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버드 사랑학 수업 - 어떻게 시작할 것인가, 어떻게 떠나보낼 것인가
마리 루티 지음, 권상미 옮김 / 웅진지식하우스 / 2012년 11월
평점 :
구판절판


며칠전에 내 친구 정식이와 책에 대한 대화를 나눴다. 정식이는 좋은 책은 몇 번이고 반복해서 읽는다고 했고, 나는 물론 그런책이 몇 권 있긴 하지만 나는 그보다는 새 책 읽기를 더 원한다고 했다. 정식이는 좋은 책을 읽으면서 읽을 때마다 감탄한다 했고, 나는 새 책에 있을 다른 무언가를 또 발견하고 열광하고 싶다고 했다. 그래서 늘 새 책이 궁금하다고. 그러자 정식이는 내게 말했다. 


너의 책읽기는 너의 연애와 비슷하네.


오, 그 말을 들었을 때의 놀라움이란! 


그랬다. 나는 책이든 사람이든 잠시잠깐 열광하고 그러면서 늘 새로운 어떤 것, 내가 아직 만나보지 못하고 접하지 못한 어떤 것을 기대했다. 더 좋은 다른 게, 더 흥분할 만한 다른 게, 상상해보지 조차 못한 그 무엇이 있지 않을까? 이것이 나를 늘 새로운 책을 사게 만들었고, 이것이 나를 늘 짧은 연애만 하게 만들었다.


정식이는 자신이 심사숙고하여 연인을 골랐고, 그렇기에 장기적인 연애가 가능한거라 했다. 나는 그 말을 듣자마자 개풀 뜯어 먹는 소리라고 버럭 화를 냈는데, 사랑하는 사람을 선택하는 것이 내게는 '심사숙고하여 결정할 만한' 일이 아니라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물론 우리가 한참을 대화를 나눈 끝에, 정식이는 정식이 나름대로의 연애를 하고 나는 내 나름대로의 연애를 한다는 결론을 내리긴 했지만, 우리 모두가 전혀 다른 개성을 가진 만큼 상대를 선택하고 관계를 유지하는 것도 전혀 다른 형태로 해나간다는 걸 알게 되긴 했지만, 정식이는 자신의 연애가 성공적이라 생각했고, 나는 내가 연애의 실패자라고 생각했다. 짧게 끝나는 연애는 결코 성공으로 여겨질 리가 없고, 길고 오래간다면 그것이 성공적이란 건 누가 봐도 자명한 사실일테니까. 그렇지만 나는 연애에 있어서 실패를 해도 상관없었고, 내가 실패자라고 스스로 생각하면서도 성공적인 연애에 대한 희망을 가지지도 않았으며, 정식이의 연애가 하나도 부럽지 않았다. 나는 또 연애를 하게 될 경우에도 여전히 실패를 무릅쓰고 달려들 것이라는 걸 알았다. 성공적인 연애가 작게나마 무엇을 인내하고 양보하고 배려하는 것들로 이뤄진 것이라는 걸 알지만, 그것들 중 어떤 것이 내 신경을 조금이라도 건드린다면, 나는 장기적인-그러나 성공적이라 보이는- 연애대신 기꺼이 실패로 뛰어들 것이었다. 



연애에 실패자라는 사실이 나를 비극이라는 진창속에 빠드리지도 않고, 또한 그 실패에 대한 어떤 두려움도 없지만, 그래도 '실패자' 라는 타이틀은 '성공한 자' 라는 타이틀보다 어감이 안좋은 건 사실이다. 나는 별다른 감정없이 내가 실패자임을 담담하게 인정하지만, 성공하고 싶다는 열망이 있지도 않지만, 그래도 '꼭 실패자여야 하는걸까?' 라는 의문을 갖지 않는 건 아니었다. 그런데 '마리 루티'가 이 책, <하버드 사랑학 수업>에서 온전히 내 편이 되어준다. 실패하라고, 성공하지 말라고. 정식이의 연애는 분석적이고 이성적이었던 반면 나의 연애는 충동적이고 감정적이었다. 이것은 확실히 내가 더 무모한 사람이라는 증거일거라 생각했는데, 마리 루티는 말한다. 충동과 열정과 감정에 그저 나를 맡기라고. 실패를 하라고. 나는 포스트잇을 덕지덕지 붙여가며 그녀의 말을 경청한다. 



사람들은 장기적인 안정성을 기준으로 연애의 성공을 측정하곤 합니다. 남녀 사이에 다툼이 생기면 관계에 문제가 있는 것으로 바라보는 경향이 있습니다. 그러나 사랑은 지속석 외에도 다른 목표를 지니고 있습니다. 나는 영혼을 건드리지 않는 밋밋한 관계를 오래 끌고 가느니 아주 잠깐이라도 무모한 열정에 자신을 내던지는 것이 훨씬 낫다고 생각합니다. 그렇다고 우리가 불안정한 관계를 좇아야 한다는 뜻은 아닙니다. 안정감, 편안한, 신뢰감이 추구할 가치가 없다는 얘기도 아닙니다. 하지만 사랑의 가치를 이런 식으로만 평가한다면 우리는 사랑의 근본적인 소명을 잘못 이해하고 있는 것입니다. 인생의 가장 감동적인 통찰은 사랑의 좌절에서 나온다는 사실을 깨달아야 합니다. 이런 고통스러운 좌절은 인생의 방향을 전체적으로 재평가하게 만듭니다. 그것이야말로 좌절이 우리에게 가져다주는 보상인 셈이죠. (pp.22-23)



나는 지속되는 사랑이 예외이고 상실이 일반적인 거라고 말했습니다. 사랑이라는 직물은 처음부터 상실이라는 실로 짠 것입니다. 사실 사랑이 그토록 소중한 것은 사랑이 본디 불확실한 것이기 때문입니다. 사랑을 언제라도 잃을 수 있음을 알기에 사랑을 고귀하게 생각하는 것입니다. 생각해보면 우리가 인생에서 가장 아끼는 것은 모두 찰나의 것들입니다. 들판의 야생화가 아름다운 것도 잠시 피었다 지기 때문입니다. (p.229)




사람들이 장기적인 연애를 성공으로 평가한다고 해서 내가 굳이 그걸 성공하기 위해 애쓸 필요는 없다. 사랑인 본디 상실을 동반한 것이니까. 얼마전에 법륜 스님의 연애에 대한 강의를 들었는데, 듣다가 깜짝 놀랐었다. 장기적인 연애를 하기 위해서 눈을 좀 낮춰 상대를 고르라는 거였다. 내겐 이 말이 '사랑을 모르는' 말인 것 같았다. 숱한 연애지침서는 상대를 공략하기 위해 전략을 세우고 게임을 하라고 말하는데, 짧은 연애가 눈이 높기 때문에 생기는 일이라면, 그건 상대를 획득하고자, 차지하고자 하는 사냥 본능에서부터 비롯된 게 아닌가. 내가 차지하고자 하는 상대는 다른 사람들 모두 차지하고자 하는 상대이다, 눈을 낮춰라, 오래가기 위해서는. 이게 뭔말이야...이건 장기적 연애를 성공으로 보는 바로 그 관점이 아닌가. 물론 사람들마다 연애의 궁극적 목표를 다르게 설정할 수 있다. 오래가고자 하는게 최종목표라면, 그래, 그 말을 따르면 될지도 모른다. 그러나 나는  '일부러 눈을 낮추어 고른 상대'가 오래된 관계를 보장한다해도, 그걸 선택하진 않겠다. 안정적이고 긴 연애에 무슨 의미가 있을까? 그래서 내게는 법륜 스님의 연애 강의 보다는 '마리 루티'의 책이 훨씬 와닿았다. 휩쓸리고 열정을 다하고, 상실이 와도 그것이 자연스러운 것이다, 라는. 첫눈에 반하는 것이 무모한 것처럼 보이겠지만, 그건 그 상대에게서 '무엇'을 발견했기 때문이니 빠져들라고, 마리 루티는 말한다. 아, 하버드에 가고 싶다. 사랑학 강의라니, 정말 멋지지 않은가.



게다가 '마리 루티'는 오, 신이시여, 화성남자 금성여자 라는 논리에 거칠게 반박한다. 개똥같은 소리라고 말한다. 남자와 남자가 더 많이 다르다는 연구보고서가 쏟아져나와도 이 세상의 연애지침서는 '남자와 여자가 다르다'고 말하고 그걸 고수한다고. 그걸 바탕으로 연애를 전략적으로 하라고 말한다고. 연애지침서가 내거는 남자와 여자의 특징은 말짱 개소리라고 말한다. 너랑 내가 다른거고, 나라는 인간과 너라는 인간이 다른거지, 남자와 여자가 다른 게 아니라고. 남자도 감성적이고 섬세할 수 있고 여자를 사냥감 취급하지 않을 수 있다고. 아니, 여자를 사냥감 취급하는 남자가 개쓰레기라고, 그런 남자에게 튕기기 작전을 쓰라는, 밀당을 제대로 하라고 충고하는 연애지침서는 쓰레기통에 넣으라고 한다. 밀당하지 말고 튕기지 말고 그런 전략들에 말려들어 게임하지 말고, 내 개성을 그대로 살리라고. 남자는 원래 이래, 여자는 원래 이래, 라는 오래전부터 잘못된 명제에 혹하지 말라고. 튕기고 밀당을 하면서 유지되는 연애라면, 그 남자랑 거침없이 이별하라고 말한다. 아, 속이 다 시원하다. 멋져!




연애지침서에서는 남녀가 크게 다를 뿐만 아니라 연애에서 성공하려면 남자의 심리를 제대로 알아야 한다고 합니다. 이것이 내가 가장 먼저 풀고자 하는 오해입니다. 나는 '남성 심리'란 없다고 말하겠습니다. 남자를 유혹하는 불변의 테크닉이란 없습니다. 서점에 이런 테크닉을 가르치는 책들이 넘쳐난다고요? 그것은 이런 테크닉이 실제로 효과가 있어서가 아닙니다. 바로 우리가 새로운 질서에 적응해야 한다는 사실을 순순히 받아들이기보다 남녀가 각기 다른 별에서 왔다고 주장하는 편이 훨씬 더 쉽기 때문입니다. (p.15)



사실 연애지침서에 나오는 남자들은 섹스를 거부하는 법이 없다고 하지 않던가요. 뜨거운 피가 흐르는 남자라면 길에서 마주치는 어떤 매력녀와도 잠자리를 같이 할 거라고요.

이 점에서 나는 <가십걸>에 동의하지 않을 수 없습니다. 내 이성 친구들을 보면 어떤 여자를 원하거나 이별의 상처를 극복하려 할 때 결코 다른 여자에게 눈을 돌리지 않습니다. 새로운 물건에 대한 욕망을 다른 물건에로 옮겨가기 어려운 것처럼 여자에 대한 갈망도 마찬가지입니다. 정말로 어떤 여자에게 빠져 있다면 섹시한 여자들을 트럭으로 갖다준다 해도 소용이 없습니다. 이 친구들은 사랑을 배신하느니 술병을 끼고 사는 편을 택할 것입니다.

<가십걸>에서 댄은 현대 남성의 '선택'을 이렇게 정리합니다. 사랑하는 여자 앞에서 끝없이 약해지거나 혹은 전혀 모르는 여자와 자거나. 세상에는 후자를 여러 번 선택하는 남자도 있을 것입니다. 이런 남자들 중 일부는 전통적인 마초들입니다. 하지만 나머지 남자들은 상처 입을까봐 두려워하는 남자들입니다. 댄 역시 두려움을 느끼지만 그는 사랑을 선택합니다. (pp.93-94)



내 최근의 연애들을 돌이켜보았을 때 나와 연애를 한 그 남자들은, 연애지침서가 정의한 남자들과 달랐다. 그들은 말 그대로, 섹시한 여자를 트럭으로 갖다줘도 나를 선택할 남자들이었다. 나는 그들과 밀당을 할 필요가 없었고 튕기기 작전을 쓸 필요도 전혀 없었다. 내가 그냥 있는 그대로의 나였어도 괜찮았다. 더 젊고 예쁜 여자와 한 방에 가둬두어도 뿌리치고 나올 만한 남자들이었다. 오히려 그런 상황이 되면 흔들흔들 무너지는 건 나였을 것이다. 내가 사귄 남자들은 열여자 마다하는 남자들이었고, 나는 열남자 마다하지 않는 여자였으니까. 세상에는 자신이 선택한 사람, 자신이 선택한 사랑에 최선을 다하는 남자들이 분명 존재하고, 이것은 이 남자와 다른 남자 혹은 이 사람과 다른 사람의 성향이 다를 뿐이지 '여자와 남자가 달라서' 가 아니었다. 나와 당신이 다르고, 우리는 모두 저마다의 개성을 가지고 있다. 사랑은, 이렇게 서로 다른 두 사람이 만나는 일인 것이다.




언제고 사랑을 잃을 수 있다는 사실이 사랑을 방해하는 것은 아닙니다. 그것은 사랑의 엄연한 이면일 뿐입니다. 사랑은 또한 오래 지속되지 않아도 의미를 지닐 수 있습니다. 가장 기억에 남고 마음을 사로잡는 사랑은 오히려 그런 사랑입니다. (p.230)



실패라고 치부해버린 내 사랑, 혹은 내 연애도 결과적으로는 실패가 아니었다. 그것은 그 자체로 의미가 있었고, 마리 루티가 말한대로, 가장 기억에 남고 마음을 사로잡는 사랑도, 잃었던 대상중에 있으니까. 



이별의 고통은 우리의 일상을 뒤로 물러나게 하고 우리를 무의식적 충동이 담긴 어두운 지하 창고로 끌고 내려갑니다. 그리고 삶에서 가장 중요한 가치가 무엇인지, 어떻게 그것을 얻을 것인지 생각해보게 합니다. 사랑의 실패는 발걸음을 멈추고 내가 어떻게 나아가기를 원하는지 생각하게 합니다. 뒤로 한 걸음 물러나 인생을 새로이 설계하게 만들죠. 인생 설계를 재조정하도록 촉구하는 것으로 실연만 한 것은 없습니다. 상실로 인한 번민은 우리가 우리의 미래를 만들어나가는 일에 적극 참여하게 만들죠. (p.194)




실연으로 인한 고통에 허우적대는 사람들에게 아직 이 말이 와닿지 않겠지만, 그 고통의 순간은 분명 끝날것이고, 돌이켜보면 조금 더 달라진, 조금 더 성장한 사람이 되어 있을 것이다. 나는 이 고통과 성장을 밀어내지 않을것이고, 지금처럼 충동적이고 감정적으로, 뜨거울만큼 뜨겁게 사랑하다 실패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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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마리 루티 라고요!
    from 마지막 키스 2017-03-15 10:06 
    오늘 아침 알라딘을 열고 어떤 신간이 나왔나 검색을 해보다가 제목부터 흥미로운 책을 똭- 만났다. 오오, 이거 재미있겠는데? 하고 장바구니에 넣어두는데, 어라? 저자의 이름이 낯익다? 마리..루티? 접힌 부분 펼치기 ▼ [책소개]진화심리학자들이 주장하는 남녀에 관한 유해한 이분법을 비판한 책이다. 진화심리학자들은 꽤 진보했다고 여겨지는 이 시대에 철저하게 남성과 여성을 이분법으로 나눌 수 있다고 믿는다. 게다가 그 믿음을 일반 대중들에게 끊임없이 공유
 
 
마립간 2014-03-07 14:25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연애의 성공의 정의를 긴 연애로 하면 짧은 연애는 실패가 되지만, 각각을 긴 연애의 성공과 짧은 연애의 성공으로 나누어 정의하면 각각의 분야에서 성공하는 사람이 있게 마련이죠.

'다시 더 낫게 실패하라'는 책도 있지만, 이것은 궁극의 성공을 염두해 둔 말이구요. (저는 남녀의 차이가 개인의 차이보다 더 크다는 정형sterotype을 갖고 있어 이해가 안 되는 부분이 많지만,) 가장 이해가 안 되는 것은 '인생의 가장 감동적인 통찰은 사랑의 좌절에서 나온다는 사실을 깨달아야 합니다.'입니다. 사랑의 좌절은 좌절이고 통찰은 통찰로 무관한 것 같은데요.

짧은 연애는 짧은 연애의 종결이지 좌절도 아닌 것 같고요.

다락방 2014-03-07 14:39   좋아요 0 | URL
저는 제가 사랑하고 애태우고 아파하고 때로는 시큰둥하고 과격하고 무심한 부분들이 제가 '여자라서' 가 아니라 제가 '이런 사람이라서 '라고 생각하고, 그것이 다른 사람에게도 적용된다고 생각해요. 제가 아는 남자 1이 거칠고 마초적이라면 그것 역시 그가 '남자라서' 가 아니라 '그런 사람이라서' 이고요. 성별이 무엇이든간에 그 사람의 성형은 '그 사람이기 때문에' 나온거라고 생각하는지라, 남녀 차이 보다는 개인의 차가 더 크다고 생각합니다.

그리고 저는 사랑의 좌절이 단지 좌절로 끝난다고 보지 않고요. 대부분의 사람들이 사랑을 하고 이별을 겪고 그 과정에서 좌절을 하면, 그 좌절의 시간을 지나 조금 더 앞으로 나아간다고 보여지고요, 아 상대는 어땠고 나는 어땠었구나, 하는 깨달음의 순간이 오고 이것은 내가 어떤 사람이 되느냐, 어떻게 살아가느냐에 영향을 미친다고 보여지고요. 인격이 훌륭한 남자를 만난다고 생각했을 때, 그 남자는 본디 인격이 훌륭하게 태어난 것도 있겠지만, 그 사람을 그렇게 만든 일련의 사건들과 사람들이 있었을거라고 보여집니다. 좌절이 좌절로만 끝났다면 더 나은 사람이 되는게 불가능했을 것이고, 연애를 하면서 늘 같은 패턴을 반복하게 되겠죠. 그렇기에 저는 좌절을 겪으면 반드시 무언가 얻는게 있다는 생각이 들고, 그것이 나에게 조금이라도 영향을 미친다고 생각합니다.

짧은 연애는 짧은 연애대로 긴 연애는 긴 연애대로, 종결됐다면 그에 따른 좌절이 찾아올 수 밖에 없고요. 짧든 길든 나라는 인간은 무언가에 열중했다 그것을 놓아버린 혹은 잃어버린 것이니까요. 거기에 절망이나 좌절이 찾아드는 건 당연하다 보여집니다. 그 좌절 역시 짧게 끝나느냐 길게 끌고 가느냐의 차이는 있을 수 있겠고요.

마립간 2014-03-07 14:52   좋아요 0 | URL
다락방님의 주신 답변성 댓글을 읽으니, 위 리뷰를 다시 읽은 느낌입니다.^^ 다락방님의 의견이 틀렸다기보다 제가 이해를 못하는 것이겠죠. 소설만 안 읽는 저와 소설만 읽는 다락방님 차이처럼. 제가 간접 경험으로도 얻지 못한 것을 옅보고 갑니다.

다락방 2014-03-07 14:57   좋아요 0 | URL
하하하하. 그러고보니 제 리뷰에서 밝힌 말을 그대로 다시 한 셈이 되어버렸네요. 하하하하

건조기후 2014-03-07 16:32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정말 속이 시원하네요. 저 역시 연인이든 친구든 혹은 단순한 지인이든... 사람이 사람을 만나는 일에 굳이 성별을 끼워넣어 구별지을 필요는 없다고 생각해요. "여자들은 이거 좋아하지?" 라고 묻지 않고 "넌 뭐 좋아해?" 라고 물어야죠. "새로운 질서에 적응해야 한다는 사실을 순순히 받아들이기" 이 말 참 좋네요. 케이스 바이 케이스... 정답 같아요.

장기적인 연애의 성공을 위해 눈을 낮추라는 말은 정말 대체 뭔소린가요? ;; 연애라는 게 감정이 중요한 일인데 시간의 길이가 무슨 상관이며... 눈을 낮추라는 말은 너무 완벽한 상대를 찾지 말라는 뜻이긴 하겠지만 그렇다고 마음에 없는 상대와 거짓 인생을 살 수는 없는 일인데. 말 참 이상하다...

다락방 2014-03-10 17:10   좋아요 0 | URL
그러니까요. 남자들은 이렇잖아, 여자들은 이렇잖아, 하면서 일단 성별에 고정관념을 씌워버리는 거죠. 그보다는 개인차이가 더 심한데 말이지요. 일전에 남자사람친구와 닭 구워 먹는데 갔다가 껍질이 너덜거리길래 그걸 벗겨냈거든요. 그랬더니 친구가 야 그거 나 줘, 이러는거에요. 아니 이걸 왜 널 달래? 물었더니. 너 버릴거잖아 내가 먹게 달라고. 하더라고요. 내가 이걸 왜버려? 하니까 여자들은 닭껍질 안먹고 버리잖아 하더라고요. 하하하하하. 난 닭껍질 먹는 여잔데? 먹을라고 벗겼는데? 라고 했어요. 갑자기 그 생각이 나네요. 하하하하하.


법륜스님은 '결혼'은 장기적으로 가야하지 않겠느냐, 그러니 눈을 낮추는 게 좋다, 라고 했어요, 결론적으로는. 그런데 전 만약 저와 결혼한 남자가 '난 장기적으로 안정적인 결혼생활을 위해 눈을 조금 낮춰 널 선택했어" 라고 한다면 진짜 죽빵을 날릴것 같아요. 내 상대가 나를 '오래 가기 위해' 눈을 낮춰 선택했다면, 정말 토할것 같지 않아요? 싫어...싫어요....

꽃핑키 2014-03-07 17:36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마지막 인용문에 확 꽂힙니다. 저는 이십대 중반에 심하게 실연 당한적이 있었는데요. 아무리 생각해봐도 제 인생은 실연당하기 전 / 후로 명확하게 달라진것 같다고나 할까요? ㅋㅋ 무튼 인생에서 가장 큰 걸 그때 다 배운것 같아. 지금은 오히려 고맙기까지 해요 ㅋㅋ

그나저나 다락방님 *_*ㅋ 보내주신 책이 잘 도착했답니다. 저 밀려있는 책 진짜 많은데ㅋㅋ 다락방님 책부터 미친듯이 읽고 있답니다. 너무 재미져요! 역시 내 다락방님이야!!! 눈에 하트를 그리며 읽다가 잠깐 안부 남기러 왔어요 ㅋㅋㅋ

다락방 2014-03-10 17:13   좋아요 0 | URL
ㅎㅎ 저도 처음 실연 당한 후가 제일 충격이었던 것 같아요. 이별의 아픔을 극복하는 것도 그렇고 남녀관계에 있어서 둘 사이가 얼마나 은밀하고 내밀한가부터 시작해서 어떤 문제들로 갈등이 생기기도 하는지를, 이론으로 아는 것과 실제로 겪는 것이 달랐고요, 그걸 겪고 난 뒤에는 다른 사람 혹은 다른 연인들을 보는 시야가 좀 넓어지더라고요. 내가 남들 연애에 대해 함부로 얘기할 수 없겠구나, 하는 그런거요. 아픈만큼 성숙해진다는 말은 진리인 것 같아요. 시행착오를 반복하면서 저는 저에게 더 잘 맞는 상대를 선택할 수 있게 되는 것 같아요. 연애는 나 자신의 가장 밑바닥을 들여다보게 해주고, 그래서 내가 어떤 사람인지 더 잘 알게 해주는 가장 좋은 방법인 것 같아요. ㅎㅎ


아니, 재미지다고 해주시니, 저야말로 감사합니다 핑키님!!!!! 제가 뭐 몸둘바를 모르겠네요. 에헤헤헷

고양이라디오 2015-10-29 02:54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저도 이 책 너무 좋은 책이라 생각합니다^^ 리뷰 잘 읽고 갑니다. 꽃핑키님께 추천해주신 책이 먼지 궁금하군요ㅎㅎㅎ

다락방 2015-10-29 08:28   좋아요 0 | URL
꽃핑키님께 추천해드렸다기 보다는 꽃핑키님이 그저 잘 읽어주셨다고 볼 수 있을텐데요, 그 책은 이 책입니다.

http://www.aladin.co.kr/shop/wproduct.aspx?ItemId=33431254

네, 제가 쓴 책입니다. 아하하하하.
 
애플은 얼마나 공정한가 - 세계 50개 기업에 대한 윤리 보고서
프랑크 비베 지음, 박종대 옮김 / 열린책들 / 2014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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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주전이었나. 영화가 상영되길 기다리는 극장안에서 '프리페민'이란 약의 광고를 보게됐다. 생리전증후군을 치료해주는 약이라는데, 평소 생리전증후군에 시달리던 나로서는 당장에 메모를 했고 바로 다음날 약국에 들러 구입을 하려고 했다. 그러나 약국에선 그런 약을 알지 못한다고 했고, 좀 더 큰 약국에 가봐야하나 싶어 그 다음날 들른 약국에서는 있다며 그 약을 내게 꺼내주었다. 하루에 한 알씩 먹는 약이라고 했는데 카드를 내밀고 계산을 하려던 나는 그 약의 가격이 60,000원, 육만원 이라는 말에 깜짝 놀랐다. 이 가격이 정말 맞는거냐고 물으니 약사는 이 약은 3개월분이고 치료제라며 그 가격이 맞다고 대답했다. 생리전증후군은 내게 꽤 심각한 증상을 종종 불러왔고, 나는 그 증상들에 기꺼이 육만원을 투자하자 싶어 계산을 하고 약국을 나왔다. 그래, 이 약을 먹고 나아진다면 그게 더 낫잖아, 라는 생각에. 그러나 몇 걸음 걷다 다시 뒤돌아 약국으로 향했다. 이 약이 들어온 지 아직 얼마 되지 않아 사람들의 후기를 찾아려해도 좀처럼 찾아볼 수 없었던 것. 어떤 약에 대해서는 부작용을 가진 내가 이 약을 그냥 무조건 먹어도 괜찮을까, 하는 걱정이 들고 실제 이 약을 먹고 효과를 봤다는 사람들의 말을 듣고서 이 약을 복용해도 늦지 않을 거였다. 이 고통을 오래도록 참아왔는데, 몇 개월 더 못참겠는가 싶어 나는 약국으로 가 환불을 요청했다. 몇 개월쯤의 시간이 흐른 뒤, 사람들의 후기를 보고 그 약을 먹기로 생각을 바꿨다.



나는 가급적 약을 먹고 싶지 않고 약들이 내 몸에 들어가서 무슨 작용을 할까 사실은 좀 두려워하는 부류의 사람이다. 그러니 생리전증후군을 치료하는 약 하나에도 이렇게 벌벌 떨기만 한다. 이 약을 철저한 검증을 거친 약일까? 그 생각을 하지 않을 수가 없다. 나는 어떤 부작용이 있을지도 모른다는 두려움에 이 약을 먹기를 꺼려하면서 다른 누군가가 먼저 먹고 얘기해주기를 바랐다. 확실히 나는 다른 사람보다 내 자신을 더 생각하는 부류의 사람인가보다. 이것은 동물에 대해서도 마찬가지다. 약에 있어서는 더더욱 동물실험을 거친다. 많은 사람들이 동물 실험을 반대하고, 나 역시도 그것이 동물에게 해서는 안될 짓이라고 생각은 하지만, 나는 적극적으로 동물 실험을 반대한다는 말을 할 수가 없다. 만약 인간보다 더 똑똑한 개체가 나타나 자신들의 병을 치료하기 위해 약을 만들고자 하고, 거기에 인간을 실험대상으로 쓴다고 하면 아마 나는 앞장서서 그 일에 반대를 할 것이다. 그러면서도 인간이 고통스런 병에 걸리고 그 약을 발명하는데 있어 동물 실험을 거쳐야 한다고 하면, 나는 암묵적으로 동의할 수밖에 없는 것이다.



이 책, 『애플은 얼마나 공정한가; 세계 50개 기업에 대한 윤리보고서』는, '윤리'란 말이 제목에 들어간 탓인지 매 기업의 보고서를 볼 때마다 고민에 빠지게 만든다. 이렇게 표현해도 된다면 그래서 이 책은 '재미있다'. 그것이 유쾌한 재미를 뜻하는 게 아니라, 진지하게 고민할 부분들을 끊임없이 열거하고 있기 때문에 흥미로 가득하다는 것이다. 나는 애플과 삼성전자를 보기 위해 이 책을 펼쳐 읽기 시작했는데, 노바티스 보고서를 보고 푹 빠져버리고 말았다. 



제약 회사의 또 다른 특수한 문제는 실험과 관련되어 있다. 동물 실험은 동물 보호 단체의 비난을 불러일으킨다. 반면에 충분히 검증되지 않은 약을 사람에게 실험하려면 더 큰 윤리 문제가 불거진다. 특히 개발도상국에서 실시하는 실험은 아주 민감한 문제다. 가난한 사람들의 처지나 현지의 느슨한 규정을 악용한다는 비난이 즉각 제기될 수 있기 때문이다.

이런 모든 비판에서는 가끔 한 가지 사실이 간과된다. 현대 의학만큼 삶의 질을 개선한 분야가 없다는 사실이다. 많은 사람들이 처음으로 중병에 걸린 뒤에야 비로소 그 사실을 깨닫는다. 현대 의학의 이런 유용성을 인지한 사람은 제약 회사가 받는 비난을 좀 더 현실적으로 바라볼 수 있을 것이다. 노바티스는 무엇보다 이런 이유에서 별점 셋을 받았다. (p.78)



도덕적으로 동물 실험을 반대하는 것이 '옳다'고 말할 수 있지만, 동물 실험을 하지 않은 채로 중병을 고치는 약을 만드는 다른 방법에 대한 대안이 없다면 이럴 때 바로 멘탈에 붕괴가 오는 게 아닌가. 그럼에도 불구하고 무조건 안돼, 라고만 외치는 것이 과연 옳은 걸까. 이런 면에서 제약회사는 비난을 면키 어렵지만 나는 마냥 비난만 하지는 못할 그런 사람이란 생각이 들었다. 나는 묵묵히 외면하는 쪽이 되겠지. 동물 실험에 대한 문제는 제약 회사를 다루는 게 아니어도 이 책에서 여러번 언급된다. 그러면서 밝힌다. '의학적 목적을 위한 동물 실험은 전반적으로 용인된'다는 사실을.



특히 동물 애호가들에게는 더더욱 그렇다. 다른 괜찮은 대안이 없을 경우 의학적 목적을 위한 동물 실험은 전반적으로 용인되는 반면 화장품의 용도라면 상황은 달라진다. 피부 관리는 그 중간 정도로 볼 수 있다. 사치품은 아니지만, 의료품처럼 반드시 필요한 것도 아니기 때문이다. (바이어스도르프, p.151)




모든 사람 개개인이 문제를 가지고 있듯이 모든 기업들 역시 문제를 가지고 있다. 동물 실험, 노조 탄압, 환경 오염 등을 비롯하여 자꾸 언급되는 것이 '아동 노동'에 대한 부분이다. 이 아동 노동에 대해서도 그 자체만 놓고 보면 그것은 '절대 하지 말아야 할' 행위이지만, 그렇다고 그 아동에게서 노동을 떼어놓았을 경우, 그 가족 자체의 앞으로 살아갈 길이 차단되어버린다면, 그것을 과연 떼놓는 것 만으로 정답이라고 할 수 있을까. 



아동 노동 문제도 상세히 적혀 있다. 가령 취직을 위해 생년월일을 허위로 기재하는 경우가 많은 현실을 고려해서 실제 나이가 의심스러울 때는 의사 진단을 받아야 한다고 규정해 놓았다. 하지만 그런 아이들을 길거리로 다시 돌려보내는 것은 아무 의미가 없다. 그래서 그 아이들에게 배움의 기회를 만들어 주고, 때로는 그 아이의 가족이 생계를 유지할 수 있도록 다른 나이 많은 형제자매를 고용하는 것도 문제 해결의 방법이라고 충고한다. (H&M, p.281)



사실 아동 노동만큼 일반적인 분노를 자극하는 것은 없다. 그러나 대개 아동 노동을 금지하는 것만으로는 근본적인 해결책이 되지 못한다. 아이들의 가족에게 충분한 수입을 제공하고, 아이들이 학교에 다닐 수 있도록 추가 프로그램을 마련하는 것이 필요하다. (스타벅스, p.181)



대부분의 아동 노동은 기업들의 하청업체에서 발생한다. 그 하청업체 사람들이 과연 의심되는 아이들을 의사에게 보내고, 배움의 기회를 만들어주고, 생계를 유지할 수 있도록 도와주는 일을, 하게될까? 애초에 더 적은 임금을 들여 노동력을 사용하고자 하는데? 충고한다고 그것이 기업에게 먹힐까? 281페이지의 방법이 언급되지만, 그것이 궁극적 해결은 되지 못할것이다. 그렇다면 어떻게 해야할까. 어떻게 해야 아동을 노동으로 끌어들이지 않으면서, 그러나 아동을 노동으로 내몰 수 밖에 없는 그들 가정의 궁핍함을 도와줄 수 있을까. 이 점에 대한 대안 역시 내게는 존재하지 않는다. 이 기업을 보나 저 기업을 보나 고민할 것 투성이다. 어디 하나 백프로 만족할 만한 기업이 없는 것이다.



물론 이 책에서 저자로부터 별 다섯을 받은 단 하나의 기업이 존재한다. '마이크로소프트' 사가 그것인데, 그 별다섯 역시 그 기업 자체가 아니라 빌 게이츠 재단을 보고 주었다고 저자는 밝히고 있다. 일전에 서민 교수의 책에서 빌 게이츠가 말라리아 백신을 만드는 데 지원을 한다고 했는데, 빌 게이츠 재단은 별 다섯을 받아도 마땅하다고 한다. 마이크로소프트 라는 회사 자체는 다른 기업과 마찬가지로 문제가 있음이 명백하고.



이러한 경쟁 체제에서는 특히 중요한 역할을 하는 두 가지 요소가 있다. 고객의 습관의 힘과 그로 인한 결과다. 다시 말해 다수의 고객을 차지한 기업이 시장의 표준이 되고(예를 들어 마이크로소프트의 워드 프로그램), 표준이 된 기업이 다수의 고객을 얻는다는 것이다. 그 때문에 게이츠 재단의 재산이 결국 게이츠가 시장의 독점적 지위를 이용해서 거둔 천문학적인 수익에서 비롯되었다는 비난은 맞다. 그러나 독점적 지위로 돈을 벌려고 하는 것은 다른 기업들도 마찬가지다. 다만 규모가 작을 뿐이다. 게다가 다른 기업은 그렇게 번 돈을 재단에 기부하지도 않는다. (마이크로소프트, p.139)



이 책 자체의 모든 평가는 온전히 저자의 것이기 때문에 물론 그가 내리는 평가가 절대적이 될 수 없다는 사실을 잘 알고있다. 그러나 그가 보여주는 기업에 대한 비난과 칭찬은 그의 자체적 평가에서 나온것 만은 아니다. 그리고 그 평가의 좋고 나쁨과 상관없이 이 책은 생각할 거리를 많이 던져준다. 예상하지 못했던 동물 실험과 아동 노동을 만나 묵직해졌는데, 그는 사치품에 대해서도 언급하고 있다. 사치품이라는 단어 자체에서 주는 그 묘한 거리감, 사치라는 말이 주는 위화감, 누군가로부터 사치스럽다는 말을 들으면 마치 죄를 지었다는 뜻인것 마냥 당당하지 못할 것 같은 느낌들이, 사실은 가지지 않아도 좋을 느낌은 아닐까. 




사치란 비도덕적일까? 중세에는 분수를 넘는 모든 종류의 과도함을 라틴어로 ,룩수리아>라 불렀고, <인색함>이나 <질투>나 매한가지로 죄악으로 보았다. 그러니까 사치스러운 생활뿐 아니라 지나친 절약이나 남의 사치에 대한 질투도 죄악으로 간주했다. 그런데 개신교의 영향이 큰 지역이나 평등을 지향하는 현대 사회에서도 과도한 사치를 거부하거나 심지어 비난받을 일로 여기는 경향이 있다. 그 배경에 깔린 논리를 보자면 이렇다. 많은 사람이 힘들게 사는데 혼자만 너무 티 나게 잘사는 것은 옳지 않게 느껴진다는 것이다.

그러나 이것은 동전의 한 면으로서, 사치품을 제공하는 기업보다 그것을 사는 소비자에게 해당되는 이야기이다. 그렇다면 질문을 바꾸어 보자. 사치품을 생산하는 사업 모델은 윤리적 관점에서 어떻게 평가되어야 할까? 결과는 그리 나빠 보이지 않는다. 사치품은 비교적 환경에 대한 부담은 적은 반면에 가치는 높기 때문이다. 시계를 예로 들어 보자. 비싼 시계는 값싼 시계보다 환경에 더 많은 부담을 주지는 않지만, 10배에서 심지어 100배가 넘는 가치를 창출해 낸다. 그만큼 더 좋은 일자리와 경제 성장을 일구어 낼 수 있다. 또 다른 비교를 해보자. 최고급 시계 수집이 취미인 사람은 그 돈으로 큰 차를 몰거나 장거리 여행을 다니는 것보다 환경에 훨씬 부담을 적게 준다. 이런 관점에서 보면 사치품은 사회적 관점에서도 이익에 따르는 비용이 결코 과도한 것으로 나타나지 않는다. (중략) 또한 비싼 시계나 보석만큼 수명이 긴 것이 있을까? 이런 제품은 원칙적으로 영구적이고, 지속 가능성 그 자체이다. 따라서 기업의 관점에서 볼 때 사치품은 결코 윤리적 문제가 아니다. (리슈몽, pp.133-134)




원칙적으로 사치라는 주제에 윤리를 들이대기는 어렵다. 금욕적인 라이프스타일을 실천하는 사람이 남에게 자신의 라이프스타일을 강요할 근거가 없는 것처럼 말이다. 세상의 불평등과 불공정을 비난할 수는 있지만, 사치는 기껏해야 그런 불평등의 욎거 현상이지 원인은 아니다. (LVMH, p.284)



물론, 저자 역시 사치품중에서 다이아몬드는 문제가 되는 영역이라고 말하고 있다. 또한 어떤 다이아몬드가 안정된 정국으로부터 나오는지도. 토요타와 BMW 같은 자동차를 만드는 기업에 대해서도 당연히 이 책에 등장하는데, 자동차는 환경오염에 정말로 심각한 영향을 끼친다고 한다. 하이브리드 차는 그렇지 않지만 심지어 전기로 가는 차까지도 많은 오염을 불러온다고. 문득, 나는 대중교통을 이용한다는 생각을 하면서 이런쪽으로 환경 오염의 부분을 덜고 있구나, 하는 생각을 했다. 나는 내가 이 사회에 긍정적 영향을 미치는 사람은 아닌 것 같다는 생각을 늘 해오고 있다. 이 직장에서 가치 있는 일을 한다고 생각하지도 않고, 사실 내가 몸담고 있는 이 기업이 가치 있는 기업이라는 생각도 들질 않는다. 나 개인으로도 마찬가지. 내가 남들처럼 면생리대를 쓰는 것도 아니고, 육식을 하지 않는 것도 아니다. 나는 고작 내가 하는거라곤 가급적 일회용품 안쓰기가 전부라고 생각해오고 있었다. 그런데, 내가, 대중교통을 이용하고 있다는 데 생각이 미친 것이다. 나는, 내가 생각하는 것보다 조금 더 나은 사람이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물론 더 많은 부분을 바꿀 수 있을지도 모른다. 어떤 사람들은 실질적으로 그렇게 하고 있기도 하고. 그렇지만 지금은, 이만큼의 나 자신도 괜찮다는 생각이 든다. 




위에서 잠깐 '지속 가능성'이란 용어가 언급됐는데, 레고를 설명하기 위해서는 이 지속 가능성을 짚고 넘어가는 게 좋을 것 같다. 


이 개념은 원칙적으로 미래의 희생 없이 경제를 이끌어야 한다는 뜻으로, 단기적 번영이 아닌 장기적 성공을 강조한다. (p.27)




레고는 별 다섯을 받은 마이크로소프트보다 실상 더 좋은 평가를 받고 있다. 별은 넷이지만 그것이 기업에 대한 것이라고 볼 때, 이 책을 통틀어 아마 가장 좋은 평가를 받지 않았나 싶다.



레고는 어떤 것이든 서로 딱 맞을 수 있는 원칙을 지켜 왔다. 그래서 더 큰 듀플로 조각도 레고와 조합할 수 있고, 기계 부품에도 거의 비슷한 원칙이 적용될 수 있었다. 과거에는 레고 블록으로 주로 건물을 지었다면 요즘은 상상으로 가능한 온갖 세계를 만드는 제품이 나와 있을 뿐 아니라 때로는 해리 포터처럼 유명한 테마와 관련된 상품이 나오기도 한다. 심지어 레고의 세게는 컴퓨터 게임에까지 등장한다.

이 모든 게 지속 가능성과 아주 관련이 많다. 오래된 레고 블록도 여전히 사용되고 있으니까 말이다. 많은 가정에서 레고 장난감은 조각이 거의 파손되지 않은 채 세대를 거쳐 전해진다. 때로는 이베이를 통해 부품을 따로 구입할 수도 있다. 이런 생산 방식은 새 제품과 시스템을 시장에 내놓으면서 구제품은 최대한 빨리 <낡은 것>으로 인식되게 하려는 전자오락의 발전 방식과는 완전히 다른 바람직한 대척점을 보여 준다. (레고, p.111)



위 부분을 읽다가 지속 가능성과 가장 머리가 먼 제품은 핸드폰이겠구나 싶어졌다. 요즘은 누구나 2년을 채 채우기도 전에 핸드폰을 새로 사니까. 물론 중고폰은 어딘가에 가서 쓰여질 예정이지만, 소비자 한 개인이 하나의 상품을 그토록 쉽게 낡은 것으로 취급해버리는 건 핸드폰만한 게 없지 않을까.




다시 말하지만, 완벽한 개인이 없는것처럼 완벽한 기업도 없다. 어떤 기업이든 어딘가에서는 큰 문제를 안고 있다. 그 문제는 숨기고 싶다고 해도 숨겨질 수 있는 부분이 아니고, 그 기업에서 만들어지는 물건들에 대해 소비자들은 사지 않을 권리, 사지 않겠다고 말할 권리가 있다. 또한 그 기업에게 그 부분을 시정하라고 요구할 권리가 있다. 그 기업들에서 만들어지는 물건들을 먹고 입고 착용하는 모든 것들은 소비자가 하는 것이니까. 그리고 이 책의 많은 기업들 역시, 대부분 외부에서 말해주는 문제점들을 시인했다. 빠르게 고쳐가는 기업도 있고 미적지근 흉내만 내는 기업도 있었지만, 어쨌든 그들은 자신들의 문제를 드러내고, 말했으며, 고치겠다 약속하며 시.인.했.다. 그러나, 별 셋을 받은 삼성은 별 하나나 둘을 받은 둘 보다-다시 말하지만 이 별은 절대 평가가 아니다- 구렸다. 삼성은 시인하지 않았다. 백혈병에 걸린 직원을 나몰라라 하고, 그것이 삼성의 탓이 아니라고 말했다는 이 사실을, 전 세계적으로 알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인정하지 않고 있다. 쪽팔린 일이다. 부끄러운 일이다. 자신의 문제를 인정해야 고칠 수 있다. 자신의 문제를 인정해야 앞으로 나아갈 수 있다. 문제를 인정하지 않으면, 그것은 반복될 뿐이다.




삼성은 강력한 영향력을 행사하는 일가가 그룹을 운영하는 재벌 기업의 전형이다. 이들은 한국의 경제 성장을 이끌었지만, 다른 한편으로는 국가 속의 국가처럼 돌아간다. 1987년부터 삼성 그룹을 이끌고 있는 이건희 회장의 힘은 막강해서 1996년 불법 정치 자금을 제공한 혐의로 유죄 판결을 받았지만 곧 특별 사면을 받았다. 

그와 함께 이런 질문이 제기된다. 이런 성공의 그늘은 과연 무엇일까? 종종 <요새>로 표현되기도 하는 이 기업의 경우에는 그것을 말하기가 쉽지 않다. 물론 삼성은 모든 영역에서 국제적인 기준을 지키려고 부단히 노력한다는 인상을 준다. 공개적으로 알려진 비난도 제한적이다. 따라서 별점 셋이라는 중간 정도의 평가는 여러모로 판단을 내리기 어려운 상황이 반영된 결과로 볼 수 있다.

아무튼 『차이트』지는 ,노동조합과 다른 민간 기구들이 이미 오래전부터 삼성을 권위적이고 무자비한 기업으로 비판하고 있다>고 썼다. 2012년 초에는 그린피스와 베른 성명이 거센 비판을 제기했다. 이들은 삼성이 노동자들에게 사전에 정확한 정보를 주거나 안전 조치도 취하지 않은 채 생산 과정에 유독 물질을 사용했다고 비난했다. 그로 인해 적어도 140명이 암에 걸렸고 그중 50명이 사망했다고 한다. 삼성은 독일 IT 잡지 『하이제 온라인』을 상대로 이런 비난을 반박했다. 여러 학술 연구 결과 그런 질병이 작업장의 유해 환경에서 발병했다는 근거가 없다는 것이다. (삼성전자, p.167)






기존에 고민했던 부분들을 다시 한번 고민해보기도 했고, 한 번도 생각해보지 못했던 것들을 생각해보기도 했다. 새삼 생각해보게 된 몇몇 부분들을 마지막으로 인용해보겠다.



독일 환경청에 따르면 1년에 한 번만 장거리 여행을 떠나도 시민 한 명이 1년에 평균적으로 배출하는 것과 비슷한 이산화탄소를 배출한다. 달리 말해, 장거리 여행을 즐기는 사람은 평소에 아무리 채식을 생활화하고 자전거로 출퇴근을 한다 해도, 스테이크와 자동차를 즐기지만 멀리 여행을 떠나지 않고 캠핑장에서 휴가를 보내는 사람보다 생태발자국이 훨씬 더 크다. 이 대목에서 환경 의식이 강한 사람들은 심한 갈등에 빠진다. 대개 환경 의식이 강한 사람들이 낯선 나라와 문화에도 관심이 많기 때문이다. (TUI-독일국제관광유니온, p,290)



보험 상품 판매는 궁극적으로 시장의 왜곡을 낳는다. 정상적인 시장의 경우 소비자에게 가장 유리한 상품이 가장 인기가 많은 법인데, 보험에서는 정반대로 돌아갈 위험이 상존한다. 판매원들은 자신들에게 가장 많은 수수료를 남겨 줄 수 있는 상품을 우선적으로 판매하는데, 그런 상품이 대개 가장 비싸다. (알리안츠, p.200)



아주 재미있고 흥미로우며 유익한 책읽기였다. 사실 기업의 윤리보고서로 들어가기 전의 저자의 말들은 잘 읽히질 않아 애를 먹었는데, 보고서들을 읽는건 의미있는 일이었다. 


이름도 들어보지 못한 기업이라고 생각했는데, 그 기업들이 가진 브랜드들은 죄다 유명한 경우가 종종 있었다. 일례로 LVMH 는 겐조, 겔랑, 지방시, 루이 비통 등의 브랜드를 가지고 있는 기업이었다. 이 모든것들이 내게는 모두 다른 것들이었는데, 하나의 기업에서 파생된 것들이었다니. 우리는 기업과 기업과 기업과 기업들 틈바구니에서 살고 있는 것 같다. 그것이 기업들이 어떻게 돌아가는지 더 유심히 지켜봐야 할 이유가 될 터이다. 어떻게해야 기업과 기업과 기업과 기업들 틈에서 내 목소리를, 우리의 목소리를 더 크게 낼 수 있을지 고민해야 할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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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작나무 2014-02-20 12:31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언젠가부터 무언가에 소속되지 않으면 살 수 없을 것 같은 분위기가 조성되어진 것 같아요. 저도 그래서 지금 다니는 곳을 떠나지 못하고 있고 단체는 존속 혹은 확장을 위해 알게모르게 비리를 저지를 수 밖에 없고...암튼
프리페민은 왠지 좋을 것 같은데 효과만 놓고보면 기존약에 비해 그닥 크지 못해요. 생리전증후군치료를 위해 약을 먹는게 효과가없는건 아니지만 식사 수면 운동의 3박자 관리를 함께 하지않으면 약만으로 기대하는 정도의 효과를 보기는 어려워요. 일단 술을 끊으시고 고기도 좀 줄이세요. 점심식사 하시고 30분 정도 걸으시구요. 원래 만삼천원 내야 이런말 해주는데....

다락방 2014-02-20 12:29   좋아요 0 | URL
안그래도 생리전증후군 혹은 생리통 증상에 대해 검색해보니 스트레스도 원인이지만 알코올과 카페인을 많이 섭취하는 것도 원인이더라고요. 아이쿠야, 이걸 어쩌나 싶어지고.. 술을 끊을 수 없다면 계속 데리고 가야 하는걸까요, 이 고통을? ㅠㅠ 슬프다.. 걷는건 퇴근후에 하고 있어요..
하하하하 만삼천원 내야 해주시는 말씀을 거저 해주셔서 감사합니다, 자작나무님. ㅋㅋㅋㅋㅋ 점심은 드신겁니까? 시간이 애매하네요. 전 오늘 한 시에 먹으러 가거든요. 식사 아직 안하신거라면 맛있게 드세요!!

자작나무 2014-02-20 12:32   좋아요 0 | URL
전 원래 점심 안먹어요 바빠서...

다락방 2014-02-20 12:37   좋아요 0 | URL
어므낫. 밥도 못 먹을 정도로 바쁘시단말입니까!!!!!

자작나무 2014-02-21 08:21   좋아요 0 | URL
밥 안먹고 일하고 있으면 '아무도 나를 건드리지 못한다'는 느낌을 주지요.

다락방 2014-02-21 08:32   좋아요 0 | URL
푸하하하하하하하하하하하하
 
2013 제4회 젊은작가상 수상작품집
김종옥 외 지음 / 문학동네 / 2013년 4월
평점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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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년 밸런타인 데이에는 회사 동료직원들에게 시집을 한 권씩 선물했었다. 올해도 시집을 할까, 하다가 늘어난 직원들 탓에 시집 한 권의 가격이 부담스러웠다. 그러다 퍼뜩, 젊은작가상 수상작품집은 굉장히 저렴한 가격으로 살 수 있다는 게 떠올라 검색했고, 역시나 이 책은 한 권당 4,950원의 가격으로 구매할 수 있었다. 오, 놀라운 가격이다. 이 책은 밸런타인 데이 선물로 초콜렛 대신 주기에 손색이 없는 그야말로 맞춤한 책이 아닌가! 그래도 직원 수대로 사기는 당연히 부담스러웠던 터에, 마침 해외며 국내 다른 공장으로 출장간 직원들은 빼버리기로 하니 열다섯 권만 구입하면 되었다. 그래, 눈 딱 감고 열다섯권 주문하자. 자꾸만 내 돈, 하고 돈 생각을 안할수가 없었지만 다른 직원들로부터 초콜렛을 받아 먹고 가만 있기도 거시기하고, 그렇다고 나 역시 초콜렛을 줘 의미없게 몇 분간의 달콤함을 선물하긴 싫고, 애초에 이 책의 낮은 가격이 '젊은 작가들의 작품을 널리 알리고자' 낮은 가격으로 책정됐던만큼, 그래, 나도 거기에 한 몫을 하자, 젊은 작가들의 작품을 널리 알리며 아울러 책을 읽지 않았던 동료 직원들에게 다양한 작가의 다양한 작품을 읽도록 하자, 하고 선택했다.


이 책을 선물하며 작은 로망을 가지고 있었다. 책을 일 년에 한두권도 채 읽지 않는 직원들이 선물받은 이 책을 읽고 내게 말하는거다. 읽어보니 황정은이 궁금해지더라고요, 읽어보니 정용준의 작품이 좋았어요, 라고 말하게 되는. 그래서 나도 이 책을 읽기 시작했다. 혹여라도 주말에 이 책을 읽고 온 직원들을 상대하기 위해서. 그러나 다 읽고 책장을 덮을 때 이 책이 그다지 탁월한 선택이 아니었다는 생각이 들었다.


황정은의 작품 <上行>을 제일 먼저 읽었는데, 물론 좋았다. 그리고 제목에 이끌려 읽은 박솔뫼의 작품 <우리는 매일 오후에>는 난해했다. 나는 상징과 은유에 그다지 끌리지 않는 사람이고, 박솔뫼의 글을 받아들이고 이해하기에 힘이 딸렸다. 그 상징과 은유들이 벅차 아, 이것은 마술적 리얼리즘인거냐, 하는 생각이 들었단 말이다. 게다가 대상을 수상한 <거리의 마술사> 역시 이해될 듯 하면서도 내 손에 잡히기엔 좀 먼 느낌이 드는 작품이었다. 좀 더 단순하게 현실을 말해주면 좋을텐데, 무엇이 사실인지 그러니까 어디서부터 어디까지가 사실이고 어디서부터 어디까지가 환상인지 알 수 있다면 좋을텐데, 하는 아쉬움이 들었다. 정용준의 단편, <당신의 피>는 읽으면서 '미야베 미유키'의 『솔로몬의 위증』을 생각나게 했다. 경계를 갔다온 느낌, 그 느낌을 정용준 단편의 주인공이 알 수 있었던 것 같아, 나는 정용준의 다른 책들을 한 번 읽어봐도 좋겠다고 생각했다. 이장욱의 <절반 이상의 하루오>는 어딘가에서 읽은 작품인데 그게 어디인지 생각이 나질 않는다. 이 작품은 읽고나서 크게 기억에 남는다던가 하는 단편이 아니었던지라 제목 조차 까먹고 있었는데 첫 줄을 읽자 바로 떠오르면서, 이 작품에서 아마도 라식 수술하고 비행기 타면 안구가 터진다고, 그래서 파일럿이 되기를 포기했다고 하지 않았나, 하고 내 기억이 맞는지 확인하기 위해 계속 읽었는데, 오, 역시나 맞았다. 지난 주말 만난 친구는 수영으로 몸매를 끝내주게 만들었는데, 그 친구가 『안나 까레니나』에서 등장인물이 피로를 풀기 위해 잠깐 수영하는 장면이 나오는 걸 기억하냐며, 그 말이 자기에게도 들어맞는다고 했더랬다. 나는 그 장면이 전혀 기억나지 않아, 아 역시 사람은 자신이 관심있는 걸 기억하게 되는구나 싶었는데, 이장욱의 단편에서 안구가 터지는 건, 나 역시 라식수술을 했기 때문에 등장인물과 같이 두려움을 느꼈기 때문인 것 같다. '김미월'의 <아직 일어나지 않은 일>과, '손보미'의 <과학자의 사랑>은 괜찮았다. 다만,


이 책이 '밸런타인 데이 선물' 이라는, 다시 말해, 책을 잘 읽지 않는 사람들이 읽으며 다른 작가에 대해 호감을 표하고 혹은 한 작품에 대해 푹 빠지기에는 적합하지 않았다. 젊은 작가들을 지원해주고 싶은 내 의욕이 앞서, 책을 잘 안읽는 사람들에게 좀 부담이 되는 책이었단 생각이 들었다. 특히나 박솔뫼의 글과 김종옥의 글을 읽으며 동료 직원들은 뭐지 뭐지 갸웃하게 될 것 같았다. 그들을 책에 좀 더 쉽게 다가가게 하기 위해, 책과 좀 더 친근하게 만들기 위해 이 책을 선물했는데, 적절하지 못했던 것 같다. 좀 더 쉬운, 좀 더 '재미있는' 책을 선택해야 했었는데... 그러나 이 모두는 그저 나의 생각일 뿐이니 실제 그들이 읽으며 어떤 느낌을 받게 될 지는 알 수가 없다. 가장 높은 확률은 그들이 올해가 가기전에 이 책을 읽지 않는다......에 걸어야 하겠지만. (내년엔 읽게될까? 단편이니 읽기에 괜찮을텐데..)





시골에서 살면 좀 나을까 싶어서 알아보러 내려온 거거든. 나, 도시에서 사는 건 이제 싫다. 육 개월 단위로 계약서 써가며 일해봤냐. 사람을 말린다. 옴짝달짝 못하겠어. 마땅하지 않은 일이 생겨도 직장에서 한마디할 수 있기를 하나. 눈치만 보게 되고 보람도 없다. 계약서 갱신할 날이 다가오면 가슴만 이렇게 뛴다. 다 때려치우고 이런 곳에서 한적하게 살아볼까 싶었는데 만만치 않네. 시골에서도 뭐가 있어야 산다잖냐. 내가 참, 뭐가 없는 놈이구나, 이런 생각만 들고, 괜히 왔다. (황정은, <上行>, p.152)




남자는 여전히 자고 있고 자고 있는 몸은 작아서 내가 잘못 뒤척이면 내 몸에 깔려버릴지도 몰랐다. 내가 너를 깔아뭉개면 안 되는데 너는 살아 있고 사람이고 우리는 많은 이야기를 한다. 이렇게 작아진 네가 사람이 아니라고 해도 너를 깔아뭉개는 것은 잘못이다. 웃다가 갑자기 몸이 작아진 네가 사람이 아니라 그렇다고 동물도 아니고 아주 이상한 것이라고 해도 너를 깔아뭉개는 것은 잘못이다. (박솔뫼, <우리는 매일 오후에>, p.26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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레와 2014-02-17 11:45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독서공감, 사람을 읽다]가 그렇게 재미있다던데.. ( ")
내년 발렌타인데이엔 이 책을 선물해봐요!!!

다락방 2014-02-17 11:46   좋아요 0 | URL
이 책을 다 읽고나니 아무래도 선물을 <독서 공감, 사람을 읽다>로 할걸 그랬다는 생각이 물씬 들더라고요. 하하하하하하하하하하하하하하 ( ")

moonnight 2014-02-17 18:15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저는 정말 정말 친한 사람 아니면 제가 선택해서 책 선물은 하지 않아요. 다른 사람이 선택해서 주는 책이 좋았던 적이 거의 없기 때문에. ㅠ_ㅠ 저는 명절 때 직원들에게 읽고 싶은 책을 고르게 해서 사 주는데요. 가끔 너무 비싼 책을 고르는 직원들이 있다는 슬픈 현실이. -_-;;;;;;;;;;;;;;;;;

다락방 2014-02-18 14:39   좋아요 0 | URL
아니 그 직원들은 왜 비싼 책을 고르는거죠? -0-
명절에 책을 주는 직장 상사라니..멋지네요 ㅠㅠ 문나잇님은 멋진 분이십니다!!

저는 책 선물을 잘 하는 편인데요, 특히나 직장 동료들은 책을 안 읽는 사람들이기 때문에 반드시 꼭 책을 사서 주고 싶어집니다. 뭐, 사준다고 다 읽는건 아니지만요 Orz

꿈꾸는섬 2014-02-18 08:43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발렌타인데인 초콜릿대신 책선물은 좋은 생각인것 같아요. 초콜릿처럼 달달한 책 찾아서 저도 내년엔 책으로 할까봐요.ㅎㅎ

다락방 2014-02-18 14:40   좋아요 0 | URL
초콜렛보다 책이 더 낫다고 저는 확실히 그렇게 생각하긴 하지만, 초콜렛보다 돈이 더 많이 들어요. 인원이 많을 경우에 말이지요. 내년부터는 하지 말아야겠다고 생각했어요. 엉엉 ㅠㅠ
 
내가 사랑한 유럽 TOP10 - 꿈만 꾸어도 좋다, 당장 떠나도 좋다 내가 사랑한 유럽 TOP10 1
정여울 지음, 대한항공 여행사진 공모전 당선작 외 사진 / 홍익 / 2014년 1월
평점 :
품절


특히 음악박물관들은 파리, 베를린, 런던 등 대도시뿐 아니라 아주 작은 도시에도 놀랍도록 잘 갖춰져 있다. 나는 잘츠부르크의 모차르트 하우스와 빈의 음악박물관을 무척 인상 깊게 관람했다. (p.265)


올해 초에 잘츠부르크에 가보고 싶어져서 오스트리아 행 비행기를 예약해뒀었다. 달력을 물끄러미 들여다보다 가을에 짬이 날 것 같아 큰 맘 먹고 할부로 비행기 티켓을 질렀다. 첫 할부를 갚아해 했던 날, 같이 가기로 한 친구와 나는 '할부가 우리를 후려치는데 우리 선택이 잘한걸까' 다시 고민했고, 그래도 여전히 결정은 '가는' 쪽으로 났다. 돈 모아서 가려면 어느천년에 가나, 일단 빚내서 다녀오고 갚아나가자, 돈 생기고 시간 생긴 후에 가려면 못간다, 여태 직장생활하면서 돈 생기고 시간 생긴 적이 있던가. 그래서 우리는 그렇게 무리를 해서라도 다녀오고자 했다. 그런데 며칠전, 대한항공으로부터 문자가 왔다. 우리가 예약한 비행편의 스케쥴이 변경됐다는거다. 바뀐 일정으로 우리는 갈 수 없었고(하루 차이었지만), 여름으로 바꿀까 어쩔까 고민하다가 결국 우리는 오스트리아행을 포기하기로 했다. 항공사 스케쥴 변경이니 취소수수료는 없었고, 카드 승인은 취소되었으며, 이미 결제된 할부금액에 대해서는 이틀 뒤, 환불되었다. 가뜩이나 빈곤모드였는데 그래, 이걸 취소하길 잘했다 싶으면서도, 그럼 또 언제 기회를 노려보나, 이렇게 주저 앉아야 하나 아쉬운 마음도 들었다. 정확히 그런 반반의 마음에서, 나는 정여울의 책을 넘겨보다 저 글귀를 만났다. 무심한 저 한 줄이, 내게는 좀 쓰라렸다. 누군가 다녀왔다, 고 말하는 걸 보노라니 살짝 우울해지기도 했다.



어쩌면 이 책의 책장을 넘겨보면서 그렇게 유럽의 여러곳을 만나보면서 다시 가고 싶어지는 나라가 생길지도 모른다는 생각을 했는데, 맙소사, 그간 아무 관심 없었던 크로아티아, 크로아티아에 가보고 싶어지고야 말았다. 바로 이 사진 한 장 때문에!



아, 저 싱싱한 굴과 화이트 와인이라니! 이것은 헤밍웨이도 극찬한 최상의 먹거리가 아니던가. 나는 <파리는 날마다 축제>를 읽으며 얼마나 애를 태웠던가. 내 입 안으로 굴을 넣고 싶어서, 굴을 씹다가 화이트 와인을 입안으로 넘겨 꿀꺽- 삼키고 싶어서 얼마나 안타까웠던가. 사실 그 해, 겨울에 친구는 나를 위해 생굴과 화이트와인을 준비해줬지만, 굴과 화이트와인은 역시 상상으로 더 맛있었다. 상상으로 더 근사했다. 그걸 뻔히 알면서도 나는 비행기를 타고 크로아티아로 날아가 반드시, 기필코 저 음식을 맛보고 싶어지는것이다. 그래서 지구본을 돌려봤다. '크로아티아'란 이름에서 주는 느낌은 내가 지금 있는 이곳에서 가까워 보였으니까. 그러나 이 책은 유럽을 말하고 있지 않은가. 역시나 지구본에서 유럽에 떡하니 자리한 크로아티아를 보고 포기했다. 유럽은 역시 내게 너무나 멀고도 비싼 나라로구나.



크로아티아에는 해산물요리로 유명한 음식점들이 많다. 통오징어구이나 새우요리도 유명한데, 스톤 부근에 있는 모든 해산물요리에는 이 천연소금이 듬뿍 들어간다. 스톤의 천연소금은 다른 소금보다 훨씬 맛있어서 요리할 때 다른 조미료가 필요하지 않다고 한다. 그중에서도 생굴에 이 소금을 뿌려 먹는 요리가 가장 유명하다. 굴과 소금, 레몬만으로 이루어진 간단한 요리지만 한 번 먹으면 잊을 수 없는 맛이다. (p.92)



아, 생굴과 화이트와인아, 크로아티아에서 얌전히 기다려라. 내가 지금보다 나이가 더 들고 여유라는 게 생기면 한 번 가주리. 가서 실컷 맛보아주리.



여러 지역의 사진들중 유독 예쁘다고 생각되는 사진은 언제나 이탈리아 라고 표시되어 있었다. 이 색색깔의 마을도 바로 이탈리아. 해변마을 친퀘테레 라고. 나는 이탈리아에 대해서는 평소 로망을 가지고 있지 않지만, 간혹 이탈리아가 배경인 영화를 보면 오, 정말 예쁘다, 하는 감탄이 쏟아져나오곤 한다. 책에 실린 사진으로도 그 감탄은 어김없이 터져나온다. 크-



아주아주 방탕하고 문란하게 이 마을에서 얼마쯤 살아보면 좋겠다. 하는 일이라곤 그저 눈뜨고 먹고 웃고 얘기하고 술마시고 술주정하고 사랑하는 게 전부인채로, 속옷을 벗어던진 채 하늘거리는 원피스만 입고 신발도 벗어버린 채 맨발로 마을을 마음껏 뛰어다니고 싶다. 그랬다가 미친여자라고 손가락질 당하고 추방당할지도 모르지만..



정여울의 글은 훌륭하다. 여행기로 만나는 정여울은 참으로 근사해서, 앞으로 정여울이 여행기를 낸다면 계속해서 보고 싶어질 지경이다. 가뜩이나 글도 잘 쓰는데 곳곳에 삽입한 인용문마저도 보석같다. 나는 그녀가 언급한 책들을 메모하기에 바쁘다.




아직 저는 자유롭지 못합니다

제 마음속에는 많은 금기가 있습니다

얼마든지 될 일도 우선 안된다고 합니다

혹시 당신은 저의 금기가 아니신지요


당신은 저에게 금기를 주시고 홀로 자유로우신가요

휘어진 느티나무 가지가

저의 집 지붕위에 드리우듯이

저로부터 당신은 떠나지 않습니다            -이성복, <금기> (p.41)





자동차가 확실히 해낸 것이 있다면, 자동차를 위한 도로가 만들어진 까닭에 은밀하고 겸손한 몇몇 사람들에게는 걷기가 신비롭고 즐거운 것으로 남게 되었다는 점이다. 우리에게 샛길, 오솔길, 그리고 초원은 신성하고 달콤한 장소가 될 것이다. ‥‥우리는 낡은 바지를 입고, 편안한 신발을 신고, 담배 파이프와 지팡이를 지닌 채 점심과 저녁 사이에 15마일을 걸을 수 있으며 인간을 향한 신의 길을 찬미할 수도 있다. -크리스토퍼 몰리, 《예술로서의 걷기》 (p.188)




'누구나 성공할 수 있다'라고 설파하는 서적들의 잘못된 점은, 행복의 진부한 상투어를 독자들 눈앞에 들이밀면서 이루지 못할 기대를 일깨워 불행으로 인도한다는 것이다. 원래 어떤 삶이든 문제가 있기 마련이다. 그러므로 행복해지려면 있는 그대로의 현실을 인지하고 이루지 못할 꿈을 뒤쫓지 말아야 한다. 삶의 기복, 존재의 불완전함을 인정하는 사람은 영원한 건강, 갈등 없는 배우자 관계, 물질적인 소원의 성취를 뒤쫓는 사람보다 어쨌든 행복한 삶을 영위할 가능성이 더 많다. 게다가 경이롭게도 행복은 외적인 상황과 무관하다. 부유하고 건강하고 가족에 둘러싸여 있는데도 극도로 불행한 사람들이 있는가 하면, 찢어지게 가난하고 병들고 외로운데도 행복한 사람들이 있다. 한 가지 분명한 사실은, 영원한 행복의 이상향을 추구하는 사람은 확실하게 불행해진다는 것이다. 그리고 평생 물질적인 부만을 쫓아다니는 사람은 결단코 가난에서 벗어나지 못한다. -알렉산더 폰 쇤부르크, 《우아하게 가난해지는 방법》중에서 (p.203)



이 책을 끝까지 다 읽고서야 비로소 가고 싶은 곳이 생겼다. 역시 크로아티아였다. '자다르 바다 오르간' 이 바로 그곳에 있다는데 설명은 사진에 실린 글귀로-거기에 내가 초록색으로 밑줄을 그었지- 대신한다.




이 책이 어떠한 계기로 만들어졌는지는 모르겠다. 그러나 대한항공과 함께 '기획한 상품'이라는 느낌에서 벗어나기는 힘들다. 정여울의 글은 분명 대단히 매혹적이지만, 간혹가다 주제에 맞춰서 쓸 수 밖에 없었을 것 같아 안타깝다. 이 책의 배경은 알 수 없지만, 대한항공이 정여울을 선택한거라면 정말이지 탁월한 선택이었다고 박수를 보내주고 싶다. 그러나 정여울의 여행기로는 부족한 느낌이 드는 게 사실이다. 정여울의 글이 더 살기 위해서는, 정여울의 글이 더 내게 팍- 다가오기 위해서는 정여울의 여행기가 백프로 정여울의 이야기와 사진으로 채워져야만 한다. 나는 대한항공이 제공한 사진이 아닌, 그녀가 돌아본 시선에 꽂힌 바로 그 곳, 그 장면의 사진을 보고 싶다. 이 책의 에필로그에서처럼, 그녀가 가서 보고 느끼고 생각하고, 그리고 카메라를 들이댔던 바로 그 곳과 그 순간의 이야기들이 그녀의 이야기속에 가득 담겨졌으면 좋겠다. 그 점이 몹시 애석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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레와 2014-02-12 17:50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크로아티아..................!!!!!!!!!!!!!!!!
내가 이번에 비행기 스케줄을 알아보고 결제 직전까지 갔던 바로 그곳!!!!!!!!!!!!!!
'꽃보다 누다' 덕분에 이제 그곳은 한국사람들이 바글바글 하겠죠.
뭐.. 그전부터 여행족들 사이에선 유명하다고 했지만.

무튼. 크로아티아. 언제가 꼭 갈꺼에요!! 으악. 크로아티아!!!!!!!!!!!!!!!

다락방 2014-02-14 10:31   좋아요 0 | URL
일전에 마카오 갔을 때 관광객들이 너무 많아서 싫었었거든요. 아, 난 여기 싫어..하는 느낌. 아마 지금 크로아티아 가면 그런 느낌을 받겠죠? 크로아티아는 나중으로, 아주 나중으로 미뤄야겠어요.

dreamout 2014-02-12 19:07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대한항공 이라는 글자가 있길래.. 안 샀어요.
책이라기 보다는 매거진에 가까운 느낌일것 같아서.. ^^;

다락방 2014-02-14 10:33   좋아요 0 | URL
정여울의 글이 좋아서 매거진에 가깝다는 느낌이 드는건 아닌데, 그래도 간혹 '자 이 주제에 대해 써봐' 하고 툭 던져진 걸 받아친 느낌이 들기도 해서 좀... 정여울의 백프로 여행기였다면 더 좋았겠다는 생각이 들더라고요. 확실히.

BRINY 2014-02-12 20:24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저도 11개월후에 유럽여행 가려고요. 늘 시간과 돈에 쫓겼는데, 다음 겨울에는 시간이 될 거 같아 지르려고 작정했어요.

다락방 2014-02-14 10:33   좋아요 0 | URL
시간과 돈에 쫓기다보면 아무것도 못하는 것 같아요. 일단 저질러놓고 수습하는 게 뭐가 되도 되는 것 같습니다. 잘 다녀오세요, BRINY 님. 아무쪼록 여행을 맘껏 즐기실 수 있기를요!!

달걀부인 2014-02-13 01:15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크로아티아 다녀온 일인입니다.^^ 그 때 동양인이라곤 저 하나였었는데...깃발 아래 여러사람들이 줄서서 가니는 풍경들 생각하니 저 역시 슬프네요.거긴 혼자서 위로받기 위해 다녀오는 그런 비현실적인 공간이었어요. 꿈같은...

다락방 2014-02-14 10:34   좋아요 0 | URL
혼자서 위로받기 위해 다녀오는 그런 비현실적인 공간, 이라는 말씀에 크로아티아에 더 가보고 싶어지네요. 그렇지만 지금은 줄서서 가는 많은 사람들을 보게 되겠죠? 한참 나중으로 미루렵니다. 제가 앞으로 가보고 싶은 곳을 달걀부인님은 이미 다녀오셨다니, 부럽네요.
:)

자작나무 2014-02-13 06:42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굴이랑 화이트와인은 크로아티아 안가도 서울에 많이 있어요
굴 철이라 굴요리 많이 해먹는데 굴이 그렇게 정력에 좋다지요
그리고 난 정여울보다 다락방책이 더 좋아요...아시아나항공은 다락방을 선택하길...

다락방 2014-02-14 10:35   좋아요 0 | URL
굴이랑 화이트와인을 먹으려면 서울 어디로 가야 하나요, 자작나무님? 이게 제가 다니는 레스토랑에선 눈에 띄질 않아요. 굴을 팔면 소주를 팔고 와인을 팔면 생굴을 안팔고...Orz

하하, 전 여행기는 자신없습니다. 아시아나항공은 정여울에 맞서기 위해 더 강한 작가를 찾아봐야겠죠. 전 그저 한 명의 블로거에 불과할 뿐...

하양물감 2014-02-13 08:33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자작나무님 댓글에 한표!!

다락방 2014-02-14 10:36   좋아요 0 | URL
아하하하 하양물감님도 참... 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

아무개 2014-02-13 09:36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정여울의 다른 책도 시간 되길때 함 보세요.
꼭 보시라는건 아니구^^::::
락방님이 이 책 읽을줄 몰랐음 ㅋㅋㅋ
여행기라서 궁금했었나봐요?

여행이라...아직 제주도도 못가본 저로써는 해외는 뭐.. 꿈도 못꾸고 있음둥~
굴 먹으러 통영이나 갈까요? ㅎㅎㅎ

다락방 2014-02-14 10:36   좋아요 0 | URL
한창 잘츠부르크 갈 생각에 들떠있어서 유럽여행기 보자, 했던거에요. 역시 여행기는 제 취향이 좀 아닌 것 같긴해요. ㅋㅋㅋㅋㅋ

아무개님, 그러게 말입니다. 우리 여행이나 가볼까요? 가서 진탕 마시고 취해볼까요?
 
나의 프랑스식 서재 - 김남주 번역 에세이
김남주 지음 / 이봄 / 2013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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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녀의 때 이른 죽음(1932~63)에 대한 세인의 피상적 관심 또한 그 연장선상에 있다. 어릴 때 겪은 아버지의 죽음이 남긴 정신적 상처(실제로 그녀는 세번째 시도 끝에 자살에 성공한다)와 역시 자살로 생을 마감한 버지니아 울프에 대한 경도, 그녀의 <일기>에서 그 편린을 엿볼 수 있는 유한한 삶의 한계와 신화에의 매혹, 그런 논리적인 근거들보다, 남편의 외도가 자살의 원인으로 손꼽히는 이유도 여기에 있다. 시인 김혜순이 어느 글에서 지적하듯, "자살하지 않고 여전히 살아가는 사람들은 자살한 예술가가 남긴 깨끗하고 넓은 백지 위에다 자꾸만 무언가를 쓰려고" 하기 때문에 그의 "생의 시간들은 신화라는 덧칠로 괴팍해지고, 주인공도 없는데 나날이 길어지"는지도 모른다. (pp.191-192)



피카소의 작품론을 번역하기 위해 나는 2년에 걸쳐 여러 권의 참고문헌을 읽고 인쇄물로, 화면으로, 실제로 수많은 도판과 작품을 노려보아야 했다. (p.196)



'실비아 플라스'의 책 <침대 이야기>를 얘기하며 김남주는 '김혜순'의 글을 인용한다. 이 글에서뿐만 아니라 이 책에 실린 '역자후기'에는 꼭 다른이의 의견이나 표현이 인용되어 있다. 자신이 번역하는 책에 자신의 느낌만을 적는 게 아니라, 번역하게 될 저자와 책에 대해 쏟아지는 다른이의 관심까지도 다 챙겨본다는 뜻일테다. 기억에 의존해서 그것들을 인용하든 혹은 메모를 해놓고 인용하든, 나는 바로 이 부분에서 김남주의 번역이 단순히 일적인 차원의 것이 아니라 문학을 사랑하고 그 사랑하는 문학을 독자에게 전하고자 하는 의욕까지 들어간 막중한 책임감과 성의의 결과물이란 생각이 들었다. 피카소의 작품론을 번역하기 위해서는 또 어떠했나. 2년에 걸쳐 참고문헌을 읽고 작품을 챙겨보았다지 않는가. 그녀의 번역물에 대한 신뢰가 자라나는 지점이다. 게다가 그녀는 번역만 하는게 아니라 많은 책들을 읽고 문학을 사랑하기 때문인지 역자후기 자체가 하나의 아름다운 문학 작품으로 완성된다. 아름답고 우아하다는 말을 이 역자후기들을 읽어가며 떠올린다. 그러나,


이 역자후기가 에세이란 타이틀을 달고 책 한 권이 되어 나온것은 좀 지나친 것이 아니었나 하는 생각이 든다. 아마도 나같은 생각을 가지게될 사람들 때문에 에세이 앞에 '번역' 이란 말을 붙여 '번역 에세이'란 타이틀로 약간 수정한 것일지도 모르겠다. 그러나 번역 에세이라면, 번역한 후에 본인이 가졌던 생각과 느낌을 말 그대로 '새로' 적어나가는 것이 한 권의 책이 되어 나오는 게 낫지 않았을까 하는 아쉬움이 든다. 이렇게 기존의 역자 후기를 가져오는 게 내게는 지나치다는 느낌을 준다. 이것이 역자후기라면, 김선우의 소설에 정여울의 해설처럼, 토마스 베른하르트의 조현천이 해설을 썼던것처럼, 작품 자체의 이해를 돕는 데 크게 한 몫을 해냈을 것이다. 그러나 내가 알지 못하는 책들에 대한 역자 후기는 그 책에 대한 궁금증을 불러 일으키기 보다는 '책을 읽고 나서 읽는게 훨씬 더 좋았겠다'는 생각을 하게 만든다. 이토록 문장을 우아하게 쓰는 번역가라면, 문학을 사랑하고 미술을 사랑하고 음악을 사랑하며 거기에 대해 이토록 방대한 지식을 가진 사람이라면, 게다가 번역가 모임에서 그토록 다양한 국적의 사람들과 교류를 맺고 있는 사람이라면, '역자 후기'에 기대지 않아도 근사한 에세이 한 권쯤은 나올 수 있지 않겠는가 말이다.



게다가 나는 도무지 이 책의 간지, 총 다섯장에 이르는 간지의 역할을 도무지 이해하지 못해 답답했다. 이런 식이다.




저 주홍빛의 간지는..대체 왜 있는걸까? 분위기가 묘하니 예쁘긴 한데, 예쁘라고 있는걸까, 정녕? 그렇다면 나는 필요없다. 정말 필요없다. 이건 아마 사람의 성향탓이겠지만, 내가 가진 성향이란 실속 없는 아름다운 것에 대해서는 가치를 두지도 않으며 필요하다고 생각하지도 않는 쪽이다. 세상의 많은 사람들이 남녀를 불문하고 단순히 장식을 위한 아름다움에 가치를 둔다는 것은 알고있지만, 나는 그렇질 않다. 내 방에는 쓸모 없는 장식품이란 하나도 없다. 혹여라도 인형이나 또 뭐가 있을까, 여튼 예쁜 장식품들이 선물로 들어오면 나는 그걸 받는 족족 다른 사람들에게 줘버린다. 내 책장엔 책만 꽂혀있고, 간혹 와인이 세워져 있다. 너무 옆길로 샜는데, 그러니까 내가 하고 싶은 말은, 나같은 성향을 가진 독자가 읽기에 이 책의 저 주홍빛 간지는, 정말이지 돈이 아깝다는거다. 종이가 아깝다는 생각이 드는거다. 대체 저게 저기 있는 이유가 뭘까? 뭔가 중요한 의미가 있는데 내가 미처 깨닫지 못하고 있는걸까? 잠시 쉬어가라는걸까? 만약 그렇다면, 쉬어가는 것쯤은 내가 알아서 할 수 있다.



책의 끝에는 몇 장의 일상 사진이 실려있다. 그 사진들 중 하나에 특히 더 눈길이 갔다. '우아하다'는 단어를 제대로 쓰기 위해서는 바로 이 사진을 보아야 하는게 아닐까 싶었던 그런 사진.



앞에 놓인 LP 뒤로 보이는 책장, 그 책장속의 수많은 LP 들과 원서들. 어쩐지 나와는 다른 공간에서 다른 생각을 하며 마찬가지로 다른 시간을 가질듯한, 내가 도저히 다다를 수 없는 우아함의 경지에 존재하는 듯한 사진이다. 


그 사진들 어느 밑에, 김남주는 이런 글을 써놨다. 



언젠가 나를 만든, 내가 읽은 책들에 대해 쓰고 싶다.

세월의 무게를 견디고 내 곁에 있어준 책 이상의 책들,

그중에는 루이 알튀세르, 에드먼드 윌슨, 마가렛 미드,

화이트 헤드, 자크 모노, 테리 이글턴, 김우창도 있다. (P.266)



이 문장들을 보며 나도 그녀가 그렇게 해주기를 바란다. 그녀가 번역을 한 작품이 아니라 그녀가 읽은 작품들에 대한 이야기, 그 편의 하나의 에세이가 되어 나오는 쪽이 내게는 더 애정이 생길 것 같다. 



몇번이나 이 책에는 오타가 등장해서 미간이 찡그려진다. 일일이 찾아내고 표기하거나 적어두진 않았지만, 당장 눈에 띄는 두 개만 언급하자면 243쪽의 '실레'는 '실례'로 고쳐야 할 것이고, 244쪽의 '차근리'는 '차근히' 로 고쳐야 할 것이다. 차근리는 대체 어느 지방에 위치한 리란 말이냐. 


출판사로부터 책을 받지 않는다는 생각을 잘 실행해오고 있다가 이 책에 있어서는 어기고 말았는데, 좋다는 말만 써줄 수 없어 유감이다. 역시 출판사로부터 책을 받지 않는 쪽이, 내 돈주고 내가 사는 쪽이 내게는 더 잘 맞는것 같다. 그게 내 마음이 더 편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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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렇게혜윰 2014-02-07 05:37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저도 이책이 첨 출간될 당시 트위터에 불이 나길래 호기심 쭉쭉 올라가다가 마침 도서관에 들어와 들춰보니 몇쪽 못읽고 빈수레구나...싶은 생각에 불쾌감을 느꼈어요. 내가 본 온통 호평들은 뭐였담?싶은 배신감도요ㅠㅠ

다락방 2014-02-07 11:19   좋아요 0 | URL
그동안 김남주 번역의 소설을 많이 읽어왔고, 그 때 만났던 번역이나 후기에 대해서는 오히려 좋은 이미지를 가지고 있었는데, 그것만 따로 모아놓은 책은 고개를 갸웃하게 만들더라고요. 새로운 글을 써주지, 하는 마음이 강하게 들었답니다. 흐음.

그렇게혜윰 2014-02-08 01:34   좋아요 0 | URL
맞아요. 굳이 왜....이런 느낌이었어요ㅠ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