교회 속의 세상, 세상 속의 교회 - 법학자 김두식이 바라본 교회 속 세상 풍경
김두식 지음 / 홍성사 / 2010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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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초등 학교 시절에 교회에 다닌적이 있다.집안에서 기독교를 믿는이가 아무도 없었지만,친구 따라 강남간다고 교회 다니던 친구를 따라 교회에 가서 뭣도 모르고 부활절 달걀을 맛있게 먹고-그때 달걀을 까면 껍질에 묻어있던 색소가 안에 배어서 파랗고 노란 알록 달록한 모습이 너무나 이뻐 안먹고 손에 꼭 쥐고 있으면 손까지 물들은 기억이 난다.지금 생각하니 안좋은 공업용 색소인것 같다는 생각이 든다-재미난 연극도 보고,크리스마스때는 성탄 선물도 받았던 즐거운 추억이 새록 새록하다.
이후 초등학교를 졸업하고 이사를 가면서 교회에서 멀어지게 되었지만 내가 다녔던 교회와 당시 성도들에게는 아직도 좋은 추억을 많이 가지고 있다.
아 참 이제부터 기독교란 말대신 개신교란 말로 대체해야 겠다.기독교란 말에는 카톨릭+그리스 정교+성공회+프로텐스탄트가 포함된 말인데 요즘 대한민국에서 문제를 일으키는 것은 바로 미국에서 건너온 프로테슨탄트 즉 개신교이기 때문이다.

그런데 요즘은 마음 아프게도 제가 예전에 알았던 마음 따스한 개신교와 교회는 어디가고 타 종교를 배려하지 못하는 전투적이며 보수적이어서 이른바 꼴통 소리까지 듣게 되는 행동을 많이 하는 기독교,그래서 개독교와 먹사라는 비난을 듣는 그런 개신교를 여기 저기서 만나게 된다.(위에서 개독이란 말을 들으므로써 카톨릭마저 싸잡아서 비난을 받게 된다)
사랑과 무욕-부자가 천국을 들어가는 것은 낙타가 바늘귀를 들어가는 것보다 더 힘들다-을 말씀하신 예수님의 제자들이 이제 절 땅밣기를 하지 않나 목사님들은 교인들이 그런다고 하면 말려야 함에도 불구하고 대 놓고 앞장 서서 불교등 타 종교를 비방하고,10조 받아서 2천억짜리 대형 교회를 증축하고-과연 예수님이 대형 교회를 세우라고 가르쳤는지 성경을 암만 뒤져봐도 없더군요-그것도 모자라서 자기 자식에게 대형 교회를 세습까지 하며 이른 비판하는 교인들을 교회 밖으로 내쫒기까지 하니 왜 이 정도까지 변했나 하고 서글픈 생각까지 들 정도다.

어려서 항상 교회의 목사님에게 듣던 이야기중의 하나가 바로 세상의 빛과 소금이 되라는 말이었다.그러면서 "소금이 그 맛을 잃으면, 무슨 소용이 있나. 버려야지.." 이라는 말도 함께 듣곤 했는데,일부라고 생각하고 싶지만 개신교인들은 소금과 같이 세상을 빛나게 하는 아름다운 맛을 잃어버리고 무가치하고, 무기력해 졌다는 생각이 든다.

대다수 개신교인들은 좋은 사람들이 많이 있지만 이런 개신교에 대한 세간의 비판에 대해 귀를 닫으며 오히려 개신교의 교리를 제대로 모르는 이들이 개신교를 폄훼하려고 한다고 반박한다.하지만 모든 개신교인들이 이런 비판에 대해 무감각해 하지는 않는 것 같다.
하지만 그런 와중에도 개신교 내부적으로 일부지만 교회 내의 자성의 소리 또한 커지고 있는 것도 사실이다.그래서인가. 출판물 가운데도 한국 교회의 문제점을 지적한 책이 왕왕 출간되고 있는데 교회 속의 세상, 세상 속의 교회가 그런 책중의 하나이다

교회 속의 세상, 세상 속의 교회은 책 제목속에 책의 모든 내용이 함축되어 있다.저자인 김두식은 검사출신 법대교수로 저자가 '불멸의 신성가족'으로 자신이 몸 담았던 법조계를 비판했듯이, 개신교도인 저자가 현 시대 한국사회의 개신교를 비판하고, 어떻게 바뀌는 것이 좋겠다고 이야기를 과감하게 쓴 책으로 단지 개신교도만 위해 쓴 책이 아니어서 일반 독자들도 충분히 읽을 수 있도록 재미있고 설명적으로 쓰여져있다.

책속에는 개신교인들이라면 일반인들 읽지 못하게 하고 싶은 내부의 치부가 적나라하게 들어는데 저자 역시 책을 쓰는 일을 “피할 수만 있으면 피하고 싶었다”고 고백하고 있는데 책속의 내용들은 개신교도라면 어쩌면 한번씩은 생각보고 부끄러워 할 그런 내용들이다.
예를 들면 교회 본당에 환풍기를 설치한 집사님은 목사님의 강력한 지지에 힘입어 장로에 피선되고 설교자는 설교만 하고, 교인들은 그저 듣기만 하는 영화관식으로 교회의 구조가 이루어 진다.

이후 교회에서 성장해 가는 동안 저는 여러 직분을 정하는 데 돈보다 더 큰 요소가 있음을 알게 되었습니다. 그것은 바로 사회적 지위였습니다. 사회적 지위에 비하면 돈은 오히려 부차적인 문제였습니다. 그때나 지금이나 변호사인 사람은 교회에서도 똑같이 변호사로 대접받고, 의사인 사람은 교회에서도 똑같이 의사로 대접받습니다. 아무리 신앙 연륜이 짧아도 이른바 ‘사’ 자 돌림 직업을 가진 사람은 쉽게 목사님의 주목을 받을 수 있으며, 교회 의사 결정 구조에도 남보다 훨씬 빨리 접근할 수 있습니다. 사람 사는 곳 어디에나 있는 당연한 일이 아니냐고 하실지 모르지만, 우리나라는 그 정도가 지나칩니다(15 p)

간단한 질문을 던져 보겠습니다. 지금 교회에서 함께 신앙생활을 하는 형제가 갑작스런 교통사고나 암으로 세상을 떠났다고 칩시다. 그에게는 아내와 어린아이들이 딸려 있습니다. 이런 경우 교회는 어떤 역할을 하게 될까요? 우선 목사님과 교인들이 장례식장을 방문해 장례를 집전하고 가족들을 위로하며 함께 눈물을 흘리겠지요. 부조를 얼마나 해야 할지 잠시 고민하고, 남겨진 가족이 불쌍하다는 생각에 평소보다 두 배의 돈을 집어넣을지도 모릅니다. 그러나 그것으로 끝입니다. 남겨진 가족에게 가장 중요한 현실적 생계의 문제는 더 이상 교회의 책임이 아닙니다.……죽은 남편이 보험을 많이 들어 놓았다는 소식을 장례식장에서 듣게 될 때도 있습니다. 그러면 목사님과 교인들은 “하나님이 미리 모든 것을 예비해 놓으셨으니 얼마나 감사하냐”며 기쁨을 나눕니다. “세상에 없어도 자식을 유학 보내고 결혼시키는 아버지가 있다”거나, “10억을 받았습니다”라고 아내가 조용히 고백하는 보험 광고 속의 세상에 교회도 동참하게 된 것입니다. 같은 공동체에서 하나님의 자녀가 되었다는 사람들의 역할은 딱 거기까지입니다. 교회 공동체의 일원이 된다는 것은 이 불확실성의 시대에 현실적으로는 아무런 도움이 되지 못합니다. 차라리 보험이나 많이 들어 놓는 것이 합리적인 선택입니다. (272-273p)

우리 담임 목사님들은 30~40년전 빈손으로 어떤 지역에 뛰어들어 갖은 고생 끝에 잘 지은 본당과 교육관, 주차장을 소유(?)하게 되셨습니다.재미있는 것은 우리 목사님이 강사로 나가시는 바로 그 상대방 교회의 목사님들 만이 우리 교회 부흥회 강사로 오신다는 점입니다.미국가서 공부하는 것을 본 적이 없는데도, 미국 박사가 되는 참 신기한 일이지요.
열심히하면 언젠가 부목사에서 담임 목사로 올라갈 수 있느냐 하면 그것도 불투명합니다. 이런 평균적 교회의 담임 목사님 아들이나 사위가 거의 예외 없이 미국에서 신학공부를 하고 있기 때문입니다.친하게 지내는 목사의 아들을 담임 목사로 영입함으로써 자기 아들의 미래를 보장받는 편법도 유행하고 있기 때문입니다.그분들이 믿는 하나님은 왜 그렇게 늘 부동산 투기에 목말라 하시는지 알 수 없습니다.읽기어려운 성경은 언제나 이를 해석해줄 '브로커'가 필요합니다.
서점의 기독교 베스트셀러 코너에 가보면 온통 부자 되는 것이 하나님의 축복이라는 이상한 책들만 넘쳐 납니다.

항상 남을 용서하고, 이웃을 아끼고 사랑하라는 예수님의 불편한 말씀과는 반대로 세상과 마찬가지로 돈 있고, 힘 있고, 권력이 있는 신도가 인정받는 그런 곳, 세상을 변화시키라는 설교를 들어도 그저 듣기만 할 뿐, 오로지 주일 날 교회에서만 섬기고, 봉사하고, 기뻐하고,감사할 뿐인 교인들, 교회의 세습과 여신도와의 간통 등의 목사님들에 부정이 만연한 교회의 모습이 오늘날 바로 외부에 비쳐지는 개신교의 모습이라고 할 수 있다.

교회 속의 세상, 세상 속의 교회에서 저자는 이런 개신교의 현항에 시퍼런 메스를 가하고 있다.
이 책은 현재 교회가 걸려있는 각종 질병에 대해 날카롭게 비판을 가하고 있다.칼빈이나 루터에 대한 비난뿐 아니라 저자가 출석하는 교회에 대한 비판까지도 서슴지 않고 하고 있다.그러면서 크리스찬으서의 애정을 담아 개신교 질병의 원인과 그 대안에 대해 개신교인 답게 성경을 샅샅이 뒤지고 역사적 사실을 언급하는데 성경을 기초로 한 해결 방안-교회가 교회답게 회복하자-을 제시한다.저자의 처방전은 개신교 신자뿐만이 아니라 기독교를 믿지 않는 사람이 보기에도 파격적이고 신선할 정도로 다양한 개혁과 실천을 처방전으로 제시하고 있다.
-작가 부인의 경험을 바탕으로 헌금 나눔을 제시한 나눔의 공동체,
-목사,장로 임기제를 도입.
-일정 연령이 되면 경제적 조건 없이 장로,권사로 칭하는 호칭제를 실시
-사회적 약자들이 머물수 있는 참 교회
-실직자들이나 사업 실패자들에게 재기 지원금을 마련해 주는 교회,
-집 없는 사람들에게 거처를 마련해 주는 교회등등
만약 이 정도의 개혁만 이루어져도 서울 곳곳에 빼곡히 있는 교회를 허가제로 하거나 아니면 정상적으로 세금을 내는 '법인'으로 등록하여 감사체제를 두거나 둘중에 하나를 해야 해결될 문제라고 생각하는 안티-개신교인들을 충분히 설득할 성 싶다.

개신교도인 저자기 철저한 개신교의 입장에서 반성한 이 책은 많은 개신교인들 그중에서도 대형 교회 목사님들과 소망 교회 장로님들(그중에서도 가장 대표적인 분)이 특히 읽을 만한 책이다.그리고 개신교 교회나 목사들의 예수님을 이념에 반하는 행동에 질려서 혹시 지금 다니는 교회 혹은 개신교를 떠날 생각을 가진 일반 신도라면 더더욱 읽기를 권하는 책이다.
무신론자를 보다는 이웃에게 사랑을 베풀고 도와줄주 아는 좋은 개신교인을 많아지는 것 또한 이 사회를 위해 바람직한 일이라 생각하기 때문이다.

by caspi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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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감의 시대
제레미 리프킨 지음, 이경남 옮김 / 민음사 / 2010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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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감의 시대는 제레미 리프킨의 신작으로 고대 신화적 의식의 시대로부터 기독교 문명의 발흥, 그리고 18세기 계몽주의 및 19세기 이데올로기의 시대와 20세기 심리학 시대에 이르기까지의 긴 여정에서 인간의 공감이 어떻게 계발돼 왔는지에 대해 드라마틱한 이야기를 들려주고 있다.
개인적으로 제리미 러프킨의 작품은 엔트로피,노동의 종말,육식의 종말,소유의 종말을 읽은 적이 있지만 이 공감의 시대는 내용도 내용이지만 700페이지가 넘는 책이다 보니 읽는데 상당한 압박감을 느끼고 솔직히 머리속에서 잘 들어오지 않는다.

전작인 <유러피언 드림>에서 '아메리칸 드림의 종말'을 고하며 새로운 시대의 비전을 제시했다면 공감의 시대 에서는 위기의 시대에 필요한 새로운 패러다임을 제시한다. 저자는 20세기가 석유라는 에너지를 기반으로 소수에게 부가 집중되는 경제 체제였지만 세계화가 정점에 이르러 기존의 경제 시스템으로는 더 이상 발전을 기대할 수 없게 되었다고 말하면서 21세기는 다윈식 적자생존 대신에 공감이 인간을 이해하는 새로운 패러다임으로 떠오르고 지금 세계는 오픈소스와 협력이 이끄는 3차 산업혁명의 시대로 접어들었다고 말하고 있다.

공감의 시대 1부 첫 대목에 1차 세계대전이 벌어지던 1914년 12월24일 저녁 프랑스 플랑드르 지방,땅거미가 깔릴 무렵 독일군 병사들이 크리스마스트리에 촛불을 붙이며 캐럴을 부르기 시작했고 넋을 잃고 바라보던 영국군 병사들이 박수를 치다 캐럴을 부르며 화답하며 양 진영 병사들은 참호 밖으로 나와 서로를 향해 걷기 시작했다.수천,수만의 병사가 그 뒤를 따랐는데 그들은 악수를 나누고 담배를 나누며 크리스마스 추억을 교환했다.병사들은 다음날 아침 태양이 전장위로 솟아올랐을 때도 조용히 이야기를 나누고 있었다.
르프킨은 이렇게 인간은 이기적 동물이 아니라 공감하는 동물이라고 강조하면서 공감하는 인간이 인류문명을 진화시켰으며 공감해야 살아 갈 수 있다고 말하고 인간은 공감하는 존재,즉 호모엠파티쿠스라고 주장하고 있다..

이처럼 책 도입 서두에 르프킨은 인간은 이기적인 동물이 아니라 공감하는 동물이라 주장에 대해 처음에는 선뜻 공감하기가 어려웠다.저자는 책속에서 많은 실 예와 이론을 곁들여서 인간의 본성에 공감적 특성의 씨앗이 이미 뿌려져 있고 이런 공감의 능력이나 공감의 문명이 처음에는 가려져 있다가 지속적으로 발현되어 왔다는 주장을 펼치면서 고대 신화적 의식의 시대로부터 기독교 문명의 발흥, 그리고 18세기 계몽주의 및 19세기 이데올로기의 시대와 20세기 심리학 시대에 이르기까지의 긴 여정에서 인간의 공감이 어떻게 계발돼 왔는지에 대해 드라마틱한 이야기를 들려준다.
그런데 과연 인류의 역사를 되돌아 보면 불평등과 반목의 역사라고 해도 과언이 아닌데-인류는 자신과 비슷한 부류가 잘되어 있을 경우 질투와 시기를 보내는대 노력(?)여하에 따라 타인의 것이 내것이 될수 있기에 수 많은 전쟁이 일어났다고 생각된다- 그렇게 발전해온 인류에게 공감의 씨앗이 있다는 좀 주장은 좀 우숩기도 하다.
제러미 리프킨의 신간 ‘공감의 시대’는 원제가 영어로 ‘empathic civilization’로 직역하면 “감정이입적 문명”이라는 뜻이다. ‘empathy’는 남의 아픔에 대해 동정하는 수준을 훌쩍 넘어 정말 남의 아픔이 내 아픔 같은 감정이입 수준까지 가면서 같이 아픔을 느끼는 수준의 경지를 말하는데 과연 인류가 타인에게 그런 감정 이입 수준의 공감을 언제 가졌었는지 이해가 되질 않는다.몇 몇 뛰어난 사람만이 그런 경지를 가졌을 뿐이지 않는가!

저자는 책속에서 또다른 시각을 우리에게 던져주는데 바로 인류 역사의 발전이 에너지 사용에 있어서의 양과 질(효율)이 늘어나는 과정이었다고 지적하면서 이 과정에서의 부산물로 ‘엔트로피’ 증가의 개념을 도입하고 있는 것이다.인류가 기술적으로 진보할 때마다 공동체의 크기는 커졌지만 환경이 복잡해지고 관계가 깊어질수록 그만큼 인류의 에너지 사용은 많아지고 자원은 더욱 빨리 고갈된다는 아이러니에 직면하고 있다는 것이다.무슨 말인가 하면 석유를 사용할 경우 에너지를 얻으면서 이산화탄소가 발생하는데 비록 이산화탄소에 내재된 에너지 총량은 석유와 같을지 모르지만 우리가 사용 가능한 상태(석유)에서 사용 불가능한 상태(이산화탄소)로 변환이 일어나면서 에너지는 고갈되어 간다는 것이다.
화석 에너지의 고갈과 그에 따른 이산화탄소의 증가는 재앙에 가까운 기후 변화와 우리의 존재 자체를 위협하는 치솟는 엔트로피가 자리 잡고 있으므로 21세기는 승자와 패자를 가르는 게임에서 윈윈 전략으로, 폐쇄성에서 투명 경영으로, 이기적 경쟁에서 이타적 협업으로, 엘리트 에너지에서 재생 가능한 분산 에너지로 소유의 시대에서 접속의 시대로 변하고 있으므로 인간 이해에 기초해 앞으로는 분산 네트워크를 기반으로 하는 협업의 경제 체제에 동승한 개인, 기업, 나라만이 살아남을 수 있다고 주장한다.

솔직히 800페이지에 가까운 이 책을 도서관에서 수박 겉 핧기 식으로 읽고 그 내용을 다 이해한다는 것은 어불성설이다.
저자의 말을 잘못 해석했는지도 모르지만 19세기 20세기에 걸쳐 이른바 서구 선진국들이 자행하던 제 3국가의 화석 자원 약탈을 통해서 발전했던 현재의 자본주의는 서서히 끝나가므로-즉 화석 자본도 고갈되고 총칼로 남을 약탈할 수도 없으므로-인류가 서로 공감대를 형성하고 전(全)지구적 경쟁을 심화시키는 현재의 문명에 종언을 고하고 새로운 문명의 도래를 앞당기자고 말 하는 것 같다.
저자는 새로운 문명의 키워드로 공감이란 말을 하고 있지만 서구 독자들의 입장에서 공감이란 말이 마음속에 와닿고 수긍이 갈지는 모르지만 솔족히 그들 눈에 변방의 한쪽끝에 있는 한국 독자의 시각으론 솔직히 마음에 잘 와 닿지 않는 내용이다.
책속에서 말하는 제 3차 산업혁명과 에너지 혁명을 위해 이른바 서구의 글로벌 기업들이 벌이는 활동은 또다른 의미의 제 3국가 수탈-과연 그들이 제 3국가에 공감을 가지고 많은 돈을 투자한 비즈니스 사업을 도와주려는 선한 의도로 접근하는것일까?-이라는 생각이 드는 것은 왜일까?

공감의 시대가 오고 있다는 저자의 시각은 ‘이해’가 간다.또 그렇게 밖에 될수 없지 않을까 하는 생각이 든다.다자간 시대에 과거처럼 어느 일방이 모든 것을 좌지우지 하는 시대는 지났기 때문이다.
하지만 공감이란 키워드로 저자가 제시하는 미래상은 조금은 엉뚱하게 느껴질 수도 있다. “서서히 모습을 드러내는 공감의 문명이 과연 엔트로피 증가라는 괴물과 충돌을 벌일 때 지구촌 붕괴를 피하고 생물권 의식과 범세계적인 공감에 이를 수 있을까?”라는 저자의 마지막 문장에서 아직 저자도 확실히 자신하자 못한다는 감을 받게 된다.

800페이지에 어찌보면 그닥 재미없는 내용일 수도 있지만 충분히 시간을 두고 읽어 볼 책임에는 틀림없다는 생각이 든다.그리고 이 책을 읽고 미래학자의 주장에 대해서 얼마나 공감할지 여부는 책을 읽은 독자 각각의 몫일 것이다.

by caspi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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독고준
고종석 지음 / 새움 / 2010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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독고 준 참으로 독특한 이름이다.한국에서 쓰이는 복성은 대게 중국에서 건너온 성인데 혹자는 아마도 이 이름을 듣고 이상무 화백의 만화 주인공이 아닌가 하고 생각하는 사람이 있을지도 모르겠다.이상무 화백 만화의 주인공이 바로 독고 탁과 김 준이기 때문이다.
그리고 혹 이 이름을 듣고 최인훈이란 이름을 떠올리면 그 사람은 상당히 한국 소설을 많이 읽은 사람임에 거의 틀림 없을 것이다.

일제 강점기에 북한에서 출생하여 학교를 다니다가 월남하여 남한에서 대학을 다니는 인물로 북한에 남아 있는 어머니와 누이 등 여러 가족은 생사를 알지 못하고, 함께 월남한 아버지는 남한에서 죽은 정말 남한에 피붙이 하나없는 고독한 상태의 인물인 주인공이 잃어버린 혹은 정립된 적이 없었던 ‘자기 자신’으로 향해 가는 과정을 그린 최인훈의 소설 회색인의 주인공이 바로 독고준이기 때문이다.
회색인은 작가 특유의 관념적 경향이 엿보이는 에세이 스타일의 독백이 주를 이루며 그간 우리에게 익숙한 소설 형식에 얽매이지 않은 듯한 느낌을 주는 실험적 소설로 4•19혁명 직전을 배경으로 역사적 정체성을 찾지 못하고 방황하는 독고 준을 중심인물로 내세워 분단현실과 민족주의 등 한국사회의 집단적 모순을 다루고 있는데 아마도 대학 시절 나름 문학도를 자처했다면 한번쯤은 읽어 봤을 책이다.이후 최인훈은 회색인의 마지막 장면인 독고준이 이유정이 들어가는 장면을 이용하여 독고준이 다시 이유정이 방을 나와 자신의 방으로 들어가는 그 짧은 찰나에 다양한 형태의 사람들을 만나면서 겪는 환상적인 일을 통해 등 오승훈의 서유기를 방불케하는 판타지의 세계로 독자들을 안내한다.
최인훈은 실천이성 바깥의 관념에 몰두하는 인간을 ‘회색인’이라 부르고, 그 회색인의 관념 여행을 ‘서유기’라 불렀는데 그가 창조한 독고준이란 인물은 좌와 우의 틈바구니에서 지식인의 고뇌를 리얼하게 보여주는 인물로 이후 수 많은 대학생들이 이 책을 읽으면서 감동과 자아 성찰의 계기를 마련해 주었던 것이다.

그런데 최인훈의 소설속 주인공인 독고준과 같은 동명의 소설이 나왔다.최인훈 작가가 쓴 작품인가 싶어 저자를 받더니 고종석이다.흠 동명의 다른 작품이구나 하고 생각했더니 웬걸 작가 최인훈이 미처 끝내지 못한 '독고준 3부작'의 완결판으로 '독고준 3부작'의 마지막 이야기이면서 또한 독고준과 그의 딸 독고원의 관념과 생활을 그린 독립적 작품이라고 한다.
한 작가가 다른 작가의 소설을 연작해서 쓰는 경우는 대게 몇가지 경우가 있는데 홍루몽의 경우처럼 원작자가 초고를 이미 만들어 놓은 상태에서 타계할 경우 후대의 작가가 그 원고를 찾아 완성하는 경우,작가 타계후 작가의 원고 초안을 가족이 타 작가에게 완성을 하도록 하는 경우,작가가 자신의 작품을 유능한 후배작가에게 쓰게해 후배작가의 성장을 돕는 경우등으로 나눌수 있다.

그런데 고종석은 고씨는 두 연작 장편 이후 3부작을 완성하지 못한 채 병상에 있는 최씨를 대신해 ‘독고준’ 3부작을 완성키로 하고 ‘서유기’ 이후 독고준의 삶을 상상하며 썼다고 한다.그는 한국일보와의 인텨뷰에서 "최인훈 선생님은 당초 독고준을 주인공으로 한 3부작 소설을 계획했었다"며 "이번 소설이 <회색인> <서유기>를 이을 자격이 있는지는 모르겠지만 생활보다 사색이 승하다는 점, 주변적인 것을 옹호한다는 점에선 앞선 두 작품과 닮은 꼴"이라고 말했는데 작가가 원작자의 병상에 있다는 이유로 허락없이 이처럼 마음대로 글을 써서도 되나 하는 생각이 들었다.비록 병상에 있지만 최인훈이 이미 독고준 3부작의 대미를 장식할 준비를 했을지도 모르고,최인훈이 고종석에게 마지막을 부탁했다는 말도 없는 것 같은데 이건 좀 아니다 싶은 생각이 든다.

아무튼 소설 독고준은 주류 문단과는 별개로 ‘관념소설’을 쓰며 ‘회색인’이라 불리면서 독자적인 작품 세계를 구축해 온 소설가 독고준이 투신 자살을 하고 그의 일기를 화자인 그의 딸 독고원의 발견하고 아버지의 일기를 읽으면서 일기에 그의 의견 혹은 단상들을 첨부하는 방법으로 소설이 구성되어 있다.
독고준은 참 독특한데 전통적 의미의 소설이라기보다는 일종의 인문 교양서 같은 느낌을 준다.왜냐하면 이 소설은 독고준의 일기를 월별-혹은 주제별-로 나누고 한국 정치상황,가족,서양의 정치인, 지식인,감명 깊게 읽었던 책에 대한 생각등 독고 준의 생각을 일기 형식으로 적는데 그것을 본 딸이 그에 대한 자신의 생각을 덫 붙이는 형식이다.
독고준이 소설이 아닌 교양서처럼 느껴지는 또다른 이유는 1950년대~2000년대의 세계사 사건과 인물에 대한 논평-예를 드골, 사르트르, 케네디, 닉슨, 김대중 및 한국 문단의 작가들-이 포함되어 있어 작가가 그동안 써온 신문 컬럼을 연상케 하기 때문이다.

이처럼 독고준은 20세기 후반의 전 세계의 정치와 문화와 예술의 분야에 대한 반세기의 흐름을 파악할 수 있다는 점에서 이 책을 읽는다면 상당한 지적 소양을 한번에 높일수 있겠지만 과연 독고준이 최인훈의 회색인과 서유기를 잇는 3부작의 대미를 잇는 작품일까 하는데는 고개를 갸웃거릴 수 밖에 없다.왜냐하면 현대문학을 그것도 한국문학을 전공하는 사람이 아니라면 잘 알 수 없는 작가에 대해서 거의 빠지지 않고 이런 저런 설명을 하는 것은 언어학자이자 저널리스트로서 자신의 방대한 지식을 자랑하는 것에 불과하다는 생각이 들었기 때문이다.물론 읽으면서 잘 쓴 책임에는 틀림없다는 생각을 가지게 되지만 그것을 소설로서가 아니라 인문 교양서적의 느낌이 보다 더 든다.

병상에 있는 최인훈이 이 책을 읽으면 무슨 생각을 할까 궁금하다.자신의 생각과 비슷한 작품이라고 칭찬할지 아니면 얼른 병세를 툴툴 털어버리고 다시금 독고준 3부작의 마지막 작품을 쓰기 위해 펜을 들지 궁금해 진다.

by caspi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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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글드 Googled - 우리가 알던 세상의 종말
켄 올레타 지음, 김우열 옮김 / 타임비즈 / 2010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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절판


요즘 대한 민국에서 가장 핫한 아이템은 바로 무엇일까? 그리고 이번 크리스 마스에 선물로 받고 싶은 것은 무엇일까? 요즘 20~30대에게 물어보면 아마도 대부분 십중 팔 구는 아이폰 아니면 아이패드라고 말 할 것이다.

그렇다,요즘의 대한 민국의 대세는 바로 아이폰과 아이패드다.애플의 스티브 잡스의 콧대를 하늘 높게 만든-그래서 애플의 아이폰 A/S 체계는 정말 그지 같기 짝이 없다.당최 고객을 정말 뭐 처럼 안다-이 두 IT기기는 적자 투성이던 애플을 그야말로 흑자 기업으로 만든 효자중의 효자다.스마트 폰이 얼마나 대세냐 하면 그래도 국내 핸폰 시장에선 굳게 2위를 지키고 있던 LG가 스마트 폰을 제때 만들지 못해 3위로 내려 않을 정도 이다.그런 아이폰에 대항하기 위해 나온 것이 바로 삼숑의 갤럭시 S와 알쥐의 옵티머스 원이다.

그런데 이 두 스마트폰의 공통점이 무언지 아는가? 바로 구글에서 나오는 안드로이드라는 운영체제를 갖고 있다는 점이다.우리는 구글하면 검색 엔진을 만든 회사중의 하나라고 알고 있는데 그런 회사에서 안드로이드란 운영체제도 만들었나 하고 가볍게 넘어가곤 한다.
애플의 스티브 잡스가 가장 두려워 하는 것이 무엇인지 아는가? 아마도 되돌아 보고 싶지 않은 역사의 반복일 것이다.잡스는 처음으로 개인용 PC인 애플을 개발했지만 뒤이어 IBM이 시장에 진입함으로써 시장에서 밀려났고 맥캔토시 개발을 통해 GUI를 개발했지만 곧 이어 마이크소 스프트의 윈도우에게 처절하게 밀리는 상황을 맞이하게 된다.이 두번의 시련으로 애플은 거의 죽다 살아났지만 다행히 잡스의 아이폰으로 제 3의 전성기를 맞이하게 되었지만 다시 역사가 되풀이 되려는지 구글이 안드로이드란 후발 스마트 폰 운영체제를 가지고 애플에게 도전하고 있는 것이다.

우리가 알고 있는 구글은 국내에선 변변한 힘을 쓰지 못하는 검색 업체일 따름이다.그리고 우리에게 구글이란 회사 역시 ‘일하기 좋은 회사’ 혹은 ‘훌륭한 검색엔진’ 정도로만 알려져 있고 구글을 소개한 책들 역시, 기업공개 직후에 주식 평가금액이 급등하면서 일약 백만장자가 된 행복한 그들의 모습만 조망했기에 어쩌다 운 좋게 검색 엔진 하나 잘 만들어 돈 번 회사로 치부하고 있다.
2003년에 처음 보였던 구글의 빈화면과 검색키워드 넣을 공간 하나만 만들어 놓은 모습은 지금은 좀 나이지긴 했지만 화려하고 자극적인 한국포털인 네이버나 다음에 비해서는 너무 보잘 것 없이 보여서 많은 사람들이 구글을 외면한 것이 사실이다.게다가 구글이 한국 시장에서 힘을 전혀 쓰지 못한 이유는 검색엔진은 좋으나 네이버가 블로거들과 카페들의 자료를 개방하지 않고 구글봇이 침투못하게 거부해서 구글이라는 막강한 검색싸이트는 한국에서 힘을 못쓰게 되고 현재도 그런 추세가 계속되고 있다.

하지만 해외에서 구글은 한국에서 보는 모습과는 전혀 다른 모습을 보여주고 있다. 허리우드영화에서 검색해봐라는 말 대신에 구글드! 라는 말을 쓸 정도로 미국등 영어권 나라에서는 검색과 동일한 말로 쓰이고 있다.마치 상품명인 버버리나 제록스가 트렌치 코트나 복사가의 대명사처럼 된것처럼 말이다.
현재 구글은 공룡 기업이 되어가고 있다. '정보'를 다루는 구글은 그들의 '초기' 모토였던 ‘악마가 되지 말자'에 충실하지만, '돈'을 다루는 구글은 이미 '악마 그 자체'이다.상상할 수조차 없이 구글로 많이 쏟아진 돈은 결국 구글이 미국 전체 인터넷 검색의 2/3를, 전 세계의 거의 70%를 장악하고 세계 최대의 UGC(사용자 생성 컨텐트) 공유사이트인 유튜브를 인수(2006)하게 했고,최대의 디지털 마케팅 회사 더블클릭을 인수(2007)하게 했으며 전 세계 온라인 광고 시장의 40%를 독식하게 만들었다.2008년 현재 구글의 광고수입은 미국 5개 방송사(CBS, NBC, ABC, Fox, CW)의 광고수입을 합한 것에 맞먹는다.
그리고 빅 브라더가 되가는 경향이 농후해 진다. 전 세계에 비밀리에 흩어져 있는 데이터센터를 통해 지금도 4시간마다 국회도서관 분량의 정보를 수집하고 모든 데이터를 디지털화 하려는 구글의 야망은 기록이란 기록은 다 저장하려고 하다보니 사생활 침해란 비판을 많이 받게 된다.

이처럼 하나의 거대한 제국이 된 구굴이지만 아직 우리는 검색으로 바꾼 구글 스토리에 나오는 구글정도만 알고 있다.
이에 뉴요커 칼럼니스트이자, 지난 3년 여간 구글의 경영 일선에 들어가 그들의 일거수일투족을 지켜본 켄 올레타가 지난 10년간의 데이터를 분석하고, 거기에 루퍼트 머독을 비롯한 유수 기업들의 경영자들이 직접 털어놓은 현실에 대한 토로까지 덧붙여, 기존 미디어그룹들이 처한 진퇴양난의 처지를 낱낱이 파헤친 책이 바로 구글드이다.

이 책을 읽어보면 잘 알겠지만 구글을 무조건 칭찬하거나 그렇다고 무조건 비판하지도 않는 객관적인 시선으로 구글의 장 단점을 쓴 책이다.
저자가 바라본 구글의 장점은 회사가 수직적 관계가 아닌 수평적 관계라는 점이다.사원들에게 자유시간 20%를 주어서 자유롭게 자기가 하고 싶은 프로젝트를 진행시키는데 이렇게 자유분방한 직장에서 나오는 창의력들은 다른 IT회사들이 따라가지 못하는 장점이 되는데 여기에서 온라인 키워드 문맥광고인 애드센스가 탄생하게 된다.단점이라면 세상 모든것을 수치화하고 정량화해서 데이터를 만들어 분석하는 엔지니어 마인드가 너무 강해서 수치화 될 수 없는 사람의 감정과 감성등 인문학을 깡그리 무시하는 경향에 있다고 저자는 지적한다.

앞서 말한 구글 애드를 통해 창출된 이익으로 구글을 수 많은 창조적인 사업을 진행하고 있는 중이다. 구글은 검색서비스 이외에 다른 사업을 할려고 손을 뻗치자 해당 사업체와 무수한 전쟁을 벌이고 있는 중이다.한때는 절친했던 스타브 잡스와는 안드로이드 폰과 아이폰이 서로 맞서자 적으로 돌아서고 유트브를 인수하자 비아컴이 불법 콘텐츠를 방치했다고 소송중이다.

하지만 구글은 많은 자선단체를 돕고 이익의 10%를 항상 전지구적인 행사를 위해 사용하기 때문에 전 세계 어느 기업보다도 존경을 받고 있고 남들이 가보지 못한길을 항상 걸어가고 있는 창조적이 기업이다.
창조적이기에 구글은 새로운 서비스와 상품을 개발하는 메커니즘이 다른데 그들이 만들어가는 변화의 핵심은 무엇이며, 우리는 무엇을 준비해야 하는가에 대한 냉철한 성찰이 없으면 삼성이 자사의 넷트워크에서 한탄했던 “성공의 경험이 반드시 또 다른 성공을 낳지는 않는다”말을 또 어떤 기업이 말 할지도 모른다.그러게 삼성 제발 정신 좀 차려라!!
이 책은 전 세계의 모든 기업이 적으로 삼길 두려워하는 구글이 만들어가는 변화에 대한 핵심에 대해 과연 우리는 무슨 준비를 해야하는 것인가를 일깨워 준다고 할 수 있다.

by caspi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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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부 집중력 확 높이는 우리 아이 게임절제력 - 소리 지르지 않고, 싸우지 않는 지혜로운 부모의 게임사용 지도법
권장희 지음 / 마더북스(마더커뮤니케이션) / 2010년 9월
평점 :
품절


한 3주전 일인가 부산에서 컴퓨터 게임에 심하게 빠져들었던 중학생이 게임을 하지 말라고 나무라는 어머니를 숨지게 하고 자신도 스스로 목숨을 끊은 것으로 추정되는 사건이 벌어졌다.자살한 중학생은 초등학생 때부터 컴퓨터 게임을 즐겼고 중학교에 들어가면서는 어머니에게 폭력을 휘두르기도 했다고 하는데 죽기전에 빠져든 컴퓨터 게임은 캐릭터가 전쟁터에서 다양한 총기류로 공격하는 것으로서 중독 가능성이 높으며, 게임 중독 치료를 위한 상담을 받은 적도 있다고 한다.
참으로 패륜적인 사건이지만 이 사건이 단순히 자살한 그 중학생만의 문제는 아니라고 생각된다.
현재 대다수 중학생들의 취미가 인터넷서핑이나 온라인게임 등 컴퓨터와 관련된 것으로 쉬는 시간 대부분을 컴퓨터와 함께 보낸다는 학생이 10명 중 7명 꼴로 나타났으며 여학생의 경우 62%가 '인터넷 서핑'이라고 남학생들의 32%는 'PC방(온라인게임)'을 즐기는 것으로 확인됐다.그 대신 교과서와 참고서를 제외하고 일주일에 책을 한 권도 읽지 않는 학생도 16%나 됐다고 한다.

이처럼 게임 중독에 빠진 청소년들이 많다보니 위와 같은 범죄는 일회성이 아니라 게임중독 증상을 보이는 청소년들에게서 언제든지 발생할 수 있다는 점이 무서운 것인데 게임중독에 빠지면 나이보다 행동 등이 미숙해지는 ‘퇴행’ 현상을 보인다고 한다.
아이들이 게임에 빠졌을 때는 이를 무조건 하지 말라고 하는 것은 이처럼 퇴행 현상에 빠진 아이들의 경우라면 극단적인 선택을 할 수 있으므로 대안을 제시해주는 부모의 노력이 필요하다.
게임중독 치료는 개인에 따라 차이가 있으므로 우선 부모와 자녀 관계가 온전하고 게임중독 현상이 일시적인 경우라면 컴퓨터를 압수하는 방법등으로 어느 정도 게임중독에서 벗어날 수 있지만 게임중독 증세가 심각한 경우에는 입원 치료 등도 고려해야 한다.
하지만 게임 중독이 심각할 경우 청소년이 입원 치료 자체를 거부할 수 있으므로 그 단계까지 가기전에 미연에 방지할 필요기 있는데 사실 부모들이 자기 아이들을 너무 믿다고 또 어떻게 슬기롭게 컴퓨터 게임을 못하도록 막는지를 몰라 최종선을 넘어 고생하는 경우가 많다

이처럼 아이들의 게임 중독에 대해 고민하거 이를 대비하려는 부모들에게 좋은 책인 출간되었는데 바로 공부 집중력 확 높이는 우리 아이 게임절제력이란 책이다.
사실 친척 조카아이중에 초등학교 3학년 아이가 있는데 누나가 영어 공부를 하기 위해 산 닌텐도 DS-초창기에 닌텐도에서는 판매력 증진을 위해서 게임용이 아닌 영어 학습용 소프트웨어을 다수 선보였고 그래서 부모들도 게임기가 아닌 학습기로 인식해서 사준 경우가 많다-에 빠져서 공부를 안하다고 엄마한테 혼나는 경우를 종종 보았다.

요즘 아이들은 너무 많은 미디어에 노출되는 경향이 있다.보통 맞벌이하는 가정이 많아지다보니 아이들이 어린이 집에 가기전에는 일반적으로 할머니등이 맡아서 키우는데 대부분의 경우 할머니들이 아이들과 함께 TV등을 많이 보는 경우 보통이다.그런데 대부분의 부모들은 직장 생활에 지치다 보니 ‘그게 무슨 큰 문제가 되겠냐’며 아이들의 영상미디어 노출을 방치하고 있는데 만 2세 미만, 유아기 때 과다한 영상 노출은 아이의 뇌 발달에 부정적인 영향을 끼친다고 하니 부모들이 걱정해야 될것이 하나 더 는 셈이다.
이렇게 미디어와 게임에 어려서부터 빠진 아이들은 한창 공부할 나이가 되는 초등학교 3학년 정도의 나이(친척 조카애가 이 나이또래인데 걱정이다)가 되면 뇌가 굳어져서 게임에만 흥미를 느끼고 공부를 멀리하게 되어 엄마들과 전쟁을 벌이게 되버린다.

공부 집중력 확 높이는 우리 아이 게임절제력은 모두 6개의 챕터로 구성되어 있다.
Chapter 01 유년기 게임, 아이의 뇌를 파괴한다
Chapter 02 아이들은 왜 인터넷 게임에 빠져 드는가
Chapter 03 진단과 예방 - 옆자리에 앉아서 소통하라
Chapter 04 게임절제력, 습관의 힘 키우기
Chapter 05 게임뇌는 잡고 공부뇌는 키워라
Chapter 06 부모가 가장 궁금해 하는 질문

사실 게임기는 이젠 학생들 사이에서 하나의 문화가 되어있기 때문에 문제점이 많다고 내 아이만 집에서 못하게 할 수 없다.그랬다간 또래 문화에 끼이지 못해서 왕따가 될 수도 있고 친구집에서 혹은 게임방이나 PC방에서 부모 몰래 게임에 빠질 수 있기 때문이다. 남학생들의 32%는 'PC방(온라인게임)'을 즐기는 것이 바로 그 증거라고 할 수있다.
제목에서 알 수 있듯이 이 책은 아이들이 게임을 전혀 하지 못하게 만들어 주는 책이 아니다.제목 그대로 아이들이 일상사로 자리 잡은 게임사용에 대해서 자기주도의 올바른 습관을 길러주게 하고 게임절제력을 익히도록 유도하는 책으로 부모들이 아이들과 싸우지 않고 소통하면서 효과적으로 아이를 지도할 수 있는 방법을 가르켜 주는 부모 교육서라고 할 수 있겠다.

이 책을 읽은 뒤 느낀점은 사회 생활을 하면서 사람이 살아가는데 있어서 사람들과의 관계가 가장 중요한 것과 같이 가족 사이에서도 가장 중요한 것은 가족들 사이의 관계와 관심일 거란 생각이 들게 된다.
아이들이 엄마 아빠보다 TV와 컴퓨터 게임에 빠져드는 것은 어려서부터 부모와 함께 지내는 시간이 많지 않고 그러다 보니 대화가 자연스럽게 일어나질 않기 때문이일 것이다.사실 맞벌이 부부다,얘들 학원이다 해서 가족 모두 바쁜 현실속에서 가족간의 대화라는 단순해보이는 의사 소통마저도 그다지 쉬워 보이지 않는 것이 서글프지만 사실이다.

부모와의 정다운 대화가 사라지면 사라질수록 아이들은 점점 게임속에 매몰될 수 밖에 없다.낳았다고 제대로 크길 바라는 시대는 이미 지나갔다.세상 살이가 힘들고 고될지라도 부모들이 중심을 잡고 아이들에게 사랑과 관심을 쏟으며 대화를 한다면 아이들은 '집에만 가면 나를 세상에서 가장 좋아하는, 나를 최고라고 생각하는 엄마가 계신다!'고 믿고 기운을 내며 올바르게 자라지 않을까 싶다.

이 책은 아이들을 위해서라면 필히 읽어봐야 될 책이다.대치동 학원이 중요한 것이 아니라 우리 아이들이 게임속 세상에 함몰되는 것을 방지하는 것이 더 중요하기 때문이다.이 책 부록에 미디어 사용 기록장 활용, 미디어 사용 일기와 가족들의 댓글, 미디어사용 수칙, 우리 아이 인터넷 게임 중독 여부 점검 12가지 질문 항목 체크, 자녀의 인터넷 이용 실태 점검, 유출된 개인정보 찾아내기, 자녀관리 프로그램 활용 등 10가지 실천법을 담고 있는데 이를 보면서 아이들의 게임 중독 현황을 지금부터 점검해 보는 것이 어떨까 싶다.

by caspi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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