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토요일에 친구들을 만나 술을 마셨는데 친구가 내게 '차여본 적이 있냐'고 물었다. 나는 당연히 있다고 답했다. 그런 대화를 하노라니 울컥, 그때의 기억이 떠올랐다. 내가 그때 얼마나 울었는지, 얼마나 참담한 심정이었는지, 얼마나 많이 걸었는지, 그리고 얼마나 죽고 싶었는지. 친구에게 말했다. 그때 죽자는 생각도 했다고. 지금 생각해보니 미쳤지, 왜 사랑 때문에 죽어, 그런데 그땐 왜 죽고 싶었을까. 어휴, 그런 생각을 했었다는 게 어처구니가 없다, 고. 친구는 그건 '그때'였으니 그런거라고, 지금은 그때가 아니기 때문에 그렇게 생각할 수 있노라고 말했다. 동의한다. 동의하지만, 역시 고작 사랑 때문에 죽는다는 건 내가 할 짓은 아니라는 생각이 든다. 그러지말자. 물론 곰곰 짚어보면 내가 죽자, 고 생각했던 건 '사랑에 실패'해서가 아니었다. 나는 '내가 거부당했다는 것'에 충격을 받았던 것 같다. 사랑의 실패가, 사랑한다고 생각했던 상대와 이루어지지 못했다는 슬픔이 나를 쥐고 흔들었다고 생각했는데, 돌이켜 생각해보니 나는 내가 거부당했다는 것, 내가 그에게 받아들여지지 못했다는 것, 내가 그에게 가진 감정을 그가 가지지 않았다는 사실에 크게 자존심 상했던 것 같다. 공일오비의 노래 가사중엔 '사랑에는 자존심이 없는거야' 라는 게 있는데 나에겐 사랑보다 자존심이 위에 있는 것 같다는 생각도 동시에 했다. 내가 그때 참담하고 절망에 휩싸여 하염없이 걷고, 먼 곳에 있는 나의 후버까페에게 내 심정을 토로했던 건, 이제와 생각하니 '슬픔'이 아니라 '자존심 상함' 이었던 것 같다. 음...그랬던 것 같아. 뭐, 다 지나고나니 이런 생각을 할 수 있었던거지, 만약 그 상황이 내게 다시 한 번 닥친다면, 나는 내내 울면서 슬퍼 슬퍼 힘들어 힘들어 하게 될지도 모르겠다. 


그렇다고해서 내가 상사병으로, 누군가를 사랑하는 마음 때문에 죽을 수도 있다는 사실을 인정하지 못하는 건 아니다. 일전에 '전경린'의 소설 《황진이》를 읽으면서 상사병에 죽는 남자가 나왔을 때, 와 얼마나 좋은 마음이 극에 달하면 죽기까지 하나, 하는 생각도 했으니까. 이건 말이 안돼, 라기보다는 그 마음이 얼마나 컸던걸까, 했으니까. 그런데 여기, 상사병에 죽어가는 남자를 나는 또 만났다. 무려 '무라카미 하루키'의 소설에서.

















실린 단편들중 <독립기관>의 '도카이'는 결혼하지 않은 채로 여러 여자들을 만나며 지내고 있다. 그 삶에 크게 만족하고 지내다가 쉰이 넘은 지금, 한 여자에 대해 걷잡을 수 없이 사랑이 싹트기 시작한 것이다. 그래서 그녀를 너무 좋아하지 않기 위해 노력해야 한다.


"너무 좋아하면 마음이 힘들기 때문이죠. 못 견딜 만큼 힘들어요. 그 부담을 감당할 수 없을 것 같아서, 가능한 한 그녀를 좋아하지 않으려 노력하고 있어요." -<독립기관>, p.132


그가 그렇게 좋아하지 않기 위해 하는 노력에는 이런 게 있다.



"여러 가지가 잇어요. 다양하게 시도하는 중이죠. 하지만 기본은 최대한 네거티브한 걸 떠올리는 겁니다. 그녀의 단점을, 아니, 별로 좋지 않은 점을 생각나는 대로 뽑아내서 쭉 나열해봅니다. 그리고 만트라를 외듯이 머릿속으로 수없이 반복하면서, 이런 여자를 필요 이상으로 좋아해서는 안 된다고 나 자신을 타이르죠."

"잘되던가요?"

"아뇨, 별로 잘 안 돼요." 도카이는 고개를 저으며 말했다. "우선 그녀의 네거티브한 면이 잘 떠오르지 않아요. 실은 그런 네거티브한 부분에마저 내 마음이 끌렸던 거니까요. 도 한 가지는, 무엇이 필요 이상이고 무엇이 그렇지 않은지도 잘 분간이 안 간다는 겁니다. 그 경계를 잘 모르겠어요. 이렇고 종잡을 수 없는, 분별없는 마음은 난생처음입니다." -<독립기관>, p.133



"그녀보다 미모가 빼어난 여자나 그녀보다 몸매가 좋은 여자, 그녀보다 취향이 고상한 여자, 그녀보다 똑똑한 여자도 적잖이 만나봤어요. 하지만 그런 비교는 아무런 의미도 없습니다. 왜냐면 그녀는 내게 특별한 존재니까요. 종합적인 존재라고 하면 적합한 표현일까요. 그녀가 가진 모든 자질이 하나의 중심으로 단단히 연결되어 있습니다. 그 하나하나를 뽑아내 이건 누구보다 못하다느니, 더 좋다느니, 계측하고 분석하기란 불가능해요. 그리고 그 중심에 있는 것이 나를 강하게 끌어당깁니다. 강력한 자석처럼. 그건 논리를 뛰어넘는 일이에요." -<독립기관>, p.137



나는 그것을 의리라고 생각한 적이 있다. 내가 한껏 좋아하는 마음을 갖고 있지만 아직 우리가 어느 상태도 아니었을 때, 어떤 관계라 규정지을 수 없었을 때, 그 때 다른 사람을 만나고 유혹을 받았으나 꿋꿋이 버텨낸 일. 그것을 나는 의리라고 생각했다. 나는 짝사랑하는 상대에게조차 의리를 지키는 졸 멋진 여자라고 스스로를 생각해왔다. 나를 유혹하는 상대가 아름다운 손을 가지고 있다는 것, 근사한 장소로 나를 데리고 갔다는 것 따위를 장점으로 버젓이 위로 끌어 올려놓고는, 그럼에도 더 손이 못생기고 더 좋은 장소로 나를 이끌지 못했던 두고 온 상대를 내내 생각했고 결국 그날의 만남은 그저 지나가는 만남이 될 수밖에 없었다. 나는 그날 마주한 상대의 아름다운 손을 보면서도 내가 좋아했던 상대를 떠올렸고(그보다 손이 예쁘네), 그가 데리고간 아름다운 장소에서도 두고온 상대를 떠올렸다(그보다 센스가 있어). 그러나 그 '상대적으로 떨어지는' 그의 면면들이 내게 그를 포기할 이유를 주진 않았다. 이 남자와 그 남자에 대한 분석은, 무의미했다. 그는 그저 그로서 존재했고, 그저 그로서 나를 끌어당겼으므로. 이건 의리도 뭣도 아니었다는 생각이 든다. 이건 그냥 무작정 끌어당기는 거였다. 한마디로 나는 그에게 아주 그냥 홀딱 호오오오오올딱 반. 해. 있. 었. 다. 다른 남자 따위가 그 틈을 파고들 여지가 없었던거다. 그는 내게 그 누구보다 더 특별한 존재였다.



도카이는 그 특별한 존재로부터 그 사랑을 거절당해, 자신의 사랑이 받아들여지지 않아 서서히 죽어간다. 사실 내가 그의 곁에 있었다면 그건 죽을 이유가 안된다고, 무슨 그런 이유로 죽냐고 열심히 설득을 해보겠지만, 사실 본인이 본인의 고통을 끝내고 싶어한다는데, 죽음 말고 다른 방법이 없다고 생각해서 자신을 그토록 방치하는데, 나는 도카이가 아니고 도카이가 내가 아닌데, '그 이유로는 안돼' 라고 내가 어떻게 말할 수 있으며 또 어떻게 설득시킨단 말인가. 아, 쉰이 넘어 찾아온 이 사랑의 처절함이여. 차라리 찾아오지 말지, 왜 찾아와서 그를 이토록 바닥으로 바닥으로, 저 밑으로 보내버린단 말인가. 왜 그로 하여금 자신의 존재를 무(無)로 만들고 싶게 한단 말인가.




"중년 남자가 거식증에 걸리는 경우는 거의 없습니다. 하지만 도카이 선생님의 경우에는 증상만으로 따지면 명백히 거식증이었어요. 물론 선생님이 미용을 위해 그러셨던 건 아니죠. 제 생각에 선생님이 식사를 하지 않게 된 것은, 정말 말 그대로 음식이 목으로 넘어가지 않았기 때문입니다."

"상사병?" 나는 말했다.

"네, 그 비슷한 겁니다. -<독립기관>, p.158



"선생님은 꽤 오래전부터 그 여자와 진심으로, 정말 진지하게 만나셨어요. 여느 때처럼 가볍고 부담 없이 만나는 그런 관계와는 달랐죠. 그러다가 그 여자와의 사이에 뭔가 심각한 문제가 생겼던 것 같아요. 그리고 그 때문에 선생님은 살아갈 의지를 잃어버리셨고요." -<독립기관>, p.160




이번 하루키의 단편집 《여자 없는 남자들》은 내게 그렇게 좋지는 않았다. 나는 하루키에게 유머를 가장 기대하고, 내가 그간 하루키를 사랑했던 건 그 유머 때문이었는데, 이 책에는 유머가 등장하지 않는다. 그간 나는 하루키의 책들을 읽으면서-그것이 소설이든 에세이든- 쿡쿡대고 웃었던 일이 여러차례 였는데, 이번 책에 대해서는 한 번도 그런 경험을 하지 못한 것. 그점이 못내 아쉬워 좋다고 할 순 없지만, 유머를 뺀 자리에 하루키는 따뜻함을 넣은 것 같다. 지난번 장편소설 《1Q84》에서도 아오마메와 덴고 사이의 따뜻함을 느꼈는데, 이번 단편집에서 하루키는 사람과 사람 사이의 관계, 또한 자기 자신을 들여다봐야 하는 내밀한 따뜻함에 대해 얘기하고 있었다. 그건 단편중 <사랑하는 잠자>에서 특히 그랬는데, 나는 이런 부분이 무척이나 좋았던 거다.



"그나저나 이상한 일이죠." 아가씨는 사려 깊게 말했다. "세계 자체가 이렇게 무너져가는 판에 고장난 자물쇠 같은 걸 걱정하는 사람도 있고, 그걸 또 착실히 고치러 오는 사람도 있어요. 생각해보면 참 이상야릇하다니까요. 그렇죠? 하지만 뭐, 그게 맞는지도 모르겠어요. 의외로 그런 게 정답일 수 있어요. 설령 세계가 지금 당장 무너진다 해도, 그렇게 자잘한 일들을 꼬박꼬박 착실히 유지해가는 것으로 인간은 그럭저럭 제정신을 지켜내는지도 모르겠어요." -<사랑하는 잠자>, p.308



"당신을 다시 만날 수 있을까요?" 잠자는 마지막으로 다시 한 번 물었다.

"누군가를 보고 싶다고 계속 생각하면 언젠가는 틀림없이 다시 만날 수 있어요." 아가씨는 말했다. 이제 그 목소리에는 아주 조금 다정한 여운이 담겨 있었다. -<사랑하는 잠자>, p.309



그녀를 생각하고 그 모습을 떠올리자 가슴속이 아련히 따스해졌다. 그리고 자신이 물고기나 해바라기가 아니란 사실이 점점 기쁘게 다가왔다. 두 다리로 걷고 옷을 입고 나이프나 포크로 식사하는 것은 분명 몹시 성가신 일이다. 이 세계에는 배워야할 것이 너무도 많다. 하지만 만일 자신이 인간이 아니라 물고기나 해바라기가 되었다면 이렇듯 신기한 마음속 온기를 느끼는 일도 없지 않았을까. 그런 생각이 들었다. -<사랑하는 잠자>,p.311





어제 집에 돌아가는 늦은 밤, 나는 에피톤프로젝트의 <회전목마>를 들었다. 새로나온 에피톤프로젝트의 음반을 들으면서 아, 이번 앨범이 지난 앨범 보다 훨씬 좋다, 라고 생각하고 있었지만, 어젯밤에는 유독 회전목마의 가사가 귀에 쏙- 들어왔다.


슬퍼하지 말아요/ 기뻐하지 말아요/ 다 지난 일이야, 이젠 잊어버려요/ 다시 바람은 불고/ 우린 함께 있으니



아, 지금, 다시 바람은 불고 우린 함께 있으니, 라고 한거야? 와- 다시 바람은 불고 우린 함께 있으니-

'누군가를 보고 싶다고 계속 생각하면 언젠가는 틀림없이 다시 만날 수 있어요' 라고 말한 무라카미 하루키의 소설은, 이렇게 이 노래랑 연결되는 게 아닌가.

다시 바람은 불고 우린 함께 있으니-






이 노래를 듣는 순간에 내 주변으로 둥그렇게 커다란 막이 형성된 것 같았다. 나는 걷고 있고 내 주변에 사람들도 많았고 신호등은 여전히 초록색과 빨간색으로 번갈아 바뀌지만, 이어폰을 귀에 꽂고 이 노래를 듣는 나는, 내가 만들어 낸 별도의 원 안에 있다. 이 세계는 저들의 세계와 다르다. 내가 만들어낸 공간에서의 나는 조금쯤 붕- 떠있고, 내 주변의 공기는 내가 불러일으킨 감정으로 가득하다. 그 공간 속에서 나는, 크리스마스를 맞이하고, 행복하게 웃는다. 우린 함. 께. 있. 으. 니.
나는 웃고 또 웃는다.
나는 내 주변의 공기를 세상의 공기와 지금 당장 바꾸고 싶진 않아, 회전목마를 반복해 듣는다. 아이폰은 이미 <이 노래 반복>에 빨갛게 박스가 쳐져있다. 


차세정의 목소리에 대해 한마디 덧붙이고 싶지만, 내가 그의 목소리를 얼마나 사랑하는지도 말하고 싶지만, 이쯤하기로 한다. 














마지막으로,

알라딘의 이런 바람직한 이벤트!! (라기엔 증정품이 별로 안끌리는 군.. -_-)


읽고 쓰기 좋은 계절, 가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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레와 2014-09-23 17:20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난 어쩐지 이번 하루키 소설 좋아할 것 같아요.. 흐흣

지금은 글이 눈에 안들어오니 차차 읽어봐야지!

다락방 2014-09-24 08:53   좋아요 0 | URL
응 그럴지도 몰라. 나는 유머가 없는게 내내 아쉽더라고요. 난 하루키의 유머를 그 누구의 유머보다 사랑했는데.. 흑흑 ㅠㅠ

자작나무 2014-09-24 10:16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자존감이 강하지만, 함께 있고 싶은 락방씨.
까다로워..

다락방 2014-09-24 12:03   좋아요 0 | URL
뭐 그렇게 까다로운 사람은 아닙니다, 제가. ㅎㅎ 편한 사람이에요.

단발머리 2014-09-24 13:24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예습하고 싶지 않았는데, 다락방님 이야기에 빠져 다 읽어버렸어요. 저도 이 책 읽어봐야겠어요.

상사병으로 죽을 수 있죠.
혼불에서 그런 이야기가 나왔던것 같은데요. (몇 권인지는... @@ 모르겠구요.)
죽을 거 같다,가 아니라, 실제로 죽을 수 있다고 하더라구요.

저는 오래오래 살 겁니다. *^^*

다락방 2014-09-24 15:08   좋아요 0 | URL
저 혼불 3권까지 읽었는데 4권시작을 미루고 있었더니 내용을 다 까먹었네용?????

단발머리님. 우리 우래오래 살면서 오래오래 다정하게 지냅시다. 알았죠?
:)

단발머리 2014-09-25 08:33   좋아요 0 | URL
그럼요^^ 100세까지 88하게~~~

(넘, 길게 잡았나요?) ㅋㅎ

다락방 2014-09-25 08:33   좋아요 0 | URL
길다뇨! 천만에요!! 불로초를 구해 먹읍시다. 소문에 의하면 그게 정말 있다던데요. ㅎㅎ

nomadology 2014-10-20 09:24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잠자는 좀 유머러스 하던데요, 원래 원래 단편집에 실려있던건 아니라고 했던 것 같지만.
전 ˝여자없는 남자들˝이 마치 ˝100%의 여자아이˝의 짝을 이루는 버전 같이 느껴졌습니다. 늙었지만, 하루키는 여전히 젊네요.

다락방 2014-10-20 09:59   좋아요 0 | URL
저는 요즘 책을 읽는대로 족족 처분하고 있지만 하루키의 책장만큼은 건드리지 못하겠어요. 아주 오래된 책들도 책장에 꽂혀 있어야 좋아요.
잠자는 어떤 분들은 넣지 않는게 좋았다고 하시더라고요. 근데 전 좋았어요. :)
 

 

 

 

 

 

 

 

 

 

 

 

 

 

 

디킨스의 《위대한 유산》을 엄청 재미있게 읽었고 눈물도 흘렸던 터라 이 책도 잔뜩 기대하며 사두었었다. 자꾸 새로운 책을 사면서 이 책 읽기는 뒤로 미뤄지고만 있었는데, 동명의 뮤지컬을 보고 온 동생이 줄거리를 얘기해주는 바람에 이 책에 대한 잊었던 흥미가 살아났다. 동생은 내게 결말을 얘기해줬고, 그것은 어마어마한 스포일러였지만, 그렇다고 흥미가 떨어지는 게 아니라 오히려 더 기대가 되는거다.

 

어?? 그런 내용이었어? 그런데 그런 내용을 디킨스가 썼다고?? 와우-

 

정확히 이런 마음이었던 거다. 내용 자체가 흥미로운데 무려 디킨스라니! 그렇다면 얼마나 재미있고 나는 또 얼마나 감동할까!!

 

내가 가지고 있고 또한 읽은 이 책은 초판 3쇄인데, 꼭 한 번 짚고 넘어가야할 정도로 문장이 엉망이다. 내 친구중 한 명은 읽다가 포기했다고 했다. 도무지 읽을 수가 없었다고. 나 역시 몇 번이고 다른 출판사 책으로 다시 살까를 고민했다. 오타가 많은 것도 짜증나지만 문장을 두 번씩 읽어야 하는 경우도 허다했다.

 

 

국세, 교회세, 영주세, 지방세, 일반세, 왕에게 내는 세금, 지방세 등등, 이 마을의 근엄한 비문에 새겨진 명에 따라 이런 세금, 저런 세금을 내느라 아직 송두리째 먹히지 않고 남아 있는 마을이 있다는 게 신기할 정도였다. (p.164)

 

 

오타 정도가 아니라 단어를 잘라먹기도 일쑤고 위의 문장처럼 택도 없이 '지방세'는 중복되어 들어가 있기도 한다. 나야 원서를 본 게 아니니 실제로 원문에 '지방세'가 두 번 들어갔을지도 모르지만, 어쨌든 교정과 교열을 본 것 같지 않은 문장들 때문에 끝까지 읽으면서 어마어마하게 짜증이났다. 무려 디킨스를 이렇게 취급하다니! 하아-

 

 

그렇지만 이 책에 대해서라면 디킨스에 대해서도 아쉬움이 남는다. 프랑스 시민혁명 당시의 시민들의 잔혹함을 지적하는 건 있을 수 있다고 생각한다. 그 당시 억눌린게 많았던 시민들이 폭발하는 과정에서 당한 만큼 처절하게 응징하겠다는 마음이 잔인하게 표현될 수도 있었을테니 그것을 지적한데야 어찌보면 당연하다 할 수도 있을 것이다. 그러나 디킨스가 그리는 프랑스 시민혁명에는 우선 순위가 잔인함일 뿐이고 또 마치 그게 전부인 것처럼 여겨진다. 그러면서 영국에 대해서는 완벽하게 표현했다고나 할까. 그래서 자꾸 아쉬운거다. 왜그랬을까? 디킨스가 왜그랬을까? 왜 프랑스 혁명을 이런식으로 밖에 묘사하지 않았을까? 왜 영국을 이토록 칭송했을까? 다른 사람도 아니고, 디킨스인데..왜그랬을까? 글을 쓸 때는 어쩔 수 없이 자신의 생각이 고스란히 드러난다.  디킨스의 관점과 생각이 그랬다는 데 내가 무얼 어쩌겠는가. 나는 이 책의 줄거리를 듣고 이 책이 위대한 유산을 넘어서는 감동을 내게 줄거라고 생각했는데, 다 읽고 책장을 덮은 후에는 아, 위대한 유산을 따를 수가 없구나, 했다. '왜 그랬을까?' 하는 생각이 자꾸 들어서 이 대단한 결말에 제대로 감동하지 못했던걸지도 모르겠다.  물론 오타와 엉망진창 문장들 탓일수도 있을테고. 암튼 여러모로 아쉬운 책이다.

 

엉망진창 문장에도 불구하고 프랑스 혁명이 일어나기 전까지는 무척 좋았다. 나는 마치 '빅토르 위고'의 소설을 읽는 착각에 빠졌더랬다. 만신창이가 된 프랑스의 사회적 배경을 묘사하는 데 어찌나 가슴이 아프던지, 《레 미제라블》도 생각이 나고 무엇보다 《웃는 남자》가 많이 생각났던 거다. 웃는 남자에서도 귀족들은 자신들의 재미를 위해 멀쩡한 사람의 입을 찢어버리니까.

 

 

이 책의 마지막을 장식하는 남자주인공 '카턴'은 여자주인공 '루시'에게 사랑을 고백한다. 그러나 자신이 루시에게는 한없이 부족한 상대임을 본인이 알고있는 바, 사랑을 고백하되 그렇다고 그녀에게 결혼을 하자든가 사귀자는 게 아니다. 다만 그는 단 한 번, 자신의 마음을 고백할 뿐. 고백도 하면서 맹세도 한다. 자신은 앞으로 그녀가 누구와 결혼해서 어떻게 살든간에 그녀의 행복을 위해 뭐든 할거라고, 자신을 희생할 각오도 되어 있다고.

 

 

 

"이게 저의 마지막 간청입니다. 그리고 다시는 아가씨와 어울리지도 않고 또 아가씨와는 감히 건널 수 없는 차이가 나는 방문자를 맞는 일이 없게 해드리겠습니다. 말할 필요도 없지만 제 마음에서 우러나와 드리는 말씀입니다. 아가씨와 아가씨를 사랑하는 그분을 위해 저는 무엇이든 할 것입니다. 만약 제 경력으로 도움이 되어드릴 일이 있거나 희생할 기회나 능력이 된다면 기꺼이 아가씨와 아가씨가 사랑하는 분에게 희생할 것입니다. 이 말은 열렬한 저의 진심이니 조용한 때에 가끔 마음속에 저를 떠올려 주십시오. 때가 오겠지요, 머지않아 당신에게도 새로운 끈이 만들어지겠지요. 당신을 당신이 꾸민 가정에 부드럽고 강하게 묶어둘 끈 말입니다. 그 끈은 당신을 명예롭게 하고, 당신을 기쁘게 할, 가장 사랑스러운 끈이 될 것입니다. 아, 마네트 양, 행복한 아버지의 얼굴을 빼닮은 어린것이 당신의 품에 안겨 어머니를 바라볼 때나, 당신처럼 눈부시게 아름다운 어린 생명이 발치에서 당신을 올려다볼 때, 당신이 사랑하는 생명이 당신 곁에 있을 수 있도록 기꺼이 목숨을 바칠 인간이 있다는 사실을 기억해 주십시오!" (p.220-221)

 

 

저런 사랑은, 무언지 모르겠다. 어떻게 찾아들 수 있는지 모르겠다. 상대의 행복을 위해 목숨까지 바칠 각오라니. 맙소사. 이건 대체 무언가. 게다가 윽- 그는 자신의 말을, 자신의 맹세를, 자신의 각오를 잊지 않는다. 그는, 정말로,

 

그 렇 게 한 다.

 

 

나는 자신이 한 말을 자신이 지킬 수 있는 사람을 사랑한다. 그런 사람이 진정 가치있는 사람이며 함께 할 수 있는 사람이라고 생각한다. 수많은 약속과 허세 가득한 말들을 내뱉는 데에만 최선을 다하는 사람이 아니라, 지킬 수 있는 약속만을 입 밖으로 내뱉는 사람. 이렇게 할게, 라고 했다면 정말로 그렇게 하는 사람. 나 역시 그런 사람이 되고 싶고, 그런 사람을 만나고 관계를 맺으며 살고 싶은 바, 혹여라도 그저 말 뿐인 말만 내뱉는 사람이라면 그 사람이 현빈 같은 외모를 가지고 있다 하더라도 애정은 급속하게 식어간다. 나는 내가 좋아하는 사람에 대해서라면, 그가 자신이 한 말을 지키는지를 유심히 지켜본다. 말뿐이었다는 게 드러날수록 사랑하는 마음이 차갑게 식어가는 건 어쩔 수가 없다. 어쩌면 나는 '사랑' 보다는 '신뢰'에 더 큰 비중을 두고 있는지도 모르겠다. 그래서,

 

 

카턴이 좋았다. 그가 자신이 하는 말을 언제나 잊지 않고 가슴에 새기며 결국 그걸 지키는 사람이라서 무척 마음에 들었다. 그냥 내뱉는 말이 아니라 마음을 담은 말, 진심을 담은 말. 그런 말을 할 줄 아는 남자라 사랑하고 싶어졌다. 그러나 그는 먼 곳에 있고 이제는, 여기에 없다. 만약 내가 루시라면 죽는날까지 카턴을 잊을 수 없을 것이다. 그런 남자를 잊어서도 안되는 것일테고. 그렇지만, 그렇다한들, 그가 그런 결말속의 주인공이 된 건 무척이나 안타깝다. 그런 결말은 그가 그런 남자이기 때문에 올 수밖에 없는 것이었지만, 그런 남자니까 그런 결말을 맞닥뜨리지 않았다면 얼마나 좋았을까, 하는 이 미치겠는 마음 ㅠㅠ

 

 

 

하늘은 높고 어찌된 일인지 도처엔 연애 냄새 뿐이다. 목요일 퇴근길에는, 걷는데, 저기 내 앞쪽에서 한 여자가 내 쪽으로 웃으면서 마구 뛰어오는 거다. 그러더니 내 옆에 있던 남자 품에 폭- 안긴다. 헐. 이건..뭐지. 새삼 그녀가 너무 부럽고 예뻤다. 누군가를 향해 웃으면서 뛰어갈 수 있다니. 와- 이건 대체 뭐냐. 글쎄, 여느때의 나라면 그 장면에서 '그렇게 뛰는 날도 얼마 안남았을거다' 하고 시큰둥 했을지도 모를 일인데, 그 날은 되게 예뻐보이고 부러운거다. 뛰어갈 수 있는 사랑이라니! 덩달아 나까지 기분이 좋아져서 싱긋거리는데, 어쩐일인지 이번엔 또다른 남자가 통화하는 게 들린다. 나 지금 퇴근해, 곧바로 집에 갈게, 반찬이 뭐야, 라고 묻는 걸 보니 아내에게 전화하는 것 같았다. 아내가 무슨 반찬이 있다고 했는지는 모르겠지만(고기였을까...) 남자는 '밤에 같이 소주마시자' 라고 하는거다. 아ㅏㅏㅏㅏㅏㅏㅏㅏㅏㅏㅏㅏㅏㅏㅏ졸 부러워 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그 반찬 맛있을까? 퇴근후에 집에 돌아가 함께 사는 사람과 함께 마시는 소주라니!!!!!!!!!!!!!!!!!!!!!!!!!!!!!!!! 음주를 즐기는 사람과 함께 산다는 건 얼마나 복된 일인가!!

 

오늘은 방청소를 하고 쉬면서 거실에 나가 텔레비젼을 틀었다. [가족끼리 왜이래]라는 드라마가 방송 중이었다. 검색해보니 주말드라마였고 재방송중이었는데 일전에 이걸 보면서 내 생각 났다는 회사 동료가 생각나 가만히 앉아 보았다. 크- 일단 김현주가 ㅠㅠ 대기업 회장 비서 15년차................한숨이 나왔다. 저거 보고 세상 사람들이 비서는 다 저렇게 생기고 저렇게 옷입고 저렇게 일하는 줄 알면 어쩌지.................하고. 일전에 친구들을 만나  얘기하다가 내가 근무하는 회사의 '이사'에 대한 얘기를 하는데-너무 싫다고-, 친구들은 '이사'라는 직함에서 장동건 같은 분위기를 떠올리는 거다. 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아니야 얘들아, 그런거 아니야, 이사가 그럴 수는 없어 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장동건은 드라마니까 가능한 이사인거지 실제 이사는...............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아니야, 얘들아 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여튼 이 드라마의 문제는 여기서 끝이 아니라...상무가 김상경이라는 거다 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또 사람들이 상무는 다 김상경 같은 줄 알면 안되는데 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우리 회사에는 저런 상무는 하나도 없어 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상무 뿐만이 아니라 전무 부장 차장  다 집합시켜도 김상경 같은 사람은 없어 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뭐, 중요한 건 그게 아니고. 여튼 상무와 비서는 뭔가 서로 얄딱꾸리한 마음을 품고 있어서 상대에 대해 신경을 쓰고 있었다. 김상경 상무는 김현주가 '잘했다'고 한 게 생각나 자신의 뜻을 꺾고 아버지에게 '져'주는데, 그게 김현주 비서의 계획이었다는 걸 알고 무척 실망하고 있었고, 김현주 비서는 자신의 계획대로 됐지만 어딘가 모르게 찜찜해하는 장면이었다. 아, 자꾸 신경쓰고 그러는 거 그거, 상대에게 칭찬 듣고 싶고, 상대가 혹여라도 상처 받았을 까 신경쓰이는 그거, 니네 그거 사랑될텐데, 하면서 뭔가 꿈틀꿈틀한 기분이었달까. 뭔가 로맨스 소설을 읽고 싶어졌다. 잘 짜여지고 탄탄한, 게다가 긴장감 넘치는 로맨스. 그런데 책장에 저렇게 많은 책이 꽂혀 있는데 로맨스 책이 없다 ㅠㅠ 현대물 로맨스 소설 보고 싶은데 ㅠㅠ

 

 

여튼 그 드라마가 끝나고 채널을 돌리다가 이번에는 [꽃보다 청춘]을 보게 됐다. 처음 보는 거였는데, 아, 미치겠다. 유연석하고 같이 여행하고 싶어지는 거다. 쟨..뭐냐. 좋다.. 저 기럭지랑 어깨, 저 자상함. 아..삼겹살도 굽네.. ㅠㅠㅠㅠㅠㅠㅠㅠㅠ 자기전에 팔굽혀 펴기도 해!! ♡.♡ 안되겠다. 쟤랑 같이 여행가서 다이빙하기 위해서는 이대로는 안돼. 나도 운동해야겠어. 나는 얼른 스테퍼를 가져와서 그 위로 올라갔다. 그리고 그 프로가 끝날 때까지 열심히 스테퍼 위에서 땀을 흘렸다. 팔굽혀 펴기 하는 남자는 정말 멋진 것 같다. 팔굽혀 펴기는 남자가 할 수 있는 가장 멋진 운동인 것 같아....칠봉아.......

그들이 라오스의 블루라군에서 다이빙하는 장면을 보노라니, 홍콩에서의 마지막 날이 생각났다. 268개의 계단을 올라 저 먼 곳에 있던 바다를 보았던 그 순간이. 눈이 부셔 친구는 볼 수 없다고 했고 나는 썬글라스를 끼고 있어서 그 반짝임을 볼 수 있었다. 정말 반짝반짝해서 와- 하는 탄성만 내질렀던 그 순간이 떠올랐다. 아이폰을 대고 여러번 찰칵 했지만, 내가 보는대로 사진이 나오지 않아 아주 많이 야속했더랬지. 저어기- 저 먼 곳에 있는 바다가 눈이 부시도록 반짝반짝 했었는데!!

 

 

 

 

 

 

 

 

 

중고책 한박스를 만들어 편의점에 가 택배를 접수했다. 그리고 까페에 갔다. 이제 일요일 한 때의 동네 작은 까페 독서는 중요한 주말 일과가 되었다.

 

 

 

 

 

일요일 밤이 이제 이십삼분 남았는데....어쩌지.....잘까 책을 읽을까....초조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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레와 2014-09-22 10:46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그러니깐 내말이 그 말이에요.
드라마가 사람들을 다 망쳐놨어.
우리회사 X이사도...........................................................욕나오는 걸 간신히 참고 이사라는 직함을 불러줍니다.
아오 빡쳐.

꽃청춘의 유연석은 참 내 스타일이두만..ㅋㅋㅋ 그래도 락방이 마음에 들어하니 내가 양보할께요.ㅎㅎㅎㅎㅎ

근데, [두도시 이야기] 다른 출판사 버전도 있어요??
나도 저 책이 있는데, 도저히 못 읽겠더라고..

다락방 2014-09-22 17:41   좋아요 0 | URL
유연석 어깨 근육 봤어요? 아잉- 근육맨인데 사람이 젠틀하고 부드럽더라..멋져...레와님이 양보해준 건 고맙지만, 연석씨가 나한테 올라고 할까? 일단 나를 어필해야 하는데 어떻게 하면 좋지? 팬도 우라지게 많을텐데..나따위..하아- 그냥 짝사랑이나 하고 살아야겠다..

[두도시 이야기]는 최근에 창비에서 새로 나온 것 같은데, 그건 아무래도 펭귄보다 낫지 않을까 생각해요. 펭귄 진짜...아오...ㅠㅠㅠ 펭귄 팔고 창비로 다시 살까 이 생각도 하고 있음. -_-

blanca 2014-09-22 12:38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이건 정말 달콤한 페이퍼인데요. 저는 일욜 아침마다 <산너머 남촌에는>이라는 드라마를 보는데 거기 동창끼리 아주 조금씩 연애를 시작하는 그 모습이 너무 이쁘고 설레고 그런 거예요. 보통 요새는 드라마를 보면 다 유명 배우라 이건 연기다, 작위적이다, 이런 느낌인데 잘 안 알려진 배우 두 명이서 아주 아주 천천히 그것도 드라마의 중심 테마가 아닌 주변 분위기로 사랑을 시작하는 모습이 너무 현실적으로 느껴지면서.... 사랑하기 좋은 날들이에요. 다락방님도 어여 시작하시기를...아이스 커피 옆에 높인 하루키의 책이 비주얼이 훌륭합니다....

다락방 2014-09-22 17:44   좋아요 0 | URL
크- 연애를 시작하다뇨. 저는 보진 않았지만 얼마나 두근두근댈지 훤하네요. 연애는 시작할 때가 제일 예쁘고 제일 설레이고 제일 행복한 것 같아요. 동창끼리 시작하는 연애라니..히잉-

제가 본 드라마에서는 비서와 상무님이 사랑을 시작할 것 같더군요. 사내연애는 또 사내연애대로 재미있고 매력적이니까 앞으로 이 드라마를 챙겨볼까 싶습니다. 뭐, 드라마의 회장님부터 상무와 비서까지 모두 현실성 없지만 -0-

하루키 책은 다 읽었습니다! 으흐흐흐

아무개 2014-09-24 09:04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사람들은 나중에 이 장면을 회상했는데, 카턴이 허리를 굽혀 루시의 얼굴에 자신의 입술을 살짝 대면서 몇 마디 중얼거렸다고 했다. 그때 그와 가장 가까이에 있던 어린 루시는 나중에 사람들에게 그런 이야기를 들려주었고, 훗날 그녀가 고운 할머니가 되었을 때 손자들을 앉혀 놓고 카턴이 `당신이 사랑하는 사람을 위해`라고 말하는 것을 들었다고 했다. p.482

번역도 번역이지만, 읽는 내내 이 아저씨(디킨스씨) 말 엄청 많다..이러면서 읽었어요. ㅎㅎ
전 이 소설을 로맨스 소설이라고 생각했답니다.
`당신이 사랑하는 사라을 위해` 이구절에서 눈물이 왈칵 쏟아져 나와 정말 한참을 가슴치며 울었어요 ㅠ..ㅠ

다락방 2014-09-24 09:10   좋아요 0 | URL
저는 그부분에서 울 거라고 생각했는데 안울었어요...왜 안울지 왜 안울까...스스로 궁금했는데 답이 안나오더라는..제 친구도 이 소설을 연애소설이라고 칭하더라고요. 전 그저 로맨스 소설이라고 칭하기엔 무언가 더 있다고 생각하는데 그게 뭔지는 잘 모르겠어요.

그런데 아무개님도 책 읽다 우는구나.........
 

책을 샀다. 장바구니에 어떤 책을 넣고 어떤 책을 빼느냐로 고심하는 시간이 있었지만, 어쨌든 샀다.




그러자 냄비받침이 왔다. 내가 선택한건 선셋파크였는데, 오 너무 예뻤다!!



뭔가 얼굴 작아보이는데, 전혀 아니다. 이 사진을 찍어놓고 나도 놀라서 오, 나 얼굴 작어? 하고 이 냄비받침 들고 남동생한테 가서 얼굴을 가려봤다. 이렇게 똑같이 나온다. 대각선으로 들고 약간 떨어져서 가리면 누구나 다 가려진다. 아, 내 얼굴이 작은게 역시 아니었구나, 걍 얼굴 커도 가려지는거였어... 혹여라도 얼굴이 작을거라는 오해를 할까봐 노파심에 밝혀둔다. 어쨌든.


냄비받침이 너무 예뻤고, 나는 선물용으로 이 냄비받침을 하나 더 받기 위해 또 책을 샀다.




어제 도착한 이 책들은 당연히 아직 읽기 전인데(아, 맨 위에 두 권은 읽었다!!), 그래도 이 책들중에 어떤 책은 다 읽고난 뒤에 누군가에게 선물해야지, 하는 생각도 갖고 있다. 그게 중요한건 아니고, 저기 저 《불로의 인형》을 구매하면 얄딱꾸리한 음료를 덤으로 줬다. 이런거였다.



이게 ... 뭐냐... 본 적도 없고 수상하게 생겨서 나는 당연히 버릴라고 했다. 뭔가 수상해 내가 먹을 수가 없으니 다른 사람에게 줄 수도 없는 노릇 아닌가. 나는 엄청나게 소중하고, 그러니 정체가 불분명한 남자와 연애할 수 없으며, 같은 이유로 정체가 불분명한 음료를 마실 수 없다. 물론 이 이벤트를 기획한 출판사나 알라딘이 독자에게 먹고 정신 날아가는 음료를 줬겠느냐마는, 여하튼 수상하므로 버리자, 라고 생각했다. 내용물은 따라 버리고 캔은 재활용!! 


그런데 이 캔의 뚜껑을 따려다가 저 겉의 포장이 임시로 붙인거란 걸 알게됐다. 그건, 이벤트를 위해 '만든'게 아니라 기존의 음료에 포장만 덧붙였다는 의미가 아닌가. 오호라, 그렇다면 수상쩍은 음료가 아닐지도 몰라. 네 정체를 밝혀랏! 나는 저 종이를 힘을 주어 뜯기 시작한다.




오, 그러자 아는 음료가 나왔다. 참 착하네요~ 라고 수지가 노래 부르는 바로 그 음료가 아닌가!! 그런데, 이거 캔으로도 나오는 거였어?



그러므로 이 음료를 마시기로 결심했다. 그런데 내가 오늘은 원기왕성하니 보류. 일단 냉장고에 넣어두고 기력이 떨어져서 나의 육체가 비타민을 넣어달라고 하면, 그때 마시도록 하겠다. 그럼그렇지, 수상쩍은 걸 줄 리가 없지. 하하하하하.


사실 나는 이런 비타민 음료를 사마시지 않는데-내가 사마시는 액체라고는 술,커피,물이 전부-, 저거, 진짜 비타민 들었냐? 먹으면 막 불끈불끈 해지나? 머리도 총명해지고? 수지는 믿어도 좋은가? 흠. 모를 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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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해한모리군 2014-09-19 15:18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불로의인형 오늘 다 읽어가요~ 뭔가 영화같네요 ㅎㅎㅎ 얼굴도 작고 손도 예쁜걸요~ (속닥 : 다락방님 음료 겉에 내용물 이름이 적혀있어요...)

다락방 2014-09-19 15:56   좋아요 0 | URL
궁극의 아이도 되게 영화같아서 재미있었지만 제가 딱히 좋아하진 않았거든요. 불로의 인형도 영화같단 말인가요. 흐음... 여튼 여기저기서 다들 재미있다고 하네요. 어제 친구가 저한테 막 강추강추 했어요. ㅎㅎ

얼굴은 되게 커요 휘모리님. 누군가한테 얼큰이라고 불렸던 적도 있어요.(비밀 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 손은 족발같아요 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

저는 음료 겉에 내용물 이름이 적혀있는게-비타 블랙 말씀하시는거죠?- 그러니까 자기들이 그냥 그렇게 만들어서 적은건 줄 알았어요. 하하하하하하하하하하하하하

무해한모리군 2014-09-19 17:16   좋아요 0 | URL
네 영화시나리오 같아요. 음... 뭐랄까 재미는 있는데 제게는 자기만의 분위기나 스타일이 느껴지지 않는 작가예요.. 제 취향은 아닌걸로 ㅎㅎㅎ

다락방님 저도 먹어도 될까 엄청 고민하면서 마셨어요 음허허허

다락방 2014-09-19 17:51   좋아요 0 | URL
저는 《궁극의 아이》도 엄청 추천 받았는데 읽으니까 재미는 있는데 제가 좋아할 만한 스타일은 아니더라고요. 그래서 이번 신간도 관심 없었는데 또 엄청 추천을 받아가지고 그래, 한번 더 보자...했다능. ㅎㅎ 지금 읽는 책 다 읽고 시작할겁니다. 훗.

휘모리님도 저 음료 받고 고민하셨군요. ㅋㅋㅋㅋㅋㅋㅋㅋㅋ

에르고숨 2014-09-19 22:23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책 구성이 무척 멋져요. 종의 기원을 읽다, 계간문학동네, 밀양을 살다,,, 모두요. <리스본>도 드디어 사셨네요!
다락방 님과 동생님, 무척 닮은 손!이에요. 아름답습니다. (족발 아닌데효;;?)
금요일 축하합니다- `얄딱꾸리한` 음료가 숙취해소용으론 제격일 듯요.ㅎㅎ

다락방 2014-09-21 23:46   좋아요 0 | URL
ㅎㅎ 여기 나오는 손은 다 제 손입니다. ㅋㅋㅋㅋㅋ

다 읽고 싶어서 산 책인데 언제 읽게 될까요, 에르고숨님? 읽고 싶어서 여러권을 사두면 항상 또 다른 책이 읽고 싶어져요. ㅠㅠ 이건 무슨 마음이에요? ㅜㅜㅜㅜㅜ
하아- 에르고숨님은 금요일을 축하한다 해주셨는데, 흑, 벌써 일요일 밤. 이제 십오분 남았어요. 슬퍼요 ㅠㅠ

2014-09-20 05:35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14-09-21 23:53   URL
비밀 댓글입니다.

세실 2014-09-20 20:57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얼큰이라니 믿어지지 않아용^^
머리결도 고와라~~~
저도 선셋파크 받침 있는데 볼수록 참 예뻐요!

다락방 2014-09-21 23:54   좋아요 0 | URL
선셋파크 받침 예쁘죠? 저 오늘도 라면 끓여서 선셋파크 냄비받침에 냄비 받치고 먹었어요. 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 라면 국물도 흘렸어요. 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

해라 2014-09-25 09:21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ㅋㅋ 저도 아이스 퐁당해서 원샷했습니다.
수지를 덮어버린 저 대범함. (자세히 보면 내용물, 광동 비타500이라 적혀있습니다 ㅎ)
그나저나 장용민 작가님의 신작을 꿀꺽 다 읽고, 또 신작을 기다리는 이 마음이란...^^

다락방 2014-09-25 09:23   좋아요 0 | URL
아..저는 내용물 관동 비타500을 보지 못했군요! 이건 뭐냐..하면서 건성으로 본거에요. 그러니 껍질을 뜯어내며 정체를 확인하려고 ... ㅎㅎㅎㅎㅎ

저는 엊그제 사무실에서 너무 졸려 정신을 차릴 수가 없길래 냉장고에서 꺼내서 마셨어요. 근데 마셔봤자 계속 졸리더라고요. 그래서 또 커피를 마셨죠. 그런데도 계속 졸린거에요. 그래서 집에가서 밥먹고 씻고 바로 잤어요. 졸리면 그냥 자는 게 최고인것 같아요. -0-

저는 지금 불로의 인형 읽고 있습니다. 얼마 안남았어요!
 

"당신은 한 사람에게 헌신하는 관계가 두려워요?"

그녀가 물었다.

"아니."

내가 대답했다. 그렇지 않다. 나는 한 사람에게 헌신하는 관계에 아무런 문제도 없다. 내 문제는 내 심장을 길바닥에서 떼어내는 거다. 하지만 나는 마음의 준비를 했다. 우리 대화가 그녀의 옷이 마음에 안 드는 데에서 인생 자체가 우주적으로 마음에 안 드는 것으로 흘러가 버렸기 때문에.

"당신이 페어팩스로 왔잖아요. 난 당신이 정말로 한 번 더 기회를 갖고 싶어 한다고 생각했어요."

그녀가 말했다.

"맞아. 정말로 그래."

"그럼 왜 당신이 내 인생의 팔십 퍼센트 정도를 차지하고 있는 반면에 나는 당신 인생의 십 퍼센트만 차지하고 있는 것 같은 느낌이 드는거죠?"

"내가 더 작아서 그런 걸지도 몰라. 내 팔십 퍼센트가 네 십 퍼센트와 같은 크기인 거지."

내가 대답했다

"당신은 채움을 두려워해요."

"네 말이 맞을 거야."

내 단점에 대한 설교를 들을 때에는 거기 맞춰주는 게 최선이라는 사실을 이미 깨달은 바 있다. 어쩌면 그 설교에서 뭔가를 배울 수도 있다.

"당신도 헌신할 수 있지만 당신 마음이 진짜로 여기에 있지 않아요."

"그 말이 거의 정확한 거 같아." (p.411-412)

 

 

 

 

 

 

 

 

 

 

 

 

 

 

 

 

 

남자는 한 번 이혼했었고 지금 서른여덟 살이다. 여자는 스무살이고 '아직' 고등학생이다. 이 둘이 연인이 되어가는 과정이 쉽지 않다. 남자는 자신의 심장이 누군가에게 가기에는 다른 곳에 있다고 생각하는데, 여자는 이 점을 정확히 지적해낸다. 남자는 이 여자와 사귀는 것이 쉽지 않을 것이라 생각하는데 -어마어마한 나이차이를 보라- 여자는 그의 나이 같은 게 안중에도 없다. 여자를 돌보고 있는 여자의 이모와 이모부를 만나러 가는 게, 남자로서 부담되는 건 당연한데, 여자는 그를 소개시키는 것이 자연스럽기만하다. 자신이 이토록 나이 많은 남자를 만난다는 것에 대해서 부끄러워 한다거나 설명이 필요하다고 생각하지 않는다. 그녀의 이모와 이모부 역시 그를 그대로 봐준다. 와인을 좋아하는 성인 남자로, 자신의 조카와 잘 맞는 남자로.

 

 

"북페어에 대한 이야기는 잘 먹혔어?"

이것이 그녀가 왜 시내에 가는지에 대하여 우리가 미리 짜놓은 알리바이다.

"그냥 시내에 갈 거라고만 했어요."

"누구랑?"

"당신이랑요."

스바루로 가는 동안 신발에 자갈이 걸렸다. 나는 카테고리에 관한 설명(어떤 남자, 어떤 나이 많은 남자, 친구, 어쩌다 만난 사람)이 나오기를 기다렸다. 하지만 설명은 없었다.

당신이랑요. (p.94) 

 

 

사랑이 뭘까.

사랑은 어떻게 구성되어질까.

사랑에 대한 정의가 모두 다르다면, 당신과 내가 사랑하기 위해서 그 정의는 서로에게 일치해야 하는게 아닐까.

만약 당신이 나의 팔십 퍼센트를 차지하고 있는데 나는 당신의 십 퍼센트만 차지하고 있는 느낌이라면, 그때는 대체 어떤 식으로 이 사랑을 유지해나갈 수 있을 것인가. 한쪽은 좀 덜어내고 또 한쪽은 좀 키워가기 위해 노력해야 하는걸까. 그 노력은, 제대로 결실을 맺을까.

 

그러나 남자가 여자에게 말했듯, 내가 당신을 사랑하는 최대치가 십퍼센트일 수가 있다. 팔십퍼센트의 사랑이 있는데 그중에 십 퍼센트만 당신에게 썼다는 게 아니라, 애초에 내 안에 사랑이란 건 십 퍼센트밖에 없을 수도 있지 않을까. 그렇다면 당신을 십퍼센트만큼 차지하게 둔다면, 그건 온전히 모두 다 당신에게 줘버린 것일 수도 있지 않을까.

 

 

한 남자와 내가 대화할 때, 번번이 나는 그의 기억력에 감탄하곤 했었다. 어, 그걸 어떻게 기억해, 하고. 그는 항상 내게 말했다, 너에게 관심이 있기 때문이라고. 또한 그는 나에게 '지난번에 너한테 말했었는데' 라는 말을 자주 했다. 나는 그의 말들을 제대로 기억하지 못했다. 어느날 마주 앉아 그는 덤덤한 어조로 말했다. 나는 당신을 사랑하지만 당신은 날 사랑하지 않아, 라고. 내가 제대로 기억하지 못하는 건 내 머리가 나빠서가 아니라고 했다. 나는, 그 말이 맞는걸까, 맞지 않는걸까, 생각하느라 나는 당신을 사랑하지만 당신은 날 사랑하지 않아, 라는 말에 아무런 답도 하지 못했다. 시간이 흘러서야 나는 그 말을 인정하고 혼자 고개를 끄덕였다. 정확히 내가, 그의 입장이었던 적이 있었다는 사실이 떠올라서. 내가 상대로부터 '너 머리 좋다, 그걸 어떻게 기억해' 하는 말을 얼마나 많이 들었던가. 반면에 나는 그에게 '이 얘기 우리 지난번에 했었는데...'라고 말했던 적은 또 얼마나 많았던가. 그래, 기억하고 기억하지 않고는 머리가 좋고 나쁘고의 문제가 아니었다. 그것은 상대에 대한 관심이었다.

 

 

상대에 대한 관심, 그것을 기억하고 표현하는 것. 그것이 당신과 내가 같은 강도로 마주칠 수 있는 것이라면 그 사이는 어쩌면 오래 지속될 수 있을런지도 모르겠다. 그러나 나에게 당신은 팔십이고 당신에게 나는 십이라면, 우리가 이것을 번번이 느낄 수밖에 없다면, 우리는 어디로 어떻게 흘러가야 하는걸까. 내가 당신의 팔십이고 당신은 나에게 십이라면, 나는 자꾸만 당신에게 미안해야만 하는걸까. 그렇다면 그때는 또 어디로 어떻게 흘러가야 하는걸까. 결국 시간이 우리를 어딘가로 데려다줄 때까지, 그저 계속 가보아야 하는걸까. 나는 당신에게 팔십이고 당신은 나에게 십이니 우리는 서로 사십으로 맞추어야 하는걸까. 나는 그동안 어떤 식의 해결 방법을 내보이는 사람이었던가. 당신이 나의 팔십이었을 때의 나는, 가슴이 찢어졌으므로 돌아섰고, 내가 당신의 팔십이었을 때의 나는, 미안하므로 돌아섰다. 어쩌면 나는 돌아서기 위해 팔십을 혹은 십을 선택했었던 걸지도 모르겠다.

 

 

이 책은 아주 많은 것들을 연관짓게 한다. 가장먼저 생각하게 되는건 아이폰의 'siri' 이다. 내가 묻는 말에 대답해주는 '생명이 없는' 그저 '시스템'. 또한 영화 [그녀]도 생각난다. 시스템과 사랑에 빠지는 남자. 내가 불가하지 않다고 생각하는 일들.

 

'닥터바셋'은 남자의 아버지의 일기장을 토대로 만든 프로그램이다. 인간적으로 좀 더 인간적으로 만들기 위해 시스템을 훈련시키는 과정에서 남자는 이 컴퓨터로부터 의사였던 아버지를 느낀다. 그의 아버지가 살아있었을 적에 하지 못했던 대화를, 그는 '닥터바셋'과 나눌 수 있다. 이 대화속에서 그는 아버지를, 어머니를, 그리고 자기 자신을 좀 더 잘 알게 된다.

 

 

친구1: 뭔가를 정말로 사랑한다면 어떨까?

닥터바셋: 난 내 환자들에게 케첩에 대해 말하지. 케첩을 사랑할 수는 있지만 그걸 매일 먹고 싶지는 않을 거야, 안 그래? (p.120)

 

 

닥터바셋: 남자와 여자는 성별을 넘어서 친구가 되어서는 안 돼. 유혹이 생기거든. (p.186)

 

 

 

어쩌면 어머니가 옳을지도 모른다. 어쩌면 아버지에 대한 내 시야가 좀 더 넓어질 필요가 있는지도 모르지. 이런 대화속의 아버지는 훨씬 덜 엄숙하고, 더 행복해 보이니까. 부모님의 태도가 엄숙하다고 생각하는 건‥‥‥, 그건 미성숙한 사람의 태도이고 어쩌면 아버지와 내 관계가 미성숙한 상태로 멎어 버렸던 건지도 모른다. 아버지에겐 다른 면이 있었다. 윌리와의 우정, 병원에서 우스운 이야기를 모으던 것. 나는 이런 면을 잊고 있었다. 아버지가 석상처럼 딱딱하고, 가정생활에 대해 경건한 태도만을 견지하고 있었다고 기억했던 것이다. 하지만 어쩌면 가정생활은 아버지가 좋아하지 않았던 생활인지도 모른다. (p.187)

 

 

 

'채닝 테이텀' 주연의 영화 [서약]은 제일 처음, 남자의 독백으로 시작하는데, 그 독백에서 그는 이런 말을 한다. 우리는 다른 사람들과 맺는 관계로 이루어져있다고, 그게 나를 만든다고. 정확한 문장은 기억나지 않지만 저런 뉘앙스의 말이었는데, 바로 그 말이 이 책의 거의 마지막에 겹쳐진다. 경쟁회사에서도 당연히 인간적인 컴퓨터를 만들고, 닥터바셋을 구성했던 일기장을 몰래 스캔해 자신들의 시스템에 주입시키지만, 그 컴퓨터와 남자의 컴퓨터는 결과적으로 달랐다. 매번 질문을 하고, 그에 대해 수정작업을 거치며 그 대화를 이끌어가는 사람, 결국 그 컴퓨터와 대화를 하며 그 시스템을 점점 더 완성된 모습으로 변화시키게 되는 사람이 달랐기 때문에. 남자의 시스템이 좀 더 인간적인 평가를 받을 수 있게 되었던 건, 결국 그 컴퓨터가 '아들'과 대화했기 때문이다. 내가 당신을 만나서 이런 과정을 겪고, 또 다른 당신을 만나서 저런 과정을 겪었기 때문에, 그래서 나는 지금의 내가 되었을 것이다. 내가 지금의 내가 된 것은 당신 때문인 것이다.

 

 

 

"도시로 이사하는 건 어떻게 생각해? 평범한 옷차림으로."

내가 물었다.

"염두에 두고 있는 평범한 장소가 있어요?"

"내 아파트는 어때? 꽤 좋은 곳이라고 생각하는데"

내가 말했다. (p.452)

 

 

남자는 여자에게 같이 살기를 권하지만, 그 관계가 오래 지속된다거나 영원할 거라는 믿음을 갖고 있지는 않다. 어떻게든 그들의 관계도 변하게 될거라는 생각을 갖고 있다. 변하게 될거라는 가능성에 무게를 두고 있다고나 할까. 그럴 수도 있고 아닐 수도 있다. 변하게 될 가능성도 있고, 변하지 않을 가능성도 조금은 있다. 내가 지금 이런 사람이라고 해도 누군가와 함께 하느냐에 따라서 어떻게 달라질 지 모르는 거니까. 내가 이런 사람인 줄 몰랐어, 라는 말을 할 정도로 그는 그녀 한 사람에게 헌신하는 사람이 될 수도 있고, 자신의 구십을 그녀로 채울 수도 있다. 바닥에 떨어진 심장을, 그는 그녀로 인해 주울 수 있을 지도 모른다.

 

 

오늘 낮에 일자산에 오르면서, 목을 타고 흐르는 땀을 닦으면서, 나는 이 책을 생각했다. 계속해서 여자를 신경쓰지만 여자로부터는 '나는 너에게 십만큼만 차지해' 라는 말을 듣는 남자가 나 같아서. 어쩌면 내 심장도 바닥에 떨어져 있는건 아닐까, 하는 의문이 생겼다. 내 심장은 지금 어디에 있지? 혹시 바닥에 있으면 어쩌지? 그리고 그 바닥이 본래 자신의 자리라고 주장하면 어쩌지?

 

 

 

그리고,

이제는 진짜 소로를 읽을 때인가, 하는 생각도 했다.

왜 자꾸 소로가 나오지?

 

"난요, 음, 물건을 늘리지 않으려고 노력하고 있어요. 단순하게, 단순하게."

레이첼이 사과조로 말했다.

"소로를 읽어?"

나는 그녀를 다시 보았다. 놀랍고, 어느 정도는 기쁜 마음으로. (p.19)

 

 

내가 읽은 책, 은연중에 드러나는 나, 누군가 알아봐주는 사람. 이런것들은 어떻게든 맞물려 당신과 나 사이에 3만큼씩의 자리를 더 허락하게 되지 않을까. 서로에게 차지하는 비율이 점점 더 커지다가 결국은 평범한 옷을 싸들고 평범한 누군가가 사는 평범한 아파트에 들어가 함께 지내는 건, 어떤 기분일까. 그 때 내가 느끼게 되는 기분은 평범한 기분일까 평범하지 않은 기분일까. 평범하지 않은 기분을 느끼다 이내 평범해질까. 팅커가 월든을 주머니에 늘 꽂고 다녔었지. 나도 월든을 읽어볼까.

 

평범한 아파트에서 평범한 옷을 입고 평범한 사람과 함께 평범하게 지낸다는 건, 서로에게 핵심적인 인물이 된다는 걸 의미하는걸까. 결국 우리가 서로에게 비슷하게 팔십씩을 차지하게 되고, 그 팔십은 핵심이 될까. 그 팔십은 언제까지 유지될까. 우리는 서로의 핵심이 아니라면 그다지 행복하지 않은걸까. 행복은 상대의 핵심이 되는 순간 찾아올까. 나는 당신이 나의 핵심이 아니어도 행복한데, 당신은 나의 핵심이어야만 행복이 찾아온다면, 그런 때는 또 어떡해야 하나.

 

"어쨌든 난 그 사람과의 삶이 정말, 정말 좋겠지만 내가 그 인생의 핵심 부분이 아니라는 기분이 자꾸 들어. 이 방정식에서 나를 빼고 그 자리에 다른 사람을 채워 넣어도 여전히 똑같은 방정식일 것 같단 말이지. 달리 뭐라고 설명해야 할지 모르겠어. 그 사람은 사려 깊고, 내 관심사를 전부 다 알고, 나를 사랑해. 내가 감사히 여겨야 한다는 거 알아. 하지만 난 그냥 로또 당첨자 같은 기분이야."

뭐라고 말해야 할지 나는 알 수가 없었다. 그녀가 말하는 모든 것이 우리가 가졌던 것보다 훨씬 더 나은 것 같은데, 아니 최소한은 더 누릴 만한 것 같은데, 그런데도 그녀의 말투는 조금 우울하게 들렸다. 왜지? 그녀는 뭔가를 찾았고, 마침내 발견했다. 스스로 슬프다고 말하니까 슬픈 이야기인 거다. 혹은 스스로 불안해하니까 그런 거다.

"로또에 당첨 안 되는 것보다는 낫지 않아?" (p.479)

 

 

요즘에는 슬픈 느낌이 수시로 찾아들었다. 그 슬픔은 바로 저 방정식에 있었다. 나는 누군가에게 큰 자리를 차지하고 있었다고 생각해왔는데, 내 자리에 내가 아닌 다른 사람을 넣어도 상대에겐 변함없을 거라는 생각. 그 슬픈 예감이 틀리지 않은 것 같아서 자꾸 우울해졌다. 그렇다면 나도 그냥 그 방정식으로부터 빠져나와도 된다고, 나 역시 내 삶의 방정식에서 당신을 빼도 아무것도 변하는 게 없다고 생각하고 싶었다. 그러나 그 사람을 빼고 그 자리에 다른 누군가를 넣어 내 삶의 방정식을 지금처럼 그대로 유지할 수는 있겠지만, 중요한 건, 나는 그 사람의 자리에 다른 사람을 넣고 싶지 않다는 데 있었다. 나에게 삼십오만큼을 차지하는 것 같다고, 혹은 이십칠만큼을 차지하는 것 같다고 생각했었는데, 나에게 있어서 이십칠이나 삼십오는 아주 큰 퍼센테이지였던 것 같다. 반면 나는 상대에게 육십오쯤은 차지하고 있는 것 같았는데, 그 육십오의 자리를 다른 누군가가 대신할 수도 있겠다는 생각이 불쑥 들고, 한 번 들고나니 그 느낌이 사라지지 않아서, 이 예민하고 슬픈 느낌이 눈 앞에서 그대로 실현되며 내가 누군가와 바톤 터치를 하게 될 것 같아서 울적하다. 다만 이것이 지금 이 순간만의 멍청한 느낌이기를 바라야지. 당신 육십오에 내가 아닌 다른 사람을 넣는다면, 나도 내 이십칠에 다른 사람을 넣을 거야.

 

 

 

토요일엔 친구와 만나 소주를 마셨다. 2차로 옮겨 황태를 뜯고 맥주를 마시다가 우리는 충동적으로 유럽의 어느 나라 비행기표를 알아보았는데, 아무 예약도 하지 못하고 전화를 끊으면서 자리를 옮겼다. 야외에 테이블이 마련된 까페로 들어가 커피와 녹차롤을 시켜놓고서는 살랑살랑 부는 바람에 즐거워했다. 녹차롤은 맛이 없었지만, 뭐, 다음부터 안먹으면 되니까. 서로 몇 번이나 반복하여 얘기했다. 좋다, 좋다. 어쩌면 이렇게 날씨마저 우리를 도와줄까. 우리가 열시간 이상을 날아 다른 곳에 가게 된대도, 그 곳에서 아주 짧게 지내고 온다고 해도, 그래도 꼭 짬을 내어 그곳에서도 이런 시간을 갖자고 약속했다. 늦은 밤에 따뜻한 커피를 시켜두고 이렇게 마냥 앉아있자고, 그 곳의 기후를 있는 그대로 느껴보자고. 아마 분명 좋을거라고.

 

그 밤의 커피 사진을 올리려고 했는데 내 방의 노트북에서는 올려지지가 않네? 머저리 노트북...

 




 

어쨌든 그러지 않기를 그토록이나 바랐지만 일요일이 거의 다 지나가고 말았다. ㅠㅠ

 

 

 

 

 

 

 

 

아, 맞다. 토요일 밤에 들어와서 티브이를 돌리다가 재이슨 스태덤이 나오는 영화 [세이프]를 보게 됐다. 난 이런 영화가 있는지도 몰랐는데 '재이슨 스태덤판 아저씨' 라고 하는거다. 여튼 봤는데, 어휴, 내가 재이슨 스태덤을 좋아해서 좋다고 보긴 했지만, 그래도 사람을 너무 많이 죽인다. 액션도 좋지만 아저씨, 사람 좀 그만 죽여요. 물론 그들이 아주 잔혹하고 나쁜 범죄조직이긴 했지만 그래도 너무 인정사정 볼것 없이 너무 다 쏴죽이잖아... ㅠㅠ 물론, 소녀를 구해온 건 아주 잘했다고 생각해요. 그렇지만..그렇지만...

 

 

영화에서 재이슨 스태덤이 열한살 소녀를 조수석에 태우고 엄청난 속도로 달리는데, 엑셀을 밟기에 앞서 한 손으로 소녀에게 안전벨트를 채워주는 장면이 있었다. 그가 주연했던 영화 [트랜스포터]에서 자신의 집에 폭탄이 터지자 식탁 아래로 숨은 서기의 머리카락을 귀로 넘겨주며 괜찮냐고 묻던 장면과 겹쳐져, 나는 이 영화, 세이프가 구리다고 생각하면서, 또, 재이슨 스태덤에게 반해버리고 말았다. 아, 나란 인간, 어쩔 수가 없어...재이슨 스태덤은 내 안에 구십오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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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하(紫霞) 2014-09-15 08:19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운명이라는게 있다고 생각했는데 요즘은 아닌가? 그냥 타이밍의 문제인가 라는 생각을 하곤 해요.ㅋ

다락방 2014-09-16 14:49   좋아요 0 | URL
타이밍, 저는 그게 운명이라고 생각해요. 왜 하필 '지금', 왜 하필 너일까, 뭐 이런 개념으로다 말입니다.

2014-09-15 09:47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14-09-16 14:54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14-09-15 13:42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14-09-15 14:15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14-09-16 00:04   URL
비밀 댓글입니다.

봄밤 2014-09-15 19:45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그래요. 그런것 같아요. 그래서 일과 구가 만나는거라고 생각해요. 9와 9가 만나는것이 아니라. 그래서 기다림이 필요한 건지 모르겠어요. 여기까지, 마음이 클 때까지.

다락방 2014-09-16 08:42   좋아요 0 | URL
한쪽은 마음을 조금 덜어내는 시간, 다른 한쪽은 마음을 조금 더 키우는 시간이 필요한걸까요. 그래서 균형을 맞춰야 할까요. 균형잡히지 못한 사랑은 어느쪽에도 힘든 게 사실인 것 같아요. 또한 사랑이 균형 잡히기도 힘이 들고 말이지요.

단발머리 2014-09-15 23:03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어쨌든 난 그 사람과의 삶이 정말, 정말 좋겠지만 내가 그 인생의 핵심 부분이 아니라는 기분이 자꾸 들어. 이 방정식에서 나를 빼고 그 자리에 다른 사람을 채워 넣어도 여전히 똑같은 방정식일 것 같단 말이지. 달리 뭐라고 설명해야 할지 모르겠어. 그 사람은 사려 깊고, 내 관심사를 전부 다 알고, 나를 사랑해. 내가 감사히 여겨야 한다는 거 알아. 하지만 난 그냥 로또 당첨자 같은 기분이야."

이 문장이 좋은데, 그러면서도 너무 슬퍼요. 전 사실 누군가의 100%가 되고 싶지도 않고, 그런 적도 없거든요. 그냥 100%는 부담되서요. 생각해보니, 87%도 부담되고, 75%도 부담스러워요. 그냥, 67이나 68정도면 좋을 것 같아요.
원래 사랑이라면 물불을 안 가려야 (엥?) 되는 건데, 콩깍지 이론이요. 그런데, 그게 잘 안 되더라구요, 저는.

제 방정식에서 다락방님을 빼지 않을테니, 다락방님도 바쁜 일정에서 알라딘 페이퍼를 빼지마세요, 꼭이요!!

다락방 2014-09-16 08:45   좋아요 0 | URL
저는 물불을 가리고 싶어서 눈에 불을 켜고, 그래서 최종적으로 싱글인 게 아닌가 싶어요. 이것은 아마도 본인 성향의 문제겠지요. 왜 공일오비의 [너에게 들려주고 싶은 이야기]라는 노래 가사에 그런 부분이 나오잖아요. '사랑에는 자존심이 없는거야' 라는. 그런데 저는 사랑을 안하면 안했지 자존심을 포기하기는 싫거든요. 자존심을 포기하며 거머쥐는 사랑이라면, 저는 안갖고 말겠다, 가 되어버리는 것 같아요. 콩깍지를 언제든 벗을 준비가 되어 있는 자세랄까요. 저는 이런걸 더 견딜 수 있는 사람이기 때문에 이런 사람이 되었겠지요.(뭔말이지...?)


누군가에게 저는 늘 머리나 가슴 한쪽에 자리잡아 잊히지 않는 사람이 되고 싶고, 누군가에게 저는 항상 염두에 두는 사람이 아니기를 바라요. 그러나 제 바람은 언제나 그들의 것과 어긋나는 것 같습니다.

네네, 알라딘에 페이퍼 쓰는 일은 제가 기뻐하는 일이니 빼먹지 않고 써야지요. 헤헷 :)

단발머리 2014-09-16 13:55   좋아요 0 | URL
우아... 이 문장 오늘의 명언에 넣어야겠어요.

"자존심을 포기하며 거머쥐는 사랑이라면, 나는 안 갖고 말겠다."

완전 공감하며, 아멘~합니다^^

자작나무 2014-09-17 09:44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인간의 사랑은 자기애에 기초해 있어요.
인간은 자신보다 남을 더 사랑하지 않아요. 남을 사랑하는 경우는 자신이 그렇게 하고싶기 때문이죠. 사랑하는 행위를 통해 자신의 욕구를 보상받기 원하는 거예요. 사랑이 보상이 되지 못할 경우 사랑은 중단되어집니다.
그리고 언제나 그렇듯이 문제는, 남 역시 그렇게 생각한다는 거지요.

다락방 2014-09-17 09:48   좋아요 0 | URL
네. 남을 사랑할 때 조차도 '남을 사랑하는 나'를 사랑한다는 생각이 들어요. 인간의 사랑은 자기애에 기초해있고 인간의 사고는 모두 자기중심적이죠. 그건 어쩔 수가 없는 것 같아요.
 
이토록 슬픈

- 인천공항으로 가는 버스안에서 김어준의 파파이스를(미안한데 케이에프씨인줄 알았다;;) 들었다. 평소에 팟캐스트를 듣지 않는데, 유민아빠에 대해 김어준이 하는 말을 듣고 싶어져 부러 찾아 들었던 것. 창밖을 보며 듣다가 핑- 하고, 이 방송을 사람들에게 들려주고 싶다, 고 생각했다. 그래봤자 어차피 사람은 변하지 않겠지만. 나 역시 그렇지만, 사람은 자신이 보고싶은 걸 보게 되고 듣고 싶은 걸 듣게 된다. 자신의 최선이 다른사람에게도 최선이 될거라고 당연하게 추측하고 짐작한다. 그러나 나는 번번이 느낀다. 너의 최선은 나의 최선이 아니라고. 여튼 계속 듣는데 마지막에 파파이스에 대한 사람들의 의견을 듣는 부분이 있었는데, 이십대초반에서 중반인 듯한 여성이 '김어준이 너무 좋아서' 파파이스를 듣는다고 답했다. 김어준은 그녀에게 '시사에 관심이 있냐'고 물었고 그녀는 시사에 대해서는 전혀 모른다고 답했다. 이 말에 그 곳에 있던 사람들이 모두 웃었는데, 그녀는 나중에 덧붙였다. 김어준이 좋아서 듣기 시작한건데 시사는 전혀 모른다, 그러나 자꾸 들어보면 들리지 않겠느냐, 요즘엔 듣다가 검색해서 찾아보기도 하고 그런다, 고.


아!


나는 이 말이 무척이나 좋았다. 김어준의 '긍정적'인 영향력이 이 부분에서 발휘됐던 게 아닐까 싶다. 물론 더 알고 싶어하고 찾아보려고 노력하고 그렇게 공부를 한 건 그녀 자신이지만, 동기 부여를 김어준이 해준 게 아닌가. 스스로 알아나가고 공부하려고 하는 그녀가 무척이나 좋았고, 김어준의 긍정적인 영향력이 고마웠다. 그래서 막 결심해보게 되는것이다. 나도 긍정적인 영향력을 미치는 사람이 되어야지. 그러다 이내 의문에 휩싸인다.



어떻게??



어제는 퇴근후 남동생을 만나서 술을 마셨다. 둘이 소주와 맥주를 마시면서 나는 잔소리처럼 들리지 않아야할텐데, 염려하며 남동생에게 공부하라고 말했다. 뭐든 공부하라고. 영어든 시사든 뭐든, 계속 공부해, 라고. 그러자 남동생은 내게 이렇게 말했다.




누난 그만 좀 먹어.



아 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 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내가 또 막 할 말이 없네? 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





- 오늘 아침 출근준비를 하기 위해 눈을 뜨자마자 라디오를 틀었는데, 막, 이 노래가 나오기 시작했다.





크- 자연스레 대학시절 졸업여행이 생각났다. 제주도로 졸업여행을 갔다가 항공대랑 방팅했던 것. 하하하하. 이날 우리가 묵었던 숙소에 항공대 남자학생들이 우르르 몰려와가지고 함께 술을 마시며 방팅을 했는데, 시간이 흐를수록 술에 취하고 분위기는 무르익어갔고 그래서 몇몇이 일어나 노래를 부르기도 했다. 나는 벌떡 일어나 맥주병에 숟가락을 꽂고 무한궤도의 '우리앞에 생이 끝나갈 때' 를 불렀는데, 크- 얼마나 환호성을 받았던지. 밤이 늦을수록 자리에서 일어나 잠 자러 가는 학생들도 있었고 밤늦게까지 자리를 지키며 계속 노래를 부르는 학생들도 있었는데, 나는 당연히 후자였다. 그때 어떤 남학생이 토이의 이 노래를 불렀던거다. 남아서 자리를 지키던 우리는 남녀가 하나되어 이 노래를 따라 불렀는데, 나는 이 노래의 가사를 제대로 외우지 못하고 있던터라(지금도 모르지만) 아는 부분만 따라부르다 모르는 부분은 허밍으로 하고 그랬다. 참 즐거웠지...여튼 나는 그날 방팅에서 인기 캡짱이었다. 남자애들은 내가 노래를 시작하면 모두 하나되어 따라 부르고 모두들 나를 좋아했다. 내가 얼마나 어깨를 으쓱했던가. 그러나,

여행이 끝나고 학교로 돌아오고난 후에야...그 당시 인기 많았던 나를 제쳐두고, 남자아이들이 다른 여자아이들의 전화번호를 땄다는 사실을 알게 됐다. 그 밤을 보내고 누군가는 연인이 되어 있었고 누군가는 친구가 되어 있었다. 그날 거침없는 환호성과 우레와 같은 박수를 받았던 나의 전화번호를 묻는 남학생은 

아.무.도.없.었.다.


복도에서 마주치거나 교실에서 마주치게 되는 아이들은 내게 ''항공대 아무개가 너의 안부를 묻더라', '항공대 아무개가 너 되게 재미있대' 라고들 말했다. 이게 지금 뭔 시추에이션???? 뭐지, 이 들러리 된 기분은?????????????? 나는 내가 탑인줄 알았는데 사실은 묻힌 아이었어?????????????????????


히융. 하여간 남자들이란..........


이 생각을 하며 출근준비를 하다가 자연스레 축제 때 일도 생각났다. 대학 축제때 우리과 주점에서 남자 몇과 나를 포함한 우리 학교 여자 몇이 함께 술을 마셨다. 즐거운 시간이었고, 또 나는 인기 폭발이었다. 남자애들이 음악에 관심이 많았는데 내가 익스트림의 겟 더 펑크 아웃 을 극찬했던 것. 왼쪽 이어폰과 오른쪽 이어폰에서 나오는 소리가 다르잖아, 가운데 뇌에서 그걸 합쳐서 완벽하게 만들지 않아?? 남자애들은 나에게 맞다고, 너 진짜 대단하다고 하며 추켜세웠고, 나는 또 그자리에서 사교의 여왕이 되었다고 으쓱했는데, 우리중 한 여자아이가 취하자 한 남자가 택시를 잡고 집에 데려다주겠다는 거다. 그렇게 자리를 파했는데, 그 날 여자아이는 집앞에서 그 남자아이로부터 고백을 들었다고 했다. 너가 좋다, 고. 걘 그냥 내 말 듣고 웃기만 하고 박수만 쳤는데.....그러다 취하기만 했을 뿐인데....말은 다 나랑 해놓고............

물론 그 학생이 더 예쁘긴 했다. 버스 안에서도 남자가 말을 걸기도 했고, 케이블 방송에서 캐스팅을 당하기도 했었다. 박수와 환호성, 사교성은....아무짝에도 쓸모가 없어, 아무짝에도..........







그래, 너네는 예쁜 애들에게 고백해라. 나는 누노를 사랑하련다. 게리도 좋아요! 나는 이 영상이 좋다. 누노 멋져!! ♡.♡ 누노 이즈 갓! >.<



바야흐로 연애의 계절인가....


아, 내가 먼댓글 저 페이퍼에 단 이유가 있었는데 까먹고 등록했네. ㅋㅋㅋㅋ 어제 저 책을 갖고 싶다, 저 안의 사진을 보고 싶다는 내 페이퍼에 ㄱㅈㄱㅎ님께서 티브이 방송인 것 같으니 아쉬운대로 유튭 찾아봐라, 해주셨는데, 오, 아니나다를까, 있었다!!!!!





이 영상은 라자냐를 만드는건데, 나는 오늘 이 영상과 다른 영상들을 보며 새삼 나 자신에 대해 새로 알게됐다. 내가 보고싶은 사진, 내가 보고싶은 요리는 애피타이저나 디저트 보다는 메인요리 쪽이라는 것을. 햄과 베이컨, 고기가 들어가는 메인요리쪽의 사진을 나는 더 보고 싶다. 물론, 먹고싶은 것도 마찬가지이고. 아하하하하하하하하하하하하. 디저트 만드는 건 보다가 걍 꺼버렸다능. 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

역시 요리는 메인요리죠!! 육덕육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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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사는 건 늙어가는 일
    from 마지막 키스 2015-10-27 11:40 
    아주 오래전 신해철이 [밤의 디스크쇼] 디제이를 했을 때, 금요일이었나 토요일이었나 정확히 기억은 안나지만 청취자들로부터 엽서를 받아 그 주의 인기가요를 순위로 뽑아 틀어줬었다. 신해철에 대한 애정으로 듣던 나같은 사람이 많았는지 당시 1위는 계속 신해철의 노래가 했었는데, 그래서 신해철은 말했었다. 자신의 신곡이 나온것도 아닌데 자꾸만 디제이라고 1등하니 안되겠다, 여러분들이 보내주는 노래에서 신해철노래는 빼겠다, 라고. 그러나 애청자들은, 팬들은 그
 
 
세실 2014-09-12 10:55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호호호 다락방님. 남자들의 본심은 '천상 여자'를 좋아한다니깐요~~~~~~~
전 요즘 사무실에 카이의 세상의 모든 음악 잔잔하게 틀어놓고 듣고 있어요.

다락방 2014-09-12 12:52   좋아요 0 | URL
제가 지금 이 나이가 되어서 내린 결론이 있어요.
고등학생 대학생, 이십대 중반의 남자들에겐 특유의 허세가 좀 더 강하고, 그건 여자친구의 '외모'도 한몫을 한다는 겁니다. 그러나 성숙해지면서 그들도 알게 돼요. 외모는 무시하긴 힘들겠지만 '가장 중요한'것은 아니라는 사실을요. 그래서 저는 나이들고나서부터 비로소 연애가 가능해진 것 같습니다. 아하하하하하하하하하하하하. 뭐, 저 좋을대로 해석한겁니다. ㅋㅋ

포스트잇 2014-09-12 13:35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ㅎㅎㅎ ..., 근데... 다락방님, 남자를 진짜 좋아하긴 하시나요? 연애하고 싶어 죽을 만큼인건 하신건가요?

다락방 2014-09-12 14:48   좋아요 0 | URL
ㅎㅎㅎㅎㅎㅎㅎㅎ이건 무슨질문이죠? ㅎㅎㅎㅎ 저는 남자를 좋아하는데 그렇다고 연애하고 싶어 죽을것 같진 않아요. 연애는 하면 재밌고 안해도 상관없다고 생각합니다. 연애하고 싶어 죽을 것 같다고 생각해본 적은 없는 것 같아요.ㅎㅎㅎㅎㅎ 얼마전에 친구랑 얘기하다 이런 비유를 들었는데요. 남자를 나무에 비유하자면, 전 그 나무가 그냥 좋은거에요. 가로수길에 있으면 그런대로 좋고, 산에 있으면 그런대로 좋고. 다른 집 마당에 있으면 그런대로 보면서 좋지 굳이 그걸 뽑아다가 내 집 마당에 심어놓고 싶진 않은 그런거? 뭐 충분한 설명이 됐는지 모르겠습니다. 하핫

에르고숨 2014-09-12 23:07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금요일 나들이 왔어요. 아래 페이퍼의 '슬픈' 갈비뼈 책, 어느 작가의 뭐뭐지요!라고 할 수 있었다면 얼마나 반가웠을까, 하는 생각을 잠깐 했습니다.ㅎㅎ 무슨 책이에요? 아, 곧 리뷰로 볼 수 있겠지만서도- 쿨럭. 주말 잘 보내세요! ^^

다락방 2014-09-14 19:17   좋아요 0 | URL
아하하하 에르고숨님!
저는 정말로,
누군가가 그 책은 누구의 무엇이지요? 라고 해주길 바랐던 것 같아요. 만약 그랬다면 더 친근해지거나 더 친밀해지지 않았을까, 하는 생각을 해보았답니다. 그러나 세상에 책은 많고도 많아, 그런 우연은 일어나질 않았네요. 아쉬워라.

무슨 책인지는 이제 곧 아시게 될겁니다. 여기에 댓글을 달고나서 바로, 페이퍼를 쓸 예정이거든요. 졸려서 약간 갈등중이지만요. 잘까, 페이퍼를 쓸까..

주말, 잘 보냈어요?

치니 2014-09-15 09:23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아아, 이 글을 읽으니 제 대학시절 슬픈 추억도 떠오르네요. 타학교 남학생들이랑 같이 엠티를 갔었는데, 어떤 애가 제가 그 당시 가장 좋아하는(그러나 일반적으로 잘 모르는 희귀) 곡을 기타 치며 불러서 완죤 뿅 갔는데, 알고보니 그애들은 모두 저희 과에서 유명한 애들 둘이 올 줄 알고 따라왔다가 걔네들이 안 와서 재미없다며 툴툴, 할 게 없으니 노래나 불렀다고. 제 생각엔 그 유명한 애들은 예쁘긴 해도 매력이라곤 전혀 없는 애들이었건만, ㅠ 그 둘이 안 오는 바람에 나머지 수십 명이 오지도 않은 주인공들 때문에 들러리로 전락한 기분, 슬펐어요. 근데 예나 지금이나, 진짜 이쁜 애들은 그런 자리 안 온다는 거, 그 남자애들이 어려서 고걸 몰랐던 거죠. ㅋㅋ

다락방 2014-09-14 19:20   좋아요 0 | URL
그당시엔 매력=미모 였던것 같아요. 녀석들도 시간이 흘러 철이 들게 되면 매력이 미모로 대변되는 건 아니라는 걸 아주 잘 알게되겠지요. 만약 나이 들어서도 그걸 알지 못한다면, 그런 놈들은 얼간이, 상대할 필요도 없고 말입니다. 저 고등학교때도 비슷한 일이 있었어요. 수학여행 가서 단체사진 찍은걸 한 아이가 학원 남자애한테 보여준거죠. 그래서 미팅을 하게 되었는데, 남자 쪽에서 단체사진을 보고 여자애들을 찍었어요. 이 애들로 나오게 해달라고... 당연히, 저는 그 '찍힌' 아이들중에 없었답니다. 지금이라면 그 행동에 분개할텐데, 그때는 내가 미모로 선택받지 못한다는 사실에 우울했던 기억만 있네요. 아 분해..화내야 할 때 화도 못냈어...크- 역시 이것도 어려서 그런것 같아요.

자작나무 2014-09-17 09:46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요즘 들어 느끼는 것데 매력 중에 최고는
젊음입니다

다락방 2014-09-17 09:48   좋아요 0 | URL
동의합니다. ㅠ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