돈과 외로움














신문에서 이 책의 소개를 봤을 때 그 내용도 궁금했지만, 그 후에 책 표지를 보고 더 궁금해졌었다. 책 띠지의 작가 얼굴이 엄청난 훈남이었으므로. 크- 부드럽고 젠틀하며 섬세할 듯한 저 얼굴이 확- 끌어당긴거다. 그래서 이 책을 샀는데, 책 표지를 펼치고 난 후에 나온 작가 사진은 띠지와 좀 ... 좀 많이 ..... 다르더라. 뭐 어쨌든.


책 속의 노인은 부유하다. 집안 살림을 도와주는 도우미가 있고, 그 도우미에게 넉넉한 월급을 줄 수 있을 정도의 형편이며, 집에 눈이 쌓이면 인부를 불러 눈을 치울 수 있는 사람이다. 집 안에 커다란 욕조도 있고 모조품이지만 훌륭한 명화도 몇 점 진열되어 있다. 일전에 회사를 운영했으며, 지금은 자식들에게 그 회사를 물려주었다. 그 자식들이 가끔 노인을 찾는 건, 아직 그가 가지고 있는 돈 때문이다. 


부유해서인지 그는 고급진 음식을 잘 먹는다. 스테이크는 말할 것도 없고 오이스프 같은 이름도 들어본 적 없는 스프를 직접 만들어 먹기도 한다. 메론을 가지고도 뭘 하던데, 그 요리들의 이름은 내가 기억을 못하겠고. 어쨌든 마을의 어떤 젊은 미혼모를 좋아하고 있는 그는, 그녀를 초대해 저녁 식사를 하기로 하고 근사한 요리를 만든다. 그러나 약속시간에 그녀가 늦어 만들어둔 요리가 흐물흐물해졌다. 대신, 배고 고프다고 말하는 그녀를 위해, 노인은 간단히 명란젓 오차즈케를 만든다. 


명란젓 오차즈케는 먹어본 적이 없고, 생각만 해도 사실 그다지 먹고 싶다고 생각하는 요리가 아닌데, 노인이 만드는 걸 읽고 상상하노라니, 이 세상 가장 따뜻한 음식일 것 같은 생각이 들었다. 이 음식의 실제 온도와는 상관없이, 지금 배고픈 누군가를 위해 만들어낸 요리이니까. 식도를 타고 넘어가는 명란젓 오차즈케는, 입 안 가득 풍미를 줄 것이고, 식도를 데워줄 것이며 뱃속에 안착해 온 몸에 따뜻한 온기를 쭉쭉 전달하지 않을까. 


명란젓 오차즈케를 인터넷 검색해서 찾아봤는데, 책에서 노인이 그러했던 것처럼, 사람들이 손쉽게 만들 수 있는 요리인 것 같았다. 아무리 그래봤자 내가 하면 어마무시한 어떤 것이 되겠지만...그러다 일드 [심야식당]의 캡쳐 장면 속의 사진을 보게되었으므로, 출처가 표시되어 있는 그 사진을 가져와보도록 하겠다.





아, 언젠가 한 번 맛보고 싶어졌다. 누군가 내게 명란젓 오차즈케를 만들어준다면, 그 사람은 나를 사랑하고 있는 거라고 생각할 수 있을 것 같은 생각도 들었다. 사실 명란젓..싫은데.... -0-



나는 내가 먹는 것 자체를 좋아하지만 다른 사람들이 먹고 사는 일에도 아주 관심이 많다. 다른 사람이 손수 차린 밥상을 들여다보는 일이 내게는 아주 큰 기쁨이다. 그들이 차려낸 상이 육덕진 고기로 가득한 게 아니라도, 나는 그 상 위에 놓여진 것이 그 무엇이라도 좋다. 쭉쭉 찢어 먹을 수 있는 포기김치여도 좋고 무말랭이 하나만 반찬으로 둔 채 밥 한 공기를 담아둔 상을 보는 것도 좋다. 족발과 보쌈이 놓여진 상도 물론 좋지만, 오이와 당근을 먹기 좋게 잘라 쌈장 옆에 둔 상을 보는 것도 행복하다. 수북하게 담은 물기 있는 상추를 보는 것도 흡족하며, 물 말은 밥에 오이지만 있는 상이어도 좋다. 그가 차린 밥상이 무엇이든, 누군가의 밥상을 들여다보는 일은 내게 기쁨이다. 아, 저 사람은 저렇게 잘 먹고 살고 있구나, 하는 느낌이 든다. 나는 사람들이 각자 자신의 몫을 충실히 살며, 자기를 자기가 챙길 수 있기를 원한다. 


지난 주말 남동생은 [나는 자연인이다]를 보면서 맥주를 마시는 순간이 세상에서 제일 행복하다고 했다. 나는 그렇게 말할 수 있는 녀석을 보는 게 매우 좋았다. 내가 언제 행복한지를 아는 것, 내가 언제 스트레스를 받는지를 아는 것은 무척 중요하다고 나는 생각한다. 그러므로 내가 언제 행복한지 내가 아는데, 거기에 간섭을 하는 것이 싫다. 내가 찾아낸 내 방법에 대해서 그것이 옳지 않다고 말하는 것이 과연 현명한 일일까? '너를 생각해서', '너를 위해서' 라는 말로 내 행복을 그만 두라고 하는 일은 하지 않았으면 좋겠다. 나는, 먹는 일이 즐겁고, 누군가 잘 먹고 있다는 것을 확인하는 것이 즐겁다. 다른 사람의 밥상을 확인하는 일은, 그 사람의 생에 대한 의지를 보는 것 같아 즐겁기도 하다. 아, 이 사람은 이렇게 먹고 있구나, 나는 다른 사람들이 각자의 자리에서 각자가 선택한 음식들로 또 한 끼를 지내는 일들이 무척이나 소중하게 느껴진다. 피자와 콜라를 본다고 해서 그게 나쁘게 느껴지는 것도 아니고, 유기농 야채가 가득하다고 해서 그게 더 건강하게 느껴진다는 게 아니라, 누군가가 자신이 먹을 혹은 자신이 사랑하는 사람과 함께 먹는 밥상을 차린 그 자체로 행복해지는 거다. 



그런 나는 인간 자체에 대해 관심이 많은 건지도 모르겠다. 아니, 그런 것일게다. 일전에 친구와 대화를 나누다가, 친구가 내게 그런 말을 했었다. '너는 엄마를 딸로써 보는 게 아니라 인간대 인간으로 보고 있다'고. 어제 미숙이랑 대화중에 미숙이는 후배를 생각하는 '언니 마음'에 대해 얘기했는데, 나는 '언니 마음'이 되어 후배에게 '그런 남자 만나지말라'고 조언하지 않는 사람이라는 것을 깨달았다. 나에게는 언니 마음, 누나 마음 같은게 절대적으로 부족하구나. 아니, 아예 그런 게 없는 것 같다. 나는 그저 그 사람을 한 사람의 인간으로 보고 그 사람이 겪어야 할 것이라고 생각하고 있구나. 나쁜 남자를 만나서 상처를 받는 게 나쁜걸까, 를 생각해보면 그렇지 않은 것 같다는 결론이 나오는거다. 받아라, 뭐 어때. 순진하다, 상처받기 쉽다, 고 해서 나쁜(남자인 듯한)남자를 피하는 것이 살아가는 지혜이고 안전일까, 를 생각해보니 나로서는 '아니'라는 답이 나오는거다. 언제까지 순진한 채로 살 수도 없고, 언제까지 상처를 에둘러 갈 수도 없으니까. 자기 사랑, 자기 상처는 모두 자기 경험에서 나오는 것이 아닌가. 내가 원래 이런 성향의 사람이었는지 아니면 늙어가면서 바뀐건지는 모르겠지만, 나는 '딸의 마음' 이나 '언니 마음' 같은 건 없는 것 같다. 이것이 좋고 나쁘고의 문제가 아니라, 나는 그냥 이런 사람인거다. 언니 마음이 되어 누군가에게 조언할 수도 없는 사람이며, 언니 마음으로 누가 나에게 조언하는 것도 받아들일 수 없는 사람인 듯하다. 내가 인간대 인간으로 대하듯 인간대 인간으로 나를 대하는 것을 나는 환영하는 것 같다. 


음..그래서 내가 언니들하고 별로 안친한가? 언니란 호칭은 내 여동생이 나를 부를 때 말고는 다 별로인 듯.



다시 음식 얘기로 돌아가자면, 그러므로 나도 누군가를 위해 명란젓 오차즈케를 만들어주고 싶다. 아마 나는 내가 요리를 진짜 못하기 때문에, 요리 병신 이기 때문에 누군가의 요리에 정신을 잃고 매혹되는 걸지도 모르겠다. 당신이 이 음식으로 온 몸 전체가 따뜻해지기를, 맛있어서 기뻐하기를, 꾹꾹 눌러 담긴 나의 애정을 온 몸으로 느낄 수 있기를 바라면서 요리를 하고 싶다. 그 요리는 무엇이면 좋을까. 꼭 명란젓 오차즈케 일 필요는 없으니 무언가 다른 요리를 생각해봐야 겠다. 다락방 표 특제 김치찌개 라든가, 음...... 버터된장찌개...???



제기랄. 버거킹의 갈릭스테이크 버거가 먹고 싶다..아침부터..




















이제 이 책을 읽어야겠다 싶어 책을 펼쳤다가, 나는 이런 긴 헌사를 만나게 된다.



내가 난생 처음 연애편지를 보낸 사람은 당신이었지요. 이 책 역시 당신에게 보내요. 당신에게 말을 걸기 위해서죠. 앤소니, 당신은 내가 아무 거리낌 없이 속마음을 털어놓을 수 있는 유일한 사람이에요. 당신은 나의 가장 충실한 청취자, 그리고 나의 영원한 사랑이에요.




신형철의 신간 소식에 흥분했다가, 그의 헌사에 대한 소식을 듣고 신형철이 시시해졌었다. 친구의 말을 빌자면 '만원짜리 청첩장'을 내가 사지는 않을 거라고 생각했다. 내가 그를 내 마음대로 생각했구나, 라고 내 눈에 덮인 콩꺼풀이 떨어진 느낌이었다고 하면 될까. 그래놓고 왜 벨 훅스의 이 서문을 가만히 한참을 들여다보게 된 건지 모르겠다. 이렇게 노골적인 애정의 표현을.


'내가 난생 처음 연애편지를 보낸 사람은 당신이었지요' 라는 문장이 자꾸 밟혔다. 나는 누구에게 보냈지? 라고 생각하다가 이내 약간 아쉬워졌다. 그때는 보낼만했으니 보낸 것이고, 나는 그때의 감정에 충실한 거였지만, 지금 와서 저 헌사를 들여다보노라니 '아, 나의 첫 연애편지가 그에게 향한 것이었다면 좋았을 텐데' 라는 생각이 들었던 거다. 첫 연애편지를 그에게 보낼 순 없었으니, 이런 식의 찐한 헌사라면 어떨까, 하고 생각해보지만, 역시 이렇듯 노골적이고 아름다운 애정을 과시하는 건 내 스타일이 아닌 것 같다. 나는 이렇게 할 수 없는 사람이구나. 난, 그저 수줍은 여자...(  ")




아ㅏㅏㅏㅏㅏㅏㅏㅏㅏㅏㅏㅏㅏㅏㅏㅏㅏㅏㅏㅏ정말이지 갈릭스테이크버거가 너무 먹고 싶은데 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버거킹은 사무실에서 먼데 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그냥 막 뛰쳐나가서 우적우적 먹고 들어올까ㅏㅏㅏㅏㅏㅏㅏㅏㅏㅏㅏㅏㅏㅏㅏㅏㅏㅏㅏㅏㅏ내가 그래도 될까 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조낸 먹고싶다 진짜 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눈앞에 갈릭스테이크버거가 막 둥둥 떠다녀 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




오늘 나의 배경음악은 '심규선'의 <신이 그를 사랑해> 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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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오늘의 요리 9
    from 마지막 키스 2016-10-21 09:31 
    그러니까 먼댓글로 연결된 저 때부터, 나는 사랑하는 사람을 위한 요리를 해보고 싶었다. 오차즈케는 어떨까 생각했지만 한 번도 안먹어봤으므로 뒤로 밀려났고, 나는 그렇게 이 요리 저 요리를 하나씩 해보기 시작했다. 그리고 번번이 실패했다. 모양도 별로고 맛도 별로인 요리들만이 내 손으로부터 나왔다. 나는 영 요리에 재능이 없어, 떡볶이도 김치찜도 바보같이 해...라고 절망했지만, 그러나 좌절하진 않았다. 내 주변의 모두가 내가 요리를 이제 '그만'하길 바
 
 
moonnight 2014-11-26 12:34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일본 영화나 책을 보면 오차즈케에 대한 얘기가 많이 나오던데, 저는 보리차에 밥 말아 먹는 거랑 비슷하려나? 생각해요. ㅎㅎ 분위기 없는 인간-_-;
갈릭스테이크버거 드셨길 바라며^^;

다락방 2014-11-27 17:00   좋아요 0 | URL
네, 오차즈케 먹어본 친구도 그냥 물에 밥 말아 먹는거랑 비슷하다고 하더라고요.
그래도 약간 다를 것이고, 그 다른 맛이 혹시 매력있진 않을까, 살짝 기대하고 있어요.
혹시라도 나중에 만들어 먹게 된다면 인증샷 올릴게요, 문나잇님. 감상과 함께 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

mira 2014-11-26 14:06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저도 버거킹버거가 먹고 싶네요 전 와퍼세트로 ㅠㅠ

다락방 2014-11-27 16:59   좋아요 0 | URL
전 치즈 와퍼를 좋아했었지만 언젠가부터 변심하여 갈릭스테이크버거를 사랑하고 있습니다.
사랑은 움직이는 것이죠.

Mephistopheles 2014-11-26 14:28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그냥 간간한 녹차국물에 밥 말아먹는 느낌이에요.....

하지만 다락방님은 절대 네버 젯다이 오차즈케같은 건 만들지 마세요.

왠지 녹차국물에 버터를 녹일 것 같으니까요.

다락방 2014-11-27 16:59   좋아요 0 | URL
간간한 녹차국물도 알고, 밥 맛도 알지만, 녹차국물에 밥을 말아 먹으면 어떤 맛인지 아직 경험해본 적이 없으므로 일단 녹차국물에 밥 부터 말아먹어봐야 겠습니다. ㅋㅋㅋ

녹차국물에 버터라...음...음....(상상한다) 나쁘지 않을것 같은데요? 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

조선인 2014-11-26 16:30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명란젓 오차즈케 맛없어요. 속닥속닥

다락방 2014-12-01 18:04   좋아요 0 | URL
제 생각대로 맛...없나요? 저 그거 먹으러 일본 가고 싶은데.. -0-

레와 2014-11-26 16:31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기승전 갈릭스테이크버거. 주옥같은 글은 결국 갈릭스테이크버거를 위한 밑거름일 뿐.
그래서 먹었어요???!!!! ㅎㅎㅎ

명란이 비릿한데 그걸 물에 만 밥에 넣어서 먹는다니, 생각만해도 비릿해요..ㅎㅎ;;;
일본 드라마 소설 만화등에 제일 많이 나오는 음식중에 하나일텐데, 이 음식은 유일하게 안 땡기는 메뉴에요.

다락방 2014-11-27 16:58   좋아요 0 | URL
갈릭스테이크버거는 나중으로 미루겠습니다. 다이어트다이어트 (하아- 나 입술에 빵구났숑-)


오차즈케 만들때 명란젓을 그냥 넣는게 아니라 프라이팬에 살짝 구워서 넣는 것 같더라고요. 그래서 심하게 비릴것 같진 않은데, 어쨌든 저도 명란젓은 딱히 안땡기고요. 저는 나중에 오징어젓을 좀 구워 볼까 생각중이에요. 아님 오이지도 좋을것 같고 무짠지도. 여튼 나만의 따뜻한 음식을 만들어서 사랑하는 사람에게 대접하겠어요!! >.<

서니데이 2014-11-26 19:55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심야식당 보면 명란젓, 연어, 매실 셋 나오는데, 그 중 어떤 게 나을까요. ^^;
`아가서`가 The song of solomon 란 건 처음 알았어요. 그럼 솔로몬의 노래... 가 되나요.
(성경책은 워낙 긴 책이라서... ^^; )

다락방 2014-11-27 16:57   좋아요 0 | URL
저는 오이지가 좋을 것 같아요! 물말아서 오이지 얹어 먹는 바로 그 느낌?

그나저나 서니데이님 섬세하시네요. 전 서니데이님 댓글 읽고 다시 가서 봤더니 이제야 `아가서`가 보입니다. 하핫

2014-11-26 21:23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14-11-27 16:56   URL
비밀 댓글입니다.

앤의다락방 2014-11-27 06:51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명란젓 오차스케 먹어보고 싶어요😍

다락방 2014-11-27 16:55   좋아요 0 | URL
저는 명란젓 대신 오징어젓을 선택해서 먹어보고 싶습니다. 따뜻따뜻한 음식일것 같아요.

2014-11-27 08:45   URL
비밀 댓글입니다.

다락방 2014-11-27 16:55   좋아요 0 | URL
한시간만 있으면 퇴근할 수 있고, 퇴근하면 바로 자주리라! 생각했지만 가서 조카들하고 놀아줘야..겠죠. 크-

비로그인 2014-11-27 16:33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갈릭스테이크버거 드셨나요? 빨리 알려주세요! ㅎ
전 다락방님께 등뼈김치찜을....꼭!

다락방 2014-11-27 16:55   좋아요 0 | URL
아니요, 아직....다이어트 중이므로(응?) 참을 수 있는데까지 참아볼겁니다. 불끈!
그렇지만 등뼈김치찜...을 소주와 함께 주신다면, 그건 사양하지 않겠습니다. 호호 ^0^

잠자냥 2024-04-15 12:56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어디가 빻았죠???? 저 단어 때문인가???
아니면... 기승전 갈릭버거타령 때문? ㅋㅋㅋㅋㅋ

다락방 2024-04-15 13:52   좋아요 0 | URL
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 네 단어가 ㅋㅋㅋㅌㅋㅌㅌㅋㅋㅋㅋㅌ 아무튼 좀 빻은 것 같아요 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
 











지난 20년간 나는 유럽, 미국, 그리고 개발도상국에서 활동하면서 북반구의 동료들이 누리는 수준으로 지식을 발전시키는 데 기여하는 수학자들이 치러야 할 대가는 무엇인가에 대한 물음을 늘 간직해왔다. 시간이 지나면서 알게 된 사실은 개발도상국의 가장 뛰어난 인재들이 유럽과 미국에서 대학을 다니고, 그들 중 절반 이상이 고향으로 돌아가지 않아 두뇌유출에 한몫한다는 것이다. 나머지 중 일부는 의욕이 고취되어 고향으로 돌아간다. 그러나 몇 년이 채 지나지 않아 연구는 저지되고 만다. 능력이 있으니 고등학교에서 수학을 가르치기 시작하고, 가르친 학생 중 최우수 인재들은 외국에 나가서 공부를 계속한다. 이렇게 악순환의 고리는 좀처럼 끊을 수 없다.
빈곤과 보건 문제로 골머리를 앓는 개발도상국 정부는 연구를 할 여유도 없고 투자를 해야겠다는 생각도 없다. 가난한 나라에서 태어나서 능력을 발휘하지 못하는 천재들이 얼마나 많으며, 그로 인한 손실은 또 얼마나 될까 하는 생각이 들지 않을 수 없다. 우리는 기회가 균등하게 주어진다면 인류 전체가 과학 발전에 기여할 수 있다는 것을 알고 있다. (알리 샴세딘, p.115)




나는 경향신문을 구독하지만 회사의 상사는 조선일보와 한국경제를 구독한다. 나는 내가 보는 신문을 뒤에서부터 대충 훑고 간혹 상사의 책상위에 놓여진 신문의 제목들을 들여다본다. 그때마다 경향신문과 조선일보가 얼마나 다른 관점을 가지고 있는지 그 차이를 확인한다. 경향이 내 생각과 비슷한 쪽이라면 조선은 볼 때마다 빡치게 하는 스타일이라 할 수 있는데, 오늘 1면에서는 울산에서 무상급식을 하지 않음으로 인해서 얼마나 양질의 급식을 제공하는지, 다른 교육청에서도 울산에 전화해서 니네 급식 어떻게 하니, 라고 묻는다는 기사를 다루었다. 그러면서 한 학교의 선생님을 인터뷰했는데, '무상급식 안한다고 욕을 먹었었는데 이제는 사람들이 우리에게 방법을 물어온다'고 했다. 


사람마다 생각이 다를 수 있다는 것을 알고 있다. 그러므로 아이들에게 무상 급식을 주는 것이 좋지 않다고 생각하는 사람이 있다는 것을 나는 '안다'. 안다고 해서 그들에게 동의할 수 있는 건 아니다. 아이들에게 밥 한끼 공짜로 주지도 못하는 나라가 대체 뭘 얼마나 더 생각하고 얼마나 더 앞으로 나갈 수 있단 말인가. 위에 《수학자들》 인용문처럼, 결국 제대로 지원해주지 못한다면 인재는 빠져나가고 말 것이며, 그런채로 악순환이 반복될 것이다. 얼마전 트윗에서는 안젤리나 졸리의 말이 여러차례 리트윗 됐는데, 안젤리나 졸리가 빈곤국의 아이에게 '네가 불쌍해서 도와주는 게 아니라, 네가 우리의 미래이기 때문이야' 가 그것이었다. 왜 이나라는, 아이를 우리의 미래로 보지 못할까. 어쨌든 돈 있는 집 '아이들'은 돈을 내야 된다고 생각하는 게, 좀 소름 끼치지 않나? 아이에게 밥 한끼 먹이는 거, 그게 왜그렇게 어려운 걸까? 일전에 부산에서는 고등학교까지 무상급식하겠다고 하는 기사를 보았는데, 시의 여러 부분에서 세금을 좀 빼와서 그렇게 만들겠다고 했다. 내가 지지하는 쪽은 이런 쪽이다. 다른 걸 아껴서 아이들에게 밥 한끼 무료로 주겠다고 말하는 쪽. 학교에 책상이 놓이고 걸상이 놓이고 칠판과 분필이 놓이듯이, 그렇게 밥 한끼를 주면 안되는 걸까? 꼭 그 어린 애들에게 '너는 있는 집 자식이니 돈 가져오고 너는 없는 집 자식이니 주는거 받아먹어' 라고 말을 해야 할까? 아이들과 아이들과 아이들 틈에서 돈 있는 애와 돈 없는 애를 굳이 갈라놔야 할까? 



얼마전에는 깜짝 놀랄 정도로 놀라운 생각을 하는 웹툰 작가의 웹툰을 보았었다. 그가 그리는 웹툰은 내 생각과 너무 달라서 이게 뭐야, 아니 이 사람은 정말 이렇게 생각해? 하고 놀라웠는데, 그는 평범한 가정의 가장이었다. 아내가 있고, 아이가 있는. 문득 그런 게 궁금해졌다. 저 사람의 가족은 아마도 저 사람과 비슷한 생각을 하고 살겠지. 같은 생각을 하고 있기 때문에 서로 사랑하고 가정을 이루게 된 게 아닐까. 저 생각을 하는 남자와 저 생각을 하는 여자가 만났기 때문에 사랑할 수 있었던 게 아닐까. 바라보는 방향이 같아야만 그 두사람이 사랑할 수 있는 건 아니지만, 일단 나의 경우에는, '나로서는', 그렇게나 나랑 다른 방향을 바라보는 사람을 사랑할 자신이 없다. 내가 사랑할 수 있는 사람이라면 무상급식을 지지하는 사람이었으면 좋겠다. 음식점에 가서 일하는 사람들에게 반말을 쓰지 않는 사람이어야 하고, 아이에게라도 처음 만난다면 존대말을 해줬으면 좋겠다. 동성애는 동성애 자체로 보고(그들은 아픈 사람들이니 불쌍히 봐주자 이런 개소리 말고), 홍콩 시위대를 응원하며, 인종 차별을 반대하는 사람이었으면 좋겠다. 의료보험과 철도의 민영화를 반대하는 사람이었으면 좋겠고, 세상의 반대편에는 굶주리는 아이들이 있다는 것을 알고 있는 사람이면 좋겠다. 적극적인 행위로 앞에 나가 행진하는 사람은 아니지만, 약자 편에서 세상을 볼 수 있는 사람이기를 원한다. 개인의 사유재산은 중요하지만, 그 사유재산을 지키기 위해서 다른 사람들에게 돌아가는 걸 어떻게든 막아보려는 그런 사람이 아니기를 원한다. 모든 일의 중심은 '나'이지만, '나'를 위해 타인을 희생시키지 않으려고 노력할 수 있는 사람이었으면 좋겠다. 있는 집 자식들한테까지 뭐하러 무상 급식을 제공하냐고 말하는 사람을, 더 돈을 많이 내서 더우리는 더 좋은 의료보험 혜택을 받자고 말하는 사람을, 왜 내가 돈을 더 내서 가난한 사람들 병원비까지 내줘야 하냐고 말하는 사람을, 나는 도무지 사랑할 자신이 없다. 그 사람이 그 자신의 논리로 나를 설득한다 할지언정, 나는 이런 부분들에 대해서라면, 같은 방향을 보는 사람을 사랑할 수밖에 없다. 사랑은 이유가 없다지만, '그럼에도불구하고' 상대를 선택하는 게 사랑이라지만, 전혀 다른 곳을 이상향으로 보고 걸어가는 사람이라면, 그런 사람과 어떻게 손잡고 갈 수 있을까. 




경비원 분신한 아파트에서는 모든 경비들을 전원 해고 하겠다는 통보를 했다고 한다. 막말을 계기로 아, 우리가 지금 다른 사람에게 무슨 짓을 한거지? 라고 숙연해질 거라고 생각했는데, 세상이 내가 생각한대로 굴러가지 않는 다는 것을, 처참하게 깨달았다. 한편 대통령은 중국방송에서 '근본적으로 나라가 안정 속에서 바른 방향으로 나가는 것에 대해 걱정을 하지 않고 살고 싶다'는 바람을 피력했다는데, 하아- 정말 모르는걸까. 돈 없고 힘 없는 사람들이 지금 이 나라가 바르게 나아가지 않고 있는 현실에 대해 걱정하고 두려워한다는 것을. 이럴때면 나의 상식과 너의 상식이 이렇게 부딪힐 수밖에 없는 건가, 한숨이 나온다. 


모든걸 종합해서 얘기하자면, 이 나라가 걱정스러운 나라가 되는 것은, 이 나라가 걱정스러운 행태로 굴러가고 있기 때문이다.



그나저나

신문, 끊어버릴까..





어제 친구가 재이슨 스태덤의 영화가 개봉한다며 예고편을 보내주었다. 

세상에, 무려 '제니퍼 로페즈'랑 커플이란다.



예고편은 여기 ☞ http://tvpot.daum.net/v/vfa2faW40i5WUScpi0UU0px




제니퍼 로페즈가 되고 싶어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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레와 2014-11-25 11:14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더러운 정치판에 지들의 권력싸움을 위해 아이들 밥을 가지고 장난을 치다니. 나쁜새끼들.

다락방 2014-11-25 12:37   좋아요 0 | URL
무료로 지하철을 이용하는 노인들조차도 무료로 아이들에게 밥을 먹이는 것에 대해서는 찬성하지 못하는 걸 보면 사람은 확실이 자기 중심적이긴 한가봅니다. 으이그 싫어..

아무개 2014-11-25 12:02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1.짧은 제 생각으론
걍 애들 가리지 말고 다 먹이고.
돈 많은 부모는 세금을 더 내고, 아닌 부모는 덜 내면 되는게 아닐까요.
어차피 세금으로 애들 밥 먹이는거니까요.
그래야 조세의 형평성에 맞는걸테니...
그런데 박씨가 절대 부자 증세는 안하려고 하니
없는 사람들 입장에서는 부자애들까지 왜 쳐먹여야 하냐 라는 볼멘 소리가 나올수 밖에 없겠죠.


2.나의 상식이 옳은 걸까요?
나이들 수록 내가 아는 것들 내가 믿는것들에 대해 점점 더 자신이 없어져요.


다락방 2014-11-25 12:40   좋아요 0 | URL
돈 많은 부모가 세금을 더 내는 것이 문제가 되는 게 아니라, 돈 많은 아이가 급식비를 내니까 문제가 되는 것 같아요. 아이들때부터 `우리 부모님은 급식비 못주는데`를 생각하며 살아야 한다면 정말이지 너무 비참한 것 같아요. 부자애들까지 왜 먹여야 하냐고 볼멘 소리를 하는 게 비단 없는 사람들 뿐만은 아닙니다. 있는 사람들도 그 얘긴 합니다.

그래서 저도 그런 생각을 해요, 아무개님. 내가 정치를 한다면 그렇다면 지금과 많이 다른 것들을 개선할 수 있을까? 제가 개선이라고 생각하는 것이 과연 정말 개선일 수 있을지, 그건 참 의문스럽긴 해요.

배고프네요. 제니퍼 로페즈에 오늘도 한걸음 더 가깝게 다가가기 위해서 저는 점심을 굶어야겠지만, 일단 많이 먹는걸로 쇼부를 치고.... 대신 머릿속에 제니퍼 로페즈 생각을 하는 걸로다가...킁킁.

바이런 2014-11-25 12:52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마지막줄 ㅋㅋㅋㅋㅋㅋ 북플통해 만나니까 좋네요, 다락방님~

다락방 2014-11-25 14:13   좋아요 0 | URL
앞으로 자주자주 만납시다, 바이런님!
제니퍼 로페즈가 되는 그날까지. 아자아쟈!!

네꼬 2014-11-25 13:59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경비원 해고 소식은 듣고도 못 믿겠음. 평범하고 악한 사람들이 그렇게 많아요. 나도 누군가에게 그러겠지 싶어서 슬프고 무서워요. (혹시 내가 그러고 있는 걸 다락님께 들키면 따귀 한 대 부탁합니다.)

다락방 2014-11-25 14:15   좋아요 0 | URL
저도 어처구니가 없었어요. 아니..뭐라고? 어떻게 경비원 전원을 해고할 수 있을까요? 제 상식으로는 이해불가..암튼 대단한 일자리를 가진 대단한 아파트이십니다. 뭐, 다른데라고 별 다를 바 없겠지만요.

네, 네꼬님. 우리 서로 이상한 길로 간다 싶으면 이리와, 하면서 끌어당기고 따귀도 날리고 그러자고요. 평범하고 악한 사람들이 되지 않도록 해요, 우리. ㅜㅜ

blanca 2014-11-25 14:27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절절이 공감해요. 안 그래도 오늘 카톡으로 여동생과 경비원 해고 관련 얘기 했었는데 ... 자꾸 우울하고 믿기 힘든 비상식적인 뉴스만 들리니까 너무 우울해져서 자꾸 피하고 싶어져요. 요즘 <생의 한가운데> 읽고 있는데 그렇게 자꾸 피하면 진실을 대면하기 힘들다,는 이야기가 들려 반성했어요.

다락방 2014-11-25 14:59   좋아요 0 | URL
신문을 통해 기사를 보면서 믿을 수가 없더라고요. 정말? 정말 이랬다고? 하면서 말이지요. 지금 이 나라엔 믿을 수 없는 일들이 빈번하게 일어나고 있는 것 같아요. 나는 어디쯤에 서 있어야 할까, 그럴때마다 생각해보게 돼요. 우리는 자꾸, 반성하게 되네요, 블랑카님.

태안너구리 2014-11-26 15:20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저도 다락방님의 의견을 지지하는데 한표 입니다..^^
....

다락방 2014-11-27 17:00   좋아요 0 | URL
오랜만입니다, 태안너구리님 ^^

Mephistopheles 2014-11-26 16:33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아 가발 쓴 제이슨 스타뎀이 나온다는....그 영화군요...(이미 봤지롱입니다.)

-근데,...감독이 무려 ˝테일러 헥포드˝....군요..-

다락방 2014-11-27 17:01   좋아요 0 | URL
처음에 가발 쓰고 나와서 아니 넌 뭐냣, 너의 대머리를 돌려줘, 했어요. 하핫. 물론 예고편에서 말입니다.
벌써 보셨군요. 크- 저는 제니퍼 로페즈와의 케미가 궁금합니다!

Mephistopheles 2014-11-28 11:17   좋아요 0 | URL
케미일것도 없어요. 로페즈는 거의 조연급.....

섬사이 2014-11-27 08:49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난 아이들 보기가 부끄러워요. 어른들이 세금을 괴상하게 펑펑 낭비하면서, 아이들에게는 ˝우리는 너희들에게 밥 못 줘!˝하는 것 같아서요. 아이들에게 밥주는 비용을 낭비라고 생각한다면 그들이 낭비한 어마무시한 세금에 대해서는 어땋게 설명하고 책임질 건지., 그것부터 따져 묻는 게 먼저라고 생각해요. 슬퍼요.

다락방 2014-11-27 17:02   좋아요 0 | URL
아이들 밥 가지고 진짜 너무하는 것 같아요. 제가 정치를 해보는 건 어떨까요, 섬사이님? 저는 아이들에게 양질의 밥을 제공하는 그런 정치인이 될 수 있을까요? 크- 갑자기 의욕이 앞서네요.

어른들의 삶이 슬픕니다, 섬사이님. 지금 아이들이 자라 이 슬픈 삶 속으로 뛰어들 걸 생각하니 더 슬프고요. 물론, 아이들의 삶도 지금 기쁘고 행복한 건 아니지만 말입니다.
 
그녀에게 일어난 일, 그에겐 일어날 수 없는 일

먼댓글로 연결한 페이퍼는 무려 2010년에 작성한 것이다. 내가 기적은 일어난다는 내용의 페이퍼를 썼다는 걸 기억하고 있었고, 그것을 영화 《워크 투 리멤버》에서 가져왔기 때문에 저 오래된 페이퍼를 찾는 것은 어렵지 않았다. 댓글을 읽다가 '사랑은 키스로 오는가봐요' 라고 써놓은 걸 보고 갑자기 빵 터져버렸다. 나란 여자, 2010년에 그런 생각을 하고 있었구나. 사랑은 키스로 오기도 하지만, 키스가 반드시 사랑을 불러오는 건 아니라는 것도 이제는 안다. 나는 그만큼 더 늙었다.


아, 이 얘기를 하려던 게 아니었고.





















남자 주인공은 자신과는 많이 다른 여자주인공을 사랑하게 된다. 그리고 그녀가 시한부 인생임을 알게 되면서 그녀가 가진 소원들을 이루어주기로 결심한다. 그녀가 죽고난 후 그가 여자의 아버지를 찾아와서는 '다 해줬는데 기적을 보는 것을 해주지 못했다'고 하자 여자의 아버지가 '자네가 그 애의 기적이었네' 라고 말을 한다. 그래서 나는, 기적이란 게 일어날 수 있음을 알고 있다. 그러나 기적은, 간절히 바랐을 때 이루어지는 거라고 생각하고.


저 오래된 페이퍼에도 인용되었지만, 원서에서 기적은, 남자의 이런 독백으로 끝맺는다.



I now believe, by the way, that miracles can happen.



남자가 지금은 기적이 일어날 수 있다는 것을 믿는 것처럼, 나도 믿는다. 그리고 그 기적을, 나는 최근에 본 영화 《비커밍 제인》에서 만난다.


















제인은 엄청난 부자 '위슬리'로부터 청혼을 받는다. 그러나 그녀의 마음은 어느새 가난한 남자 '톰'에게로 향해있다. 가족들은 제인이 위슬리와 결혼하기를 원한다. 그녀가 위슬리와 결혼한다면 돈 걱정 없이 평생 여유롭게 잘 살 수 있으니까. 그러나 톰과 결혼하게 되면 제인은, 아침부터 잠들기전까지 노동에 시달려야 할 것이다. 그러나 제인은 사랑쪽으로 마음이 기운다. 돈이 아니라 사랑으로. 돈은, 스스로도 벌 수 있는 것이니까.


청혼에 대한 대답을 하지 않은 상태에서 그녀는 무도회를 간다. 그곳에서 어쩌면 떠나버렸을 남자, 톰을 찾는다. 위를 보고 뒤를 보고 왼쪽을 보고 오른쪽을 보지만, 그는 보이지 않는다. 그녀의 표정은 어둡다. 그녀는 자신의 파트너로 앞에 선 남자 위슬리와 춤을 춘다. 춤을 추는 그녀는 즐겁지 않다. 무도회에 왔고, 누군가의 파트너가 되었고, 춤을 추고 있고, 그 춤은 자신만의 것이 아니라 다수의 것이었으니, 그녀는 어쩔 수 없이 스텝을 밟는다. 빙그르르 돌고 파트너를 바꾸고, 그렇게 사람들 틈 속에 끼어서 다음 동작을 하며 파트너를 바꾸던 중, 자신의 눈앞에 어느새 톰이 와있음을 보게 된다. 그가, 내 눈앞에 있다, 는 것을 그녀가 알아챈 바로 그 순간, 그녀의 표정은 환해진다. 와- 내가 다 가슴이 벅차가지고 두근두근했어. 이건, 기적이야!


그는, 없었다. 그녀가 눈을 들어 찾던 그 모든 곳에 그는, 없었다. 그러나 그를 포기하고 체념하고 시간을 버티고 있던 그 때에, 그는 그녀의 앞에 나타난다. 나타나서 말을 건다. 나타나서 말을 걸고, 그녀로부터 사랑 고백을 듣고, 자신 역시도 그녀를 사랑하고 있음을 말한다. 내 심장과 영혼은 당신의 것이라고.



이 영화를 통틀어 가장 좋은 장면이 바로, 눈 앞에 그가 나타나는 장면이었다. 그렇게 찾아 헤맸던 그가 보이지 않아 체념했을 때 그때 불쑥, 눈 앞으로 나타나는 남자. 와- 이게 바로 기적이라고. 소리내서 나는 꺅꺅 소리를 지르고 싶었다. 그때 제인이 눈앞에서 톰을 보면서, 와- 이건 기적이야- 라고 나처럼 생각하지 않았을까. 그 가슴 벅참이, 그 순간의 행복이, 그 기적의 실현이 내게는 몹시도 행복했다. 사랑은, 순간을 기적으로 만드는 것. 눈앞에 나타난 남자가 톰이 아니었다면, 그것은 결코 기적일 수 없었을 것이다. 기적은, 사랑으로 만들어지는 것이로구나. 나는 그녀의 기적 앞에 박수를 보낸다. 그녀의 기적의 순간, 나는 전혀 다른 시공간에서 그녀의 기적과 함께 한다. 두둥실- 내 마음이 떠돈다. 너의 마음 나의 마음 울렁울렁 두근두근 쿵쿵!!





그러자, 이 기적을 마주하지 못했던, 그 순간이 비참하고 처참했던 한 남자가 떠오른다. 그는, 《시작은 키스》에 등장했다.
















남자는 같은 직장에 다니고 있는 여자를 사랑하고 있다. 그녀를 만나고 싶어 그녀의 사무실 앞에서 하염없이 서성인다. 왔다갔다, 어떻게든 그녀를 마주치고 싶어 기다리는데, 직장 동료가 전하는 소식은 '그녀는 출장중' 이라는 거였다. 하아- 



그의 전략은 훌륭했다. 계속해서 복도를 서성일 필요가 있었다. 그것이 유일한 해결책이었다. 어딘가 향하는 것처럼 걷기란 어려운 일이다. 정확한 행동으로 집중하고 있는 듯 보여야 했다. 가장 힘든 일은 짐짓 서두르는 척 움직이는 것이었다. 오후 끝 무렵이 되자 그는 지쳐버렸고, 바로 그때 클로에와 마주쳤다. 클로에가 그에게 물었다.

"괜찮아? 좀 이상해 보여 ‥‥‥"

"응, 괜찮아. 다리 근육 좀 푸느라고. 그러면 생각이 잘 돌아가거든." (pp.103-104)


"난 108호 때문에 골치가 아파. 나탈리 팀장님하고 상의 좀 해보려고 했는데, 오늘 안 계시네."

"그래? 팀장님이 ‥‥‥안 계셔?"

"응‥‥‥지방 출장 가신 것 같아. 난 그만 가볼게. 골칫거리를 해결해봐야지."

마르퀴스는 아무런 말도 못 하고 그대로 굳어 있었다.

오늘 왔다 갔다 한 거리를 합한다면 그 역시 너끈히 지방에 갈 수 있었다. (p.104)




마르퀴스에게 '그 순간의 기적'은 일어나지 않았다. 그러나 마르퀴스는 결국, 그녀의 옆에 앉을 수 있는 사람이 된다. 그러나 제인은, 그 순간의 기적에 놀라고 행복하고 감격했지만, 그의 옆에 앉을 수 없다. 기적이 일어나는 것은 분명한 사실이지만, 그러나 그 기적이 얼마만큼의 크기, 얼마만큼의 지속성을 가지고 나타나는지는 알 수가 없다. 그러므로 기적은, 일어나는 그 순간 놓치지 않고 꽉 붙들어야 한다. 기적은, 기적의 특성상, 수시로 찾아들지 않으니까. 전 생을 통틀어 단 한 번 나타날지도 모르니까. 꽉 잡고, 놓지 않기. 그것이 기적을 마주한 사람이 잊지 말아야 할 것이다.




《워크 투 리멤버》에서의 기적은, 그녀가 노래를 부르던 그 순간이 존재했으므로 시작됐다.


http://youtu.be/9CVbe00lK9I


(유튭 이전소스 보기가 안돼..왜죠? ㅜㅜ)




150데니아는 이제 춥구나. 기모로 가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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단발머리 2014-11-24 13:24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포기하고 체념하고 힘든 시간을 보내고 있을 때, 기적같은 일이 일어났네요.
아직 `비커밍 제인`을 보지 못한게 너무 기쁘네요.
얼른 찾아보고 싶어요. 앤 해서웨이도 좋아하구요.

전, 진작에 기모를 지나, 밍크로~~~ 다락방님, 따뜻하게 입고 다니셔요^^ - 추위를 많이 타는 단발머리가

다락방 2014-11-24 21:24   좋아요 0 | URL
단발머리님, 저는 마침 네이버앱에서 굿 다운로드 무료이길래 잽싸게 받아서 봤어요. 단발머리님도 얼른얼른 서둘러 검색해보세요. 지난주까지 회사 동료도 무료로 받았거든요. 영화가 생각보다 괜찮았어요. 게다가 이게 무려 실화더라고요!! >.<

이제 기모스타킹 신어야겠어요. 다리 추워.. ㅠㅠ

단발머리 2014-11-25 08:36   좋아요 0 | URL
좋은 정보 감사해요!!!!! 저, 지금 다운받아서 영화 보고 있어요. 완전 행복합니다^^

앤 해서웨이가 지금 입고 나오는 저 자주색 긴 드레스 웬지, 편해 보이고 ㅋㅎㅎㅎ
저한테도 어울릴것 같다,고 하면 안 되겠지요? ㅎㅎ

다락방 2014-11-25 08:48   좋아요 0 | URL
안되긴 뭐가 안됩니까? 됩니다! 그 자주색 긴 드레스, 단발머리님께 딱 맞을 거에요! 잘 어울릴 겁니다. 후훗

영화 다 보시고 감상 남겨주세요, 단발머리님. 꼭이요! >.<

세실 2014-11-24 13:25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비커밍 제인의 앤 해서웨이는 참 예쁘네요^^
제인과 톰은 끝까지 갈까요? 가겠죠? 갈꺼야........

다락방 2014-11-24 21:25   좋아요 0 | URL
비커밍 제인의 앤 해서웨이도 예쁘고 인터스텔라의 앤 해서웨이도 예쁘더라고요. 후훗.

제인과 톰은 어떻게 될지, 자, 영화에서 확인하세요. 전 말 못해요. 흑흑 ㅜㅜ (이 영화는 실화입니다, 세실님!!)

꼬마요정 2014-11-24 23:30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아.. 저도 젤 좋아하는 장면이에요~ 춤을 추는 장면에서 짜잔~ 하고 등장할 때, 제인의 입가에 어쩔 줄 몰라하며 퍼져가는 미소와 톰의 그 간질거리는 표정이요~ ㅎㅎ

영드 중에 <제인 오스틴의 후회>라는 드라마가 있어요. 거기 보면.. 그러더라구요. 톰이든 누구든 자신을 제법 행복하게 해줬겠지만, 자신이 원하는 것은 제법 행복한 게 아니라고. 평생을 독신으로 살다 젊은 나이에 세상을 떠난 그녀가 진정으로 원한 사랑은 무엇이었을까요??

다락방 2014-11-25 08:49   좋아요 0 | URL
크- `톰이든 누구든 자신을 제법 행복하게 해줬겠지만, 자신이 원하는 것은 제법 행복한 게 아니다` .. 멋진 말이네요, 꼬마요정님. 그런 드라마가 있군요. 전 사실 제인 오스틴의 소설들을 딱히 좋아하진 않는데, 비커밍 제인을 보니 호기심이 생기긴 하더라고요. 나이 들어 재회환 톰과 제인을 보는데 어휴...그냥 막 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
 

"그런데 그게 생각보다 힘든 일이었어. 슬리퍼를 정리하는 것은 간단했지만, 아이들의 눈길이 신경에 쓰여서 말이야. 난 무슨 일이든 대충대충 하는 아이였거든. 공부를 열심히 하는 것도 아니고 달리기를 잘하는 것도 아니고. 힘이 세서 싸움에 이기는 것도 아니고 청소를 꼼꼼하게 하는 것도 아니었어. 말하자면 타고 가던 배가 침몰해서 표류하다가 무인도에 도착했는데, 같이 도착한 사람이 너와 함께여서 정말 기쁘다고 할만한 그런 아이는 아니었어. 그런 내가 갑자기 화장실 슬리퍼를 정리하면 이상할 거 아니니? 보는 사람이 아무도 없을 때는 괜찮은데, 너도나도 드나드는 화장실이잖아. 누가 보면 어쩌지. 너 왜 갑자기 슬리퍼 정리하니? 그렇게 물으면 뭐라고 대답하지. 아무튼 그게 가장 고민거리였어." (p.52)
















이 부분을 읽다가 잠시 멈추고 생각에 잠겼다. 나는,

나는, 



타고 가던 배가 침몰해서 표류하다가 무인도에 도착했는데, 같이 도착한 사람이 너와 함께여서 정말 기쁘다고 할만한 그런 사람인걸까?

누군가에게는 타고 가던 배가 침몰해서 표류하다가 무인도에 도착했는데, 같이 도착한 사람이 너와 함께여서 정말 기쁘다고 할만한 그런 사람일 수 있을까?

그랬으면 좋겠다.




상추가 먹고 싶어서 갈비를 먹으러 가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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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니데이 2014-11-22 14:36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그렇게 살아남아 도착한 사람이면 특별한 경우가 아니라면 그 순간만큼은 그냥 다른 생각없이 기쁠 것 같은데요. 나중에는 무인도라는 걸 알고 사소한 일로도 불만이 늘어가겠지만요. ^^;
(네꼬님의 추천도서였던 저 책을 못 샀어요. 아쉬워요.)

다락방 2014-11-24 09:32   좋아요 0 | URL
그치요, 다른 생각없이 일단 살아남았다는 사실만으로도, 그때 혼자가 아니라는 사실 만으로도 기쁘겠지요. :)
 

J 와 나는 《안나 카레니나》를 같이 읽었다. 총 세 권이나 되는 책을 읽으면서 서로 앞서거니 뒤서거니, 읽다가 좋은 문장들을 문자메세지로 딩동- 보냈다. 그 세 권을 읽는 동안 그 시간들이 좋아서, 어떤 날은 집에 가는 지하철 안에서 읽다가 길동역에서 내려, 서둘러 집에 가는 대신 벤치에 앉아 책을 조금 더 읽고 들어가기도 했다. 나는 J 와 내가 그런 친구라는 사실이 무척 좋았다. J 와 내가 나누는 대화는, 다른 사람들(친구들)과 나누는 대화와는 조금 달랐던 것 같다. 책에 대해서 얘기를 하는 것도 그렇지만, 일상을 얘기할 때도 직접적이기 보다는 돌리고 은유적으로 표현할 때도 많았는데, 이걸 그대로 받아들이고 그에 맞게 대응하는 것도, J 이기에 할 수 있었던 것 같다.


며칠전에, 우리는 아주 오랜만에 다시 대화를 나누었다. 아, 좋다. 나는 진심으로 그렇게 생각했다. 그런데 J 도 내게 그랬다. 내가 J 에게 까페라떼 같다고. 나는 J 에게 말했다. J 와의 대화는 광합성을 하는 기분을 준다고. 나는 당신과의 대화를 온몸으로 쭉쭉 빨아들인다고. 이런 대화를 하면서도, 이런 대화를 문자메세지로 나눌 수 있는 건, 우리가 'J 와 나' 이기에 가능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러니까 J 와 나의 대화는 이런 식이다. 우리 둘다 《새벽 세시, 바람이 부나요?》를 좋아하는데, 어느 한날 뜬금없이 J 가 내게 문자메세지를 보내는거다. '지금 새벽 세시에서 아무데나 한 문장만 골라서 보내줘요' 라고. 그러면 나는 후다닥 그 문자를 보고 책장으로 달려가 새벽 세시를 꺼내서 이렇게 답을 보내는 거다.



<305페이지. 에미, 나에게 와요. 진심으로 하는 말이에요. 택시비는 내가 낼게요.>



J 는 너무나 마음에 든다고 좋아하고, 나는 이런 문장을 보내줄 수 있음에 좋아한다. 쉽게 말하자면 이런 대화를 하고 둘이 꺅꺅 거린다는 거다. 나는 이런 대화가 몹시도 마음에 드는데, 이런 대화를 다른 사람들과 나눌 수 있을지는 잘 모르겠다. 다시 말하지만, J 와 나이기에 가능하고, 다른 사람들이 보기에 이 대화는 몹시도 오글거리는 것일 수도 있다고 생각한다. 그러나 우리 둘의 대화는 우리 둘만의 것이므로, 나는 개의치 않는다. 나에게 J 와의 대화는 순간순간 소중하다. 그런 J 와 나는 '다시' 대화를 시작하게 된 것이다. 몹시 기쁘다. 하나하나, 나는 J 와의 대화를 흡수한다. 쭉쭉 빨아들인다. 

















《새벽 세시, 바람이 부나요?》에 대해서는 하아- 할 말이 많은데, 나는 제일 처음 이 책을 조선일보의 신간소개코너를 통해서 알게 됐다. 제목이 너무 좋아서 그 신문을 보자마자 컴퓨터를 켜고 주문했고 그러므로 내가 받은건 당연히 1쇄였다. 너무 좋아서 참 낡아질 정도로 들여다보고 밑줄 긋고 그랬는데, 몇 년후에 남동생도 이 책을 보고 그 당시 사귀던 여자친구에게 이 책을 빌려줬다. 그리고 이 책을 돌려받기 전 남동생 커플은 헤어졌다. 하아- 나는 남동생에게 '내 책은?' 하고 물었지만, 남동생이 '헤어졌는데 차마 누나 책 돌려달라고 말할 수가 없더라' 하는거다. 나도 그럴거라고 생각해서 너무나 아깝지만 포기했다. 그리고 다시 샀어 ㅠㅠ 오늘 내가 가진 책을 보니 15쇄였다. 히잉-


이런 일은 종종 일어났다. 몇 년전에 소개팅한 남자에게는 소개팅한 그 날 사귀기로 하고 그 다음번 만남에서 '히가시노 게이고'의 《용의자 x의 헌신》을 빌려줬는데, 돌려받기 전 헤어졌다(근데 이 책은 다시 사고 싶진 않다). 얼마전에 회사를 그만둔 직원에게 '에이모 토올스'의 《우아한 연인》을 빌려줬다는 걸, 그 직원이 더이상 출근하지 않게 된 다음에야 기억해냈다. 하아- 그만두기 전에 그런것 좀 챙겨주고 가....이렇게 책을 빌려주고 돌려받지 못한 상황에서 상대와 다시 안 볼 사이가 되는 경우가 더러 있는데, 사실 책 한 권에 만 원 남짓하고, 또 책이라는 물건의 특성상 그걸 선물이라고 생각하면 받을 생각 안하는 게 낫다고 생각한다. 내가 너한테 책 한권 선물 못하겠냐, 하는 마음으로. 다른 것도 아닌 책인데. 그렇지만...그게 내가 읽은 '내 책' 이라서 짜증이난다. 이왕 책 선물을 할거라면, 내걸 돌려받고 새 책으로 하고싶다. 내가 밑줄 긋고 내가 접은 책, 그건 돌려받고 싶다. 내가 그렇게 주었던 책들을, 그중에 정말 좋았던 책들을 다시 사긴 하지만, 이미 그 책들은 내 책 같지가 않다. 그 새 책 냄새 풀풀 풍기는 것들을, 내가 좋아했던 예전 그 감정 그대로 좋아하게 되질 않더라. 그래서 우아한 연인은 지금 사지도 못하고 있다. 어차피 사봤자, 그건 내 책이 아니야, 더이상... 하아-




나는 현재 개인 도서관이다. 살아있는, 숨쉬는 도서관. 회사 직원들에게 책을 빌려주고 있는데 지금 나한테 책 빌려가서 읽는 직원들이 여러명이다. 어떤 직원은 금세 금세 반납하고 어떤 직원들은 몇 개월이 지나도 안가져온다. 뭐, 재촉하지 않고 내버려두는데, 아마도 그래서 그만둘 때 본의 아니게 먹튀..하는 듯.. Orz


최근에 나에게 빌린 책을 다시 가져다주는 직원들은 하하하하, 가져다줄때 마다 뭔가 하나씩을 꼭 끼워준다. 커피이기도 하고, 젤리이기도 하고, 과자이기도 하다. 얼마전에 한 직원은 무려 스타벅스 카드를 주더라!




내가 너무 놀라서 아니, 이런걸 주면 내가 앞으로 책을 어떻게 빌려주냐고 했는데, 직원은 그냥 꼭 드리고 싶었어요, 라며 주고 사라진다. 아마도 나를 좋아하는 것 같다. 뭐, 나를 좋아하는 게 이 직원뿐만은 아니지만. 인기투표 하면 이 회사에서 내가 일등할 자신이 있다. ㅋㅋㅋㅋㅋㅋㅋㅋ 뭐래 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 


암튼 내가 먼저 책 읽어볼래요? 하고 시작한건데, 어쨌든 지금 그래서 책 읽는 직원들이 늘어나 씐난다!! >.<















나는 아주 오래전에 토이 1집에서 '조규찬'이 부른 <내 마음속에>라는 노래를 좋아한다. <내가 너의 곁에 잠시 살았다는 걸> 같은 노래도 좋아한다. 좋아했다. 이번 새로운 앨범을 들으며 약간 두근두근 하는 마음이 있었는데, 들으면서 '아, 나는 이제 에피톤이 더 좋다' 고, 누가 시키지도 않았는데 자연스레 비교를 하며 생각했다. 


예전의 토이는 '나'를  노래하는 것 같은 느낌이었다. 내가 아프고 내가 서운한, 그런 노래. 그런데 지금의 토이는 약간 거리를 두고 '우리' 혹은 '너희들'을 노래한다는 생각이 들었다. '사람들이 다 이렇지' 의 느낌. 그런데 에피톤은 다르다. 에피톤은 지금, '나'의 노래를 한다. 지금 '나'의 상황, 감정, 생각에 푹 빠져서 부르는 '나'의 노래. 나는 그쪽에 언제나 더 높은 점수를 줄 수밖에 없다. 


오늘 출근길에 양재역에서 회사까지 걸으면서 들은 노래는 토이의 새 앨범에서, 이 노래가 신났다. 크리스마스 사랑 고백 송.





아하하- 하고 혼자 웃으면서, 이건 크리스마스에 사랑을 고백할 마음을 가진 사람이라면 들어야겠구나 라고 생각했다. 혹은, 사랑을 고백하지 못하고 망설이는 사람이라면 이 노래를 듣고 크리스마스에 고백하면 되겠다, 라고도 생각했다. 혼자 사랑에 빠진 사람들을 위한 사랑고백 송, 사랑고백 용기부여 송, 이라고 하면 좋을텐데, 그래서 나는, 

이 노래로 고백하기는 싫다, 


라고 생각했다. 그게 내가 이번 토이보다 에피톤을 사랑하는 이유로 연결된다. 모두가 고백할만한 노래로 고백하고 싶진 않다. 모두가 고백할만한 노래로 고백 받고 싶지도 않다. 이건 대놓고 '이걸로 고백해', '이 노래 고백에 좋겠지' 하는 노래라서 듣기에 유쾌했지만 '아 너무 좋아' 하게 되진 않더란 말이다. 그보다는 에피톤 프로젝트의 <회전목마>쪽을 선호하게 된다, 나는. 그런데 왜 이렇게 쓰면서 희열이 형한테 미안한 마음이 드는걸까...왜 내가 배신한 마음이 드는걸까......희열이 형, 미안해요. 뭔가...좀 미안하네요...새 앨범이 나쁘다는 말이 아닙니다. 다만, 이제는 내 취향이 에피톤으로 옮겨갔다는 거 뿐이에요.



그리고 다시, 
저 택시비에 대한 구절이 몇 페이지였나 찾으려다가 다시, J 에게 보내주고 싶은 이런 구절을 보았다. 267-268 페이지. 또 포스트잇을 붙였다. 차곡차곡, 포스트 잇을 붙이는 책장이 늘어난다.



2시간 뒤
Re:
떠나기 전에 하나만 더. 레오, 솔직하게 말해주세요! 저에 대한 관심을 잃었나요?


5분 뒤
Aw:
정말로 솔직한 답을 바라세요?


8분 뒤
Re:
네, 물론이에요. 솔직하게, 그리고 빨리요! 요나스 깁스 풀러 병원에 데려가야 한단 말이에요.


50초 뒤
Aw:
당신에게서 이메일이 와 있는 걸 보면 가슴이 두근거려요. 어제 그랬고 일곱 달 전에 그랬던 것처럼 오늘도 꼭 그래요. 




엊그제는 뭐 좀 찾아볼 게 있어서 《독서공감, 사람을 읽다》를 뒤져야 했다. 페이퍼를 쓰던 중이었고, 그 페이퍼에 넣기 위한 인용문을 찾는거였는데, 음, 독서공감에 그 인용문이 없더라. 아, 여기에 없군, 어쩐다, 기억에 의해 쓰자, 라고 생각했지만, 나는 독서공감이 너무 재미있어서 다시 페이퍼 쓰기로 돌아오기까지 엄청 시간이 걸렸다. 어딜 넘겨도 재미있어서, 아, 지구상에서 가장 재미있는 책인 것 같다, 고 혼자 감탄했다. 세상에는 이렇게 재미있는 책이 있는 것이다. 앞으로 나는 어디든 낯선 곳으로 여행 갈 때마다 이 독서공감을 한 권씩 배낭에 혹은 캐리어에 넣어가야겠다. 이 재미를 나만 아는 건 지나치게 이기적이니까. 어딜 가든 두고 와야겠어... 이 재미를 모두와 나눠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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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4-11-19 12:36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14-11-19 12:21   URL
비밀 댓글입니다.

서니데이 2014-11-19 12:43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책 빌려간다고 하면서, 돌려주지 않는 사람도 많은데, 책과 함께 돌아온다니 좋은일이네요. 좋은 분들이구요.^^

다락방 2014-11-20 11:45   좋아요 0 | URL
네, 재미있게 읽고 돌려주고 또 빌려주고 재미있게 읽고 하는 게 전 참 좋아요. 헤헷

moonnight 2014-11-19 13:04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착한 다락방님 ^^ 저는 저부터도 책을 빌려읽지 않지만, 제가 정말 정말 좋아하는 사람이 아니면 책 안 빌려줘요. 누가 이 책 재미있겠네 빌려주세요. 하면 차라리 한 권 사서 줘요. -_-;

예전에 함께 일했던 동료는 제가 별로 안 좋아했는데-_- 매번 제 책들을 허락도 없이 빌려가곤 했어요. 물론 돌려주지는 않고. ㅠ_ㅠ 이후 그 동료가 직장을 관뒀는데, 자기 물건들을 정리하지 않고 나갔어요. 놔두고 간 책들을 다른 동료들이 지금 돌려읽고 있는데 그 중 태반이 제 책이더라는. -_-;;;;;; 지금 직원들은 관둔 동료를 언급하며 다른 사람들 읽으라고 책도 많이 놔두고 가시고 좋다. 라고 하지요. 내 책들인데 말이죠. -_-;;;;;;;;;;;;;;;;;;;;;;;;;;;;;;;;;;; 그런 책들을 생각하면 마음이 아프다는. ㅠ_ㅠ;

다락방님께 책을 빌리고 저렇게 고마워하는 분들은 책의 소중함을 잘 알고 또 다락방님이 책을 얼마나 사랑하는지 이해하고 계시는 것 같아 흐뭇해지네요. ^^ 그치만.. 역시, `개인도서관;이라니. 다락방님 존경스러워요. ㅜ_ㅜ;;


태그에 완벽 공감하며. 그리고, 맞습니다. 맞아요. <독서공감, 사람을 읽다>의 재미를 혼자만 알고 있는 건 너무 이기적이지요. ^^

다락방 2014-11-20 11:48   좋아요 0 | URL
저도 책 안빌려주는 쪽이었는데요,
어느 순간 그런 생각이 들더라고요. 내 주변의 책 읽지 않는 사람들이 책을 읽게 된다면 책의 재미를 알게 될테고 생각도 하게 될테고 결과적으로 또 다른 책을 읽고 싶어할테니, 그 밑거름을 제공하는 건 뜻깊지 않은가! 하고 말이지요. 집에 두면 그저 `내가 읽은 책` 이지만 나누어 읽으면 쓰임이 더 널리 퍼지는 것 같아서요. 마구마구 빌려주고 있는데, 사실 리스트 작성을 따로 해두지는 않으니 어디에 무슨 책이 가있는 지 모르고 있는 실정이에요. ㅠㅠ

이젠 리스트 작성을 해둘까 싶기도 하고. 헤헷.

책 잘 안읽던 동료들이 저 때문에 책을 읽게 된다는 게 전 너무 좋습니다, 문나잇님. 행복해요 ♡

마립간 2014-11-19 14:22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저는 청소년 시절에 책을 빌려주고 마음 졸였던 기억때문에 책을 빌려주지 않습니다. 마치 아이를 맡긴 것 같아서요. (pek0501 님 댓글에도 남겼지만) 학대 받거나 (라면 냄비 받침) 무시 당할 수도 (읽히지 않고 쳐박혀 있는 것) 있기 때문이죠. 누군가 책을 빌려 달라고 하면 새책으로 주문해서 선물합니다.

예외적으로 책을 빌려 주는 경우가 있는데, 상대가 독서가이며, 장서가인 애서가들에게만 빌려줍니다.

1970년 대 단막극에서 나오는 이야기인데, 부부싸움을 할 때, 상대에 대해 인신공격을 하는 것이 아니라, 취향의 대결 예를 들면 톨스토이와 도스토옙스키 선호를 경쟁하는 것이죠. J 님과의 에피소드에서 그 드라마 장면이 떠올랐습니다.

다락방 2014-11-20 11:50   좋아요 0 | URL
저도 예전에는 책을 빌려주고 마음 졸였었는데, 이제는 전혀 마음 졸이지 않아요. 한 번은 동료가 한참 갖고 있어서 낡은 상태로 돌려주며 미안해하길래 괜찮다고 했어요. 전 정말 괜찮았거든요. 또 한번은 돌려주며 이 책 너무 좋아서 사야겠다고 하길래, 그냥 제 책을 가지라고 줬어요. 제가 궁극적으로 원하는 건 `더 많은 사람들이 책을 읽고 좋아하게 되는 것`인것 같아요. 물론, 돌려주지 않고 사라져버리면 몹시 서운하지만 말입니다.

J 와는 취향이 아주 많이 갈리는 데, 저렇게 어떤 부분에서 겹쳐요. 그 부분이 무척 마음에 들고 말이지요. 흣 :)

조선인 2014-11-19 14:43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아, 난 아직도 비빔툰 1권을 못 돌려받았어요. 인연이 끊긴 후배도 아닌데. 그애와 페이스북에서 잡담을 나눌 때마다 비빔툰 1권은? 속으로 삼켜요. ㅠㅠ

다락방 2014-11-20 11:51   좋아요 0 | URL
조선인님, 그게 신경 쓰이신다면 말씀해보시는 건 어떠세요? 전 엊그제도 K 에게 책을 빌려주고 싶은데 L 이 가져오질 않길래 말했거든요. 그 책 집에 두지 말고 갖다달라 고요. 그래서 L 이 가져왔어요. 이 책은 K 빌려줄거에요.

무스탕 2014-11-19 20:45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전 작년에 같이 근무하던 직원에게 태백산맥 1~3권을 빌려줬는데 며칠전에 겨우 3권만 돌려받았어요.
이눔이 글쎄, 1권 반도 안 읽은눔이 꼭 읽겠다고 책을 안 돌려주네요.
1년이 넘어서도 못 보고 있으니 넌 그 책 못 읽는다, 책 보리지 말고 내 놔라, 해도 말을 안 듣네요 -_-+++
제가 갖고 있는 태백산맥은 30년 가까이 된 책이라 이젠 잃어버리면 짝도 체울수 없는데 이눔이 말을 안들으니 이를 어쩌죠?

다락방 2014-11-20 11:52   좋아요 0 | URL
아니 ... 그렇게 장기간 가지고 있으면서 꼭 읽을거라면..... 본인이 사면 되는 거 아닌가요? 우선 1권만 사도 될텐데 왜 그렇게 오래 가지고 있기만 하면서 민폐를.. -_- 나쁘네요 그사람. 나쁘다.. ㅠㅠ

2014-11-19 23:11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14-11-20 11:54   URL
비밀 댓글입니다.

transient-guest 2014-11-20 09:16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저는 아주 오래전에는 가끔 책을 빌려주기도 했었는데, 몇 번인가 너무 늦게 돌려받거나 내 허락없이 여럿이 돌려보고, 또 누군가는 잃어버린 경험을 하고나서는 아무도 빌려주지 않게 되었어요. 사실 좋아하는 책은 어떻게하든 사보기 때문에 도서관에서 대출하는 것도 싫어하고 빌려주는 것도 싫어해요. 유일하게 책을 빌려주는 대상은 가족뿐이랍니다. 다행스럽게도(?) 주변에 책을 좋아하는 사람이 없네요. 모아놓은 책을 보면서 요란하게 관심을 표하는 분들일수록 책을 읽지는 않고 빌려가서 오래 keeping하는걸 많이 보는데, 저는 빌려주지 않으니까 고민은 없네요.ㅎㅎ

다락방 2014-11-20 11:57   좋아요 0 | URL
저는 돌려받지 못하는 경우에는 서운하고 속상하긴 하지만 대체적으로 빌려주는 거에는 꺼리질 않는 편이에요. 물론 예전부터 이랬던 건 아니고요, 예전에는 어쩌다 한 번 빌려주면 돌려받을 때까지 신경을 쏟았거든요. 그렇지만 이제는 어차피 내 방 책장에 두면 그저 내 소유물일 뿐이고 빌려줘서 다른 이에게 읽히면 그 순간 책이 된다고 생각하게 되더라고요. 제가 위의 댓글들에서도 썼지만, 저는 지금보다 더 많은 사람들이 책의 재미를 알게 되는 걸 원하기 때문에 이렇게 생각할 수 있는 것 같아요. 뭐 제가 특별히 착하다거나 선량한 사람이어서는 결코 아닙니다. 오히려 그것과는 거리가 멀고요. 더 많은 사람들이 책을 읽는 걸 제 스스로가 원하기 때문에 막 빌려줄 수 있는 것 같아요. 그리고 책에 관심 없어 보이는 동료에겐 제가 먼저 막 책 줄거리 얘기하면서 관심을 유도하기도 해요. ㅎㅎ 재밌겠지, 재밌겠지, 읽어볼래? 이러면서요. 히히.

시크발랄 2014-11-21 17:27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맞아요. 이번 토이는 느낌이 좀 달랐어요.

다락방 2014-11-24 08:34   좋아요 0 | URL
크- 시크발랄님의 이미지를 볼 때마다 나도 저런 몸으로 거듭나겠다! 라는 생각이 불끈!! 강해집니다.
그래봤자 이런 비루한 몸뚱아리인채 머물러 있지만 ㅠㅠㅠㅠㅠ

열매 2014-12-01 23:59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다락방님 새벽 세시... 를 정말 좋아하시는군요!
다락방님의 친구 J분과의 관계도 무척 부럽습니다...
안나카레니나를 같이 읽고, 새벽 세시에 그 책 속의 문장을 나누는 사이란,,,
제가 보기엔 두분의 관계가 정말 근사하고 멋져 보여요.^^
이 페이퍼를 읽으니 책을 읽던 때의 느낌이 고스란히 되살아나는 기분이에요.
에이미와 레오의 메일을 훔쳐보는 듯한 느낌으로 설렘 반 긴장 반 책장을 넘겼었는데^^
저는 새벽 세시까지 깨어있을 때면 언제나 이책이 떠오르고,
누군가에게 메일을 보내고 싶은 생각도 들고,
나의 메일을 받은 상대가 우연히 그 시각 깨어있어서 나에게 답장을 보내줬으면 좋겠다는
생각을 하곤 해요.
상상만으로도 설레는 기분이거든요^^

+책 2쇄 찍으신 것 축하드립니다.^0^

다락방 2014-12-02 08:48   좋아요 0 | URL
네, 꿀이님. 저는 새벽 세시를 엄청나게 좋아해요. 레오를 사랑합니다. 에미는 분신처럼 여겨지고요. ㅎㅎㅎㅎ
저도 이 책을 처음 읽었을 때 책장을 덮고 나서 되게 먹먹했었어요. 이제 이들을 어떡하면 좋으냐 대체, 하고 말이지요. 또한 어마어마하게 이메일을 쓰고 싶어졌지요. 그래서 이 책을 다 읽고 당시에 메신저 대화명을 <당신에게 이메일을 보내고 싶어요> 라고 바꿔 놓았는데, 갑자기 메신저에 로그인한 남자가 제게 다짜고짜 자신의 이메일 주소를 알려주던 기억이 새삼 떠오릅니다. 제가 엄청 좋아했던 남자였어요. 물론 이메일 주소쯤은 알고 있었고요. 크- 추억이 새록새록 하네요.
:)

새벽 세시, 아름다운 시간이죠.
새벽 세시에 바람이 부는지 묻는 것도 아름답고요.

축하, 고맙습니다, 꿀이님.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