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건 / 이원길 / 신원문화사, 326쪽(1,2회 두 권)


 

공자가 제자들과 함께 어느 마을을 지나고 있었다. 시장 구석에서 싸우는 소리가 들리더니, 아이 둘이 뭔가를 두고 말싸움을 하고 있는 것이다.



마침 아이들은 공자를 보더니 공자에게로 와서 자신의 사정을 이야기하였다.



첫 번째 아이가 말했다.



‘선생님, 우리는 지금 해가 언제 가장 커지느냐에 대해서 이야기하고 있었는데요, 저는 해가 아침에 궁궐보다 더 크게 보이기 때문에 그 때가 가장 커진다고 생각해요. 중천에 떠버리면 주먹만해져서 미미하잖아요.’



두 번째 아이가 금세 대든다.



‘아니야! 선생님, 해가 중천에 떠 있을 때는 옷을 벗고 있어도 땀이 주르륵 흐르기 때문에 가장 큰 거에요. 해는 뜨거운 불덩이로 이루어졌는데, 가장 뜨거울 때가 가장 클 때니까 한낮이 해가 가장 클 때가 아니에요.’



모두 공자에게 의견을 물었다. 고심하던 공자는 이내 입을 연다.



‘음, 그건 나도 잘 모르겠구나. 누구의 이견이 옳다고 딱히 이야기하기가 어렵다.’



아이들은 실망하면서 돌아갔으나, 제자들은 뭔가 깨닫는 바가 있었는지 저마다 고개를 끄덕거렸다.



   - ꡔCEO 공자ꡕ 중에서





사람은 세상에 오래 살아갈수록 덕과 지성이 쌓여간다. 덕과 지성과 함께 커지는 것은 그에 따르는 명예이자 기대치이다. 대학교수나 학교 선생이라고 하면 아이들의 질문을 청산유수처럼 해결해줄 수 있을 거라고 믿는다. 때문에 아무리 어려운 문제에 대해서도 우리는 나름대로의 대답을 하려고 애쓴다. 그러나 말이 많으면 쓸 말이 적다고 내가 나의 기대치에 이끌려 잘 알지도 못하면서 말을 하려고 애쓴 적은 없는지 반성을 하게 된다.





만약 초등학교 초년생 같은 조카가 내게 뭔가를 물었을 때 나는 ‘모른다’고 용감히 대답할 수 있을까. 우리들이 당연하다고 생각하는 것 속으로 진실은 숨어버린다. 우리들은 당연하다고 치부된 말의 쓰레기장을 뒤적이며 당연하지 않은 것을 발굴해야 한다.




어떤 사람은 학자들이 자신의 학문에 단순히 솔직할 수만 있더라도 지금처럼 낙후되지는 않았을 것이라고 한탄하기도 한다. 진정 우리가 의지하고 위대하다고 생각하는 사람에게 ‘그것을 할 수 없다’라고 듣는 것은 충격적인 일이 될 수 있다. 하지만 그가 우리에게 ‘인간’이 아니라 ‘신화’가 되어 버린다면 그와 우리는 서로 거짓말을 하고 있는 셈이다.



 



‘진실은 용기 있는 자의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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쇼페인트의 주위에는 특이한 사람들이 많이 있다. 그 중에서도 정치적 참여가 가장 활발한 사람은 ‘신상품사업개발단장’이다. 신상품사업개발단의 창립 이념은 ‘이제는 물질보다 정신을 팔자’이다. 정신을 팔다니, 정신을 팔아서 무슨 수익을 올릴 수 있단 말인가. 그리고 정신은 어떻게 파는 것인가. 처음에는 수많은 의문이 들었다. 물론 쇼페인트의 친구들은 워낙 특이하기 때문에 이제는 놀라지도 않지만, 그보다 기대가 더하다.

이들의 특징은 특이하지만 유용하고, 기발하지만 평범한 데서 출발한다.

 

신상품단장이 이 사업을 시작하게 된 것도 아주 평범한 사연에서 출발한다. 하루는 친구들과 식당에 가서 밥을 시켰다. 옆에 앉아 있던 사람들도 밥을 시켰는데, 거기가 먼저 밥이 나왔다. 그 사람들은 너나 할 것 없이, '맛있게 먹겠습니다'라든지 '감사합니다' 등으로 고마움을 표시하는 것이었다. 단장은 아주 순간적으로 물질과 화폐의 교환으로 대표되는 경제 논리가 일순간 '고마운 감정'으로 인해 무너진 현장을 포착했다. 그렇다. 물질의 교환과, 고마움의 표시는 분명히 다른 차원이다. 곧이어 단장의 상에도 밥이 왔다. 그도 '감사히 먹겠습니다'라는 말을 하였는데, 주인 아주머니가 환히 웃으며, '맛있게 드세요. 김치 이번에 담가서 맛이 잘 들었을 거에요' 하고 한마디 붙이는 것이었다. 이 순간 받은 '정감의 세례'를 통해 이 일에 뛰어들었다고 술회하였는데, 참 시시하기도 하다. 습관보다 미미한 정감이 거대한 관계론을 낳을 수 있는가. 아무튼 그 '관계론'은 이만큼 커진 것이 사실이다.

 

나는 그와 만나며 요즘 열풍을 일으키고 있는 ‘완결된 텍스트 운동’이 바로 신상품개발사업단의 작품인 것을 알 수 있었다. ‘완결된 텍스트 운동’이란 몇몇 인식 있는 신문사에서부터 시작한 운동으로, 가장 많은 사람들이 접하는 텍스트인 신문에서부터 한글맞춤법을 준수해 학생이나 일반인들, 외국인들이 한국어, 띄어쓰기 공부를 할 수 있도록 한 운동이다. 이들이 내세우는 구호는 ‘모든 신문 텍스트의 한국어 문법 교재화’이다. 이 운동은 상당한 반향을 얻고 있다. 외국에서도 이 운동을 벤치마킹해서 자국 언어 사용의 정확성을 높이고 있다.

이로 인해 멀게만 느껴졌던 한글맞춤법이 보편화되었음은 물론, 한글맞춤법이 한글의 특징을 잘 구현한 작품이라는 사실도 알려지게 되었다. 한글의 어떤 성분과 어떤 성분이 만나면 유독 특이한 화학 현상을 일으키는가도 사람들은 잘 알게 되었고, 거의 모든 종류의 글쓰기에 맞춤법이 활발히 적용되고 있다.

이것이 시작된 계기는 신상품개발사업단에서 출판한 ‘신문맞춤법’이라는 책이 화제를 일으키면서부터이다. 신문맞춤법은 신문사가 맞춤법을 좀처럼 지키지 않아, 국민들의 언어 생활을 오염시키는 주범이라는 사실을 폭로한 책이다. 그 중에서도 재미있는 부분은 신문맞춤법 총칙 제2항이다.


‘문장의 각 단어는 띄어 씀을 원칙으로 한다’는 총칙 2항을 교묘하게 변형해 ‘문장의 각 단어는 붙여씀을 원칙으로 한다’는 것이다.(‘붙여 씀’도 띄어 쓰는 것이 원칙이나 신문맞춤법은 이를 공개적으로 무시하고 있다) 신문사 측은 지면 배분 관계로 어쩔 수 없다고 항변해 왔으나, 조사 결과 띄어쓰기를 엄격히 적용해도 지면의 1%를 초과하지 않으며, 그것도 각 기사의 폭을 줄이거나, 남은 여백을 이용하면 대부분 해결된다는 사실이 밝혀졌다. 그리고 눈에 띄는 조항은 ‘단위명사는 절대로 띄어 쓰지 않는다’는 점이다. 노무현 대통령은 물론이고, 오백 원 같은 것들은 의미를 구분하는 데 중요한 기능을 하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이들은 거의 모든 문장을 '붙여쓰기'해버리고 있다는 사실을 많은 사람들은 알게 되었다. 이와 같이 신문맞춤법은 띄어쓰기 조항을 특히 어기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


이와 같은 사업단의 노력으로 몇몇 대형 신문사를 시작으로 교열부를 강화하기 시작하여, 각 신문사는 맞춤법을 준수하고 있으며, 지금은 교재로 내놓아도 손색이 없을 정도로 기사를 써내고 있다. 이 운동을 온몸으로 겪은 한 기자는 ‘맞춤법이 마치 반드시 지켜야 할 법률인 것처럼 생각돼 반발심도 생겼으나, 우리말을 절묘히 표현한 작품임을 알게 되고 나서 우리말을 더욱 사랑하게 되었다.’고 하였고, 다른 기자는 ‘맞춤법 공부가 문법 능력을 높일 뿐만 아니라 논리력도 상당히 강화시켜주었다.’고 이야기했다.


이번에는 이 사업단이 ‘악학대사전(惡學大事典)’ 작업을 하고 있다고 해서 단장을 만나러 가는 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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허름한 PC방 안에는 손님이 하나도 없는데, 컴퓨터는 모두 켜져 있었다.

‘이 많은 컴퓨터를 온종일 가동하려면 전기세 꽤나 나오겠군.’

“인터넷 박물관에 온 걸 환영해.”

쇼페인트가 저렇게 맑고 밝은 얼굴을 하는 것은 흔하지 않은데, 녀석은 마치 정말 가고 싶어하는 곳에 온 것 같은 표정이었다. 늙수그레하게 생긴 청년 한 사람이 컴퓨터 사이를 기웃거리며 간간이 마우스로 클릭하고 있었다.

“저 사람은 누구야?”

“인터넷 박물관장님이야. K씨라고 흔히들 부르지.”

쇼페인트는 ‘님’자까지 붙여가며 그를 소개했다. 모든 것이 낯설고 신기했다. 서울 한복판의 PC방에 손님이 한 명도 없는 것은 태어나서 처음 본다.

“이곳에서는 우리나라 안의 넓은 인터넷 세계를 떠돌면서 시민들이 작성한 문건들을 검색하고 있어. 이 컴퓨터들은 ‘디지털 진딧물’이라고 부르는 것들이야. 사람들이 작성한 내용에서 동일한 주제를 검색할 뿐만 아니라, 그 문건 전후의 문건을 검색해서 그것과 연관되는 것들을 찾아내는 거지.”

“다음 문건이 그것과 연관되는지 안 되는지 컴퓨터가 어떻게 알 수 있어. 동일한 키워드가 없으면 찾을 수 없잖아.”

“그것이 문제이긴 했지만, 대개 문건의 앞뒤는 동일한 주제인 경우가 많다는 것이 분석 결과 나타났어. 그래서 앞 뒤의 문건이 꼭 그 키워드를 가지고 있지 않아도, ‘이것, 그것’ 등의 대명사를 통해 그 주제를 표현할 확률이 큰 문건들을 검색해내지. 그것이 디지털진딧물의 역할이야. 진딧물들은 단백질이 주 영양분인데, 식물의 즙은 단백질 함량이 얼마 되지 않거든. 그래서 포식하기 마련인데, 진딧물이 적정량의 단백질을 얻으면 탄수화물은 과다하게 흡수된 상태이지. 그래서 남는 당분을 배설하게 되는데, 우리가 얻고자 하는 정보도 단백질과 같아. 그래서 하나씩 클릭하면서 유용한 정보인지를 결정하는 ‘디지털개미’가 있어야 하는 거지.”

“그러면 일일이 클릭해야 하잖아. 그걸 어떻게 다해.”

“그래서 인공지능 개미를 개발하고 있는데, 아직 개발단계라 사람이 일일이 클릭을 해줘야 하거든.”

쇼페인트는 아쉬운 표정으로 설명한다. 디지털개미가 차를 내온다.

“아저씨는 이렇게 하루종일 컴퓨터를 가동시키면서 어떻게 생활을 유지하세요?”

나는 이게 참 궁금했다.

“현대 사회는 정보 강자의 세상 아닌가요. 나는 정보의 강자랍니다. 그래서 벌이도 권력도 명망도 이 정보를 통해 얻을 수 있지만, 그것은 우리가 찾고자 하는 시대정신에 비하면 먼지만큼도 못합니다.”

“음... 일리가 있군요. 그런데 실명을 쓰지 않는 이유가 있나요?”

“무한공유 시대에 이름이란 한낱 기호에 불과합니다. 오히려 이름이 없고 그냥 시민이라는 명칭만 있었으면 좋겠는데요 뭐. K는 Kim의 약어입니다. 우리나라에 김씨가 가장 많잖아요. 그래서 많은 것으로 기운 것일 뿐, 별다른 뜻은 없습니다.우리가 인터넷을 사용하기 시작한 때부터 나이를 매긴다면 인터넷의 나이는 아직 고등학교를 졸업하지 못했어요. 그렇지만, 인터넷 시대는 수백 수천 년 동안 이어질 것이라는 것은 어렵잖게 예견해볼 수 있습니다. 사람이 죽으면 그가 사용하던 물품은 유품이 되듯이 그가 몸담았던 인터넷 카페나 블로그, 수없이 남겼던 게시판의 글은 어떻게 될까요? 우리는 그것을 준비하지 않으면 안 됩니다. 그래서 3년이 넘은 휴면 계정이 있으면 먼저 주인에게 메일을 보내 존재 유무를 확인하고, 답변이 없으면 파일 형식으로 담아서 인터넷 박물관에 저장합니다. 여기서 미래를 생산할 수 있어요. 아직은 계획에 불과하지만, 좋지 않은 마음을 품은 세력들이 이 정보를 마음대로 유용하기 전에 이 제도를 마련해야 합니다.”

나는 마치 한 편의 공상과학소설을 읽는 기분이었다.

“시민들의 정보라는 것이 그렇게 가치가 있나요?”

“지금은 아직 ‘무한공유 시대’가 실현되지 않았습니다. 사람들은 옛 시대의 체질을 가지고 있어서 지식에 대한 욕심을 가지고 있습니다. ‘지적 재산권’이라는 제도가 그것을 말해주죠. 옛 조상들의 말에 ‘큰 부자는 큰 장사를 한다’는 이야기가 있습니다. 지식을 널리 공유하는 것만큼 인류의 지식을 크게 해주는 것이 없습니다. 이것은 당연히 ‘지식 공유권’이라고 해야 마땅합니다. 무한공유 시대가 오면 가장 주도적인 역할을 할 사람들은 시민들입니다. 그들은 아직 자신의 존재를 찾지 못했어요. 만약 제 모습을 찾는다면, 그 시대에 맞는, 시대 정신에 맞는 행동을 할 겁니다. 그 첫 영토가 우리나라의 인터넷이었으면 좋겠습니다.”

나는 아직 확신할 수가 없다. 쇼페인트와 박물관장의 표정은 너무나 의연하다. 그 시대가 오면 내가 정보의 진정한 주인이 된다는 말인데, 내가 무엇을 할 수 있단 말인가. 천의 얼굴과 천의 목소리를 가진 누리꾼들의 입에서는 듣기 불편한 소리가 흘러나오고, 토론 게시판이나, 포털 사이트에서 이야기를 들으려면 마음을 단단히 먹어야 한다. 수많은 오해와, 폭력, 범죄가 자행되고 있는 우리의 영토에서 이렇게 무서운 험담을 늘어놓는 사람들이 진정한 주인이 된다고. 나는 납득할 수 없다. 무엇이 사실인지는 모르겠지만, 누군가는 허위의 탈을 쓰고 있을 테니, 빨리 그것이 벗겨졌으면 좋겠다. 그러면서도 내심 그 허위의 탈이 쇼페인트나 박물관장의 것이 아니었으면 하는 소망이 마음 한켠에 자라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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쇼페인트는 오늘도 분주하게 외출 준비를 하고 었었다. 내가 옆에서 뭘 하든 말든 못 본체다.


“쇼페인트 오늘 누구 만나러 가는 모양이지.”


쇼페인트는 아무 대답이 없다. 뭔가 생각에 잠기듯 멍한 시선으로 창밖을 바라보고 있지만, 이때는 녀석은 눈을 감은 것이나 다름없다.


“너 혹시 발굴학이라고 들어봤니?”

“뭐, 고고학을 말하는 거니?”

“고고학이 아니라 발굴학 말이야.”

“참, 세상에 발굴할 신기한 것이 어디있담. ‘놀라운 것은 이미 나에게 놀라운 것이 아니다’라는 유명한 광고문구도 모르니?”


쇼페인트는 대답을 기다리지 않고 밖으로 나간다. 나는 또 무슨 재미있는 일이 생길까 해서 황급히 뒤를 따른다.


“사상은 시대정신을 따라 움직여. 그런 의미로 보면 ‘발굴학’은 가장 현대적인 학문이라고 할 수 있어.”

“도대체 발굴학이란 게 뭐야? 시대정신은 또 뭐야. 시대정신은 이미 쓰레기통에 처박혔다고 말한 사람이 이제 와서 다시 시대정신 운운하는 것은 너답지 않은데.”


“발굴학은 알려지지 않은 사실을 주요한 문제로 다루는 학문이야. 학문이 주류를 따른다면 발굴학은 비주류 학문이라 할 수 있지. 예전에는 몇 사람의 선각자가 열정적인 성찰을 통해 우둔한 시민들의 등불이 되었다면, 이제는 시민들이 시민들을 향하여 들불이 되는 거야. 선각자들은 내적 성찰을 통한 외적 실현이 인생의 방향이라면, 시민들은 내적 성찰을 통한 내적 실현이야. 참여는 하되 이끌지는 않는 것이 시민들의 특징이야. 그렇지만 지식의 무한공유 시대가 되면서 선각자뿐만 아니라 시민들도 지식의 권위자가 되는 시대가 왔어. 그것을 잘 표현한 것이 발굴학이지. 발굴학은 알려지지 않은 사람들의 지식이나 사상, 문화의 흔적을 찾아내 우리의 시대정신을 찾아내는 거지.”

“시대정신이 ‘알려지지 않은 시민들’에게 있다는 보장이 어디 있어?”

“예전과 지금은 차이는 너무도 뚜렷하지 않니. 예전에는 곧잘 뭉쳤어. 시대정신이 굉장히 명확했기 때문에 거기에 이의를 제기할 수 없었지. 하지만 지금은 어때? 시대정신이 아예 없어 보이지. 나도 그렇게 생각했지. 하지만 발굴학자들은 시대정신이 이동했을 뿐이라고 말하고 있어. 시대정신은 시민들의 조용한 앞마당으로 뿔뿔이 흩어져 버린 거지. 발굴학의 목표는 그것의 조각들을 모아서 하나의 커다란 밑그림을 그리는 거야. 나도 자세한 내막은 알 수 없지만 말야.”

그러는 사이에 우리는 허름한 동네 PC방 앞에 다다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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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술력만 되었어도 비주얼하게 보여드릴 수 있었을 텐데, 여건이 안 되니 글로만 묘사합니다.

절친한 친구 쇼페인트는 신기한 친구들과 교유합니다. 덕분에 저도 신기한 것을 많이 경험하게 됩니다. 지난번에는 '시계혁명전'이라는 전시회엘 갔었습니다.

대문에 씌인 커다란 글씨가 먼저 들어옵니다.

'시간은 아날로그로 흘러간다'

첫 번째로 구경한 시계는 '우는 시계'였습니다. 시간이 지나가는 것이 왜 그렇게 슬픈 걸까요. 둥근 쟁반 크기의 대부분은 얼굴 모양이 차지합니다. 울상인 얼굴입니다. 왼쪽 눈에서는 눈물 같은 것이 떨어집니다. 처마에 빗물 떨어지듯 눈물이 떨어질 때마다 1초씩 바뀝니다.

'이 작가가 시간에 대해 생각하는 관점은 '슬픔'이지만, 그것을 두 가지로 표현하였지. 하나는 이렇게 시계를 작게 해서 우리들이 흘리는 눈물이 시간을 능가한다는 것이고, 반대로 얼굴을 작게 하고 시계를 크게 한 것은 시간 하나 하나가 수많은 사람들의 눈물로 이루어졌다는 것을 표현하고 있지. 이 사람이 평생 할 수 있는 일이라곤 우는 일밖에 없단 말야. 이 사람의 작품은 그럴 듯하면서도 재미가 없어. 또 다른 작품은 60개의 표정을 만들어서 1초가 지날 때마다 얼굴이 울상이 되다가 마침내 울어버리는 작품이었지. 노골적인 슬픔만큼 유치한 것이 어디 있겠어?'


쇼페인트는 괜히 짜증을 냅니다.

두 번째로 본 시계는 '멀어져가는 화살'입니다.
이것은 주로 어린이들에게 시간의 교훈을 가르쳐주기 위해 만든 작품이라고 합니다.
시계의 원을 따라서 크기가 다른 화살표가 그려져 있습니다. 이것은 초침이 지나가는 자리입니다. 이 자리마다 전구가 들어 있습니다. 전구가 한 번씩 켜질 때마다 시계의 크기가 점점 작아집니다. 그러다가 60초가 다 왔을 때쯤에는 보일락말락합니다.

'어릴 때는 이런 시계를 꽤 진지하게 보며, 공부도 열심히 했는데, 시계의 크기란 것이 다 거짓말이야. 우리가 사는 시간은 해봐야 100년도 안 되지만, 커다란 시공의 관점에서 보면 초침의 크기가 무슨 상관이 있겠어.' '길게 말하지 말고 다음 시계로나 가지?'

잘난 척하는 녀석에게 어깃장을 놓으면서 우리는 '비굴한 시계'에게 갔습니다.

이 시계는 진자운동을 하면서 돌아가는 시계인데, 진자의 위치에 사람 눈알을 그려넣고, 궤도를 둥그렇게 사람의 얼굴이 두르고 있습니다. 보고 있으면 한 사람이 불안해하며 이쪽저쪽 살피는 모습을 닮았습니다.

'평생 눈치를 보고 살아가면서, 자신이 만든 작품까지 사람들 눈치를 보게 하고 싶을까?'
(이 작품은 코엑스몰에 가면 볼 수 있습니다. 거기는 동물들이 눈치를 보더군요.)

이번엔 내가 쇼페인트의 흉내를 내 봅니다. 녀석은 선수를 빼앗겨서 분개한 듯이 아무 말 없이 다음 작품으로 걸어갑니다. 다음으로 본 시계는 '하루'입니다..

시계 배경에는 산 그림이 그려져 있고, 다섯 개의 버튼이 있습니다. '봄, 여름, 가을, 겨울, 써머타임', 버튼을 누를 때마다 배경이 조금씩 바뀌고 화면의 밝기도 바뀝니다. 낮이 길어지는 날은 좀 빨리 밝아지고 낮이 길어지는 날은 한참 동안 어둠이 시계의 배경을 이룹니다.

'여기 있는 작품 중 드물게 실용적인 시계야. 이 시계 들고 유럽에 간 일이 있었는데, 마침 써머타임을 하고 있었지. 그래서 버튼을 맞춰 놓고, 하루 종일 시계와 창밖만 보고 있었지. 신기하게 이 시계의 밝기와 창밖의 밝기가 똑같은 거야. 아마 이 시계를 발명한 사람은 굉장히 많은 경험을 토대로 만들었을 거야.'

특이하게 이 시계에는 초침이 없고, 분침보다 시침이 길었습니다. 시침이 해를 상징하고 시계를 한 바퀴 도는 것입니다. 시계란 꼭 시침이 분침보다 짧아야 할 이유는 없겠죠.

다음으로 본 시계는 ''화합'입니다.
초침이 0초를 가리키면 이불에 싸인 물아기가 등에 성화를 매달고 기어갑니다. 그리고 5초 지점이 지나면, 그보다 조금 큰 아이가 성화를 받고 기어갑니다. 이렇게 성화가 5초마다 전달되면서 세대와 세대가 이어지는 내용입니다.

'이 시계도 여러 가지 소재로 효과를 낼 수 있어. 인종이 번갈아 성화를 전달할 수도 있고, 동물과 사람, 옛날과 현재의 사람들이 성화를 들고 달려갈 수도 있지. 이것은 내가 본 60초 중 가장 크고 아름다운 60초 작품이야.'

쇼페인트가 감동을 받는 것은 매우 드문 장면입니다.


이밖에 다 표현할 수 없을 만큼 신기하고 재미있는 시계가 많이 있었습니다. 산고(産苦) 시계는 산모의 배가 점점 커지고 산모는 소리까지 지릅니다. 아마 못된 작가가 만들었나 봅니다. 그리고 앨범 시계에는 좋아하는 사진을 스캔해서 저장하면 시간이 바뀔 때마다 사진이 바뀝니다. 평소 앨범을 볼 기회가 없는 사람들이 자주 애용하며, 심하게 싸운 부부나 애인들이 자주 이용하는 시계입니다.  아름다웠던 시절을 회상하면서 계속 화를 낼 수 있는 사람이 있을까요? 그리고 60초라는 소재를 이용해서 60갑자 시계도 선을 보였습니다. 특히 이 시계는 고전문헌이나 역사를 전공한 사람들이 애용합니다. 이것은 시계라기보다는 차라리 참고서에 가깝습니다. 60초 동안 먼저 갑자를 보여주고, 다음에는 1분간 갑자에 대한 소개를 보여줍니다. 그리고 그 갑자 해에 있었던 일들을 화면으로 보여줍니다. 이 작품은 민족문화정진회의 학자들이 십 년간의 노고로 만들어진 작품으로, 예비고전학자들에게 선물로 많이 줍니다. 제가 알기로 이 시계는 적어도 1년 동안은 다른 정보를 제공하며, 지금도 계속 업데이트가 되고 있다고 합니다. 그리고 안에는 여러 가지 기능이 있어서, 선택해서 정보를 받을 수도 있습니다. 



이와 같은 시계들을 보면서 시계란 휴대폰 시계에 밀릴 정도로 불필요한 기계덩어리가 아니라, 우리에게 시간이라는 것을 가장 직접적으로 보여줄 수 있는 소재인 것 같습니다.  시계는 맨 처음 만들어졌을 때부터 지금까지 수백 년 동안 동일한 모델입니다. 간간히 외형만 바뀔 뿐 초침이 돌고, 분침이 도는 형태는 똑같습니다. 많은 사람들이 시간을 정의하면서 어떤 일의 기준이 되는 척도로 본 후로, 시계는 줄곧 보조수단의 역할만 해왔습니다. 시계 자체, 혹은 시간 자체에 대해서 성찰하는 기회를 좀처럼 얻을 수도 없고, 얻으려고도 하지 않았던 것 같습니다. 오죽하면 파스칼은 '어리석은 사람들은 지나간 과거를 그리고, 다가올 미래를 그리다가 정녕 실제적인 현재를 내팽개친다'고 한탄했을까요. 아무튼 좀 엉뚱한 구석이 있는 친구이지만, 쇼페인트와 교유하면서 굳어버린 제 생각들이 조금씩 금이 가고 있다는 것을 느낍니다. 다음에는 어떤 재미있는 것들을 보여줄지 벌써부터 궁금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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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5-10-30 03:48   URL
비밀 댓글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