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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속버스를 타고 어딜 갈때 가방 속에 챙겨가는 책으로 시집을 들고 갈때가 많다. 무겁지 않기 때문이다.

며칠 전에 구입한 이소호 시인의 <홈 스위트 홈>을 버스 안에서 읽으며 서울까지 갔다.

시인의 본명은 이경진. 2014년 시인으로서의 활동을 시작하면서 이경진 대신 이소호가 탄생하였다.


이날, 이 시집 아니어도 웬지 서울가는 길은 울적했고 그런 참에 내 손에 잡힌 이소호의 시들은 읽는 대로 바로 바로 이해가 되었다. 시가 이렇게 쉽게 이해가 되어도 돼?












여전히 하나구나 우리는.




(사진이 흔들린게 아니라 원래 이렇게 되어 있음)



엄마가 가르친 것이 그런 것이었어.

엄마 자신은 알았을까?









가족 안에는 사랑도 있고 연대감도 있고 동정도 있지만, 항상 그런 것은 아니다.

사랑을 가장한 억압도 있고, 평등처럼 보이는 불평등도 있으며, 균형을 위한다면서 더 커지는 불균형도 있다.

늘 스위트 할 수 만은 없다.







스위트 홈은 마치 유토피아 같은 것.



다 읽고 나니 이젠 시보다 시인이 더 궁금해진다.





https://blog.aladin.co.kr/hnine/11814349


예전에 올렸던 글이 생각나서 링크 걸어둔다.

박제영 시인의 <식구>라는 시집이었고, 진은영 시인의 시집 <일곱 개의 단어로 된 사전> 도 인용을 했었다.

물론 이소호의 시집은 이 둘 어느 시집과도 다른 느낌과 메시지를 주는 시들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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봄에 피는 꽃이 한둘이랴마는

나는 이 꽃을 봐야 봄을 지냈다 싶다




지난 주 낙안읍성에서 본 할미꽃이다.



매년 봄이면 다시 들춰보는 시집으로 고영민의 시집 <공손한 손> 과 유영금의 시집 <봄날 불지르다> 가 있다.




    




































이번에도 이 시집을 꺼내다가 이번엔 옆에 꽂혀 있는 오태환의 시집을 대신 꺼내보게 되었다. 아마 시집 제목때문에 눈이 갔나보다. <복사꽃, 천지간의 우수리>
























오태환의 시는 우리 말의 숲속을 헤치며 걷는 기분으로 읽는다.

숲속을 뛰어가지 않고, 빠른 걸음도 아니며, 두리번 두리번 덩굴 헤치며 나가듯 읽어야 한다. 겨우 헤쳐나가야 한다. 언어 감각이 거의 묘기에 가깝다고 해야할까.







너밋골 달빛





하릅강아지 누렁강아지 귀때기처럼 돋는 달빛


양지머리 뒷사태 근 (斤) 가웃 맑은 국거리로 한소끔씩 뜨는 달빛


으슥한 도린결 도린결만 뒤지고 다니는 따라지 달빛


마른 장마 맞춰 벼르다 벼르다 듣는 감또개 같고 감꽃 새끼 같은 달빛


잘 잡순 개밥그릇이나 설거지하듯 살강살강 부시는 달빛






여기서 '감또개'는 꽃과 함께 떨어진 어린 감, '도린결'은 사람이 별로 가지 않는 외진 곳. '가웃'은 어떤 분량의 반 정도 양. 근 가웃이라고 했으니 양지 머리나 뒷사태 반근 정도 분량으로 끓인 맑은 국이라는 뜻일 것이다. 

네째 행의 '벼르다'는 방울져 떨어진다는 뜻.

달빛도 빛이되 몇 룩스의 밝기로 강렬하게 어두운 곳을 드러내게 하지 않고, 이렇게 있는 듯 없는 듯 하면서도 구석 구석 우리 눈에 잘 안띄는 곳으로 스며드는 빛이다



이왕이면 책 제목이 된 시도 읽고 넘어가야지 싶어.





복사꽃, 천지간의 우수리




삐뚜로만 피었다가 지는 그리움을 만난 적 있으신가 

백금 (白金)의 물소리와 청금 (靑金)의 새소리가 맡기고 간 자리 연분홍의 떼가, 

저렇게 세살장지 미닫이문에 여닫이창까지 

옻칠경대 빼닫이서랍까지 

죄다 열어젖혀버린 그리움을 만난 적 있으신가

맨살로 삐뚜로만 삐뚜로만 저질러 놓고, 

다시 소름같이 돋는 참 난처한 그리움을 만난 적 있으신가

발바닥에서 겨드랑이까지 해끗한 달빛도 사늘한 그늘도 없는데, 

맨몸으로 숭어리째 저질러 놓고 

호미걸이로 한사코 벼랑처럼 뛰어내리는 애먼 그리움, 

천지간의 우수리, 

금니 (金泥)도 다 삭은 연분홍 연분홍떼의





(원문은 행의 구분이 없다)


죄다열어젖힌 그리움, 소름같이 돋는 참 난처한 그리움이라고 할 만큼 복사꽃은 숨어서 필 수 없는 꽃, 무리 지어 만발하여 자태를 드러내고야 마는 꽃이 아닐까 한다. 숭어리째 저질러 놓듯 피어 드러내는 꽃.

다만, '호미걸이로 한사코 벼랑처럼 뛰어내리는' 이란 구절의 뜻을 확실히 알수 없어 읽어보고 또 읽어보고 있다.


물소리는 백금, 새소리는 청금이란다. 이왕 금에 비유를 했으니 복사꽃도 금과 연관을 지어 마무리 했나보다. 마지막 연 '금니도 다 삭은' 이라고 했다.




당신의 봄엔 무엇이 있는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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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실 2023-04-30 09:32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이제 봄이 되면 이천 ‘화담숲‘이 생각날듯 합니다.
올 봄엔 두번 다녀왔거든요.
자작나무 새잎이랑, 수선화가 어찌나 곱던지요.
hnine님께 화담숲도 추천합니다.
앗! 시는 생각안나요.ㅎㅎ

hnine 2023-05-01 00:04   좋아요 1 | URL
화담숲은 들어만보고 가보진 못했어요. 올봄에만 벌써 두번 다녀오셨다고요. 저도 꼭 기회를 만들어보아야겠네요.
고영민 시인과 유영금 시인의 시집은 제가 다른 포스팅에서도 아마 소개했을거예요.
오태환 시인의 시들은 언어의 향연이라고 할 수 있지요. 저도 추천드릴께요.

Jeremy 2023-05-01 09:43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할미꽃 생각보다 너무 예쁜데요.
hnine 님, 시집 많이 읽으시는군요.
페이퍼에 언급해주신 시집들 둘러봅니다.
제가 한국소설책 표절 사건 이후로는 거들떠도 안 보면서
한국 시집도 관심을 끊었는데 올려주신 시들은 너무 좋네요.
봄은 역시 시인들의 감성을 자극하는 계절인가 봅니다.

hnine 2023-05-01 12:03   좋아요 1 | URL
할미꽃은 피어도 일부러 찾지 않으면 눈에 잘 안띄더라고요. 키도 작고 색도 튀지 않고 꽃은 금방 저렇게 하얀 수염이 되어 버리고요. 할미꽃의 학명을 보면 종명이 koreana 인것도 특별하지요.
시집은 일부러 읽는다기 보다 그냥 좋아서 읽고 있네요. 다른 문학 장르와 구별되는 어떤 특별한 점이 있어서 어떤 시 한줄에서 책 한권 읽은 것 같은 깨우침을 얻기도 하고요, 저도 갖고 있던 무형의 생각을 어떤 시인은 이렇게 그들의 언어로 유형화 시키는구나 라고 알게되는 놀라움과 기쁨도 있고요.
 



비는 하늘에서 오지 않는다






비를 보고 있었다

세지도 약하지도 않게

뿌려지듯 내리는 비 줄기 

그 안에

나타났다 사라지는 장면들



비 오는 운동장이다

우산 없이 혼자 

운동장 가로질러 걸어가는 

어린 여자 애

운동장 끝까지 가도록

혼자 걸어간다



비 오는 바닷가

처음으로 엄마 아빠와 함께 간

아빠 고향 바닷가

비 와도 좋아 

뛰다 걷다 

까르르 까르르 웃는 아이



꽃향기 아닌 매콤한 냄새 대학 캠퍼스

집으로 가는 버스 모두 운행 중지라

집까지 터벅터벅 

걸어 가는 스무살 대학생

마포대교 건너던 중

갑자기 쏟아지기 시작한 비

다리 중간에서 대책 없지

그냥 맞으며 걷고 있는 

아무것도 모르는

스무살 여자대학생



아이 손잡고 

동물원 가는 여자

동물원 가고 싶다는 아이 보여주고 싶어

한 시간 넘게 버스를 갈아타며 가고 있는 동물원

도착할 때 되었는데 

비가 내리기 시작

낙심한 여자

아이 얼굴을 살피는데

아랑곳하지 않고 폴짝거리는 아이



이 비는 

어디서부터 오는 것이기에

나는 비가 오는 걸 보고 있었을 뿐인데

저 먼 기억들을 

자꾸만 자꾸만 데리고 오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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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랑

눈에 안보이는 사랑

그것은 과연 어떤 모습이어야 할까 생각할때면

나는 언제나

박형진 시인의 시 <사랑>

그 시 속에서 답을 찾아왔다.






풀여치 한 마리 길을 가는데
내 옷에 앉아 함께 길을 간다.
어디서 날아왔는지 언제 왔는지
갑자기 그 파란 날개 숨결을 느끼면서
나는
모든 살아있음의 제 자리를 생각했다.
풀여치 앉은 나는 한 포기 풀잎
내가 풀잎이라고 생각할 때
그도 온전한 한 마리 풀여치
하늘은 맑고
들은 햇살로 물결치는 속 바람 속
나는 나를 잊고 한없이 걸었다.
풀은 점점 작아져서
새가 되고 흐르는 물이 되고
다시 저 뛰노는 아이들이 되어서
비로소 나는
이 세상 속에서의 나를 알았다.
어떤 사랑이어야 하는가를
오늘 알았다.







사랑에 대해 얘기할때

저 시 이상 없다고 생각하고 있었는데

오늘 새벽

그에 버금하는 또 다른 시 한편을 만났다.




내가 사랑하는 사람이 

나에게 말했다

"당신이 필요해요"



그래서

나는 정신을 차리고

길을 걷는다

빗방울까지도 두려워하면서

그것에 맞아 살해되어서는 안 되겠기에




- 베르톨트 브레히트 -




정신 차리고 길을 걷게 하는 것

정신 차리고 계속 살아갈 힘을 주는 것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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nama 2022-11-10 10:33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떨어지는 낙엽에라도 다칠세라 몸조심해라.‘ 퇴직 앞둔 공무원들이 하는 말이에요. 순전히 졔몸사리는 이기적인 생각이지요. 근데 저 말이 굉장히 의미심장 하게 다가와요. 아차하면 한순간에 날아가는 실수를 저지를 수도 있거든요.
그냥 떠오르는 생각입니다^^

hnine 2022-11-10 21:50   좋아요 0 | URL
아차하면 한순간에 날아갈수 있다... 글로 읽어도 바짝 긴장이 되는걸요. 직접 그 상황을 지나고 있는 당사자라면 더 그렇겠지요.
긴장 풀고 대충 살자 하고 있다가, 사랑하는 사람이 나를 필요로 한다는 그 한마디, 누군가에게 필요로 하는 존재라는 자각에 정신 차리고 살게 되는 그런 사랑. 이런 힘을 주는 사랑이라면 절대 놓치면 안될것 같아요.

호우 2022-11-10 15:24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정신 차리고 계속 걷는 것, 계속 살아가는 것. 이 마음이 사랑이로군요. 그저 버티는 거라고 생각했는데. 사랑이었다니. 마음이 조금 따뜻해집니다. 박형진 시인의 시도 좋군요. 시인은 세상을 보는 눈이 다른 거 같습니다.

hnine 2022-11-10 21:52   좋아요 1 | URL
사랑이라는 이름으로 불리는 모든 경우 그렇지는 않겠지요. 때로 파괴적이고 무책임한 사랑도 있으니까요.
박형진 시인의 시, 좋지요? 사랑 그 이상의, 물아의 세계를 말하고 있다는 생각에 제가 참 좋아하는 시랍니다.
 








아이와 다람쥐




조카아이와 슈퍼마켓에 갔다

아이와 슈퍼마켓에서 나왔다

내 손엔 물건들이 들려있고

아이의 손은 들어갈 때처럼 빈손.

내 눈은 길을 보고 사람들을 보고 계산대를 통과하며 얄팍해진 지갑을 만지는데, 

아이가 갑자기 소리 지른다

"이모! 여기 다람쥐 있어!"

어디? 어디? 없는데, 없는데.

높이 달린 내 눈엔 사람들과 물건만 보이는데

"여기 다람쥐 있어!"

반짝이는 눈, 자그마한 손을 따라가니 정말 다람쥐가 있었다!

아이의 눈높이에 맞는 아주 낮은 곳에.

그 아이에게 당연한 기쁨이 내 눈에는 보이지 않았다


사랑도 그러하리라





- 최영미의 시집 <이미 뜨거운 것들> 중 시 '아이와 다람쥐'  전문 -

(원문에는 줄바꿈이 없음)



































며칠 전 오후 다섯시 쯤.

동네 산책을 하고 있는데 갑자기 하늘이 어두컴컴해지더니 하늘에서 눈발이 날리기 시작했다.

해도 기울 무렵이라 기온도 뚝 떨어진 느낌인데 학원 건물 옆 도로에 초등학생들을 태운 학원 버스가 막 도착하고 있었다.

'눈도 오고 날도 추운데, 학원 오기 얼마나 싫었을까.

안됐다... 

아직 초등학생인데 이렇게 까지 해야하나'

나 혼자 맘 속으로 버스에서 내리려고 하는 애들을 딱한 눈으로 보고 있는데

버스 문이 열리고 쏟아져 나오는 애들. 하나 같이  환성을 지르며 내리는 것이다.

"와, 눈이다! 눈 온다!"


아이들에게는, 어른이 가지지 못한 힘이 있다. 

어른들이 걱정을 앞세우는 상황도 우선 즐거움으로 받아들이는 힘.

어른은 오래 전에 잃어버린 에너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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