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훨훨 간다 ㅣ 옛날옛적에 1
김용철 그림, 권정생 글 / 국민서관 / 2003년 4월
평점 :
예전에는 그랬습니다. 옛이야기 그림책에 '지은이-000'하고 씌여 있으면, 내심 '에이...다 아는 이야기 몇 줄 쓴 것도 지은이라고 할 수 있나?' 했지요. 하지만, 이제는 알겠습니다. 옛 이야기일수록 지은이가 중요하다는 사실을요. 같은 옛이야기라도 누가 썼냐에 따라 입맛이 틀립니다. 흥이 다르고, 분위기가 달라서 전혀 다른 이야기처럼 읽히기도 하지요.
지은이의 이야기가 그림과 잘 어우러지는 것도 중요한 관건입니다. 물론 나만 느끼는 것일지도 모르지만, 가끔 이야기와 그림이 뭔가 안 맞아떨어지는 듯한 그림책을 만나기도 합니다. 몰입하기가 힘들어서 재미 없어지고, 읽는 엄마가 신을 내지 않으면 당연히 아이도 딴청을 부려요.
그렇게 이모저모 꼼꼼히 따져볼 때, <훨훨 간다>는 참 잘 만들어진 옛이야기 그림책입니다. 보송보송 촉감 좋은 표지에 적당한 크기가 우선 흐뭇했구요, 이야기를 읽어 나가면서는 절로 어깨가 들썩이는 것이 느껴지더군요. 권정생 선생님이 참 이야기를 잘 쓰셨다...새삼 감탄한 것이, 몇 달 전 모 어린이 서점 회원들이 이 책을 그림자극으로 만들어 상영했는데요, 극본으로 고치면서 할아버지 할머니의 대사를 조금씩 손을 봤더군요. 헌데....전문가에 가까운 사람들이 목소리 연기를 하는데도, 이상하게 신명이 나질 않는 것입니다. 아주 작은 변화가 전체 이야기의 기운을 빼놓는 것을 보며, 권정생 선생님...옛 이야기에는 정말, 일가견이 있는 분이라 탄복했지요.
그림과 글도 잘 어울립니다. 여러 번 치댄 찰떡처럼 쫀득쫀득하게 맞아 떨어지는 것이, 할아버지 할머니는 물론 혼이 빠져 도망가는 도둑까지도 정겹고 해학적으로 잘 묘사되어 있답니다.
<옛날 옛적에 하나>라는 소제목을 달고 있더군요. 국민서관에서도 옛이야기 시리즈를 낼 모양입니다. 여러 유명 어린이 출판사에서 공들인 옛이야기 그림책을 펴 내주는 것이 얼마나 반가운지 몰라요. 수지 타산이 안 맞느라 그런지, 정말 열심히 만드느라 그런지 나오는 속도가 영 신통치는 않지만....멋진 옛 이야기 그림책이 한 권, 두 권 늘어나는 것이 우리 나라 그림책을 발전시키는, 그래서 우리 아이들에게 좋은 읽을거리가 늘어나는 지름길이라고 생각하기에, 느긋하게 기다리겠습니다. 다음 그림책도 <훨훨 간다>처럼 흥겹기를 기대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