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내의 많은 문학인과 평론가들은 이른바 순수문학을 상당히 경애하고 있단 생각이 듭니다.추리소설이나 과학소설 혹은 무협소설등 많은 일반인들이 좋아하는 장르소설을 독자들의 주머니만을 노리는 3류 소설등으로 취급하는 경우가 많지요.

 

물론 독자들역시 2천년대 이전만 하더라도 엄숙하고 무거운 순수문학이 더 우월하단 생각을 가졌었는지-국내의 풍토상 얼마안되는 책값을 지불하고 읽을려면 남들의 시선도 있고,또 무언가 책에 얻을것이 있어야 된다는 생각이겠죠- 이른바 장르 소설은 찾아보기 힘들었지만,이제는 독자들의 시각도 문단과 평론가들의 비딱한 선입견에서 조금 벗어나게 되었는지 과거에 비해 많은 장르소설들이 출간되게 되네요.

 

하지마 아직도 문단이나 평론 주류에선 장르문학은 3류란 생각을 가지고 있나 봅니다.몇달전 루엘이란 잡지를 보다보니 비싸서 살까 말까 고민하는 죽이는 책의 사진이 있어 무슨 내용인가 읽어봤더니 장르소설 애독자의 입장에서 좀 이해가지 않는 글이 소개되고 있더군요.

 

알라딘 서재에 그와 관련된 글을 올릴까 하다 병원에서 본 잡지라 글을 적어 올릴수도 없어 그냥있었는데 우연히 인터넷 서핑중 루엘 잡지에 올린글을 있어 옮겨봅니다.

 

 순문학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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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죽이는 책>. 생존 작가 121명이 자기 인생 단 하나의 장르 소설을 꼽고 그 이유를 글로 썼다. 그야말로 미스터리 장르의 바이블이다. 장장 800여 페이지를 사흘에 걸쳐 완독했고 무척 재미있는 독서였지만 정작 내가 얘기하고 싶은 것은 이 책의 훌륭함에 대한 얘기가 아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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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을 읽는 내내 나의 머릿속에 거대한 물음표로 남아 독서를 더 재밌는 방향으로 이끌었던 것은 편집자와 추리소설 작가들이 순문학을 대하는 태도였다. 이 책의 편집자는 책을 시작하는 글 말미에 이렇게 썼다.

"장르 소설과 순문학의 경계는 몇몇 이들이 믿고 싶어 하는 것처럼 그렇게 선명하지 않다."

정말? 순문학과 추리 소설의 경계가 모호하다고 할 수 있을까? 순문학을 신처럼 경배하지만, 한편으론 가끔 햄버거를 탐하는 '비건'처럼 미스터리 소설이나 SF소설과 외도를 벌이기도 하는 나로선, 굳은 신념에 돌을 맞은 격이다.

참여 작가들의 태도도 비슷했다. '대실 헤밋이 헤밍웨이가 받은 노벨 문학상을 못 받은 이유가 뭐냐'고 따지는 듯한 분위기가 책 전반에 흐른다. 심지어 존 반빌이라는 작가는 호색한 조르주 심농을 나보코프에 견주며, 1955년 발표된 <롤리타>가 심농의 <판사에게 보내는 편지>와 매우 유사하다고 주장한다. <롤리타>를 그저 십대 여자애를 쫓아다니는 홀아비의 얘기로 봤다니, 글을 쓰는 작가에게도 '문학'은 이렇게 오독되는가 싶어 가슴이 아플 뿐이다.

그들은 아마 이렇게 생각했을 수 있다. 파트리크 쥐스킨트나 파울로 코엘료처럼 순문학임을 자청하는 저열한 작가들에 비하면 제임스 엘로이나 로렌스 블록이 훨씬 높은 문학적 성취를 이룬 것이 아니냐고. 맞는 말이다. 그러나, 비슷한 위치에 있는 두 개의 산이 같은 땅덩이로 이어져 있다 해도 둘은 결국 다른 산이다. 마찬가지로 추리 소설과 순문학 역시 양쪽 모두에서 정수의 근처에도 못 가본 어설픈 작가들 때문에 경계가 잠시 흐려 보일 수는 있겠으나, 엄연히 다른 산이 아닐까? 게다가 지금 시점에서 바라보면 문학을 대하는 태도 면에서 봉우리의 높이가 꽤 차이 나는 것 역시 사실이다.

 

'장르 소설을 무시하는 건가?'라며 화낼 필요는 없다. 오히려 나는 장르문학을 걱정하는 쪽이다. 장르문학은 순문학이 거둬들인 문학적 성취를 너무 늦게 흡수한다. <죽이는 책>에서 조 R. 랜스데일은 레이먼드 챈들러의 문장이 아름답다고 상찬을 늘어놓는다. 그에게 현대 작가들을 거론할 것도 없이, 1860년생인 체호프의 서정적 하드보일드를 경험해보라고 말해주고 싶다. 조셉 핀더라는 작가는 제임스 M. 케인이 '거친 서부 남자들'의 '목소리'를 발견했다며, 마치 작가가 내레이터를 캐릭터화하는 것이 대수인 양 말한다. 그러나 우리는 그보다 15년도 전에 버지니아 울프라는 신경증적인 여자와 주정꾼이었던 윌리엄 포크너가 그보다 훨씬 더 정교하고 복잡한 '목소리 소설'을 썼다는 걸 알고 있다. 마찬가지로 우울함과 천박한 코미디를 절묘하게 조화시킨 스콧 필립스에게 감동하였다는 오언 콜퍼 씨는 반드시 1809년생 고골의 <죽은 혼>을 읽어봐야 한다.

추리소설의 태생 자체도 걸림돌이다. 대부분의 추리소설은 독자들이 계속해서 던지는 '앞으로 무슨 일이 벌어질 것인가?'라는 질문에서 벗어나기가 힘들다. 상상하지 못했던 일이 벌어지고 상상했던 일이 원치 않는 타이밍에 들이닥치며 생기는 그 쾌감을 버리고는 '좋은 추리 소설'이 성립될 수 없다. 그러나 치명적이게도 이런 박진감을 살리기 위해서는 책장을 앞뒤로 넘기고 다시 읽으며 느낄 수 있는 성찰적 희열을 포기해야만 한다. 아마도 장르문학이 순문학의 자양분을 늦게 섭취하게 되는 이유도 이 때문일 것이다. 어렵고 새로운 방식 역시 박진감을 떨어뜨린다.

 

그래서인지 아직까지 누구보다 명확하게 순문학과 장르문학의 경계를 나누고 싶어 하는 건 순문학 작가들이다. 마이클 로보섬이 치켜세운 덴마크 작가 '페터 회'는 자신을 순문학 작가로 정의한다. 마찬가지로 이 책에 영문도 모른 채 등장한 존 쿳시에게 추리소설 작가냐고 물으면 그는 버럭 화를 낼 것이다. 오르한 파묵도 <내 이름은 빨강>을 두고 추리소설이라고 말한 인터뷰어에게 면박을 준 바 있다. 나보코프 역시 <롤리타>가 범죄 소설의 형식을 빌려왔다는 말에 어이없어했다. 1999년에 `나는 떠난다'로 공쿠르 상을 수상한 장 에슈노도 누가 봐도 추리소설인 작품으로 상을 타 놓고는 자신은 추리소설 작가가 아니라고 발뺌한 바 있다. 추리소설 또는 장르소설 작가들로서는 자존심이 상하겠지만 이게 현실이다.

그러니, 질문은 조금 수정되어야 한다. 왜 순문학 작가는 장르 소설과 거리를 두고 싶어 할까? 그건 그들이 원하는 희열의 방향이 다르기 때문이다. 오르한 파묵은 하버드 대학 강연에서 실러의 예술론을 인용하며 소설가와 독자 모두를 제각각 '소박한 사람'과 '성찰적인 사람'으로 나눈 바 있다. 소박한 소설가는 소박한 독자를 위해, 성찰적 소설가는 성찰적 독자를 위해 소설을 쓴다는 것이다. 이를 서사의 장르로 국한해 거칠게 얘기하면, 소박한 독자는 다음에 무슨 일이 벌어질지 궁금해 하며 소설을 읽고, 성찰적 독자는 작가가 감추어 놓은 '소설의 중심부'(파묵의 표현이다)를 찾으며 '거의 계속 움직여서 잡을 수 없는 그 무엇'(역시 파묵의 표현이다)을 발견하려 애쓴다. 두 가지 독서를 번갈아 가면서 할 수 있을 때, 그리고 소박한 독서로 찾을 수 있는 표면적 주제와 작품의 가장 깊숙한 중심부가 멀면 멀수록 훌륭한 소설이 탄생한다.

 

장르문학 작가들이 가장 많이 던지는 게 바로 이 질문이다. 순문학에서 말하는 그 '중심부'라는 게 대체 뭐냐는 거다. <롤리타>를 예로 들어보자. 처음 읽은 소박한 독자는 '12살짜리 돌로레스를 보고 군침을 흘리던 홀아비 험버트가 자신의 연인을 빼앗아간 연극 선생을 살해하는 범죄소설'이라고 생각할 수 있을 것이다. 그러나 '상징'에 익숙한 조금 성숙한 독자가 두 번쯤 읽으면 나이 든 러시아어 작가 나보코프가 아직 어린 미국의 영어를 유린하는 내용으로 읽을 수도 있을 것이다. 좀 더 문학적인 독자라면 '롤리타, 입천장에 세 번 부딪히는' 어쩌구를 인용하며 그는 글쓰기의 아름다움만으로도 가치가 있다고 생각할 수도 있다. 그리고 고도로 성숙한 독자가 한 서너 번쯤 그 소설을 읽으면 롤리타의 '그 무엇'은 롤리타 서문에 등장하는 '존 레이'는 대체 무슨 역할을 하는지에 대한 호기심, '복숭아 틈새'(Peach-cleft)라는 새로운 조어를 받아들이는 혹은 만들어내는 유연함, '비비언 다크블룸'이라는 단어로 전체의 얼개를 이해 할 수 있도록 힌트로 주는 친절함, 그리고 이 모든 걸 조금씩 알아가며 알파벳으로 쓰인, 혹은 한글에 알파벳이 병기된 텍스트의 집합 안에서 '웹'을 찾아내는 순수한 희열에 있음을 깨닫게 된다.

나보코프만 그런 게 아니다. 같은 책을 여러 번 읽게 만드는 작품이 순문학에는 차고도 넘친다. 그런 책들을 보면, 지금까지 복합적 재미를 위해 소박한 추리의 형식을 빌려 약간의 박진감을 더해 왔을지언정, 순문학은 성찰적 독서의 레이어를 포기한 적이 없다. 그러나 장르 소설에서 패트리샤 하이스미스나 테드 창, 우리나라에선 배명훈 등 몇몇 이름을 제외하면 그 역을 시도한 예는 '아직' 흔치 않다. 그러니 오히려 이렇게 말 할 수 있겠다. 순문학과 장르문학의 경계를 공고히 하는 것은 오히려 장르문학 작가들이다.

*남성 라이프 스타일 매거진 루엘(Luel)에 기고한 글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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순문학은 있다란 글을 쓴 박세회씨의 글은 뭐랄까 장르문학에 대한 편견과 비하기 있단 생각이 들었는데 이런 느낌은 나만의 개인적인 생각이 아니었는지 죽이는 책의 번역자인 김용언님아 아래와 같은 반빅글을 올립니다.

 

순문학은 있다.그래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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순문학은 있다, 그래서?

순문학과 추리소설 자체를 일대일로 비교하는 건 상당히 거대한 프로젝트기 때문에, 여기서는 박세회 씨가 범한 오류 및 그가 오해하고 있거나 편견으로 써내려간 부분들에 대해서 짚어보기로 한다.

가장 큰 문제는 그가 ‘추리소설’이라는 협소한 범위와, <죽이는 책>에서(그리고 여타의 관련 이론가들이 주로 말하는) 범죄소설(혹은 미스터리 소설)이라는 큰 틀, 그리고 통칭 ‘장르문학’이라고 일컫는 범주 자체를 완전히 혼동하고 있다는 사실이다. 박세회 씨의 글이 대단히 미숙하게 읽히는 가장 큰 이유가, 바로 이 범주들을 혼동하며 편의적으로 단어를 바꿔가며 사용하기 때문에, 이 범주들을 확실하게 인지하는 사람에게는 매우 당황스러운 글일 수밖에 없다(‘대체 이 사람은 무슨 말을 하는 거야?’).

이 세 가지 범주가 워낙 글에서 자주 혼용되었기 때문에, 초보자에게는 다 그게 그거처럼 느껴질 수도 있다. 대략적으로 연구자들 사이에서 통용되는 큰 틀로 얘기하자면, 추리소설(혹은 탐정소설이라고도 한다)은 대개 19세기 범죄소설 초기 단계에 확립된 형식, 즉 탐정이 나오고 살인사건을 수사하여 범인을 밝혀내는 과정에 집중하는 소설을 뜻한다.

이후 탐정이 아닌 범죄자가 주인공으로 등장하거나, 심지어 탐정이나 경찰, 형사가 악당 범죄자로 등장하는 소설들로 확장되면서 더 이상 범인 찾기 과정이 아닌 범죄 자체가 중심에 서고 범죄의 핵심에 다가서는 과정 혹은 그 범죄를 둘러싼 컨텍스트까지 다루는 작품들(여기서 바로 박세회 씨가 분개하는 페터 회의 <스밀라의 눈에 대한 감각>이라든가 오르한 파묵의 <내 이름은 빨강>, 존 쿳시의 <추락>까지 포함시킬 수 있게 되는 것이다)을 뜻한다.

장르문학으로 말할 것 같으면, 범죄소설과 SF, 판타지, 호러, 로맨스 등 특정한 형식과 공식을 갖추고 있는 세부 분야 문학들을 한꺼번에 아우르는 세계, 순문학과 대비되는 특성을 가진 세계를 편의적으로 일컫는 말이다.

(이 개념 역시 20세기 넘어와서 생긴 세부 항목들이며, 박세회 씨가 츠베탕 토도로프의 <담론의 장르>를 읽는다면, 19세기까지만 해도 시와 소설이 ‘장르’로 구분되었다는 사실을 알 수 있을 것이다. “장르는 어디에서 유래하는가? 그것은 아주 간단히 말해서 다른 장르에서 유래한다. 새로운 장르는 언제나 하나 혹은 여러 개의 옛날의 장르가 반전, 이동, 조합함으로써 변모한 것이다. 오늘날의 <텍스트>는 <시>와 19세기의 <소설>에 힘입고 있다. 그것은 <최루극>이 18세기의 희극과 비극의 특징들을 합성한 것과 매우 유사하다. 장르가 없는 문학이 존재한 적은 없었으며, 그것은 항구적인 변화를 겪는 하나의 체계이다.” 내 말은, ‘장르문학’에 그토록 경멸감을 담아 발음하기 전에, 시와 소설 역시 극작품에 비교되는 ‘장르’로 불렸다는 걸 떠올린다면, 20세기의 장르문학 역시 어떤 특정 체계를 중요하게 받아들인 문학의 한 갈래라고 보는 시선에 좀 덜 불편함을 느끼지 않까 하는 것이다).

박세회 씨는 순문학을 옹호하는 근거 중 하나로, 작가들 본인이 자신의 작품이 추리소설로(정확하게는 범죄소설로, 라고 쓰는 게 더 나았을 것이다) 읽히는 걸 거부했다 점을 들고 있다. 너무나 명백하게도, 그들의 작품이 범죄를 둘러싼 해결(혹은 미해결에 이르는) 과정을 다루고 있다는 것을 부정할 순 없다. <스밀라의 눈에 대한 감각>은 범죄소설이 맞다. 특히 <내 이름은 빨강>에서 그림 속 말의 찢어진 콧구멍으로 살인사건의 단서를 찾아내는 과정, 화가들이 살인범 동료를 찾아내는 과정은 그야말로 ‘수사’ 이외의 무슨 단어로 부를 수 있을지 잘 모르겠다. <내 이름은 빨강>에 그런 수사-탐색-깨달음의 과정이 들어있다고 해서, 그 작품의 가치가 떨어지는 것도 아니며, 추리소설 팬들이 그에 대해 딱히 크게 자부심을 가질 것도 없다. 그건 이미 아주 오래전부터 존재하는 서사의 한 갈래일 뿐이다. 파묵은 그 같은 서사 구조를 가져와서 풍성한 여담을 곁들이는 이야기를 만들었고, 범죄소설 작가들은 그 같은 서사 구조를 가장 핵심에 둔 채 이야기를 써내려간다. <내 이름은 빨강>이 <죽이는 책>에 포함된 작품이 아닌데도 불구하고 박세회 씨가 굳이 이 작품을 넣은 것은, 그가 생각하는 순문학이 추리소설로 오독된 중요한 예라고 생각하기 때문인 것 같은데, 그렇다면 마지막에 살인자의 정체가 밝혀지는 <내 이름은 빨강>이 추리의 서사구조를 택하지 않았다는 근거에 대해 이야기하는 게 더 맞을 것이다.

박세회 씨는 “대부분의 추리소설은 독자들이 계속해서 던지는 ‘앞으로 무슨 일이 벌어질 것인가?'라는 질문에서 벗어나기가 힘들다. 상상하지 못했던 일이 벌어지고 상상했던 일이 원치 않는 타이밍에 들이닥치며 생기는 그 쾌감을 버리고는 '좋은 추리 소설'이 성립될 수 없다”고 했는데, 이것 역시 그가 설정한 추리소설의 범주에서는 틀린 말이다. 아마도 범죄소설의 또 다른 갈래인 스릴러를 생각하며 쓴 것 같은데, 기본적으로 추리소설 자체는 ‘무슨 일이 벌어졌는가, 누가 그랬는가(후더닛)’에 대한 질문, 즉 과거를 탐색하는 이야기다. 볼테르의 짧은 글 <자디그>가 그런 예이며, 소포클레스의 <오이디푸스> 역시 스스로 탐정 노릇을 자처한 오이디푸스가 결국 자신이 범인이라는 사실을 깨닫게 되는 탐색의 ‘경이’에 단단히 기반한 작품이다. ‘좋은 추리소설’은 누가, 왜 그런 일을 저질렀는지 상상도 할 수 없었던 인물과 방식을 제시함으로써 독자들을 깜짝 놀라게 하고 다시금 책을 뒤적거리게 하는 그런 작품이다. 박세회 씨가 말한 ‘앞으로 무슨 일이 벌어질 것인가’는 아마도 ‘누가 범인인가’를 빨리 알고 싶다는 뜻으로 썼을 수도 있는데, 그렇다면 이건 추리소설의 구조에 대해 제대로 파악하지 못한 채로 대단히 주관적으로 쓴 문장이다. 적어도 순문학의 입장에서 추리소설을 꾸짖기 위해서라면, 그는 ‘순’문학의 ‘순’이 무엇인지, 추리소설의 역사와 구조가 무엇인지 정도는 파악하고 써야 하는 게 맞다.

다시 한 번 말하지만 장르라는 규칙 혹은 형식은, 기본적으로 ‘이야기’에서 가장 자주 쓰이는 틀거리가 다듬어지고 좀 더 많은 이들이 흥미를 갖고 읽을 수 있게끔 굳어진 세부 갈래들이다. 박세회 씨가 글에서 되풀이 사용한 방식을 흉내내보자면, 제인 오스틴의 <오만과 편견>의 줄거리, ‘여자와 남자가 만난다-둘 사이에 오해가 쌓인다-여자는 또 다른 남자에게 매력을 느끼지만 결국 자신이 속았음을 깨닫는다-여자는 애초에 오해했던 남자의 새로운 면모를 발견하고 그와 사랑을 맹세한다’에서, 엘리자베스와 다아시의 로맨스는 전혀 중요하지 않은가? <오만과 편견>의 핵심 축은 로맨스이며, 제인 오스틴은 남녀간의 로맨스를 통해 자신만의 정교한 세계를 구축했다. 20세기에 장르문학의 한 갈래로 굳어진 로맨스소설의 모습과 제인 오스틴의 소설이 많이 달라보이겠지만, 로맨스 자체의 구조는 동일하게 취하고 있다. <롤리타>에서 험버트 험버트와 퀼티의 관계는 무엇인가? 절대적으로 소중한 연인 롤리타를 자신으로부터 앗아간 남자를 총으로 쏘아 죽인다. 사람살려, 살인이야! 그리고 그 범인은 일인칭 화법으로 길게, 자신의 이야기를 고백한다. 그렇다면 이것이 ‘왜-내가-이것을 저질렀는가’(와이더닛)라는 범죄소설의 구조를 택하지 않았단 말인가?  

박세회 씨가 화가 났다며 인용하는 <죽이는 책>의 서문에서, 엮은이 존 코널리와 디클런 버크는 “범죄를 제거하고 난 뒤에도 파괴되지 않는 소설은 범죄소설이 아니며, 범죄 요소를 없앨 경우 무너져버리는 소설이 범죄소설이라는 공식”을 언급했다(박세회 씨가 언급한 “장르소설과 순문학 사이의 경계는 몇몇 이들이 믿고 싶어 하는 것처럼 그렇게 선명하지만은 않다”라는 문장 바로 앞에 이 문장이 있다는 건 잊은 것 같다.) <죽이는 책>은 범죄소설이 순문학만큼(혹은 순문학보다) 우월하다라고 주장하기 위해 쓴 책이 아니다. 범죄소설 독자이며 열렬한 애호가이며 작가이기도 한 이들이 한자리에 모여, 자신이 좋아하는 범죄소설을 한권씩 추천하는 글로 이뤄진 책이다. 여기서 순문학에 대한 모욕을 감지했다고 생각하는 박세회 씨는, 번지수를 잘못 찾았다. 존 코널리와 디클런 버크는 위의 문장에 이어 이렇게 쓰기도 했다.

“미스터리 장르 자체를, 그리고 위대한 글을 쓰도록 허락하고 북돋고 그리하여 위대한 문학을 탄생시키는 미스터리 장르의 능력을 묵살하는 이들은, 기본적으로 그 속물근성 때문이 아니라,-물론 그 때문에도 비난받아야 하지만-소설의 본성과 그 안에서 장르가 점한 위치에 대한 근본적 몰이해 때문에 유죄 선고를 받아 마땅하다. (…) 미스터리 소설은 형식이자 메커니즘이다. 그것은 누구나 사용할 수 있는 도구다. 나쁜 작가의 손에선 형편없는 소설이 나오겠지만, 위대한 작가들은 미스터리 장르를 통해 마법을 창조할 수 있다.”

또한 다소 지엽적인 문제일 수도 있지만, 그가 조르주 심농과 나보코프를 비교한 존 반빌의 글에 화를 낸 것에 대해서도 한 마디 하지 않을 수 없다. 박세회 씨는 이 글을 기고한 <루엘>에선 “심지어 존 반빌이라는 작가는 호색한 조르주 심농을 나보코프에 견주며, 1955년 발표된 <롤리타>가 심농의 <판사에게 보내는 편지>와 매우 유사하다고 주장한다. 두 작품을 다 읽어본 나로서는 글을 쓰는 작가에게도 '문학'은 이렇게 오독되는가 싶어 가슴이 아플 뿐이다”라고 썼고, <허핑턴 포스트>에 기고한 글에는 이렇게 썼다. “호색한 조르주 심농을 나보코프에 견주며 1955년 발표된 <롤리타>가 심농의 <판사에게 보내는 편지>와 매우 유사하다고 주장한다. <롤리타>를 그저 십대 여자애를 쫓아다니는 홀아비의 얘기로 봤다니, 글을 쓰는 작가에게도 '문학'은 이렇게 오독되는가 싶어 가슴이 아플 뿐이다.”

일단 여기서 ‘호색한’이라는 작가 설명이 굳이 왜 들어가야 하는지 모르겠다. 아마도 충실한 결혼생활을 누렸던 나보코프와 비교시키며 깎아내리기 위한 의도적인 단어 사용이었을 거라고 짐작한다. 박세회 씨 본인이 <루엘>에 기고한 원문을 보면 두 작품 모두 읽었다고 썼는데, 영어판 혹은 불어판으로 접한 <판사에게 보내는 편지>(한국에는 번역되지 않았다)가 <롤리타>와 닮은 구석이 많다니 이런 오독이 없다고 흥분하기에 앞서, 본인이 분노했던 존 반빌의 에세이를 다시 한 번 찬찬히 읽어봤으면 좋겠다. 반빌이 에세이에서 지적한 점은, <롤리타>와 <판사에게 보내는 편지> 사이의 줄거리와 캐릭터의 설정, 그리고 끔찍한 사랑에 빠진 남자의 어조의 유사성이 흥미롭다고 하는 구절인데, 아니 그렇다면 <롤리타>를 읽지 않은 사람에게 <롤리타>의 줄거리를 설명하기 위해서 어떻게 해야 하나? 어린 시절 사랑했던 소녀가 죽은 뒤 그 소녀의 이미지에 고착된 중년 남자가, 그 소녀와 꼭 닮은 소녀 롤리타를 만나 사랑에 빠지고 그녀의 곁에 있기 위해 소녀의 엄마와 결혼하고, 결국 엄마를 죽음으로 몰아넣고, 그 소녀를 자신의 연인으로 삼기 위해 갖은 노력을 기울이다가 비극을 맞는다, 그렇지 않은가?

아무래도 박세회 씨는 영어판 혹은 불어판으로 접한 <판사에게 보내는 편지>가 얼마나 나쁜 작품인지에 대해 나보코프의 열렬한 애호가이기도 한 존 반빌에 대항할 만큼 반론을 쓰는 게 낫지 않을까 싶다. 박세회 씨가 존 반빌에 대해 잘 모르는 것 같아, 위키피디아의 존 반빌 항목 가장 앞 문단에 이런 구절이 나온다는 점을 굳이 알려드린다. “Recognised for his precise, cold, forensic prose style, Nabokovian inventiveness, and for the dark humour of his generally arch narrators, Banville is considered to be “one of the most imaginative literary novelists writing in the English language today.” He has been described as “the heir to Proust, via Nabokov."”

제임스 M 케인의 소설보다 ‘15년이나 앞선’ 버지니아 울프를 읽으라고 하는 것도 고개를 갸웃거리게 하는 비교다. 케인의 소설에 대한 조셉 핀더의 에세이는, 케인이 특정한 목소리를 소설에 부여한 최초의 작가라고 주장하는 게 아니다. 그 목소리가 어떤 목소리이며, 그것이 소설의 형식과 공명하며 어떤 효과를 불러일으키냐는 부분을 지적하는 이야기다. 그런데 여기서 왜 갑자기 “버지니아 울프라는 신경증적인 여자와 주정꾼이었던 윌리엄 포크너”의 ‘목소리 소설’을 읽으라고 주장하는지는 잘 모르겠다. 당연히 문학에서 ‘목소리’는 중요한 문제인데, <죽이는 책>에 언급된 케인의 소설엔 ‘완전히 무지랭이는 아니고 적당히 사리분별과 두뇌 회전을 갖추고 있으면서도 천박함을 숨기지 못하는 그런 남자, 여타 지역의 노동자 계층과는 조금 다른, 미 서부에서만 들을 수 있는 그런 남자’의 목소리를 선명하게 제시했다는 점에서 높은 평가를 받은 것이다. 거기에 왜 영국 지식인 계층의 대표적인 작가인 버지니아 울프를 끌어들이는지, 참으로 뜻밖이다.

나에게는 노벨문학상 수상작품(그가 예로 들었던 오르한 파묵의 <내 이름은 빨강>과 존 쿳시의 <추락>도 여기 포함된다)을 읽을 때 느끼는 즐거움과 추리소설을 읽을 때 느끼는 즐거움이 크게 다르지 않다. 무엇보다 그것은 잘 쓰인 이야기, 작가가 전하고자 하는 어떤 테마가 나에게도 선명하게 와 닿는 이야기, 되풀이 읽으면서 새로운 지점을 발견하는 즐거움인 것이다. 나는 애거서 크리스티와 존 르 카레와 제임스 엘로이와 레이먼드 챈들러와 G. K. 체스터턴와 엘모어 레너드를 읽을 때 느끼는 즐거움과, 제인 오스틴과 어니스트 헤밍웨이와 스콧 피츠제럴드와 오르한 파묵과 표트르 도스토예프스키를 읽을 때의 즐거움이 다르지 않다. 모든 잘 쓰인 이야기에는, 배울 수 있는 지점이 있고 즐길 수 있는 지점이 있다. 그걸 모르는 이들이 안타깝긴 하지만, 잘 모르기 때문에 용감하게 ‘순문학을 신처럼 경배한다’라고 하면서 ‘추리소설’을 깎아내리는 글을 그냥 넘어가면 안 되겠다고 생각했다.

‘성찰적 독서의 레이어’를 포기할 수 없다면, 범죄소설 중에서 그 같은 복잡하고 섬세한 레이어를 갖추고 있는 작품들을 찾아 읽어보면 된다(SF작가 테드 창과 배명훈을 여기 끌어들인 건…그냥 실수라고 믿고 싶다). 추천해달라고? 이미 <죽이는 책>에 많은 작품들이 추천작으로 들어있다. 혹은, 범죄소설 중에서 그 같은 레이어가 존재하지 않다고 믿는다면……..그렇다면 박세회 씨는 사실상, ‘미스터리 소설과 외도를 벌였다’라고 말하기에는 조금 민망한 상황에 처하게 된다,(호색한 조르주 심농을 비난하면서 왜 본인은 외도를 즐기는가? 순문학과 충실한 사랑을 나누면 된다) 그건 마치, 셜록 홈즈 시리즈로 처음 미스터리에 입문하고 그것만 읽은 상태에서 도스토예프스키의 <죄와 벌>이 왜 범죄문학이라 부를 수 있는지 설명하겠다고 덤비는 경우에 비견할 수 있을 것이다. 박세회 씨는 “1999년에 `나는 떠난다'로 공쿠르 상을 수상한 장 에슈노도 누가 봐도 추리소설인 작품으로 상을 타 놓고는 자신은 추리소설 작가가 아니라고 발뺌한 바 있다. 추리소설 또는 장르소설 작가들로서는 자존심이 상하겠지만 이게 현실이다”라고 썼는데, (일단 장 에슈노가 아니라, 장 에슈노즈다) 추리소설을 주로 쓰지 않았던 작가가 <나는 떠난다> 한편으로 추리소설 작가로 불린다면, 그거야말로 추리소설 작가들과 독자들에게 기분 안 좋은 일일 것 같다.

“순문학을 신처럼 경배하지만, 한편으론 가끔씩 소고기 스테이크를 탐하는 이슬람 신자처럼 미스터리 소설과 외도를 벌이기도 하는 나의 신념에 엮은이가 돌을 던진 격이다”라고 쓴 박세회 씨는, (이것은 <루엘>에서의 표현이며, <허핑턴 포스트>에선 ‘가끔 햄버거를 탐하는 '비건'으로 바뀌었다) 돼지고기가 금기로 되어 있지만 소고기는 얼마든지 먹을 수 있는 이슬람 신자의 마음으로 미스터리 소설을 즐겨 읽으신 것 같은데, 그렇다면 내가 박세회 씨를 오해한 것일 것이다. 하지만 정말 잘 모르겠다. 범죄소설 애호가들이 쓰고 범죄소설 애호가들이 읽는 <죽이는 책>을 읽고 발끈하면서 순문학을 신처럼 숭배한다며 순문학은 있다고 외친다는 건, 그만큼 순문학의 입지가 위태롭다고 생각하는 반증은 아닐지.

순문학은 있다, 라고 주장하기 위해선 순문학의 근본적인 토대가 무엇인지를 논하는 게 맞을 것이다. 추리소설과 비교하면서 계속 추리소설의 반대항 개념으로 순문학의 존재를 주장한다면, 그것은 강한 불안과 의혹을 지워내지 못하는 흔적 기관처럼 남게 된다.

다시 한 번 미안하지만, 박세회 씨의 마지막 문장을 조금 바꿔 말하자면, 순문학과 장르문학의 경계를 공고히 하는 것은 순문학 추종자들이 아닐까 싶어진다. 나는 장르문학은 “순문학이 거둬들인 문학적 성취를 너무 늦게 흡수”하는 “장르문학을 걱정”한다는 박세회 씨에게,(추리소설을 이야기하다가 갑자기 왜 장르문학으로 바뀌었는지도 잘 모르겠다. 아마 뒤에 배명훈과 테드 창 등의 SF작가들을 끌어오기 위해서 갑자기 넓은 범주가 필요해졌다고 생각한다) 그가 걱정하지 않아도 된다고 말해주고 싶다. 그가 걱정하는 것처럼 장르문학은 ‘인정’해달라고 떼를 쓰는 게 아니다. 오히려 전 세계 수많은 독자들에게 세대를 거듭할수록 새로운 즐거움과 영감을 주면서 그 세를 넓혀가고 있기 때문이다. 박세회 씨의 걱정은, 그저 그 자신의 불안이 아닐까 생각된다.

마지막으로 <내 이름은 악마>에는 이런 구절이 나온다, “‘스타일’이 있는 것은 악마다.” 그리고 나는 그 스타일을 기꺼이, 열렬하게 사랑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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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리고 제 3의 시각이지만 장르문학에 상당힌 경도된 데카님의 감상을 올립니다.

순문학은 있다'라는 글을 읽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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필자 분께서 장르소설에 어떤 상처를 입으셨는지 저는 잘 모릅니다만, 아마 그 상처가 꽤 깊었으리라고 생각돼요. 그동안 애매한 작가의 못난 작품을 보신 탓이겠죠. 충분히 이해할 수 있어요.

 

하지만, <죽이는 책>은요, 활동 중인 범죄소설 작가들이 좋아하는 작품을 추천하는 책이에요. 그것도 아주 많이요. 책도 무척 두꺼워요. 왜 힘들게 그걸 읽으시고 순문학은 있다라는 제목으로 글을 쓰신 건가요? 그건 절대로 모르겠네요. 몸소 걱정하시는 장르 문학의 작가들이 순문학과의 경계를 흐리려하는 것 같아, 기분이 별로셨나요?

 

순문학을 신처럼 경배하신다니, 할 말 없어요. 저는 20년 넘게 햄버거만 먹었거든요.(<루엘>에서는 이슬람 신자가 먹는 스테이크라고 하셨죠?) 풀 맛을 못 봤죠. 하지만 적어도 이런 글은 쓰지 않아요. 아니 쓸 생각도 하지 않아요. 순문학을 잘 모르니까요. 적어도 비교하고, 한쪽의 우위를 한껏 뽐내시려면 잘 알고 하셔야죠. 몇 가지만 말씀 드릴게요.

 

먼저 장르소설=추리소설아니에요. 명심하세요. 용어를 얼마나 혼동해서 쓰시는지 저도 어지럽네요. ‘미스터리 장르=장르소설=추리소설=장르문학인가요?

 

태생 자체가 걸림돌이라뇨. 말씀하시는 앞으로 무슨 일이 벌어질 것인가?’는 추리소설의 태생하고 상관없어요. 도대체 뭘 읽으신 거예요. 추리소설의 태생하고 관련 있는 질문은 무슨 일이 일어난 것인가?’예요. 성찰적 희열을 포기해야 한다니... 도대체 무슨 말씀을 하시는 거예요. 생각건대 아마도 이 지점이 상처의 근원인 것 같아요. 추리소설이라는 높은(아니, 좀 낮다고 하셨죠?) 봉우리가 있으면 몇 군데 기초 등산로만 걸으신 거예요. 더 읽어 보세요.

 

그냥 쉽게 얘기할게요. 옛날에 노벨문학상 수상자들의 단편을 모은 추리소설(+괴기소설) 모음집이 있었어요. 혹시 보셨나요? 뭐 편집자가 묶기 나름이고 그 작가들의 속마음까지 알 수는 없겠죠. 하지만 장르문학과 순문학의 경계를 선명하게 그으려 하지 않는, 그런 일이 얼마나 쓸모없는지 잘 알고 있는 순문학작가들도 많아요. 필자 분이 예를 든 것 이상으로 더 많을 거예요. 그러니 너무 경도되지 않으셨으면 해요. 하지만 페터 회가 그런 말을 한 줄은 정말 몰랐네요. 그럼 CWA는 왜 받았담.

 

그리고 왜 뜬금없이 퍼트리샤 하이스미스, 그래 그분은 그렇다 치고 테드 창이나 배명훈 작가는 왜 들이미는 거예요? 설마 미스터리 장르=장르소설=추리소설=장르문학=과학소설로 보고 계신 건 아니겠죠?

 

말씀하신 것처럼 순문학은 있겠죠. 당연히 장르문학도 있어요. 순문학의 경배자인 필자 분이 보시기에는 <죽이는 책>의 장르문학 저자들이 요란을 떨고 있다고 생각되기도 할 거예요. 그래도 아쉽긴 하네요. <죽이는 책>을 읽고 거기 소개된 책들을 취사선택하면 될 일이지, 작가들의 태도를 교정하려 하다니, 이게 웬 낭비인가요? 좋은 장르 작품도 있고 좋지 않은 순문학도 있는 거 아닌가요? 왜 굳이 권위적인 프레임을 덧씌워 본인의 장르문학에 대한 빈약한 소양을 드러내시나요.

 

아무튼 순문학은 확실히 있어요. 좋아하시는 것도 잘 알겠어요. 하지만 장르문학은 조금 더 읽으셔야 합니다. 그 다음에 걱정해주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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ㅎㅎ 오랬만에 순문학고 장르문학의 진지하고도  날선 공방을 봐서 그랬는지 상당히 흥미있게 읽게 되네요.

한가지 아쉬운 점은 21세기 시작되고도 15년이나 지난 시점에서 아직도 시대에 뒤떨어진 순수문학과 장르문학의 편가르기 계속되고 있다는 점이 좀 안타깝단 생각이 듭니다.

by caspi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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81 1997 죽음의 샘

이런 읽어보지 못한 책인데 현재 품절인것 같습니다ㅡ.ㅡ

 

82 1998 아웃

 

 4명의 중년여성이 벌이는 살인 이야기.현대 일본 사회의 모순과 인간의 나약함이 적나라하게 들어난 작품.

 

83 1998 코핀 댄서

 영화 본 컬렉터의 원작인 현대판 셜록 홈즈라고 할수 있는 링컨 라임 시리즈의 두번째 작품이자 최고의 걸작으로 평가받는 작품으로 마치 자칼의 날처럼 불패의 암살범 코핀댄서와 링컨 라임의 대결이 흥미진진한 작품이지요.개인적으로 링컨 라임 시리즈는 모두 읽어봐도 하나도 실망시키지 않는것 같아요^^

 

84 1998 블러드 워크

읽는 재미를 보장하는 마이클 코넬리의 작품.병으로 조기 퇴직한 FBI 프로파일러 테리 매케일렙의 활약이 돋보이는 작품으로 두툼한 두께의 책이지만 읽는순간 손에서 책을 뗼수 없는 작품.

 

85 1999 넘버원 여탐정 에이전시

명탐정은 대체로 남자 그것도 백인남자가 텀정의 주류라고 할수 있죠.흑인이나 여성 탐정은 비주류라고 할수 있는데 솔직히 흑인 남성탐정보다는 백인여성 탐정이 우리의 뇌리속에 더 많이 박혀있는것 같네요.(미스 마플이 대표적이죠)

여성탐정의 경우 보통 섹시한 미모를 자랑하는데 넘버원 여탐정의 주인공 음마 라모츠웨는 이런 기존의 선입견을 깨고 오히려 푸근함이 느껴지는 체형의 주인공으로 그간 추리소설의 변방지역인 아프리카를 배경으로 활약하고 있군요.현재 7권까지 나왔으니 읽어보셔도 괜찮을듯...

 

 

86 1999 영원의 아이

 

 제53회 일본 추리작가 협회상 수상작으로 절판되었다가 독자들의 성원으로 재간된 작품으로 추리소설 애호가라면 필독해야 될 작품.

 

87 1999 이유

제120회(1999년) 나오키 상을 수상한 미야베 미유키의 대표작중 하나.

88 2000 저주받은 피

ㅎㅎ 이 책은 아직 읽어보지 못했네요ㅜ.ㅜ

 

89 2001 모방범

 

 6개 상을 석권하면서 대중성과 작품성을 동시에 확보한 미야베 미유키의 최고작.3권이지만 대표작답게 흡입력이 매우 강한 작품.

 

90 2003 다 빈치 코드

 

개인적으로 추리 소설이라고 부리기에는 뭐하지만 아무튼 무척 재미있는 작품**

 

91 2003 살인자들의 섬

책도 재미있지만 영화의 잔상이 더 많이 남는 작품이죠.

 

92 2005 밀레니엄

 

 

북유럽 추리소설의 걸작!!

 

93 2005 개의 힘

 

 ㅎㅎ 이 책은 아직 읽어보지 못했네요ㅜ.ㅜ

 

94 2006 용의자 X의 헌신

 히가시노 게이고의 탐정 갈릴레오 시리즈의 첫번째 작품.수학천재와 천재 물리학자와의 불꽃튀는 두뇌싸움이 벌어지는 작품.탐정이 물리학자여서 그런지 과학적 소재가 많이 등장하는데 일본에선 영화와 드리마라도 많이 방영되었지요.논리적 추리를 좋아하시는 분들이라면 시리즈 5권모두 재미있게 읽으실듯....

 

95 2006 치명적인 은총

  ㅎㅎ 이 책은 아직 읽어보지 못했네요ㅜ.ㅜ

 

96 2007 스노우 맨

  ㅎㅎ 이 책은 사고도 아직 읽어보지 못했네요ㅜ.ㅜ

 

97 2007

  ㅎㅎ 이 책은 아직 읽어보지 못했네요ㅜ.ㅜ

 

98 2007 고백

읽은 책인데 제 뇌리속에 크게 각인되지 못한 작품이네요^^;;;

 

99 2010 꼭두각시 인형과 교수대
 

  ㅎㅎ 이 책은 아직 읽어보지 못했네요ㅜ.ㅜ

 

100 2011 알렉스

  ㅎㅎ 이 책은 아직 읽어보지 못했네요ㅜ.ㅜ

 

ㅎㅎ 데카님의 추천 100선중 상당수는 읽어본 책이네요.대충보니 90이후부터는 안 읽은 책이 많네요.시간되면 한번 읽어봐야 겠네요^^

by caspi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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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1 1987 블랙 다알리아

제임스 엘로이가 쓴 'LA 4부작'즁 하나로 40년 화려하면서도 어두웠더 미국의 뒷모습을 그린 작품으로 다른 4부작중 하나로 영화화도 되었던  L.A 컨피덴셜을 재미있게 보신 분들이라면 이 책을 읽으셔도 좋을듯 싶네요.


62 1988 양들의 침묵

이 책을 읽어보진 않았어도 영화로는 보셨을 작품이죠^^


63 1989 살아 있는 시체의 죽음

죽은자가 되살아 난다는 독특한 시각의 일본 추리소설


64 1989 내가 죽인 소녀

제102회 나오키상 수상작으로 '탐정 사와자키 시리즈'의 두 번째 작품.신본격이 유행하는 일본에서 특이하게 묵직한 하드보일드로 승부한 작품이죠.


65 1989 타임 투 킬

존 그리샴의 데뷔작 딸을 강간하게 살해한 백인 범죄자들에게 정의의 응징을 펼치는 흑인 아버지의 분노와 이의 법정다툼을 그린 범정 추리소설.


66 1991 나의 미스터리한 일상

살인이 난무하는 본격추리소설을 아니지만 암호풀이, 수수께끼, 밀실, 미행, 도난등 미스터리 소설의 소재가 등장해 독자들의 흥미를 유발하는 연작 단편집.


67 1992 시계관의 살인

1기 관시리중 최고의 작품.관시리즈의 모든 역량이 응축된 작품으로 서로 다른 시간의 흐름속에서 독자들은 어둠속의 미로를 헤멜수 없게 되는 걸작.


68 1992 당신들의 조국

히틀러의 승리후 독일이 세계를 지배하는 일종의 가상역사 소설로 추리소설적인 면도 있지만 SF소설의 하위장류로 분류될수있는 하이브리드적인 작품인데 아쉽게도 절판이네요.


69 1992 쌍두의 악마

 <월광 게임>, <외딴섬 퍼즐>에 이은 에이토 대학 추리소설연구회 회원 '에가미―아리스' 콤비가 활약하는 세 번째 작품.일본의 신본격 추리 소설의 대표작중 하나.


70 1992 럼 펀치

엘모어 레너드의 작품인데 읽어보지 못한 작품이네요^^;;;


71 1992 살육에 이르는 병

오래전에 읽어서 기억이 가물가물한데 다시 확인하려고 보니 19금이라고 뜨네요@.@


72 1992 화차

이성균의 주연한 영화 화차의 원작소서로 거품경제가 붕괴한 직후인 90년대 초의 일본 사회상을 생생하게 표현해낸 마유키의 대표작


73 1993 마크스의 산

20년전에 절판되어 많은 추리소설 애독자들이 헌책방에 찾았던 일본 경찰소설의 걸작중 하나로 1993년 제109회 나오키 상 수상작.


74 1993 탄착점

읽어보지 못했는데 마크 월버그 주연의 영화 [더블 타겟] 원작소설이라고 하네요


75 1993 심플 플랜

샘 레이미의 영화 [심플 플랜]의 원작 소설로 눈앞에 닥친 물욕에 눈이 멀어가는 인간의 본성을 다룬 서스펜스 걸작


76 1994 우부메의 여름

'백귀야행 시리즈'의 첫 작품이며 작가의 데뷔작으로 초현실적인 세계관을 다루고 있어 실제 이 작품이 미스터리 소설인지 약간 애매한 구석이 있네요.일본의 괴담을 좋아하는 분들이라며 재미있게 읽으실 작품인것 같군요.


77 1994 콘크리트 블론드

마이클 코넬리의 경찰 소설 '해리 보슈 시리즈' 제3권.인형사와 해리 보슈와의 대결을 그린 작품

개인적으로 해리보슈 시리즈는 강추합니다용^^


78 1994 원 포 더 머니

'스테파니 플럼' 시리즈의 첫 번째 작품으로 여자 현상금 사냥꾼 스테파니 플럼이 주인공으로 등장하는 유머 미스터리인데 아쉽게도 절판됨


79 1995 망량의 상자


80 1996 불야성

일본 하드보일드 느와르의 걸작으로 불야성,진혼가.장한가 3부작3중 첫번째 작품.신본격추리와 다른 일본 하드보일드의 참맛을 느낄수 있는 작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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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1 1964 소름

위철리가의 여자에 뒤이은 로스 맥도날드의 소름,하드보일드의 진수를 볼수 있는 작품

42 1966 인 콜드 블러드

흠 추리 소설이 아니라서 읽어보지 못한 책이네요.추리소설이 아니라 넌픽션,실제사건을 바탕으로 한 범죄소설이네요

 

43 1968 웃는 경관

요줌 대세인 북유럽 추리소설의 선구자적 작품이죠.벌써 40년전에 국내에서 번역된 작품인데 작품성에 비해 번역이 좀 엉성하단 평가를 받고 있죠.10편의 시리즈로 알고 있는데 스톡홀름의 10년간의 아름다운 풍광을 볼수있다고 하는데 아쉬운점은 국내에선 이 책 단 한권만 번역되었단 사실이죠.

 

44 1971 재칼의 날

 

 스릴러 소설이 대가 프레드릭 포사이드의 대표작.프랑스 대통령 샤를 드골을 표적으로 하는 전문 살인청부업자 자칼과, 자칼을 추적하는 형사를 주인공으로 하는 추리소설로 변신의 귀재 자칼의 모습을 보는 재미가 큰 작품이지요.

 

45 1973 1의 대죄

 

로렌스 샌더슨의 대표작 대죄 시리즈의 첫 작품. 3권의 책일정도로 분량이 많지만 흡입력이 있어 순식간에 있을수 있죠.대죄시리즈는 예전에 타 출판사에서 2~3대죄 시리즈(아마 다름 제목으로 출간되었던것 같군요)가 나왔는에 아쉽게도 아직까지 재간되지 않고 있네요.

 

46 1974 팅커 테일러 솔저 스파이

스파이 소설의 대가 존 르 카레의 대표작.아쉬운 것은 존 르 카레의 전작 19편이 정식 판권 계약을 맺었다고 하는데 판매부진탓인지 이후에 계속 출간되지 않았네요.

 

47 1974 흑거미 클럽

 

SF대가로 알려진 아이작 아시모프의 추리 소설이네요.변호사, 암호전문가, 작가, 화학자, 화가, 수학자등 여러명이 각자 하나의 사건을 내놓으면 나머지 사람들이 추리를 하는 단편집으로 마지막에는 늘 그들을 시중드는 급사가 진상을 밝히죠.상당히 재미있는 단편집입니다.

 

48 1975 인간의 증명

 

모리무라 세이치의 증명 3부작중 대표작으로 전쟁으로 인한 인간의 어두운 내면을 잘 그리고 있는 작품이죠.인간의 증명,청춘의 증명,야성의 증명  증명 3부작은 일본추리소설가라면 필히 읽어봐야 될 작품이죠. 

 

49 1977 유니스의 비밀

루스 랜들이 대표작.아쉽지만 절판된후 아직까지 재간이 안되었네요.

50 1977 누군가 보고 있다

유괴소설의 걸작중 하나.오래전에 읽은 책인데 나라는 화자가 챕터마다 바뀌어서 독자들이 화자가 누군지 아라송하게 만드는 작품이죠.

 

51 1977 별의 계승자

추리적인 요소가 쬐금 있으나 기본적으론 SF소설이죠.재미있는데 아쉽게도 절판이네요

 

52 1979 whip hand

 

53 1980 회귀천 정사

 

일본 미스터리 역사상 가장 아름다운 명화(名花)로 불리는 연작단편집으로 각 작품마다 꽃을 소재란 추리 단편이지요.화장씨리즈는 회귀천 정사와 저녁싸리 정사 두권이 번역되었으나 모두 읽으셔도  좋을듯 싶네요.

 

54 1981 점성술 살인 사건

일본 신본격추리소설의 출발을 알린 작품으로 90년대 중반에 간행되었다가 절판되어 추리소설 애독자들이 헌책방을 전전케 하는 작품이죠.이 작품의 중요 트릭이 소년탐정 김전일에 나와 많은이들이 책보다 만화로 트릭을 먼저 보게된 직품이지요.

 

55 1981 고리키 파크

마틴 크루즈 스미스의 고리키 파크네요.이 책은 읽어본지 오래되서 내용이 가물가물한데 아쉽게도 절판되 책이라 자료가 없네요^^;;;

 

56 1982 800만 가지 죽이는 방법

 

로렌스 블록의 무면허이자 알코올 중독자 탐정 매튜 스커더가 나오는 대표작.

 

57 1987 십각관의 살인

일본 신본격 추리소설의 대표주자중 하나인 아야츠지 유키토의 대표작으로 이른바 관 시리즈라고 알려진 시리즈의 첫 작품이죠.90년대 중반 나왔다가 판매 부진으로 절판되었는데 나중에 이 책의 진가를 알게된 추리 애독자들이 이 책을 찾아 헌책방을 전전케 한 전설적인 책이지요.본격추리 소설 애독자라면 필히 읽어야될 책이라고 여겨지제요

58 1987 무죄 추정

 

스콧 터러의 대표작으로 사건을 수사지휘하는 검사가 용의자가 되는 법정 스릴러 물입니다.

 

59 1987 치명적 반전

ㅎㅎ 이책을 읽어보지 못했네요^^;;;

60 1987 몽키스 레인코트

 

 ㅎㅎ 이책도 읽어보지 못했네요ㅜ.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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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1 1939 그리고 아무도 없었다

 

 

크스티의 대표작중 하나죠.동요속 노래대로 사람들이 차례로 사라지는 스릴을 맛볼수 있습니다.그리고 아무도 없었다만 읽겠다면 해문 문고판이 좋고 크리스티 전집을 읽겠다면 황가나 해문 양장본을 고르시면 되지요.한가지 팁은 해문의 경우 양장이나 문고판이나 번역을 똑같습니다.

 

22 1939 디미트리오스의 관

고전 스파이 소설의 걸작이죠.스파이물은 본드만이 있는것이 아니란것을 보여줍니다.

 

23 1939 빅 슬립

 

레이먼드 챈들러의 필립 마로우가 나오는 대표작이죠.좀더 많은 출판사에 나온것응로 기억하는데 현재는 이 두책만 있는것 같습니다.챈들러의 작품은 6권밖에 없으니 북하우스 전집을 모두 사는 것이 좋을듯 싶네요.

 

24 1942 환상의 여인

 

 

 세계 3대 추리리설의 하나라는 환상의 여인.살인누명을 쓰고 있는 남자의 무죄를 밝혀줄 여인은 그 어디에도 보이지 않는데...본격 추리와는 색다른 아이리시만의 음울한 범죄의 색깔을 느낄수 있는 걸작입니다.

 

25 1942 황제의 코담배 케이스

 

존 딕슨 카의 걸작중 하나!!

 

26 1944 O시를 향하여

크리스티의 대표작중 하나지만,아무래도 위의 작품들보단 인지도가 떨어지는 것이 사실이죠.

 

27 1947 옥문도

일본의 대표적 명탐정 긴다이찌 고오스케(김전일의 할아버지죠)가 나오는 두번째 작품.혼진살인사건이후 태평양 전쟁에 참전한 탐정의 본격적인 활약이 시작됩니다.

28 1947 심판은 내가 한다

 

하드보일드 중의 하드보일드, 선배인 콘티네탈 욥이나 필립 마로우와 달리 피가 난무하지요.

두책중 황가판이 시리즈 3권으로 나왔으니 황금가지 판본을 읽으시면 좋겠네요.

 

29 1948 열흘 간의 불가사의

앨러리 퀸의 2기 작품중 대표작이죠.거의 20년만에 재간된 걸작으로 퀸의 애독자라면 필독입니다용^^

 

30 1948 검찰 측 증인

아가사 크리스티의 대표 단편중하나로 포와르나 미스 마플은 등장하지 않습니다.일종의 법정물로 마지막 반전이 소름끼칩니다.동서만 보이는데 해문이나 황금가지도 있지만 단편이어서 책 제목으로 안쓰여져 알라딘 DB에 보이지 않는것 같네요. 

 

31 1950 이누가미 일족

 일본의 대표적 명탐정 긴다이찌 고오스케 대표작중 하나

32 1951 시간의 딸

 

조세핀 테이의 대표작,오로지 침대에서 리처드 3세(우리나라 식으로 하면 수양대군)의 오명을 벗겨주는 걸작입니다.

33 1954 기나긴 이별

 

 역시나 챈들러의 대표작!! 그냥 북하우스 6권짜리 전집을 지르셔요

 

34 1955 재능 있는 리플리

알랑드롱의 영화 태양은 영원히의 원작. 그책에서 5권으로 세트 간행되었는데 범죄소설이 재미있으신 분은 세트로 구해하시는 것이 좋으실 거에요

 

35 1958 점과 선

 

마쓰모토 세이초의 데뷔작.흔히 사회파 추리소설의 대부로 알려져 있는 세이초도 초기에는 본격 추리소설을 썼다는 것을 알수있는 작품이죠.우리에겐 생소한 이른바 열차추리소설로 열차 시각표의 알라비아를 깨는 작품입니다.

 

36 1958 8지옥

스탠리 앨린의 단편집,오래전에 읽었던지라 기억이 가물가물(ㅎㅎ 전 자유추리무고본이 있지요)한데 상당히 재미있어던 기억이 납니다.

 

37 1958 약속

 

독일의 위대한 드라마 작가 뒤렌마트가 쓴 단 하나의 추리소설.순문학 작가가 쓴 추리소설을 과연 어떨까하는 추리소설 애독자의 궁금증을 풀어줄 책이죠.

 

38 1959 살의의 쐐기

 경찰소설의 대가 에드 맥베인으 78분서 시리즈 초기 대표적 걸작

 

39 1962 깨어진 거울

 

크리스티 작품이네요.읽어본것 같은데 저한테는 임팩트가 없었는지 기억이 좀 가물가물하네요^^;;; 

 

40 1963 추운 나라에서 온 스파이

 

제임스 본드와 비슷한 시기에 등장한 리머스,본드처럼 멋지지는 않지만 60년대 냉전시대의 리얼한 스파이의 모습을 보여주는 걸작으로 문학성으로 평단의 찬사를 받으며 서머싯 몸상, 에드거상 등을 휩쓴 작품이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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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yrus 2015-06-05 21:50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좋은 정보 알려주셔서 감사합니다. ^^

카스피 2015-06-12 17:16   좋아요 0 | URL
ㅎㅎ 별말씀을요^^

독서나무 2015-08-05 10:34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책보다 사람에게 꽂히는 이유는 뭘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