거꾸로 가는 시내버스
안건모 지음 / 보리 / 2006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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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동자들은 대체로 억압받는다. 투쟁을 하는 것도 항변을 하는 것도 그들에게는 허용되지 않을 때가 많다. 때문에 대다수의 노동자들은 말 한마디 못하고 억눌린 채 살아가기 마련이다. 고용주들은 비록 수개월째 월급을 밀리더라도 떵떵거리며 살아간다. 이러한 모순된 관계는 자본주의이기 때문에 당연시된다. 체불 임금 회사를 ‘채무자’에 비유하는 것은 적절하지 않다. 그러면 서민들을 갉아먹고 사는 사채회사들은 ‘채권자’라는 말인가? 여기에는 하나의 비밀이 숨어 있다. 바로 ‘힘의 논리’이다. 빚을 졌건 빚을 주었건 간에 목소리를 낼 수 있는 사람은 힘이 있는 자이다. 대한민국 최대 경제권력인 삼성이 자동차 사업에 실패해 수조원의 빚을 지게 되었지만 채권자에게 당당한 것은 바로 힘이 있기 때문이다.
사마천은 사기에서 “대체로 일반 백성들은 상대방의 재산이 자기보다 열 배 많으면 몸을 낮추고, 백 배 많으면 두려워하며, 천 배 많으면 그의 일을 하고, 만 배 많으면 그의 하인이 된다.”(화식열전)고 하여 자본의 본질을 꿰뚫었다.

이처럼 대한민국에서 노동자의 권리는 요원한 말이다. 당연히 받아야 할 권리를 누리는 사람, 바로 이 책의 저자인 안건모 씨가 매우 특이하게 보이는 것은 바로 그 때문이다. 저자는 순수하게 자신에게 부여된 권리를 찾은 것이지만, 그는 동시에 노동자를 대표하기도 한다. 그의 거침없는 활동을 바라보고 있으면, 노동자가 자신의 권리를 찾지 못하는 것은 무지의 문제도 아니고 약한 힘의 문제도 아니다. 바로 의지의 문제이다. 정확히 말해서 고용주들은 노동자들의 약한 의지와 단결하지 못하는 마음을 먹고 산다. 노동자가 한마음으로 저항하면 커다란 목소리가 생기지만, 슬슬 고개를 숙이며 자신의 이익을 찾기 시작하면 영원히 고용주의 폭압에서 벗어나지 못한다는 것을 저자는 몸소 증명하고 있다.

『거꾸로 가는 시내버스』는 일하는 사람이 현장의 생생한 목소리를 거칠게 담아낸 작품이다. 그 안에는 일상에서 만나는 사람들과 일상에서 겪는 폭력이 사실적으로 펼쳐진다. 때로는 낯 뜨거울 정도로 거친 용어나 육두문자가 튀어 올라 당혹스럽게 만들기도 하지만, 그만큼 버스운전사라는 직업이 가지고 있는 삶의 무게와 처절한 상황을 더욱 잘 보여주고 있다. 이 책은 우리가 매일같이 마주하면서도 외면했던 사소한 문제들에서부터 사회의 구조적인 문제까지 다양한 궤적을 포함하고 있다.
우리는 살아가면서 수많은 대립과 투쟁을 펼친다. 이 책의 저자만 해도 삶 자체가 투쟁의 연속이다. 더욱이 그것이 젊은 날의 치기가 아니라 정당한 권리를 향한 쟁취라면 그들에게 더욱 힘을 주고 연대를 해야 할 의무가 우리에게 있을 것이다. 대중교통 파업 때문에 버스가 늦게 온다거나 다른 교통수단으로 갈아타야 하는 것에 대한 불만만 잔뜩 늘어놓기 전에 가공할 만한 불합리에 대해서 한번이라도 따져보면 어떨까 해서 하는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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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tella.K 2007-06-15 10:33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앗, 이 책 읽었구나. 저자가 글을 너무 잘 쓰지 않니?^^

승주나무 2007-06-15 10:40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ㅋㅋ 그래요. 그리고 징계위원회에서 법리논쟁을 벌이는 장면은 너무 엄청나더군요^^

비로그인 2009-07-02 13:48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이 책을 쓴 안건모입니다. 뒤늦게 리뷰를 쓴 분들에게 인사를 드리고 있습니다. 제 책을 좋게 평가해 주셔서 고맙습니다. 이 글을 보니 그때 징계위원회에서 싸우던 생각이 생생하네요. 막 몰아부칠 때는 신이 났지요.
저는 지금은 월간 작은책 이라는 진보 월간지를 발행하고 있습니다. 노동운동에서 언론 운동, 문화운동으로 바꾼 셈이지요. 노동자들 소식을 전하는 책입니다. 사이트에도 들어 오셔서 구경하시고 구독 신청해 주시면 고맙겠습니다.
www.sbook.co.kr
02-323-5391
 
시맨틱 웹 - 웹 2.0시대의 기회
김중태 지음 / 디지털미디어리서치 / 2006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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절판


웹2.0 기반의 사이트를 만들려고 했는데, 신문이나 사이트를 뒤져봐도 말만 무성할 뿐 실체가 없다.
꼬리를 잡고 잡아 만난 사람이 바로 '김중태'라는 사람인데, 그가 웹2.0에 관한 책을 남겼다.

나는 새로운 패러다임에 대해서 관심이 많다. 그래서 '과학혁명의 구조'라는 책도 좋아하는데, 대학 시절에는 '사이버문학의 도전'이라는 책을 읽고 변화되는 문학의 형식에 대해서 들뜬 마음으로 찾아본 기억이 있다. 하지만 그 책의 저자는 토마스 쿤의 말만 무수히 인용해 놓고, 분명한 흔적을 남기지 않았다.

사실, 문학 앞에 '사이버'라는 수식어는 사치인 것 같다. 저마다 '문학'에 자신의 관점을 덧입히지만, 문학은 문학일 뿐이다.

이 책을 읽으면서 IMF와 FTA를 생각했다. 공장의 노동자들과 농민들이 싸우고 일궈 놓은 터전을 자본은 얼마나 쉽게 빼내갔던가. 우리의 웹 기반도 마찬가지다. 아무리 초고속 인터넷 가입률이 세계 최고이고, 와이브로니 퓨전메모리니 해도 웹 기반에서 뛰어놀 수 있는 신명나는 판을 만들지 않으면 시장을 통째로 빼앗길 수밖에 없다. 김중태라느 사람의 다른 글에 보면 '구글'이 왜 우리나라에서 힘을 쓰지 못하는지 잘 알 수 있다. 네이버나 다음이 구글의 로봇을 철저히 막고 있기 때문이다. 우리나라 대표 포털은 단지 자물쇠만 걸어 놓은 것을 가지고 '경쟁력'이니 설치고 있으니 통탄할 만한 일이 아닐 수 없다. 옛날부터 우리나라는 자기 스스로를 한정하려는 이상한 내력을 가지고 있는데, 국내 시장을 석권하고 나서는 새로운 강자가 나타나 목에 칼을 들이댈 때까지 정신을 못 차리는 경향이 있다.

최근 일주일간(2007.5.25 ~ 2007.5.31), 검색엔진을 통해 내 다음 블로그를 다녀간 방문자는 총 992명인데, 네이버가 605명, 다음이 330명, 엠파스가 55명, 기타가 2명인데, 야후와 구글은 단 1명도 다녀가지 않았다. 포털에서 접근을 막았기 때문이다.

'무한공유'라는 말은 수년 전부터 내 머리속에 각인된 화두이다. 이것은 '오늘날 천재가 태어나지 않는 이유'와도 관계가 있다고 생각하는데, 세상은 점점 복잡해지고 지식은 점점 많아지기 때문에 과거에 비해서 지식의 쓰레기들이 많아져서 천재가 되기도 어려울 뿐만 아니라, 설령 천재가 나타났다고 해서 그를 알아보기도 어렵다. 요즘 세상에 천재를 알아볼 수 있는 사람이 얼마나 되겠는가.
하지만 과거의 모든 정보는 '현재'의 문제에 소용이 되어야 한다. 과거의 정보는 방대하여 어떤 정보가 어디에 소용이 되는지 알기 어려울 뿐만 아니라, 우리는 정보의 쓰레기와도 엄청난 전쟁을 치러야 한다. 만약 정보의 쓰레기를 방치한다면 쓰레기에 노출되는 시간만큼 낭비하게 될 것이다.
그래서 내가 맺은 결론은 '우리들의 DB'를 만드는 작업이다. 파스칼은 말했다. '나의 DB란 없다. 다만 우리들의 DB가 있을 뿐이다'라고* 새로운 사이트에 대한 원칙은 다음과 같다. 이것은 철저히 '나'에 대한 원칙이다.

* 원래의 말은 이렇다. "우리는 '나의 책'이라고 말할 수 없다. 다만 '우리의 책'이라고 말할 수 있을 뿐이다. 내가 썼다는 그 책도 역시 누군가의 책에 나와 있는 것이기 때문이다. (팡세)


1. 내가 그 동안 수집하고 때로는 만들기도 했던 자료를 재분류해서 '정보더미'로 만들고, 이를 공유한다. 우선 신문여행이라는 블로그에 담겨 있는 시사자료 13,000개 가량을 주제별로 세분화해서 재배열한다. 만약 누군가 한 주제에 대한 게시글을 클릭한다면 그와 연결된 다양한 자료를 연결해서 볼 수 있도록 정보더미를 만들고, 다른 사람들도 이 '정보더미'에 참여할 수 있게 권유한다.

2. 공유를 위해서는 게시물의 값을 정확하게 알고 있어야 하며, 특정 게시물이 상위 주제의 어느 부분에 위치하고 있는지 파악해야 한다.

3. 웹 엔트로피(정보 쓰레기)를 줄이기 위해서는 순열식 정보가 아니라 연동식 배치가 필요하므로 필연적으로 거미줄 구조를 가지게 된다. 이를 인드라망(indra network)라고 한다. 즉 연동은 연동값에 따라 위치하기 때문에 특정 주제에 대한 콘텐츠를 찾기가 훨씬 수월해지며, 검색으로 웹 페이지를 지루하게 클릭하는 것보다는 정보에 대한 접근성을 높일 수 있다.

4. 독서행위에서도 태그를 붙여 정보의 값을 매긴다. 이 태그들을 '타당한 위치의 원칙'에 따라 웹의 DB에 축적하고 다른 정보와 연동하여 유기적인 DB화를 실천한다.

5. 유용한 정보를 보았을 때 접수할 수 있는 창구를 만들고, 이를 적절히 배열함은 물론 스스로 배열할 수 있도록 가이드를 마련한다.


김중태의 시맨틱 웹에서 배운 것이 하나 있다. 나는 이제까지 '콘텐츠'를 생산하려고만 했지 그것을 유용하게 구성하려는 데에는 별 관심이 없었던 것 같다. 하지만 구글이나 국내의 포털들이 새로운 콘텐츠를 만들어서 돈을 벌거나 성장한 것은 아니다. 김중태 씨는 주요 신문사의 기사를 구미에 맞게 재배열하는 것만으로도 하나의 회사가 만들어질 수 있다고 말하고 있다.

태그화에 대한 준비는 2003년부터 했던 것 같다. 단지 책에 밑줄을 긋는 것이었다. 내 친구들 중에서도 책을 좋아하는 녀석들이 있는데, 그 친구들이 읽는 책을 나는 평생 읽지 못하고 죽을 수도 있다. 하지만 우리는 책의 전문을 확인하지 않고도 요지를 뽑아낼 수 있다. 주요 부분에 대한 초록이나 리뷰를 가지고도 유용한 정보생활을 할 수 있는데, 전문가들은 정보의 엄밀성만을 너무 강요해 오지 않았나 하는 생각이 든다.



<태그들1, 교과서, 녹색평론, 장자, 남한산성 등 접하는 모든 장르에 태그를 붙였다. 물론 설정을 위해서 이것저것 붙여놨지만, 개인적으로 독서에 대한 편식은 심한 편이다>


<태그들2, 이 책 '시맨틱 웹'의 태그들이다. 책 1권에 대충 30개 정도의 태그가 붙는다.>



<태그들3, 문구점에 가면 태그용 포스트?堧? 파는데, 흰면에는 쪽수를 쓰고, 드러난 면에는 키워드를 쓴다. 쪽수를 쓰는 이유는 나중에 떼졌을 때 다시 붙이기 위해서다. 본문에는 연필로 범위를 표시하고 밑줄을 치기도 한다. 연필을 쓰는 이유는 책에 대한 최소한의 예의이다. 좀더 나쁘게 말한다면 헌책방에 책을 팔 때 형광펜이 쳐져 있으면 값이 좀 떨어진다고나 할까>


목적 없이 붙여왔던 태그가 이제는 분명한 목적이 생긴 만큼, 태그의 체계를 어떻게 할 것인가, 태그의 위치를 어떻게 정할 것인가, 노출은 어떻게 할 것인가, 본문은 어떻게 활용할 것인가, 요약문을 따로 만들 것인가 등 구체적인 문제에 대해서 고민을 해야 한다. 김태중 씨의 책에서도 공용 태그니 스마트 태그니 많은 용어를 쓰는 것을 보면, 태그가 중요하긴 중요한 모양이다.
나도 사람인지라 이 세상의 정보에 태그를 붙여, 크고 근사한 정보더미를 만들고 싶은 욕구가 왜 없겠냐마는 나와 내 주변의 정보들 먼저 추스리려 한다. 만약 내가 만들어낸 정보가 근사하다면 누군가는 동참하고 싶어질 것이고, 이렇게 하나 둘 모이다 보면 강력한 정보의 지도가 만들어지지 않을까 몰래 생각할 뿐이다.

물론 프로그래머와 이 일을 함께 할 예정인데, 시간이 오래 걸리는 일이라고 한다. 정 안 되면 '링크'를 다닥다닥 붙여서라도 모델을 한번 만들어봐야겠다. 솔직히 나도 그 '정보더미'가 무척이나 필요하기 때문이다. 요즘 이 생각에 빠져, 밤에도 잠이 안 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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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쾌한 딜레마 여행 - 상상력에 불을 지피는 사고 실험 100
줄리언 바지니 지음, 정지인 옮김 / 한겨레출판 / 2007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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딜레마. 상상만 해도 소름이 끼친다. 잘 해야 본전이고, 못하면 최악인 상황. 갑자기 쓰러진 친구를 업고 병원에 가면 수업불참으로 선생님께 혼이 날 테고, 교실에 갔다가 병원에 가면 친구의 증상이 더욱 악화될 수 있는 상황. 누구나 이런 상황을 피하고 싶다. 하지만 피할 수 없는 선택을 해야 하는 경우에는 어떤 것을 선택해야 할까?
딜레마에 대한 예행연습을 해보는 건 어떨까. 사서 딜레마의 상황에 빠져보는 것이다. 잘만 연습하면 실제상황이 닥쳤을 때 후회없는 최선의 선택을 하거나, 우려했던 최악의 상황을 피할 수 있을지도 모른다. 『논어』에서도 ‘멀리 사고하지 않으면 가까운 근심이 닥친다’(人無遠慮, 必有近憂)고 하지 않았나. 내가 먼저 선제공격을 하는 거다. 공격은 최선의 수비니까.

『유쾌한 딜레마 여행』은 무려 100가지 딜레마를 제시한다. 그 중에서는 관념적이고 형이상학적인 것도 있지만 현대사회에서 우리가 만나기 쉬운 상황들이 제시돼 있다. 아킬레우스와 거북이의 경주부터 영화 메트릭스에 이르기까지 흥미 있는 주제들을 실제 사례와 상황을 만들어 간략하게 제시하고 그와 관련된 책이나 이론들을 표시해 놓았다. 그 다음 저자의 간략한 설명과 내용에 대한 검토와 분석이 뒤따른다.

사고실험이라는 것은 실험도구를 직접 사용하지 않고, 머릿속에서 생각으로 진행하는 실험을 말한다. 실험에 필요한 장치와 조건을 단순하게 가정한 후 이론을 바탕으로 일어날 현상을 예측한다. 실제로 만들 수 없는 장치나 조건을 가지고 실험할 수 있다. 그야말로 상상력의 나래를 펼쳐보는 것이다.
중요한 것은 ‘상황’이다. 우리가 철학책을 읽기 힘든 이유는 ‘이론’이 긴 분량으로 소개돼 있기 때문이다. 그 이론이 우리와 어떤 관계가 있는지 알려주지 않으니 우리로서는 중요성을 느낄 수 없다. 하지만 가끔 철학책에서 일상의 예시를 들어 설명해 준다면 관심을 가지고 보게 된다. 상황이란 그런 것이다. 상황에 대한 이야기 자체가 흥미로울 뿐 아니라 그 안에 이야기하고자 하는 심오한 주제가 담겨 있다. 뿐만 아니라 말로는 설명할 수 없는 오묘한 진리까지 포함되기도 한다. 우리가 『장자』라는 책을 오래도록 사랑하는 이유이기도 하다.

이 책은 ‘논술’의 주요 특징들을 잘 보여주고 있기 때문에 논술학습을 위해서도 유익하다. 논술은 어떠한 현상에 대해서 추상적 분석을 시도하고 그 안에서 ‘의미’를 유추하는 작업이다. 제시문에서 간단한 상황이 펼쳐지거나 일상의 사례가 소개되지만 그것이 무엇을 의미하는지는 자신의 사고력으로 파악해야 한다. 이 책은 100가지 상황에 대해 알기 쉽게 분석하고 있기 때문에 저자의 분석을 따라가면서 함께 배우거나 저자의 설명이 마음에 들지 않는다면 자신이 새로운 해석을 내려보는 것도 좋을 것이다. 뿐만 아니라 각 테마의 말미에 유사한 4가지의 사례를 제시하고 있기 때문에 비교해서 생각해본다면 더욱 깊이 있는 사고까지 할 수 있을 것이다. 짧은 시간에 100개의 딜레마를 정복하겠다는 욕심보다는 시간을 두면서 찬찬히 곱씹어보는 것이 이 책을 활용하는 방법이다. 왜냐하면 딜레마는 좀처럼 해결되기 어렵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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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양 고전 강의 - 통합논술 세대를 위한
손병목 지음 / 한겨레출판 / 2006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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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근 동양고전이 지속적으로 소개되면서 동양고전에 대한 관심이 많아졌다. 게다가 대입 논술문제에서 동양고전이 차지하는 비중도 날로 늘고 있기 때문에 논술공부를 위해서라도 동양고전에 대한 절실한 필요도 늘어가고 있다. 하지만 선뜻 고전을 잡고 읽을 수 없는 이유는, 원전과의 ‘간극’ 때문이다. 시대가 다르기 때문에 사용하는 언어나 사고방식이 현대와는 크게 다른 것이 동양고전을 어렵게 만든다. 그보다 근본적인 문제는 동양고전이 가지고 있는 심오한 철학에 있다. 반복적으로 읽고 그 의미를 헤아려야만 이해가 되기 때문에, 접근하기가 쉽지 않다.

『(통합 논술세대를 위한) 동양고전 강의』는 이러한 문제의식을 가지고 있다. 먼저 동양고전에 자주 등장하는 철학자나 철학서의 요지를 이해하기 쉽게 설명하였고, 거기다 더해 현대적인 예시나 친숙한 용어를 사용하여 학생이나 일반인들이 본의를 쉽게 이해할 수 있도록 했다. 하지만 쉽고 친숙하게 설명하면서도 비판적 독해와 핵심 사상에 대한 재구성을 준수하게 수행하고 있다.
주제에 대해서 직접 접근하지 않고, 관련된 정보들을 차근차근 정리하면서 핵심으로 다가가는 서술 방법을 사용하고 있기 때문에 독자는 단편적인 지식은 아는 것을 벗어나 전체적인 그림을 그려볼 수 있다. 뿐만 아니라 원전에 대해서 비판적 독해를 시도하거나 원문을 아예 비판적으로 재구성해 하나의 독서 방법론까지 제시하고 있다. 따라서 이 책을 읽고 난 독자들은 동양고전의 내용에 함몰되지 않고 보다 주체적으로 다가갈 수 있을 것이다.
단락의 말미에 입문을 위한 추천도서와, 본격적인 독서를 위한 원전도서를 제시하고, 낱말퀴즈로 마무리를 하는 것이 특징이다. 결국 이 책은 원전을 위한 친숙한 해설서로서의 역할에 충실하고 있다고 말할 수 있다. 한 가지 덧붙이자면 고전을 읽기 전에 느낄 수 있는 부담감을 완화하고 생각을 말랑말랑하게 도와주었다고 평가할 수 있다.

동양고전의 독법은 애초부터 텍스트가 아니라 그 속에 담긴 ‘뜻’을 읽는 것이다. 오늘날과 같은 물신주의나 무한경쟁 세계화 시대일수록 시대적 본질을 꿰뚫고 자신이 취해야 할 선택을 찾아낼 수 있어야 한다. 그렇지 않는다면 뒤처지거나 세태에 따라가기 급급한 사람이 되고 말 것이다. 논술문제를 풀거나 처세를 익히는 데 애쓰는 것도 좋지만, 과거 선조들이 고민했던 뜻을 이어받아 자신은 물론 이웃들의 미래에 대해서 기여하는 것이 이 책이 숨기고 있는 취지일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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페다고지 - 30주년 기념판 그린비 크리티컬 컬렉션 15
파울루 프레이리 지음, 남경태 옮김 / 그린비 / 2002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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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과 영화]지성이 태어나는 곳

 

 

책1 :  페다고지 / 파울로 프레이리, 그린비, 262쪽, 2002년

 

 

책2 :  에우티프론, 소크라테스의 변론, 크리톤, 파이돈 / 플라톤, 서광사, 492쪽, 2003년

 

 

영화 : 죽은 시인의 사회(1990) (피터 위어 감독, 로빈 윌리엄스 주연)

 

 


 

 

 

전통, 명예, 규율, 최고

 

 

 

학부모 및 학생 여러분! 지식의 촛불입니다.

100년 전, 1859년에도 41명의 소년들이 여기 앉아서 학기를 시작하는데 있어서 여러분을 반기는 똑같은 질문을 받았습니다.

여러분, 4개의 교훈은 무엇입니까?

전통, 명예, 규율, 최고!

웰튼 아카데미가 설립된 해에 5명의 학생이 졸업했고 작년에는 51명의 학생이 졸업을 했습니다. 그 중 75%가 넘는 학생들이 아이비리그에 진학했습니다. 이런, 이런 훌륭한 업적은 우리 학교가 열성적으로 가르친 원칙들의 결과입니다. 그것은 곧 학부모님들의 자제 분들을 이곳에 보내는 이유이기도 하며 이곳이 미국에서 최고가는 대학 진학 예비 학교인가 하는 이유인 것입니다

- 『죽은 시인의 사회』, 명문 웰튼 고등학교의 새학기 개강식 교장선생님 축사

 

 

어디서 많이 들어본 이야기이다. 바로 ‘아이비리그’ 대신 서울대나 고려대 같은 국내 유명 대학을 집어넣으면 감쪽같이 국내 유명 고등학교의 개회사가 될 것이다. 학생들은 기숙사로 돌아가서 명문 모교의 4대 교훈을 조롱한다.

“여러분? 4개 교훈이 뭐지? / 익살, 공포, 타락, 배설!”

이 학교의 학생들과 같이 교장 선생님의 축사를 신나게 비판해 보자. ‘지식의 촛불’이나 ‘전통’은 ‘실적’의 다른 이름일 뿐이다. 새로운 발견을 하고 인류에게 유익한 가치를 전해준 것과는 전혀 상관 없이 명문 대학에 몇 명 진학했는지 하는 ‘실적’이 이것을 대표하는 것이다. 명문대학에 진학한 것은 지극히 개인적인 영광이다. 교장 선생님의 축사는 이것을 학교의 차원으로 조금 넓혀놓았을 뿐이다. 이들에게 지식이란 것은 명문 대학의 시험에 합격하기 위한 능력이므로 ‘기술’이라고 해야 옳다. 이것이 ‘전통’으로 불리는 것은 더욱 안타까운 일이다. 왜냐하면 인류에 도움이 되지 않을 뿐만 아니라 오히려 사람들과의 단절을 의미하는 신분상승이 오히려 ‘명예’로 평가받고 있기 때문이다. 뿐만 아니라 그러한 폐단이 바뀌지 않고 대대로 전승되고 있다는 것은 그만큼 이 ‘명문’ 고등학교가 정체돼 있다는 것을 의미하며 그것이 ‘명문’이라는 이름을 달고 있는 모든 고등학교의 현실인 셈이다.

그러면 세 번째 교훈인 ‘규율’은 어떨까?

 

 

(교사가 설명자인) 설명은 학생들이 셜명된 내용을 기계적으로 암기하도록 만든다. 더 나쁜 것은 학생들을 교사가 내용물을 ‘주입’하는 ‘그릇’이나 ‘용기’로 만든다는 점이다. 더 완벽하게 그릇 안을 채울수록 그 교사는 더욱 유능한 평가를 받는다. 또한 내용물을 고분고분 받아 채울수록 더욱 나은 학생들로 평가된다.

이렇게 해서 교육은 예금 행위처럼 된다. 학생은 보관소이고 교사는 예탁자다. 양측이 서로 대화하는 게 아니라, 교사가 성명을 발표하고 예탁금을 만들면, 학생은 참을성 있게 그것을 바당 저장하고, 암기하고, 반복한다. 이것이 바로 ‘은행 저금식’ 교육 개념이다. 여기서는 학생들에게 허용된 행동의 범위가 교사에게서 받고, 채우고, 보관하는 정도에 국한된다. 물론 학생들도 자신이 보관하는 물건들의 수집가 또는 목록 작성자가 될 수 있는 기회쯤은 가지고 있다. 그러나 결국 이런 오도된 제도에서는 누구나 창조성, 변화, 지식이 결여되었다는 평가를 받을 수밖에 없다. 탐구 정신과 프락시스(practice, 변혁을 위한 인간의 능동적 실천)가 없으면 진정한 인간이 되지 못한다. 지식은 창조와 재창조를 통해서만 생겨나며, 인간은 끊임없고 지속적인 탐구 정신을 통해 세계 속에서, 세계와 더불어, 또 타인과 더불어 살아나갈 수 있는 것이다.

저금식 교육관에서 지식이란, 지식을 가지고 있다고 자처하는 사람들이 아는 것이 없다고 여기는 사람들에게 일방적으로 전달하는 것이 된다. 이처럼 사람들이 절대적으로 무지하다고 가정하는 것은 억압 이데올로기의 한 특징이며, 탐구 과정으로서의 교육과 지식을 부정한다.

- 『페다고지』

 

 

규율이라는 것은 ‘고분고분 말 잘 듣는 것’을 말한다. 이미 만들어진 지식의 체계를 강요해도 거기에 대해서 의문을 던지지 않는 학생이 바로 규율을 잘 따르는 학생이다. 이것을 페다고지에서는 ‘은행저금식 교육’이라고 이름지었는데, 창조성과 능동적 사고가 결여된 ‘죽은 교육’을 뜻한다. 이것을 잘 따르기만 한 학생은 그 분야에서 최고가 될 수 없다. 때문에 ‘최고’라는 교훈은 자기모순적이다.

‘최고’는 그보다 낮은 무엇인가를 상정한 개념이므로 ‘최하’와 같은 개념들이 있다. 그러나 가치판단은 상대적이기 때문에 어떤 면에서 ‘최고’인지 밝혀야 한다. 그렇지 않은 한 이것은 하나의 고정관념이나 헤게모니에 불과할 것이다.

인간의 존재는 ‘절대적’이다. 누구도 나의 삶을 대신할 수는 없기 때문에 ‘나’는 ‘절대적 가치’가 있는 존재이다. 하지만 ‘최고’라는 사고방식은 이러한 가치를 정면으로 부정하는 개념이다. 최고와 최하를 가르는 순간 인간의 존재가치는 사라진다.

 

 

믿거나 말거나 여기 있는 우리 각자

모두는 언젠가는 숨이 멎고 차가워져서 죽게 되지

이쪽으로 와서 과거의 얼굴들을 지켜봐라(100년 가까이 된 선배들의 사진을 가리킨다)

여러 번 이 방을 왔어도 유심히 본 적은 없었을 거야

너희와 별로 다르지 않을 거야. 그렇지?

머리모양도 같고 너희처럼 젊고 패기만만하고 너희처럼 세상을 그들 손에 넣어 위대한 일을 할거라 믿고 그들의 눈도 너희들처럼 희망에 가득 차 있다.

하지만 그 당시 그들의 능력을 발휘할 시기를 놓친 것일까?

그렇게 생각하는 것은 이 사람들은 죽어서 땅에 묻혀 있는지 오래이기 때문이겠지.

하지만 여러분들이 잘 들어보면 그들의 속삭임이 들릴 것이다

자, 귀를 기울여봐, 들리나?

카르페

들리나?

카르페

카르페 디엠

현재를 즐겨라

인생을 독특하게 살아라

- 『죽은 시인의 사회』, 키팅 선생님의 첫 강의

※ 카르페 디엠(Carpe diem)

‘이 날을 붙잡아라’‘현재를 즐겨라’의 뜻을 가진 라틴어

 

 

키팅 선생님은 다시 돌아오지 않는 현재적 가치를 강조한다. ‘최고’라는 허무한 관념에 지배당하기보다는 자신이 가지고 있는 독특한 능력을 최대한 발휘하며 현재를 즐기는 메시지를 던진다. 바로 이것이 ‘최고의 인생’이 아닐까?

 

 

 

지성이 태어나는 곳

 

영화 『죽은 시인의 사회』의 상당 부분은 코네티컷 대학의 영문과 교수로 있는 사뮤엘 피커링(Samuel Pickering)과 함께 한 사립학교 학생들의 경험에 바탕을 두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이들이 말하는 학교는 지성이 태어나는 곳이다. 하지만 학교의 의미는 점차 변질되고 있다. 학원폭력 등 학교문제의 이면에는 일방적인 교육정책에 소외된 구조적 문제가 암존한다. 학교는 이제 ‘어떻게 가르치느냐’보다는 ‘어떤 학교를 졸업했느냐’로 가치기준이 바뀌고 있다. 키팅 선생님은 시와 인생, 교육을 어떻게 생각하고 있을까?

 

 

자, 계속 찢어라. 이건 전투요, 전쟁이다. 지면 마음과 영혼이 다친다.

우수한 학생들한테 시를 측정하게 만들다니, 안되지!

여러분! 이제 여러분은 생각하는 법을 다시 배우게 될 거야

여러분은 말과 언어의 맛을 배우게 될 거야

누가 무슨 말을 하든지 말과 언어는 세상을 바꿔 놓을 수 있다 ……

비밀을 하나 얘기해 주지

가까이 모여라! 가까이 모여!

시가 아름다워서 읽고 쓰는 것이 아니다.

인류의 일원이기 때문에 시를 읽고 쓰는 것이다. 인류는 열정으로 가득 차 있어.

의학, 법률, 경제, 기술 따위는 삶을 유지하는데 필요해

하지만 시와 미, 낭만, 사랑은 삶의 목적인 거야

휘트만의 시를 인용하자면

“오, 나여! 오, 생명이여! / 수없이 던지는 이 의문! / 믿음 없는 자들로 이어지는 도시 / 바보들로 넘쳐흐르는 도시 / 아름다움을 어디서 찾을까? / 오, 나여! 오, 생명이여!”

대답은 한 가지 네가 거기에 있다는 것

생명과 존재가 있다는 것

화려한 연극은 계속되고 너 또한 한 편의 시가 된다는 것

화려한 연극은 계속되고 너 또한 한 편의 시가 된다는 것

여러분의 시는 어떤 것이 될까?

- 『죽은 시인의 사회』, 키팅 선생님

 

 

키팅 선생님에게 있어서 ‘시’는 한 사람의 인생이다. 그래서 시는 아름다운 것이다. 이런 아름다움을 측정할 수 있는 잣대는 세상 어디에도 없다. 다만 인간의 오만과 무지가 있을 뿐이다. 의학, 법률, 경제, 기술. 이런 것들을 이제는 인생의 목적이라고 가르치지만, 진정한 인생의 목적은 시와 미, 낭만, 사랑이다. 인류의 생명과 존재와 어울리는 궁극적이 가치는 이것들밖에 없다. 이처럼 인생의 도구와 목적을 구분하지 못하는 사람은 바보이지만, 휘트먼 시인의 말처럼 이 세상에는 바보들로 넘쳐난다.

 

 

문제제기식 교육 방법은 교사-학생의 행동을 이분화하지 않는다. 여기서는 교사가 어떨 때는 ‘인식적’이고, 어떨 때는 ‘설명적’인 일이 없다. 즉 교사는 학습안을 준비할 때나 학생들과의 대화에 참여할 때나 똑같이 늘 ‘인식적’이다. 교사는 인식 대상을 자신의 소유물로 여기지 않고, 자신과 학생들이 함께 성찰해야 할 대상으로 여긴다. 이런 식으로 문제제기식 교육자는 항상 학생들을 배려하여 자신의 성찰을 재형성하는 것이다. 학생들은 더 이상 유순한 강의 청취자가 아니라 교사와의 대화 속에서 비판적인 공동 탐구자가 된다. 교사는 학생들에게 생각할 재료를 제시하며, 학생들이 각자의 견해를 발표할 때 예전에 가졌던 자신의 생각을 재고한다. 문제제기식 교육자의 역할은 학생들과 함께 독사(doxa) 수준의 지식이 로고스(logos) 수준의 참된 지식으로 바뀌는 과정을 창출하는 데 있다.(그리스 철학에서 독사란 ‘낮은 차원의 주관적 지식’을 뜻하고 로고스란 ‘사색의 결과로 얻어지는 지식’을 가리킨다)

은행 저금식 교육은 창조성을 마비시키고 금지하지만, 문제제기식 교육은 현실을 드러내고자 한다. 전자는 의식의 침잠을 유지하려 하지만, 후자는 의식의 출현과 비판적 현실 개입을 위해 노력한다.

학생들은 점점 세계와 더불어 그리고 세계 속에서 자신들과 관련된 여러 문제들을 대하게 되기 때문에, 점점 자극을 받으며 그 자극에 반응해야 할 의무를 느낀다. 학생들은 그 자극을 이론적 문제로 받아들이지 않고 총체적 맥락 속에서 다른 문제들과 연관된 것으로 이해하므로, 점점 비판적인 인식을 가지게 되고 따라서 점점 덜 소외된다. 자극에 대한 그들의 반응은 새로운 자극을 낳고 뒤이어 새로운 이해를 낳는다. 이런 식으로 학생들은 점차 자신도 몰두하고 헌신할 수 있다고 간주하게 된다.

- 『페다고지』

 

 

키팅 선생님에게 한 사람의 인간이 아름다운 시와 같다면 페다고지에서는 ‘로고스’와 같다. 사색하는 창조적인 인간이 탄생하기 위해서는 문제제기식 교육이 이루어져야 한다고 역설한다. 즉 교사와 학생이 지성을 탐구하는 공동참여자로서 대등한 관계를 가지며, 비판적 지성으로 현실문제에 참여한다. 이러한 과정을 통해서 학생은 총체적 맥락 속에서 세계를 파악할 수 있으며 나날이 세상을 거듭나게 만들어나갈 수 있다. 이것이 바로 이상적인 교육 모델이다.

 

 

 

이상적 교육의 좌절

 

요즘 인기 있는 개그 프로에 다음과 같은 유행어가 나온다.

“현실은 달라요!”

교육의 문제 역시 떡하니 버티고 선 구조적 문제에 대해 이상적인 교육철학이나 개인 차원의 노력은 좌절되기 쉽다. 아래의 표는 어느 신문사가 조사한 올해 지방대 수석 졸업자들의 취업률 현황이다. 미취업자와 취업자, 진학자가 대체로 같은 분포도를 보이지만, 진학자들 중에서는 취업이 여의치 않아 진학을 택한 졸업생도 있으리라 추측할 수 있기 때문에 실제로는 더 많은 학생들이 사실상 미취업 상태에 놓인다는 것을 알 수 있다. 한 대학의 수석졸업자는 대학 생활 내내 성실하게 학업에 열중한 사람이다. 하지만 오늘날 사회는 개인의 그러한 노력에 대해 별 관심을 두지 않는다.


 

이러한 사회적 환경 속에서 교육적 가치는 왜곡되기 쉽다. 키팅 선생님의 좌절은 아마도 예견될 일인지도 모른다. 평소 학교의 교육 방침에 따르지 않아 눈의 가시 같은 존재인 키팅 선생님이 학교에서 쫓겨나게 된 이유는 표면적으로는 학생의 자살 사건과 비밀 모임에 대한 사주이지만, 그보다 근본적인 원인은 학생들의 가슴 속에 숨은 열정과 감수성을 일깨워 주었기 때문이다. 폐쇄적인 사회에서는 이러한 특성들이 죄악시된다. 소크라테스 역시 그와 같은 이유로 재판에 회부되었다.

 

 

아테네 여러분! 바로 이 캐물음으로 말미암아 저에 대한 많은 증오심이 생겼는데, 그것도 아주 고약하고 심각한 것들이어서, 마침내는 이로 인해 많은 비방이 생겼으며, 또한 이 현자라는 이름으로 불리게도 된 것입니다. 그건 그 때마다 함께 있던 사람들이, 제가 다른 사람을 논박하게 되는 그 문제들에 있어서 저 자신이 지혜로운 줄로 생각하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여러분! 사실은 신이 지혜롭고, 또한 신은 이 신탁의 응답에서 이 점을, 즉 인간적인 지혜는 별로 아니 전혀 가치가 없다는 걸 말하고 있는 것 같습니다. ……

한데, 이에 더하여 갑부들의 자식들로서 아주 여가가 많은 젊은이들이 자진해서 저를 따라다니게 되었는데, 이들은 사람들이 캐물음을 당하는 걸 들으며 즐거워하고, 때로는 자신들도 저를 흉내내어서는, 다른 사람들한테 캐어묻기를 시도하고 있습니다. 그렇게 되니, 자신들은 대단한 걸 알고 있는 것으로 생각하지만, 아는 것이라곤 별로 없거나 전혀 없는 숱한 사람을 이들이 발견하게 되는 것으로 저는 생각합니다. 어쨌든 이렇게 해서, 이들한테서 캐물음을 당한 사람들은 저한테 화를 내지 이들한테는 그러지 않거니와, 그들은 또한 말하기를 소크라테스라는 자는 지극히 혐오스런 자이며 젊은이들을 타락시키고 있다고 합니다.

- 『소크라테스의 변론』

 

 

소크라테스와 키팅 선생님은 몇 가지 공통적인 죄목(?)이 있다.

첫째, 젊은이의 가슴에 진정한 지식에 애정과 열의를 불어넣었다.

둘째, 부당한 전통에 대해 저항하고 맞서는 비판정신을 가르쳤다.

셋째, 미신보다는 자신의 이성을, 헛된 환상보다는 자신의 실체를 성찰할 수 있게 하였다.

넷째, 진정한 아름다움에 대해 가르쳐서, 아름다움이 젊은이의 가슴에서 떠나가지 않도록 만들었다.

위에 열거한 죄목에 따라 소크라테스는 처형을 당했고, 키팅 선생님은 추방을 당했다. 위와 같은 항목들이 과연 ‘죄’가 되는지에 대해서 의아해할 수도 있다. 하지만 하나의 가치가 올바로 평가되느냐 왜곡되게 평가되느냐는 순전히 그 사회의 성숙도에 달려 있다. 중국의 시인 굴원의 말처럼 ‘세상은 모두 취해 있는데 나만 깨어 있다면’ 결국 나 혼자 취한 사람이 되는 것이다. 세상을 변화시키는 것은 개인이지만, 그것은 개인들 간의 연대가 있을 때에만 가능한 일이다. 소크라테스와 키팅 선생님이 올바르게 평가받는 날, 그날이 과연 언제일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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