처음 처음 | 이전 이전 | 71 | 72 | 73 | 74 | 75 | 76 |다음 다음 | 마지막 마지막
린다 브렌트 이야기 - 어느 흑인 노예 소녀의 자서전 뿌리와이파리 알알이 2
해리엇 제이콥스 지음, 이재희 옮김 / 뿌리와이파리 / 2011년 2월
평점 :
품절





내가 1800년대의 미국 남부에서 태어나 노예를 부리고 살았다면, 부모님과 조부모님을 비롯하여 이웃들로부터 '흑인이 노예가 되는것, 그들을 사고팔 수 있는 것이 당연한 것' 이라는 말을 들으며 자랐다면 나는 어떤 마음과 어떤 태도로 노예들을 대했을까. 사소한 잘못으로 발가벗겨진 채 채찍으로 맞는 그들을 보면서 '잘못했으니 이정도 벌을 받아야지!' 라고 생각하는 사람이 되어있지 않을까. 드물지만, '이건 옳지 않다, 인간이 다른 인간에게 이럴 수는 없는 노릇이다' 라는 생각을 하게 됐을까? 나는 똑똑한 사람도 아니고 남들보다 빨리 깨우치는 사람도 아니다. 그저 주어진 환경에 충실하게 묵묵히 살아가는 사람이니, 내가 그들중 유별난 사람, 그러니까 '노예도 사람이고 우리는 다른 사람들을 노예로 부릴 권리가 없다'는 생각을 결코 해내지 못한채로 늙어 죽어가게 됐을지도 모른다. 내가 그런 사람이었을까봐 그 당시에 태어나지 않은 게 다행이란 생각이 들었다. 다른 사람을 핍박하는 위치에 놓여있지 않은 게 정말 다행이라고. 그 위치에 놓여있다면 나는 그것이 마치 내 권리인 듯 그렇게 지냈을지도 모른다. 다른 많은 사람들처럼 그들을 때리고 구박하면서 또 굶기고 학대하면서.




여기, [어느 흑인 노예 소녀의 자서전] 이란 부제를 단 책이 있다. 제목 그대로 노예였던 소녀가 자유로운 입장이 되어 자신의 생활을 비롯 다른 노예들의 실상까지 낱낱이 고하고 있다. 그녀가 말하는 노예생활은 묵묵하고 담담하게 읽어나갈 수 없을 정도로 고통스럽다. 이런 삶을 어떻게 견뎌왔는지 몇 번이나 되묻고 싶어진다. 가족들과의 생이별, 숱한 채찍질, 소녀가 되면서부터 시작되는 성적 희롱, 인간이라 취급받기 보다는 물건처럼 취급되어져 팔려가는 생활. 당시의 노예주들은 그들을 인간 취급하지 않았다. 노예가 낳은 아이까지 자신이 돈을 받고 팔았다. 


당시 남부에선 이런 노예제가 있었지만 북부는 그렇지 않았다. 노예들은 북부로 도망가기를 그렇게 자유를 찾을 수 있기를 바랐다. 그러나  '도망노예법'이란 무시무시한 법이 만들어진다. 



이 땅 위에 완벽한 지옥을 실현하는 데 필요한 마지막 한 가지가 아직 남겨진 상태였는데, 1850년 마침내 그 일이 완성됐다. 바로 도망노예법의 시행이었다. 이제 어떤 주, 어떤 도시, 어떤 마을에도 추격자에 쫓기는 도망노예들이 몸을 피할 수 있는 곳은 없다. 이제 내가 용맹한 사람들의 고향이며, 자유의 땅인 미국을 돌아다니면, 나라를 지키는 관료는 단 한 명도 없고, 나를 사냥하려는 추격자만 만나게 될 것이다. 그런데도 미국의 독립선언서는 이렇게 말하고 있다. '다음과 같은 사실은 자명한 진리다. 모든 인간은 자유롭고 평등하게 태어났으며 양도할 수 없는 권리, 즉 생명과 자유에 대한 권리, 그리고 행복추구권을 부여받았다.' 오늘날 미국에서 흑인의 권리는 어디에 있는가? 한때는 흑인들에게 부여된 권리가 있었다. 그렇다. 투쟁의 시절, 그들으느 나라를 위해 피 흘리고 죽어갈 권리가 있었다. 하지만 그들의 위업은 잊혔고 그들이 썼던 총검은 그 자손들의 사지를 묶는 쇠사슬과 족쇄로 변했다. 자유를 위해 싸웠던 독립전쟁에서 맨 처음 쓰러진 자는 흑인이었다. 나는 바로 그의 형제인 한 흑인 노예가 채찍질과 족쇄를 피해 달아다나가 붙잡혀, 자유를 기리는 기념비가 바로 눈앞에 보이는 곳에서 다시 노예제로 질질 끌려가는 걸 지켜봤다. 그것도 그곳에 그가 있는 줄도 몰랐던 남부 노예주의 손에 의해서가 아니라, 북부인들의 손에 의해서 말이다.  (p.341)



그 비참한 생활을 책장으로 넘기다보니 어쩔 수 없이 몇 번이고 눈물이 고인다. 그 힘든 생활들 때문에, 그 힘든 생활을 버텨나가려는 사람들 때문에. 그리고 그런 생활 때문에 어쩔 수 없이 일찍 철들어 버리는 어린아이들 때문에.



새벽이 되기 전에 가족들이 다시 나를 은신처로 데려다주려고 왔다. 아이의 얼굴을 마지막으로 자세히 보려고 커튼을 옆으로 밀었다. 달빛이 아이의 얼굴에 비쳤다. 나는 몇 년 전 도망가던 날 밤 그랬던것처럼 아이 위로 몸을 숙였다. 그리고 방망이질 치는 가슴에 아이를 꼭 끌어안았다. 아이가 흘리기엔 너무나 서글픈 눈물이 엘렌의 뺨으로 흘러내렸다. 아이는 마지막 입맞춤을 하더니 내 귀에다 대고 조그맣게 속삭였다. "엄마, 난 절대 아무한테도 말하지 않을 거예요." 그리고 엘렌은 실제로 그랬다. (p.215)



아들이 대답했다. "엘렌이 떠나기 전 어느 날 처마 밑에 서 있었던 적이 있어요. 근데 헛간 위에서 누군가 기침하는 소리가 들리는 거예요. 나도 왜 그 사람이 엄마라고 생각했는지는 잘 모르겠지만, 그냥 그런 생각이 들었어요. 엘렌이 떠나기 전날 밤 엘렌이 방에 없었어요. 근데 할머니가 그날 밤에 엘렌을 방으로 다시 데리고 왔어요. 나는 아마도 엘렌이 가기 전에 엄마를 만났나 보다, 그렇게 생각했어요. 왜냐면 할머니가 엘렌한테 '이제 자거라. 그리고 아무한테도 말하면 안ㄴ된다'고 속삭이는 소리를 들었거든요."

나는 엘렌한테 그런 이야기를 한 적이 있느냐고 물었다. 아들은 그런 적이 없다고 말했다. 하지만 기침 소리를 듣고부터 집 쪽에서 엘렌이 다른 아이들이랑 놀고 있으면 아이들도 엄마의 기침 소리를 듣게 될까봐 다른 쪽으로 데려갔다고 말했다. 플린트 씨가 오는지 항상 망을 보았다고도 했다. 만일 플린트 씨가 보안관이나 순찰대원하고 이야기하는 것이 보이면 항상 할머니에게 이 말을 전했다고 했다. 그제야 나는 사람들이 집 쪽에 있으면 왜 아들이 불안한 표정을 지었는지 알게 됐다. 그때는 아들이 왜 그렇게 불안해하는지 짐작이 안 가 걱정스러웠었다. 그런 사려 깊음은 열두 살 소년에게는 지나친 것이었다. (p.237)




문학(文學) [명사사상이나 감정을 언어로 표현한 예술또는 그런 작품소설희곡수필평론 따위가 있다. (네이버 국어사전)



고통스러운 긴 시간후에-그녀는 7년간 다락방에 숨어지낸후 뉴욕으로 도망칠 수 있었다- 그녀는 자유를 찾고, 노예제를 폐지하고자 하는 사람들의 권유에 따라 그녀의 과거부터 현재까지를 책으로 적어낸다. 그래서 나는 1840~1860년대 미국 남부의 노예들의 생활을 읽을 수 있었고 그래서 알 수있게 되었다. 



문학이 존재해야 하는 이유는 여기에 있다. 사상이나 감정을 언어로 표현하여 기록하는 것, 그 기록을 내가 아닌 다른 사람에게 보여줄 수 있는 것. 열 명이 됐든 백만 명이 됐든, 책으로 세상에 나오는 순간, 글을 쓴 사람이 혼자만 알고 있고 생각하고 있던 것을 다른 사람들에게 알릴 수 있다. 이 책이 당시에 어느 정도의 반향을 일으켰을지는 짐작조차 할 수 없지만, 분명 '우리는 노예제를 하고있지 않지' 라며 나름 자부심을 느꼈을 북부인들도 남부의 제도를 묵인했던 스스로에 대해 부끄러워했을 것이다. 주인이 있는 앞에서 '너는 이 집의 노예 생활에 만족하느냐' 고 묻는 어리석음을 범했던 목사들도 자신의 짧은 생각에 후회할것이다. 노예제에 전혀 관심이 없던 누군가였다면 이 책을 읽고나서는 내가 알지 못하는 어느곳에서 이런 비참한 제도가 시행되고 있다는 사실에 땅을 치며 우리가 이런 것을 어떻게든 고쳐야 되지 않겠냐며 목소리를 낼 수도 있었을 것이다. 이 모두가 그 당시의 상황이 기록되어 책으로 나와 다른 사람들에게 읽혀졌기 때문에 가능한 것이다. 그 기록은 한사람이 다른 한사람에게 전할 수 있다. 그 한사람은 또다시 다른 한사람에게 그 사람은 또 다른 한사람에게 건넬 수 있다. 가려두고자 했던 악법은 세상 밖으로 나오게 되고 이제 사람들은 그 법을 다시 한 번 들여다 볼 수 있게 된다. 그러기까지 아주 많은 시간이 걸리겠지만, 드러냈기에 사회는 그것을 고칠 가능성을 더 많이 갖게 되었다.



문학이 존재해야 하는 이유는 여기에 있다. 미처 알지 못했던 것을 기록으로 남겨 주변인에게 또 후세에 전했던 그들에게 고마움을 전할 수 있다는 데에. 당신들이 이렇게 이야기해 주었기 때문에, 그걸 내가 이제는 알기 때문에, 지금 우리가 이렇게 살 수 있음은 당신들의 역할 덕분이란 걸 알 수 있게 됐어요, 고마워요. 우리는 우리가 고마워해야 할 대상에게 고마워할 수 있다. 그걸 문학이 해준다. 




많은 것들이 고마워지는 그런 책이다. 이런 이야기를 풀어내 준 작가에게, 그녀에게 책을 쓰라고 권한 그녀 주변의 사람들에게, 그녀의 원고를 편집해준 편집자에게. 무엇보다 이런 사실을 나(를 포함 다른사람들)에게 알려주고 알려준 사람에게 고마움을 느낄 수 있도록 해준 문학에게 고마워진다. 책장을 덮으며 세상에 문학이 있어 다행이란 생각이 들었다. 문학은 나보다 오래전에 탄생했고 나보다 더 오래 살아남을 것이다. 이 세상에 끝까지 살아 남아야 할 것이 있다면, 그건 바로 문학이 되어야 할 것이다.





댓글(8) 먼댓글(0) 좋아요(15)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2013-10-18 01:12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13-10-18 13:24   URL
비밀 댓글입니다.

에르고숨 2013-10-18 13:03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시적 정의' 이미 충만하신 다락방 님은 정말, 훌륭한 독자이시자 문학가. 숙연해지는 리뷰 고맙게 읽었습니다.

다락방 2013-10-18 13:25   좋아요 0 | URL
좀 진정한 뒤에 썼어야 했다는 생각이 들어요. 너무 격할 때 써가지고 흥분된 글..이 되어버리고 말았네요. 부끄럽게....

[시적 정의] 아직 안샀는데...( ") 킁킁.

다다 2013-10-18 15:08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흥분된 글'이 참 살아있네요 너무 감명깊게 읽었습니다 :)

다락방 2013-10-18 16:48   좋아요 0 | URL
저는 책이 참 좋습니다, 소금꽃님!!

페크pek0501 2013-10-20 12:14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다락방 님은 <시적 정의>를 읽을 필요가 없을 듯합니다. 이미 문학의 존재 이유를 알고 있으므로.
<시적 정의>를 읽은 사람으로서 드리는 말씀입니다...^^

다락방 2013-10-21 14:16   좋아요 0 | URL
아, 페크님이 그렇게 말씀하시니 저는 오히려 더 [시적 정의]를 읽고 싶어지는데 말입니다!! 흐흣
 
아버지와 함께한 마지막 날들
필립 톨레다노 지음, 최세희 옮김 / 저공비행 / 2013년 3월
평점 :
품절


앞으로의 내 삶에서 내가 부모가 될 일은 아마도 없을거라고 나는 지금은 생각한다. 사람의 일이야 한 치 앞도 모르는 것이니 나는 당장 내년에 누군가의 엄마가 되어 있을지도 모르는 일이지만, 만약 내가 내년에 엄마가 된다면 예순이 될 때까지 내 아이의 양육에 힘써야 하고, 내게 이것은 아주 멀고도 험난한 길로만 여겨진다. 그러니 나는 순전히 나 자신을 위해, 힘들지 않은 삶을 위해 부모가 되는 것을 내 인생에 어떤 목표나 목적으로 삼으려고 하질 않는다. 순전히 나를 위한 선택이니 이기적으로 보일테지만 이기적이지 않기 위해 다른 선택을 하기에는 그 선택이 너무나 어마어마하다. 섣불리 다른 길을 생각해보기 벅차다. 그런데 여기, 아들은 삼십대이고 아버지는 구십대인 부자가 있다. 계산해보니 58세에 아들을 낳은 셈이다. 이미 은퇴를 생각해야 할, 은퇴가 닥쳐올 나이에 새 생명을 낳고 키우는 일을 해내고자 했던 사람들이라니. 나로서는 범접할 수 없는 숭고함이 느껴진다. 내가 결코 닿을 수 없는 생각을 어딘가에서 누군가는 했다는 사실에 숙연해진다. 세상엔 나처럼 나만 생각하는 사람이 있고, 전혀 그렇지 않은 사람이 있다. 어쨌든,

 

그 아버지가 단기기억상실에 걸렸고, 아들은 이에 사진을 찍어 아버지의 시간들을 아니, 아버지와 자신이 함께하는 남은 시간들을 일지로 기록한다.

 

 

 

 

 

 

 

 

 

 

 

 

 

 

 

 

 

 

 

 

 

 

 

 

 

 

 

 

 

 

 

아흔 여덟의 생일까지 맞은 아버지, 그 아버지의 주름 잡힌 얼굴. 그 얼굴을 보는 것만으로도 이미 마음은 애틋하다. 그런 아버지가, 어머니가 돌아가셨다는 사실 조차 기억하지 못해 몇 번이고 너의 엄마가 어디있느냐 묻고, 화장실에 가서는 좀처럼 나오지 않으며, 나올라치면 바지를 추켜 올리며 화장실을 가야겠다고 말한다. 그런 아버지를 보는 아들의 마음은 아프고 아프다 못해 화가 나기도 한다. 왜 안그렇겠는가. 한 장 한 장 사진들을 넘기다가, 나는 자꾸 나의 부모를 생각한다. 나도 늙어가고 있지만 내 부모도 자꾸 늙어가고 있고, 어쨌든 우리는 어떻게 발악을 한다한들 이별의 순간을 맞이하게 될텐데.

 

 

 

 

 

 

 

 

저자의 아버지는, 가끔 자신이 단기 기억상실임을 떠올린다. 그 사실을 받아들이면서 그러나 받아들이고 싶지 않았을런지도 모른다. 그는 다들 어디로 간거냐고, 노트에 글을 적는다. 우리는 이토록, 백 세에 가까워져도, 외로움을 느낄 수밖에 없는 존재인것인가.

 

 

 

 

 

 

내가 가장 좋아하는 사진은, 아버지가 창 밖으로 노을이 지는 풍경을 가만히 감상하는 사진이다.

 

 

 

 

 

 

그리고 아버지가 찍어준 아들의 사진도.

아마도 이 사진을 찍으며 아버지는 자신의 기억속에 그리고 마음속에 아들의 모습을 저장하지 않았을까.

 

 

 

 

 

 

 

 

 

그리고,

 

 

 

 

 

 

눈물을 흘리는 아들.

 

 

 

 

빈 의자.

 

 

 

 

 

눈물과 빈 의자의 이유.

 

 

 

 

 

 

 

 

 

시간이 흐르는 것은 명백한 진실이고, 그 시간을 누구도 막을 수 없다는 것 역시 자명한 사실이다. 우리는 무기력하게 그저 늙어갈 뿐 다른 것들로 그 시간들이 가는 것을 막을 수가 없다. 시간이 흐른다는 것은 우리가 늙어간다는 걸 의미하고, 늙어간다는 것은 우리가 언젠가는 이별할 것임을 의미한다. 싫지만, 고통스러움에 발악하지만, 그렇다한들 우리의 이별을 막을 수단은 아무것도 없다. 이 책의 저자는 아버지의 마지막 날들을 사진으로 그리고 글로 기록했다. 그것은 본인에게 의미있는 일이었겠지만, 그렇다고 이 세상의 모든 자식들이 부모의 마지막 시간들을 사진을 찍고 글로 기록할 필요는 없을 터. 우리는 우리가 할 수 있는 것들로 지금 함께 있는 시간들을 소중하게 보내는 것을 생각해보아야 할 것이다.

 

나보다는 우리 엄마가 이 책을 읽을 때 더 마음에 찬바람이 불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엄마의 엄마, 나의 외할머니는, 시간의 흐름으로만 봤을 때는 가장 죽음에 가까울 테니까. 내가 엄마와 이별하는 시간보다 엄마가 엄마의 엄마와 이별하는 시간이 더 빠를 가능성이 있으니까.

 

나는 이 책을 나의 엄마께 읽어보시라 드릴것이다.

 

이별을 준비한다고해서 그 이별이 덜 슬퍼지는 것은 결코 아닐테지만, 이별에 대해 전혀 생각해보지 못한채로 있다가 이별이 들이닥친다면 그 때는 버텨내지 못할테니까. 무너져버릴테니까.

 

할 수만 있다면 이별의 시간을 최대한 늦추고 싶다. 정말이지 그럴 수만 있다면.

 

 

 


댓글(6) 먼댓글(0) 좋아요(10)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마노아 2013-09-15 23:34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김연용의 '아버지의 바다'가 떠오릅니다. 또 '마음이 아플까봐'도 같이 떠오르구요.
일주일 전에 직장 동료의 아버지가 갑자기 돌아가셨어요. 아침까지 아무 문제 없었고 멀쩡히 인사하고 나왔는데 오후에 뇌사 상태에 빠지고 다음날 돌아가셨어요. 작별 인사도 못하고 그렇게 헤어진 거죠. 그러니 다락방님의 얘기에 동감해요. 그리고 저도 할 수만 있다면 이별의 시간은 최대한 늦추고 싶어요.

다락방 2013-09-27 15:47   좋아요 0 | URL
저는 아니 에르노의 책들이 떠올랐어요. 엄마와 아버지에 대해 쓴 책들요. [남자의 자리]였나, 그 책에서 마지막 시간을 늦추고 싶다, 라면서 책을 끝맺거든요. 그래서 그 책들이 떠올랐어요.

작별 인사를 한다고 해서 이별이 슬프지 않은건 아니겠지만, 작별인사조차 제대로 하지 못한채 헤어진다면 너무 안타까운 일인것 같아요. 영화 [내 어머니의 모든것]에도 그런 대사가 나오거든요. 다시는 그렇게 떠나지마, 나는 내가 좋아하는 사람들과는 작별인사를 하고싶어, 라고요.

2013-09-16 00:05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13-09-27 16:02   URL
비밀 댓글입니다.

비로그인 2013-09-21 15:41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빈 의자와 한 문장에 눈물이 핑 도네요...

다락방 2013-09-27 16:02   좋아요 0 | URL
아버지의 사진 한 장 한 장 다 사연이 담긴 것 같아요.
 
빛과 물질에 관한 이론
앤드루 포터 지음, 김이선 옮김 / 21세기북스 / 2011년 3월
평점 :
구판절판


자,

 

나에겐 친하고 다정한 이성 친구가 있다. 그와 얘기하는 것은 내 일상의 큰 기쁨이고, 그래서 그를 잃고 싶지 않다. 소울 메이트라기엔 뭔가 거창하고 오글거리지만, 나는 앞으로의 삶에도 그가 내내 내 옆에 있어주었으면 좋겠다. 이 감정을 나는 사랑이라고도 생각한다. 우리 사이에 성적인 접촉은 없었지만, 사실 그의 앞에서 성적으로 긴장되기도 한다. 그러나 그도 나도, 먼저 손을 내밀어 상대에게 터치를, 혹은 접촉을 시도하진 않는다. 그런 사이로 우리는 대화한다. 우리의 전공에 관한 얘기를, 직장에 대한 얘기를, 친구에 대한 얘기를, 읽었던 책에 대한 얘기를. 우리는 제법 나이차이가 난다. 남들이 보면 친구란 말에 고개를 갸웃할지도 모를, 그 정도의 나이 차이. 그러나 그 나이차이에도 불구하고 그와 나는 서로를 이해한다. 우리는 자주 만나는 건 아니지만, 만나기로 하면 설레이고 기쁘다. 만날 약속을 잡는 그 순간부터 행복해진다.

 

 

"내가 몇 살인지 알아요, 헤더?"

나는 그를 쳐다봤다.

"부친보다 나이가 많을 수도 있어요."

"그런 뜻은 아니었어요."

"난 당신과 얘기하는 것이 좋아요." 그는 마치 내 말을 듣지 못한 듯이 말을 이어갔다. "그게 다예요. 나는 우리의 대화가 즐거워요. 당신 역시 즐거워한다고 생각하고."

나는 고개를 끄덕였다.

"그런데 뭐가 문제죠?"

"문제는 그러니까, 우린 언제 다시 보죠?"

로버트가 주머니 속에서 꺼낸 열쇠고리에서 열쇠를 하나 빼낸 다음 내게 주며 말했다. "당신이 좋을 때." 그는 미소를 지었다. (빛과 물질에 관한 이론, p.105)

 

 

문제는, 우리가 우리 사이를 다른 사람들에게 말하지 못한다는 데 있다. 우리는 우리 관계가 바깥으로 드러나는 게 조금 겁나는지, 누구에게도 우리 사이에 대해 말하지를 못한다. 그건 훌쩍 나이차이가 나서일 수도 있고, 우리가 남자와 여자라는 이성간 이라서 그런걸지도 모르겠다. 혹은 우리는 친구 관계를 유지하고 싶은데 세상에서 우리 마음속의 서로에 대한 사랑을 눈치채고 값싸게 만들어버리는 게 두려워서일지도 모르겠다. 우리는 그저 지금처럼, 우리 둘이 만나 이야기를 나누는 게, 가장 좋음을 알고 있다. 그런데 내게, 연인이 생긴다. 누가 봐도 적절한 애인, 옆에 두며 내 애인이라고 말하기에 거리낌 없을 남자. 적당한 직업, 적당한 나이, 누가봐도 어울리며 빈번하게 섹스도 나눌 수 있는 남자. 그와 결혼한다면 앞으로의 삶이 크게 어려움 없이 진행될 것 같다. 그러나 나는 물론, 나의 연인에게도 나이 차이 많이 나는 나의 이성친구의 존재에 대해 언급하지 않는다.

 

 

나는 연인을 만나 사랑을 속삭이면서, 그 날들중에 가끔은 뚝 떼어내 나의 이성친구에게 달려간다. 애인과 나눌 수 없는 이야기들을, 애인과 나눌 수 없는 둘 만의 분위기들을 즐긴다. 이 분위기, 이 순간, 이 공기는 이 이성친구와만 가능하다. 그러던 어느날, 내가 이 이성친구와 함께 있는 모습을 애인에게

 

 

들.킨.다.

 

 

말 그대로 '들킨다'. 나는 그에게 이성친구의 존재를 말한 적이 없으며, 그에게는 친구를 만나러 간다는 말을 하지 않았으니까. 그는 지금 내가 여기 있을 줄을 몰랐으니, 들켜버리고 만다. 게다가 나의 애인은 이성친구와 과거에 어떤 시간을 보냈든 상관하지 않을테니 앞으로는 만나지 않기를 종용한다. 그는 안돼. 나는 나의 애인과 사랑하며 살고 싶고, 결혼을 약속 했고, 그 결혼을 하고 싶기 때문에 이성친구 만나는 것을 그만둔다. 그러나, 연락만은 끊을 수 없다. 애인 몰래, 그와 연락하며 지낸다. 애인과 결혼을 하며 지내는 동안 가끔 그에게로 달려가고 싶은 충동을 느낀다.

 

 

 

나는 다만 그가 나의 일부, 나의 중요한 일부를 채워주고 있고, 로버트 역시 똑같이 중요한 나의 또 다른 일부를 채워주었다고 믿을 뿐이다. 로버트가 채워준 나의 일부는, 내가 생각하기론, 지금도 콜린은 그 존재를 모르는 부분이다. 그것은 무언가를 혹은 누군가를 사랑하는 만큼 쉽게 파괴도 할 수 있는 나의 일부다. (빛과 물질에 관한 이론, p.129)

 

 

 

여기까지는 이 책에 실린 단편 <빛과 물질에 관한 이론>의 주인공에 대한 이야기다. 이 단편집을 통틀어 가장 아름다운 단편. 읽으면서 마치 줌파 라히리를 만난 것 같은 느낌을 줬던 단편. 게다가 129페이지의 인용문은 기가 막히다.

 

연인은 어떤 존재일까. 연인은 섹스를 나누고 영혼의 교감을 하는 사이일까. 그렇다면 연인 이외에 영혼의 교감을 하는 사이가 한 명 더 있다면, 그게 안 되는 걸까? 물론 숱한 이성친구들이 내 연인의 눈에 싫게 보이는 것은 아닐 것이다. 유독 신경쓰이는 한 명이 있을 것이다. 그리고 그 유독 신경 쓰이는 한 명에 대해서는, 내 마음이 다른 이성친구에게 가 있는 것과는 '다른' 게 맞을 것이다. 그러나 나는, 나라는 인간은 복잡한 사람이고, 이런 내게 머리부터 발끝까지 딱 맞는, 완벽하게 일치하는 타인이 존재할 수도 있다는 것을, 나는 믿지 않는다. 헤더가 말한대로, 연인이 내 일부를, 일부라기엔 좀 많은 부분을 채워주고 있다고 해도, 그가 채워줄 수 없는 다른 일부를 다른 누군가가 채워줄 수도 있다. 나로서는, 그런 사람의 손을 놓기 싫은 것은 당연하다. 그렇다면 나는 나의 연인에게 당당하게 말할 수 있어야 하는걸까?

 

그는 네가 채워주지 못하는 나의 다른 일부를 채워줘. 그러니 그의 존재를 인정해줘.

 

이 말이, 나의 연인에게, '물론 인정해줄게' 라는 대답을 유도할 수 있을까? 거기에 대해서라면 고개를 갸웃할 수 밖에 없다. 어쩌면 입장이 바뀌어, 내 연인이 자신의 다른 소울메이트(오글거리는 표현이긴 하지만)를 인정해달라고 하면, 나는 기꺼이 인정해줄 수 있을까. 사실 나로서는, 나 역시 인정받고 싶으니 상대에 대해 인정해주긴 하겠지만, 잘 모르겠다. 내가 쿨할 수 있을지. 설사 내가 아무렇지도 않게 인정한다해도, 내 연인이 나의 '쿨함'을 오히려 더 기분 나빠하진 않을까. 여러가지로 생각이 많아지는 부분이다. 그러니,

 

우리가 우리의 일부를 채워주는 다른 중요한 존재에 대해서는, 나를 사랑한다 말하고 내가 사랑한다고 말하는 연인에게 비밀로 간직하는 것이 더 나을것이다. 어쩌면 이 사람에게는 다른 친밀한 존재가 있겠지, 라는 가능성을 열어둔다한들, 그 상대가 누구인지까지 말하는 것은 좋지 않은것 같다. 아는 순간, 그 사람을 신경쓰게 될테니까. 그런데 이 친밀함을 나누는게, 상대에게 일종의 배신인걸까? 그런걸까? 나는 이 친구를 연인보다 먼저 알았는데? 연인이 나타나기 전까지 우리는 아주 잘 지냈는데?

 

 

 

우리 모두에겐 이사람 말고도 '다른' 존재가 있다. 그리고 그 다른 존재에 대해서 자랑하고 싶은 마음이 들 때도 있고 반대로 꼭꼭 숨겨두고 싶을 때도 있다. 이럴 때 비밀은 생긴다. 누구에게나 각자의 비밀이 있고, 그 비밀이 숨기고 싶은 이성친구 라고 한들, 그게 비밀이라는 데 뭘 어쩔 수 있을까. 다만 이해받고 싶은데 이해받지 못할 것 같은 두려움에 꼭꼭 숨겨두는 것을, 그걸 어쩔 수 있을까.

 

 

 

처음 친구에게 이 책, [빛과 물질에 관한 이론]을 추천받고 읽기 시작하면서는, 흐음, 그렇게 좋지는 않은걸, 하고 책장을 넘겼다. 그러다가 <빛과 물질에 관한 이론>을 읽고, 아, 이래서 친구가 읽어보라고 한거구나, 싶었다. 줌파 라히리를 만난 느낌이지만, 그보다는 약간 서투른 느낌. 모든 단편들에 대해서 좋다는 생각이 드는 건 아니지만,  인간 개개인의 비밀을 엿보고 거기에 공감하는 것이 의미 있기도 하고. 무엇보다 이 사람이 아닌 다른 존재를 세상에 드러내주어 고마운 마음까지 든다. 다른 누구에게 말하지 못할 존재에 대해, 앤드루 포터는 이미 알고 있다며 어깨에 살짝 손을 올려주는 느낌이랄까. 색연필로 밑줄을 그었다. 책장 한 켠에 이 책의 자리를 만들어줄 것이고, 간혹 헤더가 자신의 다른 일부를 만나는 순간을 뒤적여 보게 될 것 같다. 나는, 앞으로 어떻게 변하게 될지 모르지만, 현재로서는, 다른 존재가 필요하다고 생각하며, 그 존재를 인정해 줘야 한다고 생각하고 있으니까.

 

 

 

덧. 이 책은 물리학 이론서가 결코 아니다.

 


댓글(13) 먼댓글(0) 좋아요(18)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아무개 2013-09-04 10:33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저는 지금 <존재의 세가지 거짓말>을 오늘 아침 부터 읽기 시작했는데....
뭡니까 이 소설은....위장을 소주로 세척하고 싶어지게 만듭니다!!!!!!!!!! ㅠ..ㅠ

다락방 2013-09-04 13:14   좋아요 1 | URL
어휴..그거 엄청나죠. 책장마다 절절하고. 속이 쓰리죠. ㅠㅠ

Mephistopheles 2013-09-04 13:23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내용하곤 달리 제목이....너무너무너무너무 거창하군요....

다락방 2013-09-05 16:35   좋아요 1 | URL
다른 얘긴데, 저 지금 읽는 책 제목이 생각이 안나요. 제목이 외워지질 않네요. 다섯 글자인데 말입니다..쩝..

Mephistopheles 2013-09-06 13:18   좋아요 1 | URL
책 제목에 고기가 않들어가는군요.

다락방 2013-09-06 16:35   좋아요 1 | URL
ㅋㅋㅋㅋㅋ 편집된 죽음이 책 제목이었습니다. 고기랑 전혀 상관없죠. ㅋㅋㅋㅋㅋ

테레사 2013-09-04 13:38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저도 제목이 이론서인줄 알고 클릭했다가 소설이란 걸 알고, 놀랐죠. 제목을 다르게 지었다면, 좀더 많이 팔렸을까하는 생각도 하게 되네요. 첫 작품도 뭔가 아릿하지 않던가요?

다락방 2013-09-05 16:36   좋아요 1 | URL
첫 작품은 앗, 하긴 했지만 음 약간 작위적이란 느낌도 들었거든요. 그래서 이 단편집을 좋다고 말할 수는 없겠는걸, 했는데 <빛과 물질에 관한 이론>이 좋더라고요.

비로그인 2013-09-05 10:16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열정적으로 외칩니다, 이해가 돼요!

다락방 2013-09-05 16:46   좋아요 1 | URL
열정적으로 외치시는 게 여기까지 아주 잘 들립니닷!! ㅎㅎ

하루 2013-09-06 19:25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이 책 정말 멋지죠? :)

다락방 2013-09-15 22:55   좋아요 1 | URL
이 책이 전체적으로 멋지진 않은데 이 단편이 근사해요!

[그장소] 2017-02-25 05:03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완벽한(?) 독점을 ㅡ사랑이라고 표현하기 시작한건 ..누구고 언제였을까요?대체~~ ^^
 
인간의 조건 - 꽃게잡이 배에서 돼지 농장까지, 대한민국 워킹 푸어 잔혹사
한승태 지음 / 시대의창 / 2013년 1월
평점 :
절판


고등학교 2학년 때, 처음으로 아르바이트라는 걸 해봤다. 집에서 주는 용돈은 언제나 턱없이 부족했고, 모두가 아는 돈 말고 아무도 알지 못하는 돈을 갖고 싶었다. 내가 비밀리에 쓸 수 있는 돈. [벼룩시장]을 뒤져 고등학생도 할 수 있는 아르바이트를 찾아냈고, 그렇게 친구와 나와 당시엔 중학생이었던 내 여동생은 <*** 영어교실>을 찾았다. 우리가 해야 할 일은 간단했다. 그 영어교실의 사무실에서 받은 전화번호 리스트에 전화를 걸면 되었다. 멘트도 다 알려줬다. "자녀 영어 교육은 어떻게 시키고 계세요?" 라는. 이렇게 자기네 영어교실을 홍보하고 끌어들이는 게 우리 알바들이 해야할 일이었고, 그렇게 하루에 두 시간씩 일을 했으며 당연히 시간당 돈을 받았다. 그러다가 한 명이라도 영어교실 선생님과 상담을 원하면, 거기에 따라 이만원이라는 인센티브를 받을 수 있었다. 며칠 뒤에는 내 여동생이 하는 통화를 녹음해 자기들이 들어보기도 했다. 잘 하고 있는지. 이 일이 내게는 무척 당혹스러웠다. 뭔가 부조리하게 느껴졌는데 항의할 수 없었다. 더 당혹스러운 건 전화통화할 때 전화를 받은 상대가 하는 말이었다.

 

우리집 전화번호는 어떻게 알았어요?

 

이 말에 나는 아무런 답을 준비하지 못했고 노상 얼버무려야 했다. 그리고 알바가 끝나고 집으로 돌아갈 때마다 친구와 여동생과 나는 얘기했다.

 

그러게, 이 많은 전화번호들을 어떻게 알았지?

 

일주일이나 일했을까. 사무실 에서 우리를 알바로 고용했던 여자어른은 우리를 불러서 모두들 그만두라고 말했다. 회원을 모집하는데 전혀 도움이 되지 않기 때문이라는 거였다. 일주일간의 노동으로 나는 54,000원을 받았고, 친구와 여동생은 34,000원을 받았다. 정확한 금액인지는 기억하지 못하지만, 나는 그들보다 2만원을 더 받았다. 한 명을 모집했기 때문이었다.

 

 

 

 

대학시절 내내 편의점에서 알바를 했다. 시급 1,600원 이었다. 그 때 나는 '최저임금'이란게 뭔지도 몰랐다. 그저 주는대로 받았다. 편의점 일이란 게 서서 스캔으로 바코드만 찍어대며 계산해주는 게 전부라고 생각했는데, 그건 가장 기초적이고 쉬운 일이라는 걸 일하면서 깨달았다. 각종 매대를 청소해야했고, 음료수 냉장고 안으로 들어가 음료수들을 채워넣어야 했으며, 쓰레기를 버려야했고, 가장 끔찍했던 건 라면 국물을 버리는 일이었다. 손님들이 사발면을 먹고 라면 찌꺼기와 국물을 버리는 통을 비우는 일. 정말 지독한 냄새를 풍겼고 할 때마다 기분이 더러웠다.

 

 

반말을 듣고도 울컥하지 않고 넘어갈 수 있는 건 길어봐야 2주 정도다. 다른 행동들도 시간이 지나면 반말만큼이나 불쾌하게 느껴진다. 종업원이 손을 내밀고 있는데도 돈을 카운터에 던지는 것. 바로 옆에 쓰레기통이 있는데도 카운터에 담배 포장지나 아이스크림 껍질을 버리고 가는 것. 계산 중에 생각이 바뀌었다며 그대로 나가버리는 것. 진열대에 있던 물건을 떨어뜨리고 내버려 두는 것 등등. (p.160)

 

 

이 책 [인간의 조건] 의 저자 '한승태'도 편의점에서 일한 적이 있다. 그리고 손님들이 반말 하는 것을 기분 나쁘다고 적어두었는데, 나 역시 마찬가지다. 도무지 이해할 수 없는게 위의 인용문에서처럼, 분명 손을 내밀고 있는데도 돈을 카운터에 던진다는 거다. 카운터에 던진 꼬깃해진 지폐와 구르다 멈춘 동전들을 집어 들면서 정말 처참한 기분이 된다. 내가 이 돈을 주워 가면서 일을 해야하나. 한 시간에 천육백원 벌자고. 어른들은 수시로 반말을 해댔다.

 

 

"저기요, 그런데 왜 반말하시는 거예요?"

"뭐?"

"왜 반말하시냐고요."

"허, 웃기는 놈일세. 니가 나보다 어리니까 어른이 당연히 반말하는거지."

나는 계산을 기다리던 내 또래의 남자를 가리켰다.

"그래요? 그럼 저기 저 손님도 훨씬 어려 보이네요. 저 사람한테도 야, 라고 해보세요."

"뭐 임마? 야, 너는 여기서 일하는 사람이고 나는 손님이고 그게 같아? 야, 안 사! 안 산다고! 카드 긁지 말고 그냥 내놔!" (pp.174-175)

 

 

어린 점원에게는 반말을 해도 된다는 룰은 대체 어디서부터 언제부터 생긴걸까. 물론 반말만이 가장 나쁜 경험은 아니다. 한 여자손님이 한 바구니 가득 물건을 담았다 꺼내놓으며 계산을 해달라고 했다. 내 옆의 여자 알바애가 하나씩 계산을 하려는데 그 여자손님은(물론 우리보다 훨씬 나이가 많아 보였다) 자기 팔로 그 물건을 죄다 내 계산대 쪽으로 쓸어왔다. 그러면서 말했다. "언니, 언니가 계산해줘. 난 저 언니 싫어." 라고. 그 때의 당혹스러움이란. 당혹스러우면서도 네, 하고 계산을 해줬던 내 모습이 씁쓸하게 겹쳐진다. 다른 알바생은 손님에게 뺨을 맞은 적이 있다. 더워서 에어컨 바람을 쐬러 들어왔는데, 그 직원이 에어컨을 껐기 때문에 괘씸해서라고 했다. 그 때 휴무였던 나는 전화를 통해 우는 그 직원의 말을 듣고 어찌해야 할 바를 몰랐다. 물건을 집어던지는 건 일쑤고 성희롱 당하는 것도 만만치 않다. 내가 일하던 편의점 근처의 일식집에서 주차관리를 하던 아저씨는 올 때마다 내 가슴을 가지고 농담을 해댔는데, 한 번은 요구르트를 사고서는 빨대로 내 가슴을 찔러놓고는 웃었다(성추행의 경험은 물론 이것이 처음도 아니고 끝도 아니며 유일무이한 것도 아니다). 너무 당황해서 그 아저씨 앞에서는 아무말도 못하고 말았는데 그 아저씨가 돌아가자마자 나는 카운터 밑에 주저 앉아서 펑펑 울었다. 지금이라면 어떻게 대응했을지 모르겠는데, 스무살의 나는 그 아저씨가 오면 슬며시 사무실로 들어가 숨었다. 마주치지 않는게 최선인 것 같았다. 내가 편의점에 온 다른 손님이었다면 그 아저씨는 빨대로 내 가슴을 찌를 생각을 했을까?

 

 

 

 

대학을 졸업하고 다닌 첫 직장에 첫 출근을 하던 날. 엄마랑 시장에 있는 옷가게에 가서 정장을 한 벌 사 입었다. 그리고 출근했는데 내게 주어진 첫 일은 사무실의 모든 컴퓨터 모니터를 닦는 일이었다. 사람들이 일하지 않는 컴퓨터 그리고 일하는 컴퓨터 모두를 돌아다니면서 닦았다. 들어보니 나보다 먼저 입사한 남자 직원은 수천장의 서류를 서서 복사했다고 했다. 그것도 한장씩. 야, 첫 일이란 건 이런거구나, 뭔가 드럽지만, 해야 할 일이었겠지. 그렇게 넘겼었다.

 

그리고 지금의 직장에 들어왔는데 몇 년전에 회사에서 내게 부서를 옮길것을 제안했다. 당시는 회사 형편이 안좋아서 임금이 삭감된 때였는데, 내가 그 부서에 가는 순간 삭감된 연봉이 제자리를 찾을 것이며 게다가 연봉을 인상까지 해주는 조건이었다. 내가 다니는 회사의 연봉은 해마다 고작해야 4~5프로를 인상해주었는데, 그보다 더 높은 퍼센테이지의 인상률을 제안했고, 나는 '스카웃' 됐다는 생각에 으쓱했다. 나를 데려오고 싶어서 안달들을 하는군. 그러나 이 생각은 며칠 가지 못했다. 내가 받을(은) 연봉은 금액상으로는 결코 크지 않다. 내 또래의 직장인들을 놓고 봤을 때 오히려 낮은 편에 속할 것이다. 그러나 내가 다니는 직장내에서는 높은 연봉에 속한다. 내가 이렇게 돈을 더 주면서 데려올만큼 가치있는 일꾼일까. 만약 내가 이 정도의 돈을 더 주고 데려올만한 사람은 아니었는데, 라는 생각이 들게 한다면 어떡하지. 날 데려오는 걸 후회하는 건 아닐까 등등 머릿속에 생각들이 넘쳐났다. 하지 않아도 좋을 쓸데없는 걱정들로 하루하루를 긴장된 채 보냈고, 그러다가 혹여 작은 실수라도 하나 하게 되면 자책도 그만큼 커졌다. 이렇게 병신 같은 나에게 이정도의 연봉은 과분하다고 생각할거야, 라며. 지옥같았다. 순간순간들이.

 

 

 

 

"씨발, 이게 진짜 무슨 ‥‥‥. 여친이 가지 말라고 졸라 말렸었는데. 정말 어른들 말이 딱 맞는 거 같아요. 남의 돈 버는 게 쉬운 일이 아닌가 봐요."

갑자기 가슴이 턱 막히는 것 같았다. 나는 걸음을 멈췄다. (p.431)

 

 

 

그러나 자책과 염려는 싹 사라졌다. 맡은 업무에서 오는 스트레스가 어마어마했다. 나는 매일매일 지쳐갔고 퇴근후에는 압박감이 사라져 한숨부터 나왔다. 지친 몸을 이끌고 이 고충을 토로하노라면 상대가 누구든 내게 말했다. 남의 돈 버는 게 그렇게 어려운 거라고, 쉽지 않다고.

 

 

"이 병신아! 그게 왜 남의 돈이야? 그게 어떻게 남의 돈이냐고! 한 달 일해 겨우 100만원 버는데도 그게 남의 돈이란 말이야? 100만 원 가지고 부동산 투기라도 하냐? 펀드라도 굴리냐? 씨발, 방세 내고 밥 먹고 교통카드 충전하고 나면 다 떨어질 돈 100만 원, 그게 남의 돈이란 말이야? 사람답게 살 권리는 전부 타고나는 거야. 그러면 사람답게 먹고사는 데 필요한 돈도 타고 나야 맞는 거 아냐? 그런데도 내가 나의 돈을 번 거야? 그게 어떻게 남의 돈이란 말이야? 빌어먹을, 그건 내 꺼라고! 처음부터 그건 내 돈이었단 말이야! 난 여태껏 남의 돈 같은 거 벌어본 적 없어! 단 한번도 없다고!" (p.432)

 

 

나는 내가 받게된 연봉이 남의 돈이란 생각이 들지 않았다. 내가 받는 스트레스 강도는 어마어마했으니까. 물론 내 성격과 다른 성격을 가진 사람이 내가 맡은 일을 맡았다면 나만큼 스트레스를 받지 않을 수도 있었다. 그러나 나는 다른 사람이 아니었고, 나는 바로 나였다. 나는 스트레스와 압박감을 견디며 지내고 있었다. 매일매일 회사에 출근해서 퇴근시간까지 이 압박과 스트레스를 버텨가는 일, 내가 받는 돈은 이런 내 스트레스와 압박감에 대한 대가였다. 나는 남의 돈을 등치며 뺏어먹는 게 아니라, 내 정신적 고통과 감정적 노동을 그에 합당하게 지불하고 있었다. 아니, 언젠가부터는 그것이 더 넘치고 있다고도 생각했다.

 

편의점에서 일할 때도 나는 내 땀과 시간을 거기에 투자했고 손님들에게 모욕적인 감정을 느낄 정도의 수치심을 견뎌내야 했다. 한시간에 천육백원은(물론 점점 인상했지만, 그래봤자 몇 백원씩..) 그 모든것들에 대한 대가였다. 나는 사장 주머니를 턴 게 아니었다. 첫 직장에서는 신입사원으로서는 높은 인센티브를 받았지만, 그 역시 겨울내내 밤을 새며 발에 습진 생기도록 일한 내 노동의 대가였다. 나는 첫 직장에서도 역시 사장의 주머니를 그냥 턴 게 아니었다. 지금도 마찬가지. 나는 그냥 가만히 앉아서 다른 사람의 돈을 가져오는 게 아니다. 그에 걸맞는 무언가를 대가로 지불하고 있다. 그리고 대체적으로 이 모든 노동과 대가의 교류 사이에 흡족할만한 인간적인 대우는 없었다. 나는 매번 나보다 높은 지위에 있는 사람에게 항의하거나 요구해야 했다. 요구가 받아들여지지 않을 때도 있었고, 상사들로부터 모욕적인 언사를 받을 때도 있었다. 드러워서 그만두겠다는 말을 하루에도 수십번씩 내뱉고, 사직서를 써서 책상 고무판 밑에 끼워두었지만, 그래도 여전히 버티고 있는 건, 같은 조직내에서의 혹은 조직과 연결된 망들 사이에서의 '다른 선한 인간들' 때문이다.

 

 

 

그때 내가 길 위에서 미치지 안은 비결이 있다면 그건 내게(이유는 알 수 없지만) 호의를 품은 사람들이 나를 도울 수 있게 내버려 뒀기 때문이었다.

따지고 보면 내가 작업장에서 버틸 수 있었던 것 역시 비슷한 이유 덕분이었다. 어디서나 나를 자신의 날개 아래 품고서 돌봐준 아저씨들이 있었다. 그 사람들은 내가 투덜대는 것 말고는 제대로 할 줄 아는 게 없는 빌어먹을 자식이란 걸 알고 있었을 텐데도 항상 내가 조금이라도 쉴 수 있게, 조금이라도 다치지 않고 일할 수 있게 도와줬다. (p.436)

 

 

 

내게도 그랬다. 나 역시도 버티게 해주는 다른 이들이 있었다. 마음 맞는 동료들이야 두말할 것도 없고, 편의점에서 일할 당시에는 롯데칠성 아저씨, 롯데아이스크림 아저씨, 샌드위치 아저씨, 남양우유 아저씨 들이 내게 잘해주었고 가끔 음료수며 우유 아이스크림을 박스로 넣어주기도 했다. 실론티 한 박스를 냉장고에 채워주며, 락방씨 실론티 좋아하니까 이건 발주수량에 없는거니까 바코드 찍지 말고 원할때마다 꺼내먹으라고, 이건 락방씨꺼라고. 이들 중 몇몇 아저씨들과는 데이트를 하기도 했다. (응?) 한 손님은 영화표를 내밀며 저녁을 먹자고도 했다. 식사약속은 거절하면서도 나는 그가 주는 영화표는 낼름낼름 챙겨 영화를 봤다. 한 일식집 매니저 언니는 나를 가게로 불러 우동을 공짜로 주며 편의점에서 얼마를 받든 무조건 더 줄테니 자신의 가게에서 일해달라고 했다. 나는 어떻게 이렇게 지척에두고 그럴 수 있겠냐고 했고, 그 매니저 언니는 자신이 편의점 사장님에게 말해줄테니 와주기만 하라고 했다. 나는 끝내 거절했지만 그 매니저 언니는 그 후에도 가끔 편의점에 들러서 내게 우유며 과자등을 사주고 가기도 했다. 치과, 대사관, 항공사등 알지 못했던 곳에서 일하는 많은 사람들이 나 때문에 들른다며 단골이 되었을 때에는 뿌듯해지기도 했다. 물론, 왜 학교 자판기보다 식혜가 비싼거냐고 화를 내는 대학생에게는 나도 참지 못해 마주 화내며 그럼 학교 가서 사 먹으라고 한 적도 있지만, 대체적으로 나는 아주 많은 사람들과 잘 지내왔다.

 

 

첫 직장에서 만났던 사람들 중에도 그리고 지금의 직장에서 만난 사람들 중에도 도무지 인간 같다 여겨지지 않았던 사람들도 있었지만, 그래도 서로의 처지를 이해하며 힘이 되어주려고 해주는 사람들이 많았기 때문에 여기까지 버텨올 수 있었다. 사람들이 돈을 벌며 '버텨야' 한다는 것은 몹시 씁쓸한 일이다. 게다가 그 '버티게' 해주는 게 회사의 구조적인 시스템이 아니라 옆자리 동료이며 혹은 다른 사람들 이라는 사실도 역시 씁쓸한 일이다. 왜냐하면 회사의 구조적인 시스템 역시 '사람' 이 만들어가기 때문이다. 일을 하다보면 고용주와 노동자들 사이에는 사고방식의 현저한 차이가 있다는 것을 실감한다. 휴일에 대한 것도 근무시간에 대한 것도 복리에 대한 것도 근본적인 시각 차이가 있다. 도무지 이걸 어떻게 해야 극복해낼 수 있을지 모르겠다. 얼마전에 친구네 회사에서 노조를 결성한다는 얘기를 들었는데, 그 회사에서는 '그 사람들 다 잘라버리고 새로 사람 뽑으면 되지'라고 했다는 말을 듣고 경악했다. 일자리는 부족하고 그러니 사람을 자르고 다시 뽑는 게 가장 간단한 해결책이 되는 것이 회사의 입장일 것이다. 역시 씁쓸한 일이다.

 

 

 

 

 

나는 이 세상이 돌아가는 비밀을 엿본 기분이 들었다. 이 괴상망측한 사회가 비틀거리면서도 여전히 굴러갈 수 있는 이유는 수많은 사람들이 정당한 보상을 받지 못하고 있음에도 자신이 하는 일에 최선을 다하고 있기 때문이다. (p.438)

 

 

이 사회가 굴러갈 수 있는 이유가 맡은 바 일에 최선을 다하는 사람 때문이기도 하고, 옆 자리의 동료들 때문이기도 하다면, 거기에 가장 기본적인 이유가 절실하다. 기업의 구조적인 시스템. 복리후생이 대단하길 바라는 게 아니라, 기본적으로 인간에 대한 도리를 갖춰야 하는 그 정도. 물론 돈을 내고 물건(혹은 서비스)을 사는 사람의 마음가짐 역시 지금과는 달라져야 한다. 나는 손님이고 너는 종업원이기 때문에 너를 함부로 대하는 것이 내 권리이다, 라고 생각하기 때문에 기업은 '이나마 해주는 것을 다행으로 알라'며 막나온다. 그런 사람들이 회사의 우두머리로 앉아있는 경우가 허다하기 때문에. 아직 갈 길이 멀고, 그 머나먼 길을 가난한 자들은 지독하게 고생하며 묵묵하게 헤쳐 나가야 한다.

 

 

 

이 책의 제목이 '인간의 조건' 이기 때문에 읽기 시작했지만, 저자가 머리말에서 말한 것처럼 '퀴닝(체스의 '졸'이 진영의 끝에 도달하면 여왕으로 변하는 것)' 이란 제목이 더 잘 어울릴 듯하다. 그 편이 더 마음에 든다.

 


댓글(9) 먼댓글(0) 좋아요(37)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레와 2013-08-26 14:46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하아. 한숨나온다..

네꼬 2013-08-26 15:47   좋아요 0 | 댓글달기 | 수정 | 삭제 | URL
이 글 정말 좋아요. 눈물 나오려고 해요. 락방 씨.

감은빛 2013-08-26 16:51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저도 편의점 야간 알바를 잠시 했어요.
업체 직영이었는데, 정직원들이 점장과 부점장으로 파견을 오고,
나머지는 알바들로 채웠어요.
그런데 알바 일하는 시간들 사이에 각각 2시간을 비워둬요.
먼저 일한 사람이 한 시간 늦게 퇴근하고,
뒤에 일할 사람이 한 시간 먼저 출근하도록 규정해두고요.
그럼 알바들은 매일 2시간(출퇴근시 각 1시간씩)동안 무급으로 일하게 되죠.
게다가 거기서도 15분 먼저 오고, 15분 뒤에 가도록 강요했어요.
처음엔 아무 생각이 없어서 그렇게 했어요.
나중에 생각해보니 억울하더군요.
그래서 따졌는데 합리적인 대답은 돌아오지 않고,
무조건 시키는 대로 하라는 답만 돌아왔어요.

게다가 야간 일이라서 정말 뭐같은 손님들이 많았어요!
이런 저런 일들이 겹치면서 오래지 않아 그만두게 되었어요.

그리고 저 텔레마케팅(전화 판매)일도 여러번 했어요.
저는 대부분 시간제가 아닌 실제로 판매하거나,
회원 등록을 해야 거기서 돈을 받는 방식이었어요.

학원이나 교재 업체에서는 돈을 주고 매년 그 지방의 모든 학교 졸업 앨범을 사서 모아요.
앨범 맨 뒤에 나온 졸업생 연락처를 복사해서 계속 전화를 돌리는 겁니다.
전 심지어 학원 강사 시절에도 근처 졸업생들을 대상으로 전화를 돌렸어요.
원장이 매일 5명에게 전화하고 그 상담내용을 제출하도록 강요했거든요.

이 글 읽으니 여러 기억들이 스물스물 떠오르네요.

자작나무 2013-08-26 17:11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대부분의 사람들은 거대한 공포심에 쫓겨 어렵사리 취직을 하고 아껴가며 찔끔찔끔 돈을 모으지요. 아마 아주 어렸을 때부터 누군가에게 물려받거나 주입되어진 혹은 체득한 것이 아닐까... 살다가 가끔씩 그 거대한 공포심에 대해 의심을 품어보니 그건 실체가 없는 것일지도 모른다는 느낌을 어렴풋이 받기도 합니다....만 오늘도 떨쳐버리지 못하고 이렇게 찌질한 하루를 보내고 있군요. 평생 동알 놓여나지 못할 것같은 예감도 듭니다.
하고 싶은 말은 락방 과장님은 잘 살고 있다는 거예요. 힘들지만 성공한 인생이라고 생각해요. 누가 뭐래건 돈멘션잇 유아소뷰리풀 유아마이헤로인 아이러브유랍니다.

Mephistopheles 2013-08-26 17:22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하지만 오너들의 머릿 속은 회사 직원들을 바라보며

"이 월급 도둑놈들아!!!"

라는 생각을 80%이상들은 가지고 있을 껍니다..ㅋㅋㅋ

BRINY 2013-08-26 23:14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어린 점원들에게 반말해도 된다는 룰->같은 직장에서도 나이가 적은 걸 확인하면 바로 반말하면서 가르치려고 드는 사람들이 널렸는데, 편의점의 어린 점원들에게는 오죽 하겠습니까.

심야책방 2013-08-27 03:44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어제랑 오늘, 팟캐스트 벙커1 특강에서 '강신주의 다상담 -소비'를 들었는데 많은 생각이 들었어요. 이 글을 보니 또 많은 생각이 드네요.

yamoo 2013-08-27 17:19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저는 정말 많은 알바를 했어요. 종류로 30개가 넘습니다. 하지만 편의점 알바만은 하지 않았네요...다락방님의 편의점 알바기를 보니, 참으로 거시기 합니다. 근데, 거의 모든 알바들은 인간대접 못받는 거 같다는..

가연 2013-08-28 00:44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오 멋진 글입니다. 그렇죠, 나는 손님이니까.. 그리고 너는 종업원이니까... 라는 말은 일순간 잔인하기도 합니다.
 
단 한 번의 연애
성석제 지음 / 휴먼앤북스(Human&Books) / 2012년 12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유독 공감할 수 없고 잘 받아들여지지 않는 사랑이야기가 있는데, 내게는 '어릴적부터의 사랑이 어른이 되서도 쭉 이어진다'는 이야기가 바로 그렇다. 아무리 공감하려고 해봐도 잘 되질 않고, 이해하려고 노력해보지만 사실 이해도 잘 되질 않는다. 대체 어떻게 초딩때부터 한눈에 쑝 간 사람에게 내내 그 사랑을 유지하며 나이가 아주 많은 어른이 되어서도 서로를 계속 사랑할 수 있을까? 내가 '어릴적부터 이어온 사랑'을 해본 적이 없어서일까? 여튼, 그런 이야기는 참, 재미가 없다. 지고지순한 사랑, 이라고 평가 받으며 어떤 사람들에게는 로망으로 느껴진다거나 동화의 완성으로 느껴질지는 모르겠지만, 난 참, 재미없다. 쩝. 그건그렇고,

 

나는 기본적으로 회는 좋아하지 않고(안먹는다는 건 아니다), 그렇기에 '물회'라는 건 먹어본 적도 없고 앞으로도 먹을 생각이 없지만, 이 부분을 읽고는 '아뿔싸, 겁나게 입맛을 당기잖아!' 했다. 물회를 좋아하는 사람이 읽었다면 환장했을 듯.

 

 

 

처음에는 집 안의 부엌 딸린 방에 손님을 받았다. 고만고만한 식당이야 이미 포화상태라고 할 만큼 많았기 때문에 단골을 늘리기가 쉽지 않았다. 하지만 어머니에게는 비장의 무기가 있었다. 어머니는 해녀였다. 어떤 해산물이 싱싱하고 맛있는지, 싸면서도 구하기 쉬울지 누구보다 먼저 알았다.

포항의 항구에는 아침마다 한류와 난류가 교차하는 연안에서 잡은 가자미, 청어, 열기, 삼치, 쥐치, 도미, 오징어 등을 실은 어선들이 즐비하게 정박했다. 어부들은 조업을 나가면서 채소와 물, 초장 등을 배에 실어 가지고 바다로 갔다. 물고기가 일단 잡혀 올라오기 시작하면 굶어도 허기를 모르고 옆에서 인어를 따라 용궁으로 사라져 가도 모르는 게 인지상정이다. 밤중부터 새벽까지 그물을 당기고 물고기를 끌어올리던 그들은 한껏 허기가 지는 새벽에 참을 먹기 위해 갑판에 앉았다. 잡아 올린 물고기를 큼직큼직하게 썰어 그릇에 넣고 시원한 오이며 채소를 푹푹 썰어서 더하고 고추장을 넣어서 쓱쓱 비빈 뒤에, 빨리 먹기 위해 물을 그득 부어서 나눠 먹는 것, 그게 어머니가 내놓은 물회의 원래 모습이었다. 게다가 어머니가 직접 물질로 잡은 해삼, 멍게, 소라, 성게 같은 해산물까지 물회로 만들어 내놓음으로써 해녀가 운영하는 식당으로 유명해졌고 손님은 급증했다. (p.57)

 

 

캬- 멍게며 소라 해삼까지 내 취향은 아니지만, 참으로 맛깔스럽게 느껴지지 않는가.

 


댓글(14) 먼댓글(0) 좋아요(4)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비연 2013-08-07 17:40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물회 맛있어요..ㅎㅎ

다락방 2013-08-07 17:41   좋아요 0 | URL
전 시도하기가 어쩐지 겁나요. ㅎㅎ

Mephistopheles 2013-08-07 18:05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그렇군요 물회를 못드신다..이말이군요.....ㅋㅋㅋㅋㅋ 잘알겠습니다.

다락방 2013-08-07 18:06   좋아요 0 | URL
뭐..뭐죠. 왜 불길한 느낌이 들죠? -_-

2013-08-07 19:21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13-08-08 17:25   URL
비밀 댓글입니다.

자작나무 2013-08-07 20:18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락방님 저랑 강릉집 한번 가시죠.

다락방 2013-08-08 17:27   좋아요 0 | URL
물회 파는 곳인가요? 노땡큐에요. ㅎㅎㅎㅎㅎ

2013-08-08 23:00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13-08-09 11:43   URL
비밀 댓글입니다.

가넷 2013-08-09 07:33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회는 솔직히 무슨 맛으로 먹는지 싶네요.;;;

다락방 2013-08-09 11:43   좋아요 0 | URL
저도 예전엔 그랬는데 이젠 잘 먹는다능. 와사비 맛으로 드세요, 가넷님 ㅎㅎ

jo 2013-08-11 17:37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재미있는 서재네요. 헤헿. 물회는 안 먹어 봤는데...

다락방 2013-08-12 09:35   좋아요 0 | URL
전 아마 앞으로도 안 먹을것 같아요. ㅎㅎ
 
처음 처음 | 이전 이전 | 71 | 72 | 73 | 74 | 75 | 76 |다음 다음 | 마지막 마지막