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무라면 의례 구불구불한 소나무에 익숙해 있다가

위로 쭉쭉 곧게 뻗은 모습이 새롭고 낯설었다

마치 미술시간에 선긋기 연습해놓은 페이지를 펼쳐보는 듯

한치 구부러짐도 없이 수직으로 뻗은

갈색도 아닌 하얀색 나무

우리나라가 아닌 다른 곳에 와있는 것 같았다

 

 

 

- 2020년 1월 20일, 강원도 인제군 인제읍 원대리 자작나무숲길 -

 

 

 

 

 

 

 

 

 

 

 

 

 

 

 

 

 

  • 위치: 강원도 인제군 인제읍 원남로 760 자작나무숲길
  • 면적: 25ha
  • 주요수종: 자작나무
  • 관리주체: 산림청 인제국유림관리소

 

 

 

 

 

원래 소나무숲이었다.

솔잎혹파리 피해가 심해 소나무를 베어내고 1989년에서 1996년까지 약 70만 그루의 자작나무로 조림했다.

현재 20~30년 생의 자작나무 41만 그루가 밀집해있다.

봄과 가을 두 차례 산불조심 입산 통제 기간이 있다.

 

 

 

아주 힘들지도 않고 그렇다고 아주 만만하지도 않은 길 

두어 시간 트레킹 코스로 좋다.

눈이 오면 좀 더 준비를 잘 해가야겠지만.

 

 

 

 

 

 

 

 


댓글(7) 먼댓글(0) 좋아요(20)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2020-01-13 14:49   URL
비밀 댓글입니다.

hnine 2020-01-13 15:25   좋아요 0 | URL
언제부터 가고 싶었는지 모르는 곳인데 어제 드디어 다녀왔어요. 방학이라 집에 와있던 아이를 보내고 아무래도 마음이 좀 썰렁하기도했고요.
눈이 별로 없고 춥지도 않아서 걷기는 좋았지만 사람 욕심이 또 그렇지 않지요. 눈이 하얗게 덮였더라면 더 멋있었을거라는 욕심도 부려봤어요.
강원도는 확실히 지도상에서 보는 거리보다 더 넉넉히 시간을 잡아야 한다는걸 다시 한번 확인하였답니다. 다른 곳도 들러오면 좋았을것을 바로 집으로 돌아왔는데도 어둑할때 들어왔어요.
하얀 색 나무라서 숲의 뼈라고 했을까요, 아니면 곧고 마른 몸매무새 때문에 뼈에 비유했을까요. 공감가는 표현이어요.

2020-01-13 18:12   URL
비밀 댓글입니다.

hnine 2020-01-13 23:21   좋아요 0 | URL
40만 그루가 어느 정도인지 저도 안내판에 써있어서 알았지 숫자만 보고는 어느 정도인지 짐작 못하지요.
입장료 따로 없이 누구나 들어가게 한다는 것이 새삼스러웠어요. 집에서 가까운 계룡산 올라갈때에도 꼭 입장권을 내야했거든요.
강원도로 들어가면 벌써 산세가 다름을 느끼는게, 보이는 산 뒤에 또 산이 겹겹이 있거든요. 경사도 가파르고.
모든 여행은 떠나기 전에 망설여져서 그렇지 다녀오고 나면 후회는 안하는 것 같아요. 나의 세계가 조금 더 넓어진 느낌이랄까요.

순오기 2020-01-16 04:57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hnine님, 새해맞이는 잘 하셨나요? 다린군은 이제 청년이 된 건가...^^
한겨울 자작나무 숲을 보고 오셨다니 부럽네요~♡
저는 18년 가을 원대리에 노랗게 물든 나뭇잎이 양탄자처럼 깔려있었는데 참 좋았어요. 자작나무 초록숲은 16년 8월 바이칼에서 만끽했으니, 겨울 자작나무 숲을 보러 눈이 오면 가까운 나주 배꽃유아숲으로 나들이해야겠어요~^^

hnine 2020-01-16 22:55   좋아요 0 | URL
가을에 와도 좋을 것 같다는 생각을 안그래도 했더랍니다. 나주 배꽃유아숲, 저도 검색해보고 가볼수 있으면 좋겠어요. 순오기님은 전국 여러 숲에 대한 정보가 많으시겠지요 ^^
어느 장소를 어느 해에 갔었는지, 저는 정확한 연도 기억을 잘 못하는데 순오기님은 연도를 정확하게 기억하고 계시네요. 자작나무숲이 초록숲일수도 있나봐요? 저는 자작나무는 늘 흰색인줄 알았어요.

순오기 2020-01-17 23:22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물론 자작나무 수피는 4철 흰색이지만, 봄부터 여름까진 나뭇잎이 초록이었다는 거죠~^^
 

 

 

예외 없는 법칙이 없다고 하지만 그렇다고해서 법칙이 아예 존재하지 않는다는 말은 아니다.

법칙이라고 하니 딱딱하게 들릴지 몰라도 쉽게 말하면 어떤 패턴이 존재한다는 것인데, 즉

규칙적이고 반복적이어서 예측 가능한 패턴으로서 이것은 물질에도 존재하지만 생명현상에도 존재한다.

이렇게 말로 하면 과학이 아니다. 이것을 객관적으로 나타낼 수 있어야 하고 그래서 보편성을 증명할 수 있을때 과학이라고 부를 수 있는 것이다.

자손이 부모 세대를 닮는 현상이 무작위적으로 일어나는 것이 아니라 일정한 패턴을 가지고 일어난다는 것, 그래서 아직 태어나지 않은 자손도 미리 그 형질을 예측할 수 있다는 것을 처음 알아내었고 그 규칙성을 숫자의 형태로 구체화하여 발표한 사람, 오스트리아의 수도사 그레고르 멘델이다. (그 당시는 오스트리아였으나 지금은 체코땅 브르노 -Brno- 이다).

 

막연하게 꿈꾸고 있다가 체코로 가는 비행기 티켓을 예매하게 된 마지막 방아쇠는 우연히 보고 있던 EBS 교육방송이었다. 과학 발전에 중요한 역할을 한 인물들을 소개하는 프로그램이었던 것 같은데 마침 멘델에 대한 것을 하는 날이었나보다.

내가 제일 좋아하는 과학자 멘델. 이유는, 유전학에 대한 개인적 관심과 애정도 있지만 멘델이 걸어온 평탄치 않은 길에 대해 알고 있기 때문이다. 넉넉치 않은 가정, 처음부터 탄탄대로 과학 교육의 혜택을 받을만큼 눈에 띄지 못했던 사람. 오히려 시험에 자꾸 떨어지자 시험 노이로제까지 있었던 심약한 사람. 집안에선 장남으로서 동생들을 돌볼 책임까지 있었던 사람.

당시 교육의 기능까지 일부 담당했던 수도원의 기능에 따라 수도사가 되면 성직자로 봉직하면서 원하던 공부도 할 수 있을 거라는, 막판의 돌파구로 들어간 수도원이었다.

누가 가르쳐 준 것도 아니고 수도원 한 구석에서 식물을 재배해가며 관찰하고 기록하며 혼자 수십년의 세월을 보낸 끝에 발견한, 지금 생각하면 엄청난 결과들을 정리하여 학회지에 발표했으나 아무도 눈여겨 봐주는 사람이 없었다. 결국 멘델은 자신이 평생 해온 일이 훗날 전 세계에 어떤 큰 파장을 일으킬지 모르는 채로 눈을 감았다.

 

갈수록 돈이 되는 연구, 상업성이 있는 프로젝트, 결과 중심의 연구에 치우쳐가는 현대 과학의 트렌드를 보면서 (물론 모두 그렇진 않다) 멘델의 저 과학에 대한 호기심과 열정으로 끌고간 연구를 본받고 싶었다. 과학하는 사람은 모름지기 저런 마인드여야 한다고. 가는 길이 멀고 험난하더라도 저런 순수한 마음이 포기하지 않는 길잡이가 되어주어야 한다고 생각했다. 지금 생각하니 그런 과학자가 비단 멘델 한 사람은 아니겠지만 그 당시 내 눈에 들어온 사람이어서 그럴 수도 있다.

 

TV에서는 마침 멘델이 살고 일하던 수도원 사진이 나오고 있었다.

"가서 직접 봐야겠다!" 불현듯 그런 결심을 하게 되었고, 그날로 체코행 비행기 표를 예약하게 되었다.

 

그렇게 떠난 체코 여행이었다. 그런데 왜 브르노 가는 일정을 하필 여행 마지막 날로 잡았던 것일까. 숙소가 있던 프라하에서 브르노까지는 기차로 약 3시간 거리이다. 새벽부터 일어나 트램을 갈아타면서프라하 중앙역까지 가서, 프라하 중앙역에서 브르노행 기차를 탔다.

브르노는 프라하 다음으로 체코 제2의 도시라고 알려져 있는 곳인데, 나는 멘델이 일하던 수도원 이외엔 어디에도 관심이 없었다.

버스에서 내려보니 브르노는 프라하와 분위기가 많이 달랐다. 대학 도시라서 그런지 어딘가 더 활기 있고 젊은 도시 느낌이랄까. 역시 시내를 가로질러 다니는 트램.

 

 

 

 

 

 

 

St. Thomas Abbey 라고 구글맵에 치고 찾아갔는데 정작 도착한 곳은 내가 알고 있는, 사진으로 본 그 수도원 모습이 아니었다 (↓). 하얀 벽의 그야말로 보통 보는 성당의 형태를 한 건물이었고, 멘델이 있었다던 그 붉은 벽돌의 수도원이 아니었다.

 

 

 

 

 

 

 

나중에 알았다. 멘델이 있던 그 수도원은 지금은 Mendel Museum으로 아예 이름이 바뀌어 그 명칭으로 찾아가야 한다는 것을.

겨우 택시를 잡아타고 10분 정도 갔더니 거기에 내가 찾던 그 붉은 벽돌의 수도원이 있는 것이다. 멘델이 수도사로 있었고 그가 완두를 재배해가며 실험을 했던 정원이 있는 그 수도원이다 (↓).

 

 

 

 

 

 

반가운 마음이 가시기도 전, 어째 이상하다. 사람들도 없고 분위기가 썰렁해서 보니 내가 간 월요일이 하필 휴관일.

 

 

 

 

 

 

 

 

 

아, 내가 왜 체코엘 왔는데.

그때부터 내 입이 댓발은 나왔지만 누구를 탓하랴. 미리 그 정도 정보도 없이 간 내가 모자랐지.

 

멘델이 실험하던 정원과 기념관엔 들어갈 수 없었기에 할 수 없이 수도원 둘레만 돌아보았다.

 

 

 

 

 

 

 

 

 

 

 

아직도 낯설다. 영어가 맨 앞이 아니라 체코어 설명이 맨 앞에 나오는 모든 안내판. 독일어까지 설명이 있는 경우엔 심지어 독일어 다음, 맨 끝이 영어이다.

 

 

 

 

 

익숙한 저 그림.

 

 

 

담쟁이 덩굴로 덮인 위의 저 건물은 Mendel's Orangery인데 이를테면 멘델이 연구실로도 쓰고 손님도 맞고 휴식을 취하기도 했던 장소라고 한다. 안에 들어가면 난로, 책상, 접이식 테이블, 의자, 그림 등이 있다고 설명에 나와있었다.

 

아래 사진은 예전의 모습이다.

 

 

 

 

멘델은 순전히 노력형 인물이었다고 알고 있었는데 이날 돌아보면서 여러가지 기록과 포스터 내용을 찬찬히 읽어보니, 노력도 했지만 이 사람 역시 영재 기질이 다분했지 않았나 하는 생각이 들기도 했다. 유전학 뿐 아니라 과학 다방면에 관심이 많아서, 누가 시키지도 않는, 알아주지도 않는 연구를 평생 해온, 그야말로 타고난 학자 타입이었던 것 같다.

아래 기록은 그의 기상학자로서의 기질을 보여주는 손글씨 기록인데 하루도 빼놓지 않고, 일기 쓰듯이 기록을 했다고 한다. 단정한 손글씨.

 

 

 

 

 

 

멘델 박물관을 제대로 둘러보지 못했으니 시간이 남아 브르노의 다른 곳을 가봐도 좋았을텐데, 실망감이 커서 그냥 프라하로 돌아오는 기차를 탔다. 겨우 오후 2시 7분.

 

 

 

Perseverance and immense dilligence in whatever he did helped him achieve extraordinary results in a number of areas.

 

멘델에 대한 안내글 중 일부 구절이다.

 

 

 

 

 

 

 

 

 

 

 

 

 

 

 

  

 

 


 

 

 

 






































댓글(3) 먼댓글(0) 좋아요(24)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2019-12-28 10:41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19-12-28 15:27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19-12-28 15:26   URL
비밀 댓글입니다.
 

(실버스타 스탤론 주연의 '데몰리션 맨'과는 다른 영화)





데몰리션 Demolition (2015, 미국)


  • 감독: 장 마크 발레
  • 주연: 제이크 질렌할, 나오미 왓츠
  • 내가 주는 평점: ★★★★★









(사진 출처: Daum 영화)








(사진 출처: Daum 영화)










(사진 출처: Daum 영화)







가족중 누군가를 잃게 되면 잃은 직후 허무함과 슬픔의 정도가 가장 컸다가 시간이 지나면 점점 옅어질 줄 알았는데 경험해본 바로는 그게 아니었다. 막상 그 사람을 보낸 직후엔 뭐가 뭔지 실감이 안되고 그 사람이 없는 상황에 적응이 안되어 무슨 감정인지 나도 잘 모르겠다가, 일상 속으로 돌아와 어찌어찌 지내던 중 불현듯 그 사람의 부재가 피부로 느껴질 때가 오는데 바로 그때부터인것 같다. 그 사람이 없는 현실에 적응하고 받아들여야 하는 그 길고 긴 여정을 시작해야 할 때.


아내와 함께 타고 가던 차가 교통사고가 나는 것으로 영화는 시작한다. 운전하던 아내는 죽고 옆자리에 타고 있던 데이비스는 가벼운 찰과상만 입고 멀쩡하게 살아남는다. 사랑했던 아내를 잃었는데도 데이비스는 바로 직장에 복귀하여 일을 하는 등 마치 아무 일도 없었던 것 처럼, 아무 슬픔도 못느끼는 것처럼 일상을 계속해나가면서 스스로 생각해도 자기 감정을 알수가 없다. 

'정말 나는 아무렇지도 않을것일까?'


아내가 마지막 순간을 보낸 병원에서, 자동판매기 고장으로 돈만 먹고 물건을 내놓지 않는 일이 생긴다. 아무것도 아닐 수 있는 이 일에 데이비스는 자동판매기 회사에 항의하는 편지를 보내게 되고 (이것이 아마도 감정 표현의 시작이 아닌가 생각된다) 항의 편지에 대한 답으로 새벽 2시에 자판기 회사 고객센터로부터 걸려온 전화를 계기로 고객센터 여자와 직접 만나게 된다. 그여자 캐런, 그리고 그녀의 십대 아들 크리스와 만나 아무 생각없이 자기 얘기를 털어놓게 된 데이비스는 비로소 출근도 안하고 거리를 헤매다니고 막노동판에 달려들어 잘 알지도 못하는 노동일을 하다가 다치는가 하면, 뭔가를 고치려면 다 분해하여 중요한게 무엇인지 알아내야 한다며 부수는 도구를 사다가 아내와 함께 살던 집을 다 때려부수기도 한다 (→물리적인 의미의 demolition). 


다 때려부수어 남겨진 것은 물건의 잔해만은 아니었다. 그동안 몰랐던 사실들. 


여기에 줄거리를 다 적을 수는 없지만, 단순히 아내를 잃은 후 남자의 애통함을 그리는 영화가 아니었다. 적어도 내가 보기에는.

살면서 파괴, 파탄의 순간을 맞는 일이 누구에게나 있을 수 있다. 시간이 지나면 그게 파멸까지 몰고갈 일은 아니기도 하고, 파멸에 가까운 결과로 이끄는 경우도 있기는 하다.

그런 일이 일어나는 것 까지 인간의 힘으로 막을 수 없는 것이라면, 인간에겐 그럼 무기력하게 당하고 파괴되는 길 밖에 없는 것일까? 

어떤 엄청난 일이 일어나서 나의 삶이 산산조각 난 것 처럼 보일지라도, 부서진 조각 더미를 딛고 결국은 다시 일어나는 것. 극복하고 내 삶을 계속해나가는 것. 인간으로서 할 수 있는 최선의 길이 아닐까. 계속 노력해야 하는. 까뮈의 시지프스 신화에서 다시 떨어져내릴 것을 알면서도 끊임없이 돌을 위로 밀어올리는 시지프스처럼 말이다. 돌을 굴려올리는 시지프스의 삶을 형벌이라 보아야만 할까? 돌을 밀어올리면서 형벌, 운명에 대한 굴복이라고 생각하는 대신 시지프스는 끊임없이 어제와 다른 생각을 하지는 않았을까? '돌을 제 자리에 되돌려놓는 좀 다른 방법은 없을까? 이 행위에 형벌 이상의 어떤 의미는 없는 것일까?' 같은. 


파멸, 파괴가 끝이 되는 삶이 아니라, 그것을 딛고 극복하려는 몸부림과 노력으로 채워가는 삶을 수행해나가는 것이, 옳은지 어떤지 쉽게 말할 수는 없겠지만, 이 영화에서는 최소한 그렇게 삶을 계속해나가는 한 사람의 모습을 보았다. 그렇게 되기까지 그가 겪는 과정을 보았다.


영화 중간에 느닷없이 배경음악으로 나오는 쇼팽의 녹턴은 또 어떤가. 느리고 섬세한 영화의 또다른 OST도 다시 들어야한다.


슬픈 영화이다. 아내를 잃는 사건 때문이 아니다. 현실을 딛고 일어서는, 힘겹게 결국 일어서는 사람들의 모습을 보면서 그게 우리가 할 수 있는 일이라는 걸 받아들이는 것이 슬프고 또 고맙다.





"LIFE: Some disassembly required"




 

 

 

 

 

 

 

 

 

 

 

 







댓글(5) 먼댓글(0) 좋아요(22)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목나무 2019-12-12 19:49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저도 몇 년 전에 이 영화를 보고 슬픔의 자각과 표현은 사람마다 다르구나, 다를 수밖에 없구나 하는 생각을 했었어요.
ost중 warmest regards란 노래가 너무 좋아 한동안 그 노래만 듣고다녔어요.
이 리뷰보니 간만에 이 영화 다시 보고싶어지네요.

hnine 2019-12-12 21:42   좋아요 1 | URL
설해목님도 이 영화 보셨군요.
말씀하신 warmest regards도 찾아서 들어봤어요. 일단 warmest regards라는 말이 참 좋네요. 기억해놓았다가 저도 써보고 싶을 때가 있었으면 좋겠어요.
detachment라는 영화를 네플릭스에서 보고났더니 계속 비슷한 영화를 추천해주는데, 저와 코드가 맞아서 추천해주는대로 잘 보고 있답니다. 이 영화 다시보시면 또 어떨까요?
혹시 다시보시게 되면 데이빗이 집으로 찾아온 카렌에게 그릴드치즈를 권하며 멋적게 웃는 장면을 한번 보아주세요. 매력적! ^^

프레이야 2019-12-21 07:51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놓친 영화네요. 바로 찾아 봐야겠어요. 좋은 영화 소개해 주셔서 고맙구요.
나인 님, 오랜만에 인사드려요. 주인공들도 좋아하는 사람들이군요.
겨울날씨답게 싸한 날이에요.
감기조심하시구요.

hnine 2019-12-21 12:56   좋아요 1 | URL
한번 보셔도 좋을 것 같아요. 프레이야님은 어떤 관점으로 보실지 궁금해요. 한 인간의 일상이 붕괴되는 과정이 상영 시간의 대부분을 차지하고 있지만 저는 마지막 몇 분에서 결론을 찾고 싶었어요. disassembly 와 reassembly 를 왔다 갔다하며 사는게 인생이 아닐까요.
새로운 책 출간을 축하드려요. 또 하나의 자식을 낳은 셈이라고 말씀드려도 될까요? 얼마나 뿌듯하세요.

프레이야 2019-12-21 13:52   좋아요 0 | URL
그럼요 그렇구말구요. 그 과정이 우리 삶인 것이겠지요. 축하 감사드려요. 세번째 아이 출산하고 뿌듯하기도 하고 또 느끼는 점들도 있고 그렇게 또 하나의 마디를 긋고 한발짝 가볍게 나아가려구요. 나인님 마음에 늘 평안함이 있기를 바랍니다. ^^
 

 

 

 

 

 

 

 

 

 

1

 

 

 

 

 

 

 

 

 

 

2

 

 

 

 

 

 

 

 

3

 

 

 

 

(사진 3은 어제 찍은 것이 아니라 가을에 찍어놓은 것이네요.)

 

 

 

 

 

한동안 즐거이 다녔던 곳.

어제 강의를 마지막으로 다음에 또 관심있는 강의가 눈에 들어올때까지 정기적인 발걸음은 쉬게 될 것 같다.

 

 

 

 

 

 

 

 

 

 

 

 

 

 

 

 

 


댓글(2) 먼댓글(0) 좋아요(17)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2019-12-04 09:41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19-12-04 09:47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19년 10월 설악산 비천대 올라가는 길이었습니다.

Kissing stone 이라는 이름은 제가 붙였어요.

 

 

 

 

 

 

 

 

 

 

 

 

 

 

 

 

 

 

 

 

 

 

 

 

 

 

 

 

 


댓글(2) 먼댓글(0) 좋아요(19)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stella.K 2019-12-02 14:52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헉, 진짜 키스하는 것 같아요. 저런 게 있었다닛! 놀랍네요.
<쉬리>란 영화에서 알려진 키싱구라미란 물고기 생각나네요.ㅋ

hnine 2019-12-02 17:37   좋아요 0 | URL
ㅋㅋ
아마 저 바위를 보고 저만 그렇게 느낀게 아닐꺼예요.
예전에 홍신자 무용가가 이끌던 무용단 이름이 ˝Laughing stone (웃는 돌)˝이라고 지었다던데 거긴 뭔가 심오한 뜻이 있겠죠?
예전에 저희 집에서 열대어를 한동안 키웠기 때문에 키싱구라미가 키스하는 모습은 여러번 보았어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