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중록 문학동네 한국고전문학전집 3
혜경궁 홍씨 지음, 정병설 옮김 / 문학동네 / 2010년 8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한중록의 주된 내용이 되는 사도세자의 죽음과 저자인 혜경궁 홍씨에 대해서는 크게 낯설지 않은 것이 사실입니다. 왕인 아버지에 의해 세자가 뒤주에 갇혀 죽임을 당한 사건과 죽임당한 세자의 부인으로 굴곡진 삶을 고스란히 겪고 살아낸 여인의 삶이라는 요소만으로도 단순한 역사적 사실로 치부할 수 없는 극적인 요소를 담고 있고, 그런 극적인 면이 많은 사람들의 관심을 끌기에 충분하기도 합니다. 하지만 한중록과 혜경궁 홍씨에 대한 많은 사람들의 앎도 아마 거기까지 뿐일 것이라고 감히 말할 수 있을 것 같습니다. 사도세자의 죽음과 그러한 역사적인 사실에 대한 그의 부인이었던 여인의 한맺힌 기록 정도라고 말입니다. 나를 비롯한 많은 사람들은 아마도 한중록을 이야기 할때, 거기까지만 알고 있고 거기까지만 이야기하고 말 듯 합니다. 교실에서 사도세자의 죽음과 한중록에 대해서 그렇게 배워왔었고, 실제로 한중록이라는 우리 고전자체를 읽어볼 수 있는 기회를 가지는 호사(?)는 미처 누릴 수 없었기에..... 한중록 뿐만이 아니라 실제 우리의 고전 대부분에 대해서도 우리가 알고 있다고 생각하는 것과 우리가 실제로 알고 있는 것과는 그만큼의 차이가 존재할 것 같습니다. 부끄럽지만 대부분은 교실안에서 지식으로서 학습된 내용이지 각각을 진지하게 읽고, 소화해 낸 것이 아니니까요..... 

 한중록이라는 말을 들을 때면 사도세자의 죽음을 기록한 책이라는 너무도 당연하게 그리고 반사적으로 튀어나오는 지식때문에, 실제로 읽기 전까지는 책의 내용을 다 아는 듯, 혜경궁이 쓴 자신의 남편의 죽음에 대한 글이라는 단순한 생각에서 한치도 벗어나지 못한 것이 사실입니다. 하지만 실제로 대하는 한중록은 세 편으로 나누어져 있네요.....^^ 우리가 익히 안다고 생각하던 사도세자의 죽음에 대해서 상세히 기록한 '내 남편 사도세자', 그리고 혜경궁 자신의 일생을 회고한 자서전 격인 '나의 일생', 마지막으로 외척으로서 부귀도 누렸지만 당파와 권력싸움의 회오리에 속에서 풍비박산이 나다시피한 혜경궁의 '친정을 위한 변명'으로 말입니다. 그리고 또 한가지 놀랍게 여기는 것은 생각보다 두툼한 책의 분량입니다. 일반적으로 대하게 되는 우리 고전들 -홍길동전, 춘향전, 흥부전 등등-의 분량을 생각하면 그 두세배는 족히 넘을 듯한데, 이 기록이 사도세자와 그의 죽음이라는 사건을 넘어, 한 인간으로서 혜경궁이 겪었던 훨씬 복잡다단한 삶을 담고 있으리라는 것을 암시하는 것이기도 하다는 생각입니다. 

 실제로 혜경궁의 삶의 내용은 세자빈으로 간택되어 궁궐 생활을 시작한 뒤에 지아비인 사도 세자가 엽기적(?)인 방식으로 죽임을 당하게 되는 시기까지의 아픔과 고통이 근저에 깔려서 평생 지속되었다고 할 수 있을 것 같습니다. 세자빈으로서의 사도세자와 함께 살았던 기간보다 그의 사후에 정조로 등극하는 세손과 왕의 어머니로서 그리고 정조가 사망한 뒤에는 왕의 할머니로서의 기간이 훨씬 길었지만, 그녀의 삶에 영광을 드리우는 것도 그리고 그늘을 지우는 것도 결국은 그녀가 세자빈에 간택이 되어 자신의 가문이 외척의 길로 들어섰다는 것과 자신의 지아비가 죽임을 당해 생긴 이러저러한 사건이 무수히 얽혀 그녀의 평생을 휘감고 있으니 말입니다. 하지만 이 책을 읽으면서 생기는 재미 - 관심 또는 흡인력-는 한중록이 그러한 사건이 바탕이 되었지만 분명 그 이상의 내용을 담고 있기 때문이라고 할 수 있을 것 같습니다. 간단하게는 사도세자의 광증의 발병과 진행과정을 너무 어린시절에 어머니에게서 떨어져 궁중나인들에게 맡겨진 것과 아버지 영조와의 엄격하고 냉랭한 순탄치 않았던 관계에서 바라보며 안타까워하는 심정이 고스란히 담겨있고, 또한 죽음에까지 이르게되는 지아비의 삶의 결정적인 순간에도 어찌하지 못하는 안타까움과 어린 아들 정조의 미래에 대한 걱정과 어미로서의 책임감이 절절히 담겨있고, 궁중 안에서의 여인들간의 유대와 반목에 대한 혜경궁 자신의 솔직한 시선, 정조의 어머니에 대한 효성과 간혹 보이는 이중적인 행태, 자신의 집안을 비롯한 외척간의 권력투쟁과 그 과정에서 생긴 불행에 대한 변명 등은 여느 책에서 쉬이 대할 수 있었던 내용은 아닙니다. 하지만 한중록이 읽는 이의 마음을 더 뜨겁게 하는 것은 그러한 사실 하나하나도 중요하지만 그러한 사건을 대하고 기록하는 혜경궁 자신이 그 사건들의 중심에서 직접 희노애락을 맛보았고, 또한 노년에 이르기까지 젊을 시절부터 겪었던 아픔과 고통을 안으로 삭이는 과정을 거쳐 생생하지만 감정으로 흐르지 않는 냉정함을 가지고 지나온 일들을 또박또박 기록하였다는 사실에 있지 않을까 합니다. 글속에서 느껴지는 유려함과 역사의 페이지를 채웠던 사람들의 겉과 그 이면에 담긴 권력을 위한 정치적인 행위들에 대한 신랄함, 누가 보아도 한많은 자신의 일생을 한 여인의 삶이라는 틀에 한정시키지 않고 한 가문과 나라의 일부로 인식하고 그 안에서 바라보며 회고할 수 있었던 여유 등은 모두가 혜경궁 자신의 삶속에 녹아있는 내밀한 뜨거움과 인내의 결과물이라고 할 수 있을 것입니다. 그런 의미에서 한중록의 가치는 역사적 사건에 대한 공적인 문서가 가지지 못한 여유를 지닌 사적인 기록이라는 측면도 있지만, 그 보다는 누구도 비할 수 없을 굴곡진 삶을 살다간 한 사람의 처절한 기록이라는 사실에서 기인한 '인간 내면'의 깊은 곳을 건드리고 있는 진솔함에 있지 않을까 합니다. 결국 한중록은 우리가 배워서 알아야 하는 책이 아니라, 읽고 느껴야 하는 그런 글이라고 할 수 있겠습니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1)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슈퍼부모들의 공부기술 - 5개국, 20여 년에 걸쳐 완성한 슈퍼부모들의 자녀양육 비법
조석희.제임스 캠벨 지음 / 판테온하우스 / 2010년 7월
평점 :
구판절판


 학령기의 자녀을 둔 부모들에게 가장 큰 기쁨은 무엇일까요? 물론 사람에 따라 자녀의 건강에서 부터 시작해서 공부를 잘하거나, 공부는 아니더라도 어떤 한 분야에서 뛰어난 자질을 보이는 것 등 다양한 것들을 말할 수 있겠지만, 보편적으로 부모된 입장에서 다른 아이와 비교해서 좀더 뿌듯함을 느낄 수 있는 것은 자신의 자녀가 공부를 잘하는 것이지 않을까 -잘한다는 기준에 차이가 있기는 하겠지만- 하는 생각을 합니다. 아이가 세상에 태어나서 처음으로 스스로 뒤집고 기고 걷기를 배우고 '엄마, 아빠' 등의 단어들을 우물거리기 시작하는 때에는 그 존재 자체로만으로도 세상의 그 무엇과 바꿀 수 없었던 자녀가 학교라는 울타리에 들어서고 그 울타리를 벗어나 사회에 진출하기까지는 결국 대부분의 부모들은 자녀들을 학교 라는 집단안에서 자신에게 부여된 공부라는 과제를 얼마나 잘 해내는지로 자신의 아이를 판단하고는 할 것입니다. 그래서 많은 우리 부모들은 자신의 아이들에게 더 나은 성적을 위한 사교육에의 길을 마다하지 않을 것입니다.  

 이 책이 말하는 '슈퍼부모'란 '자녀들을 극성으로 돌봐서 결국 뛰어난 성취를 하게 만든 부모'를 가르킵니다. 여기서 뛰어난 성취란 이 책이 국제수학/과학 올림피아드에서 입상한 아이들에 대한 집중적인 인터뷰를 통한 연구를 통해서 씌여진 논문과 결과를 대상으로 했기 때문에, 그에 준하는 성취를 이룬 것을 말하고 있다 하겠습니다. 오늘도 자신의 아이가 공부를 더 잘 할수 있기를 바라는 많은 부모들이 선망하는 성취가 아닐는지..... 결국 이 책이 말하는 것은 슈퍼부모들은 어떻게 자신의 아이를 양육하고 가르치고 있는가에 대한 보편적인 특징을 인터뷰라는 수단을 통해서 후향적으로 연구한 결과물이라고 하겠습니다. 주제 자체가 전향적인 연구를 하기에 어려움이 따르는 것이기는 하지만, 먼저 후향적 연구가 가지는 한계에 대해서는 생각해 보아야 할 부분이 있습니다. 여기서 말하는 연구는 평균적인 학생이라는 대조군이 없이 뛰어난 성취를 이룬 학생들만을 대상으로 한 연구라는 점에서 자료를 분석하고 어떤 결론에 이르렀다고 하더라도 그것이 반드시 타당하다고 할 수는 없을 것 같다는 생각이 드는 부분이 있기 때문입니다. 연구자의 일방적인 편견이나 자신의 주장에 대한 합리화가 끼여들 수도 있겠지요..... 하지만 이 역시 대조군에 대한 연구나 전향적인 연구를 하기에는 너무 많은 난관이 있는 주제라는 점도 인정을 해야 할 것 같습니다. 

 이 책이 말하는 자녀가 뛰어난 성취를 이루는데 있어 꼭 필요하는 128가지 처방을 크게 무리지어 생각한다면, 먼저는 자녀의 성취에 대한 부모의 기여도에 대한 이해와 아이에게 동기를 부여하고 자신감을 심어주기 위한 방법, 아이가 주어진 잠재력을 발견하여 키우고 노력할 수 있도록 부모로서의 영향력을 지혜롭게 행사하는 방법, 아이에게 높은 기대를 심어주고 그것을 내면화시키고 '능력과 규율, 자신감과 공부하는 습관'을 기르도록 돕는 방법, 아이가 처한 상황에 따라 적절한 압력을 행사하거나 스트레스를 해소할 수 있게 지혜롭게 대처하는 방법, 지켜야 할 규칙을 만들고 그것을 모니터링하는 방법, 학교 공부나 숙제에 대해서 부모가 관여하는 적절한 범위와 방법, 공부에 필요한 모든 수단을 적절한 시기에 적절하게 제공하는 것 등으로 구분할 수 있겠습니다. 아이가 더 나은 성취를 이루도록 하기 위한 구체적인 실천 수단들에 대한 내용들이라고 할수 있겠습니다. 개인적으로 몇가지 중요하다고 생각되는 부분을 정리한다면, 많은 책을 읽고 생각할 수 있는 기회를 만들어 주는 것, 아이가 공부할 수 있는 환경을 조성해 주는 것, 아이에게 지적자극을 주고 그것에 대한 성취를 위한 동기 부여와 좋은 습관 -공부하는 습관-을 기르도록 꾸준히 안내하는 것, 적절한 압력 행사를 아끼지 않는 것, 그리고 아이와의 진솔한 대화를 통해서 부모에 대한 믿음을 형성하고 아이가 자신있게 세상을 향해 나갈 수 있도록 사랑을 표현하고 나누는 것 등을 말할 수 있을 것 같습니다.  

 자신의 아이가 신통치 않은 성적으로 풀이 죽어지내는 모습으로 학창시절을 보내기를 원하는 부모는 아무도 없을 것입니다. 하지만 한편으로는 모든 아이들이 이 책이 말하는 학생들처럼 뛰어난 성취를 이룰 수 있는 것은 아닐 것입니다. -물론 각각이 지닌 가능성마저 무시하는 말은 아닙니다. 다만 각각의 달란트가 다를 수 있다는 의미에서의 생각입니다.- 모두가 학교에서 1등을 할 수는 없는 일이니까요. 하지만 부모로서 자녀들에게 관심을 가지고 배려한다면 아마도 아이는 지금의 수준에서 한두단계 위쯤으로 어렵지 않게 진보할 수 있지 않을까 하는 생각을 해봅니다. 그것이 자신감이 되고, 그러다 보면 분명 더 나은 모습을 스스로 그려갈 수도 있겠지요. 그리고 부모로서 그런 자신의 아이를 바라보면서 항상 먼저 새겨야 할 것이 있다는 생각입니다. 즉, 부모로서 아이에게 공부할 것을 요구하면서, 진정 자신이 바라는 아이의 미래가 무엇인가에 대한 진솔한 물음과 대답이 필요하다는 생각이 들어서입니다. 아이가 공부를 잘하고, 뛰어난 성취를 이루고.... 등등 그 자체가 목표는 아닐테니 말입니다. 또한 이 책에서 저자들이 말하는 내용은 뛰어난 성취를 이룬 아이들의 부모를 연구한 것이라고는 하지만, 곰곰히 들여다보면 아주 상식적인 -물론 상식을 벗어난 처방들도 간혹 보이기는 하지만- 범위안에서 생각할 수 있는 것들이라는 생각을 하게 합니다. 부모로서의 욕심에 눈이 멀지 않은 상태에서 깨달을 수 있는 것들이긴 합니다. 또 한가지 저자들의 이야기를 동양적인 가치관을 담은 용어로 간단히 표현하자면 '중용지도'를 먼저 언급할 수 있겠고, 그 다음으로는 '과유불급'이라는 사자성어를 덧붙일 수 있을 것 같습니다. 내 아이를 어떻게 양육하고 가르칠 것인가? 정답을 얻을 수는 없지만, 좀 더 행복한 아이의 미래를 위한 지혜를 얻을 수는 있는 내용들입니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0)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못 가본 길이 더 아름답다
박완서 지음 / 현대문학 / 2010년 8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내가 꿈꾸던 비단은 현재 내가 실제로 획득한 비단보다 못할 수도 있지만, 가본 길보다는 못 가본 길이 더 아름다운 것처럼 내가 놓친 꿈에 비해 현실적으로 획득한 성공이 훨씬 초라해 보이는 건 어쩔 수 없다. - p25 

 화사한 책표지와 어울리지 않게 이 책을 대하면서 가장 먼저 머리속에 떠오르는 것은 프로스트 (Robert Frost)의 '가지 못한 길 (The road not taken)'이라는 시였습니다. 시를 좋아해서라기 보다는, 내 또래라면 학창시절 어느 때쯤엔가 국어책에 실렸던 이 시를 배웠을 것이고, 그때는 시험을 보기 위해 시를 이리저리 분해해서 공부했을 터이지만, 생각지 못한 순간에 문득 떠오르는 것을 보니, 시인의 감성은 감수성이 스폰지 같았을 어린 영혼에 그대로 흡수되어 평생을 지속되고 있었던가 봅니다. 화사함보다는 가보지 못했던 길에 대한 진한 아쉬움을 담고 있었던 내용이지만, 자신의 삶을 돌아보며 '못 가본 길이 더 아름답다'고 말하는 저자의 속마음과 이 책을 손에 들고서 제목을 대하고 있는 내 마음 모두에 딱 들어맞는 느낌을 담고 있다고 할 수 있지 않을는지..... 

 1부 자신만의 밑줄에서 작가는 현재 살고 있는 집과 마당, 그리고 그 마당의 잔디와 나무들에 대한 이야기로 글을 시작하여, 공간으로는 자신의 고향 개성에서부터 서울과 구리, 지리산 자락의 시골마을을 넘어 일본의 홋카이도 여행의 기억까지 아우르고 있고, 시간으로는 아득한 기억으로 남은 개성에서의 유년시절, 해방과 중학교 졸업, 대학에 진학하자 마자 겪게된 6.25 전쟁을 거쳐 작가가 되고, 자식을 먼저 보낸 부모가 되고, 노작가가 된 현재의 자신에 이르기까지 마음 구석구석에 자리잡고 있는 현재의 삶과 과거의 기억속에 담겨있는 삶의 이야기를 담고 있습니다. 때로는 해맑은 꿈을 품었던 소녀로, 때로는 자신의 가정에 닥친 어려움을 온몸으로 지탱해야 했던 억척스런 여인으로, 그리고 때로는 자신의 마당 잔디밭의 잡초와 씨름하는 평범한 노인으로.... 자식을 먼저 보내야만 했던 아픔을 품은 어머니로..... 두고 온 고향을 애타게 그려보는 실향민으로.... 2002 월드컵때는 축구의 맛에 빠져 마음만은 젊은이들과 똑같이 붉은 악마였던 축구팬으로.... 손자에게 따뜻한 밥상을 차려 주는 것만으로도 행복하기 그지없는 할머니로....  자신의 삶의 길목에 있었던 일들을 이리 소담스럽게 풀어낸 작가는 그래도 글의 처음에 '못 가본 길이 더 아름답다'고 꿈에 비해 현실에서 이룬 것들이 더 초라해 보이는 것은 어쩔 수 없다고 말하고 있습니다. 읽는 이에게는 충분히 아름다워 보이고, 또한 밋밋한 삶에 의미를 묻게하고 스스로를 돌아보게 하는 따끔함과 주어진 삶을 더 따뜻하고 소중하게 살라는 노작가의 격려의 손길이 느껴지는 삶의 이야기들인데도 말입니다. 

 2부 책들의 오솔길에는 작가의 감성이 담긴 12권의 책에 대한 소개가 실려 있습니다. '서평도 독후감도 아니'라는 첫머리의 고백처럼 어떤 형식이나 틀을 갖춘 글이라기 보다는 '책을 읽다가 오솔길로 새버린' 듯한, 그리고 때로는 오솔길을 거닐다가 문득 생각난 책의 세계로 쏙 들어온 듯한 이야기들입니다. 책이야기라기 보다는 책을 핑계로 한 자신의 생각과 삶에 대한 이야기라고 하는 것이 더 그럴듯해 보일 것 같습니다. 3부 그리움을 위하여에는 아직도 많은 이들의 가슴속에 살아있을 김수환 추기경의 선종에 부친 추모의 글과 토지라는 커다란 유산을 우리에게 남긴 작가 박경리 선생에 대한 추도사, 철없이 명문대생이라는 허영에 들떠 있던 미군 PX 위탁매장의 점원시절 만났던 박수근 화백과의 만남에 대한 추억을 되새기며 쓴 박수근 화백에 대한 추모사가 실려 있습니다. 이 글들은 그들이 묵묵히 만들어냈던 큰 그늘이 얼마나 소중한 것이었는지 미처 다 알지 못했다는 아쉬움과 그들의 삶 자체가 우리에게 끼친 풍성함이 얼마나 큰 감사의 제목이었는지를 새롭게 새기게 해 줍니다.   

 '가본 길보다는 못 가본 길이 더 아름답다'는 저자의 이 고백은 어느 날 갑자기 글을 쓰기 위해 자리에 앉았을 때 손끝에서 무심코 흘러나온 이야기라기 보다는, 삶의 무게가 켜켜이 쌓이는 동안, 그리고 그 긴 시간동안 자신의 삶을 간간히 되돌아보았던 순간마다 마음 속에서 잔잔히 우러나오던 자연스러웠던 감정의 고백이라는 생각이 듭니다. 그리고 저자만이 아니라 자신의 삶을 묵묵히 짊어지고서 오늘을 살아가고 있는 많은 우리의 어머니, 아버지들, 그리고 우리 자신들의 고백이라고 할 수도 있지 않을까 하는 생각입니다. 인생의 선택의 순간에 용기를 내지 못했던 기억, 주변 환경에 의해서 가보고 싶었지만 가볼 엄두도 내지 못했던 길, 젊었을 때는 미처 알지 못했고 나이가 들어서는 알고서도 나이를 핑계로 뒤로 미루기만 했던 꿈에 대한 회한(?) 등은 각각의 모양은 다를지라도 모든 사람들이 마음의 한 구석에 고이 간직하며 살고 있는 것들일테니 말입니다. 하지만 한편으로는 '꿈에 비해 현실적으로 가지고 있는 것들이 훨씬 초라해 보인다'고 할지라도 자신이 가는 길목에서 요령을 피우지 않고 묵묵히 살아낸 삶의 열매들이 현재의 우리 자신과 가정, 그리고 우리 사회를 이만큼 풍요롭게 이룬 자산이 되었고, 지난 날의 삶의 이야기가 투박해 보이기는 하지만 겉만 번지르하게 변해가는 현실의 삶에 대해서 따끔한 가르침이 되고 있다고 생각한다면 비록 꿈에 비해서는 초라해 보일지라도 각자가 살아온 삶에 대해서 따뜻한 격려의 박수를 보낼 수는 있지 않을까 하는 생각입니다. 여전히 가지 못한 길에 대한 아쉬움이 남기는 하겠지만, 그 아쉬움은 한편으로는 우리의 삶이 아직도 꿈을 꾸고 주어진 시간을 소중히 여기며 성실히 살고 있다는 희망의 다른 표현이라고도 할 수 있을테니 말입니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0)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링컨
프레드 캐플런 지음, 허진 옮김 / 열림원 / 2010년 8월
평점 :
품절


  한 세기 전, 한 위대한 미국인은 노예해방선언문에 서명했습니다. 우리는 오늘 의미심장하고 상징적인 그 자리에 서 있습니다. 그 역사적 선언은 불의의 불길에 고통을 받던 수백만 흑인 노예들에게 희망의 등불로 다가왔습니다. 긴 예속의 밤을 끝내는 환희의 새 아침으로 다가왔습니다.  - 1963년 8월23일, 마틴 루터 킹

 젊은이와 노인, 부유한 이와 가난한 이, 민주당원과 공화당원, 흑인과 백인과 히스패닉과 아시아계와 미국 원주민, 동성애자와 이성애자, 장애인과 비장애인, 모든 미국인이 대답을 해주었습니다. 미국은 붉은 주 (공화당 우세 주)나 푸른 주 (민주당 우세 주)의 집합도 아니고 단순한 개인들의 집합체도 아니라는 메시지를 세계에 보냈습니다. 지금은 물론 앞으로 언제까지라도 늘 우리는 미합중국인 것입니다...... 미국이 오늘날보다 훨씬 더 분열되어 있었을 때 링컨이 말했듯이, 우리는 적이 아니라 친구이고 동지입니다. - 2008년 11얼 4일, 미국 제44대 대통령 당선자 버락 오바마의 당선 연설에서

 링컨 대통령의 노예해방을 두고 남북전쟁에서 승리하기 위한 전략적 판단의 산물이라거나 그가 노예해방 자체보다는 미합중국이라는 중앙집권적인 연방주의를 유지하는데 정치적인 목표를 두었다는 등의 논란이 있다고 하더라도, 분명 그가 이룬 남북전쟁의 승리와 노예 해방, 그리고 그 과정에서 보여주었던 포용과 통합의 리더십은 위에서 인용한 글들처럼 미국이라는 역사속에 고스란히 살아서 숨쉬면서 굴곡된 역사 속에서도 꾸준한 인권신장을 이루며 강대국을 발전할 수 있는 원동력이 되었고, 결국은 현재의 버락 오바마 대통령이 흑인-정확히는 혼혈인-으로서 대통령의 자리에 오르게 만든 견고한 초석이었다고 할 수 있을 것입니다. 그리고 지극히 가난한 환경에서 자랐지만 왕성한 독서욕과 지식욕을 바탕으로 시골(?)의 변호사에서 주의회 의원, 연방하원 의원, 그리고 연방상원 의원이 되는 것에는 실패했지만 미국의 16대 대통령에 당선되기까지의 입지전적인 일대기는 그 자체만으로도 사람들에게 또 하나의 훌륭한 본을 보여주는 삶의 모습이기도 하고, 많은 사람들의 입에 회자되는 내용이기도 합니다.  

 500여 페이지에 이르는 두툼한 이 책도 링컨 대통령의 그런 삶을 다룬 책이기는 하지만 지금까지의 여러 책들이 말한 정치가나 입지전적인 위인, 또는 신앙인으로서의 링컨에 대해서 다루는 것은 아닙니다. 이 책을 통해서 저자가 링컨 대통령의 삶에 초점을 맞추는 부분은 문학과 언어라는 측면에서의 그의 삶의 과정을 살펴보는 것입니다. 그가 지독히도 가난한 삶을 극복하고 치열한 삶의 현장에서 여러 좌절스런 상황을 이겨내고 자신의 꿈을 성취한 원동력,  남북전쟁을 승리로 이끌고 노예 해방이라는 위대한 일을 이루는데 바탕이 되었을 소통과 화합의 리더십의 근원은 글읽기를 즐기고 또한 글쓰기를 즐겼던 독서와 글쓰기를 통해 길러진 '문학적 감성과 창의력'이 그 바탕이라는 것입니다. 어려서부터 손에 들어오는 책은 모두 다 읽고 외우기를 즐겨했던 소년은 자라면서 셰익스피어를 만나고, 번스와 바이런을 읽고, 스스로 시를 쓰고 에세이를 쓰면서 자신만의 정직하고 다듬어진 언어를 사용할 수 있는 능력을 자연스럽게 길렀고, 정치가로서의 자신의 글과 연설문에 그러한 능력을 훌륭하게 담았음을 보여주는 여러 자료들을 통해서 우리가 지금 존경스럽게 바라보는 링컨 대통령의 위대한 삶의 바탕에는 바로 언어 - 올바르고 정직한 말- 가 있음을 저자는 강조하고 있습니다. 읽기와 글쓰기와 말하기라는 측면에서의  링컨 대통령의 일생을 일관되게 추적하고 있다는 점, 그러한 논점을 통해서 링컨 대통령의 또 다른 면모를 읽는 사람들에게 설득하였다는 점, 그리고 현실에서의 정직하고 잘 다듬어진 언어의 중요성을 일깨우고 있다는 점에서 이 책이 다른 링컨 전기나 책들과 다른 신선함을 지니고 있다고 할 수 있겠습니다. 하지만 한편으로는 말과 글이라는 한가지 주제에 과도하게 집중함으로서 그러한 주제에 다양한 모습을 지니게 마련인 한 사람의 삶을 너무 정형화시키려고 했다는 느낌이 드는 면이 있고, 신앙이라는 측면에서 저자는 링컨 대통령을 이신론자 또는 성경이나 하나님을 결코 믿지 않은 단지 자신의 정치적 성취를 위해 신앙을 이용한 사람 정도로 반복하여 강조하고 있는데 이 부분도 인용되 글들을 대하다 보면 저자의 의향이 투영된 상당히 작위적이라는 느낌이 드는 것이 사실입니다. 

 오바마 대통령이 읽었다고 해서 화제가 되기도 하고, 링컨 대통령의 삶이 현재 우리 대통령의 삶과 닮은 면이 있다는 면에서 관심이 갈 수도 있겠지만, 무엇보다도 말이 권력자들의 입에서 나오는 순간 정직과 진실보다는 정치적 이익을 위해 이런 저런 속임수와 말장난으로 얼버무려지곤 하는 우리의 현실에서, 모름지기 한 사회를 통합하고 소통할 수 있는 소중한 능력으로서의 말의 정직성과 문학적인 감수성에 대한 모델로서의 링컨 대통령의 모습은 현재의 우리 사회에 많은 시사점을 던져준다는 생각입니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0)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우리의 어머니, 마더 데레사 - 마더 데레사 탄생 100주년 기념 전기
레오 마스부르크 지음, 김태희 옮김 / 민음인 / 2010년 8월
평점 :
절판


 마더 데레사..... 

 이젠 이 이름에 다른 어떤 수식어를 붙일 필요는 없을 것 같습니다. 살아있는 성녀, 가난한 자들의 어머니, 노벨상 수상자, 사랑의 선교회의 창립자 등등 많은 수식어로 이 이름을 꾸밀 수도 있겠지만, 이제 우리는 그냥 Mother Theresa라는 이름만으로도 그러한 많은 수식어들이 말하는 것보다 더 많은 것들을 느끼고 생각할 수 있을테니 말입니다. 대개 사람들은 자신이 가지고 있는 것들, 자신의 옆에 살아있는 사람들의 소중함을 망각하곤 합니다. 그리고 그것이 내 품안에서 사라졌을 때, 그 사람이 내 눈앞에서 사라졌을 때, 소중함을 절절하게 느끼곤 합니다. 아마도 그것이 사람의 본성일지도 모르겠습니다. 이 이름도, 그녀을 직접적으로 또는 간접적으로 알았던 많은 사람들에게 이젠 그런 의미를 담고 있을지 모르겠습니다. 이젠 직접 만나고 이야기하고 또는 방송이나 여러 매체 등을 통해서 소식을 들을  수 없는 사람이 되어 버렸기에, 더욱더 그녀의 삶에 담겼던 가치가, 그녀가 베풀었던 사랑이 소중하게 생각되는 것인지도 모르겠습니다. 오직 지나간 과거만을 더듬을 수밖에 없기에 기억속의 그녀의 삶은 더 소중하고 아름답게 각인되는 것인지도 모르겠습니다. 하지만 과거의 지난 이야기라고 하더라도 여전히 마더 데레사의 삶을 회상하는 이야기들과 책들은 현재의 우리에게 많은 것들을 가르치고 깨우치고 있는 것도 사실입니다.  

 이 책은 데레사 수녀의 일생을 담은 전기라기 보다는, 그의 삶을 옆에서 지켜본 사람이 쓴 에피소드 같은 이야기가 가득 담긴 책이라고 할 수 있을 것 같습니다. 전기라는 것이 한 사람의 태어남과 자라는 과정, 뜻을 세우고 일을 이루어가는 일생의 사건들을 나름대로의 체계에 의해 기록한 공식적인 성격의 책이라고 한다면, 이 책은 그러한 격식의 중요함보다는 데레사라는 한 사람의 섬기고 보살피는 삶에 담긴 지칠 줄 모르는 사랑과 따뜻함에 초점을 맞춘 사적으로 보이는 이야기들의 모음집이라고 할 수 있을 것 같습니다. 그래서 내용에는 딱딱하거나 틀에 매인 이야기들보다는 한 인간으로서의 데레사, 오로지 예수님만을 앞서 세우고, 모든 것을 하느님께 맡기고 자신의 삶이 온전히 하느님의  은혜의 통로가 되는 것에 자족해하던 한 사람의 모습이 고스란히 담겨 있습니다. 아마도 그녀를 바라보는 글쓴이의 존경과 감사와 경탄이 그녀의 삶을 더 따뜻하고 의미있는 사랑으로 그리고 있을지도 모르겠지만, 한편으로는 그녀의 삶 자체가 곁에서 그녀를 보좌했던 신부였던 글쓴이를 그리 감화시켰다는 것이 더 옳은 표현일것 같습니다. 스물 세편의 이야기 곳곳에는 기차여행 중에 '목마르다'는 예수님의 강렬한 부르심을 체험하고, 가난한 사람들 사이에서 스스로 가난한 삶을 살기로, 아무것도 소유하지 않기로, 그리고 하느님의 섭리와 인도를 완전히 신뢰하기로 결심하고 나섰던 육체적으로는 갸날프게 보이지만 영적으로는 위대한 걸음걸이를 내디뎠던 데레사 수녀의 삶속에 담긴 우리-특히 신앙인들-를 향한, 그리고 사람들을 향한 온화하지만 강렬한 하느님의 메시지들이 담겨 있습니다. 데레사 수녀의 말을 인용하여 읽는 이들에게 전하는 여러 이야기-또는 가르침 또는 깨우침-들은 메마른 이론이나 구호가 아니라 실제 삶속에서 생동감 넘치게 살아있었던 그녀의 삶을 훨씬 친밀하고 가깝게 느끼게 해주고, 곁에서 직접 겪었던 일들에 대한 기록은 데레사 수녀의 인간적인 면모 또한 진하게 느끼게 해줍니다. 아마 이러한 형식의 기록이 가지는 장점이라고 할 수 있을 것 같습니다. 

 마지막 장의 제목 '마더 데레사는 살아있다'처럼 그녀의 모습은 지금 볼 수 없지만, 데레사 수녀가 행한 삶과 사랑은 여전히 그녀을 알고 배우고 함께 했던 수녀들과 사람들을 통해서 살아있다고 할 수 있을 것입니다. 그리고 그러한 사람들 속에 살아있는 데레사 수녀의 모습을 통해서, 또한 더 궁극적으로는 그녀를 통해서 하느님께서 사람들에게 베풀고자 했던 사랑을 통해서 더 많은 버려진 영혼들이 위로를 받고 평안을 얻으며 궁극적으로는 구원에 이룰 수 있으리라는 소망을 가지게 됩니다. 또한 자신을 하느님의 연필이라고 여겼던 데레사 수녀처럼, 믿는 이된 나 역시도 하나님의 연필이 되기를 기꺼이 받아들이고 행할 수 있기를 ..... 

 - 하느님의 아름다움을 이해하기는 정말 쉬워요. 저 아래를 보세요! 하느님의 전능하심을 이해하는 일도 쉬워요. 그분은 이 모든 것을 창조하셨으니까요. 하지만 하느님의 겸허함을 이해하기는 어려워요. p72 

 - 우리가 얼마나 많이 주느냐가 중요한 것이 아닙니다. 우리가 이렇게 주면서 얼마나 많은 사랑을 거기 담느냐가 중요합니다. p85 

 - 여러분과 저, 우리는 아무것도 아닙니다. 여기에서 우리는 하느님의 무시무시한 겸허함을 보게 됩니다. 그분은 너무 위대하고 놀라워서 '아무것도 아닌 것'을 사용해서 그분의 '위대함'을 보여 줍니다. 바로 그래서 그분은 우리를 사용합니다. 우리는 단지 관들처럼 하느님의 은총을 흘러가게 하면 됩니다. p138 

 - 가장 가난한 사람들 사이에서 예수를 발견하기 위해 콜카타까지 올 필요는 전혀 없습니다. 가장 가난한 사람들은 여러분이 있는 바로 거기에, 그리고 아주 자주 여러분 자신의 가정 안에 있습니다. 그들을 찾아서 사랑하세요. 그들이 여러분 삶 속에서 예수님에 대한 여러분의 사랑을 볼 수 있도록. 여러분의 사랑의 실천적 행위를 통해서 말이예요. p176 

 - 신부님, 하느님은 제가 성공하도록 소명을 내리지 않으셨어요. 그분은 제가 충실하도록 소명을 내리셨죠. p219 

 - 신부님 우리가 하는 일이 기적이 아닙니다. 기적은 그런 일을 하면서 우리가 행복하다는 것입니다. p226 

 - 저는 천국이 어떨지 확실히 모릅니다. 하지만 우리가 죽어서 심판을 받을 시간이 되면, 하느님이 우리가 살아 있을 때 얼마나 많이 좋은 일을 했는지 묻지 않으시고, 얼마나 많이 사랑을 가지고 그런 행동을 했는지 물으실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p233

댓글(0) 먼댓글(0) 좋아요(3)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