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 사람을 보냈다.

공부하기 위해서 성공회대로 간다.

얼마나 걸릴지 모르는 공부가 그녀에게 많은 교훈이 되었으면 한다.

오랫만에 어둔이님과 밤늦도록 술을 마셨다.

이젠 얼굴에 머리에 어느듯 세월의 흔적이 느껴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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파란여우 2007-03-01 14:59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어둔이님은 무탈하게 안녕하시죠?
지난 추억의 시간에 묻어 안부를 묻습니다.

달팽이 2007-03-02 12:54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크게 불러 보세요.
혹 자고 있는 어둔이님이 눈비비고 나올런지도..
 

빨리 빨리 하나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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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로그인 2007-02-25 19:28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12821.. 12828..
음..


달팽이 2007-02-26 10:21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ㅎㅎ, 숫자로 잠시 한사님을 궁금하게 하였군요..
제가 지금까지 산 날의 수입니다. 한사님.
 

  조주 스님께서 공부가 익으신 뒤 천하를 한 바퀴 돌면서 많은 가르침을 제자들에게 내리셨다. 그분의 제자들이 전국에 많이 있기 때문이다.

  스님께서 중국 산동성의 어느 암자에 있는 친구를 찾아가셨을 때의 일이다. 친구의 12살 난 사미승이 밀떡 두 개 반을 쟁반에 받쳐들고 들어왔다. 조주 스님이 손님이시니 밀떡을 먼저 올릴 줄 알았는데 자기 스님에게 먼저 한 개를 올린다. 조주 스님께서 다시 생각하시길, 이제 남은 한 개 반 중에 한 개는 당신께 올리고 반 개는 사미승이 먹을 줄 알았는데 조주 스님께서는 드리지 않고 한 개 반을 자기 앞에 당겨 놓고 먹는다.

  남을 가르치기 좋아하는 조주 스님인지라 친구에게 핀잔을 주었다.

 "여보게 자네  저 아이 잘 가르치게."

친구가 대답했다.

 "남의 아이 버릇 고치다 잘못하여 아이 버리기 싫네."

 그때 조주 스님은 크게 깨치셨다. 내가 수많은 사람을 제자로 두고 잘못 가르친 일이 얼마나 많을까 하고 뒤돌아보게 되셨다.

 그 어린 사미는 도인을 깨치게 한 공덕을 지었다.

 

  남을 가르쳐야 할 입장이 되었을 때 부처님 마음 즐겁게 해드리기 위해 심부름하는 마음으로 그네들을 만지면 밝은 일이나, 내가 만지고 내가 가르친다면 내 아상이 작용하여 배우는 이들은 거부감을 느끼고 또 가르치는 이의 그림자를 받게 된다. 그때 서로 어두운 업보들이 충돌하면 밝은 일은 못된다.

  흔히들 가르친다는 미명 아래 얼마나 남을 구속하고 자신의 닦지 못한 독심으로 얼마나 남을 괴롭히는가! 완벽하신 부처님의 경우라면 삼세를 혜안으로 보시고 그 사람이 지어 온 바를 참작하여 밝게 이끌어 가시겠지만 그렇지 못한 경우 아이는 영영 비뚠 길로 갈 수 있고 반항심으로 일관할 수 있을 것이다.

  남이 와서 물을 때 성실하게 대답하고 묻지 않는데 억지로 가르치지 않는다. 꼭 가르치고 싶을 때 가르치겠다는 그 마음을 닦고 가르치면 상대가 부담을 안 느끼나, 가르치겠다는 마음으로 가르칠 때 그가 받아들이지 않으면 내 마음에 짜증이 일어난다. 짜증이 일어나면 이미 불사는 아니다. 그때는 내 정도가 이 정도인 줄 알고 부지런히 그 짜증을 바쳐야 하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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달팽이 2007-02-21 22:11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아이들을 대할 때 나를 둘러보게 하시는 말씀이다.
오늘 아이들 중 형제 졸업식이 있다고 해서 서너명을 보냈다.
그런데 그 틈에 끼어 여섯명이 도망갔다.
내일이 졸업식이니 뭐 별일 있으랴 하고 말이다.
그런데 그 얘기 듣고 분심이 올라오는데 바치고 생각하길 그래도 일단 전화를 걸어서 잘못된 행동을 알려줘야지 하는 마음에 걸어보니 한 두 녀석이 전화조차 받지 않는다.
결국 교실에 있는 아이들에게 한 녀석도 돌아오지 않으면 안보낸다 하고 잠시 후 올라가니 세 명은 올라오고 있는 중이라고 하고 나머지 세 명은 연락두절이란다.
잡혀 있는 아이들이 뭐 죄가 있나 싶어 보내고 난 후 올라온 세 명의 아이에게 간단히 청소시킨 후 보내고 나니 그래도 올라오지 않은 녀석들이 밉다.
"하지만 전화 받으면 저들이 스스로 더 어려울 것 같아 그러겠지"하니 조금 누그러진다.
남은 녀석들에게 한마디 하려니 벌써 얼굴에 잘못했어요 써 있다.
그래서 그냥 웃으며 보냈다.

이 시간에 그 사건을 둘러보니 선생이란 지위로서 부리는 치심이 많다.
아이들 대할 때에 특히 말이다.

그래서 영혼과 그 사람의 과거 미래를 제대로 알지 못하고 가르치려 드는 것이 얼마나 어리석은 일인지 생각한다.
이 때문에 최선의 교육은 그냥 내버려 두라는 말도 있지 않나(우리가 중생이니 중생이 중생을 가르치려하기보다는 그냥 내버려 둠만 못하다는 말이겠다.)

어리석고 어리석은 나이니 우선 내 마음을 들여다보고 가르칠 때에 마음 쓰는 선생님의 방법을 배워야겠다.

2007-02-21 22:44   URL
비밀 댓글입니다.

달팽이 2007-02-22 01:12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님/오랫만입니다.
졸업하는 아이들 앞에 사실 그동안 선생님이 잘못한 게 참 많구나!
고생시켜 미안하구나 하는 마음이 많이 듭니다.
그래도 조금 위안이 되는 것은
내 사심이 그리 많이 들어 있지 않았다는 것 정도입니다.
좋게 봐주시니 오히려 어깨가 더 무거워지는군요..

비로그인 2007-02-22 09:30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선생님은 제자들을 가르칩니다.
제자들은 선생님의 모든 걸 보고 배웁니다.
국민학교, 중학교, 고등학교, 대학교, 병원에서 저를 가르치셨던 선생님들과
그분들의 가르침을 여전히 기억합니다.
그런 선생님들의 가르침과 격려가 현재의 저를 만들었지요.
고맙답니다. 선생님들의 가르침.. 제자사랑.. 하하

새해에 좋은 일 많으시기를,
좋은 책 많이 만나시기를.


달팽이 2007-02-22 09:48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한사님 정말 그렇습니다.
몸으로야 성장하여 시들어가는 것이지만
마음으로 보면 우리를 구성하는 참 많은 사람들이 있습니다.
지금은 아이들이 그리고 지인들이 제 선생님입니다.

새해에도 책을 통해 한사님과 좋은 만남 기대합니다.
 

이것이 있으므로 저것이 있고

이것이 생기므로 저것이 생긴다.

이것이 없으므로 저것이 없고

이것이 죽으므로 저것이 죽는다.

이는 두 막대기가 서로 버티고 섰다가

이쪽이 넘어지면 저쪽이 넘어지는 것과 같다.

 

일체 만물은

서로서로 의지하여 살고 있어서,

하나도 서로 관련되지 않은 것이 없다는

이 깊은 진리는

부처님께서 크게 외치는

연기의 법칙이니

만물은 원래부터 한 뿌리이기 때문입니다.

 

그리하여 이쪽을 해치면

저쪽은 따라서 손해를 보고

저쪽을 도우면

이쪽도 따라서 이익을 받습니다.

 

남을 해치면 내가 죽고,

남을 도우면 내가 사는 것은 당연한 일입니다.

이러한 우주의 근본진리를 알면

남을 해치려고 해도 해칠 수가 없습니다.

 

참으로 내가 살고 싶거든 남을 도웁시다.

내가 사는 길은 오직 남을 돕는 것밖에 없습니다.

 

아무리 상반된 처지에 있더라도

생존을 위해서는 침해와 투쟁을 버리고

서로 도와야 합니다.

 

물과 불은 상극된 물체이지만,

물과 불을 함께 조화롭게 이용하는 데서

우리 생활의 기반이 서게 됩니다.

 

동생동사, 동고동락의

대 진리를 하루빨리 깨달아서

모두가 침해의 무기를 버리고,

우리의 모든 힘을 상호협조에 경주하여

서로 손을 맞잡고 서로 도우며 힘차게 전진하되

나를 가장 해치는 상대를 제일 먼저 도웁시다.

 

그러면 평화와 자유로 장엄한 이 낙원에

영원한 행복의 물결이 넘쳐흐를 것입니다.

 

화창한 봄 날 푸른 잔디에

황금빛 꽃사슴 낮잠을 자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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달팽이 2007-02-11 10:40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자기를 해치는 사람을 제일 먼저 돕는다는 것.
아직 우리같은 중생에겐 참 어려운 일이다.
인식이 있고 그것을 실천해내는 일이 있다고 한다면
그것은 머리로 인식한 잘못된 인식일 뿐
진정하게 가슴으로 아는 것은
그것이 바로 삶이 되는 것임을
성숙한 사람들은 이미 여러번 얘기한 바 있다.
인연을 바로 보게 되면
우리는 남을 도우며 살 수밖에 없음을...
그것이 청안 스님의 "자 이제 무엇을 도와드릴까요?"일것이다.
그러니 제대로 된 공부를 해야 하지 않겠는가.

프레이야 2007-02-11 11:04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상극과 상생은 동일한 원리겠지요. 인연은 시작도 끝도 없는 고리같은 것.
남을 위한 생각을 하다보면 가장 훌륭한 아이디어가 창출된다는 말도
이 말씀과 그리 먼 곳에 있지 않네요.
달팽이님, 좋은 말씀 다시 듣고, 행복한 주일 보내자고 혼잣말 하며 갑니다.
님에게도... 평안한 일요일 보내시기 바래요^^

혜덕화 2007-02-11 16:46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나만 행복하면 좋을 것 같지만 나만의 행복이란 이 세상 어디에도 없다는 것을 느낍니다. 내 행복은 결국 다른 모든 인연들에 의해 형성되고 이어져가는 것이기에....
정다빈이란 예쁜 아가씨가 또 자살을 했네요. 마음이 아픕니다. 어찌 이리 자신의 몸이 자신만의 것이라고 잘못 알고 살아들가는지.....

달팽이 2007-02-11 22:12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혜경님/맑게 개인 주말의 느티나무 가지마다
새싹들이 생명의 용틀임을 하네요.
혜덕화님/저도 마음이 아픕니다.
 
 전출처 : 짱꿀라 > 문장이란 어떤 물건인가? - 다산 어록

문장이란 어떤 물건인가?


자네 우선 거기에 앉게. 내가 자네에게 말해 주겠네. 문장이란 무슨 물건일까? 학식은 안으로 쌓이고, 문장은 겉으로 펴는 것일세. 기름진 음식을 배불리 먹으면 살가죽에 윤기가 나고, 술을 마시면 얼굴에 홍조가 피어나는 것과 다를 게 없지. 그러니 어찌 문장만 따로 쳐서 취할 수가 있겠는가? 중화(中和)의 덕으로 마음을 기르고, 효우(孝友)의 행실로 성품을 다스려, 몸가짐을 공경히 하고, 성실로 일관하되, 중용을 갖춰 변함없이 노력하여 도를 우러러야 하네. 사서를 내 몸에 깃들게 하고, 육경으로 내 식견을 넓히며, 여러 사서(史書)로 고금의 변화에 통달하게 해야겠지. 예악형정의 도구와 전장법도의 전고(典故)가 가슴 속에 빼곡하여, 사물이나 일과 만나 시비가 맞붙고 이해가 서로 드러나게 되면, 내가 마음 속에 자옥하게 쌓아둔 것이 큰 바다가 넘치듯 넘실거려 한바탕 세상에 내 놓아 천하 만세의 장관이 되게 하고 싶은 생각이 들게 되네. 그 형세를 능히 가로막을 수 없게 되면 내가 드러내려 했던 것을 한바탕 토해놓지 않을 수가 없게 된다네. 이를 본 사람들이 서로들 ‘문장이다’라고들 하니, 이런 것을 일러 문장이라 하는 것일세. 어찌 풀을 뽑고 바람을 우러르며 빠르게 내달려, 이른바 문장이란 것만을 구하여 붙들어 삼킬 수가 있겠는가? -<이인영을 위해 준 글[爲李仁榮贈言]〉7-306


余曰噫嘻子坐. 吾語子. 夫文章何物? 學識之積於中, 而文章之發於外也. 猶膏梁之飽於腸, 而光澤發於膚革也, 猶酒醪之灌於肚, 而紅潮發於顏面也. 惡可以襲而取之乎? 養心以和中之德, 繕性以孝友之行, 敬以持之, 誠以貫之, 庸而不變, 勉勉望道. 以四書居吾之身, 以六經廣吾之識, 以諸史達古今之變, 禮樂刑政之具, 典章法度之故, 森羅胸次之中, 而與物相遇, 與事相値, 與是非相觸, 與利害相形, 卽吾之所蓄積壹鬱於中者, 洋溢動盪, 思欲一出於世, 爲天下萬世之觀. 而其勢有弗能以遏之, 則我不得不一吐其所欲出. 而人之見之者相謂曰文章, 斯之謂文章. 安有撥草瞻風, 疾奔急走, 求所謂文章者, 而捉之吞之乎?


젊은이! 훌륭한 문장가가 되고 싶다고 했는가? 내가 그 비법을 알려주겠네. 세상에 글쓰기 공부만 해서 훌륭한 문장가가 되는 법은 어디에도 없다네. 술 먹으면 얼굴이 불콰해지는 것은 뱃속에 든 술기운이 얼굴에 올라온 것일세. 글도 마찬가지라네. 문자로 표현되는 것은 내 속에 품은 생각일 뿐, 문자 자체는 아닌 것이지. 사람들은 늘 이 점을 혼동한다네. 문장 수련만 열심히 하면 좋은 글을 쓸 수 있을 것으로 착각하지. 연역법과 귀납법을 배우고, 비교와 대조, 묘사와 서사의 기교를 열심히 배워본들, 글쓰기는 늘지를 않는다네. 내 속에 든 것이 없으면 덜그럭거리는 빈 수레일 뿐인 것을. 자네 좋은 글을 쓰고 싶은가? 무엇보다 먼저 사람 되는 공부를 하게. 수양을 통해 덕성을 쌓고, 학문으로 시비를 판단하는 역량을 기르게. 하나하나 가슴 속에 온축해 두고, 어떤 상황과 만나 도저히 한바탕 말하지 않을 수 없는 것이 있거든 그때 붓을 들어 글로 쓰게. 그걸 보고 깜짝 놀란 사람들이 이구동성으로 ‘문장이다!’라고 말할 걸세. 사람 되는 공부에 앞서 문장만 따로 이루고 싶다고? 미안하지만 그런 것은 세상에 없네. 


꽃과 문장


사람이 문장을 지님은 초목에 꽃이 피는 것과 같다. 나무 심는 사람은 처음 심을 적에 뿌리를 북돋워 줄기를 안정시킨다. 이윽고 진액이 돌아 가지와 잎이 돋아나, 이에 꽃이 피어난다. 꽃은 갑작스레 얻을 수가 없다. 정성을 쏟아 바른 마음으로 그 뿌리를 북돋우고, 도타운 행실로 몸을 닦아 그 줄기를 안정시킨다. 경전을 궁구하고 예법을 연구하여 진액이 돌게 하고, 널리 듣고 예(藝)를 익혀 가지와 잎을 틔워야 한다. 이때 깨달은 바를 유추하여 이를 축적하고, 축적된 것을 펴서 글을 짓는다. 이를 본 사람이 문장이라고 여기니, 이것을 일러 문장이라 한다. 문장이란 것은 갑작스레 얻을 수가 없다.  -〈양덕인 변지의에게 주는 말[爲陽德人邊知意贈言]〉 7-309


人之有文章, 猶草木之有榮華耳. 種樹之人, 方其種之也, 培其根安其幹已矣. 旣而行其津液, 旉其條葉, 而榮華於是乎發焉. 榮華不可以襲取之也. 誠意正心以培其根, 篤行修身以安其幹, 窮經研禮以行其津液, 博聞游藝以旉其條葉. 於是類其所覺, 以之爲蓄, 宣其所蓄. 以之爲文, 則人之見之者, 見以爲文章. 斯之謂文章, 文章不可以襲取之也.


화단에 초목을 심어 꽃 한송이를 보려면 드는 품이 만만치 않다. 잘 심어 뿌리를 안정시키고, 땅에서 양분을 끌어올려 가지와 잎을 틔운다. 가지도 쳐주고 거름도 주며, 때로 버팀목도 세워주어야 한다. 꽃은 그 노력의 결과일 뿐이다. 바른 마음과 도타운 행실은 초목의 뿌리요 줄기다. 이것이 든든해야 힘을 받는다. 고전을 익히고 견문을 넓히는 것은 뿌리를 통해 줄기로 양분을 끌어올리는 과정이다. 가지 끝까지 양분이 전달되어야 꽃망울이 부퍼서 아름다운 꽃송이를 피운다. 문장은 바로 이렇게 해서 피워낸 꽃송이다. 바탕 공부 없이 꽃만 피우려들지 마라. 세상에 가장 천한 것이 있는데, 그것은 바로 인간이 안 된 글쟁이다.       

- 다산 어록중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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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로그인 2007-02-11 09:16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문장가의 문장에서 타고난 천품과 독서의 축적을 봅니다.
현대에 태어나 수천년의 '일급 문장'을 감상할 수 있다는 것도 행운일 테지요.
그의 글을 읽을 때마다 느껴지는 다산의 자부심은 참으로 대단합니다.


달팽이 2007-02-11 09:49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맞습니다. 행운.
한사님같은 안목을 가진 사람들에게는 특히.
포근한 봄의 일요일 평안하시기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