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트라디바리우스
토비 페이버 지음, 강대은 옮김 / 생각의나무 / 2005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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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언제이던가? 서울 지하철 강남역 6번 창구에서 심 모 교수가 스트라디 바이올린으로 45분간 허름한 옷을 입고서 바이올린 연주를 했던 적이 있다. 이 연주로 그는 16900원의 돈을 벌었다. 이 허름한 옷차림을 한 사람이 서울대 출신의 교수인지도 그가 연주했던 바이올린이 70억이나 비싼 것이었는지에 대해 사람들은 모르고 있었다. 더욱이 그 바이올린에 쓴 활이 1억 짜리였다니...그 오전의 급박하고 분주한 출근시간에 몇 몇 사람들은 그 선율을 듣고서는 매우 행복한 표정으로 이 시간에 여기서 이렇게 아름다운 선율을 들을 수 있다니...하고 놀랐다. 이 사건이 있기 전에는 미국의 한 도시에서 이와 유사한 상황의 연주가 열렸다고 한다.

  집시 음악 중 유난히도 슬프면서 가슴에 착 달라붙는 음악이 있다. 세르게이 트로파노프의 "Gypsy Passion"이라고 하는 바이올린 연주곡의 모음집이다. 지금은 우리 나라 모 광고에도 사용하고 있는 이 선율은 가슴 속의 꼼짝하지 못할 감정의 아킬레스 건에다 대고 활을 긁어대는 듯하다. 이 지독히도 슬픈 곡을 들으면서도 그 슬픔이 왠지 삶의 비장한 아름다운 것으로 변화시키고 있는 마음을 들여다보면 문득 내 마음으로 투명하게 모아지는 뭔가가 느껴지기도 한다. 나는 이 느낌을 찾아서 모짜르트도 듣고 베토벤도 들었다. 바흐의 바이올린 음악도 들었다. 바이올린이 가진 느낌인지 세르게이 트로파노프의 선율에 담긴 것인지를 알기 위해서였다. 결론은 둘 다였다.

  18세기 이탈리아의 바이올린 제작자인 스트라디 바리우스. 그가 남긴 불후의 명작 다섯대의 바이올린과 한 대의 첼로의 여정을 쫓아간 이야기가 이 책이다. 메시아, 비오티, 케벤휠러, 파가니니, 리핀스키와 다비도프가 그것이다. 많은 소유권의 이전과정과 세상에 드러난 과정, 그리고 그 바이올린이 연주되면서 사람들의 영혼을 사로잡는 과정에서 바이올린 제작자의 깊은 영혼의 울림을 들을 수 있었다. 열 세살의 천재 소년 바이올린 연주자인 매뉴인은 열 세번째 그의 생일날 케벤휠러를 선물로 받으면서 다음과 같은 말을 남겼다. "위대한 바이올린은 살아 있다. 바이올린의 모양은 제작자의 의도를 구체적으로 표현하고, 나무는 소유자들의 역사나 영혼을 간직하고 있다. 나는 연주할 때마다 내 자신이 자유로운 영혼 또는 속박당하는 영혼임을 느끼게 된다."

  천상의 선율을 담기 위해 바이올린 제작에 자신의 온 인생을 걸었던 스트라디 바리우스. 그 제작의 비밀을 캐기 위해 많은 사람들이 자신의 인생을 바쳤지만 결국 풀어내지 못한 제작과정의 비밀들.. 그가 제작한 바이올린은 하나의 생명체이다. 나무의 역사를 고스란히 간직하고 있고, 바이올린 연주자의 마음에 반응하여 제각각의 선율을 만들어내는 그는 긴 배를 타고 가는 여정에서는 지치고 멀미도 하고 인간과 같이 소중하게 다루어지고 배려되어야만 하는 의식체이다. 수많은 찬사와 수많은 음악가의 삶의 열망이기도 했던 스트라디 바리우스는 그 명성이 또 다른 생명체로 되어 탄생과 굴곡의 시간을 거친다.

  이제 그 과학의 비밀을 캐는 것이 무슨 의미가 있을까? 이제 그것의 가치가 얼마이고 그것의 역사가 무엇인가 하는 것이 무슨 큰 의미가 있을까? 스트라디는 제작자에게 있어서는 그것을 만들어내며 바쳤던 자신의 온 열정과 인생의 깊이로서 의미를 다했고, 연주자에게는 바이올린과 혼연일체가 되어 만들어내는 선율이 허공을 가득 메울 때 그 의미를 다하지 않았는가? 청중으로서 우리는 그 선율위에 마음을 올려 선율이 만들어내는 굴곡을 타고 넘으며 영혼의 우아함을 꿈꿀 때 이미 그 의미를 다가지지 않았는가? 그것을 제외하고 남은 명성과 가치는 겨울바람에 떨어져 썩고 있는 나뭇잎처럼 허무한 것이다.

  스트라디 바리우스의 흔적을 쫓는 이야기가 그의 영혼의 성장과정과 깊어짐의 과정을 발견하지 못한다면 이 책을 읽는 의미가 없다고 생각한다. 마찬가지로 바이올린 연주자의 영혼이 바이올린과의 교감 속에 더욱 깊어가는 것을 발견하지 못한다면.. 그 바이올린이 내는 선율의 깊은 감동에 빠지지 못한다면...우리는 인생에서 긴장해야 할 것이 많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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짱꿀라 2007-05-16 17:10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스트라디바리우스는 바이올린 제작자. 바이올린을 만들기 위해 올인하는 장신정신을 정말 제가 배워야 할 것 같습니다.

달팽이 2007-05-16 20:56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온 정신이 몰입했을 때 그 생각과 생각의 틈 사이로 분출하는 아이디어와 우주의 메세지를 들어야만 비로소 인생을 담아낼 수 있겠지요.
산타님께서 사용하신 올인하는 장인정신이 그런 게 아닐까 생각해요..
 
선비답게 산다는 것
안대회 지음 / 푸른역사 / 2007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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書四戒. 소동파


수레나 가마를 타는 것은 다리가 약해질 조짐이고

골방이나 다락방은 감기 걸리기 십상이다

어여쁜 여인은 건강을 해치는 도끼이고

맛난 음식은 창자를 썩게 하는 독약이다       p 52


선비답게 산다는 것은 무엇을 이야기하는 것인가? 나는 그 화두를 소동파의 절식에서부터 찾는다. 먹는 것과 예쁜 여자, 몸의 안락과 폐쇄적인 것을 경계하라는 4계는 늘 오늘날 우리들의 생활을 쫓아다니며 유혹하는 것들이다. 먹는 것으로부터 탐하는 마음이 생기고 여자로부터 진심이 생긴다. 몸의 안락과 폐쇄적인 생활에서 치심이 생기니 이것은 삶의 진정성으로 들어가는 입문의 과정이기도 했을 것이다. 다음으로 건너가 보자.


과부의 노래. 유몽인


칠십 먹은 늙은 과부

규방을 지키며 단아하게 사는데

사람들이 개가를 권하며

무궁화처럼 멋진 남자를 소개했네

여사(女史)의 시를 제법 외웠고

어진 여인들의 가르침을 배운 몸이

백발에 젊은 티를 낸다면

분가루가 부끄럽지 않겠소           p62-3


오랜 시절 세상으로부터 물러나 수절하며 스스로의 공부를 세워가는 때에 자신의 재주 있음을 세상에 드러내라는 사람들의 권유에 빠지지 않고 나이가 늙도록 평생 가꾸어 온 자신의 청정함을 지키느니만 못하다는 말씀이라. (인조반정을 맞아 광해군에 대한 충심을 바꾸지 않았던 그의 세간의 이야기와는 별도로..) 물론 나야 세상에 나아가 이름을 떨칠 만한 그릇도 못되거니와 세상의 변방에서 있는 듯 없는 듯 책이나 읽으며 사는 일에 만족하고 있다. 하지만 또한 세상은 나를 중심으로 돌아가고 있다. 내 주변의 작은 일들에도 나를 세우지 않고 그저 주어진 일을 충실히 해가면서 일에 대상에 들러붙는 마음이 있다면 빨리 거두어서 나 스스로 떳떳해지고 세간의 욕을 먹는 일이 없다면 그것이 세상의 주인된 삶이 아닐까? ‘젊은 티’를 낼 필요가 없이 있는 그대로의 삶에 만족할 때을 ‘분가루’가 부끄럽지 않을 것이다. 이렇게 세상의 욕심으로부터 벗어난 사람들은 일종의 바보들이었는데 그런 그들도 삶의 진정성에 대한 욕심만큼은 누구 못지 않았다.


讀書有感. 이하곤(1677-1724) 호는 澹軒


가난한 집에 가진 거라곤 책 다섯 수레뿐

그것을 제외하면 남길 물건이 전혀 없다

살아서나 죽어서나 서책을 못 떠나니

전생에는 틀림없이 좀벌레였나 보다


서치였던 그가 모은 만권의 장서는 모두 양질의 책으로 유명했다. “눈썹 하나 머리털 하나까지 닮지 않은 것이 없어야 인물을 제대로 그렸다고 할 수 있다.”는 사실적 화론을 펼친 회화이론가이기도 했던 그는 책 거간꾼만 보면 옷을 벗어서라도 책을 구입할 정도로 애서가였다. 그렇게 모은 책이 만 권을 넘어 만권루라고 불리웠다. 그는 부친이 좌의정과 이조판서를 지내 벼슬길이 보장되었지만 충북 진천의 초평에 있는 별서에 완위각이란 서재를 짓고 평생을 책을 읽었다. 이곳에 윤유, 윤순, 최창대, 심육, 김창흡 등의 학자와 예술가가 방문하여 책을 읽고 시문을 나누었다. 특히 이곳에는 중국책이 많아 새로운 정보와 지식을 교류하는 정보의 장이었다.


책을 뒤적이다. 이하곤


우리 집에는 무엇이 있나

서가에는 만 권 서책이 있네

맹물마시며 경서를 읊조리노니

이 맛을 정말 어디에 견줄까


맹물로 밥때를 넘겨야 했던 가난함에도 불구하고 경서를 읊조리고 있는 마음의 풍요로움을 보여주는 이 글을 보며 때로는 서글픈 생각이 이는 이유는 무엇일까?


이정보와 가객 계섬과의 인연 또한 눈 앞을 떠나지 않는다.


한섬은 전주의 기생인데 황교 이판서가 그를 집으로 데려다가 가무를 가르쳐 온 나라에 명성이 자자했다. 한섬이 나이가 들어 제집으로 돌아간 지 한 해 남짓 지나 판서가 세상을 떴다. 한섬이 즉시 말을 달려 판서의 묘에 이르러 한 번 곡을 하고 술 한 잔을 따르고 술 한 잔 마시고 노래 한 곡을 불렀다. 다시 두 번째 곡을 하고 두 번째 잔을 따르고 두 번째 잔을 마시고 두 번째 노래를 불렀다. 이렇듯이 돌려서 하기를 하루 온종일 한 뒤 자리를 떴다.              (추채기이)


윗글에서 한섬이란 이름으로 나온 기생이 계섬이며 이판서는 이정보다. 이정보는 계섬을 직접 지도하며 유달리 사랑했다. 그러나 오로지 그 음악만을 사랑했을 뿐 사사로운 감정을 섞지 않았다고 하니 인품도 훌륭했다. 그만의 방식으로 절절하고 깊은 마음을 담아 스승을 보내는 계섬의 추모방식이 눈에 띈다. 이처럼 스승과 제자 사이의 깊은 인간적인 유대감은 보는 이로 하여금 깊은 감동을 자아낸다. 저자는 선비다운 삶의 외연을 넓혔다. 기생의 삶에서 이젠 천민으로 달려가 보자.


누운 채 청산을 사랑하느라

날마다 늦어서야 일어나노니

뜬구름도 흐르는 물도

시 안으로 다 들어오네

우스워라!

이 내 몸은 선골(仙骨)이 아니런가

뱃속 가득한 연하(煙霞)로는

배고픔을 못 고치네       홍세태(1653-1725)


조선 숙종 때의 천민 출신의 여항시인이다. 조선 후기에는 중인 이하의 평민과 천민들이 모여 시회를 여는 경우가 적지 않았고 이러한 부류의 문인을 여항문인이라 했다. 이 때부터 비로소 조선의 문학이 다양한 계층에서 쏟아져 나오기 시작했다. 그들에게는 벼슬로 나아갈 길이 애초에 막혔기 때문에 오로지 진실한 마음과 작품으로 자족하는 삶을 누리는 것만이 앞에 놓여진 길이었다. 그러면서도 자신의 재능을 꽃피우지 못하는 여한이 남아 시 안으로 스며드는 것을 어찌할 수 없었던가 보다. “배고픔을 못 고치네” 마음이 아프다.


한바탕 풍류는 해외까지 퍼졌지만

십년토록 이덕무와 대문을 마주했네

강산이 냉정하다 다들 말하는 것은

밤새 나눈 정담 장면 보지 못한 탓이지      -박제가-


역시 조선 후기의 벗들의 부러운 만남인 그들을 잊을 수 없다. 박지원, 박제가, 이덕무, 유득공, 강세황, 홍대용, 황윤석 등의 만남. 비록 서얼 출신으로 자신의 재능을 나라에서 쓰지는 못하였지만 그들 간의 만남만으로도 조선시대의 밤하늘을 아름답고 그 무엇보다 빛나게 수놓았던 별들의 만남이었을 것이다. 박제가가 이서구에게 보내는 회인시는 중국에까지 이름을 떨친 강산 이서구가 냉정한 사람으로 알려졌으나 사실은 따뜻한 마음씨를 가진 사람이라는 것을 보여준다. 이들의 빛나는 우정을 생각건대 정말 “그대와 하룻밤 만나 나눈 이야기가 십년 동안 읽었던 책보다 낫네”하는 말을 생각게 한다.


우정이 나왔으니 우정에 관한 연암 선생의 글을 하나 더 보자.


공교롭고도 오묘하지요. 이다지도 인연이 딱 들어맞다니! 누가 그런 기회를 만들었을까요? 그대가 나보다 먼저 태어나지 않고, 내가 그대보다 늦게 태어나지 않아 한 세상을 살게 되었지요. 또 그대가 얼굴에 칼자국 내는 흉노족이 아니요, 내가 이마에 문신하는 남만 사람이 아니라 한나라에 같이 태어났지요. 그대가 남쪽에 살지 않고 내가 북쪽에 살지 않아 한마을에 같이 살고, 그대가 무인이 아니고 내가 농사꾼이 아니라 함께 선비가 되었지요. 이야말로 크나큰 인연이요 크나큰 만남입니다. 그렇다고 하여 상대의 비위를 맞추는 말을 구차하게 해야 하거나, 억지로 상대의 행동을 똑같이 따라해야 한다면, 차라리 천 년 전 옛사람을 친구로 삼든가 일백 세대 뒤에 태어날 사람과 마음이 통하기를 기다리는 편이 나을 것입니다. 


벗과의 우연적인 만남을 이야기한다. 참다운 벗은 무엇인지 나에게 생각하게 한다. 상대의 비위를 맞추는 말이 아니요, 억지로 행동을 같이 하는 것이 아니라고 했다. 읽은 책을 나누고 지식을 나누고 취미를 나누는 친구들은 평범한 친구들이다. 같이 테니스를 치고 같이 축구를 하고 같이 등산을 하는 것도 그런 것이 아닌가? 하지만 나아가 그 행위 속에 삶의 중요한 가치를 나누고 진리를 구하는 마음을 나누어야 비로소 벗인 것이다. 그것이 빠진 바에야 차라리 천 년 전의 성인의 말씀을 읽는 것만 못하고 일백 세대 뒤의 성인의 마음과 교우하는 것만 못하다는 말씀으로 들린다. 천 년의 시간을 넘는 지혜의 말씀, 아니 억천만년의 시공간을 넘은 영원한 진리로 이끄는 만남과 정신의 교우가 없다면 그것은 칼자국과 문신과 다를 바 없지 않은가?

마지막으로 책읽는 자세에 대한 퇴계 선생의 교훈으로 넘어가보자.


제가 쓴 <도산기>와 <도산잡영>이 그대의 책상 위에까지 올라갔다고 하니 너무도 땀이 나고 송구스럽습니다. 이러한 것들은 본래 지어서는 안 되지요. 산에 사는 사람에게 아무 일이 없다 보니 그저 필묵으로 장난을 치며 즐긴 것뿐입니다. 글상자에 감춰두고 아이들에게도 보여주지 않았습니다. 그러던 중 뜻을 같이 하는 벗 여럿이 멀리서 나를 찾아와 사흘 밤을 자고 갈 때 선물할 것이 없어 경계를 깨뜨리고 꺼내 보여주었습니다. 벗들이 가져가겠다고 조르기에 막지 못하고 퍼뜨리지나 말아달라고 간곡히 부탁했지요. 그런데 벗들이 내 말은 아랑곳하지 않고 남에게 보여주었나 봅니다. 아니면 그 글을 베낄 때 아이들이 베껴서 내보냈는지도 모릅니다. 남이 모르게 하려면 차라리 짓지 않는 게 낫다고 합니다. 이미 짓고서 다시 비밀에 부치는 짓은 옛사람이 비웃은 바인데 제가 이러한 경계를 범하고 말았습니다.


퇴계 선생이 1563년 이중구에게 답한 편지 중에 있는 글을 200년 뒤 다산 선생이 충청도 청양의 금정찰방으로 좌천된 후 날마다 아침 일찍 일어나 퇴계의 편지를 읽고 독후감을 쓸 때 모아둔 것이다. 이 글에 대한 독후감도 읽어보자.


나는 평소에 큰 병통이 있다. 무릇 생각한 것이 있으면 바로 글로 지어내고, 지은 것이 있으면 남에게 보이지 않고는 못 배기는 버릇이다. 생각이 떠오르는 즉시 붓을 잡고 종이를 펴서 잠시도 머뭇거리지 않고 써내려가고, 글을 짓고 나서는 스스로 사랑하고 스스로 좋아한다. 문자를 조금이라도 아는 사람을 만나면 내 주장이 흠이 없는지 편벽된지 아니면 만난 사람이 가까운지 먼지를 미처 헤아리지 않고 급히 보여주려고 건넨다. 그러므로 남에게 한바탕 말하고 나면 뱃가죽 안과 상자 속에는 한 가지 물건도 남아 있는 것이 없다. 그로 인하여 정신과 기혈이 흩어지고 새어나가서 쌓이고 익어가는 맛이 전혀 없는 듯하다. 그리하고서야 어찌 성령을 함양하고 몸과 명예를 보전할 수 있겠는가.

요즈음 와서 점검해 보니, 모두가 경천(經淺) 두 글자가 빌미가 된 결과다. 이것은 덕을 숨기고 수양하는 공부에 크게 해로운 데 그치지 않는다. 비록 주장이 현란하고 글솜씨가 화려하다고 해도 차차로 천박하고 값싸져서 남에게 존중을 받지 못하게 된다. 지금 선생의 말씀을 읽고 보니 느끼는 바가 크다. 


다시 200여년이 넘은 오늘날 이 글을 읽는 내게도 깊은 감동을 주는 글이다. 200년의 세월을 넘은 그들의 교우가 지금의 나의 마음에서도 일어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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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로그인 2007-03-02 09:17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간추려 소개하신 옛 선비들의 글이 향기롭습니다.

달팽이 2007-03-02 11:11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한사님의 댓글에 마음이 향기로워지는군요.

짱꿀라 2007-03-02 16:55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요책 저도 지금 갈등을 하고 있는 책인데 사야 할지 말아야 할지 모르겠네요. 달팽이님의 서평을 읽어보면 괜찮은 것 같은데....... 어떻게 해야 할지 지금도 판단이 안서네요.

달팽이 2007-03-02 17:45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덤으로 한 권 더 주잖아요. 그 책도 괜찮고요.
하긴 역사에 대해서는 폭넓고 깊이 아시는지라...
제가 뭐라고 말씀드리긴...

파란여우 2007-03-02 19:46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달팽이님, 이러는 게 아닙니다. 마음잡고 환경공부좀 해볼려고 벼르는 사람에게
자꾸 이런 식으로 고전의 향기를 들이대면!
들이대면....아이, 고전은 내년에 계획하고 있단 말에요.
소동파의 아내 사랑을 기억하고 있기에 또 보관함으로
그러니까 순전히 동파 할배랑 달팽이님때문이얌...
추천은 안했어요. 살 때 땡스투 하려고(착한 파란여우^^)

달팽이 2007-03-02 21:12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여우님 비내릴 것 같은 늦은 밤에 모두가 잠들어 고요한데
잠은 오지않고 펼쳐든 책에 마음을 빼앗겼어요.
그 흥을 시간이 늦어 다 옮기지 못했으나
행간의 의미 너머를 읽어내어 그 흥을 살려내시는
여우님 때문에 은근히 그대의 댓글이 기다려지기도 한다오..^^
 
처음처럼 - 신영복 서화 에세이
신영복 글.그림, 이승혁.장지숙 엮음 / 랜덤하우스코리아 / 2007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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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신영복 선생님의 다음 책이라 내심 조그만 기대를 가졌던 것은 사실이다. 내 대학 시절, 그러니까 지금으로부터 약 16여년 전에 '감옥으로부터의 사색'이란 책을 들고서 이렇게 살 수 있다면 감옥이란 곳에서도 살 수 있겠구나 싶었기 때문이다. 그 젊은 시절의 배움욕구로 가득찼던 나에게 선생님은 세상과 단절된 곳에서도 깊은 공부를 할 수 있구나 하는 희망의 메세지였기 때문이다. 감옥에서 그 물질적인 결핍과 환경의 결핍 속에서 피워낸 정신 세계는 그 모든 결핍을 풍요로 만들어내는 연금술적인 언어로서 승화되었고 그것을 지켜보는 한 청년은 바른 삶의 모델을 또 한 분 만난 것에 무척이나 기뻐했었다. 아직 삶이 무엇인지 잘 모르고 방황하는 길목에서 자신의 양심에 따라서 용기있게 살아갔던 하지만 사회가 수용하지 못해서 자신만의 정신세계를 펼쳐갔던 꿋꿋하고도 큰 그릇을 가진 선생님의 품이 부러웠던 것이다.

  왜 그랬을까? 이 책을 받는 순간 '아, 이제 신영복이란 이름도 상품화되고 있구나'라는 생각이 든 것은...멋있게 만들어진 까만색 상자 속에 든 책 한 권과 노트를 펼치며 약간의 씁쓸함의 찌꺼기들을 떨쳐버리지 못한 것은 아직 내 마음 속의 때가 많이 낀 탓일까? 사실 '강의'라는 책을 접하면서도 나는 이런 생각을 조금은 했었다. 선생님께서 고전에 대한 책을 내셨구나 하는 기대 한편으로 컨텐츠는 과연 어떨까? 하는 궁금함도 컸다. 물론 강의는 선생님의 명성과 더불어 많은 일반인들이 동양고전에 입문하도록 도와준 고마운 책이라는 생각에는 아직도 변함이 없다. 하지만 '관계론'으로 재해석해낸 선생님의 개성적인 해석은 대부분의 동양고전의 학문적 해석보다는 내용이 간소하고 그 마음으로 증험해내어 자신의 체험으로 써내려간 사람들의 이야기와 비교하면 다소 가볍다는 느낌이 많이 들었기 때문이다. 그래서 나는 선생님의 고전 공부가 계속되어 정말 선생님의 삶에 대한 깨달음과 지혜의 글로서 다시 만나기를 바라는 마음이 없지 않았다.

  선생님의 글과 그림을 ,잘 디자인되고 인쇄된 종이와 글을 빼버리고, 읽으면 그 선생님의 초심이 더욱 잘 읽힐 것 같다는 생각이 든다. 하지만 왠일인지 상품화와 대중화의 색깔이 불현듯 인식되어 책읽기를 방해한다. 대부분의 글은 이미 예전에 읽었던 글이다. 물론 선생님께서 이 책을 스스로 내지 않으려했다가 주위의 권유에 못이겨서 내면서 60여편의 글을 새로 첨가하였다고 한다. 물론 주어진 책을 제대로 읽어내지 못하는 나의 잘못이 99%다. 하지만 그 아쉬운 1%의 마음을 드러내는 것은 앞으로 더욱 선생님에게 거는 기대가 크기 때문이다. 다시 한 편 한 편의 글과 그림을 본다. 옆의 글들은 밀어두고 글과 그림을 쳐다보고 있으면(이왕이면 색깔도 흑백으로 가정한다) 선생님의 그 불합리한 사회구조 속에 형을 살 때 그 모든 것을 수용해내며 마음으로 피워내는 꽃같은 마음을 읽어낼 수 있다.

  마음을 비워내고 또 비워내서 단순해지고 투명해진 마음의 파동을 따라서 느껴본다. 제목처럼 '처음처럼'은 초심이라고 흔히 말해지듯 아무 마음의 상념없이 오로지 '모르는 마음'으로 대상과 사건과 사람을 받아들이는 것을 말한다. 그 마음에 하나의 뜻을 품었다면 그 품은 뜻 하나 밖에 달리 아무런 마음도 없는 상태이다. 그러니 오롯하고 온전한 마음이 담겨진 상태인 것이다. 지금, 선생님에게는 바라보는 사람이 많다. 그렇기 때문에 또 그 사람들의 마음을 받아들여야 하는 마음의 공간도 있어야 하고 또 감옥 생활에 비해 해야 할 사회적 활동도 많다. 따라서 선생님께서 초심을 생각한다는 것은 지금 생활 속에서 "감옥" 하나를 스스로 만들어내어야 하는 과정이 필요하리라는 생각이다.

  불필요한 말이 많게 되어버렸다. 사실은 그 감옥을 내가 가지고 싶은 것이다. 처음처럼이란 마음가짐도 내가 가지고 싶은 것이다. 그래서 존경하는 선생님께 투사한다. 모쪼록 선생님의 처음과 같은 글들을 아니 내면적으로는 더욱 깊어진 글들을 다시 대할 수 있기를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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logos678 2007-02-10 18:29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선생님이 책 출간을 망설였던 이유가 바로 님과 같은 마음 때문이었겠지요. 이 책이 상업적인 기획상품이라는 데는 저도 동의합니다. 하지만, 전 그 분의 진심을 믿어요. 좀 더 많은 사람들이 쉽고 편하게 그 분의 글을 읽는 계기가 된다면 그것도 나쁘진 않겠단 생각도 들구요. 다만 좀 더 비상업적인 출판사를 통해 그 분의 글을 만날 수 있었으면 좋겠단 소망은 있습니다.

달팽이 2007-02-10 19:27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네, 공감합니다. 로고스님
만나서 반갑습니다.
훌륭한 작가는 책을 계속내면서 자신의 인생의 성찰을 더욱 키워가야만 합니다.
아니면 자신의 독자들의 인식이 그 작품에만 정체될 수 있기 때문입니다.
특히 많은 사람의 존경을 받는 사람일수록 더욱 그러해야 한다는 것이 저의 소견입니다.
그냥 일반적인 작가라면 그 사람에게 싫증나면 안 읽으면 되지만..
신영복 선생님은 그런 작가랑 또 다른 분이잖아요...

글샘 2007-02-10 23:09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저도 저 책에는 점수를 후하게 주지 못할 것 같긴 합니다. 보관함에 넣어 두지도 않았습니다만... 신영복 스탈이 아닌 사람들을 겨냥해서라면, 필요한 작업같아 보이기도 해요.^^

혜덕화 2007-02-11 10:03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보관함에 담아두었는데, 한 번 망설이게 되네요.

달팽이 2007-02-11 10:42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아마 받아들이기에 따라서 필요하겠지요..글샘님. 하여튼 마음은 넓으셔서...
제가 괜히 혜덕화님의 맑은 마음을 어지럽힌 것은 아닌지...

프레이야 2007-02-11 11:15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이 책 전 아직 읽지 못했지만 신영복 선생뿐만 아니라 누구든 '처음처럼'을 지켜가기란 쉽지 않겠지요. 사람이 상품화 되어 울겨먹기 대상이 되는 것, 씁쓸하고 쓸쓸한
그림입니다. 그래도 누군가에게로 향하는 첫사랑의 순정만큼은 간직하시려는 님,
맑습니다.

달팽이 2007-02-11 22:16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혜경님/첫마음의 기억이랍니다. 그것이 집착이 되어선 안되는데...
님의 마음을 고맙게 받습니다.

짱꿀라 2007-02-26 12:46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역시 신영복 선생님의 글을 힘이 있나 봅니다. 이분의 글을 대할 때면 존경심이 절로 나오니 말이죠. 잘 읽고 갑니다. 잘 지내고 계시죠. 출장관계로 잘 들어오지 못하다가 오늘 들어오게 되었네요. 행복한 하루 되세요.

달팽이 2007-02-26 17:13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아, 오사카로 가신다고 했었죠. 님의 서재에서 본 듯 하군요.
앞으로 좋은 자료 기대합니다.산타님.
 
삼라만상을 열치다 - 한시에 담은 二十四절기의 마음
김풍기 지음 / 푸르메 / 2006년 10월
평점 :
품절


  새로운 한 해가 시작되었다. 절기상으로는 동지를 지나 소한을 향해 가고 있다. 지나간 한 해를 둘러보는 나의 눈에는 항상 한해에 묻은 희노애락의 감정과 아쉬움이 담겨 있다. 하지만 저물어가는 한 해의 끝에서 바라보는 마음에는 그 모든 것이 나의 성장을 위해 필요한 것이었음을 알게 된다. 새롭게 떠오르는 새해를 구경가지는 못했어도 그 새 해를 기다리고 맞는 마음이야 어찌 남들과 다를바 있으랴. 2007년의 새로움이 아직 식지 않은 하루 하루가 좀 더 마음을 곧추 세우는 것은 무의미하게 지나가는 한 해 한 해에 묻혀 내 인생의 달도 그렇게 스러져가고 있는 것은 아닌지 하는 우려감때문이리라.

  소한과 대한의 칼끝같은 추위를 온전히 맞고서야 입춘의 천지를 맞이할 수 있듯이 밤이 제일 길다는 동지에서 이미 목련에 맺은 싹이 보인다. 모든 잎을 떨구어버린 헐벗은 저 나무들에서 너나 할 것없이 새싹이 오르고 있는 모습을 동지에서 본다. 그래서 옛 사람들은 동지에서 일양이 시작된다고 하였다. 음의 극한인 동지에서 하나의 양이 싹트기 시작한다는 것이다. 이제 가슴 속 깊이 파고드는 겨울 추위인 소한과 대한을 지나서 매화가 피는 초봄을 향해 가리라. 눈 쌓인 곳에 핀 매화를 보는 것은 더더욱 좋은 것이 아니랴. (아마 한사님은 그것을 기다리고 있을런지도 모른다.)

  농사의 필요성 때문에 24절기에 따라 자신의 삶을 일구었던 농부가 아니다하더라도 선비들도 24절기의 자연의 순행 속에서 자신의 삶과 마음을 담아내면서 천지의 조화를 일구었던 마음씀이 부러웠다. 우수에 내리는 눈비를 맞으며 봄의 마음을 노래했고 경칩에는 개구리 울음 소리 하나에 온천지가 깨어나는 정신적인 경지를 추구하였다. 곡우에 내리는 비를 맞이하며 우전차를 말려서 찻잔에 담그며 시를 읊었으며 천지의 기운을 온몸으로 느끼며 춘분을 노래했다.

  아! 봄만 되면 내게 꼭 한번의 몸살로 시작되는 감기는 지난 날의 잃어버렸던 사랑의 기억을 떠오르게 하였다. 그런데 천지의 담긴 기운 역시 봄만 되면 다시 소생하는 자연의 순환 속에 떠나간 님도 다시 돌아오기를 바라는 마음이 담겼을 줄이야. 왜 하필 강가에서 버드나무를 빗대어 이별의 슬픔을 위로했으며, 왜 하필 비내리는 처마 끝에서 하루가 저물 무렵 그대에 대한 깊은 상념은 주체할 수 없이 가슴을 파고드는 지도 우리는 물을 수 없었다. 계절의 순환과 절기에 담긴 옛 사람들의 마음을 이해하고서야 비로소 그들의 애틋한 감정이 깊은 정신적 경지가 달리보이게 되는 것임을...

  한시를 읽어내는 것도 이젠 어느듯 감각이 생기기 시작한다. 풀이보다는 원문에서 한자 한자 풍기는 감정과 문맥에 담긴 글쓴이의 마음이 언뜻 비치는 것을 느낄 때엔 한시 공부의 새로운 맛을 알게 된다. 이젠 원문을 먼저 읽어내고 그 속에 담긴 뜻을 추측한 다음 풀이를 보게 된다. 그리고 풀이의 적당함을 생각하게 되고 경우에 따라서 새롭게 풀이를 해보기도 한다. 혼탁한 정신과 막무가내식의 글공부로 무디었던 마음의 손가락이 시간이 지나 점점 부드러워지고 예민해져서 손가락 사이로 스치는 문장이 가진 감각들을 하나둘씩 읽어가기 시작하면서 책읽는 새로운 즐거움이 생긴다.

  저자는 자신의 어릴 적 경험과 공부하는 마음으로 한시 풀이를 무리없이 잘 해내고 있다. 나아가 옛 시인들의 시에 담긴 그들의 감정과 마음을 고스란히 이해하고 옮겨놓으려는 노력이 잘 보여지고 있어 읽는 이로 하여금 그 흥을 제대로 느끼게 해준다. 공부란 무릇 이렇게 해야 하는 것이 아닐까? 많은 해설로서 많은 인용거리를 가져다 놓아도 가슴을 울리지 않는 주석서에 불과하다면 책을 끝까지 읽어나가지 못했을 것이다. 글을 통해 마음을 바로세우고 나아가 자신의 몸으로써 한번 살아보게끔 해주는 책이 있다면 그런 책이야 말로 값진 책이 아닐까? 새해 초에 이렇게 좋은 책으로 나의 리뷰를 시작하게 된 것에 감사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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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로그인 2007-01-03 15:06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무디었던 마음의 손가락이 시간이 지나 점점 부드러워지고 예민해져서
손가락 사이로 스치는 문장이 가진 감각들을 하나둘씩 읽어가기 시작하면서
책읽는 새로운 즐거움이 생긴다."

문장 좋습니다. 달팽이님.
한번 더 입속으로 읽어봅니다.



파란여우 2007-01-03 15:49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달팽이님은 글을 통해 마음을 세우고 원문의 뜻에 남다른 의미를 알아채시는
경지에 이르셨군요!!!
한사님이나 달팽이님은 이 엄동설한에 벌써 우전차와 매화를 말씀하시니
겨울 내복을 입고 눈이 덜 내린다고 투덜대는 저와는 역시 계급이 다른거였어요.흑
-매화나무에 눈이라도 내렸으면 바라는 시퍼런딩딩매화 드림-

파란여우 2007-01-03 15:53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아참, 내친김에 슬퍼만 하면 약이 오르니 자랑질 하나 하고 갑니다.
매화와 우전차는 구경 못했지만 전 오늘 겁나게 기쁜 선물을 받았답니다.
유몽인 선생의 '어우야담'1,2권 세트-돌베게
와우!!!

달팽이 2007-01-03 15:54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정초부터 벗들의 마음담긴 글을 얻어 기쁩니다.
여우님은 새해에도 책복은 여전하시군요..
가끔 여우님의 책 아닌 책 속에 담긴 친구의 마음이
부러울 때가 있습니다.ㅎㅎ

비로그인 2007-01-03 16:42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어우! 부럽습니다. 파란여우님
어우야담 재밌겠습니다.
얼릉 읽으시고 리뷰 올려주시기를 희망합니다.
(제일 재밌는 대목 한편 곁들여서..)
상,하 두 권인 것 같든디, 아예 상 하로 나누어서 올려 주시면 더욱 좋고요. 하하

 
조용헌 살롱
조용헌 지음 / 랜덤하우스코리아 / 2006년 10월
평점 :
품절


  불교 민속학자인 조용헌 씨가 그동안 조선일보에 기고한 글들을 묶어서 책으로 내었다. 책의 구성은 음양과 오행, 이판과 사판으로 네 장으로 구성되어 있다. 각 장에는 생활 속의 이야기들을 각 각의 이야기로서 풀어낸다. 범부들의 일상생활의 이야기로부터 각종 사건 사고에 나아가서는 국가의 흥망과 그것을 좌우하는 정치적 사건과 국제정세의 변화도 눈에 보이지 않는 이야기들로서 우리들의 시선을 끈다. 삶을 가만히 들여다보면 우리의 감각과 인지에 잡히는 것과 그렇지 못한 것들로 이루어져 있다. 하지만 우리는 우리들에게 포착되는 것만을 존재하는 것으로 생각하는 경향이 있다.

  음양의 이야기는 우리들이 어떻다고 생각하는 그 점은 반드시 상반되는 요소를 가지고 있다는 점을 말한다. 우리가 선이라 명명하면 그에 대응하는 악이 있고 높음이라 하면 그에 비교되는 낮음도 있다. 서로는 서로에게 의존하며 공존한다. 우리는 한 사람의 특성과 재능을 보면서 그 사람이 가진 장점을 이야기한다. 하지만 바로 그 장점이 그 사람의 단점이 되기도 한다. 이렇듯 음양은 모든 만물이 태어나서 갈라지는 현상이다. 그렇기 때문에 그 태초의 갈라짐 이전으로 돌이키면 우리는 갈등할 필요가 없게 된다. 우리가 태어나기 전의 모습을 찾는 것도 바로 이와같지 않을까?

  오행은 우주를 구성하는 모든 것을 목,화,토,금,수의 요소로 파악하는 것이다. 즉 우주의 모든 것은 오행의 요소로서 서로 연관되어 있으며 우리에게 영향을 미치고 있다는 것을 말하고 있다. 밤하늘의 천체의 놓은 위치와 운행이 태양계의 몇 개의 별과 위성의 위치와 운행이 지구의 자기장과 사회적 에너지장에 미치는 영향을 이야기한다. 오행은 드러난 세상의 법칙이다. 음양이 더욱 세상에 현현해서 우리들의 현실적인 삶에 영향을 미치는 이야기들에 관한 것이다.

  그는 이어서 이판과 사판의 이야기로 넘어간다. 이판은 형이상학적인 세계이다. 불교에서는 부처님의 세계이자 열반의 세계가 된다. 우리들의 마음 속에 있는 영원의 공간이기도 하고 절대의 공간이기도 하다. 이 문제가 해결이되면 사판의 문제도 비로소 해결된다. 하지만 사람들은 자신들의 자아와 그를 둘러싼 외부의 물질적인 것에 많은 관심을 가지고 있고 따라서 이판의 문제를 쉽게 마음에 품지 못한다. 세상을 바르게 살기 위해서는 우선 이판의 문제를 해결해야 한다. 그것은 삶의 의미의 문제일 수도 있고, 꼭 해결해야만 하는 삶의 화두일 수도 있다.

  사판은 드러난 우리들의 일상생활이요 사회적으로 나아간 삶이다. 우리들의 삶과 사회를 둘러보면 개인의 욕망과 그 욕망의 산물인 제도와 권력간의 갈등들로 하루도 편한 날이 없다. 업이 업을 만나서 일어난 사고들과 욕망이 욕망과 부딪혀 생겨난 결과들이 세상을 혼탁하게 한다. 그 혼탁해진 세상은 다음날이면 언제 그랬냐는 듯 또 다시 세상 속으로 묻혀들어간다. 사판은 드러난 세상의 사사무애함을 지향한다. 그러기 위해선 이판의 문제가 해결되지 않고서는 안된다. 그래서 사판이란 이판을 등에 업은 사판이라야 한다. 그러면 사판은 한 송이의 꽃이 된다. 세계일화가 된다.

  추워져가는 날씨, 그 옛날의 난로가 그리워지고 그 난로에 손을 내밀고 둘러앉아 오손도손 정답게 나누는 옛 이야기가 그리워진다. 그럴 무렵 조용헌 씨의 이 책을 만나게 되어서 잠시나마 그 그리움을 달랠 수 있었다. 그의 살롱은 구수한 향수가 베어있다. 잠시동안 그의 난로 앞에서 손을 녹히었으니 이젠 추운 밖으로 나가야 할 때다. 그 추위를 헤치고 따뜻한 고향의 집으로 돌아가야 할 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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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로그인 2006-11-26 09:38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조용헌씨의 입담이 대단하지요.
저도 이분의 '명문가 이야기'를 지니고 있습니다.


달팽이 2006-11-26 21:50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네, 입담으로 표현된 그 사람의 마음이 보이는 세상과 균형을 맞추는 보이지 않는 세상을 향하고 있다는 점이 저의 마음을 끕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