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반 일리치와 나눈 대화
데이비드 케일리 외 지음, 권루시안(권국성) 옮김 / 물레 / 2010년 3월
평점 :
절판


미국이 제3세계에 자원봉사자를 보내는 것이 결국은 해를 가져온다는 것, 학교라는 교육 기관 역시 도구로서 인간에게 해를 가져온다는 것, 의료 기술의 발전 역시 해를 가져온다는 것, 성별을 인정하지 않으니 성차별이 생겨난다는 것 등등, 그의 주장들은 그 주장에 대한 근거를 읽지 않는다면 처음엔 대체 그게 무슨 소리람, 싶어진다. 그러나 그가 조목조목 하는 말들을 천천히 읽으면 아, 그렇겠구나, 싶어지는 것이다. 그러나 그 말들이 내게 무척이나 어려워서 잘 이해했다는 생각이 들질 않는다. 만약 내가 잘 이해했다면 그의 주장과 근거를 인용하여 다른 사람들에게 설명하거나 설득하거나 혹은 다른 사람들을 이해시킬 수 있을 것이다. 입 밖으로 낼 수 없는건 내 스스로 정리가 되지 않았다는 명백한 증거이고, 그러므로 나는 매우 안타까운 것이다.


이 책은 분명 읽을만한 가치가 있긴 하지만, 지금의 내가 읽기엔 온전히 이해되기 어려울 정도의 내용들로 가득차있고, 그렇다고 십 년이 지난후에 읽어도 내가 이해할 수 있을지 역시 자신이 없다. 이 책에 대해 알기 쉽게 설명한 해설서가 나왔으면 싶어지는 것이다. <이반 일리치 입문서>같은게 필요한 것이다. 흑흑.



그나저나 지구 이편에 나라는 인간이 있듯이 지구 저쪽 편에는 '열한 개의 언어를 익히고, 신학과 역사학과 화학 분야의 학위를 갖고 있는' 이반 일리치가 존재했구나. 그 간극은 물리적 거리보다 더 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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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무개 2014-05-19 08:59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ㅋㅋ 나중에 저한테 파셔요. 도전!!!

교육, 의료 기술발전, 성별의 차이 이런것들 뿐만아니라
세상에서 발생하는 모든 일들과, 세상에 존재하는 모든 사물들은
모두 다 장단점을 갖고 있지 않을까요? 라고..소심하게 써봅니다^^

다락방 2014-05-19 09:33   좋아요 0 | URL
제가 밑줄 그은 부분들이 있지만 그냥 드릴게요. 팔기는 무슨.. ㅎㅎ
아 머리에 쥐나는 독서였네요. 이제 김 숨의 소설을 읽기 시작했는데 어찌나 팔랑팔랑 잘도 넘어가는지. ㅠㅠ

2014-05-19 11:37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14-05-19 16:12   URL
비밀 댓글입니다.

곰곰생각하는발 2014-05-19 22:45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학교 없는 사회'를 추천합니다.

다락방 2014-05-20 08:12   좋아요 0 | URL
학교없는 사회는 다 품절이나 절판이네요. 그래도 박홍규의 '이반 일리히'를 선물 받았습니다. 움화화핫. 언제 읽게될진 모르겠지만요. -0-
 
행복한 라디오 - 세상에서 가장 행복한 나라, 부탄이 말해준 것들
리사 나폴리 지음, 김유미 옮김 / 수이북스 / 2013년 3월
평점 :
절판


나는 그동안의 내 삶을 크게 후회하거나 하진 않지만, 다른 삶을 살아보고 싶다는 생각을 막연하게 한다. 어릴적에도 그리고 사춘기를 지나 대학엘 진학하고 직장을 선택하는 그 과정들 속에서도 나는 크게 내 삶의 방향을 고민해보진 않았던 것 같다. 그저 늘 현재에 만족하고 그렇게 가지고 있는 것을 활용해서 하루하루 지내다가 지금에 이르렀고, 그리고 지금이 그다지 나쁘지 않다는 생각을 해왔다. 이정도면 괜찮지 않나, 하는. 아마 크게 욕심이 없는 것도 현재에 만족하는 데 영향을 미쳤을 것이고.

 

그런 내가 요즘은 여기가 아닌 다른 곳을 꿈꾼다. 서울 생활이 답답하다거나 인간들이 지긋지긋하다거나 하는것과는 좀 다르다. 최근에 뉴스를 보며 매일 울었던 것도, 직장에서 어마어마한 스트레스에 시달리던 것도 너무 한꺼번에 갑자기 들이닥쳐서 숨을 쉴 수가 없었다. 그런 와중에 보았던 대전의 수목원은 도심속의 한가로움을 보여주는 듯해 꿈의 장소로 여겨졌다. 막연히 그곳으로 가야하지 않을까 싶어졌다. 나는 양재동이 지긋지긋했다. 이 글을 쓰는 지금도, 내일 양재동으로 가야 한다는 것이 미칠 정도로 싫다. 양재동으로 일주일에 다섯번 출근해야 하는 삶을 이제는 벗어나고 싶다. 나는 이 책의 저자가 나와 같은 고민을 한다는 생각이 들었다. 뭔가 달라지고 싶은것, 더 행복해지고 싶은것. 제주에도 부산에도 여러차례 갔었지만 내가 더 마음이 끌리는 곳은 부산이었고, 최근엔 대전이 마음에 들어서, 이 책의 저자가 부탄을 택했던 이유로 나는 대전을 택하고 싶었다.

 

그러나 이 책의 저자는 부탄에서 자신이 해야 할 일, 할 수 있는 일, 부탄의 사람들을 도울 수 있는 일을 가지고 있었지만, 나는 여기가 아닌 다른 곳에서 할 수 있는 일이 없었다. 무엇을 해야할지 생각하지도 않은채로 무작정 옮겨갈 수는 없는 일이었다. 나는 어디로 가서 무엇을 하며 살아야 할까. 이 책의 책장을 넘기며 혹여 나는 부탄에 가고 싶어지지 않을까, 하는 생각을 해보았지만 이 책에 실린 사진들은 오히려 나로 하여금 역시 나는 부탄엔 갈 수 없겠구나, 싶어졌다.

 

 

 

 

 

 

 

 

 

 

 

아무것도 결정하지도 못하고 확실하지도 않은채로 이 나이가 되어 비로소 삶의 방향을 다른 쪽으로 틀어야 한다고 생각한다는 것, 이런 일에 대해 고민한다는 것이 답답했다. 이런 고민은 좀 더 일찍 했어야 했던건 아닌가, 하고. 그러나 이 책의 저자는 마흔 한 살에 부탄으로 떠났다. 물론 그녀는 부탄에 거주지를 정해 그곳에서 정착하진 않는다. 다만 한 번 다녀온 부탄을 자신에게 안락함을 줄 수 있는 곳으로 생각해 가끔 찾곤 하는 것이다. 그곳에 친구를 만들고 자신이 도와줄 일을 만들고, 부탄 혹은 부탄 사람들을 돕기 위해 현재 자신의 거주지에서도 최선을 다한다. 그녀의 귀와 눈과 마음은 부탄을 향해 열려있다. 앞으로 그녀가 어떻게 될지는 모르는 일이지만 나는 그녀가 그 나이에, 자신이 모든것에서 실패했다는 생각을 가진채로 앞으로의 삶을 고민하며 방황한다는 게, 동질감이 느껴져 좋았다. 다른 사람들도 이 나이에 고민한다는 것이 다행스러웠다.

 

 

 

이 책은 내가 중년에 겪은 위기와, 우연히 아시아의 신비로운 왕국을 방문하면서 그 위기를 극복해 낸 과정을 적은 이야기이다. 나는 마흔 번째 생일을 맞을 때까지 삶의 고비마다 후회와 회환에 시달리면서 정신없이 쫓기듯 달려왔다. "이렇게 했더라면 좋았을 텐데‥‥‥", "이렇게 했더라면 어떻게 되었을까?" 하는 말을 후렴구처럼 반복하며 뒷북치는 어리석은 삶을 살았다.

 

 

왜 나는 사랑하는 남자와 가정을 이루는 데 실패했을까.

왜 나는 젊은 시절을 그렇게 함부로 낭비했을까.

왜 나는 그렇게 나를 분노하게 하는 직업에 매달렸을까.

어떻게 하면 앞으로의 삶을 더 의미 있게 만들 수 있을까.

 

어떻게 하면 더 우아하게 나이들 수 있을까. (pp.12-13)

 

 

 

나를 비롯해서 이 세상의 모든 사람들은 매순간 더 나은 미래를 고민하며 살아가는지도 모르겠다. 아마 그럴것이다. 앞으로의 나의 삶이 더 의미있기를 바라고 우아하게 나이들기를 바라는 것. 아마 그것이 매시간 매일 나이들어가는 우리들이 하고 있는 고민일 것이다. 그 답을 젊은 시절 찾는 사람도 있고 나이 들어 찾게 되는 사람도 있을것이며, 그 답을 금세 찾는 사람도 있고 찾는데 오랜 시간이 걸리는 사람도 있을것이다. 나는, 아마도 이 책의 저자가 승려에게 답했던 바로 그처럼, 그걸 찾는 과정에 놓여있는 건지도 모르겠다는 생각을, 이 책을 읽으며 했다.

 

 

"요즘 어떻게 지내십니까?" 그가 완벽한 영어로 물었다.

성직자가 그런 질문을 하면 어떤 대답을 해야 하는 것일까? 그가 내 정확한 답변을 원하는 걸까, 아니면 의례적인 인사를 건넨 것일까? 그는 내가 힘든 삶을 살아왔다는 걸 알고 있을까? 라마의 현신이라는 이 영험한 승려는 내가 몇 년 동안 고통스러운 삶을 살아왔다는 것을 감지할 수 있을지도 모른다. 나는 뭐라고 대답해야 할지 몰라 당황스러운 표정으로 서 있었다. 내가 앞으로 이끌어야 할 직원들 앞에서 어리석은 답변을 하고 싶지는 않았다.

"열심히 찾고 있는 중이에요." 적당한 답변을 떠올리지 못한 나는 이렇게 대답했다. 나 자신도 생각하지 못했던 대답이었다. 애매하고 가식적으로 들릴 수도 있는 말이었지만 그 순간의 솔직한 내 심정을 대변하는 말이었다. 내가 무엇을 찾고 있는지 나 자신도 몰랐다. 그것은 미래에 대한 계획일 수도, 나 자신을 정화하는 일일 수도, 마음의 평화일 수도 있었다. (pp.107-108)

 

 

 

저자는 부탄에서 마음의 평안을 찾고 그곳에서 위로를 받는다. 좋은 친구도 사귀게 된다. 자신의 거주지로 돌아오면 또다시 부탄을 그리워하는 것, 그것이 그녀가 하는 일이고 그것이 힘들었던 그녀 삶에서 자신에게 내려진 해답이었다. 부탄에 거주하는 것이 아니라, 부탄을 그리워하고 언제든 갈 수 있다는 걸 안다는, 바로 그것. 마음의 안식처가 어디에든 있고, 언제든 그곳에 갈 수 있다는 것은 누구에게도 커다란 위안이 될 수밖에 없다. 어쩌면 그것이 답일지도 모르겠다. 아예 어딘가로 나를 옮겨두는 게 아니라, 언제든 내가 갈 어딘가가 있다는 바로 그것. 답답하고 한심스러워질 때, 슬프고 하염없이 울고 싶어질 때 어딘가로 가고 싶다, 거기에 가면 내가 나을 것이다, 라는걸 아는 것. 그런 장소가 한군데쯤 있다는 것은 얼마나 좋은가.

 

 

그러나 나는 이 책의 저자가 그렇게 힘든때 우연히 방문한 부탄에서 위로를 얻었던 것, 자신이 그 타이밍들의 우연으로 인해 행복을 찾았다는 것이 결코 '부탄'의 덕이라고 생각하지는 않는다. 그녀는 자신의 문제를 해결하고 싶었고 행복해지고 싶다는 열망이 있었다. 그런 열망이 가득한 그때 누군가 다가왔고 또 부탄이 다가왔던 것이라 생각한다. 만약 그녀가 그렇게 되고자 하는 의지가 없었다면 새로 만나게 된 사람도, 그렇게 소개받은 부탄도 그녀에게 별다른 의미를 주지는 못했을 것이다.

 

 

사람은 영원히, 여기가 아닌 다른곳을 꿈꿀 수밖에 없는 존재일런지도 모른다. 도시의 각박한 삶에 지치고 너덜너덜해져 그녀가 부탄을 그리워했던 것처럼, 부탄에서 그녀를 도와주던 젊은 여자친구는 미국을 방문한 뒤 부탄으로 돌아가고 싶어하질 않는다. 자신의 삶을 미국에서 펼쳐나가기를 바란다. 한적한 곳에서 살던 그녀에게 도시는 지독하게 매력적이었기 때문이다.

 

 

나는 그녀가 부탄을 만난 것이 그녀에게 무척 좋았던 경험이라고 생각한다. 부탄이 거기 있는한 그녀가 언제든 자신의 한 몸을 지금 여기와 떼어내 머무르게 해줄 곳이 있다는 것이니까. 그러나 이 책이 그런 의미에서 재미있냐고 하면 그건 '아니다'. 게다가 나는 그녀가 여전히 완전히 낫지 않았다는 생각이 든다. 그녀는 여전히 사랑을 불신하고(나처럼), 그녀는 여전히 자신의 삶이 더 나은쪽으로 바뀌고 있다고 자기 자신을 믿으려고 노력하는 쪽이라는 생각이 든다. 그녀에겐 조금 더 시간이 필요할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나는 지금까지 다른 사람들은 모두 안정된 삶을 누리고 있는데 나만 늘 허우적거리며 힘들게 살고 있다고 생각했다. 그러나 누구나 나름대로 힘겹게 살고 있다는 걸 비로소 깨달았다. 자녀와 경제적인 문제 때문에 사랑 없는 결혼 생활을 유지하는 사람도 있었고, 자신의 삶을 스스로 헤쳐나가지 못한 채 누군가 구원해 주기만을 기다리고 있는 불행한 이들도 있었다. 무언가를 소유하기 위해서는 반드시 타협하고 포기하는 부분이 있어야 한다. 존재한다는 것은 결국 타협한다는 것이다. 사랑은 동화 속에 나오는 이야기보다 훨신 더 복잡하고 어려운 것이다. 나에게 사랑은 경리롭게 다가와 짧은 순간 생기와 열정을 불러일으키고, 다가올 때처럼 순식간에 사라져 버리는 신기루 같은 것이었다. 그러나 나는 그걸로 충분하다고 생각했다. (p.171)

 

 

내 삶의 방향을 결정하는데 도움을 주지 않을까 하고 선택한 책이었는데 사실 그다지 도움이 되진 않았다. 다만 내가 아직 찾아 헤매고 있는 중이란 사실만을 명백히 알게 되었을 뿐. 그리고 나는 그녀가 좀 더 기운을 낼 수 있기를 응원하는 마음이 생긴다(네개의 별점은 모두 그녀를 응원하는 데서 나온 것이다). 사람은 5초후의 일도 알지 못하는 것처럼, 앞으로 그녀와 나의 삶이 어떻게 달라질지 알 수 없는거니까. 부탄과는 전혀 다른 것이 그녀 앞에 나타나 그녀의 삶을 황홀하게 만들어줄 지도 모르고, 내가 생각하지 못했던 어떤 것이 내 앞에 나타나 나를 지금의 이 방황에서 벗어나게 해주며 안정감을 줄 지도 모르니까. 나는 평안함이 내 삶에 찾아들기를 바란다.

 

 

 

사과를 한 봉지 사가지고 돌아왔더니, 집에 사과가 있는데 왜 또 사왔냐고 엄마가 묻는 꿈을 꾸었다. 꿈 속에서 나는 사과가 이미 가득한 냉장고에 사과를 넣었다. 오호, 이것은 무언가 대단한 꿈, 나를 어딘가로 데려다 줄 횡재를 맞을 꿈이 아닌가 싶어 로또를 맞춰보았고, 하하하하, 꽝이었다는 사실에 멘붕이 찾아왔다. 그렇다면 사과야, 너는 왜 꿈에 나온거니?

 

주변에 물어봤더니 이건 태몽이란다. 킁 -_-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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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작나무 2014-05-12 10:52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전에 강제로 시골에서 3년 넘게 산 적이 있었는데 은행 한번 가려면 차로 20분을 나가야 하는 그런 곳이었죠. 그땐 시골이 너무 싫었어요. 틈만나면 서울에 오고싶었고...
그런데 지금은 그때가 좋았구나 하는 생각이 자주 드네요.

언젠가 저 세상으로 가기 전 내 인생을 문득 돌아보면서, 닥칠 때는 지옥이었던 순간들이 사실은 꽃동산이었음을 절감할지도 모른다.
꽃은 어디에서 왔고, 어디로 가는가.
우리가 만난 그 많은 행복하고 불행했던 인연들도 사실은 꼭 일어나야 했을 필연이 아니었을까.
다만, 내가 꽃이 왜 피고 지는지, 왜 내가 그 꽃을 지금 이 순간 만나고 있는지 그 의미를 모를 뿐.

다락방 2014-05-12 11:21   좋아요 0 | URL
저는 다른 곳을 꿈꾸지만 그렇다고 그곳이 시골은 아니에요. 저는 여전히 도시를 꿈꾸고, 그 도시가 좀 여유롭고 한적하길 원하죠. 부산은 바다가 있어서 좋고 대전은 수목원이 있어서 좋고. 바다와 수목원들을 둘러싼 높은 빌딩들이 있는, 그런 곳이 좋아요.

오늘 문득 퇴직금에 대한 생각을 하게되면서, 중간에 두번이나 받아 쓰지 않았다면 금액이 엄청났을텐데, 싶으면서, 그랬다면 몇개월쯤 일하지 않고 그 돈으로 버틸 수 있을텐데, 하는 생각을 했어요. 요즘엔 회사며 일이며 모두 지긋지긋해요. 죄다 놓아버리고 털어버리고 싶어요.

무해한모리군 2014-05-12 21:03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남편은 아이에게 자주 '너는 외국가서 살아라'고 말해요. 그럴때마다 저는 크게 화를 내죠... 외국에 나가서 살고싶으면 니가 그렇게 해야지 아이에게 자신의 희망을 강요하지말라고. 넌 아직 죽지도 늙지도 않았으니까 하고 싶은게 있으면 니가 하라고. 우린 너무 젊으니까요 다락방님 ^^*

다락방 2014-05-13 09:31   좋아요 0 | URL
전 제가 나이 들어가고 있다는 사실 때문에 초조해요. 여유롭게 이 나이드는 것을 받아들여지질 않네요. 흑흑.
휘모리님은 역시 똑똑하고 멋진 분이신 것 같아요. 휘모리님 아이가 휘모리님처럼 멋지고 똑똑한 어른으로 성장할 수 있으면 좋겠어요. 우리가 물려주게 될 세상이 아직은 엿같지만, 휘모리님 아이가 자랐을 때는 지금보다 조금 더 나은 세상이 되어 있었으면 좋겠어요. ㅠㅠ

자작나무 2014-05-13 08:20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과연...
젊은 분들 부럽다는...

다락방 2014-05-13 09:31   좋아요 0 | URL
그러게나 말입니다. 젊음은 젊은 그 자체로 부러워요. ㅠㅠ

자작나무 2014-05-14 11:00   좋아요 0 | URL
락방씨두 젊잔아요 아직 삼십댄데 뭘...

다락방 2014-05-14 11:28   좋아요 0 | URL
전 더이상 젊지 않아요 ㅠㅠ
 
초초난난 - 남녀가 정겹게 속삭이는 모습
오가와 이토 지음, 이영미 옮김 / 21세기북스 / 2011년 3월
평점 :
구판절판


이 책이 영화로 만들어지면 아주 좋을것 같다. 시오리가 기모노를 바꿔 입을때, 밤에 꽃구경을 갈때, 사랑하는 남자와 맛있는 걸 함께 먹을때, 마도카가 과자를 사올때, 그 장면장면을 영상으로 확인하는 건 분명 특별한 재미를 줄텐데. 조용하고 아름다운 빛깔의 영화가 나올 수 있을텐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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당신들의 기독교 - 환상의 미래와 예수의 희망
김영민 지음 / 글항아리 / 2012년 12월
평점 :
절판


(짧은 리뷰를 쓰기에 앞서, 별점 없는 리뷰를 쓸 수 있었으면 좋겠다. 별점을 선택하지 않은 채 쓸 수 있기를 원한다는 말이다. 가끔은 별을 주는게 내 의도를 충분히 반영하지 못하는 듯하고, 몇 개를 줘야하는지 스스로 알 수 없을 때가 있기 때문에. 이 책 역시 마찬가지, 셋이나 넷을 주는게 의미가 있는지 없는지 도통 모르겠다.)


하나의 사건 혹은 하나의 장소가 사람들에게 얼마나 다양하게 다가갈 수 있는지를 알고 있다. 어릴때부터 교회에 다녔던 나는, 교회에 대해 좋은 추억도 물론 가지고 있지만, 전체적으로 봤을 때 뼈아프고 후회되는 기억들을 준 곳이기도 하다. 가능하다면 그 시절들을 지우개로 쓱싹쓱싹 지워내고 싶을만큼. 개중 어떤 기억은 기어코 눈물을 불러내기도 한다. 그토록 오랜 시간을 교회에 다녔지만, 그 오랜 시간을 다닌 그곳에 이제는 그야말로 악감정만 품고 있으니, 투자한 시간과 세월은-그것을 투자라 부르지 않을지언정- 얼마나 허망한가. 그렇게 나는 철저히 내 입장에서 교회에 대해 '안좋은' 생각과 감정들을 가지고 있었고, 그것의 뿌리는 꽤 단단했다. 게다가 이런 내 생각에 부채질하듯 곳곳에 꼴보기 싫은 기독교인들이 넘쳤다. 지하철을 돌아다니며 큰소리로 (그들만의)복음을 전파하는 사람도, 길 한복판에서 큰 소리로 예수천국 불신지옥을 외치는 사람도, 한없이 불쾌하고 한심했다. 다 싫었다, 다. 모조리 다.


그러다 몇해전, 시사인에서 '임영신'의 인터뷰를 읽으며 혼란스러웠다. 그녀는 교회에서 자신의 인생이 긍정적으로 바뀔 수 있었다고, 더 나은 사람이 되도록 도와줬다고 말했다. 내게는 짜증나는 장소이기만 한 곳이, 누군가에게는 인생에 영향을 미칠 정도로 좋은 장소일 수 있다는 것이, 당연한 사실임에도 불구하고, 충격적이었다. 게다가 나랑 비슷한 생각을 가지고 있던 나의 친구 역시, 자신은 기독교에 대해 부정적이지만, 세상 누구도 도와주지 않던 자신의 어머니를 도와준 곳이 교회였기 때문에 그런 교회를 어머니 앞에서 부정할 수 없다고 했을 때도 역시, 충격이었다. 앞서 말했지만, 당연한 사실이다. 내게 나쁜 곳이 다른 사람에게도 나쁜 곳일 리가 없다. 당연한 사실인데 이렇듯 마주할 때마다 충격에 휩싸인다. 그리고 마주하고나니 인정하는 게 처음 보다는 쉬워진다. 



김영민의 《당신들의 기독교》는 기독교인 이거나 기독교인 이었던 10人에 대한 이야기이다. 거기엔 기독교에 대해 긍정적으로 생각할 수 있게 해준 인물도 있지만, 대부분은 예수의 뜻에 반하는, 기독교 자체를 지긋지긋하게 만들어버리는 인물들이다. 교회에서 생활한 시간이 길었던 저자인만큼, 그의 이야기들은 아주 생생하게 읽힌다. 먼 곳에서 본 게 아니라 가까이에서 보고 느끼고 생각한 것들을 적은 것이니, 이 얼마나 신뢰할만한가. 나는 A 부터 J 까지에 이르는 기독교인들의 이야기를 신나게 읽어간다, 


라고 쓰고싶지만 그리 신나게 읽지 못했다는 것이 이 책의 단점이다. 김영민의 글은 언젠가 신문에서 칼럼으로 읽은 적이 있었는데, 그의 명성을 익히 들었던 바, 오호라 나도 이 사람의 글을 읽어볼까, 하고 작정하고 읽었던 터였다. 그러나 그의 문장들이 내게로 와 바로바로 꽂히지를 못했다. 그의 문장에 숨은 뜻이 문제가 아니라, 그 유려하고 아름다운 문장들 자체가 내게로 오기까지 시간이 걸렸던 것. 이 책, 《당신들의 기독교》에서도 마찬가지이다. 그는 아는 단어가 많고, 이렇게 말하는 게 건방지게 들릴테지만 지식 역시 풍부하고, 아름다운 문장을 쓴다. 그러나 쉽.지.않.다. 


실재 살아 숨쉬는 우리 주변의 기독교인에 대한 이야기이니만큼, 더 쉬운 글들로 써줬다면 더 재미있게 읽을 수 있었을텐데, 하는 아쉬움이 아주 많이 든다. 그가 선택한 단어들 각각이 어렵거나 젠 체하는 단어는 결코 아니다. 다만, 내가 그 단어들에 무지하기 때문이었고, 내가 알지 못하는 단어들로 이루어진 아름다운 문장을 읽는 것이 내게는 쉽지 않았다는 말이다. 차곡차곡, 내가 알지 못하는 단어들을 표시해두었다. 언제고 찾아보아야지 하면서.



언거번거함, 톺아보다, 부박하다, 밑절미, 듣그럽다, 희떱게, 뼛성, 포실하다, 엉너릿손, 맨망한



이보다 더 많았지만, 이 단어들에 표시를 해두면서, 내가 이 단어들을 평소에 쓰는 단어였고 또한 정확한 뜻을 알고 있었다면, 이 책의 문장을, 본문을 '대략적으로' 읽어내는 게 아니라 명징하게 읽어낼 수 있지 않았을까, 하는 생각이 드는 것이다. 물론, 저 단어들을 알지 못한다고 해서 이 책의 내용을 이해할 수 없는 건 아니다. 다만, 저 단어들과 아름다운 문장들이 나로하여금 이 책을 '분명하게' 읽어내게 하는데는 방해가 되었다는거다. 욕심이겠지만, 교회에 뿌리깊이 박힌 자본주의 같은 것들에 대해 이야기할 때, 조금 더 날카로웠다면 조금 더 신랄했다면 좋았겠다는 거다. 양미간에 주름을 빡-잡고 집중해서 읽었지만, 이 얇은 책의 분량이 쉬이 읽히질 않아 아쉽기만하다. 한 번 더 읽는다면 더 잘 와닿을지 알 수 없으나, 한 번 더 읽지는 않을 것 같다.



밑줄긋기 한 문장들을 다시 한번 훑어보니 처음보다 더 잘 읽히기는 한다. 가만 들여다보니 그건 알지 못하는 단어와 아름다운 문장 때문에 이해하지 못했던건 아닌것 같다. 그렇다면 어디로부터 온것일까. 무엇이 나를 이 책과 딱 맞아떨어지게 하지 못한걸까. 분명하고 명징하게 이 책 안으로 들어가지 못한 건 사실이지만, 그러나 이 책을 읽었던 것은 잘한 일이라는 생각이 든다. 읽기를 잘했다는 생각이 든다. 밖에서 짚어내는 그들의 문제점을, 안에서도 돌아볼 수 있다면 좋겠다는 생각이 든다. 물론 이건, 비단 기독교에만 해당하는 건 아니다.




책을 쓰지도 않았고, 그래서 글쓰기 행위에 옮아붙곤 하는 사후적 보충과 과장의 삶 대신 일회적 상호작용의 완결성에 힘을 다했으며, 무슨 번듯한 사회적 지위를 지니지도 않았던 우리의 스승 예수는 때론 당대의 관습과 상식을 무시하고 스스로 스캔들의 대상이 되기도하면서 민중의 현장을 오갔다. 그러나 그렇게, 민중과 대화적 긴장관계를 유지하면서 이룬 그 놀라운 각성과 변화의 현장은 까맣게 잊힌 채로, 기억과 전승은 체계가 되고 말았다. 그 추종자와 해석가들이 건설하고 건사해온 종교적 체계는 '정신이 없는 (관료적) 전문가' 로 들끓어 기능적으로 각박한 채 종종 턱없이 무능하다.– 120-121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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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4-03-26 18:36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14-03-27 14:09   URL
비밀 댓글입니다.

아무개 2014-03-27 08:11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인용문만 봐도 읽어내기 쉬운 문장들은 아닐꺼 같네요.
사회고발(?) 같은 종류의 책들은 풍부한 문학적 표현보다는
명확하고 간략한 문장들이 저는 더 좋던데....

아...그래서 <밤이 선생이다>가 별로 였었었엇나봐요... =..=

다락방 2014-03-27 14:11   좋아요 0 | URL
한 문장이 너무 길어서 읽기 힘든걸까요? 가만 들여다보면 딱히 어려운 말이 아닌 것 같은데도 이상하게 읽기 어렵네요. 이 리뷰 써놓고 다른 분들의 리뷰를 보노라니 읽기 어려웠다는 감상이 제법 많네요. 흐음.

모모 2014-03-27 11:42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아.. 제가 다니는 회사는 사모가 경리를 봅니다. 매일 출근해서는 목사설교방송가 찬송가를 크게 틀어놓고 있습니다.
목사가 울부짖고 찬송가가 울려퍼지는 상황에서 저는 도저히 사모와 같이 은혜를 받을수가 없습니다.
아니 저렇게 이웃을 사랑하고 자기를 희생하라고 하는 설교를 들으면서 왜 같은 사무실을 쓰는 여직원에 대한 배려는 못하는 것인가? 아니지 직원은 배려의 대상이 아닌거지? 하고 분노와 절망이 교차하여 힘듭니다. 자기 스스로도 소리가 크다는걸 알면서도 줄이지 않는것도 저의 입장에서는 서운을 넘어 자괴감까지 빠집니다.
회사를 그만둘수 없는 저의 상황이 원망스럽고 하루 하루 회사오는게 지옥에 가는것 같습니다.
목사설교소리, 찬송가소리, 그찬송가를 따라 부르는 소리 듣기싫다고 말할수 없는 이 치사스러움도 절망스럽구요.
무교인 저는 배려없는 사모때문에 기독교가 싫어지고 있습니다.

미안해요.. 처음 다는 댓글이 이런거네요..

다락방 2014-03-27 14:15   좋아요 0 | URL
아니, 찬송가라뇨...설교방송이라뇨.....아, 너무합니다. 대체 사장님은 왜 경리를 사모님에게 맡겼답니까?

저는 중학교때 윤리선생님이 수업 시작전에 찬송가 부르게 시켰어요. 자기가 악보도 크게 써와서 칠판에 붙이고는 다같이 부르게 했죠. 그런 뒤에 수업을 시작했어요. 저희 학교는 기독교 학교도 아니었는데 말이지요. 그리고 주말에 자신이 다니는 교회에 가서 예배에 참석하고 주보를 받아와 자기한테 보여주면 오천원을 주겠다고 하더군요. 진짜 토할 것 같은 윤리교사였어요. 그러면서 다른 선생님들은 룸싸롱 다닌다고 막 욕했거든요. 룸싸롱 다니는 건 욕할만한 행동이고, 자신의 종교를 강제하는 건 욕 먹을 짓이 아니라고 생각했는가봐요. 그것도 자기보다 한참 어리고 자기한테 배울 수밖에 없는 아이들한테 말이죠. 대체 왜 그토록 자신의 종교를 강제할까요? 이 책의 111쪽에는 이런 구절이 나와요.


그렇지만 진리보다 '진리를 말하지 않도록 조심'(니체)하고 복음보다 복음에 대한 아이러니를 말하는 자가 인문학도일진대, 자신이 지닌 믿음의 내용이 그 자체로-그러니까 현실적 전유(realistic appropriation)의 복합적 배려나 고민조차 없이-'복된 소리[福音]'라고 확신하고, 이를 그 누구에게든 애써 선전하려는 이는 대체 어떤 종류의 사람일까? 자신의 것에 그처럼 당당하고, 심지어 타인들의 가책을 유발시키려는 태도 속에서 한껏 오연하려면 대체 어떤 사람이어야 하는 것일까? 자신과 관계되는 것이라면 무릇, 자신의 경력이든 실력이든 혹은 자신의 자식이든 재식(才識)이든 조심스럽고 겸허하게 소개하고 발보이게 드러내지 않는 게 한발 앞선 자의 인지상도(人之常道)일 것인데, 제 종교가 제일이라고 천지가 시끄럽도록 외치는 이 사람의 정체는 과연 무엇일까?


그나저나 반갑습니다. 처음 다는 댓글이야 뭐, 아무려면 어떻습니까.
:)

버벌 2014-03-27 18:55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윗분 댓글 보고 중학교때 일이 생각나서요. 전 미션스쿨을 나왔습니다. 중학교, 고등학교 모두. 절대 자의가 아닙니다. 뺑뼁이에요.
미션스쿨이니 당연히 예배도 보고, 종교 수업도 있습니다. 중학교 2학년때로 기억을 합니다. 종교 수업을 들어오신 학교 목사님이 그날 날짜에 맞춰 번호를 쭈르륵 세워서 회개합니다 말을 하지 않으면 수업을 끝내지 않는다고 했어요. ... 제일 마지막은 저였어요. 이걸 대답해야하는건가? 난 기독교도 아닌데. 그냥 아무것도 없이 회개 한다고 하면 그게 더 나쁜거 아닌가? 아니 목사님이 말씀하시는 것은 나의 이 모든 생각을 회개하라고 하시는건가? 대답을 바로 못했어요 전. 목사님은 자꾸 물어보고, 전 쳐다보기만 하고, 종은 울리고, 친구들은 웅성거리고, 짝꿍은 내 팔을 잡고 흔들고...... 결국엔 대답을 하고야 말았어요. 친구들이 화장실에 가야한다고 아우성을 쳤거든요. .... 저는 처음 다는 댓글이 아니에요. 응?? ㅡㅡ??

다락방 2014-03-28 10:18   좋아요 0 | URL
하아- 싫다. 싫으네요 버벌님 ㅠㅠ
설사 버벌님과 학생들 모두가 기독교이기 때문에 자의로 그 학교를 선택했다 해도, '회개' 라는걸 그렇게 공개적으로, 의무적으로 해야하는 걸까요? 그렇게 시켜야하는 걸까요? 늘 생각하는 거지만, 지나치게 믿고 지나치게 빠져버리면 어느순간 이성은 달아나버리는 것 같아요. 자기 생각안에 갇혀버리고 마는거죠. 끔찍하네요. ㅠㅠ

2014-03-28 14:41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14-03-28 14:45   URL
비밀 댓글입니다.
 
아르헨티나의 옷수선집
마리아 세실리아 바르베타 지음, 강명순 옮김 / 문학동네 / 2013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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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성의 순결과 정절은 대체 언제부터 주장되었던 것일까. 여성도 똑같이 욕망을 느낄 수 있다는 것을 왜 인정하지 못했던걸까. 대체 왜, 여자들이 결혼전에 순결을 잃으면 마치 인생이 끝나는 것처럼 모두들 겁을 집어먹었던 걸까. 이 책의 주인공, '마리아나'는 사랑에 빠졌지만, 사랑에 빠진 상대가 자신에게 손을 댈 때마다 열정에 헐떡거리지만, 마리아나의 엄마가 '말로써' 그녀가 그 길로 더는 나아가지 못하게 수시로 막아댄다. 그랬다간 큰일난다고. 오랜기간 사귀면서 사랑하는 남자와 1박2일의 여행조차 허락받지 못하는 마리아나는, 그렇다면 그 남자와 헤어지게 됐을 때 어떤 생각을 하여야 할까. 아, 그 남자에게 몸을 주지 않았으니 정말 다행이지 뭐야, 라고 안도해야 할까. 아니면 앞으로 내 인생에 사랑 혹은 남자는 다시 없을지도 모르는데 그 남자와 할 수 있는 모든건 다 했어야 했어! 라고 후회와 좌절을 해야할까. 그렇기에 그녀는 자신과는 정반대의 성격을 가진, 자유분방하게 성을 즐기는 듯한 여자 '아날리아'를 만났을 때, 급속히 친해지고 격렬히 증오하게 된다. 


책 뒷표지를 보면 이 책에 대한 찬사가 가득하고, 엄청나게 아름다운 예술작품이라는데, 사실 나는 이 책에서 '예술'을 느끼기는 했지만 그것이 내게 큰 감흥을 준 것은 아니다. 게다가 마지막장까지 읽고나면 이 작품을 어떻게 이해해야 할지를 잘 모르겠다. 마지막장에 다가가면서 시작되는 내용의 난해함.


별 넷. 별 넷이라는건 참으로 애매하다. 나는 아주아주 훌륭하다고 생각되는 건 아니지만 사랑할 수밖에 없기 때문에 별 넷을 주기도 하지만, 지금처럼 사실 사랑할 것 같지 않지만 뭐랄까, 어떤 성의나 노력 때문에 별 넷은 줘야할 것 같은 경우가 생기기도 하는거다. 


책을 몇 장 읽다가 별 생각없이 이 책의 가격을 보았는데 정가가 15,500원이다. 어, 비슷한 책들에 비해 가격이 좀 세군, 하는 생각을 했는데, 몇 장 넘기다가 왜 센 건지 알게됐다. 이 책의 구성은 '조너선 사프런 포어'를 생각나게 한다. 나는 포어의 책의 그 구성에 열광한 게 아니라 포어 책의 그 내용에 열광했고, 그래서 이 책의 '실험적인' 구성이 내게 어떤 매력이나 장점으로 다가오진 않았다. 자, 그 예술적인 구성을 살펴보겠다. 








위는 본문의 구성인데 이렇듯 사진(그림)이 본문 중간에 작게 삽입되어 있다거나 혹은 독특한 글쓰기로 일반 소설과는 좀 다른 본문 디자인을 보여준다. 게다가 각 꼭지가 끝날때마다 '견본' 이란 이름을 붙여 여러가지 그림 혹은 약도 등이 삽입된다. 아래와 같다.






이상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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dreamout 2014-03-12 19:53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ㅎㅎㅎ
"이상이다." 이 표현 저도 언젠가 써먹고 싶어지네요. 리뷰에서는 사용해 본 기억이 없는데.. 아주 적절한 걸요. ^^

다락방 2014-03-13 09:29   좋아요 0 | URL
고심해서 쓴 것 같긴한데 그렇다고 제가 좋아할 수는 없으니, 이걸 참 어쩌나 싶더라고요. 제목 보고 제가 엄청 좋아할 줄 알았는데요. ㅎㅎㅎ