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전국노래자랑 보다가 할머니 생각

 

 

 

 

 

 

 

할머니 돌아가신지 올해로 24년이 지났다.

돌아가실때까지 우리 집에서 함께 사시면서 일하시는 엄마대신 나와 내 동생 둘을 어릴 때부터 키워주셨고 집안 살림을 거의 맡아 하시다 시피 했다. 할머니 밑에서 크는 아이들 버릇 나빠진다고 하는 말을 나는 믿지 않는 것이, 우리 할머니께서는 엄마 못지 않게 엄격하셨기 때문이다. 응석, 어리광, 이런 건 통하지 않았다.

할머니는 한번도 뭐가 먹고 싶다, 어디 가고 싶다, 갖고 싶다, 보고 싶다고 요구하신 적이 없었다. 돌아가시기 전 고향에 한번 가보고 싶다고 하셨던 것이 내가 기억하는 유일한 할머니의 바램이었는데, 그마저 이루지 못하고 돌아가셨다. 그런 할머니께서 좋아하시는 TV 프로그램이 바로 '전국노래자랑'. 그것도 일부러 시간 맞춰 보신것도 아니고 어쩌다가 주말에 TV를 틀어서 '전국노래자랑'이 나오고 있으면 끝날때까지 보고 계시곤 했다. 그런 할머니를 지나가다 옆에서 보면 TV를 향해 앉아 혼자 웃고 계신 걸 보고 나도 혼자 웃었던 기억이 난다.

돌아가시기 몇해전부턴 정신이 깜빡깜빡 하는 일이 잦았는데, 전국노래자랑 사회자를 보면서 저 사람이 우리 고향사람이라고 하셨다. 저 노래자랑을 할머니 고향에서도 하는걸 직접 가서 몇차례 보셨노라고. 처음엔 무슨 말씀하시냐고 대꾸하다가 나중엔 "아, 그래요 할머니?" 그냥 그렇게 맞장구 치곤 했다.

오늘 채널을 돌리다가 우연히 전국노래자랑을 보게 되었다. 아직도 할머니께서 고향 사람이라고 우기시던 그 분이 사회를 보고 있었다.

할머니 생각이 나서 나도 한동안 보고 있었다.

돌아가시기전 고향에 한번 모시고 갔어야 했다.

 

 

2. 자장가를 대신해주던 영어회화 테입

 

 

 

 

 

 

 

 

 

 

 

 

 

 

 

 

 

잠이 안올때 보통은 라디오를 켜놓고 들으면서 잠을 청하기도 하지만 가끔은 위의 영어회화 테입을 반복재생으로 틀어놓고 잠을 청할때가 있다. 영어회화를 익히는게 목적이 아니다. 1998년 혼자 외국 생활을 하게 되었을때, 그야말로 아는 사람 하나 없는 그곳에서 어찌나 한국말이 그립던지. 그때 가지고 갔던, 우리글로 쓰여진 유일한 책, 최영미의 <시대의 우울>은 수십번을 읽었지만 때로는 글자가 아니라 한국 사람의 목소리가 듣고 싶을 때가 있었다. 그러다가, 한국에서 가지고 간 영어 회화 테입의 해설 부분이 한국말로 되어 있음을 알고 아쉬운대로 그거라도 들으며 잠을 청했던 것이 버릇이 된 것이다. 요즘처럼 인터넷이 발달하고 외국, 한국이 따로 없는 상황에 비교하면 전설같은 이야기이다.

영어권 나라로 가면서 무슨 생각으로 저 테입을 사가지고 갔는지 모르겠지만 한국말이 듣고 싶을 때 저 테입을 듣게 될지 누가 알았겠는가.

지금 들어도 해설자의 영어 발음 하나는 정말 똑 떨어질 정도로 정확하다. 한국말은 경상도 억양이지만 (이건 또 무슨 아이러니인지).

 

자꾸 옛날 일만 떠올리지 말고 앞으로 하고 싶은 것도 적어보고 가고 싶은 곳도 적어보아야겠다.

가고 싶은 곳 두군데 벌써 남편에게 말해놓았다.

케냐의 기린 호텔 (Giraffe manor) , 터키의 카파도키아 (Cappadocia).

 

목록이 자꾸 자꾸 늘어가기를.

 

 

 

 

 

 

 

 

 

 

 

 

 

 

 

 

 

 

 

 

 

 


댓글(14) 먼댓글(0) 좋아요(11)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세실 2013-10-13 20:59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전 고등학교 청주에서 다닐때 할머니가 밥 해주셨어요. 고 3때 밤 12시(?)까지 자율학습하고 나올때면 늘 할머니가 기다리셨어요. 초저녁 잠이 많으셨을텐데.......돌아가신지 10년은 되신듯요.
오홋 맨아래 사진이 케냐의 기린호텔인가요?

hnine 2013-10-13 22:10   좋아요 1 | URL
세실님도 할머님과 정이 많이 들었겠네요. 매일 같은 시간 누군가를 기다리는 마음, 누군가를 마중가는 마음, 그런게 어쩌면 말보다 더 진한 우리 식의 사랑 표현 방식이 아닌가 싶어요.
맨아래 사진이 케냐 나이로비에 있는 기린 호텔 맞아요. 전 처음에 저런 곳이 실제로 있나 믿기지 않았답니다. 저 호텔 테이블 위의 접시 보세요. 접시에도 기린 무늬가..ㅋㅋ
터키의 카파도키아에선 저 사진속의 열기구를 직접 탈수 있다네요. 가보고 싶어요.

상미 2013-10-13 21:29   좋아요 1 | 댓글달기 | 수정 | 삭제 | URL
전국 노래 자랑 우리 엄마도 좋아하셔.ㅎㅎㅎ
울 엄마도 할머니지 뭐^^ ;;
네 할머니 모습 나도 생생해... 쪽진 머리도.
내 기억에 참 꼿꼿하셨어.

난 하고 싶은거... 산티아고 순례길 가고 싶어.
일단 내년에 아들이 대학을 가면,
5월에 남편이랑 지리산 종주 하기로 했다~~~
아들이 관건이고, 두번째는 나의 체력...
운동해야지~~~

hnine 2013-10-14 10:29   좋아요 1 | URL
우리 할머니 깐깐하고 무서웠지? ^^
돌아가실 무렵 매일 보따리 싸놓고 고향 가고 싶다고 그러셨어. 그때 엄마도 아빠도 바쁘셔서 한번도 모시고 가질 못하고 돌아가셨는데 그게 지금 생각해도 참 안타까워. 요즘도 가끔 내 꿈에 나타나시는데 그때도 늘 짐보따리를 가지고 나오시더라.
산티아고 순례길, 멋있다. 산티아고 다녀온 책만 몇권을 읽었는지 몰라. 난 남편보고 산티아고 가자고 하면 반응이 별로일 것 같아, 걷는 거 귀찮아하는 타입이라서. 혼자 가긴 엄두가 안나는 행로이고.
지리산 종주는 병규랑 병규아빠랑 다녀오지 않았었나? 그건 해볼만 하겠다. 대학교 4학년때 생태학 실습으로 지리산 노고단까지 갔는데 그것도 헥헥거리며 다녀왔어. 팔팔할때도 그랬으니 지금 가면 어떨까 싶네. 화엄사가 생각보다 훨씬 더 크고 웅장했던 기억도 나.

nama 2013-10-14 20:46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목록이 자꾸 자꾸 늘어나기를' 바랍니다.

터키에 가시거들랑 괴뢰메의 동굴호텔에 묵어보는 것도 좋아요. 특히 한겨울에 덜덜 떨어가며 이불 속으로 기어들어가는 것도 그곳에서는 낭만이지요.


'전국노래자랑'이 한때는 제가 유일하게 보는 프로그램이었지요.

hnine 2013-10-14 21:59   좋아요 1 | URL
한동안 가고 싶은 곳 떠올리지 않고 살았던 것 같아요. 이제 하나 둘 눈길이 가는 곳이 생기는 것을 보니 더 나이들기 전에 가봐야 한다는 생각이 든건지, 아니면 마음의 여유가 좀 생긴건지, 모르겠네요.
터키 여행하고 오신분들은 다 추천하시더라고요. 동굴호텔, 저도 들어본 적 있는 것 같아요. 괴뢰메, 적어놓을께요 ^^

프레이야 2013-10-14 22:57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나인님 가보고싶은곳 두곳 모두 저도요^^ 기린호텔 우와! 전 친할머니 얼굴은 뵌 적도 없고 외할머니가 참 고우셨는데 제가 큰딸을 낳은 그해 여름 먼길 가셨어요. 사춘기 시절 말없이 위안이 되었던 아랫목 같은 분이셨지요. 그립네요.

hnine 2013-10-15 09:42   좋아요 1 | URL
기린호텔 정말 가보고 싶으시지요? 저런 곳이 있으리라곤 상상도 못했어요. 제가 모르는 곳이 아직도 얼마나 많을까요. 자꾸 예전 생각 떠올리는 시간이 많아지니, 새로운 경험으로 그 자리를 채워보자는 생각이 들었나봐요.
외할머니에 대한 말씀은 예전에도 들었던 것 같아요. 제 외할머니께서도 제가 초등학교때, 외할머니 아직 60대이실때 돌아가셨어요. 프레이야님께선 친할머니도 일찍 돌아가셨나봐요. 돌아가신 분 생각이 이렇게 뜻하지 않은 순간에 불쑥불쑥 나네요. 그리고 잠깐 그리워하고 또 한동안 잊고 살고...그런거겠지요.

안녕미미앤 2013-10-26 13:57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잘 읽다가 "가고 싶은 곳 벌써 두 곳 남편에게 말해놓았다"에서 급 재미가 없어졌어요.
그래도 가보고 싶은 곳.. 말해놓을 분이 있다는 것은 뭐, 가고 싶은 곳이 천만개나 있는 저보다 낫다는 거 아니에요? 칭..
:)

hnine 2013-10-20 04:55   좋아요 1 | URL
남편이 없었다면, 아마 벌써 갔을지도 모르지요 혼자서! ^^

순오기 2013-10-21 01:53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할머니 고향이 어디셨는데 못 가보고 떠나셨을까요?
나인님이 그걸 안타까워하니까 마음에 남아 꿈속에도 나오는 듯...
이제는 마음 내려놓아도 될 듯, 할머니께선 날마다 자유롭게 고향에 가실 거 같아요.^^

hnine 2013-10-21 05:19   좋아요 1 | URL
할머니 고향, 안면도지요.
그때 저는 아직 학생이었고, 부모님은 늘 그랬지만 바쁘셨고요.
그런데 요즘은 제 아버지께서 부쩍 더 늦기 전에 어디좀 가보고 싶다는 말씀을 종종 하시네요.
언젠가 저도 그런 말 할때가 올 것 같아서, 뒤로 뒤로 미루지만 말고 가보고 싶은 곳 다는 아니더라도 좀 가 보면서 살고 싶어요.
순오기님, 그런데 이렇게 늦게 주무셔서 어떻게 해요? 11시부터 다음날 2시까지는 꼭 자는게 좋다는데...

안녕미미앤 2013-10-26 14:07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파하하^^ 정말 그럴 수도 있겠어요^^ 그런데 혼자라고 책임이 없는 게 아니니까요.. 저 같은 경우는 더 많은 케이스^^
겁도 많구요 ㅋㅋㅋ 쓸데없는 거 아는데 뭐 그러네요. 그런데 생각해보면 꼭 쓸데없지도 않은 것 같아요.
등산 할 때 그러잖아요.. 짐이 많으면 올라가기 힘들어도, 짐이 있어야 물 먹고 싶을 때 마시고 배고플 때 먹고 추울 때 덮고^^ 겁도 좀 있어줘야 안 위험하지 않나요? 히~

hnine 2013-10-26 18:45   좋아요 1 | URL
대부분의 사람들에게 여행가기 힘든 이유는 경제적인 것, 시간 여유, 이런 것들보다 사실 그거예요. 떨치지 못하는 것! 발 뗄 용기! ^^
 

나이를 별로 의식하지 않고 살다가도, 어쩔 수 없이 나이를 의식하게 되는 때가 있다.

나에겐 너무나 익숙한 것들이, 추억의 그 시절, 그때 그 시절 같은 코너에서 소개될 때이다. 

좋아하는 노래, 좋아하는 영화, 좋아하던 장소등이 그런 코너에서 소개된다.

내가 좋아하는 배우, 음악가, 가수들이 세상을 떠났다는 소식을 듣는다.

'자연스런 일이지.'

라고 생각은 하면서도 아쉬움과 함께 내가 가지고 있는 나의 기억들을, 내 기억이 더 희미해지기 모아놓고 싶다는 생각이 든다. 작은 노트에라도.

누구에게 보이기 위해서라기 보다, 쓰면서 즐거울 것을 상상하며.


예전에 엄마에게,

'엄마, 엄마 어릴 때 얘기를 글로 좀 써봐요. 6.25때 피난 가던 얘기, 가교사에서 공부하던 얘기. 나는 엄마에게 자주 들어 알고 있지만 나만 알고 있기엔 아까워요.'

라고 권유하던 때가 있었다.

엄마는 그냥 흘려 들으셨고 나도 계속 권하지는 않았는데, 엄마에게 권하던 것을, 엄마 만큼 할 얘기가 많지는 않겠지만 내가 좀 일찍 시작해보면 어떨까 하는 생각이다.

아니, 그런 거창한 것 까지도 아니다. 


몇 년 전에 역사박물관에서 주관하는 개인 기록 아카이브를 위해 자서전 쓰는 프로그램이 있었다. 나는 외국에 나가서 공부하고 아이 낳고 키우던, 내 인생에 가장 분주하던 몇 년을 내용으로 썼고, 다른 분들의 글과 함께 비매품 책으로 출판된 적이 있다.


써볼까? 어디에, 어떻게 쓸까?














댓글(2) 먼댓글(0) 좋아요(17)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stella.K 2024-10-30 10:19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오, 그런 프로그램이 있군요. 우리나라는 공적인 잇슈에 관심이 많아서 그런지 남의 개인사에는 관심이 없는 것 같습니다. 참견하는 건 좋아하면서. 그 사자가 그 사자가 아닌데 말이죠.
저도 h님과 같은 생각을 합니다. 기억이 희미해지기 전에. ㅠ 손에 들고 계신 저 책이 h님의 비매품 책? ㅎ
책이 예쁘네요. 읽어보고 싶습니다.^^

hnine 2024-10-30 12:27   좋아요 0 | URL
요즘 개인의 역사를 아카이브 하여 한 시대의 사회사로 묶는 것이 한 트렌드라네요.
역사박물관에서도 그런 취지로 했던 것 같은데 이후로도 계속 되고 있는지는 모르겠어요.
스무명 모집해서 최종적으로는 다섯명의 글이 책으로 묶였어요.

한 사람의 일생은 그 자체가 하나의 우주와 같다고, 제가 고등학교 2학년때 교생선생님께서 해주신 말씀이 지금까지 잊혀지지가 않아요. 내가 내 삶을 돌아볼수 있는 유일한 방법은 기록해보는 것 밖에 떠오르지가 않더라고요. 한번 해보려고요.
 

학생때 어쩌다가 월간 샘터를 정기 구독 했던 시절이 있었다. 왜 하필 샘터였지는 모르겠으나 아마 학생이던 때 내 용돈으로 정기구독할 수 있는 범위의 가격대이기도 하고, 거기 실리는 정채봉 시인, 최인호 작가의 연재, 이해인 수녀의 글, 법정 스님의 글을 매월 읽을 수 있는 것이 좋았고, 화려하지 않아도 열심히 살아가는 사람들의 이야기가 좋았었던 것 같다.

얄팍한 책의 처음 부터 끝까지, 광고, 목차, 맨 뒤의 기자, 편집자의 한마디까지, 거의 빼놓지 않고 다 읽는 것은 버릇이었다.

내가 '한강'이라는 이름을 알게 된 것은 바로 그 샘터지의 맨 마지막 페이지, 편집 후기 에서였다. 한강이라는 이름이 특이해서 더 기억에 남을 수 있는데, 다른 기자들의 몇 줄 소감과 크게 다르지 않은 내용의 글들이었다.

한참을 그렇게 한달에 한번씩 읽던 한강 기자의 편집 후기를 어느 호부터인가 읽을 수 없게 되었다. 다른 기자 이름이 올라오고 한강 기자의 이름은 빠져 있는 것을 보고 출판사를 그만 두었나보다 했다. 

나의 샘터 구독은 계속 되어 책꽂이의 한 줄을 다 차지하기에 이르렀는데 친구 중 하나가 다리를 다치는 바람에 집에 있느라 너무 심심하다는 것이었다. 나는 집에 있는 샘터를 다 싸다가 친구에게 가져다 주었다. 부담없이 읽기에 좋을 거라면서. 

"다 읽고 나서도 버리지는 말아줘. 내가 한권도 안 빼놓고 모아놓고 있거든."

친구에게 당부했다.

그런데, 나중에 친구에게 돌려받은 샘터 꾸러미에는 듬성듬성 빠진 호가 있었다. 아무리 찾아도 없다는 것이었다.

괜찮다고 하고, 그 후부터는 열심히 모으기를 그만 두었던 것 같다.


몇 년 후 한강이라는 이름을 서점의 신간 코너에서 보게 되었다. 

'아, 예전의 그 기자! 작가로 데뷔했구나.'

알고 보니 나의 아버지가 좋아하시던 작가 한승원 소설가의 딸이라는 것도 알게 되었다.

그때 아버지의 책 꽂이에 있던 한승원 작가의 책이 '앞산도 첩첩하고'였던가.


Youtube도 없던 시절, 팟캐스트로 열심히 듣던 <문장의 소리>라는 방송이 있었고 (지금은 Youtube로 들을 수 있다), 한강이 사회자로 진행했던 때가 있었다. 나즈막하고 톤이 없는 목소리로 그날 초대받은 작가와 조곤조곤 나누는 대화를 듣는 것을 참 좋아했었다. 몇년 뒤 문학평론가 신형철이 사회자로 진행하던 때에는 한강이 초대작가로 나온 적이 있었는데 신형철이 한강 작가를 얼마나 좋아하고 높이 보는지 들으면서도 여실히 느껴졌었다.


적어도, 노벨상을 받았다는 소식으로 한강 작가를 처음 알게 된 것이 아니라서 좋다.
































댓글(2) 먼댓글(0) 좋아요(15)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카스피 2024-10-16 18:35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전 샘터하면 오래전 집에 있던 조그만 잡지로만 기억하는데 최인호 작가님의 가족이란 연재소설이 기억나네요^^

hnine 2024-10-16 19:22   좋아요 0 | URL
맞아요. 그 조그만 잡지로 나오던 시절 이야기랍니다. 지금은 전자책으로도 나오고 판형도 커졌더라고요.
최인호 작가님의 ‘가족‘ 저도 재미있게 읽었는데 딸 아들 이름이 다혜와 도단이라는 것은 지금도 기억나요.
법정 스님도 샘터를 통해 처음 알게 되었지요.
 







1985년은 내가 대학생이 된 해이다.

그해 겨울이었나, 이 영화 <아마데우스>가 국내에서 개봉되었고, 대학 입시 직전까지 내게 피아노 레슨을 해주시던 피아노 선생님께서 오랜만에 얼굴 한번 볼겸 이 영화를 같이 보자고 연락을 해오셨다.


모짜르트에 관한 전기 영화 쯤으로 생각했던 나는 이 영화가 시작된 순간부터 전율했고, 그 상태 그대로 긴 상영 시간 동안 딴 생각 한번 없이 몰입해서 보았다. 그리고, 이후로 오랫 동안 내 인생 질문이 된 물음을 품게 되었다. 살리에리가 아마데우스를 보며 하늘을 향해 신을 향해 퍼부었던 그 질문 때문이다.

"신은 어차피 몇 사람의 천재에게만 재능과 은총을 내려주었다. 나 같이 그 재능과 은총을 타고 나지 못한 사람은 그저 평범한 사람일 뿐이다. 아무리 노력해도, 내 정신과 영혼을 다 바친다해도, 절대 타고난 천재를 이길 수가 없다. 이렇게 불공평할 수가 있는가. 살아야 할 가치는 어디에 있는가."


1년 전 나의 대학 입시는 나 자신은 물론이고 그동안 나에게 과도한 기대를 걸고 있었던 부모님에게 커다란 실망만 안겨 주었었다. 나는 마치 죄인이라도 된듯 의기소침해서 대학 생활을 시작했고 대학1년생이었던 그 당시 나는 아마데우스라는 영화에서, 살리에리의 그 고뇌가 직격탄이 된 셈이다.

나는 어차피 두뇌형은 아니고 노력형, 평범한 아이에 지나지 않음을 대학 입시 결과로서 만천하에 드러내었고, 

노력은 노력대로 했지만 결과가 잘 안나오는 애, 해도 잘 안되는 애였던 것이다.

앞길이 창창한 스무살이라는 나이에 나는 목표를 세우는 것도, 새로운 대학 생활을 즐기는 것도 다 싫었다. 머리 스타일도 고등학교때 그대로, 옷도 그대로, 학교 수업과 집 사이만 왔다 갔다 하며, 가만 가만 숨만 쉬며 살았다.


어차피 이 세상은 소수의 뛰어난 사람들에 의해 결정되고 움직이게 되어 있고, 나머지 평범한 사람들은 그저 들러리일뿐. 그냥 슬렁 슬렁 살아가나, 죽어라 노력해서 잠깐씩 만족감이나 얻는 맛에 살아가나, 무슨 차이일까. 무슨 의미일까.












이후로 살아가면서 뭔가 장벽에 부딪힐때마다 나는 그 질문을 떠올리며 자신을 깎아 내렸다. 즐거울 수 있는 일 앞에서도 즐겁지 않았다. '다 무슨 의미란 말인가' 하면서.


어디서도 답을 찾지 못한 채 시간은 흐르고, 그렇게 나이는 먹어가고.


그런데 최근에 어떤 천재 피아니스트의 연주 장면을 보다가 오랜만에 다시 그 질문을 떠올렸고, 한동안 내가 그 질문을 하지 않고 살고 있었다는 것을 발견하게 되었다. 나름 대로의 답을 찾았기 때문이다. 평범한 사람도, 타고난 천재가 아니라서 평생을 노력해도 닿을 수 없는 목표를 가지고 사는게 옳은가 하는 질문에 대한 답을. 답을 찾았다기 보다 아마 내 나름대로 정했다고 해야 옳을 것이다.


삶은, 목표에 도달했느냐에 의미가 있는 것이 아니라, 거기까지 가는 과정에 의미가 있는 것이다 라고. 

신이 계시다면 저 인간이 결과적으로 얼마나 대단한 업적을 이룬 삶을 살았는가, 목표까지 성공적으로 도달한 인생을 살았는가, 그것을 보는 것이 아닐 것이라고. 

꿈을 꾸고 좌절하고, 울고 웃고, 절망하고 다시 일어서고, 신을 원망하고 다시 뉘우치고, 그렇게 끝까지 포기하지 않고 살아가는 그 모습을 대견해하시지 않을까. 인생의 의미는 도착점이 아니라 그 과정 자체에 있는 것이 아닐까 하는 것이다.


정확히 언제부터 그런 생각을 하게 되었는지 나도 모른다. 그저 나이가 주고 간, 시간이 주고 간 가르침이 아니었을까.


사실, 저 시대 살리에리도 평범한 보통 인물은 아니었다. 모짜르트와 비교당해서 덜 인정을 받았을 뿐이지 아무나 성취할수 없는 음악의 수준에 있던 사람이었으니까.


당분간 나는 나의 답을 믿으며, 더 좋은 답을 찾게 될지도 모를 그 날을 향해, 살기로 한다. 






댓글(7) 먼댓글(0) 좋아요(26)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Jeremy 2023-05-19 14:27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한 때 영화광이었던 제게도 몇 개의 특별한 영화가 있는데
그 중에서도 이 영화 <아마데우스> 와 Mozart 는
제 인생의 분수령이 되었답니다.

이 영화까지 극장에서 보고 나서 그 즈음 미국에 이민 왔는데
미국 오자마자 당연히 아무 것도 안 들리고 말도 못 하고, 정말 답답.
학교라고 가긴 갔는데 ESL1 에 짱 박혀있다가 그래도 얼마 안 되서
˝Proficiency in Reading & Writing Test˝ 를 치르며
Reading 은 그럭저럭 목숨 건질 수 있을 만큼은 풀 수 있었고
Writing은 시험의 Prompt 가 뭐였었는지 정확하게 기억나지 않지만
그 당시 몇 번이나 되풀이해서 봤던 영화,
“Amadeus” 를 보고 나서 느낀 점과 Mozart 에 대해서
주어진 Prompt 에 끼워 맞춰서, 열심히 뭔가를 썼던 건 기억납니다.
아무리 “영어” 일지라도 일단 무슨 할 말이나 Idea 가 있으면,
˝시험˝ 보는 상황에선 어찌어찌 무엇이든 써지긴 하는 법이니까요.

이런저런 Grammatical errors 때문에
빨간 펜으로 피바다가 된 글이었지만
그래도 생각의 전개와 내용 자체는 괜찮았는지
학교 Counselor 가 칭찬(?) 비슷한 걸 하면서 (역시나 전혀, 안 들렸죠!)
갑자기 ESL Course 다 건너뛰고, 그냥 Regular 와 Honor 반을 섞은
Class Schedule 로 하루아침에 모든 게 다, 바뀌었거든요.

엄청 우울하고 자신감 바닥쳐서 학교가기 싫어서 죽을 것 같았고
저 혼자라도 한국으로 돌아가서 대학 준비해서 가겠다고
단식 투쟁하던 중이었는데 그래도 한국에서 받은 저의 교육이
헛된 것이 아니라는 믿음이 되돌아오면서
여전히 전혀 들리지 않았고 신경은 바짝 곤두서 있었지만
그래도 역시 ˝나는 할 수 있고, 또 잘 해낼 수도 있겠다˝
라는 생각이 정말로 들었던 순간이었답니다.

그래서 이 영화 <아마데우스> 와 Mozart 는 제 사랑입니다.


hnine 2023-05-20 06:07   좋아요 2 | URL
jeremy님 인생의 분수령이 되었던 영화라고 하시니 저만큼이나 각별한 영화네요.
한국에서 막 보고 온 영화였고 여러번 되풀이해서 볼 만큼 의미있는 영화였으니 쓰신 작문이 문법적으로는 완벽하지 않다 하더라도 읽는 사람에게 그 절절한 진심이 전달되었을 거예요. 글이란 그렇게 말이 닿지 않는 곳 까지 갈 수 있는 힘을 가지고 있는 것이니까요. 그 일을 계기로 상황 역전, jeremy님에게 자신감과 더 버텨나갈 수 있는 계기를 주었으니 분수령 맞네요.
뭉클합니다.
저는 지금도 어디선가 amadeus의 requiem 나오면 저절로 ˝동작그만!˝이 된답니다.

stella.K 2023-05-19 19:39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아, 아마데우스! 저도 이 영화 개봉관에서 본 기억이 납니다.
정말 시간 가는 줄 몰랐죠.
그땐 제가 이 나이까지 살 거라곤 꿈에도 몰랐습니다.ㅋㅋ
이날까지 잘 살았죠.
이 영화를 다시 못 봐서 좀 아쉽긴 합니다.
제가 보는 지니 TV에선 없는 것 같은데..ㅠ

hnine 2023-05-20 06:12   좋아요 1 | URL
이 영화는 아마 여러 사람에게 여러 방식으로 기억에 남는 영화가 될 것 같아요.
연상되는 것도 많고요. 특히 음악 영화들의 경우 그 영화 음악만 들어도 떠오르는게 줄줄이 이어질 때가 많잖아요.
그 영화를 처음 보았을 때를 떠올리니 오래 살긴 오래 살았네요. 앞으로도 계속 잘 잘아야죠.

페넬로페 2023-05-20 00:31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모짜르트는 보통 인간이 다가가기에 너무 천재라는 생각이 들어요.
처음 이 영화 보면서는 살리에르가 맘에 들지 않았는데 좀 더 나이 들어서 다시 보았을때는 완전 살리에르를 이해하게 되었어요.
언제나 좋은 영화입니다^^

hnine 2023-05-20 06:19   좋아요 2 | URL
네 맞아요. 너무 천재 ^^
이 영화는 누구의 편에 더 집중하여 만들어졌을까, 그 생각도 많이 했어요. 영화 제목도 그렇고 처음엔 모짜르트가 주인공이겠지 생각했는데 자꾸 생각할 수록 오히려 살리에리가 아닐까 생각이 들었어요. 둘 다 평범한 사람들은 아니었지요. 그 시절 궁정음악장 자리에 오른다는 것은 아무나 될 수 없는 일이었고 많은 제자를 길러내기도 했고요. 그러니까 신을 향해 원망을 하기도 했었겠지요.
지금도 이 영화는 저의 인생 영화 세편 중 하나, 그 중에서도 베스트 랍니다.

페크pek0501 2023-05-25 23:26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예전에(아마 내가 젊은날에) 아마데우스를 극장에서 봤는데, 천재 모짜르트가 경박하게 웃고 그래서 이상했어요.
적응이 안되더라고요. 천재 음악가는 천재답게 멋있어야 한다고 생각했나 봐요. 지금은 예술가들의 기질을 좀 알아서
이해됩니다.ㅋㅋ
 
<슬라브, 막이 오른다> - 낯선듯 낯설지 않은 슬라브의 이야기들





오늘 아침 바람돌이님의 <슬라브 막이 오른다> 페이퍼를 보다가 책에 실렸다는 사진이 익숙하여 기억을 더듬더듬. 몇년 전 프라하 여행하면서 책에 실린 것과 똑같은 사진을 찍어놓은 것이 생각나서 지난 사진 앨범을 뒤적거리게 되었다.


























프라하 국립극장 아래층 입구에 있던 하트.

바츨라프 하벨을 기리는 마음을 나타낸 기념비 같은 것이다. 

시내에는 바츨라프 광장이라는 곳도 있다. 관광객들이 결코 피해갈 수 없는 곳. 여기 바츨라프는 대통령 바츨라프 하벨이 아니라 19세기 체코의 독립운동을 주도한 성 바츨라프를 기리기 위해 세운 바츨라프 기마상에서 유래하여 이름 붙여진 것으로 알고 있다.










저 책도 읽어봐야지.













댓글(2) 먼댓글(0) 좋아요(19)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바람돌이 2022-05-05 14:49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오 각도가 다르니 책보다 hnine님 사진이 더 좋네요. ^^ 체코 저도 가고 싶은데 코로나 전에 다음 여행지는 동유럽이다 하면서 여행계획 짜기 시작하다가 딱 막혔다는... 내년쯤에는 갈 수 있을까요? 저도 저 하트 사진 찍어오고 싶은데 말이죠. ^^

hnine 2022-05-06 08:11   좋아요 0 | URL
저는 오스트리아 비엔나를 딱 찍어놓고 있던 즈음에 코로나가 터졌어요. 내년 쯤엔 갈수 있겠죠? 바람돌이님은 프라하, 저는 오스트리아 빈~ ^^
저곳은 프라하에서 한국으로 돌아오는 날 따로 일정을 세워놓지 않아서 마지막으로 프라하 시내를 걸어다니며 시간을 보내던 날 들른 곳이었어요. 같이 갔던 남편에게 사진 보여주니 이런 곳에도 갔었나? 그러네요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