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래, 한 달이다! 우리가 저번 모임을 했던 게 4월 초였으니까 한 달도 더 지났다. 동아리 활동이 없었던 지난 한 달은 무슨 생각을 하며 살았을까? 무척 궁금하다. 그 한 달 사이에, 작년 동아리 활동집도 받았는데, 받고 나서 읽어 봤는지 모르겠구나. 참, 그리고 동아리 활동집을 받아들고는 어떤 마음이 들었는지도 궁금하다. 생각의 좌표,를 받아 읽으면서는 어땠을까? 그러고 보면 너희들이 어떤 생각을 하며 어떻게 사는지,가 궁금한 것인 것 같다.

   우리 동아리가 네 마음속에 차지하고 있는 크기는 지난 한 달간의 네가 느낀 아쉬운 마음과 정비례하겠지? 동아리 활동집을 받아들고 느낀 네 마음의 기쁨(활동집의 내용이 어떠한가와는 상관없이)과 동아리 활동집이 나오기 위한 네 노력이 역시 정비례할 것이고? 생각의 좌표를 읽을 때 보인 너의 집중력과 이 책의 내용에 공감하는 네 생각 또한 정확하게 비례하리라고 본다. 말로야 ‘시간이 없었네’, ‘진심은 그게 아니었네’, ‘표현을 잘 못하네’, ‘이번에는 다른 일이 있었네’ 라고 할 수 있을지 모르겠지만, 우리의 마음과 태도까지 바꿀 수 있는 것은 아니거든.

   그래서 무슨 말이 하고 싶은 거냐고? 동아리에 대한 애정도 테스트를 해서 뭘 어떻게 하자는 거냐고? 오해는 마시라! 뭘 어떻게 하자는 말도, 너희들의 마음을 속속들이 들여다보고 싶은 것도 아니니까. 다만 그냥, 지금 우리 마음은 어디쯤 와 있나를 한번 생각해 봐달라는 말일 뿐이다. 아울러 다시 새롭게 시작하는 한 해를 더 알차게 꾸려보자고 하는 말이다. 시작부터 마음을 다잡지 않으면 자칫 2년차 징크스에 빠질 수도 있으니 첫 출발부터 마음 단단히 먹고, 조금 더 깊이 있는 독서와 멋진 토론으로 1년을 보냈으면 좋겠다.

   먼저 생활나누기, 이번에는 어떤 얘기를 나눠볼까? 다시 처음 시작하는 마음으로, ‘2학년이 되어 달라진 나!’ 이런 주제로 생각해 오렴. 이건 1)2)3)……이렇게 적어서 발표해 주면 가장 좋겠다. 적어도 열 가지는 찾을 수 있겠지? (공부하는 책상에 붙여두고 자주 읽어보면서 스스로를 다잡는 계기가 되었으면 좋겠다.) 전체 회의 진행할 사람, 얼른 오렴.

   이젠 본격적으로 책이야기! 생각의 좌표, 어떻게 읽었나? 나는 책을 읽으면서 역시 사람은 그 사람이 살아온 환경에 반응하는 존재,라는 생각이 들었다. 우선 저자의 생각이 어느 좌표에 있나,를 살펴보기 전에 이런 생각의 좌표를 가지게 된 이유는 바로 이 사람이 살아온 환경에 있는 것이라는 것을 전제로 하고 얘기해야겠지? 환경이 사람에 자연스럽게 녹아드는 것을 ‘익힘’이라고 했으니까 말이야. 그러면 우리도 자기 주변의 환경, 우리나라의 환경에 대해서 생각해 봐야겠지. 우리의 환경은 어떤가. 하고 말이야.

   저자는 환경의 ‘영향’을 구체적으로 네 가지로 분류하고 있지. 폭 넓은 독서, 열린 자세의 토론, 직접 견문, 성찰을 들고 있다. 지금의 네 생각이 만들어지는데 가장 큰 영향을 끼친 것은 무엇이었는지 구체적인 사건을 들어서 설명해 보렴. 또, 이 네 가지 외에 네 생각에 큰 영향을 주는 것들이 있는지 생각해 보자.

   다음 사회적 이슈에 대한 네 생각을 말해 보자. 사형제도, 대체복무제, 동성애, 낙태, 무상급식, 대학평준화, 외국인노동자, 비정규직제,에 대한 네 판단을 점검해 보렴. 여기서 중요한 것은 네 생각이 아니라 네 생각의 근거이며, 더 중요한 건 네 생각의 근거의 출처-어떻게 해서 나는 그런 생각을 하게 되었나-라는 사실이라는 점을 잊지 말도록!

   이런 주제가 너무 어렵게 느껴지려나? 그럼 이런 건 어때? 셧다운제(청소년 피시방 이용시간 제한제), 강제 자율학습, 초,중학교 보충수업, 일제고사, 성적순 정독실 이용제에 대해 네가 그렇게 생각하게 된 이유는 무엇인지 생각해 보고 의견을 정리해 오시라.(음, 모든 주장에 다 의견을 내면 좋겠지만, 어려우면 한두 개는 빼먹어도 용서하마. 대신 처음 듣는 제도나 내용은 꼭 검색해서 무슨 내용인지는 알고 와서 한다.)

   우리 모임은 5월 17일(화)이다. 그 날 9교시에 도서실(혹시 안 될 수도 있으니까 그 전에 미리 공지할게.)에서 보자. 지금쯤이면 책은 다 읽었겠지? 어렵고 딱딱한 책 읽느라 수고 많았다.


-5월 9일, 느티나무 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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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11학년도 고등학교 2학년을 대상으로 시작하는 독서동아리 독서 목록 후보군

   이 중에서 구하기 힘들거나 지나치게 비싸거나 독후 활동을 하기 힘든 것들은 차례차례 버리고, 남은 책들 중에서 골라 읽고 이야기를 해 보려고 한다. 모두 책읽기를 좋아하는 고등학생들에게 읽히고 싶은 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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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마지막으로 시험 문제를 만들었던 게 2009년 9월이었나, 그랬는데 방금 전에 중간고사 문제를 마무리했다. 정말 오랜만에 내는 시험문제라서 그랬나, 싶지만 생각해보면 사실 늘 그랬다. 남들은 시간 맞춰서 잘도 내던데, 나한테는 시험 문제 만드는 게 큰 스트레스다. 왜 항상 그 분-출제신-은 마감일은 넘겨야 오시는지……. 알다가도 모를 일이지만, 늦게 오는 그분이 나로선 야속하기만 하다.

   근데 생각해 보니 늘 그랬던 거 같다. 대학교 다닐 때 내야 하는 숙제도 늘 마감 전날에 밤을 꼴딱 새우고, 마감일에 간당간당하게 억지로 밀어 넣고는 했다. 이런 숙제뿐만이 아니다. 다른 약속시간도 마찬가지. 나갈 때부터 도착하기 전까지의 시간을 머릿속으로 계산해서 항상 약속 시간에 딱 맞춰서 일어서고는 했다. 그러나 사람 일이 내가 예상한 대로 딱딱 맞아떨어지는 게 아니니 많이 늦지는 않아도 늦게 나타나는 일이 다반사였다.

   사실, 지금 제대로 못 만들고 있는 학습지도 마찬가지. 늘 인쇄를 넘겨야만 하는 그 전날 밤까지 끙끙대다가 시간에 쫓겨서 어쩔 수 없이 만들어 낸다. 그러면서, 시간을 더 쏟으면 더 좋은 아이디어가 나올 거라는-너무 많이 속아서(?) 나조차도 믿지 않지만- 아쉬움이 들어서 절대로 여유 있게 마감하지 못한다.

   그런데 조금씩 바뀌고 있는 것도 있다. 학교에서 맡은 일. 주로 단순한 작업이 대부분이라 공문이 오는 즉시, 대부분 처리한다. 마감 기간에 상관없이 그날 할 수 있는 것은 생각났을 때 마무리를 짓는다. (나는 이런 일을 하는 걸 좋아한다.)

   결국, 뭔가 단순하지 않은 일에는 내 시간을 쏟는 것도 ‘최선’의 일부라는 아무 근거 없는 판단을 하고 있는 것이 분명하다. 실제로 그런가,와는 상관없이 그렇게 믿는 것이 문제라면 문제. 그러나 부족한 능력을 시간으로라도 메워야 남들과 엇비슷해지기라도 하지 않을까, 하는 생각도 해 봤다.

• 수업 이야기 - 3학년 학생들에겐 문제풀이를, 2학년 학생들에겐 자료 읽고 글쓰기를 한다. 근데 비유하자면 3학년은 익숙하고 안전한 패턴의 ‘1박 2일’ 같은 수업이고, 2학년은 늘 새로운 시도가 필요한 ‘무한도전’같은 수업이다. 근데 나는 3학년 수업도 괜찮다. 점점 무뎌지는 문제의식 때문이겠지만, 문제 푸는 방법을 가르치는 것도 그 나름의 명확한 목적이 있어서인지 수업 상황이 스스로 전개되어 가는 힘이 있다. 나는 그런 에너지가 좋다. 2학년 수업은 조금 더 용감하게 사고의 틀을 깨는 시도가 필요하다. 인문계 고등학교에서, 성적 외에는 관심 없는 학생들에게, 이런 벽 앞에 미리 주눅 들지 말고 해 보고 활동이 있다면 과감하게 도전해 봐야겠다.

• 여행 이야기 - 올해도 2009년 가을부터 시작된 자연휴양림 투어를 계속해 볼 생각이다. 4월엔 지리산자연휴양림을, 5월은 남해편백자연휴양림을 다녀올 예정이다. 나는 일요일 아침에 휴양림 뒤편의 숲속을 산책하는 시간이 그렇게 느긋할 수가 없다. 복이가 오래 걷지 못하니까 등산을 할 수도 없어서 휴양림에 가서 딱히 하는 일은 없지만, 그냥 숲속 산책길을 따라 걷는 것만으로 충분히 좋다. [참고로 지금까지 가 본 휴양림-몇 군데 없지만- 중에서 최고는 통고산 휴양림과 근처의 울진 소광리 금강소나무숲 군락지다. 숲이나 자연에 관심 있는 분이라면 다녀오시면 무척 좋아하실 듯] 한 5년 정도 다니면 국립 자연휴양림은 거의 다 다녀올 수 있을 것 같다.

• 책과 노래 이야기 - 3월에는 거의 책을 읽지 못 했다. 그래서 알라딘에서 놀던 어느 날 갑자기 책을 사고 싶은 욕구가 폭발해서 4월 초에 책을 잔뜩 샀다. 학교를 떠난 샘들께 선물로 보내기도 했고, 진복이 그림책도 좀 샀고, 내가 구경(?)할 책도 몇 권 골랐다.(아직 읽지는 않고, 학교 책장에 쌓여 있다. 중간고사 때부터 읽으면 아마 여름방학 전에는 다 읽을 수 있다.) 동아리 아이들과 읽을 책 목록도 골라 읽어야 하고, 이런 저런 상황이 생기다 보면 여러 책을 뒤적거리게 된다.  

어쩌다 그랬는지 모르겠지만-아마 알라딘에서 놀다가 그랬겠지만- 브로콜리 너마저, 라는 인디밴드의 노래를 집중해서 듣게 되었는데 노래가 참 좋았다.(브로콜리...,는 작년에 디어 클라우드, 노래를 찾아 들었을 때 알았지만 그 땐 그냥 그랬다.) 작년에 한없이 우울한 노래가 좋더니만, 올해는 위로가 될 수 있는 음악, 소박하고 따뜻한 노래가 좋아져서 계속 흥얼거리고 있다.  


• 그리고 남은 이야기 - 드디어, 2010년 독서동아리 활동집이 나온다. 사실 준비는 올해 1월부터 했는데, 미적거리다가 한참 지나서야 나오는 셈이다. 이 동아리 활동집 때문에 여러 사람을 귀찮게 했다. 그러면서도 끝까지 활동집을 내기 위해 애를 썼던 건, 지난 1년간 아이들과 함께 책 읽으며 나눴던 우리들의 사연을 담고 싶었기 때문이었다. 녀석들이 먼 훗날, 우연히 책장에 꽂힌 동아리 활동집을 뒤적여 본다면 2010년, 열일곱 그들의 소중한 일상의 흔적이 오롯이 담겨 있음을 알게 될 것이다. 그건 나 역시도 마찬가지일 테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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독서동아리 활동에 대한 단상(斷想)

  

느티나무 

1. 독서교육 열풍, 문제 없나?

   누구나 말한다, 책을 많이 읽어야 생각이 깊어지고 생각이 깊어야 공부도 제대로 할 수 있고 올바른 인간으로 자라날 수 있다고. 학교 밖에서 생각하기에 책읽기는 이제 획일적인 입시교육의 굴레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있는 우리 교육의 문제를 해결할 수 있는 구세주가 되기라도 한 듯하다. 그러나 동시에 아무도 살피지 않는다, 왜 지금까지 학교에서는 책읽기를 하지 않았는지, 정말 학교에서 책을 읽을 수 있는 환경이 마련되어 있는지, 책을 어떻게 읽어야 하는지에 대해서는 말이다.

   학교 현장에서는 학생들과 함께 책을 읽을 시간을 내기조차 빠듯할뿐더러, 지금까지는 책을 읽으려는 시도를 공부에 방해된다고 막아왔던 것이 우리의 ‘현실’이지 않았나? 그런데, 갑자기 아이들에게 책만 많이 읽히면 학교의 모든 문제가 해결되고, 아이들은 원하는 대학에 갈 수 있을 것처럼 몰아가는 분위기는 분명 문제가 있다.

   올해 들어 급격히 시들해지기는 했지만, 어느 날 갑자기 불어와 몇 년 동안 학교 현장을 아수라장으로 만든 논술 열풍도 같은 맥락이다. 사물이나 세계에 대한 자신의 논리적인 사고력을 바탕으로 창의력과 합리성을 글로 표현하는 방법인 ‘논술’을 기껏 한 두 달 만에 ‘교육’시킬 수 있다는 황당한 인식이 지배하는 우리나라에서 정작 ‘논술’이라는 시험이 목표로 하는 논리적 사고력을 가진 학생이 제대로 선발될 가능성은, 단언컨대, 없다. 또한 애초에 ‘논술’을 바라보는 관점이 고차원적인 사고력을 가진 인간을 기른다는 목표 없이 입시 제도로 한 방편으로 채택된 탓이다. 한 마디로 사상누각이었다.

   그런 독서열풍의 상황 속에서 나는 몇 년 동안 아이들과 책읽기 동아리 모임을 꾸려서 운영해 왔다. 처음의 시작은 교육청 심화학습 동아리 공모에 응모를 결심하게 된 것이었지만, 근원적으로 그 동아리 활동 응모에 매력을 느낀 이유를 곰곰이 생각해 보면 언젠가부터 ‘앎의 기쁨이 없는 국어 수업’에 답답함을 느끼고 있었기 때문일 것이다. 이후 독서동아리 활동은 국어 교사로서의 내 정체성을 강화하는데 제법 큰 역할을 하고 있다는 생각이 든다.

   지금껏 동아리를 운영하면서 ‘제대로 된 책읽기’에 대한 고민에 대한 해결책을 찾지는 못했지만, 어렴풋한 방향은 잡아가고 있다는 생각을 한다. 현실의 여건을 핑계로 손 놓고 있는 것이 아니라, 동아리 활동을 제대로 하면 제대로 된 책읽기, 진정한 글쓰기를 학교에서도 시작해 볼 수 있으리라는 자신감이 생겼다. 적어도 두 달자리 속성 과외는 아니니까 말이다. 단, 이 학습동아리의 활동이 소수의 재능 있는 아이들의 당면한 입시만을 목적으로 한 것이라면, 모든 학생의 부모님이 낸 세금으로 일부의 아이들에게 비싼 과외를 해 준 셈이니 교사로서는 일부의 아이들에게 특혜를 베푸는 것이라 조심해야 할 것이다.

2. ‘좋은 책’을 바탕으로 삶 읽기

가. 어떤 책이 좋은 책일까?

   책읽기를 통해서도 교육이 가능하다면 가장 기본적인 전제가 좋은 책을 골라야 읽어야 한다는 것이다. 재론의 여지가 없는 이 명제를 학교 현장에서 실천하는 것은 그리 간단한 문제가 아니다. 가장 중요한 좋은 책을 정하는 게 쉽지가 않기 때문이다. 많이 팔린 책이 꼭 좋은 책은 아니라는 것은 이제 상식에 속한다. 그럼 고전이라고 불리는 책은 괜찮지 않을까? 고전도 전부가 그런 것은 아니지만, 고등학교 아이들의 눈높이나 정서에 맞지 않는 경우가 많다. 그러고 보면, 무엇을 골라야 할지 막막해 진다.

   그런데, 나는 몇 년 동안 동아리 활동을 하면서 아이들과 ‘좋은 책’을 읽었다.(적어도 나는 그렇게 생각한다.) 내가 생각하는 좋은 책은 이렇다. 동아리 활동을 하면서 해마다 스무 권 남짓한 책을 아이들과 읽는다. 해마다 서너 권씩 다를 때도 있지만, 해마다 대개 거의 비슷한 책 목록을 만들어서 책을 읽고 활동을 한다. 이 책들의 공통점은 무엇일까? 책의 영역이나 주제, 내용, 형태…거의 모든 것이 다 다르지만 이 책들은 ‘내가 전에 읽었다’는 것은 공통적이다. 하나 더 추가하자면, 내가 읽고 좋다고 느꼈다,는 것이다. 또 별로 중요하지는 않지만 꼭 하나 더 꼽자면, 그 책을 읽으며 좋다고 느낄 때, ‘고등학생들이 읽고 이해할 만한 수준이구나’라고 생각했다는 것이다.

   따라서 아이들에게 좋은 책이란, 먼저 읽은 사람(책읽기에 관심이 있는 교사면 더 좋다.)이 좋다고 느낀 책이라고 할 수 있다. 막연하고 억지스럽겠지만 이것에서 한 걸음도 더 앞으로 나갈 수 없다. 그리고 누군가가 아무리 좋은 책이라고 말해도 결국 읽어 본 사람이 좋은 책이라고 느껴야 하는 것이니 다른 여러 가지 정의도 결국 무의미한 것이 아닐까 싶다.

나. 책을 읽고 무엇을 할까?

   당연히 책만 읽는다고 생각이 저절로 자라는 건 아닐 터. 그러니 책을 읽고 난 아이들과의 활동이 일반적으로 생각하는 책읽기 교육의 핵심이다. 최근 들어 분위기가 많이 달라지기는 했지만 여전히 독후 활동의 중심은 독후감상문 쓰기다. 물론 글쓰기 활동은 종합적 사고력을 기르는데 가장 필요한 방법인 것은 분명하다. 그러나 단편적이고 반복적인 글쓰기 활동은 학생들의 독서 활동에 의욕을 저하시키고 독서 교육의 획일화를 불러온다고 생각한다. 따라서 가능하면 독후감 쓰기 활동은 시도하지 않았다.

   물론 과문(寡聞)한 탓이겠지만, 이런 감상문 쓰기 활동을 배제하고 나니 기존의 독후 활동에서 참고할 자료가 현저히 줄어들었다. 관련 내용이 부족한 것도 문제겠지만, 어렵게 찾은 자료에서도 내가 선택한 ‘좋은 책’에 꼭 들어맞는 독후 활동이 거의 없어 책을 선택하는 그 순간부터 아이들과 함께 할 의미 있는 활동에 나름대로 고민을 해야 했다.

   지난 몇 년간 아이들과 함께 한 독후 활동으로 일반적인 감상문 쓰기는 최대한 지양(止揚)했다. 사실 독후감이 아니면 독후 활동으로 마땅히 할 게 없는 것처럼 보이지만, 책에 따라서 주제 중심 토론하기(소설), 낭송하기와 시를 이야기로 바꾸어 표현하기(시집), 역할극 꾸미기, 그림 그리기, 사진 찍기, 노래 부르기, 영화 보기(비평문 쓰기), 편지 쓰기, 답사하기, 일기 쓰기, 내용 요약하기, 심층 자료 조사하기, 초청 강연 듣기 등을 함께 했다.

   물론 이런 활동들은 아이들이 함께 읽은 책의 특성에 따라 또 다르게 표현될 수도 있을 것이다. 사실, 다양한 독후 활동은 아이들에게 책읽기의 흥미와 재미를 높이는 역할을 톡톡히 했다. 그렇기 때문에 어떤 특정한 표현 형식이 중요한 것이 아니라, 표현 방식의 다양성이 중요하다. 여러 갈래의 표현 방식은 학생들의 다양한 관심에 따라 적극적인 활동을 이끌어 내기도 한다.

   다양한 독후 활동의 교육적 의의는 학생들의 상상력과 창의력을 자극하는 중요한 계기가 될 수 있다는 것이다. 표현 방식을 어떻게 하느냐에 따라 담기는 내용 자체가 달라질 수 있다. 그러니까 앞으로는 전달하고 싶은 내용을 담을 수 있는 가장 적절한 표현 방식을 스스로 고를 수 있는 능력이 되고, 이는 반대로 표현 방식에 따라 내용이 달라지기도 할 것이다.

다. 책과 삶은 어떻게 만나나?

   그렇지만 이런 독후 활동의 다양성이 궁극적으로 의미 있는 책읽기를 보장하는 것이 아니다. 정작 중요한 것은 표현 활동에 담아내는 내용이다. 그러면 나는 책을 읽은 아이들에게 어떤 내용을 담아오기를 했는가? 늘 의식하고 있었다고 말할 수는 없겠지만, 되돌아보면 어떤 내용이든, 앵무새 같이 남의 이야기를 되뇌지 말고, 책을 읽은 후 자기 안에서 가만히 차 오른 그 무엇을 끄집어내기를 기대했던 것 같다. 그러니까 내가 내 준 독후 활동의 과제 내용은‘자기가 생각하는…’, ‘자기가 좋아하는…’, ‘자기가 겪은…’, ‘자기가 알고 있는…’이라는 수식어가 항상 붙어 있기 마련이었다.

   책을 읽는다는 것은 결국 무엇인가? 책을 통해 배운 것이 자신의 생각을 변화시키고 자신의 삶에 영향을 미치지 않는다면 대체 책은 왜 읽어야 할까? 많은 책을 읽는 것이 중요한 것이 아니라, 읽은 책을 자신의 삶의 맥락에서 이해하고 받아들이는 것이 중요하다고 본다.

   책의 내용을 자기 삶의 맥락에서 이해한다는 것은 여러 가지로 교육적 의미가 있다. 이것은 책의 내용을 자기의 입장에서 능동적으로 해석하고 자기 주도적으로 소화한다는 것이다. 이것이야말로 우리 교육이 앞으로 지향해야 할 학습자 중심의 교육 활동에 중요한 시사점을 준다. 배우거나 읽은 내용을 입장이나 필요에 따라 스스로 재구성할 수 있는 능력은 우리 교육의 길러야 할 핵심이기도 하다.

3. 독서 동아리 운영, 이렇게 해 보자.

   사실, 나는 아이들과 교육청에서 학습동아리를 공모하기 전인 2006년 1월부터 자발적으로 모여서 공부를 하고 있었다. 굳이 교육청 공모에 응모할 필요도 없었지만, 지원금이 있다면 책을 사는데 조금 도움이 되겠다 싶은 현실적인 욕심과 아이들에게 조금 더 자극이 되지 않을까 싶은 마음에서 응모하게 된 것이다.

   동아리를 시작하면서 아이들에게 약속 받은 것 한 가지는, 방학 때도 계속 모인다는 것이었다. 그리고 이 약속은 꼭 지켰다. 오히려 방학 때는 조금 더 여유 있는 활동이 가능해서 좋았다. 답사나 캠프, 체험 활동은 방학이었기에 가능하지 않았을까 싶고, 아이들은 이런 방학 활동이 오래 기억이 남았다고 한다.

   그리고 학기 중에는 이 주에 한 번씩 꼭 모였다. 이 주에 한 번이면 아주 헐렁할 것 같지만, 실제로 운영해 보면, 모임하고 한숨 돌리면 또 모임이다. 모임 활동을 정리해서 인터넷 카페에 올리고, 그 사이에 책 주문해서 책 나눠주고, 숙제 공지하고 나면 다음 모임까지 정말 빠듯한 시간이었다. 그래서 약속한 대로 한 번도 빠지지 않고 모여서 동아리 활동을 했다는 것이 뿌듯하다.

   동아리 모임에 와서 하는 이야기는 어떤 내용이라도 괜찮은 분위기를 만들려고 노력했다. 내용에 상관없이 말한다는 것 자체가 대단한 일이라는 느낌이 들도록 했다. 동아리에서 자연스럽고 스스럼없는 분위기가 만들어지기까지 가장 중요한 역할은 ‘생활나누기’가 맡았다.

   생활나누기는 본격적으로 독후 활동을 하기 전에 한 명씩 모임에 오기 전날까지의 자기 생활을 되짚어 보면서 말하는 시간이다. 물론, 처음부터 속 깊은 이야기가 나올 수는 없지만, 어색하고 형식적인 말하기 태도는 그리 오래 가지 않았다. 시시콜콜하지만 정작 자신에게는 중요한 온갖 이야기가 어느 순간부터 자연스럽게 흘러 나와 우리를 한 덩어리로 묶었다.

   다음으로는 동아리 활동에 참여하는 것 자체를 별로 강요하지 않고, 자신의 선택에 맡겨 두었다. 당연히 숙제를 해 오고 안 해 오는 것도 99%는 학생의 자유다(100%라고 말하고 싶지만 혹시 반대할 사람이 있을까 싶어서…). 야자 시간에 공부하고 싶은 학생은 동아리 모임이 있는 날에도 안 오면 그만이다.

   말 그대로 ‘동아리’이니 만큼 스스로의 의지가 가장 중요하다는 믿음을 끝까지 밀고 나간 셈이다. 숙제 문제도 마찬가지다. 내가 제시한 과제는 기본적으로 해 와야 하지만 안 해 와도 별다른 문제가 없다. 자기가 준비해 온 만큼 얻어간다는 사실을 학생들도 이미 알고 있는 터라 더 어떻게 해 줄 수가 없었다. 다르게 볼 수 있는 여지도 있지만, 어떤 상황에 대해 간섭하기 시작하면 끝이 없을 것을 알기 때문이었을까? 아니면, 번듯한 결과에 대한 경계심이 지나친 것이었을까? 아마도 그 경계의 어디쯤일 것이다.

   몇 년 동안 동아리를 하면서 다양한 체험활동에 대한 아쉬움이 들 때마다 다른 학교나 단체와 연계되어 활발하게 활동하는 동아리들이 내심 부러웠다. 내가 좀 더 부지런하게 움직이면, 좀 더 열린 마음으로 다양한 책읽기 활동을 시도한다면, 좀 더 체계적이고 수준 높은 독서목록과 계획을 세운다면…… 생각하면 우리 동아리 활동이 너무 정적이지 않나, 싶은 생각을 많이 해 보기도 했다.

   그러다가도 늘 자기 변명을 통한 합리화! 내가 가진 능력으로는 최선을 다하고 있다는 착각, 혹은, 스스로에 대한 항변 - ‘책 읽고 생각하고 글쓰기’가 독서동아리 활동의 기본. 이런 믿음이 있기에 다른 동아리 활동이 부러우면서도 지금으로서는 ‘여우의 포도’라고 여기며 한해의 동아리 활동을 마감한다.

4. 그리고, 나의 남은 이야기

   네 번째 동아리 활동이 끝났다. 2010년 동아리 활동은 특히 열정이 넘치는 학생들이 많았던지라 끊임없이 나를 자극하는 계기가 많았다. 책 읽고 생각하고 글 쓰는 능력의 편차는 있었지만, 그런 것에 상관없이 조금만 자극을 주고, 도전해 볼 수 있는 주제가 있을 때마다 진심으로 최선을 다하는 아이들의 열정에 놀랐다. 이 때문에 담당교사인 나도 덩달아 힘을 내고 여기까지 올 수 있었으리라.

   아이들에게서 배운다, 는 말. 가끔 가식적으로 들렸는데, 이제는 깊이 공감하게 되었다. 아이들은 어른의 거울이다, 는 말. 늘 관용적이라 생각했는데, 이제는 적확하다고 느끼게 되었다. 나를 성장시키는 이들과의 만남이 있으니 동아리만큼 좋은 활동도 없다는 생각이다.

   앞으로 1년을 더 기쁘게 달려 볼 생각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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느티나무 2011-04-17 01:05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예전에 썼던 글. 이번에 2010년 동아리 활동집을 내면서 약간 고치고 덧보탰다. 나 같이 게으른 교사에게나 허용되는 자기글 표절~!!ㅋ 아무튼, 저 글을 다듬는 시간은 지난 4년 동안 동아리 활동에 대한 생각을 정리할 수 있는 기회였다.
 

 

  

 나름, 신경 쓴 동아리 활동집의 표지 앞면

 

  

급하게 만든 동아리 활동집 표지 뒷면 

 

이것으로 2010년에 마무리해야 할 모든 일들이 끝났다, 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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