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의 형, 빈센트 쪽빛그림책 7
이세 히데코 글.그림, 고향옥 옮김 / 청어람미디어 / 2009년 6월
절판


내가 참 좋아하는 이세 히데코의 작품이다. 개인적으로 양장본에 같이 겹쳐 나오는 이중 커버를 좋아하지 않지만, 이렇게 책 표지와 겉껍데기의 표지 분위기가 확연히 달라질 때는 어쩐지 선물을 받은 기분이 들 때가 있다.
노란 겉표지는 빈센트하면 떠오르는 강렬한 노란색이지만,
커버를 벗겨낸 뒤의 푸른색 표지는 그의 우울했던 정서와 고독감을 느끼기에 충분한 색감을 보여주고 있다.
리뷰 쓰려고 사진을 찍어둔지 꽤 되었는데 그사이 바빠져서 잠시 방치해 두었더니 언니가 노란 겉표지로 부채질 하다가 하단 부분을 찢어먹었다. 아, 부들부들....;;;;

제목에서 느껴지듯이 이 책의 화자는 빈센트 반 고흐의 동생 테오다.
빈센트에게 있어서는 영혼의 반려자 같은 존재가 아니었을까.
테오에게도 마찬가지로 말이다.

나에게는 형이 있었습니다.

-라며 이 책은 시작한다. 형의 무덤 앞에 형이 좋아했던 해바라기를 놓는 테오의 그림자가 무척 어둡고 무겁다. 왜 아니 그렇겠는가.
황금빛 밀밭 춤추는 물결 속에서 베어진 밀 냄새와 형의 냄새를 모두 느낄 수 있다. 그렇지만 형은 어디에 있는가?
서늘한 느낌으로 첫 장을 열어본다.

시작은 네덜란드, 그들의 고국에서 출발한다.
마을에 하나밖에 없던 조그만 교회의 목사였던 아버지는 서재에서 늘 성경을 읽고 계셨지만 밤이 되면 어린 형제들에게 디킨스와 안데르센의 책을 읽어주곤 하셨다.
형이 유난히 좋아하던 크리스마스 캐럴...

봄이 지나고 밀이 쑥쑥 자라는 여름이 되었다.
형과 함께 밀밭 사이를 뛰놀던 추억이 어른거린다.
형은 지금 그 밀밭 사이에 숨어 있는 것일까.
나처럼 떠나지 못하고 내 곁을 서성이는 것일까.

형은 아버지처럼 되고 싶어했다.
기숙학교로 떠날 때 형은 열한 살, 나는 일곱 살이었다.
가족과 떨어져 살아갈 것에 대해 형은 불안과 외로움으로 떨었겠지만, 나는 형이 아버지와 단둘이 비밀 여행을 떠나는 줄 알고 부러워했다.
철없던 시절이었다.
학교를 졸업하고 형은 도시의 화랑에서 일하게 되었다.
그림에 둘러싸여 일하는 즐거움이 편지에 가득 담겨 있었다.
나는 형이 화가가 되면 좋겠다고 생각했고, 아버지는 형이 가난한 목사가 되지 않아서 다행이라고 여겼다.
나 역시 열여섯 살이 되자 곧바로 화랑에 취직했다.

하지만 형은 끝내 아버지처럼 목사가 되고 싶다는 꿈을 버리지 못했다.
화집에 숨겨 몰래 성서를 읽고, 하숙집 벽을 종교화로 가득 메우던 형은 화랑에서 쫓겨났고, 몇몇 직장에서도 정착하지 못했다.
마치 세상에는 형이 앉을 의자란 없는 것만 같았다.
가난한 탄광 사람들을 위해 전도사가 되겠다는 형의 주장에 아버지는 한숨을 쉬셨다.
형은 탄광에 들어가 가난하고 비참한 사람들 가까이 다가갔다.
가진 것을 모두 내주었고 맨발로 설교했다.
하지만 태양을 잊은 칠흑 같은 땅 속에서 형은 오히려 자신의 참 바람을 찾고 말았다.
화가가 되겠다는 형의 외침 속에는 자유의 냄새가 나기까지 했다.
스승이 없었던 형은 자신의 방식으로 그림을 그렸다.
칭찬하는 살마도, 갖고 싶어하는 사람도 없는 그림이었지만 형은 열심히 그렸다.
내가 보내주는 몇 푼 안 되는 돈으로 형은 여행을 계속했다.
풍경 속을 떠도는 눈은 화가로서 형을 성장시켰지만, 고독은 더욱 깊어갔다.
나는 파리에서 그림을 파는 장사꾼이 되었다.
형은 파리의 내 아파트에서 많은 사람들을 초대하며 논쟁을 벌였다.
아파트는 그림들로 가득찼고, 형은 쉴 새 없이 자화상을 그려댔다.
그 얼굴은 형이었고, 곧 나였다.
내게 있어 이기적인 형은 동경의 대상이면서 동시에 미움의 대상이었다.

형은 다시 남쪽으로 떠났다.
남프랑스에 정착한 형은 열심히 그림을 그렸고, 내가 보내준 돈을 작품으로 돌려보냈다.
감사와 요구의 편지를 보내는 형은 타고난 화가였고,
그림을 파는 나는 슬픈 장사꾼이었다.
나는 형의 그림을 한 장도 팔 수 없었으니까...

형의 아틀리에를 찾았던 유일한 한 사람이 있었다.
두 예술가는 서로를 질투하며 치열하게 그림을 그렸고, 양보하지 않았다.
마침내 싸움이 벌어졌고, 친구가 떠난 자리에는 텅빈 두 개의 의자와 형의 오른쪽 귀가 남았다.
남에게 상처를 줄 수 없었던 형은 자신의 몸에 상처를 입혔다.
"내 영혼에 조그만 난로가 있는데, 아무도 불을 쬐러 오지 않는구나."
형은, 자신만이라도 그 조그만 난로의 열기로 몸을 녹일 수 있었을까.
부디 그랬었으면 한다.
형의 열정과 고독과 외로움은 형을 파고들었지만, 그럼에도 그리는 것을 멈추지 않았다.
그림 속에서만 형은 자유로워 보였다.

보이나요, 소나무 숲과 안개에 둘러싸인 마을의 교회가,
구름을 가르고 쏟아지는 봄빛이, 솜털 같은 밀의 새싹이,
역광에 금빛으로 빛나는 히스 들판이며 까치둥지가.

들리나요, 새의 노랫소리가,
하늘 높은 곳에서 형, 형, 형 하고 부르는 노랫소리가.
아아, 단 하나뿐인 나의 형......


알다시피... 빈센트 반 고흐가 죽고 나서 그의 동생 테오도 6개월 만에 형의 뒤를 따른다.
그래서 더더욱 그둘 사이는 영혼의 반려자라는 느낌이 강렬하다.
이 그림은 고흐가 그린 자화상인데, 왼쪽의 인물은 테오라고 암스테르담 박물관이 결론을 내렸다.
실로 닮은 두 사람이다.

이세 히데코는 오래도록 고흐의 발자취를 더듬으며 여행을 했다고 한다. 그가 그려낸 그림은 고흐의 느낌을 잘 살렸으며 자신의 색깔을 잃지도 않았다.
어딘가에서 이세 히데코가 한쪽 눈을 잃었다고 보았는데, 그래서일까 더더욱 한쪽 귀를 잃은 고흐의 그림자가 짙게 드리워진다.
그리움과 외로움을 가득 담아 이 책을 재차 읽어본다.
지상에서 가장 아름다운 형제의 이야기를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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순오기 2011-09-09 20:56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내가 유일하게 대출하지 않는 책은 이세 히데코에요.
작은도서관이 되어도 이세 히데코는 밖으로 내돌리지 않을거에요.
아름다운 형제, 노랑과 파랑과 보라처럼 어울리는...

마노아 2011-09-10 10:20   좋아요 0 | URL
이세 히데코는 너무 소중해요.
순오기님의 작은 도서관에서 이세 히데코를 대출하려면 책이 스페어로 하나 더 있어야겠어요.
중고책으로 하나 더 장만하세요.^^
저는 이 책은 아무래도 알려진 이야기니까 큰 기대 없이 보았는데 너무 좋아서 막 가슴이 시린 거예요.
어휴, 이세 히데코 최고예요. 고흐 형제도 최고구요!

순오기 2011-09-10 13:51   좋아요 0 | URL
어흐~ 나도 이 책 보면서 맘이 막 아팠어요.ㅜㅜ
금슬 좋은 부부도 한사람이 먼저 떠나면 곧 뒤따라 가던데,
고흐 형제도 앞서거니 뒤서거니 그곳에서 만나 같이 지내지 않을까 생각하면 조금 위로가 돼요.^^
기웃거려보는데 이세 히데코는 알라딘 배송 중고샵엔 안 나와요.ㅜㅜ

마노아 2011-09-11 09:05   좋아요 0 | URL
저 이 책 중고로 구매했어요. 꺄우~(>_<)
중고 알림 설정해 놓고 진득하게 기다리면 언젠가 또 나올 거예요.
이미 한 권 갖고 있으니 기다림이 지루하지 않을 거예요.
고흐 형제의 각별함은 시대를 넘어 영원한 전설이 될 거예요.
 
삼촌이랑 선생님이랑 결혼하면 얼마나 좋을까? 초승달문고 20
김옥 지음, 백남원 그림 / 문학동네 / 2009년 9월
품절


여덟살 기백이 눈엔 12시가 넘어서 일어나 느즈막하게 밥을 먹고 과자를 삼키며 TV를 시청하고, 밤을 꼴딱 세워 게임을 하거나 무협지를 읽는 백수 삼촌은 부러움의 대상이다.
하지만 그런 삼촌을 본받고 싶어하면 엄마에게 불호령이 떨어진다.
엄마는 법대를 졸업하고서 사법고시에 떨어지고 집에 돌아와 내내 놀고 있는 삼촌이 못마땅해 죽겠다. 기백이로서는 이해할 수 없는 노릇이다.

기백이네 담임이신 김성환 선생님이 아프셔서 새 선생님이 오셨다.
김성환 샘은 기백이의 엄마와 아빠 모두를 가르치신 선생님이다.
시골 학교니까 가능한 이런 시스템! 뭔가 뭉클하고 감동적이다.
대를 이어 같은 선생님께 배워서 엄마 아빠 어릴 적을 함께 기억해주고 제자의 자녀들을 보면서 옛 추억을 반추할 수 있는 선생님이라니....

새선생님은 통통하고 둥근 얼굴의 아가씨 선생님이다.
아이들은 선생님이 새로 오신 것보다 덕분에 받아쓰기 시험을 보지 않아도 되는 것에 더 열광한다.
아이들답다!

아이가 학교에 입학하고 첫번째 맞이하는 소풍이어서 따라가고 싶었지만, 녹차밭으로 녹차 따러 다니느라 바쁘신 엄마는 기백이를 따라갈 수가 없다.(이곳은 보성이다!)
그 바람에 삼촌이 대신 따라가게 되었다.
군소리 없이 따라갈 삼촌이 아니다.
엄마는 미끼로 만원을 제시하셨다.
백수 삼촌으로서는 거절할 수 없는 제안이다.(대부의 명대사가 떠오른다!)

집에서는 쓸모없다고 구박받는 삼촌이지만 소풍 장소에서는 할 일이 생겼다. 김소명 선생님이 보물찾기 종이를 숨겨달라고 부탁하신 것이다.
좀처럼 보물을 못 찾는 기백이와 달리 단짝 친구 혜진이는 보물찾기 선수다.
자신이 찾은 보물을 나눠주기까지 하는 마음씨 착한 혜진이는 엄마가 필리핀 사람이어서 얼굴이 까맣다. 친구들이 많이 놀리고, 그보다 먼저 혜진이의 주먹이 날아가기도 하지만 기백이와는 마음이 잘 맞는 친구들이다.
두 아이의 우정이 예쁘고 정겹다.

선생님들이 이웃 학교와 배구 시합을 하게 되었다.
연습 게임 중에 기백이 삼촌이 학교에 불려와 경기 상대가 되어주기도 했다.
집에서는 빈둥빈둥 논다고 늘 구박만 받던 삼촌이 모처럼 날쌘돌이가 되어서 주가를 올렸다.
게다가 경기 당일에 차 시동이 걸리지 않는 교감 선생님 차 대신 기백이네 트럭을 삼촌이 운전해 주게 되었다.
밖으로 나가면 뭔가 쓸모가 많아지는 삼촌이었다.
볼품없는 트럭이라 할 수도 있지만 탁 트인 배경을 뒤로 하며 다 함께 올망졸망 모여 앉아 시합 하러 가는 장면이 따스하다.
시합에서 이기지 못해도 충분히 행복할 수 있는 그런 장면들이다.

봄바람이 가득한 어느 날에는 야외 수업을 가졌다.
저렇게 멋진 풍경을 보여줄 수 있는 건, 이곳이 시골 학교이기 때문이기도 하고, 아이들이 많지 않고 또 어린 까닭이기도 하지만, 그림이 주는 힘도 무시할 수가 없다. 그림을 수채화로 그린 것일까? 우리의 자연이 주는 색을 제대로 옮긴 듯하고, 나무 그림자 하나하나에서도 들풀의 향기가 날 것만 같다.
저 속에 끼어서 나도 '꽃'이라는 글씨를 배우며 바람도 익히고 싶다.

여름 방학이 되어 광주 집으로 돌아가신 선생님이 학교로 놀러오셨다.
선생님과 짜장면도 시켜 먹고 즐거운 시간을 보내던 기백이는 오후 늦게 운동장으로 들어서는 삼촌과 마주쳤다. 삼촌이 그냥 운동장에 들어선 것은 아닐터!
제목을 생각한다면 분명 무슨 썸씽이 있었을 거라고 짐작할 수 있다.

저렇게 아름다운 별밤에 삼촌이 모처럼 분위기를 잡았다.
어릴 적 꿈을 설명하며 "뜰채로 죽은 별을 건지는 사람"이 되는 거였다나.
반칠환 시인의 시 "뜰채로 죽은 별을 건지는 사랑"에서 인용했다고 작가가 밝혔다.

찾아보니 이런 시다.

뜰채로 죽은 별을 건지는 사랑 / 반칠환

보도 블록 틈에 핀
씀바귀꽃 한 포기가
나를 멈추게 한다

어쩌다 서울 하늘을
선회하는 제비 한두 마리가
나를 멈추게 한다

육교 아래 봄볕에 탄 까만 얼굴로
도라지를 다듬는 할머니의 옆모습이
나를 멈추게 한다

굽은 허리로 실업자 아들을
배웅하다 돌아서는 어머니의 뒷모습은
나를 멈추게 한다

나는 언제나
나를 멈추게 한 힘으로 다시 걷는다.

제목의 힘이 더 큰 시다.
선생님과 삼촌의 사이가 급격히 가까워지게 만든 결정적 계기의 꽃 한송이 이야기는 굳이 밝히지 않으련다. 거기에서 기백이가 무슨 역할을 했는지도...
그건 독자의 보너스니까.

사이사이 혜진이에게도, 삼촌에게도 위기가 있었지만, 모두 바람직하게 해결되었다.
해맑게 웃는 아이들의 웃음이 사랑스럽다.
저 모습에서 내가 위로를 얻고 안도하게 된다.

제목이 너무 길다는 것이 쪼끔! 불만이지만, 이야기가 참 예뻤다.
조카는 내 책장의 이 책을 뽑아서 절반 정도 읽었다고 하던데 뒤가 궁금해서 어떻게 참았나 모르겠다.
시골적 정서에 대한 어떤 그리움과 동경 같은 것이 없어서 그런 것일까?
나중에 다시 한 번 권해봐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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달사르 2011-08-28 17:25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두 페이지로 연결되는 해변가에서 아이들의 노는 모습도 좋구요, 바닥에 온통 떨어진 빨간 꽃잎인가..석류인가..를 담으며 보물찾기하는 아이들의 모습도 좋아요. 동화작가의 글도 좋지만 그림작가 백남원씨의 작품은 정말, 멋지네요. 실지로 떨어지는 벚꽃나무 옆에 환히 웃는 아이들이라니요..와~

ㅎㅎ 역시나 독자의 보너스, 궁금궁금!

마노아 2011-08-28 21:07   좋아요 0 | URL
그림이 참 좋지요? 이번에 남도 답사 여행길에 석류나무를 처음 보았어요. 저는 석류 열매가 그렇게 클 줄 몰랐거든요. 완전 신기했답니다.^^
독자의 보너스는 얘기하는 순간 너무 훤히 들여다보이기 때문에 참았어요. 아하하핫^^
 
어른이 되는 건 쉬운 일이 아니에요 동물에게 배워요 1
채인선 글, 김은정 그림, 신남식 감수 / 한울림어린이(한울림) / 2011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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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른이 되는 건 쉬운 일이 아니에요.
어른으로 성장하기 위해선 용기가 필요해요.
둥지 안에서 엄마 새가 물어다 주는 먹이를 먹을 때는 그래도 안전했지만 언제까지 둥지 안에 있을 수는 없는 노릇이잖아요.
하루 빨리 둥지를 벗어나 스스로 날아올라야만 합니다.
아기 새들은 날개를 퍼덕이며 까마득한 땅으로 훌쩍 뛰어내립니다.
첫 시도는 분명 무척 두려웠을 거예요.
하지만 그런 과정을 이겨나가면서 어른 새로 성장해나갈 테지요.

어른이 되는 건 쉬운 일이 아니에요.
오랜 기다림과 인내심을 요구한답니다.
매미는 어른이 되기 위해서 5~6년 동안을 애벌레로 지내야만 해요.
나무뿌리 진을 빨아 먹으면서 여러 차례 허물을 벗으며 조금씩 자라나지요.
이렇게 오래 기다렸지만 보름 정도밖에 살지 못합니다.
진정 매미는 끈기와 인내심의 곤충이라고 할 수 있어요.

어른이 되는 건 수많은 위험을 뚫고 가야 한다는 것을 의미하기도 해요.
바다거북은 모래 구멍에서 태어나자마자 바다를 향해 힘찬 걸음을 내딛습니다.
하지만 바다에 닿기까지 수많은 위험이 기다리고 있어요.
아기 거북을 잡아먹으려는 게나 갈매기들이 쫓아오기 때문이지요.
요즘에는 엄마 바다거북이 알을 낳을 모래사장도 줄어 들어 아기 바다 거북이가 살아남기에 더 어려운 환경이 되고 말았어요.

아기 거미는 알에서 깨어나 4~7일 동안은 어미에게 보살핌을 받습니다.
그리고 마침내 떠날 준비를 마치고 거미줄을 뽑시 시작합니다.
얼마나 걸릴지, 어디로 가게 될 지 모를 긴 여정이지만 거미들은 그렇게 자신의 삶을 시작해 나갑니다. 씩씩한 거미들이에요.

어른이 되는 건 보통 일이 아니지만 때가 되면 저절로 알게 되는 것들도 있어요.
민물에 사는 어름치는 강바닥에 둥지를 만들어요.
입과 지느러미로 바닥을 헤쳐 옴폭하게 만들고 그 안에 알을 낳지요.
그리고 잔돌을 쌓아 감쪽같이 위장한답니다.
이같은 지혜는 누가 가르쳐준 것일까요.
본능적으로 터득한 생존의 지혜가 놀랍습니다.

아기 여우는 태어나서 8~10주가 되면 엄마 젖을 떼고 고기르 ㄹ먹을 수 있어요.
아기 여우는 엄마 아빠를 기다리며 굴 속에서 바깥 세상에 대한 호기심을 키워나간답니다.
섣불리 나서면 사나운 짐승들에게 먹이가 되고 말테니, 조심 또 조심하라는 부모님 말씀을 잘 들어야만 해요.

모두들 치열한 조건에서만 살았던 것은 아니에요. 고양이는 비교적 운이 좋았답니다.
무려 3천 년 전부터 사람들 곁에서 보살핌을 받으며 살아왔거든요.
어떤 주인을 만나느냐에 따라서 고양이의 운명은 무척 달라지지요.
행운이 따라준다면 더할 나위 없이 좋을 텐데요.

그러고 보면 곤충들보다 포유류가, 그 중에서도 인간이 가장 부모님의 보살핌을 오래오래 받는군요. 부모로부터의 독립도 가장 늦고요. 그 진한 연결고리에 대해서 잠시 생각해볼 여유를 주네요.

어른이 된다는 건 스스로 껍집을 깨고 밖으로 나오는 일이에요.
알이나 껍질이 저절로 깨지지는 않아요.
누가 도와주는 것도 능사가 아니에요.
스스로 껍질을 깨고 나와서 첫 숨을 내뱉을 때, 진정한 성장이 시작되는 법이니까요.

갓 태어난 아기 캥거루는 몸이 사람의 손가락 마디만큼이나 작아요.
그 조그만 몸을 움직여 엄마 배 주머니 속의 젖을 찾아갑니다.
엄마의 털을 붙잡고 끈기있게 기어 올라가서 젖을 물어야 해요.
아기 캥거루에게는 까마득하게 느껴질 거리일 테지요.
아기가 마침내 젖을 물면 그때서야 엄마는 아기를 잘 보살펴 줍니다.
주머니에 담아서 따뜻이 품어주지요.

어른이 된다는 건 무수한 시련을 거치고 기다리고 인내하고 일어서야 한다는 것을 의미해요. 그건 물리적인 것이기도 하고 정신적인 의미이기도 하지요. 둘 모두 쉬운 일이 아니에요. 하지만 그 통과의례를 거치고 나면 또 다른 세상이 열릴 겁니다. 세상은 그렇게 역사를 만들어왔거든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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꼬꼬댁 - 행복한 만화동화 1
이두호 원작.그림, 연진희 엮음 / 행복한만화가게 / 2003년 6월
평점 :
절판


형부가 이두호 작가님께 아주 열광하고 있기 때문에 이두호 작가님 책들을 많이 샀더랬다. 구할 수 있는 책은 새 책으로 샀지만 구할 수 없는 책들은 중고로도 구매하고, 그리고도 품절이나 절판인 책은 중고 알림 설정해놓고 기다렸다. 그리하여 어느 날 문자 알림 메시지와 함께 이 책을 주문했다. 이 책을 건지기 위해 더불어 주문했던 많은 책들, 그럼에도 로또에서는 한 장도 건지지 못한 우울한 이야기는 덮어두자. 그리고 상자를 열었는데 어린이를 대상으로 한 소박한 만화 동화라는 것을 알았을 때 약간 당황한 것도 잊어버리자. 이 책은 그럼에도 불구하고 아주 따뜻하고 감동적이었으니까. 

 

한국전쟁 직후의 시점이 이야기의 배경이다. 주인공 따옥이의 오타 대왕 일기가 한 번씩 나오고, 그 일기의 배경이 되는 이야기들이 주르륵 진행된다. 올망졸망 머리를 맞댄 판자촌이 즐비한 곳에서 따옥이네 집은 초가다. 따옥이네는 닭을 키워서 알을 팔아 생활하고 있다. 처음에 병아리로 집에 도착했을 때는 먹이도 손수 주고 무척 예뻐 했는데, 그 귀여운 병아리가 닭이 되어서는 따옥이와 사이가 벌어졌다. 첫 만남의 그 아리따움을 연결할 수 없었기 때문일 것이다. 그렇지만 따옥이네 살림을 책임지고 있는 닭 친구들은 얼마나 고마운 이들인가.  

 

할머니를 따라 장에 가서 달걀을 팔고 나면 할머니는 보리쌀을 사고 남은 돈으로 눈깔사탕 하나를 꼭 사주신다. 당신께서는 눈깔 사탕을 먹으면 이가 아프다고 굳이 한 번 빨아보라는 따옥이의 통큰 권유도 마다하시는 할머니! 

곧 있으면 소풍이고, 따옥이와 단짝 친구 수옥이는 소풍과 소풍에서 있을 보물찾기를 잔뜩 기대하고 있다. 더구나 따옥이는 지난 가을 운동회 때 처음으로 먹어본 삶은 달걀의 오묘한 맛을 다시 추억하며 이번에도 삶은 달걀을 간절히 원하고 있다. 그날도 할머니와 엄마는 달걀 싫어한다며 따옥이에게만 내밀고 선생님께 갖다 드리라고 했다. 어머니는 짜장면이 싫다고 하셨던 전설의 노래를 따옥이가 이해하려면 좀 더 자라야 할 터이다.  

이번 소풍 때는 따옥이랑 수옥이 것, 그리고 선생님께 드릴 것까지 딱 세 개만 삶아주시면 좋겠는데, 어려운 살림에 철부지 따옥이도 입이 쉽게 안 떨어진다. 겨우겨우 세 개를 삶아달라고 말했더니 할머니의 눈이 커다래진다. 너무 많이 부른 것 같아 백 번 양보해서 두 개로 줄인다. 선생님 하나 드리고, 수옥이와 자기는 하나 가지고 나눠 먹을 속셈이다. 그런데 통 큰 할머니는 두 개씩은 먹어야 한다며 여섯 개를 약속해 주신다. 아, 내가 따옥이가 된 것 마냥 어찌나 고맙고 반갑던지! 

이거 읽다가 엄마에게 질문을 했다. 엄니 어릴 때 소풍 가면 삶은 달걀하고 사이다 먹었냐고... 그때도 병 사이다였을 텐데, 병 뚜껑은 어찌 땄냐고... 지난 5월에 부여 답사를 갈 때, 함께 갔던 나의 야곱은 달걀을 삶아 왔다. 아, 역시 여행길에는 달걀이 최고지! 찜질방에서도 달걀이 최고! 먹을 것이 별로 없던 시절의 삶은 달걀은 진미 중에 진미였을 것이다. 짝꿍 생각해주는 마음도 곱고, 선생님께 드리겠다는 마음도 곱고, 무엇보다 따옥이를 생각해주는 할머니가 제일로 멋지다.  

하지만 복병이 있다. 전쟁 이후 노름에 골몰해서 집안 재산을 거덜내고 있는 아버지 덕분이다. 골방에 갇혀서 역전의 패만 노리고 있지만, 제 인생만 뒤집어질 뿐, 어디 노름으로 인생이 뒤바뀔 만큼 만만하던가.  연이어 닭을 도둑 맞고 엄마와 할머니의 주름이 깊어지니, 따옥이도 차마 소풍 때 달걀 싸달라고 말할 수가 없다. 어린 따옥이지만 그 정도 염치는 있는 것이다. 과연 따옥이에게는 기대했던 즐거운 소풍날과 삶은 달걀 콤비가 따라올 수 있을 것인가!

 

진달래 꽃 따서 화전 만들려고 하는 동산 위의 아이들도 흐드러지게 곱고, 아버지 때문에 골이 나서 괜히 동무에게 화풀이하는 심퉁스런 따옥이의 표정도 재미난다. 지극히 토속적인 느낌의 이두호 작가님 그림이 이야기를 더 빛나게 만들었다.  

큰 제목이 '꼬꼬댁'이지만 '행복한 만화동화'라는 부제가 이 책에 더 어울려 보인다. 이야기를 읽는 동안 나 역시 행복해졌으니 말이다.  

이두호 원작에 연진희 꾸밈이라고 되어 있는데, 연진희 님이 각색을 좀 했다는 의미인 것일까? 잘 모르겠다. 아무튼, 형부에게 내밀어도 부끄럽지 않을 것 같다. 형부가 동화책 읽는 모습은 본 적이 없지만, 동화같다고 하면 만화라고 하는 거다 뭐... 

난 동화도 좋고 만화도 좋으니 그야말로 금상첨화지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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후애(厚愛) 2011-08-16 14:07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절판이군요.ㅜ.ㅜ

마노아 2011-08-16 19:38   좋아요 0 | URL
절판이어서 별로 기대 안 했는데 다행히 중고로 구할 수 있었어요.^^

달사르 2011-08-16 17:43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이두호..많이 듣던 이름이라서 찾아봤더니 꺅. 만화 임꺽정 그리신 분이로군요. 게다가 머털도사까지? 와우. 어릴적 신나게 봤던 만화책들인데..
그림체가 만화체에 서정적인 느낌이 가미되서 더 이쁘네요. ㅎㅎ 저도 동화도 좋고 만화도 좋은데..따옥이가 과연 달걀을 먹었을지..는 이 책을 읽어야만 알 수 있군요! ^^

마노아 2011-08-16 19:38   좋아요 0 | URL
네, 바로 그 이두호 작가님이요!
형부가 엄청 좋아해서 임꺽정도 중고로 구해서 선물했더랬어요.
어릴 적에 머털 도사 참 좋아했어요. 아우, 이분의 토속적인 그림이 참 좋아요.^^
따옥이는 달걀을~ 먹었을까요? ^^ㅎㅎㅎ
 
동물들아, 뭐하니? - 움직이는 그림책
루퍼스 버틀러 세더 지음 / 웅진주니어 / 2008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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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책은 중국에 갔을 때 오빠 집에서 영어 책으로 먼저 만났다.
오빠는 아이에게 무척 자상한 아빠였는데, 아이에게 온갖 의성어를 흉내내면서 리얼하게 책을 읽어주었다.
돌아와서 똑같은 책을 찾아보았는데 우리말 번역이 되어 있어서 무척 기뻤다.
냉큼 주문을 했지만, 우리 조카들은 이 책을 보기엔 이미 자라 있었다.

동영상으로 보여줘야 이 책의 진가를 제대로 알려줄 수 있을 텐데, 애석하게도 상품페이지에 동영상은 없다.
말로 설명하자면, 말아 뭐하니? 따가닥 따가닥 달려요~
라는 글과 그림 뒤에 검은 필름이 있고, 책의 각도를 좁혔다가 넓히는 과정을 반복하면 말이 입체적으로 움직이는 게 보인다. 빨리 접었다가 빨리 펼치면 그만큼 빨리 달리는 것처럼 보이고, 천천히 책을 접었다가 펼치면 그만큼 천천히 달리는 효과가 난다.
그러니 이 책을 읽어줄 때 음향효과는 필수다!

말과 닭, 개와 고양이가 나온다.
각각의 동물들이 어떻게 우는지, 우리는 익히 잘 알고 있다.
학습된 의성어라고 할까.

이런 걸 흉내내어서 읽어주면 아이들은 자지러지게 웃으며 까르르 좋아한다.
좀 오버하자면, 어떨 땐 이런 책만 읽어달라고 백 번씩 조를 때도 있다.
아이 앞에서 어른들은 만능 재주꾼으로 변신해야 한다.
독수리처럼 큰 날개를 퍼덕이는 척도 해주고,
침팬지처럼 무릎을 굽히고 걸어가주는 배려로 필요하다.

나비의 팔랑팔랑 날개짓은 아름다운데, 거북이 흉내는 바닥을 기어야 하나... 이건 그냥 이 책의 그림을 잘 보여주면 되겠다.
우리가 직접 기려면 거실이 보통 넓어서는 아니 되니까...

그렇게 한차례 동물들의 움직임을 보았다면,
이번엔 아가 차례다.
아가도 이 책의 동물들처럼 따가닥 따가닥, 쫑쫑쫑쫑, 성큼성큼 걸을 수 있다.
그러니까 이 책은 이제 막 걷기 시작한 아가에게 딱 적당하다!
마지막에 별처럼 반짝이는 제 얼굴을 보면 아기 얼굴에 달덩이가 뜰 것이다.
아유 예뻐라...(>_<) 상상으로도 즐겁다!

아쉬워서 검은 부분만 오려서 움직이는 파일을 만들어 보았다.
원래는 각도를 달리해서 하나의 그림을 여러 장으로 돌려야 제대로 된 효과가 나올 텐데, 사진을 그렇게 못 찍었으니 아쉬운대로 이렇게나마 즐겨보련다.

동 저자의 waddle과 swing도 궁금한데 이건 노부영으로만 있다. 친절하게 우리말 번역으로도 나오면 좋으련만... 큰 서점에 가면 매대에서 들여다 보고 냉큼 주문해주면 좋겠다. 함께 즐거워지는 책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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순오기 2011-08-15 09:32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하하하~ 조카들은 이미 훌쩍 자랐으니 앞으로 태어날 마노아님의 2세를 위해서 보관해두세요.^^
마지막 움직이는 파일에 추천 꾹!!!!!!!

마노아 2011-08-15 11:59   좋아요 0 | URL
이미 아가에게 선물했어요.^^ 사실 선물을 작년에 했는데 리뷰를 내내 못 쓰다가 요번에 썼어요. 선물하기 전에 제가 사진은 찍어뒀거든요.ㅎㅎㅎ