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이너리티 리포트 필립 K. 딕의 SF걸작선 1
필립 K. 딕 외 지음, 이지선 옮김 / 집사재 / 2002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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품절


이 작가가 천재라는 것에 필자는 판돈 전부를 내걸 자신이 있다.

그의 놀라운 상상력은 상상으로서의 상상을 넘어선 신비한 힘이 있다. 무슨 소리인가 하면 그는 신의 예지력을 가진 타고난 천재라는 것이다. 그렇지 않고서야 60년대에 이러한 소설들을 써냈다는 것이 불가능한 일이다. 그가 초능력자라는 것은 아니다. 하지만 초능력자의 능력에 버금가는 능력의 소유자임은 인정해야 한다. 필시 그는 해박한 지식의 소유자이며 획기적인 논문의 소유자 일 것이다. 말하자면 그는 타고난 천재에다 후천적으로 방대한 지식까지 습득함으로서 신과 내통하는 예지력을 갖추게 된 것이다. '나비 효과'와도 비슷한 과학적 이론에 그는 탁월한 재능과 감각을 지녔을 것임이 분명하다. 그는 그가 활동하던 당시의 국제정세와 과학적 지식들, 그리고 사회와 우주 전반의 문제들까지 완전히 섭렵한 후 그것들이 빚어내는 크고작은 파장효과들을 정확하게 예측해 내고 그것을 소설에 투영했던 것이다.

여덟편의 단편들은 모두 그러한 그의 예지 능력에 기인한 예언 리포트인 것이다.

그는 40년 후, 혹은 그보다 더 미래의 일을 신기할 정도로 맞추어 내었다.

이 책에 실린 단편들은 대부분 정체성 혼란과 이중 자아에 시달리는 내용들을 담고 있다. 표제작 '마이너리티 리포트'만 보자.(영화로도 유명한 이 작품은 사실 영화와는 상당부분 틀린 이야기다. 또한 영화의 각본상에는 무수한 오류가 있었지만 이 단편에는 일체의 오류가 없는 완벽하게 맞아 떨어지는 이야기이다) 하지도 않은 살인에 좇기는 주인공 엔더턴은 곧 오늘날 현대인들의 심리를 정확하게 대변하는 것이다. 무수한 자아의 혼돈과 시스템에 의존할 수밖에 없는 인간의 나약함, 위기 등을 그는 40년도 전에 이미 예언했던 것이다.

이 외에도 '퍼키팻의 전성시대''완벽한 대통령'등이 인상적이다.

'퍼키팻의 전성시대'는 인터넷 아바타, 게임 캐릭터 등에 빠져 현실을 잊고 사는 젊은이들의 작금의 현실과 너무나도 닮아 있다. 전쟁으로 황폐해진 현실을 잊고자 '퍼키팻'이라는 인형 캐릭터를 자식처럼 키우며 그것에 삶 전부를 빼앗기고 사는 사람들은 결국 '정체'와 '안주'가 아닌 '성장'과 '시련'의 의미와 중요성을 깨닫게 된다.

'완벽한 대통령'은 로봇이 완전무결한 판단과 지휘를 맡는 정치사회를 그리고 있다. 하지만 정체불명의 우주모선의 침략을 받게 되자 로봇 시스템이 마비되고 그로 인해 로봇 대통령의 대리인(인간)이 임시 대통령직을 맡게 된다. 그 과정에서 한 명의 인간이 정치의 대표가 된다는 것이 얼마나 불안정하고 모자람이 많은지를 우스꽝스럽게 그려낸다. 그의 판단은 대부분이 감정적이며 성급하다. 그는 제 멋대로 폭격을 명령하고 전쟁도 마다하지 않는다. 결국 시스템이 복구되고 로봇이 정치를 맡게 되자 다시 사회는 안정을 되찾는다. 이 작품을 읽으며 필자는 오늘날 국내 정치는 물론 미국, 세계 정치 전부를 생각하게 되었다. 40년을 넘나드는 천재의 조롱이었던 것이다.

그 외에도 '스위블''고소공포증에 시달리는 사나이''우리라고요''물거미'그래 블로벨이 되는거야' 등의 작품에서 인간의 정체성 혼돈과 시스템 오류의 아이러니는 끝없이 재기된다.

SF가 부재인 나라에서 이 책은 너무나도 교과서적인 책임에 틀림없다. 다만 이러한 천재적인 재능을 지닌 작품을 국내에서 기대하기란 무리일 듯싶다. 국내 SF는 아직 초보단계에도 올라서지 못하는 실정이니.

무엇보다 중요한 것은 재미이다. 재미가 결여된 미래 리포트는 독자들의 사랑을 받을 수 없다. 그것은 동서고금, '소설'의 기본 덕목이자 진리이다!

흥미도 - 3.8

작품성 - 4.5

종합평점 - 4.15 (5점만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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삼미 슈퍼스타즈의 마지막 팬클럽
박민규 지음 / 한겨레출판 / 2003년 8월
평점 :
구판절판


<삼미슈퍼스타즈의 마지막 팬클럽> ★★★★

 

박민규 지음

300페이지. 8500원.

 

 

프로가 지배한 세상에서 살아가기, 혹은 날아오는 공을 바로 잡기

 

1982년 필자는 초등학교도 들어가기 전이었고 당시 국내에 거대한 변화가 일고 있음도 감각하지 못했던 아이였다. 그 변화의 물결이 프로야구의 탄생과 더불어 다사다난하게 지각변동을 예고하고 있었음도 지각하지 못했었다. 그만큼 어렸었고 무엇을 몰랐었고 지금으로선 기억이 없었던 때다. 그랬거나 말거나 작가의 눈은 바로 그 시절 한 프로야구 창단의 황홀함과 전율의 기억속으로 독자들을 안내하며 세상에서 가장 아름다운 야구에 대한 이야기를 질펀하게 늘어놓는다.

 

이 책은 대단히 재미있게 읽혀진다면 읽혀진다고 말할 수 있는 책이다. 고는 하지만, 한편으론 지나치게 가벼운 농담투의 이야기와 말장난 식의 문체들이 문제삼기 좋아하는 사람들에겐 문제삼기 좋을 법한 모양새이다. 고도 하지만, 실제로 그 가벼움과 말장난의 조합은 결국 인생의 질곡과 그 무거운 해법을 국내 어느 문학에서도 다루어지지 않은 유쾌한 방법으로 통렬하게 은유하고 있다. 단도직입적으로 재미있게 읽히면서 개성있는 비판의식을 담아낸 작품이야말로 어렵게 읽히면서 보편적인 비판의식을 담아내는 작품보다 인정을 받아야함이 옳은 것이 아닐까 싶다. 그것이 순수문학이 위대했던 시절에 살았노라며 근엄한 자긍심의 외투 단추를 단단히 채우려고만 하는 기성문인들에 대한 배신이자 배반형이라고 해도. 그것을 수용하지 않으면 우리들은 영영 순수문학이 위대했던 시절에 살았노라는 이들의 오래된 외투 단추만 무료하게 바라보다 지치고, 그네들은 막힌 출구에서 비집코 튀어나온 기형적 돌연변이, 일명 외계소설이 순수문학이 위대했던 시절의 끝자락 문학을 비웃듯이 앞지르며 수십만부의 판매고를 올리는 모습을 비통하게 바라보다 헛웃음만 지어야 할 것이다. 이 난국을 타개하고자한다면 그나마 순문학의 의식을 담고 있는 개그적인 만담가가 그들 편이 되어 주는 것이 그들로선 위안이었을 테다. 해서, 이 작품이 제 8회 한겨레문학상을 수상했던가 아닐까 싶다. 결과적으로 이 책은 베스트셀러를 기록하며 순항 중이고 지난 일년간 출간된 순문학 중 이 책보다 많이 팔린 책은 아마도 한 두 권, 혹은 거의 없지 않나 싶다. 그네들의 위엄과 그네들의 불안은 이런 식으로 타협을 하며 그것이 하나의 가교가 되어 그네들에게도 구원의 눈길이 비쳐지길 살며시 두근거리며 기대해볼테지... (그래서 제 9회 한겨레문학상은 '싸이코가 뜬다'라는 책을 또 뽑지 않았던가. 뽑기에서 한 번 좋은 것 걸리면 그 번호로 또 하고 싶어지는 심리처럼 말이다. 하지만 한 번 뽑힌 번호는 다시 뽑히지 않는 법이다. 그건 실수다!)

 

라고, 장황하게 서두를 늘어놓았지만 아무튼 이 책은 책장을 펼치면서부터 박민규 작가 특유의 입담에 빠져들며 한편의 개그, 시트콤, 만담, 만화, SF판타지 같은 독특한 재미에 폭격당하게 된다. 정말로 말하기 좋아하는 학교 선생님이 수업시간에 갑자기 이야기가 삼천포로 빠져 종이 울릴때가지 정신없이 맛깔스런 수다를 떠는 것 같은 느낌이다. 그러면 학생들로선 즐겁다. 그것은 정부가 지침한 교과 수업에는 없는 내용들이며 하지만 선생님의 산경험에서 묻어나오는 참인생이니.

 

필자는 특이하게도 남자이고 군대를 갔다왔지만 군대에서 축구한 얘기를 별로 하고 싶지 않은 타입이다. 비슷한 이유로 대다수의 남자들이라면 열광을 하는 야구도 원채 흥미가 없다. 굳이 스포츠라면 격투를 즐겨보는 편이다.(특히 K-1) 때문에 야구에 관한 소설이라면 필자에게 그다지 흥미롭게 다가올 것 같지 않았다. 하지만 책은 비교적 잘 읽히는 편이었고 흥미로운 대목이 많았고 전체적으로 재미있었다. 마치 얼마전 화제리에 방영되었던 '구성애의 아우성'을 보듯 거침없는 입담의 향연에 빠져들었다. 이는 박민규 작가의 필체가 얼마나 재치와 특유의 오락성을 지녔는가 하는 것을 반증하는 것이다. 야구에 ㅇ자도 흥미없었던 필자를 그만큼 즐겁게 해 주었으니 말이다!

 

하지만 대다수의 평론가들과 독자들이 입에 침이 마르고 닳도록 극찬을 하는 것과는 달리 필자에겐 이 작품의 두 번째 챕터가 조금 마음에 차지 않았다. 이 작품은 총 세 챕터로 나누어져 있고 첫 번째는 주인공의 소년 시절, 두 번째는 청년 시절, 세 번째는 장년 시절을 담고 있다. 아주 개인적인 견해지만 사실상 두 번째 챕터 자체가 거대한 사족처럼 느껴졌다. 더구나 이 작품의 스토리에 계속해서 따라붙고 있는 '삼미'라는 것이 두 번째 챕터에서는 거의 등장하지 않았고 그럴 필요성도 없었고 있었다면 그것은 끼워 붙인 것이 아닌가 싶었다. 즉 두 번째 챕터는 첫 번째 챕터와 세 번째 챕터 사이에서 삼미와는 별 상관없는 '그저 청춘의 무상을 담은 젊은 날의 초상' 쯤에 불과했고 좀 다르게 말하자면 성장 소설류의 흐름상 '청춘기'는 있어야 하니 있는 것이었고 좀 더 극단적으로 말하자면 장편으로서 지면을 맞추기 위해 있어야만 했던 대목이 아닌가 싶었다. 물론 이야기상의 색깔이나 느낌이야 작가의 일관된 문체로 해소시켰기에 하나의 덩어리인듯한 인상이야 든다지만 아무래도 두 번째 이야기는 그저 뚝 떼어다 다른 이름을 붙여서 중편으로 내놓아도 전혀 이상할 것이 없는 오히려 더 어울릴 것 같았다. 왜냐하면 첫 번째와 세 번째에서 전혀 종잡을 수 없는 스토리 텔링 능력을 과시했던 이 스토리 텔러는 두 번째 에피소드는 너무 뻔한 스토리로 깔아버린 것이었다. 몇 장을 넘긴 순간 이 청춘무곡의 중, 후반이 모두 보였고 그것은 정확히 들어맞았다. 다분히 한국 청년들의 가슴속에 있을 법한 '환상 멜로'에 관한 이야기였고 현대인들의 가슴속에 있을 법한 '환상 섹스'에 관한 이야기였고 그것은 기존 순문학에서 많이 보았음직한 그런 부류의 남녀 관계와 남녀 사랑, 남녀 섹스였다. 좀 더 극단적으로 말하자면 딱 '무라카미 하루키'식의 애정 소설 류였다. 적당히 바람의 노래를 들으며 적당히 상실의 시대를 살아가며 적당히 태엽을 감는 새의 이야기였던 것이 필자를 조금 실망시켰던 부분이다. 참 기발하고 참 유쾌하고 참 독특한 작품에 왜 이런 '386세대 혹은 이런 류의 애정소설에 길들여진 이들을 위한 팬 서비스' 같은 진부함을 끼어 넣었는지 모를 일이었다. 그것이 작가의 손에 굳어진 스타일이라면 뭐 어쩔 수 없는 일이다. 끼어 넣고 안 넣고는 쓰는 사람 마음이고 그것을 사고 안 사고는 읽는 사람 마음이니. 그것 참.

 

글을 쓴다는 것은 그 작가만의 개성과 세계관을 이야기로 뽑아내는 일일테니 그 작가만의 개성과 세계관에 흡수되지 않는 이상 전적으로 입맛에 꼭 맞는 작품을 기대하기란 원래 어려운 법이다.

 

라는 생각을 하지만, 사실 이 작품은 비교적 필자의 입맞에 맞는 작품이고 간만에 재미있게 읽은 순문학이며 문학이 위대한 시절의 끝자락에서 위대함의 정의를 바꾸어 놓기에 충분한 위대함을 지닌 작품임에는 틀림없다. 프로야구라는 거대한 고래 같은 은유가 각양각색의 바닷 물고기의 향연같은 비유들과 절묘히 조우하며 회 같이 맛깔스런 개그소설을 탄생시킨 것이다. 그 회에는 바다 깊숙이 숨쉬고 있는 인류와 사회와 사람의 삶에 대한 고귀한 인생론이 배어 있고 그 개그소설에는 이제껏 국내 문인 누구도 이루어내지 못한 개그의 절대 철학이 담겨 있다. 웃다 울다 웃는 것처럼 이 소설은 하나의 거대한 원을 그리며 수많은 삶의 에피소드들을 오밀조밀 유쾌하고 절절하게 그리다 결국 뒤통수를 치는 듯한 결말로 해학적 교훈을 던져놓는다. 

 

언제부턴가 세상은 프로가 지배하는 세상이 되어버렸고 아마추어들은 살 수 없는 세상이 되어버렸다. 그 속에서 과연 우리는 어떻게 플레이 볼을 외쳐야 할까. 이 책이 그 답을 제시해주고 있다. 아주 넉살스럽게.

 

 

p.s. 이 작가는 성석제와 마찬가지로 입담넘치는 문장력의 소유자이다. 단적으로 말하자면 이 두 작가는 '수학 정석의 유리함수'에 대한 이야기를 써 보라고 해도 특유의 말장난 같은 재치와 글솜씨로 지루하지 않은 글을 만들어낼 위인들이다. 그것이 이 작가의 절대적 힘이다. 때문에, 그것이 물리거나 그 세계관에 너무 익숙해져버리면 싫증이 찾아오지 않을까 염려가 되는 바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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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 빈치 코드 - 전2권 세트
댄 브라운 지음, 양선아 옮김 / 북스캔(대교북스캔) / 2004년 6월
평점 :
절판


전세계적으로 1200만부가 팔려나가며 지금도 도서계의 폭풍의 핵으로 그 위력을 과시하고 있는 이 초메가 베스트셀러는 이미 국내에서도 출간 3개월여만에 70만부에 육박하는 판매량을 기록하며 몇 주째 각 출판집계 1위를 고수하고 있다. 뿐만 아니라 세계 언론에서 내기라도 하듯 앞다투어 '단순 지적 스릴러 물의 수준을 뛰어넘는 엄청난 걸작' 혹은 '<장미의 이름>에 버금가는 걸작'이라고 칭찬일색을 보였다. 물론 그 인기를 반증이라도 하듯 '안티 다 빈치 코드'와 '다 빈치 코드 혹평하기'도 만만치 않다. 심지어 '다 빈치 코드는 멍청하기 그지 없는 책이며 기본적인 지식마저도 모르고 제 멋대로 써낸 말도 안 되는 억측들이다' 혹은 '작가 댄 브라운은 이 분야에 대해 지독히 공부를 하지 않았다'라는 극단적인 비평도 있다. 어쨌거나 이 책이 전세계적으로 거대한 파문을 일으키고 있다는 것을 방증하는 셈이다.

이런 정도로 전례없는 화제를 일으킨 책이기에 거의 대다수의 사람들이 이 책에 가지는 기대치는 크고 또한 그 폭풍속으로 빨려드는 속도도 거세다. 그 만큼 이 책에는 마약같은 위력이 존재하기는 하다. 때문에 대다수의 사람들이 취하듯이 빠져들어 홀린듯이 두 엄지손가락을 치켜들며 걸작임을 호소하려 든다.

필자의 경우도 이 책에 대한 미사여구를 충분히 감안했지만 이 놀라운 책에 거는 기대치가 엄청났다는 것은 사실이었다. 요근래 필자를 가장 완전한 무아지경으로 몰고갔던 두 걸작 <아웃>(기리노 나츠오, 일본 추리소설)과 <적의 화장법>(아멜리 노통, 프랑스 블랙코미디스릴러)에 필적하는 재미를 안겨다 줄 것이라는 만만한 기대를 가졌었다.

결론부터 말하자면 <다 빈치 코드>는 필자에게 굉장한 재미를 주었고 분명 추리 스릴러의 걸작으로 볼 수도 있지만 세대를 초월한 불멸의 걸작이 되기에는 어딘지 부족하다는 느낌이 들었다.

우선 이 책의 스토리는 굉장히 흥미롭다. 프랑스 루브르 박물관의 관장이 누군가에게 쫓기다 살해당하며 시작한다. 관장은 죽기 직전 자신의 죽음으로 인해 끊어지게 될 인류역사의 엄청난 비밀의 수수께끼를 암호로 남긴다. 이 암호를 풀기 위해 유명한 기호학자 로버트 랭던이 루브르 박물관을 찾게 되고 관장의 손녀딸인 소피와 만나게 된다. 그들은 어마어마한 비밀에 얽힌 긴박한 모험을 함께하게 되고 마침내 충격적인 진실과 맞닥뜨리게 된다.

작가는 빼어난 스토리 텔러로서의 능력을 과시라도 하듯 한편의 헐리웃 스릴러 영화를 보는 듯한 긴박한 구조를 앞세워 독자들을 꼼짝 못하게 만든다. 관장의 살인범의 누명을 쓰고 쫓기는 랭던과 그를 돕는 소피, 그들을 쫓는 프랑스 수사기관의 파슈형사, 인류역사의 판도를 뒤바꿀 엄청난 비밀을 손에 넣고자는 비밀 집단, 비밀 결사, 비밀 킬러, 그리고 숨가쁘게 이어지는 반전의 반전. 작가는 이 모든 근사한 이야기들을 치밀한 교차 편집의 방식으로 끊어서 이어붙이기를 반복하며 독자들이 결코 도중에 책장을 놓지 못할정도로 안달나게 하는데 성공한다. 비밀이 한꺼풀 풀릴때 마다 더욱 거대한 비밀과 맞닥뜨리고, 위기를 한번 벗어날 때마다 더 큰 위기에 봉착하고, 전혀 예측지 못한 반전 이후 더 충격적인 반전이 더해지고, 이러한 흥미로운 설정은 근래 보기 드문 완벽한 읽는 재미를 선사하는데에는 더할나위 없는 경지를 선사한다.

또 이 작품이 흥미로운 것은 (신나게 떠들어대는 언론보도에 의해 이제는 이미 유명해졌을) 엄청난 가설 때문이다. 작가는 인류역사의 중대한 사건을 완전히 재해석하며 엄청난 논란을 불러일으킬 음모이론을 주장한다. 그것은 마치 바다에는 물이 있고 땅위에는 흙이 있다는 지극히 당연하다고 믿어온 상식들을 완전히 뒤엎는 듯한 충격과 쾌감을 제공한다. 바로 이러한 작가의 놀라운 역사적 상상력이 이 책을 눈부실정도의 화제작으로 이끈 일등 공신임은 두말할 나위 없는 것이다. 이 대단하고도 충격적인 상상은 너무나 엄청난 것이어서 보는이들로 하여금 감탄과 의혹을 동시에 재기시키며 입에서 입으로 끝없는 입소문을 만들어내게 하는 작용을 일으켰다.

이 의도된 계산은 책의 엄청난 히트라는 예상된 결과를 낳았고 작가의 번득이는 아이디어를 경외감으로 바라보게 만들었다.

하지만 종종 비교되곤 하는 <장미의 이름>과 이 작품을 비교하기에는 다소 무리가 따른다. 우선 이 작품이 <장미의 이름>같은 불멸의 걸작이 되기에는 깊이가 얕다는 생각이 든다. 작가는 치밀한 조사와 방대한 자료들로 스토리의 신빙성을 덧칠해 나가고 있지만 그것이 조금은 부산하고 작위적이라는 인상을 지울 수 없었다. 많은 지식들이 등장하지만 그것이 작가적 세계관, 철학적 지식으로서의 사유가 아닌 단순 자료량에 의한 지식의 열거에 급급하다는 느낌을 받았다. 작가는 엄청난 자료 조사를 했고 그것을 스토리 중간중간에 자랑스럽게 배치하는데 만족했을 테지만 적어도 필자의 견해는 그것이 스토리의 몰입을 오히려 방해하며 산만함을 부추기는(깊이 있게 녹아들었다기보다는 어딘지 붕떠서 따로 놀고 있는) 듯했다는 것이다. 작가는 자료 조사를 통해 놀라운 가설 - 그것을 임의로 연금술이라고 지칭하자 - 연금술의 비밀을 알아냈고 그것을 떨리는 가슴으로 세상에 공개하고픈 마음이 앞섰던 것일 게다. 그 놀라운 연금술의 비밀은 세상에 풀어놓기만 하면 관심의 집중포화를 받을 것이고 베스트셀러가 되는 것은 따 놓은 당상이었을 테니. 때문에 작가로서 철학적 깊이가 부족했던, 아니 간과해버렸던 그런 것은 그다지 문제될 것이 아니었을 게다. 그는 헐리웃 스릴러 영화의 매력적인 공식들을 가져와 근사한 주형을 만들어 내고 그 위에다 말하고 싶어 근질근질했던 연금술의 비밀을 과시하듯 풀어놓았던 것이다. 때문에 무언가 급하고 서두르는 인상과 함께 나열된 지식의 반복에서 오는 피곤함도 함께 맛보아야 했다.(작가가 <장미의 이름>을 의식했던 하지 않았던 이 책은 처음부터 <장미의 이름>과는 전혀 다른 성격을 지닌 작품이라고 본다. 이 책은 그저 잘 빠진 헐리웃 식의 스릴러 물인 것이다)

이런 관점에서 필자는 이 책의 스토리상의 단점 하나를 지적하고자 한다. 

우선 도입부와 초반부는 더할나위 없이 너무 근사했다. 의문의 죽음과 비밀을 간직하고 있는 수수께끼의 기호들, 그리고 랭던을 돕는 소피라는 여성의 신비한 매력, 예상치 못했던 누명과 기막힌 탈출. 그러나 탈출 이후부터 1권 마지막까지 필자는 약간의 루즈함과 산만함을 느껴야 했다.(보는 관점에 따라 틀리겠지만 필자에게는 그러했다) 이유는 거대한 비밀을 풀기 위해 선행되는 고만고만한 비밀풀기의 과정이 작가의 스노비즘적인 지식 열거와 맞물려 답답한 피로를 주었기 때문이다. 그것은 결과적으로 너무나 근사했던 도입부의 스릴에 미치지 못하는 더딘 스릴을 낳았고 상대적으로 업뎃되는 스릴을 기대했던 심리에 약간의 심심함을 안겨주었던 것이다. 개인적으로 이 부분에 할애한 200여 페이지를 과감하게 50페이지 정도로 압축시켰다면 굉장히 타이트한 스릴이 분출되지 않았을까 싶은 생각을 가져본다.(솔직히 조금 길지 않았나 생각한다. 어딘지 틈메우기 용 에피소드와 설명이 있었던 듯하다는 인상을 받았기 때문이다. 대략 450페이지 정도로 해서 한권짜리 책이었으면 더 알짜배기같은 근사함을 맛보지 않았을까 하는 생각을 해본다)

이 부분을 제외하고 나면 스토리는 더할 나위 없이 완벽한 재미를 제공했다는 것에 두 손을 다 들수 있다. 1권의 말미에 쏟아져 나오는 어마어마한 역사적 반전부터 2권 마지막까지 논스톱으로 이어지는 파워넘치는 스릴과 반전의 미덕은 메가 베스트셀러의 흡입력이란 무엇인가 하는 것을 제대로 보여주고 있으니 말이다.

출판계의 판도를 바꾼 <장미의 이름> 이후 역사 음모 이론을 다룬 스릴러 물들이 유난히 인기를 끌고 있다. 반덴베르크의 예를 굳이 들지 않더라도 비교적 최근 작품인 <단테 클럽>은 국내에서 <다 빈치 코드>의 인기를 등에 업고 꽤 괜찮은 판매고를 올리고 있다. <다 빈치 코드>가 <장미의 이름>이나 반덴베르크에 빚을 지고 있는 것은 사실이다.(특히 반덴베르크는 이미 <레오나르도 다 빈치의 진실>이라는 작품을 내기도 했었다. 그는 그 작품에서 다 빈치의 '장미원의 성모'라는 명화에 숨겨진 비밀과 '제5복음서'의 역사적 가설을 스릴과 서스펜스로 풀어냈었다) 그러나 <다 빈치 코드>를 굳이 그들 작품들과 비교해 본다면 그들 작품보다 읽는 재미가 더 있다는 것에 장점을 둘 수 있다. 그 읽는 재미에는 잘 짜여진 헐리웃 스릴러에서 느낄 수 있는 극대치의 쾌감과 핵폭탄급 역사 비밀에서 느낄 수 있는 극대치의 흥분이 다 들어 있다. 이 두가지 요소를 이만큼 자극적으로 솜씨좋게 엮어낸 작품은 없었던 것이고 때문에 이 작품은 1200만부라는 핵폭탄급 위력을 발휘할 수 있었던 것이다.

그러나 이 작품이 불멸의 걸작으로 남기에는 앞서 말했던 것처럼 2% 부족한 부분이 있다.(그 2%에는 최근 불거져 나온 <다 빈치 코드> 표절논란도 제외할 순 없다. 댄 브라운이 20년 전 발간된 역사 논픽션 <성혈과 성배>에서 중요한 모티브의 대부분을 가져오지 않았다고는 절대 말할 수 없을 것이다. <성혈과 성배>는 당시 재판에까지 회부될만큼 논란을 일으켰고 그 놀라운 재판 결과때문에 전세계 언론을 경악에 빠뜨렸던 사건이었다)  이 작품은 <장미의 이름>이 되기에는 작가만의 확고한 철학이나 세대를 통찰하는 문학적 깊이가 모자라지만 분명 '읽는 재미' 면에서는 타의 추종을 불허하는 작품임에 틀림없다. 때문에 지적 스릴러라는 거창한 말보다는 그저 흥미진진한 추리 스릴러의 걸작이라는 칭호를 붙인다면 그것에 더 부응할 작품이다.

 

p.s. 번역 부분에서는 상당히 만족하는 편이다. 나름대로 원어를 써야 할부분에는 원어로 처리했고 오타도 거의 없는 편이었다. 또 이 책은 각권 350페이지가 넘는 책임에도 각권 7800원이라는 요 근래 보기드문 저렴한 가격으로 승부를 냈던 것은 개인적으로 대단히 칭찬하고 싶다. 이 책이 국내에서 날개돋힌 듯이 팔려나간 데에는 그러한 가격 서비스도 한몫을 하고 있을 테다. 대표적으로 비교하고픈 것은 '황금가지'에서 출간된 <단테클럽>이다. 이 책도 훌륭한 책임에도 출판사의 졸속 출간이 마음에 들지 않았다. 오타가 너무 많고 다듬어지지 않은 번역이 원작의 많은 부분을 훼손시키고 있었다. 또한 각권 360여 페이지로 <다 빈치 코드>와 별반 다를게 없는 두께임에도 각권 9500원이라는 엄청난 가격으로 구매자들에 부담을 주고 있다. '황금가지'에서 번역하는 책들이 대부분 원작이 훌륭한 작품들임에도 이런식의 얍삽한 편집의 두께 부풀리기 식 전략과 졸속 제작이 마음에 들지 않아 안타깝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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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ayonara 2004-10-14 20:07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와우~ 스크롤의 압박이... ^_^
'장미의 이름'과는 비교할 수 없다고 생각합니다.
제 생각에 20%쯤은 부족한 것 같은데.. ㅎㅎㅎ

살인교수 2004-10-14 23:55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처음부터 언론이 너무 <장미의 이름>쪽으로 몰고가려했던 게 아닌가 싶습니다. 사실 두 작품은 장르적인 관점에서만 봐도 확연히 틀린 작품들인데. 여기저기 역사 스릴러 나올때마다 <장미의 이름> 덕 보는 작품들이 많은 듯 합니다. 하지만 진정으로 <장미의 이름>과 비교될 작품은 아직 없죠~ <다빈치 코드>의 경우는 개인적으로 너무 기대를 하고 봐서인지 성에 차지 못했다는 느낌을 조금 받았답니다~~^^
 

안개 속을 걸어 봐도 채워지지 않는 나의 빈 가슴 잡으려면 어느새 사라지는 젊음의 무지개여 커피를 마셔 봐도 느낄 수가 없는 나의 빈 가슴 까만 밤을 하얗게 지새우는 젊음의 고독이여 내 젊음의 빈 노트에 무엇을 그려야할까 내 젊음의 빈 노트에 무엇을 써야만하나 아름답고 신비로운 우리들 사랑의 이야기 이 세상에 살아있는 우리들의 모든 인생이야기 내 젊음의 빈 노트에 무엇을 채워야하나 *내 젊음의 빈 노트에 무엇을 그려야할까 내 젊음의 빈 노트에 무엇을 써야만하나 아름답고 신비로운 우리들 사랑의 이야기 이 세상에 살아있는 우리들의 모든 인생이야기 내 젊음의 빈 노트에 무엇을 채워야하나 정 호 작사/작곡 유미리/노래

 

안개 속을 걸어봐도 채워지지 않는 나의 빈 가슴이여.... 잡으려면 어느새 사라지는 젊음의 무지개여....

커피를 마셔봐도 느낄 수가 없는 나의 빈 가슴이여.... 까만 밤을 하얗게 지새우는 젊음의 고독이여....

아, 흘러가는 청춘이여, 채워지지 않는 빈 자리여.... 시간은 흐르는데 내 영혼은 머문다....

청춘의 만가는 내 귓가를 맴도는데 멀어지는 추억의 그림자는 아련하기만 하다....

백지로 가득한 나의 노트를 뒤에 두고 나는 지금 어디까지 흘러왔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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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 영화 최고의 걸작!

이 영화를 보지 않고 한국 영화의 걸작을 논하지 마라!

<오발탄>

광복 이후 한국 최고의 소설로 평단의 만장일치를 받은 이범선의 원작 '오발탄'을 거장 유현목 감독이 영화화한 한국 영화 최고의 문제작! 개봉 당시 엄격한 검열에 걸려 필름들이 무수히 잘린 채 개봉하였으나 당시 폭발적인 관객동원을 기록했으며 그 와중에 영화는 다시 상영금지가 된다. 그러나 후세 국내 영화를 논할때마다 평단의 만장일치에 가까운 찬사를 얻어내는 불멸의 걸작! 국내에 이런 영화가 있었다는 사실이 놀라울 따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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물만두 2004-05-25 20:00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일요일 밤에 ebs에서 좋은 한국 영화 많이 합니다...

살인교수 2004-05-26 04:52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저도 그 프로를 통해 흘러간 명작들을 많이 건지곤 한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