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발적 구독운동하면서 시민에게 외면당해 속상했던 날

언론 시민운동을 하면서 자긍심도 많이 느꼈지만, 현장에서 굴욕감 비스무리한 감정도 많이 느꼈습니다.
<시사IN>이 창간했을 때 기자들과 시사모 회원들과 함께 창간 소식을 알리고 자발적 구독운동을 이끌기 위해 홍보활동을 했습니다. 일종의 정기구독 운동이었죠. 돈을 모아 휴대폰액정클리닉과 서류철 등 기념품, 시사인 창간호보다 빠른 <시사인 독자편집판>을 1만부씩 만들어서 전국 20여 지역에 돌리면서 정기구독을 권유했습니다. 효과가 얼마나 있을지 미지수였지만, 판매팀장님이 엄청 즐거워하시더라구요. 자발적 구독운동 기간에 정기구독자가 많이 늘어서 일찍 자리를 잡을 수 있게 됐다고... 지금은 3만 독자를 바라보고 있고, 한겨레21을 위협할 정도의 수준이 되었다고 합니다. 정기구독운동은 '통하는 캠페인'이라는 것을 이때 확인했습니다.

하지만 난생 처음으로 광화문에서 팜플렛을 배포하는 일을 하면서 시민들의 외면을 받자 그것이 속상했던지 일주일 내내 앓았던 경험이 생각납니다.




▲ 시사저널 파업기자들이 언론사 파업사례로는 유일무이하게 새매체 <시사IN>을 창간했을 때 이들을 지원하는 시사모라는 모임의 이름으로 광화문과 전국 20개 가까운 지역에서 배포운동을 했습니다. 새벽같이 일어나 광화문 출근행렬을 대상으로 수 회에 걸쳐서 배포활동을 했습니다. "시사IN이 좋은 매체니까 정기구독해주세요"라는 것이 이 캠페인의 목적이었습니다.




▲ 천만블로거로 유명한 <독설닷컴> 고재열 기자의 저력은 오프라인에 있지 않을까요. 취재하기도 힘들었을 텐데, 아침 일찍 광화문에 나와서 배포활동을 함께 했습니다. 기자와 독자가 광화문에서 함께 배포활동을 했을 때 행복하더군요. 기자들은 독자들에게 너무 먼 당신처럼 보였지만 시사저널 사태와 시사IN 창간을 겪으면서 기자들과 독자들이 더 가까워진 것 같아서 기분이 좋았습니다. 이 자리를 빌려서  <독설닷컴>의 천만 블로거 등극을 축하합니다.



그도 그럴 것이 상업적으로 배포하는 것이 아니라 취지와 의미가 분명히 있는 캠페인인데 시민들이 내 마음을 몰라준다고 생각하니 섭섭하고 부아가 치밀더군요. 하지만 시민의 입장에서 보면 바쁜 발걸음을 잡아채는 것이기 때문에 반가울 리가 없겠죠. 그리고 캠페인의 취지를 강요할 필요도 없는 것이구요. 광화문 배포를 하면서 생각이 정리되자 시민이 외면해도 별로 상처받는 일은 없었습니다. 그 대신 힘 있게 전단지를 잡아쥘 때 손의 느낌에 희열을 느꼈습니다. 그리고 "아~ 시사저널 사태 알아요. 그 기자들이 새매체를 만들었군요" 하면서 반갑게 맞아줄 때는 하늘로 날아오른 것처럼 기뻤습니다. 그해는 언론운동하면서 새매체도 창간하고 보람있는 시간이었습니다.


난생 처음 '철거'라는 걸 경험해봤어요

언론운동을 한 지는 3년쯤 됩니다.
저의 언론관도 많이 변화하고 고민도 깊어졌습니다.
시사인을 창간하거나 조선, 중앙, 동아일보 광고불매운동을 할 때도 부끄러운 마음은 없었지만, 웬지 사람들의 마음에 다가가지 못하고 있다는 생각을 하게 됐어요.
마침 저와 비슷한 고민을 하고 있는 시민단체가 있어서 합류하게 되었습니다. 거대담론을 다투는 것이 아니라, 언론을 보급하고 지역의 소소한 목소리를 듣는 것을 중요하게 생각하는 <진실을 알리는 시민>이라는 단체에서 지역언론을 만들기 위해 신도시 <판교>로 들어갔습니다.

거기서 아이들이나 어른들을 만나면서 고민거리를 듣고 이를 뉴스로 만들어 보내기도 하고, 언론운동의 취지를 설명하기도 했습니다. 아이들과 가까이 다가가기 위해서 거금을 들여 솜사탕 기계를 구입해 많은 아이들의 사랑을 받았습니다. 동네 아이들의 이름을 기억하고, 동네 아이들도 솜사탕이 안 오는 날은 섭섭해서 따질 정도로 친해졌지요.
그런데 문제가 생겼습니다.


 


▲ 성남시에서 공무원들이 와서 솜사탕 기계를 철수하지 않으면 압수를 하고 벌금을 물리겠다고 했습니다. 다짜고짜 기계부터 치우라고 윽박을 지르는 까닭에 약간의 실랑이가 벌어지기도 했습니다. 공무원들에 따르면 우리들이 도로교통법을 어기고 인도와 자전거도로를 침해하기 때문에 위법이라고 했습니다.



공무원 아저씨들이 화난 표정으로 다가와 다짜고짜 솜사탕 기계를 치우고 철수하라고 지시했습니다. 저희는 사정을 알기 위해 이유를 여쭤봤지만 "치우라면 고분고분 말을 들어야지 왜 이렇게 말이 많으냐"며 강압적으로 말했습니다. 더 이상 이의제기를 하면 강제로 집행하고 벌금을 물리겠다고도 했습니다. 공무원들이 연배가 많아 보였는데, 한 분은 저희들 중 한 명에게 "당신은 말하는 태도부터 고치라"며 훈계를 하였습니다.

도로교통법을 어겼다고 하니 합법적이고 상식적인 것을 생명으로 하는 언론시민운동의 취지에 누가 되지 않기 위해서 눈물을 머금고 시설 일체를 자진 철거했습니다. 한 동료는 지금까지 태어나서 언론캠페인을 하면서 철거를 당해본 적은 처음이라며 속상해 했습니다.

언론운동을 하면서 현장에서 활동을 하다 보면 창피도 많이 당하고 속상할 때가 많이 있습니다. 그래도 우리가 좋은 취지로 다가가는 활동이기 때문에 참고 설득을 했습니다. 그런데 이번 성남시 공무원들 같은 경우에는 소명의 기회도 주지 않고 다짜고짜 치우라며 강압적으로 나왔습니다.
저는 철거를 하면서 그 들 중의 리더급인 분에게 '네잎클로버'를 건네며 "이것도 인연인데 행운의 네잎클로버를 드릴게요"라며 말을 건넸습니다. 그 공무원은 그제야 미안한지 부드럽게 이야기를 합니다. 반대쪽 도로에는 교회에서 부스를 차려 놓고 캠페인을 벌이고 있었습니다. 그들에게 <정기구독운동>을 설명하기란 쉽지 않았습니다. 시사IN, 창간 당시 자발적 구독운동을 했던 것은 매체가 뿌리를 내릴 수 있도록 시민들이 지갑을 열고 구독을 해주자는 취지였습니다. 판교에서 하는 캠페인도 일종의 정기구독 운동과 언론운동 전반을 말하는데, 공무원들은 특정 신문의 판촉 이상도 이하도 아니란 식으로 이해했습니다. 만약 인쇄물이나 플래카드 같은 것이 있었다면 좀더 근사해 보였을 텐데 아쉬웠습니다.

참으로 속상했던 것은 대화의 여지 없이 철거를 당했다는 점과, 다른 곳은 가만히 있는데 차별 대우를 받았다는 점입니다. 속으로는 "이런 취급까지 받아가면서 언론운동을 해야 할까"라는 생각이 들었지만, 대안을 생각해보기로 했습니다. 어쨌든 옳은 행동이라면 장애요인을 없애는 것이 가장 중요하기 때문입니다. 이날은 슬픈 하루였습니다.

공무원 님들께 부탁드리고 싶은 것은, 우리도 상식을 아는 사람들이기 때문에 차분하게 이야기를 해주고 가르쳐주십사 하는 점입니다. 죄인취급을 하지는 않으셨으면 합니다. 공익캠페인이든 판촉행위든 행동을 하는 사람들은 저마다 절박한 사정이 있기 마련인데 최소한 이 점을 사려해주셨으면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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드팀전 2009-05-06 09:16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누가 신고했나 보군요. 공무원들이 알아서 저 일을 할 만큼 능동적이지는 않을테니.행정집행과정에서 '공무원의 오바'는 지겹도록 익숙하지요. 그 양반은 쑥쓰러운 건 아는군요. 힘내세요. 앞으로도 이런 일들을 여러번 당하실텐데..그것을 대처하는 안팎의 방식도 함께 생각해야만하겠군요.

승주나무 2009-05-06 22:01   좋아요 0 | URL
네~ 그런 것 같아요.. 주변에서 부자신문 지국장들이 두리번거리더라구요. 현장에서는 생각지 못했던 일이 많아 벌어지네요... 여기서 이겨나가야 길이 보일 것 같아요^^
 

시사인 김은남 기자가 갑자기 전화왔더라구요.
제 블로그를 보고 피플 면에 넣고 싶대요~~

그래서 전화로 인터뷰를 했는데,
나중에 안희태 기자가 판교로 직접 사진을 찍으러 왔더라구요.
아이들에게 연출사진을 본의 아니게 강요하게 돼 미안한 생각이 드네요^^

홍보성 필이 나지만 세상에 완전무결한 깨끗함이 있나요...ㅎㅎㅎ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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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tella.K 2009-05-05 11:15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와우, 나름 유명인사가 되가네. 사인이라도 미리 받아 놔야하는 거 아냐?ㅋ

승주나무 2009-05-05 12:40   좋아요 0 | URL
사인본을 스캔해서 서재에 올려볼까요? ㅋㅋ

stella.K 2009-05-05 13:08   좋아요 0 | URL
쳇, 의미없음. 난 프린터기가 없거든.
만나서 해 주고, 그도 안 되면 우편으로 보내줘.ㅋㅋ

승주나무 2009-05-06 22:13   좋아요 0 | URL
유명해지고 해도 늦지 않으니 그때까지 기다리세요^^
 




▲ 블로그를 개설한 지 1년이 되었습니다. 500여 개의 글을 남겼고 방문자는 5월 3일 현재 1,378,133명을 기록했습니다. 하루에 3,700여명이 방문한 셈입니다. 그보다 더 의미 있는 것은 댓글과 트랙백입니다. 게시글당 4개 정도의 댓글이 달려 많은 토론이 이루어졌습니다. 그리고 글 2개 당 1개의 트랙백을 통해서 공동취재, 공동포스팅을 다채롭게 했습니다.


책 서평, 신문 스크랩이나 하던 소심한 블로거

2008년 4월 27일은 촛불이 군불을 떼기 시작한 날입니다. 주로 알라딘 서평쓰기경향신문 스크랩, 오마이뉴스 기사쓰기에 제한돼 있던 저는 제 목소리를 내야겠다는 생각을 하게 되었습니다. 알라딘 서평쓰기는 책에 대한 이야기, 그것도 서평이라는 재생산에 국한되며, 경향신문 스크랩은 저의 이야기가 아닙니다. 그리고 오마이뉴스 기사쓰기는 '기사'라는 일정한 틀에 맞게 써야 하는 제한조건이 있기 때문에 자유로운 글쓰기를 할 매체가 필요했던 차였습니다.

더군다나 촛불문화제를 취재하고 새벽까지 글을 정리해 올린 것이 다음날 오후까지 블로그 메인에 올라가는 바람에 순식간에 7만7천의 조회수를 기록했고, 댓글도 500여개나 받고 나서 어리둥절해졌습니다.

[여의도 촛불문화제 현장] 어른들이 많이 미안하구나

이것은 수년간 알라딘 서재를 방문한 사람보다 많은 숫자였고, 3년간 2만 개의 기사를 스크랩한 블로그의 방문자의 3분의 1에 가까운 숫자입니다. 이 폭발적인 블로그의 힘을 받고 저도 충격이 컸습니다. 나도 블로거로 나설 수 있겠다는 자신감을 갖게 해준 순간이기도 했습니다.

처음에는 죽을 많이 쒔습니다. 한 이틀 동안 자료 찾아가며 고생고생해서 올린 글에 추천은커녕 조회도 1건도 기록되지 않을 때의 좌절감을 한두 번도 아니고 열번도 넘게 맛본다면 무척 깨닫는 게 많을 겁니다. 그때는 여전히 블로고스피어의 특징과 블로거들과 소통하기를 제대로 이해하지 못했습니다. 이명박만 소통 못한다고 할 게 아니라, 나도 나의 고집과 지식의 틀에 빠져서 세상과 전혀 상관 없는 이야기를 하고 있구나 하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세상과 전혀 상관 없는 이야기라면 굳이 블로그라는 공적 공간에서 할 필요가 없다는 생각을 했습니다. 그래서 사람들에게 다가갈 수 있는 글을 고민하던 중 생각해낸 게 실생활의 글이었습니다. 내 주위를 살피며 소재거리를 찾아다녔고 사진기를 주머니에 들고 다니거나 아니면 휴대폰카메라로 포착을 하면서 블로그 글에 이미지를 담아갔습니다. 특히 티스토리 블로그는 이미지가 없으면 블로그모양이 예쁘게 나오지 않기 때문에 이미지 캡쳐는 필수입니다. 이런 노력이 효과가 있었습니다.


3개월 헛발질을 한 끝에 '블로거뉴스'를 조금 알게 되다


한 3개월간 헤매다가 드디어 특종을 하나 건졌습니다.

우리동네 '1000원샵'

실물경제가 최악으로 치닫고 물가상승률이 살인적으로 다가오던 7월 말 동네시장을 돌아다니면서 1,000원짜리 상품이 유난히 많이 있던 모습을 포착했고, 경제뉴스의 물가통계와 연결시켜 뉴스를 송고했습니다. 이 뉴스 하나로 5만6천의 조회를 기록했습니다. 이런 것이 바로 '블로거뉴스'라는 사실을 배웠습니다. 이 기사는 저에게 새로운 사실을 하나 가르쳐줬습니다. 블로거뉴스 중에서 현장성이 있고 사회적으로 유의미한 기사의 경우는 미디어다음에서 특종상을 통해 1~20만원의 활동비를 적립해준다는 사실이었습니다. 이 기사로 20만원의 부수입을 건졌습니다. 블로거뉴스로 3회의 특종상을 받았고 총 60만원의 수입이 생겼는데, 모두 현장성이 깊게 묻어나는 기사들이었습니다.


블로그 정체성, 블로그 주요 콘텐츠가 중요하다

저는 출판업에 종사했습니다. 그래서 책을 읽을 기회가 많았고 책 관련 글을 자주 썼습니다.
하지만 블로고스피어에서는 '책 관련글'이 좀처럼 인기가 없습니다. 다른 포스팅에 비해 책 관련 포스팅은 10분의 1정도로 조회수가 떨어집니다. 그래서 그런지 책 관련 글이 잘 안 올라오고, 출판관계자들도 블로그질을 잘 안 합니다.
나는 여기서 역발상 전략으로 갔습니다. 책 관련 포스팅을 지속적으로 생산하되 정직하게 '책 포스팅'으로 하지 않고 시사와 일상 등 블로거들이 좋아하는 주제와 결부시켜 글을 쓰기로 했습니다. 제 블로그 포스팅 중에서 최고 조회수를 자랑하는 포스팅은 책 관련 글입니다.

<서양이 그린 최초의 한국인>이라는 블로거뉴스 기사는 단번에 40만 조회수를 기록했습니다. 이 때는 블로그에 구글 애드센스를 깔았는데, 이날만 112달러(현재 원화가치로 144,480원)라는 광고수익을 냈습니다. 이 글과 <우리동네 '1000원샵'>은 공통점이 있습니다. 두 가지 이야기가 서로 연결되는 퓨전 포스팅이라는 점입니다. <우리동네 '1000원샵'>은 시장에서 찍은 1,000원짜리 상품과 물가상승률을 연결시켰고, <서양이 그린 최초의 한국인>은 책의 내용과 예전에 답사를 했던 사례를 연결시켜 썼습니다. 한 가지의 메시지는 단조롭고 재미가 떨어지지만 다른 이야기와 연결시켜 구성하면 전혀 새롭게 보입니다. 모든 글에 두 개 이상의 이야기를 연결시킬 필요는 없지만, 블로그 글을 구성할 때 이 기술은 익힐 필요가 있을 것입니다.

제가 책 이야기를 자주 쓰는 이유는 블로그를 통해서 좋은 책을 많이 알리고 싶은 욕구 때문입니다. 제가 정말로 세상에 알리고 싶은 책이 있었습니다. <부동산 계급사회>(후마니타스)라는 책은 '계급'이라는 개념을 너무 쉽고 실증적으로 알려주기 때문에 되도록 많은 사람이 읽었으면 하는 생각에 이와 관련한 포스팅을 한 10개는 쓴 것 같습니다. 그 중에서 2~3개가 1만이나 2만의 조회를 기록했고 판매에도 영향을 주었는지, 해당 출판사가 고맙다며 저자를 소개시켜줬고 식사도 대접받았습니다. 이 책의 저자 손낙구 선생은 그 후로 블로거로 전향해 부동산에 관한 좋은 글을 많이 써주고 계십니다.


<부동산 계급사회>의 손낙구 선생(오른쪽 아래)과 책에 예쁜 발가락 그림을 그려준 따님 손해인 양과 함께 후마니타스 출판사에서 이야기를 나누고 기념촬영을 했습니다. 이날 즐거운 시간을 보낼 수 있었던 것은 블로그 때문이었습니다.


촛불의 정신을 계승한 블로거가 되고 싶습니다.

제 블로그는 '촛불'과 관계가 깊습니다. 촛불이 낳았고, 촛불을 통해 자랐습니다.
블로그의 글 하나하나마다 '촛불'을 생각하지 않은 것이 없습니다.
단지 촛불이 옳다는 것을 떠나서 촛불이 주는 메시지를 저 나름의 방식으로 다양하게 해석하고, 때로는 책읽기를 통해, 때로는 현장취재를 통해 그 본체를 그리려는 욕구가 100만 블로그의 원동력이 되었다고 생각합니다.

블로그를 소통하는 블로그로 만들기 위해 저 나름대로 소재를 고민했고, 콘텐츠를 개발했습니다. 때로는 미친 사람처럼, 와이프와 길을 가다가 재미있는 장면을 발견하면 "저것은 1만 조회수 정도 되겠는데"하면서 일상을 블로그에 연결시켜 생각하는 버릇도 생겼습니다.

블로그는 공적인 성격과 사적인 성격이 혼재돼 있는 복잡한 특징을 가지고 있습니다. 1인미디어로서 제도언론에 못지 않는 영향력을 발휘하고 있으며 네티즌들도 틀에 박힌 신문기사보다는 정성스럽게 쓴 아마추어 블로거뉴스를 신뢰하는 경향이 있습니다. 기자로서의 책임감도 있고, 온라인 세계를 여행하는 히치하이커로서의 정체성도 있습니다. 답답한 것 같이 보이는 현실을 헤쳐나갈 열쇠는 '네트워크'에 있습니다. 가진 자들은 이 네트워크를 흐트러놓기 위해서 가진 애를 쓰겠지만, 블로그라는 창을 열어놓고 다른 창과 소통하면서 촛불이 밝혀 놓은 곳과 밝히지 못한 곳을 고민하면서 블로그질을 하는 것이 저의 정체성이라고 할 수 있겠습니다.

광고를 위한 블로그질, 자신의 소소한 일상을 기록하는 블로그질, 어떤 목적을 가진 블로그질이라도 상관 없습니다. 기왕 블로그를 했다는 것은 다른 사람에게 다가가기 위한 시도라고 할 수 있다면 다른 사람에게 다가갈 수 있는 나의 블로그질을 고민하면서 동시에 블로그가 의존하는 하나의 '정신'을 밑바탕으로 까는 것이 철학적으로 중요하다고 생각합니다. 저의 경우는 그것이 '촛불'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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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솜사탕을 먹고 나면 집에 가서 반드시 양치질을 해야 해요. 충치가 생기면 부모님들이 싫어하실 테니까요."

반신반의하면서 꺼내든 솜사탕이 말그대로 '대박'났습니다.
동판교와 서판교를 넘나들며 솜사탕 기계를 날랐는데, 솜사탕으로 아이들이 몰려들고 솜사탕 오는 시간을 귀신같이 알아맞혀 끊일 새가 없었습니다.
솜사탕을 말아주면서 해맑은 표정들을 찍다 보니 덩달아 즐거워지더군요. 아이들의 이름을 다 기억하지는 못하지만 아이들의 즐거워하는 모습을 함께 나눴으면 하는 마음으로 사진을 올려봅니다.

※ 사진은 <판교소식지 만드는 카페>에 오시면 더 많이 볼 수 있어요


판교의 꼬마 스타 채원이와 성원이


▲ 채원이와 성원이는 초등학교 1학년, 3학년 남매입니다. 학교 끝나면 매일같이 솜사탕 먹으러 출근(?)합니다. 워낙 표정이 밝고 장난꾸러기라 사진이 꽉 찬다는 느낌을 받습니다. 위 사진은 성원이가 솜사탕을 수염처럼 붙이며 장난하는 모습입니다.



▲ 동생 채원이(왼쪽)의 백만불짜리 웃음입니다. 둘 다 밝고 장난을 잘 쳐서 당황할 때가 있지만, 이 녀석들이 오면 즐거움이 두 배로 커지는 것 같습니다. 






▲ 오빠 성원이가 장난으로 동생의 솜사탕을 한움큼 뜯어먹어서 동생이 울고 있는 상황입니다. 그런데 맨 아래 있는 사진 속의 채원이가 웃고 있는 이유는? (울다가 웃었는지 표정이 아직도 상기돼 있네요) 채원이나 오빠의 솜사탕을 절반쯤 뚝딱 가져갔기 때문입니다. 동생에게 꼬집히지 않으려고 성원이가 하는 수 없이 솜사탕을 반쯤 뜯어줬습니다. 아니, 뜯기는 것을 용인해 줬습니다. 역시 오빠라서 현명한 것 같아요. 순간적으로 드라마가 만들어져서 놓치지 않고 찍었습니다.  



엄마, 아빠와 함께 먹으면 더 맛있어요

엄마, 아빠와 함께 먹는 솜사탕은 꿀맛이 두배에요. 판교에서 많은 엄마, 아빠를 보았습니다. 아이들이 솜사탕을 맛있게 먹는 것을 보는 부모님들의 표정에 웃음이 떠나지 않습니다. 판교에 편의시설이나 매점 같은 게 없어서 아이들에게 맛난 것을 사주고 싶어도 그럴 수 없는 아련한 마음이 전해오는 듯했습니다.


▲ 엄마 등에 업혀서 솜사탕을 먹었어요. 엄마는 솜사탕을 먹지 않아도 달콤하다는 표정이네요.


▲ 솜사탕을 맛나게 먹으면서도 아빠 손을 놓지 않습니다. 얼굴보다 큰 솜사탕이 맛있나 봅니다.  



▲ 엄마가 돌아보며 한컷 찍어 주십니다. 따님은 사진을 찍든 말든 솜사탕 먹기에 정신이 없습니다. 



▲ 엄마와 아빠와 아이가 한자리에 모였어요. 감각 있는 엄마는 선글라스를 쓰고 손을 들어 화답하고 있네요. 아빠는 가면서 먹자고 성화이지만 아이들이 한꺼번에 두 가지 일을 할 수 있어야 말이죠.



친구들이랑 솜사탕 먹고 직접 만들어도 봤어요

맛있는 것도 친구들이랑 먹으면 더 맛있습니다. 우리 솜사탕 가게에도 주요 고객들이 있습니다. 초등학생이 가장 많고, 중학생과 고등학생도 간간히 있습니다. 처음 왔던 친구들은 대체로 두어 번 더 오게 됩니다. 와서 솜사탕 마는 법도 돕고, 신문에 스탬프 찍는 일도 돕습니다.




▲ 선평중 학생들이 솜사탕을 먹으러 왔습니다. 솜사탕 앞에서는 초중고, 어른 가릴 것 없이 어린애가 되는가 봅니다.




▲ 그래도 중학생들은 의젓하게 일을 돕기도 합니다. 솜사탕을 왜 만들게 되었는지 이야기를 듣고 나서 친구들이 일을 돕겠다며 스탬프를 들고 도장을 찍습니다.  


▲ 도장의 내용입니다. 시민들이 자발적으로 모아준 성금으로 <진실을 알리는 시민>(줄여서 '진알시')라는 시민단체에서 경향신문을 받아다 판교 시민들에게 배포를 하면서 캠페인을 벌이고 있습니다. 혹시 판교에 사시는 분이나 판교를 지나시는 분들은 많은 관심 바랍니다.



▲ 무엇을 보고 있는지 어른으로서는 표현할 수 없는 '웃음'을 보여줍니다. 저도 이럴 때가 있었죠^^




▲ 솜사탕을 받아든 기념으로 기념촬영을 했습니다. 귀엽고 앙증맞은 표정을 잘도 내네요.




▲ 솜사탕을 갓 받아든 친구가 다른 친구에게 자랑을 하고 있네요. 다른 친구는 다 먹어서 작아졌는데, 그래도 자기 것이 크다고 자랑합니다.




▲ 솜사탕을 먹으려면 "줄을 서시오~" 사진기를 들이대니까 아이들이 질서를 지키는 모션을 취해 줍니다. 하지만 실제 현장에서는 솜사탕 기계 안으로 들어가려는 친구, 손을 집어넣거나 젓가락을 집어넣는 친구, 솜사탕을 말다가 삐져나온 부분을 냉큼 집어가는 친구, 자기가 먼저 왔다며 고성을 지르는 친구들이 있습니다. 친구들에게 공평하게 솜사탕을 주는 일은 쉽지 않습니다. 그래도 친구들은 신사적이에요. 만6세 이하 어린이가 오면 아무 말 없이 그 동생에게 차례를 양보합니다.



"가장 많이 배우는 것은 제자가 아니라 바로 선생님이다"라는 말을 좋아합니다. 아이들은 달콤한 솜사탕을 하나 가져갈 뿐이지만, 솜사탕을 만드는 사람들은 많은 것을 배웁니다. 솜사탕을 기다리는 아이들과 나누는 대화 한마디에서도 배우고, 서로 나누는 대화에서도 많은 것을 배웁니다. 그리고 복잡한 세상사에 찌들어 있는 어른들에게 솜사탕 하나에 해맑게 웃을 수 있다는 것을 새삼 가르쳐 줍니다.

"얘들아, 솜사탕 맛있게 먹어줘서 고맙다"

촬영에 협조해주신 동판교, 서판교 어린이들과 엄마, 아빠께 감사드립니다.


※ 앞으로 <판교뉴스>라는 타이틀로 쓰는 기사에는 <진알시> 캠페인 배너를 달기로 했습니다. 광고이미지가 보기 부담스러우시더라도 양해해주셨으면 좋겠습니다.

 



여러분의 정성으로  세상을 변화 시킬수 있습니다!

여러분들이 십시일반 동참해 주신다면 태산처럼 큰힘이 되어 세상을 변화 시킬것 입니다

바로당신이 우리의 희망입니다

http://www.jinalsi.net

판교소식지만들기 카페 http://cafe.daum.net/khpankyo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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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신경민 앵커 등이 퇴진하고 난 MBC 뉴스데스크는 <뉴스데스크>라는 간판만 빼고 모든 것이 바뀌었다.


권순표 앵커 동료평 "사람 좋은 저널리스트"

오늘 MBC 취재를 하다가 우연히 권순표 앵커에 대한 이야기를 듣게 되었다.

"권순표 선배는 기자들 중에서도 중진급으로 위아래의 연결고리 역할을 잘 할 것이다. 특히 정파적으로 진보도 아니고 보수도 아닌 인사다. 그리고 사람좋은 인간적인 저널리스트다"

나도 시사매거진 2580에서 권순표 기자가 명사들을 인터뷰할 때 인간적인 면모를 확인했다. 하지만 주의해야 할 것은 <뉴스데스크>는 <2580>이 아니라는 것이다. MBC 뉴스데스크의 메인앵커 자리에 '사람 좋은 저널리스트'가 발탁된 것은 저널리즘적인 판단이라기보다는 非 저널리즘적인 판단으로 보인다. 더군다나 이명박 정부의 언론탄압에 대해서 상식을 가진 저널리스트, 혹은 언론사라면 당연히 감시의 눈을 뜨고 취재와 보도를 해서 정부와 불편한 관계가 되는 것이 불가피할 텐데, 사람 좋은 저널리스트를 앵커로 기용한 것은 정부와 '편안한 관계'를 가지고 가겠다는 뜻으로 해석될 수 있다.

동료들이 평가하는 신경민 앵커는 이에 비해서 '원칙을 중시하는 보수 성향의 언론인'(독설닷컴)이다. 독설닷컴은 최문순 의원의 평을 곁들였는데, “신경민 선배는 노조 활동을 며칠 밖에 하지 않았다. 진보성향 언론인이 아니라 원칙을 지키는 사람이다.”고 최 의원은 말했다. 후배들에게 인간적으로 좋은 선배는 당연히 권순표 앵커이겠지만, 저널리스트로서 호감이 가고 "까칠한 청취자"에게 애착이 가는 앵커는 누구일까.

그렇다고 권순표 앵커를 탓하기는 어렵다. 권순표 앵커는 수십 대 일의 오디션을 뚫고 당당히 합격한 앵커이므로 축하해야 마땅하다. 문제는 이런 오디션을 통해서 이미 차기 앵커의 언행과 보도방침을 규정한 데 있다. 신경민 앵커처럼 '짬밥'이 있다면 데스크에서도 뭐라 못하겠지만, 권순표 앵커처럼 '중간고리'의 인사라면 뉴스데스크의 메인 앵커는 데스크에 휘둘릴 수밖에 없다. 그렇게 되면 '뉴스데스크'에서 '데스크'라는 말을 붙일 수 없이 '9시 뉴스'가 되어 버린다. (<9시 뉴스>는 KBS 뉴스프로그램의 이름이다)


오늘도 클로징된 클로징 멘트, MBC 노조는 뭐했나

오늘 MBC 뉴스데스크 이틀째다. 크고 작은 뉴스가 많았고, 기자들이 취재한 내용이 민감한 사안도 많이 보도가 되었다. 하지만 클로징 멘트는 사라졌다. 뉴스데스크의 한켠이 날아간 것 같은 아픔이 느껴진다. 뉴스데스크의 데스크는 기자들의 보도 자체를 압박하지는 않지만, 메인 앵커의 활동공간을 거의 없애 놓았다. 

MBC의 기자들은 신경민 앵커의 하차를 막기 위해 투쟁하면서 1%라도 메인 앵커의 재량권에 대해 할애했더라면 새로운 뉴스데스크가 이렇게 데스크에 휘둘리는 일은 없었을 것이다. 임원들이 새 앵커 오디션을 할 때 MBC 노조가 역할을 할 수는 없었을까. 결국 뉴스데스크에서 비판기능이 사라진 것은, MBC의 비판기능, 더 나아가 MBC 노조의 비판기능도 취약해졌다는 것을 매일 밤 9시마다 보여주지 않겠는가.

결국 신경민 앵커도 잃었고, 뉴스데스크의 미덕들도 사라져 버렸다. 오죽했으면 독설닷컴 "신경민 앵커의 클로징멘트가 뉴스에서 사라지고, MBC뉴스의 영혼도 사라졌다."고 말할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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