 명분을 실천하다 보면 명분만큼 강력한 것도 없다. 그 명분을 지킨 것이 YG의 힘이다.
드라마 <궁> 시즌2에 세븐이 주연으로 출연하게 된 것은 세븐은 물론 YG에게 있어 중요한 고비가 될 것이다. 다른 기획사라면 세븐이 드라마를 출연하는 것이 전혀 문제될 것이 없다. 그러나 음악을 모든 활동의 중심에 놓은 YG에서 그것은 회사의 성격 변화를 의미한다. 물론 이는 시장 상황이 세븐이 데뷔하던 2003년 당시와는 또 다르게 변했기 때문이다. 아무리 좋은 음악을 만들어도 대중이 인지할 수 있는 가수의 캐릭터가 없으면 음악은 좀처럼 팔리지 않고, 음악이 아무리 잘 팔린다 해도 드라마에 성공한 가수 겸업 연기자보다 성공할 수 있다고 장담하긴 어렵다. 특히 음악업계의 새로운 주 수입원이 된 한류시장이 드라마와 가수의 음원과 공연활동을 패키지로 했을 때 그 파괴력이 극대화된다는 것은 이미 정설이다. 그러니 YG 소속 가수들 중 어디로 봐도 드라마 출연이 가장 용이한 세븐의 드라마 출연은 정말 도 닦듯이 음악만 하겠다는 생각이 아니라면 필연적이라고도 할 수 있다. 그러나, YG나 세븐이 연기활동을 이유로 음악에 소홀해지면 그들이 지금까지 쌓은 브랜드 이미지는 순식간에 무너질 수도 있다. 다른 분야의 활동이 활발해질수록, 그들은 오히려 음악의 완성도에 더 신경 써야 한다. 하지만 반대로 점점 더 늘어만 가는 소속 가수들의 숫자와 그만큼 늘어나는 제작비를 얻기 위해서는 소속 가수들이 더욱 적극적으로 엔터테이너로 나서야 한다. 명분과 실리의 이상적인 결합. 그것이 현재 YG의 목표이자 딜레마다. 그래서 빅뱅은 결성 단계부터 리얼리티 쇼를 통해 멤버 선발 과정을 보여주는 등 아이돌 그룹을 표방하고 나섰지만, YG가 그들에게 부여한 이미지는 ‘실력 있는 아이돌’이었다. 빅뱅의 음악적 기반은 여전히 YG의 근본인 힙합이다. 또 세븐은 4집 앨범에서 가수로서의 실력을 보여주기 위해 춤을 거의 추지 않는 발라드 음악을 타이틀곡으로 들고 나올 예정이다. YG의 팬들에게 음악의 완성도에 대한 동의를 얻어야 다른 것도 순탄하게 할 수 있다. YG는 변화를 추구하면서도 꾸준히 자신들의 정체성을 유지할 필요가 있다. 단, 이 모든 YG의 변화에는 세븐의 미국 진출이라는 변수가 있다. 한국에서는 세븐의 <궁> 시즌2 출연 소식에 밀려버렸지만, 세븐이 미국에서 함께 작업하는 마크 쉬멜이나 리치 해리슨 등은 지금 현재 팝계 최고의 영향력을 가진 제작자와 프로듀서다. 만약 그들이 평소의 역량을 발휘해 앨범을 제작하고, 세븐이 이를 통해 미국내 아시아계의 지지를 얻는다면 지금까지의 모든 이야기는 쓸 데 없는 것이 될 수도 있다.
박진영은 데뷔 당시부터 아이돌이 아니라 ‘잘 노는 성인 남자’의 이미지였다. 더불어 그는 작곡가이자 프로듀서이기도 했다. 이것은 그가 애초에 완전한 제작자로 이수만이나 ‘오빠’의 위치에서 제작자를 겸하게 된 양현석과 달리 자연스럽게 제작자로 변신하도록 했다. 제작자 활동을 하면서 god를 데뷔시키고, 더불어 ‘난 여자가 있는데’같은 곡으로 차트 정상에 오를 수 있었던 것이 박진영이었다. 그 자유로운 포지션은 박진영이 소속 가수들의 앨범에 참여하는 것만으로도 인지도를 높이는 것으로 이어졌고, 이는 god 데뷔와 박지윤의 ‘성인식’ 앨범에서 큰 힘을 발휘하며 JYP의 첫 번째 전성기를 이끌었다.
자신이 스스로 밝힌 대로, 박진영은 앞으로도 자신의 정규 앨범을 꾸준히 낼 계획이 있는 현역 가수다. 또한 그는 JYP 음악의 상당부분을 직접 프로듀싱할 뿐만 아니라 비와 god의 앨범 수록곡 중 상당수를 만드는 작곡가다. 지금도 그는 빌보드 진출 등으로 인해 JYP 내에서 비와 함께 가장 주목받는 스타다. 그리고 모두 알다시피, 그것은 JYP의 가장 큰 장점이자 가장 큰 단점이 돼왔다. 박진영이 표절 시비에 오르면 JYP의 모든 가수들의 이미지가 떨어지고, 반대로 박진영이 빌보드에 진출한 뒤로는 JYP 가수들은 양질의 곡뿐만 아니라 하나의 고급 브랜드를 감싸는 것과 마찬가지였다. 박진영이 소속 가수의 앨범에 “JYP!”를 외치며 자신의 인장을 찍는 것은 자기 과시라기보다는 그만큼 박진영의 영향력을 증명하는 것이라고 할 수 있을 것이다.
자신이 직접 소속 가수들의 타이틀 곡을 쓰고, 자기 스스로가 스타인 박진영의 JYP는 곧 박진영 개인의 스타일이 가수들에게 그대로 투사되는 시스템을 형성한다. 이는 10대 위주의 소비자를 공략하는 이수만에게도 나타나는 현상이지만, 박진영은 자신이 직접 노래를 작곡한다는 점에서 그것이 보다 뚜렷하게 드러난다. 박진영의 노래를 하려면 흑인음악을 소화할 수 있는 음색이 갖춰져야 한다. 그리고 기존 한국 발라드와 달리 R&B와 지나친 고음보다는 리듬을 기반으로 하며 깔끔하고 반복적인 멜로디를 잘 쓰는 그의 음악을 소화하기 위해서는 마냥 어려서는 안 된다. 그만큼 박진영은 흑인 음악에 어울리는 목소리와 이미지를 가진 가수들을 뽑는 경향이 있다. 그가 량현량하를 제외한 모든 소속 가수들에게 대학에 들어가야 앨범을 내주겠다고 공언하는 데는 분명한 이유가 있다. 그것은 가수의 인격적인 성숙을 고려한 것이겠지만, 더불어 그의 음악을 소화하기 위해서는 그 정도의 나이와 생각을 가지고 ‘어른스러움’을 표현할 수 있어야 한다.
그래서 박진영의 음악은 그 음악 자체로 나름의 시장을 가질 수 있다. 그의 음악은 기존 한국 음악보다는 좀더 세련된 팝과 R&B, 보다 정확히 말하면 그런 음악들에 한국적인 느낌을 가미한 음악을 듣고 싶어하는 성인 음악팬에게 통할 수 있는 부분들이 있다. god가 큰 성공을 거두기 전에도 ‘어머님께’는 20대를 중심으로 스테디셀러가 됐고, 진주 역시 어떤 이미지 메이킹 없이 싱글로 성공했다. 그리고 이런 음악에 성인들에게 어필할 수 있는 가수의 캐릭터가 덧씌워지면 그 파급력은 엄청나다. 그것은 10대뿐만 아니라 20대까지 JYP 가수의 열광적인 팬으로 만들 수 있기 때문이다. god와 비를 보라. god가 대중적인 인기를 얻게 된 것은 ‘god의 육아일기’를 통해서였고, 비가 본격적으로 상승세를 타기 시작한 것은 마니아 드라마가 된 KBS <상두야 학교 가자>를 통해서였다. 두 작품 모두 주 소비층은 10대가 아닌 20대 이상의 여성들이었고, 여기에 20대 성인 남자의 이미지를 잘 살려줄 수 있는, 즉 박진영이 꾸준히 해왔던 그 음악들은 20대 여성팬들이 god와 비에 완벽하게 빠져들게 만드는 뇌관 역할을 했다. 박지윤의 ‘성인식’이 큰 성공을 거둘 수 있었던 것도 그전까지는 소녀 같은 이미지였던 박지윤과 그와 정반대 콘셉트의 곡을 만들어낼 수 있는 박진영의 결합이 큰 화학작용을 일으켰기 때문이다.
또한 여기서 간과할 수 없는 것은 JYP의 홍보력이다. JYP는 그들을 좋아하건 싫어하건 관심이 가지 않을 수 없는 이슈를 만들어내고, 그것을 적절한 홍보를 통해 알린다. 박진영이 기획한 두 번의 리얼리티 쇼, 빌보드 진출 등은 늘 이슈를 만들어냈고, JYP는 그것을 대대적으로 홍보해 브랜드 이미지를 높였다. 특히 비가 한국을 비우면서까지 아시아투어를 감행, 그 성과를 통해 아시아 톱스타로서 비의 위치를 한국에 분명하게 보여준 것은 JYP의 기획과 홍보력의 정점이라 할 수 있다. 뮤지션으로서는 여전히 찬반이 엇갈리긴 하지만, 박진영은 기존 가요계에서 보지 못했던 시장을 보고, 그것들에 과감하게 올인하면서 자신과 JYP의 브랜드 가치를 높여왔다.
다른 제작자들도 마찬가지지만, JYP의 강점은 그대로 JYP의 약점이 된다. 20대 성인이 즐길 수 있는 팝음악을 만들어내는 박진영의 능력은 그에 어울리는 이미지를 만들어내는 캐릭터가 있을 때 극대화된다. 하지만 그런 캐릭터가 없을 때는? 그러면 노래는 기억해도 가수는 잘 기억나지 않는다. god와 비, 박지윤은 성공했지만 그런 캐릭터가 없었던 나머지 가수들은 그들만큼 큰 성공을 거두지는 못했다. 또 박지윤의 후속작들은 박진영의 콘셉트가 박지윤의 캐릭터에 비해 지나치게 강하거나 섹시하면서 실패했다. 그런데 문제는 박진영의 색깔이 강하게 존재했던 JYP가 음악 이외의 매니지먼트에는 강하지 못했다는 점이다. god와 비처럼 자기 스스로 음악 외 활동에서 캐릭터를 만들어낸 경우가 아니면 JYP는 SM처럼 기획사 내에서 기획한 캐릭터와 프로모션을 통해 큰 성공을 거둔 적은 없었다. JYP가 비와 god에 비해 다른 가수들이 부진한 성적을 거두는 이유다. 그리고, 모두 알다시피 그것은 현재 비와 JYP의 브랜드 가치 중 어느 것이 크냐는 질문에 누구도 JYP라고 쉽게 말할 수 없는 현실에 이르렀다. 박진영 개인의 이미지가 좋다, 나쁘다 하는 것은 이제 오히려 부차적인 문제다. 문제는 JYP가 소속 연예인 개개인의 매력에 기대지 않고 자체적인 기획을 통해 음악이 아닌 스타를 얼마나 안정적으로 만들어낼 수 있는가 하는 것이다(물론, 지금 당장 해결해야 할 문제는 비의 재계약이지만).
물론, 박진영은 그 해결책 역시 자신만의 방법으로 찾는 듯하다. 그는 자신과 비의 미국 진출을 이끈 데 이어 점차 반응을 얻던 임정희까지 미국으로 진출시킬 계획이다. 국내 활동보다 오히려 해외, 그것도 뚫기 가장 어렵다는 미국 진출에 주력하는 것은 대단한 모험이다. 하지만 1집에서 큰 성공을 거두지는 못했던 god와 비가 그렇게 될 것이라고 누가 생각했고, 박진영이 정말로 미국 유명가수들에게 곡을 주는 인물이 되리라고 누가 생각했나. 어떤 이는 모험을, 어떤 이는 안정 속의 변화를, 어떤 이는 그 미묘한 변화를 추구하면서 새로운 시장을 찾는다. 미우나 고우나, 그들은 지금 이 시간에도 살아남기 위해 모든 노력을 다하고 있다.
(글) 강명석 ( <매거진t> 기획위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