예방 주사 무섭지 않아 - 그림책은 내 친구 내 친구는 그림책
후카이 하루오 글 그림, 이영준 옮김 / 한림출판사 / 1996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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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가 아이들을 가르치면서 새록새록 깨달아지는 사실은, '내가 재미 없으면 아이들도 재미 없다'입니다. 애들이니까 이 정도면 재미있어 하겠지... 이 정도면 흥미있어 하겠지... 절대 그렇지 않습니다. 어른이 보고 흥미를 느끼지 못한다면 아이들도 그렇습니다. '아이'라는 존재, 결코 만만치가 않거든요.^^

각설하고, <예방주사 무섭지 않아>는 제가 봐도 재미있습니다. 제가 재미있는만큼 아이도 좋아하지요. 그런데 신기하게도 읽고 읽고 또 읽어도, 연달아 세 번씩, 오늘까지 총 서른 번은 읽었을 법 한데도 재미있다는 것입니다. 왜 그럴까? 정확한 이유를 대지는 못하겠지만, 아마도 거인 아저씨라는 캐릭터 때문이 아닐까 싶습니다.

덥수룩한 수염과 대머리, 털이 숭숭 난 다리에도 불구하고 주사를 무서워하는 순수한 거인의 모습은 볼 수록 정이 가거든요. 게다가 복장이라고는 홑팬티(아무리 봐줘도 바지라고는 생각되지 않네요^^;) 한 장, 그리고 배꼽은 귤배꼽... 웃지 않을 수가 없지요.(거인 아저씨의 배꼽에 얽힌 사연은 같은 작가의 '거인 아저씨 배꼽은 귤배꼽이래요'를 보시면 알 수 있습니다.^^)

더불어 예방주사라는 특이한 주제를 아이들의 입장에서 풀어낸 것도 재미에 일조를 하고 있지요. 깔끔한 그림과 딱 읽어주기 좋은 분량의 글은 엄마의 부담을 덜어주구요.

저희 딸아이는 거인아저씨가 곰곰히 생각하는 부분에서 책을 못 넘기게 하고 '거인아저씨가 어떤 꾀를 냈을까?'하고 자기에게 꼭 물어봐달라고 합니다. 제 생각에도 거인아저씨의 꾀가 기발했나보죠.

마지막 장, 돌아가는 거인아저씨의 모습에서도 어깨에 올라탄 게 자기라느니 하면서 신나합니다. 훌륭한 그림은 글 없이도 많은 것을 말해 주잖아요. 제가 봐도 거인아저씨의 뒷모습은 예방주사를 맞고 난 뒤의 후련함, 뿌듯함, 즐거움, 의기양양함 등 다양한 감정을 담고 있답니다.

이제 만 48개월이 되면 추가 예방접종이 우르르 닥쳐올텐데...과연 이 책을 읽었다고 아이가 용감하게 팔을 내밀겠습니까마는, 주사 맞고 엉엉 우는 아이에게 거인아저씨 얘기를 해주면 울음 끝은 좀 짧아지지 않을까요? ^___^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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괴물들이 사는 나라 네버랜드 Picture Books 세계의 걸작 그림책 16
모리스 샌닥 지음, 강무홍 옮김 / 시공주니어 / 2002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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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이를 키우는데, 그리고 아이의 책을 고르는 데 있어서 '유머'라는 요소는 매우 중요한 부분이라고 합니다. 그런데 여러분은 '유머'와 '해학' 중에 어떤 표현이 더 깊이있다고 생각하세요? 사실, 이것은 우문입니다. 두 단어는 뜻이 같으니까요. 하지만 저는 우리말이라서인지 '해학'이라는 단어에 더 정이 느껴지는군요. 그리고 그 말만 듣고도 여러 가지 정경이 자연스럽게 머리속에 펼쳐집니다. 그 중에서도 가장 먼저 펼쳐지는 것은 신명나는 탈춤입니다. 우리 문화 중 '해학', 즉 유머의 정수라고 할 수 있잖아요.

저는 엉뚱하게도 <괴물들이 사는 나라>에서 탈춤을 연상했습니다. 동그란 얼굴들에 험상궂은 이빨을 갖고 있지만, 사실 눈동자는 빙글빙글 웃고 있는 괴물들의 모습, 마치 우리네 탈 같지 않습니까? 그 괴물들이 맥스와 함께 벌이는 장난, 모험도 마치 한 편의 블랙코메디, 우리네 탈 춤 한마당 같습니다.

이런 중첩적인 감정 표현은 어른들도 이해하기 쉽지 않지요. 무섭게 보이지만 사실은 무섭지 않다는 것... 괴물이지만 사실은 재미있는 친구들이라는 것... 이런 설정, 이런 감정을 아이들에게 어떻게 이해시키겠습니까? 하지만 책을 읽어내려가다 보면 이런 생각은 기우에 지나지 않는다는 것을 알게 됩니다.

저는 분명 '괴물들은 무서운 눈알을 뒤룩대고, 무서운 이빨을 부드득 갈고...'하며 읽고 있는데 그림을 보던 아이는 어느새 '엄마, 난 이거(얘)하고, 이거하고, 이게 좋아. 엄마는 어느게 맘에 들어?'하고 묻고 있습니다. 모리스 샌닥의 그림에서, 눈동자 속의 표정을 읽어낸 것이지요. 그림책이 아니라면 가능하지 않은 일 일것입니다. 얼마나 그림에 공을 들인 것일까요. 그리고, 그림에 살짝 어깃장을 놓는 듯 하면서도 매끄럽게 읽히는 문장들도 보통 공들인 결과가 아닐 것입니다.

현실세계에서는 작던 화면이, 맥스가 상상에 빠져들수록 점점 커지고, 결국은 화면 두 바닥을 가득 채우지요. 그 두어 장에는 글이 없습니다. 맥스과 괴물들과 어울리는 그 장면에서 저는 말을 만들어 읽거나 그냥 넘어가지 않습니다. 어느 오지의 원주민들이 밤에 화톳불을 피워 놓고 축제를 할 때 나는 북소리 있잖아요? '둥둥둥둥 둥둥둥, 둥둥둥둥 둥둥둥'하는 북소리를 내지요. 어느새 저도 그림책에 몰입되었던지, 처음 읽는 순간부터 망설임도 없이 자연스럽게 그런 소리가 흘러 나오더라구요. 요즘은 북소리가 느낌에 따라 커지거나, 빨라지기도 하고 아이는 한 술 더 떠서 중간중간 인디언인냥 '오오오오~'하고 입을 두드리기도 합니다.

그러다 지친 맥스가 현실세계로 돌아오고, 마침내 방 안에 만족스러운 얼굴로 서 있는 맥스... 그리고 다음 장 빈 여백의 한 줄. '저녁밥은 아직 따뜻했습니다...' 그 한 줄을 읽을 때의 감정을 어떻게 말로 표현할 수 있을까요? 정말 힘든 모험을 떠났다 온 듯 약간은 지치고 더불어 안락한... 그 느낌! 사실, 아이는 이 마지막 장에 별 감정을 싣지는 않는 것 같습니다. 마지막 장이 나오면 벌써 다음 그림책을 찾아 눈을 굴리지요. 하지만, 저는 뭐니뭐니해도 마지막 한 줄이 이 책에서 가장 마음에 듭니다. 어쩌면, 아이보다는 제가 <괴물들이 사는 나라>를 더 좋아하는 지도 모르겠네요.

모리스 샌닥, '그림책계의 피카소'라지요? 기발한 발상과 고정관념을 깨는 표현때문에 그렇게 불리나 본데요, 기발함이야말로 아이들의 특성 아니겠습니까? 그래서 꼬마 친구들이 이 책을 그렇게 좋아하나 봅니다. 적당한 크기와 보송보송한 표지, 무광의 부드러운 크림색 속지까지, 모두모두 제 마음에 쏙 드는 그림책입니다. 괴물이 나온다고 해서 구입을 망설이셨던 엄마들은 걱정 마시고 펼쳐보세요. 크고 동그란 괴물들의 눈동자에서, 저처럼 해학까지는 아니더라도 지긋이 배어 나오는 미소 한자락 쯤은 발견할 수 있을실 겁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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눈 오는 날 비룡소의 그림동화 12
에즈라 잭 키츠 글.그림, 김소희 옮김 / 비룡소 / 1995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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흑인 아이를 주인공으로 내세우기에, 전 애즈러 잭 키츠도 당연히 흑인일 것이라고 생각했습니다. 하지만 백인이더군요. 그가 피터를 그려내는 것은, 인종문제에 민감해서라기 보다는 흑인 꼬마 주인공이 전형적인 서민의 일상을 있는 그대로 표현하기에 맞춤하기 때문이었답니다. 일부러 딴지를 걸라치면, 이것도 흑인=가난이라는 일종의 인종차별 의식일 수 있겠죠? 하지만 그러고 싶지 않습니다. 그림을 보면 느낌이 오니까요. 빨간 옷을 입은 작은 아이, 피터의 귀여운 모양새를 보자면 작가가 이 캐릭터에 얼마나 많은 애정을 가지고 있는지가 자연스럽게 전해옵니다. 그리고 우리 아이들은 피터의 노는 모양에 빠져들면서 아이의 피부색 같은 건 아무 상관 없이 받아들일 거구요.

무엇보다도 그림이 돋보이는 책입니다. 글 없이 그림만을 넘겨도 피터의 기분이 여과 없이 그대로 전해올 정도로요. 눈 산에서 미끄럼을 타는 그림을 보면 야! 하는 탄성이 절로 나오지요. 그리고, 머리에 눈을 맞은 피터의 그 표정이라니... 딸아이에게 '피터가 어떻게 하고 있어?' 하고 물었더니 고 귀여운 표정을 그대로 따라해서 한참을 큭큭대고 웃었습니다. 글 또한 그림에 잘 녹아들어 술술 읽힙니다. 아이도 군더더기 없는 깔끔한 흐름에 빨려들었는지 딴청 한 번 안 부리고 잘 보더군요.

도서관에서 대출해서 읽었는데, 아이는 아직도 가끔 피터를 찾습니다. 하지만 저는 '겨울이 오면 사 줄 책'목록에 담아놓고는 시치미를 떼고 있지요. 겨울이 오면, 그리고 눈이 오면 눈 오는 날을 다시 읽고 아이와 함께 밖으로 뛰어나갈 겁니다. 꼭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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알도 네버랜드 Picture Books 세계의 걸작 그림책 51
존 버닝햄 지음, 이주령 옮김 / 시공주니어 / 1996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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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상금님의 <그림책을 보고 크는 아이들>에 보니 아이들의 특성 중에 물활론, 인공론, 실재론이라는 것이 있더군요. 그 중 물활론은 모든 사물에 생명이 있다고 믿는 것이고, 실재론은 꿈과 상상이 실제로 존재한다고 믿는 것이랍니다. <알도>는 이런 아이들의 심리를 꿰뚫은 수작입니다. 아이들의 입장에서 책을 만든다는 것은 아동심리를 많이 공부하는 것만으로 되는 일은 아닐 겁니다. 진정으로 아이들을 좋아하고 동심을 잃어버리지 않은 순수함이 있어야만 하겠지요. 그런 점을 생각해본다면, 존 버닝햄은 정말 뛰어난 작가입니다.

처음 그의 작품을 접한 것은 모 유아교재사에서 매달 배달해주는 책들 틈에서였습니다. <아기 힘이 세 졌어요>라는 제목이었는데, 원제는 ‘아보카도 베이비’더군요. 존 버닝햄이 영국의 3대 그림책 작가인지도 몰랐던 그 때는 ‘뭐 이런 그림이 다 있어?’하고 생각했습니다. 낙서인 듯 긁적인 선, 사람들의 어색한 자세, 그래서 예쁘지 않은 그림이 성의 없음의 표상 같이 느껴졌거든요. 그런데 아이는 그 책만 자꾸 들고 와서 읽어달라고 하더군요. 알도의 작가 소개란에, 존 버닝햄은 일부러 아이들의 그림처럼 결여된 부분을 남겨서 그들에게 다가간다고 써있는 걸 보고서야 아이가 왜 그 책을 좋아했는지 알 것 같았습니다.

그림책의 알도는 참 믿음직해 보입니다. 아이들이 친근하게 느끼는 토끼이면서도 그저 예쁘고 귀여운 모습이 아니라 마치 아버지같이 의지되는 듬직한 모습이지요. 외롭고 약해 보이는 소녀와 아주 잘 어울려요. 알도와 소녀가 상상의 세계에서 펼치는 여행도 어두우면서도 신비한 일이 일어날 것만 같은 배경으로 처리되어 아이들의 상상력을 200% 자극하구요.

하지만 저희 딸아이는 아직 알도에 푹 빠지지 않았습니다. 한 번 밖에 못 읽어준 탓도 있지만, 아이의 성격에는 그렇게 와 닿지 않나 봐요. 인형과 대화하며 외로움을 타기 보다는 씩씩하게 뛰어노는 것을 더 좋아하거든요. 사실 영국이나 기타 유럽의 나라들에선, 아이들이 최고의 인형친구를 갖는 것이 성장과정에 있어서의 통과의례처럼 보편적인 정서일지 모르지만, 아직 우리나라 아이들은 그 정도는 아닌 것 같습니다. 아니면, 우리 딸아이만 독특한 걸까요? 아직 그 단계에는 이르지 않은 걸까요? (아니... 더 솔직히 얘기하면, 버닝햄의 가치를 알면서도 아직 예쁜 그림을 더 좋아하는 엄마의 소녀취향을 아이가 꿰뚫어 본 듯도 하군요. ^^;)

그래도 일부의 아이들은 소녀에게 완전히 감정이 이입되어, 알도와 함께 상상의 나라로 떠날 수 있을 것입니다. 그런 경험을 한 친구들은 알도를 분명 최고의 그림책으로 꼽겠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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팥죽 할멈과 호랑이 - 2004 볼로냐아동도서전 수상작 꼬불꼬불 옛이야기 1
서정오 / 보리 / 1997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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초등학교 아이들 중에 '백설공주' 이야기를 모르는 아이가 더 많을까, '팥죽할멈과 호랑이' 이야기를 모르는 아이가 더 많을까? 남존여비 사상이 뿌리박힌 우리 나라보다 도리어 서양의 동화들이 더 성차별이 심하다. 나역시도 전래동화집보다 세계명작전집을 읽고 커서인지 아직도 신데렐라 컴플렉스에서 완전히 벗어나질 못한걸...끙.

내 딸래미는 절/대 그렇게 만들진 않겠다! 하는 분연한 결심(?)과 함께 두리번거리다가 구입한 책이 바로 팥죽할멈과 호랑이이다. 그런데, 읽으면서 결심이고 뭐고 다 소용없어졌다. 의의와 상관 없이 너무도 마음에 들었기 때문에!

우선 큼직해서 좋다. 책꽂이에 잘 안 꽂히는 단점이 있긴 하지만, 그래도 난 그림책은 크면 클수록 좋다고 생각하는 편이다. 책이 크기에 '집채만한 호랑이'도 정말 집채만하게 그릴 수 있지 않은가?

그리고 그림이 멋지다. 할머니 주름살은 어찌 그리 정겨운지. 무르익는 감과 널어 말린 고추의 정경에는 마음이 푸근해지고, 지게며 맷돌이며 아궁이며...모든 그림이 사실적이면서도 재미있게 묘사되어 있다. 우리야 그렇다치고, 우리 아이들은 언제 이런 옛 살림을 엿볼 수 있겠느냐 말이다.

또 생경하지만 곧 익숙하게 다가오는 구수~한 구어체를 읽어내려가다 보면 뜨끈한 온돌방에 화로에 밤 묻어놓고 아이에게 옛 이야기를 하나 해주고 있는, 그런 분위기가 절로 무르익는다. 각종 동식물과 사물 친구들이 호랑이를 물리치는 상황의 묘사는 이미 결말을 알고 있는 나마저도 킥킥 거리게 만들만큼 익살스럽다.

아무때나 좋지만 겨울이 제격일 듯한 그림책이다. 신나게 한바탕 읽고 아이랑 팥죽 한 사발 먹을 수 있다면 얼마나 좋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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