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간 여행자의 아내 2
오드리 니페네거 지음, 변용란 옮김 / 살림 / 2009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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추천 음악 : 이승환 5집 "애원" (가사를 염두에 두면서 듣기)

추천 만화 : 박희정 "호텔 아프리카"

모두들 너무 떠들썩 해서 괜히 심드렁하게 책을 펴들었다. 마치 '얼마나 대단한 지 한 번 읽어봐 주겠어' 라는 심정으로... 책을 덮고, 그 자만했던 마음이 미안하고 이렇게 내게로 와 준 책이 고마워 찡-한 느낌에 잠시간 침묵을 지켰다.

시간 일탈 장애라는 판타지적 소재를 갖고 있지만 '사랑'이라는 지극히 고전적인, 그리고 영원한 주제를 다룬 이 책은, 떠미는 것도 없이, 강요하는 것도 없이, 올곧이 그 진솔함으로 독자에게 감동을 선사한다. '사랑'이라고 하는 말이 진부하지도 가식적으로도 보이지 않고, 가슴을 울리는 절절함으로 만날 수 있다는 것은 독자에게 있어 최고의 선물이었다.

너무도 다양하고 이색적인 재미가 많은 21세기를 살고 있는 우리인데, 웬만한 걸로는 눈물 한방울 안 흘리고, 감동도 없다 하고 괜히 안티 짓이나는 하기 일쑤인데, 그 건조한 감정을 갖고 사는 메마른 우리에게 '일생에 걸친 기다림=사랑'을 보여준 두 주인공의 '삶' 이 너무도 먹먹하여 참으로 오랜만에 눈물도 흘려보았다.

마치 거대한 퍼즐의 조각 하나하나씩을 짜맞춰가는 것 같은 기분을 느끼게 하는 과거와 미래 현재가 중첩된 시간의 전개는 흥미와 재미를 떠나서 독자에게 그들의 운명을 선고하는 것 같아 절박한 긴장감마저 갖게 한다.

영화 '나비효과'에서도 시간을 이탈하여 운명을 바꾸고자 하는 주인공이 나오지만, 그가 바꿔버린 운명은 그가 원했던 숙명으로 돌아오지 않는다.  다람쥐 쳇바퀴 돌듯 같은 자리를 맴돌며 오히려 더 나락으로 빠질 뿐이었다. '시간 여행자의 아내'에서 시간 일탈 장애를 겪고 있는 헨리는 '나비효과'의 주인공보다 소극적일지언정 훨씬 겸손하다.  그는 바꿀 수 있는 건 아무 것도 없다는 것을 알기에 무리하지 않고 억지를 부리지도 않는다.  닥쳐올 미래가 끔찍하고 감당하기엔 벅찬 시련이 몰려와도 절망 속에 허우적거리기 보다 그 안에서 숨쉴 수 있는 여지를 마련하기 위해 애를 쓴다.  재빨리 도망칠 수 있게 달리기를 연습하고 자물쇠 따는 법, 소매치기, 심지어 적절한(?) 폭력까지도 익히는 그의 모습에, 도덕성의 잣대를 들이밀 수 없는 것은 그에게는 치명적인 '생존'의 문제이기 때문일 것이다.(심지어 그는 과거의 자신에게 찾아가 그 기술을 가르치고, 미래의 딸을 위해 영상으로 남겨놓는 주도면밀?까지 보여준다.) 노력하고 애쓰지만 그에게 닥쳐온 미래란 너무 가혹했지만. 그러나 또 생각해 보면, 그의 운명은 그가 만들어 간 운명인 것도 사실이다. 

그가 클레어와 현실의 시간에서 만난 것은 클레어가 그를 알고 지낸 지 14년이 지난 후(1991년)였지만, 그녀가 그를 만날 수 있는 필연을 준비한 것은 미래에서 온 그가 알려준(1989년) '시카고'라는 단서가 큰 몫을 해냈다.  그는 이미 14년 전1977년)부터 그녀와 만날 조건을 만들어 온 것이다.  또 친구 고메즈가 미래에서 주식으로 큰돈을 번 것을 이미 알고 있기 때문에 그에게 주식 정보를 귀띔해 주지만, 그것은 그가 주가가 오를 종목을 알려주었기에 닥쳐오는 미래의 결과이다.  그에게는 미래와 과거가 시간과 공간의 구분을 떠나 공존하는 것으로 보인다. 

그래서 그의 삶에는, 그리고 그를 둘러싼 주변인들의 삶은 '원인'과 '결과'과 순서 없이 뒤섞여 있다.  원인이 곧 결과이고, 결과가 원인이 되는 것이다. 그래서 그들 모두의 만남은 곧 숙명이고 운명이 된다. 

사람이 미래를 모르고 살면 불안할 수는 있으나 불행하지는 않다고 홍세화씨의 글에서 본 기억이 난다.  역사 교육의 문제를 얘기하면서 나온 화두였는데, 이 작품을 보면서 '미래'를 안다는 것이 미칠 수 있는 영향을 보며 오싹해지는 서늘함을 느꼈다. 

그렇게 본인의 의지와 아무 상관 없이, 또 준비되어 있지 않은 상황에서 맞닥뜨리는 미래의 '진실'에 늘 무방비 상태의 헨리는 힘없는 약자에 불과했다.  그러나 그는 포기하지 않았다.  헨드릭 박사를 설득해 내었고, 치료에 응했으며, 본인은 실패했을지언정 딸에게만은 희망을 주고자 안간힘을 쓴다.  그런 그의 노력의 결과가, 그가 버겁다고만 느끼게 했던 시간 여행을 앨바에게는 '재미'를 주는 여행으로 느끼게 한 것이 아닐까.  그가 딸을 위해서 준비한, 그가 해낼 수 있는 최고의 선물도 그것이 아니었을까.

재미로도, 막연하게나마 누구나 '타임머신'으로 과거든 미래든 어디로든 갈 수 있다면... 하는 상상을 해보았을 것이다.  그 심심풀이 상상조차도 꽤 미안해질 만큼 '시간 여행자의 아내'는 진지하게 그들의 이야기를 풀어나간다.

단 한번도 서두르지 않고.(그래서 1권에서 아주 가끔 지루하기도 했지만) 고른 호흡을 유지하는 작가의 솜씨는, 첫 작품이라는 것이 믿어지지 않을 만큼 섬세해서 2권에 이르면 오히려 가빠지는 호흡으로 다음 장을 넘기기 힘들어하는 내가 약오를 지경이었다.

책을 읽는 동안에는 왜 제목이 시간 여행자의 '아내' 일까 생각했다.  주인공은 헨리이고, 시간 일탈 장애를 겪는 것도 그이고, 그로 인해  모든 사건이 일어나는데, 그만큼 비중이 있지만 조금 더 부수적인 역할을 한 아내 클레어가 제목이 되었을까... 그 이유를 책을 다 덮고 알 것 같았다.   헨리는 '사랑해'라는 한 마디로 그의 아내에 대한 마음을 모두 표현해낼 수 있었지만, 그 '사랑'을 받고 또 그 이상으로 내준 클레어에게는 '사랑해' 라는 말만으로는 그 마음이 다 표현되지 않는다.  그녀에게는 매번 예고 없이 사라지고 언제 돌아올 지 모르는 남편을 향한 끝없는 '기다림'이 요구된다. (호텔 아프리카에서 아델라이드가 남편과의 짧았던 행복과 긴 기다림을 회상하며 울던 장면이 오버랩된다.)  <그러나 또 동시에 헨리가 그 위험천만한 시간 여행 중에서도 계속해서 현실로 돌아올 수 있고, 또 돌아가고프게 만드는 것은 자신을 기다리고 있는 아내의 존재감이다.  나중에 그녀가 헨리의 오랜 부재를 버티게 하는 힘도 장차 만날 수 있는 헨리의 '존재' 때문이라는 것은 몹시 아이러니하며 또 필연적이다.  > 그녀에게는 결국 "자신=남편"이었고, "그녀의 삶=남편의 삶"이었다.  그래서 동시에 그녀에게는 "사랑=기다림"이 될 수밖에 없었다.  그렇기에 그들의 사랑을 온전히 완성시키는 것은 클레어의 대가 없는 '기다림'인 것이다.  아마 결과를 알고 다시 태어난다 할지라도, 그녀는 같은 삶의 과정을 밟아나가리라.

작품의 엔딩에 나오는 영상을 머리 속에 그려본다면, 그녀가 그토록 오래도록 기다려온 남편과 재회할 때의 그 표정, 주변 배경과 그녀의 달라진 모습까지도 모두 세밀하게 상상을 해본다면, 이 슬프고 감동적인 작품을 우리는 박수를 치면서 덮을 수밖에 없을 것이다.

그래서 영화로 만들어진다는 소식에 조금은 긴장이 되고 또 기대를 했었다. 처음 여주인공 내정자는 기네스 펠트로였지만 결국 레이첼 맥아덤즈로 바뀌었고, 만들어지고 나서도 1년인가 2년인가 묵혔다가 개봉한 것으로 안다. 사실 지금은 이미 영화도 보았기 때문에 나의 걱정이 모두 기우임을 알고 있지만... ^^

작품에서 또 한가지 좋았던 점은, 미국인들의 생활, 그들의 삶, 문화, 가족 등등을 제대로 들여다볼 수 있는 좋은 기회였던 것 같아 이것 역시 작가에게 고마움을 느꼈다.  그녀가 몸 담고 있는 그 종이 예술의 맛보기도 흥미로웠음은 물론이다.

정말정말 오랜만에 300% 만족의 책을 만나 먹지 않고도 배부른 뿌듯함이 넘친다. 

더 많은 사람들이 이 작품을 접하기를 바라며...

그러나 절대로 그런 장애를 겪는 사람은 나오지 않기를 바라며...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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악의 추억
이정명 지음 / 밀리언하우스 / 2009년 9월
평점 :
절판


이정명 작가는 '뿌리 깊은 나무'와 '바람의 화원'으로 워낙 이름을 날렸기 때문에 이번 책도 우리나라 역사를 배경으로 한 소설일 거라고 '당연히' 단정해 버렸다. 그런데 뜻밖에도 외국을 배경으로 한 작품이었다. 그것도 가상의 공간!
 
뉴아일랜드와 침니랜드. 진짜 지명처럼 보이지만 사실은 가상 속 공간을 배경으로 하는 이야기. 처음엔 집중이 쉽지 않았다. 몇 번이나 이름을 다시 들춰봤다. 내가 알고 있는 그 작가가 맞는지... 연쇄 살인 사건이 등장하는 추리소설인 것을 보면 분명 맞는 것 같은데 지속적인 이질감에 계속 어리둥절해 했다. 선입견이 주는 힘은 역시 무섭다.

작품은 꽤 재밌다. 사실 이정명 작가의 책은 늘 재밌었다. 재미있지만, 그것이 독자를 완벽하게 충족시키는 최선이라고 말할 수는 없지만, 언제든 기본은 했다. 그리고 미리 말하지만 늘 '반전'을 앞세운다. 추리 기법으로 진행을 해나가면서 궁금증을 잔뜩 유발시키다가 결정적인 순간에 확 터트리는 강점이 있다. 다만, 그 반전이 너무 세서 오히려 다른 이야기가 조금 묻히는 느낌. 다시 말하자면, 소재의 신선함과 반전의 기발함에 혀를 내두르지만, 그것을 아우르는 전반적인 이야기의 힘은 약했다. 그래서 훌륭한 작가라고 생각하지만 언제나 만족도 면에서는 2% 부족했던. 더 잘 쓸 수 있는 작가인데, 기대치에서 조금씩 부족한 게 매번 좀 걸렸다. 그리고 그건 이번 작품에서도 예외없이 반복되었다. 물론, 어디까지나 나의 관점에서 말이다.  

작품 속에서는 연속해서 충격적인 연쇄 살인이 일어나고, 사건을 뒤쫓는 형사가 나오고, 뭔가 알 수 없지만 심각한 단서들이 계속 쌓이고 있다는 것도 알겠는데 그것들이 '응집력'을 갖추질 못한다. 그래서 사건들이 유기적으로 연결되지 못하고 따로 노는 느낌을 갖게 한다. 뭐랄까. 의욕도 충만하고 재능도 충분한데 아직 연륜이 부족하다는 느낌? 이 신선하고 훌륭한 A급 재료로 왜 글은 B급으로 완성해낼까 싶은 안타까움이 쌓인다.

사냥개 같은 예민한 감각을 가진 복직 직전의 형사 매코이. 첫 출연 인물이 헐리가 아니라 매코이였다면 더 좋았을 텐데, 일단 헐리로 시작을 해서 꼭 그가 주인공 같은 느낌을 먼저 받고 시작했다. 프로파일러 라일라. 전문분야를 가진 심리 분석관인데, 그녀의 특별한 수사관으로서의 재능은 보여지기 보다 '제시'되기만 한다. 또 그녀가 매코이에게 좀 더 특별한 감정을 가졌던 것 마냥 '사랑'을 얘기하지만 뜬금 없었다. 아니, 연민은 느낄 수 있겠지만 언제 '사랑'까지 갔단 말인가? 싶은. 그것이 가장 마지막에 나오는 반전 때문에 깔린 일종의 포석이라고 할지라도, 독자를 좀 더 영민하게 속여야 하는 게 아닐까 싶다. 예를 들자면 영화 '텔미섬딩'에서 심은하는 가장 끝까지 자신의 표정을 숨겼다. 관객은 영화가 끝날 때에 가서야 그녀의 진짜 얼굴을 알아본다. 이 작품은 그 영화처럼 결말을 명확하게 설명해주고 끝나진 않았지만 말이다. 이야기의 얼개가 좀 더 촘촘하지 못한 것은 많이 아쉬움으로 남는다.  

그리고 이것 역시 나만의 불만이지만 작품의 배경이 한국이었다면 좋았을 것을... 했다. 물론, 그리 된다면 마약상이나 총기 사용 등 설정에 제약이 따르겠지만, '가로세로 낱말 퍼즐' 은 영어로 풀어야 한다면 독자들이 가져갈 수 있는 즐거움이 확 감소되기 때문에 그런 것들이 한국어로 표현될 수 있었으면 하는 아쉬움이 남는다. 우리나라 작가라고 해서 꼭 우리나라 배경의 소설을 써야 하는 건 아니지만, 읽는 독자가 한국 사람이기 때문에 일종의 정보의 불일치가 작품의 매력에 다가가는데 또 방해가 되는 듯하다. 인물들에 대한 캐릭터 등도 만약 한국 사람으로 상상할 수 있었다면 더 입체적일 수 있었을 텐데 말이다. 우리나라도 과학수사를 하고 있으니 프로파일러와 같은 캐릭터를 표현하는 것이 아주 무리는 아닐 것 같은데 말이다. 가상의 공간도 우리나라를 배경으로 못 만들 이유는 없으니까. 욕망과 선망의 도시 뉴아일랜드와 침니랜드는 오늘날의 대한민국의 도시로 대입시켜도 별로 비켜가지 않는다. 과밀화로 인한 온갖 부작용에 시달리고 있지만 그 속으로 들어가고 싶어서 더 안달이 나있는 주변 도시와의 애증적 관계 말이다.

라일라의 과거와 상처, 그리고 레이첼의 등장이 부자연스러웠다. 이런 식의 '갑작스러운' 선포가 자주 발견된다. 사건의 흐름과 진행 속에서 자연스럽게 등장해야 할 것들이, 등장인물의 '발언'으로 일방적으로 제시된다. 덜 세련된 표현이다. 그런 부분들이 작품 전반의 유기적인 끈을 느슨하게 만든다.

맨 마지막에 등장하는 캐더린 브릴의 캐릭터가 내용 중간에도 좀 더 등장했으면 했다. 좀 뜬금 없는 등장으로 보인다. 반전을 위한 반전을 깔기 위해서 내용에 무리수를 두지 않았으면 한다. 설령 반전이 좀 더 진부해진다 할지라도 그보다는 내용이 자연스럽게, 설득력있게 전개되는 것이 더 중요하다고 생각한다.  

책은 무척 재밌음에도 불구하고 약간의 아쉬움을 자꾸 갖게 한다. 확실히 매코이 형사의 비밀이 언급될 즈음에 가면 쿠쿵! 하고 긴장감이 확 솟구쳤는데 그 전까진 지리하게 읽혔다. 그렇다고 가장 중요한 반전 코드를 시작부터 쏟아낼 수는 없는 것인데, 그러니까 그 지점까지 유기적으로 단서를 흘리면서 독자를 끌고 와야 하는데 그게 부진했다. 그리고 마지막의 매코이의 방황과 번뇌, 갈등을 좀 더 부각시켰으면 어땠을까 하는 아쉬움이 남는다. 좀 더 동정표가 쏠릴 수 있는 장치 말이다.  

애들레이드의 정체에 관한 반전도 다소 충격적이었다. 주인공에 대한 연민이 더 짙어지는 부분.  

뉴아일랜드에 가득한 안개가 인공으로 만들어버린 섬에 의한 안개 때문이라는 것을 읽으면서 남일 같지가 않았다. 우리 강바닥 다 헤집으면 이 나라 어찌될까 싶고, 안개낀 도시의 위험천만한 범죄들이 막 연상되고 마니.... (소설 '도가니'가 떠오르는 부분이기도 하다.)

사실, 난 이 책을 출간 전 '미출간 도서'로 먼저 읽었다. 편집이 끝나지 않은 책이어서 좀 더 거칠게 읽힌 건 사실이다. 완성된 책을 펼쳐보니, 퍼즐도 너무 그럴싸하게 잡혀 있고, 내지 편집이 훌륭하게 되어 있어서 종이의 디자인이 '긴장감'을 유발시킬 수 있다는 놀라운 사실을 알아버렸다. 표지도 내 맘에 든다. 다만, 제목은 무척 아쉽다. 처음 내가 받아본 제목은 '나에 관한 너의 거짓말'이었다. 제목이 너무 길어서 입에 감기지 않는 게 단점이었지만, 책을 읽고 보니 그 제목이 딱이라는 느낌을 받았다. 그렇지만 완성된 책의 제목은 '악의 추억'이라는 황당한 이름으로 바뀌어 있다. 다만, 마지막 즈음의 소제목에서 '너에 대한 나의 거짓말'로 교정되어 들어가 있다. 작가님도 그 제목을 버리기는 아까우셨나 보다. '악의 축'이 떠올라서 제목은 자꾸 미스란 생각이 든다. 

그리고 이건 들어보지 못했는데 혹시 이 작품도 영화로 판권이 팔렸을까? 읽으면서 영화로 만들어진다면 매우 재밌을 거라는 상상을 했다. 사이코패스, 이중인격, 안개 낀 도시, 웃고 있는 시체 등등. 시각적으로 관객을 사로잡을 것들이 많고, 매코이와 데니스 코헨을 연기할 배우를 상상하는 일이 아주 짜릿했다. 제대로 연기파 배우를 써야 할 테니까. 이병헌이 적임자란 생각을 했고, 그 외 연기파 배우 하면 빠지지 않는 김명민과 황정민도 생각했다. 아무래도 너무 젊은 배우는 곤란하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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순오기 2009-10-21 01:57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뿌리 깊은 나무는 중고샵에서 사놓고 여직 못 읽었으니, 읽은 건 바람의 화원 하나뿐.
선입견, 정말 무섭지요~ 특히 사람에 대한 선입견은 더욱 더!

마노아 2009-10-21 08:09   좋아요 0 | URL
첫인상을 중시하지만, 선입견은 늘 조심해야지요. 이정명 작가 엄청 왕성하게 활동하는 듯해요.^^

2009-10-21 01:58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09-10-21 09:05   URL
비밀 댓글입니다.

같은하늘 2009-10-21 01:59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이거 다시 보셨나요? ㅎㅎㅎ
저도 마지막 마노아님 생각과 같은 생각을 했어요.
책보다는 영화로 만들어 보여지면 더 재밌을 것 같다는 생각...

마노아 2009-10-21 09:06   좋아요 0 | URL
다시 보진 않았는데, 마지막에 혹시 좀 바꼈을까 싶어서 끝부분만 다시 읽었어요. 안 바뀐 것 같았어요.6^^;;
영화로 만들면 더 매력적일 듯 하지요.^^
 
모방범 1 블랙펜 클럽 BLACK PEN CLUB 30
미야베 미유키 지음, 양억관 옮김 / 문학동네 / 2006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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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판절판


미야베 미유키의 소설을 처음 접하게 한 것은 '화차'였다. 얼마나 흡인력이 있던지 잠시도 눈을 떼기가 힘들었던 독서였다. 그리고 다음으로 추천 받은 소설은 '모방범'. 400페이지 넘어가면 살 것인가 말 것인가를 고민하는 나에게 3권 총 1600페이지가 넘는 책은 쉽지 않은 도전이었다.   

길고 긴 이 책이 실제로 일본에서 연재 기간은 5년이었다고 한다. 2001년도 작품이 국내에는 2006년에 번역되었고, 나는 2009년에 읽었다. 그리고 작품의 배경은 1996년이다. 십 년도 더 전의 일본 사회를 배경으로 하고 있지만 자본주의와 개인주의, 사회의 분화 모습을 생각한다면 지금의 우리나라 모습이라고 생각하고 보아도 크게 어긋나지는 않을 듯하다.  

작품은 오가와 공원에서 산책하던 17세의 고등학생 신이치의 개가 쓰레기통에서 잘려진 여자의 팔을 발견하면서 시작된다. 이어서 쓰레기통에서는 다른 여성의 핸드백이 발견되고, 핸드백의 주인인 마리코의 할아버지 아리마 요시오에게는 전화를 건 범인은 실종된 손녀로 인해 애간장을 끓이는 가족을 농락한다. 그리고 차례로 발견되는 여성들의 시체. 연쇄살인범은 도쿄를, 일본 전역을 공포로 몰아넣은 채 방송국과 유가족에게 전화를 걸면서 이들의 고통을 더욱 극대화시킨다. 게다가 얄궂게도 처음 토막난 팔을 발견해낸 소년은 얼마 전 강도살해로 일가족을 다 잃어낸 고통을 겪고 있던 참에 이런 일에 또 연루된 것이다. 경찰은 경찰대로 수사 본부가 발칵 뒤집히고, 방송은 방송대로, 유가족은 유가족대로, 그리고 사건에 연루되지 않은 많은 평범한 사람들이 이 연쇄살인 사건에 시선을 집중하며 그 진행사항을 눈여겨 본다.  

작품은 긴 호흡이었다. 등장인물도 어마어마하게 많았는데, 각각의 사람들과 사건들은 처음에는 별 상관 없는 것처럼 진행되지만, 어느 순간에 가면 한 지점에서 마주치게 된다. 작가의 그물은 촘촘하고도 섬세했다. 독자는 인내심을 갖고 그네들의 뒤를 추적해 간다. 1권의 후반부에 가면 범인은 이미 노출된다. '누가' 범인인가는 이 책에서 중요하지 않다. 그보다는 그네들의 행적을 따라가보면서 그 심리상태를 들여다보는 게 더 긴장감을 증폭시킨다. 게다가 1권에서 이미 살인범의 최후를 보여준다. 그리고 나서 다시 앞으로 돌아가서 그들이 정말 '진짜' 범인인지, 왜 그런 일을 했는지, 그 과정들을 차근차근히 풀어간다.  

지켜보다 보면, 살인범의 행적에 분노가 치솟고, 그놈의 인면수심에 공포를 느끼고, 또 유가족의 고통과 남겨진 슬픔의 잔향에 마음이 쓰라리다. 그들의 고통은 진행형이지만, 앞으로도 그 고통은 옅어질지언정 사라질 수 없고, 또 극복되기도 힘들다. 그저 끌어안고 살아야 한다. 그들은 묻고 또 묻는다. 도대체 왜? 왜 우리에게?  그리고 가혹하게도, 범인은 그 심리를 알기 때문에 희열을 느낀다.


   
 
 “모든 피해자에게, 모든 피해자의 가족에게 영원히 풀리지 않을 수수께끼를 던져주는 거야. 왜? 우리 딸이 왜 죽어야 했을까? 범인은 왜 우리에게 왜 이런 고통을 주는 것일까? 왜, 왜, 왜? 그러나 아무도 그 이유를 몰라. 별것도 아닌 놈들이 잔머리를 굴려보겠지. 경찰도 눈을 부라리며 수사를 할 테지. 그러나 그들은 몰라. 아무것도 없으니까. 그걸 아는 사람은 나, 아니 우리뿐이지.”

– 2권 209쪽
 
   


그네들은 어떤 목적 없이, 이유 없이 살인을 저지르는 것처럼 보였다. 2권의 한 대목을 보자. 


   
 
 “진정한 악이란 이런 거야. 이유 따위는 없어. 그러므로 피해자는 자기가 왜 그런 어처구니없는 일을 당하는지 모르는 거야. 원한, 애증, 돈, 그런 이유가 있다면 피해자도 납득을 할 수 있겠지. 자신을 위로하거나 범인을 미워하거나 사회를 원망할 때는 그 근거가 필요한 거야. 범인이 그 근거를 제시해주면 대처할 방법이라도 있지. 그러나 애당초 근거 같은 건 없었어. 그거야말로 완벽한 ‘악’이야.”
“난 잘 모르겠어.”하고 구리하시 히로미는 기죽은 목소리로 말했다.
“더 심한 범죄들도 많잖아?”
“더 심한 범죄? 더 많은 사람을 죽이고, 더 많은 돈을 빼앗는 것? 그런 건 아무 의미도 없어. 그건 어디까지나 범죄일 뿐, 악은 아니야.”
– 203쪽
 
   


이쯤 되면 저 극악무도한 범죄자는 인간이 아니라 '악마'로 보인다. 범죄가 아닌 '악'을 말하는 자라니. 영화 공공의 적 1편에서 부모를 죽인 이성재는 사람 죽이는데 이유가 있냐고 되물었다. 이유가 없이도, 목적이 없이도, '그냥'도 사람을, 그것도 부모를 죽일 수 있는 그런 무서운 세상을 살고 있다는 살벌한 충격. 그게 코믹 영화였으면서도 그 영화를 가볍게만 기억할 수 없는 이유이기도 했다. 

이 작품 안에서도 그래 보였다. 적어도 처음에는. 설명되지 않으니까, 그들의 범죄에 어떤 원인이나 동기가 발견되지 않아서, 그저 미쳤다고 밖에는 스스로를 납득시킬 수가 없어서 답답했다. 독자도 이런데 희생자나 유가족은 오죽할까.  


   
  "살인이 잔혹한 것은, 살인이 피해자를 죽이는 데 그치지 않고 그 가족의 생활과 마음까지 서서히 죽여가기 때문이야. 하지만 그 가족을 죽이는 것은 살인자 본인이 아니라 그 가족들 자신의 마음이야. 정말 웃기는 이야기지만, 사실이 그래. 난 그게 싫어. 난 아무리 자신을 책망해도, 조금씩 죽어가도, 가만이 이를 악물고 버틸 수 있을 정도로 강한 인간이 아냐. 이제 더 이상은 싫어" – 3권 280쪽  
   

등장인물들은 저마다 처한 상황과 다른 입장에서의 자기의 말을 한다. 여성과 남성이 이 연쇄살인사건을 지켜보는 시각이 달랐고, 희생자에게 느끼는 감정도 달랐다. 여성들만 노리는 살인 사건이었던 터라 여자들은 더 공포를 느꼈고, 남성들 중에는 그 범죄자의 기분(쾌감)을 이해할 것 같다는 반응까지도 나왔다. 게다가 희생자가 사회적 기준에서 건전하지 못한 행적을 갖고 있기라도 한다면 바로 도마 위에서 난도질 당하기에 바빴다. 마치 성추행 사건이 터지면 그 원인을 여자의 짧은 미니 스커트 때문이라고 비난하는 것과 같은 그런 분위기로. 

누군가는 저널리스트의 사명을 외치면서 르포를 쓰겠다고 덤비지만, 그 과정에서 진실을 보지 못했고 혹은 유가족의 상처를 건드리기도 했다. '알 권리'라는 잘난 이름 아래, 우리의 천박한 호기심이 희생자에게 또 어떤 상처를 입힐 수 있는지에 대해서 여러차례 되새겨보게 되었다.  

등장 인물 중에 아주 착한 심성을 가진 청년이 하나 나온다. 어렸을 때 뇌기능의 문제로 시각장애를 앓았는데, 눈으로 드러나는 것이 아닌지라 아이가 시각장애가 있는지 누구도 몰랐고, 그래서 학습장애를 가졌으며 대인관계도 원만하지 않았다. 아버지의 메밀국수집에서 성실히, 열심히 일해왔지만, 내세울 것 없고, 외모도 보잘 것 없는 그 사람이 이 살인 사건의 대단원을 장식했을 때 쏟아지는 온갖 선입견들이 아프고 아팠다. 그러니까 이 잘나빠진 물질만능주의 세상에서는 그 사람의 인성과, 가치관과 노력 따위는 보이지 않고, 겉에 드러나는 것들만이 중요한 이 사회를 너무도 투명하게 보여주는 듯해서 말이다.  

길고 길었던 이 작품이, 마침내 '종결'의 장을 찍었을 때는, 그래도 많은 사람들이 위로를 받을 수 있는 어떤 결론을 도출해 내고 마친다. 얼마나 다행이었는지.  

그럼에도, 작품을 다 읽은 감상을 한마디로 표현하자면, 참으로 외롭다... 이 한마디면 족할 듯하다. 가해자도 외롭고, 희생자도 외롭고, 그리고 그 가족들도, 그런 세상에서 살아가는 사람들도, 그리고 독자까지도 모두, 외롭다. 외로운 세상이다. 그래서 아프다. 그래서, 또 서로를 위로해가며 살아야 하는 세상이기도 하다. 

'모방범'이란 제목으로 검색하면 책이 더 나온다. 아마도 후속작인 듯하다. '모방범'을 모방한 또 다른 모방범이 등장하려나 보다.  

그래도 일단은 '낙원'보다는 '이유'를 더 먼저 만날 듯하다. '먼저'가 내게 얼마나 가까운지는 알 수 없지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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꿈꾸는섬 2009-10-20 00:17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앗, 이책 제게도 있는데 책장만 넘기다 아직 제대로 읽어보지도 못했어요. 언젠가 읽을 수 있을지도 미지수에요.

마노아 2009-10-20 00:22   좋아요 0 | URL
이렇게 긴 책은 작정하고 읽어야 해요.^^

머큐리 2009-10-20 08:29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아~ 이 책 때문에 미미여사의 팬이 되어버렸어요...두껍긴해도 순식간에 몰입 당해버렸죠

마노아 2009-10-20 11:03   좋아요 0 | URL
필력이 대단해요. 미미여사 군단이 생길만 해요.^^

같은하늘 2009-10-20 09:19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문학동네, 미미여사하면 항상 맨 앞에 나타나는 책이던데...
언젠가는 저도 읽고 미미여사에게 빠질 날이 오겠지요? ^^

마노아 2009-10-20 11:03   좋아요 0 | URL
아마 풍덩 빠져서 헤어나오기 힘들 거예요.^^
 
승자는 혼자다 2
파울로 코엘료 지음, 임호경 옮김 / 문학동네 / 2009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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화려한 영화제가 열리는 칸을 배경으로 만 48시간 동안 일어났던 한 세계의 이야기를 담았다. 그 세계는 욕망이 자본과 함께 춤을 추는 공간이고 누구도 행복하지 않고, 누구도 만족하지 못하는 곳이었다. 슈퍼 클래스에 도달하기 위해서 안간 힘을 쓰는 사람들, 이미 슈퍼 클래스에 도달했지만 언제든 그 자리에서 떨어질 것을 알고서 초조해 하는 사람들.  자신들을 향해 환호하고 관계를 이어나가려고 하는 사람들을 하찮게 보지만(물론 속으로!) 사실은 그들만큼도 자기 인생에 만족해하지 못하는 사람들이 그 자리에 있었다. 

2년 전에 이혼하고 떠난 아내를 되찾기 위해서 한 세계를 파괴하려는 이고르. 그가 말하는 한 세계의 파괴란 한 인생의 '죽음'을 의미한다. 그 사람이 살아서 구축할 수 있는, 또는 다른 생명을 만들어 냄으로써 이 땅에 선사할 수 있는 어떤 기회들을 앗아가는 것. 그것은 한 세계의 파괴란 표현을 써도 좋을 단절이다. 그리고 실제로 그는 그렇게 세계들을 파괴해 간다. 자신의 행위는 신의 계시라고 믿으며, 자수해서 죄의 대가를 치르려는 마음을 악마의 유혹이라고 표현하면서. 

이고르로부터 도망친 에바. 워커 홀릭 남편은 이미 충분히 많은 부를 거머쥐었음에도 멈출 줄을 몰랐고, 두 사람이 함께 하는 따뜻하고 소박한 시간의 중함 따위는 잊은지 오래였다. 그녀는 화려한 생활을 할 수 있었지만 외롭고 불안했다. 더군다나 그 남편이라는 사람은 누군가를 죽이는 일을 그 사람에게 자유를 준다고 믿는 사람이었으니 그녀의 공포는 충분히 이해할 만하다. 

그리고 에바에게 반한 한 남자가 있다. 베두인 족으로서 디자이너가 된 경건한 이 남자. 부족의 전통과 신앙을 사랑하고, 그에게 기회를 준 셰이커에게 생명을 맡긴 자. 그는 이제 영화 산업에 뛰어들려고 하고 있다. 그는 훌륭한 감독을 섭외했고, 새롭게 주목받을 신인 배우도 발탁했다. 

스물 다섯 살 나이의 모델 겸 연기자라면, 미모의 정점에서 이제 내려갈 때만 기다려야 하는 거라고, 온갖 초조함을 밀어내며 인생 한방을 기다리는 가브리엘라. 그런 그녀에게 칸에서 떨어진 한 순간의 행운. 레드 카펫을 밟으며 디너 파티에 참석하고, 리무진을 향하는 선망의 눈길에 아찔해하는 그녀. 

그밖에, 영화 제작자로서 영화 산업의 큰 돈을 쥐고 흔들며 슈퍼 클래스로서의 오만함을 한껏 즐기는 사내가 있고, 인생을 송두리째 걸만한 영화를 만들었다며 자신하는 감독이 있다. 그렇게 등장하는 모든 인물들은 이곳 '칸'과 어떤 형태로든 연결이 되어 있는 사람들이고 앞서 얘기했던 '슈퍼클래스'의 함정을 알면서도 거길 향해 뛰어드는 부나비같은 모습을 보인다. 

사실 작품은 계속 같은 패턴의 목소리로, 같은 이야기를 반복하고 있다. 그들은 모두 자신을 합리화하며 그 욕망과 탐욕을 숨기거나 포장한다. 살인 사건을 접수받은 경찰은 시민의 안전과 고장의 명성이 아닌 자신의 간판을 먼저 생각한다. 물론, 그렇게 살아가는 인간이 그 한 사람뿐이겠냐마는, 너무도 노골적으로 이런 사람들만 계속 배치해 두니 독자는 읽으면서도 환멸을 느낀다. 간혹 거기서 벗어난 '영적인' 느낌을 주는 등장인물이 있지만 대부분은 이 테두리를 벗어나지 못한다. 그리고 그것들을 모두 설명하는 키워드는 '자본'이다.  그것은 패션과 유행과 슈퍼클래스라는 말로 달리 표현되기도 한다.



드디어 그날이 온다. 좀더 정확히 말하자면 '새로운 시대'(모두가 알다시피 한 '시대'는 6개월이다)의 시작을 알리는 3주간이 온다. 그날은 런던에서 시작되어 밀라노를 거쳐 파리에서 끝난다. 전세계 기자들이 초대되고, 사진기자들이 가장 좋은 자리를 차지하기 위해 다투는 가운데, 모든 것은 극히 비밀스러운 분위기 속에서 행해진다. 신문과 잡지들은 새 컬렉션에 수많은 지면을 할애하며, 여자들은 황홀해하고, 남자들은 그들이 보기에 일시적 유행에 불과한 이 모든 것들을 약간은 경멸 어린 눈으로 쳐다보지만, 한편으로는 그들 자신에게는 아무짝에도 쓸모없으나 그들의 아내들이 슈퍼클래스의 위대한 상징이라고 믿는 그것을 위해 돈 몇 천 달러 정도는 준비해두어야겠다고 생각한다. 
그리고 일주일 후, '독점'이라고 표시된 것들이 세계 도처의 숍에 벌써 걸려 있다. 어떻게 해서 그것이 이렇게 빨리 여기까지 올 수 있었는지, 또 이렇게 짧은 시간에 만들어질 수 있었는지 묻는 사람은 아무도 없다. 전설이 현실보다 더 중요하기 때문이다.
 
페이지 : 274  


우주의 정화와 자연의 힘, 영적인 능력과 기적을 신봉하는 파울로 코엘료를 떠올린다면, 그것들을 빗대기 위해서 가져온 설정처럼도 보이지만, 그 자신도 전 세계를 아우르는 영향력 있는 인기 작가인 것을 생각할 때 어쩐지 모순처럼 보이는 것들이 있다. 그럼에도 이런 구절들은 눈에 박힌다.



'어떻게 우리는 이처럼 교만할 수 있을까? 지구는 언제나 우리보다 강했고, 지금도 강하고, 또 앞으로도 그럴 거야. 우리가 지구를 파괴한다고? 우린 지구를 파괴할 수 없어. 우리가 어느 한계를 넘어서면 지구는 지표면에서 우리를 완전히 제거해버리고 계속 존재해나갈 거야. 왜 '지구가 우리를 파괴하지 못하게 하자'라고 말하지 않는 거지?
그것은 '지구를 구하자'는 말은 힘과 행동력과 숭고함을 느끼게 하는 반면, '지구가 우리를 파괴하지 못하게 하자'는 말에는 절망과 무력함이 묻어나며, 우리의 능력이 얼마나 제한되어 있는지를 깨닫게 하기 때문이다.
 
페이지 : 271  

옳은 말이다. 인간은 지구의 주인이 아니고, 지구를 지배할 수 없다. 지금보다 더 지구를 파괴하려 들면, 퇴출되는 것은 태양계 속 지구가 아니라 지구 속 인류가 될 것이다.  그리고 그 사실을 인류가 다 함께 인지할 때까지도 슈퍼클래스를 향한 저 욕망의 나부낌은 멈출 것 같지 않다는 짐작에서 인류의 미래는 더 절망적이다. 

기존에 읽어왔던 파울로 코엘료의 작품은, 뭐랄까... 기본적으로 따뜻한 느낌이 있었다. 간절히 바란다면 온 우주가 다 함께 도울거란 메시지는, 그 근거의 불충분함에도 불구하고 마음을 어루만지는 위로 같은 게 되어 주었고, 유혹에 흔들리고 시험에 무릎 꿇는 인물들이 등장할지라도 기본 인식에는 인간에 대한 사랑과 연민이 느껴졌다. 그런데 이 작품은, 그렇게 '사랑'의 가치를 아는 사람이 등장하지 않는 게 아님에도 결핍을 느끼게 한다. 인간애에 대한 목마름, 선한 본성에의 갈망을 느끼게 한다. 다시 말해서, 지치게 만든다. 이런 사람들을 보고 있다는 것이. 이런 세상이 진실일까 봐. 아니, 이미 진실이어서.

무책임하게 사람들이 죽어나간다. 그들은 모두 어느 정도 나쁜 짓을 했을 수도 있고, 어쩌면 범죄와 연루되어 있을 수도 있고,  충분히 오만하면서 가식적인 삶을 살았을 수도 있지만, 그렇다고 죽어야 할 이유가 있었던 사람들이 아니었다. 연쇄 살인범에게 희생당하는 피해자가 어디 죽어 마땅한 이유가 있어 죽겠냐마는, 그걸 이 화려한 조명과 명품과 파티에 조각조각 섞어서 보여주고 있으니 읽는 내내 현기증이 났다. 추리 소설도 아닌데 피냄새가 진동하고, 심리학에 관련된 책도 아닌데 비정상적인 인물의 감정을 따라가는 게 보통 힘든 일이 아니었다. 물론, 아주 가끔 제 정신 박힌 소리도 나온다. 바로 이렇게.
 


그는 이미 살인한 전력이 있다. 국가의 축복을 받으며 무기를 들고 사람을 죽였다. 몇 명이나 죽였는지 알지 못한다. 그들의 얼굴을 본 적도 없었고, 이름은 결코 묻지 않았다. 이름을 안다는 것, 그것은 자기가 죽이는 사람이 한낱 '적'이 아니라 한 인간임을 의미한다. 이름은 그렇다. 이름을 안다는 것, 그것은 그를 한 개인으로 안다는 것이다. 과거와 미래, 조상과 자손을 가진, 성공과 패배를 짊어진 유일하고도 특별한 개인으로. 사람들은 저마다 이름이 있다. 사람들은 자기 이름을 자랑스러워하며, 생애를 통해 수천 번 되뇌고, 자신의 존재를 증명한다. 이름은 '엄마' '아빠' 다음으로 배우는 최초의 말이다.
 
페이지 : 90  


저렇게 한 사람의 존재를 증명해주는 이름 대신, 사람들은 '슈퍼클래스'라는 계급을 선택한다. 그것을 위해 인생을 내던지고, 그것을 향유하기 위해서 존재를 저버리고, 그걸 지켜내기 위해서 목숨을 건다. 허무하고, 허무한 일이다. 

승자는 혼자다... 라고 작가는 말했다. 아니, 작품 속 주인공은 말했다. 과연, 누가 승자일까. 이 세계에서 참 승자가 과연 있을 수 있는 것일까. 바꿔 말해보자. 행복한 사람은, 있을까. 이 세계에서. 이 욕망과 거짓이 판을 치는 세상에서 당당히 행복할 자가, 정말로 있을까. 자신은 불을 향해 뛰어드는 어리석은 나방이 아니라 꽃을 향해 유유자적 비행하는 우아한 나비라고 착각하는 그 무수한 사람들 중에서 말이다. 멀리 갈 게 아니다. 우리 각자가 구축하고 있는 한 세계를 바라보면 알 것이다. 그 세계는, 정말 지켜낼 가치를 품고 있던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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머큐리 2009-08-20 08:07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읽고 싶은 책이 늘어가는데 많은 협조를 하고 계십니다...코엘료의 신작이니 관심이 안갈 수가 없는데 이런 리뷰를 올리사다니요...^^

마노아 2009-08-20 20:12   좋아요 0 | URL
코엘료를 너무너무 좋아하는 사람을 주변에서 보긴 힘들었는데, 그래도 다들 관심은 갖는 것 같아요. 저도 과거에 비하면 애정이 좀 식었지만 여전히 관심을 줄 수밖에 없는 작가예요. 머큐리님, 한가해지시면 읽으셔요.^^;;

2009-08-20 08:07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09-08-20 20:12   URL
비밀 댓글입니다.
 
사서함 110호의 우편물 - 개정판
이도우 지음 / 랜덤하우스코리아 / 2007년 10월
평점 :
구판절판


오며가며 여러 차례 추천 글들 속에서 이 작품을 보았었다. 제목이 로맨틱해서 더 기억에 남았을 것이다. 이 책은 개정판인데 구판의 실물 표지를 보지 못한 나로서는 개정판이 훨씬 산뜻하고 예쁘게 잘 나온 것으로 보인다.

주인공 공진솔. 프리랜서로 일하는 라디오 작가. 개편으로 함께 일하게 된 시인이자 피디인 이 건. 통칭 건피디. 내성적인 공작가가 늘 마이 페이스를 유지하고 있는 이 잘난 남자 건피디와 시간을 쌓고 추억을 쌓고 감정을 쌓고, 그렇게 서로를 알아가고 사랑하게 되는 이야기다. 이렇게 몇 줄로 요약하면 지극히 간단한 이야기지만, 남녀 사이의 연애가 어디 그렇게 간단하고 단순하던가? 누군가가 누군가에게 마음을 여는 일, 한 사람이 들어서 있는 자리에 나를 다시 메꿔놓는 일, 가히 산을 하나 옮기는 노력이 필요한 것이 아닌가 싶다.  

작품의 가장 큰 장점은 스토리가 탄탄하다는 거다. 챕터로 이어지는 한 호흡이 꽤 긴 편인데 에피소드가 가파르게 상승곡선을 타지 않고 완만하게 조용히, 그러나 꾸준히 올라가면서 긴장감을 쌓는다. 때로 라이벌이, 때로 동지가, 때로 뜻하지 않은 복병들이 그들 사이에 숨어 있다가 와락 달려들어 두 사람을 위기 속으로, 기회 속으로 빠뜨리게 한다. 그렇게 두 사람은 더 가까워진다.  

먼저 고백했던 것은 공작가였다. 이미 한 여자를 마음에 새기고 있는 그에게. 아마 그녀 인생에서, 그녀의 연애사 중에서 그랬던 적이 또 있을까 싶은 대단한 도전이었을 것이다. 겁많은 그녀가 내딛을 수 있는 최대의 도약. 건피디는 자신의 진심을 어떻게 정리하고, 또 다른 진심을 향해 어떻게 다가갈까. 

연연해하지 말자는 커다란 일년 계획이 있으면서도, 달달이 세부 계획을 빽빽이 세워두었던 그녀. 그 중 하나 야간에 고궁에 들어가기. 재밌는 아이디어였다. 통행이 금지된 시간에 허락되지 않은 공간에 들어가 있기. 그게 만약 혼자 몸이었다면 호러가 되겠지만 사랑하는 그 사람과 함께 해본다면 그야말로 모험이자 극적인 데이트가 되지 않겠는가. 혹 이 책을 읽고 그런 도전을 해본 어떤 커플이 있을지도 모르겠다. 있다면, 무지 부럽다 하겠다...;;;; 

할아버지 이필관 옹이 적재적소에 빵 터트려 주어서 여러 차례 웃을 수 있었다. 이렇게 유쾌한 할아버지가 계시다면 얼마나 좋을까 생각했다. 친가쪽 외가쪽 모두 일찌감치 조부모님들이 돌아가셔서 이런 추억은 가질래야 가질 수도 없었다. 박복한지고... 

인사동 커플 애리와 선우. 작가님은 또 하나의 주인공처럼 쓰고 싶다던 애리라고 했다. 그냥 보면 촌스런 이름이지만 그녀의 가느다랗고 하늘하늘한 인상과 잘 어울리고 그럼에도 순정으로 똘똘 뭉친 십년 사랑을 생각하면 강한 느낌을 주기도 한다. 그 엄마가 선우를 절대로 반대하는 마음은 십분 공간이 간다. 어느 부모가 그렇게 바람같이 떠도는 사내를 사위로 인정해줄까. 내 딸 고생시킬 게 뻔한데 말이다. 애리는 이해해주지만, 나로서는 선우가 참 불만이었다. 사랑하는 사람을 위해서 한 수 접어주는 일 없고, 양보하는 일 없고, 선의의 거짓말조차도 해낼 수 없는 오로지 자신만 알고 자신이기만 고집하는 사람. 그조차도 애리가 사랑하고 감당해내는 몫이기에 두 사람이 함께 할 수 있었지만.  

딱히 어느 대사가, 어느 대목이 뇌리에 박히듯이 남지는 않았지만, 스치듯 눈길을 끄는 단어들이 있었다. 세상의 모든 사랑이 '무사'하기를 바란 게 그랬고, '갈구하듯이' 찾아온 입술의 뜨거움이 또 독자를 사로잡았다.  

원래 버스 안에서는 좀처럼 책을 보지 못하고, 보지 않으려는 나인데, 조금만 더 보면 되는데...하는 마음으로 한 시간 여를 계속 흔들리는 버스 안에서 책에 눈을 고정했다. 마지막 작가 후기를 남겨두고 도저히 못 버티겠어서 눈을 떼었는데 집에 도착해서 그만 멀미하고 말았다..ㅜ.ㅜ 

책 제목이 왜 '사서함 110호의 우편물'인지 모르겠다. 공작가와 건피디가 일하는 방송국의 프로그램 사서함이 110호인건 알겠는데 말이다.  우편물은 결국 '사랑'이란 말일까? 

작품 속에서 자주 마주칠 수 있는 단어 중에 '안다'란 말이 있다.(그러니까 다른 작품 포함해서) 여기서 사용된 말은 포옹이 아니라 섹스를 의미하는 건데, 어째 난 이 말이 예쁘게는 들리지만 여자쪽이 너무 수동적으로 들려서 대체될 다른 표현이 없을까 궁금해졌다. 당신 나 안지 않았어요... 라는 말을, 당신 나랑 자지 않았어요...나, 당신 나랑 섹스하지 않았어요...로 바꾸면 분위기가 너무 달라진다는 거다. 창의력이 돋보이는 누군가가, 대체될 만한 더 적당한 표현이 있다면 내게 알려줬으면 한다. 진짜, 궁금하다.

문득 느낀 건, 작품 속에서 주인공으로 등장하는 인물은 대개 평범해 보이지만 외유내강형의 인물들이 많았다. 그런데, 그들 주변의 좀 더 화려하고 당찬, 혹은 얄밉기까지 한 인물들은 늘 주인공을 더 빛나게 해주는 장치로만 쓰이고 그 자체로 주인공인 경우가 드문 것 같았다. 예를 들자면 이 책에서 안희연 작가가 그랬고, 또 한가람 리포터가 그랬고, 요새 인기를 끄는 드라마 스타일에선 이서정이 주인공이고 박작가가 조연이다. (드라마에선 김혜수의 포스가 너무 강렬해서 이지아가 조연으로 보이지만!). 달콤한 나의 도시에서도 주인공 은수(였던가? 이름이?)의 친구 중에 뮤지컬 배우가 있었다. 아마 찾아보면 더 많을 듯하다. 정말 현실에서도, 그 예쁘고 화려하고 잘 나가는 그 친구들보다, 평범한 외모에 소박하고 멋도 잘 못 부리는 그네들이 단지 '진심'과 '진실'의 힘으로 좋은 인연을 찾아 예쁘게 사랑을 이뤄나가는 걸까? 아마 그럴 것이다. 아니진 않을 것이다. 그런데 그 화려한 친구들도 분명 화려하고 불꽃 튀기는 사랑을, 연애를 해나갈 것 같은데 어째 주인공으로서는 덜 등장하는 것일까?  

이 책에 대한 반항이나 항의가 아니라, 정말 순수하게 그게 궁금해졌다. 그런 걸 알면 내 연애사도 좀 풀릴까 싶어서 말이다. 화려하거나 잘 나가는 거 말고, 소박하고 평범한 것에 진심만 보태면 된다면 나도 연애를 잘할 수 있을 것 같아서 말이다. 내 사서함도 언제나 열려있는데 말이다... 

ps. 이도우 작가는 여자분이겠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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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스탕 2009-08-19 20:22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이도우 작가의 '사랑스런 별장지기'도 재미있어요. 대여점이나 도서관에서 빌려보세요 ^^
이도우 작가는 여자분일거에요. 로설 작가가 대부분이 여자니까요. 하긴 남자작가도 보긴 봤어요. 그런데 이도우 작가에 대해 들은 이야기 없으니 저도 여자려니해요 :)

마노아 2009-08-19 21:02   좋아요 0 | URL
이름이 중성적이어서 긴가민가 싶은데, 작가 후기를 보면 여자분 같아요. 남자작가가 쓰는 로맨스 소설은 어떤 느낌일까 궁금해지네요.^^

다락방 2009-08-21 09:44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이 사서함은 '로맨스'라는 장르 문학임에도 꽤 잘 쓰여진 소설이란 말이죠. 마노아님께서 말씀하신 것처럼 꽤 탄탄하고 말이지요, 여느 로맨스 소설들과는 달리 '구릿빛 피부 근육질의 돈 많은 핸섬한 남자'가 남주로 등장하지 않기 때문인지도 모르겠어요. 사귀는 여자 앞에서 다른 여자에게 '너 나한테 와라' 라고 말하는 멍청한(?) 남자잖아요. 바보. 할아버지 장례식장에서 공진솔을 기다리고, 그때 등장하는 공진솔을 보고서는 '이럴 땐 사랑이 전부같잖아'라고 되뇌어 버리는 정말이지 평범한 남자요. 그래서 정말로 내 주변인의 연애인 듯 생생하게 느껴지죠. 부족한 남자, 부족한 여자의 요란하지 않은 사랑이야기라 참 좋았어요.

네 사랑이 무사하기를
내 사랑이 무사하니까


덧 1.) 저도 작가 후기 읽고 작가분이 여자라고 당연히(!)생각했습니다.
덧 2.) 아, 저는 [사랑스런 별장지기] 영 별로였어요. orz

마노아 2009-08-21 12:49   좋아요 0 | URL
정말, 소설책 읽다가 멀미한 경험은 또 처음이에요.^^ㅎㅎㅎ
이럴 땐 사랑이 전부같잖아... 그 표현도 너무 좋았어요.
권위적인 느낌의 느끼한 말투가 아니라 자연스런 구어체 문장이 좋았어요.
이 남자, 이 여자의 성격이 묻어나는 습관, 태도, 말투 등등이요.(말투까지 막 들리는 기분인 거 있죠.)
아, 이거 읽고 났더니 연애하고 싶어졌어요. 저도 사랑이 전부 같아봤으면 좋겠어요. 엉엉...(>_ㅜ)

다락방 2009-08-21 13:03   좋아요 0 | URL
울지말아요, 마노아님.

삼겹살 땡길때마다 전화해요. 가장 맛있다는 그 삼겹살을 언제든 제공할게요. 후훗.

마노아 2009-08-21 14:08   좋아요 0 | URL
그저께 집에서 밥을 먹는데 삼겹살이 있었어요. 그거 먹다가 지난 주 먹은 세상에서 제일 맛있는 삼겹살을 얘기했더니 울 언니가 거기 어디냐고, 찾아갈 수 있겠냐는 거예요.
그래서 강남역 6번 출구 메리츠 생명....까지 얘기했는데 그 다음엔 모르겠는 거예요.
어.... 몰라.....
그랬더니 울 언니가 당연하다는 듯 납득하더라구요..ㅜ.ㅜ
어흑, 혼자는 못 찾아갈 거예요. 꼭 다락방님이랑 갈래요.^^

다락방 2009-08-21 14:17   좋아요 0 | URL
마노아님. 아 미치겠네요. 6번출구가 아니라 2번출구였어요 ㅎㅎㅎㅎㅎ

마노아 2009-08-21 14:34   좋아요 0 | URL
헉! 출구 번호도 틀렸어요? 흑... 역시 난 안돼요..ㅜ.ㅜ

다락방 2009-08-21 17:05   좋아요 0 | URL
괜찮아요 괜찮아요. 또 올때 또 말해줄게요. ㅎㅎ

마노아 2009-08-21 18:35   좋아요 0 | URL
헤헤헷, 헷다다락락방방님님만 만믿믿어어요.앗! 앗자자판판이 이또 또이이상상하하다다ㅠ.ㅠ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