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0년 글밭 나래 우주인 활동을 마무리하면서 

   올해도 한참 늦은 활동집을 냅니다. 늘 그렇듯이 세상에 없던 무엇이 온전히 제 꼴을 찾아 모양을 갖춰 나오는 데는 제 나름의 산고(産苦)가 따르나 봅니다. 지난 초겨울부터 시작했던 작업이 이제야 마무리되어 모두를 대신해 제가 이렇게 짧은 인사말을 씁니다.

   글밭 나래 우주인이라는 이름의 동아리가 만들어진 때는 벌써 6년 전입니다. 물론 해마다 학습(독서) 동아리를 했던 건 아니었고, OO고에서 3년, OO고에서 1년이니 4년 동안 독서동아리 활동을 했습니다. 그런데 동아리 활동의 연륜이 쌓이는 만큼 독서 동아리 활동에 질적인 변화가 일어나고 있는지 되돌아 보면 부끄러워집니다. 이 부끄러움은 담당교사로서 학생들에게 얼마나 도움을 주고 있는지를 생각할 때마다 그렇습니다.  

   OO고에서 새로 시작한 2010년 글밭 나래 우주인은 처음으로 1학년 학생들을 대상으로 동아리 회원을 뽑고, 이 친구들과 즐거운 1년을 보냈습니다. 적어도 고등학교 2학년은 돼야 소화할 수 있다고 생각했던 책들을 무리 없이 잘 읽어내며, 제가 낸 어려운(?) 과제를 척척 해오고, 모임에서는 발표도 열심히 하려고 애쓰고, 활동 후기도 제 때 정리해 내는 친구들을 보면서 배움에 대한 열정이 대단하다는 생각을 했습니다. 또 우리 동아리 활동에 대한 애정은 어찌나 넘치는지 담당교사가 동아리 활동에 신경을 쓰지 않을 수 없게 만들었습니다. 

   지난 1년을 돌이켜보면 2주에 한 번씩 꾸준히 해 온 독서동아리 활동, 근처 학교의 독서동아리 모임과 함께 다녀 온 여름독서캠프, 열심히 준비한만큼 관객들의 열렬한 호응으로 시낭송대회에서 대상까지 받았던 시극(詩劇), 지난 겨울 소박하지만 속 깊은 얘기가 있었던 겨울 모꼬지, 그리고 이어진 이 활동집 준비까지... 돌아보면 아쉬움이 없는 건 아니지만, 아쉬움과 함께 늘 주어진 상황 속에서 열심히 해 왔다는 자긍심도 함께 떠오릅니다.

   이 동아리 활동집은 우리가 지난 1년 동안 활동했던 내용을 기록한 중간보고서입니다. 우리는 이 중간보고서를 뒤로 하고 다시 1년을 더 달리기로 했습니다. 아마, 지난 1년보단 조금 더 용감하게 달릴 수 있을 겁니다. 우리가 용기를 내서 도전하는 만큼, 모든 일은 가치가 생긴다는 걸 이미 알아버렸거든요. 올해는 우리가 해 보고 싶은 건 뭐든 시도해 보겠습니다. 좋은 결과는 우리 몫이 아닙니다. 그냥 우리에게는 지난 1년처럼 우리 앞에 놓인 상황 속에서 최선을 다해 '도전'해 왔다는 사실이 중요할 뿐입니다. 내년에 동아리 활동집에는 어떤 글이 담길지 벌써부터 마음이 설렙니다.

   중간에 어쩔 수 없이 우리 학교를 떠나게 되면서 동아리를 못 하게 된 민서, 민지를 포함해서 열네 명의 멋진 학생들에게 이제 이 동아리 활동집이 진짜로 나온다는 사실을 말해야겠네요. 그들 모두와 함께 겪은 소중한 기억들이 이젠 글자들 사이에 스며들어 각자의 책장 한 켠에서 오롯이 담겨있을 것입니다. 언젠가 학생들이 이 책을 다시 들추게 되는 날이 온다면 아마 그날은 무척 행복한 하루가 되리라 믿습니다.  

   모두에게 고맙습니다.

 2011년 4월에, 느티나무가 씁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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느티나무 2011-04-03 22:59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곧 나올 동아리 활동집에 쓴 머리말... 여러 가지 상황이 집중할 수 없는 여건이다보니 이거 쓰는 데도 며칠(?)이 걸렸다. 어휴... 참, 답이 안 나온다. 아무튼 올해는 이런 글이라도 쓸 일이 많네.
 

독서 활동 자료집을 발간하며


   2010년은 ‘국어’ 교사인 저에게 나름대로 의미 있는 시간이었습니다.

   2010년 2월초 ‘진로와 직업’ 과목을 맡기로 했을 때, 흥분과 기대감으로 한동안 설레던 마음이었습니다. 학생들과 재미있는 책을 읽어야지, 책을 읽고 다양한 독후 활동을 해봐야지, 책을 통해 학생들의 생각과 마음을 한 뼘 더 키워야지…… 하는 기대가 컸습니다. 더구나 진로와 직업, 과목은 대학입시와도 무관한 과목이고, 정기고사도 실시하지 않는 과목이라 평소 시험에 대해 압박감을 핑계로 관성화된 국어 수업에 안주하며 시험만 없으면 제대로 국어수업을 해 보겠다, 는 막연한 생각을 가졌던 저는 무척 기대감을 가졌습니다.

   그런데 세상 모든 일이 그렇듯, 막연한 기대로 모든 일이 순조로울 수는 없는 노릇이었습니다. 먼저 정해진 커리큘럼이 없는 게 가장 큰 문제였습니다. 1년 동안 어떤 교육목표를 세우고 어떤 과정을 거쳐 이 목표에 이를 것인가를 고민하는 게 시급한 과제였습니다. 그래도 저는 몇 년 간의 독서동아리 활동을 지도한 경험이 있는지라 막연하게나마 독서지도의 목표를 세우고 중심 활동을 구성해 보았습니다. 그런데 이 교육과정과 교육목표를 연결해 줄 수 있는 적절한 교재를 찾는 것도 힘든 일이었습니다.

   처음 몇 분 선생님께서 가지고 계신 자료를 검토해 봤는데, 모든 자료가 그렇듯 당장 제가 활용할 수는 없는 내용이었습니다. 한두 번 활용해 보다가, 이건 아니다 싶어서 접었습니다. 그리고 제가 직접 자료집을 만들어 보자 싶어서 제법 많은 시간을 이 독서활동자료를 만드는 일에 쏟았습니다. 그렇게 1년간의 시간이 쌓여서 만들어진 자료를 모으니까 제법 두툼한 자료집이 되었습니다.

   물론 이 자료집의 내용은 한없이 부실하고 형편없습니다. 시간에 쫓겨서 만든 것이 대부분이고, 다른 일도 하면서 같이 만들어야 했기 때문에 부족한 능력이나마 온전히 제 능력을 다 쏟지 못한 경우가 많습니다. 또 여러 선생님의 조언도 들었어야 하는데, 현실적인 여건이 그렇지 못한 경우가 많았습니다. 아무튼 이런 이유 때문에 이 자료 그대로는 자신의 수업에 활용할 수는 없을 것입니다. 다만, 이 자료에서 자신의 독서 활동 수업에 어떤 시사점을 찾을 수 있다면 이 자료를 만든 의의는 충분하리라고 생각합니다.

   이 자료집은 학생들이 짧은 글이나 책을 읽고 독후 활동에 적극적으로 참여할 수 있는 형식으로 만들어졌습니다. 그런데 실제로 이 자료로 수업을 해보니까 학생들이 활동해야 할 분량이 보통의 수업시간보다 훨씬 많은데 학생의 활동을 꾸준히 이끌어 낼만한 수단이 적습니다.(성적에 반영에 안 된다는 얘기지요.) 이 자료집을 활용하시는 분들은 이 점을 꼭 참고하시기 바랍니다.

   2010년을 국어교사로서 의미 있게 보낸 시간의 자국을 정리하는데 도움을 주신 모든 분들에게 고마운 마음을 전합니다.

2011년 3월

OO고등학교 교사 느티나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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양철나무꾼 2011-04-01 00:57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님의 고민과 노력과 열정이 엿보이는 군요.
활동을 꾸준히 이끌어 낼만한 수단이 적다는 말, 성적에 반영 안된다는 말...중3인 저희 아들에게도 벌써 통용되는 말인지라~^^

느티나무 2011-04-01 12:00   좋아요 0 | URL
고민은 했는데 결과는 신통치 못했지만, 그냥 방치하지 말고 인쇄본을 만들어 두라고 하시네요. 사실 저런 글도 필요 없는데, 교장선생님께서 책을 낼 때는 저런 글이 꼭 필요하다고 하도 그러셔서...

글샘 2011-04-01 09:29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샘~
제가 올해 주제넘게 독서동아리를 만들었습니다.
안 그래도 바빠 죽겠는 판국에 정신이 나간 거죠. ㅎㅎ
이렇게라도 해야 애들 책읽기에 도움이 되겠다 싶었는데, 막상 만들고 보니 좀 막막한...
자료집을 좀 볼 수 있으면 좋겠네요. ^^
중앙고로 하나 보내주세요. 나중에 거하게 맛있는 걸로 대접하리다. 해콩샘이랑 함 봅시다. ㅎㅎ

느티나무 2011-04-01 12:03   좋아요 0 | URL
이 자료집은 수업 시간 1시간에 할 수 있는 활동인데요? 음... 단편 소설이나 짧은 글 읽고 생각을 정리해서 학습지 형태로 쓸 수 있도록 만든 자료집인데요. 이 자료가 독서동아리 활동에 맞을까 싶습니다. 사실, 다음 주말에 작년에 독서동아리 활동-글밭 나래, 우주인-했던 거 책으로 나오는데(사실, 해마다 내용이 비슷비슷해서 저번에 드린 적 있지요?) 그거라도 보내드릴까요?
 

   2011년 2월 마지막 주말에 갔던 겨울 캠프. 사정이 있어서 못 온 친구 두 명. 또 사정이 늦게 올라온 두 명은 사진에 없네. 2010년 동아리 활동을 마무리하고, 새로운 계획도 세우고, 서로 간의 우정을 다지기 위해 다녀온 엠티! 우리 하룻밤 잔 것만큼 친해진 거 맞지? 

   방금 전 숙소에서 사진을 찍고 다 같이 올랐던 금정상 원효봉 정상에서 활짝 웃는 표정들. 결국엔 웃었으나 결국엔 웃기까지의 과정도 만만치 않았다는 사실도 꼭 기억해야지? 처음엔 걱정으로 시작했던 산행! 그러나 걱정보다 훨씬 경쾌한 발걸음이었지. 그러다 고비도 맞았고, 그 고비를 넘어서 우린 결국 모두 정상에 올랐다. 그리고 활짝 웃었다. 사실, 모든 일이 다 그렇지 않니?  

   2011년 3월, 개학한 어느 날 학교 앞마당에서 찍은 사진. 어느새 2학년들이다. 학교는 아직 봄이 멀었지만, 언제나 봄인 녀석들 때문에 늘 봄인 것 같은 학교. 부끄러움과 무뚝뚝함이 묘하게 공존하는 사내 녀석들, 씩씩하고 밝지만 묘하게 여린 아가씨들이 함께 어우러진 우리 동아리 식구들이다, 다투어 필 꽃만큼이나 예쁜. 

   오늘(2011.03.29) 도서실에서 공부하는 모습. 자연스러운 모습 90%에 약간의 설정이 있다.(얼굴이 나오는 게 싫다나?) 새학기 들어서 두 번째 모임이다. 오늘 읽고 얘기 나눈 책은, <순이 삼촌>(현기영), <우리들의 조부님>(현길언)이다. 소설을 읽고 두 팀으로 나눠서 한 팀은 소설 속에 나오는 사건을 정리하며 질문을 만들고, 다른 한 팀은 도서실 역사책을 뒤져서 4.3사건(항쟁)이 무엇인지 조사하게 했다. 나중에 함께 모여서 소설에 나오는 역사적 사건을 들려주면서 인물들의 행동을 이해하려고 했다. 그래도 정리하기 힘든 것은 내가 보충해 가면서 마무리했다. 오늘도 여느 때처럼 시간이 빠듯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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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인 2011-03-30 08:36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제가 학교다닐 때는 왜 느티나무님같은 선생님과 이런 동아리가 없었을까요. 참 부럽습니다.

느티나무 2011-03-30 11:18   좋아요 0 | URL
책읽는 동아리 활동은 우선 저부터 재미있어서 좋더라구요. 그래서 더 애착이 갑니다. 곧 작년에 활동한 자료집이 나온답니다. 열심히 편집(?)하고 있구요. 밖에서 보면 부럽기도 할텐데... 포장이 근사해서 그럴까요? 아무튼 고맙습니다.

BRINY 2011-03-30 10:48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남녀공학이군요! 궁금해요!

느티나무 2011-03-30 11:20   좋아요 0 | URL
남녀공학의 학교 분위기가 궁금하시죠? 그래도 합반은 아니기 때문에 별로 다를 건 없는데... 아, 어쩌면 제가 13년째 남녀공학 고등학교만 있어서 그런지도 모르겠네요. 실업계 고등학교에도 있었는데, 거기도 남녀공학이었으니까요.

BRINY 2011-03-30 12:32   좋아요 0 | URL
여학교, 아니면 남학교만 있어봐서 정말 궁금합니다!

느티나무 2011-03-30 12:45   좋아요 0 | URL
진짜 다른 게 없는데요 ^^;;

드팀전 2011-03-30 12:45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학교 도서관에 한번 가보고 싶어지네요.^^ 잘 지내시나요.

느티나무 2011-03-30 12:50   좋아요 0 | URL
네, 드팀전님. 오랜만이지요? 이 학교는 아직 개교 8년 밖에 안 된 학교라... 서가가 휑해요. 그치만, 있는 책은 다 새 책이라는 건 좋네요.
저는 씩씩한 진복이랑 매일 놀면서 지냅니다. 녀석이랑 노는 게 젤 재밌네요. 앞으로 이 녀석의 인생이 어떻게 펼쳐질까, 늘 궁금합니다.^^
 

   맹추위에도 조금씩 다가오는 봄처럼 분주하던 학기 초의 일더미 속에서도 조금씩 안정된 일상은 다가온다. 학기 초부터, 아니 작년에 썼던 교단일기 공책이 내 손에 들어와 일기장을 한 장 한 장 다시 읽었던 그 때부터 올해도 일기를 써보고 싶다는 생각을 했다. 그러다가 용기를 내서 쪽지를 건냈는데 무려 여덟 분이 연락을 해 줘서 조금 놀랐다. (또 작년처럼 옆에 계신 짝지 선생님을 끌어들이는 선생님도 계실 테고…… 함께 쓰는 분이 열 분이 넘으면 공책을 두 권 돌려야할지도 모르겠다.) 앞으로 이 일기장이 선생님들의 마음을 잇는 끈이 되었으면 좋겠다. 나도 올해는 이 공책 쓰기에 더욱 재미를 붙여야겠다.

   작년 3월엔 모처럼 담임이 아니었지만, 담임만큼 마음이 쓰이는 -내 기질이나 성격에는 정말, 안 어울리는-전교조 ‘분회장’이었던지라 마음이 무척 무거웠다. 어떻게, 어떻게 1년이 지나가서, 올해는 그 분회장이라는 짐도 벗어서 한결 마음이 가볍다. [OO샘 미안!] 그렇지만 올해 수업에 대한 부담감은 여전하다. 3학년 9시간, 2학년 8시간. 3학년은 입시 준비라는 허울에 한쪽 눈 딱 감고 문제 풀이만 하고 있는지라 아무 문제가 없지만-사실, 이것도 아무 문제가 없는 건 아니라서 좀 있다가 설명하려고 한다- 2학년 수업이 문제다.

   작년에 1,2학년을 대상으로 수업했던 ‘독서’수업은 여러 가지로 힘들어서 올해는 ‘안 해야지’했는데, 어쩌다보니 나도 맡을 수밖에 없는 상황이 되고 말았다. 2학년 ‘논리학’ 수업 22시간 중에서 14시간은 이OO 선생님께 맡기고, 나는 8시간을 맡았다. 작년에도 이 일기장에 줄기차게 썼지만, 이 ‘논리학(독서)’ 수업의 가장 큰 문제는 두 가지 - 교재가 없다는 것과 시험을 안 친다는 것.(^^;; 장점이라고 하실 분도 계시겠다.) 선생님이랑 서로 번갈아가면서 학습지를 만드는데 내가 학습지를 만들 차례가 되면 한 사나흘은 머릿속에서 계속 조각글들이 둥둥 떠다닌다.(이번 주가 그렇다.)

   올해 들어 좀 당황스러웠던 일이 있었다. 3학년 보충수업 수강신청이 끝나고 강좌이동 기간에 내 반에 들어와 있던 학생들이 무더기로 다른 반으로 옮겨간다며 쪽지(변경신청서)를 들고 찾아왔다.(아마 순위제 신청이라서 내 강좌는 후순위에 대충 넣은 것이리라.) 음……아직 한 번도 경험하지 못한 상황에 기분이 참 묘했다. 씁쓸한 감정이 좀 가라앉고 나니까 다시 내 자신을 들여다보게 되었다. 결국 몇 명이든 나랑 같이 공부하는 학생들에게 최선을 다해야 한다,는 단순한 결론에 이르는 내 생각의 과정은 그리 단순하지 않아서 구구절절 다 설명하기는 어렵고, 그럴 필요는 없을 것 같다. (아무튼 결과적으로 나를 되돌아 볼 기회를 얻었다는 점에서 이 일도 아주 좋은 경험이었다.)

   무거운 이야기만 잔뜩 썼네. 올해는 선생님들과 어떤 이야기를 나누게 될까, 설렌다. 작년에는 일기 쓰는 샘들이랑 밥 한 번 먹자고, 먹자고 해 놓고 결국 못 먹었는데 올해는 먹을 수 있을까?

   몸이 둔해지는 것 같아서 몸무게를 좀 줄이기로 결심했다. 며칠 전부터 일주일에 서너 번은 구민운동장을 걷는다. 이제 시작했지만, 역시 목표는 거창하다. 운동으로 줄어 들 올해 말의 몸무게를 10년 동안 유지한다는 야심찬 계획이다. 몸을 위해서는 이렇게 신경을 쏟지만 정작 정신을 위한 운동에는 아직 아무런 계획이 없다. 이래 살아서 되려나?

   꽃들이 앞을 다투어 필 꽃철이다. 아무리 찬바람이 불어도 기어이 꽃은 핀다. 그래서 어느 시인의 말처럼 꽃철이다. 참, 좋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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느티나무 2011-03-29 23:29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작년처럼 올해도 선생님들과 일기를 쓴다. 이름은 좀 딱딱하지만, 그냥 돌아가면서 일기도 쓰고, 생각도 나누고, 서로 댓글도 다는... 공책 한 권에 쓰는 아주 소박한 일기다. 올해 다른 학교로 가신 샘들도 있지만 새로 오신 분들이 네 분이나 함께 해 주신다고 해서, 아홉 분이 함께 일기를 쓰기로 했다. 아마, 올해도 이 일기장으로 행복해 질 수 있을 듯!

양철나무꾼 2011-03-30 00:22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3월은 선생님도 학생들도 다 분주한 계절인가 봐요.
앞 다투어 필 꽃들도 분주하고~^^

'결국 몇 명이든 나랑 같이 공부하는 학생들에게 최선을 다해야 한다'는 결론을 내리신 님, 좀 멋지십니다.
님 같은 멋진 선생님들이 계시기에 믿고 아이를 맡길 수 있는 것이겠지요~^^

느티나무 2011-03-30 01:12   좋아요 0 | URL
네... 학기 초는 좀 바쁩니다. 애들도 샘들도 새로운 환경에 적응해야 하니까요. 사람이 바뀌면 환경이 다 바뀌는 것이니까요.
고맙습니다....만 저, 그다지 멋진 교사는 아닌데요... 늘, 말이나 글이 제 행동을 앞서 나갈까봐 노심초사하는 소심쟁이랍니다. 근데, 다른 학교도 다 비슷하겠지만, 열심히 가르치시는 선생님들도 정말 많더라구요.
 

   2010년 9월 5일, 일요일 밤에

   방학이 까마득한 옛날이 되어 버렸지만 그 아련해서 더욱 좋았던 기억 한 자락을 남기려고 한다.  

   동아리 여름캠프(금정산 학생교육원) - 우여곡절(태풍으로 하루 연기됨) 끝에 무사히 끝났다. 어설픈 준비과정이었으나 큰 욕심 없이 "즐기자"는 마음으로 진행됐으니, 모두 즐겁게 잘 놀았다. 공부도 하고 놀이도 하면서 재미 있고 의미 있는 시간이었다. <-- 교사로서 요렇게 노는 게 난 즐겁다.  

   가족여행(덕유산-오도산휴양림) - 역시나 폭우 속에 다녀온 여행길. 특히 오도산에서 바라본 구름의 향연은 장관이었다. 오도산 일출은 합천호 때문에 생기는 구름 때문에 늘 멋진 모습이다. 더구나 오도산까지는 중계소가 있기 때문에 정상까지 차로 갈 수 있다. 구름이 산을 타고 넘는 모습을 오랫동안 보면서 "유연해야 넘는다"는 생각을 다시 해 보았다.  

   2학기 개학을 하고 며칠이 지났다. 항상 시작할 때 마음가짐은 그대로... 수업 준비를 좀 더 알차게 꼼꼼하게 해야지. 동아리 아이들이랑 더 즐겁게 책을 읽어야지, 아이들에게 친절한 교사가 되어야지, 내가 맡은 일은 제대로 해야지, 전교조 분회를 위해 성의껏 노력해야지... 책을 열심히 읽어야지, 교사로서 정체성을 확고하게 하기 위해 항상 마음은 가득한데, 문제는 항상 몸이다. 하, 몸이란 녀석은 언제나 이기적이고 예민한지라 마음이 조금만 방심하면 그 틈을 놓치지 않는다. 늘 의식하면서 조금 더 가다듬어야 할 부분이다.  

   저번 분회 번개 모임에 진복이를 데려간 이후에 조OO 선생님이 성장클리닉과 작업능력 평가를 권하셨다. 항상 생각은 하고 있었지만, 조마조마해서 차마 못 가보고 있었는데... 뒤에서 부추기니 용기를 내서 지난 주 화요일에 성장 호르몬 검사를 받았다. (결과는 화요일에 알려 준다고 한다.) 

   마음이 두 갈래인데 성장 호르몬에 문제가 있어서 성장 호르몬 주사를 맞아 키나 몸무게가 "표준치"에 이르렀으면 하는 것이랑, 아무 문제가 없어서 시간이 지나면 저절로 이 문제가 해결됐으면 하는 것이다. 

   어떤 결과가 나오든 일단 문제가 해결될 계기를 마련했다는 점에서 다행이다. 아무튼 이진복이라는 녀석 - 참 사연이 많은 녀석이다. 앞으로 가야 할 길이 멀지만, 언제나 -네가 필요하다고 할 때까지 - 지켜보며 응원해 주리라 다짐해 본다.  

   (요즘 EBS에 방송된 "아이의 사생활" 탐독 중! 어렵고도 놀랍다.) 

   2학기에 작은 목표가 있다면, 이 은밀한 일기를 읽는 사람들이랑 하룻밤을 보내고 싶다는 것! D-데이는 12월 15일 밤. 장소는 지리산? 다들 시간 비워 놓으실 거죠?  

 

   2010년 9월 27일, 월요일 

   진복이 병원은 정밀 검사가 필요하다고 해서 (2박 3일) 겨울 방학으로 미뤘다. 암튼 겨울 방학 때 이 일 때문에 조금 바쁠 듯. 그 전에 녀석이랑 신나게 놀아야겠다.  

   연휴가 무려 엿새간이었다. 처음부터 사흘은 '명절'답게 보내야겠다는 생각을 했었고, 나머지 사흘은 여행을 하기로 했다. 고심 끝에 고른 곳이 경북 울진. 지난 여름 방학 때 가려다가 아내가 아파서 못 갔던 곳인데, 이번엔 결국 다녀왔다. (예약을 8월 1일에 했었다.) 통고산자연휴양림은 말 그대로 깊은 숲속에 있었다. 덕구온천 스파월드에서 물놀이하면서 놀았고(난 음식이 그런 것처럼 온천물도 좋은 거, 안 좋은 거 잘 구별하지 못한다.) 

   히말라야에서의 밤 이후로 가장 맑은 숲에서 이틀밤을 잤다.  

   울진이 자랑하는 소광리 금강소나무숲은 거기에 오랫동안 살고 싶은 마음이 들 정도로 좋았다.(스님이 되어 암자를 짓고 혼자 산다면 울진군 서면 소광리에 집을 지으리라.)차로 비포장 도로를 30분 이상 달려야 하는 험한 곳이었지만 2시간을 보낸 그곳의 솔향기가 지금도 아련하다. 

   불영사 계곡과 불영사, 민물고기체험관, 울진 엑스포공원 등도 예상보다 훨씬 알차게 꾸며 놓았고, 잘 가꾸어져 있었다. 또 이 모든 곳이 사람이 별로 없어서 한적하고 평화로웠다는 사실. 신나는 여행은 사람마다 가치 기준이 다르겠지만, 나는 요런 스타일의 여행이 신난다. 보너스로 일요일에 걸었던 휴양림 안에 있는 산책길도 환상적으로 아름다운 길이었다.  

   앞으로 또 당분간은 휴양림 주변 여행에 꽂혀 있을 것 같다.(지금도 그 생각을 하면 기분이 좋다.) 사실, 다음 여행지로 '영덕'을 생각하고 정보 탐색 중이다.  

   독서 동아리 회원을 새로 뽑았다. 이제 열두 명이다. 뽑아 놓고 보니, 학교에서 예산을 지원해 주지 않을까 조바심이 난다. 이제 교육청에서 지원받은 돈은 책을 두 번만 사면 없는데, "사교육 없는 학교" 관련 예산을 지원받지 못하면 큰일이다. (교감샘께서는 항상 애매하게 말씀하신다. 결정권자가 아니시니 어쩔 수 없겠지만...) 

   지난 번 동아리 아이들과 책을 읽으면서 나눈 이야기는, 내 인생을 풀어주는 키워드. 이걸 퀴즈쇼 형식으로 문제를 내면 다른 사람들이 맞히는 거였다. 나는 다섯 문제를 내고 100원-200원-500원-1000원-2000원을 각각 상금으로 걸었다.(슬럼독 밀리어네어처럼) 문제의 정답은 <땅끝마을><베트남><神><책><인큐베이터>였다. 다 내 인생을 이해하는 주요한 열쇠말이다. 참고로, 베트남은 내가 꼭 가 보고 싶은 곳. 스페인의 산티아고, 페루의 마추픽추와 함께 죽기 전에 꼭 보겠다고 결심한 곳이다. (소박한 꿈!) 

   아는 사람들은 알겠지만 내 취미는 <책 사 모으는 것-책을 읽는 것이 아니라...>이다. 이번 달엔 무슨 욕구 불만이 있었는지... 좀 난감한 상황이 되고 말았다. <핑퐁><카스테라><삼미슈퍼스타즈의 마지막 팬클럽><사춘기><난 빨강><나는 유령작가입니다><맑스주의 역사 강의><4월 3일의 사건><B급 좌파 : 세 번째 이야기><휴전><나비 넥타이><월든><가난한 사랑 노래><경제학-철학 수고><로드><자발적 복종><지금이 아니면 언제?><죽은 왕녀를 위한 파반느><처음에는 비극으로, 다음에는 희극으로> 이걸 어쩐다?

 

   2010년 10월 26일 화요일 

   "그러나 간결함, 리듬, 그리고 쉬운 문장에 대한 내 모든 태도들은 오로지 '내가 무슨 소리를 하는 건지' 명료하게 드러내기 위해서 존재한다. 나는 이오덕 선생이 말씀한 '삶을 가꾸는 글쓰기'를 믿는다. 글을 씀으로서 내 일상의 에피소드들은 비로소 내 생각으로 정리되며 그렇게 정리된 생각들은 다시 내 일상의 에피소드에 전적으로 반영된다. 내 삶과 글은 끊임 없이 꼬리를 물고 순환한다. 내 삶을 더 낫게 만들지 않는다면, 나라는 인간을 더 낫게 만들지 않는다면, 내 글은 아무 것도 아니다. 결국 문장에 대한 내 태도는 삶에 대한 내 태도와 같다." 

-B급 좌파 : 세 번째 이야기, 김규항, 리더스하우스  

   제법 시간이 지났지만 김규항의 글을 읽고 일기, 비슷한 글을 블로그에 써 둘까 싶었는데, 역시나 쉽지가 않다. 몸은 정말 예민하고 철저해서 늘 편안한 것을 집요하게 파고든다. 아직 일기를 시작도 못 하고 있지만, 그래도 저 글은 쉽게 잊혀지가 않는다. 그나저나 김규항은 읽으면 읽을 수록 불편한데 왜 계속 읽는지 모르겠다. 자학... 비슷한 심리인가? 

   "독자들의 정신이 번쩍 들게 울분을 토하거나, 학생들에게 위안과 희망을 주는 작품이면 어땠을까 싶지만 내가 목격한 모습들을 최대한 그 온도 그대로 담고자 했다. 그래서 이 이야기는 제목처럼, '좀 애매한' 이야기가 되었다. 하지만 그것은 그들이 처한 상황이 목 놓아 울 만큼 극단적이지 않아서가 아니라 무엇 때문에 슬픈지 모를 만큼 복합적이기 때문이다.  

   "인생 찌질한 게 무슨 자랑이라고 맨날 그렇게 웃고 떠든대? 찐따 같이..." 

   "낄낄 은지, 나이스~" 

   "그... 그렇다고 울기도 좀 그렇잖아? 하아...하..." 

   "그게 말이지, 나도 그래서 한 번 울어볼라고 했는데... 이게 뭐랄까 참..." 

   "울기에는 뭔가 애매하더라고. 전쟁이 난 것도 아니고 고아가 된 것도 아니고..." 

   "웃거나 울거나만 있는 건 아니잖아. 화를 내는 것도 중요하지" 

   "누... 누구한테요?" 

   "그게 문제지" 

   - 울기엔 좀 애매한, 최규석, 사계절 

   만화를 그리는 고등학생들 이야기. 제목처럼 뭔가 좀 애매하다. 하긴 현실이라는 게 좀 그렇지 않은가? 몹시 슬프지도, 몹시 기쁘지도 않은 '그저 그렇다'고 할 수도 있고, '애매하다'고 할 수도 있는 두리뭉실함. 양면성이 늘 존재하는 상황!  

   엉거주춤한 상황이 대부분인 현실을 살아가는 고딩들 얘기를 읽으면서 나는 아이들과 소통을 꿈꾼다. 내가 관심을 가지고 있다고 착각하면서 말이다. 그런데 점점 불통의 벽은 높아지고 내가 노력으로 뛰어넘기엔 힘이 부친다. 아이들의 무심한 표정이 자꾸 눈에 밟힌다. 기운이 쭉 빠진다.  

   "너의 장미꿏이 그토록 소중하게 만드는 건 그 꽃을 위해 네가 소비한 그 시간이다" 나는 이런 충고의 진실을 의심하지 않는다. 내 삶에서 무엇인가가 소중하다면 그것은 정녕 내가 그것을 위해 고민하고 진땀흘리고 눈물 흘리며 비틀거리던 시간들 때문이다. " 

- 쾌락의 옹호, 이왕주, 문학과지성 

   아이들과 함께 읽기 위해 산 책. 저렇게 멋있는 문장들이 참 많다. 저 글을 읽으며 가만히 생각해 본다. 나는 무엇을 위해 고민하며 진땀 흘리며 눈물 흘리며 비틀거렸던 시간이 있는가?<여기까지 쓰고 김OO 선생님의 쪽지(시낭송 대회 참가 안내)가 와서 급하게 동아리 시극 대본을 옮긴다.> 

   그래 문제는 결국, 나 자신이지. 다른 누군가를 위해서가 아니라 나 자신을 위해 그런 시간들이 더욱 필요하다. 문제는 이 생각을 얼마나 행동으로 옮길 수 있느냐겠지. 어휴~ 나만 어려운가? 다들 삶이... 

 

   2010년 11월 19일, 금요일 

   노래를 듣고 있다. 디어 클라우드라는 인디 '록'(여기서 '록'인지, '락'인지, '롹'인지 몰라서 국립국어원 사이트에서 검색하니, 록=로큰롤, 으로 나와서 '록'으로 썼다.) 밴드의 "그 때와 같은 공간, 같은 노래가"라는 곡. 3집까지 나온 밴드인데, 노래가 하나 같이 슬프고, 우울하다. 끝 모를 우울함. 그래서 '좋다'고 느낀다. [이런 게 좋으니 좀 이상한 사람인가?] 

   그래 놓고 보니 영화도 흥행이 될 만한 영화는 별로 좋아하지 않는다. 한창 영화를 봤을 때도 흔히 말하는 '대박 흥행' 영화는 이상하게 안 보게 되더라.(예전에 '영매'라는 다큐 영화는 우리 동네 영화관에서 나 혼자- 극장에 아무도 없는- 본 적도 있다. 

   나의 어떤 생각이 이런 취향을 만들었는지, 이런 취향의 결과가 내 생각을 만들었는지 잘 모르겠지만 아무튼 비주류적인 취향(이런 걸, 마이너리티 감수성이라고 해야 하나?)을 가진 건 점점 분명해지고 있다.  

   아이들은 이런 나를 가리켜 "이상한 샘"이라고 말했었다. "뭔가 좀 다른 샘"이라는 말도 흔하게 듣는 말이었다. 칭찬도, 욕도 아닌 가치 중립적인(?) 이런 말을 들을 때마다 어떻게 반응해야 할 지 늘 애매했다. 씩, 웃으며, "뭐가?" 이렇게 되물으면, 항상 "그냥요. 좀 이상해요." 이런 반응! 조금 더 어릴 때는 늘 '내가 뭐가 이상하지?' 이런 생각을 참 많이 했었다. 근데 시간이 지나니까 그것도 시들. 그냥, 그러려니 하면서 지낸다.  

   이렇게 무덤덤하게 지내게 되는데 가장 큰 이유는, 내가 나 자신을 "있는 그대로" 받아들일 수 있게 되면서부터인 것 같다. 못난 모습까지도 내 모습이라고 인정하게 되는 순간, 다른 사람의 못난 모습에서 내 못난 모습이 함께 보였으니까, 사람을 말할 때 조금은 조심스러워졌다.  

   이런 게 나이를 먹는다는 것인지, 나로서는 알기 어렵지만 이러다 영 물러터진 인간이 돼 있지나 않을지 심히 걱정이 된다. 하지만, 그것 또한 사랑해야 할 내 모습이겠지. 내가 아니면, 그 누가 나의 못난 모습을 사랑해 줄 것인가? 

   디어 클라우드의 노래가 꼬리를 물고 불러 온 내 생각은 여기까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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