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섬 ㅣ 그르니에 선집 1
장 그르니에 지음, 김화영 옮김 / 민음사 / 1993년 7월
평점 :
구판절판
97년에 이어 두번째 읽는다. 그동안 주위에서 한두 사람의 자살을 겪고, 산다는 것과 죽음의 의미에 대한 물음들이 나의 것이 되었다. 그래서 다시 읽는 이 책은 예전과는 다른 책이 되어 있었다.
그르니에는 인생을 [최후를 기다리는 동안 인내하는 놀이를 배우는 것]이라 말한다. 그에게 가장 큰 짐은 아마도 동물이든 사람이든 그 죽어가는 과정과 죽음 앞에서 느끼는 이 사람의 섬세한 아픔인 것 같다. 그는 대답을 원했고 그가 찾은 것은 [무의미]라고 말한다. 인생의 무의미성은 인생을 지치지 않게 한다고 그는 말한다.우리가 느끼는 섬세한 무의미의 부분은 침묵의 세계이다. 철학적 질문에도, 고통에도, 지식과 아름다움에도 철저히 침묵하는 절대 고요와 아름다움 그리고...
동물은 자신의 현실에 충만하므로 존재한다. 그러나 인간은 불충만하므로 존재하지 않는다. 다소 극단적인 결론이나, 그가 파스칼의 불충만의 대답인 절대자를 만나지 못했음에야 어쩔 수 없는 선택이기도 하다. 그는 차라리 노동에 휘둘리고 나름의 비밀이라곤 없어보이는 비천한 지위에서 참된 영성이 꽃필 수 있다고 한다. 빵장수 야곱의 비밀. 철저한 가난처럼 절대 아름다움은 우리의 삶을 미천한 것으로 만든다. 그러나 이것이 우리가 진실을 보게 한다. 그래서, 섬인 우리는 고독과 절대공허 속에서 삶의 진정한 양식을 찾아나선다.
이런 전형을 그는 인도에서 탐색한다. 아름다움에 대한 철저한 무시, 가난의 제도화, 서양적 물질가치의 전복, 비인간적 인간조건의 무저항, 죽음의 환영받음, 그리고 무념무상의 세계에서 안식을 얻고자 한다. 그가 배워왔던 이성주의와 탐구의 지리한 역사에는 해답이 없어 그는 탈이성, 탈현실, 탈인간화로 나아가 자유를 얻고자 한다. 한 서양에서 자란 동양철학 구도자의 무위사상의 깨달음이다.
하지만 파리로 돌아온 그는 [가장 먼곳과는 작별하고, 가장 가까운 곳에서 피난처를 찾지 않으면 안될 모양]이라고 말한다. 여행을 통해 끝내 그의 둘씨네는 찾지 못하고 시내의 [보로메 군도로] 카페처럼 현실에서 대용품이나 찾아야겠다고 한다. 거기서 격리와 위로를 찾을 수 있으려나, 악수와 눈길? 씁쓸한 [현실의 결론]이 아닐 수 없다. 대용품 [보로메 섬들]의 사진을 마이페이퍼에 올려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