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토요일 독서토론회가 있었다. 처음 해 보는 것이라 그렇게 기대를 한 것도 아니고, 앞으로 하다 보면 차츰 나아질 것이라고 생각하고 느긋한 마음에서 독서토론회를 열었다. 월요일에 수학여행을 가는 2학년들이면서도 토요일 오후에 12명이나 자리를 지켜준 것에 우선 놀랍기만 할 뿐이었다.

   처음에는 참가자들도 쑥스러운 분위기라서 자신의 생각을 말하고 나면 금방 침묵이 이어졌지만, 차츰 시간이 지나자 이야기들이 활발하게 오고 갔다. 간혹 이야기가 옆으로 흘러서 논점이 흐려지기는 했지만, 그래도 이내 제자리를 찾아 와서 토론이 진행되었다. 덩달아 나도 어떤 자세를 취해야할 지 몰라 논쟁을 유발할 수 있는 토론에 주도적으로 참여하게 되었다. (그렇지만, 토론의 분위기는 상당히 자유로웠던 것 같다.)

   참가자들의 의욕도 상당히 높아서 앞으로가 더욱 기대가 된다. 모두 정기 모임으로 전환하자는데 동의를 했고, 책 선정에 관한 내용과 토론 주제를 대한 의견, 구체적인 개최 일시에 대한 이야기와 토론 사회자의 역할까지... 다양한 점이 검토의 대상이 되었다. 서둘러 회의를 정리하고 나니 오후 4시가 되었다.

   교무실에 내려와 토론사회자와 잠시 이야기를 나누었다. 근데 충격적인 정보를 듣게 되었다. 사회자의 말에 따르면, 자기가 토론 참가를 권유했을 때 거절하는 학생들은 주로 세 가지 이유를 말했다고 한다. 느티나무선생님이 하는 거라서, 책 읽는 게 귀찮아서, 토론이 부담스러워서... 물론 그 중에서 가장 높은 비율은 제일 첫 번째라고 하였다. 허걱~! 나로서는 어이가 없을 따름이었다. 게다가 옆에 서 있던 OO이가 "선생님은요, 좋아하는 학생과 싫어하는 학생이 확 갈려요" 라는 말까지 전해줬다.

   아! 안 들었으면 더 좋았을 것을... 그 두 친구를 먼저 보내고, 교무실에 앉아서 잠시 숨을 돌렸다. 갑자기 쏟아지는 잠! 그 때부터 거의 정신을 잃고, 두 시간을 내리 잤다. 누구 말에 의하면 정말 축 늘어져서 잠을 잤다고 한다. 깨고 보니 토요일 오후 6시였다. 그렇게 허무하게 나의 토요일 오후가 가 버린 것이다. 서둘러 가방을 챙겨 집으로 오는 길.

   꿀꿀한 기분에 지하철을 타려고 터덜터덜 걸어오다 3학년의 OO이를 만나서 같이 걸었다. 나는 OO이를 잘 몰랐던지라-사실, 그 학생이 OO이라는 것도 나중에 알게 되었다.- 그냥 걸으면서 일상적인 이야기를 하며 오는데 내 수업을 들으면서 들었던 느낌을 자세하게 말해주는 것이었다. 생각지도 않았던 과분한 칭찬. 갑자기 또 힘이 쑥쑥 생기며 기분이 조금은 밝아졌다.

  이러면서 첫 번째 독서토론이 끝났다. 오늘 아이들은 수학여행을 떠났고 나는 다음 독서토론회에는 어떤 책으로 이야기를 한 번 해 볼까?하는 고민을 하고 있다. 내가 너무 쟁점에 집착하는지는 몰라도 논쟁이 될만한 책을 고르고 싶다. 이 글을 보는 '알라디너'께서 학생들이 읽기에 좋은 소설이나 책을 추천해 주었으면 한다.

   밤이 깊었다. 가슴 속에서 답답했던 이야기를 풀어내고 나니 한결 낫다.

[추신]

   토요일에 만났던 OO이가 이야기를 다 못 했다며 청소시간에 찾아왔다. 도무지 집중이 안 되어서 공부를 못 하겠다는 말을 했다. 내가 무엇을 해 줄 수 있으랴? 그냥, 단지 누군가에게 집중이 안 된다는 이야기가 하고 싶었던 것이겠지! OO이의 마음도 한결 나아졌으면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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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4-04-21 22:48   URL
비밀 댓글입니다.
 

   아직은 이름을 붙이기도 쑥스러운 수준이지만 이제 시작이니 앞으로 더욱 발전하겠죠. 자기 일처럼 관심 가져 주시고 또 도와주신 분들께 모두 고맙다는 인사 올립니다.

   덕분에 무사히 토론회가 끝났습니다. 우리 학교 2학년 13명 정도가 참여했답니다. 앞으로는 정기적인 토론회를 마련하기로 했구요. 아무튼 첫술에 배부를 수는 없지만 의미 있고 좋은 시작이었습니다.

   말을 너무 많이 했는지 무척 피곤하네요. 자야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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nrim 2004-04-17 21:51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앗.. 토론회 하셨군요.
시간 넉넉하다고 책이라도 읽어봐야지 했는데 벌써;;;;

비로그인 2004-04-17 23:38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우오우오우오...쫙쫙쫙! 거- 정말 잘 됐어요. 독서토론회가 더욱 활성화되었음 좋겠습니다, 화링요!
 

   미루고 미루었던 논어 스터디가 오늘 번개모임처럼 열렸다. 며칠 전에 한문 선생님께 연락을 드렸는데 그분이 워낙 바쁘시다보니 오늘 오후에서야 겨우 연락이 왔고, 오늘만 가능하다는 말씀을 해 오셨다. 나도  오늘은 별 일이 없는지라... 서둘러 같이 공부하기로 한 사람들에게 연락을 했다. 그래서 모인 분이 모두 네 분. 준비해 오신 김밥으로 저녁을 대충 먹고, 우리 학교 도서실에서 공부를 시작했다.

   사실, 예전부터 기초라도 한문 공부를 해 보고 싶은 생각이 있었다. 특히, 논어는 국어 교과서와도 관련이 많고, 우리가 일상적으로 많이 쓰는 말이 제법 많이 나온다. 물론 혼자하면 대충이라도 볼 수 있겠지만, 기억에 오래 남지는 않을 것 같고... 공부에 한계가 있기 때문에 선생님을 모신 것이다. 편안한 분위기에서 선생님 말씀을 듣다가 맨 마지막에는 강독하는 분위기로 바뀌었다.

   자기가 한 구절씩 읽고, 본문을 해석해 보고 그 의미를 추리해 보는 것이었는데 오늘 내가 읽은 구절이 다음과 같다.

  子貢曰 貧而無諂 富而無驕 何如 子曰 可也 未若貧而樂 富而好禮者也 子貢曰 詩云  如切如磋 如琢如磨 其斯之謂與 子曰 賜也 始可與言詩已矣 告諸往而知來者

   자공이 여쭈었다. "가난하면서도 아첨하지 아니하고 부유하면서도 교만하지 아니하면 어떻습니까?" 공자께서 말씀하셨다. "그 정도도 괜찮다. 그러나 가난하면서도 즐거움을 잃지 않고 부유하면서도 예를 좋아함만은 못하다." 자공이 여쭈었다. "시경에 '자르고 갈며 쪼고 문지른다.'라고 하였는데 이것을 두고 한 말 같습니다." 공자께서 말씀하셨다. "사(자공)가 비로소 함께 시를 이야기할 수가 있게 되었구나. 지난 일을 말해주니 앞 일을 아는구나."

   무엇인가를 배운다는 것은 신나는 일이다. 다음시간에는 예습을 꼭 해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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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발~* 2004-04-17 06:53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고등학교 샘이시죠?

느티나무 2004-04-16 23:46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비발~*님께...
예~!

비로그인 2004-04-17 01:40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컥.. 비발쌤여~ 구런 거 없수다! 쥔장보기를 해제하라!

비발~* 2004-04-17 06:57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무서워 무서워 복돌님 해제했사와요~ 글구 느티나무님. 울 엄마가 없다고 하라고 하시는대요? 버전이군요. 중학교 샘이면 독서토론회와 관련하여 원고청탁할 일이 하나 있어서 몰래(느티님 서재에 찾는 분이 많은지라...) 물은 거인디...쯔읍... 중학교 샘이 아니라 하시니 그냥 다 보이게 합니다.

푸른나무 2004-04-17 09:13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헉..논어라..저는 이제 천자문 하는디...

"化는 被草木 하고 賴는 及萬方 하니라"
덕화(德化)는 푸나무에까지 미치고 힘입음이 온 누리에 미친다.

명군...똑똑하고 슬기로운 임금이 용상에 앉으면 그 베풀어주는 힘이 백성뿐 아니라 땅 위에 있는 모든 미적이들 한테까지 미쳐 태평세상이 된다는 뜻으로 투표를 하면서 우리의 용상엔 언제쯤 명군이 앉을는지 ..... 아침에 논어..좋은 글을 대하니 짧은 글이 생각났습니다.


비로그인 2004-04-17 10:39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쌤(자공)이 비로소 함께 쥔장해제를 이야기할 수가 있게 되었군요. 지난 일을 말해주니 앞 일을 아시는군요! 끄덕~
 

   모처럼 여유로운 하루! 2시쯤에 나가서 투표하고 동네를 어슬렁거렸다. 이제는 집안 청소 중!! 청소기로 먼지를 치우고, 걸레로 방바닥을 싹싹 닦으니 개운하다. 역시, 깔끔한 게 좋다.

   정치인들도 깨끗하게 청소했으면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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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굼 2004-04-15 17:51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 아 저도 청소해야하는데...일이 있어서 컴퓨터에서 옴짝달싹 못하고 있네요.
투표는 물론 했지만^^;

모래언덕 2004-04-16 09:23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느티나무 선생님 투표 잘 하셨죠?
어제 늦게까지 선거결과 보고 자느라 좀 피곤하지만 상쾌한 아침입니다.
결과가 예술적이라는 느낌이 드는군요.
오늘도 좋은 하루 보내세요.

느티나무 2004-04-16 09:29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투표는 했는데... 우리 동네는 전국적 격전지였답니다. ^^; 결과가 예술적이라... 저는 욕심이 더 나던걸요.(과욕이겠죠? 그러나 몰락해야 할 정당이 재기에 성공하는 거 보면서 답답한 마음이 들기도 합니다. 지금도 최종 결과들을 여유있게(?) 구경하고 있습니다.)

2004-04-16 23:37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04-04-17 01:31   URL
비밀 댓글입니다.
 

   오늘은 기분이 엉망이다. 나는 아무래도 마음이 너무 여린 게 탈이다. 오늘은 월요일... 토요일에 이발도 하고, 나름대로 컨디션도 괜찮았고, 마침 휴일도 끼어 있어서 신나는 한 주가 될 것 같은 예감이었다. 그러나 이 예감은 몇 시간을 가지 못 했다. 문제의 아침 회의 시간!

   한 선생님께서 며칠 전에 있었던 교장선생님의 말씀에 대한 명확한 해명과 사과를 요구하셨다. 물론 사석에서의 발언이 아니고, 공식적인 회의 석상에서 나온 말씀에 대해서였다. 사석에서야 특정 단체에 대한 비하발언이 심심치 않게 들려 왔지만-왜 내가 있는 자리에서는 그런 일이 한 번도 안 일어날까?-, 오로지 사석이라는 이유 때문에 지금껏 참고 있었지만... 오늘 소개된 발언은 아주 충격적이었다. 그것도 학부모님들이 있는 자리에서 그랬다니 기가 막혀서 말이 안 나왔다.

   순간 얼굴이 화끈 달아오르고 속에서 울컥!  '아니, 선생들에 대해서 저런 생각을 하고 있었나?'하는 생각이 들었다. 나 참, 어이가 없어서... 내가 알기론 우리 학교 선생님들 모두가 열받은 날이었다. 그런 소리를 듣고도 열받지 않으면 그 사람은 쓸개가 빠졌거나, 아마 미쳤을 것이다.

   다행인지 불행인지 어물적거리며 사과하는 선에서 넘어갔으나 나는 교실에 들어가 있는 내내 우울했다. 왜 학생들에게 전심전력을 다하게 내버려두지 않을까? 왜 쓸데 없는 발언으로 사람들의 의욕을 꺾으려고 들까? 나로서는 알다가도 모를 노릇이다. 안 그래도 교육부의 엉터리 대책으로 학교는 다시 그 옛날로 돌아가는데...

   아무래도 이런 곳에서 이런 사람들과 어울려 살다가는 온 정신을 지킬 수 없을 것 같다. 무슨 대책을 세워야겠는데... 아, 선생들 말 참 잘 한다. 특히 다른 사람들과 어울릴 때는 진정한 교육자인양 행세하는 걸 보면 어쩌면 저럴 수 있을까? 하는 생각이 든다. 온갖 미사여구를 갖다 붙이고, 꼭 아이들을 위해서 이 한 몸 희생하겠다는 비장한 각오를 내비칠 때는 코미디가 따로 없다. 나 자신이 희화화되는 것이 싫다.

   토요일에 들은 말 중에서 기억에 남는 말, 

 "깨달음이 없는 지식은 허망하다. 행동이 없는 깨달음은 기만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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심상이최고야 2004-04-12 22:53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기만 (欺瞞) [명사] [하다형 타동사] [되다형 자동사] - 남을 그럴듯하게 속임.

'행동이 없는 깨달음'은 '기만'이라는 말을 들으니 참.... 요즘 같이 어수선한 날에는 비수처럼 와서 꼳히네요.^^;;

비로그인 2004-04-13 13:37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끄덕끄덕..반드시 교육분야에만 해당되는 것이 아니고 제 자신의 삶을 성찰하는데도 의미있게 다가오는 말 같습니다. 느티나무님, 만쉐이! 아, 글고 전상국의 '우상의 눈물', 어데까지 읽었더라...기필코 완독허겄습니다. 일케 꾸무럭거려서야, 원. 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