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시리바의 집 히가 자매 시리즈
사와무라 이치 지음, 이선희 옮김 / arte(아르테) / 2021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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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릴 적 나는 히가와 함께 친구 집에 놀러 갔다가 귀신을 봤다. 2층 복도를 서성이는 긴 머리카락의 꼬마 소녀. 친구는 그 아이가 병으로 죽은 자신의 여동생 아사미라고 말했다. 그후 친구는 학교에 나오지 않았다. 그 집에는 아사미의 유령이 있다. 나와 히가는 실제로 보았고 소리도 들었다. 같은 해 여름 나는 깨달았다. 자자자 사실이다. 자자자 머리가 이상해진 것도 사살이었다. 자자자자자 지금의 내가 자자자자자자자 증거다. 나는 그 이상한 집에 들어 자자자아아아아아아 간 후로 이상해졌다.


'보기왕이 온다', '즈우노메 인형'에 이은 사와무라 이치의 공포소설 '시시리바의 집'은 히가 자매 시리즈 3번재 작품이다. 이 작가는 언제나 특색 있는 귀신을 등장시킨다. 이번에는 모래 귀신이다. 아마도 일본에서 전해내려오는 괴담 혹은 전설에 기록된 요괴가 아닌가 싶다. 일본은 워낙 요괴가 많은 나라이니, 교고쿠 나츠히코처럼 그 요괴들 하나로 소설 한 편을 쓴다면 수천 편을 쓸 재료가 있는 셈이다. 


본작의 요괴, 시시리바는 특이하게 모래로 두려움을 끌어낸다. 영화 '미이라'의 장면이 떠오르기도 하는데- 아무튼 작가는 모래를 이용해 독특한 공포감을 탁월하게 빚어낸다. 공포감만으로 본다면 '보기왕이 온다' 첫 번째 챕터 이후 최고였다. 기이한 집의 기이한 사람들, 그리고 집을 점령하고 있는 정체 모를 요괴의 공포감이 상당한 긴장감을 제공한다.


공포 묘사는 좋았지만, 서사가 조금 아쉬웠다. 늘 느끼지만, 이 작가의 공포소설엔 뭔가가 조금 부족했다. 좀더 강렬한 서사, 혹은 모양새 좋은 플롯이 나오지 못하고 공포 분위기만 잔뜩 조성하다가 익숙한 요괴 퇴치물로 끝맺는다. 게다가 본작의 여주인공이 마음에 들지 않았다. 말 그대로 고구마 캐릭터. 가지 말라고 하는데도 죽으라고 귀신 집을 제 발로 찾아간다. 아무리 가정주부가 외롭다고 해도 구태여 불길함을 느끼면서도 귀신 집을 찾는다는 건 억지스러웠다. 


그리고 결정적으로 히가 자매 중 가장 강력한 힘을 가진 히가 고토코가 전면에 등장함에도 그녀를 매력적으로 활용하지 못했다는 느낌이 들었다. 엄청 기대했는데 너무 약했다고 해야 하나... 또한 요괴를 제거하는 결정적인 '요소'는 의외였지만, 그로인해 요괴가 너무 맥없이 사라지는 것도 아쉬운 부분이었다. 


평균 이상의 작품을 써내는 건 맞지만, 이 작가는 내가 좋아하는 기시 유스케, 미쓰다 신조, 교고쿠 나츠히코 정도의 내공에는 아직 미치지 못하는 듯하다. 하지만 후속작이 늘 기다려지는 작가임엔 틀림없다. 조만간 큰 거 한 방 제대로 터뜨려줄 것이라는 믿음은 있다. 아직은 '보기왕이 온다'가 그의 최고작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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살인귀 2 - 역습편
아야츠지 유키토 지음, 김진환 옮김 / 홍익출판미디어그룹 / 2021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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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적한 산길을 달리던 일가족에게 죽음의 그림자가 찾아온다. 비극은 한순간이었다. 일가족 앞에 등장한 살인귀는 순식간에 모두를 처참하게 찢어발긴다. 그리고... 후타바 산 아래 자리한 작은 마을- 그곳에 피빛 살육의 그늘이 드리워진다. 타인의 눈이 될 수 있는 신비한 능력의 소년- 소년은 모든 것을 예감한다. 후타바 산을 피로 물들였던 공포의 주체, 흉포한 살인마가 지금 마을로 내려오고 있다는 것을. 밤이 찾아오고 소년의 아버지가 입원해 있는 병원으로, 저벅저벅- 그가 온다! 처참하기 그지없는 살육의 광연이 지금 다시 시작된다!


잔혹함의 극을 달리며 악명을 떨쳤던 최강의 공포소설 '살인귀'의 속편, '살인귀 2'

이 작품은 그야말로 작가 아야츠지 유키토의 슬래셔무비에 대한 편력이 최고극을 달리는 작품이다. 우선 전작의 성공으로 속편까지 집필하게 되었다는 것부터가 완전히 '13일의 금요일'의 판박이다. 작가 아야츠지 유키토는 분명 공포영화의 광이고, 특히 '슬래셔'무비에 대한 집착이 대단하다. 유래없이 '공포소설'의 속편을 집필하게 된 배경에는 바로 13일의 금요일과 같이, 강력한 포스의 살인마가 등장하는 시리즈 공포소설의 신화를 이루고 싶었던 것일 게다. (실제로 작가는 '살인귀'의 다음 시리즈를 구상했었다고 한다)


이 속편은 전편의 설정에서 그대로 이어지며 말 그대로 속편의 법칙을 온전하게 따르고 있다. 후바타 산 캠프장을 피칠갑으로 난도질했던 살인귀가 다시 등장해서 새로운 사냥감을 노린다. 속편의 법칙답게 더 많은 사람들이 죽어나가고 살해방식은 수십배 더 끔찍하고 잔혹해진다. 


이 작품은 실제로 슬래셔무비 시리즈의 원칙에 의거해서 스토리상의 변화는 거의 없다. 다시 나타난 제이슨이 끔찍한 살인을 벌이듯, 이 작품에서도 다시 나타난 살인귀가 처참한 살육의 향연을 벌인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전작과 차별되는 단 하나의 핵이 있었으니, 바로 이 작품에는 초능력 소년이 등장한다는 것이다. 이 소설의 주인공은 타인의 눈이 되는 신비한 능력을 가진 소년이다. 소년은 살인귀가 살인을 저지를 때마다 피해자의 눈이 되거나 혹은 살인귀의 눈이 된다. 다소 오컬트적인 분위기를 풍기지만 어쨌든 이 점이 전작과 차별되는 부분이다. (짐작해보면- 13일의 금요일 7편을 연상시킬 수 있겠다. 13일의 금요일 7편의 주인공은 초능력을 지닌 소녀이며, 생각만으로 물건을 움직일 수 있으며, 또한 살인마나 피해자의 '시선'이 되기도 한다)


전편과 마찬가지로 이 소설 역시 라스트에 생각지도 못했던 반전이 나오며 미스터리의 묘를 희미하게나마 살린다. 전편만큼 강렬하지는 못했지만 나름 의외의 진상들을 펼치며 필자를 즐겁게 했다. 사실대로 말하자면 필자는 무척 만족한다. 1편은 대만족이었고 2편 역시 만족한다. 좀더 솔직해지자면 작가가 3편도 써주길 바란다. 무엇보다 '호러마니아'로서 기뻤던 것은 참으로 오랜만에, 정말로 오랜만에 공포소설 다운 공포소설을 읽은 것 같아, 그것이 무척 좋았다! 그렇다. 이 소설은 보는 이의 심장을 내내 뛰게 만드는 진짜 공포소설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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살인귀 1 - 각성편
아야츠지 유키토 지음, 김진환 옮김 / 홍익출판미디어그룹 / 2021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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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포의 산이라 불리는 후타바 산으로 TR그룹 회원들이 캠프를 온다. 그리고 그날 밤, 살인귀의 습격을 받아 한 명씩 처참하게 죽어간다. 이것이 아야츠지 유키토의 신본격 스플래터 호러소설 '살인귀'의 스토리다. 스토리만 봐도 언뜻 떠오르는 작품이 '13일의 금요일'이다. 실제로 작품 속에서는 이 영화를 많이 언급한다. 또한 작품의 외적인 모양새도 13일의 금요일과 꼭 닮아 있다. 제이슨을 연상케하는 흉포한 살인귀가 등장, 캠핑온 젊은이들을 차례차례 살해한다는 것은 '슬래셔 무비'의 전형적 패턴이다. 


아야츠지 유키토는 '신본격 추리소설'의 선두주자로 각광을 받은 작가지만 '공포영화'에도 대단한 애정을 가진 작가이다. 그러한 그의 편력이 이 작품 '살인귀'는 물론이고 '선홍빛 속삭임' 같은 속삭임 시리즈, 그리고 '시계관의 살인'이나 '암흑관의 살인'등에 전반적으로 나타난다. 이들 작품들은 여타 추리소설에서는 볼 수 없을만큼 강렬한 '호러적 색채'가 묻어 있다. 특히 아야츠지가 13일의 금요일 식의 잔혹 슬래셔물에 심취했음을 충분히 짐작할 수 있는데, 이 작품 '살인귀'는 그러한 그의 감각을 유감없이 발휘한 작품이라 할 수 있다.

 

'살인귀'는 한 마디로 무척 잔혹한 공포소설이다. 살인귀가 등장해서 첫 살인을 저지르는 순간부터 마지막 장까지 '처절한 피의 살육'이 숨가쁘게 이어진다. 놀라운 것은 작가의 대담하고도 섬세한 살인묘사다. 문자로 표현될 수 있는 잔혹호러의 최고점을 보여주는 듯하다. 더구나 살인방식이 희생자가 거듭될수록 더욱 잔혹해진다는 게 특징이다. 호러의 강도가 뒤로 갈수록 더욱 강해진다.


슬래셔 무비의 전형적인 패턴을 가지고 와서 이렇게 파워넘치는 전개를 할 수 있다는 것은 바로 작가의 놀라운(무시무시한) 필력에 있다고 볼 수 있겠다. 혀를 내두르게 하는 잔혹묘사는 물론이고 영화를 능가하는 긴박감과 숨통을 조여오는 서스펜스가 압권이다. 그리고 무엇보다 이 작품이 '걸작'으로 평가될 수 있는 것은 라스트에 마련된 엄청난 반전이다.

 

역시 아야츠지 유키토는 아야츠지 유키토다. 그는 신본격 추리소설의 대가이며, 트릭과 반전을 기막히게 연출해낼 줄 아는 몇 안 되는 작가다. 13일의 금요일 문법을 그대로 따르며 라스트를 향해 숨가쁘게 질주하던 이 소설은 대미에 이르러서 전혀 예상치 못한 뜻밖의 반전으로 독자들의 뒤통수를 강력하게 내리친다. 대체 이게 어찌된 거야, 라고 놀라며- 그렇다면 어떻게 그런 일이 가능할 수 있었단 말인가, 하며 뒷장을 넘겨보면 복선은 존재했었다는 걸 알 수 있다. 다만, 그것이 복선이었다는 걸 눈치채기 힘들었다는 것 뿐이다. 


'살인귀'는 호러소설을 광적으로 좋아하는 필자에겐 '단비'같은 작품이 아닐 수 없었다. 이런 정도로 화끈한 작품이라면 충분히 호러소설의 '걸작'이라 부를만 하다. 잔혹하기만 하다고 다 무서운 것은 아니다. 이 작품처럼 엄청 잔혹하면서도 긴장감과 공포를 지속적으로 유지시키기란 쉽지않다는 것이다. 작가의 호러적 재능은 가히 천재적이다. 게다가 뒤통수를 치는 반전으로 인해 이 작품의 퀄리티는 한층 더 높아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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홍익출판미디어그룹 2021-06-21 17:54   좋아요 0 | 댓글달기 | 수정 | 삭제 | URL
안녕하세요 홍익출판미디어그룹입니다.
연락처를 찾을 수 없어 댓글로 연락을 드립니다 ^^
먼저 저희 도서에 너무 좋은 후기를 남겨주셔서 감사하다는 말씀을 드립니다.
감사의 표시를 전할 겸 저희 도서를 보내드리고 싶은데 marketer@hongikbooks.com 으로 메일을 한 통 보내주실 수 있을까요? 문의드리고 싶은 내용도 있으니 꼭 메일을 보내주시면 감사하겠습니다 :)
다시 한 번 감사의 말씀을 드리며 메일 기다리겠습니다. ^^
 
영매탐정 조즈카 블랙 앤 화이트 시리즈 95
아이자와 사코 지음, 김수지 옮김 / 비채 / 2021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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추리소설가 고게쓰는 후배 유이카에게 함께 영매사를 만나줬으면 좋겠다는 부탁을 받는다. 유이카의 말인즉슨, 한 달 전쯤 친구와 점술을 보러 갔는데, 그때 점술가가 유이카에게 이상한 말을 했다. 웬 여자가 유이카를 보면서 울고 있다는 것! 그후 유이카는 비몽사몽간에 자신의 집 침대 옆에서 훌쩍이는 여자를 보게 된다. 불길한 기분에 다시 점술가를 찾아가니, 점술가는 그 이상의 진위를 확인하고 싶으면 유명한 영매사를 소개해 줄 테니 그 사람을 찾아가라고 말한다. 그렇게 해서 유이카와 고게쓰는 영매사 조즈카 히스이와 만난다. 


2019년 연말 일본 미스터리 상을 휩쓴 아이자와 사코의 '영매 탐정 조즈카'. 워낙 일본 현지 독자의 평이 좋아 국내 출간을 손꼽아 기다린 작품이다. 무엇보다 이 작품이 회자가 된 것은 작품 후반에 폭발하는 '역대급 반전' 때문이다. 도대체 얼마나 대단한 반전이기에 일본 열도가 그토록 들썩거렸는지 기대감이 하늘을 찔렀다. 아이자와 사코는 '오전 0시의 상드리용'으로 아유카와 데쓰야 상을 수상하며 등단한 뒤, 주로 라이트 노벨을 써온 작가다. '영매 탐정 조즈카'도 라이트 노벨의 느낌이 물씬 나는 본격 미스터리인데, 어떻게 보면 작가가 작정하고 이 장르의 벽 몇 개를 허물며 거기서 새로운 색깔을 뽑아냈다고 볼 수 있다. 고정관념을 뒤집는 신선한 발상이 이 작품을 새로운 미스터리 걸작으로 올려놓은 것이다. 


미모의 영매사 조즈카와의 짦과 강렬한 만남 이후 우연과 필연이 겹치며 고게쓰는 조즈카와 함께 여러 살인사건의 해결을 위해 나서게 되는데... 워낙 복선 지뢰밭이고 전체를 뒤집어버리는 반전이 핵심인 작품이라 줄거리를 더 언급하기도 어렵다. 책의 구성은 네 개의 커다란 옴니버스 사건과 그 막간을 관통하는 어느 연쇄 살인마의 이야기가 맞물리는 구조다. 메인이라 할 수 있는 네 가지 사건은 각각 '우는 여자에 얽힌 살인사건', '별장에서 벌어지는 작가 살인사건', '여고에서 벌어지는 연속 교살 사건', 그리고 전체 스토리에서 내내 언급하는'연쇄 살인마와의 최후의 대결' 이렇게 나누어진다. 언제나 조즈카가 영능력으로 범인을 직감하면 고게쓰가 증거를 모으고 범인이 범인이 될 수밖에 없는 추리를 펼치는 방식으로 진행된다. 


사실 워낙 기대감이 컸기에 첫 에피소드를 읽을 때만 해도 '뭐 재미는 있지만, 그냥 이 정도였던 거야?'라는 느낌이었다. 두 번째 에피소드, 세 번째 에피소드를 읽을 때도 비슷한 느낌이었다. 각각의 사건을 해결하는 과정은 그럭저럭 논리적이었지만 묵직한 맛이 없다고 해야 하나? 라이트 노벨 느낌이 생각보다 강했고, 내가 기대했던 '호러+추리'의 조화로움은 약했다. 그리고 대망의 마지막 챕터, 'VS엘리미네이터' 편에서 완전히 허를 찔려버렸다. 일본 현지 홍보 문구였던 '모든 것이 복선'이라는 게 결코 과장이 아니라 정말 딱 맞는 표현이었다! 뭐랄까, 그때까지 차곡차곡 쌓여가던 세계가 폭발하듯 무너져내리고 새로운 세계가 탄생하는 듯한 쾌감이었다. (아주 개인적인 감상이지만, 내가 그때 그 대목에서 좀 짜증을 냈고, 왜 라이트 노벨처럼 쓴 거야, 뭐야 이게~ 라고 혀를 찼던 것까지- 작가의 계산이었고, 그 계산 위에서 이렇게 뒤통수를 내려친 것이구나, 하는 경탄마저 들었다. 내내 작가의 손바닥 위에서 놀고 있었던 것)


결과적으로는 상당히 만족스러운 작품이었고, 반전의 충격도 놀라웠다. 어디 내가 속아넘어가나 보자, 하고 눈에 불을 켜면서 페이지를 넘겼는데 상상도 못할 반전에 두 손 다 들었다. 라이트 노벨을 좋아하는 독자도 본격 미스터리를 좋아하는 독자도 모두 만족할만한 작품이다. 이 두 독자층 모두를 만족시키긴 어려운데 책을 끝까지 읽으면 알게 된다. 거기까지~ 작가가 다 계획했던 부분이라는 것을! 라이트 노벨 분위기로 시작하지만 최종 라스트에 이르면 이 작품은 어딘지 이야미스 계열의 느낌을 풍긴다. 잔인한 묘사가 많이 나오지는 않지만 이 작품은 내내 사람들이 엄청 죽어나가고 연쇄 살인까지 겹쳐져 인간의 어둡고 비틀린 부분을 많이 조명한다. 생각 이상으로 어두운 작품이니, 예쁜 표지에 속으면 안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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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안갑의 살인 시인장의 살인
이마무라 마사히로 지음, 김은모 옮김 / 엘릭시르 / 2021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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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작 '시인장의 살인'에서 이어지는 스토리. 그 전대미문의 사건에서 살아남은 대학 미스터리 애호회 소속 하무라, 히루코는 그 참극 뒤에 수수께끼 집단 마다라메 기관이 있다는 것을 알고 그 집단의 정체를 조사하고자 한다. 그러다 한 외딴 마을 '마안갑'이라는 건물에서 수십 년 전 마라다메 기관이 비밀 연구를 했다는 사실을 알게 된다. 즉시 마안갑으로 향하는 하무라, 히루코는 그곳에서 우연히 마을을 찾은 외부인들과 합류한다. 그러나 마을은 텅 비어 있었고 마안갑의 늙은 예언자는 이틀 안에 4명이 반드시 죽는다는 예언을 남긴다. 실제로 그 예언대로 첫 사망자가 나오고 마안갑에 놓여 있던 의문의 인형 다섯 개 중 하나가 사라진다.


솔직히 일본 내에서 그토록 많은 상을 휩쓸었던 '시인장의 살인'은 내 취향과 거리가 멀었다. 재미없는 것은 아닌데, 그렇게 극찬 받을 만큼 뛰어난 작품도 아니었다. 소재의 파격성을 빼고 나면 흔한 라이트노벨 추리물, 그 이상은 아니었다. 그렇다면 후속작 '마안갑의 살인'은 어떨까? 전작 '시인장의 살인'이 추리소설이 나갈 수 있는 소재의 한계를 깨뜨렸다면 '마안갑의 살인'은 고전 추리의 설정을 충실히 따른다. 외부와 고립된 마을, 그리고 하나씩 사라지는 인형 장치 등 '그리고 아무도 없었다'에서 많은 설정을 가져왔다. 분명 이 부분은 좋았다. 


고립된 마을에 외부인이 하나둘 모여 마안갑에 갇힌다.(정확히는 마을에 갇힘) 그리고 한 명씩 의문을 죽음을 맞이하고, 인형도 하나씩 사라진다. 이는 익숙하지만, 또 고전 추리팬이라면 피를 끓게 만드는 매력적인 요소다. 작가의 문체도 전작의 '라이트 노벨' 같은 분위기에서 많이 벗어났다. 서사를 한점 한점 꼭꼭 눌러 쌓아가는 필력이 상당히 안정적이었고, 그런 만큼 클로즈드 써클 특유의 정공법적 긴장과 공포가 잘 살아났다. 한 명씩 죽을 때마다 다음 피해자는 누가 될지, 또 살아남은 이들 중 섞여 있을 게 분명한 범인은 누구일지, 그것을 지켜보는 재미가 쏠쏠했다. 다만 라스트가 조금 아쉬웠다. 클로즈드 써클이라는 고전 본격의 미덕을 포석으로 깔아놓고 진행된 이야기가 결말부에까지 초자연적 설정이 동력으로 작용한다는 게 조금 미묘했다. 


기왕에 전작의 기묘한 참극이 사실은 비밀스러운 집단의 실험과 관련 있다는 출발이었다면 이 후속 스토리에선 본작의 초자연적 현상은 물론이고 전작의 그 비밀까지 모두 논리적으로 격파되길 기대했다. 물론 라스트 범인 색출 과정은 충분히 논리적이었고, 작품 속에서 마을을 지배하는 초자연적 현상이 인물들에게 미치는 영향력 또한 지속적으로 언급했다. 나름의 논리성은 이해할 수 있다. 그래도 내 마음속에선 '아, 이것은 소설 속 설정이기에 납득 가능한 것이구나' 정도로만 받아들여지는 찜찜함이 있었다. 책장을 덮고 나서도 내내 '그렇다고 해서 그런 일까지 벌인다는 게 현실적으로는 납득 가능한 걸까?'라는 모호함이 남았다. 


이 작가의 소설은 내 취향과는 거리가 있다. '초현상'의 남발이 서사 속에 찰지게 묻어났다기보단 '트릭' 및 '라스트 진상'을 위해 휘발된 느낌이었다. 즉, 다시 말해 드라마가 약했다. 소재의 파격도 초자연적 설정, 그리고 나름의 논리성도 중요하지만- 늘 강조하는 것은 추리소설에서도 드라마가 약하면 결국 '가벼운 작품'이 되어버린다. 그렇다고 이 작품의 트릭이나 추리적 명쾌함이 '놀랄만한 수준'까진 아니라고 여겨진다.(특히 꽃잎을 이용한 부분은 어딘지 번잡스러워다) 조금 아쉬운 소리를 했지만 이건 전적으로 취향 차에서 비롯한 문제다. 객관적으로 보면 이번 후속편은 전작보다는 확실히 뛰어난 편이고, 추리소설로서 별 넷 이상은 줄만한 작품이다. 무엇보다 초중반 고전 추리소설을 읽는 듯한 클로즈드 써클 특유의 재미가 뛰어나다. 이틀 안에 4명이 죽는다는 예언은 과연 그대로 이뤄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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