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야위어도 천하는 살찌리라 - 5백년, 조선시대 최고의 문장
이수광 지음 / 일송북 / 2006년 7월
평점 :
품절


  무릇 난세에 영웅이 나온다고 했다. 난세에는 명문도 나온다. 난세에 세상 민심을 대변하는 행동을 하는 사람을 영웅이라고 한다면 세상 민심의 가려운 마음을 긁어주는 글을 명문이라고 하지 않을까? 역사의 파란 속에서도 자신의 일신을 돌보지 않고 세상의 부름에 나아갔던 많은 이들, 자신의 한 생명을 초개와도 같이 버림으로써 민족적 대의와 세계 평화와 정의를 구현하고자 했던 많은 이들, 그들은 자신의 몸의 영욕과 부귀를 버렸지만 영혼의 안식과 성장을 꿈꾸었기에 세상의 마음을 얻었고, 후세의 가슴 속에 사라지지 않을 이름을 남길 수 있었으리라.

  피비린내나는 사화의 한가운데에서도 그 칼날이 자신의 목을 겨누고 돌아올 것임을 알고서도 조정의 혁신과 왕을 향한 직언을 통해 사회를 바르게 세우고자 했던 사림들의 꼿꼿한 정신이 있었다. 기득권을 지키고 자신의 부귀영화를 부풀리려는 간신들의 틈바구니 속에서 주변 강대국들이 죄어오는 조국의 운명을 걱정하면서 종묘사직을 위해 자신을 아끼지 않았던 왕이 있었다. 왕조의 말기 피폐해진 서민의 살림과 관리들의 혹독한 횡포 아래서 새로운 세상을 꿈꾸었다는 이유로 가혹한 학살로 내몰렸던 불운의 천주교도들의 삶도 있었다. 끝없는 굶주림과 질병 속에서도 가혹한 착취와 민권의 유린을 견뎌내면서도 외세에 흔들리는 국가의 풍전등화와 같은 운명을 바꾸어보고자 그리고 새 세상, 인간평등과 자주독립의 꿈을 드높이 세웠던 동학농민군의 눈물이 있었다. 국권 상실의 위기에 직면하여 약한 국력으로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하며 힘없고 나약한 시대의 국민으로 태어나 비참하게 살다가 젊은 나이로 세상을 버린 안타까움도 있었다. 사랑하는 아내이자 국모를 일본의 무사들에게 도륙당하는 것을 눈을 뜨고 보면서 조국의 주권을 빼앗기는 것을 울분과 한숨으로 지켜보아야만 하는 왕의 깊은 좌절과 고통도 있었다.

  2030년경에 한반도를 강타할 특급 태풍의 이야기가 나돌고 있다. 지구의 기상이변으로 해일과 특급태풍은 전례없이 한반도의 운명을 좌우할 수도 있다는 예측이 나왔다. 세상의 모든 것을 파괴시키고 쓸어가는 그 태풍의 한가운데에는 구름 한 점 없고 바람 한 점 없는 고요하고도 쾌청한 하늘을 만들어내는 '태풍의 눈'이 있다고 한다. 역사의 파란 속에서도 자신의 안위를 걱정하지 않고 오직 민족과 국가의 장래에 자신을 바쳤던 이들의 마음 속에 바로 이러한 태풍의 눈이 존재하지 않았을까 하는 생각을 해보았다. 농민들의 인간다운 삶과 만인 평등의 세상과 남을 위해 사는 세상을 꿈꾸었던 해월 선생의 마음에서도, 거대한 구제도와 기득권의 횡포에 맞서 젊은 나이에 국가의 제도를 혁신하고 이상적인 유교사회의 꿈을 꾸었던 조광조와 많은 사림들의 마음에서도 나는 이를 본 듯 하였다.

  조선 후기 사대부 이응태의 부인 이씨의 <망부가>에 보면 이런 말이 나온다.

당신이 언제나 나에게 이르기를, 둘이 머리가 하얗게 되도록 살다가 함께 죽자고 하시더니 어찌하여 나를 두고 당신 먼저 가시나요? 나와 어린 자식은 누구의 말을 듣고 어떻게 살라고 다 버리고 당신 먼저 가시나요? 당신이 나에게 마음을 어떻게 가져왔고 또 나는 당신에게 어떻게 마음을 가져왔나요? 함께 누워 있을 때면 매양 당신이 나에게 이르기를, 다른 사람들도 우리처럼 어여삐 여기고 사랑할까. 남들도 정말 우리 같을까. 어찌 그러한 일들을 생각하시지 아니하고 나를 버리고 당신 먼저 가시나요? 당신 여의고는 아무리 해도 나는 살 수가 없어요. 어서 당신에게 가고 싶으니 나를 빨리 데려가 주세요. 당신을 향한 마음을 이승에서 잊을 수가 없으니 슬픈 생각은 한이 없습니다. 내 마음 어디에 두고 자식 데리고 당신을 그리워하며 살 수 있을까요? 이내 편지 보시고 내 꿈에 와서 자세히 말해 주세요. 꿈에서 당신 말을 자세히 듣고 싶어서 이렇게 편지를 써서 넣어 드립니다. 자세히 보시고 나에게 말해 주세요. 내 뱃속의 당신 자식 낳으면 보고 말할 것 있다 하고 그렇게 가시니 뱃속의 자식 낳으면 누구를 아버지라고 해야 할까요?

  자신의 꿈과 이상을 생전에 펼치지 못하고 뜻을 접은 그들이 과연 후세에 무엇을 남겼을까? 하고 묻게 되자 나에게는 이씨 부인의 편지글에서 뜻밖의 답을 찾았다. "내 뱃속의 당신 자식 낳으면 보고 말할 것 있다 하고 그렇게 가시니 뱃 속의 자식 낳으면 누구를 아버지라고 해야 할까요?"가 바로 그 답이다. 그들의 마음이 후세에 그들의 글과 행적을 읽는 사람들로 하여금 인격과 성품을 형성하여 오늘날의 현실에서 그 마음과 행동으로 풀어내는 것이 아닐까 하고 말이다. 우리의 정신적 아버지를 누구라고 불러야 할 것인가? 과연 나의 정신적 아버지를 누구라고 불러야 할 것인가?

  격랑의 세월 속에 그 격랑의 시대를 한 문장으로 표현해내었던 그 사람들의 마음 속에 아마도 그 격랑의 시대와 세월이 고스란히 담기었을 것이다. 하지만 어찌 그 격랑에 마음이 휩쓸리는 것으로 세상사의 옳고 그름을 다하랴! 그들의 마음 속에 보다 넓은 세상과 우주를 품었다면 아마 그들의 행적과 삶이 조금은 가벼웠을런지도 모른다. 무섭고도 맹렬한 태풍을 온몸으로 맞으면서도 마음은 태풍의 눈에 머물고 있었던 삶의 스승들이 좀 더 아쉬워지는 것은 무엇 때문일까? 그런 고로 "나는 야위어도 천하는 살찌리라."는 말에 담긴 뜻이 더욱 나의 마음을 울리고 있음을 느낀다.


댓글(2) 먼댓글(0) 좋아요(2)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비로그인 2006-11-20 14:55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많은 사람들이 실제보다 '폄하'하는 조선조의 사상과 당시 인민들의 삶에
좀더 주목해볼 필요가 있을 것입니다.

망부가는 또 읽어보아도 애닯습니다..


달팽이 2006-11-20 15:33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조선조의 사상에는 좀 더 관심이 가는 바가 없지 않습니다.
우선 퇴계 선생님과 율곡 선생님 남명 선생님과 조선후기의 연암과 그의 친구들까지....
망부가도 보고 싶군요..
 
선녀는 왜 나무꾼을 떠났을까 - 옛이야기를 통해서 본 여성성의 재발견
고혜경 지음 / 한겨레출판 / 2006년 9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사회는 이제 여성의 권리를 인정할 수밖에 없게 되고 있다. 여성들의 사회적 진출과 기존의 지위에서의 이탈은 남성들에게는 이전에 여성이 부담했던 것을 더욱 많이 분담해야 하는 것을 의미했다. 서로가 서로를 배려하면서 주어진 일들을 나누어가질 마음의 준비가 되지 못한 남성들에게는 이제 사회적 질시와 가족관계로부터의 이탈이 그를 기다리고 있음을 각오해야만 한다. 물론 외부의 억압요소가 두려워서 서로를 배려한다면 그것은 아무런 의미가 없다. 외부적으로 강요된 것이 아닌 스스로의 우러난 마음에서 서로를 배려하는 마음이 생긴다면 누가 어떤 일을 나누어가지는가는 별로 중요한 문제가 못된다.

  가부장제와 함께 시작된 남성중심의 사회는 여성들에게나 남성들에게 너무나도 가혹한 억압구조를 가졌다. 부족이 살아남기 위해 어쩔 수 없이 강해져야만 하는 적자생존의 현실이 작용했음도 부정할 수는 없지만 인류는 외부적으로 주어진 강요를 스스로 내면화시키는 작업을 거쳐왔기에 그것이 우리의 마음으로 침투될 수 있었던 것이다. 사실 이 책을 읽으면서 여성들에게 가지는 의미와는 별도로 남성들의 내면속에서 억압당해서 제대로 펼쳐보지도 못했던 남성 속의 여성성(아니마)을 생각하니 분명 여러 명의 상처입은 아이들이 우리들의 가슴 속에서 웅크리고 있는 것이 보였다.

  그래서 결국 남성성과 여성성은 하나의 뿌리로부터 출발한다. 그것은 성(우주본성)을 말한다. 이 성이 남성성과 여성성으로 분화되고 남여로 분리된다. 따라서 남성성의 부족한 점을 여성성이 메꾸어주는 면과 여성성의 부족한 면을 메꾸어주는 남성성의 면을 넘어선 곳에 그 자체로 완전하고 모자람이 없는 성의 공간으로 들어가면 모든 분리의 문제는 해결된다.

  남성성과 여성성을 분리된 것으로서가 아니라 하나의 인간 속에 동시에 갖추어져 있는 것으로서 파악했다는 점과 그 여성성을 통해 우리가 잃어버렸던 영원성의 공간으로의 향수와 회귀본능을 그려내었다는 점이 이 책이 주는 메세지다. 그것이 옛 이야기 속에 어떻게 녹아들었으며 그래서 우리가 그것을 어떻게 읽어야 할 것인가에 대해 독창적인 사고를 드러낸다. 우리들의 몸과 마음은 땅(형이하학적인 세계)에서 허덕인다. 우리의 욕망과 감각에 의한 삶이 중심이 되는 이 곳에서는 여성과 남성 간의 문제도 욕망으로 드러나고 리바이어던과도 같은 끝없는 욕망의 괴물은 서로 간의 갈등을 키워가다가 어느 순간 상대방을 삼켜버린다. 그래서 우리는 이러한 땅에서의 탈출을 시도한다. 그것은 하늘(형이상학적인 세계)이라는 공간이 된다. 우리의 영혼이 저절로 꿈꾸는 그 곳에서는 이미 우리들을 스치고 간 선녀가 늘 있던 그 장소에서 우리를 기다리고 있을런지도 모른다.


댓글(4) 먼댓글(0) 좋아요(4)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가시장미 2006-11-01 01:23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오랜만에 왔는데, 역시 좋은 리뷰를 만나게 되는군요. :) 아니마 아니무스를 생각하면 결국 인간은 둘이 만나 하나를 이루기보다 하나이면서도 둘인 완벽한 존재이길 바랬을지도 모른다는 생각이들어요. 아니, 하나인데 둘이라고 강요하는 사회에 의해 어쩔 수 없이 그 바람을 접었다고 해야하나... -_-; 정리가 안되지만서도.. 으흣

제 안에 아니무스를 발견하게 될 때, 자연스럽게 그 모습까지도 수용하게 되길. 그리고 제 곁에 있는 사람의 아니마를 발견할 때도 자연스럽게 그 모습까지도 수용할 수 있었으면 좋겠어요. 더 나이가 많이 많이 들면... 다시 한번 이런 바람을 떠올리겠죠.

달팽이 2006-11-01 07:52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두 사람이 만나기 이전 이미 각자가 스스로 완전한 존재임을 알아야겠다는 생각이 듭니다. 말씀 감사해요.

글샘 2006-11-01 09:10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선녀는 금성에서 온 존재라고 하지요. 나무꾼은 화성 남자고.
그럼 화성 남자가 금성으로 찾아가든가 하는 수밖엔 없겠지요.
다름을 인정하는 것. 그리고 개인차는 남성과 여성 사이를 무한한 스펙트럼으로 존재한다는 것. 잘 읽고 갑니다.

달팽이 2006-11-01 10:16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금성과 화성으로 갈라지기 전의 우주공간으로 들어가야 하겠군요.
우주의 블랙홀으로요..
 
부모와 아이 사이 우리들사이 시리즈 1
하임 기너트 외 지음, 신홍민 옮김 / 양철북 / 2003년 8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시윤이의 이상행동

  현우가 태어난다고 엄마의 배에다 귀를 대고 박동소리를 들으며 좋아하던 시윤이, 하지만 그 때에는 동생의 탄생이 자신에게 있어 많은 것을 빼앗아가는 것임을 이해하진 못했을 것이다. 엄마에게도, 아빠에게도, 할머니 할아버지 등 시윤이가 맺고 있는 작은 인간관계의 세계에서, 모든 사람이 자신에게 주었던 정이 어린 시선을 이제 현우에게도 나누어주기 시작했고, 예전에 그에게 독점적인 소유가 인정되었던 모든 장난감과 물건들은 이제 동생과 공유해야만 하는 현실이 전개되었다. 그의 상실감의 가장 큰 기점은 아무래도 우리집의 큰 방에 놓여 있던 침대였을 것이다. 시윤이가 생기면서부터 남편인 나는 침대로부터 쫓겨난 첫번째 희생자였다. 물론 그 때의 상실감이 아직도 나를 어지럽게 하는 것은 사실이다. 어느 때와 같이 동생에게 젖을 물리는 엄마 옆에 붙어서 투정을 부리던 어느 날, 그는 앞으로 영원히 침대라는 아늑한 공간에서 추방될 사건을 맞아버렸다. 아무런 정신적 준비도 갖추지 못한 채....물론 가끔 엄마가 동생을 재우고 그의 투정을 받아주기는 했지만 언제부터인가 시윤이의 머릿속에도 이젠 저 침대는 더 이상 나의 것이 아니구나 하는 생각을 하게 되었던 것이다.

  그다지 정이 없어보이던 아빠와의 동침이 시작되었던 것도 그 무렵이었다. 그가 쓰던 보행기도 이젠 동생이 사용할 때엔 순서를 기다려야 했고, 할머니의 등짝도 이젠 더 이상 그를 우선 순위로 두지 않았다. 처음에는 현우에 대한 그의 시선이 예쁜 아기를 보는 신비로움과 자신의 유일한 형제가 생긴 것에 대한 막연한 기대감과 기쁨이었는데 그것이 어느 순간 돌아보니 상실감과 분노로 채워져 있었던 것이다. 그래서 그는 이 모든 것의 원인을 동생 '현우'라고 결론내린 듯 했다. 그 때부터 현우의 괴로운 하루도 시작되었다. 현우의 다리와 손을 꼬집는다든지, 현우가 만지는 물건을 무조건 빼앗는다든지..현우를 업으려고 할머니가 등짝을 내밀면 먼저 그 자리를 차지하는 방식으로 그는 현우에 대한 미움을 표현했다. 어느 날 주말 아침이었다. 시윤이는 나에게 다가와 말했다. "아빠, 현우 만덕터널에 갖다 버려", 그 말을 들은 나는 깜짝 놀랐다. 시윤이가 정말 현우를 미워하는구나 하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그때부터 시윤이의 행동을 유심히 살펴보기 시작했다. 잠들기 전에는 꼭 투정을 하면서 침대가 있는 방에서 자는 것을 거부했다. 엄마의 손을 끌고 밖으로 나가려 하다가 엄마의 거부의 눈빛을 받으면 울면서 거실로 나가 투정을 부리다 바닥에 아무렇게나 엎드려 자는 경우가 허다했다.

  * 나의 마음 들여다보기

  시윤이의 변화된 행동을 보면서 마음으로는 수용하기 힘든 부분이 생기게 되었다. 처음에는 달래보고 조목조목 쉬운 언어로 현우와 시윤이와의 관계를 설명해보기도 하였지만 마음 속에 깊게 패인 감정을 달래줄 수가 없었다. 다음으로는 시윤이에게 상대적으로 애정표현을 더욱 많이 하게 되었지만 그것도 현우와의 관계를 조금도 개선시키지 못하였다. 그런 일련의 행동들을 보면서 나는 마음이 편치 않았다. 늦은 밤 겨우 재워놓은 현우를 시윤이가 침대에 올라가 해꼬지를 하고 잠을 깨우고 엄마에게 혼이 나고 때로는 나에게 손으로 엉덩이를 맞으면서 현우에게 반응하는 시윤이의 감정에 맞서는 나의 감정도 커지고 있었던 것이다. 때로는 보행기를 탄 현우를 집안의 턱 아래로 밀어서 다치는 경우도 생기게 되었다. 지금 현우의 손등은 시윤이가 꼬집은 자국들로 딱지투성이다. 눈 앞에서 아이들이 이런 행동들을 보일 때에는 그냥 외면하는 것이 쉽지 않다. 그렇다고 섣불리 내 감정까지 섞어서 개입한다면 더욱 나쁜 결과만을 초래하게 될 것도 불을 보듯 뻔한 일이다. 그런 사실을 몇 번의 화를 내면서 시윤이의 엉덩이를 두어차례 찰싹 하고 때리면서 알게 되었다. 그러면서 나의 마음 속에서는 여러 가지 마음이 복잡하게 섞이게 되었고 이렇게 불편해진 마음을 차분하게 정리하고 싶은 생각이 일게 되었다.

  * 외과의사는 마음만 가지고 환자를 수술할 수 없다. 기술이 필요하다.

  그래서 아이들을 대하고 기르는 데에는 단순히 좋은 마음으로만 해결할 수 없는 일들이 참 많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아이를 사랑하고 신뢰하는 마음의 축이 아무리 견고하더라도 일상의 자잔한 감정의 소용돌이에 말리고나면 아무런 이정표도 없이 표류하는 통나무와 다를 바가 없기 때문이다. 그래서 아이들의 마음을 보다 잘 들여다보고 아이들의 감정을 상하지 않게 하는 행동과 말의 요령도 필요한 것이다. 아이들이 예전에는 전혀 보이지 않는 행동을 보일 때 우리들의 불안하고 당황스러운 마음을 미리 잡아주고 그 이상행동에 대한 대처요령에 대해 우리는 이전의 많은 선배들의 경험으로부터 배울 수 있기 때문이다. 그런 노력이 부족해서 아이들에게 미치는 영향과 무엇보다도 우리 스스로의 마음을 불편하게 만들어서 하루 하루의 생활을 행복하게 영위하는 것을 어렵게 하는 것은 피해야 하기 때문이다. 이 책은 하임 기트너가 70년대 초반에 아이와 부모 사이의 의사소통의 미숙함에서 생기는 여러 가지 문제들을 해결하기 위해 정성들여 써낸 책이다. 이미 80년대에 전세계적으로 교과서적인 의미를 가졌던 이 책은 아직도 많은 국가의 부모들에게 꾸준히 읽히고 있는 책이다. 우리와는 전혀 다른 세계에서 살고 있는 아이들에게 또 다른 어른들의 세계를 갖고 있는 우리들이 어떤 의사소통방법을 통해 그들의 세상과 잇는 다리를 놓을까 하는 고민에서 이 책은 만들어졌다. 지금도 이 시대의 많은 부모들은 아이들의 세계와 소통하려 한다. 하지만 의욕만으로 그 아이들의 세계에 도달하는 것은 불가능해 보인다. 그래서 그 멀고 먼 두 세계를 잇는 다리가 필요하다. 두 세계의 거리가 아주 먼 만큼 그 긴 다리를 건설하는 기술도 뛰어나야 한다. 보다 정교하고 보다 멀리 보고 보다 튼튼한 다리를 세우기 위해서는 대상을 깊이 관찰하고 그 본질에 깊이 다가가는 특별한 눈과 기법이 필요하다.

  * 기술을 다 배웠거든 버려라

  심리학적으로 생기는 인간관계의 문제점에 대한 대책과 그 해결노력은 기술적으로 이루어지는 것이 사실이지만 그렇다고 매 순간 순간의 일에 교과서적으로만 대처할 수는 없는 노릇이다. 바둑에 보면 "정석을 다 배웠거든 정석을 버려라"는 말이 있다. 교과서적인 내용은 대부분 이상적이고 추상화된 형태가 많기 때문에 복잡다난하고 한번도 재생되지 않는 현실에 그대로 적용하려 할 경우에는 그 병폐가 많은 것으로 안다. 그래서 기본적인 마인드만 배우면 현실에 따라 다양하게 적용할 수 있는 응용력이 필요하다. 결국 마음의 기술은 먼저 그 마음을 갖추는 것에서부터 출발하고 인간관계의 기술은 우선 인격을 갖추는 것부터가 순서인 것이다.

  * 인간관계의 출발점과 귀착점은 마음

  하지만 기본적으로 사랑하는 마음과 인간에 대한 깊은 이해가 세상을 이해하고 그 세상을 살아가는 기본이다. 아이를 양육하는 데에도 이러한 태도는 빗나가지 않는다. 기법을 아무리 잘 익힌다 하더라도 자신의 마음에서 올라오는 화와 분노를 제대로 다스리지 못하면 아무 소용이 없기 때문이다. 그래서 인간관계에서 우선적으로 고려되어야 하는 것은 자신의 마음의 안정이다. 자신에게서 화가 만들어져 타인에게 옮겨지는 것은 위험하기 때문이다. 더구나 그것이 아직 세상을 모르고 이제 조금씩 사람으로 성장하는 아이라고 할 때에는 더욱 중요하다. 스폰지가 물을 빨아들이듯 일이 일어나는 상황에서 상대방의 마음을 흠뻑 흡수해버리는 고감도의 감수성을 가지고 있기 때문이다. 그래서 표현에 앞서 마음을 다스려야 하며 기술을 익히기에 앞서 인격을 바르게 세워야 하는 것이다. 아이들과 부모들에게서 생기는 대부분의 문제들은 어른들이 그것을 문제라고 생각하기 때문이고 아이들의 행동에 대한 어른들의 잘못된 반응에서 비롯된다고 말할 수 있다. 이제 다시 생각해보자. 과연 문제는 아이들이 만드는가 우리들이 만드는가?


댓글(7) 먼댓글(1) 좋아요(5)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1. 아이의 심리를 알아야 바르게 대화할 수 있다 "부모와 아이 사이"
    from 風林火山 : 승부사의 이야기 2007-10-26 13:16 
    부모와 아이 사이 - 하임 기너트 외 지음, 신홍민 옮김/양철북 총평 2007년 10월 24일 읽은 책이다. 내 아들 진강이 때문에 유아 교육에 관심을 가질 수 밖에 없었고 관련 서적을 찾다가 고른 책이다. 임상 심리학자이자 어린이 심리 치료사인 저자의 직업에서 알 수 있듯이 책은 아이의 심리에 대해서 매우 깊은 고찰이 담겨져 있다. 마치 우리가 동물들에 대해서 하는 행위에 대해서 동물의 생각을 말로 표현하는 것과 같이 우리가 아이들에게 하는 언행에..
 
 
글샘 2006-10-26 10:25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요즘 육아 스트레스가 만만치 않으시군요. ^^
인간에 대한 마음 씀씀이는 기술로는 안 되는 것 같습니다.
상담 연수 때 배운 그대로 말을 했다가는 아이들하고 소통할 수 없을 테니 말입니다.
아이의 엉덩이를 때리는 것도 하나의 소통 방식 아닐까요?
요즘 길거리에서 무료로 안아 드리는 것이 한국식 소통 방식이 아니듯이 말입니다.

달팽이 2006-10-26 10:50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순간 순간 마음으로 아이와 소통한다면 문제가 따로 없겠지요..
아이의 엉덩이를 때리는 것도...책에선 절대 안된다고 했지만...
제 생각도 글샘님과 같습니다.
경우에 따라 소통한다면 무슨 문제가 있을까요?
우리 학생들을 대할 때에도요..
망치로 때려도 사랑일 수 있고, 꽃으로 때려도 폭력일 수 있다.
문제는 가슴과 가슴으로 소통하는 그 마음이겠지요..

비자림 2006-10-26 11:43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아이 둘 키우느라 힘드시죠? 저희는 큰애가 순둥이라 좀 덜했는데 엄마를 갑자기 빼앗긴 그 애의 상실감을 저도 눈치채며 많이 미안했었답니다. 시윤이 더 많이 위해주고 안아주고 그러세요. 아빠가 오면 더 신나는 일이 생긴다는 느낌이 들게 작은 이벤트-동네 산책하기, 이불에서 뒹굴기, 안아서 빙그르르 돌려 주기, 작은 선물 주기 등-도 가끔 해 주세요. 특히 엄마가 일부러 더 안아주고 이뻐해 주는 시간 가져야 한답니다. 엄마들은 젖먹이에게 본능적으로 더 신경 쓰이기 마련이라 님이 말씀해 주세요. 시윤이 아기 때 앨범을 꺼내 보여 주고 그 때의 추억을 회상하는 것도 좋은 방법이구요. 시윤이가 놀이방이나 유치원 들어가면 신경이 분산되고 더 여물어 동생에게 덜 신경쓴답니다. 그리고 어느 사이에 둘이 신나게 놀기도 하지요.
우리집도 잘 하진 못했지만 지나온 시간들이라 님께 길게 말씀드리게 되네요.
달팽이님, 좋은 하루 보내세요~~~~~

저는 시윤이 때리는 건 더 나중에 하라고 말씀드리고 싶네요. 아직 어릴 것 같아서..
잠깐 서 있으라고 하거나 꿇어 앉으라고 하는 방법은 어떠신지..

달팽이 2006-10-26 12:01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네, 기억해 두었다가 써보겠습니다.
이렇게 자세히 도움글 주셔서 감사합니다.
선물 주기는 아직 한번도 해보지 않았는데...
곧 놀이방에 가는지라...시윤이의 관계의 폭이 좀 넓혀지면
또 어떤 변화가 올지 궁금합니다.
비자림님도 오늘 하루 행복하게 지내길 바랍니다.

달팽이 2006-10-26 12:18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음, 바람구두님의 세대가 저와 비슷한 것으로 아는데...
이른 나이에 이 책을 읽었다는 얘기군요...아버지가 되기 전에...
아님 결혼을 일찍 하셨든지...

2006-10-26 14:57   URL
비밀 댓글입니다.

달팽이 2006-10-26 15:39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글쓰기의 형식은 거문고줄 꽂아놓고 서평을 둘러보다가 맘에 드는 서평자님의 형식을 빌어봤습니다.

공유와 공감의 추천에 귀기울입니다.
 
거문고 줄 꽂아놓고 - 옛사람의 사귐
이승수 지음 / 돌베개 / 2006년 9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한때 '친구'라는 영화가 유행했던 때가 있었다. 이후로 조폭 이야기와 드라마가 온 사회를 휩쓸고 지나갔다. 사람들은 삶이 더욱 팍팍해질수록 어려울 때의 친구들을 기억한다. 삶의 바닥을 함께 했던 사람들을 기억한다. 그리고 그들과의 관계망을 더욱 확고하게 하려 한다. 그러면서 자신이 세상에서 홀로 고립된 섬이 아니라 그들과의 관계망으로 인해 버림받지 않았다는 느낌을 가지며 안도의 한 숨을 내쉰다. 현실이 더욱 이해타산적이 되고 조건이 변하고 지향하는 바가 다르고 몸담은 곳이 달라서 어제의 한 패거리가 오늘은 다른 패거리가 되어갈수록 피하고 싶은 외로움과 고독의 덮침은 두렵다. 확실히 조폭 이야기는 현실적인 이해타산을 어느 정도 넘어서는 우정을 보여준다. 때로는 자신의 목숨마저도 그 '우정'과 '신뢰'를 위해 희생한다. 이런 영화가 인기를 끄는 이유는 바로 우리가 이러한 조건을 뛰어넘는 우정과 인간적 신뢰에 목말라하고 있다는 점이다.

  하지만 로맨스와 추억이라는 좋은 이름을 갖고 있는 이 조폭의 우정은 그 그늘 속에 위험성이 도사리고 있음을 간과해서는 안된다. 그것은 우리가 살면서 가장 중요한 점인 고독을 회피하게 만든다는 점이다. 저자는 우정이란 성숙한 인격을 지닌 자유로운 영혼들의 대화 또는 만남이라고 말한다. 즉 성숙한 인격은 고독을 감내하는 데서 빚어지는 것이다. 가장 바람직한 우정은 천지간에 홀로 설 수 있는 사람들 사이에 성립하는 것이라고 말한다. 추억을 간직한 친구와의 우정이 위태로운 것은, 그것이 자신의 고독과 대면해야 하는 것을 회피하게 만들고 그 빈 자리를 친구와의 조건없고 맹목적인 이해와 신뢰에 의지하게끔 한다는 것이다. 친구를 사귀는 것도 중요하지만 그 친구가 자신에게 어떤 의미를 갖고 있는지 돌아보아야 하고 그 친구를 어떻게 사귈 것인지에 대해서도 우리는 생각해보아야 한다.

  물론 고독을 함께 나누고 오랫동안 쌓였던 정으로 서로의 눈빛만으로도 마음을 읽어서 배려와 신뢰를 주는 친구와의 만남은 언제나 즐겁다. 또한 그런 친구를 갖고 있다는 사실만으로도 세상 그 무엇과도 견줄 수 없는 보물을 가진 듯하다. 책을 들고서 독서삼매경에 빠져 들다가 문득 깨어 고개를 들면 생각나는 친구가 있고, 깊은 밤 한적하고 조용한 호숫가에서 물안개가 끼어 첩첩이 쌓인 산들이 선경으로 눈앞에 나설 때 달빛은 그 안개 속으로 스며들어 운치를 더할 때 술 한잔과 더불어 친구의 얼굴이 떠오른다면...이 흥이 아쉬움없이 다하련만....소식을 나눈 지 오래되어 어떻게 사는지가 궁금하고 공부는 어떤 진척을 이루었는지 궁금해도 연락할 길 막막할 때 불어오는 바람이라도 그 소식을 전해주면....하고 생각할 때 우리는 그 대상을 향한 깊어진 마음을 발견한다.

  그런 친구를 만나지 못했다 하더라도 한탄만 하고 살 수는 없는 일...때로는 책에서도 그런 친구를 만날 수 있기 때문이다. 마음을 온전히 싣어 글을 읽으면 내가 그 사람의 마음이 되고 그 사람과 이야기를 나누는 사람을 앞에 둔 듯이 느끼고 그 시대 속에 그 풍경 속에 나는 어느새 들어가 있다. 내 마음을 비우고 투명하게 하는 순간 그의 마음이 내 마음을 비추고 나는 내 인격으로는 과분한 스승들을 만나게 된다. 때로는 직접적인 질책과 호통을 맞게 되고 때로는 친절하고 배려깊은 조언도 듣게 된다. 그 순간 이미 내 주위에는 많은 친구들이 생겨나고 마음은 넉넉해진다.

  진정한 친구는 스승의 역할을 겸해야 한다고 했다. 벗에게서 스승의 모습을 찾을 수 없다면 진정한 벗일 수 없고, 스승에게서 벗의 모습을 찾을 수 없다면 참다운 스승이 아니라고 했다. 스승이 벗이 되고 벗이 스승이 되듯이 내가 그가 되고 그가 또한 내가 되는 마음의 공유와 교감이 없다면 그를 일러 어찌 벗이라 부르랴! 나이가 어리다고 함부로 대하지 아니하고 보다 연장자라고 해서 어려워만 하지 않고 속내를 털어놓을 수 있어야 비로소 참된 벗이라 이름할 수 있다. 나아가 서로의 모습에서 스스로의 모습을 비추어내지 못하고 마음을 자신에게로 돌려서 그 안에서 구하지 못하면 이를 두고 어찌 바른 우정이라고 하랴!

  우리는 여태껏 너무 나약한 자신을 외부와의 관계로서 보상받으려고만 살았다. 직시되어야 할 삶과 스스로 걸어가야만 할 고독의 길을 더이상 회피해서는 안된다. 내 삶에서 가장 부족한 것도 이것이다. 내 내부의 잡초가 무성하게 자라 한 번도 걸어가지 않은 길을 걸어서 깊은 숲 속 한가운데 자리한 영원한 생명의 나무를 만나야 한다. 그 생명의 나무 뿌리에서 다시 줄기로 가지로 나와 만난 뭇 생명들과의 나눔은 비로소 조건도 차이도 없게 될 것이다. 눈과 귀는 생김새와  그 기능이 다르지만 한 얼굴에 있다는 말이 있다. 나옹선사와 대유학자 이색과의 생사를 가른 만남에서 나는 이를 실감한다. 여기 이색을 모시고 와서 그의 시 한편을 들어보자.

스님께 없는 것은 나의 처자 족쇄요

나에게 없는 것은 금란가사 옷이라오

서로의 잃고 얻음 그 어디서 조절되나

봄바람 속 제비 춤 꾀꼬리 노래라네

 

  저자는 서두에서 "옛 사람들과 만나 이야기를 나누느라 현실을 잊거나, 바람이 들려주는 공간의 이야기에 귀 기울여 걸음을 멈추어 설 때가 많다."고 했다. 아주 멋진 말이다. 그가 걸어놓은 줄없는 거문고를 들고서 시공을 거슬러 올라가 우주를 정신없게 만들었던 열 두 만남의 폭발적이고도 조용한 선율을 마음껏 음미해보자.


댓글(5) 먼댓글(0) 좋아요(5)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2006-10-19 12:24   URL
비밀 댓글입니다.

달팽이 2006-10-19 16:02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오, 바람구두님의 첫 댓글이군요..
짧지만 반가운 글입니다.

파란여우 2006-10-20 10:59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망설이고 망설이다가 버려진(?) 책인데.
몰라요, 달팽이님의 지름때문에 보관함에(거의 파산지경인데..)

달팽이 2006-10-20 11:19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어허, 여우님 책값 때문에 팔아야 하는 염소를 생각하니..
가슴이 아픈데요..

어둔이 2006-10-20 16:06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달팽이께 없는 것은 두발의 걸음걸이요
어둔이께 없는 것은 지고가는 와옥이라네
인생의 빠르고느림을 그 누가 판단하나
가을햇살 속 누렇게 고개숙인 벼이삭이라네
 
디지로그 digilog - 선언편
이어령 지음 / 생각의나무 / 2006년 4월
평점 :
절판


  2000년대의 신새벽의 여명이 밝아온 것은 정보화물결과 함께였다. 정보기술의 발달과 사회의 변화는 아날로그적인 방식에서 디지털적인 방식으로의 삶의 변화를 가져왔고, 우리는 이미 그 1세대의 끝에서 정보혁명의 다음세대의 길 앞에 서있다. 비로소 그간에 진행되어 왔던 정보혁명과 정보화시대의 급속한 변화로 인한 문제점들을 둘러보게 되었고, 그런 반성의 바탕하에서 새롭게 밝아오는 정보 2세대로 난 길 앞에서 이어령 선생님은 희망의 격려사를 보내고 있다. 우리가 앞으로 가야할 길에 뭔지 모르는 밝은 느낌이 드는 것도 이 책 속의 선생님의 메세지때문이 아닐까 하고 생각하게 된다.

  한국은 세계가 인정하는 정보화강국이다. 90년대 후반부터 시작된 국가주도의 초고속 인터넷망의 구축과 인터넷 시장의 급속한 팽창은 IT와 정보 분야에서의 국민적 마인드를 새롭게 형성시키고 있고, 이것은 세계적인 추세를 만들어가고 있다. 그러나 맹목적으로 앞만 보고 달려가는 질주의 뒷모습에 너무나도 많이 초토화된 인간 군상이 그려진다. 더욱 외로워지고, 더욱 가상적이고 피상적인 인간관계에만 의존하게 되고, 수동적이고 능동적이지만 퇴폐, 향락, 즉흥적으로 흐르고, 너무 조급해지고, 정보의 수신자를 배려하기보다는 발신자의 상업주의만이 득실댄다. 정보의 바다는 정보의 폐수로 오염되고 우리는 그 속에서 사는 고기마냥 숨쉬기가 버거워 배를 드러내고 둥둥 뜨기조차 한다.

  세계 시장에 편입되어 뒤를 보지 못하고 달려왔던 급속한 경제성장의 시절, 질풍노도와도 같았던 그 성장기 속에 우리 가슴엔 치유되지 못하고 상처받은 어린 아이가 웅크리고 앉아 있다. 이제 그 상처받은 마음을 치유하기 위해서 우리는 질주하며 바람을 무더기로 맞고 있는 찡그린 얼굴 뒤로 땀을 쏟으며 가뿐 숨을 몰아쉬며 바람에 나부끼는 머리카락을 보아야 한다. 들썩이는 어깨를 보아야 한다. 잔뜩 긴장된 허리와 등을 보아야 한다. 후들거리는 다리도 보아야 하리라.

  그 뒷모습은 우리들의 오랜 전통과 문화이다. 디지털의 영역에 의해 하나둘씩 사라져가는 아날로그적 방식이다. 속도의 삶에 빼앗겨버린 우리들의 정신이자 영혼이다. 돈과 물질만을 위해 달려왔던 시간 속에 떠나버린 정겨운 사람들이다. 패스트푸드를 먹으며 잊어버렸던 시골집 독 속의 된장과 김치이다. 편리한 전기압력밥솥에 의해 잊혀져버린 눈과 코를 맵게 하는 아궁이이다. 나이프와 포크에 의해 휘둘리는 거친 음식이 아니라, 만들어내는 사람의 편의에 의해 만들어진 음식이 아니라 먹는 사람의 마음을 배려하는 음식이요, 그것이 바로 젓가락을 사용하는 음식이다. 손님이 오면 나이프와 포크와 함께 음식이 새로 나와야 하는 문화가 아니라, 수저만 달랑 얹어서 손님을 맞는 우리의 문화이다.

  디지털의 세상은 우리의 아날로그적인 삶을 더욱 풍요롭고 아름답게 만드는 면이 있다. 하지만 디지털이 자신의 영역을 넘어 맹목적으로 아날로그의 영역을 파괴할 때 우리의 삶도 파괴된다. 21세기의 인류가 다시 되돌아보아야 할 과거는 성장이라는 환상 속에 속도라는 우상 속에 우리가 버렸던 자연과 인간과 정신이다. 삶의 느림 속에 인생의 의미와 지혜를 묻는 물음이다. 한끼 식사에 5000여번을 씹던 우리의 어금니가 이젠 700-900번만 씹는 문화로 바뀌자 우리들의 뇌도 삶도 대충대충이 되고 빨리빨리가 되어버렸다.

  급속하게 몰아닥치는 외부의 흐름을 수용하면서도 그 핵심적 문제를 가장 단순하면서도 우리에게 가장 익숙했던 바로 그 전통과 문화에서 찾으려는 선생님의 대안이 '디지로그''라는 신조어를 만들었다. 세상을 보려면 이 정도의 눈은 있어야 하고 글을 쓰려면 이 정도의 자기 말은 만들어야 하는 것이 아닌가? 덤으로 꼬여버리고 복잡한 세상의 해법을 그의 시원스러운 입담과 물흐르는 듯한 그의 글에서도 찾을 수 있다. 새로운 시대를 위한 격려사가 이렇게 푸근하고 구수한 글로써도 앞으로의 희망을 그리게 할 수 있다니...

  너무 희망적이어서 작은 걱정이 이는 것은 또 무엇인가?


댓글(2) 먼댓글(0) 좋아요(19)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글샘 2006-08-29 08:23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눈뜨면 휴대폰을 챙기고 컴퓨터 전원을 넣고 메신저에 접속하는 모습을 보면... 디지털이 점령한 삶의 건조함이 푸석댑니다. 전통과 문화를 새롭게 조망하는 것은 <상업주의>나 <교환가치>에 의한 것들 뿐이라 더 서걱대는 시대를 사는 일도 신산하기만 합니다.

달팽이 2006-08-29 09:17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기업이 오히려 자연과 유기농, 전통과 문화를 더욱 앞장서서 상업화하는 것을 부정할 수 없군요.
그런 면에서 이어령 선생님도 일면 비판할 점도 있겠지요.
그렇지만 이 세상 안에서 또 다른 꿈을 늘 꾸고 살아야하는 우리 처지를 생각해보면
때로는 이러한 생각들도 건전한 대안이 될 수 있다는 생각이 드는군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