위기 경제학 (반양장)
누리엘 루비니 & 스티븐 미흠 지음, 허익준 옮김 / 청림출판 / 2010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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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아마도 이 책의 발간이 많은 사람들의 이목을 끄는 가장 큰 이유는 저자 중 한 사람이 누리엘 루비니 교수라는 사실 때문일 듯 합니다. 2008년의 서브 프라임 모기지 사태 및 글로벌 금융위기의 발생을 정확하게 예측하고 또한 그 전개과정까지 소상히 설명해 낸 혜안이 있었던 그가 아직까지 금융위기의 그림자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이제는 회복이냐, 더블딥이냐의 혼돈으로 인한 공포에 억눌려 있는 세계 경제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고 있고 그에 대한 해법을 어떻게 말하고 있는지에 대한 관심이라고 할 수 있겠습니다. 이 책을 주시하는 많은 사람들의 눈길 속에는 그가 예측했던 것들만큼 그가 제시하는 위기에 대한 돌파구도 믿음직하리라는 기대도 함께 담겨 있겠지요.  

 2008년 발생한 글로벌 금융위기의 원인이 무엇인가? 여러가지 의견이 있겠지만 많은 사람들은 미국의 서브프라임 모기지 사태를 그 처음으로 꼽았던 기억입니다. 그보다 더 앞선 원인으로 자기 집을 소유하고자하는 아메리칸 드림을 부추겨 능력이 없는 사람들에게까지 집을 사게 만든 제도와 능력이상을 가지고자 했던 사람들의 탐욕을 지적하는 사람도 있지만, 크게 보면 한 가지의 원인을 세분한 것이 될 수 있을 것 같습니다. 그리고 이러한 원인에 대한 지적은 한편으로는 이번 위기가 반복적인 어떤 것이라기 보다는 블랙 스완과 같이 아주 특별한 그리고 예측하기 어려운 형태의 위기라는 설명으로 연결되곤 합니다. 하지만 이 책에서는 이번 위기의 근본 원인은 더 근원적인 곳에 있고, 지금까지 있어왔던 다른 경제위기에 동일한 형태의 반복일 뿐이며, 분명 예측 가능한 것이었지만 아무도 그러한 징조에 대해서 관심을 두지 않았을 뿐이라고 잘라 말하고 있습니다. 저자는 이번 위기의 근원에는 글로벌 금융기관들의 보수 체계와 구조 -즉 단기 성과에 근거한 과도한 성과급을 지급하는 시스템으로 인해 종사자들이 근시안적이 고위험 투자를 마다하지 않았다는 사실과 그에 대한 적절한 통제가 이루어지지 못하는 주주와 경영자 사이의 괴리-, 그리고 여러가지 채무에 대한 무분별한 증권화, 통제받지 않은 그림자 은행 시스템 등에 있다고 지적하고 있습니다. 서브프라임 모기지 사태는 그러한 근본적인 원인들이 쌓여 위기의 씨앗을 품은 상태에서 많은 사람들이 위기를 실제로 느끼게 겉으로 표현된 모습일 뿐이라는 것이지요. 그리고 그 이후는 신뢰상실과 공포로 인한 금융기관의 유동성 위기와 지급불능사태가 전지구적으로 확산되는 과정이었고, 결국은 그러한 금융위기가 실물경제에까지 악영향을 미친 결과라고 말하고 있습니다. 저자들은 이러한 인식을 바탕으로 이번 금융위기도 이전의 여러 경제 위기와 동일한 거품의 생성과 붕괴라는 예측 가능한 과정을 거치는 것으로 파악하고, 그 시작에서부터 전개과정 그리고 결과에 대해서 논리적으로 설명하고 있습니다. 물론 그에 대한 해법도 제시하고 있는데, 그러한 과정에서 현재의 우리가 관심을 가지게 되는 것은 세계경제가 느리게라도 회복단계에 들어설 것인가 아니면 요즘 회자되고 있는 더블딥으로 가라앉을 것인가하는 부분일 것 같습니다. 저자는 W자형 위기보다는 U자형 회복에 더 무게를 두는 것처럼 보이는데, 그 기본전제는 이 책에서 말하는 여러가지 해법들 -왜곡된 금융종사자들의 보수시스템의 개선, 무분별한 증권화 과정의 정비, 신용평가기관들의 개선, 구제조치로 형성된 대마불사라는 도덕적 해이의 극복 및 대형 금융기관의 해체, 균형잡힌 경상수지의 유지 등-이 적절하게 실시되어, 거품의 원인을 제거하고 과도한 부양책으로 인해 발생한 정부의 재정적자를 적절하게 통제한다는 가정하에서 입니다. 물론 미국 및 중국을 비롯하여 세계 각국의 전지구적인 공동노력의 중요성도 지적하고 있습니다....  

  마지막 '전망' 편에서는 저자들은 U자형 회복에 더 무게를 주는 의견을 견지하며, 미국, 일본, 유럽, BRIC 등의 국가가 지니고 있는 위험요인과 극복요인들을 논하고 있습니다. 또한 어떻게든 더 나은 국면으로 발전하리라는 희망섞인 전망과 함께, 각국이 자국의 이익만을 내세운다면 결국은 공멸의 위험성이 있음을, 그래서 서로 공조하는 자세의 중요함을 강조하고 있습니다. 우리의 입장에서는 저자가 BRIC의 뒤를 이을 국가군의 처음에 우리나라는 거론하며, 정교한 첨단기술로 무장하고 혁신적이며 역동적이고 숙련된 노동력을 가진 가장 강력한 경쟁자로 이야기하는 부분이 아마도 제일 관심이 가는 부분일 것 같습니다. 문제는 남북분단에서 야기되는 위험, 특히 북한의 붕괴라고 지적하기도 하는데, 그동안 우리가 쌓아온 노력과 열매에 대한 기분좋은 평가임에는 틀림없는 부분입니다. 물론 우리앞에 놓인 문제를 지혜롭게 헤쳐나갈수 있으리라는 희망을 잃지 않는다면 말입니다.  

 지나간 세계의 크고 작은 경제위기를 분석하고, 그에 바탕을 둔 현재의 글로벌 금융위기의 원인에 대한 시원스런 지적과 그 전개과정에 대한 합리적인 설명, 그리고 해법에 대한 단호한 주장들은 읽는 사람으로 하여금 현재의 위기상황에 대한 이해의 폭을 넓힐 수 있게 한다는 면에서 마냥 바라보고만 있어야했던 답답함을 해소할 수 있게 해주는 측면이 있습니다. 또한 지금의 위기가 전혀 어찌하지 못하고 당해야만 하는 블랙스완과 같은 위기가 아닌 지금껏 반복되던 위기의 하나라는 면에서 이러한 위기를 모면할 더 나은 방법들을 찾을 수 있으리라는 기대도 함께 안겨주기도 합니다. 하지만 저자가 주장하는 해결책들이 세계, 또는 한 국가라는 단위에서 계획되고 시행되어야하는 것들이기에, 그 위기 가운데 움츠리고 있는 각각의 개인들이 어찌해야 하는지에 대해서는 도움이 되는 정보들이 거의 없다는 점은 무척이나 아쉬운 점입니다. 아마도 지금의 위기는 그런 개인의 범위에서 논하거나 대처하기에는 너무 크고 넓게 자란 것이라는 이야기도 되겠지만, 책을 다 읽고 나서도 '그럼 나는 어찌할까?' 하는 의문에 명쾌한 답을 얻지 못하는 것은 아쉬움이 됩니다. 더 나은 개인들의 삶을 위해서, 이번 위기 앞에 선 전문가들과 정책입안자들이 이러한 광대한 위기를 또한 광대한 개혁의 계기로 삼아 더 나은, 그리고 더 안정된 금융시스템과 경제 시스템을 구축할 수 있는 지혜와 결단력을 가질 수 있기를 바랄 뿐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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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를 찾아온 철학씨 - 문득 되돌아보고픈 인생
마리에타 맥카티 지음, 한상석 옮김 / 타임북스 / 2010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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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철학이란 무엇인가? 아마 많은 사람들은 나처럼 'philosophy'라는 단어를 떠올리고는 그 어원을 따라 '지혜에 대한 사랑'이라고 대답하지 않을까 합니다. 하지만 정신을 가다듬고 '지혜'라는 것은 무엇이고 '사랑한다 또는 좋아한다'는 것은 무엇인가 또는 철학을 한다는 것은 어떻게 하는 것을 말하는가 등의 물음에 이르면 이내 말문이 막히는 것도 사실입니다. 그래서 많은 사람들에게 철학이라는 단어가 낯선 것은 아니지만, 철학이라는 것은 나와 다른 사람, 또는 특별히 그 학문에 뜻을 둔 사람, 또는 앞선 시대를 살았던 칸트나 헤겔, 플라톤이나 아리스토텔레스, 소크라테스 같은 사람이 했던 것이라고 치부해 버리고, 옆의 동료가 철학을 논한다면 '개똥철학'이라고 놀릴지도 모를 일입니다. 더더구나 현대에 이르러서는 철학이 말하는 지혜보다는 지식적인 측면에서의 앎이 더 중요하게 생각되고, 더더구나 경제적인 이득을 얻을 수 있는 지식이 최우선이 되는 것이 사실이고 보면, 겨우 어원에서 그 정의를 유추해내고 철학자 몇 사람의 표면적인 사상이나 유명한 말 몇 마디로 철학을 이해하는 일반인들에게 철학이라는 고상한 학문이 들어설 자리는 없어보입니다. 실제로 시중의 일반인을 상대로 하는 대부분의 철학서적들도 철학자들의 난해한 저술들이거나 철학자들의 사상을 시대순 또는 사조별로 나열한 입문서라는 사실 역시 일반인들의 철학하기에 대한 장벽이라고 할 수도 있겠습니다.  

 '좋은 삶이란 무엇인가?' 아마도 이런 질문이라면 대부분의 사람들은 어렵지 않게 자신의 생각을 말할 수도 있을 것 같습니다. 저자는 책의 첫머리를 바로 이 질문으로 시작합니다. '철학이란 무엇인가?'가 아니라 '좋은 삶이란 무엇인가?' 이 질문과 책을 쓰게 된 동기가 되었다는 대학생 조(Joe)의 대답 '내게 좋은 삶이란 인생의 모든 것에서 충동적으로 나오는 반응을 강요당한다는 느낌 없이, 실제로 또 조리 있게 생각할 시간을 갖는 것입니다.'를 통해서 저자는 자신이 우리에게 안겨주고 싶어하는 철학에 대해서 말하고 있습니다. 일상에서 겪는 것들에 대해서 분명하고 조리있게 생각하고 스스로를 돌아볼 시간을 갖고 그러한 생각과 성찰을 대화를 통해 다른 사람들과 나누는 시간 속에서 좋은 삶을 이해하고 누리는 것..... 이것이 바로 저자가 말하는 우리가 누릴 수 있고, 또한 누리기를 바라는 철학에 대한 설명입니다. 저자가 이야기하는 철학이란 바로 우리의 삶, 물질과 단절과 불안 등으로 표현할 수 있는 현대문명의 차가움 속 어디에선가 길을 잃은 우리의 삶에 좋은 삶이란 무엇인가를 일깨우고 가르쳐주는 것이라고 할 수 있을 것 같습니다. 그렇다면 이 책은 주어진 열가지 주제를 가지고 생각하기와 함께하는 모임을 통해서 더 좋은 삶으로 나아가기를 연습하는 철학 안내서라고 해야 할 듯 합니다.   

 저자가 제시하는, 우리가 좋은 삶의 끈을 엮어가기 위해 먼저 연습하기를 바라는 열가지 주제는 단순함, 의사소통, 시각, 유연함, 공감, 개성, 소속, 평온함, 가능성, 그리고 기쁨입니다. 지금보다 덜 도시화되고 산업화된 시절에는 미덕으로 생각되었던 주제들일 수 있지만, 현대인들의 삶에서는 대부분 뒤로 밀려난 것들이고 언급된다고 하더라도 철저하게 계산되거나 의도적인 면이 강조된 채 본래 의미가 많이 탈색되어 있다는 생각이 드는 주제들입니다. 하지만 저자는 우리에게 필요한 좋은 삶을 위한 주제로 이 열가지 주제들을 우리에게 제시하고, 각 주제에 대한 자신의 생각과 경험에 대해서 먼저 이야기합니다. 이어서 두사람의 철학자를 등장시켜서 각 주제에 대한 조금더 철학적이고 깊이있는, 한편으로는 관점이 다른 두가지 생각을 읽는 이가 경험하게 합니다. 단순한 철학적인 사상이 아닌 우리가 좋은 삶을 배우고 실천하기 위해서 각 주제에 대한 철학하는 방식을 간접적으로 느껴볼 수 있는 부분이기도 합니다. 각 주제의 철학자 소개에 이어지는 '정답없는 질문'과 '철학 도구들'은 우리가 수동적으로 읽는 것에서 벗어나 주어진 주제에 대해서 분명하게 생각하고, 음악을 듣고 흥얼거리거나 시를 낭독하고 쓰기, 글을 읽고 말하기, 영화나 영상자료를 보고 생각하기, 그리고 실제 우리의 행동을 통해서 몸으로 철학하기를 위한 안내로 가득히 채워져 있습니다. 바로 철학이 우리 삶에 찾아들어오게 만들어 주는 부분이라고 할 수 있겠습니다.

 수동적으로 읽는 것에 익숙하고 독서라는 것이 함께 하기보다는 지극히 개인적인 면이 강하기에 저자가 제시하는 생각하기나 철학의 도구를 활용하는 것이 처음에는 분명 쉬워보이지가 않습니다. 더더구나 모임을 통해서 서로 대화를 나누는 시간을 가질 것을 권하고 모임을 이루기 위한 요령까지 안내되어 있고, 저자가 처음부터 서로 나누는 대화와 소통을 중요하게 말한 것까지 고려한다면, 이 책을 통해서 안내하는 좋은 삶을 위한 철학여행을 위해서는 여느 책처럼 한번 들고 몇시간 또는 며칠에 걸쳐 읽어내고 책꽂이에 장식해 둘 책은 분명 아니라고 하겠습니다. 더디더라도 주제 한가지라도 세심하게 읽고 저자가 제시하는 질문들과 철학의 도구들-저자가 제시하는 자료들이 우리가 모두 구할 수 있는 것들은 아닙니다-을 몇 가지 만이라도 차분히 활용한다면, 그리고 주위사람들과 이 주제와 도구들을 공유할 수 있다면 분명 저자가 말하는 좋은 삶, 무엇인가 바로 와 닿는 그런 것은 아닐지라도 어느 순간 대단히 중요한 것을 얻었음을 느낄 수 있으리라는 생각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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생명전쟁 - 생명 연구의 최전선에서는 무슨 일이 벌어지는가
윌리엄 F. 루미스 지음, 조은경 옮김 / 글항아리 / 2010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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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생명과학 그 중에서도 배아줄기세포에 대한 이야기를 들으면, 우리 국민들 대부분은 황우석 박사 사건이 먼저 떠오를 것 같습니다. 세계에서 최초로 염색체가 제거된 사람의 난자에 체세포의 핵을 투입해서 환자 맞춤형 배아줄기세포를 만들었다는 발표가 나올 때까지만 하더라도 우리 국민 대다수는 다른 선진국에 앞서서 우리나라가 이 분야에서 첨단을 걷게 되었다는 사실에, 불치병이 곧 치료될 수 있는 길이 열리고 그러한 성공이 가져올 경제적인 이익이 어떤 것인가 등에 대해서 열광하였으니까요. 사건의 결말은 엉뚱하게도 논문이 조작되었고 우리 대부분은 백일몽 속에서 몇 개월을 헤메었다는 허망함으로 마무리 되었지만, 많은 사람들이 그동안 낯설기만 하던 난자에 체세포를 집어넣는 기술에 대해서, 그리고 줄기세포와 그것을 이용한 질병의 치료 등에 대해서 이해하고 어려운 용어들을 사용할 수 있는 계기가 되었던 것도 사실입니다. 하지만 그러한 지식의 이해못지 않게 우리들에게 일어난 더 중요한 일 중의 하나는 그러한 과정을 통해서 배아줄기세포 연구가 지닌 몇몇 도덕적인 문제들이 지적되었다는 것과 그러한 면에 대한 우리의 무관심을 일깨운 것이라고 할 수 있을 것입니다. 생명이란 것이 단순히 남들보다 기술 경쟁에 앞서서 막대한 경제적인 이익을 취하는 수단이 아니고, 그에 대한 연구는 모든 면에서 도덕적, 윤리적 정당성을 확보해야 한다는 것, 그리고 난자와 정자의 조작이나 유전자 조작 등 생명 현상에 대해 인위적인 조작을 가할 때는 생명의 가치에 대해서 진지하게 고민하고 그 한계에 대한 사회적인 합의가 필요한 문제라는 사실에 대해서 많은 사람들이 자각할 수 있는 기회가 되었으니 말입니다.  

 하지만, 이 책은 윤리적, 도덕적 또는 정치적인 면에서의 생명 현상에 대한 논란을 논하는 책은 아닙니다. 생물학자의 입장에서 순전히 생물학적인 관점-개인적으로는 도덕이나 윤리, 정치적인 생각이 배제된 순전한 생물학적인 관점이 존재한다고 생각하지는 않지만 적어도 표면적으로라도 생물학적 사실에 근거한 관점이라는 의미-에서 생명의 탄생과 진화, 그리고 그러한 생명에 대한 현대의 조작, 그리고 생명의 미래에 대해서까지 저자 자신의 의견을 피력하고 있습니다. 생명공학 및 유전학 등의 발전으로 생명체에 대한 이해에 그치지 않고 이제는 각종 생식세포나 유전자에 대한 조작, 생명의 발생과정에 대한 인위적인 관여가 가능해진 현대에 이르러서는 낙태나 안락사, 인공수정과 같은 문제 외에도 배아줄기세포, 유전자 치료, 유전자 조작 식물에 대한 논란이 있고, 결국 언젠가는 인간복제라는 문제도 논란거리가 되는 시대가 올 것입니다. 1장에서 4장까지에서 저자는 생명의 가치, 인공수정, 배아줄기세포, 유전자 조작 및 인간 게놈 정보 등, 생물학의 첨단분야에서 야기되는 생명윤리에 대한 논란들을 생물학적인 사실들에 근거한 관점에서 다루고 있습니다. 개인적으로는 앞부분의 4개의 장이 이 책이 가진 장점을 가장 잘 드러낸 부분이라는 생각입니다. 이 후의 5장의 '사회생물학', 6장의 '의식'과 뇌, 사고와 기억, 7장의 '생명들의 사회학적 게임'에 대한 부분은 아무래도 지금까지 생물학이라는 관점에서 이러한 문제들을 접해보지 못해 낯설다는 느낌이 들기도 하지만, 한편으로는 너무 과도한 주제의 확장으로 인해 산만함, 또는 단편적이라는 느낌이 들기도 합니다. 그리고 8장의 '생명의 기원에서 인간의 진화까지'의 내용은 진화론이 생명의 탄생에서 현재까지의 많은 부분을 설명하기는 하지만 과학적인 근거에 의해 모든 것을 완벽하게 설명하고 있는 것은 아니라고 생각하는데, 저자는 불완전하거나 추측에 의한 부분들까지도 완벽하게 사실처럼 -아직 증명되지는 않았지만- 이어서 하나의 완벽한 이야기로 재구성하고 있어 불편함마저 느껴집니다. 9장의 '소멸할 것인가 생존할 것인가'에서는 생물학자의 관점에서 지속가능한 인류공동체를 위한 생물학을 이용한 생활개선, 지구 오염과 인구 팽창에 대한 위기감의 표현과 이에 대한 대책을 이야기하고 있는데, 세계 인구를 현재의 1/3 수준으로까지 줄이는 것이 필요하다는 저자의 이야기는 생물학적인 관점에서 인구 증가가 가져온 위기에 대한 심각성을 짚어보게 하는 면도 있지만, 한편으로는 너무 극단적이라거나 공허(?)하다는 느낌이 들기도 합니다. -물론 이러한 느낌은 지구 오염과 인구 팽창이라는 문제에 대해서 저자만큼의 혜안이 없기에 순전히 한 개인의 느낌으로 치부할 수 밖에 없겠지만..... - 

 낙태나 안락사 문제는 아직도 우리 사회의 중요한 논쟁거리 중의 하나입니다. 정답을 말할 수 없는 문제이고, 한편으로는 여러 특별한 각각의 상황이 존재하기에 하나의 대답을 만들기가 힘든 문제이기도 합니다. 하지만 적어도 생명에 대한 생물학적인 사실들에 대한 이해를 가지고 이러한 문제에 접근한다면 좀더 나은 논쟁을 할 수가 있고, 또한 자신과 다른 주장을 하는 사람들에 대해 이해할 수 있는 여유와 설득하기 위한 기회를 더 가질수도 있을 것이라는 생각을 합니다. 그리고 저자가 이 책에서 언급한 배아줄기세포, 유전자 치료, 인간게놈의 활용, 인류의 지속을 위한 미래의 계획에 이르기까지 많은 논쟁의 현장에도 종교적인 신념이나 윤리 도덕적 판단, 많은 사람의 지지를 얻기위한 정치적인 판단에 이르기까지 올바른 판단을 위한 근저에는 기본적으로 생물학적인 사실 자체에 대한 이해가 필요하다는 생각입니다. 그런 의미에서 이 책이 언급하는 생명에 대한 다양한 내용들은 매우 유용하고도 도움이 되는 것들이라고 감히 말할 수 있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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과학적 경험의 다양성 - 신의 존재에 관한 한 과학자의 견해 사이언스 클래식 16
칼 세이건 지음, 박중서 옮김 / 사이언스북스 / 2010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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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과학에 대한 넓은 지식과 혜안을 담은 저술들로 일반인들에게 다른 여느 유명 과학자 못지 않은 영향을 끼치고 인기를 얻은 저자의 능력을 인정하기는 하지만, 신앙인으로서 이 책을 읽는 시간 내내 마음 한쪽에 들어앉아있는 불편함은 어찌할 수 없었습니다. 자신의 과학적 탐구의 여정을 통해서 신에 대해서 이야기하고는 있지만, 면밀하게 따져본다면 저자는 신의 존재를 인정하지 않는 무신론자라는 생각을, 그리고 저자가 말하는 신의 존재나 종교의 역할이라는 것은 인류의 문제를 해결하기 위한 방편으로서의 의미 이상은 아니라는 생각을 지울수가 없기 때문입니다. 물론 저자는 이 우주를 지탱하고 물리학적인 현상들이 유지되는 세상의 배후에 있는 단순한 법칙이라는 의미를 신으로 생각한다면 자신은 그 존재를 인정한다고 말하고 있습니다. 하지만 일반적으로 기독교나 유대교, 그리고 이슬람교에서 말하는 인격적인 존재로서 자신의 창조물들의 세상에 간섭하는 신의 존재는 거부하고 있습니다. 이유는 과학이라는 이름으로 여러 물리법칙들은 증명이 가능하지만 종교에서 주장하는 그리고 그 신을 믿는 사람들이 체험하는 그런 신의 존재는 다른 이들에게는 동일하게 증명되지 않는 주관적인 것들이라는 것 때문입니다. 그리고 저자가 화학물질들이 그러한 종교적인 체험들과 비슷한 경험을 유발할 수 있다는 이야기를 하는 것을 보면, 그러한 종교적인 체험이라는 것은 단지 일상적이지 않은 -또는 비정상적인- 자극이나 반응의 결과일 뿐이라고 생각하는 듯 합니다. 적어도 과학자로서 그리고 그러한 과학을 기반으로 하는 저술들로 일반인들을 과학의 세계로 인도한 사람으로서의 관점에서 저자는 종교에서 말하는 신의 개념을 받아들이지도 않고, 인정하지도 않고 있습니다. 물론 완곡한 어법으로 종교에서 말하는 신의 존재에 대한 어떤 과학적인 증거도 발견할 수 없기 때문에 자신은 그에 대해서는 진지하게 고려해 보지 않았다는 식으로 표현하고 있기는 하지만...... 

 1985년 스코틀랜드에서 열린 '자연 신학에 대한 기퍼드 강연'의 기록을 엮은 이 책은 저자의 이력에 어울릴만하게 우주에 대한 지금까지의 축적된 방대한 과학적인 사실들을 통해서 신과 인간의 존재에 대한 탐구를 담고 있습니다. 저자는 이 강연을 통해서 광대한 우주와 그 안에 담긴 우리 은하계와 태양계, 그리고 그 방대한 세계에서 밝고 푸른 작은 점에 불과한 지구위에 하찮지만(?) 다른 한편으로는 위대한 생명을 지탱하고 있는 우리의 모습에 대한 자각을 통해서 창조와 신의 존재, 우리의 존재의 이유와 의미에 대한 한 과학자로서의 자신의 견해를 거침없이 펼치고 있습니다. 물론 종교인으로서의 견해가 아닌 철저하게 관찰과 증명가능한 과학적 사실들에 입각한 관점에서 그러한 물음들에 대한 답을 구하고 있습니다. 앞에서도 언급했듯이 그런 관점에서의 신의 존재에 대한 저자의 생각은 종교가 말하는 그런 신의 증거는 우주 어느 구석에도 존재하지 않는다는 것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저자의 관점은 철저히 과학적인 것들에 입각한 것이기도 하지만 한편으로는 철저히 물질적인 면을 고수한다는 점도 지적해 두어야 할 것 같습니다. 7강의 종교적 경험에 대한 강의 내용에서 언급한 종교적 체험과 약물 등을 사용한 경험의 유사성에 대한 이야기나 심령술이나 영혼, 정신세계에 대한 언급을 보면 그 모든 것을 물질적인 측면에서 설명할 수 있다거나 물질적인 증거가 없는 주관적인 의견에 불과하므로 과학적으로 논할 가치가 없다는 생각을 여과없이 표현하고 있는데, 이는 곧 과학이 다룰 수 있는 물질적으로 설명 가능한 것으로 논의의 범위를 제한하고 있다고 할 수 있을 것 같습니다. 광활한 우주와 그 안에 담긴 별들을 보면서 경이를 느끼지만 그것이 우주 자체의 광활함과 그 체계를 유지하는 법칙들의 정교함 그리고 우리 지구와 생명으로서의 인간 자신에 대한 미미함 등에 대한 느낌으로서의 경이로움이지 그러한 천지만물을 만든 존재, 그러한 것들의 운행을 간섭하는 존재, 그리고 지구의 인간들에게 인격적인 교재를 원하는 그러한 존재에 대한 피조물로서의 경이로움은 아니라고 할 수 있겠습니다.  

 중세시대까지 서양에서는 종교가 모든 것을 설명하려고 했고, 모든 사람이 그 권위에 복종하도록 강요하였습니다. 하지만 세상의 모든 것이 되려고 했던 종교는 그에 반하는 명백한 과학적인 사실들이 확인되면서 세상을 설명하는 권위있는 자리를 과학에 물려주어야만 했습니다. 그래서 현대에 이르러서는 대부분의 사람들은 종교가 말하는 우주론은 그냥 신화 취급을 하지만 과학이 발견해서 발표하는 블랙홀이니 우주의 팽창이니 하는 것들에 대해서는 신뢰의 눈길을 보내며 경이롭게 받아들입니다. 저자가 말한대로 누가 보더라도 확연하게 증명되고 설명될 수 있는 과학적 방법론에 대한 지지가 그 바탕에 깔려 있는 것입니다. 그리고 한편으로는 중세에 종교가 과학을 말살하려고 하였듯이 현대에 이르러서는 역으로 과학이 종교를 반박하고 그 중심에 있는 신의 존재에 대한 공격을 마다하지 않는 모습을 보기도 합니다. 과학적인 입장에서 저자처럼 신의 존재에 대해서 수긍할 수 없기 때문일 것입니다..... 기독교에서는 인간에 대한 신 -하나님-의 계시를 특별계시와 자연계시로 나누어 설명하곤 합니다. 성경이라는 경전을 통해서 자신의 존재를 알리는 것을 특별계시라고 하고 우리 주위의 자연계를 통해서 우리가 느끼게 되는 경이로움 등에 담긴 것이 바로 자연계시입니다. 그것들을 통해서 하나님의 존재를 인간이 느낄 수 있다는 것입니다. 저자가 행했던 '기퍼드 강연'은 바로 자연계시를 통한 하나님의 존재에 대한 탐구를 목적으로 하는 명사들의 강연이라고 할 수 있을 것입니다. 하지만 책의 내용으로 보아 저자는 자연계시라는 측면에서 종교인들이 말하는 신의 존재에 대해서는 동의하지 않고 있습니다. 그런 신은 증명되지 않았으므로 믿을 수 없다는 것이지요. 그리고 이 지점에서 과학지식을 어느 지점까지 인정하고 받아들일 것인가에 대한 신앙인으로서의 고민(?)이 시작됩니다.  과학이 말하는 많은 부분들이 분명 타당한 부분들이 있고, 과학의 탐구 분야가 넓어질수록 종교가 말할 수 있는 부분들은 더 좁아질 것이고, 한편으로는 창조론에 이은 지적설계론이 종교에 대한 과학의 이러한 공격에 대항하는 것은 알지만, 철저한 과학자와 종교인 사이에는 서로 논쟁하기에는 좀더 근원적인 관점의 차이라는 것이 존재한다는 생각이 듭니다. 과학이 '왜'에 대한 물음에 대해서 대답할 수 있는가? 또는 과학적 방법론이 신의 존재를 탐구할 수 있는 것인가? 중세의 종교가 그러했듯이 앞으로는 과학이 모든 것들 설명할 수 있다는 권위를 내세우며 그러한 권위를 인간사의 모든 면에서 주장할 수 있을 것인가? 등의 질문에 종교와 과학이 추구하는 목표가 다르다는 것, 사물과 세상을 다루는 관점의 차이가 있다는 사실을 담고 있다고 할 수 있을 것 같습니다. 개인적으로는 과학이 무척이나 성공적인 방법론이기는 하지만, 다른 여러 가능성들을 희생하면서 이룩한 인간이 만들어낸 하나의 성공적인 체계화의 산물이라는 생각을 합니다. 여기서 가능성의 의미는 진화론에서 인간이나 영장류가 손가락이 여덟개나 열두개가 아닌 열개를 가진 존재로 진화했다는 사실에 담긴 그러한 의미에서의 가능성의 의미와 과학이 오로지 물질적인 것, 측정 가능한 것 등 만을 탐구영역으로 삼아 발전한 것이라는 의미에서 종교에서 말하는 정신적인 것, 영적인 것 등의 영역에서는 아직까지 의미있는 발전을 이루지 못했다는 의미에서의 여러 가능성 중 물질적인 세계에 대한 하나의 성공적인 체계화라는 의미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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죽기 전에 꼭 가봐야 할 여행지 - 누구나 한번은 꼭 가봐야 할 대한민국 핵심 여행지, 개정증보판
이두영 지음 / 랜덤하우스코리아 / 2010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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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죽기 전에 꼭 가봐야 할....'이라는 제목과 '누구나 한번은 꼭 가봐야 할.....'이라는 부제가 평소라면 여행서에 아무런 관심도 없다가 휴가철이라는 분위기에 휩쓸려 '그럼 어디 한번.....'이라는 심보로 이 책을 드는 내게 무언의 압박 같은 것을 강하게 주고 있습니다. 집 나가면 고생이라는 옛말을 천성적으로 받들고(?) 사는 나로서는 사람들이 말하는 여러 여행지들에 대한 멋스러운 감흥이나 찬탄들이 매번 '그저 그런데....'라는 평범함으로 끝난 적이 여러 번인데, 그 이유를 곰곰히 따져볼라치면, 여행에 필요한 약간 고조된 감성지수의 부족, 작은 것도 크게 부풀릴 줄 아는 허풍 능력의 결여, 그리고 여행지에 대한 이해를 위한 사전 지식의 필요성에 대한 이해부족 등등... 여러가지 단점들과 더불어 일상을 떨치고 세상을 있는 그대로 바라보고 즐길 줄 아는 여유로움의 결여가 문제가 되지 않나 싶습니다.   

 저자는 이 책을 통해서 우리나라 여행지 33곳을 바다와 산과 강과 꽃이라는 네 가지의 주제아래 소개하고 있습니다. 한곳당 6-8페이지의 분량으로 멋지다고 표현할 수 밖에 없는 사진들과 마음이 담긴 글, 그리고 간단하게 주변 볼거리, 맛집, 숙박에 대한 정보까지 소개하고 있습니다. 읽는 이의 입장에서, 그리고 이 책을 소개서 삼아 나설려는 사람의 입장에서는 너무 간단하다고 생각할 수도 있겠는데, 다시 곰곰히 따져 보면 저자가 이만큼의 소개를 하려고 발품을 팔았다면 조금 과장한다면 적어도 한 곳당 십여번은 길을 따라가며 여기저기를 기웃거리며 소개하는 여행지의 멋과 정을 맛보지 않았을까 하는 생각이 들어, 이내 너무 간단하다는 어이없는 생각을 머릿속에서 지웁니다. 그리고 여행이라는 것이 다른 사람의 느낌을 그대로 따르는 것이 아닌 자신이 스스로 느끼고 그 안에서 멋과 맛을 찾아가는 과정이라고 생각한다면, 저자가 이 책을 통해서 '나는 이곳에서 이런 맛과 멋을 보았소'라고 소개해 주는 것만으로도 훌륭한 안내서가 되어 준다는 생각에 이르게 됩니다. 결국 저자가 죽기전에 꼭 가봐야 한다고 할 만큼 자신있게 소개해 주는 여행지들을 내 발로 찾아가서 내 눈으로 보고 내 마음으로 느끼고, 그 안에서 나만이 간직할 수 있는 추억과 느낌을 만들어 낸다면, 그때서야 저자가 말하는 한번은 꼭 가봐야 할 곳이라는 말을 이해할 수 있겠지요. 

 나같은 사람이 일년에 두번쯤 여행을 나선다고 해도 저자가 소개한 곳을 모두 갈려면 십오년이고 1년에 한곳씩이라면 30여년이니, 정말 죽기전에야 다 가볼수 있을만큼 많은 곳이라는 생각도 문득 듭니다. 물론 저자는 그런 의미로 제목을 붙이진 않았겠지만.....^^  저자는 자신이 소개한 여행지들을 더 많은 사람들이 찾아가보고 우리 산천의 아름다움을 느끼고 알 수 있기를 바랐겠지만, 아마도 33곳 모두를 자신처럼 훑고 다니기를 바라지는 않을 것 같습니다. 무작정 자신이 소개하는 여행지를 보러 다니는 것 보다는 읽는 이들이 자신의 책을 통해 소개받은 한두곳의 여행지를 통해서 독자 자신만의 멋과 향을 느끼고 배워서, 저자가 소개하는 죽기 전에 가봐야 할 여행지가 아닌 독자 스스로 당당하게 소개할 수 있는 죽기 전에 가봐야 할 여행지들을 하나, 둘 만들어 갈 수 있기를 더 바라지 않을까 하는 조금 엉뚱하기는 하지만, 나름 진지한 결론을 내려봅니다.  

 사람들은 제각각 자신만의 멋진 곳을 마음 속에 간직하고 있을 것입니다. 다른 사람에게는 그닥 멋진 곳이 아니더라도 자신만의 삶의 기억과 추억들이 얽힌 곳이라면 그곳은 그 누구의 무엇보다도 더 소중한 장소가 될 수 있을 것입니다. 그런 의미에서 생각한다면 낯선 여행지를 그냥 한번 훑고서 판단하는 것은 여행의 의미를 만들지 못하는 초보자의 눈길일지도 모르겠습니다. 그곳에 담긴 것들의 낯섦이 사그라들고, 그 안에 사는 사람들의 삶의 모습이 이해될 때까지 머물기도 하고 다시 찾아보기도 하는 여유로움 속에 아마도 모든 사람이 원하는 멋진 여행지의 모습이 담겨 있지 않을까 하는 생각이 들기도 합니다. 이번 여름은 바로 그런 자세로 저자가 소개하는 여행지의 발자취를 더듬어 가보는 것도 좋을 것 같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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