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사IN 제432호 2015.12.26
시사IN 편집부 엮음 / 참언론(잡지) / 2015년 12월
평점 :
품절


시사인의 정기구독이 끝났다. 지난 2주간이었나, 정기구독이 곧 끝나니 다시 재구독 해달라는 전화가 여러차례 왔다. 낯선 번호라 받지 않았더니 문자로 남겨져서, 그래서 아 이 번호가 재구독을 권유하는 번호구나, 알았다. 


나는 텔레비젼을 보지 않고 몇 년간 보던 일간지도 구독을 끊은지 오래됐다. 인터넷으로는 뉴스를 보지 않는다. 그런 내게 세상 돌아가는 일을 알려주는 것은 시사인이었다. 물론, SNS도.

정기구독이 끝났다는 말에 친구는 1년 더 볼래? 물었고, 나는 아니, 그동안 고마웠어, 괜찮아, 라고 답했다. 그리고 이번 호를 서점에 가서 사왔다. 별책부록으로 해마다 그렇듯이 <2015 행복한 책읽기>가 딸려왔는데, 일단 시사인 보다 그 책을 먼저 봤다. 김명남 번역가를 보다가 너무 멋있어서 절망하고(!)-이런 근사한 사람은 나보다 훨씬 나이가 많을 거야, 라고 생각했는데 내 또래였다 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 난 뭐했지 ㅠㅠ-, 몇 권의 책을 보관함에 담았다. 그리고 시사인을 읽기 시작했는데,


아, 나는 시사인이 좋구나, 생각했다.


독자들과의 대화가 소개되는 앞장도, 편집국장의 말도 어느것 하나 버릴 것이 없다. 이번 호에서 특히 인상 깊었던 건 <강원국씨 인터뷰>였는데, 김대중 대통령과 노무현 대통령, 그리고 박근혜 대통령의 연설에 대해 얘기하고 있었고, 그 글을 읽는데 하염없이 좋았다가 답답해졌다가 해서, 아, 내가 시사인이 아니라면 이런 것들을 어떻게 알겠는가 싶어지는 거다. 잠깐 인용해보겠다.



노무현 대통령은 중요하다고 생각하는 연설일 때는 직접 구술해줬다. 한번 올라가면 두 시간씩 얘기하는데, 녹음을 해도 사실 들을 시간이 없다. 구술하고 나면 빨리 다시 보고 싶어 한다. 바로 야마(주제)잡고 써야 한다. 한번은 전화로 구술받았다가 되게 혼난 적이 있다. 5년차 신년 기자회견이었는데, 대통령 콘텐츠를 이제 안다고 생각해서 나름 해석하면서 썼다. 대통령이 당일 아침에 보고 화가 났다. 하기 싫으면 그만하라고 했단다. 그걸 부속실장이 녹음해서 줬다. 마음이 참담했다.

(노무현)대통령이 실전에 강했다. 내가 실수했어도 실제로는 연설을 잘했던 거다. 잘하고 나니 화가 다 풀린다. 만약에 못했으면 '이 자식 때문'이라고 생각했을 텐데. 3.1절 때도 연설문 위에 메모해서 즉석연설을 후련하게 했다. 연설 원고에 본인이 메모지 붙인 걸 나중에 나한테 보내셨다. 공부하라고. 그만큼 임기응면에 강했다. 대통령이 연설을 잘 못한 거 임기 내내 딱 한 번 봤다. (시사인 인터뷰-강원국, p.37)



(위의 연설문에 대해)우린 그런 연설문 못 쓴다. 변호사 시절부터 자신이 절실히 겪은 문제기 때문에 나오는 거다. 노무현 대통령은 항상 연설 안에 자기가 있다. (p.39)






올해 최악의 인물로 김무성이 뽑힌 것에 대해서 크게 동의한다. <김형민 피디의 딸에게 들려주는 역사이야기>도, <학교의 속살> 코너도 나의 패이버릿이다. 다른 사람들이 들려주는 이야기, 내가 알지 못했던 이야기, 미처 생각하지 못했던 것들에 대한 이야기를 읽는 것은 내게 꽤 중요하게 여겨진다. 더 많이 듣고 더 많이 알려고 들수록 더 나은 사람이 되는 데 한 걸음 다가서게 되는 게 아닐까.


지난주에 회사 동료와 밥을 먹는데, 동료가 내게 그런 말을 했다. '차장님 제가 처음 만났을 때랑 정말 많이 달라지셨어요'. 나는 그 말을 긍정적으로 들었다. 확실히 나는 그 동료를 만났던 십년전보다 더 나은 인간이 되어 있다고 믿는다. 극단적으로 싫다고 말하는 일도 줄었고, 저 사람에게는 그 나름의 이유가 있을 것이다, 라고 생각하게 된 것도 늘어났다. 사소하게는 이 페이퍼 상에서 악플에 대처하는 자세도 유연해졌다. 세상일에 예전보다 조금 더 관심을 갖게 되었고 이 모든 것들은 나를 예전보다 조금 더 나은 어른이 되게 하는 데 영향을 미쳤다고 생각한다. 그런 내가 앞으로도 계속 멈추지 않고 나아가려면 시사인을 그만 봐서는 안되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1월1일이 되면, 새해 선물로 내가 나에게 시사인 정기구독을 신청해줘야겠다. 아니, 지금 신청해야겠다. 더 나은 인간이 되자는 격려로 이것 만큼 좋은 게 없을 것 같다. 


댓글(23) 먼댓글(0) 좋아요(40)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책한엄마 2015-12-28 10:02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어머!저도 재구독했어요.반갑네요.^^

다락방 2015-12-28 11:11   좋아요 1 | URL
네, 저도 재구독 신청 막 완료했어요! 반갑습니다! ㅎㅎ

꼬마요정 2015-12-28 11:40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저도 재구독 했네요.. 주간지는 자주 와서 다 챙기지 못할 때도 있긴 하지만요 ㅎㅎ

다락방 2015-12-28 16:28   좋아요 0 | URL
18만원이라니 큰 맘 먹어야 했는데, 이게 매달결제가 가능해서 15,000원이면 되더라고요. 신문 구독하는 것과 같은 가격이니 매달 결제로 선택하니 부담이 좀 덜하게 느껴졌어요. 앞으로도 계속 해야겠어요.

테레사 2015-12-28 11:46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ㅋㅋ 정말 재밌네요..시사인 구독을 은근 권유하는 글같아요..ㅎ 저는 한겨레21을 오랫동안 구독해 왔는데..시사인으로 갈아탈까..어쩔까..둘다볼까? 아냐 난 두개의 잡지를 볼 만큼의 형편은 안돼 했다가...암튼 아직도 결정 못내리고 있어요.

다락방 2015-12-28 16:30   좋아요 0 | URL
사실 저는 시사인 하나도 다 챙겨보지는 못해서 보고싶은 것만 보게 되거든요. 그러니 매주 두 개의 주간지를 받아보게 된다면 무척 힘들것 같아요. 막 밀리고... 테레사님, 잘 생각하셔서 결정하세요. 하핫;;

비연 2015-12-28 12:38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올해 최악의 인물로 김무성이 뽑혔다는 말에... 잠시 저도 구독할까 싶어지네요.
크게 동의고 또 크게 동의하고.. 사실 보기도 싫은 인간상입니다..ㅜ

다락방 2015-12-28 16:31   좋아요 0 | URL
김무성은 끊임없이 어처구니 없는 말만 골라하는 인물인데 최악의 인물로 그보다 더 적합한 인물이 없지요. 아무쪼록 내년에는 최악의 인물로 선정되지 않을 수 있도록 좀 더 나은 인간이 되기를 바라봅니다. -_-

뽈따구 2015-12-28 13:12   좋아요 0 | 댓글달기 | 수정 | 삭제 | URL
울 아들이 매일 저보고 핸드폰 책 그만보고 종이책 읽으라고 잔소리 하는데, 저도 시사인 구독하고 아들책볼때 옆에서 시사인 종이책 봐얄까봐요. ㅎㅎㅎㅎ

근데,,,,, 악플이 있어요???! 몰랐네요, 그리고 놀랍네요. 이런 글들에도 악플이 달리다니..... >,.<

다락방 2015-12-28 16:33   좋아요 0 | URL
뽈따구님, 시사인 보시기를 적극 추천합니다. 저 위에 페이퍼에도 언급했지만 김형민 피디의 역사이야기가 정말 좋거든요. 저도 일 년 구독했으니 이제 되었다, 하려했는데 이걸 그만 볼 수 없겠단 생각이 들었어요. 추천합니다!!

하하 네, 저에게도 악플이 달립니다. 왜 아니겠어요. 이런 글을 포함해서 제 다른 글들까지 되게 보기 싫고 짜증나고 화가 날 수도 있겠지요. 악플도 달리고 지적질도 달리고 그래요. 하핫.
그치만 이제 비난을 위한 비난은 그저 웃어넘길 수 있게 됐어요. 하핫.

책탐 2015-12-28 14:35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다 읽고 사러가는것도 일이네요. 매주 다 챙겨읽진 못해도 정기구독이 좋을꺼 같기도 하고..올해가 가기전에 결정을 해야하는데..ㅜㅜ

다락방 2015-12-28 16:34   좋아요 0 | URL
저도 새해에 재구독 신청하려고 했는데요, 새해부터 받기 위해서는 지금 하는 게 좋겠다는 생각이 들어서 페이퍼 쓰자마자 부랴부랴 재구독 신청했어요. 책탐님, 우리 정기구독 친구해요!! >.<

2015-12-28 15:33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15-12-28 16:22   URL
비밀 댓글입니다.

마태우스 2015-12-28 19:18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윽 글쿤요ㅜ 좋은연말보내십시오

다락방 2015-12-30 10:04   좋아요 0 | URL
마태우스님도 한 해 마무리 잘 하셔요!!

보슬비 2015-12-28 23:08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저도 재구독했어요. ^^

다락방 2015-12-30 10:04   좋아요 0 | URL
저도 재구독 했어요. 할 수밖에 없었어요. 흣.

transient-guest 2015-12-29 09:42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제가 뽑은 최악의 인물은 2012년 12월 이래 꾸준히 `그녀`입니다. 이제 곧 다가오는 병신년, `그녀`는 변함없이 `그녀`가 하던 짓들을 이어갈 것이라 생각하니 갑갑하네요. 밤새 들어온 `위안부` `문제` 한일타결과 `그녀`의 담화에 빡쳐 하루 종일 화가 납니다. 시사인 계속 보세요.ㅎㅎ 주진우를 위해서라도.

다락방 2015-12-30 10:05   좋아요 0 | URL
진짜 토할것 같아요. 이 토할 것 같은 소식들을 알고 싶지 않다가도 그래도 알아야 뭘 해도 하지 않을까 싶어서 읽어야겠다는 생각이 들어요. 계속 보겠습니다! 하아-

2016-01-02 19:29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16-01-04 15:58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16-01-03 14:44   URL
비밀 댓글입니다.
 
나는 지방대 시간강사다
309동1201호(김민섭) 지음 / 은행나무 / 2015년 11월
평점 :
절판


교수가 아닌 시간강사가 돈을 얼마나 '못'버는지에 대해서는 익히 들어왔지만 이정도일줄은 몰랐다.  학교라는 곳이 직장일 때는, 연구를 하며 공부를 하기에는 얼마나 열악한 곳인지 알게 되자 역겨웠다. 대학생 한 명 한 명에게 받아가는 돈이 그토록 어마어마하면서, 그곳에서 공부를 하며 '잡일'을 하는 사람에게는 돈 주기를 꺼려하는 곳. 게다가 매일 하루종일을 연구실에 묶여있어야 하는데 그것을 너무나 당연시하며, 교수와 선배의 부름에 만사 제치고 달려가야 하는 것들은 시스템이 너무나 병신같고 도둑같음을 증명한다. 게다가 시간강사로 일하는 저자는 4대보험을 보장받지도 못한다. 저자는 맥도날드에서 '알바'를 하면서 간신히 4대보험의 '혜택'을 받게 된다. 나이 서른이 넘어서 건강보험에 부모님을 피부양자로 넣을 수 없다는 것에 대해 쓸쓸해하는 저자의 글을 읽노라니 가슴이 답답해졌다.


그가 누군가에게는 '교수님'이라고 불릴 시간강사 라는 타이틀을 달기까지 말 그대로 '힘겹게' 살아왔으며 빚만 잔뜩 졌다는 걸 보고서는, 대체 이 나라는 뭔가, 하는 생각을 했다. 이 나라는... 뭐지?



석사과정과 박사과정을 밟는 내내 대출해서 생활비를 마련하고 그러다보니 자연스레 사람들과의 교류도 끊기게 된다. 그는 언젠가부터 다른 사람들에게 '얻어먹기만 하는 인간'이 되어있었다.



나는 세 번째 술자리를 대접하고 싶어서, 근처 치킨집에 자리를 만들고 지난번엔 사주셔서 정말 잘 먹었어요 오늘은 제가 살게요, 했다. 그들은 아이고 고맞지, 라면서 좋게 술자리를 가졌다. 그런데 나가면서 계산을 하려고 보니 이미 U가 계산을 했다면 먼저 나와 있었다. 어 제가 산다니까 왜 그러셨어요 형님, 하니 아냐 뭘……하고 웃고 서로 헤어졌다. 그런데 네 번째 술자리에서 직장에 대한 이야기를 가볍게 하다가 내가 대학교에서 강의를 한다고 하니 U 는 야 너는 뭘 가르치냐 혹시 뭐 공짜로 어디 가서 얻어먹고 그런 거 가르치냐, 라고 했다. 1년이 넘게 지난 일이지만 그 말이 아직도 토씨 그대로 머릿속을 맴돈다. 나는 화장실에 간다며 일어나서 술값을 계산했고, 한 번 더 술자리를 갖자고 해 먼저 계산하고 나왔다. 다음 날 단톡방에서 나오고, 그 뒤로 체육관에 가지 않았다. (p.65)



부모님께도 친구들에게도 그리고 체육관에서 운동하며 만난 사람들에게도 그는 당당히 설 수가 없었고, 그렇게 사회적인 인간에서 멀어졌다. 이게 그가 시간강사가 되기 위해 치러야 할 몫이었다. 







맥도날드에서도 해주는 걸 대학에서는 해주지 않는다. '교수님'이라 불리지만 먹고 살기가 힘이 든다. 그 힘든 과정을 거치면서 연구를 하는 즐거움, 논문을 쓰면서 느꼈던 짜릿함이 고스란히 담겨져있고, 첫 강의를 맡으면서 좋은 교수가 되기 위해 학생들의 말에 귀를 기울이는 모습도 담겨져있다. 나쁜 상사 밑에서 보고 배우는 건 나쁜 점들이 더 먼저인데, 내가 이렇게 당했으니 너도 이렇게 당해봐, 하는 것이 더 전달 속도가 빠르고 강한데, 저자는 학생들과 대화를 나누려고 하고 자신이 뭔가 잘못했다는 생각이 들면 잘못했다고 사과할 줄 알며 혹여라도 내가 이들을 압박하고 있는건 아닌가 하고 수시로 돌아본다. 좋은 교수가 되었다. 이렇게 힘든 제도 속에서, 불합리한 시스템 속에서 이렇게 괜찮은 교수로 학생들과 소통할 수 있는 교수가 되어서 그저 감사한 마음뿐이다. 게다가 시종일관 그는 겸손한 문체를 써서, 그간 내가 읽어온 어떤 에세이보다 묵직하게 다가온다. 


어떤 사람들은 열심히 공부하고 그 공부에서 정말 신나는 재미를 찾는다. 그리고 열정을 가지고 학생들과 소통하는 좋은 교수가 되기 위해 노력한다. 그런데 그렇게 되기까지 이토록이나 열악한 환경만 주어진다면, 많은 사람들이 중도에 포기할 거란 생각이 든다. 불합리한 시스템 때문에 병신같은 제도 때문에 우리는 학생들과 소통할 수 있는 또한 정말 재미있게 공부를 할 수 있는 많은 사람들을 놓치고 있는지도 모른다. 대학은 돌아봐야 할 일이다.



이 책을 아주 많은 사람들이 읽었으면 좋겠다고 생각했다. 지난주에 만난 친구에게는 크리스마스 선물이라며 이 책을 주었다. 일단 이 이야기가 널리 익혀서 대학 내의 불합리한 시스템이 밖으로 드러나 개선되었으면 하는 바람이고, 또 하나, 저자에게 어떻게든 이 책이 많이 팔려 도움이 되었으면 하는 바람에서이다. 물론 책의 인세라는 것이 그 사람이 먹고사는 데 그다지 도움이 되지는 않더라도 말이다. 저자는 책에서 '아파도 되는 청춘은 없다'고 하는데, 그 말은 맞다. 노력을 덜해서 젊은 세대들이 고생하는 게 아니라, 그간 어른들이 썩은 세상을 만들어놨기에 청춘들이 아파하고 있는 거다. 원래 이래왔어, 늘 이래왔어, 하고 악습을 계속 전달하는 것부터 뿌리 뽑을 일이다. 그리고 대학들이여. 등록금을 그렇게 받아 쳐먹으면서 그 안에서 일하는 사람들을 돌보지 않는다니, 뭐하는 짓들인가! 그러고서도 당신들이 누군가를 '가르친다'고 할 수 있는가. 니네나 똑바로 살 일이다. 게다가 교수들도 똑똑히 현실을 보길 바란다. 당신들은 얼마를 받고 무슨 혜택을 받으며 살고 있는가. 자신들의 삶은 그러할진데 어떻게 한 '학기'에 육십만원 받는 사람에게 '지낼만하다'라고 말할 수 있는가. 



저자에게 그저 미안할 따름이다. 그런 환경인 것을 그간 몰라서, 관심이 없어서. 그리고 감사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버텨줘서'. 그렇게 버텨주고 겸손한 시선으로 학생들과 소통하고자 노력하는 사람이어서, 부끄럽지 않은 교수가 되기 위해 늘 공부하고자 하는 사람이어서 고맙다고.

기회가 된다면 내가 술 한 잔 사고 싶다.


댓글(23) 먼댓글(1) 좋아요(40)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1. 나는 자연인이다
    from 마지막 키스 2015-12-21 10:08 
    나이들면서 입맛이 바뀌는 것처럼 생각하는 바도 달라지는 것 같다. 그래서 사람은 '절대' 라는 말을 써서는 안되는 것 같다. 이십대 무렵, 내가 어른이 되었다고 생각했을 때는, 누군가를 욕하던 행위 그 자체를 나 스스로 하고 있다는 걸 깨달았을 때였다. 아, 이런 사람 나는 욕했는데, 내가 그런 사람이 되었네... 하고.그래서 이제는 다른 사람이 한 행동에 대해서 '그럴 수밖에 없었겠지' 하는 생각을 하게 된다. 그 사람은 그럴 만해서 그런 게 아닐까?
 
 
기억의집 2015-12-21 09:55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토씨 하나 틀리지 않고..란 대목에 대목에 맘이 아프네요. 얼마나 그 말에 상처가 되었으면...

다락방 2015-12-21 14:20   좋아요 0 | URL
네, 누군가에게 얻어먹기만 하는 사람으로 인식된다는 것에서 저자가 되게 씁쓸해하더라고요. 누구나 그렇겠지만, 저자는 돈벌이도 시원찮아 더 속이 쓰렸을 것 같아요. 그런 불합리한 제도속에 놓여서 살아가야 한다는 게 너무 속상했어요. 읽으면서 이 책 참 아프고 무섭구나, 했어요. 소설이 아니라서요. 소설이 아니라서 더 아팠어요..

단발머리 2015-12-21 14:13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박사 친구가 있죠. 모교랑 여기 저기 몇 군데 강의를 나가는데 집이 지방이라 서울 왔다갔다 차비 빼고나면 딸애 어린이집 비용도 낼 수 없다고 하더라구요. 친구는 남편이 돈을 버니 그나마 다행이죠.
이게 취미생활도 아니고. 돈 내면서 가르쳐야 하다니....
그에 반해 교수님들, 진짜 교수님들은 많이 여유로우신것 같아요. 편안하죠~~ 경제적 여유로움이 뭐... 그대로 묻어나죠.

그런 면에서는 중학교 고등학교가 나은 것 같아요. 간단히 비교할 수는 없지만, 수업을 맡는 교사라고 한다면 시간당 강의료가 크게 차이나지 않아요. 그러니까 1년 기간제교사나 정규직 교사나 월급차이가 아주 크게 나지는 않는다는 거죠.

대학이 나쁘다,로 결론짓고요.

저도 이 분 신문에서 기사와 사진을 보았더니, 무척 가깝게 느껴지네요.
저자 분~~~ 이 글 보시면 연락주세요. 다락방님이 술 한 잔 사신답니다.
만나실 때 저도 꼭 불러주시구요~~~ ㅎㅎㅎ


다락방 2015-12-21 14:22   좋아요 0 | URL
네, 단발머리님. 대학 강사가 맥도날드 알바를 겸하고 있고, 심지어 건강보험증도 맥도날드에 다녔기 때문에 나올 수 있었어요. 대학은.. 뭔가요? 이놈의 대학, 대체 하는 일이 뭘까요? 대학이라는 곳이 참 역겹더라고요. 니네 대체 무슨 짓을 하는거냐, 싶고 말이지요. 등록금은 학생 한 명당 몇 백만원씩 뜯어가면서, 대체 그 돈으로 뭐하는 걸까요? 씁쓸했어요. 그렇게나 오래 공부해서 좋은 교수가 되고자 했지만, 그러기 위해서 계속 계속 대출을 받아야 한다는 게 말이지요. 강의를 나가는 지금도 계속 학자금 대출 갚느라 자기가 쓸 수 있는 돈이 얼마 없어요. 인생...

네, 저자랑 술 마실 기회가 있다면 단발머리님도 꼭!! 부르겠습니다. 흣.

transient-guest 2015-12-21 14:50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정말로 보따리 장사가 따로 없어요 게다가 매번 재계약 하려면 피말리죠 정말 나쁜 제도에요

다락방 2015-12-23 10:15   좋아요 0 | URL
그렇게나 오랜 시간 열심히 공부했는데 돌아오는 게 너무 초라한 것 같아요. 아니, 돌아온다는 말 조차 적합한 단어가 아닌 것 같아요. 어쩌다 이렇게 되었을까요?

살리미 2015-12-21 15:37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요즘 기사를 보니까 저자가 자신을 공개하고 대학강사직도 맥도날드 알바도 그만두었더라고요. 첨엔 자신을 밝히지 않으려고 309동 1201호라는 이름으로 책을 냈던데 그 책을 읽고 어떻게들 알았는지 `너 어쩌려고 그러느냐`며 협박조로 찾아오는 선배들이 많았다는 기사도 봤습니다. 이 책 나왔을때부터 저도 너무 놀랍고 관심이 가서 지켜보고 있었는데 이젠 당당히 이름을 밝히고 글을 쓰는 사람으로 살아가겠다 하더라고요. 저자의 이름이 마침 우리 오빠 이름이랑 같아서 더 마음이 쓰이더군요. 정말 잘됐으면 좋겠어요.
현실이 이런데 시간강사법이 시행되게되면 더 많은 시간강사들이 제대로된 처우를 받지 못한다더군요. ㅠㅠ
다락방님, 꼭 만나서 술한잔 하시게 되면 응원하는 사람들이 많다고 전해주세요^^

다락방 2015-12-23 10:16   좋아요 0 | URL
저도 대학강사직 그만 두었다는 것만 건너건너 들었는데, 지금은 어떻게 지내고 있는지 궁금하네요. 조금이라도 형편이 나아졌다면 좋을텐데요. 이 나라에서는 형편이 나아지기가 쉬운 일이 아니라서 안타까워요. 말그대로 젊은 사람들이 발붙이고 살기에 이 땅은 헬조선이죠.. ㅠㅠ

아애 2015-12-21 15:49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책 제목이 나는 시간강사다 가 아니고 지방대 시간강사다 라는 것도 참 가슴 아픕니다. 우리 사회에 있는 뿌리 깊은 편견이 그분들을 또 한 번 힘들게 하죠.

다락방 2015-12-23 10:16   좋아요 0 | URL
네, 책에서도 여러차례 지잡대에 대해 언급이 되더라고요. 어느순간부턴가 대학이 그저 허울 좋은 타이틀이 된 것 같아요. 그 안에서 누가 얼만큼 어떤 걸 공부하는지와는 완전히 상관없이 말이지요.

아애 2015-12-21 15:51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위에 교수들 참 편하고 여유롭다는 말에 반은 공감하고 반은 그렇질 못하네요. 대학에 아직 살아있는 정신들이 많습니다. 다만 죽은 정신이 더 목소리 크고 힘 있는 게 안타까울 따름이죠.

다락방 2015-12-23 10:19   좋아요 0 | URL
네, 아애님 말씀대로 모든 교수들이 다 잘못된 생각과 행동을 갖고 있진 않겠죠. 가끔 언론에 보도되거나 혹은 그렇게 드러나진 않았어도 형편없는 교수들이 있는 반면에 성실히 연구하고 또 성실하게 가르치고자 하는 교수들도 있을 걸 압니다. 그런데 못된 교수들의 영향력이 너무 세요. 학생들을, 조교들을 비참하게 만들죠... ㅠㅠ

꼬마요정 2015-12-21 16:12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저도 대학원 가서 선배님들 얘기 들어보니 참으로 갑갑하고 답답하고... 그래도 후배한테 머라도 사 줄라고 하시는 거 보면 마음이 짠합니다.

다락방 2015-12-23 10:19   좋아요 0 | URL
선배라고 후배들한테 잘해주고 싶어하는데 실상 베풀 수 있는 건 별로 없고... 마음이 얼마나 안좋을까요? ㅜㅜ
어쩌다 대학은 그런 곳이 되었을까요? ㅜㅜ

2015-12-21 16:24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15-12-23 10:21   URL
비밀 댓글입니다.

Mephistopheles 2015-12-21 16:38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두둘겨 패고 감금하고 고문하고 인분까지 먹이는 교수님도 있는데요 뭘...

다락방 2015-12-23 10:22   좋아요 0 | URL
하아- 그러게나 말입니다.
어떻게 이렇게 되었을까요, 메피스토님? 어쩌다 이지경이 된걸까요? 대학이 엉망이라 나라가 엉망인지 나라가 엉망이라 대학도 엉망인지... ㅠㅠ

Mephistopheles 2015-12-23 11:35   좋아요 0 | URL
사실 대학은 옛날부터 엉망이었던 터라....
이런 문제들이 요즘에야 수면으로 튀어나오는 것뿐이라고 생각됩니다.

몬스터 2015-12-22 00:32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이 책을 쓰신 분의 신원(?)이 드러나 학교에서 쫒겨 났다는 글을 봤네요. 씁쓸합니다. 산다는 것이 어렵습니다. ㅎㅎㅎ

다락방 2015-12-23 10:22   좋아요 0 | URL
네 그러게요 산다는 게 쉽지가 않네요. 원하는 삶을 살아가는 것이 왜이렇게 어려운걸까요? 학교라는 일터에서 벗어난 그 다음의 삶은 그전보다 좀 나아졌기를 바랄 뿐입니다. ㅠㅠ

dd 2015-12-26 22:54   좋아요 0 | 댓글달기 | 수정 | 삭제 | URL
꼭 한번 읽어보고 싶어요..ㅜㅜ너무너무 슬퍼요...

다락방 2016-01-04 14:52   좋아요 0 | URL
네, 꼭 한 번 읽어보세요. 추천합니다! 우리가 알아야 할 일들이라고 생각해요.
 
나는 언제나 옳다
길리언 플린 지음, 김희숙 옮김 / 푸른숲 / 2015년 11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이게 뭐여........... -_-

댓글(0) 먼댓글(0) 좋아요(3)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일식
히라노 게이치로 지음, 양윤옥 옮김 / 문학동네 / 2009년 6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그러나 아마도 그 하나하나의 이유 모두가 진실을 품고 있으리라. 나이가 들어갈수록 나는, 인간이 행하는 바 어떤 결과가 오직 한 가지의 원인에 반드시 귀착된다고 하는 단순한 낙관주의를 점점 더 믿을 수 없게 되었다. 하나의 결과가 나오는 것은, 우리가 생각하는 것보다도 훨신 더 많은 미묘한 카오스(혼돈)에 의한 것이며, 대부분의 경우 우리가 찾아낸 원인이라는 것은, 유기적인 카오스로부터 조금 떼어온 한 조각에 지나지 않는 것이리라. 물론 그 크고 작음의 차이는 있겠지만. (p.220-221)


댓글(10) 먼댓글(0) 좋아요(10)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icaru 2015-12-01 17:16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작가가 20대 중반쯤에 쓴 작품으로 알고 있는데,, 참 대단해요~
˝어려도 다 알아요(아파요)˝ 같은 노랫가사인지 뭔지가 떠올라요!! ㅎ

다락방 2015-12-01 17:19   좋아요 0 | URL
스물 셋에 썼답니다, 글쎄! 저는 스물 셋에 만화방에서 만화 보며 라면 먹고 있었는데... 하아-

moonnight 2015-12-01 21:37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이 책 읽고 저도 충격받았던 기억 나네요. 굉장한 젊은 작가가 나타났구나 하고요. @_@;

다락방 2015-12-02 08:20   좋아요 0 | URL
제 젊은 시절은 헛된 시간들이 아니었나..젊은 시절을 너무 탕진하지 않았나.. 생각합니다. ㅠㅠ

뽈따구 2015-12-02 15:56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전 스물 셋에..... 왠 벤쳐에서 밤새가며 프로그래밍 공부를 했....... 하아..........

다락방 2015-12-03 12:24   좋아요 0 | URL
아아, 그래도 공부를 하셨다면...뭔가 남는 게 아닐까요? 전 너무 먹고 마셔대기만해서...결국 비루한 육체가 남았네요. Orz

transient-guest 2015-12-03 09:45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여기 제가 사놓고 못 읽고 있는 책이 pop-out하네요.-_-: 납뜩이가 그럽니다...`어쩌면 좋지 너??` 딱 제 심정이네요..

다락방 2015-12-03 12:25   좋아요 0 | URL
사놓고 못 읽은 책으로 배틀붙으면 제가 이길 것 같은데요? 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 저는 사두고 안읽은 책 소진하기..를 2016년의 목표로 잡아볼까 합니다. 매해 그랬듯이..말입니다. ( ˝)

2015-12-05 13:45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15-12-06 20:54   URL
비밀 댓글입니다.
 
이웃집 살인마 - 진화 심리학으로 파헤친 인간의 살인 본성
데이비드 버스 지음, 홍승효 옮김 / 사이언스북스 / 2006년 7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알라딘에서 책을 주문할 때도 그렇고 다른 인터넷 쇼핑을 할 때, 나는 가급적이면 회사에서 택배를 받는다. 친구들이 주소를 물어도 대부분 회사 주소를 알려준다. 집 주소는 가능하면 알려주지 않으려고 하는데, 그것이 남자친구인 경우엔 더 그렇다. 가급적이면 애인이라도 집 주소를 알려주고 싶지 않다. 그렇지만 언제까지고 알려주지 않을 수는 없다. 연애를 하고 지내다보면 부득이하게 집 주소를 알려줘야 하는 경우가 생기고야 만다. 좋다고 사귀면서 알려주지 않는 것도 좀 뭣해서 결국엔 알려주게 되는데, 헤어지고나면 집 주소를 알려준 게 가장 걸린다. 


나는 내가 강박증을 갖고 있어서 그러나, 하는 생각을 했는데 최근에서야 많은 여자사람들이 자신의 애인에게 집주소 알려주기를 꺼려한다는 걸 알게됐다. 뿐만아니라, 내가 사는 곳을 알려줬다는 거, 특히나 헤어진 애인이 나의 집을 알고 있다는 것에 대해 두려워한다는 것도 알게됐다. 예전에 여자사람친구랑 얘기하는데, 그 친구가 그랬다. '나는 애인하고 나쁘게 헤어진 것도 아닌데 집 앞에서 날 기다리고 있을까봐 무섭다' 고. 나 역시도 그랬다. 헤어지고나서 가장 무서운 건, 혹시라도 집앞에서 그가 나를 기다리고 있을지도 모른다는 두려움이었다. 헤어진 연인을, 말없이, 맞닥뜨리기 싫었다. 그건 두려움이었다. 물론, 사귀고 있을 때도 말없이 집앞에서 기다리는 건 오싹하다. 결코 유쾌하지 않다. 낭만을 찾는답시고 약속 없이 찾아오는 일은 연애중에도 나는 싫다. 오늘도 한 여자사람에게 물었다. 너도 혹시 헤어진 남자가 집앞에서 기다릴까봐 무서웠던 적이 있냐고. 그녀는 있다고 했다. 


어쩌면 나는 기본적으로 남자사람을 신뢰하지 못하는 건지도 모르겠다. 그것이 어릴 적에 폭력에 노출된 때문인지 아니면 여태 살아오면서 겪어온 생활속의 남자들의 모습 때문인지는 모르겠다. 물론 나는 아주 많이 남자사람들을 좋아하고, 그들과 대화하며 웃고 술 마시는 걸 정말 사랑하지만, 두려움까지 함께 가진 것도 맞다. 헤어진 뒤 쌍년이란 욕을 들었을 때도 두려웠고 욕을 먹지 않았는데도 두려웠던 적도 있다. 어떤 헤어짐에 있어서는 두려움이 너무 커서 나를 아는 여자사람들 모두에게 내가 지금 이토록 두렵다, 고 다 말하고 다니기도 했었다. 혹시라도 나에게 어떤 일이 생긴다면 내가 이러이러해서 두려워했었다는 걸 알아줘, 하고. 


물론 매 연애와 이별뒤에 늘 그랬던 건 아니다. 또한 나를 두렵게 했던 남자들, 내 친구들을 두렵게 했던 남자들이 유별나게 나빴던 남자들도 아니었다. 오히려 착하고 평범한, 좋은 남자들이었다. 그런데 그중 일부는 헤어지고 나니 무서운 존재가 되는 거다. 그렇다면 그런 두려움을 느끼는 내가, 다른 여자들이 유별난걸까? 이 책은 그렇지 않다고 말한다.



잠시만 생각해 보자. 순간적일지라도 누군가를 살해하는 상상을 해 본 적이 없는가? (p.56)



살인을 저지르는 사람이 특이한 사람이 아니란다. 우리 모두 누군가 한 번은 죽이고 싶은 욕망을 가지고 살인에 대한 판타지를 가졌다는 것을 이 책은 얘기한다.


이 책에는 누군가를 죽이고 싶었던 생각을 가진 많은 사람들의 이야기가 나온다. 그 사람들은 평범한 사람들이었다. 가진 것을 잃을까봐, 경쟁상대가 꼴보고 싫어서, 모욕감을 느껴서, 두려워서 등등. 각각의 이유로 사람들은 누군가를 살해하고 싶다는 생각을 했고 대부분은 그저 생각에 그쳤으며 그중 일부는 실제로 살인을 저지르기도 했다. 그리고 이 책을 읽다보니 나처럼 헤어진 연인에 의해 내가 다칠지도 모른다는, 죽을지도 모른다는 생각을 하는 여자사람들이 많다는 걸 알게됐다. 내가 유별난 게 아니었단 말이다.



우리는 몇몇 놀라운 사실들을 발견하게 되었다. 예를 들어, 남성들은 자신의 짝짓기 전망이 희박해질 때 살인을 저지르고 싶어진다고 응답한 반면, 여성들은 그렇지 않았다. 도어스의 짐 모리슨이 말했듯이, "당신을 거절할 때, 여자들은 사악해 보인다.(Women seem wicked when you're unwanted)"(1960년대 많은 논란을 불러일으킵며 히피 문화의 상징으로 추앙받던 전설적인 록 그룹 도어스의 보컬 짐 모리슨이 가사를 쓴 「사람들은 이상해(People are Strange)」에 나오는 구절이다-옮긴이) 이 불온한 생각은 남자들이 살인을 저지르는 상황에 대한 연구 결과에도 그대로 반영되어 나타났다. (p.36-37)



자신을 버린 배우자에 대한 살인 판타지에서는, 남녀 간의 차이가 그리 크게 발견되지 않았다. 오히려 판타지를 실행할 가능성이 주요한 차이라고 할 수 있었다. 남성들이 자신을 버린 배우자를 살해한 반면, 여성들은 살인이 유일한 탈출구라고 생각될 만큼 심하게 자신을 격리하고 학대하며 위협한 배우자를 살해했다. (p.174)



간략히 말해,여성들에 의해 저질러지는 살인의 주된 동기는 자기 보호와 위험한 결혼으로부터 도망치려는 필사적인 욕망이다. 이렇게 학대적인 관계에 처한 여성들은 자신이 처한 위험을 제대로 인식하고 있다. 자신의 배우자를 떠나려 시도한, 비슷한 환경에 처해 있는 많은 여성들이 수잔 라이트보다 더 운이 없었다. 적어도 수잔은 자신의 목숨은 건질 수 있었다.(p.171)



한 남자사람을 처음 보게 됐을 때, 그리고 그저 아는 사이로 지냈을 때는 그가 '사귀면서' 어떤 남자일지 알 수가 없다. 사귀면서는 그의 새로운 면들, 내가 알지 못했던 면들이 속속 드러난다. 마찬가지로, 사귀면서 알지 못했던 점들이 헤어지고 나서 드러나기도 한다. 이 사람이 이럴 줄 몰랐는데, 하는 것들. 데이트폭력을 당하고 가정 폭력에 노출된 여자들에게 종종 '그런 남자랑 왜 사귀어', '그런 남자랑 왜 결혼했어' 라고들 말하는데, 사귀기 전에는 그가 때릴 줄 몰랐기에 사귀었고, 결혼 전에도 그가 수시로 내게 주먹을 휘두를 줄 몰랐기에 그렇게 되었다. 또한 '맞은 여자'라는 타이틀은 오히려 가해자보다 더 많이 피해자를 위협한다. 그런 폭력 속에 휘둘린 이상 거기에서 빠져나오는 것 역시 어마어마한 두려움을 동반한다. 그와 사귀기 전에 알 수 있다면 얼마나 좋았을까. '이 남자는 여자를 때릴 남자다', '이 남자는 변태적인 성행위를 즐기는 남자다', '이 남자는 집착으로 여자를 피곤하게 할 것이다' 등등. 그런 게 이마에 써있다면, 여자들이 미리 알 수 있었다면 당연히 그런 남자를 선택하지 않을 수 있을텐데.



남자들이 반응하는 방법을 예측할 수만 있다면(누가 애걸하며 간청할지, 누가 위협할지, 누가 스토킹할지, 누가 떠나갈지 그리고 누가 살해할지) 상당한 고통을 줄이고 많은 생명을 구할 수 있을 것이다. 그러나 우리는 그럴 수 없다. 살인이 상대적으로 드문 사건이기 때문에, 언제, 어디서, 누가 살인을 저지를 것인가를 예측하는 것은 엄청나게 어려운 일이다. (p.139)



그는 계속 제게 전화해서 사랑한다고 말했어요. 그리고 제가 자신을 완전히 떠나 버리면 뭘 해야 할지 모르겠다고도 말했구요. …… 제가 사는 곳을 알고 있기 때문에 집에 찾아와서 절 죽일지도 모른다고 생각했어요. (p.145)



살해당한 많은 여자들은 대부분 자신이 살해당할 걸 예측하고 있었다. 누가 자신을 죽일지 이미 두려워하고 있었고 '저 사람이 나를 언젠가 죽일거야' 하는 말을 바깥으로 꺼내기도 했다. 그리고 그들은 자신이 두려워했던 그대로 그 사람에게 살해당한다. 멀리 도망가기도 해봤지만 결국은 그렇게 됐다. 커다란 두려움이 계속 내게 보내는 신호를 절대 무시해서는 안되는 이유다. 7년간 살인에 대해 연구해서 이 책을 써낸 저자 '데이비드 버스'는 이렇게 오랜 시간 살인을 연구했음에도 불구하고,



살인 문제에 대해 만병통치약이란 없다. (p.361)



라고 말한다. 그는 그저 나의 직관을 믿으라고 말한다. 우리가 할 수 있는 건 고작 그것 뿐인것 같다. 




우리가 알고 있고, 우리가 사랑하는 사람들에게 살해당할 위험이 얼마나 실제적인 것인지 깨달아라. 반갑지 않은 성적인 눈길을 일 초 이상으로 오래 보내는 남자를 경계하라. 당신이 존재하지 않는 걸 더 좋아할지도 모르는 계부모에게 주의하라. 당신의 성공을 배 아파 하며 조용히 앉아 있는 경쟁자를 조심하라. 동료들 앞에서 당신이 준 모욕을 참을성 있게 받아넘긴 사람에 대해 다시 한번 더 생각하라. 방금 유혹한 이성의 전 배우자를 주의하라. 거절하기 전에 당신을 '유일한 한 사람'으로 생각했던 낭만주의자를 경계하라. 떠나지 않으려는, 스토커로 변해 버린 전 애인을 경계하라. (p.362)



누군가를 죽이고 싶다고 한번쯤은 생각했던 사람들에게 저자는 묻는다. 왜 그렇게 하지 않았냐고. 대부분의 사람들은 그 사람을 죽이고나면 자신이 감옥에 갈 것임을 잘 알고 있기 때문이라고 답했다. 앞으로의 삶을 암흑으로 보내고 싶지는 않았다고. 또한 누군가를 죽인다는 것이 잘못된 것이라는 것도 잘 알고 있었다. 그래서 대부분의 사람들은 생각에만 그친다. 나 역시 그들과 마찬가지로 누군가를 죽이고 싶다고 생각해본 적이 있다. 저자가 내게 그런데 왜 그렇게 하지 않았느냐고, 그들에게 물었던 그대로 묻는다면, 나는 저자에게 아마도 이렇게 답할 것이다. 그때는 내가 너무 어려서 힘이 없었고, 지금은 힘이 있지만 그가 이미 죽어버렸기 때문이라고. 대부분의 평범한 사람들이 어쩌면 괴물이 됐을지도 모를 순간들을 지나쳐왔다. 나 역시도 그랬고. 



누군가를 죽이고 싶어하는 사람들의 얘기, 누군가 나를 죽일까봐 두려움에 떠는 사람들의 이야기를 한 권 가득 읽고났더니 두려움보다는 슬픔이 밀려왔다. 죽이고 싶다는 욕망도-거기에 이르게 한 수치심, 모멸감, 분함 등등-, 죽을지도 모른다는 두려움도, 하나같이 다 내가 알 수 있는 감정들이라 마냥 슬펐다. 이 연구를 하는 동안 저자 역시 연구를 그만둘까를 고민할 정도로 힘들었다고 했는데, 그럼에도 불구하고 저자는 인간에 대한 희망을 놓지 않는다. 그러니까 살인에 대한 욕망이 아닌 다른 어떤 것들에 대해 믿고 있다고 해야하나. 그리고, 나도 그렇다.


우리의 마음속에 살인을 저지르도록 자극하는 적응들이 존재한다는 사실이 우리가 그것을 인간의 본성으로 받아들이고 살인을 퇴치하려는 노력들을 포기해야 한다는 것을 의미하는가? 분명히 그렇지 않다. 인간은 살인에 대한 적응뿐만 아니라 협동, 이타주의, 화해, 우정, 동맹 형성, 자기희생에 대한 적응들 역시 가지고 있다. 살인이 발생할 때, 인간의 본성은 문제가 된다. 그러나 동시에 인간의 본성은 그 문제를 해결할 수 있는 중요한 열쇠를 쥐고 있기도 하다. (p.356)



라고 써놨건만, 조선대의전원생의 데이트폭력 사건을 듣게 됐다. 네 시간 동안 잔인한 폭력 앞에 노출되어 죽음에 대한 공포를 겪었을 생각을 하니 마음이 너무 안좋았다. 피해자는 죽음에 대한 공포를 느꼈는데, 고작 얼마간의 벌금으로 가해자를 세상에, 피해자의 옆에 다시 내놓다니. 바로 위에 희망 운운한게 병신 같은 말이 되어버렸다.




출생 후 작동하는 살해 방어 기제는 바로 `울기`다. `울기`는 아기가 배고픔이나 고통을 부모에게 알리는 괴로움의 신호이다. 출생 후 6개월이 지나, 영아가 다른 곳으로 이동할 수 있는 능력을 비교적 갖추게 될 때까지, 영아에게서는 특화된 공포 반응이 나타난다. 바로 낯선 사람에 대한 공포 반응(낯가림)이다. 영아의 공포 반응은 낯선 사람 누구에게나 무차별적으로 나타나는 것이 아니라 주로 남성에게 집중해서 나타난다. 이는 인간의 진화 역사 동안 영아에게 가장 큰 위험의 대상이었던 성별과 정확히 일치하는 것이다. (p.30)

또 다른 문제는 비상하는 것은 종종 추락한다는 것이다. 사람들은 사랑에 빠질 때처럼 갑작스럽게 사랑에 흥미를 잃는다. 우리는 누구의 사랑이 식을지 확신을 가지고 예측할 수 없다. 그러나 최근의 연구 결과들은 이에 대해 몇몇 중요한 단서들을 제공해 준다. 사랑에 빠질 때, 욕구의 충족이 중대한 것처럼, 욕구의 방해는 갈등과 이혼을 예고한다. 부분적으로 그가 가진 부와 야심 때문에 선택된 남성은 직업을 잃게 되면 버림받을지도 모른다. 또 부분적으로 젊음과 미모 때문에 선택된 여성은 젊은 모델이 자신의 배우자를 유혹하면 물러나야 할지도 모른다. 처음에는 자상하던 상대가 잔인하게 변할지도 모른다. 반복해서 관계를 가졌음에도 임신이 되지 않으면 부부는 각자 다른 곳에서 더 비옥한 결합을 찾을지도 모른다. (p.120)


댓글(6) 먼댓글(0) 좋아요(21)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후이 2015-12-01 09:29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이 글 보고 나니 생각나는 남자가 있네요. 친구에게 직장에서 묘하게 계속 찝쩍대는, 심지어 결혼한 뒤에도 그런 사람이 있었는데, 이상하게 빤히 쳐다보는 눈빛이 너무 무서웠다고요.
매일 하루가 멀다하고 들려오는 기사들이나, 어제 4시간 감금폭행이나 여자를 무섭게 하는 일은 현재진행형으로 계속 되는 거 같습니다.

다락방 2015-12-01 09:38   좋아요 0 | URL
네, 무휘님. 제가 아는 여자들 중에서도 그런 경험을 한 사람들이 있어요. 분명히 `아니`라고 말했고 심지어 `애인이 있다`고 말했는데도 무작정 들이대는 남자들이요. 소리도 질러보고 좋게도 말해봤지만 자기 말만 하고 자기 감정만 전달하기에 급급했던 남자들. 그런 남자들을 대하는 여자들은 정말로 `무서워` 했어요.

현재진행형이에요, 무휘님. 여전히요.

단발머리 2015-12-01 10:26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저는 신문기사나 방송을 통해서는 많이 들었지만 헤어진 남자, 전 남편, 전 남친의 존재가 얼마나 공포스러운지 이 글을 읽고나니 더 가깝게 느꼈어요. 제 주위에서는 실제로 많이 말하지 않기 때문인것 같아요.
헤어져서도 도망갈 수도 없다면 어떻게 해야하는지... 정말 죽음을 각오하고 헤어져야 하는지...

그나저나 저는 이 책, 읽어요, 말아요? ㅎㅎ

다락방 2015-12-01 10:29   좋아요 0 | URL
이 책을 읽어야할지 말아야할지 제가 ... 그러니까.. 판단이 잘 안되네요? ㅎㅎㅎㅎㅎ

네, 단발머리님. 실제로 저도 공포를 느낀 적이 있고요, 공포를 느꼈다고 말한 지인들도 있었어요. 그리고 털어놓다 보면 꽤 많더라고요. 다들 그걸 말하기 두려워하고 꺼려하는 것 같아요. 내가 사귀었던 사람, 내가 호감을 가진 남자에게 실상 공포를 느꼈었다는 걸 말하는 건 쉽지 않으니까요. 그렇지만 말하지 않으면 안돼요. 말해야 해요. 그래서 누구 때문에 공포를 느끼는지 주변인에게 알리는 게 좋다고 생각해요, 전. ㅠㅠ

도망을 갔는데도 따라와서 총으로 쏜 남자도 있더라고요. 왜 헤어지는 일이 죽음을 각오해야 하는 일이 된걸까요...하아-

뽈따구 2015-12-01 12:51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어우... 역시... 전.. 무한긍정인가봐요. 이 글을 읽으면서 십분 공감하면서도.... 실감이 안 나는걸보면. 긁적.

다락방 2015-12-01 13:13   좋아요 0 | URL
실감이 안 나는게 낫지 않을까요? 실감나는 순간 아프고 불편하니까요. ㅜ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