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코끼리를 쏘다>보다 충격적이었던 건 사형수였다. 버마 시절의 경찰 공무원 조지 오웰은 천천히 음미해야할 장면들이 참 많다

교도관들이 그의 어깨를 죄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그는 길 위의 조그만 웅덩이를 피하기 위해 발걸음을 가볍게 옆으로 옮겼다.
곧 사형될 사형수의 이런 행동은 이상했지만, 그 순간까지 나는 건강하고 의식 있는 한 인간을 파괴하는 것이 무엇을 의미하는지 깨닫지 못했다. 그 사형수가 웅덩이를 피하기 위해 발걸음을 딴 데로 옮기는 것을 보았을 때, 나는 신비감, 다시 말해 생명이 한창 절정에 달했을 때 그 생명을 앗아가는 말할 수 없는 부당함을 보았다. 이 사람은 죽어가고 있는 것이 아니라 우리처럼 살아 있는 것이다. 육체의 모든 기관은 살아 움직이고 있다. 창자는 음식물을 소화해 내고, 피부는 스스로를 재생시키고, 발톱은 자라고, 세포도 제 역할을 다하고 있다. 모든 것이 이 냉혹한 어리석음 속에서도 악착같이 작용하고 있다. 그가 교수대 발판에 세워지고 사형이 집행될 10분의 1초의 그 순간에도 그의 발톱은 여전히 자랄 것이다. 그의 두 눈은 누런 자갈과 회색 담을 응시하고 있으며, 그의 뇌는 여전히 기억하고 예측하고 추리한다. 비켜간 웅덩이에 대해서까지 생각하고 있다. 그와 우리는 함께 걷고 똑같은 세상을 보고 듣고 느끼고 이해하는 일행이었다. 그런데 2분 후 순식간에 우리들 중 한 명이 가버릴 것이다. 한 정신이 줄어들면 그만큼 한 세상이 좁아진다. - P2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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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등학교 때 내 친구의 엄마가 열아홉에 자신을 낳았다고 했을 때 무조건 거짓말이라고 생각했다. 그 애 생각이 났다. 사람이 처해진 조건은 사람마다 참 다르다. 그 차이가 일정해야 하는데 너무 극단적이기에 사회마저 극단적으로 가는 것 같다

아버지가 돌아가셨던 그해 나는 다섯 살, 동생은 세 살이었다. 엄마는 고작 스물일곱 살이었다. 나중에 내가 스물일곱이 되었을 때 엄마가 얼마나 어처구니없는 상황에 놓여 있었는지 그제야 실감했다 - P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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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설가를 바라보는 인식이 달라졌다. 르네 지라르로 인해서. 소설을 쓸 때도 큰 영향을 미칠 것 같다

소설가의 근본적 관심은 인물들의 창조에 있는 것이 아니라 형이상학적 욕망의 폭로에 있다 - P23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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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tella.K 2023-03-21 15:53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이책 읽었구나.
난 오래 전에 보관함에만 담아두고 있는데
왠지 어려울 것 같더라고. 읽을만한가?
한 사람 정도만 빼고 평점은 다 좋던데...

승주나무 2023-03-21 21:12   좋아요 1 | URL
돈키호테, 적과 흑, 악령, 잃어버린 시간을 찾아서.. 이런 소설들을 읽었다면 읽어볼 만해요. 주로 이 작품들 비평을 토대로 독특한 이론을 전개하더라고요
 

공자가 평생 비주류 반체제 인사로 남았다는 것이 만인의 스승이 된 가장 큰 원인이 아닐까?

체제의 이론이 된 유교도 출발점에서는 역시 반체제 이론이었다. 공자의 행동이 이에 대해 잘 보여주고 있다. 그러나 반체제 이론은 그것이 목적한 사회가 실현되면, 곧바로 체제 이론으로 전환한다 - P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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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설의 주인공이나 인물들이 실수하는 게 재밌다. 공녀로 끌려가지 않기 위해 남장한 것을 잊어버리고 소녀에게 다가가 질문하자 소녀가 남자인 줄 알고 몹시 불편해하는 장면

이슬은 내 눈을 피하고는 애원하는 눈으로 내 동생을 쳐다보았다. 불편한 기색이 역력했다. 빨갛게 달아오른 뺨이 횃불 때문에 더 붉게 보였다. 그 모습을 보고서야 내 변장을 깨달았다. 지금 나는 양반 청년이었다. 안전하게 여행하려고 한 변장이 이슬과 대화할 때는 오히려 장애물로 작용했다. 내가 몇 걸음 뒤로물러나자 이슬이 어깨의 긴장을 풀고 겨우 대답했다. - P5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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