농촌의 역습 - 일본의 농촌은 보물산이다
소네하라 히사시 지음, 제갈현 옮김 / 쿵푸컬렉티브 / 2013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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절판



대학 시절 농활을 처음 가보고 나서 농촌의 현실을 알게 되었다. 그 당시는 김영삼 정권인 1997년이었다. 농부 아저씨들은 저마다 농협에 큰빚이 있었는데 대부분 경운기나 트랙터 등 농기계를 구매하기 위한 것들이었다. 어린 나이에 보기에도 농부 아저씨들의 시름은 깊어 보였고 표정에 패배감 같은 것이 서려 있었다. 아무도 관심을 주지 않고, 농사일을 하찮게 보는 주위의 시선에 대한 시름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나는 시골 출신이긴 하지만 바닷가 동네여서 농사일은 잘 모른다(그렇다고 바닷일을 잘 아는 것도 아니다). 그러나 내 고향 제주도에는 농업 일을 하는 사람이 많아서 분위기를 감지할 수 있었다. 그 후로 정권교체를 통하여 진보적인 정권이 들어서기도 했지만 달라지는 것은 별로 없었다. 우르과이라운드가 FTA로 바뀐 것처럼. 


농촌에 배정된 예산이 적지는 않았지만 "죽지 않을 만큼"만 보조해준다는 느낌이었고 별로 관심을 갖는다는 느낌이 들지 않았다. 우리나라의 식량자급률 추이는 이러한 현상을 뒷받침한다. 


2012년 12월 27일 농림수산식품부와 농협경제연구소가 발표한 자료에 따르면 우리나라의 식량자급률은 22.6%로 해당 통계를 작성한 이후 가장 낮은 수치다. 식량자급률은 1970년대 80.5%에서 1980년대 56.0%, 1990년 43.1%, 2000년 29.7%로 계속 낮아지고 있는 추세다. 특히 쌀을 제외한 곡물의 자급률은 불과 3.4%로 CECD 34개국 가운데 28위 수준이다. 1990년대의 도시근로자 평균소득 대비 농가소득은 97.3%에서 59.1%로 급락했다. 말 그대로 '농업의 위기'다. 


한편 도시에서는 귀농·귀촌 이 유행처럼 번졌다. 통계청의 최근 발표를 보면 2011년 귀농가구는 1만75가구로 전년의 5405가구에 견줘 86.4%나 늘었다. 2012년도에는 2만가구에 육박했다. 사정이 이렇다 보니 올해의 귀농귀촌 예산은 작년에 비해 28%나 늘었고, 국회 예산결산특별위원회에 계류중인 예산만도 242억 원이나 된다. 


하지만 귀농·귀촌 열풍을 받아들일 만한 준비가 되어 있는지에 대해서는 의문이다. 미디어에서는 성공사례가 보고되지만 과장되는 경우도 많고 실질적인 현실과 괴리된 경우가 많다. 특히 실패 사례가 더욱 많다. 귀농·귀촌에 대한 마땅한 철학이나 시스템이 약하다 보니 얼마 전에는 귀농·귀촌을 미끼로 한 사기 사건이 생긴 일도 있다. 


2011년 통계청 자료에 따르면 귀농자의 평균 연령은 52.4세로 전년도에 비해 조금 젊어졌다고 하지만 아직도 '귀농'이란 말은 도시에서 현역생활을 마치고 시간적 물질적 여유가 있는 사람이 만년에 돌아가는 곳이라는 인식이 일반적이다. 최근의 귀농·귀촌 열풍에서도 농업은 '주변 산업'이라는 생각을 지울 수가 없다. 


"농업은 주변이 아니라 중심"이라는 생각은 세계적인 추세이며, 이 흐름에 뒤처지면 식량전쟁이 본격화될 때쯤이면 국가경쟁력을 잃을 수도 있다. 최근 전세계 금융위기에서도 볼 수 있듯이 제조업 등 실물경제가 받쳐주지 못하는 금융산업이란 사상누각에 불과하다. 그리고 실물경제의 가장 기초적인 체력은 '먹거리'에서 나온다. 하지만 이것을 구체적으로 어떻게 할지 몰라서 발만 동동 구르고 있던 차에 생각지도 못한 인연이 찾아왔다. 


대구사회연구소에서 나에게 원고 하나를 보내주며 이 글의 저자 선생님과 동행해줄 수 있느냐고 요청한 것이다. 나는 원고를 밤새 읽어보며 행복감을 느꼈다. 내가 생각했던 농촌의 모습이 담겨 있었을 뿐만 아니라 무려 18년 전부터 그 그림을 그려오던 사람이 실제로 있었다는 사실에 놀랐다. 그 주인공은 일본 6차 산업의 전설 소네하라 히사시 대표(비영리법인(NPO) 에가오츠나게테)다. 




<농촌의 역습>은 어떤 책?


처음 <농촌의 역습>을 펼쳤을 때 10조엔 플랜(원화 117조원)에 깜짝 놀랐다. 하지만 더욱 놀라운 것은 10조엔을 채우는 그 내용이다. 농업의 6차 산업이라는 개념은 한국에서도 큰 관심을 받고 있다. 농업의 6차 산업화란 농업자나 농업생산법인 등의 다양한 경영체가 농업생산(1차)에 머무르지 않고 가공(2차), 판매 및 서비스(3차)까지 (1X2X3=6)를 표현한 총합적인 사업 전개를 행하는 것을 말한다. 



▲  1960년부터 54년의 긴 세월을 풀무학교와 함께 한 충남의 큰어른 홍순명 선생과 오찬을 나누며 인사를 하고 있는 소네하라 대표


소네하라 대표는 이 일을 18년째 해오고 있다. 시골 출신이 가지고 있는 건강한 상상력과 자연에 대한 겸허함이 몸에 배고, 대학 시절 음악세계에 심취해 하모니를 이해하고, 15년간 은행의 경영 컨설턴트를 하면서 돈의 흐름에 대해서 깊이 체험한 바탕이 마치 예술처럼 펼쳐진다. 예컨대 1.5톤의 쌀을 그대로 팔면 30만엔에서 40만엔의 수입이 되지만, 모내기 체험 등과 함께 상품화하게 되면 수입이 500만엔으로 10배가 넘는 수익을 얻을 수 있다. 


이것은 하나의 아이디어가 아니라 오랜 고민과 행동을 통해서  얻어낸 결과이기 때문에 희망제작소 시절의 박원순 시장이 몇 번 방문해서 배우기도 했고, 최근에는 안희정 충남도지사가 방문해 배워가기도 했다. 세계적인 언론사인 BBC, CNN 등이 방문해 취재를 해가기도 하고 아예 미국 일간지에 관련 기사가 소개되기도 했다. 


기업 또한 사회적 책임을 실천할 수 있고 이를 통해 기업 이미지를 높일 수 있을 뿐만 아니라, 황폐화된 농촌을 생명의 땅으로 개간하는 과정에서 팀워크와 뇌 자극이 일어나 업무의 효율성을 높인다는 관찰 결과들이 일본에서 보고되고 있다. 이것은 농촌을 바라보는 전혀 새로운 시각을 보여주는 대목이다. 이 분야는 현대 자본주의를 관통하는 산업이 될 여지가 충분하다. 


<농촌의 역습>이 산업의 혁신에 머물렀다면 부러운 이웃나라의 사례 정도로 다가왔을 것이다. 6차 산업화가 진행된다는 것은 개인의 라이프스타일과 워크스타일 자체가 변화하는 것을 의미한다. 땅을 일구고 농산물을 키우는 것 자체가 다른 의미를 얻고, 농산물을 소비하는 것도 달라질 수밖에 없다. 농사를 짓는 일은 생명을 일으키는 일이기도 하고, 자기계발을 하는 일이기도 하고, 대체에너지 자원을 만드는 일이기도 하고, 자급하는 일이기도 하다. 


나는 소네하라 대표의 두 가지 통찰에 특히 놀랐는데, 첫 번째로 놀란 것은 일본의 버블 붕괴와 식량자급률과 에너지자급률 하락, 실업률 상승, 고령화, 경작 포기지 확산 등 총체적인 문제가 "농촌을 지지할 것"이라는 사실을 꿰뚫어본 부분이다. 여기서 제대로 한 수 배웠다. 두 번째로 놀란 것은 각 사회의 주체들이 가지고 있는 연결고리를 잘 잡아낸 것이다. 


행정에는 권위주의가 있고 대학의 권위에 약한 경향이 있습니다. 따라서 행정과 연대 체제를 만들고 싶다면 우선 대학에 접촉하는 것이 효과적입니다. 대학은 섹셔널리즘에 빠져 있어서 학제적 활동을 하고 싶어도 할 수 없는 경우가 있기 때문에 NPO와 연대하기를 바라는 연구자가 많이 있습니다. 또한 NPO는 자금 부족에 고민하고 있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자금이 있는 기업과의 매칭 기회를 가지기를 바랍니다. 기업은 감독관청, 행정에 약한 특징이 있습니다. 따라서 기업과 연대하려면 우선 행정과의 연결고리를 만들어 가면 원만하게 진행되어 가는 경향이 있습니다. 기업은 행정과 연대한 NPO활동의 장이 되면 참여하기가 쉬워집니다. (258쪽)


마치 '가위 바위 보'처럼 각 연결고리를 정확하게 짚을 수 있는 것은 각 단위들과 함께 오랫동안 일을 해왔기 때문이다. <농촌의 역습>을 읽다 보면 우리가 일상에서 흔히 놓치기 쉬운 것들이 멋진 산업의 자원이 되고 있는 모습에 놀라게 될 것이다. 우리나라 농업의 미래에 관심이 있는 사람에게는 신선한 충격을 선사한다. 


3박4일의 대장정



▲  길을 새롭게 발견한 제주올레 서명숙 이사장과 농촌을 새롭게 발견한 소네하라 대표의 만남은 그 자체가 의미 있는 일이었다. 제주시 마을을 관통하는 18코스를 직접 안내하는 서명숙 이사장과 소네하라 대표가 쉬면서 한담을 나누고 있다



소네하라 대표는 2월 26일 서울에 왔다가 3월 1일 귀국했다. 작달막한 키에 멋들어지게 콧수염을 길렀고 피부는 까무잡잡한 게 전형적인 시골 아저씨 풍이었다. 얼굴은 항상 웃고 있는 모습이어서 미소를 따라 주름이 졌지만  아이 같이 해맑아 보였다. 사소한 것에 대해서도 의문을 품고 영어와 일본어, 바디랭귀지를 써가며 질문하였고 신기해 했다. 비언어 소통의 달인처럼 말이 통하지 않아도 몸짓과 영어, 일어 등을 섞어서 웬만한 의사소통이 되었다. 


소네하라 대표를 처음 보는 순간 그가 어떻게 10조엔 플랜이라는 원대한 구상을 하게 되었는지 알 수 있었다. 서울의 한 게스트하우스에서 여독을 푼 후 다음날 아침부터 강행군이었다. 박원순 시장이 희망제작소장으로 있을 때부터 오랜 인연을 맺고 강연도 다녀갔던 희망제작소 강연을 오전에 끝내고 오후에는 제주 올레길을 걷고 제주 젊은이들, 농업인들과 만났다. 


<농촌의 역습> 원고를 읽고 나자마자 떠오른 사람은 바로 제주올레 서명숙 이사장이었다. 농촌 출신 소네하라 대표가 17년 동안 은행의 경영 컨설턴트를 하다가 농촌으로 돌아갔다면, 서명숙 이사장 역시 무려 24년 동안 현역 저널리스트로 일하다가 고향 제주도로 내려와 제주올레 길을 냈다. 소네하라 대표는 농촌을 전혀 새로운 시각으로 보았고, 서명숙 이사장은 감춰졌던 길을 걷어내며 새로운 생명을 불어넣었다. 두 분이 남매처럼 어깨동무하고 포옹도 하며 찍은 사진은 지금 생각해도 감회가 새롭다. 제주 올레는 현재까지 20코스의 길을 내었지만 당분간은 새로운 코스를 내지 않을 계획이라고 한다. 


서명숙 이사장은 "지금까지 만들어진 코스 속에서 공동체가 어우러지는 일을 고민할 때다"라고 말했다. 제주 올레는 '올레꾼'을 제주로 불러들이는 큰 역할을 했고, 올레꾼들이 동네 상점에서 사먹는 생수와 각종 소비재, 민박과 게스트하우스 수입 등으로 제주의 지역경제에 활력을 불어넣었다. 하지만 제주의 길에서 제주의 마을로 어떻게 끌어들이고 함께 호흡하게 할 것인가 하는 고민을 깊이 하고 있었다. 


올레길을 통해 마을 공동체의 지속적인 수입을 만들어갈 수 있는 기획도 곁들여야 하는 상황이다. 소네하라 대표는 현 상황에서 올레와 제주 지역에 신선한 자극을 던져주었다. 이러한 사정 때문인지 제주의 소리, 헤드라인 제주, 제주저널 등 많은 제주 언론이 이 강연에 주목하고 기사로 관심을 표명했다. 소네하라 대표 역시 에가오츠나게테에서 '길'에 대한 시도는 해본 적이 없다고 말했다. 이 강연회를 계기로 지속적으로 관계를 맺으며 돕기로 약속하는 모습을 보면서 제주로 초대하길 잘 했다는 생각이 들었다. 


다음날에도 강행군이 이어졌다. 대구의 농업기술센터 강의에서는 200~300명이 넘는 인원이 자리를 채워 뜨거운 관심을 나타냈다. 대구 역시 경제 상황이 좋지만은 않기 때문에 활로를 모색해야 하는 시기다. 오후에는 충남발전연구소 초청으로 강연을 했다. 80명이 들어가는 강연장에 의자가 부족해 일부는 일어서서 들어야 했다. 예정된 시간보다 훨씬 늦은 시간까지 질문이 이어졌다. 강연에 참석한 사람들은 대부분 책을 구매하여 현장에서만 70권 넘게 팔려나갔다. 충남은 6차산업센터가 처음으로 생긴 곳이며 유명한 풀무학교가 있다. 


28일 밤에 충남 홍성의 홍동마을로 이동해 풀무학교의 게스트하우스에서 짐을 푼 후 홍동마을의 '뜰'이라는 주점에서 주민, 활동가들과 함께 밤늦도록 이야기를 나눴다. 동네에 호프집이 없어지자 마을 자체적으로 호프집을 만들었는데 '뜰'이라는 공동체 화폐로 구매가 이루어지는 독특한 방식이었다. 지역화폐를 직접 보기는 처음이었다. 이튿날은 공교롭게도 3·1절이었다. 



▲  대구농업기술센터와 충남발전연구원에서 강의를 하고 충남 홍성 홍동마을의 주민 자치 호프집에서 주민, 활동가들과 깊이 있는 이야기를 나누었다. 대구는 뜨거웠고, 충남은 진지했다.



홍동마을은 일제 시대 의병운동이 격렬하게 일어났던 지역이어서 마음이 묘했다. 홍동마을의 전설적인 어른인 홍순명 도서관장님을 만나고 오찬을 나눴다. 풀무학교는 3·1운동 민족대표 33인 중 한 명인 남강 이승훈 선생의 오산학교에서 씨알 함석헌 선생과 동급생으로 활약한 이찬갑 선생이 충남 홍성에 내려와 1958년 설립했다. 홍순명 선생은 2년이 지난 1960년부터 풀무학교에 참여한 이래로 지금까지 풀무학교와 홍동 마을을 지키고 있는 큰어른이다. 홍순명 선생은 일본어를 유창하게 하시며 소네하라 대표와 한담을 나눴다. 


홍동 마을의 풀무학교는 자연적인 방문객만 한 해에 14만명이 되는 세계적인 명소다. 홍순명 선생과 소네하라 대표는 농업이 모든 산업의 기초가 되고, 미래 산업의 열쇠가 되어야 한다는 데 생각을 같이 했다. 두 분의 만남을 곁에서 지켜보면서 '농업'에 대한 나의 편견이 눈 녹듯 씻어나갔다. 농업이 괜히 '천하지대본'이라는 말이 아니며, 이 말은 미래에도 그대로 적용된다는 사실을 새삼 깨달았다. 홍순명 선생은 콘텐츠를 하나 하나 가꿔왔다면 서명숙 이사장은 길이라는 플랫폼을 만들었다. 소네하라 대표는 네트워크를 만들어 이를 코디네이터하는 일을 해왔다. 이 대가들의 근거지가 농촌이라는 사실은 주목할 만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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fta 한 스푼 - 그리고 질문 하나
우석훈 지음 / 레디앙 / 2012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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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편지] fta, 당신은 누구였나요?



한미 fta, 안녕하세요. 소문자로 fta라고만 쓰는 것을 용서하세요. 갑자기 당신에게 편지를 쓰고 싶어졌습니다. 지금은 잊힌 이름이 된 것 같지만 당신은 곧 '짠!' 하고 나타나겠죠? 올해는 당신과 관련한 두 개의 뉴스가 있네요. 헌법 위에 군림한 것처럼 기세 좋던 외교부 통상교섭본부가 '실'로 강등되었을 뿐만 아니라 산업통상자원부로 자리를 옮겼다는군요. 권불십년이란 말이 딱 맞군요. 두 번째 소식은 민주당 이야기입니다. 민주당은 fta를 맺을 당시는 여당이었지만, 국회 비준을 할 때는 야당이었죠. 참 딱한 처지이긴 하지만, 덕분에 국민들이 민주당에 대해서 정확히 알게 된 것 같아요. '나쁜 fta, 좋은 fta' 기억하시나요? 5.4 전당대회를 앞두고 강력을 대거 손질해 보수 정당으로 거듭나려고 절치부심하고 있더군요. 그러니까 한·미 FTA와 관련해 ‘국민의 이익이라는 관점에서 전면 재검토한다’는 문구를 한·미 FTA로 국한하지 않은 채 ‘FTA 등 통상정책에 국익을 최우선시해야 하고, 피해부분 최소화 및 피해분야 지원 방안을 마련한다’라는 문구로 바꾸는 방안을 추진하기로 했대요. 좌클릭 우클릭을 반복하더니 다시 오른쪽으로 몇 번 클릭한 셈이죠. 이제 국민들이 헷갈리지 않게 되어 다행이지만, 똥개훈련을 너무 오랫동안 시킨 것 같아 괘씸하네요. 


이쯤에서 당신께 하나 물어보고 싶습니다. 당신은 누구였나요? 당신은 우리에게 무엇이었나요? 전국을 떠들썩하게 만들면서 싸울 만큼 의미가 있었던 당신은 지금은 왜 아무도 알아주지 않는 가십거리가 되어버렸나요? 나는 여전히 당신의 정체를 알지 못합니다. 다만 한국에서 가장 유명해진 전 통상교섭본부장이 당신의 후광을 입어 모 대기업 사장으로 갔다는 소식을 들었고, 여당이었다가 야당이 된 정당의 너무 빤한 연극을 재미 없게 바라본 것, 그리고 피해는 고스란히 농민이나 청년 등 사회적 약자들에게 전가되었다는 것만 보았습니다. 당신은 정치인가요, 경제인가요, 제도인가요? 이미 우리의 일상속에 깊숙이 들어와 있으니 이 정도는 대답해줘야 하는 거 아닌가요?



'우리들 자신이 괴물'이라고 하는 책


한미fta를 둘러싼 대한민국의 현주소를 편지 형식으로 묘사해 보았다. 만약 fta 씨가 답신을 한다면 짧게 이렇게 썼을 것 같다. 


"그러는 너희들은 정체가 뭐냐?"


1997년 대학 새내기 때 농활(농촌활동)이 끝나고 나면 선배들과 함께 거리를 지나며 가투(街鬪)를 했다. 골프장 문제와 당시 정치 현안에 대해서 목소리를 냈던 것 같다. 전단지를 슈퍼나 과일가게 아저씨, 미용실 아줌마들에게 나눠주면서 설명을 해드리면 차분히 읽어보시는 분도 있지만, 대개는 "정치는 어른들이 할 테니 너희들은 공부나 해라."며 변박을 줬다. 그런데 10여년이 지난 지금 가장 열성적으로 투쟁하는 사람들은 슈퍼 아저씨, 미용실 아줌마들이다. 이 모습을 보면서 묘한 기분이 들었다. 더 이상한 것은 바로 '경제'다. 정치인들과 대기업, 고위 관료들은 "경제는 높으신 분들이 할 테니까 너희들은 너희 일이나 해라."고 강요한다. 통상 권한을 외교부로 넘겼다가 다시 산업통상자원부로 넘기는 것은 예삿일이고, fta 자체도 마치 지뢰 제거하듯이 극소수의 관계자들끼리만 뚝딱 해치우고, 여당은 비준안을 날치기로 처리해버린다. 

우석훈의 은 fta를 둘러싼 각계의 안일한 자세와 노골적인 욕망을 들춰내며 '통상의 기본'을 이야기한다. 즉, 우리에게는 '통상'이라는 기본이 없다는 것이다. '경제민주화'를 이야기한다면  한미fta만큼, 그리고 만큼 적절한 사례가 없을 것 같다. 경제독재와 통상독재의 적나라한 실태와 그 폐해를 잘 보여주기 때문이다. 우석훈의 이야기를 따라가 보면 결국 '괴물'은 누구인가라는 문제와 만난다. 대기업, 정치인, 관료들은 괴물 같은 얼굴을 하고 있지만, 진짜 괴물은 따로 있다. 


분야별로 이익과 손해를 따지고, 이것을 합산하여 플러스가 되면 된다는 논리를 만들어 놓은 묘한 미장센 속에서, 국민들은 "수출이 늘어난다잖아." 혹은 "수출로 먹고 사는 나라잖아."라는 틀 속에 갇혔다. (본문 일부)


정말 무서운 괴수는 한미fta가 아니라, 그걸 바라본 우리 자신이 아닌가? 괴수와, 괴수를 불러들인 괴수와, 그 괴수를 키운 괴수로 구성된 나라에서 어떻게 우리가 다른 사람의 아픔을 공감할 수 있게 되느냐, 이게 경제보다 더 중요한, 그리고 경제 그 자체에 대한논의이다. (본문 일부)


이 책을 함께 읽은 Sasha Kim 씨는 "매번 나라에서 행하는 모든 행사나 사업에 장밋빛 미래를 보여주고, 그 반대의 이야기는 다 막아버리는 현실"이라는 말로 우리나라가 가지고 있는 '일상적 독재성'을 지적했다. 도대체 일반국민이 할 수 있는 것은 무엇일까? fta라는 주제를 다루지만 책을 읽어나가면 정작 fta는 주변으로 물러나고 보다 근본적인 문제가 펼쳐진다. 


"FTA를 찬성하든 반대하든, 민주적 절차를 무시하는 정부와 관료의 행태는 이미 그 자체로 그들이 추진하는 정책을 원인무효시킬 만큼 용서할 수 없는 반민주적, 독재적 행태이다. (서정호 씨)


비단 fta만 그러하랴. 국가가 주도하는 거의 모든 정책은 독재적으로 시행되고 있지 않은가. 한 지식인이 박근혜 대통령을 논평하며 "민주주의가 체질화되지 않은 것 같다"고 표현했는데, 민주주의가 체질화되지 않은 것은 우리나라 전체 국민이라고도 할 수 있지 않을까 하는 생각이 든다. 



은 어떤 책인가


독자들은 8년 전 우석훈 씨가 쓴 <한미FTA, 폭주를 멈춰라>라는 책을 기억하고 있었다. 서정호 씨는 "8년 전 우교수가 급하게 써냈던 책과 비교한다면, 이번 책은 상당히 여유(?) 있어졌다."고 말했다. 그래서 fta와 관련해서 딱 한 스푼 만큼의 관심과 질문이 필요하다고 압축해서 이야기할 수 있었다. 이 책의 정체에 대해서는 논란이 많았다. "우석훈은 사람 냄새가 나는 경제학자인 것 같다"고 완곡하게 평가한 권기성 씨의 말과 같이 은 경제학 책이 아니다. 한미fta가 경제, 정치, 외교 등으로 구분할 수 없는 것과 마찬가지다. 고은애 씨는 특히 3장에서 제시하는 몇 가지 정책 방안을 거론하며 "이 부분은 저자가 한미fta 체결을 평가하는 것처럼, 이 책이 경제적이기보다는 '정치적'으로 느껴지는 데에 큰 몫을 한다"라고 평가했다. 장재호 씨는 "이 책은 경제서적이 아니라 인문학책이라 단언하고 싶다"고까지 표현했다. 결국 이 이야기하는 것은 "우리의 공감 능력을 회복하는 것"이기 때문이다. 


이미 우석훈 씨의 전작 <한미FTA, 폭주를 멈춰라>에서 보이는 것처럼 역시 무엇인가를 의도한다는 느낌을 받은 독자들이 많았다. MyoungJoo Go 씨는 "은 친절하지만 의도가 있는 책이라고 말하고 싶다"고 말했다. 하지만 이 책을 읽으면서 fta에 대한 생각보다는 자신과 주변의 20대에 대해서 생각해보게 되었다고 회상했다. 20대와 지속적인 만남을 가져온 우석훈 씨의 의도가 제대로 먹힌 것 같았다. 하지만 그렇지 않은 경우도 있었다. 마태호 씨는 "이 책은 FTA를 해야 한다고 막연하게 생각하고 있었던 생각을 바꾸지는 못하였다"고 평가하며 경제학 전공자가 비전공자를 설득하지 못해 아쉽다고 말했다. 서정호 씨 역시 우석훈 씨가 다소 '헐렁(?)'하게 이야기하는 스타일을 전제하며 "이번 책은 전작들보다 책의 구성이 좀 덜 짜여져 있다는 느낌이 든다"고 솔직하게 평가했다. 어쩌면 에는 우석훈 씨가 표현하고 싶었던 게 원만하게 표현되지 않았을 수도 있다. 하지만 내가 주목하고 싶은 것은 이 책을 내놓을 당시에 우석훈 씨가 보여주었던 자세다. 우석훈 씨는 베스트셀러이자 지금도 잘 팔리고 있는 스테디셀러인 <88만원 세대>를 절판하면서 fta 문제로 화두를 돌리기 위해서 을 내놓았다. 그 의도가 성공하였건 그렇지 않았건 간에, 그가 마음속에 품고 있는 절박함은 충분히 전달이 된다. 


우리는 불행하게도 '아는 만큼 보이는' 시대가 아니라, '알아야 사는' 시대를 살고 있다. 지금 알고 있는 것은 당장의 문제 해결에 도움이 되지 않고, 오히려 화병만 날 수 있지만 알고 대화하는 과정 속에서 나는 우리나라 통상정책의 새로운 전기가 마련될 수 있다는 희망을 갖는다. 그래서 아래 구절을 보면 만감이 교차하면서도 힘을 얻게 된다. 


"fta 체결의 의미를 정확하게 알려면 한 시대가 갖고 있는 경제적, 정치적 맥락들을 알고 있어야 한다는 생각이 많이 들었습니다."(MyoungJoo Go 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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살아야 하는 이유 - 불안과 좌절을 넘어서는 생각의 힘
강상중 지음, 송태욱 옮김 / 사계절 / 2012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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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는 자살의 사정권 안에 들어와 있다


후배가 자살한 일이 있었다. 항상 밝은 모습으로 친구들을 즐겁게 해주던 후배였는데 자살했다는 소식을 들으니 충격이었다. 후배의 가족은 물론 동기들이 고통이 컸고, 특히 가까운 친구들은 오랫동안 우울증에 시달렸다. 그것을 옆에서 지켜봤다. 자살 이유가 분명치 않을수록, 예기치 못한 자살일수록 고통은 말로 할 수 없을 정도로 커진다. 

대통령 선거가 끝나고 나서 자살 뉴스가 끊이지 않고 있다. 노동자들이 회사에서 제기한 손해배상소송과 가압류의 압박을 견디다 못해 하나 둘 목숨을 끊고 있다. 그 외에도 검색창에 '자살'을 입력해보면 숱한 이야기들이 많다. 이미 우리들은 자살의 사정권 안에 깊이 들어와 있다. 


<고민하는 힘>(사계절출판사)의 저자 강상중 교수(도쿄대)의 <살아야 하는 이유>를 읽은 21명의 독자들과 자살과 삶에 대해서 이야기를 나눴다. 어지간히 인문사회 도서에 단련된 독자들에게도 <살아야 하는 이유>는 만만치 않은 도전이었다. 마태호 씨는 "내용이 어려워서 한번에 이해하기 어렵고, 또 읽는다고 이해될 것 같지 않다"는 말로 책의 무게감을 전했다. 박정민 씨도 "일본문학에 대한 지식이 없는 사람의 경우 읽다가 맥이 끊기는 면도 있다"고 조언했다. "소세키 평전이라 할 정도로 과도하게 인용이 많이 되었다"는 장재호 씨의 지적처럼 <살아야 한느 이유>는 나쓰메 소세키의 소설과 막스 베버의 사회학, 윌리엄 제임스와 빅토르 에밀 프랑크의 심리학에 많은 부분 의존하고 있다. <살아야 하는 이유>의 위상은 전작 <고민하는 힘>과 잘 대비가 된다. "섣부른 희망을 말하는 것은 범죄와 같다"는 강상중 교수의 말 속에는 최근 쏟아지는 힐링 키워드의 책들과 거리를 두겠다는 의지가 담겨 있다. 나아가 이 책들과 정반대의 입장에 있다고 할 수 있다. 그리고 그 가운데 <고민하는 힘>이 있다. <고민하는 힘> 역시 나쓰메 소세키와 막스 베버의 성찰에 많은 부분 의존하고 있는 것이 사실이지만, "내가 진짜 원하는 것, 진짜로 산다는 것, 진짜 행복을 돌이켜 보자"는 주제는 독자들이 얼마든지 소화할 수 있다. 하지만 '삶'이라는 주제는 차원이 다를 수밖에 없다. 병을 앓고 있었던 자식의 죽음과 뒤이은 일본대지진. 삶의 의미를 잃어버리고 극단적인 선택을 하는 일본 사회, 그리고 쌍둥이처럼 이를 좇는 한국 사회. 묻지마 살인과 묻지마 자살은 우리가 생각했던 것보다 만만치 않은 주제이며, 여기에는 '근대인'이 직면하는 현실이 가로놓여 있다. 독자에게 고도의 성찰과 정신력을 강요하는 <살아야 하는 이유>를 함께 읽으며 오랫동안 먹먹하고 혼란스러울 수밖에 없었다. 그러다 보니 <살아야 하는 이유>를 읽은 독자들의 리뷰는 마치 <고민하는 힘>에 대한 리뷰처럼 되고 말았다. 일부 독자들은 낙오했고 나도 그 행렬에 있었다. 


▲ 포털사이트에서 검색어 '자살'을 입력하면 뜨는 화면. 그만큼 자살자가 많다는 것 아닐까?



자살과 보수정권 선호의 방정식


독서의 편의를 위해서 <살아야 하는 이유>를 요약해야겠다. 강상중 교수는 철학자 지그문트 바우만이 제시한 액상화(liquid modernity)라는 개념으로 이야기를 시작한다. 바우만은 <고독을 잃어버린 시간>(동녘)에서 이렇게 설명하고 있다. 


우리들의 이 유동하는 근대 세계는 끊임없이 우리를 놀라게 한다. 오늘 확실하고 타당하다고 여기는 것들이 내일은 전혀 쓸 데 없고 괴상하거나 유감스러운 실수처럼 보일 수도 있다. 

ㅡ <고독을 잃어버린 시간>, 17쪽


미래학자들은 당장 우리 아이들이 사회인이 되는 2~30년 후에는 현재 직업의 80%는 사라진다는 예측을 하기도 한다. 액상화 현상의 단면이라고 할 수 있다. 부모 세대, 선배 세대들은 투쟁하듯 삶을 살았다. 부모님들은 먹고사는 것 자체가 삶의 목표였고, 386이라고 부르는 선배세대들은 '독재'라는 명확한 투쟁의 대상이 있었다. 지금은 이런 게 희미해졌다. 그래서 더 공포스럽다. 한치 앞을 알 수 없기 때문이다. 에리히 프롬이 <자유로부터의 도피>에서 한 유명한 말처럼 우리들은 스스로 결정하고 스스로 선택하는 자유로운 인생으로부터 도망가려고 한다. 강상중 교수의 표현대로 하면 "근대 이후의 사람들은, 나는 어떤 사람인가, 나는 무엇을 위해 살고 있는가, 하는 자아와 관련된 것들을 일일이 스스로 생각하고 의미를 부여하지 않으면 안 되는" 처지에 놓여 있다. 미국의 남북 전쟁 당시 해방된 노예가 갈곳이 없어 다시 주인의 집으로 돌아가는 것처럼, 자유 앞에 던져진 인간은 그 무게를 견디지 못하거나 자신을 속박할 수 있는 종교 따위를 찾게 된다. 


윌리엄 제임스는 근대적 합리주의 이래 많은 사람들이 심각한 정신 불안에 빠져 마음 의지할 곳을 열심히 찾는 것에 주목했습니다. 그리고 그런 사람들의 종교적 경험을 세심하게 골라내, 근대라는 시대의 한 단면을 생생하게 그려냈습니다(52쪽)


이것은 사람들이 보수정권에 의존하게 되는 이유에 대해서도 어느 정도 설명을 해준다. <고민하는 힘>에서 강상중 교수는 '3고(高)'를 예로 들었는데, 여성들이 이상적인 배우자의 기준으로 '고수입, 고학력, 큰 키'를 꼽았던 일을 말한다. 이런 문화는 우리나라도 마찬가지다. 자유와 행복에 대한 판단 기준이 없기 때문에 추상적인 관념을 끌어다 붙이는 것이다. <살아야 하는 이유>에서는 우리가 행복의 실체를 이해하지 못하기 때문에 갖가지 행복의 기준, 합격 기준 같은 것을 만들어내는 모습을 만든다고 설명한다. 강상중 교수는 이것을 '행복의 발명'이라고 불렀다. 자살은 바로 이 '행복의 기준'과 관련이 있다는 게 강 교수의 분석이다. 행복의 기준은 너무나 높고 나는 너무 부족하다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우리가 미디어를 통해서 보는 사람들은 너무 행복하고 안락하고 아름다운데 현실의 나는 초라하다. 강상중 교수는 '실업신경증'이라는 말로 이를 설명한다. 


심리학자들에 따르면 실직한 사람들은 대부분 스스로 사회에서 무용한 인간이라고 느끼고 무감동, 무관심에 빠진다고 합니다. 실업신경증이라고도 말할 수 있을 것 같은데, 많은 사람들이 그런 식으로 자기 자신을 무가치하다고 생각하게 되면 '자살자'가 늘어나지 않을 수 없을 것입니다. (166쪽)



의심하는 자세, 거듭나기



▲ 강상중의 <살아야 하는 이유>를 읽은 독자들이 추천한 책. 


오일수 씨는 <살아야 하는 이유>를 "누구도 예기치 못한 죽음에 직면할 수밖에 없으며, 인간은 덧없이 죽을 운명에 있음을 염두에 두고 겸허히 인간적인 것을 긍정한다는 비극적 휴머니즘"이라고 정리했다. 김세교 씨는 "쉽지 않은 책이라 장을 넘길 때마다 한참을 생각하게 되었지만 오랫 동안 기억될 만한 독서경험"이라고 말했다. 특히 강상중 교수 개인의 불행에서부터 이야기를 이끌어내는 부분에 대해서 독자들은 찬탄을 금치 못했다. Won-Mee Kim 씨는 "개인사에도 불구하고 '근대' 속의 개인의 삶의 모습을 거시적 관점으로 짚어주시길 마치 남 얘기하듯, 어쩌면 그것이 저자의 냉철한 지성의 힘"라고 평가했다. 최규택 씨는 "삶이 던지는 질문에 답을 하는 과정, 그것이 소중하다는 말에 공감하며 쇼세키, 제임스, 플랑크, 베버의 통찰을 통해 삶의 의미를 재해석한 글에 많이 공감"하였다고 말했다. 김영헌 씨는 "인간 본연의 존엄성을 바라보는 태도"가 무척이나 인상적이었다고 말했다. 저자가 말하고자 하는 살아야 하는 이유는 바로 "이 존엄성이 누구에게나 있기 때문"(김영헌 씨)이다. 


깊이 고민하게 만든 책이니만큼 관련해서 읽을 만한 추천도서가 많이 언급되었다. 주성현 씨는 박완서 작가의 <옥상의 민들레꽃>이 생각난다고 말했다. 그는 "우리가 살아야 하는 이유는 소중한 생명체이기 때문"이라는 진리를 일깨워준다는 공통점이 있다고 추천이유를 밝혔다. 박정민 씨는 세상을 어떻게 살아야 되는지 이정표를 잡아준다는 점에서 유니타스브랜드의 <자기다움>이라는 책을 추천하고 싶다고 말했다. 오일수 씨는 "삶과 죽음을 별개의 이원론으로 바라볼 수 없으며, 죽음 이후의 삶을 알려면 죽음의 순간을 두려움으로 멀리하지 말고 죽음이란 무엇이고 죽음의 순간에 어떤 일이 벌어지고 어떻게 대비함으로써 죽음 이후의 삶을 긍정할 수 있는가" 하는 내용을 담은 소걀 린포체의 <티베트의 지혜>를 추천했다. 최규택 씨는 "위대한 작가와 사상가들은 모두 긴 어둠의 터널을 지난 후 새로운 지평을 볼 수 있었다"는 '거듭나기' 개념이 무척 공감이 갔다는 말과 함께 리처드 로어의 <Falling upward>를 추천했다. 나는 개인적으로 <살아야 하는 이유>가 <고민하는 힘>과 쌍둥이처럼 보였다. 거시적인 사상의 관점을 함께 환기하려면 <내셔널리즘>을 함께 볼 것을 추천하고 싶다. <살아야 하는 이유>는 비관론에 머무르지 않는다는 점이 인상적이다. 고통스러운 터널을 뚫고 그럼에도 불구하고 인간의 존엄성을 발견하고, 나 스스로의 존재가치를 긍정하는 작품이다. 그래서 이 책을 대표하는 아래 구절을 결론으로 삼아도 좋을 것 같다. 이 구절은 권기성 씨가 추천했다. 


“하지만 행복은 추구한다고 얻을 수 있는 것이 아니라는 것이 노력해도 안된다는 허무주의가 아님은 물론입니다. 좋은 미래를 추구하기보다 좋은 과거를 축적해 가는 마음으로 살아가는 것. 두려워할 필요도 없고 기가 죽을 필요도 없이 있는 그대로의 자신으로도 괜찮다는 것. 지금이 괴로워 견딜 수 없어도, 시시한 인생이라고 생각되어도, 마침내 인생이 끝나는 1초 전까지 좋은 인생으로 바뀔 가능성이 있다는 것. 특별히 적극적인 일을 할 수 없어도, 특별히 창조적인 일을 할 수 없어도, 지금 거기에 있는 것만으로도 당신은 충분히 당신답다는 것. 그러니 녹초가 될 때까지 자신을 찾을 필요가 없다는 것. 그리고 마음이 명령하는 것을 담담하게 쌓아 나가면 나중에 돌아보았을 때는 저절로 충분히 행복한 인생이 되었을 것을 것이라는 것 등등. 이러한 ‘태도’가 아닐까요”(91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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살아야 하는 이유 - 불안과 좌절을 넘어서는 생각의 힘
강상중 지음, 송태욱 옮김 / 사계절 / 2012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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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상중 선생에게 배우고 싶은 '태도'


푹 패인 눈에 말쑥한 밤색 양복을 걸친 신사는  지적이고 과묵해 보였다. 로댕의 작품보다 더 고민이 많은 듯한 얼굴의 강상중 선생을 11월 5일 프레스센터 20층에서 처음 만났다. <살아야 하는 이유>(사계절)를 소개하기 위해 출판사가 마련한 기자 회견장에서였다. 세상의 모든 책을 다 읽을 수는 없는 거지만 내가 강상중 선생의 귀한 책들을 놓쳤다는 생각을 하니 속이 쓰렸다. 그래서 앉은 자리에서 3권(내셔널리즘, 고민하는 힘, 살아야 하는 이유)을 내리 다 읽었다. 일본에서 100만부 이사 팔렸다는 <고민하는 힘>. 출판사 관계자에 따르면 일본의 출판시장은 잡지가 60% 정도를 차지할 정도로 단행본의 비중이 크지 않은데, 그런데도 100만부가 팔렸다는 것은 국내에서 <아프니까 청춘이다>가 200만부 팔린 것과 같은 충격이라고 귀띔해주었다. 


재일교포 2세, 경계인으로서 한국과 일본 어느 곳에서도 환영받지 못했고, 특히 어린 시절부터 정체성의 문제에 직면했다던 선생은 삶과 진지함을 운명적으로 타고났다고밖에 할 수 없었다. 내가 특히 강상중 선생을 만나고 싶었던 까닭은 <살아야 하는 이유>에서 그가 결론처럼 강조한 '삶의 태도'를 직접 보고 싶었기 때문이다. 책의 말미에 빅토르 에밀 프랑클의 예화가 하나 소개돼 있는데, 프랑클 박사가 보살핀 환자 중에서 임종이 임박한 한 환자는 자신의 생명이 얼마 남지 않았다는 사실을 알고 죽기로 결심한다. 그래서 프랑클 박사에게 "밤중에 일어나지 않으실 수 있게 지금 모르핀을 놔주세요"라고 말한다. 프랑클 박사는 "비할 데없이 아름다운 업적"이라는 칭송을 보낸다. (책 176쪽) 그러고 보니 소크라테스도 임종을 할 때 이웃에게 진 닭을 대신 갚아달라고 말하고, 슬퍼하는 제자들을 설득하려 혼신의 힘을 기울였던 모습도 떠올랐다. 죽음을 앞에 둔 사람의 선행 사례를 볼 때마다 존경스러운 마음이 들면서도 티 안 나는 행동을 왜 이다지도 중요하게 생각할까 하는 의문이 들었던 것도 사실이다. 그래서 강상중 선생의 태도를 확인하고 싶었다. 


기자회견은 강상중 선생이 책을 집필한 경위에 대한 설명을 20분 정도 하고 기자들의 질문을 받는 방식으로 진행되었다. 강상중 선생이 일본어로 이야기하면 동시통역이 통역으로 끊어서 소개했다. 한국어로 하는 질문이 잘 안 들릴 텐데도 말을 알아들으려고 시선을 맞추고 경청하는 모습이 인상적이었다. 올해는 질문이 참 많이 나왔고 대부분 중요한 질문이었다며 무척 즐겁고 행복하다고 말을 하며 테이블마다 찾아가 기자들에게 감사 인사를 하는 모습은 기자회견의 하이라이트가 아닌가 생각한다. 이런 모습을 카메라로 잡을 수 없어서 아쉽다. 그리고 강연의 내용 중에 내가 눈여겨 본 태도는 '경계인'만이 보여줄 수 있는 한국과 일본에 대한 깊은 애정이었다. 한일관계가 악화될수록 선생의 가슴도 찢어지게 아프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내가 '교수'라는 직함 대신 '선생'이라는 표현을 쓰고 싶은 것은 세상을 이해하는 태도에 존경을 담고 싶었기 때문이다. 책을 읽어보면 알겠지만, 강상중 선생이 쏟아낸 고민들은 이론만으로는 건져내지 못한다. 마치 왼발과 오른발이 보폭을 맞추어 걷듯 치열한 지적 작업이 일보 전진하면, 밑바닥 현장을 두루두루 둘러보며 직접 확인하는 작업이 호응하는 식이다. 3.11 후쿠시마 대지진이 벌어지고 일주일만에 선생은 방사능이 상당히 깊었던 현장 곳곳을 둘러봤다고 했다. 선생은 "2만명 이상이 죽은 현장을 밟아보면서 세계를 보는 새로운 눈을 얻었다"고 말했다. 특히 후쿠시마 현 사람들에게 들은 말 중에서 아직도 가슴을 후벼파는 것은 "이런 사태를 만났는데 어떻게 살아야 할까, 살 필요가 있을까?" 하는 말이었다. IMF가 터졌을 때도 선생은 한국에 있었고, 아르헨티나 부도사태가 벌어졌을 때도 선생은 9.11 현장이 아니라 부에노스아이레스에 있었다고 한다. 부에노스아이레스에 거주하던 중산층이 했던 말 "이것은 부드러운 제노사이드(인종청소)다"이 특히 가슴아팠다고 말했다. 현장파 지식인에게 특히 배울 것은 '현장'이 아니다. 그의 이론이다. 현장에 굳건한 기반을 둔 탄탄한 이론과 그것을 다루는 태도다. 내가 강상중 선생의 책 세 권을 내리 읽은 까닭이다. 



<살아야 하는 이유>의 글과 말에 담겨 있는 함의


"한국은 점점 일본과 닮아가고 있어요."


강상중 선생이 걱정스런 표정으로 한 이 말에는 <살아야 하는 이유>의 존재이유가 담겨 있다고 생각한다. 이 책은 사랑하는 아들을 저세상으로 보내고, 엎친 데 덮친 격으로 무려 2만명의 일본인을 숨지게 한 대지진이라는 고통스러운 사건이 관통한 기록이다. 전작인 <고민하는 힘>에 등장하는 막스 베버, 나쓰메 소세키, 빅토르 에밀 플랑크, 윌리엄 제임스는 예고편(고민하는 힘)에 이은 본편(살아야 하는 이유)에 등장하는 것처럼 본격적으로 다뤄진다. 200쪽 남짓의 책이지만 체계와 완성도 면에서 꽉 차 있다는 느낌을 준다. 마치 강상중 선생이 이 책을 마지막으로 더 이상 이 핵심인물을 등장시키지 않겠다고 작정하지 않았을까 하는 생각이 들 정도였다. 특히 막스 베버와 나쓰메 소세키가 강상중 선생의 책에 왜 이렇게 비중 있게 다뤄졌는지 궁금해하는 독자는 <고민하는 힘>에서 선생이 해명한 부분을 소개하는 게 도움이 될 것 같다. 


선생에 따르면 "막스 베버는 '사회학'이라는 학문을 통해, 나쓰메 소세키는 '문학'을 통해 '근대'라는 것이 인간의 상황을 어떻게 바꾸어 놓았는지" 가르쳐 준다. 게다가 당시가 제국주의 전쟁의 극단을 보여준다면, 현재는 다만 옷을 바꿔 입었을 뿐인 '글로벌 머니'가 폭주를 하고 있기 때문이다. 베버와 소세키의 말은 놀라운 치료제가 된다. 


강상중 선생의 <살아야 하는 이유>는 확실히 죽음과 관련이 있다. 앞서 소개한 두 가지 슬픈 죽음 이외에도 '자살'이라는 한일 양국의 깊은 고민이 주제다. 강상중 선생의 말을 들어보자. 


"1년에 일본에서 자살하는 사람의 수는 3만이다. 지난 15년간 줄곧 그 숫자였기 떄문에 45만명이 세상을 떠났다. 자살을 시도한 사람까지 보자면 여기에 10을 곱하면, 그의 가족들까지 헤아리면 여기에 10을 곱하면 된다. 즉 일본 인구의 절반 가까이가 주변에 절박한 사람을 끌어안고 있는 셈이다."(11.5 기자회견 중에서)


세계의 자살률 공식 통계인 10만명당 자살률은 우리나라가 일본을 이미 누르고 1위다. (일본 10만명당 21.2명 자살, 한국 10만명당 33.5명 자살) 2010년 한 해 1만5566명, 하루 42.6명(2010년 통계) 그런데도 우리나라와 일본은 자살의 수치 너머를 보지 못하고 있다. <살아야 하는 이유>는 왜 이렇게 많은 자살자들이 발생하고 있는지, 그리고 어떤 과정을 통해서 자살에 이르는지, 현실세계의 자본과 권력 그리고 사회시스템은 어떤 방식으로 자살자들을 떠밀고 있는지를 깊이 있게 분석한다. 


3.11 대지진이 책의 주요한 사건으로 등장해야 하는 까닭도 자명하다. 강상중 선생은 "(3.11대지진이 1945년 8월 15일 종전과 비견할 만한 사건이라는 생각으로 이 책을 썼다"고 말했다. 이번 대지진은 일본 국민들을 세뇌시켰던 과학이라는 종교와 오만한 특권의식, 이들에게 억눌린 덩어리 세대(다이롄은 '덩어리'의 일본어)와 말단 세대가 보여준 프리터, 니트 등의 병리현상의 완결판이기도 하다. 강상중 선생은 이 현상의 근저에 있는 두 가지 키워드로 "돈, 내셔널리즘"을 꼽았다. 


3.11대지진이 벌어지고 나서 한국에서 도움의 손길이 많았고, 당시 언론에서는 '연대'라는 말이 심심찮게 등장해 선생은 한일관계가 전향적으로 진전되는 계기가 만들어지지 않을까 내심 기대했다고 한다. 하지만 이런 기대는 여지없이 빗나가고 있다. 비극적인 사건이 사람을 바꿔놓지는 않는다. 비극적인 사건을 통한 반성과 이를 통한 태도의 변화가 전향적인 관계를 만든다. 선생은 1923년 관동대지진을 떠올렸다고 했다. 그 당시 7천명이 넘는 한반도 출신자들이 학살을 당했다고 한다. 



 

▲ 강상중 선생이 기자들의 질문을 받고 있는 모습


▲ 시간과 여유가 조금 더 되는 독자는 전작 <고민하는 힘>과 <내셔널리즘>을 함께 읽을 것을 권한다. 


▲ 동시통역의 말을 경청하는 모습. 평소 선생이 해왔을 진지한 성찰이 주름을 통해 보인다




'거듭 나기'를 위해서


강상중 선생은 <내셔널리즘>이라는 책에서 보이듯, 일본의 내서널리즘에 대해서 오랫동안 추적하고 연구한 학자다.  시민의 자연적인 협의가 아니라 엘리트의 관념에 따라서 추동되는 게 내셔널리즘의 본질인데, 3.11대지진에 대한 선생의 설명에서도 내셔널리즘의 그림자가 쉽게 보인다. 선생은 3.11 대지진이 1년 남짓 지난 시점에 일본의 미디어는 '재해'에 대해서 일언반구도 하지 않고 있고, '연대'라는 말은 입에 꺼내지도 않는다고 말했다. 자연재해를 통해서 일본의 시민들과 한국ㆍ일본의 시민들이 풀뿌리 연대를 이뤄내는 장면은 일본 엘리트가 보기에 악몽 그 자체였을 거라는 생각은 자연스럽다. 


강상중 선생은 두 가지 예화로서 내셔널리즘과 돈에 대해서 깊은 시사점을 던져주었다. 도쿄도의 전 지사였던 '이시하라'가 장애인 전문 병원을 방문하고 "이 사람들은 아직도 살 가치가 있나요?"라고 남긴 말을 아직도 잊을 수가 없다고 분개했다. "이런 사람이 일본 심장의 수장이었다는 사실이 부끄럽다"고도 덧붙였다. 내셔널리즘은 일본 엘리트의 자의적인 관념 그 이상도 아니라는 사실을 잘 보여준다. 정치는 당대의 가장 힘없고 약한 사람을 생각하는 것이라는 동양의 오랜 정치관으로 볼 때, 일본의 정치인들이 정치에서 얼마나 멀어졌는지를 단적으로 보여주는 상징적인 장면이다. 


돈을 상징하는 장면은 더욱 충격적이다. 선생은 일본의 위 전문의가 수입이 좋다는 이유로 정신병 전문의로 간판을 바꿔 영업하는 현상이 보고된 내용을 소개하며 한국의 상황은 어떠냐고 물었다. 직업 중에서도 가장 자긍심 넘치는 의사라는 직업이 한낱 돈에 따라서 갈대처럼 흔들리는 슬픈 장면이다. 


마지막으로 '거듭 나기'에 대한 소개를 덧붙이고 싶다. 이미 소개한 대로 <살아야 하는 이유>는 자살을 고민하는 사람에게 단지 희망을 주기 위한 책이 아니다. 강상중 선생이 원하는 것은 '이해'이다. 르네상스의 철학자 스피노자는 감정과 고통 등 외부 자극을 상대하기에 인간은 너무나 무력하다고 말하면서, 이것을 이길 수 있는 유일한 방법은 '이해'하는 것이라고 말했다. 심지어 '이해'를 시도하는 순간 고통의 반은 이미 사라진다고 역설했다. 


<살아야 하는 이유>에서는 자살로 몰린 상황과 자살 선택이 한갓 개인의 처지가 아니라 사회구조가 의도적으로 밀어내거나 또는 막지 못하기 때문이라는 점을 강조한다. 이것을 간단하게 설명하기는 어렵지만 책에는 다양한 방법들이 분석돼 있다. 공교롭게도 강상중 선생이 주요하게 다룬 막스 베버(정신병 경력), 제임스(정신병 경력), 소세키(극심한 위궤양), 프랑클(아우슈비츠 생존 경험) 들은 거듭나기의 상징적 인물들이다. 고통스러운 경험은 거듭나기 위한 절호의 기회이나, 고통을 다루는 태도에 따라서 전혀 다른 양상으로 튕겨나갈 수 있다. 


행복을 누리는 시대는 끝났다. 강상중 선생이 말하는 지금 시대는 불행과 고통을 이해하고 그것을 너머서는 시대다. 그것을 넘어서지 못하면 악순환이 반복된다. 강상중 선생의 말을 들으며 일본은 지금 악순환으로 향해 달려가고 있구나 하는 생각이 들었는데, 그 순간 일전에 했던 한마디가 생각나 소름이 돋았다!


"한국은 점점 일본과 닮아가고 있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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결국 사장이 문제다 - 3년을 못 버티는 소기업, 15년 넘긴 홍사장의 서바이벌 사장학
홍재화 지음 / 부키 / 2011년 6월
평점 :
절판


“기업가정신”이라는 말이 요새 관심사입니다. 직장인 마인드에 익숙한 제가 회사를 차리고 나서 주위를 둘러보니 기업가정신을 갖고 일을 시작하거나 막 시작하신 분들이 굉장히 많다는 사실을 알게 되었습니다. 기업가정신은 미국의 서부개척기에 미국인들의 마음에 있던 정신이었는데 스탠다드 오일(현재의 액손모빌)의 석유왕 록펠러라는 갑부가 많은 미국인들을 직장인으로 만들어버렸다고 합니다.
 


 
기업가마인드가 없어지지 않기 위해서는 살아남는 소기업인들이 많아져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그 분들을 위해 실질적으로 도움이 되는 <소기업 사장학> 두 권의 책을 준비했습니다. 부키출판사에서 출간된 <결국 사장이 문제다>(홍재화 저,이하 ‘사장문제’))의 부제는 “서비이벌 사장학”이고 페이퍼로드에서 나온 <10인 이하의 회사를 경영하는 법>(이시노 세이이치 저, 이하 ‘10인회사’)의 부제는 “소기업 사장학”입니다. 두 책의 공통점은 사업 초기에 구체적으로 무엇을 해야 하는지 명확히 설명해주고, 딱딱하지 않고 쉽다는 것입니다. <사장문제>는 한국의 시장과 기업문화를 어느 정도 이해할 수 있다는 점에서 장점이 있고, <10인회사>는 일본작가들의 특징처럼 무척 세부적이라는 점입니다. 두 책을 통해서 소기업 운영에 대해서 가깝고 디테일하게 접근할 수 있다는 잇점이 있는 반면 두 책 모두 깊이는 부족합니다.
 
하나의 책이 모든 것을 만족해주는 일은 좀처럼 없기에 서로 좋은 점만 취해 자기 것으로 만들면 좋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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