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햄릿’ 번역은 최재서 작품이 만점…번역본 573종 평가
셰익스피어의 ‘햄릿’, 제임스 조이스의 ‘젊은 예술가의 초상’, 스콧 피츠제럴드의 ‘위대한 개츠비’, J D 샐린저의 ‘호밀밭의 파수꾼’….

영미문학의 고전 36편에 대한 국내번역본의 옥석이 가려졌다. 국내 영어영문학자들의 학술단체인 ‘영미문학연구회’는 광복 이후 2003년 7월까지 발간된 번역본 573종을 평가해(별점 3개 만점) 이 중 별점 2개 반 이상이 나온 작품을 ‘좋은 번역서’로 최근 추천했다.

학술진흥재단의 지원을 받은 이번 연구사업에는 김영희 한국과학기술원(KAIST) 교수 등 ‘영미문학연구회’ 소속 44명의 연구자들이 참여했다. 평가대상이 된 작품 36편은 셰익스피어의 4대 비극인 ‘햄릿’ ‘리어왕’ ‘맥베스’ ‘오셀로’ 등 영문학계에서 고전으로 널리 인정받는 작품이다. 평가 기준은 원문의 의미를 충실히 전했는가에 대한 ‘충실성’과 우리말로 읽기 쉬운가 하는 ‘가독성’ 등이었다.

별 셋 만점을 받은 작품은 모두 5편. 최재서 역 ‘햄”’(연희춘추사), 이상옥 역 ‘젊은 예술가의 초상’(민음사/박영사), 김진만 역 제프리 초서의 ‘캔터베리 이야기’(정음사), 김영희 역 리처드 라이트의 ‘토박이’(한길사/창작과비평사), 김진경 역 에드거 앨런 포의 ‘도둑맞은 편지’(문학과지성사)다.

별점 두개 반의 추천작은 23편이었다. 모두 10종의 추천작이 나온 ‘햄릿’ 등 셰익스피어의 4대 비극은 추천이 많았다. 그러나 ‘로빈슨 크루소’ ‘오만과 편견’ ‘위대한 유산’ ‘일곱 박공의 집’ ‘백경’ ‘허클베리 핀의 모험’ ‘무기여 잘 있거라’ ‘무지개’ ‘여인의 초상’ ‘음향과 분노’ ‘아메리카의 비극’ ‘플로스강의 물방앗간’ ‘호밀밭의 파수꾼’ 등 13편은 대중적으로 널리 읽히는 고전임에도 불구하고 단 한편의 추천작도 내지 못했다.

이번 평가 결과 드러난 문제점은 다른 국내 번역본을 표절한 작품이 전체 573종의 54%에 이르는 310종에 이른다는 것. 특히 소설(30편)의 경우 추천 가능한 번역본이 6%에 불과할 정도로 번역의 충실성이 떨어지는 것으로 조사됐다.

연구사업 간사인 충남대 오길영 교수는 “남의 번역을 그대로 표절한 작품이 많아 충격적이었다”고 밝힌 뒤 “이번 연구를 영미문학 전체 번역에 대한 평가로 보기보다는 역대 고전 번역본 중 우수작을 가려내는 작업으로 이해해 달라”고 말했다.

권재현기자

영미고전문학 번역평가에 의한 주요 추천작
작품 역자 출판사
귀향 정병조 을유문화사(1960,1988)
노인과 바다 황동규 샘터사(1975)
더블린 사람들 김정환·성은애 창작과비평사(1997)
등대로 김종운 삼성출판사(1976,1979)
박희진 솔(1996, 2001)
분노의 포도 김병철 삼성출판사(1975,1992)
노희엽 학원출판공사(1983,1999)
실낙원 조신권 삼성출판사(1976,1985)
최창호 박영사(전권:1978,1982, 후권:1980)
아들과 연인
정상준 민음사(2002)
암흑의 핵심 이상옥 민음사(1998)
올리버 트위스트 윤혜준 창작과비평사(1996)
위대한 개츠비 김욱동 민음사(2003)
젊은 예술가의 초상 이상옥 민음사(2001, 2002),박영사(1976)
김종건 고려대학교출판부,한림출판사,학원사,범우사
홍덕선 문학과 지성사(1997, 2002)
제인 에어 유종호 동화출판공사(1970),동화출판사(1973)
주홍글씨 최재서 을유문화사(1953,1958)
이장환 범우사, 양문사, 서문당
캔터베리 이야기 김진만 정음사(1963)
이동일·이동춘 한울(2001)
테스 김보원 서울대학교출판부(2001, 2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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카를 2004-02-22 19:19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얼마전 ExLibris께서도 한겨레에서 올리신 적이 있는데 더 자세한 것 같아서...

비로그인 2004-02-22 19:39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음..영미 문학을 선택할 땐 대부분 메이저 출판사판을 자연스레 골라 읽어 왔는데, 아니었군요.... 참고 잘 하고 갑니다! ^^

카를 2004-02-22 20:16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근데 저 목록 중 현재 구할 수 있는 책은 민음사와 창비 정도군요

stella.K 2004-02-22 21:19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우리나라는 그게 문제라니까요. 독자들이 잘 안 사 본다 싶으면 더 이상 찍지 않아 금방 절판되는 것. 그 사정이야 이해 못할 것은 아니지만, 정말 갖기 원하고, 필요한 사람은 난감해지곤하죠.
 

한국일보 2월18일

아주 짜증나는 형의 인간
[이순원의 길 위의 이야기]

아침을 지배하는 사람이 하루를 지배하고, 하루를 지배하는 사람이 인생을 지배한다고? 성공한 사람들은 대개 아침에 깨어 있었던 사람들이었으며, 성공적인 삶, 행복한 삶을 위한 아침형 인간으로의 변화를 제안하는 책이라고?
웃기지 마라. 그런 쪽으로의 아름다운 경구는 중고등학교 시절 듣고 또 들었던 ‘아침에 일찍 일어난 새가 더 많은 벌레를 잡는다’는 금언 하나만으로도 족하다.

결론은 아침에 일찍 일어나 하루를 부지런하게 보내라는 얘기인데, 예전의 삶에 비해 우리는 이미 지나치다 싶을 만큼, 아니 더 이상 더 부지런할 수 없다 싶을 만큼 그야말로 부지런한 삶을 살고 있지 않은가.

정말 인간다운 삶, 여유로운 삶은 아침이 각박하지 않다. 삶이 각박할수록 당장 아침이 각박하며, 지배적 위치에 있는 사람이 아랫사람을 혹독하게 대하는 방식의 첫 징조가 부지런함을 내세워 그의 아침을 각박하게 만드는 것이다.

부지런함은 어느 시대에나 따뜻한 격려로 권면되어야 할 사항이지 저처럼 이데올로기화되면 그것 자체로 정신적 압박이며 이 시대의 또 다른 ‘천삽뜨고 허리펴기 운동’에 다름아닌 것이다. 말로만 그렇지 실제로는 밤에 깨어나 그 책을 썼을 인간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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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tella.K 2004-02-19 18:23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맞습니다! 누구든 자기 바이오 리듬에 맞는 시간을 알차게 쓰는 게 좋지 않을까요?

도서관여행자 2004-02-20 09:18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절대 동감하는 리뷰로군요.
늦게 일어나는 벌레가 아침형 새들한테 안 잡혀 먹는 법입니닷!
 

B.C.52 :로마인이 골족 정복.율리우스 시저의 승리.5세기 동안 골족은 로마 제국의 시민이 됨

AD 358-612: 침략의 시기. 프랑크족이 로만-골족을 정복함으로써 훗날 프랑스의 기틀 마련

613-1328 : 프랑스 단일 국가로 발돋움하던 시기.
메로빙거(511-741) 왕조와 샤를마뉴 대제의 카롤링거(751-987) 왕조,
그리고 카페(987년부터) 왕조들에게 훗날 왕조의 기틀이 마련됨.

1328-1589 : 발루아 왕조. 잔 다르크로 유명한 백년 전쟁이 발발.
                    프랑수아 1세와 앙리 3세 때 르네상스 시대 도래.

1571-1598 : 위그노 전쟁, 낭트칙령

1589-1789 : 부르봉 왕조. 앙리 4세(1610년 살해됨)가 종교 전쟁을 종결시킴.
                    루이 13세, 루이 14세에 이르러 절대 군주 절정의 시대.

1789-1804 : 프랑스 혁명에서 황제의 탄생에 이르기까지.

1789 : 민중들의 바스티유 감옥 탈환 및 인권 선언문 낭독.

1792 : 단일 연대의 공화국이 선포됨.

1793 : 루이 16세(1660-1715)에 이르러 절대 군주 절정의 시대.

1804-1848 : 제1제정 시대. 나폴레옹 1세가 자신이 황제에 오름을 선포. 새로운 영토 전쟁의 시대. 나폴레옹이 민법전 등을 편찬. 두 번이나 퇴위 강요를 받고 세인트 헬레나 섬으로 추방당함.

1815-1830 : 왕정복고에서 혁명에 이르기까지.

1815-1830: 부르봉 왕정 복고. (루이 18세와 샤를 10새)

1830-1848 : 루이 필립 1세가 왕위에 오름.

1848 : 새 혁명으로 프랑스의 군주제가 막을 내림.

1848-1852 : 제2공화정. 루이 나폴레옹 보나파르트(나폴레옹 1세의 조카)가 남성들만이 참가한 보통 선거에 의해 대통령으로 당선됨.

1852-1870 : 1851년 12월 21일 쿠데타로 제2제정 탄생. 루이 나폴레옹이 3세가 됨.

1870-1871 : 프랑스, 러시아 전쟁에서 프랑스가 패배. 제정이 무너지고 나폴레옹 3세가 영국에서 추방됨. 3월 18일부터 5월 20일까지 계속되었던 파리 코뮌(혁명 정부)이 진압됨.

1871-1940 : 1875년 제3공화정이 선포되고 이 기간 동안 두 차례에 걸친 세계 전쟁이 발발함(1914-1918, 1939-1945). 1936년에는 인민 전선, 2차 대전 중에는 프랑스 정부.

1946-1958 : 제4공화국. 불안정한 정국과 계속된 식민지 전쟁(알제리와 인토차이나).

1958 : 드골 장군이 다시 정권을 잡음. 새 헌법으로 제5공화국 출범.

1962 : 알제리 전쟁 종결. 대통령 직접 보통 선거 실시.

1968 : '68년 5월' 사건.

1969 : 드골의 하야. 조르주 퐁피두가 대통령으로 당선.

1974 : 조르주 퐁피두 사망. 발레리 지스카르 데스탱이 대통령으로 당선.

1981 : 프랑수아 미테랑이 대통령으로 당선. 1988년에 재당선됨.
           (14년 임기 동안 각각 2년씩의 동거 정부를 2번 거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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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프랑스의 종교개혁은 르페브르, 파렐 등의 인문주의자들로부터 시작되었다. 르페브르는 루터에 앞서 성서적 개혁사상을 품고 있었으나 루터의 개혁사상이 프랑스 국내에 유입된 이래 소르본대학 신학부를 중심으로 찬부 양론이 격렬하게 일었다. 그러나 1521년 4월 소르본측은 결국 루터가 이단임을 단정하고 이때부터 프로테스탄트에 대한 탄압이 시작되었다. 25년 파리 교외에서 있었던 르페브르를 중심으로 하는 그룹의 모임이 탄압 해산되자, 지도자들은 각지로 흩어져 이 가운데 파렐은 제네바에 가서 개혁운동을 일으켰다. 그의 개혁운동은 뒤에 칼뱅에게 계승되었는데, 이 칼뱅을 통해 세워진 제네바 교회가 프랑스의 프로테스탄트 교회를 지도하게 된다. 칼뱅은 처음에 에라스무스를 숭배하는 인문주의자였으나 루터의 개혁사상에 끌려 복음주의로 전환하였다.


    그는 36년 《그리스도교 강요(綱要)》를 출판함으로써 일약 복음주의의 지도자로 부상하였고, 탄압을 피해서 스위스의 제네바에 자주 들렀다가 파렐의 설득으로 개혁운동에 가담하게 되었다. 그러나 이 최초의 개혁운동은 복음적 신앙의 자유가 방종으로 오해되어, 개혁운동자들을 정치적·도덕적으로 민중을 속박하는 자들로 간주한 세력들의 반대에 부닥쳐 실패하였다.

    칼뱅은 한때 스트라스부르에 피신하여 그곳에서 프랑스인 난민교회의 목사로 일했으나 40년 초청을 받고 다시 제네바로 갔다. 이후 그는 죽을 때까지 제네바에 머물면서 제네바를 프로테스탄트의 일대 근거지가 되게 하였다. 칼뱅은 루터의 의인론(義認論:오직 믿음으로만 의로워진다는 주장)을 계승하였는데, 이 점에서는 두 사람 모두 복음주의의 기반에 서 있었다.
   

그러나 칼뱅은 구원을 받은 자는 하느님의 도구로서, 하느님의 영광을 빛내도록 적극적으로 활동하여야 할 것(실천주의)임을 강조한 점에서는 루터와 다른 특색을 지닌다. 이와 같은 신앙은 뒤에 퓨리터니즘(청교도주의)에서 현세의 직업에 충실함으로써 스스로 하느님의 예정을 확정하려 하는 독특한 직업윤리를 낳았다. 이같은 직업관은 근대 자본주의 성립에 중요한 구실을 하였다.

(두산세계대백과 사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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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tella.K 2004-02-04 13:27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카를님의 글을 보니 오래전 교회사 강의 시간이 생각나는군요. 그나마 제가 좋아하는 몇 개 안되는 과목중의 하나였는데. 카를님의 글을 서재에서 다시 뵙게되서 반갑네요!^^
 

기독교 사상. 1989년 1월호
맹용길(장신대 학장, 기독교 윤리)


들어가는 말

엘룰(Jacques Ellul)은 1912년 프랑스의 보르도에서 이탈리아계 아버지와 세르비아계(Serbian) 어머니 사이에 태어났다. 그의 이름은 히브리 달력에 있는 한 달(月)의 이름으로서 유대적 성격을 갖고 있다고 전해진다. 그의 집안은 처음에는 부자였다가 나중에 가난하게 되었지만 명예를 대단히 존중하였고 비난하지 않는 삶을 주장하였으며 교만하기까지 하였다고 전해진다. 그의 집안은 특별히 귀족적 가치관(aristocratic values)을 존중하였다. 다시 말하면 그의 집안은 돈이 없으면서도 남에게 도와 달라는 말은 안 했고 바깥 세상으로부터 어려움을 숨기려고 하였다.

엘룰은 프랑스의 개혁교회 전통의 신학자로서 사회학적 이해를 위하여 마르크스의 영향을 받았고 신학적 이해를 위하여 칼빈(John Calvin), 바르트(Karl Barth), 키에르케고르(Soren Kierkegaard)의 영향을 받았다. 엘룰은 마르크스의 영향으로 현대 사회 생활 형태를 지배하는 원칙에 대해 간파하게 되었고 신학자들의 영향으로 현대 세계에 성경적 계시의 도전을 나타내었다. 엘룰은 조직신학자는 아니었으며, 오히려 신앙의 윤리적 중요성에 크게 관심을 가졌다. 엘룰의 신학적 주제는 하나님께서 이 세상과 끊임 없이 투쟁하는 것으로 전해지고 있다. 즉 세상은 소외 상태에 있지만 궁극적으로는 포기되지 않고 바르게 회복되게 하는 의도의 투쟁이 있어야 한다는 것이다. 이렇게 해서 엘룰은 신학하는 데 있어서 해석의 방법은 변증법(dialectic)을 택하였고, 근대 세계의 특징을 기술(technique)로 보고, 성경의 중심축을 예수 그리스도로 보며, 삶의 기독교적 스타일을 자유로 본다. 여기서 우리는 엘룰의 저서들을 중심으로 그의 신학 사상을 간결하게 정리해 보도록 하겠다.

1. 예수 그리스도와 마르크스(K. Marx)

예수 그리스도는 엘룰의 신학에서 성경의 축으로 이해되고 있다. 성경은 이 축을 중심으로 하여 조직되었고 유기적 전체성(an organic totality)을 이루고 있는데 여기서 전적타자(the wholly other)이신 하나님은 예수 그리스도 안에서 현시하신다. 성경은 철저하게 기독교 문서이며 기독교 신앙을 이해하게 할 수 있는 유일한 자료(the only source)로 받아 들여졌다. 이러한 의미에서 엘룰은 종교 개혁자들의 원칙인 "오직 성경으로만"(Sola Scriptura)을 따르고 있다고 하겠다. 이것은 개혁교회의 전통인 역사를 지배하시는 하나님의 절대 역사 안에서 작용하는 죄의 힘과 견고함, 역사를 넘어서서 그러나 역사를 포함해서 새 창조, 즉 새 예루살렘을 바라는 소망의 현존 등의 주제를 강조하고 있다.

그러나 더 중요한 것은 엘룰이 하나님의 말씀하신 음성을 듣고 10년에 걸친 투쟁 끝에 하나님께 승복하였다는 사실이다. 결국 엘룰은 하나님께서 그의 생애의 주인(Master)이 되셔서 삶을 주관하시도록 받아들이게 되었다. 그는 더 이상 자기 자신의 주관자(boss)가 되지 않겠다고 고백하게 되었다.

엘룰은 여기서 마르크스와의 관계를 설명한다. 마르크스가 개인구원(personal salvation)의 차원에 대하여 말하지 못하고 있다는 것을 엘룰은 깨달았다. 다시 말하면 마르크스는 엘룰의 상황은 설명할 수 있었지만, 인간조건(human condition), 고난을 받을 수 있는 능력이나 사랑할 수 있는 능력, 다른 사람과의 관계에 대해서는 설명할 수 없다는 것이다. 마르크스는 그의 설명을 통하여 엘룰을 만족시킬 수 없었다. 그러나 엘룰은 성경을 읽는 가운데 그것들에 대한 설명을 할 수 있었던 것이다. 특히 로마서 8장을 읽는 가운데 분명한 설명을 얻었는데 기독교를 개인 구원의 영역으로 몰아치던 것을 극복할 수 있는 개인적 수준과 집합적 수준에 응답할 수 있는 것을 깨닫게 된 것이다.

2. 하나님 나라의 임재

엘룰은 성경을 들어 하나님 나라의 임재를 기독교인의 삶에서 설명한다. 엘룰에 의하면 기독교인은 자신을 세상과 분리시키기 위하여 그리고 세상에 초연하여 살도록 창조되지 않았다는 것이다. 그러나 세상이 끝날 때 즉 하나님께서 알곡을 곳간에 모아 들일 때 최종적 분리(the final separation) 사건이 일어날 것이라고 보는 것이다.

이와 비슷하게 기독교인은 세상 안에서 다른 사람들과 섞여서 살아야 한다. 바꾸어 말하면 기독교인은 자기들 끼리만 모여 살아서는(to live together in closed groups) 안된다는 것이다. 기독교인은 세상안에서 필연적으로 다른 사람들과 함께 살아야 하지만 세상으로(of the world) 만들어지지는 않았다. 이것은 기독교인의 생각이나 삶이나 마음이 세상으로(by the world) 통제되어서도 안되며 세상에 의존해서도 안 된다는 것을 의미한다. 왜냐하면 기독교인은 "다른 주"(another Master)가 계시기 때문이다. 기독교인은 이 "다른 주"께 속했다. 그 주께서 기독교인을 세상에 보내셨다. 이러한 관계에서 기독교인은 그 주와 교제(communion)를 가진다.

주와의 교제는 엘룰에 의하면 예수 그리스도와의 교제와 같은 의미를 갖는다. 이 교제는 세상의 어두움의 왕들과 권세자들과 통치자들에 저항하는 것이다. 이러한 저항과 싸움은 하나님의 은혜로 가능하다. 그렇지만 기독교인에게는 이 세상에서 구체적인 행동이 요구된다. 다시 말하면 기독교인이 세상에서 살면서 어떤 행위를 해야 할 것인가를 보이는 것이다. 이것은 기독교인의 소명(calling)이고 자연인(the natural man)이 생각할 수 없는 결정적 사명(decisive mission)이다. 이것은 인간 역사에 결정적으로 필요한 것이다. 엘룰은 성경에서 말한 대로 "세상의 소금"이고 "세상의 빛"이며 "이리 가운데 양처럼 보낸다"는 것을 의미한다.

이러한 행위가 하나님 나라의 현실적 임재의 표지이다. 이러한 삶은 기독교인의 상황이며 많은 희생을 사는 "혁명적 삶"이다. 이것은 하나님께서 예수 그리스도를 통하여 보여주신 현실이요 인간의 접촉점으로서 나타내는 것이다. 여기서 직면하는 것은 기독교의 윤리의 문제이다. 여기서의 행위는 하나님의 임재 앞에서의 태도요 삶이다. 바로 여기서 하나님의 뜻이 지켜지는 것이다.

3. 법의 신학적 기초

엘룰은 법을 이해하는 데 있어서도 신(神) 중심적 또는 그리스도 중심적 이해를 하고 있다. 이것은 그의 신학 사상의 중심이 신 중심적 또는 그리스도 중심적이며 일관성이 있는 표현이라고 할 수 있다. 그리고 엘룰이 법의 기초를 신학적으로 제시한 것은 자연법 해석에 관한 한 철저하게 기독교적이라고 할 수 있다. 이것은 자연법을 추상적이고 구속력이 없는 수준에 머무르게 하는 것이나 법을 실증적이고 인간의 사고의 집합으로 전락시키려는 것을 동시에 극복하는 현실적이고 구체적인 해석이며 방향제시라고 할 수 있다.

사실 사람들은 인간이 나면서부터 자발적으로 정의감을 가지고 있지 않는가라는 질문을 하면서 자연법을 설명하려고도 하고 실정법으로 판결하기 어렵거나 실정법에 맞게 행위했음에도 불구하고 사람들의 판단에 어긋난 것이 확실하여 그 근거를 찾고 구속력을 갖게 하기 위하여 자연법을 불러 들이는 경우도 있는데 이 모두가 자연법의 구체성을 제시하지 못하고 결국 자연법을 거부해야 하는 경우에 이르게 된다.

역사적으로 볼 때 자연법의 추상성과 구체성의 논쟁이 관념론과 유물론의 논쟁의 전초 현상으로 나타났다고 할 수 있으며 자연법을 거부하는 19세기초 이후의 역사학파와 법실증주의학파의 주장도 겸하여 생각할 수 있다고 본다. 역사학파는 법이 전적으로 대중 의식과 진화의 산물이라고 보았고 법실증주의학파는 법이 입법 문언(文言) 가운데 규정된 것 이상이 아니라고 보았다. 사실 기독교 안에서도 자연법을 해석한 것을 보면 그것이 인간의 본성에 내재하거나 하나님의 창조 질서로서 이해되는 것이 보통인데 그 배후를 보면 기독교와 비기독교 사이의 협동을 위한 하나의 기초를 찾으려는 데서 비롯되었다고 할 수 있다. 엘룰은 이 점을 깊이 고려하면서 굳이 기독교적 법을 고집하지 않고 공통적으로 수용할 수 있는 근거를 찾으려고 한 것을 볼 수 있다.

엘룰은 하나님께서 삼위일체 하나님으로서 창조주이시고 구속주이시고 계시주이시며 인간의 역사에 법을 정립하여 사용할 때 하나님의 계시와 합치하는 것을 찾고 있다. 엘룰은 항상 하나님의 뜻이 법에 앞서 있어서 작용할 것을 내세우면서도 예수 그리스도를 통하여 보여주는 구체성과 현실성을 찾고 있다. 이것은 엘룰이 동의하지 않을 지 모르지만 정의로운 자나 정의롭지 못한 자 모두에게 비를 내리시며 악한 자와 선한 자 모두에게 태양이 비추도록 하시는 예수 그리스도의 법이며 사랑의 법이다. 이러한 의미에서 보면 엘룰에게 있어서 자연법은 거부될 수 없는 것이며 법의 신학적 기초를 필요로 한 것을 밝혀 주는 것이라고 하겠다.

4. 기술사회(The Technological Society)

엘룰이 신학을 하는 데 있어서 해석의 방법으로 변증법을 선택하고 있음을 우리는 이미 보았다. 이것은 엘룰이 마르크스로부터 역사적 변화가 일어날 때 반대되는 사회적 힘(Society forces)과 대면하여 부딪힘의 결과임을 인식하게 되었다는 것이고 바르트로부터 하나님과 세상의 관계를 더 넓게 인식하는 통찰력을 배우게 되었다는 것이다. 여기서 하나님과 세상, 신학과 사회학이 서로 독립되어 있으면서도 서로 관계를 깊이하여 양자간의 변증법적 이해를 하게 된다. 이러한 방법론을 택한 엘룰은 현대 세계의 성격을 기술(technique)로 규명하고 있다.

기술은 엘룰에게 있어서 근대 서구 문명을 형성하는 결정적 요인이 되고 있다. 즉 그것은 서양의 정치적 경제적 문화적 체계를 형성하는 데 있어서 결정적 요인이 되고 있다는 것이다. 더 나아가 기술은 제도가 미친 영향보다 더 큰 영향을 미쳤다는 것이다. 그래서 기술은 "삶의 길(a way of life)"이 되었다는 것으로 이해되고 있다. 기술은 어느 면으로든지 모든 문명이 사용하게 되었고 각 개인의 내적 감각성을 알리고 각 개인이 성스럽고 고상하다고 생각하는 것을 결정하는 기풍을 이루어 수단의 문명(a civilization of means)을 만들었다는 것이다. 그래서 기술은 원하는 목적에 도달하게 하는 과정(procedures)과 도구(tools)가 되었다는 것이다.

엘룰에게 있어서 기술의 운용은 전통적 배경에서와 현대 세계에서 다르게 나타난 것으로 지적되고 있다. 전자의 경우는 그 운용이 제한된 영역에 한정되었고 인간적 관심에 종속되었으며 지역적 의미에 제한되었으며 사용자의 분별에 따라 선택되었다는 것이다. 그러나 현대 세계에서 기술의 운용은 합리적 의지(rational intent)와 헌신 몰입(commitment)의 문제에 속하는 것으로서 주어진 목적에 이르는 대안적 수단을 발견하고 그러한 수단들 가운데 어느 수단이 가장 효과적인가를 식별하는 진지한 노력을 하는 문제로 보고 있다. 그래서 인간 활동의 전영역을 통하여 일어날 결과를 운용할 체계적 방법을 세우되 삶의 모든 영역에서 "하나의 가장 좋은 수단"이 선택될 것이 요청된다.

5. 선전(Propaganda)

엘룰은 선전을 기술의 맥락에서 이해한다. 즉 선전은 그 자체가 하나의 기술이다. 그것은 근대 세계에서 기술문명(technological civilization)을 위한 하나의 조건이 되고 있다. 이렇게 해서 선전은 개인들이 모여 이룬 대중이 활동에 참여할 것을 끌어내리도록 하기 위하여 하나의 조직이 사용한 일련의 방법으로 이해되고 있다. 선전은 사람들의 태도에 관심을 가지는 것만 아니고 실천적인 데도 관심을 가지면서 사람들의 감정과 성향을 조작하려고 한다. 엘룰에게 있어서 선전은 이처럼 사회학적 현상으로 이해되고 있다. 또 모든 선전은 공통적으로 효과에 관심이 있는 것으로 이해되고 있다.

엘룰에게 있어서 선전은 넓은 의미와 좁은 의미로 구분하여 사용되고 있다. 전자는 심리적 행위, 심리적 전쟁, 재교육과 세뇌작용, 공적인 관계와 인간적 관계, 특히 개인을 사회나 생활 표준이나 활동에 적용하여 동조하도록 하는 것을 목적으로 하는 것까지 포함시키고 있으며, 후자는 제도적 특성을 갖는 것인데 심리적 영향의 기술이 조직의 기술과 연결되어 있고 사람들 모두가 도화선적 행위를 하는 의도와 연결되어 있는 것을 포함시키고 있다. 그러나 엘룰은 의도적으로 제거하는 몇 개의 부분을 제시하기도 하였다. 하여간 선전은 인간의 문제를 해결해 가는 수단으로서 그리고 사람들을 순수히 설득하려는 수단으로서 인식되고 있다는 사실을 엘룰은 지적하고 있다.

엘룰은 선전을 과학이 아니고 하나의 기술이라고 봄으로써 선전의 특성(characteristics)을 크게 두 가지로 나누어 제시한다. 하나는 외적 특성이고 다른 하나는 내적 특성이다. 전자는 개인과 대중에게 동시에 언급하는 특성, 모든 기술적 수단을 총동원하여 이용하는 전체적(total) 특성, 한순간도 떼지않고 계속하며(continuous) 오랫동안 지속하는(lasting) 특성, 대중 매체를 통제하고 슬로건을 효과있게 하는 조직, 행정적인 조직 등 처음부터 조직되어야 하는 특성, 최종적으로 바로 실천되어야 하는(orthoparxy) 특성을 가지는 것 등을 포함한다.

내적 특성은 심리적 영역의 지식에 속하는 특성, 사회에 기본적으로 흐르고 있는 풍조로 나타나는 특성, 시기에 알맞아야 하는 특성, 결정적이 아니어서 어떻게 될지 모르는 특성, 사실과 정확성이 요구되는 특성 등을 포함하고 있다.

엘룰은 선전의 이러한 특성들을 말하면서 이어서 선전의 범주들을 말하고 있는데 이 가운데는 정치적 선전과 사회학적 선전, 소요를 위한 선전과 통합을 위한 선전, 수직적 선전과 수평적 선전, 합리적 선전과 비합리적 선전 등으로 구분하여 제시되고 있다. 엘룰은 이러한 선전이 교육없이 작용할 수 없다는 것을 분명히 밝히고 있다. 그러나 이것은 기독교의 복음과 사회를 연결시키는 분석이며 변증법적 해석을 하는 다른 한 영역이라고 할 수 있다. 그리고 이러한 노력은 하나님 나라의 임재를 향한 과정에서 나타난 것이라고 할 수 있다.

6. 자유의 윤리

엘룰은 자유의 윤리를 제창한다. 여기서도 엘룰은 그리스도 중심적 접근을 하고 있다. 엘룰에 의하면 그리스도 안에서 얻은 것은 자유이다. 그리스도 안에서 자유를 얻은 사람은 자유롭다는 것이다. 그러나 엘룰은 여기서 긴장(tention)을 시인한다. 즉 그것은 벌써 주어진 새로운 삶(the already)과 확실한 소망을 가지고 기다리는 부활(the not yet) 사이의 긴장을 의미한다. 엘룰은 이러한 긴장 가운데 자유를 설명하거나 체계화하려 하지 않고 하나님에 의하여 자유롭게 된 자유인(free man)이 자유인으로서 행동하도록 부름받았다는 데서 윤리적 출발을 하고 있다.

엘룰에게 있어서 자유는 소망의 윤리적 국면(aspect)이다. 다시 말하면 엘룰은 자유의 윤리를 말하면서 기독교인의 삶에 처음부터 깔려 있는 것이 소망이라고 보고 소망이 가장 기초적(foundational)이라고 생각한다. 그래서 엘룰은 자유의 윤리가 소망 위에만 세워질 수 있고 소망을 표현하려고 노력해야 한다고 역설한다. 즉 소망은 하나님께서 인간을 위하여 역사하신 것에 대하여 인간이 응답하는 것이며 이러한 수준과 정도에서만 자유로 표현된다는 것이다. 여기서 자유는 하나님이 인간을 위하여 그리고 인간 안에서 창조하신 것이며 일상생활에서 구체적이고 효과있게 살 수 있도록 하면서 인간의 소망에 대하여 하나님이 응답으로서 주신 것이다. 하나님은 이 자유를 주시면서 과거에 매이게 하시지 않고 소망을 가지고 살도록 허락하셨다. 이것은 야곱과 하나님의 관계, 욥과 하나님의 관계, 아브라함과 하나님의 관계에서 찾아낼 수 있다고 엘룰은 주장한다. 이것은 니체가 말했던, "인간적인 너무나 인간적인" 소망보다 더 강한 것으로서 인간의 자유와 관계된 것이라고 엘룰은 본 것이다.

엘룰에게 있어서 자유의 축은 하나님의 영광이었다. 그리고 우리를 끌어가는 힘은 하나님의 영광의 소망이다. 우리 안에 거하시는 그리스도는 우리 안에 있는 이 영광의 소망이다. 이 소망이 우리를 자유로 인도한다. 그러므로 자유가 이 소망 안에 있을 때만 의미를 갖는다. 엘룰은 이러한 설명을 그리스도 중심적 근거에서 제시한다. 즉 우리의 소망은 예수 그리스도의 승리에 근거하고 있다. 예수 그리스도의 승리는 살아계신 하나님 안에 우리의 소망을 두게 한다. 따라서 우리의 소망은 인간의 감정이나 발명품이 아니다. 이 소망은 하나님이 주신 자유와 관계를 갖게 되며 행동하게 된다. 이 행동은 의미있는 행동이 되어야 한다. 이것은 소망에 복종할 때만 나타난다.

7. 하나님의 정치와 인간의 정치

엘룰은 인간이 정치적 행위(political action)를 구상하고 추구할 때 하나님께서 그 행위에 관여(intervention) 하신다고 본다. 엘룰이 이러한 전제를 내건 것은 이미 성경에, 특히 열왕기하의 사건들을 통하여 나타난 것을 이해한 것으로 풀이되고 있다. 정치적 행위에 나타난 질서는 역사의 질서(order)이지 원리(principles)의 질서가 아니며 더 나아가 하나님께서 정치에 대해 심판하신다는 것이다. 그리고 이 질서는 예언과 계시의 질서이지 윤리와 정치적 절차의 질서가 아니라는 것이다. 여기서도 엘룰은 그리스도 중심적 관점에서 정치 질서를 이해하려고 한다.

엘룰에 의하면 우리는 계속해서 인간의 행위와 하나님의 행위 사이에 맺어지는 관계 가운데 있다. 즉 우리의 정치적 상황에서 역사적 경향은 계속해서 구체적인 삶과 관계됨을 나타낸다. 여기서의 문제는 하나님이 전능하시다면 인간에게 자유가 없어야 할 것이고 인간이 자유를 가진다고 하면 하나님이 추상적이고 무능하게 보일 것이라는 점이다. 그래서 엘룰은 바르트의 말에 귀를 기울인다. 즉, 인간은 하나님의 자유로운 결정 안에서 인간이 자유롭게 결정한다는 것이다. 하나님은 인간을 통해서 역사하신다. 그러나 하나님은 인간을 기계화하지 않고 자유롭게 행위하게 하신다. 이러한 의미에서 인간은 독립적이다. 그러나 인간이 목이 곧게 독립을 내세워 새로운 상황을 만들어 낸다면 그것에 대한 책임을 하나님께서 물으신다는 것이다. 또 하나님의 뜻을 성취하고 하나님이 원하시는 것을 한다 하더라도 그것이 구원의 보증은 되지 못한다. 그러한 것을 하는 사람은 하나님의 도구가 되었다 하더라도 반드시 구원받을 만한 일을 하였다고는 할 수 없다.

엘룰은 정치적 영역을 사탄의 영역으로 보기 때문에 하나님이 원하시는 것을 했다 하더라도 구원받을 수 없는 사람을 거절당하게 된다. 다시 말하면 부정의하고 가난한 자들을 억압하는 오만한 사람들은 하나님께서 그들을 벌하신다. 즉 앗시리아가 하나님의 진노의 막대로 잘 사용되었지만 벌을 받았다. 그들은 하나님의 참 뜻을 이해하지 못하였다. 그렇지만 그들도 예수 그리스도에 의하여 구원받을 수 있다. 이렇게 해서 엘룰은 정치 영역에서 하나님으로부터 벌받은 사람이 구원받을 수 있다는 것을 말하므로 그리스도 중심적 접근을 하고 있다고 하겠다.

맺는 말

엘룰은 그의 신학 사상을 전개하는 가운데 해석의 방법으로서 변증법(dialectic)을 사용하였고, 인간이 살고 있는 현대 세계의 특성을 기술로 나타내며 여기에 따라 선전을 이해하였다. 그러나 하나님의 뜻을 이해하는 가운데 엘룰은 성경의 축으로 예수 그리스도를 발견하게 된다. 하나님의 뜻이 여러 가지 도구를 통해 이루어지지만 인간을 통하여 가능한 것을 보여주시며 예수 그리스도를 통해서만이 구원이 가능하다고 말하면서 기독교인의 삶의 윤리를 자유의 윤리, 소망의 윤리로 서술해 간다. 그래서 기독교 윤리는 직설법적 윤리로 나타난다.

엘룰은 철저하게 개혁교회 전통에 서서 하나님의 주권을 강조하면서도 인간의 자유를 수용하는 입장이다. 그는 항상 하나님의 영광을 위하여 노력하면서 실천적이고 현실적이며 구체적인 응답을 하려고 노력한다. 엘룰은 사회적 현실을 있는 그대로 보면서 하나님의 뜻이 이루어지고 하나님의 나라의 임재를 인지하려는 노력을 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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