총 균 쇠
재레드 다이아몬드 지음, 김진준 옮김 / 문학사상사 / 1998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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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이아몬드(굉장한 이름이구만!)박사가 얄리라는 뉴기니아인을 만난건 1972년 뉴기니 해변가였다고 한다. 얄리는 이 백인과 이야기하다보니 좀 만만해 보였나보다.

'너나 나나 별다를게 없는데 너네는 비행기 타고 옷 입고 라이터불 붙이고 살고, 우리는 왜 발가벗고 얼마전까정 타제석기로 사람 잡아먹고 살았냐?'

'글쎄당? 어떤놈들은 우리가 너네보다 유전자가 좋다고도하고, 어떤 놈들은 기후가 우리가 더 척박해서 먹고 살기 힘들어 우리가 더 나아졌다고도 하더라(히포크라테스가 그랬데네)'

생리학교수이면서 조류학, 생물지리학자이기도 한 그는 필드워커다. 실험실에서 물론 세포막 연구로도 유명한 사람이나 새소리따라 다니길 더 좋아하는 그는 멸종된 것으로 알려졌던 정원사새를 발견한 것으로도 유명하다.(과학의 열정,루이스 월퍼트 외,다빈치)

그는 문명이 경쟁의 결과임을 보여준다. 그는 인류문명의 발달과 역사 급류의 큰 줄거리로 환경의 차이와 이로 인한 작물화과 가축화를 든다. 가축화는 세균에 의한 질병을 부르고, 이는 전염병과 이에 대한 면역력을 유라시아에 가져다 주었다. 곡물화와 인구밀집은 서로간의 치열한 경쟁과 무기의 발달을 일으키고, 살상능력을 극대화시켰다. 이렇게 점차 심화된 차이가 결국 '아타우알파 생포사건'과 같이 소수의 무장된 유럽인에 의한 다수의 남아메리카인의 굴복과 죽음으로 나타났다는 것이다.

페르낭 브로델처럼 전문적인 역사학자가 인구변동와 식량, 사치 음료와 의복, 유행으로 15-18세기의 역사의 흐름을 미시적인 곳에서부터 짚어낸 것(물질문명과 자본주의 I,까치글방)과는 대조적으로 선사와 문명발생에서 거시적으로 본 생물학자로서의 미덕이 돋보이는 책이다.

문명주변부, 100 여년전 한차례 [총 균 쇠]의 따끔한 맛을 본 우리로는 [금융,총,정보]의 현대 경쟁 아이템의 주변부로 밀려나지 않아야만 또다시 문명의 희생자가 되는 일을 피할 수 있을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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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리아스 범우비평판세계문학선 5
호메로스 지음, 유영 옮김 / 범우사 / 1998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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너무도 유명한 줄거리다. 한 여자가 원인이었다. 헬레네... 무척 예뻤단다. 파리스는 그녀를 원했고 그의 나라인 트로이로 그녀를 데려온다. 하지만 그녀는 유부녀, 그 남편 [신과 같은 메넬라오스]는 수많은 경쟁자를 물리치고 차지한 아르테미스 같은 아내를 뺐길 수도 없는 노릇. 친구들과 떼거지로 몰려가 지마누라 내놓으라고 싸웠다는 얘기다. 이것이 트로이전쟁이고 일리아드는 그 중에서도 전쟁 10년째의 어느 며칠동안의 에피소드에 해당한다. 트로이전쟁중 아가멤논에게 사소한 일로 삐쳐 전쟁터에서 물러났던 아킬레우스가 자기 친구가 죽었다는 소식을 듣고 열받아 트로이의 헥토르와 맞짱떠서 죽였더라는 줄거리다. 이 간단한 아킬레우스의 에피소드가 책 한권의 분량인 것이다.

대단한 호머의 입씸이 아닐 수 없다. 다들 고전이라 칭찬하는 명작임에 틀림없다. 이 내용이 플라톤의 여러 책에도 나오고, 호머 자신의 [오딧세이아]에도 나오고, 베르질리우스의 [아이네이드]에도 나오니 고전을 시작한다면 가장 먼저 손에 들어야할 책임에 틀림없다. 그래서 이 책을 [인내의 보답이 되는 책]이라고 했나보다. 수많은 관객앞에 서사시로 읽혔을 3000년전 그리스 독법은 그래서 독자의 인내 또한 요구하는 책이다. 인내의 완독을 권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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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이디푸스왕 범우고전선 2
소포클레스 지음 / 범우사 / 1999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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범우사의 이 책은 소포클레스의 비극 세편이 묶어져 잇다. '오이디푸스왕','콜로노스의 오이디푸스', '안티고네'. 이른바 오이디푸스 3부작에 해당하는 비극이다.

운명의 목소리는 이사람에게 너무도 가혹했다. 우발적으로 길에서 마주친 어릴적 헤어진 자기 아버지를 죽이고, 자기 어머니인지도 모르고, 어머니를 아내로 아들,딸 낳고, [내 아버지 죽인 자를 가만 안둔다]고  맹세하다 그게 자신인걸 알게 되는 운명...처음엔 그 고통에 눈뽑는 정도로 괴롬을 덜어보려한다. 하지만, 결국 죽음으로 이 비극적 [운명]의 짐을 벗는다. 죽음 후, 자식도 그 시체를 장사지낼 수 없는 철저한 비극이다. 의도적으로 나쁜짓 저지른자들은 잘도 이를 숨기고 호의호식하는데, 운명의 덫에 걸린 이 남자는 결국 자기 황당한 처지를 견디지 못하고 죽음으로 치닫는다. '남의 불행'이라고 주위에선 욕만 하지 동정심이라곤 없다.

비극의 전형, 소포클레스의 이름을 후대에 알린 최고의 명작답다는 생각이 든다. 아리스토텔레스는 그의 시학에서 자주 이 책을 인용하며 규범으로 삼는다. 발견과 반전. 그 옛날부터도 인간에게 [남의 불행]은 항상 카타르시스와 자기 현실을 덜 고통스럽게 하는 원천이었나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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플라톤의 네 대화 편 - 에우티프론, 소크라테스의 변론, 크리톤, 파이돈 헬라스 고전 출판 기획 시리즈 3
플라톤 지음, 박종현 엮어 옮김 / 서광사 / 2003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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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크라테스의 죄목은 신을 모독하고(불경건죄) 젊은이를 타락시켜 버르장머리 없게 만든 것이었다. 기소당한 그는 에우티프론을 만나 '너 [경건함]을 잘 안다는데 한번 들어보자'고 한다. 의기양양 에우티프론. '그거, 신들이 좋아하는거.' 이런 단순한 대답을 내밀었다가 소크라테스식 문답에 걸려 박살이 난다. (에우티프론)

결국 기소자들은 열받아서,배심원들은 소크라테스가 꼬셔서 사형을 선고하고 만다. 얼마든지 선처를 호소할 수도 판결을 유리하게 끌고 갈 수 았음에도 그는  젊은이들에게 가르친 문답법이 아테네인의 비위를 상하게 하고, 아무 의문없이 받아들여오던 종교적 관념도 도전했음을 시인한 셈이 됐다. 그는 그것이 자신의 모습이고 그걸 포기할순 없다고 한다. (소크라테스의 변론)

원칙(logos)을 존재의 또한 영혼의 이유로 삼기에 죽음앞에서 굴할 순 없다는거다. 원칙과 여태껏 가르쳐온 자기 철학을 죽음으로 사수한 사람이다. 그가 꼭 죽어야 했나 의문스럽기도 하다. 혹 살아남아서 더 많은 사람을 가르쳤으면 그리스가 더 오래 번영하고 로마보다 더 큰 강국이 될 기회가 있지 않았을까. 하지만 진리는 그런 공리적인 건 아닌것같다. 그가 자신의 로고스를 굽히고 살아남았다면, 그의 철학은 소피스트의 주장쯤인 궤변이 되고 말았을지 모른다.

소크라테스는 그의 죽음으로, 神託대로 아테네사람을 괴롭히는 등에의 역할을 죽어서까지 하게 됐다. 얼마나 오랫동안 이 죽음으로 아테네인들은 비웃음거리가 되었는가. 그의 죽음은 아테네에 대한 유죄선고가 되었다. 때로 죽음이 살아남은 자의 잘못을 깨닫게 할때가 있다. 하지만 요즘은 목숨이 귀하지 않은 때문인지 너무 쉽게 죽고, 너무 쉽게 잊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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플라톤의 국가·정체(政體) - 개정 증보판 헬라스 고전 출판 기획 시리즈 1
플라톤 지음, 박종현 옮김 / 서광사 / 2005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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플라톤의 [국가]를 드디어 읽게 됐다. 2차 3차 문서로만 보아오던 책을 직접 읽게 되니 뿌듯함이 먼저 든다. 그렇게 오랫동안 플라톤 어쩌구 저쩌구하면서도 늘상 찜찜하던 것이 이제야 개운한 느낌이다. 고전읽기의 즐거움중 하나가 이런 것인가보다. 남이 이런 저런 평을 하던 글을 읽고 직접 느끼고 생각해 볼 수 있는 기회...

올바름이란 무엇인가에 대한 토론으로 이 책은 시작한다. 비교적 다른 책에 비해 먼저 써진 1권에는 소크라테스적인 분위기(변론과 무지에 대한 깨달음)가 강하다. 올바름.그건 그냥 돈계산 정확하고 속이지 않는 건 아니라는 것, 그렇다고 강자의 논리도 아니라는 것이다. 그러다 본격적으로 이야기는 그렇다면 [적합한 정치체제]는 무엇이냐로 발전하고 우리가 익히 들어아는 시교육과 철학치자.동굴비유를 통한 이데아적 이상으로의 접근으로서 정치의 개념이 등장한다. 대화속에서 이야기와 논리는 발전해가고 머리에 떠올르는 질문들은 책속의 등장인물들이 주고받으며 읽는 사람을 끌고간다.

이 책을 보며 느끼는 분위기는 플라톤 자신의 올바른 정치체제에 대한 안타까움이다. 사람이 올바로 살 수 있도록 하는 국가가 있을텐데...어려운 시절을 살던 플라톤으로서 그의 출신배경,정치적 경험, 소크라테스의 추억이 얽힌 그림이 아닐 수 없다. 그는 욕심없는 사람이 올바른 방향(이게 과연 뭐냐?)으로 백성들이 행복하도록 다스려주길 원했다. [소크라테스 같은 이가 다스리는 나라라면 될텐데...]라고나 할까.

우리는 새롭게 政體에 대한 질문을 쏟아내는 역사 한가운데 살고 있다.과연 끝까지 통일로 간다는 명제는? 노조의 경영참여는? 병역의 의무는? 더 나아가서 어떤이는 참여 민주주의는 올바른가라고 묻기도 한다. 옛사람 플라톤은 대중적 민주주의를 신뢰치 않았다. 미국도 귀족적 민주주의는 아닌가? 과연 무엇이 옳은 政體인가? 심지어 민주운동과 환경운동, 노동운동과 복지정책의 당위성이 한번도 의문시 되지 않았던 우리에게, 이것조차 의문의 대상이 되고 있는 시대이다. 진정한 발전은 올바름에 대한 질문과 다시 한번 공유된 확신 속에서만 가능하리라. 많은 이들이 확신을 바라되 얻지 못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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