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싯적 이야기는 처음에는 '유년 회상'이라고 구상했다가 당장 바꿨다. 유년은 내 머리가 돌아가기 전의 시간도 포함하기 때문이다.
나는 지금도 이십 년이나 된 그 당시의 순간순간을 좇는다. 그 때의 생각들은 대개 물음표로 소중히 보관돼 있기 때문에, 나와 소싯적의 이야기는 나름대로 가까운 거리에 있는 셈이다.
이 이야기에는 물론 어느 정도의 '가필'이 있을 것이지만, 그것은 '리얼리즘'에서 많이 벗어나지 않을 것이다. 경험이라고 꼭 '기억할 가치'가 있는 것은 아니기 때문이다.
돌아갈 수만 있다면, 나는 나의 소싯적을 좀더 근사하고 아름답게 꾸미고 싶다.
자꾸 연재를 올리면서 5회를 넘기지 못하는 내 모습이 안타깝기는 하지만, 사실은 전혀 안타깝지 않다. 나의 '지속 가능한' 연재 정신을 본다면 여러분도 나와 생각이 같을 것이다.
'정말 중요한 것은 작품을 시작하는 것이 아니라 작품을 끝내는 것이다.'
라는 보들레르의 말을 모르는 것은 아니나, 나는 아직 시작도 하지 않은 아마추어 아닌가.
아마추어 산문 정신과 연재 정신이 결합된 합체로보트의 발랄한 댄스를 보여주고 싶다.
1. 최초의 응원가
오늘 갑자기 '국민학교'(그 시절은 국민학교였음, 아마도 국민학교 마지막 세대일 듯) 2학년, 운동회 때마다 부르던 '응원가'가 생각났다. 그 전문은 다음과 같다.
보아라 이 넓은 광장에서 청군과 백군이 싸운다.
청군과 백군이 싸우며는 틀림없이 청군(백군)이 이긴다.
청군(백군)이 날쌘 두 주먹을 백군(청군)의 앞장선(?)*을 때렸다.
때렸다 때렸다 때렸다 때렸다 틀림없이 청군(백군)이 이긴다.
*앞장선
어휘에 대한 체계가 갖춰지지 못했던 그 시절. 나는 위 단어를 가지고 심히 고심을 하였다. 친구들이나 응원단장 모두 '앞장선'이라고 이야기하는 것이 확실해 보였기 때문이다. 언어에 대한 애정이 없어서일까. 나는 별 문제를 느끼지 않고 지금까지 '앞장선'으로 알고 있었던 것이다. '앞가슴'이나 '안면부'라는 말은 심의상 초등학생이 쓸 어휘는 아니지 않은가. 그리고 이 말을 쓰려면 '때렸다'가 아니라 '후려쳤다'가 되어야 마땅하다. 혹시 이 부분에 들어갔던 말이 무엇인지 아는 분은 속히 제보를 주기 바란다.
운동회는 기억나지 않지만, 응원가는 참 세세하게 기억이 난다. 특히 응원단장이 '삼삼칠 박수'('기차 박수'라고도 했다.) 동작을 크게 펼치는 모습은 나에게 충격이었다. 아마 '노래'와 '행위'가 결합돼 커다란 '울림'을 만들어내는 모습에 반했으리라. 그리고 모든 아이들을 압도하는 그의 동작은 격조있어 보이기까지 했다. 물론 그 나이에 '격조'란 걸 알 리가 없다.
나는 청군이고 내 친구는 백군이었다. 우리는 서로 멀지 않은 위치, 그러니까 바로 옆에서 서로의 응원가를 부르고 있었다. 특히 '청군(백군)'이 나오는 대목에서는 서로가 큰소리를 지르며 상대방의 음성을 무마시키려고 했다. 과열된 경쟁은 화를 부른다고, 각자 '청군'이니 '백군'이니를 빽빽 소리지르더니, 점점 화가 났고, 그 화는 서로를 향했다. 우리는 그 자리에서 잔디밭을 구르며 치고박고 싸웠다.
싸움의 원인은 단순하다. 나는 '청군'이 반드시 이긴다는 것이었고, 녀석은 '백군'이 반드시 이긴다는 것이었는데, 옛 문헌의 이야기처럼 '불사이군' 즉 두 해를 섬기지 않으며, 승자의 자리에 두 사람이 있을 수 없다는 싸움판의 법칙을 너무 잘 알고 있어서일까. 나는 녀석의 '백군'이라는 소리가 나의 '청군'이라는 소리보다 크게 들리는 것을 도저히 용납할 수 없었던 거다.
그래서 한치의 머뭇거림 없이, 나는 녀석의 '앞장선(?)'을 가격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