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2월도 중순이다. 벌써 이렇게 고등학교 2학년이 끝나는 건가? 2학기 기말고사가 끝났으니 심리적으로야 이제 학년을 마무리한 것이나 다름이 없다. 해마다 12월이면 어쩔 수 없이 올해를 되돌아 볼 수밖에 없더라. 어때? 지난 1년, 후회는 없나? 아니라면 얼마만큼 만족스러운 1년이었을까? 그 만족감과 후회의 반응에 이 동아리 모임은 어느 정도의 역할을 하고 있을까? 모든 게 궁금하지만, 우리 모임은 앞으로 몇 번 더 모일 테니 아직은 동아리 활동을 정리하기엔 좀 이르다 그렇지? 정리하고 마무리해야 할 때는 또 그렇게 해야겠지만, 지금은 지난 모임을 정리하고 이번 모임에 집중해야 할 때! 그럼 우리 이야기를 펼쳐 볼까?


   지난 모임은 미술관에 다녀온 이후에 동아리 모임을 했었지? 이번엔 좀 특별하게 백지 과제를 냈었는데, 대부분은 스스로 과제를 내고 답을 써 왔더라.(여전히 숙제 때문에 안타까운 친구들도 있었지만!) 항상 내가 내 주는 과제에만 익숙했다면 스스로 질문을 던지는 것부터가 쉽지 않았을 것이다. ‘뭘 하라는 거야?’, ‘어떤 걸 쓰지?’, ‘왜 이런 걸 하지?’, ‘귀찮은데, 그냥 하지 말까?’…… 한 번 의심이 일어나기 시작하면 끝이 없고, 처음엔 아주 미세하게 흔들리던 마음은 시간이 지나면서 그 뿌리까지 흔들릴지도 모른다.

   그런데 이제, 여기서부터가 중요하다. 여기까지의 마음은 대체로 다 비슷할 테니까. 그런데 어떤 사람은 억지로라도 생각을 짜내기 위해서 ‘고민’한다. 한참을 고민해도 마땅히 뭘 해야 하는지 잘 떠오르지 않는다. 다시 원점. 그러기를 두서너 번. 이제 시간이 별로 없을 수도 있다. 그래도 아직 내 공책의 대부분이 하얗다. 겨우 몇 줄 쓴 것도 내 맘에 안 든다. 고쳤다가 지웠다가 다시 썼다가…… 어떻게 어떻게 해서, 결국 내 마음에는 안 들지만 그래도 ‘숙제’라는 걸 한 것 같다. 해 놓고 보니 한결 마음이 편하다.

   반면, 마음이 흔들린 또 다른 사람은 이런 생각의 흐름을 좇아간다. 지금 이런 숙제를 하기엔 다른 할 일이 너무 많다, 오늘은 숙제할 기분이 안 난다, 이번에는 아예 숙제가 뭔지 알 수가 없으니 괜히 엉뚱하게 해 갔다가 웃음거리가 될 수도 있겠다, 근데 맨날 이런 숙제한다고 뭐 딱히 달라지는 것도 없다…… 그러니 오늘도 숙제를 안 하고, 그냥 모임에는 간다. 마음이 좀 불편하긴 해도 그냥 상황에 따라 적절하게 말로 때울 수 있을 것이다.

   그냥 한 번 써 본 것인데, 너희들의 마음은 어느 쪽에 더 가깝니? 항상 하는 잔소리지만, 그냥 자라는 것 같은 우리 키도, 가만히 생각해 보면 충분한 영양의 공급과 운동이 조화(물론 유전적인 요인도 크다.)를 이뤄야하지 않겠니? 우리 생각의 키도 마찬가지라구. 노력하지 않는데 자라는 건 없거든.


 

  이번 책, 눈먼 자들의 도시, 어떻게 읽었니? 난 이 책을 읽을 때마다 신체적으로 눈이 멀었다는 것이 아니라, 어떤 욕망에 눈먼 자들의 모습을 상징하고 있다는 느낌이 강하게 들었어. 시력의 상실은 곧 인간 이성의 상실이라는 뜻이겠지? 그러니 이런 인간에게 남은 것은 오직 생존의 욕망과 타자(他者)에 대한 공포뿐일 테고! 결국 인간이 동물과 다를 바 없는 존재가 돼 버린 거야. 무서운 현실이지? 그런데, 이런 ‘생각의 틀’로 우리 사회의 현실을 들여다보렴! 정말, 우리는 어떤 사회에 살고 있는 것일까? 아직 학생이니, 사회의 모습을 더듬기 어렵다면 학교의 모습을 들여다 보자. 그것도 어렵다면 크게 볼 필요도 없지. 우리 반이 곧 우리 학교의 모습이기도 할테니까. 자기 반을 들여다 보라구. 이 쪽지를 받은 토요일 오전, 그리고 월요일 하루 동안 ‘눈먼 학생들의 교실’, 이라는 제목으로 학급을 자세히 관찰한 내용을 좀 써 오렴. ‘우리들은 어디에 눈이 멀었을까?’

   모임은, 12월 20일이다. 시간은 좀 일찍 할 수 있으려나? 보충수업이 없으니 7,8,9교시에 하고 마치면 좋겠지? 그 날 보자!!(생활나누기는 “크리스마스에 눈이 내린다면?”이다.)

- 느티나무가 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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양철나무꾼 2011-12-17 11:45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전 제 기준의 잣대가 옳다는 편견에 눈이 멀었어요.
저와 다름을 이견으로 받아들이지 못하고 `X표`로 받아들이는 경향이 있어요~ㅠ.ㅠ

저 이 페이퍼 애정해요.
항상 절 돌아보게 하고 생각거리를 제공해줘요~^^

느티나무 2011-12-17 16:26   좋아요 0 | URL
어이쿠, 양철나무꾼님께서 좋아해 주신다니 더없는 영광입니다. 저는 논리적으로 옳은 것에 집착하는 경향이 좀 있는 것 같아요. 모든 일이 다 논리로 해결되는 건 아닌데, 말이죠? 행복한 주말 보내시길 빕니다.(글 남겨 주셔서 고맙습니다.)
 

   학생의 날, 이벤트를 위한 메시지-1

   10월 말이면 마음이 콩닥거립니다. 바로 11월 3일 학생독립운동기념일 때문인데요. 예전에는 이 날을 <학생의 날>이라고 했답니다.

   살면서 비록 무슨무슨 데이, 100일 기념, 이런 거 한 번도 안 챙겨 본 무심한(?) 사람인데, 저는 유별나게 이런 날은 그냥 지나가기가 좀 미안하더라구요. 그래서 해마다 학생의 날을 축하하는 작은 쪽지를 써서 붙였습니다. 함께 하실 분이 없는 해는 저 혼자서, 제가 쓰는 교무실 문 앞에 학생의 날 축하 메시지를 붙
이고 장미꽃 한 송이를 붙인 해도 있었고, 어떤 해는 교장선생님께서 멋진 메시지를 주셔서 중앙 현관에 멋지게 전시한 적도 있었습니다. 우리 학교에 온 두 해 동안은 용기를 내서 함께 하자는 쪽지를 돌렸더니 여러 선생님께서 마음을 내어 주셔서 각 학년 게시판엔 학생의 날 축하메시지를 붙였습니다.

   이런 쪽지를 드리려니, 마음이 무거울 선생님들의 얼굴이 먼저 생각납니다. '아, 올해는 애들이랑 사이가 쫌 그래서', ' 나 원래 이런 건 안 하는데....' '애들에게 별로 할 말도 없는데....', '뭐 이런 걸 왜 하노?' '이런 거 해도 다 소용 없더라' '딱히 의미있는 일도 아닌데...' 다 옳으신 말씀입니다만, 그래도 다시 한 번, 마음을 내 주시면 안 될까요?

   작년에 담임했던 2,3 학년 학생들에게 격려하는 말씀이나, 올해 내 속을 무던히 상하게 했던 녀석들을 떠올리면서 진심으로 해 주시는 충고의 말씀이나, 혹시나 천에 한 번이라도 선생님을 기운나게 했던 예쁜 녀석을 떠올리시면서 따뜻한 말씀이나, 이도 저도 아니면, 넋두리 같은 푸념이나......... 그냥 이번이 아니면 표현하지 못하고 지나갈, 학생들에게 선생님의 마음에 있는 귀한 말씀 한 자락 전해주시길 빕니다.
 

* 간단한 쪽지에 서너 줄만 쓰셔도 좋고, 좀 길어도 상관 없습니다.

* 사진이든, 그림이든 뭐든 다 좋습니다.

* 올해 한 번 써 볼까 하시는 마음만 있으시다면 저에게 "쓰겠다" 고 연락만 주시면 됩니다. (신기하게도 그러면 모든 게 다 저절로 풀립니다.) 일단 마감은 10월 29일까지 하겠습니다. 많이 연락주시길 애타게 기다리겠습니다. 

* 귀찮게 해 드려서 죄송합니다. 이런 소소한 일상이 학교 생활에 약간의 재미가 되었으면 합니다.

   학생의 날, 이벤트를 위한 메시지-2  
   학생의 날, 메시지 전하기에 함께 하실 분을 찾습니다. 현재, 아홉 분의 선생님께서 함께 하시겠다고 해 주셨습니다. (예년에 비해서는 좀 적습니다. ^^;;)

   우리 학교 학생들에게 격려의 말을 하고 싶은 선생님, 속상한 내 마음을 학생들이 좀 알아줬으면 하는 선생님, 학생들에게 꼭 전해주고 싶은 말이 있는 선생님, 눈을 반짝이며 공부하는 예쁜 학생들을 칭찬하고 싶은 선생님, 학생들과의 관계가 삐걱거려서 힘든 선생님, 이런 이벤트(?)로 잠깐의 일상이 달라졌으면 하는 선생님, 작년에 참여했는데, 별로 효과가 없어서 망설이시는 선생님, 무슨 기념일이든 그냥 지나치기는 아쉬운 선생님......

   이유야 어쨌든, 모두 모두 좋습니다. 30분의 투자로 학생들의 마음에 오래 남을 "자국" 한 번 만들어 보시지 않겠습니까? 동참하신다는 쪽지, 간절하게 기다리겠습니다. 
 
   학생의 날, 이벤트를 위한 메시지-3  
   벌써 쪽지 보내 주신 선생님도 계시고, 아직 준비중이신 선생님도 계신 듯 합니다. ^^

   내일 오전까지 주시면.... 제가 예쁘게(?) 출력해서 내일 밤이나 모레 아침에 학년별로 붙이겠습니다.  현재, 교장(감)샘 포함해서 스무 분 정도가 참여해 주셨습니다.

   정말 고맙습니다. (제가 나중엔 선착순으로 선물 드릴지도 몰라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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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쌀쌀하다, 비가 내려 더 그런가? 이럴수록 마음은 더욱 따뜻하게 하고 다녀야 한다. 몸은 이곳저곳 다니느라 바쁘지만, 마음은 항상 고요하고 평화롭게!

   드디어 주문한 책 다섯 권이 도착해서 너희들의 손에 건네졌다. 이 다섯 권만 다 읽고 모여서 이야기를 나누면 이후에는 간단한 마무리 활동만 남는다. 길게는 2년 동안 함께 했던 시간들을 정리해야 할 시간들이 다가오는 거지. 기쁜가? 아쉬운가? 51대 49로 어느 쪽으로 마음이 기우는가? 책이 늦게 도착할 때마다 교무실을 기웃거리는 너희들의 모습이 예쁘다. 그런 학생들에게만 건네지는 이 책을 사느라 투자한 돈! 전혀, 아깝지 않다. 거듭 얘기하지만, 세상에 공짜는 없는 법이니 특혜(?)를 받는 만큼 너희들도 무엇인가를 여기에 내놓아야 한다. 그게 무엇이냐? 바로 너희들의 노력과 열정이다. 이번 모임은 11월 22일, 9교시부터 한다. 그 때까지 열심히 책 읽고 정성껏 준비해 오시라.

   그럼 먼저 생활나누기 시간에는 무엇을 할까? 저번 모임에 보니까 한 사람당 생활나누기 시간이 점점 길어지더라. 모두 할 얘기가 없다더니만 정작 얘기를 시작하면 술술! 우리가 처음 모임을 하던 때를 떠올려 보면 어때? 생활나누기를 하자고 했을 때 보였던 너희들의 그 황당한 표정이라니? 요즘 생활나누기 시간에 발표하는 모습을 스스로 돌아봐도 일취월장한 거 아닌가?(나만 그렇게 생각하나?) 물론 우리가 그 때보단 조금 더 친밀한 사이가 되었기에 나아진 점도 있겠지만, 꽤 오랜 연습을 통해 자기가 하고 싶은 말을 정리해서 표현할 수 있는 능력이 좋아졌다고 말할 수 있는 점도 있을 것이다. 그러니 생활나누기 시간을 허투루 쓰지 말고 진지하게 접근하자. (결론은 특별한 주제 없이 생활나누기를 한다는 거다!)

   다음은 이번에 읽을 신갈나무 투쟁기에 대해서 말해 보자. 내가 한 7~8년 전에 이 책을 읽고, 학생들에게 권하려고 도서관에다 책을 들여오려고 때 제목 때문에 약간 문제가 된 적이 있었다. 사려던 수백 권의 책 중에 ‘투쟁’, ‘혁명’ 이런 제목의 책이 몇 권 있었는데, 어떤 분은 이런 책을 읽어보지도 않고 안 된다는 거야! 결국 어찌어찌해서 사긴 샀지만, 영 마땅치 않게 생각하긴 마찬가지더군.

   제목이 ‘투쟁기’라고 해서 뭔가 무서운 내용이 담겨 있을 거 같지? 근데 이 책을 쓴 사람의 생각에 따르면, ‘나무에게도 치열한 삶이 있’고, 나무의 삶 어느 것 하나도 거저 되는 법이 없다는 걸 알리고 싶어서 이런 제목을 달았다고 하더군. 보통 사람은 잘 몰랐던 우리 숲의 주인인 신갈나무의 치열한 생존기록인 셈인데 읽으면서 자기 삶을 되돌아 볼 기회가 될 거야. 첫 번째 숙제로 신갈나무의 삶과 내 생활은 어떤 공통점과 차이점이 있나,를 구체적인 사례를 통해서 파악해 오기(신갈나무의 일생을 읽은 후 배울 점을 찾기). 두 번째로는 좀 단순한 건데 이 책의 18쪽을 보고 똑같이 그림 그려오기. 아마 이걸 해 보면 산에서 흔하게 보는 참나무를 종류별로 구별할 수 있을 거야. (인터넷으로 참나무 6종류의 이미지를 검색해서 참고하시라.) 눈으로 보는 것과 손으로 익히는 건 전혀 다르거든. 그러니 성의껏 그려오렴. 사실, 여름에 이 책을 읽었으면 해도 제법 길 테니 바로 금정산으로 갔을 거다. 그런데 지금은 겨울이라 해가 짧으니 다음을 기약해 볼 밖에……

잔소리1. 어떤 모임에서 풍성한 무엇인가를 얻어가려면 각자가 내놓는 내용이 풍성해야 하는 거 알지? 책을 읽고 이야기를 나누어도 아무 것도 배운 것이 없다고 느낀다면 자기가 친구들에게 내놓은 내용을 먼저 살펴봐야 한다. 너는 이번 모임에 무엇을 내놓았니?

잔소리2. 지금껏 활동했던 자료 정리는 잘 되고 있는 건가? 너희들을 위해 중간중간에 자료 검사를 해야 하는 건 아닐까, 하는 생각이 많이 들지만, 그냥 끝까지 참기로 했다. 지금껏 많이 미룬 사람? 얼른 시작해 보시라. 그럼, 다음 주 화요일에 만나자!

- 느티나무 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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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자잘하지만, 꽤 오랫동안 구석구석 몸이 아팠다. 몸살 나기도 하고, 어깨 근육이 아파서 팔을 못 들 정도인 때도 있었고, 혓바늘이 심하게 돋아, 부어오른 혀를 다시 깨물어서 피를 보기도 했다. 지난 주말에 심한 몸살 증세를 보이면서 구토와 설사를 반복하기에 결국 어제 병원에 갔더니 바이러스성 위염이란다. 굶는 게 가장 좋은 치료법! 그래서 오늘(수) 점심을 굶었다.

   생각해 보니, 지금보다 조금 더 젊었을 땐 참 건강했던 것 같다. 20대에는 아예 병원 문턱에도 가 본 기억이 없고, 30대 초중반 만해도 몇 년 걸러 어쩌다 한 번씩 가던 병원이었는데, 최근 들어서는 자잘한 병으로 자주 병원을 찾게 된다. 얼마 전까지만 해도 이런 자신을 객관화하기가 힘들었는데, 이젠 이런 게 늙는 것이구나, 하는 생각을 하면서도 별로 씁쓸하지는 않다.

   사실 지난 금요일에는 수업이 끝나자마자 경북 영덕에 있는 ‘해맞이캠핑장’에 갔었다. 지난 10월 첫날에 나름 치열한 경쟁을 뚫고 구한 색다른 숙소라 기대가 컸다.(컴퓨터로 숙소를 구경했던 아들 녀석이 가장 설렜다.) 복이 또래의 아들이 있는, 아내의 친구 가족이랑 만나서 저녁도 해 먹고 맥주도 홀짝이며 밀린 얘기들을 하고 참 좋은 시간을 보냈다.

   느긋하고 여유로운 밤을 보낸 후 새벽부터 복통이 왔다. 쿡쿡 찌르기도 하고 쓰리기도 해서 일어나기 힘들었다. 게다가 팔다리에 극심한 근육통. 아침엔 구토까지. 할 수 없이 숙소를 나가기 전까지 이불 덥고 오전 내내 뒹굴었다. 12시쯤 숙소를 나와 다른 일행들이 근처에 있는 전시관을 구경할 때도, 예쁘게 만들어진 산책로를 따라 걸을 때도 나는 차 안에서 시체처럼 드러누워서 속이 좀 가라앉기를, 근육통이 풀리기를 기다리면서 잤다.

   어찌어찌 시간이 지나 결국 내가 운전을 해서 부산까지 왔다.(오, 식은땀이 쭈욱!) 낮에 차에서 계속 잤는데도 집에 와서 또 바로 쓰러져서 잠이 들었다. 다시 밤, 증세는 조금씩 낫다가 밥만 먹으면 바로 속이 쓰렸다. 일요일에도 비슷한 상황이 반복되어서 집에서 뒹굴었다. 할 수 없이 월요일에 퇴근 후 병원에 가서 처방받은 약을 먹고 금식했더니 조금씩 나아가고 있다. 이것만 하고 이제 올해까지는 병원에 안 갔으면 좋겠다.

   이번 주부터 2학년 수업 8시간만 하게 된다. 2학년은 논리학 수업인데, 교과서 자체가 없다보니 체계도 없이 마구잡이로, ‘논리학’하고는 아무 상관없는 내용을, 내 마음대로 대충 가르친다. 애들은 애들대로 성적에 들어가는 것도 아니요, 그렇다고 새롭고 명확한 지식(?)을 주는 것도 아니요, 선생이 애들을 꽉 붙들어 맬 정도로 카리스마가 있는 것도 아니니 이런 수업시간이야말로 흐느적거리기에 딱 좋은 환경인 셈이다. 수업시간 전에는 늘 마음을 다잡으면서 ‘녀석들을 같이 데리고 가야 하는데, 하는데……’ 해 보지만, 작심 2시간도 안 된다는 거! 최근엔 몸이 힘들기도 해서 그랬겠지만, 아이들에게 계속 ‘벌점’으로 위협을 했다. 그랬더니 억지로라도 듣는 척, 하려는 척을 하는 녀석들이 안쓰럽기도 하고 얄밉기도 하다. 그렇지만, 이 방법은 안 쓰는 게 좋겠다.(장기적으로는 약발도 떨어지겠지?)

   수업이 적으면 당근 여유가 있을 것이라고 생각했지만, 오늘까지의 현실은 또 그렇지가 않다. 이때쯤 하려고 이것저것 미뤄둔 일도 있고, 갑자기 해결해야 할 일도 생기고, 또 잡다하게 처리해야 할 공문서도 있고…… 하다보면 어느새 퇴근시간이 다 된다. 11월이 오면, 수능이 끝나면 하고 고 3만큼 하려던 걸 꼽았는데 몇 개라도 제대로 해 볼 수 있으려나?

   일단 내년엔 담임을 하고 싶다고 어제 교감샘께 말씀드렸다. “어느 학년?” 이러시길래, “1학년이나 2학년이요!” 이랬더니 말이 없으시다.(고 3 담임 안 한다고 그러시나?) 담임한다고 말하기 전까지는 아이들과의 실랑이가 살짝 그리웠는데, 정작 말을 뱉고 보니 앞길이 훤히 보이면서 걱정이 스멀스멀!

   집에서 담임 얘기를 했더니, 올해 아내는 1학년 담임을 맡아 무척 고생중이다. 내년에는 교무기획이라도 해서 담임을 안 맡겠단다. 나는 이참에 한 2년 정도 육아휴직을 권했다. 처음에는 생활비가 없다면서 되겠냐고 하더니, 지금은 휴직할 마음도 많이 생겼다. 더불어 요즘은 아내와 함께 복이가 다닐 유치원을 알아보고 있다.(지금 다니는 어린이집은 7세반이 없기 때문이다.) 안 그래도 잘 따라하질 못해서 스트레스를 받는 녀석인데, 유치원에 가서 제대로 할 수 있을까 걱정이 앞선다. 그래도 어쩌랴? 부모가 대신 살아 줄 수는 없고, 내가 해 줄 수 있는 건 여기까지, 라고 자위하며 녀석을 믿어볼 밖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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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1-11-17 11:55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11-11-17 23:01   URL
비밀 댓글입니다.

BRINY 2011-11-17 13:13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위염이니 알콜 조심하셔야겠어요. 1,2학년 담임과 3학년 담임, 다 장단점이 있는 거 같습니다.

느티나무 2011-11-17 22:59   좋아요 0 | URL
알콜은 한 잔만 마셔도 온 몸이 빨개지는 지라 잘 안 마셔요... 그래도 내년 담임은 토요일 휴무 때문에 1,2학년을 선호하지 않을까요? ㅋㅋ
 

   우리 학교 도서실에서 못난 것도 힘이 된다, 책을 쓰신 이상석 선생님을 모시고, 귀한 말씀을 듣는 시간! 특별히 금명여고에 계신 김진수 선생님께서 애를 많이 써 주셔서 마련된 자리였다. 도서실 한쪽 벽에 붙은 소박한 안내판! 

   이날 강연회 전체 진행을 맡아서 이끌어 준 우리 동아리의 김민주, 정경윤 학생. 준비를 많이 해 와서 그런지 실수 없이 강사 소개라든지, 질의 응답을 매끄럽게 잘 이끌었다. 학교에 다른 행사가 또 있으면 진행자로 추천해야지. 

   초청강연회 전체 모습1. 초청강연이 시작되기 전에 선생님을 소개하는 장면. 학생들이 진지한 자세로 선생님을 소개하고 있는 사회자의 말을 듣고 있다. 

   초청강연회 전체 모습2. 우리 학교 뿐만 아니라, 금명여고, 백양고 학생들도 이번 강연회에 참가하였다. 선생님께서는 입담도 좋으시고, 고등학교에 계신 선생님이라 학생들을 능숙하게 다루시면서 하고 싶은 말씀을 열정적으로 해 주셨다. (편견이겠지만, 대학교수님들의 초청강연은 대체로 실망스럽다.)
 

   얼굴도 동글동글. 배도 불룩! 외모만 보면 이웃집 동네 아저씨 같은 인상이지만, 이날 강연에서 열정적으로 말씀을 해 주셨다. 아이들도 사뭇 진지한 태도. 오늘 선생님의 말씀이 아이들의 마음에 잔잔한 파문이 일었으면 좋겠다. 

   강연이 끝나고 기념 촬영! 학교 별로 나누어서 이상석 선생님과 사진을 찍었다. 책을 들고 사인을 부탁했지만, 연예인도 아닌데 사인은 무슨... 이러시면서 사양하셨다. 대신 이렇게 다정한 기념사진이 있으니 오늘의 이 강연이 아이들의 기억에 오래 남을 것이다. 

   이것으로 소박하지만 따뜻한 초청강연이 끝났고, 다른 학교 학생들은 모두 상기된 표정으로 발걸음을 종종. 우리 동아리 아이들은 남아서 재빨리 뒷정리를 후다닥! 멋진 말씀과 흡수력이 뛰어난 아이들의 진지한 자세를 보니 이번 강연을 도왔던 나도 몹시 행복한 밤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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완두콩 2011-09-29 13:01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사진 속에서 선생님이 어디 계신가 한참을 찾았어요. ㅎㅎ ...청춘이십니닷!

느티나무 2011-09-30 13:14   좋아요 0 | URL
에이... 이제부터 완두콩님 말씀은 반으로 할인해서 들어야겠네요 ^^;; 마음이 청춘인 게 젤 좋죠.. 그런 점에서 보면 완두콩님이 부럽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